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붙살이




봄맞이 집안대청소를 하던 도중 
우연히 창문 구석에서 발견한 놈들이다.

용케도 이런 곳에 숨어 지내다니 참





강물 속 가시나무




실생은 마치 강물 속 가시나무에 의지하는 삶

상처와 고통 쓰라림에도 가시나무를 놓을순 없어
소중한것이 떠내려가도 가시나무만 붙잡고 버텨

울지마라 네가 흘린 눈물 방울방울
모이고 모여 물이 차오른다

붙잡어라 네가 기댈 가시 마디마디

오르고 올라야 
물살 피한다







길에서 주운 엄지 키우기 1



길을 가던중 전봇대 밑에 작은 살색 물체가 꼬물거리는게 보였다. 뭘까하는 호기심에 봤더니 담배곽보다 약간 작은 실장석이었다. 녀석은 레치잇 하고 놀란듯 울더니 쓰레기봉투더미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에 가득 빵콘한 녀석은 운치를 질질 흘리며 초록색의 길을 냈다. 봉투 사이에 손을 넣어 실장석을 잡았다. 레챠앗! 하며 작은소리가 손을 타고 진동이 느껴졌다. 그대로 꺼내 실장석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진동처럼 몸을 벌벌떨지만 아주 작고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차가운 몸과 대비되게 콩닥콩닥 작은 심장이 손바닥을타고 전해졌다. 자세히보니 옷은 입지않고 빵콘한 팬티 와 한쪽발에만 신발을 신고있었다. 머리엔 찢어져 얹어진 두건이 약간 남아있었으나 독라라고 봐도 좋을상태였다. 녀석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채로 숨을 헐떡이며 치이.. 치이.. 울어댔다. 동족에게 버림받고 상처입은걸까 야생동물의 습격에서 살아남은걸까 아니면 인간에게 학대받은걸까. 여러 생각을 하며 내손에서 떨고있는 작은 녀석을 포근히 감싸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녀석은 내손안에서 잠들어 있지만 아직 몸이 아픈듯 옅게 신음을 내고 있다. 실장석에 대해서는 잘 알지못한다. 그러나 예전 친구가 키운적이 있어 기본적인것에 대해서만 알고있다. 엄지손가락만한크기의 실장석... 엄지라고 불리는 미성숙 개체겠지. 생각을하며 상처투성이에 더러운것투성인 녀석을 먼져 따듯한물에 담궜다. 레챠앗... 하며 작은 신음을내는 엄지, 하지만 눈을 뜨지않은채로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다. 간단하게 씻기고나서 상온에 꺼내놓은 박스를 뜯어 영양제를 까 반찬통안에 부었다. 지우개조각을 잘라 배게를 만들고 반찬통안에 함께 넣었다. 영양제안에서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치이.. 치이.. 작게 울고있다. 숨을 내뱉을때마다 작은 배가 영양제를 밀어내며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영양제 한병을 더 까서 설탕을 넣고 섞어준뒤 티스푼에 조금 따라내 녀석에 입에 조금씩 흘려주었다. 작은입은 오물거리며 받아먹지만 대부분 흘리고 있었다. 나는 10번정도 작업을 해주었다. 실장석은 한층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나는 한숨을 작게 쉰 뒤 녀석을 그대로 둔채 샤워를 하러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두었던 녀석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반찬통안의 영양제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섞여 더러워져있었고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어디로 간거지 하는 생각을 할때 치이.. 하는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 서랍 책 사이에서 몸을 숨긴채 작게떠는 한 실장석이 보였다. 나를 힐끔 보며 눈이 마주치자 다시 책 사이 깊숙이 레치 레치 거리며 뒤뚱뒤뚱 뛰어갔다. 책 사이를 보니 녀석은 뒤돌아 쭈그려앉은채 벌벌 떨고있었다. 뭐... 아직은 무서울수도있지 상처가 많은 아이일텐데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아침밥을 준비했다.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치익 구우며 계란을 스크램블하여 요리했다. 다 만든 요리를 식탁에 놓고 앉으려하니 어느새 실장석이 꼬물거리며 책 사이에서 나와 음식냄새를 음미하고 있었다. 내가 먹는걸 주기엔 너무나 작은 녀석이기에 어제 사놓았던 실장푸드를 몇 알 꺼내고 병뚜껑에 물을 담아 녀석의 앞에 두었다. 처음엔 손이 가까워지니 “치이잇” 하며 다시 책 뒤로 숨었지만 내가 멀어지니 어느새 나와 사각사각 푸드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푸드를 꼭 붙잡고 야금야금 베어 먹는 모습을 보니 햄스터가 씨를 벗겨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푸드를 사각사각 먹고 물을 마시며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두 알을 다 먹고 빵빵해진 배를 들숨날숨 하며 누웠다. 굉장히 만족한 얼굴로 “레츄우~” 하는 녀석에게 이제 경계가 풀렸나 싶어 손을 앞에 갖다댔다. 하지만 녀석은 “레츄아앗~?!!” 하며 놀라며 뿌디딕 운치를 싸댔다. “레츄 레츄 레츄” 눈물까지 흘리며 다시 책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 버린 실장석을 보며 친해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물티슈로 대충 책상 위를 닦고 전에 물고기를 키우던 수조를 가져와 서랍장 위에 두었다. 먼저 신문지를 여러장 수조바닥에 깔아준다. 수조 안에 안경닦이를 두고 그 위에 손수건을 접어서 깔아 침대를 만들어 주고 그 위에 안경닦이를 얹어 이불을 만든다. 어제 만들었던 지우개조각 배게도 두면 엄지의 이부자리가 완성이다. 운치를 가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로 휴지를 돌돌 두껍게 말아 구석에 두고 화장실인 것을 인지할 수 있게끔 녀석의 운치를 뭍혀두었다. 그리고 장은 종지를 두 개 가져와 하나엔 실장푸드를 넣고 하나엔 물을 넣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녀석이 가지고 놀 탁구공을 하나 두어 수조를 꾸몄다. 녀석을 바로 수조안에 넣을까 했지만 책사이에서 벌벌 떨고있는 녀석을 잡아넣었다간 발광을 할 것 같아 잠들면 몰래 넣기로 하고 노트북을 켜 일을 시작했다.



녀석은 책 사이에서 때떄로 머리만 빼꼼 내밀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레치.. 레치..” 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홈쳐보기만 하던 녀석은 가끔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레츄!” 하는 소리를 내며 쏙 들어가 나오지 않기도 했다. 작은 녀석이 꼬물대며 눈치를 보는 것이 썩 귀엽기도 하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나니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책 사이를 보니 녀석은 무릎을 껴안은채로 “코츄.. 코츄..” 잠들어 있다. 살며시 손을 넣어 녀석을 꺼내고 운치가 묻어있는 엉덩이를 물티슈로 대충 닦아주고 안경닦이침대에 뉘여주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한번을 깨지않고 안경닦이를 덮어 자는 녀석을 뒤로하고 나는 방의 불을 끄고 기지개를 한번 한 뒤 녀석과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엄지와 구더기 사육일기 1~6 (쟈게모)



2019. 1. 3. 목요일

아침 일찍 나가, 엄지와 구더기를 분양 받아왔다.
최근 유전자 변형에 성공하여 자라지 않는 엄지와 구더기를 개발해 낸 로젠 사의 그것은 무려 40만원에 육박했다.

“지금 사시면 분홍색 실장복과 링갈이 달린 80L 매직 미러 수조, 고급 푸드 2개월치 분량을 함께 드립니다!”

닌텐X 스위X를 살까말까 고민하며 모아둔 통장을 깨면서 사온 엄지와 구더기.
몇 년째 이어오는 프리랜서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부디 값어치는 해주길 바랐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책상 옆 보조테이블에 수조를 올려놓고 이동용 케이지에서 엄지와 구더기를 꺼내 넣었다.
작고 보드라운 것이 손에서 살짝 꿈틀거리자 나도 모르게 꾹 쥐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바닥 아래에서 폴짝 뛰어내린 엄지와 구더기가 레치레치, 레후레후 말했다.

수조의 상단에 세로 5cm, 가로 30cm 크기의 액정에 실장석들의 말이 번역되어 나왔다.

“주인님, 안녕하신 레치! 엄지와 우지챠를 사육실장으로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한 레치!”
“주인님, 안녕하신 레후! 죄송하게도 우지챠는 서서 인사할 수 없는 레후... 용서를 바라는 레후.”

40만원 짜리 실장이라니, 제법 교육을 받은 것 같구나.
아니, 구더기쪽은 오히려 똑똑한 거 아냐? 저 작은 머릿속에 프니프니 외의 다른 지식이 들어있다니, 놀랍다.

아아, 좋은 생활이 될 것 같다.


19년 1월 4일 금요일.

이름을 지어줬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택배상자에 써 있던 순무와 열무로 이름을 지어줬다.
동그랗고 크기가 작은 순무는 엄지가, 여린 무라는 뜻의 열무는 구더기가 갖게 되었다.


***


“계속 엄지와 구더기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이름을 지어줄게.”

엄지의 커다란 눈이 반짝였다. 언뜻 듣기로는 실장석이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사육실장이 되는 첫 단계라고 들었다. 과연, 들은대로 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구더기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레후! 레후! 언니의 기뻐하는 얼굴 때문 이었을까 구더기 역시 행복한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레후레후 외치기 시작했다. 두세바퀴 빙글빙글 돈 엄지는 이내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이름을 지어주신다니 감사한 레치. 저의 평생의 보물이 될 것인 레츄!”

그 모습이 귀여워 잠시 웃었다. 미안하지만, 보물이 될 만큼 예쁘거나 귀한 이름은 아니야. 속으로 생각했다. 검지 손가락을 하나 들어 아주 조심스럽게 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앞으로 엄지는 순무, 구더기는 열무라고 부를 거야. 알겠니?”
“레에..!”
“레...”

순무가 벙찐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세레브하지 못해서,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실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썼다. 실장석들은 그렇게나 ‘세레브’한 것에 목멘다고 하던데. 이 엄지도 그런 걸까. 하지만 엄지의 그 벙찐 얼굴은 다른 뜻이었다.

“우지챠도... 우지챠도 이름을 갖게 되는 레츄?”
“응. 열무는 여린 무라는 뜻에서 파생된 이름이거든. 구더기는 몹시 약하고, 여리니까.”

말이 끝나고 3초 뒤, 엄지는 방방 뛰며 아까보다 더 격하게-격하다고 해봤자 엄지 실장의 말랑함으로 콩콩거리는 것 뿐이지만- 구더기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레치이이이!”
“오, 오네챠아아!”

엄지가 구더기를 끌어안은 채, 다시 내게 말했다.

“우지챠에게... 우지챠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셔서 정말 감사한 레치!”
“우지... 우지도 이름을 갖게 된 레후! 주인님, 정말 감사한 레후..!”

한참을 레후레후, 레치레치 울어대던 녀석들은 금방 체력이 다했는지 털푸덕 누웠다. 하지만 링갈에는 수도 없이 많은 감사 인사와,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기쁜지에 대해 조잘거리는 말들이 적혀 올라가고 있었다.

왜 그런 반응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구더기는 그저 엄지의 외로움 방지용으로 같이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는 브리더의 교육을 들었던 것 같다. 열무(구더기)를 몹시 아끼는 순무(엄지)는 본인만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 미안해, 분양 받아온 날 하루가 지나도록 본인의 이름을 지어달란 말조차 못꺼낸 것이었다. 기특한 녀석들. 본인의 이름보다도 더 기쁘게 방방 뛰었던 순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인간들도 그러기 힘든데, 정말 대단한 자매애 아닌가. 그 날은 내 기분이 몹시 좋았기 때문에 저녁식사엔 콘페이토를 한 알씩 나눠주었다.




***


순무와 열무의 집(수조)





19년 1월 4일, 금요일 저녁.





이름을 지어준 아침에 콘페이토를 준 것 빼고 점심엔 푸드를 한알씩 나눠주었다.
장난감을 갖고 놀 때 너무 즐거운 나머지 꺅꺅거리는 듯한 레치레치 소리 외에는 내 관심을 얻으려고 크게 울거나 소리치는 일 없었기에 주변 이웃들은 내가 실장석을 키우는 것조차 모르는 듯 했다.
마감이 바빠진 탓에 잠시 수조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저녁 쯤 열무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레훼...”

거의 말라 비틀어져가는 열무를 발견했다. 대체 왜? 아무리 바빠도 푸드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줬는데... 어떻게 이렇게 마를 수가 있는거지?

“순무, 열무가 언제부터 이랬어?”
“레... ...”

순무를 쳐다보자 순무는 깜짝 놀라며 내 눈을 피했다. 어라?

“순무야.”
“... ...”

순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순무의 작은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이상하다. 아이는 더 구박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바스라질 것 같은 열무의 입에 설탕물을 녹여 스포이드로 입에 톡톡 떨어트려주었다. 레후, 레후... 식도를 타고 내려간 당분이 힘을 주는 듯 열무는 휴, 하고 한숨 비슷한 것을 내뱉었다.

나는 열무를 수조에 내려놓은 뒤, 구석에 설치되어 있던 실장석용 CCTV를 틀었다.





뒤를 돌아앉아 있는 순무와 열무. 열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색눈물을 똑 똑 훌리며 레휑 레훼에엥 짧은 신음소리로 울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다음 장면으로 넘기자...

멈칫.

“... ....”

2배속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췄다. 되감기, 되감기, 되감기... 재생버튼.

“... ....”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순무는, 열무에게 자신이 싼 운치를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순무가 뒤돌아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열무 몫의 푸드를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대체 왜...?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것이 바로 어젠데! 순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귀여운 동생 몫의 푸드를 먹어치운 것도 모자라,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열무에게 운치를 먹였다고? 손이 달달 떨렸다. 순무를 향해 말했다.

“순무. 대체 왜 열무에게 운치를 먹였어?”
“레!... ... ...그것은...”
“열무의 푸드를 다 쳐먹고...”

목소리가 흉흉하게 울렸다. 실제로도 난 지금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 작은 애완동물을 향한 분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화가 꽉 들어차있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영악한 분충’이겠지.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아양떨고, 순한척, 착한척 구는 속까지 시커먼 분충. 순무는 그와중에도 몸을 달달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식적인 것. 난 정말 너를 믿었는데... 레치레치, 작게 짖는 소리가 들리고 링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잘못한 것은 전부 와타치인 레치...”
“전부 와타치의 잘못인 레치, 주인님...”
“부디 와타치만을 벌해주시는 레치.”

가식적이기 짝이 없다. 그래, 네 말대로 해주지. 열무는 귀하게 귀하게 키워주마. 비싼 몸값이었던 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 나는 금방이라도 엄지를 짓눌러버릴 듯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레후우우우우!!! 레후...!!!”

기운을 차린 열무가 순무의 앞을 막아섰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것이 조금 식었다. 그래, 이런 언니라도 지키고 싶다 이건가. 차가운 눈으로 순무를 훑어본 나는 열무에게 말을 걸었다.

“열무야. 너...”

열무는 레후레후 쉴 새 없이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리며 말했다.

“와타시가, 와타시가 전부 잘못한 레후! 순무 오네챠는 잘못이 없는 레후!”
“...그게 무슨 소리야?”

열무가 외쳤다.

“와타시가... 순무 오네챠에게 운치를 먹여달라고 부탁한 레후! 제발 용서를 바라는 레후...”

...뭔가 이상한데. 아직 화가 풀리진 않았지만, 열무의 말에 나는 다시 CCTV를 돌려보기로 결심했다. 그래, 한번 더 확인을 하자. 순무는 잘못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생명이다. 조금 더 유예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라고 하는 걸까...
CCTV의 시간대에 맞춰, 링갈의 기록을 살폈다.






...
... ... ...
... ... ... ... ...

... ... ... ... ... ... ...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빨리감기를 하다가 보았던 그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 ... 아뿔싸... ... ...

열무에게 푸드는 너무 단단해 먹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이름을 지어주며 줬던 콘페이토로 반나절을 보냈고, 바빠서 열무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는 동안 열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고...

작은 몸은 열량을 섭취하지 못해 이후의 시간을 버티는 것 마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본인이 살고자 하는 마음에 입으로 삼킬 수 있는 운치를 먹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멍청한 짓으로 가여운 순무를 거의 죽일 뻔 했다. 그와중에 순무는 본인의 잘못이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부끄럽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다 빨개졌다. 부끄럽고,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 와중에 계속 순무는 중얼중얼 자신의 죄를 고하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쳐박고 있었다.


“사육실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투분과 식분, 그리고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운치해서는 안되는 레치.”
“와타치는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열무챠를 살리고 싶었던 레치.”
“운치에는 와타치가 먹은 푸드의 영양분이 가득한 레치. 하지만 열무챠는... 열무챠는...”


그만,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미안하다 순무야. 마음이 다 아팠다.

순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죄송한레치, 전부 와타치의 잘못인 레치, 주인님은 잘못이 없는 레치... 울음소리가 섞여가자 링갈은 더 이상 순무의 말을 번역하기 힘든 듯 작동을 잠시 멈추었다.




***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받아온 고급 푸드는 열량이 딱 구더기 한마리 정도가 반나절을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칼로리를 갖고 있는 저열량 다이어트 푸드였다.

엄지에게도 부족한 칼로리탓에 순무의 몸은 자연스레 열무 몫의 푸드 속 영양분을 순식간에 흡수해갔을테니 바로 운치를 쌌다 한들 속에 남은 영양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좀더 공부했어야 하는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죄 없는 아이를 손짓 한 번에 죽일 수도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 알려진다면 ‘인분충같은 새끼’ 라며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레츄...”
“레후...”


오열하는 순무와 그 옆에서 내게 머리를 조아리는 열무를 진정시키며 잘못을 말했다. 펄쩍 뛰며 주인님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다시 머리를 박아대는 탓에 30분은 서서 그들을 멈춰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스테이크-라고 해봤자 레토르트 함박스테이크지만-를 조금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19년 1월 5일, 토요일 오전.

아침에 일어나 순무와 열무 상태를 확인 하는데 순무의 앞치마가 푹 젖어 있었다.
순무를 손에 얹으니 전과 달리 묘한 냄새가 나는데...

풀... 풀냄새 같기도 하고, 묘하게 설치류의 배설물같은 구린 냄새가 나는 것이...


... 설마.


“순무, 운치 쌌니?”
“레...”


우물쭈물하는 표정이 웃겼다. 애완동물의 실수에는 너그러워야 한다지만, 개념실장으로서, 사육실장으로서 고등단계의 교육을 받은 실장석이 운치를 흘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내기도 그렇고, 안 혼내자니 남을 금방 하대하고 업신여기는 실장석의 본성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뭐라고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순무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제가 운치를 싸지는 않은 레치. 하지만 제 말을 듣고 화를 내시면 안되는 레치.”
“그래, 말 해 보렴.”




*** 새벽 5시, 기상 전 ***





***


새벽에 프니프니를 받은 열무가 순무의 앞치마에 운치를 지린 것이었다. 알고 보니, 구더기는 체형탓에 아무리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운치만큼은 가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인간 아기도 어느정도 자라 배변교육을 하기 전까지는 기저귀를 찬다. 이것을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앞으로도 쭉 이런 식으로 앞치마나 바닥, 혹은 옷을 더럽힐 수도 있는데... 순무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열무를 혼낼 수도 없었다. 타고난 체형이 구더기인데, 교육을 원래 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데... 화내는 놈이 바보인 것이다. 생각하는 동안 침묵이 길어지자, 열무는 본인이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잔뜩 웅크린 채 고갤 쳐박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잠깐 바라보다 입을 뗐다.


“괜찮아, 열무.”
“레후..?”
“순무도 언니답게 잘 해줬네. 열무 운치가 묻은 옷을 잘 세탁했구나.”


냄새는 좀 나지만... 까지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순무와 열무의 성격상 다시 머리를 박아댈 것이 분명했다. 이녀석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든 일에 도게자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주인인 나로서는 말 잘듣고 잘 기는 개를 키우는 기분이었지만, 사람으로서는 글쎄... 언어가 통하는 생물이라 그런지 그들의 무조건적인 조아림은 입맛이 썼다. 물론, 분충화가 되어 위아래 구분하지 못하고 운치를 던지며 고깝게 구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것 같긴 했다.

나는 무어라 하는 것 대신, 좀 더 흥미로운 단어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순무랑 열무, 아와아와 할까?”

“레에에...!!!”
“레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래, 아와아와. 들실장들이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 바로, 목욕이다.




저 드릴헤어가 풀리니 굉장히 풍성해졌는걸...


“너희들, 눈에는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라. 큰일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아와아와 타임을 보내는 녀석들을 두고, 나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구더기의 운치... 구더기용 기저귀를 만들어봐야 하나.



***


열무의 프니프니를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한 옷을 구상했다.

평소에 입히고 있던 분홍색 포대기와 분양받을 때 입고 있던 포대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일단 제껴두고.

첫번째는 지퍼가 달린 포대기다. 혹시 기어다니는 것이 불편하거나, 지퍼를 올리고 닫을 때 열무의 여린 살이 찝히기라도 할까봐 걱정 되었다.

두번째는 분홍색 니트 버젼. 순무와 같은 색의 빨간 리본을 맬 수 있지만 하반신이 벗겨져 있는 탓에 겨울엔 추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순무가 프니프니 할 때 화장솜같은 것을 대고 문지르면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생각해보자...

세번째는... 프니프니를 위한 비닐인데... 주방에 있던 비닐장갑을 손가락 마디마디 잘라내 입혀준, 일종의 비닐 기저귀다. 솔직히, 이 위에 니트를 입힐까 생각을 했지만...
비닐인 탓에 열무가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들어보여 기각.

한참 고민하며 하도 쪼물랑거리며 만져진 탓에 열무는 금새 지쳐 잠들었다. 포대기가 입혀지고, 벗겨지고 반복하면서 여린 살이 약간 튼 것 같기도 했다. 미안, 미안.


완성!... 이라기엔 별 것 없지만, 분홍색 니트에 빨간색 리본이 달린 상의에, 분홍색 포대기를 반으로 잘라 투피스로 입혔다.

프니프니를 할 때에만 하의를 벗기고 솜으로 총구를 문질문질해주면 순무의 옷에도 운치가 묻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순무가 굉장히 기뻐했는데,


“열무챠, 엄청 귀여운 옷을 입은 레치! 와타치와 같은 리본을 두른 레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구더기인 것이 분명한 레츄우!”


...라며 열무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연신 칭찬의 말을 내뱉기 바빴다.

그것을 들은 열무는 들뜬 표정으로 받아들이며


“순무 오네챠와 같은 리본을 한 레후! 기쁜 레후! 예쁜 레후? 귀여운 레후? 아타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구더기인 레후우우우?!”


...라며 흥분하는 것이었다. 자매가 끌어안고 부둥거리는 것은 몹시 흐뭇하고 좋은 일이었으나,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간혹 주제 모르는 분충들이 곧잘 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세레브한 아타시’와 같은 느낌 아닌가.
그런 말들이 행복회로를 가열차게 돌려대면 금방 분충이 되어버린다는데, 조금 주의를 하는 것이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순무와 열무가 나를 불렀다.


“주인님 레치!”
“주인님 레후!”
“응?”


내 시선을 끌기에 성공한 순무와 열무는 다시 입을 맞춰 말했다. 이어 나온 그들의 말은 나의 걱정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열무챠에게 예쁜 옷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한 레치. 최고의 선물인 레츄!”
“감사한 레후!”


“후우...”



이틀 째 감지 않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감이 코 앞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 짜증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난폭하게 책상을 쿵 내려쳤다.

그리고 이어진 몇 초간의 정적. 아무도 없는 듯한 고요한 방 안에 컴퓨터 쿨러가 돌아가는 잔소음만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듯한...


아무도 없...


“아!”


자취하기 시작한 지 3년,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익숙해진 나머지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순무와 열무의 존재를 곧 잘 잊어버렸다.

방금과도 같이 화가 난 상태에서 책상을 내려치는 등의 행동은 주변인에게도 충분히 난폭해보이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개나 고양이들조차 큰 소리와 화난 얼굴에 위협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겨우 손가락 두마디, 세마디만한 사이즈의 순무와 열무는 오죽할까?

아니나 다를까, 순무와 열무가 하우스 유리에 붙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놀랐는지 레치, 레후 하는 소리조차 못 내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자각 좀 하고 살자, 멍청한 새끼야. 정신 차려. 뒷통수를 두어 번 치며 자책의 말을 내뱉었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마감은 코 앞이지만, 억지로 일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의자에 일어서 몇 걸음 떨어진 수조 앞에 섰다.


“레...”


유리면에 붙어있던 순무는 열무를 안아들고 하우스 한 가운데에 섰다.


“주인님 오신 레치. 인사 드리는 레치.”

“주인님 오신 레후...”


순무 쪽은 괜찮아 보였지만, 구더기인 열무는 아직까지 놀란 위석을 진정시키지 못한 듯 말에 힘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파킨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죄책감이 조금 올라왔다. 성체실장이라면 조금 놀란 정도로 끝났을 문제지만, 내가 키우는 건 엄지와 구더기다. 좀 더 조심히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엄지나 구더기 개체에서는 보기 힘든 똑똑하고 분충끼 없는 개념 실장 아닌가.

녀석들도 작은 하우스 생활을 한 지 어언 5일 째, 아무리 엄지와 구더기에게 큰 사이즈라 하더라도 집에만 갇혀 있는 것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 분명했다. 인간인 나 조차도 3일 내내 햇빛을 받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기분이 저조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겸, 햇빛도 쬐러 나갈 겸, 산책을 권하기로 했다.


“순무랑 열무, 산책 나갈래?”

“레에...!!”


산책이라는 소리에 순무와 열무의 귀가 쫑긋거렸다. 나가는 레치! 신나는 레후! 레치레치, 레후레후 거리는 녀석들을 케이지에 넣었다.

부디 안전한 공원길이 되기를 바라며.



***


공원 벤치에 앉아 순무와 열무를 꺼내주었다. 겨울이라 하늘색이 파랗지는 않았지만 서늘한 공기는 상쾌한 편이었고, 녹색의 나뭇잎도 풀잎도 없지만 햇빛만큼은 따뜻했다.




“나오렴.”

“레치!”
“레후!”


외출용 옷을 입은 순무와 열무는 쌀쌀한 겨울바람에도 괜찮은 지 벤치 위에 앉아 하늘을 구경했다.


“오네챠, 저 하얀 하얀씨는 무엇인 레후?”

“그건 구름씨인 레치. 몽글몽글한 레치. 예쁜 레치...”

“아와아와해 보이는 레후..! 아와아와한 거품씨가 올라가서 만들어진 레후?”

“그럴 지도 모르는 레치. 조심해야 하는 레치. 눈에 들어가면 아파아파 해지는 레치!”

“맞는 레후... 주인님도 그렇게 말씀한 레후... 조심하는 레후.”


난생 처음 본 구름을 보며 목욕거품을 떠올린 순무와 열무는 구름이 눈에 들어갈까,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곧잘 구름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슬그머니 눈을 뜨곤 레치레치, 레후레후 울며 다시 아장아장 벤치 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하는 짓이 귀여운 건 둘째 치고, 거품목욕할 때 했던 말들을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지능의 엄지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똑한 개체로 만들 수 있었는지, 어떤 태교를 받은 건지...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

자실장이나 성체실장쯤 되면 하네스를 채워 돌아다닐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순무와 열무는 자라지 않는 엄지와 구더기였다. 그렇게 다니다간 조금만 신경을 못 써도 들쥐나 들실장, 혹은 날렵한 고양이들의 장난감이 되고 먹이가 될 것이 뻔했다.


“너희가 자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으려나.”

“레치?”
“레후우?”


물론 귀여운 외모 덕분에 엄지와 구더기를 선택한 것은 나였다. 성체실장이 되면 푸드값도 장난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돈을 투자하긴 힘들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조금 나의 이기심이 섞인 선택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인간의 이기심아니었을까. 지식이 있는 동물을 제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거니까.


“아니, 아니지.”


모처럼 마음을 정화하려고 나왔는데, 또 인류니 뭐니 하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위선이다. 이미 그러한 태생의 엄지와 구더기를 손수 돈주고 키우는 이상, 내게 그런 것을 따질 자격은 없었다. 만약 성체실장까지 성장하는 아이를 샀다가 생계가 어려워진다면 제일 먼저 그들을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좋은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다시 깊게 사색에 빠지려는 찰나, 테프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주변을 훑었다. 엄지와 구더기는 벤치끝까지 갔다가, 테프프 하는 소리에 금새. 내 옆까지 달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내 정면이었다.


“테프프... 똥닌겐. 사육실장을 키우는 테스?”


중실장이었다. 자실장보다는 크고 성체실장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 꾀죄죄하고, 더럽다. 머리털과 옷은 입었지만 앞치마는 조금 찢어먹은 상태였다. 손에는 구더기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상태로 구더기를 질질끌고 다녔던 것임이 틀림없었다.

귀여운 순무와 열무를 보며 정화를 하고 있는 찰나에 보인 것이 더러운 들실장이라니. 게다가 지능 낮은 멍청한 일반 실장석처럼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다 못해 ‘똥닌겐’이라는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며 내 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것이 두배 더 불쾌해졌다.


“레... 오바상은 누구인레츄?”

“똥엄지는 감히 내게 말걸지 않는 테스. 사육실장 행세라니, 오마에는 당장 그 옷을 벗어 이리 넘기는 테스.”

“레...”

“이리 내려오는 테스. 오마에같은 건 독라노예로 만들어 팔다리를 자른 뒤 운치굴에 쳐박는 것이 도리인 테스. 똥닌겐이 버릇을 잘못들인 테스. 이 세레브한 내가 사육실장으로서 오마에를 다시 교육시키는 테스.”


중실장의 손에 들린 구더기를 본 순무가 열무를 꼬옥 안으며 물었다. 하지만 중실장은 순무에게 폭언을 하며 금방이라도 벤치 위에 올라올 듯 붕쯔붕쯔 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뭐 저런 게 다 있지...? 지능이 낮은게 아니라 진짜 그냥 미쳐버린 건가?

사람이 어이없는 것을 발견하면 화가 나다 못해 허탈해진다는데 그게 바로 지금 내 상태였다. 말을 잇지 못하는 상태로 뚫어져라 쳐다보자, 중실장은 순무에게 폭언하던 것을 멈추고 테프프, 테프프 연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이, 똥닌겐. 그 분충은 버리고 나와 내 비상식ㄹ... 구더기를 같이 키우는 테스.”


가래끓는 목소리로 테스테스거리며 나를 아래로 깔아보는 얼굴에 기가찼다. 당장에라도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러워질 신발은 둘째 치고 기껏 순무와 열무에게 난폭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 한시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을 더 섞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자리를 뜨려 하자 중실장은 갑자기 발라당 뒤로 자빠졌다. 뭔 짓인가 싶어 살펴보니,


“뭣 하면 여기서 한발 뽑게 해주는 테스.”

“이 내가 허락하는 테스요~? 와타시의 총구는 처녀인 테스.”

“... ... ...”


... ...운치로 젖은 팬티, 후덕하게 찐 허벅지를 추하게 벌린 채 세모꼴로 눈을 접으며 웃는 녀석을 보고 토악질이 다 나왔다. 역겹다. 당장이라도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직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은 순무와 열무를 재촉하려는 찰나...


“왜 말이 없는 테스? 벌써 메로메로한 테치카?”

“테프픗... 똥닌겐 노예 포획 확정인 텟승~”


... ... ... ...

우뚝 멈췄다. 놈을 패고 싶다.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발로 차고 싶다.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저렇게 미칠 수가 있나 싶었다. 보아하니 구더기는 본인의 자식이나 동생도 아니었던 건지 마마를 찾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엄지와 율무의 정서에 안 좋을까 싶어 듣지 말라고 하려는데, 순무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




“주인님, 새로운 마마레치?”

“뭐?”

“저 오바상이 주인님이 메로메로 되었다고...”

“절대 아냐!!!!!!!”

“뭐인 테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앍!!!!!!!!!!!!!!!!!!!!!”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그대로 분충의 얼굴에 킥을 먹였다. 쳐맞은 중실장은 총구에 힘이 풀렸는지 운치로 하여금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풀숲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풀숲에 골판지집을 짓고 쉬고 있던 들실장 가족들을 압살한 모양이었다.

“테벳!”

“지벳!”

“뭐인 데챠아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자들이!!!!! 와타시의 세레브한 자들이!!!!!!!!!”


나는 더 이상 이 불쾌한 곳에 있고 싶지 않았으므로, 순무와 열무를 케이지에 넣고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왔다. 레치레치, 레후레후 작은 소리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번역되어 들려왔다.


“오바상 쳐맞은 레치.”

“새로운 마마가 아니라서 다행인 레후. 아까 친구챠를 비상식량이라고 말한 레후... 하지만 맞은 것은 아팠을 것인 레후.”

“주인님께 그런 운치같은 말을 했으니 당연히 쳐맞은 레치. 불쌍할 것 없는 레치.”

“오네챠 운치같다는 말은 너무 과격한 레후. 말하면 안되는 레후.”

“레챠...!”

“사육실장인 오네챠는 항상 세레브한 말만 해야하는 레후.”

“맞는 레치. 열무챠는 똑똑한 레치. 이리 안기는 레치. 프니프니해주는 레치.”

“프니프니 너무 좋은 레후우우우! 오네챠, 부탁하는 레후~”


평소에는 그렇게 순수하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순무가 웬일로 중실장이 당한 폭행에 대해 정당하다는 표현을 했다. 그래, 저놈은 혼나 마땅했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열무는 ‘세레브한 오네챠가 따라 욕 할 필요는 없다.’ 며 순무를 지적함과 동시에 ‘세레브하다’라는 말로 그녀를 올려주는 것이었다. 구더기에게 들은 말이 기분나쁠 법도 한데, 원체 순둥한 성격인 순무는 열무의 말에 맞장구치며 프니프니를 해준다며 어화둥둥해주는 것이었다.

열무는 프니프니라는 말에 금세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며 달뜬 목소리로 레후레후 울었다.


“흐음...”


이어폰을 잠시 뺐다.

역시, 열무는... 뭔가 구더기같지 않단 말이야... 겨우 구더기인 열무에게 혼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순무도 몹시 똑똑하고 개념있는 편이지만, 구더기라는 개체를 생각하면 열무가 너무나도 대단한 것이었다. 프니프니밖에 모르는 구더기, 미친 들실장의 비상식량취급을 받는 구더기... 만약 열무가 쑥쑥 커서 엄지실장이 된다면, 자실장이 된다면, 중실장을 넘어 성체가 된다면, 그리고 자를 낳는다면... 정말 영특하고 세레브한 실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유전자 변형 실험을 통해 만든 자라지 않는 엄지와 구더기입니다....’


하지만 금방, 직원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그래, 열무는 영원히 자라지 않겠지... 어쩐지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마지막엔 기분만 잔뜩 망쳤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실장석 구제센터에 전화를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공원에서 돌아와 시계를 보니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런...!


“일 해야 해!”

“레챠!”
“레후!”



순무와 열무를 하우스에 넣어주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일하자, 일! 그래야 저 녀석들 먹이고 입히지...!



***








마마! 모두들 어째서 와타치타치를 싫어하는테치?



-마마!마마!모두들 어째서 와타치타치를 싫어하는테치?


-와타치 뭘 잘못한테치? 와타치는 그저..조용히...
숲속에서 살고싶은테치.


-와타치타치가 독라라서 그런것인테츄? 
와타치들은 살아갈 자격도 없는테츄?


-데...아닌데스 오마에들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언젠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수 있을것인데스.
오마에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쁜아이들인데스.


-정말인테치?! 와타치타치는 살아가도 되는것인테츄?


-와타치도 되는테츄??


-레후레후~~?


-물론인데스. 틀림없이 모두들 오마에들을 사랑하게 될 것인데스.


-테에에엥 마마~~~~~ 안아주는테츄우웅!!!!

-테엥 마마 사랑하는테츙!!!!!

-레후레후~~



-어쩔수없는 자들인데승 내일은 집에서 푹 쉬는데스
음식 쓰레기는 마마 혼자 주으러 가는데스






압박 면접




"데푸푸푸푸푸"

"치-푸푸푸푸풒-"

"주인님 괜찮은데스웅- 닝겐상들의 '면접'이란것은 아주 어려운것을 와타시다치는 아는데스~"

"그런테치~무리하지마는테치이~자신의 역량을 잘 파악해서 도전하는것이 삶의 미덕이라고 
주인님이 몇번이나 와타치타치에게 가르쳐 주셨으니 주인님이 더 잘알것인테치이~~"

"그런데스우~ 사실 세번이나 도전해서 실패를 했다면 그게 길이 아닐지도 모르는데...데...데푸풋"


"치이? 주인님? 그 나무 몽둥이는 무엇테치?"







초봄 (안실장)












산낙지 (안실장)












언젠가는.. 나도..! (설야)
























낙서 조금












들실장의 꿈 (ㅇㅇ(2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