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역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늘 가던 길을 따라 얼마만큼 걸었을까, 콘크리트 둔덕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자실장이다.
순간 지금까지 잊고 있떤 어제의 기억이 떠오른다.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자실장의 상태는 놀랄만큼 나빠져있었다.
가까워지자 구릿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조금 더 가까워지자 온몸에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었다.
동상에 걸린 것인지 발끝과 손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자실장의 테츄- 테- 하는 고통섞인 소리가 들린다.
가볍게 혀를 차면서 오늘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자실장과 눈이 마주친다.
자실장은 잠시 얼어버린듯 굳어있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달려온다.
콘크리트 블록에서 끙끙-거리며 겨우 내려와서 발밑에서 무언가 떠들어댄다.
[무슨 일이야?]
[테치! 니, 닌겐상을 계속...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테치!]
자실장은 하아하아 거친 숨을 내몰아쉬면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오늘 아침까지 마마를 기다렸던데치. 졸리고 추웠지만 계속계속해서 기다렸던테치...]
[....하지만 마마는 오지 않은 테츄...]
자실장은 힘없이 귀를 축 늘어뜨린다.
[마마는 분명 다쳤거나 길을 잃어버린테치... 이렇게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테치...]
[마마는... 마마는 마마가 날이 새도록 오지 않으면 와타시보고 마마를 잊으라고한 테치...]
[그렇게 되면 마마는... 죽... 아니, 없어졌다고 생각하라고했던테츄.]
친실장은 분명 그렇게되면 자신을 죽었다고 여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꼬마 독라 자실장에게 그것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두렵다는듯 자실장은 그런 말을 되도록 입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이제 와타치가 마마를 찾아서 도와야하는테치... 반드시 그래야하는테치.]
[마마는 지금까지 독라가 된 와타치를 꼭 소중하게 길러줬던테츄. 와타치는 그 은혜에 보답해야하는테치!]
굳은 결심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는 자실장.
[닌겐상 부탁인테치. 와타치와 함께 마마를 찾아주시는테치... 잠깐이라도 좋은테치... 제발 도와주세요테치...]
자실장은 이 한 마디를 하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콧물을 흘리며 주섬주섬 친실장을 찾는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다.
[와타치... 지금은 가진 것이 없지만... 반드시 보답을 해드리는테치... 닌겐사마... 도와주시는테찌...]
[........]
[도와주는테치.. 도와주시는테치... 이대로 있으면 마마는... 아야하는테치.. 아야하는거 이야테찌...]
[........]
그러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 이어지자 자실장은 점점 다급해진다.
[부탁하는테칫! 도와주세요테치! 제발 테치!!]
[더 늦으면 마마 죽어버리는테치! 도와주세요테치!]
어제의 침착하면서도 담대한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이것이 정말 어제 본 그 자실장일까.
겨우 하루만으로 그렇게나 의젓했던 자실장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남자는 몰랐다.
실장석에게 있어 친실장의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특히나 아직 채 몇 달도 살지 못한 자실장일수록 그 크기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대부분의 자실장이라면 마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위석이 스트레스를 받아 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실장은 그 아픔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마마를 찾아나서려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자실장은 굉장히 귀한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을 길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실장석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부모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엄격한 훈육을 받은 사육실장 출신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것을 들실장. 그것도 자실장이 한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떼를 써서 죄송한테치! 하지만 제발 도와주시는 테챠아!!]
[밤에는 바람이 차가워 죽어버리는 테찌!]
[.....도와주세요테치... 도와주세요테찌....]
남자는 그런 자실장을 보고 조용히 말한다.
[좋아, 나도 같이 찾아줄게.]
[....텟....?!]
남자의 말을 들은 꼬마 독라 자실장은 잠시 침묵했다가 곧 울기 시작한다.
[테.. 다행인테치... 다행인테치....]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역시 상냥한 닌겐상이었던테치... 닌겐상 고마워요테치...]
[울보구나.]
[테에에에엥... 테에엥.. 울보아닌레치... 고마워 눈물이 나는 것일뿐인테치... 테에에엥...]
축 쳐져있던 귀를 파닥이면서 꼬마 독라 자실장은 연신 얼굴을 붉히며 기뻐하고 있다.
이제 마마를 찾을 수 있어. 마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마마와 함께 다시 살 수 있어...
그렇게 자실장은 울면서 웃으면서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줘. 나도 너희 마마를 찾을 준비를 하고 올테니까.]
[테에! 알겠는테치! 와타치 얌전히 기다리고있는테치!]
[그래그래]
[텟츈~★]
남자는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실장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지켜보다가 다시 콘크리트 블록에 앉는다.
[역시 상냥한 닌겐사마였던테치... 상냥하신 분인테치.]
[....조금만 기다리면 마마를 찾으러가는테치. 닌겐사마와 함께 찾으러 가는 테치...]
[닌겐사마는 아주아주 큰 테치... 닌겐사마가 있으면 금방 마마를 찾는테치. 그런테치...]
바람이 불어온다.
자실장은 추운듯 재채기를 에퐁- 에퐁- 한다.
[테츄... 조금 추운테치...]
양팔을 감싸안고 부르르 몸을 떨던 자실장은 흘끗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본다.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조금밖에 지나지 않은테치...]
[기다리는테치. 곧 나타나실 것인테치...]
얼마만큼 기다렸을까.
추위에 몸을 떨며, 제자리에서 콩콩 발걸음을 뛰며 자실장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남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테.... 아직도 안 오는테치...]
조금 불안한듯 눈물을 글썽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닌테치! 지금 오고 계시는테치! ....아이처럼 보채면 안되는테치... 그러면 나쁜 아이인테치...]
[닌겐사마에게 재촉해선 안되는테치... 와타치를 도와주신다고 하신 상냥하신분테치... 그런 분을 재촉하는건 이야테치...]
[......그래도 빨리 오시면 좋겠는테치...]
[어?]
남자는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면서 어제의 길가에서 자실장을 발견했다.
원래 이쪽 길로 출근하지는 않지만, 어제 일이 생각나서 루트를 바꿔보았다.
어제밤에 별 생각없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집에 돌아가서 짐을 풀고 쉬어보니 다시 추운 밖으로 나가기는 귀찮아졌다. 추우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대로 쉰 것이다.
자실장은 얼어죽은듯 온몸이 검고 푸르게 물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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