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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리고 앨리스 1~2 (완)

 

<그와 두 자매>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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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시들은 어디로 가는..테?
-몸이 살금살금 흔들리는 텟치.
-가고 또 가는 테치. 몸이 흔들리는 테치.
-이곳은 어두운 텟치.
-어둡지만 따뜻하고 어쩐지 포근한 느낌 테치.
-우리의 주인님이 저분인 텟치이?
-부디 좋은 주인님이었으면 텟치..
-졸린 테치.
-기대서 자도 좋은 테치..
-..



흔들흔들 부드러운 기분에 휩싸여 두 마리는 잠을 청한다.
아쉽게도 밖은 볼 수 없다. 새로운 주인님은 밖을 볼 수 없는 케이지에 우리들을 넣어 주셨다.
하지만 함께 넣어준 이불이 따뜻하고 보드라워..
두 마리는 한데 뭉쳐 잠을 청한다. 새 주인님이 걸어갈 때마다 몸이 둥실둥실 흔들흔들.
아주 어렸을 적 마마쨩이 이렇게 안고 흔들어준 기억이 날 듯도 말 듯도.


“쾅!!!!”


세계가 찢어내릴듯한, 거대한 파열음이 들려온다.
다시금 쿵.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한데 모여 잠을 자고 있는 자매의 몸에도 소름끼치는 충격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녀는 잠에서 덜 깬 멍한 머리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 본다. 케이지가 부서져 있다. 열린 뚜껑의 하늘에서는 아침의 파랗고 청명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쌀쌀한 바람이 스친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단순히 생각한 장녀는 눈을 감고 있는 차녀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그녀의 몸을 흔들어대다가,
자신의 한쪽 팔이 사라진 것을 보고,
차녀의 하얀 볼에 자신의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지는것을 보고,
다시 까무라쳐 정신을 잃었다.



히카루는 멍하니 자신의 빌라에 앉아 자매의 지워진 흔적을 바라보다가, 머리가 깨어질듯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는 불길하다.
모른척 하려 했으나 몇 번이나 끈질기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흘끗 돌려 발신자를 바라본다. 총매니저이다...
히카루는 짧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차갑게 전화를 받았다.

“네.여보세요.”
“아..저 혹시 지금 핸드폰 주인분하고 아시는 사이이신가요?”
“네?”

“교통사고가 났는데 핸드폰 주인분께서준 크게 다치셨는데요, 신원을 확인할수 있는 물품이 하나도 없어서요.
핸드폰을 간신히 찾아 제일 최근 전화를 건 곳으로 전화해 보는겁니다.
이 핸드폰 주인 지인분 되시나요?“


히카루는 전화기를 들고 뛰었다. 구급대원이 이야기해 준 인상착의는 유즈루가 확실해 보였다.
자신의 빌라 근처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다 뺑소니차에 치인 것으로 보인다고 구급대원은 이야기했다.
가족 하나 없는 총매니저의 생각에 히카루는 급하게 옷과 지갑만 챙겨들고 뛰다가, 그와 함께 있었던 두 마리 자매 실장석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젠장!!!!”

자신이 사육실장이니 자매니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었다. 히카루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것 같았다.
매니저가 자신의 집에 온 후 뺑소니를 당해 중상인것도, 두 마리 자매도 같은 꼴일지..
혹은 이미 차에 깔려 죽었을지 모르는 상황인것도.

히카루는 괜히 택시의 시트를 주먹으로 쳐 대며 자신의 모자람을 원망했다.





<<어느날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착한 인간님과 하얗고 따뜻한 집에서 살던 두자매는 착한 인간님의 사정으로 멀리 떠나야만 했어요.
그렇지만 두 자매는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답니다.
착한 아이가 되면 다시 예전의 인간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작고 좁은 상자에 담겨 둥실둥실 흔들흔들, 먼 길을 떠났는데.

세상에,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어요!
쾅!쿵!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자매의 작은 방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답니다.
큰언니는 팔이 아팠어요.머리도 아팠지요. 작은언니를 깨우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힘들었어요.
큰 언니는 작은언니의 누운 몸 위로 조용히 쓰러졌습니다.
잠이 덜깨서 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상처를 입은 큰 언니는 조용히 작은언니의 몸 위에 누워 작은언니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답니다.

착한 자매가 다시 잠을 깬 것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어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자매들도 알 수 없을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후 자매들은 얼굴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답니다.
큰 언니는 눈을 반짝 떴어요. 이제 머리와 팔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어요.
하얗고 깨끗한 천이 자신의 팔에 칭칭 감겨져 있는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는 눈을 동그할게 뜨고 놀라워 하다가 코를 간질이는 좋은 음식냄새를 맡았답니다.

작은 코를 킁킁, 벌름대니 큰언니의 콧속으로 온갖 향기가 전해져왔어요,

빨갛게 불이붙은 나뭇가지가 온기를 뿜어내며 타고있는 기분좋은 연기의 냄새,
인간님이 빨래를 널면 느껴졌던 하얀색 이불의 향기로운 햇살내음.
공원에서 마마가 자신들을 포근하게 안아줄때 맡을 수 있었던 마마의 메마른 머리카락냄새와 정겨운 땀내음..,.

그리고 또 자매가 있는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매들의 빈 뱃속을 어루만져주는 군침흐르는 음식냄새가 풍겨왔습니다.

큰언니는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이제 일어났니? 정말 너희들 오랫동안 자더구나-”

인간님의 목소리였어요. 착한 인간님도 아니고 새 주인님도 아닌 다른 인간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머리를 길게 기른 예쁜 여자인간님이었어요.

여자인간님은 자매를 향해 상냥한 미소를 띄었답니다.
큰언니는 조심스레 이불 안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기었어요.
무서운 인간님은 아닐것 같았지만 마마는 항상 인간을 조심하라 이야기해주셨거든요.

“이녀석, 그렇게 숨지 않아도 괜찮아...너희들은 사육실장이지?”
큰언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기는 구급의료센터야..아무래도 너희와 함께 온 주인은 지금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아.
생각보다 사고가 심각해서 수술을 여러번 해야 했거든...그때까지 여기 잠시 있어야 할것 같은데, 괜찮겠니?“

큰언니는 인간님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구급이나 수술같은건 그녀가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주인님이 많이 다치신 것을 알고, 그녀는 빨강과 초록의 눈물을 양쪽 눈에서 펑펑 흘려댔습니다.
긴머리 여자인간님은 “착한 아이로구나”이야기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작은언니도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큰언니에게 이제까지의 일을 이야기들었습니다.

주인님이 아프시다는 말에 작은언니도 놀랐지만 큰 사고에서 모두가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예전의 착한 인간님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상태는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만..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을것 같습니다.
여기 보이시지요?
후십자인대 파열,열린상처 없는 뇌진탕,어깨,허벅뼈 골절,폐도 문제가 생겼구요..
몇 번 수술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가족분이신가요?“

“아뇨. 이분은 가족은 없으십니다. 저는 회사 동료..직원인데요.수술이 언제쯤 끝날까요?“

“글쎄나..그건 수술 들어가봐야 알것 같은데 한 다섯시간 이상 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류작성좀 부탁드립니다.”


유즈루는 처참한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온몸이 붉은 피에 젖어 아쉬운대로 지혈용 붕대를 감고 있었다.
방금전에는 호흡기의 상태가 안좋다 하여 삽관을 해 기도도 확보했다. 사지에 기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목격자들의 말로는 트럭의 뺑소니라고 이야기하는것 같았는데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였다.
사실 의미도 없다. 트럭이든 오토바이든 우선 사람 생명을 살린 뒤에 찾을 일이었다.

환자의 소지품이라고 건내어진 휴대폰은 락도 걸려있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라도 전화를 좀 해둘까 싶어 핸드폰의 연락처를 뒤적여 보았다.

니지클럽,리틀벅스,니지클럽,리틀벅스,수의사,미키,니지클럽,리틀벅스...
하루에 전화는 한두번 사용할까 말까싶은 정도로 유즈루의 핸드폰은 깨끗했다.
연락처에는 회사와 직원들 몇 명 뿐이었다. 도합 10명도 안되는 적은 인원이 유즈루가 가진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 것일까.

돈을 벌어도 쓸 곳도 없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도 선물을 사줄 여자친구조차 한명 없었다.

아마 인기가 없었던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즈루는 히카루가 본 사람들 중 외적으로 제일 아름다웠던 사람이었고 성격에는 위트와 센스가 넘쳤다. 실장석에 대한 과한 관심과 애정,소유욕이 지나칠 정도였지만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벽을 쌓고 자신의 잔인하고 음침한 성에 갇혀 적록의 눈을 가진 생물체만을 바라보고 있는 유즈루.

히카루는 이제껏 매니저가 실장석 이야기 외에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것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예를 들면 오늘 점심 식사나 회식의 장소따위.

이사람은 밥은 먹기나 할까?
사실 유즈루와 함께 식사를 한적도,회식을 한적도 단한번도 없었다. 매니저실에 가면 항상 커피나 차 따위를 홀짝이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수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이제껏 행복하게 지내왔었다.
본가에 가면 엉덩이를 두들겨주는 엄마가 있고 나를 자랑스러워 해주는 아버지가 계신다. 동생들은 대학을 다니는데, 핸드폰으로 하루 몇십분이나 통화를 할 정도로 서로간의 우애는 끈끈했다.

친구들..
여자친구도 몇 명이나 있었고 울적할 때 맥주한잔 할수 있는 친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 생각했다. 직장 동료,선배,후배,지인,....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삶속에서, 오직 실장석만을 바라본다는것은 어떤 기분인 것일까.

히카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텅빈 유즈루의 핸드폰 연락처에서 그래도 몇 번 전화를 건 흔적이 있는 미키 매니저님의 이름을 찾아낸다.

“.....미친거 아냐? ..이런 아침시간에 왜 전화하고 난리야..”

수화기 너머로 무뚝뚝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목소리 뒤편으로 리틀벅스의 매장음악이 들려왔다.

“매니저님, 저 히카루입니다..”
“야!!지금 몇신데 아직도 안와? 무슨일 있어?
연락도 안되고..이런일이 거의 없어서 엄청 걱정했잖아. 잤어?술먹었어?어디 아파?무슨일이야?“

“총매니저님께서 많이 다치셨어요.뺑소니를 당하셔서..”

미키는 오늘은 리틀벅스의 문을 닫고 병원으로 달려온다 하였다. 니지클럽 쪽에는 병원으로 오며 이야기를 해 둔 상태였다.
병원과 히카루의 빌라, 그리고 도심지에 있는 리틀벅스는 서로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미키는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그 사이 유즈루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침대아래로 떨어진 하얀 손은 식어서 굳어져 버린 피가 닦여지지도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얄궂게도, 어릴적 무릎을 다쳐 울면서 집으로 왔을때 엄마가 따뜻한 물에 거즈를 적혀 정성스레 닦아주었던 기억이 났다. 따뜻한 거즈가 닿자 신기하게도 아픔은 사라지고 엄마의 걱정스런 얼굴만이 눈에 들어왔던 어린 시절의 기억.

쓸쓸한 손가락이 의료진들이 침대를 밀 때마다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말라가 부서져 버릴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예쁜 긴 머리 여자인간님은 자매를 상냥하게 보살펴 주었답니다.
매일매일 따뜻한 물에 거즈를 적셔 자매들의 온 몸을 조심스레 닦아 주었고 하얀색 거품을 내어 머리카락을 살살 씻어내려주었어요.

아프고 다친 자매들은 여자인간님의 정성스런 손길에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졌답니다.

여자인간님은 매일 매일 인사를 잘 하는 자매를 보고 자신도 이렇게 착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고 말해 주었어요.

자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자매들의 소원은 딱 하나였습니다.
예전의 착한 인간님을 다시 만나는 것 이었어요!

자매들은 여자인간님의 방에서 책상을 닦기도 하고 쓰레기를 줍기도 하였어요.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바퀴벌레를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여자인간님은 무척 좋아해 주었어요. 자매들도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는것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어느날, 여자인간님은 자매들에게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방 안은 자매들의 눈빛처럼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던..하루종일 노랫소리가 들려오던 날이었어요.

여자 인간님은 자매들에게 붉고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얘들아, 메리 크리스마스!!”

자매들은 여자인간님을 향해 고개를 꾸벅, 하며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매들은 태어나서 선물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자매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요.
고개를 갸웃 하며 자매들은 초록색의 리본을 잡아당겨 상자를 열었어요.

와아.
상자 속에는 자매들의 예쁜 옷이 두 벌이나 담겨져 있었습니다.
겨울용인듯 소맷단과 치맛단에는 보기좋게 털이 장식되어 있었구요, 천의 감촉은 정말이지 보드랍고 따스하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매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것은 그 예쁜 옷이 자매들이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이었다는 점이었어요.

자매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분홍색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분홍색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지요. 자매들은 그저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초록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평범한 옷을 한 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턱받이의 리본이 분홍색이었던 지라,자매들은 그 리본을 애지중지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옷 전체가 분홍색인, 눈부시게 아름답고 따뜻한 옷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자매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인간님에게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여자인간님은 방긋 웃어주었어요.
여자인간님의 미소는 자매들이 그리워했던 착한 인간님의 미소와 똑같았답니다.
자매들은 지금 너무 행복했지만, 다시 착한 인간님이 보고싶은 마음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데려다 주실까요?
착한 아이가 된다면 다시 사랑하는 인간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자매들은 매일저녁 손을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예전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요. 착한 인간님을 위해 바퀴벌레를 잡아줄 그 날을 기대하며 말이예요.>>




***

유즈루는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히카루와 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던 유즈루가 이 꼴이 되자, 니지클럽의 일도 차질이 적지 않게 생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리틀벅스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수의사의 일은 없었기 때문에 히카루가 유즈루의 보호자로써 병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히카루는 병상에 누운 유즈루를 바라본다.

거대한 붕대의 산.
몸의 반이 석고 기브스에 갇혀져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하얀색의 무덤으로 보였다.
일정한 소리가 병실 안을 조용히 채운다. 바이탈 사인 정상.아직 살아 있음..

간호사는 히카루를 부른다.

“아무래도 집에서 환자가 필요한걸 챙겨오심이 좋을것 같네요. 여기 병실용 물품이요..”
종이에는 오래 입원이 필요한 중환자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친절한 병원이다. 아니면 vip실이라고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것일까,

히카루는 종이를 본다.
가습기,여벌속옷,실내화,여분의 담요,쥬스등등...
히카루는 펜을 꺼내 동그라미를 치면서 의식불명의 유즈루에게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가 세세하게 정리해 본다.
주변에서 사도 좋은 물품들이지만 어차피 히카루 자신도 집에 다녀와야 하니 가는길에 유즈루의 집에 들리는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매니저는 아마 원하던 사육실장을 찾아 기쁜 마음에 아마 집 문도 열어놓고 나왔을런지 모르겠다. 히카루는 유즈루의 소지품에서 집 열쇠도 찾아 주머니속에 넣었다.

그때, 히카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하나 있었다.

“아...그 녀석들..!!”

유즈루의 사고 소식과 수술에 놀란 나머지 유즈루가 자신의 집에 왔던 이유를 깜빡하고 있던 것이다.
그녀석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설마 죽지는 않았을런지.

히카루는 병원의 로비로 뛰어나가 담당 간호사를 부른다.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하고는 초조한 마음이 되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며칠이라도 길거리에 있다가는 금세 죽어버릴 것이 분명한 나약하고 여린 생명체들.


“있다는데요?”
“네?”
“사육실장 두 마리. 구급센터에서 잘 돌봄받고 있다 합니다. 어떻게..가져가시겠어요?상황이 되시나요?”
“그게..”


히카루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 당장은 잘 보살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석들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병원에 내내 묶여 있어야 하는 지금당장은...
그녀석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힐것이 분명했다. 유즈루의 상황에 따라 병원에서 몇날 며칠을 지내야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저....혹시..저도 지금 그 녀석들을 데려갈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며칠이라도 좋으니 구급센터에서 맡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번 물어볼께요.”


간호사는 구급센터쪽으로 콜을 돌린다.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더니만 히카루를 향해 빙긋 웃어보인다.

“괜찮다는데요? 구급센터 여직원이 자기는 그 사육실장들 며칠이라도 더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자신에게 주어도 좋다는데요.다행이시겠어요.”
“네.감사합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사람의 손을 쓸데없이 타지도 않았고 분충도 아니었으며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곁을 지키며 마음에 위안이 되 주는 녀석들.
아무래도 서로를 더 필요로 했던건 나였던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히카루는 간호사에게 고개숙여 인사한 후 병원을 나섰다.





<<실장석들의 하루는 인간보다 짧답니다.
거대한 범고래는 만고의 세월을 바다를 유영하며 살아가지요. 작디작은 다람쥐나, 토끼나, 실장석들은 인간만큼 오래 살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그만큼 짧은 하루하루를 작은발로 재빠르게 뛰어다니며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님에게는 그저 일주일 뿐일지라도 실장석들에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될 수도 있는거거든요.

자매는 여자인간님과 함께 바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구급센터의 한 켠에서 조용히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답니다.

자매들은 그저 기다리고 있었어요.언젠가 착한 인간님이 우리를 데려가러 와 주실까.
책상위에 버려진 쇳조각을 이용해 거울을 보고 얼굴을 꾸미기도 하고, 인간님이 선물해주신 포장지의 리본들을 이용해 큰언니의 머리를 다시 솜씨좋게 땋아주기도 했어요.
여자인간님이 주시는 과자들은 달콤하기 그지 없었고 도시락에서 항상 골라다 주는 계란과 주먹밥들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천국의 맛이었답니다.


구급센터가 조금 더 바쁘고 시끄러웠던 어느날,
자매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찾아왔어요.

새로운 친구는 자매들보다 몸집이 더 컸고, 온통 하얀색 털북숭이에 새파란,하늘같은 예쁜 눈을 하고 있었답니다. 한번씩 꼬리를 내밀고 몸을 쭉 늘이며 “야오옹~”하고 울어 댔어요.

자매들은 새로운 친구가 신기하고 반가워 손을 내밀고 친구의 몸을 쓰다듬어보려 했어요.

“샤아악!”

손을 내민 큰언니의 하얀 손등에 피가 맺혔어요.
어쩌지요?아무래도 새로운 친구는 자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것 같아요.

친구는 오직 여자인간님에게만 친절했고, 여자인간님이 몸을 쓰다듬어 줄때만 허리를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사랑스럽게 갸르릉댔어요.

여자인간님은 자매들도 여전히 귀여워했는데,
친구는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자인간님이 자매와 놀아주고 있을 때면 먼 발치서 자매를 매서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로 위협을 했어요.

자매들은 새로운 친구가 무서웠답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자매들과 친구 모두 지금 당장은 갈 곳이 없었거든요.




인간님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어느 추운 한밤중,
친구는 발끝을 조심조심 세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자매들의 상자로 다가왔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작은 언니가 잠에서 깨어나고, 친구가 자신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는것을 보았습니다.

앗 하는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친구는 작은언니의 몸을 친구의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어요. 뾰족한 발톱으로 상처를 내었어요.

작은언니의 몸에서는 긁은듯한 커다란 상처가 친구의 손짓 한번에 계속계속 생겨났고, 작은언니는 피투성이가 되었어요. 인간님이 사주신 분홍색 예쁜 옷이 빨갛게 피에 물들어갔습니다.

친구는 이빨을 세워 작은언니의 머리를 물었어요.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부서진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작은 언니를 물어뜯던 친구는 둔탁한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고 작은언니를 상처입히는것을 멈추었습니다.

큰언니도 소란에 잠에서 깨어나 작은언니가 공격당하는것을 보게 되었고, 작은 실장석의 힘이나마 끝까지 짜내어 주변에 있던 열쇠뭉치를 친구에게 던졌습니다.

친구의 하얀색 털이 피로 물들어갑니다. 큰 상처는 아니었겠지만 무언가 뾰족한 물건이 친구의 머리를 찔렀나 봐요.

그러나 친구는 공격을 멈추지 않아요. 화가 더 난듯 작은언니의 목덜미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댑니다. 작은 팔다리가 작게 떨어가요 시든 풀마냥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큰언니는 책상에서 뛰어내렸어요. 동생을 이대로 놓아둘 수 없었습니다.
큰언니는 젖먹는 힘까지 짜내어 동생을 친구에게서 떼어냅니다. 친구의 눈이 무서웠지만 큰언니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작은 손으로 친구의 눈을 찔렀습니다.

캬아아아앙!하는 큰 소리와 함께 드디어 친구는 작은언니의 몸을 놓아주었어요.


큰 언니는 작은언니를 꼭 껴안고, 열려진 문 틈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바깥바람이 시린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자매들은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처입은 작은 언니도 두 발을 재게 놀렸습니다. 목적지는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곳에 계속 있다가는 친구가 자신들을 물어뜯어 죽여 버릴것 같았습니다.


두 자매는 눈발이 날리는 바깥세상으로 멀리멀리 뛰어갔습니다.
눈송이가 하나, 자매의 목덜미를 파고들었어요.
여자인간님께 인사를 하지 못한게 내내 걸렸지만
자매들은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뛰고 또 뛰어요.

작은 자매들은 흰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달려갔습니다.>>





***

히카루는 유즈루의 집에 도착했다.

니지클럽쪽에 연락을 하여 유즈루가 키우던 실장석들은 이미 클럽쪽으로 옮겨두었다고 했다.


방 안을 본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가 텅빈 방 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텔레비전도 없다. 흔한 쇼파나 가구조차도 없었다.
방은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하기 그지없었으나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얀색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 그보다 더 값진 타일이 붙여진 벽면.
샹들리에,조명,벽면의 그림.모두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히카루는 모델하우스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건조하고 차갑고 메마른 공기가 커다란 집 안에 가득했다.
유즈루의 집에서 유즈루라는 인간과 실장석을 제외하고 나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필요한 것은 몽땅 다 사야 하나ㅡ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우선은 남아있는 것이라도 확인을 하여 챙겨가기로 했다. 의미는 없을듯 했지만.

방 네 개중 세 개는 실장석들의 차지였던듯 텅 비어 있었다. 히카루는 나머지 하나,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잠자고 생활했던 흔적이 아주 조금은 보이는 방이었다.

커다란 침대가 보인다. 하얗고 깨끗한,주름하나 없이 정결한 하얀 시트가 곱게 깔려있다.
책이 빼곡하게 꽂혀진 책장과 컴퓨터가 연결된 갈색 원목의 책상이 하나 있었다.

책상 위에는 유즈루가 좋아하는 서류와 보고서들로 가득했다. 이번달의 예산내역,새로운 프로젝트, 다음달의 이벤트 등등...
무언가 유즈루에게 필요한 것이 없을까 하고 책장 안을 뒤적이다가 히카루는 작은 파일을 발견했다. 평범한 보고서려니 생각하고 다시 넣어두려는 찰나, 파일의 묶음 안에서 작은 종이가 한두 장 떨어져 내렸다.


히카루는 종이를 주워 들었다.
사진이었다.
오래된 사진.

어린 유즈루가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카메라를 보며 웃고있는것이 찍힌 사진.
사진속의 유즈루는 천진하기 그지 없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모습의 유즈루.

사진속의 어머니는 유즈루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새까만 눈썹, 굳이 말하자면 고혹적이다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인이었지만 옆에서 웃고 있는 유즈루와는 닮은 구석이 없다.
사진속의 유즈루는 연갈색 머리카락에 색소가 엷은 눈빛과 투명할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볼은 장밋빛이었고 여자라고 착각할만큼 가녀리고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 유즈루를 놓고 비교를 해 본다면, 마치 인종이 다른 두사람을 놓고 사진을 찍은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둘을 본다면 입양이라고 한걸까 의심할 정도로 같은 구석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구석에 작게 쓰여있는 “엄마와 유즈루쨩”이라는 글씨만이 둘의 친자관계를 증명할 뿐이었다.


“음?”

이질감에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히카루의 눈에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유즈루와 어머니 사이에는 실장석 한 마리가 멍한 표정으로 함께 있었다.
성체실장 중에서도 꽤 커다란 사이즈로 보이는 녀석으로 어머니와 유즈루의 사육실장인지 흔하게 보이는 핑크빛 옷과 예쁜 분홍 리본을 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유즈루의 실장석 사랑이 시작된 것이었을까. 이때의 실장석은 해수로 취급되어 지금보다도 더 박한 대우를 받았었는데. 여하튼 취향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사진을 돌려놓으려는 히카루의 손 아래로 비슷한 종류의 사진이 두세장 더 떨어졌다.
히카루는 몸을 굽혀 사진을 보았다.

모두 다 엄마나 유즈루, 실장석. 혹은 실장석과 유즈루의 사진이었다.
엄마를 찍은것도 있고 유즈루를 찍은것도 있었으나 멍한 표정의 커다란 실장석은 항상 사진속에 있었다.

유즈루가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는 어떤 사진은 실장석이 바뀌어 등장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귀엽고 깜찍한 자실장이나 엄지실장은 없고 모두 다 덩치 큰 성체실장 뿐이었다.
이것도 괴벽이라면 괴벽이다. 멍한표정의, 혹은 분충스러운 표정의 성체 사육실장. 프릴과 리본이 가득한 핑크빛의 혐오스러운 드레스.

일견 행복한 가족사진으로 보일 수 있는 사진들에서 등장하는 실장석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찌보면 실장석이 주인공인 사진에 유즈루와 어머니가 서브로 존재하는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왜 그랬을까.

라는 사람의 호기심은 항상 일을 낳는다. 사건을 만든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의 연결고리를 자신도 모르게 탐구하게 된다.

히카루는 작은 파일을 열어보았다.
작은 파일의 안에는 유즈루와 어머니,그리고 실장석의 기념사진이 끝도없이 들어 있었다. 보통은 어머니가 사진을 찍은 듯 유즈루와 실장석 둘의 사진이 더 많아 보였다.

어릴적의 유즈루는 실장석을 사랑스러운듯, 가족으로 인식한듯 꼭 껴안고 있었다. 얼굴을 부비며 카메라를 향해 브이자를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이가 든..말하자면 중학생 이상으로 보이는 사진에서는 그렇게 친밀함을 느낄수 없었다. 사춘기라도 온 것인지 실장석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고 얼굴에 미소도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유즈루와 실장석을 꼭 껴안고 있었다.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미소.. 아마도 실장석을 키운것은 어머니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도 이런 애호파가 존재했다니. 특이한 취향이었다.

사진의 뒤편으로 또다른 서류묶음이 발견되었다.
유즈루는 정신병원과 심리치료센터에서 일종의 치료를 받고 있던 것으로 보였다.
처방받은 약과 테스트 결과, 혹은 설문의 진단지가 날짜별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그래. 병은 병이지. 본인도 알고 있긴 했구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진단지와 테스트결과는 모두 다 한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트라우마.

더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언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를 덮치고, 그것으로 인해 꽤나 오랜 시간동안 힘들어하고 고통받은듯 해보였다.
방긋방긋 미소를 짓는 유즈루의 마음의 한구석에는 무언가 끔찍한 일로 고통받은 어린 소년이 존재했다.
그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나와있지는 않았으나 몇 년이 넘는 치료와 상담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계속 극단을 치닫고 있었다. 점점 더 좋아지지 않는 치료상황과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몇 개의 종잇장에 드러나 있었다.

한번도 본인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총매니저.

그러나 그도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친구를 만들고,여자친구를 만든다던가 가족을 이루는 일에 ‘인간이라면’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계속 그를 가로막고 그것이 발전하여 꽃피우는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유즈루는 계속 고립되어 갔던 것이다. 스스로가 쳐놓은 고치에 틀어박혀 나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으나 벽은 너무 강하고 단단해서 유즈루 안의 어린 소년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히카루는 마음 한구석의 찌릿함을 느꼈다. 괜히 자신이 미안해진 느낌이었다.


한번이라도 그에게 식사를 하러가자고 말한 적이 있던가?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 하자 권유한 적이 있던가?
그에 대해 개인적인 궁금함을 가진 적이 있던가.
쉬는 날에 무엇을 하냐고. 인사치레라도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히카루는 무거운 마음으로 유즈루의 집을 나섰다. 그가 그곳에서 가져올 만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의 짐과 죄책감이 새로이 생겨났다.
만약에 유즈루가 깨어나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꼭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자고. 일이 끝난 다음에 회식자리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라도 붙여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두 자매는 작은 다리로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상처난 발에서 적록색 핏방울이 맺혀 바닥에 스쳤습니다.
온몸이 쓰리고 아팠지만 걷는 것 말고 두자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렇게 인적을 피해 쉬고 걷기를 반나절, 한나절.
두 자매는 몸을 숨길 곳을 찾았습니다.

인간님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는 눈도, 비도, 바람도 피할 수 있고 예상보다 따뜻해서 자매들이 지내기 좋았답니다.

상처 입은 작은 언니를 위해, 큰언니는 골판지 상자를 들고 옵니다.

큰언니는 품속에서 작은 천조각을 꺼내었어요.

그것은 바로 착한 인간님이 선물해주시고 작은 언니가 서툴게 만들어낸 큰언니의 옷이었습니다. 낡고 바래 무늬는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따스하고 부드러웠어요.

자매는 착한 인간님이 그리웠습니다. 손수건 옷을 보자 양 눈에서 또르륵,하고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큰언니는 소중한 옷을 이빨로 물어뜯고 잘라내어 조각을 냅니다. 한시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은 소중한 옷을요.
작은언니는 어리둥절해져 고개를 갸웃거리며 큰언니를 말리지만 큰언니는 옷을 조각내는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무 낡아 약한 실장석의 이빨로도 쉽게 옷은 찢어져 갔습니다.

큰언니는 끈이 된 옷의 조각을 작은언니의 상처난 몸에 칭칭 감아주었어요. 어느때인가 여자인간님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 주어 상처를 고쳐주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은언니의 드러난 속살과 피부에 소중한 옷을 둘러감아주었어요.
작은언니는 큰언니가 고마워 다시금 눈물을 흘립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니겠어요?
작은 천조각이 상처를 감싸자 아픔은 사라지고 따스함이 몰려왔습니다.
작은언니와 큰언니는 서로의 몸을 보듬고 잠이 들었습니다. 비록 피투성이에 온몸은 찢기우고 할퀴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서로가 함께였으니까요. 그렇게 둘은 온기를 나누며 작은 골판지 상자 안에서 잠이 들었답니다.>>




***


“네?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죄..죄송합니다. 엊그제 들어온 고양이 한 마리가 아무래도 사육실장들에게 해꼬지를 한 모양이예요...워낙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이라 안심하고 풀어주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줄은 몰랐어요.정말 죄송합니다..어쩌면 좋아요.“

여성구급대원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주인인 히카루에게 사죄를 하였다.
히카루가 죄송스런 마음이 들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며 진심으로 자매를 걱정한다.


아마도 ‘얼마든 사육실장들을 맡아줄 수 있고, 자신이 길러도 좋다’라고 말한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그 하얀 고양이는 천연덕스럽게 온몸에 피를 묻히고 그루밍을 해 대고 있었다.
히카루는 입술을 깨문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저 고양이가 무슨 죄겠는가. 고양이의 눈에 자매는 그저 작고 사냥하기 좋은 여린 생명체이자 놀잇감일 뿐이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늦겨울이다. 밖은 시린 바람이 불고 종종 눈도 많이 내린다. 기온은 차갑
기 그지없고 모든 것은 얼어붙어있었다.


히카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선다.
아마 멀리는 못갔을 듯 해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매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렸다.미키 매니저였다.

“네.여보세요..”
“유즈루가 깨어난것 같아. 근처면 좀 와줄래?”
“네!”

히카루는 한걸음에 유즈루의 병실을 향해 달려갔다. 물어볼것이 많았다. 해주고싶은 말도 많았다.

만약에 그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다면. 히카루는 유즈루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의 나이도 알지 못했다.



히카루는 한걸음에 유즈루의 방에 도착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미키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쓸쓸함이 방안을 채운다. 친구하나 가족하나 그를 보러 와주지 않았다.
유즈루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팔다리를 움직이는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손가락의 까닥거림. 작은 웅얼거리는 목소리, 눈의 깜빡임 등으로 그가 의식을 되찾은것을 알렸다.

회사에서는 그토록 잔인하고, 거대하고, 크게보였던 유즈루가 각종 기계와 하얀 붕대에 묶여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정심.

히카루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감정이 아마도 ‘동정’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의 뿌리가 무엇이든 간에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할 뿐. 근원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유즈루는 지친 눈으로 둘을 바라본다.
미키를 한번 보았다가,히카루에게 눈길을 돌린다. 메말라 피딱지가 맺힌 입술을 움직여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다.

“....미안”
“네?지금은 아무 얘기 안하셔도 괜찮아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가...준...사육실장..잃어버렸어...”
“그런건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몸을 좀 회복하세요.”

간호사가 오고 유즈루의 링겔을 통해 안정제와 진통제를 주입한다. 유즈루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의사는 금방 유즈루의 병실에 도착했다. 누가 뭐래도 유즈루는 부자이고, 그가 쓰는 방은 그 병원에서 가장 비싼 vvip룸이었다. 케어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유즈루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문제가 되었던 뇌진탕과 폐의 수술은 그래도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였다. 뼈의 골절도 완전히 조각난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부러졌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어달 깁스를 하고 병원에서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 후유증은 좀 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듯 해 보였다.

경찰도 와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cctv가 없는 완전한 사각지대이고,목격자역시 ‘트럭’이라는 단서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아 수사에는 차질이 많을 것이라 하였다.


“이제 한숨 돌렸네.”
“그러게요..”


미키 매니저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안심의 표현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미키는 유즈루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
지낸 세월도 적지 않다. 좋아하는 인간유형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지만 부딪히고 싸워가며 나름대로 미운정이 든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빈 병실안이 미키도 신경쓰이기 그지 없었다. 일이야 아랫사람들이 잘 해낼것이라 생각하고 미키가 히카루와 교대를 하듯이 병실을 지켰다.

벌써 사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희한하게도 니지클럽과 리틀벅스는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신년의 특별세일 이벤트도 어떻게든 종업원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유즈루의 손 안에서 돌아갔을 때와, 사실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 앉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행하고 있었다.
히카루는 미키에게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저기..미키매니저님.”
“응?”
“아무래도 하루정도만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그래.힘들지? 히카루도 거의 못 쉬고 집도 잘 못들어가고 여기저기 심부름만 잔뜩 했으니까...오늘은 별일 없을 듯 하네.들어가서 좀 쉬어. 총매니저의 상태도 많이 회복되었고.”

“그도 그렇지만...어쨌든 오늘 반나절정도만 부탁드려요.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걱정말고 다녀와.”



히카루는 길을 나선다.

구급센터부터 1키로미터 안쪽으로 자매가 갈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보도록 했다.

상처입고 지친 자실장 두 마리가 오래 걸을수는 없을 것이다.
겨울이라는것은 추위에 공격을 당하기는 하지만 역으로 다른 생물들이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들고양이나, 공원의 실장이나 쥐 따위는 추운 이 지역의 등쌀에 떠밀려 많은 수가 이미 죽고 없었다.


자매들이 따뜻하고, 먹이를 잘 구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만 한다면 생존이 가능할런지도 몰랐다.
지능이 낮은 멍청한 들실장이라면 결코 할수 없는 일이겠지만, 히카루는 자매들의 영특함을 믿었다.
장녀의 생명력과 차녀의 영리함에 한가닥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다.





<<작디작은 자매 둘이 아파트의 지하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바깥보다는 따뜻했지만 여전히 춥기 그지 없었고 먹을것도 부족했습니다.

큰언니는 매일매일 작은언니와 자신을 위해 벌레들을 잡아 대었지만 찬 겨울에는 벌레들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매는 매일 배가 고팠어요.그리고 추웠지요.
여느 날처럼 먹을것을 구하러 간 날, 자매들은 용기를 내어 아파트 뒤편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엄마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인간들은 거의 다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요.
이제껏 좋은 인간들만 만났지만 그것은 자매가 운이 좋아서 그런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작은 언니는 잘 알고 있었어요.
큰언니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인간들에게 발걸음을 가까이 할 때마다 작은언니는 큰언니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우리는 인간님들에게 사냥당할 수도 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슬픈 눈으로 큰언니를 바라보면, 큰언니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언니의 뜻을 따랐습니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아파트 뒤편으로 향해 보아요.

어디선가 이상하기도 하고 향긋하기도 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음식의 향기가 찬 바람을 타고 솔솔, 불어왔어요.
불이 꺼진 밤에,달도 뜨지 않은 밤에 자매들은 소리도 없이 바닥을 기는 거미가 되어 음식냄새를 쫓아 갑니다. 조심조심 또 살금살금.

와아.

자매들은 커다란 초록색의 상자 안에서 숨을 멈추었어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먹을 것 같아 보이지만 먹을것이 아닌’물건들이 초록 상자를 가득가득 채우고 비어져 나와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작은언니는 언젠가 자매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적에, 엄마가 자매들의 보금자리로 가지고 오신 음식들이 생각났습니다.

사과껍질조각, 반쯤 물러있는 고기, 보랏빛으로 변한 밥알...
모두가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은 매일매일의 식사에 엄마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며 배를 채워 갔습니다. 맛이 있을 때도,맛이 없을때도 있었지만 그 모두는 자매의 배를 가득가득 채우게 해 주고, 내일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영양이 되었답니다.

큰언니가 이것은 무엇일까 멍 해 있는 동안에, 작은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 중 먹기 쉬워 보이는 음식들을 골라 냅니다.

상한것 같아 보이는 짜디짠 단무지, 말라 비틀어진 귤껍질,이상한 냄새가 나는 생선의 꼬리, 언젠가 먹었던것 같은 보랏빛 밥알 뭉치..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작고 고운 두 손에 가득가득 담아 올립니다.

두 자매는 골판지 상자로 향했습니다. 며칠만에 배부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것 같아요.
음식의 맛이나 모양,냄새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답니다.

배고픔이 사라진다는것은 그녀들의 작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배가 부른 것 만으로도 추위가 가시고 금세 행복해진 기분이 들어 큰언니는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기쁘게 춤을 추고 작은 언니는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가 항상 불러주신,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사랑의 노래를요.
그날만큼은 두 자매 모두 행복했습니다. 기쁨에 겨워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답니다.>>



***

히카루는 공원 안쪽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곳은 근처의 근린공원이었다.

그러나 히카루가 공원에 발을 디디자 마자 발견한것은, 겨울맞이 일제구제작전이 실행되어 코로리 등에 목숨을 잃거나 학대파의 쇠지렛대에 맞아 머리가 터진 실장석의 시체들 뿐이었다.

찬 겨울날에도 죽지 않은 들고양이들이 실장석의 시체를 음미하고 있다.
 붉은 피와 하얀 살점이 히카루의 발길에도 도망을 가지 않은 대담한 고양이의,입속으로 들어간다. 뼈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의 고양이가 원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고양이에게 화풀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애꿎은 들고양이에게 화를 낸다 해도 자매들이 돌아올리는 없었다.

그저 어딘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구석구석 공원을 뒤질 뿐이었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0분 남짓의 작은 공원엔.
살아있는 실장석의 흔적따위는 없었다. 살점이 끌린 자국, 뇌수가 비어져 나온 자국,마른 나무기둥에 점점이 튄 피, 조각조각난 초록색 실장옷의 흔적,동족을 반쯤 먹다가 인간에게 머리를 맞아 급사한 실장석의 시체, 혹은 산채로 뜯어먹히다 결국엔 절명사 한 자실장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남은 머릿부분.

구제작업을 시행 한 후 공원위생팀이 오지 않았는지 공원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한가지 불행중 다행인것은, 그 시체들 안에 자매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구급센터 여직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매들에게 분홍색니트로 짜여지고 소맷단과 치마에 하얀색 털이 붙은 예쁜 드레스를 선물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런 사육실장다운 옷을 입은 실장석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칙칙한 공원안에 빛나는 핑크색의 옷은 금세 눈에 뜨이기 마련이었다.

“여기는 아닌가..”

히카루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도 갈곳은 적지 않았다.
역 앞,쇼핑센터의 뒤편,아파트 상가라던가 혹시 병원에 아직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병원에 있다면 분명히 위생문제로 인해 금방 구제당해 버리고 만다-!

히카루는 곧바로 뛴다.

조심스레 기댄 자매들의 머리에서 히카루의 어깨로 전해졌던 온기가 지금은 불에 덴듯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기 전에는 그것이 소중한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잃어버렸을 때에서야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나의 삶에 있어 주는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게 된다.
비통함에 가슴을 치고 애닳음에 눈물을 흘려도 떠난 것을 붙잡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만약 그것이 죽어버렸다면 평생 자신의 어리석음과 상실감에 빈 가슴을 치며 살게 된다.

슬프게도 히카루 역시 그런것을 파악할 만큼 현명한 인간은 아니었으리라.

달리는 발걸음을 더욱 더 빠르게 내닫는다.

자매들의 차디찬 시체를 안아올리지 않았음에 만족하며, 실낱같은 확률에 스스로를 걸어 본다. 미키에게는 반나절.이라 이야기하였지만 그는 이미 미친 사람처럼 하루종일 꼬박 자매들을 찾고 있었다.







<<다행이었어요.
자매들이 음식물 상자를 찾게 되어서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님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몇 번이나 음식들을 안고 종종거린 자매들의 몸과 옷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약한 냄새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음식물을 옮기면 옮길수록 음식물의 고약한 냄새가 자매들의 옷에 스며들었답니다.
자매들은 울상이 되었어요.

이대로라면 착한인간님이 자신들을 발견해도 몸에서 나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들을 데려가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요.
자매들은 그날은 하루종일 물을 찾았답니다.추위도 관계없었어요. 착한 인간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들은 살아있어야 했는데, 이런 모습이라면 착한 인간님도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을것이 분명했어요.

자매들은 아파트의 지하를 걸어 봅니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깜깜하고 넓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손으로 더듬고 발로 디디어 가며 길을 찾습니다.
큰언니는 이곳 어딘가에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깥과 다르게 아파트의 지하는 축축하고 습기가 항상 가득했거든요.

벽을 만져 보면 살짝 물기가 묻어 나와요.
그것은 자매들의 목을 축이기에는 충분했지만 옷을 세탁하거나 몸을 씻기에는 적은 양이었어요.

물이 있을 법한 곳을 따라 종종거리며 걸어요

걷고 걷고 또 걷고를 반복한 끝에,
결국 자매들은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습니다!

단단한 파이프의 틈새를 따라 똑똑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흘러내린 물은 웅덩이가 되어 자매들이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답니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 봐요. 앗 차가워-
찬 물에 발끝이 시려요. 찌르르 하는 느낌이 발끝을 타고 머리로 전해 졌습니다.

하지만 큰언니는 망설이지 않고 옷을 벗고 얼음같이 차가운 물로 뛰어 듭니다. 한쪽뿐인 다갈색 땋은 머리를 풀어, 체온을 뺏기는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문질러 비벼 내려갔습니다.

큰언니가 그러는 이유는 하나뿐이었어요. 착한 인간님을 너무 사랑했거든요!
착한 인간님이 자신을 다시 만났을 때, 예쁜 아이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워져 버림받고 싶지 않았어요. 찬 물은 큰언니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언니도 용기를 내어 물속에 몸을 담가봐요.
온몸이 짜릿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더러운 몸을 씻어 내려가는 물의 감촉이 정말로 기분 좋았어요. 얼마나 목욕을 못했던지, 물은 금세 뿌옇게 흐려졌답니다.

자매는 옷도 작디작은 두 손을 이용해 토닥토닥 세탁을 했습니다.
조물조물 토닥토닥,어릴적 엄마가 해 주었던 빨래가 기억이 났어요.
시린물에 옷을 빨아 항상 빨갛게 손 끝이 얼어있던 자매들의 엄마.
엄마가 빨아주어 깨끗해진 옷을 입으면 항상 기분이 좋았어요.

자매들은 차가워진 옷을 갈아입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어둡고 추운 길을 따라
발걸음마다 까만 물방울 점들을 찍어가며 다시 그녀들의 보금자리로 향했습니다.



자매들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어느날 이었어요.
아파트 지하에 예기치 못했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 이었어요. 시끌시끌하고 활발한 다섯명의 아이들. 아이들은 아파트 지하의 공터에서 축구공을 차고 놀고 간식을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모양이예요.

계단식으로 된 벽에 걸터앉아 엄마가 싸주신 쥬스나 요구르트, 빵 따위를 꺼내서 수다를 떨며 놀았습니다.

큰언니는 군침만 삼킬 뿐이었어요. 가까이 가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나는 어린 친구들 이었어요. 아이들은 축구공을 빵빵 차대어 그녀들의 골판지를 위협해요! 던져대는 축구공에 골판지가 부서져 버릴것만 같았어요.

큰언니는 작은언니를 꼭 껴안았습니다.
숨을 삼키고 조용히 기다리면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녀들의 골판지 상자가 통째로 들어올려지는게 아니겠어요?

바닥을 뚫은 골판지 상자가 열리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눈에 드러났어요. 아이들은 놀라워하며, 신기해하며 자매를 들어올렸습니다.

그저 서로를 더 꼭 껴안을 수밖에, 자매들이 할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아이들은 자매를 껴안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요. 자신들을 향해 웃는 것인가 하고 고개를 들며 바깥을 보는 큰언니의 머리를,
아이들은 손가락을 세워 때려 대었습니다.

딱밤 한번에 세상이 돌고,
딱밤 두 번에 귀에서 피가 흘러나와요.
피가 흐르는 것을 본 아이들은 더욱더 소리높여 웃으며 팔을 잡아당깁니다.

큰언니는 자신의 팔이 잡아당겨져 팔의 관절에 피가맺혀 뜯어질 지경에도 나머지 한쪽 손으로 작은언니를 껴안습니다. 큰언니의 분홍빛 깨끗한 옷에 피가 튀어요. 짜아악, 하고 손 끝이 몸에서 떨어졌습니다.

큰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어요. 아이들은 이번에는 작은언니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붙잡고 뜯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불쌍한 생명은 괴롭히는것이 아니다.”

인간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

아이들은 자매들을 바닥으로 던져요.
철퍼덕. 얼굴부터 부딪힌 큰언니의 머리에 큰 혹이 생겨요. 금세 보라색으로 피멍이 들어 갔습니다.
작은언니는 두 다리가 몽땅 부러졌습니다. 다리는 아팠지만 무서움에 울 수조차 없었어요. 몸을 작게 구부리고 덜덜 떨었습니다.

“경비아저씨다!!도망쳐!!”

아이들은 다시 깔깔깔 웃어대며 먼곳으로 도망쳤습니다. 아이들에게 사육실장 두 마리의 목숨따위는 크게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른 새로운 놀잇감을 또 찾으면 되는 거거든요!

경비아저씨라 불리운 인간님은 자매를 자세히 살펴 보다가, 쯧쯧 혀를 차고. 그녀들을 손에 집어든 뒤 경비아저씨의 작은 방으로 향했습니다.>>



***

병원에서도 아무것도 건진 것은 없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사육실장 두 마리의 흔적은 적어도 병원 내에서는 존재치 않았다.
구급대 여직원은 이미 여러 방면으로 병원 안에서 자매들의 행방을 찾았던 것이다.
아무도 사육실장을 보지 못하였다 말했다.
이미 병원 내에서는 분실물 방송도 여러 번 나왔다 하였다. 하지만 작은 정보조차 존재치 않았다.

히카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유즈루의 병실에 들어섰다. 유즈루의 잘못일까 히카루의 잘못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차라리 자매들이 죽는것이 리틀벅스의 지하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나은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병실로 들어서자, 인기척에 유즈루의 침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아..”
“죄송해요, 제가 와서 깨셨군요..”
“...괜찮은데.”

얼굴에 혈색이 많이 돌아온 듯 보였다. 머리의 반은 붕대로 칭칭 감아져 있었지만 표정을 보기에는 충분하였다.
어색한 침묵이 방 안을 감싼다.
히카루는 허공에 말을 던진다.

“저, 매니저님.”
“응?”
“만약에..이번에 회복이 잘 되시면, 식사라도 한끼 하실래요?”
“,,응?”
“아니면 회사 끝내고 야근 하루 쉬시고, 맥주나 마시러 가시던가요. 치킨에 맥주가 그렇게 맛있는데..드셔보셨어요?”
“,,응?”
“그것도 별로시면 다음달에 리틀벅스에서 크게 회식이 있는데. 오시겠어요?리틀벅스는 회식 분위기 되게 좋아요...사람들도 다 좋고. 험한일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조금씩 다들 감싸주게 되더라구요.”
“..밥?”
“언제 같이 먹어요. 밥. 물론 돈은 매니저님이 훨씬 더 많이 버니까,매니저님이 사주세요.”

유즈루는 생뚱맞은 표정으로 히카루를 바라보았다.
몸 여기저기 링겔을 매단 히카루의 어깨가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며칠이나 식사를 못했기에 살도 빠졌겠지만 지금 유즈루의 모습은 꼭 쥐면 바스러져 날아가 버릴듯한 드라이플라워처럼 보였다.

“왜 갑자기..밥?”
“그냥 먹고 싶어서요. 매니저님이랑은 몇 년이나 일을 했는데도 한번도 같이 식사한 적 없으니까요. 상사로써 한번은 사주세요. 그리고 참석도 하시구요.”

유즈루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갸웃 한다.

“잊어먹지 마세요. 약속한 거예요.저랑 친하게 지내요,매니저님.”

히카루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이제 유즈루에게서 보이는 무서운 잔인함의 무게는 더 이상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나약하고 작고 가련한 사람일 뿐이었다.

또 다시 병실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히카루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려,어떻게든 말을 다시 건낸다.

“매니저님 집에 있는 실장석 다 옮겼는데..걱정은 안하셔도 되구요.”
“응,.”
“그리고 저..뭐, 여기 간호사실에서 가져오라는 물품이 많아서 생활하시던 방을 좀 뒤져보았어요,어쩔 수 없는 거니까 저한테 너무 뭐라고 하진 마세요.
그런데 나 매니저님 어릴때 사진 봤는데?뭐..그리고 서류들 조금이랑요.“


바스락,

유즈루는 거의 몸의 반을 창문곁에 기대어 선 히카루를 향해 있었다.

묘한 표정이었다. 놀람,약간의 분노. 그리고 그 뒤편으로 비치는 일말의 ‘안도감’이라고 불려도 좋을 법한 허탈함이 유즈루의 얼굴에 떠올랐다.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냥..그저..그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어요.”
“혼자서 너무..모두 다 이겨내려고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리는 것도 있고...가족분께 말해서 도움이 되는것도 있지 않겠어요?”
“어머니 아름다우시더라구요. 그런데 매니저님이랑은 안닮았던데..아빠랑 매니저님 많이 닮으셨나요?”
“필요하시다면 저한테 기대셔도 괜찮으시구요.제가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유즈루의 입에서 허, 하는 빈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카루는 유즈루를 바라본다. 어딘지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제껏 유즈루의 표정에서 호기심과 즐거움 외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면 지금은 그의 짧은 웃음속에 이제껏 히카루가 경험한 적 없는 풍부하고 끝을 모를 거대한 감정이,

히카루의 마음을 꿰뚫고 가슴속에 파고 들었다.
순간 사람의 표정이 이렇게 바뀔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히카루는 소름이 끼쳤다.

저 표정은 실장석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학대하며 호기심을 풀어가는 즐거운 미소도 아니었고 이야기를 할때 항상 입가를 떠나지 않는 의미없는 웃음도 아니었다.

마치 작은 악마가 유즈루의 가슴속에서 튀어나온 듯 해 보였다. 그 악마는 그림자를 이루어 작게 미소짓는 유즈루의 뒤편을 장식하고 서 있다.


“꿈을 꾸었어.”
“..네?”
“옛날 꿈을 꾸었어.”
“아....네.”
“너 내 이야기 들어 볼래?”




<<경비아저씨라 불린 남자인간님은, 무뚝뚝하였지만 자매들에게 매우 친절했어요.

경비 아저씨는 자매들을 위하여 작고 튼튼한 골판지 상자를 구해왔어요.
안에 하얗고 따스한 타올로 온기를 더해, 자매들의 잠자리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아저씨는 상처에 인간님들의 약을 발라 주고 하얀색 천으로 상처를 덮어 주었답니다. 피와 오물로 더럽혀진 옷을 손수 빨아서 자매들에게 건내어 주었어요.

상처가 낫고 깨끗해진 자매들은 이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자매는 다시한번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아저씨는 어험, 하며 작게 헛기침하였지만 아저씨 역시 만족스런 기색을 감출 수 없었어요.

자매들이 아저씨의 방 안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자매는 아저씨의 방 안에서 바퀴벌레를 잡고,잡고 또 잡았습니다.
바퀴벌레를 잡아 올 때마다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
인간님들은 자매들이 바퀴벌레를 잡는것을 참으로 좋아했어요,.
자매가 그리워하던 착한 인간님도 바퀴벌레를 무서워했지요. 알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인간님들이 왜 작고 맛있는 바퀴벌레를 무서워 하는것일까요?


자매들은 아저씨의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지냈답니다. 아저씨는 식사때마다 항상 자매들의 식사를 작은 접시에 듬뿍 옮겨담아 주었어요.자매들이 다 먹을수도 없을만큼 많은 양을요.

며칠에 한번씩 따뜻한 물을 대야에 옮겨담아 와 자매들을 꼼꼼하게 씻어 주었기도 하셨답니다.

자매들이 옷을 빨았을때를 대비해 손수건을 두장이나 주었는데, 그것은 자매들이 겨울을 나기에 무척 좋았어요.

자매는 손수건 옷을 입지 않을 때는 그것을 덮고 잠을 청했는데, 그럴때면 잠든 자매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아저씨의 손길을 느꼈어요. 자매는 매일매일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어느날, 아저씨는 물어 보았어요.

“너희 나와 같이 집으로 갈래?”

자매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도리질을 하였어요. 자매들이 그리던 사람은 오직 착한 인간님 한사람 뿐이었거든요.

“너희들 이미 주인이 있는거냐? 어디서 길러졌던 아이들이지?”

자매들은 아저씨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아저씨도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띄며 자매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아저씨와의 나날들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아저씨는 ‘주인이 올때까지’라고 말해 주시고 자매들을 예전과 똑같이,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어요. 자매들은 그런 아저씨에게 감사하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들을 잡아 주었어요.

자매는 여러 인간님과 살면서 이것저것 쓸모있는 재주들을 배웠답니다.
자매들은 이제 물티슈를 뽑아내어 더러워진 책상을 닦을 수도 있어요!
작은 컵을 이용해 화분에 물을 줄 수도 있답니다. 요전번에는 다른 인간님의 집에 방문해 커다란 바퀴벌레 가족을 잡아 다른 인간님과 아저씨에게 크게 칭찬도 들었어요.

그날 아저씨는 계란을 몇 알이나 자매를 위해 삶아 주었어요.자매들은 계란을 세상에서 제일좋아했답니다.


시간이 흐르고 차가운 바람이 멎어 갑니다.
주변에 따뜻한 햇살의 향기가 느껴져요.
푸릇푸릇한 여린 잔디의 싹도 단단한 땅을 뚫고 얼굴을 내밀어 조금 더 온화해진 바람을 느낍니다. 주변에서 마치 합창을 하는 것 같았어요. 어디를 보든 초록색이 한가득, 분홍색 흰색의 작은 꽃망울들이 한가득이 아니겠어요?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자매의 마음은 여전히 한구석의 겨울이 지나가지 않았어요.

자매를 사랑해주셨던, 자매가 사랑하던 착한 인간님은 도대체 어디 계실까요?
자매를 찾으러 와주시긴 할까요?
여기 있는것을 알고 계실까요?
자매는 처음으로, 소리높여 먼곳을 향해 오로롱,하고 울었습니다.

이렇게 울면 착한 인간님이 듣고 달려와 주시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예요.>>




***

히카루는 그뒤 몇주간 이나 유즈루를 정성스레 간호하고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벌써 한달이다. 큰 수술의 경과는 이미 다 보았고, 남은것은 골절상 뿐이었다.

유즈루에게 여러 가지 말을 건낸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과 같은 태도였지만 히카루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심이 있으면 언젠가 통하리라, 라는 생각으로 히카루는 유즈루를 대했다.
어찌되었든 유즈루가 다 낫게 된다면 히카루는 적어도 밥 한번은 그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작은 책임감이 히카루의 마음 한구석을 채웠다.
마음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은 그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상처입고 불쌍한 사람을 조금이나마 우리들이 사는 세계에 편입시켜 주고 싶었다. 천성적으로 마음이 선한 히카루는 그의 말을 듣고서 그를 모른척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히카루의 마음 한구석에서 자매들의 존재가 쓸쓸히 지워져 갔다.
히카루는 유즈루를 간호하는 것을 택한 대신, 자매들의 생존을 마음속에서 버렸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시리고 추웠다,아마 도망친 그 직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꺼라고 생각하며 또다른 죄책감을 마음속에서 지워가려고 노력하였다.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가시고 따사로운 봄의 볕이 느껴졌다.

유즈루의 빈 병실 안에도 병실 밖으로 보이는 병원의 잔디밭에도 푸릇한 봄이 막 찾아오고 있었다. 병실 안에서 코로 스치는 냄새가 이전과 다르다. 부드러운 꽃냄새가 어디선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이것봐, 히카루.이제 걸을 수 있다? 아하하..”

유즈루는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목발을 짚고 방 안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고 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실장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니지클럽도 리틀벅스도 실무자들에게 일을 맡긴 지 오래였다. 유즈루가 손을 떼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조금은 분해 했지만 어느정도 그 스스로가 실장석들에게서 마음을 뗀 듯도 해보였다.

“다행이네요..아프진 않으세요?”

“당연히 아프지. 하지만 이대로 병실에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이미 설날 세일도 놓친지 오래인데..손이 근질근질 하다. 어서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좀 하고 싶은데 말이야.”

“아이고..좀 더 쉬도록 하세요. 매니저님이 없어도 일은 정말 잘 돌아가고 있다구요-”

“알아.그런데 히카루도 좀 쉬던가, 아니면 집에 가서 씻고 오던가 하지 그래?지금 꼴이 엉망이야. 나보다 더 엉망인것 같은데?”


히카루는 새삼스레 거울을 바라본다.

며칠,아니 몇주 간이나 제대로 목욕이든 샤워든 하지 못해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겨울 속에 서 있다. 피부는 거칠어져 보였다.머리도 자르러 가지 못한지 오래라 구렛나룻과 뒷머리가 삐죽이 길어져 보기 싫었다.

“하아..아무래도 가긴 좀 가야겠네요. 이제 거동은 괜찮으시지요?”

“응.완전 괜찮지. 내 걱정은 말고 다녀오도록 해. 정 뭔가 힘들면 미키를 부르면 되니까.”

“리틀벅스 매니저님은 그냥 놔두시고- 간호사나 불러서 필요한것을 요청하세요.”

“하하하하.”


히카루는 집으로 향한다. 올때는 택시를 타고 왔지만,집에서 병원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병원에서 잘 걷지 못해 다리의 근육이 빠진듯도 해 보인다. 리틀벅스에 들어간 뒤로는 히카루의 자랑인 근육도 보기 흉하게 쪼그라들어 버린지 오래였다.


히카루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요전번에 자매들을 찾았던 공원이 있다.

실장석이란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다. 겨울내내 한 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공원에는 히카루의 모습을 보고 달려와 콘페이토를 구걸하는 자실장이 한두마리 눈에 뜨였다.
히카루는 자실장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핀다. 자매와 닮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맘 한구석이 저린다. 결국 그 아이들은 내가 죽인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사라지고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아주 흔한 교훈은 누구에게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되돌릴 수 없는 일은 되돌릴 수 없을 뿐이었다.



따사로운 초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책하듯 집으로 돌아간다.
오랜기간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고지서나 우편물들도 밀릴지 오래일 것이다. 히카루는 각종 고지서의 단골 연체자였다.

히카루는 경비 초소의 문을 똑똑,두들겼다.
마음씨 좋은 경비 아저씨는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히카루를 위해 분실의 위험이 없도록 항상 우편물들을 모아 놓으셨다.
찾으러 갈때마다 약간의 과자나 음료수를 들고 경비 초소를 방문했다. 아저씨와 히카루 사이에는 무언의 신뢰감이 존재한다.


“계세요?”
“아..예, 누구세요?”
“310호의 히카루입니다만...”
“아.네 제가 나갈께요-잠시만요. 우편물 때문에 오셨지요?”


문을 사이에 두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안에서 뭔가 하는 듯 한참을 부스럭 부스럭,투닥투닥거리다가 아저씨는 사람좋은 미소를 하며 초소 밖으로 나온다.

“오래걸렸지요? 하도 온 우편물들이 많아서...챙기느라 좀 늦었어요. 아이고 또 뭐 이런걸 사왔대...고마워요. 음료수.잘마실께요...”
“네.항상 감사합니다...어?아저씨 실장석 키우세요?”

“아이고..참..이런거 들키면 안되는데, 누가 키웠던것 같은데 버려진것 같기도 하고 집을 잃어버린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이런거 다른데 말하고 그러면 안돼..알겠지요?”


순간이 얼어버린 듯 히카루를 스쳐 지나간다.


텟찌 하며 작게 얼굴을 내민 자실장의 땋은 머리가 흔들렸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 그녀의 뒤로 테에-라며 동생 자실장이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듯 땋은 머리 자실장의 옷을 붙잡고 뒤로 늘어졌다.


셋의 눈은 한순간 마주쳤다.


“테에테에..테찌이?”
“테테테테!테찌!테찌!!”

“너..너희들..??”
“테찌이이!!테에에에에엥..테에에에에엥..”
“테텟!!치에에에에엥..치에에에에엥..”


히카루가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자실장 두 마리는, 바로 히카루 아파트의 경비실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실장들은 히카루의 발에 매달리며.히카루의 옷자락을 붙잡고 무언가를 외치며 눈물을 흘려댔다.


“아, 히카루씨 사육실장들이었구나..어쩐지 녀석들이 착하더니만, 수의사는 다르긴 다르네요.
집주인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사실 여기에 애완견이나 사육실장 키우는 사람 많아요.
걱정마세요. 나만 입다물면 되니까.“


히카루는 자매들을 얼른 껴안았다. 자매들은 테치거리며 히카루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열심히 외쳐대고 있었다.
히카루는 되는대로 적당한 링갈앱을 휴대폰에서 실행시켰다.
녀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한데,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님이 계란만큼 좋아요.
나는 인간님이 새옷만큼 좋아요.
나는 인간님이 초밥만큼 좋아요.
나는 인간님이 이불만큼 좋아요.
우리들을 데리고 가 주시겠어요?
우리들과 함께 살아주시면 안되나요?
우리는 매일매일 주인님 생각만 했어요.
너무 좋아해요.
너무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
착한 아이가 될 테니 두고 가지 말아 주세요.
사랑해요, 주인님.-













그와 두 자매 1~2

 


편의점에서 담배와 과자를 사러 들렀다가ㅡ


아뿔싸,

탁아를 당해 버렸다.

살고있는곳은 독신자 전용의 원룸으로 건물주는 그다지 호락호락 하지 않은 성격이라,애완동물 사육은 일체 금지시켰다.

나 역시 실장석을 키우는것에 큰 흥미가 없다ㅡ
하지만 다행히도 소위 말하는 분충은 아닌 녀석들 같아 보였다.

같이 사온 담배와 도시락,과자들은 그대로.
옷가지도 깨끗해보이고 배변의 흔적도 없었다.
들실장이 더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것들의 마마는 자매를 애지중지 고이 키우고 예절교육을 시킨 기색이 역력했다.
크기는 김밥 한줄정도의 길이, 노숙을 하던 들실장 치고는 포동하니 온몸에 살도 잘 올랐다.

한마리가 유독 아첨을 하며 테치테치거려서,그것들이 아직 어린 자실장임을 알게 되었다.
둘중 한마리는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고있었고, 나머지 한마리는 뒤에서 조금 더큰 자매의 옷깃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고있다.

ㅡ테치테치 테치잇!
ㅡ테..테에..

같은 어미일텐데,이토록 반응이 다르다니,

갑자기 자실장이 무어라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사두었던 스피커형 링갈이 있을텐데....


"인간씨 좋은 아침인 테치! 와타시는 마마의 장녀로 제일 튼튼하고 귀엽고 똑똑한 자인 테치!
폐는 끼치지 않으니 키워주면 좋은 테치!"

"인..인간씨..무서운테에..학대파면 어쩌는 테치이....장녀짱 와타시 무서운 테치잇ㅡ"

"미안한데 난 너희를 기를수 없어."

"에에엣!왜인테치?와타시들 피해끼치지않게 열심히 할꺼인 테치!주인님에게 절대 누가되지않는 테치!"

"와타시는 마마한테 가고픈 테치..돌아가도 좋은테치."

한마리는 시끌시끌 난리법석,한마리는 훌쩍훌쩍.
난리도 이런난리가 없다.

"우리원룸은 애완동물 금지라구, 어쩔수 없단다,
얘들아.나가는 길을 알려줄테니 어서 집에 돌아가.."

"치에엣,그..그런.."
"앗..장녀짱.."

자매 중 둘째는 창밖을 가리킨다.

"눈이 오고 있는 테치.."
"집에 돌아갈 수 없는 테치이잇! 주인님 이렇게 된 이상 제발 키워주는 테치!
와타시들 다 얼어 죽어버리는 테에에엣! 살려주는 테치.."

둘은 비명을 지르며 매달린다.

장녀는 무릎꿇고 두손을 모아 간청하고
무심하던 차녀도 남자의 바짓단을 꼬옥 붙잡는다.

남자는 난처해졌다..어째야하나.
남자는 커텐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금방그칠 눈과 비는 아닌 듯했다. 먼 곳 에서부터 어둠이 몰려오고 하늘이 험상궂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발밑의 두자실장은 패닉상태였다.
이런 추위와 눈,비.
분명 죽어버리고 만다고 직감한 모양 이었다.

두 마리는 슬쩍 남자의 바짓단을 붙들다가, 남자의 눈과 마주치자 황급히 손을 놓아버리고,당황한 기색으로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은다.


"살려주는 테치!제발 도와주는 테치!
이대로라면 우리 둘은 죽어버리는 테치!아래 여동생들은 이미 다 죽은 테치!
우리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마쨩이 간신히 탁아해준 테치!"

"사육실장이 아니어도 제발 잘 곳이라도 마련해주면 좋은테치.."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테에엥 테에엥 울고있다.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곤란한데...까다로운 주인영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대로 이 녀석들을 바깥으로 보냈다가는 바로 얼어붙은 바람에 휩쓸려 죽어버릴게 분명했다. 거센 눈보라는 추위보다 큰 문제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두마리는 눈을 반짝거리며 남자를 바라본다.

"난 너희들을 키워줄 수 없다. 사육시켜 줄 수도 없고."

다시 절망의 기색이 깃든다. 입술을 꼭 물고 눈물이 그렁 해진상태로 두마리는 서로를 꼬옥 껴안는다.

"다른것 보다도 이 원룸은 애완동물 금지거든. 아마 이 건물의 모든 방이 다 그럴꺼다..하지만,
바퀴벌레나 쥐처럼, 몰래 들어와서 사는 것은,...
거기다 다른 사람을 보면 도망가고 내 눈에도 뜨이지 않는다면, 아마 추위가 가실때까지 이건물에서 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살아남는 것은 너희들의 재량이 되지 않겠니.
어쨌든 공원보다는 훨씬 여기의 환경이 좋으니까 말이지.."

두마리는 얼핏 이해한 듯도 해보였다.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본다.

"난 사육실장은 키우지 않아. 밥도 목욕도 잠자리도 줄 수 없지. 하지만, 주어진 것을 너희들이 내 눈에 뜨이지 않고 거슬리지 않게 뒷 처리를 제대로 하면서 이용한다면,굳이 구제 따위를 할 생각은 없다..공원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야.
추위가 가실 때 까지라면 눈감아줄 수 도있지.
하지만 말이다.."


빙글ㅡ

남자는 의자를 돌려 둘을 바라본다.

"분충 짓이나 어설픈 사육실장 흉내는 용서 못한다.
스스로의 처지를 알고 숨죽여 산다면 공존 할순 있겠지만 거처를 더럽힌다던가 음식을 강요하다던가 아첨질을 하며 인간을 노예로 얕보는 행위 따윈 절대 용납치 않아.바로 창밖으로 던져 버릴꺼야."


두 마리는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주억인다.
둘 중 언니는 조금 아쉬운 얼굴, 동생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듯 후련한 얼굴이었다.

"감사한 테치. 공원에서 처럼 어떻게든 우리가 살길은 찾는 테치..식사도 알아서 하는 테치."

"테엣..하지만..!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찾는 테치?
조금은 도와주면 좋은 테치..
와타시는 분명 좋은 사육 실장이 될 수 있다고 얘기들은 테치..어떻게든 안 되는 테에츄우?"

"응. 안된다."


입이 삐쭉거리며 언니의 눈에 눈물이 찬다.
동생은 어깨를 끌어안으며 죽지 않은것 만으로도 다행이라 속삭이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눈에도 뜨이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바로 죽는다고 생각해야 할 꺼야. 여기 건물의 모든 사람은 다 학대파라 생각하면 된단다, 머리카락이나 팔 한두개 따윈 우습지."

테잇ㅡ!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남자는 도망가는 둘을 그대로 외면하고는 컴퓨터의 작업에 매달렸다.

밤을 새워 매달린 작업이 끝이 났다. 남자는 저장을 한 뒤 회사에 1차 편집본을 전송하였다.
그것이 끝나고 나니 무려 아침 여섯시 였다. 도대체 얼마간이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기지개를 한번 켜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시간은 좀 지났지만 아까 사온 김밥도 라면과 함께라면 그럭저럭 허기는 면하게 해줄 것이다.



방안에 얼큰하고 매운 양념의 냄새가 퍼진다.
식탁에 식사를 차리고 한입 뜨려는 순간. 식탁밑, 반대편의 의자 다리뒤에서 몸을 감추고 침을 질질 떨어트리며 라면을 바라보는 두 마리의 자실장을 발견했다.

한동안 굶었을텐데, 잘도 견디고 있구나, 생각하며 라면을 무심히 입속에 넣는다.

언니쪽과 동생쪽모두 처음 맡아본 인간음식의 냄새에 얼이 빠진 듯 점점 자신들도 모르게 남자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면을 다 먹어갈때쯤 되자 언니 자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바지를 살짝 그러모아 쥐면서 나머지 한손으로는 필사적인 아첨을 한다. 두 눈엔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테에..인..인간님, 조금..아주조금만..줄...수없는..테치?
와타시들은 며칠..내내 한 번도 제대로 못 먹은..테치..조금 불쌍히 여겨주면 감사한.....테치.
아주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테엑!!"

이미 식사를 다 끝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반동에 언니 자실장은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남자는 다시 한번 실수인척 하며 자실장을 세게 걷어찼다.

반대쪽 벽에 가서 부딪힌다. 벽에 작은 적록의 얼룩이 생긴다.
동생 자실장은 테뺘앗 비명을 질렀다.

모른 척 다시 컴퓨터로 가서 앉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언니 자실장은 동생의 부축을 받아 도망간다.

죽을만큼 심한상처는 아니지만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녹색체액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두 마리는 방의 구석으로 숨는다.




옷장안쪽의 작은 공간...
하지만 남자가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두마리는 알지 못한다.

문을 닫을 수 있으며, 밖과 단절된 어두운 공간-마치 골판지같은-은 두 자매에게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두 마리는 방구석의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들과 크리넥스 몇 장을 이용해 서툴게 둥지를 만들어 본다.마마가 만들어놓은 둥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작은 손으로 테챠테챠 둘의 보금자리를 쌓아올린다.


두 마리는 감격했다.

골판지상자와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잠자리!
이리 누워보고 저리 누워보고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두 마리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도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집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인기척이 사라진다.
둘은 한동안 숨을 죽였지만, 피할 수 없는 굶주림에 직면하고는 조심성이 많은 동생이 먼저 옷장 밖으로 나왔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발끝을 세워서 걷다가, 동생은 남자가 흘린 듯 해 보이는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발견했다. 전리품을 가지고 조심히 집으로 돌아가다가 음식냄새에 발길이 향한다.

뚜껑이 없는 쓰레기통 안에는 먹다 남은 식빵조각과 말라빠진 방울토마토가 있었다.
동생은 언니를 불러 주변을 살피며 재빨리 그것들을 옷장으로 옮겼다.

처음 맛보는 제대로 된 인간음식의 황홀한 맛!
공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큼한 열매!
영양가 높은 탄수화물의 깊고 진한 맛!!!!

자실장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복감을 느끼며 남은 조각하나까지 모조리 핥아먹었다.




"똥이 나오는 테치.."
"나도 마찬가지인 테치, 어쩌면 좋은 테치?"

아직도 남자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듯했다.

둘의 마마는 예의범절에는 무척엄격한 편이어서, 허락하지 않은 장소에 배변을 하면 친실장으로써는 보기 드물게 매까지 드는 현명한 마마였다.

둘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바깥 베란다 근처의 화분더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땅인 테치."

수풀이 자라는 땅을 파서,변을 본 후 다시 흙을 덮는다.
혹은 물이 있는 장소에 가서 변은 본 후 물을 뿌려 냄새를 지운다. 이것이 친실장 에게서 배운, 간단하고도 커다란,
‘생존방법’이었다.

"저기는 물인 테치, 어떻게 하면 좋은 테치.."

동생자실장이 물 냄새를 맡고 화장실을 가리켰다.
둘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화장실과 땅이 보이는 화분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화장실을 택한다.
목도 말라 일석이조인 듯 해보였다.
금방이라도 터져나올듯한 엉덩이를 손으로 꼭 막고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 화장실을 둘러본다.
바닥에는 작은 대야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자실장들 에게는 마치 호화로운 목욕탕처럼 보였다.


"대단한 테치! 호화로운 테치! 목욕도 할 수 있는 테치!"
"테에..물이 찬 테칫,얼어 죽을것같은 테챠아.. 목욕은 무리인 테치.."

두 마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빨리 화장실 바닥에 진초록의 냄새나는 변을 한가득 보았다.

변을 바라본다. 마마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둘은 처리방법을 고민하다가, 대야의 물을 흘리기로 한다.


오른쪽 왼쪽 균형을 잘 맞추어ㅡ

"테치ㅡ!!테치ㅡ!!"

자매는 구령에 맞추어 조심히 물을 흘려 내보냈다.
그러나 여린 자실장 두 마리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대야의 무게에 못 이겨 균형은 깨지고, 대야는 순식간에 기울어져, 시린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테에에에에에에에!!!!!!!"
"추운테치,추운테치!!!얼어 죽어버리는 테치,죽어버리는 테에에에!"


실내라 해도 아직 난방을 틀지 않았기에
얼음같이 시린 차가운 물과 온도는 자실장들의 몸을 사정없이 유린한다.

많은 양의 물로 인해 둘의 변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지만 젖은 옷과 몸이 문제였다.
둘은 오들오들떨며 옷을 벗었다. 조그만 팬티마저도...

하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부끄러운 곳을 옷과 손으로 가리며 옷장 속으로 향한다.

옷장 안은 바깥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추위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벌거벗은 채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돌아온 남자는 화장실을 보며 조금 감탄하고 있었다.
똑똑한 친실장이 기른 듯, 두 마리는 화장실을 배변장소로 택했다.
옷장 속에서 빵콘을 한다던가 집에 그리하여 지독한 냄새가 풍기게 한다던가 하는일도 없었다.

한술 더 떠 대야의 물을 이용해 변의 흔적을 지우기까지 한 것이다. 훈련받지 않은 들의 자실장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경외심까지 생길정도였다.

남자는 옷장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물에 젖은 두마리는 추위에 온몸을 떨며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었다.
주변에는 물에 젖은 옷이 모아져 있었는데 희미하게 실장대변의 냄새가 났다. 남자는 페브리즈를 가지고와 주변이 오염되지 않도록 젖은 옷 위에 두어 번 뿌린다.

두 마리는 온몸을 서로 밀착한 상태로 추위에 떨며, 정신을 잃은듯 잠에 빠져 있었다.


남자에게도 약간의 동정심이 밀려왔다.
그는 옷장과 캐비넷 안을 뒤져 무늬가 이상해서 사용하지 못했던 손수건을 두어 장 찾아낸다. 남자는 조심히 손수건을 둘의 몸 위에 덮어두었다.
두 마리의 잔뜩 찡그렸던 얼굴이 금세 편안해지고, 얼굴이 발개지며 새근새근 규칙적인 소리를 낸다.

남자는 옷장 문을 닫았다.
실장석을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자꾸 신경쓰이게 하는 녀석들이었다. 분충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예의범절을 아는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그렇지만 원룸에서 쫓겨날 수는 없다. 남자는 그저 이대로 두고 볼 생각이었다. 손수건이나 페브리즈따윈 변덕에 가까운것이다. 아마도 날씨가 좋아진다면, 먹을것이 없는 남자의 집을떠나 다시 친실장 에게로 돌아갈 것을 예상했다...

두 자매는 포근함과 만복감에 한참을 잠들어 있다가 저녁이 넘어가고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실컷 잔 테치..테에?차녀쨩, 차녀쨩, 우리 몸에 뭔가 덮인 테치.춥지 않아 행복한 테치!"

"테칫...이건 아무래도 이방 인간님의 물건 같아 보이는 테치..내가 주워온 하얀 이불과는 조금 다른테치"

"대단한 테치! 따뜻한 테치!
아주아주 예쁜 무늬가 있는 테치!찢어지지도 않는 테치!"

"정말인 테치..이런 예쁜 옷은 태어나서 본적도 없는 테치.."


두마리는 감격에 겨워 손수건에 얼굴을 비비고 파고들어 온몸을 휘감고 요란을 떨어댔다.
언니 자실장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손수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본다.

"테에..혹시 이게 사육실장의 옷인 테치?인간님이 키워주는 테치?
매일매일 맛난음식 먹을수 있는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인간님이 주고 간것 테치?"

"테이,그건 아닌것같은 테치.이건 그냥 큰 이불 같아 보이는 테치.
사육자실장은 분홍색 레이스옷에 하얀리본 하고 있었던 테치..이것과 모습이 다른 테치.
그리고 그때 인간님이 절대 키울수 없다 말한 테치, 장녀짱 기억나지 않는 테챠아?"

"와타시는 차녀짱처럼 똑똑하지 않은 테치..
하지만 누구보다 귀엽고 활기차며 사랑스러운 자라고 마마쨩이 매일매일 얘기했던 테칫!♡"

"테에...이것으로 뭔가 할 수 있으면 좋은 테치.
지금은 조금 춥고 부끄러운 테치. 아직도 옷이 마르지 않은 테치."

나름 솜씨가 좋은 동생은 이리저리 천을 묶고 이빨로 잘라내어 손수건을 몸에 걸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괴이한 무늬나, 그에 못지않은 실장석의 솜씨로 해괴한 악취미의 원피스가 두벌 만들어졌지만, 두마리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른 실장석과 다른 엄청나게 아름다운 옷을 자신들의 힘으로 손에 넣고 만 것이다!

특히나 인간님의 하사품, 언니에게는 사육실장이 머지 않은것 처럼 느껴졌다.


"이걸 입고 인간님께 가면 너무 예뻐서 길러주지 않을까 궁금한 테치.
와타시가 사육실장의 자태를 갖추면..기르는 테치? 기르면 좋은 테치."

"지난번처럼 맞지 않으면 다행 테치."

언니는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젓는다.




시시때때로 배는 고파져온다.

어제와 같이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조금 찾아냈다. 그러나 어제보다 훨씬 많이 상해 있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테엣, 이걸로는 역부족 테치. 귤껍질뿐 테치.맛있지만 둘이 먹기 너무 적은 테치.
배고픈 테칫,배고픈 테치.
깡말라 귀엽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는 테치."

"...도대체 장녀짱은 그런 애기를 누구에게 들은 테치? 어쨌든 조금 더 힘내보는 테치."


그때 멀리서 사각사각..
둘의 귀에, 작지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언니는 쉿,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사사사삭!
사사사삭!
사각사각 사사사삭!


자실장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퍼진다. 실룩이는 입가를 주체할 수가 없다.


"..언니짱 여기에도 있는 테치. 인간님의 집에도 가득가득 테치! 신나는 테챠!"
"맞는것 같은 테치. 맛있는 소리가 나는 테치..이건 아마도.."


사사사삭!

모습을 숨긴 둘에게 익숙한 까만 물체가 스쳐지나간다.


"바퀴벌레 쨩테치! 너무 좋아 테츄우~~♡!!"

언니는 공원에서도 온갖 벌레들을 잘 잡아서 마마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느린벌레, 빠른벌레, 큰벌레, 작은벌레.
종류는 중요치 않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까맣고, 크고 아름답고 재빠른 '바퀴벌레쨩'이었던 것이다.


언니는 어깨춤을 추며 냉장고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고, 뒤이어 곧바로 손가락 반 정도 크기의 거대한 바퀴벌레를 몇 마리나 잡아왔다.
오늘 저녁은 해결이다. 동생에게 오래간만에 면이 선다.


"냉장고 뒤에 가득인 테치. 이제 식량걱정 없는 테치치..,"

동생은 조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인간의 집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리라.


"..그렇게나 많으면..걱정인 테치.
인간님이 먹으려고 모아놓은 것 아닌 테치?
우리가 손대버려서 화나면 어쩌는 테치..아마도 여기 바퀴벌레쨩들은 인간님의 사육바퀴 벌레쨩인지도 모르는 테치..
아마도 세레브 바퀴쨩테치.."


두 마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언니는 그냥 모두다 먹어버리자ㅡ를 주장 하였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윤기 나는 통통한 바퀴벌레쨩-

그냥 방치해 뒀을리가 없었다. 인간님도 이 쌉쌀하고 오독오독 맛있는 바퀴벌레쨩을 좋아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요전번에 받았던 예쁜 옷에의 보답ㅡ
자신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생은 나름의 해답을 찾아낸다.

동생과 언니는 식탁에 기를 쓰고 올라가, 크리넥스 한장을 뽑아 테이블 위에 깔고 제일 윤기나고 커다란,알배기 바퀴벌레쨩 한마리를 올려두었다.
세팅을 하는 두마리의 입에서는 침이 질질질.
크리넥스에 점점이 작은 물자욱을 만들어놓는다.


"..이제 된 테치. 인간님이 좋아하면 좋을것 같은 테치. 맛있게 먹어주면 좋은 테칫.."

"내려가는 테치? 차녀쨩, 그런데 어떻게 내려가는 테치?"

"테에엣?"


내려가는 일에 대한 것은 똑똑한 동생도 간과한 것이었다.
둘은 올라올때와는 다르게 보이는 식탁의 엄청난 높이에 당황할 뿐이었다.
바닥까지는 아무래도 닿을 방도가 없었다. 잘못 떨어졌다간 바로 팔다리가 부러져 버리리라.

둘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짜내다가, 절묘한 방법을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옷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옷으로 끈을 만들어 하나가 붙잡고 내려가고, 하나가 잡아주고.

우선 하나라도 내려간 후에는 인간님의 옷가지나 이불 같은 부드럽고 폭신한것을 깔아놓고 뛰어내려 충격을 감소케 한다.
이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누가 내려갈지 고민하다가, 자매애에 가득 찬 동생이 언니쨩이 떨어져 죽어버릴까 걱정스러워 먼저 총대를 매기로 한다.


"조심히 내려가는 테치...발밑 잘보는 테치."

"걱정없는 테치, 잘 잡아주는 테치ㅡ"

동생은 언니를 믿고 의자를 향해 뛰어내렸다.
의자로 뛰어내린후, 의자 다리를 이용해 바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테에엑!? 짧은 테치 닿지 않는 테치!!!!의자가 아닌 테치,잘못 뛰어내린 테챠아아아!!"


동생이 뛰어내린 방향이 잘못된 것이었다. 의자로 정확히 뛰어내렸어야 하는데, 각도를 조금 틀려, 허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돕는 테치, 돕는 테치 ! 걱정하지 않는 테치!
내가 다시 끌어올리는 테치! 와타시는 힘이 아주 센 테치!"

언니는 대롱대롱 매달린 동생을 향해 손을 내민다.

부족하다. 조금 더 내밀어본다.

닿을 듯 말듯 둘의 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찌이이익!


손수건의 무게가 자실장을 이기지 못하고 툭 끊어진다.


떨어지려는 찰나, 동생의 손은 순간 허공을 휘젓는가 싶더니만, 늘어져 있는 언니의 머리가락 한쪽을 간신히 붙잡았다.


"테에에에엑? 이건 머리카락인 테치, 소중한 머리인 테치.!
아픈 테치! 놓아주는 테치! 떨어져 나가는 테치!"

"테챠!테챠!테치!테치!"



동생은 이미 죽음의 공포로 패닉이라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투두둑,


작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둘은 결국 식탁위에서 함께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둘이 함께여서 충격은 덜했지만, 온몸 여기저기 부러지고 찢어져 적록의 체액이 흐르고 있었다.
장녀는 차녀의 위에 떨어져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몸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상태를 확인한 후, 깔려있는 동생의 안위를 걱정해 그에게 다가간다.


"차녀짱 살아있는 테치? 죽지 않은 테치?
와타시 아프지만은 죽지는 않은 테치.."


등을 돌린 차녀짱은 묵묵부답이다.

작은 어깨만 조금 흔들릴뿐, 대답이 없었다.

걱정이 된 장녀는 차녀를 바라본다.

차녀는 소리도 없이 큰 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크게 다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한 장녀는 짐짓 걱정이 되었다. 장녀는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차녀를 위로한다.


"죽지 않은 테치, 다행인 테치..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너무아프면 내가 업어줄 수 있는 테치...."

"장녀짱..정말..미안한..테치..텟슨."

"무슨 일인 테치?"


말없이 손을 내민 차녀의 손바닥에는,
장녀의 뒷머리 한 무더기가 들려져 있었다.


“그..그것 혹시 와타시의 머리카락인..테..챠..아??”

“미안한테치!!죄송한 테치!!잘못인 테치!!!!실수했던 것 테치!!!!”


차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쿵쿵 바닥에 박는다.

머리카락은 옷보다도 소중한것하며 실장석들 자신에게는 위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옷이야 사육실장이 되면 새로운 것을 받는 운좋은 녀석들도 있다 치지만 머리카락은..
한번 빠지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죽을때까지.



마마쨩은 장녀짱을 제일 귀여워 하였다.

차녀처럼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벌레를 잘 잡아 가족의 생존에 항상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나 자매중 가장 귀여운 얼굴에...
거기다 더해, 연갈색의 반짝반짝 빛나는 풍성한 머리카락에 자매들과 마마는 항상 넋을 잃었었다.


-장녀쨩이 최고인 테치!예쁜 언니쨩 테치!!
-벌레도 이렇게 많~이 잡아온 렛츄우-♡대단한 언니쨩 렛치!예쁜 장녀쨩 정말 대단한 레챠아!!
-와타시는 장녀가 정말 대견한 데스.이렇게도 쓸모있고 아름다운 자인 데스우..
-세레브 실장!
-세레브실장 테치!
-맞는 레츄!!세레브실장!!장녀쨩은 꼭 세레브실장이 될 수 있는 렛치!
-너는 꼭 좋은 사육실장이 되어 주인의 사랑을 듬뿍-받는 세레브 실장이 될 꺼인 데스우.
-세레브!
-세레브!
-....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엥!!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장녀는 한쪽만 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들고 적록의 눈물을 펑펑 흘려가며 오열하였다.

살점이 찢겨 피가 흘렀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흔들리는 한쪽의 머리카락이 여전히 보드랍고 풍성하여 더욱 애달팠다.


차녀는 계속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차녀의 머리에서도 피가 번져간다. 바닥에 동그란 무늬를 만들며 사죄는 상처를 만든다.
빠직, 하고 작은 두개골에 금이 가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미안한테치,잘못인 테치..어쩌면 좋을까 테챠아..”

차녀는 무언가 생각이 든듯 고개를 번쩍들고 장녀를 바라본다. 차녀의 입술은 파래져서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테..갚는 테치.”

“테?”

“와타시도 머리카락으로 갚는 테치.와타시도 머리카락을 뜯는 테챠아!!!”


차녀는 눈을 꼭 감고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붙든다. 손 옆으로 한두올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차녀가 힘을 더 주어 머리카락을 뜯어내려 한 그때-


“...그만두는 테치..”

“...장녀쨩?”

“차녀의..머리카락이 뜯어진다고 내 머리가 다시 나는것은 아닌테치.
와..와타시는..괘..괜찮은 테챠아.
차녀는 와타시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여동생 텟치. 와타시는 차녀를 아끼는 테치이..
머..머리카락은 괜찮은 테치..차녀..
그러지 마는 테치...
치에엥,치에에에엥..“

“장녀..쨩....”

두 마리는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린다. 하늘아래 남은 가족은 단 둘 뿐. 장녀에게는 마마를 대신해 차녀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항상 자신보다 영리하여 도움을 많이 주었던 차녀이지만, 그래도 차녀는 장녀에게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언니에게선 모성애에 가까운 형제애가 솟아올랐다. 장녀는 다시한번 차녀의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잤다. 두 마리는 몇군데 찢기고 부서진 충격에도 식탁밑을 깨끗이 정리하고 자신들의 핏방울까지도 ‘하얀이불조각’으로 닦았다.
둘은 안으로 따끈따끈한 바퀴벌레쨩을 가지고 들어와 호호 불며 열심히 먹었다. 간만의 만복과 인간님이 선물하신, 옷감의 기분좋은 따뜻함에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테..차녀쨩.”

옷장안에서 아침도 밤도 없이, 배가 고프면 일어나고 배가 부르면 잠이 든다. 다시금 약간의 허기를 느끼며 장녀짱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테에에?와타시의 머리카락이..하나도 없는 테치이!”

장녀짱은 테치테치 난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면 항상 보여지는 코코아빛 머리카락이, 한쪽만 남아 더욱더 귀해진 머리카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바닥에는 빠진 머리카락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지도 않은데,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장녀언니쨩 일어난 테치? 와타시는 잠시 변을 보고 온 테치..테에?왜 우는 테치?”

“와타시의 머리카락이..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없어진 테치!테에에에엥!테에에에엥!
도망간 테치! 찾아주는 테치. 와타시는 대머리인 테치!“


차녀는 테치치, 하고 살폿 웃는다. 입을 삐죽거리며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장녀쨩이 차녀를 째려본다.


“왜 웃는 테치!”

“와타시가..언니쨩이 자는동안 예쁘게 해준 텟치.”

“테에?”


차녀는 품 안에서 작은 티스푼을 꺼낸다.

“인간님이 얼굴을 보는 동그라미 테치. 이걸로 언니쨩 얼굴 볼수 있는 테치.”

“테치?”

장녀는 티스푼을 통해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와타시인 테치.아직 귀여운 얼굴 텟치!!!!테에?이것 무엇인 테치?”

“공원에서 본 작은 인간님이 머리에 달고 있었던것 테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을 서로서로 묶어서 집주인 인간님이 하사하신 옷의 조각으로 리본 만들어 놓은 테치.”


그제서야 장녀의 눈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조금 서툴고 어설픈 솜씨지만 머리카락은 확실히 여자애들의 댕기 모양으로 땋아져 있었다.
손수건을 잘라서 리본까지 만들어, 마치 사육실장이 머리에 잔뜩 멋을 낸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머리카락이 한쪽밖에 없어 풍성하게 흔들리진 않아도 여자 인간님들의 귀여운 헤어스타일과 같은 모양이 장녀쨩의 마음에 쏙 들었다.


“어머나테치! 대단한 테치! 이것은 세레브실장의 머리모양인 텟치!!
예쁜테츄우-!!!그런데 차녀쨩, 왜 너는 머리를 묶지 않는 테치?“

차녀짱은 쓸쓸히 고개를 젓는다.

“이것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머리카락 텟치..와타시도 하고 싶지만..”

차녀는 물끄러미 장녀를 바라본다.
장녀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절대절대 무리테치. 와타시는 그런것 묶지 못하는 테치.”


예쁜 장녀의 모습에 둘은 마음이 풀어졌다. 바퀴벌레 다리를 하나씩 갉아먹으며 공원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마와의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바퀴벌레쨩은 아직도 냉장고 뒤에 가득가득이라 마치 장녀와 차녀가 나이가 들어 자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먹여살릴 수 있을것만 같았다.


-쿵!!


두 마리는 놀라,새파래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옷장속에 숨었다. 집주인 인간님이 돌아온 것이다.

“일도 많다 정말..그만두던가 해야지. 힘들어 죽겠네.”

남자는 다운 파카를 벗어던지고 그대로 쇼파에 누웠다. 쇼파의 폭신함이 남자를 잠으로 이끌었다.
그때, 남자의 눈에 뭔가 이전과 다른것이 눈에 띄었다.

식탁의 의자 모양은 조금 달라져 있고, 식탁위에는 크리넥스 티슈 한 장이 뽑혀져 접은 선까지 펴진 모양으로 놓여져 있다.
뭐지,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간 남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자가 이제껏 본 것중 가장 커다랗고 윤기나는 바퀴벌레가, 남자의 소중한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암컷 바퀴벌레인지 뽈뽈뽈 알과 비슷한 색의 새끼 바퀴벌레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는 듯도 해 보였다.

남자는 그 자리에 굳어져 ‘이것은 무엇인가’, 를 패닉에 찬 머리로 잠시 생각해 보고는 남자는 결론을 내렸다.
남자는 끔찍한 얼굴로 새끼가 튀어나오고 있는 바퀴벌레를 붙잡고, 변기에 흘려 버리면서 말한다.


“인간은 바퀴벌레따윈 먹지 않아! 바퀴벌레를 누군가 다 먹어주면 좋을텐데!!”


옷장속에, 숨어있는 자매들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난다. 인간님은 바퀴벌레쨩을 싫어한다.
거기다 누군가 먹어주면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

바퀴벌레쨩을 먹지도 않으며 세레브 실장처럼 소중히 키우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두 마리는 그저 바퀴벌레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인간님의 소중한 식량을 훔쳤다고 화를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바퀴벌레쨩을 잔뜩 먹은 오후, 남자도 집에 있지 않아 둘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벌써 집에 온지 며칠이나 흐른 것이었다. 남자는 아주 늦은 밤을 제외하면 집에는 거의 있지 않았다. 집에 와도 그저 컴퓨터만 바라보며 서류 작성에 매달릴 뿐이었다.

제출할 보고서를 끝내고 나면 곧장 잠에 빠져든다.회사에서 씻는일이 더 많아 집에서는 욕실을 이용할 때도 거의 없었다.




조금 더 추운 주말, 남자는 오래간만에 욕조에 가득 온수를 받고 목욕을 했다. 온천에서 사온 분홍빛 입욕제도 풀어넣어 피로를 풀려 한다.
회사의 일은 산더미이다. 끝나는 시간도 일정치 않다. 남자가 하는 일이란, 더럽고 힘들어 어떤 것이든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른 곳과는 비교할수 없는 연봉이 남자를 그곳에서 계속 일하게 붙들었지만,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나면 죽을만큼 힘들어진다. 거기다 보고서 작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언제나...


“후우우.”


깊고 작은 욕조에 온몸을 담갔다가 퐁 하고 일어난다.
예전에는 엄마와 함께 이런 물방울 장난을 많이 쳤었는데. 지치고 힘들어지면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제일먼저 나를 반기어 주던 작은 강아지 츄츄..
이미 나이가 들어 죽고 없지만, 본가에 돌아가면 항상 츄츄가 반기어 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고싶다.

츄츄가 죽을 때쯤엔 이미 츄츄는 남자의 소중한 가족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남자마저도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작고 앙상한 몸을 거두어 본가의 뒷마당에 묻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겨울이었는데.
츄츄는 땅속에서 추우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츄츄때문에 수의사의 길을 선택한 듯도 싶은 느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다 예전 일이다..



-...테치.
-..테에..
-텟.


웅성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김을 빼려 살짝 열어둔 유리문의 밖에서 작고 동그란 그림자가 어른어른 한다.
둘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으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눈치를 보며 한걸음씩 조용히 나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둘을 잠자코 지켜 보았다.
둘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다. 김이 서리는 욕실에 들어와 테후-테후-라며 눈을 감고 따뜻함을 즐기었다.




“따뜻한 테치!”

“마마가 이야기해준 아와아와를 할 수 있는 테챠아? 따뜻하고 편안한 테치!”

둘은 남자가 볼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변기의 옆쪽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페트병 뚜껑에 물을 담아 둘의 몸에 뿌려 문지른다.
텟치, 텟슨 하는 소리가 작게 메아리친다.

둘은 바닥에 흐른 물을 손으로 적셔서 머리카락을 문지른다. 페트병에는 물이 잘 고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물을 떠내 머리카락에 적셔 댄다.
남자가 하는것과 같은 샴푸와 린스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둘 다 스스로의 몸을 양손으로 고이 문질러 간다. 하얀 몸에서 땟국물이 묻어 나온다.

남자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욕조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며 실수인것 마냥 작은 대야 하나를 문 근처로 멀찍이 던진다.

자실장 두 마리는 테치~♬라고 두손높여 만세를 하며 대야를 받아들었다. 두마리가 신나하는 것이 남자의 눈에도 보인다.
남자는 목욕을 대충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 선다. 두 마리 자매는 변기 뒤쪽의 배수구에 대야를 뒤집어 쓰고 앉아 덜덜 떨고 있다.


‘그렇게 말했어도 크게 괴롭히지는 않을껀데.’

남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욕실을 나선다.






“테치?대호화 테치?”

“이런것은 본적 없는 테치이?”


자매는 한겨울에 느끼는 따뜻한 호화를 경험하고 있다.
둘은 대야를 발받침대 삼아 작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사용하고 간 물은 이미 많이 줄어 있어 자실장 두 마리가 앉아 어깨까지 자신들의 몸을 잠기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따뜻한 테챠아-”

“이것이 아와아와인 테칫? 기분좋은 텟치..”


둘의 몸은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둘은 물을 퍼올려 양손으로 들고 가득가득 마시다가, 몸을 씻기도 하고 자매를 바라보며 물장구도 친다.
한동안 평화롭게 욕조안을 거닐다가, 장녀는 자신의 배를 살짝 만져 본다.


“배가고픈 테치..이제 그만해도 좋은 텟츄..”

“장녀쨩 배고픈 테치이?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되는 테치? 와타시는 이런기분이 처음이라 너무 행복한 텟츄..”

“괜찮은 테치. 기다릴수 있는 텟치!”


차녀는 신이 나 욕조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차녀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온다.

“이거 뭐인 테치?”


작은 은색 고리가 달린 까만 동그라미를 바라보며 차녀가 장녀에게 묻는다. 하얀 욕조의 바닥에 그것만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으로 나가는 테치?”

“아닌테치...작은 테치. 그렇지만 ‘문’같아보이기는 하는 테치.”

“혹시..”
“??”
“세레브 바퀴쨩들의 문일지도 모르는 테츄!크기가 딱 바퀴벌레쨩들의 사이즈에 걸맞는 테치!”


장녀가 오래간만에 옳은 소리를 한다. 차녀는 그럴지도 모르겠어 라며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여는 테치!배가 고픈 테치!!바퀴벌레쨩 와삭와삭 오돌오돌 씹어먹는 텟츄우!”

“앗,,장녀쨩..!”


차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장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욕조의 마개를 열었다.
순간, 강한 압력으로 물이 빠져나갔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게뭐인 텟츄우우우우우!!!”


둘의 몸은 욕조 안에서 빙글빙글 물과 함께 휩쓸려 떠내려갈 듯 돌았다. 머리가 팽팽돌고 정신을 차릴수 없을듯이 어질어질 하다.




뿅.



순간 압력이 멈추고 물이 잠잠해졌다.

차녀는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본다.


“테치이?테챠!”

“차녀쨩..도와주는 테챠아..엉덩이가 아픈 텟치!”


장녀는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팔과 다리를 버둥거린다. 장녀의 작은 엉덩이가 배수구에 맞게 꼭 끼어버렸다.
아무리 잡아당기려고 해도 빠지지 않고 계속 계속 엉덩이쪽을 누가 빨아들이듯이 압력이 전해져 온다.


“큰일인 테치!큰일인 텟치. 어쩌면 좋은 텟치?”


차녀는 욕조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장녀 주변에 고여있는 물을 손으로 파내 욕조 밖으로 던져본다.

효과가 없다.
장녀를 힘껏 밀어도 본다.
여전히 효과가 없다.
장녀의 살을 파내다가, 다시 밀어도 넣어보지만 장녀는 아파하기만 할뿐 변화는 없었다.

점점 더 맞닿은 곳의 피부는 붉어져 간다. 피가 쏠려 멍이 든듯도 해보였다.

차녀도 장녀의 옆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었다.


“큰일난테치!점점 추워지는 텟치.어쩌는 테치?”


차녀는 집안의 남자를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인간에게 겁 없이 다가갔다가는 죽을수도 있다는것을 공원에서 몇 번이나 경험했던 것이었다.


그때,


“테,테,테,테,테프테챠테에에~~”


장녀는 얼굴이 발개지더니, 순간 황홀경에 빠진듯한 얼굴을 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뾱 하는 소리가 나며 장녀의 엉덩이가 마개에서 빠지고 장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빠진테치!빠진테치!와아!빠진테치!언니쨩 어떻게 된 텟치?”


장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차녀짱에게 손을 들어 보인다.


“똥을 싼 테치.”







남자는 욕실 밖에서 두 녀석들의 테찌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링갈을 실행하고 살짝 녀석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았다.

풋,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 수 없다.

들실장들의 본성이 나와 집을 어지럽힌다던가 분충짓을 일삼는다면 죽이지는 않아도 당장 공원에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렇지만 자매는 그럭 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공원에서의 나날들 처럼 식사를 구해 먹고-그것이 남자의 위생에 도움이 됨은 자명했다.-크리넥스 티슈 몇 개를 이용해 이불을 만들어 골판지 상자에서처럼 잠을 자고 빈 옷장안에 숨어들어가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만든다.

변의 흔적도 잘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차녀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실장석들의 반응 그 이상이었다. 아마도 녀석들이 총명하게 자신과 동거를 지속할 수 있는 큰 이유가 자매중 어린것이 유달리 똑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기묘한것을 보게 된다.


“푸..푸하하하!!!”


자실장 두 마리는 자신이 덮어주었던,무늬가 괴상한 손수건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하다못해 둘 중 한 마리는 머리카락도 땋아 작은 리본까지 곁들여 모양을 냈던 것이다.

발랄하게 거실을 깡총거리던 땋은 머리 자실장은 남자를 발견하고 멈칫 하며 인사를 하려 했는데 하트무늬의 옷을 입은 동생이 황급히 그런 언니의 옷자락을 붙잡고 질질 끌고 옷장속으로 쏙 사라진다.

목욕때문일까, 오래간만에 웃었기 때문일까.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순간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남자는 저녁을 준비하였다. 스스로 집에서 밥을 해먹는일이 거의 없는 남자는 항상 식사를 주변의 상가나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포장해와 집에서 먹었었는데, 오늘은 남자에게도 특식이었다.그만큼 심신이 지쳐있기가 그지없어 무엇이든 맛있는 것을 먹고 힘을 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마루야마 특 스페셜 한정 초밥 도시락-

회사 근처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마루야마의 스페셜 초밥이다. 오늘은 업무를 조금 일찍 끝마쳤기에 다행히 하나를 사올 수 있었다.
네모난 뚜껑을 열어본다. 광어가 몇점, 참치가 몇점, 계란과 연어가 또 몇점..
여러 가지 구성의 초밥은 허기진 남자의 배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런거라도 있어야 힘내서 일할수 있겠지.’

초밥의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20피스 남짓한 스페셜 초밥은 5천엔이나 했던 것이다. 하나하나 아껴가며 먹어야 한다.


기웃기웃.
두 녀석들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항상 냉장고 뒤의 바퀴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오늘은 남자가 있어서 사냥을 나갈 수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두 마리는 숨으려 하지만 멀찍이서도 둘의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땋은 머리 자실장은 배를 만지며 침을 질질 흘린다. 점점 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앞으로 나온다. 나머지 한 마리가 테치거리며 황급히 자매를 끌고 벽 뒤편으로 돌아온다.테치,테치!라고 큰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언니에게 잔소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땋은 머리자실장은 배를 만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으로 두 눈가를 연신 훔쳐댄다.
배가 고프다,를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다.

동생은 테..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신의 손수건 원피스 안에서 작은 바퀴벌레 다리 한짝을 꺼내 자매에게 내민다. 땋은 머리 자실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작디작은 곤충의 다리를 한입에 쏙 넣어버리고 다시 꺼진 배를 문지른다...



오늘은 나도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인데, 저녀석들에게도 조금 괜찮지 않을까.

남자는 천성적으로 선한 편이었다. 집에서까지 실장석과 관계되는 일이 싫었을 뿐.

그러나 자매들의 천진하고 순진한 모습이 남자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것도 같았다.

남자는 작은 접시에 계란 초밥 두피스를 덜어, 실장석들에게로 다가간다.
둘은 파랗게 질려 도망가려 했으나 남자는 멀찍이서 둘에게 말을 건낸다.


“나도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으니까..너희들도 하루정도는 괜찮겠지.걱정말고 먹어라.“


숨어있는 자실장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접시를 놓아 둔다. 남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맥주 한캔을 딴다. 오늘은 분명히 메이저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던것 같다...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어진 행운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차녀의 입장은 완고했다. 먹으면 안된다. 인간님이 처음에 이야기했던것이 있지 않느냐.
장녀는 차녀가 이제껏 본적 없는 모습으로 화를 낸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고, 저것은 인간님이 ‘예쁜 옷’과 마찬가지로 하사하긴 물품이고,
저것을 먹지 않았을 경우에 인간님이 화를 낼 수도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이제껏 머리가 나쁘다 생각한 장녀였는데, 차녀는 장녀의 어필에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결국 차녀는 장녀의 주장에 못이겨 계란 초밥을 가지고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둘은 눈을 꼭 감고- 처음 접해보는 초밥의 맛을 온몸으로 느낀다.

계란. 보드라운 계란의 포근한 맛이 온몸을 감싼다.
조미가 된 계란 지단은 토실토실하니 실장석들의 입에 꼭 맞는다. 둘은 침과 체액을 온몸으로 흘리며 계란지단을 맛본다.
밥 역시 달콤하고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한알 한알 씹히는 밥의 감촉은 자실장들의 목구멍을 어루만지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마마쨩이 가지고 온 식어빠진 김밥에 비할비가 되지 못하였다.


“아래가 축축한 텟치.너무 맛있어서 빵콘을 할뻔 한 테치.”
“많이 먹은 텟치. 정말 맛있었던 테에..”

둘은 하나씩, 사이좋게 계란 초밥을 나누어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남자는 자매를 조금 신경쓰게 되었다.

늦어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일반적인 사육실장들처럼, 자매들은 보채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남자의 귀가를 옷장 속에서 바래올 뿐이었다.

남자는 자매를 위하여 남는 목욕탕의 물과 저녁식사의 여분을 자매들에게 제공하였다.
무엇이든 자매들에게는 감사하고 기뻤던 것, 자매들은 적록 눈물을 흘려가며 항상 감사히 음식물들을 섭취했다.

남자가 쇼파에 앉아있는 사이, 차녀의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장녀는 자신의 작은 머리를 계속 남자의 어깨에 기대려 애썼다.

셋의 평화롭고 기묘한 동거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듯 해 보였다.




남자는 여느날처럼 자매들에게 계란 후라이를 하나 더 튀겨서 작은 접시에 담아 준다.

남자가 알아듣던 말던, 자매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감사인사를 하고 계란 후라이를 사이좋게 뜯어 먹는다.
냉장고 뒤의 바퀴벌레쨩들은 이미 자매들의 뱃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린지 오래였다.


오늘의 식사는 계란 후라이, 토스트, 베이컨, 약간의 샐러드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메리칸 브랙 퍼스트 정도의 구성으로, 남자는 언제나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항상, 아침에 울리는 회사에서의 콜은 불안하기 그지 없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지 않았을 경우 뒤가 더 난감스러웠다.


“네.”

“히카루?나야~♥”


젠장. 제일 받기 싫은 전화의 주인공이었다.
저 인간은 무슨 연유로 아침 8시부터 일개 계열사 부하 직원을 콜 한 것일런지.


“네,네, 총매니저님.”

“혹시 자실장 몇 마리, 리틀 벅스에 남은 애들이 있나?”

“자실장이요..? 아마도 없을듯 합니다. 요새 수급이 조금 불안해서요..
어느정도 기준치 이상의 자실장들은 저희쪽에서도 물량이 딸리네요. 안그래도 저희 매니저님을 통해서 보충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큰일이다- 한 두어마리정도 사육실장이 있으면 좋겠는데.”

“‘사육실장’이요?”

“응, 그래. 어느정도 예의범절이 된 사육실장. 리틀벅스에서는 자실장을 ‘소진’하니까, 남는 애들이 없을지 몰라...이번달은 예약이 다 찼던가?”

“네..아무래도.. 시즌은 시즌이니까요.”

“그래..큰일이네.”


둘 사이에 침묵이 오간다.

“저..”

“그래, 혹시 알고 있는 곳 있어?
1월 전이라서 아무래도 본사나 계열사에도 이미 세팅을 끝낸 녀석들만 있다는것 같아-
그런 녀석들을 건드리면, 손해가 나지 않겠어,아무래도?”

“비슷한 녀석들이 둘 있긴 있는데..”

“둘?딱 좋아-!!!!”

“그런데 조금 조심스러운 녀석들이라서요, 사육실장도 아니고..혈통도 불분명 하구요. 레벨은 나쁘지 않은것 같지만..”

“히카루, 혹시 한 자매의 녀석들이야?”

“아?예..그런것 같아요. 네. 맞아요.”

“역시!!리틀벅스는 보물창고야!!!! 딱 그런 녀석들이 필요했거든.
혹시~ 성격도 많이 다른가?“

“네..”

“좋아!너무좋아!!!! 그럼 곧 데리러 갈게♥♥”



총매니저는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본인이 직접 자매들을 데리러라고 올 태세였다.


자매들은 태평하게 자신의 발치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정도의 거리가 본인들이 생각한, ‘인간님에게 폐가 되지 않으면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이제 남자는 장녀와 차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조금 숱이 적은 머리를 보기좋게 땋은것이 장녀였고, 조금 크기가 작았지만 행동이 빠릿한 개체가 차녀였다. 장녀는 언제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차녀는 그런 장녀를 질책하였지만, 두 눈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가득 일렁였다.

자매들은 그다지 손도 타지 않았다. 스스로 어떻게든 먹이를 구해 먹고, 남자가 원한 대로 집안의 벌레들을 박멸하고, 남자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배설을 한 후 뒤처리까지 말끔했다.

몇 번 잔소리를 하자 목욕후 본인들의 땟국물까지 청소하고 나올 정도로, 둘은 총명하고 눈치가 빠른 개체들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계속해서 이들을 ‘길러줄’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밤에, 집에 들어올 수 있는 날은 고작 3-4일 정도. 그것이 아닌 날은 거의 야근을 했다. 자매들을 돌봐 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사육실장들은 항상 그러했다.
주인이 없으면, 시들고 비틀어져 서서히 죽어갈, 꽃송이와도 같은 것들...



남자는 유즈루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집 주소를 다시한번 적어 내려간뒤 메시지로 전송한다.

사육실장으로 사는것이 적어도 지금 자신이 돌봐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들에게 크게 애정은 없었지만 얕은 책임감은 존재했다. 어딜 가더라도 ‘사육실장’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곳보다는 나음이 자명했다.


남자는 아침식사를 앞에 두고 지긋이 둘을 바라본다.

오늘도 작은 계란 후라이 하나, 빵조각 하나에 만족하며 남자가 식사를 하기 전까지, 두 눈을 반짝 빛내며 기다리고 있다.
백퍼센트 자신을 신뢰하는 저 네 개의 눈동자..
손에 묻힌 피가 적지 않은데, 나는 너희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인가.





남자는 자신의 식사를 자매쪽으로 밀어 둔다.


자매는 테치?테?라며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먹어둬. 아마도 너희를 우리집에서 키우기는 앞으로도 만만치 않을것 같아..”

“테에?”

“사육실장으로 누군가 길러준다고 하니 그것보다 좋은게 있겠니..우리집은 조금은 쓸쓸해 지겠지만.”


남자는 고개를 돌려 혼자 살기는 넓은 원룸 안을 바라본다.
어차피 언젠가는 보내야 할 것들이었다. 주인영감에게 발각되면 보기좋게 쫒겨나기만 할 뿐, 다른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사육실장으로..다른 집에 가면 좋지 않을까?”

“테?와타시들이..쫒겨가는 테치?”


침묵을 지키던 차녀가 조심스레 남자에게 의견을 묻는다.
남자는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아니.절대 그건 아니야..만약에 더 나쁜 상황으로 변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너희를 데리고 가려고 했겠지만.
너희를 사육실장으로 길러줄 사람이 있다는데..
나로써도 그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장녀가 남자의 다리에-염치불구하고-매달린다.


“테?테?테에?아닌텟치!여기서 살수 있으면 좋은 테치!
와타시들은 주인님을 사랑하는 테치! 그냥 두어주는 테치!이대로 살 수 있는 텟치!“


오로로롱-


이제껏 들린 적 없는 슬픈 울음의 목소리가 작은 방 안에 메아리친다.


남자는 이마에 손을 짚는다.

-자신은 둘을 길러줄 수 없다. 그저 이대로 방목하며 사육할 뿐. 둘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 따위도 줄 수 없고 이 집에서는 자조차 낳을 수 없다.
-둘은 어차피 성체실장이 됨과 동시에 같은 공간에는 있을 수가 없다.
-니지클럽의 사육실장은 대접이 그리 박하지 않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에 대한 마음이 다른 사육인들처럼 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둘의 머리를 힘주어 쓰다듬는다.
처음 느껴보는 부드러운, 인간 주인님의 손길에 테..하며 자매들의 표정이 풀려 갔다.



“있잖아.”
“사육실장이 되면 이렇게 쓰다듬어 주는것 매일 받을 수 있어.”
“그뿐인줄 아니?”
“여기에서처럼 남은 밥이나 휴지조각 따위에 잠자지 않고 제대로 된 케이지에서 제대로 된 이불을 덮고도 잘 수 있고..콘페이토 같은 고급 실장 푸드들도 마음껏 먹을수 있다니까.”
“좋은 주인이 온다면 너희들을 위해 예쁜 옷 사줄지도 모르고,”
“아마도 지금처럼, 매일 혼자있게 되지도 않을꺼야. 잘 대해주겠지. 적어도 나보다는 말이야..”


자신들을 걱정해주는 히카루의 마음이 둘에게 전해진다.

장녀는 슬그머니 히카루를 붙잡은 손을 놓는다.
그의 말을 듣고 그것에 매료되어 그런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진심과 진심으로 그가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고, 제대로 좋은 주인님께 가서 잘 길
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둘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어트린다.


‘이곳도 나쁘지 않은데.
어쩌다가 나오는 특식 바퀴벌레쨩도 별미였는데.
주인님도 좋았는데.
항상 우리를 위해 남겨 주었던 욕조의 따뜻한 물..‘


작은 실장석들의 머리로, 이생각 저생각을 해보지만, 차녀는 이미 결론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님이 결정한 이상 뭐가되든 바꿀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가는테치.”

“테에?차녀쨩..”

“우리가 속상해하고 계속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인간님께 걱정만 끼치는 텟치. 뭐든 인간님이 결정한 내용이면 따르는 테치.믿는 테치.”

“,,,,”


히카루는 차녀의 볼을 간질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홍조가 물들어간다.
이녀석들이 좋은 주인님께 가면 좋겠는데.
히카루는 처음으로, 실장석들을 위해 무언가를 ‘바랬다’.




둘은 조용히 식탁에 걸터앉아 남자의 아침식사를 갉아먹어갔다.
항상 군침흘렸던 베이컨과 신선한 샐러드의 맛은 마치 종이조각과 같이 느껴진다.

이제 곧 새로운 주인님이 오신다 하였는데, 그렇지만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을것 같다.
할 수 있다면 그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딩동.

“네, 나갑니다.”

아침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는데, 두 마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을 바라본다. 히카루는 들어온 사람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자매들도 채비를 단정히 하고, 히카루를 따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신 텟치!반가운 텟치!”
“와타시들은 자매인 테치! 와타시는 차녀이고 이쪽은 장녀인 테치!”

“응,그래그래..과연, 괜찮은 녀석들이네?”


고개를 숙인 자매의 귓가에도 어쩐지 웃음기를 품은 다른 인간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녀는 조심히 고개를 들어 새로운 주인님을 바라보았다.


상냥하고, 다정해 보인다.
무서운 인간님에게 보이는 섬찟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방글방글 웃고 계신다. 마치 마마처럼..
잔뜩 긴장한 차녀의 마음이 녹아내리는것이 느껴졌다. 예전의 인간님이 ‘가면 좋은곳’이라고 이야기했으니, 그를 믿는것이다.
상처입히지 않을것을 믿는 것이었다.

장녀는 차녀의 옷자락을 꼭 붙잡는다. 끼이잉, 하며 어쩐지 아기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차녀의 뒤에 숨는다.


“..언니쨩,.왜그러는 테치?”

“와..와타시는 무서운 텟치..어쩐지 무섭고 두려운 테치.”

“무엇이 무서운 테치.새 주인님은 좋아보이는 테치. 상냥한 미소인 테치. 숨지마는 테치..”

“테에에에!!”


장녀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더더욱 차녀의 뒤로 숨어 간다. 차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장녀였다. 갑자기 새 주인님께 가기 싫어지기라도 한것일까.
벌써 모두 다 끝낸 이야기이면서, 언니는 변덕을 잘 부리는 성격이 아닌데..라며 의아함을 품는다.


“저대로 가져가면 될까? 고마워-덕분에 살았어. 딱 두 마리가 비었거든!
사랑스럽고 영리한 자매 두 마리!!은근 찾으려면 힘드네..“


“아..네, 니지클럽의 일인가요?아침부터 수고하시네요.”


“응,아닌데? 이건 내 일인데?”
“..네?”

“니지클럽의 사육실장으로 갈 녀석들은 아니라고. 그냥 개인적으로 좀 필요한 녀석들이야.”


유즈루는 미소지으며 청명한 눈빛으로 두 마리가 든 수조를 바라본다.
반짝반짝 반들거리는 눈빛에 차가운 탐욕이 비추었다.

저인간은, 저런 얼굴일때 가장 끔찍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통은.


“저..개인적으로 필요한 녀석들이라고 하시면..?”

“리틀벅스 지하에서 ‘사용’할 녀석들이지 뭐야.
니지클럽이든 리틀벅스든 요새 경기가 좋아서 딱 요만한 녀석들이 실험체로 부족했었는데, 잘됐지 뭐.
찾으려면 한참 걸렸을 텐데..덕분에 어려운 시기에 잘 구해 가네.“


히카루는 어쩐지 등 한줄기가 서늘한 것을 느끼며, 상급자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유즈루는 그런 무례를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의 온 관심은 실장석에게만 쏠려 있었다.


“그..그러니까, 사육실장이 아니라 리틀벅스 지하에서 실험체로 사용될 자실장 두 마리를 구하시는 거였어요?”

“당연하지~나를 몇 년이나 봐왔으면서 그래. 고작 사육실장 몇 마리 구하는걸로, 내가 이 아침부터 너희 집으로 움직일것 같아?
프로젝트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즉시 시작하는게 좋은데, 마땅한 녀석들이 없지 뭐야..
덕분에 한시름 덜겠네. 히카루가 아니었으면 전국 지사장들과 계열사 매니저들이 바빴을꺼야..고마워,“


“저.....저는...사육실장을 구하신다는줄 알고..”

“사육실장?그래,뭐,내 사육실장이지...걱정하지 마, 세레브급은 아니어도 상급으로 쳐서, 다음달 당신 통장에 제대로 넣어줄 테니까.
두 마리나 되니 작은 보너스정돈 되겠네?

히카루에게도 좋지?“




금액..돈..보너스..사육실장..실험체..리틀벅스.....
리틀벅스의 실험, 그곳의 끔찍한 실험체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 받는 작은 동물들!!!


...그리고 그곳에 내던져질, 자신을 믿고 있던 어린 두 자매.


당황스런 단어의 나열에 어리둥절 해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든 히카루가 유즈루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려 고개를 들고 손을 뻗쳤지만,


그와 케이지 속의 자매는 이미 자리를 떠나 버린 후였다.


마지막 장녀가 차녀에게 속삭였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인님은 바퀴벌레쨩 무서워 하시는데, 이제 누가 바퀴벌레쨩 잡아주는 텟치?
큰일인 텟치..어쩌는 테치이.."

-"장녀쨩, 새로운 주인님께 부탁하면 될것인 테치.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예전 주인님 꼭 다시 보여주실것인 테치.

믿는 테치.."










2190일

 

후타바 공원은 언제나 생기가 돈다.
높은 언덕위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공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의미 있을 실장석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새끼를 낳았던 친실장의 자들이 몇 명 줄어들었다. 누구에게 먹히기라도 한 것일까. 노는 것을 자주 보았던 자실장 두 마리의 팔이 없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즐겁게 논다. 자신들의 설명 불가능한 재생력을 믿고 있는 모양이다. 인간들을 보면 구걸하는 실장석들의 무리가 쓸만 한 애호파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뾰로통한 표정을 한다. 저 인간에게서는 나올 것이 없어, 라는 눈치였다. 다른 자실장의 머리를 뜯어내어 피칠갑이 된 채 도망가는 성체 실장이 보인다. 어미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의 몸을 붙잡고 뭐라 뭐라 외쳐대고 있다.

한 쪽 편에서는 소꿉놀이를 하듯, 친실장이 자실장 몇 마리를 데리고 산보를 다닌다. 손에는 작은 먹거리들을 하나씩 들고 있다. 사실상 산책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것은 후타바공원에서 저 친실장의 세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장석들은 그 실장 일가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성체실장은 또 다른 실장석 가족을 만나 멈추어 서서 수다 비슷한 것을 떨어댄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두 가족의 일상에 자실장의 죽음이라던가 생존의 위협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실장석들이 후타바 공원 내에도 몇이나 존재한다. 공원에 즐비한 실장석들 사이에도 상류층과 천민층이 있다는것은 실장석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상류층 실장석들은 덩치가 크고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애교 부리는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이 그들에게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며 결국 계급까지 나누어 놓았다. 어디를 봐도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나무 뒤에서 작디작은 자실장을 강간하는 마라실장이 보인다. 저것도 여느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오늘 하나 평상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아래 지쳐 쓰러진 자실장들이 하나 둘 셋...욕구불만인 녀석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 보인다.

마라실장이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어떻게든 표정을 지어 사람이 빙긋 웃는것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낸다. 우쭐해진 기분으로 자랑이라도 하는 것이려나..하지만 그녀석에게 다가가 화를 낼 기분이나 죽어가는 자실장들을 구해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일 뿐.
나는 후타바 공원에 즐비한 나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다.







벤치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그들을 응시하다가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자리를 떴다.
작은 후타바 공원에도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들은 몇 개씩 있다. 가장 가까운 매점은 여기서 5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 가려면 언덕길 끝까지 올라야 했다.

하지만 그 매점 근처는 실장석들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오는 일이 없었기에 오히려 나에게는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더욱 더 그 매점을 찾는 이유가 되었다.


공원의 커피들은 맛없기로 유명하다. 어떤 매점을 가도 똑같은 맛으로, 커피콩이 타버린 듯한 매캐함만 입술 끝에 남았다. 하지만 나는 맛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일은 없다.
커피를 마시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짧은 시간과 카페인이 가져다 주는 각성이 머리를 헤집는 망상과 우울함에서 나를 벗어날 수 있게끔 해주었다.
뜨겁고 맛없는 액체를 넘기는 것에 정신을 집중한다. 입술과 코에 커피의 향이 스며든다...



“텟...”


작은 자실장의 목소리가 또다시 어디선가 들려 온다.

쉬는 시간을 방해받은 기분이었다. 실장석들은 역시 어디에나 있구나.

공원 중앙처럼 수다스럽게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나 둘 정도의 자실장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실장석들이 나에게 애교를 부린다던가 먹을것을 내놓으라고 보채는등의 귀찮은 행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다.


공원에서 쉬고 있을때 흔히 말하는 분충들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면 일부러 보란듯이 천천히 그것들의 자실장을 밟아 부수어주었다.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제일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것 같아 보이는 자실장의 팔과 다리를 구둣발로 밟아 으스러뜨리고, 그것이 테치거리며 자신의 어미를 찾을때 그 어미앞에서 천천히 배를 터트렸다. 이윽고 어미가 오로롱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자의 목숨을 구걸할 때, 그것의 눈앞에서 벌벌 떠는 자의 머리를 밟아 으깨 놓는다.


살점이 뭉그러지면 끔찍함이 덜하다. 나는 일부러 어떤 친실장의 몇 번째 자인줄 알 수 있게 얼굴과 몸뚱이를 온전한 상태로 남겨 내장과 뇌만 터트렸다. 죽지 않은 자실장들은 온몸이 땅바닥에 붙은 채로 곤죽이 되어 어미를 찾고 어미는 남아있는 사지를 끌어안으며 연신 눈물을 흘린다. 그러한 잔인함에 다른 자실장들의 부모역시 자신의 자가 그리될까 두려워 황급히 자실장들을 감싸 안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몇 번 나의 의지를 보여주니 나는 일종의 학대파와 같은 위치로 그들에게 각인되었다. 매일 공원에 와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 곁에 가서 음식을 달라고 하면 필히 자실장을 밟아 죽이는 나쁜 인간, 하지만 귀찮게 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 이상한 인간쯤으로 그들에게 기억이 된 듯, 이제 실장석들은 나를 귀찮게 하는일은 없었고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공원중앙보다 먼 곳에서 사는 실장석들에게는 나의 악명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다른곳에서 휴식을 취하려 하고 있을때면 쟁알거리며 달려와 귀찮게 하는 녀석들이 아직도 존재했다. 밟아주면 그만이지만 나 역시 사람이기에 한 생명을 빼앗는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은 것이다.

무리지어 살지 않는 녀석들에게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해도 의미가 없고, 차라리 내가 자리를 비킬까 싶은 생각이 들어 벤치에서 일어서자,
나무밑에서 ‘그 녀석’이 놀고 있는것이 보였다.





별다를 것도 없는 자그마한 자실장 한 마리는 잘 먹지 못했는지 팔다리가 다른 녀석들보다 가느다랗게 보였다. 작은 체구이다. 더러워진 옷과 두건역시 같은 모양이었으나 유난히 속옷만은 깨끗한것이 친실장이 신경쓰고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실장은 인기척에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만 인간이 온 것을 보고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적록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리며 빛났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테..”

반짝임도 잠시, 자실장은 내게서 등을 돌려 바닥에 돌을 가지고 원을 그리거나 돌을 모아두는 것 같은 놀이를 혼자 하며 놀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귀찮게 하지 않는 자실장이라면 최고의 관찰 대상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아 나도 자리에 앉아 그것의 놀이를 지켜보았다.

색색깔의 돌은 자실장의 주위에 잔뜩 있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돌들을 골라 일렬로 세워 두었다가 다시 동그라미를 두 개 만들어본다. 탑이 되게 위로 위로 쌓았다가 그것이 와르르 무너지자 뭉툭한 손으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땅을 어떻게든 파내 그 속에 돌들을 숨기고 다시 흙으로 덮는다. 나무까지 달음박질로 뛰어갔다 온 뒤 눈을 감고 더듬거려 돌을 숨긴 장소를 찾았다. 땅을 파자 자실장이 숨겼던 돌들이 나타났는데 보물처럼 가지고 놀았던 소중한 돌을 찾자, 다시금 그 두 눈에서 반짝거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나름 볼 만한 장면이었다.
마치 인간의 아이처럼 의미없는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작은 돌을 줍고 뿌리고 모아대며 테치거리며 즐거워 하고 숨기고 찾아내고 발견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 자실장의 머릿속은 콘페이토나 실장푸드보다도 놀이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실장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 역시 그녀석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에 빠져들어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또르르.
돌멩이 하나가 내 발 근처로 굴러왔다. 자실장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도 없이 내 근처로 다가와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돌멩이만을 주워서 간 뒤 등을 돌리고 같은 놀이만을 계속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괜한 장난기가 든다.
나는 작고 예쁜 돌을 골라 그녀석의 주변에 살짝 던졌다. 자실장이 ‘툭’ 하는 소리를 듣고 이게 무엇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이제껏 보지 못한 예쁘고 빛나는 돌멩이 하나가 자신의 곁으로 데굴데굴 굴러온 것이었다.

두 눈에서 다시금 반짝임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어떤 귀한 콘페이토를 가진 실장석보다 자신이 가진 돌멩이가 더 고귀한 것이라는듯 자실장은 돌멩이를 꼬옥 껴안고, 맨질한 면에 얼굴을 부벼 본 뒤 맘에 들었는지 자신의 옷에 붙은 주머니 안에 조심히 넣어 두었다.

예상 밖의 행동이다. 나는 그 희한한 장면이 다시 보고 싶어 주변에서 작고 예쁜 돌멩이들을 골라 그것의 주변에 하나 둘씩 던져 대었다.


“..테치?”
“아..”

돌멩이를 던지며 노는 놀이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자실장은 나의 앞에까지 와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들실장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만큼 전형적인 모습을 한 자실장이었다. 작고 꾀죄죄한 모습에 콧물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으며 여기저기 생채기도 보인다.

눈이 유난히 반짝거린다는 것 외에는 별 특징이 없었고 그마저도 돌멩이를 주웠을 때 말고는 여느 실장석들의 눈과 다를 것 없이 어둡게 가라앉은 색으로 보여졌다.


“..테치?”


그것은 내 손에 들린 돌멩이를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아첨포즈도 취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돌을 바라볼 뿐... 그 눈빛에 못 이겨 나는 그것을 그녀석에게 건내어 주었다.

“.....자.”
“텟-치!”


그녀석은 나름의 감사 인사인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손에서 돌멩이를 빼앗듯 낚아채 도망갔다.

양갈래 머리가 바람에 나풀댄다. 바람결에 팔랑인 치맛자락 끝단에는 하루종일 그렇게 놀아댄 흔적인 듯 흙투성이 먼지가 가득했다...






집에 오는길. 발길에 돌멩이가 채였다. 이상하게 나 역시 저 돌들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맨질하고 작고 예쁜 돌멩이.

돌멩이를 얻었을 때 자실장의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돌멩이에 무언가 주문이라도 걸려 있는것일까?
의미 없는 나의 시곗바늘같은 삶에도 행복이 찾아올까 싶어 나도 모르게 작은 돌멩이를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팀장님, 뭐하세요?”
“아..뭐좀..그냥.”
“새나 물고기라도 키우시는 거예요? 요새 자꾸 돌멩이 주우시네..”
“그러게.”



자켓 주머니 속에 맨질한 돌들이 달그락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자실장의 행복했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아 나도 모르게 식사후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울 때나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실 때 예쁜 돌들이 보일까 싶어 눈으로 돌멩이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모아댄 돌들이 열몇개나 된다. 주변사람들은 내가 새 혹은 물고기를 키우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둥지나 어항에 깔아줄 돌멩이들? 이라며 물어보았지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요새는 누군가와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 말이 늘면 설명을 해야 하고 설명을 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어쩜..이라며 혹자는 눈물을 흘렸고 혹자는 술약속과 밥약속등을 하며 기분전환을 시켜주려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 부담이 되어 다가왔다. 돌멩이를 주우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나의 모습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내 등뒤에 머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집에 돌아올 때면 내 주머니마다 돌멩이들이 몇 개씩 들어있었다. 딱히 뭐를 혹은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실장이 돌멩이를 모아보듯 나도 한번 모아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속의 돌멩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비슷하게 생긴 작은 존재 하나하나마다 색다름을 가지고 있음에 작은 감동이 일어났다. 손안의 차가운 알갱이들이 아주 약간의 위안을 가져다준다. 내게는 다행이었다. 무엇인가 집중할 만한 행위가 생겼다는것이.


오래간만에 후타바 공원에 나가 보았다. 퇴근길에 들른 공원은 오히려 저녁때가 부산스워 보였다. 먹이를 주는 애호파와 그들을 아랑곳 않고 실장석들을 괴롭히는 학대파, 실장석이 아닌 애호파를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이상한 학대파’ 와 공원 관리인까지...


퇴근길에 들른 사람, 이른 저녁 후 산책을 나온 어르신, 하교 후 실장석들과 노는 여고생부터 실장석을 뜯어내며 장난치는 아이들 무
리... 공원 중앙은 발 디딜 틈 없이 복닥거렸다.실장석들이 공원에 좋든 나쁘든 나름의 활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차피 공원 중앙은 나의 영역도 아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매점에서 맛없는 커피를 하나 주문한 뒤 다시 언덕의 벤치에 올라가 앉았다.


오늘 역시 아무도 없다. 중앙은 저렇게나 시끄러운데 여기는 나 혼자라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둘러진 적막이 사랑스러웠다.


“테..”
“응?”

발치에서 작디작은 실장석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전의 자실장이었다. 돌멩이를 좋아하던 자실장. 실장석들은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는 하나 그 자실장만큼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녀석을 알아보는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녀석은 그때의 그 녀석이었다.




자실장은 나에게 작은 꽃을 내밀었다.
실장석이 인간에게서 꽃을 내밀때는 두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친교의 의미에서 건내는 일종의 ‘선물’이며 다른 하나는 그 정반대인, 자신의 배설구에 기분좋은 일을 해주길 바라는 의미에서의 ‘도구’였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보통 이때쯤 링갈을 켜면 “메로메로를 바라는 테치! 와타시에게 아이를 낳게 해주는 테치! 총배설구에 꽃을 쑤셔넣어 인간의 손으로 기분좋게 해주는 테치!” 따위의 역겨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꽃을 건내는 실장석들은 거의 다 그런 희롱을 바라며 기대감과 욕망에 가득찬 눈길을 보낸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던 사이, 자실장은 무심히 내게서 등을 돌려 나무 아래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작은 놀이들을 한다. 꽃은 주었으되 더 이상의 관심은 없어 보였으며 팬티를 벗으며 총배설구를 가리키는 더러운 행위도 하지 않았다.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을까.요전의 예쁜 돌이 고마웠던 모양일까...

괜히, 마음이 짠했다.
바람결에 꽃이파리가 나폴나폴 흔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꽃이 뭐라고 나같은 인간에게 감동이 되어 다가올 수 있을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별것 아닌 선물 한 조각.




“이봐.”
“..테?”


자신을 부름에 자실장은 귀찮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줄만한..먹을게 없을까 생각을 하다가 주머니속에 가득한 돌멩이가 생각났다. 이전처럼 좋아하려나?



“이거..줄까?”

모두 꺼내 보니 열몇개나 되었다. 그것을 땅바닥에 내려두자 자실장은 예의 그 반짝이는 눈을 하고 돌멩이 무리로 다가가 양손에 가득 돌들을 쥐고 즐거워했다.


“좋아하니 다행이네.”


자실장은 말귀를 알아듣는 모양인지 연신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들을 내팽겨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갑자기 요전처럼 도망이라도 간것이려나 허탈한 마음과, 슬슬 어두워져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멀찍이서 자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치~!!”


부름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자실장은 예의 그 작은 꽃송이를 한가득 손에 안고 나를 향해 뛰어오며 기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에서 자글거리는 별빛이 쏟아졌다.
코에 알싸하게 느껴지는 꽃향기에 정신이 아찔하다.


자실장의 미소가 꽃처럼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 뒤로 나는 종종 저녁 즈음 공원에 들러 홀로 놀고 있는 자실장을 만나게 되었다. 링갈까지 구입해 가 실장석과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하였다. 주로 나는 묻고 듣는 쪽이었다. 자실장은 내 생활따위는 궁금해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꺼려하지 않고 잘 말해 주었다.
엄마가 없는 자실장은 ‘동생쨩’만 하나 데리고 있었는데 서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생쨩은 음식 모으기를 더 중요시하는 관계로 아무래도 자실장과는 잘 볼 수 없다 하였다. 사실상 노는것에 집중하는 자실장 본인이 더욱 더 괴상한 것임을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상관없는 테치.”
“상관이 없어?”
“어차피 다들 따로따로 잘 살고 있는 테치. 나는 이게 즐거운 테치.동생쨩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테치.”


자실장은 내가 곁에 있어도 관계치 않고 홀로 놀이를 즐기었다. 나무에 돌을 굴려 꺄르르 웃기도 하고 돌로 무늬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다른 실장석들과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그들은 그런 ‘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이상한 녀석 취급하며 사라질 뿐이었다. 자실장은 뾰로통한 얼굴로 내가 함께 놀아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으나 나 역시 녀석의 놀이에 참여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것보다는 홀로 노는 자실장을 바라만 보는편이 더 좋았다. 머릿속에 가득한 음습한 잡념들이 사라진다. 자실장과 만나고 돌아온 날이면 조금 더 깊게 잠을 자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와 놀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챈 자실장은 내게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질문에 대답도 귀찮은듯 적당히 형식적으로만 응대해 주는게 느껴졌다.


나도 그녀석의 관심을 끌어 귀찮게 되고픈 생각은 없다.
우리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공존하였으나 그저 그뿐. 나는 자실장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허공에의 응시와 다를 바 없었으며 자실장은 내가 준 돌들로 놀이를 하였으나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예쁜 돌들을 골라주면 기쁜 표정을 하며 꽃송이를 건내어 준다.
deal&deal.




하지만 나는 사실 작은 위안을 얻었었다.

혼자였으면 괴로웠을 시간들이 조금씩 흩어져간다. 의미 없는 놀이와 수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단단히 뭉쳐져 있던 꽉 막힌 답답함들이 조금씩 풀어지는것이 느껴졌다.
하루 중 그 시간 뿐이었지만 그 한두 시간이나마 내게는 설렘과 기대를 주는 것이었다.
특별히 하고 있었던 말들도 기억나지 않고 놀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 또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때의 귀여운 수다들이 기억난다면 그래도 혼자였을때 하루중 몇분간은, 다만 십분이라도 이십분이라도 쉴 곳이 생겼을텐데.

각성제와 알콜은 복잡한 뇌를 안그래도 더욱 더 꽉 조이고 있었다. 사소한 것들 하나 두 개가 기억나지 않아 나를 미치게 만든다.

마음속에서 "그때가 더 행복했었지?라고 책망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사실이다. 그 때가 제일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한동안은 공원에 갈 수 없었다.
월말에는 늘 일이 바쁘다. 월초가 되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새로운 컨셉과 아이템, 업무는 과중했고 모든 것은 내 손에서 결정되어야만 했다.

일이 바빠질수록 나는 말수를 잃어갔다.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 편에서는 내가 가진 자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흘긋대는 시선이 느껴지며 이것을 쉽게 내어 줄 수 없다는 오기가 치솟아 올랐다.
직책이 낮지 않았기에 퇴근시간이 늦은 편은 아니었지만 집에 오면 항상 녹초가 되어 아무일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은것이 언제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친한 친구들이 몇이나 외국에 취업을 했다. 밤이 되면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소중한 친구들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면 로밍중이라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지금 여기는 밤인데 거기는 몇시려나 하고 한참 시간을 헤아리다가 술이나 마시고 마음을 달랜다.

내가 주저하는 사이 그들의 마음 역시 같은 이유로, 멀어지겠거니 싶다. 이제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것들은 핑계일지도 몰랐다.




언제서부터 내가 엉망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딱 20년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그날은 베개가 젖도록 울며 잠이 들었다.



살다 보면 깨닫게 되는것들이 있다.
외부에의 자극과 관심을 차단하고 온전히 생명의 에너지를 자신의 내부로 기울인다면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리고, 내 안에서 어떤 비명소리가 들려오는지 느껴 보았다.

낮게 웅얼거리는 빗소리와 벌레 먹어 구멍 난 판자 사이로 새나오는 피리 같은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시작된 소리들은 그치지도 않고 마음을 두들기고 종래에는 피멍이 들도록 몸을 훑고 지나가, 나는 점점 더 마음이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혹은 약간 조증으로 정신 병자같은 말을 쏟아내는 나날들이라던가.


슬플 이유도 없는데 견딜 수가 없어져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않고 있거나 혹은 나와는 관계도 없는 사람을 붙들고 애교를 부려가며 수다를 떤다.



-나는 오늘 이랬어 너는 어땠어? 슬프다 기분이 병신 같아 오늘 저녁엔 뭐해 내일은 뭐할꺼야 니가 좋아한다는 그애는 좀 어때? 연애에 진전은 있어? 새로 나온 그 게임은 재밌냐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오늘 저녁엔 뭘 좀 먹지 커피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해 요새 매일 즐겁게 술 마시는데 너도 한잔 할래? 속상한게 뭐냐고? 그런 거 없어.내가 우울해보이냐?말도 안돼.이렇게 인생이 신나는데. 한잔 해.
...-



샤워를 하다 갑자기 몰려오는 욕지기에 나오지도 않는 위액만 토하다 변기를 붙들고 잠이 든다. 내내 그랬다.





꿈을 꾸었다.

가슴속에서 나무가 자란다.

세상을 다 덮을 만큼 거대하고 어둡고 끔찍하게 생긴 기괴한 나무. 처음에는 씨앗만 있던것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잎사귀를 틔우고 꽃을 피웠다가 바닥에 꽃머리를 떨어트린다.

검고 더러운 꽃을 집어든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걸려 하지만 나는 꿈속에서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나무에 앉아 쉬었다. 어둡고 괴이해진 상태에서 편안함이 몰려온다. 몰려 온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는 상관없이 웅크리고 앉아 꿈에서도 잠에 빠져들려는데,


톡 톡 하고 무엇인가 내 몸에 다가와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졸린 눈을 부비며 간신히 눈을 뜨고 아래를 보니,


자실장 한 마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얼굴가득 미소를 띄우고
예의 그 작고 예쁜 돌멩이들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나는 꿈을 깨자마자 공원으로 달려갔다.



새벽 3시였으나 아랑곳 않고 옷을 대충 주워 입은뒤 공원으로 뛰어간다. 이 시간에도 공원에는 몇몇 사람의 모습이 보였으나 그것들은 실장석들에게 끔찍한 짓이나 하는 ‘직스파’들이다.

문이 닫힌 매점을 지나 한걸음에 언덕 위 벤치로 뛰어올랐다.

누구도, 무엇도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실장이든 친실장이든 작디 작은 구더기 한 마리 역시 보이지 않음은 당연했다.

당연하였으나 허탈해진다. 사실 보고픈 무엇인가가 내가 원할 때 마법이라도 부린 듯 뿅 하고 나타나는것은 어린애들 동화나 순정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나무 아래에 가득한 예쁜 돌멩이들.

작은 자실장의 흔적 이었다.


돌멩이를 찬찬히 훑어보니 자실장이 스스로 모은 돌멩이와 내가 그녀석에게 준 돌멩이를 구분하여 산을 쌓아 놓은것이 보인다. 자신이 모은 것은 아무렇게나 대충 모아져 있었으나 내가 모은것은 조금 더 견고히 그리고 촘촘히 산을 이루고 있었다.

자실장은 돌멩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서 받은 돌멩이를 말이야.

그 모습을 보자 맘속에서 무엇인가 뜨끈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지. 이상하고 우스운 일이다. 어리기 그지없는 자실장 한 마리에게 이런 감동을 느끼다니.

그럼에도 나는 깊은 만족감을 느끼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꿈도 없는 잠을 잤다.
몇주 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요하고 포근한 잠이었다.






그 뒤로 나는 자실장에게 조금 더 깊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의 시작이 무엇인지 끝이 무얼지 혹은 정의를 내릴수 있는 마음인지는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인가 내 속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 말고는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여전히. 앞으로도. 이젠 아마도 평생.




“오신 테치?”

고급형 링갈을 통해, 본연의 음색에 가까운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대답대신 이틀 내내 밖에 다닐때 마다 바닥을 보며 주워 모은 예쁜 돌멩이들을 내밀었다. 와 하는 기쁜 탄식과 함께 자실장은 꽃을 찾기 위해 나가려 했으나 나는 그대로 자실장을 불러다 앉혔다. 꽃은 더 이상 내게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리고 진득히 자실장을 관찰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놀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동생쨩은 어떤지 어미는 왜 없는지 골판지 상자는 어딘지 등등을 알고 싶었으나 예쁜 돌멩이를 받은 후에는 놀이에 집중해 나에게는 별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어느날 인가는, 실장석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최고급 콘페이토를 한봉지 들고 같은 시간 벤치에 방문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놀아야 하는 테치.기다려 주는 테치.”라고 말한 뒤 매일 같은 모습의 의미없어 보이는 놀이를 언제까지고 계속 한다. 땀방울이 옷에 흐르고 머리를 흠뻑 적실때쯤이나 되어서야 내게 눈길을 돌리고 받아든 콘페이토에 꾸벅, 감사인사를 표했다.



나와 자실장은 벤치에 걸터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고픈 게 있어?”
“하고픈 일 테치?”
“지금은 어리니까..앞으로 이렇게 하고싶다던가 저렇게 하고 싶다던가.”
“음...”


자실장은 골똘히 생각한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마쨩들 같은 성체 실장이 된다면 하고싶은게 딱 하나 있는 테치.”
“뭔데?”


“마라실장이랑 신나는 일을 실컷 하고 튼튼한 자를 낳고 싶은 테치.”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벤치에서 굴러 떨어졌다. 자실장은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짝짓기를 이야기했다. 사실 실장석이라는 것들과 속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한적은 처음이었다. 실장석들은 모두 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려나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살짝,찌푸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당연한 것인 테치. 마라실장과 한 뒤에 자식을 가지면 정말 훌륭한 자를 낳을수 있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은 테치. 그것이 아니면 인간님의 흑발 자식도 훌륭하다 이야기 들은 테치.
크게 자랄 수 있다면 꼭 그런 자를 갖고 싶은 테치. 그것은 실장석들의 다 같은 소원인 테치.인간님들도 당연한게 아닌 테치? 좋은 씨앗을 가진 사람과 짝짓기해서 좋은 자를 낳으면 좋지 않은 테치?“

“안 그런 사람도 있어.”
“와타시는 마라쨩들 너무 좋아하는 테치. 하지만 역시 무서운 테치. 잘못하면 죽어버린다고 마마쨩이 많이 이야기 해주었던 테치. 사실 그것보다는 여기서 돌을 가지고 노는 편이 더 재밌는 테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인 테치..”

“그러냐...”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들은 테치. 경험해본적 없지만인 테치..언젠가는 경험할 수 있을까 테치?와타시는 너무도 궁금한 테치이..”

“글쎄나..”

“아니면 인간님이 흑발 자식을 낳게 해주는 테치?”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그럴줄 알았던 테치. 와타시는 계속 돌이나 가지고 노는게 나은 테치. 쓸모없는 인간님 테치..”


질색은 하였지만 얼굴이 빨개지는게 느껴졌다.
이런 맹랑한 꼬마녀석 같으니.그런 것에 전혀 흥미는 없다. 나는 소위 말하는 ‘새벽의 직스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작은 자실장의 머릿속이 조금 더 궁금해진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잘도 흘러 간다.



“어째서 매일 이곳에 오는 테치?”
“너를 구경하려고.”
“키워주는 테치?”
“키워...줄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잘 해주는 테치?”
“모르겠어.”


나는 자실장과 함께 둘이서 가득 모은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돌멩이들은 이미 산을 이뤄 자실장의 키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모두가 자실장들이 좋아하는 돌들이다. 나에게는 비슷해보이는 돌들을 자실장은 잘도 구분했다.


“네가 돌멩이를 모으는 것을 즐기지만 집으로 갖고 돌아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좋아하지만 굳이 내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은거야. 그저 두고 보고 싶고 함께 놀고 싶은거지.”
“..그런테치?”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돌멩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테치. 나는 돌멩이를 좋아하지만 돌멩이가 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 테치..”

자실장은 예쁜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돌멩이에게 입을 대고 속삭인다.

“좋아하는 테치-!”
“돌멩이 너무 사랑하는 테치-!!”

“돌들이 알아듣냐?”

“알 수 없는 테치. 대답이 없는 테치.
내가 돌을 좋아하는게 의미가 있지, 돌들이 나를 좋아하는게 의미가 있는 테챠?”

“나에게도 너는 같은 의미인 거야.”

“테치?”

“몰라도 할 수 없어.”



자실장에게 시간은 언제나 느긋해 보였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저녁의 그 시간은 손안의 모래알같이 재빠르게 소실되었다.






무언가에 빠지게 될 때는 항상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외모, 성격, 능력, 말투, 매력, 몸매, 재능 그 외 등등..하지만 일단 마음이 가버리고 난 후라면 시작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별 해괴한 같잖은 것에도 탄식을 하며 그것이 주는 독특함을 관찰하게 되니 말이다.



그녀석은 뭉뚝한 손으로 가끔 나에게서 실장 푸드를 한두알 받아들고 부스러기를 여기저기 떨어트리면서 먹는다.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벤치 뒤로 돌아들어가 볼일을 본뒤 오늘의 '대변과 엉덩이 상황에 대해 나불나불 이야기'해댄다. 돌들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돌들을 가지고 노는게 자신에게 주는 즐거움과 행복과 재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눈빛과 손짓과 목소리를 즐거운 기분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그다지 예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과 풍경과 옆모습으로 비치는 낙조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연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내내 보내도 자실장이 놀러 오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사실은 적지 않았다.

점점 더 늘어났다.

놀이 말고도 실장석도 실장석 나름대로의 삶의 사이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서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안에서 유일한 안식이었기 때문에 안식처를 빼앗긴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뾰로통해져 아무곳에나 심술을 부려 댄다.

기다리는 동안 콘페이토나 얻을까 싶어 벤치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다른 실장석들을 괴롭힌다던가 그녀석하고 열심히 모은 돌멩이들을, 특히 자실장이 가장 좋아하는 소중한 돌들을 되는대로 아무곳에나 던지거나 하는 등의 의미 없는 일들 말이다.

작은 분노들을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화풀이를 해대며 돌이나 던지고 있던 사이 발치에 작은 실장석 하나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는 항상 켜져 있는 주머니 안의 링갈을 통해 조심스런 말투가 들려왔다.




"...이게 사는 집 근처로 굴러온 테스...혹시 잃어버리신 주인인 테스?"


중실장쯤 되보이는 녀석이었는데, 흔히들 보이는 다른 실장석들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그란 두 눈에 귀여운 얼굴,통통하고 뽀얀 볼과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옷차림은 집이 근처라는 중실장의 원래 신분이 사육실장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저쪽에 놓아둬."
"알겠는 테스.."


조심스런 태도로 다가가 돌무덤위에 자실장의 보물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그 상냥하고 소심한 행동에 어쩐지 내 마음은 조금 풀어져 있었다.

그것보다도 뭐든간에 말이 통하는 것과 이야기하고 싶었을런지도 모른다. 나긋하고 조용한 중실장의 태도는 좋은 리스너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이거라도 받아 둬. 고맙다."


주머니속에서 실장푸드를 몇알 챙겨주자 방긋방긋 웃으며 정중히 인사한다.


"고마운 테스.저녁거리가 해결되어 행복한 테스,.,"
"여기서 먹고 가도 괜찮은데."
"괜찮은 테스?"


다시 중실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나와 조금 떨어진 벤치에 몸을 기대 앉았다.

중실장의 이름은 '미키'라고 했다. 예전의 주인이 지어준 이름으로,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고 몸에 속속들이 배인 예의범절이나 배려등이 미키의 높았던 신분을 잘 보여주었다.나는 미키와 함께 의미없는 잡담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들실장이 된거야?"

"...주인님을 사랑했던 테스."

"그렇다면 더욱더 함께 있어야 했던 것 아니야?"

"힘들었던 테스. 주인님은 얼마전에 결혼하셨던 테스.
와타시는 알 수 있었던 테스. 주인님의 여자주인님은 나를 굉장히 싫어했던 테스..
주인님과 함께 자지 못하고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건 괜찮지만.."

"그런데?"

"주인님이 여자주인님과 싸우는게 속상했던 테스. 두분은 매일 나 때문에 화내고 싸웠던 테스. 여자주인님은 나를 다른 곳에 가져다 주길 바랬지만 주인님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말하신 테스. 매일매일 싸우고 매일매일 화냈던 테스."
"..."

"여자주인님의 뱃속에는 아기쨩이 있었던 테스. 여자주인님은 몇 번이나 병원에 실려간 테스. 주인님은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 하셨지만 나는 주인님이 속상해지는 것이 더 마음 아팠던 테스. 그래서.."

"그래서 나왔구나...."


"공원에 올 때마다 봐 두었던 테스. 좋은 자리를 찾았던 테스...공원에 산책 올때마다 푸드를 모으고 콘페이토를 저장해놓아 아직도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테스.다행인 테스.."

"..속상하지 않아?"



미키는 슬픈 눈에 작은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았다. 실장석의 얼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미키는 입을 뗀다.


"..내가 어떻게 해도 해줄 수 없는것이 있는 테스...
주인님의 자녀를 가진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조차 않는 테스. 그건 내가 해줄 수 없는 일인 테스.
주인님도 힘들겠지만 아기쨩을 위해 노력해 주어야 하는 일인 테스. 아기쨩은 아마도 실장석인 나보다는 훨씬 더 주인님에게 소중할 것인 테스.
실장석들은 많고 많은 테스. 나도 그중에 하나인 테스..내가 없어져 다들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옳은 테스."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담담히 말하는 미키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각자의 세계.
나름의 세계.
내가 분풀이로 던져버리고 죽였던 실장석들에게도 다 각자의 세상이 있다.

첫만남, 나를 방해하는 미키에게 화가 나 이 아이에게 해꼬지를 했다면 이 슬픈 미키의 이야기는 그저 사라지고 말아버릴 것이었던 거다. 이제까지 내가 실장석들에게 아무런 가책없이 행했던 일들이 조금 후회스러워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나에게 죽어간 실장석들을 위해 작은 기도를 했다.





내가 그시간에 그곳에 오는 것을 알고서부터 자실장을 보게 되는 날보다 미키를 보게 되는 날이 많았다. 자실장과 미키는 내게 분명히 다른 위치였지만 미키 역시 감사하게도 시간을 잊게 해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자실장의 존재처럼 강한 마음이 솟아오르지는 않았지만 미키는 그 부드러움과 사려깊음으로 나름 나를 매만져 주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자실장에게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 후부터 만남이 기대될지언정 편하지는 않았었는데, 미키를 만나면 어쩐지 자실장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즐거워졌다 . 미키는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자실장... 테스까..?"
"응. 사실 이곳에 오는게 내가 말했던 자실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요새 도통 보이지를 않네."
"알아봐드릴 수 있는 테스. 아마도 그 자실장의 집은 여기서 멀진 않은 테스..같이 찾아가 드리는 테스까?"


자실장의 집이라.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반, 이곳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반 공존했으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후자를 택하게 되는 것이었다. 항상. 미키는 항상 물어보았지만 나는 항상 거절했다.

집앞에 찾아가 인사를 건네면 이상한 사람 보듯 나를 무시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이 왜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거지? 정신 나간 테치?스토커인 테치? 라며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견 친해 보이는 듯도 했으나 사실 그 녀석에게 내가 어떤 의미일지 알 수는 없다. 나 스스로도 그녀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자실장이 우리집 앞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면 나 역시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달콤하긴 할 것 같지만 역시 생각해본 적도 바라지도 않는 망상에 불과하다.



자실장과 함께 커피숍에 가서 커피와 핫초코를 마신다거나 흔히들 하는 애호파처럼 목줄을 묶어 거리를 다닌다거나 혹은 실장숍에 가서 드레스를 사준다거나 하는..?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것은 내가 원하는것이 아니었다. 흔한 사육실장으로 구속하고 개마냥 집에서 기르고 싶은것이 아니다.



상대를 알아야 어떠한 그림이 그려질진대 나는 맹세코 자실장을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없었다.




"아마도 인간님은 자실장을 좋아하는 테스."
"그래. 그건 그런 것 같네."
"키워주면 좋지 않은 테스? 데리고 와 집에서 길러주면 행복할 텐데 테스."
"그녀석은 음식이나 포근한 잠자리보다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데,
내가 그시간을 빼앗으면 좋지 않은게 아닐까? 미움받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

"테에에에에?그 자실장이 조금 이상한 구석은 있지만 그래도 실장석인 테스..
모두들 원하는 것을 그 자실장도 원하는 테스. 인간님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게 아니신 테스?"

"몰라."

"정말로 자실장에게 사육실장보다 돌멩이와 나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테스?와타시는..와타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테스!그런 실장석은 본적이 없는 테스!"

"그런데 나랑 같이 있어도 이야기를 하던가 나랑 논다기보다는 돌이나 던지고 돌이나 모으고 놀던게 말이야. 진심으로 돌을 정말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고.
그런 시간을 내가 빼앗으면 안되는거 아닐까?"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테스."
"무슨?"
"돌멩이를 가지고 논다는 핑계로 인간님이랑 놀고 싶었던게 아니었던 테스?
자실장도 인간님을 처음 겪어봐서 어떻게 노는지 몰랐던 테스...?"

"그런것까지 내가 다 알고 있어야 해?"
심술이 생긴다.

"테에..좋아한다 말하지 않았던 테스까?"
"좋아하지."

"그럼 집을 아는데도 찾아가서 손을 끌고 데리고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뭐인 테스?와타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테스,.,!"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설령 그러한들 어떻게 할 것이며 그녀석이 그걸 싫어할 경우에는 내가 인간일지라도 상처를 받는단 말이야."

"테에??인간님 그렇게나 좋아하는 테스?"

"그래."

"그냥 데리고 오면 안되는 테스ㅡ?와타시는 정말로 모르겠는 테스,."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빈 공간에 또 돌들을 던져 댄다. 일부러 자실장이 제일 좋아하던 예쁘고 맨질거리는, 가지고 놀기 좋은 돌들만을 골라서. 홀로된 시간이 너무 오랜 지라 이제는 못생긴것들만 한무더기 남았다.
한참이나 찾겠지만 당황한 얼굴이 보고 싶다.




"그런데 와타시도 이곳에서 노는것은 오랫동안 볼수 없었던 테스."
"설마 죽은건..??"
"그건 아닌것 같은 테스. 공원 중앙에서 콘페이토나 실장푸드를 받는모습을 몇 번이나 봐온 테스. 아마도 겨울나기 때문에 놀 시간이 부족했던것 같은 테스..
차라리 공원 중앙으로 가서 찾으면 어떤 테스?"


"찾고 싶지가 않아."
"뭐인 테스?이해할 수 없는 테스!"
"이곳에 와서 얼굴을 보고 나랑 놀아주던가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

"뭐인 테스!답답한 테스!왜 굳이 이곳이어야 하는 테스?"


"그것은.."



우습게도 부끄런 눈물이 살짝 맺힌다. 미키역시 변한 내표정을 보고 당황스러워한다.



"여기서는 항상 기쁘게 놀아줬었거든. 다른곳에 가서 만나면 나를 모른척 할까봐 걱정되서 그래. 속상해지기 싫어."

"한번 만나보거나 다른곳에서 보았던 적도 없었던 테스!왜 그렇게 혼자서만 생각하는 테스??"

"왜냐면.."
"지금 상처받으면 죽을것 같거든, 난."




미키는 이해할수 없다는 슬픈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간님 그렇게 쉽게 죽는테스?우리들과 같은 테스? 따위의 혼잣말을 하고 있다.


사실 몇 번은 자실장이 공원 아래로 내려가는것을 본 적도 있었지만 나는 또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잡는다던가 데리고 가버리는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손을 뿌리친다면, 정말로 얼마 안남은 마음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상태는 정상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에 만났으면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도 어쩔 순 없다. 시간은 흐르기 위해 존재하는것, 한낱 인간이 그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조금 더 내가 괜찮았었을 시절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달달하지만 의미없을 망상들을...
하긴. 그때라면 어린 꼬마녀석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으려나. 그리 생각하면 매한가지일 일이다.
지금이라서 의미가 있고, 지금이라서 애정을 주지만
나는 지금이라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미키를 돌려보내고 그날은 오래도록 벤치에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끄트머리쯤 기다리던 자실장이 내 바짓단을 붙드는 것을 느꼈다.


“테에..”
“간만이네.”


양 손에는 실장푸드 몇 개와 콘페이토 따위를 들고 있다. 하루종일 얻으러 다녀도 고작 이정도일까 싶은 생각에 서글픈 느낌마저 든다. 지금 당장도 내 주머니속에는 저것보다 많은 실장푸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속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가만히 자실장을 바라보고만 있노라니 웬일로 그녀석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바빴던 테치.”
“...”

“...겨울엔 춥다고 들은 테치. 와타시 마마쨩이 없기 때문에 동생쨩과 함께 겨울을 나려면 열심히 더 열심히 모아야 하는 테치. 몇 번
이나 이곳에 와서 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던 테챠....혹시..기다렸던 테치?”

“한번도 그런일 없는데?”

“..그런테치...알겠는테치...와타시는 조금 놀러가는 테치....
아...앗?와타시의 보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테챠아아!!!!”


자실장은 울상이 되어 푸드들을 내팽겨쳐 두고 우왕좌왕한다. 내가 골라준 돌무덤의 돌들이 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물론 내 짓이다.

심술쟁이처럼 홀로된 시간에 화를 내며 언덕에서 공원 중앙을 향해 아무렇게나 돌들을 던져댔다. 자실장이 슬퍼할 거라는,
착한 미키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없는 테치!!”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냐. 다 잃어버렸네.”

“인간님이 처음에 만났을 때 줬던 돌이 없는 테치!!!!가장 소중한 것이 없어진 테치!!!!”





처음에 내가 주었던 돌.

큰 눈에 슬픔이 가득 차오르다가 결국 앙 하고 울어버린다. 눈물 콧물을 온몸에 묻힌 채 손안에 든 하루종일 노력에 대한 보상인 푸드
가 으깨어지는것도 상관없이, 자실장은 수풀을 뒤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무언가가 순식간에 부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릎 발치에서 보고 싶어했던 꼬마 하나가 울며 불며 내가 주었던 자신의 보물을 위해 손발이 다치는 것도 아랑곳 않고 피를 뚝뚝 흘려대며 보잘것 없는 돌멩이 하나를 찾고 있었다.

흥분은 점철되어 마음은 가라앉고 오히려 더욱 더 애달픈 느낌으로 그 광경을 바라본다.






결국,



나는 이 별것 아닌 자실장을 너무 좋아해서 앞으로 갈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도 없고 목적지도 없을 애정이 마음을 옥죄어 온다.

자실장에게서 받는 약간의 관심이 나를 이렇게 ‘미치게’ 만들 정도로 마음속에서 커다란 존재로 바뀌어 있다는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음을 깨달은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쓰레기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더욱 더 나를 슬프게 하여 나는 울고있는 자실장을 두고 작별인사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주 많이 후회했다.
그날은 자실장과 함께 이야기한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그땐 몰랐다.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했다.

머릿속에서는 당장 공원으로 뛰어가 그녀석이 있는지 없는지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도 자실장에게도 폐가 되는것이다. 확인한들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바라본 시간에는 보이지 않았고, 혹여 내가 없는 시간에 내 생각은 했을런지.
그러나 나는 신이 아니기에 그런것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두어번. 서너번 열몇번이 쌓인 후 공원에 놀러갔을 때 정말 오랫동안 나는 자실장을 볼 수 없었다.
쉬는 날 하루종일 공원의 언덕에서 커피 열몇잔을 마셔가며 기다렸을 때까지도.

나는 항상 내가 다녀간 날은 며칠 내내 고르고 고른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돌들을 나무 밑에 놓아두었는데 분명히 어느 순간부터 그 돌들을 가지고 놀았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증발한 것이다.

간곳 없이.

죽은걸까 살아는 있는걸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프기라도 한건지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나는 성실히 그 자리에서 자실장을 기다렸다.

주말 이틀내내 기다린 끝의 저녁. 나는 오래간만에 미키를 만날 수 있었다.



“..간만이네, 너도.”
“테에..”

“겨울나기 때문에 다들 바쁜거야? 너도 걔도 아무도 보이지를 않아..”

“인간님도 한동안 오시지 않으셨었던 테스.,,와타시도 겨울나기 때문에 바빴던 테스..자실장은......말해줄까 말까 고민되지만 테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가버린 테스.”
“무슨 말이야..”

“다른 집의 사육실장으로 간 테스. 어떤 남자 인간님이 며칠동안 자실장을 관찰하고 있다가 얼마전에 데리고 간 테스."




"...뭐?“
“...내 손도 한번 안붙잡아준 애가 모르는 남자를 따라갔다고?”


“...그런테스. 우리들에게 사육실장이란 그런것인 테스.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던 테스?그냥 다 무시하고 데리고 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테스. 계속 듣지 않았던 테스.
마마쨩이 없는 자실장쨩들은 겨울에는 분명 죽어버리는 테스. 본인도 그것을 아는 테스..
살려면..살려면 어쩔수 없는 테스.“


“...난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걸.”

“물어본 적이나 있으셨던 테샤?”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는걸.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았고 묻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듣고 싶은 것들도 많았고 그런것 외에 농담따먹기나 장난질이라던가. 할수 있는것은 다 해보고 싶었지만.

이 작은 관계에서조차 때와 시기가 존재 했다는 것은 정말 예상밖의 일이었다.



미키는 내 등을 토닥였다. 참담한 심정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손에 돌을 쥔다. 나와 자실장을 엮어 주었던 작은 돌들을 반쯤 나간 정신으로 주머니속에 쑤셔 넣었다.


돌아오는 길마다 늘어선 상점들이 보이는데 우습게도 지금 이 시점에서야,
함께 커피나 디저트등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을수도, 쇼핑을 다니고 뭔가를 사주며 기뻐졌을 지도, 마트에서 좋아하는 과자나 콘페이토 따위를 고르며 잡담으로 깔깔댔을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화된 관계는 없으나 행복은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모르겠다.나는 정말 바보가 되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상실감에 눈물이 목까지 차 올랐으나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뒤 옷도 벗지 않고 쇼파에 웅크리고 앉아 지나가버린 선택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의미없이 그려 보았다...

‘행복했을 수도’있을 날들을.


그러나 이제는 모두 다 끝이다.






나는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몸을 훑고 지나가는 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깨었다.
슬픔이 지나가고 나니 허무와 후회만이 남게 되도다. 그러나 모두 내 탓이고 감내해야만 할 일이었다.



생각해보자.

내가 그 자실장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했다.
직스파들처럼 섹스를 원하는것도 아니었고 정신나간 애호파들처럼 예쁜 옷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 키우고픈 생각도 아니었다.

사실 원한것은 어느때고 그 자리에 있는것, 이제까지 그리했듯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기를 바랬건 것이다.

그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것을 바랬을지와는 상관없었다.이기적인 마음만이 가슴속에 가득 차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흘러만 넘친 채,
나는 그렇게 사랑을 잃었다.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면 앞날은 더욱 더 암담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진대 나의 빗나간 사랑 방식은 아무도 원하질 않았다. 결국 나 스스로조차도.


귀엽고 맹랑한 그녀석을 너무 많이 좋아했던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인 어떤 방법으로도 나는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론이 없는 집요한 애정의 갈구는 곤충같은 구더기들에게도 필요없었다. 사랑한다고 한들 친밀감 어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고리’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 참담해져 온다.

가장 슬픈 것은,

사실은 이랬던 적이 없지 않다.

어디서든 그랬다.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들..

언젠가 지금과 비슷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몇 개나 되는 트라우마가 심장을 갈라놓는다.


굉장히 소중한 것은 결국 가질 수가 없어서 차라리 내 쪽에서 선을 긋고 멀찍이서 바라보는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정표현이었다.
‘소중하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도망가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만들어버리는것. 그것이 나의 하나뿐인 탈출구였다...


그렇게 '육년'을 가볍기 그지 없는 공기같은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자실장을 만나고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그 작은것에게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

하지만 없다. 이제는 없어. 간곳조차 알수 없다.


그아이에게 주어질 행복을 생각하면 아마도 내 아집으로 곁에 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의 곁보다는 누구라도 나을것이 분명하리라.



깜깜한 방 안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존재인 시계바늘은 12시를 가리키며 하루를 보냈고 빛과 밤과 달과 별이 넘어가며 내 생일을 알렸다.핸드폰에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들이 불빛을 깜빡이며 찾아오고 있다.




오늘이 생일이었구나. 내가 태어난 날.
슬프지는 않다. 내 작은 머릿속은 나를 감당할 자신이 아주 이전부터 없었던것 같다. 







나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진 안방으로 가서 그녀석의 보금자리에 있던 작고 예쁜 돌들을 손에 꼭 쥔 뒤


방안 귀퉁이에 항상 준비되었던 밧줄을 바라보았다.















자실장은 추운날의 저녁,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키워주겠다고 말한 남자의 손을 붙잡고 그 사람의 집으로 갔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예쁜 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이 잠시 생각났지만 키워준다고 말하는데야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나를 키워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찰 수는 없었다. 자실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같이 키워주면 좋은데,라고 말했지만 키워주겠다고 말 한 사람은 자신 하나만을 바랬기 때문에 여동생에게도 작별인사 하지 못하고 벤치를 떠나게 되었다.


여동생조차 두고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육실장이란...겨울을 죽지 않고 보낼 수 있다는 것이란 실장석들에게는 생명의 지속 그 자체였다. 동생쨩도 사랑했지만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한다. 더 야무진 동생쨩은 어떻게든 겨울을 잘 보낼 것이다. 자실장이 놀이를 그만두고 식량비축에 힘써 둘의 골판지 상자속에는 이미 한사람분량 이상의 겨울식량이 보존되어 있어서 그나마 자실장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상자를 떠날 수 있었다.



남자 인간님은 돌멩이를 가지고 가 집이 더럽혀지는것도 싫다고 말했기 때문에 주머니속에 있던 소중한 돌멩이들도 제 자리에 두고 떠나게 되었다.

주인이 될 남자의 명령에 따라 돌멩이를 주머니 속에서 쏟아내어 버리다가 돌멩이 하나하나마다 항상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친절한 인간이 생각났지만 그저, 그도, 그 뿐이었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돌멩이들을 함께 좋아했다 한들 ‘삶’이라는것은 그깟 노리개보다 훨씬 더 강인하며 크고 단단한 것임을 작은 자실장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자실장은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인이 될 인간의 손을 붙잡은 뒤 그 자리를 떴다.

마음 한구석에서 꼬집는것 같이 아픈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건 금방 사라질 것이다.
구두도 없는 찬 발을 종종대며 자실장은 남자를 따라 길을 걸었다.





인간의 집은 생각보다 쌀쌀했고 어두웠다. 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며 방 안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실장들이 모르는 물건들이 많았다. 검은색 상자와 푹신해 보이는 가죽의자. 하얀색 커다란 네모와 발이 여러개 달린 의자들은 방에 몇 개씩이나 있었다.

자실장은 푹신해 보이는 의자로 다가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기대었다. 남자는 그런 자실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잘 대해줄 수는 없지만 집에서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텟..”

“사육실장을 키워본 적은 몇 번이나 있으니 아마 내 보살핌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사랑을 가득 주면서 보살피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목욕물을 받아줄 수는 있지만 목욕은 시켜줄 수 없고, 실장푸드는 예전에 먹던게 있어서 보통품으로는 줄 수 있지만 고급은 힘들다는거 알아줘. 강아지처럼 키워는 줄 수 있어. 그 이상은 곤란하다고.
실장석은 실장석이고 인간은 인간이니..
나는 정신나간 애호파들처럼, 키우는 강아지 같은것들 따위에 벌벌떨면서 지낼 수 없거든.
말을 잘 들으면 대우를 조금 잘 해주마. 잘 듣지 않으면 엄하게 체벌하고 더 심해지면 살던곳에 가져다 버릴꺼야.”


“테에..”


“이름을 줘야 하는데.”


이름!
자실장의 머뭇거렸던 눈동자가 다시금 반짝였다.



“어떤 이름이 좋으려나..”


남자는 잠시 생각한 뒤 웃는 낯으로 말한다.


“빌런이라는 이름 어때? 좋아하려나.
잘 지내 보자,빌런..그런데,그런 이름을 가진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미키는 한동안 남자를 기다려 보았지만 그날 이후로는 남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오지 않았어요. 미키에게도 조금 은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는데, 슬펐지만 인간님들의 사정은 그보다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덕, 돌무덤을 두 개 가지고 있는 나무가 사실은 벚꽃나무였다는 것을 인간님은 아시고 계실런지요.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어렴풋, 인간님이 벚꽃을 정말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먼 발치서 이렇게나 만개한 벚꽃을 보셨을런지.알 수가 없었어요.


미키는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떨어지는 꽃송이를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벚꽃이 정말 예뻐요. 이 벚꽃이 지기 전에 꼭 다시 한번은 볼수 있었으면. 그게 아니라면 먼 발치에서나마 이렇게 예쁘게 피어난 벚꽃을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으려나요? 있잖아요, 당신의 작은 자실장은요...-



작은 자실장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덩치가 커다란, 수염투성이의 남자 인간님과 함께 손을 잡고 와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언덕에서 자실장을 바라보고 있는것을 보자면, 
가끔 언덕 위의 벤치를 응시하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자실장은 한번도 언덕 위로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아마 저 아이도 조금 마음아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억이라는게요. 우리든 당신네들이든 쉽게 잊혀지는건 아니거든요.


자실장이 너무나도 행복히 잘 지내는 것을 보게 되면 인간님이 질투를 하려나 다행이라 여기려나 하는 고민을 해보다가 미키 역시 떨어지는 벚꽃에 넋을 잃습니다.

이 예쁜 꽃들이 지기전에 미키를 만나러 와 주면 좋을텐데요.

혹시 오늘은 인간님이 오려나 싶은 생각에 미키는 자리를 잡고 조금 더 기다려 봅니다.

그렇게 몇 달이나 기다렸지만

오늘은 어쩐지 인간님을 뵐 것같은 특별한 기분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자실장의 이야기, 미키의 이야기, 그리고 듣고 싶었던 인간님의 이야기까지


그래서 기다려요.


오늘도,..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벛꽃은 진다한들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면 내년에는 또 다시 분홍빛 꽃망울이 톡톡 고개를 내밀 텐데, 이번 봄의 벚꽃을 볼 수 없으셔도 다음 봄의 벚꽃은 볼 수 있으시겠지요.


나무 아래서 기다리면 분명히 다시 와주실 꺼예요.


인간님들은 아주 많이 바빠요. 아마도 미키나 자실장따위는 이제 생각도 나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사실 존재의 의미가 당신들을 위한 것임을...알고 계실까요?

다음번에 인간님을 만나면 꼭 말해줄래요.

미키도 인간님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구요.

혹시나 괜찮으시다면 당신 집 구석의 조용한 장식품같은거로라도 살면 좋을텐데. 내가 잡을 수 없던 차가웠던 손이 기억나 사실은 나도 잠을 설쳤습니다. 이번엔 내가 한번 용기내어 볼까요...사실은 나도 아주 많이 후회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인간님이 보이질 않네요.






아주 많이 기다렸지만.이 자리에서...




아마도 오늘도.



아마,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