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하! 드디어 공원데뷔다!”
공원에 들어와 신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재빨리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이 들은 사람은 없는 거 같군.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나의 애병을 꺼냈다. 참피 슬레이어 MK3. 지금은 MK10까지 나온 스테디셀러 중 스테디셀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베스트셀러하면 이 놈이다. 가장 완벽한 손맛을 준다는 모델. 지금은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옥션에서 거래되지만 그래도 족족 매진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자… 그럼 어디 가볼까?”
조심스럽게 길을 따라 걷던 나는 길에서 벗어나 풀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이는 골판지 하우스. 흐믓한 마음에 냅다 걷어차준다. 데갸아악! 이라든가 테챠아아! 라는 소리가 날 흥분시킨다. 재빨리 골판지를 들어 흔든다. 떨어지는 초록색 똥덩어리들. 어질어질한지 머리를 붙잡고 나를 바라본다.
<데...데스! 무슨일인데스!>
“무슨 일이냐고? 나의 공원 데뷔란다! 핫-하!”
친실장의 머리를 향해 참피 슬레이어를 휘둘렀다. 뽀각하며 두개골이 부서지는 느낌이 참피 슬레이어를 타고 나에게 전해진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 맛을 끊을 수 없어서 내가 학살을 하는거야!
<마...마마?! 마마!!! 테에에에에엥!!!>
“우냐? 야. 우냐?”
몸을 땅에 바싹 대고 엎드려 자실장이 우는 모습을 본다. 적록의 눈물. 음, 이건 진짜군. 나름 사이가 좋은 친자였나보지? 하지만 나에게 걸린 이상 끝이란다. 귀여운 실장짱. 나는 자실장을 쥐고 일어났다. 자실장은 그때까지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테에에에에에엥!! 여기는 닌겐상들이 못건든다고 한테찌!!! 근데 왜 건드는테찌!!!>
“그런 게 어디있니. 이 역겨운 참피야. 너같은 참피에게는 독라벌이란다!”
<시… 싫은테찌!! 독라는 싫은테찌!! 마마!!! 마마!!!>
내 손아귀에서 마구 머리를 흔들어보는 자실장이었지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앞머리, 뒷머리, 옷순으로 차례로 뜯어준 뒤에 땅에 조심스럽게 내려준다. 울부짖는 자실장은 버려두고 다음 골판지로 향한다. 너무나도 조용한 골판지.
“어? 이 골판지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나는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골판지 옆을 스쳐가는 척 했다. 가만히 소리를 내지 않고 골판지 앞에 쭈구려 앉는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골판지 문이 스르르 열리며 머리 하나가 살며시 나온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친실장은 곧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영원같은 찰나가 지나갔고 나는 친실장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안녕?”
<데...데갸아아아아아!!>
재빨리 문을 닫는 친실장. 하지만 늦었단다. 골판지를 재빨리 엎어버리자 쏟아져나오는 실장석들이다. 친실장 하나에 자실장 여럿이라. 아까처럼 높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재빨리 여러 방향으로 도망을 시도하는 자실장들이다. 하지만 하품 나오게 느리군. 나는 신나는 셔플 댄스가 좋아!
“같이 춤이나 출까?!”
-짓!
-지벳!
-짖!
<오...와타시의 자들이!!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이!!!>
같이 춤이나 출까 했는데 나의 멋진 스텝을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적록의 얼룩이 되어버린 불쌍한 자실장들이다. 그런 얼룩을 보며 울부짖는 친실장. 나는 즐겁게 춤을 추며 친실장의 주변을 돌았다.
<오로롱… 뭐인데스… 여기는 괜찮다고 한데스!!! 거짓말인데스!!>
“너무 괜찮아! 이렇게 귀엽고 때려죽일 수 있는 참피들이 많으니까! 핫-하!”
짜릿한 손맛을 느끼며 춤을 마무리한다. 으, 이거 너무 오랫동안 안하다 해서 그런지 신나는걸? 나는 룰루랄라 다음 골판지로 향하려고 했다. 뒤에서 붙잡는 사람만 없었다면 말이다.
“저기, 지금 뭐하시는거죠?”
“에?”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나를 노려본다. 당황한 나는 어깨를 잡은 손을 뿌리쳤다.
“무-뭡니까? 갑자기?”
“저기랑 저기. 당신이 저런 거 맞지요?”
“하! 그냥 똥벌레를 잡은 거 뿐인데요? 애호파이신가?”
나는 자꾸 추궁하는 하얀 가운의 남자에게 짜증이 났다. 나의 취미생활을 방해하다니. 그저 똥벌레 몇 잡은 거 가지고 지랄이네. 하지만 하얀 가운의 남자는 머리를 쥐어잡고 한참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정중하지만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지금 당장 저를 따라오세요. 당장.”
남자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나도 남자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건물이 보였다. 남자는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들어갔다. 그 안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몇 있었다. 남자가 심각하게 뭐라 중얼거리자 다들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뭐지? 왜지?
“일단 거기 앉으시죠.”
남자는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은 나에게 믹스커피를 놓아준 남자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일단 왜 제가 선생님을 불렀는지 궁금해하실겁니다.”
“아니, 그깟 똥벌레 몇마리 죽였다고…”
“여기는 연구소입니다. 외부인에게 개방은 하고 있지만 엄연히 사유지이지요.”
“그냥 공원이 아니구요?”
나의 되물음에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연구하고 있는 건 실장석입니다.”
“네?”
“실장석에게 각종 약물을 투여하거나, 기계장치를 삽입한 뒤에 경과를 살펴보는 곳이죠.”
“어… 그럼 설마…”
“네. 선생님께서 때려잡으신 실장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옆을 흘깃보자 한 여자가 재빨리 파일을 건네준다. 파일을 뒤적거리는 남자.
“아, A-15와 C-19. 둘 다 기계장치 삽입 테스트 중이었습니다.”
“어… 저기…”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희가 입은 피해는 시가로 약 5000만원정도입니다.”
남자는 파일을 덮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럴거면 경고문을 제대로 써붙이던가요!”
“붙여놨습니다.”
남자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꿀꺽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 거 같았다.
“아...아니... 선생님… 그렇다고 해도 참피 몇마리 죽였다고 오천만원이라뇨.”
“참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기계장치가 중요한거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자꾸 그러시면 경찰서에서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만. 업무방해로요.”
나에게 도망칠 곳은 없었다. 한숨을 쉬고 항복하는 수 밖에. 나는 뽑아준 서류에 사인을 했다. 오천만원을 모월 모일까지 보상할 것. 제대로 보상하지 않을 시 경찰에게 고소할 것. 등이 담긴 서류. 남자는 익숙하게 복사한 뒤 나에게 사본을 건네주었다. 나는 힘없이 종이를 받아들고 건물을 나왔다.
“시발...시발!!!!”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나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실장석이 소리지를 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참피를 너무 오래 본 것일까. 나는 나의 참피 슬레이어를 거칠게 쓰레기통에 던진 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겁기만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