키울 수 있는 숫자




뭔가를 기른다는건 즐거운 일이다.
매일 손이 가지만 애정을 쏟으면 그만큼 무럭무럭 자라주고 나름의 보답도 해 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엉망이 되지만 반대로 말하면 책임을 지는
만큼 성과와 보람이 있다는 말이다.
“젠장...”
그 애정을 쏟던 텃밭이 처참하게 망쳐진 모습을 보며 ,난 짜증이 밀려왔다.


-키울 수 있는 숫자-

농사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마당 한 구석에 텃밭을 만들어 봤을 뿐이다.
고구마를 두 이랑, 방울토마토가 몇 그루 심겨있는 작은 텃밭이지만 매일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벌레를 잡아도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폐가 되는 해충을 막지 못했다.
볶으면 먹을 수 있는 고구마줄기는 이빨에 잘린 자국을 낸 채 잘려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아
직 덜 자라 손가락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고구마들이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치 이랑을 전부 수확해버릴 기세로 덜 자란 고구마를 반 넘게 파낸 것이다.

그 해충 녀석들 다운 행동이다. 그 짧은 팔로 안아 옮길 수 있는 건 대여섯 개가 한계겠지만
욕심대로 끝없이 파내고 또 파내다가 어쩔 수 없이 두고 갔을 것이다.
이미 붉게 익어서 한두 개씩 따먹던 방울토마토도 몇 개가 이빨자국이 난 채 바닥에 굴러다니
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충, 실장석이 왔었다는 증거로 이랑에 녹색의 대변무더기가 있었다.
마킹.
자신의 소유라는 표시로 배설물을 남기는 것이다.
보통 들실장의 반 정도는 정해진 곳에 대변을 보는 정도의 지능은 간신히 갖추고 있지만 저능
한 개체는 인간의 생활공간 주변이나 쓰레기장에 마구 대변을 뿌린다. 단지 화장실의 개념을

이해 못하는 것 외에도, 대변에 의한 비위생적 환경과 적에게의 노출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
보다 마킹을 통한 소유권 주장을 하려는 본능이 강한 경우다.
그런 면에서 내 텃밭을 망친 실장석은 인간의 생활권임이 분명한 곳을 마구 망치고 마킹까지
하는걸 보면 상당히 저능한 개체 같다. 그러나 먹을 것이 많은걸 안 곳에 마킹까지 하고 갔으
니 분명히 다시 올 테고, 코로리나 한두 개 뿌려두면 될 것이다.
내가 모기약과 같이 둔 실장구제셋트를 가져오려 집으로 들어선 순간.
-부스럭부스럭
데에이이이...

“응?”
담 아래의 배수구에서 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급히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내다보자, 잠시뒤 배수구에서 실장석 한마리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콧물이 흐른 더러운 얼굴과 해진 두건으로 봐서 확실히 들실장이다.
잠시 마당을 두리번거리던 그 들실장은 인간이 없다고 판단한듯 기어 나와선 텃밭으로 달려갔
다.
그러더니 들고온 비닐봉투를 넓혀서 바닥에 널린 작은 고구마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뎃! 스우! 데스데스웅~! 데에에에~!!!

먹을게 넘쳐나는 기쁨에선지 녀석은 듣기 역겨운 울음소리를 내며 계속 고구마를 담아갔다.
그리고 봉투가 거의 차자 이번엔 방울토마토에 다가갔다.
-뚝
소중히 길러온 방울토마토가 들실장의 손에 따이는걸 보자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저 살아있어
봤자 인간에게 피해만 주는 생물을 밟아 터트려버리고 싶지만, 참아야한다.
아직 월동준비를 할 때가 아닌데도 영리하지 못 한 개체가 먹이를 대량으로 모으고 있다.
그건, 새끼가 있다는 뜻이다.

이론상으로 한마리가 있으면 8, 64, 512, 4096, 32768의 수치로 새끼를 싸재끼는 녀석들이
다. 물론 현실에선 구제와 도태, 학대로 그렇게까지 늘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집 근처에 실장
석들이 돌아다니는게 싫다면 새끼가지 박멸해야 한다.
여기서 바로 저 들실장을 죽이면 어미를 잃은 새끼들도 죽겠지만 질긴 한두마리가 또 성체가
될 수도 있다는건 여름에 쪄죽고 겨울에 얼어죽고 사계절 내내 맞아죽어도 어느새 꾸역꾸역
늘어나 있는 초록색의 기분 나쁜 인형들의 모습이 증명해 준다.
데스웅~
만족이란걸 모르는 생물이지만 더이상 봉투에 들어가지가 않자 봉투를 힘겹게 안아들고 비틀
대며 배수구로 향했다. 얼마나 우겨 넣었는지 걸을때마다 고구마나 토마토가 바닥에 떨어지지
만 간신히 배수구를 통과할 크기인지 배수구에 봉투를 밀어넣은 들실장은 곧 배수구 아래로
사라졌다.

“........”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코로리 대신 찬장 위에서 먼지가 쌓여가던 린갈을 들고 나왔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까워서 들키는걸 걱정해야할 정도로, 집을 나서자 마자 바로
눈에 띈 그 들실장의 걸음은 절망적으로 느렸다.
30cm정도의 몸에 머리가 5분의 2, 몸통이 5분의 2, 다리가 나머지라고 보일 수준의 웃기는
구조의 몸으론 제대로 속도를 낼 수도 없지만 무거운 봉투를 안고 있어서 더욱 그럴것이다.
내 집이 외곽의 후미진 곳이 아니었으면 바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이겠지만, 반대로 그런곳
이라 이런 들실장들이 넘나들기도 하는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들실장은 주택가의 외곽, 작은 숲이 조성된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의 나
무 덤불로 들실장이 들어가는 걸 본 나는 발소리를 줄이고 접근했다.
나뭇가지를 살짝 헤치자 꽤 커다란 골판지 안에서 실장석들의 울음소리가 수도없이 울리고 있
었다.
테치이!
테치~
레츄~
레치~
먹이를 가져온 어미를 반기는거 같지만 적어도 열마리 이상은 있는 것 같다.

「많이 먹는데스 아직도 가득있는데스~」
「맛있는테치! 맛있는테치!」
「이 빨간건 상큼하고 달콤한 물이 나오는테치!」
「구더기짱들에겐 노란건 무리레치. 빨간걸먹는레치」
「레후~」
골판지 안에서 들려오는 테치테치테치레치레치레후 가 번역되어 나오는 린갈의 화면을 보면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분나쁜 울음소리에 섞여서 들리는 오독오독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소중하게 길러온 고구
마와 방울토마토를 더러운 벌레떼들이 가득 달라붙어 갉아먹는 소리인것이다.
“......”

「이런 달콤한거 처음먹는테치! 이것이 콘페이토가 틀림없는테치!」
「레치? 그럼 이 빨간게 스테이크레치?」
「아닌데스. 콘페이토는 훨씬더 작고 달콤한데스.」
「테..? 그래도 맛있는테치!」
「더 먹는데스! 먹고싶은 만큼 가득가득 먹는데스!」
「남겨두지 않는테치? 밥이 모자란 날 먹는테치.」
「장녀는 영리한데스. 하지만 이제 걱정마는데스. 와타시가 인간이 먹을걸 기르는 장소를 찾아
낸데스. 앞으로 너희들이 배고플일은 절대로 없는데스!」
「대단한테치!」
「마마는 훌륭한테치!」
「테... 인간의 것테치? 위험한테치... 인간들의 것에 손대면 안되는테치...」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을 기르기 위해서인데스. 배고파서 고생한걸 잊은데스? 장녀는 영리하
지만 걱정이 많은데스. 그것보다 어서 더 먹는데스!」
“...........”
린갈에 뜬 문자를 보던 나는 골판지를 향해 치켜들고 있던 알루미늄 파이프를 내렸다.
그리고 몸을 수그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골판지 안으로 던져넣었다.

-툭
「테치아아아아아아악-!!!」
「데?! 무슨일데스! ...뜨거운데샤아아!!!」
운 없게도 담뱃불에 맞은 녀석이 있는지 자실장의 비명이 들린 후 새끼를 구하려다 담배에 데
인듯한 친실장의 비명도 들려왔다.
「눈! 눈이 아픈테치! 아픈테치! 아픈테치!!! 아픈테샤아아아악-!!!」
「데! 정신차리는데스!」
운이 진짜 없는지 그 작은 눈을 담뱃불에 정확히 맞은듯한 자실장은 이미 눈알이 익었겠지만
문제는 그거만이 아니다.

「케혹! 목이 막히는레치!」
「와타시의 눈도 따가운 테치이!」
「케혹! 테에에에!」
옆으로 쓰러져 윗부분이 조금 열려 출입구의 역활을 하는것 외엔 밀폐된 골판지 내에 담배연
기가 자욱해지자 안에서 실장석들의 기침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데켁! 모,모두 나가는데스!」
그리고 아까 본 성체가 자실장 한마리를 안고 뛰쳐나왔다. 담배불에 맞은 녀석인듯 적색이어
야할 오른쪽눈이 까만 담뱃재 투성이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가는테치! 모두 따라오는테치! 구더기들을 챙기는테치!」
「기다리는테치! 장녀오네짱!」

「구더기짱 어서 안기는레치!」
「레후?」
「테아아아아...!」
“우웩...”
그 뒤로 구더기를 안은 자실장과 엄지들이 연기에 콜록이며 줄줄이 기어나왔다.
골판지가 크기는 했지만 예상을 넘어서 합치면 20마리에 달하는 실장석이 우글대는 장면은
징그럽지만 개중에 패닉에 빠져서 구더기로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 와중에도 먹을걸 챙기겠
다는 건지 손가락 크기의 고구마를 꼭 끌어안고 나온 엄지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구더기짱 이제 괜찮은레...치이이이?!?!?!」

아무래도 착각을 한 것인듯 급히 뛰어 나온후 숨을 몰아쉬며 품안의 고구마를 내려다보고,
‘구더기짱’이 아니라 고구마라는 걸 깨달은 순간 파킹할 기세로 경악하며 다시 골판지로 뛰어
들어가려는 엄지실장을 유난히 몸이 큰 자실장이 잡았다.
「진정하는테치! 구더기짱들은 모두 나온테치! 8녀! 8녀짱은 어디있는테치?」
아무래도 상당히 영리한 개체 같다. 장녀인듯한 그 녀석은 아직도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만 하
고 있는 친실장과 달리 동생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때 간신히 정신이 든 친실장이 눈 앞에 있는 내 발을 알아차리고 올려다봤다.
「이게 무슨일데... 데! 인간데스우우우!!!!!」

친실장의 외침에 주위의 새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
다.
그러나 그걸 일일이 쫓을 필요도 없이, 제딴에 재빨리 도망친다고 허둥지둥 걸어가는 친실장
의 머리에 손을 얹고 꾹 누르자 간단히 무릎을 꿇어버렸다.
「데! 놓는데샤아아아!!!」
「테! 마마!」
친실장이 잡히자 새끼들도 모두 도망을 포기하고 주위에서 발을 구르며 울거나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새된 목소리로 위협을 한다.
새끼를 20마리나 데리고 있다는건 새끼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개체일 테니 그 아래서 자란
새끼들도 애정을 받고 자라 보통의 실장석들 보단 가족애가 있는것 같다.

그렇지만 때로는 비정하게 버리고 가는게 생존의 방법이라는면에서 보면 역시 그다지 영리하
지 못하다. 아까의 장녀인듯한 자실장 하나만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테....치...마마...」
「데! 정신이 든 데스! 다행인데스.」
그때 친실장에게 안겨나온 자실장이 정신을 차렸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듯 멍하니 있던 자
실장은, 눈에서 느껴지는 격통과 반토막난 시야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눈이 아픈테치이이이!! 안보이는테치이이이잇!!!」
「데....?!」
그제서야 자가 눈에 화상을 입었다는걸 깨달고 굳어진 친실장 앞에서, 자실장이 절규했다.

「눈이 망가진 테챠아아아아!!!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은 낳을수 없게된테치이아아아아악-!!!」
「데스우우우....!!!」
발광하는 자실장을 안은 친실장이,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 봤다.
「인간! 이게 무슨짓인 데샤아아!! 와타시의 자가 자를 낳을수 없게된데샤아아아!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데스! 와타시들이 무슨짓을 했다고 이러는데스아아아-!!!」
나는, 새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대화의 시간이다.

“우선 해야할 말이 있을텐데?”
「데?」
“난, 네가 망친 밭의 주인이다.”
「밭.... 뭐인데스! 와타시가 뭘했다는데스!」
“밭이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는건가... 하긴 뭔가 스스로 기르는 능력이 없는녀석들
이니. 네가 땅에서 파간 고구마와 따간 방울토마토는, 내것이란거다. 내것을 도둑질한거야.”
「데...」
골판지를 돌아본 친실장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필사적으로 당혹감을 숨긴후 녀석은 우기기 시
작했다.
「비겁한데스! 인간은 그렇게 모든것이 자기것이라 하는데스! 와타시들보다 크고 힘이 세다고
자연의 모든것이 인간만의것이라고 주장하는데스? 와타시들도 먹을권리와 행복할권리가 있는
데스우-!!!」
“그렇군. 인간이 기른거라는걸 몰랐다고 발뺌할 셈인가.”

「데?」
“비록 밭이란 개념은 아예 머릿속에 없어도, 방금 넌 인간이 먹을걸 기르는곳이라고 얘기했잖
아? 그거 다 듣고 있었다고. 인간이 기르는거란걸 알고도 손을 댔다는거잖아.”
「데에에에!」
얄팍한 거짓말이 바로 들통난 친실장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옆에서 새끼들도 불안하게 친실
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변명조차 안 통하자 친실장은, 빌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시는데스! 자들이... 굶는데스. 인간상들이 버리는것 만으론 모두 기를수가 없는데스!
귀여운 와타시의 자들이 배고파해서 어쩔수 없이 인간상들에게 신세를 지는데스!」
존대말, 높임법, 호칭이 순식간에 전부 변했다. 이런 어조를 알면서도 와타시가 불리하기전엔
인간인간 해대는 녀석들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녀석들을 골판지째 짓이겨버리지 않은 이유를 정확히 들고 나왔다.
구태여 대화를 시도한 보람정도는 있을것이다.
“새끼들이 굶는다고?”
「그런데스...」
“그래서 인간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그런데스.」
“폐라는건 스스로 알며서도 하고 있었구나.”
「데?! 데...데에... 어쩔수 없는데스. 자가 굶으면 어떤 부모라도고 그럴것인데스. 인간상들도
자는 소중히 여기는데스! 평생 길러달라는것도 아닌데스! 스테이크와 스시도 먹고싶지만 참는
데스! 그저 인간상들이 가득 가진 먹을거 약간이면 자들이 배루르게 먹고 행복한데 그 작은걸
왜 못해주는데스! 쪼잔한데스! 인간들은 와타시의 배고픈 자들을 쉽게 구할수 있는데도 구해
주지 않는데아아아-!!!!」

아마 과거에 새끼들은 여럿 굶겨 죽인 모양인지 이야기를 하다 격양한 친실장은 기껏 바꾼 어
조도 원래대로 돌아가서 살아가는 고생과 슬픔, 원망들을 토해냈다.
그렇지만.

“전제조건이 틀렸다.”
「데?」

원래 문답무용으로 때려죽였을 들실장에게 설명을 하고 있자니 내가 뭘 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가벼운 여흥거리는 될 것이다.
“애초에 새끼들이 굶주려서 인간에게 빌붙는다는건, 인간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는 기를수 없
을 정도로 새끼를 낳았다는것이다.”
「데스...?」
“기를 능력도 없으면서 끝없이 새끼를 치지, 그리고 인간에게 이것저것 피해를 입히는건 물론
자신들의 생활조차 망칠정도의 새끼를 데리고 그저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생물이다 너
희들은.”
「무슨소리데스! 자를 가득 가지는건 행복데스!」
“닥치고... 실장석. 네가 만약 내 밭도, 다른 음식쓰레기도 손 대지 않고, 이 숲의 열매와 풀만

으로 먹고살면 어떻게 될까?”
「데... 그러면 자들이 굶어 죽는데스... 두마리밖에 살지못할정도데스....」
“그렇구나.”

“그렇다면 네가 기를 자격이 있는 새끼는, 두 마리뿐이란 소리다.”
「데에에에?!」

내 말에 놀라는 친실장에게 나는 마저 설명을 해줬다.
“실장석이 인간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사육실장을 꿈꾸긴 커녕 골판지와 음식쓰레기도 손
을 대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생활권에 너희들이 여기저기 들쑤시는 모습을 보는것조차 싫은
사람들도 있으니, 산에 굴을 파서 살면서 풀과 나무를 먹는 수밖에. 실제로 산실장들은 그렇
게 살고있다고.”
「데... 산실장은 무엇데스.」
“산에서 사는 네 동족이다. 천대받는 너희와는 달리 인간에게 잡아먹히긴 해도 스스로의 힘으
로 살아가는건 인정받아 욕은 안 먹고 있지.”
「잡아먹는데스? 잔인한데스! 너무한데스!」
“걱정안해도 더러운 들실장은 아무도 안먹어. 홈리스들이 구워먹는건 봤지만 그것도 강제출산
시킨 새끼뿐이고. 게다가 다른 동물도 잡아먹는다고 인간은. 너희들이 그렇게나 노래를 불러
디고 꿈꾸는 스테이크는 소의 고기다. 반대로 말하자면 잡아먹는단건 다른 동물과 똑같은 취
급을 해 준다는거지. 들실장과는 달리.”
「데이... 그래도 안되는데스. 골판지가 없으면 따듯하지 않은데스. 어차피 인간들이 버린것데
스! 그것조차 나쁘다는데스? 와타시도 인간들처럼 크고 밝은 돌집에서 살고 싶은데스! 아와아

와에 먹을게 가득한 냉장고가 있는게 좋은데스! 그런데도 골판지로 참고 있는데 그것조차 안
된다는데스!!!」
아까부터 자기 혼자 격양하는 녀석을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재활용품이 줄어든다는 쪼잔한 소리는 나도 안해. 하지만 공원에 골판지가 널린것 만으로도
피해가 생겨. 안에 실장석의 시체가 든 채 비에 젖어 부패안 골판지는 위생적인 면에서나 악
취로 피해를 주고, 집이랍시고 갖다놨으면서도 좀 큰 비바람만 왔다 하면 바로 젖어 무너지고
날려가 길바닥에 쓰레기로 뒹굴거나 심하면 골판지와 물에 빠져 죽은 너희들의 시체가 배수구
를 막아 침수 피해를 늘리지. 대놓고 민폐다.”
「데.........」
말을 잃은 친실장이, 문득 기침을 했다.

「데켁! 아직도 매캐한데스....?」
나는, 담배로 뒤를 가리켰다.
“그래서 일단 골판지는 뺏겠다.”
「데에에에에에에-!!!」

친실장은, 안에서 붉은 불길을 넘실대며 연기기둥을 피워올리는 소중한 골판지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안되는데샤아아아악-!!!」
데샤아아아아- 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친실장의 울음소리가 린갈에 번역된걸 보던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네가 안된다고 해도 달라질건 없어.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지...”
테챠아아아아아아아-!!!!

그때, 골판지 안에서 들린 귀청을 찢을듯한 큰 비명소리에 친실장은 물론 나도 깜짝 놀랐다.
「데...? 데...?!」
「테?! 8녀짱?」
담배연기가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했거나 골판지 안은 안전하다고 철썩같이 믿은 한마리가 안
에 남아있었던듯하다.

그 순간.
테캬아아아아아아-!!!!
「데에에에!!!」
이미 린갈로도 번역이 안되는 끔찍한 절규를 지르며 골판지 안에서 불타는 자실장이 허우적
거리며 뛰쳐나왔다.

츄워어어어어어-!!! 치아아아아아아-!!!
가벼운 화상에 대한 재생능력조차 없으면서 기름으로 떡지고 쓸데없이 긴 머리칼과 펠트같은
재질의 옷이라는 매우 타기 쉬운 모습의 들실장답게 온몸이 활활 불타던 자실장은, 몇걸음 못
가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테이이이....
-파킥!

처음의 비명과는 달리 희미한 신음소리를 낸 후 바닥에 쓰러져서 웅크린 모습으로 위석이 부
서진 자실장의 몸은 아직도 꺼질 기미가 없는 불에 조용히 타고 있었다.
「데...데에에.....」
놀라서 다리가 풀려 있다가 그제서야 팡콘덩어리를 질질 끌고 기어온 친실장이 울면서 그 불
덩어리에 손을 내밀었지만 열기에 손을 가까이 가져갈 수 조차 없었다.
한참뒤에야 불이 꺼지자 검게 탄 흙바닥에 남은 까맣게 오그라든 작은 덩어리를 보고 오열하
던 친실장이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 이런짓을 하는데스... 와타시들은 겨우 행복을 찾은데스... 더이상 굶지 않고 살 수 있
었던데스... 모두 자라서 자를 낳고 행복할 권리가 있었던데스우우우우.......」

“간단히 말해서, 네가 스스로 책임질수있는것보다 많은 새끼들에게 살 권리를 주는건 네가 아
니란거다.”
「권리...누구나 가지는것데스...누가 주지 않아도 가지는게 권리데스...」
“아니. 네가 책임지지 못하는 새끼들은 사육실장으로 길러주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이 살
권리를 주는거다. 인간에게 길러지지 않고, 네가 기를수 있는 숫자도 넘어선 새끼는 그 순간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버리는거다. 그걸 살리자고 인간에게 폐를 끼치는건 어쩔수
없다니 주객전도도 정도가 있다.”
「데이...」

완벽하게 이해한거 같지는 않지만 침울해지는 친실장을 본 나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들어올렸
다.
“원래라면 내 텃밭을 망쳤으니 너도, 그 원인인 새끼들도 전부 죽이려고 왔지만, 기회를 주
지.”
「데!」
파이프와 죽인다는 말에 놀랐다가 기회라는 말에 귀를 팔랑이는 실장석의 얼굴을 보다가 나는
두마리의 새끼를 집어들었다.
“이녀석과... 이녀석으로 하지.”
「테?! 테치이이?!」

「레치?」
장녀인 자실장과, 아까 고구마를 안고 나왔던 엄지실장이다. 그 둘을 집어 올렸다가 친실장에
게 내려주자 두마리를 꼭 끌어안으며 의아한듯 올려다보는 친실장의 앞에서, 나는 나머지 새
끼들은 커다란 비닐봉투에 쓸어담기 시작했다.
「테? 테에에에!!」
「놓는테챠아아!! 물어뜯어주는테샤아아아!!!」
「마마! 마마! 무서운테치이이!!」
「레츄웅~」
「레후? 프니프니레후?」
그저 프니프니거리며 대변을 흘히는 구더기와 아첨을 하는 엄시실장도, 날뛰는 자실장들과 아
직도 눈이 아프다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화상을 입은 자실장. 심지어 바닥에 남은 숯덩이
자실장 까지 모두를 넣은 봉투는 빵빵해졌다.
희미하게 녹색과 살색이 비치는 하얀 봉투가 꿈틀꿈틀대며 안에서 테챠 레치이 소리가 들려오

는건 기분 나쁘지만 그걸 그대로 집어든 나는 친실장을 내려다봤다.
“가장 영리한 자실장과 가장 애정이 깊은 엄지를 남겨준다. 앞으로 인간에게 기생하지 말고,
굴을 파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네 능력대로 두마리의 자만 길러라. 그게 널 살려주는 조건이
다.”
「데... 나머지 자들은 어떻게 하는데스?」
“내가 가져간다.”
「데! 사육실장데스!」
-짝!
「데앗!」

헛소리를 하는 친실장의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후려쳤다.
“인간에게 빌붙으려 하지말라고 했다. 더러운 들실장 따위 아무도 사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이해해라.”
「데이...」
붉게 물든 뺨을 감싸쥐며 우는 친실장은 내버려두고, 나는 몸을 돌렸다.
“네가 기를 자격이 있는건 단 두마리,라고 스스로 했다. 내가 널 죽이지 않는건 과연 실장석
은 새끼를 기를 자격이 있는 생물인가 라는걸 알아보기 위한 작은 여흥이다. 이제 능력대로
살아봐라.”

데스우....
린갈을 닫고 떠나던 내가 마지막으로 돌아보자, 이미 바닥 일부를 빼곤 재가 되어 날리는 골
판지 앞에서 두마리의 새끼를 꼭 끌어안는 친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뒤.
나는, 다시 텃밭에서 녹색의 대변 무더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간신히 복구를 하고나서 스무마리의 새끼 실장석을 갈아서 비료로 묻은 고구마와 토마토는잘
자라고 있었지만 잎에 녹색의 대변이 여기저기 가득 튀어있었다.

그때와 다른건.
녹색의 대변무더기 한 가운데에 대자로 널부러진 실장석이 있다는것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과 공포의 표정을 그대로 남긴채 죽은 그 실장석의 배는 내부에서의 폭

발로 갈갈이 찢어져 있었다.
폭렬 도돈파와 도로리를 농축해 만든 특제 콘페이토.
그 효과는 보는대로 급팽창한 대변이 미처 총배설구로 뿜어지기도 전에 도로리에 녹아내린 분
대가 찢기며 배가 터져버리는 효과가 있다. 생각보다 효과가 강해서 대변이 사방에 튀어버린
건 실수였지만 배는 터져나가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떨어질 정도로 위력은 굉장했던것 같
다.
“...........”
그 상반신에 남은 팔엔, 세개를 뿌려놓았던 특제 콘페이토 중 두개가 꼭 쥐여져있었다.

그 특제 콘페이토 두개가, 위석처치도 안 돼 있는 실장석이 상반신만으로 악착같이 기어갔던
흔적이 남은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밤엔 비가 온다. 잎사귀에 튄 대변은 비가 씻어줄테니 나는 커다란 무더기만을 대
충 흙으로 덮고는 실장석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집게로 집어들어서, 무심하게 쓰레기봉투에 던
져넣었다.
“..........”
그리고 그 손에서 빼낸 특제 콘페이토 두개를 들고, 그때의 그 언덕으로 갔다.

언덕에 도착하자 아직도 불탄 자리가 남아있는 땅 주위의 나무 아래에 땅이 약간 패여 있었
다.
그리고 그 옆에 타다남은 골판지가 나무에 기대져있었다.
그저 골판지를 나무에 기대놨을 뿐인 그걸 들어올리자, 흙바닥에 누워있는 자실장과 그 옆에
달라붙어서 울던 엄지실장이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레치이....
“결국 이정도란거지.”

자실장, 장녀는 이미 굶어 죽어있었다.
다시는 인간에게 두려운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시킨대로 굴을파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살아가려던 들실장 세마리.

그러나 현실은 제대로 굴을 파지도 못하고 벌레먹은 도토리 몇개를 주운게 전부.
결국 타다남은 골판지를 기대 집으로 삼고 다시 내 밭으로 왔던것이리라.
“네 마마는 또 거짓말을 했구나...”
치이이...
자실장이 언제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꽤나 쇠약해진 엄지는 내 얼굴을 기억 못하는지 그
저 힘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기 능력만으론 두마리는 커녕 한마리조차 키워내지 못하잖아.”
레치이이...
엄지가 뭔가 울음소리를 내지만 린갈은 가져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뻔한 이야기였지만 혹시나하며 여흥을 즐긴것뿐이다.
결국 뻔한 결론이 난 이상 더이상 이것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

그저, 들고온 특제 콘페이토를 엄지에게 건네줬다.
츄...? 레츄! 츄우우우우!!! 레츄우우우웅~ 레츄우우우웅~!!!
일어서서 나무 반대편으로 돌아간 나는 담배를 꺼내물고 라이터를 켰다.

레츄우우~ 레츄....레..레치? 레...레에에에.....?!
-퍼어엉!

찌아아아아아악!!!!!!!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