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실장




"밥을 먹은 기억이 없는테치! 밥을 주는테치!"

오늘도 저 수조 속의 멍청한 자실장 수십 마리들은 밥 달라고 난리다. 

"두 시간 전에 줬잖아 이 멍청한 버러지들아"
"데에? 그런 기억이 없는테칫! 거짓말 하지 마는테치!"

나는 멍청한 헛소리를 하는 자실장을 수조에서 꺼내 벌을 주려다가 문득, 녀석의 무게에 놀라며 중얼거렸다.

"벌써 이렇게 됐나? 좋다, 오늘 드디어 너희들을 키워온 보람을 돌려받을 때가 왔구나" 





천재 실장





수조 속의 자실장들을 모두 네무리로 잠재운 후, 제일 대가리가 큰 놈을 골랐다. 조심스럽게 배를 가르고 위석을 꺼낸 뒤 코팅을 했다. 그리고는 그 코팅한 위석을 실장활성제 용액이 들어있는 작은 비커에 담가두었다. 

"좋아, 이름을 붙여주기로 할까"

미도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깨어난 후에 그 이름을 듣는다면 무척 기뻐할거다. 자, 이제는 다음을 준비할 차례다. 

"요 놈"

주사기를 꺼내어, 잠들어 있는 녀석 중 하나의 머리에 주사 바늘을 푹 쑤셔넣고 그대로 뇌를 주욱 뽑아냈다. 주사기의 반 정도가 찰 정도로 뇌를 뽑아내자 더이상 그 싯누런 뇌 대신 피가 딸려나오기 시작했다. 주사 바늘을 뽑자마자 녀석은 그대로 파킨했다. 그리고는 뽑아낸 뇌를 미도리의 머리 속에 다시 주입했다. 

"음"

그 작업을 순차적으로 반복한다. 약 다섯 마리 분량의 뇌를 미도리에게 주입한 뒤 테스트를 위해 미도리를 깨웠다. 

"어이" 

잠에서 깨어난 눈을 끔뻑끔뻑 미도리는 처음 "테에?" 하며 놀랐지만 곧 나를 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신테추카, 머, 머리가 이상한테치"

나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다섯 마리 분량의 뇌가 한꺼번에 들어갔는데, 혼란스럽지 않을 리가 없지. 

"그래 안녕. 자, 묻는다. 네가 밥을 언제 먹었지?"

그러자 미도리는 "눈 뜨자마자 먹은테치" 하고, 자신이 아까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박수를 쳐준 후, 미도리를 다시 네무리로 잠재웠다. 




지이익-

열여섯 마리째의 뇌를 미도리에 주입하려고 하자 슬슬 주사기에 뻑뻑함이 느껴졌다. 무리해서 주입하다가는 머리통이 터져버릴 가능성도 있으므로 일단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실장석의 놀라운 회복능력은 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지라, 여러 마리의 실장석 뇌를 한 마리의 대가리 속에 몰아넣으면 뭉개지고 압축된 뇌들이 곧 하나로 융해되어 이윽고 곧 하나의 온전한 뇌로 자리잡는다. 

"또 하나의 천재 실장 탄생이다"

뇌세포의 갯수부터 뇌의 용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융해 과정에서 뇌세포들이 좁은 공간에 안착하기 위해 더욱 뇌 주름이 깊어진다. 결국 이는 압도적인 지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멍청하다고는 해도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의 지능은 있는 생물이 실장석이다. 그런 실장석의 뇌를 융합해서 성능 강화를 하면, 그것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의 효과를 가져온다. 

"눈을 떠라 미도리"

내 말에 미도리는 눈을 떴다. 그리고 녀석은 입을 열었다.

"토시아키 주인님, 와타시 배가 몹시 고파진테치, 저급한 실장푸드라도 식사를 주신다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테치"

벌써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졌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고플 것도 당연하다. 뇌가 소모하는 칼로리가 얼마인데. 배가 빨리 고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십육 십칠 십팔 십구…인 테치"
"그 다음은?"
"십십인테치"
"틀렸다"
"…잘 모르겠는테치"
"더 공부하거라"
"알겠는테치"

이후 한달간 나는 녀석을 교육시켰다. 미도리는 훌륭한 개념개체로 성장 중이다. 지능과 분충성은 반비례한다. 물론 드물게 고지능 개체이면서도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분충이 숨어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분충'이라 일컫는 대부분의 실정석 문제는 지능에 의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멍청해서 똥을 변기에 싸야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 호르몬이 이상 분비되는 것이다. 
공격 성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의 자매라는 사실을 지능 단계에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깔보는 것이 아니라, 지능 미달로 자신의 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하기에 인간에게 덤비는 것이다.

…뭐,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대체적으로는 말이다. 그렇다보니 지능이 월등해지면 대부분의 분충성이 잠든다. 그리고 호기심이 발현된다. 

"저건 뭐인테치?"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는거다.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내는 기계지"
"사진을 왜 찍는테치?
"추억을 남기려고 찍는거지. 말 나온 김에 한장 찍어주마"

찰칵!

"데에, 와타시는 정말 귀여운테치"
"분충 같은 소리하지 말거라" 

지식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고 정보의 입출력이 고도화 된다. 외부 자극에 대한 해석의 수준이 올라가고 그것을 내재화함으로서 뇌 기능이 더욱 향상된다. 이른바 '교육'이다. 그리고 녀석은 성장한다. 뇌에 추가 뇌 용량을 주입할 여지가 늘어난다.

"후후"

한 실장샵을 싹 쓸어오는 것도 모자라, 후타바 시의 실장 도매상가를 몇 군데 들러서 자실장 총 60마리를 사왔다. 성체 실장의 뇌를 사용하면 안되냐고 묻겠지만 실장석은 성체 실장쯤 되면 이미 뇌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뇌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고 뇌 전체의 효율이 지극히 낮다. 그래서 자실장의 뇌만을 사용한다. 

"자, 어디 보실까"

꽤 아슬아슬한 정도까지 뇌를 주입했다. 머리가 보통 자실장의 두 배 정도는 되는 크기다. 하지만 곧 줄어든다. 하루 이틀 쯤 지나면 잔뜩 주입된 뇌 세포들이 융합하고 뇌 주름이 더욱 깊어지면서 뇌의 전체 체적은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간다. 물론 뇌의 성능은 압도적으로 향상된다. 물론 아직도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오늘 비가 온다는테치, 우산 챙기는테치"
"오냐, 실장샵에 얼른 다녀오마"
"안녕히 다녀오시는테치, 올 때 차도 조심하는테치"

이제 아침 기상뉴스를 보고 서는 우산 챙기라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은 갖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정말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인테스"
"뭐, 그런 셈이지"
"우리 실장석들에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는테스?"
"아무래도 무리겠지" 
"슬픈테스" 

어느새 4개월. 중실장으로 자라난 미도리. 녀석의 대가리 속에는 약 220마리 분의 실장 뇌가 들어갔다. 녀석은 이제 한번 가르친 것은 여간해선 잊지 않는다. 사회 전 분야에 대한 심층 교육이 이어지고, 백과 사전 및 시사 교양 교육을 했다. 




어느새 6개월, 미도리는 성체 실장이 되었다. 녀석의 대가리 속에는 1200마리의 실장 뇌가 들어갔다. 

"감미로운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데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아마도 알고 있는 것이겠지. 자신이 기형 생명체라는 사실을. 정상의 수천 배에 이르는 뇌 기능은 그만큼 엄청난 칼로리 소모를 유도하고(인간도 하루에 칼로리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기관 중 하나가 뇌다), 녀석의 몸에는 마치 터무니 없는 오버클럭을 시도한 컴퓨터의 냉각장치처럼 수많은 특수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녀석의 위석이 들어있는 대형 수조 속에는 실시간으로 시간당 1리터의 실장활성제가 펌프를 통해 자동으로 주입되고, 녀석의 전신에도 보조 칼로리 공급용 링겔이 몇 개씩이나 꽂혀있다. 녀석의 스트레스를 달래주기 위해 개당 만 엔이 넘어가는 초고가의 세레브 실장용 콘페이토도 매 2시간 단위로 준다. 

그럼에도 미도리는 불행해했다. 자신이 수천마리의 동족을 딛고 일어선 괴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존재 이유도 그저 주인인 토시아키의 욕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아니까. 

그럼에도 미도리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자아의 개념을 심어준, 마치 자신에게는 창조주와 같은 분이라고 말하면서. 

미도리는 티비를 보다 중얼거렸다. 

"다음 자민당 총재는 이부키 의원이 확실한데스"
"마사히로가 있는데?"
"마사히로 의원은 계파가 약해서 아무래도 무리, 당 삼역이 어제 긴급회동 가진 것으로 보았을 때도 이부키 의원이 확실한데스" 
"확실히, 일리가 있구나. 마사히로를 밀어준다면 굳이 그런 이상한 제스쳐를 취할 필요도 없으니까. 어쨌든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시는데스" 

내일은 또 실장 뇌를 투입하는 날이다.  




"어떻다고 보니"

2주간에 걸쳐 무려 4천 마리의 실장 뇌를 주입하고 융합을 완료한 미도리. 나는 녀석과 함께 주가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미도리는 모니터의 차트를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시적 동향은 신경쓸 필요 없는데스, 대장주들 흐름만 조금 훑어보다가 콜 옵션에 올인 들어가는데스. 타이밍은 요 때가 좋아보이는데스"
"좋아"

그렇다. 미도리 같은 초 고지능 실장석을 만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지능을 훨씬 상회하는 실장석을 만들어 낸 이유. 그것은 바로 주식. 기계의 기술적 예측을 압도하는 고지능을 기반으로 한 직관의 필요성. 역시나 미도리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 나는 8천만 엔의 이익을 보았다. 지난 번의 '그린' 때의 거의 두 배를 재미봤다. 

그리고 보통은 여기까지다. 

이 이상은 시도해 본 적 없다. 너무 높은 지능을 가진 실장석은 조금 두렵다. 하지만 나에게도 호기심은 있다. 미도리에게는 묘한 애착도 든다. 아무리 고지능 실장석이라고 해도 한번쯤은 분충성을 드러내보이기 마련인데 녀석은 그런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주입시켜보고 싶다. 실장석의 한계를. 

"해보자"




한달에 걸쳐 무려 8천개의 실장 뇌를 미도리에게 주입했다. 그것도 모조리 세레브 자실장으로. 돈만 해도 억대를 썼다. 8천개의 주입을 위해 증기사출식 주사형 주입기계도 구입했고, 수의사에게 자문도 받았다. 일주일 간의 안정화 기간을 거친 후, 미도리는 눈을 떴다. 

"미도리, 정신이 들어?"

그러지 미도리는 입을 열었다.

"주인님"

내가 얼른 콘페이토를 입에 물려주려고 하자 미도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리울 것인데스"
"그게 무슨 소리야?"

미도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세상 삼라만사 지혜와 통찰의 극의에 다달으면 이른바 허무의 경지에 이르고, 그것에 대해 탐구하다보면 무(無)와 유(有)가 하나임을 깨닫게 되어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깨우침을 얻으니 그것이 곧 열반이어라. 

세상에 대한 미련이야 진즉에 버렸건만 인연에 대한 정은 천륜과 하나되는 바, 그대의 존재는 나의 존재이니 그대가 존재함에 나를 그리워하지 말지어이고, 다만 언젠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다시 이어진다면 그때는 또 즐거이 인연의 끈을 이어나감을 작게 소망해보았나이다, 아멘"

그렇게, 미도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숨이 끊어졌다. 



하도 황당하여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참을 서있다가 녀석의 위석이 생각나서 바라보니 위석은 보라빛의 작은 돌로 변해있었다. 검은 색이 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보라색으로 변했다는, 아예 돌로 형질 자체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열반 어쩌고 한게 생각나서(마지막은 아멘, 으로 끝나는 엉터리이긴 했지만) 근처의 아는 절에 가져가서 물어보니 어디서 났냐고 놀라면서 그 돌이 사리란다. 법력 높은 고승이 죽은 뒤에 남기는 바로 그 사리 말이다.

너무 황망한 기분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돌을 그대로 절에 기증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녀석의 어린 시절 카메라를 가르치며 찍어준 사진을 나는 갖고 다닌다. 

너무 높은 지능으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어버린 실장석의 사진이라니, 세상에 이보다 좋은 부적이 어디 있겠는가. 



- fin - 








댓글 1개:

  1. 참으로 인상 깊네.. 참피물에서 이런걸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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