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의 일상 ~붉은 꽃

 

 황혼이 깔리기 시작하는 주택가의 골목길을 한 친실장 모녀가 가로지르고 있다.
 서쪽 하늘에서는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빛 광채가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비추고 있다.
 누구라도 탄성을 일으킬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친실장 모녀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듯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만 옮길 뿐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던 담벼락과 담벼락이 잠시 끊기고 한적한 공터가 나타난다.
 친실장과 자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공터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마마 쉬고 싶은테치"

 "데... 발이 아픈데스우?"

 "발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테츄. 오늘은 그만 쉬었으면 좋겠는테치."


 자실장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친실장에게 테치테치 떠들어댄다.
 그런 자실장이 안쓰러워서였을까. 친실장은 자신의 앞치마를 들어 자실장의 이마를 훔쳐준다.


 "데... 그럼 마마가 살펴보고 오는데스. 잠시 기다리는데스우."

 "알은테치."


 친실장은 들고 있던 낡은 비닐봉투와 자실장을 근처의 전신주 뒷편에 숨긴다.
 그리고 자신은 조심스레 공터 안으로 들어선다.


 공터는 그리 넓지 않았다.
 겨우 삼십평 남짓한 크기에 토관이나 철근, 방수포에 덮힌 목재, 가근, 비계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모래가 친실장 키의 몇배는 되는 높이로 쌓여있었다.
 친실장은 그런 각종 건축자재를 요령있게 뎃스뎃스 피해다니며 주변을 꼼꼼히 살핀다.
 무서운 닝겐이 있지는 않은지, 혹시 다른 동족이 먼저 차지하고는 있지 않은지, 잔인한 고양이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열심히 주변을 수색한다.

 십여 분 후.
 모든 곳을 꼼꼼히 살펴본 친실장은 허둥지둥 자실장을 숨겨둔 전신주로 뛰어간다.
 다행히 자실장은 무사했다.
 비닐봉투를 꼭 끌어안고 와들와들 떨고는 있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듯하다.
 친실장은 데-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실장을 들어 꼭 안아준다.


 "테-!! 마마가 돌아온테치!"

 "데에 잘 기다리고 있었던 데스. 역시 너는 착한 아이인데스~"

 "테--챠!! 무서웠던테찌! 무서웠던테챠-!!"

 "쉬이! 조용하는데스! 큰소리는 다--메데스요. 그것보다 얼른 따라오는데스네-"


 친실장은 눈물이 그렁그러한 자실장을 달랜 다음, 비닐봉투를 들고 뎃샤뎃샤 공터쪽으로 뛴다.
 자실장도 그런 친실장을 놓칠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쫓아간다.


 친실장은 아까 전에 눈여겨 봐둔 토관으로 들어간다.
 토관은 공터 안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어 누구의 눈에 띌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친실장은 연신 토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불안해 한다.
 허나 자실장은 오랜만에 다리를 편히 쉴 수 있게 되어 조금 들떠 있다.


 "테에... 아늑한테치... 바닥도 딱딱하고 축축하지 않은테에치~"


 자실장은 손을 들어 바닥을 팡팡 내리쳐본다.
 콘크리트 토관의 딱딱한 감촉이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늑한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쓰레기국물이 질척한 쓰레기장이나 근처 공원의 흙바닥에서만 자왔던 자실장에게는 상당한 발전이다. 바닥이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어딘지모르게 푸근한 느낌을 주는 것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자실장은 이내 다리를 쭉 뻗고 누워 기분좋은 콧소리를 흥얼거린다.


 "테치~♬ 테치~♪ 오늘 잠자리는 썩 훌륭한테치~♬"


 그런 자실장의 즐거운 흥얼거림은 친실장에 의해 중단됐다.


 "데-!! 조용하지 못하는데스?! 어디서 노래를 부르는뎃샤-!!"


 삐쿳!


 토관 주변을 한바퀴 순찰하고 돌아오던 친실장은 자실장의 흥얼거림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주먹을 들어 자실장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던듯 자실장은 단번에 몇십센치를 붕- 날아올랐다가 떨어진다.


 "테에에엥! 아픈 테챠----아---!!"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있다 갑작스런 일격을 얻어 맞은 자실장은 불이난듯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볼 친실장이 아니다. 재빨리 자실장을 들어올린 다음 두터운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꽉 막는다.


 "테봇! 테보보봇! 테보옹옷!"


 친실장의 손에 코과 입을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된 자실장이 팔을 마구 휘두른다.
 피눈물을 흘리며 바둥바둥 한껏 몸을 비틀어대지만 친실장은 요지부동이다.
 한참을 비드럭대다가 꺽- 꺽- 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눈이 풀리려하자, 그때서야 친실장은 손을 뗀다.


 "테휴---! 테히이이이!! 테에히이--!!"


 자실장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온듯 연신 숨을 가쁘게 쉰다.
 이미 눈물은 쏙 들어가버린지 오래다.
 지금은 오직 다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에 집중하여 전신을 푸득푸득 경련하며서도 숨만 빨아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실장을 친실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마마가 말했던데스우. 어떤때라도 절---대! 소리를 내면 안되는데스!"

 "테히... 테히이이..."

 "소리를 내면 우리들은 단번에 들키는데스! 무서운 고양이도! 개도! 심지어 닝겐들도 눈치채버리는데스우! 그렇게되면 죽는 일밖에 안 남는뎃갸--!!"

 "테... 테챠....."

 "......"

 "마.... 마.... 미안한테치...."


 자실장은 겨우 울음을 삼키고 고개를 푹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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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쳐 쓰러진 자실장을 눕히고 친실장은 비닐봉투를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한다.
 비닐봉투의 안쪽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엉망이다.
 빈 라면그릇, 찌그러진 캔, 잡화점 광고지, 햄버거 포장지, 구겨진 신문지... 다양한 생활쓰레기를 끈기있게 꺼내자 맨 안쪽에서 잔뜩 찌부러진 편의점 주먹밥이 하나 나온다.

 친실장이 주먹밥을 꺼내놓자 마치 시체처럼 축 늘어져있던 자실장이 반짝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침을 줄줄 흘리며 주먹밥을 뚫어지도록 쳐다본다.
 그런 자실장이 귀여워서였을가. 친실장은 메마른 얼굴에 한줄기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는 비닐봉투에서 나무젓가락을 한짝을 꺼낸다.

 나무젓가락은 원래의 것에서 반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꺾인 단면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친실장은 그 중 하나를 들어 날카로운 부분으로 주먹밥의 포장지를 가만히 찌른다.


 폭!


 날카로운 나무젓가락의 단면이 포장지를 뚫자, 친실장은 다른 젓가락을 들어 솜씨좋게 그 구멍에 쑤셔넣는다. 그리고는 양옆으로 힘껏 벌려 헤집는다.


 포샷!

 후드드득...


 주먹밥의 얇은 포장지는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찢어진다.
 친실장은 생각대로 되서 기쁜듯 뎃데로게-♬ 하고 가볍게 흥얼거린다.


 친실장은 나무젓가락을 소중하게 챙겨 다시 비닐봉투에 넣고, 이번엔 빈 편의점 도시락 용기를 꺼낸다. 빈 용기에 찢은 주먹밥을 얹은 다음, 떨어진 밥풀 하나도 놓칠새라 꼼꼼히 바닥을 살핀다. 한참을 뒤진 끝에 더이상 떨어진 밥풀이 없자 친실장은 눈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는 자실장을 부른다.


 "자- 오래 기다린데스~ 어서 밥먹는데스우."

 "텟--챠! 우마우마한 밥텟츈★"

 "자자 어서 먹는데스. 많이 있으니 천천히먹는데스우."

 "마마~ 잘먹겠는테치♡"

 친실장이 먼저 밥 한덩이를 입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자실장도 주먹밥에 달려든다.


 와구와구와구와구와구


 "맛있는텟츈♡ 맛있는텟츈♥"


 자실장은 얼굴을 거의 파묻다시피하고 주먹밥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사실 말이 주먹밥이지 산산히 부서져버려 원래의 형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거기다 그 주먹밥이란 것도 근처의 가게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내버린 것인데다가, 쓰레기통에서 더운 여름 기온을 한껏 받아 마구마구 썩어가고 있던 것이다. 이미 밥알은 잔뜩 쉬어버려 곰팡이가 덕지덕지 낀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속재료였던 우메보시마저 썩어버려 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썩은 악취를 넘어 독한 가스마저 내뿜고 있는 그런 주먹밥을 자실장은 마치 세상에 더없는 진미인양 미친듯이 먹는 것이다.


 "우마우마테치☆ 우마우마테치★ 우마우마한 밥 맛있는텟츈~☆"


 자실장은 엉덩이를 흔들흔들 흔들어대면서 연신 탄성을 내지른다.
 진심으로 맛있는듯 입가는 온통 녹색 곰팡이 투성이다.
 친실장은 그런 자실장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간간히 밥덩이 몇알을 입으로 옮길 뿐이다.



 "텟푸우웅~♡ 정말 배부르게 먹은텟찌! 마마 고마워요테치!"


 다 썩은 주먹밥이 사라지는 것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자실장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친실장은 자실장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지 푸근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다.


 "많이 먹은데스우?"

 "텟츄★ 실컷먹은테체!"

 "잘된데스... 응응... 잘된데스우..."

 "테... 그러고보니 마마는 별로 먹지 못한테...치..."


 배가 부르니 비로소 친실장의 생각이 난 것일까.
 자실장은 친실장이 거의 먹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몹시도 미안해 한다.


 "데에에 마마는 괜찮은데스우. 마마는 어른이라 괜찮은데스. 많이 먹어야하는 것은 아기데스."


 그런 걱정어린 말을 듣고 흐뭇하게 미소를 띄우는 친실장.
 자실장은 친실장의 품에 안겨 테치테치 투정을 부린다.


  "테---! 와타치는 아기 아닌테치이!"


 . 
 .
 .
 .
 .



 황금빛 황혼도 모두 꺼지고 괴괴한 어둠이 주변에 깊게 깔린다.
 친실장과 자실장은 빛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테치테치 데스데스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인간 근처에서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하는데스."

 "테-! 무서운테체!"

 "그런데스우. 무서운데스. 아주아주 무서운데스. 닌겐들은 우리들은 상상도 못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는데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절대 닌겐은 보지도 않아야하는데스. 달콤한 말을 해도 절대 꾀여서는 안되는데스."

 "테츄! 알은테치!"

 "너는 똑똑한 아이데스..."

 ".........."


 친실장은 손으로 자실장을 더듬어 푸긋푸긋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다.
 자실장은 답답할 법도 한데 친실장을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다.


 "....밤이 깊은데스우. 너는 조금 잠을 자두는데스. 내일도 많이많이 걸어야하는데스우."

 "....테...."

 "........."

 "....저기 마마."

 "데에?"

 "그 '산'이라는 곳은 얼마나 남은테치?"

 "데...... 아직 꽤 남은데스... 아니 아주 멀고도 먼 데스."

 "테츄... 지금도 많이많이 걸었던테체... 더 걷는 것은 이야테츄..."


 자실장은 한숨을 폭 내쉰다.


 "......힘들 것인데스. 어린 너에게는 많이 힘들다는 것도 아는데스우. 하지만... 하지만 참아야하는데스."

 "거기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스. 떠돌이처럼 이곳저곳 숨어다닐 일도 없는데스우. 닌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없는데스. 고양이에게 죽을까봐 떠는 날도 안녕데스."

 "테에... 먹을 것도 많은테치?"

 "물론데스. 먹을 것도 아주아주 많은데스. 언젠가 공원에서 봤던 나무를 기억하는데스?"

 "스테! 기억하는테츄! 아마아마한 열매가 잔뜩 열리던 신기한 것이었던테체!"

 "그런 나무가 '산'이라는 곳엔 아주아주 많은데스. 공원처럼 열매를 두고, 나무를 두고 다툴 일도 없는데스..."

 "테... 믿기지 않는테치... 그런데 마마는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는테츄?"

 "데........"


 처음으로 친실장의 말문이 막힌다.
 만일 주변이 충분히 밝았다면 자실장은 회한에 찬 친실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리라.


 ".......예전에 한 번 가봤던데스."



 .
 .
 .
 .
 .
 .

 까만 구름 사이에 달도 숨어버린 깊은 밤.
 자실장은 테츄테츄 깊게 곯아 떨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친실장은 빨갛고 초록색인 눈을 꿈뻑꿈뻑거리고만 있었다.
 간간히 깊은 한숨도 쉰다.


 "데에... 주인님... 보고 싶은 데스우...."


 친실장은 멍하니 중얼거린다.




 친실장은 원래 사육실장이었다.
 세레브 실장만큼의 최고급 실장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무렇게나 내다파는 하급 사육실장도 아니었다.
 제법 이름 있는 중견기업의 애완실장석센터에서 고도의 교육을 받고 출하된 제대로 된 사육실장이었던 것이다.
 열에 아홉은 죽는다고하는 처절한 훈육과정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때 거기서 운을 다 써버려서였을까.
 그녀가 만났던 주인은 그리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실장이었을때는 찐빵처럼 통통한 외모에 참을성 많은 성격과 사려깊은 배려, 정중한 예의 등으로 남자는 무던히도 그녀를 예뻐했다. 수영장, 전용 장난감, 주말마다 피크닉... 많은 것을 해주었고, 그녀는 잠시동안이나마 '행복감'이 무엇인지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두달이라는 꿈같은 시간이 흘러버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테찌테찌에서 테스테스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다시 얼마 안 있어 데스데스하는 성체의 목소리로 변하는 순간. 남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니 같이 지내면서 배우고 관찰했던 지식으로 자실장시절보다 훨씬 더 원숙해져 있었지만, 남자의 애정은 차갑게 식어만 갔다. 애정은 곧 미움으로. 증오로 변해갔으며 이전에는 일절 없었던 폭력도 곧잘 가하기 시작했다. 항상 먹던 밥이 싸구려 푸드로. 싸구려 푸드에서 다시 음식물 찌꺼기로 변하는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녀는 몇백번이나 용서를 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예의를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늦봄 무렵.
 낮잠 시간에 날린 꽃씨 하나가 그녀의 왼쪽 눈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그 날.
 그녀는 남자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집밖으로 내쫓겼다.
 함부로 임신을 한 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성체실장이 다 되어 귀엽지 않게 된 그녀를 내다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날.
 친실장이 됐고,
 또 한편으로는 들실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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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뒤.


 친실장과 자실장은 손을 꼭 잡고 길거리를 걷고 있다.
 모녀의 얼굴에는 어쩐지 미소가 감돈다.
 테치테치하며 주변을 쿄로쿄로 돌아보는 자실장은 원래 호기심이 많으니 그럴 수 있지만,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기 바쁘던 친실장까지 방긋방긋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근 삼주일에 걸치 대장정 끝에 이제 목표로 했던 산에 거의 도착했기 때문이다.
 고개 위로 펼쳐진 거대한 산을 연신 들여다보며 모녀는 테치테치 데스데스하며 떠든다.


 "마마! 큰테찌! 아주아주 큰테찌이이!!"

 "데에... 그런데수... 마마도 여기서 보는 것은 처음데스우."

 "이렇게 클줄은 생각도 못한테치! 굉장한테치! 정말 정말정말정말 큰 테챠!"


 사실 산이 아니라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했지만, 모녀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에란챠 산맥 못지 않게 다가온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에 모녀는 좀처럼 얼굴에서 미소를 떨어내지 못한다.



 "마마, 조금 쉬었으면 하는 테치."

 "데스☆ 마침 저기에 좋은 장소가 있는데스우. 저기로 가는데스."



 친실장은 자실장과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여기 앉는데스."

 "테- 마마의 두건테치... 와타치 그냥 앉아도 되는테치."


 친실장은 자신의 두건을 풀어 돌바닥에 깔아준다.
 바닥이 조금 우툴두툴해서 행여나 딸이 배길까봐 염려한 것이다.


 "데에~ 너는 아기데스. 아기는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데스~♥"


 꿈에 그리던 신천지에 다와서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친실장도 자실장도 얼굴에 분홍빛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래서였을까.
 친실장은 평소에 늘 게을리하지 않던 주변의 경계를 놓치고 말았다.



 "안녕히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지이이잉


 순간 모녀의 뒷편에서 편의점의 자동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사람의 목소리도.

 친실장은 거의 반사적으로 자실장을 들어 품에 껴안는다.
 그리고 재빨리 옆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숨는다.


 "마, 마마!"

 "쉬잇! 조용히하는데스! 니, 닌겐이 온 데스우!"


 친실장은 놀라 부들거리는 자실장을 꼭 껴안는다.
 행여나 소리라도 지를까 입을 꼭 막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느슨히 푼 것 때문이었을까.
 친실장이 반사적으로 숨은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쓰레기통이... 아... 여기있구나. 우, 우와아앗!!"


 편의점에서 나온 남자는 우롱차를 한번에 들이키고 쓰레기통을 찾다가 모녀를 목격하고 비명을 지른다.
 어지간히 놀랬는지 몇걸음이나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남자.
 그리고는 자신을 놀라게 한 상대가 하찮은 실장석이라는 깨닫고 얼굴을 붉힌다.


 "이, 이 자식이..."


 "데, 데, 데스우..."


 그때라도 도망갔으면 좋았을걸.
 친실장은 갑작스런 조우에 딱딱하게 몸이 굳어버린다.


 거기에 더해 지금 친실장이 자실장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친실장이 자실장을 앞으로 꼭 껴안은 모습.
 그 장소는 편의점 입구 근처.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탁아'하려는 모습이다.






 "이 자식 감히 탁아를 하려하다니!"

 "데, 데엣?!"

 "왜?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더냐? 이젠 하다하다 실장석까지 날 무시하는거야?!"


 남자는 친실장을 무섭게 노려보며 윽박지른다.
 친실장은 갑작스런 고성에 어리둥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할뿐이다.
 갑자기 왜이러는걸까 와타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은 어떻게든 피하려했는데. 무슨 잘못을 한걸까. 이 닝겐은 대체 왜이러는걸까. 순식간에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지만 친실장은 무엇하나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데-데-하는 멍청한 소리만 입에 울려퍼질뿐이다.


 "흥! 그래, 그놈을 넣으려했겠다?"

 덥썩

 "테챠?!"

 남자는 친실장에게 안긴 자실장을 잡아든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강탈에 친실장은 영문도모른채 자실장을 빼앗기고 만다.
 자실장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깨닫지 못한듯 멍하니있다.


 "테챠아아아아아아-!!! 마마아아아아아아----앗!!!"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실장이었다.
 남자가 자실장을 붙잡은 부위가 뒷 머리카락이었던 탓에 끊어지는듯한 고통에 번쩍 정신이 든 것이다. 그 비명을 듣자 친실장도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듯 남자에게 달려든다.


 "니, 닌겐상!! 무, 무, 무, 무슨짓데스우!! 돌려주는데스! 와타시의 소중한 아이데스!! 그러지마시는 데스우----우우우!!!"


 "마마아아아앗!! 도와, 도와테찌이이이이!!! 마마아아아!! 무서운테챠아아아----!!!"


 자실장은 거의 발광한다.
 뒷머리에서부터 가해지는 엄청난 통증.
 신장의 몇십배가 넘는 높이에 매달렸다는 공포심.
 무섭고도 무서운 닌겐에게 잡혀버렸다는 절망감.
 거기에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예감이 뒤섞여 자실장을 감싼다.

 뿌지지지지직!!

 뿌직! 뿌직! 뿌지지직!!


 그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자실장은 탈분한다.
 공포심을 느끼면 똥을 싸는 것이 실장석의 본능.
 남자가 앗!하는 사이에 자실장은 이미 자신의 머리통만큼이나 팬츠를 빵콘시키고 말았다.


 "우왓!! 더러워!!"


 자실장의 빵콘에 남자는 깜짝 놀라 들고있던 손을 휘두른다.


 "테-------"


 남자의 손을 떠나버린 자실장.
 몸이 붕뜨는 느낌에 놀라 자실장은 눈을 치켜뜬다.

 순간 아래에 있는 친실장과 눈이 마주친다.


 "마마--- 도와..."


 퍼석




 자실장은 그대로 수직낙하한다.
 그리고는 데친 토마토가 뭉그러지듯이 그대로 터져버렸다.
 도와달라는 한마디 말조차 끝내지못할 정도로 빠른 순간이었다.
 단 1초만에 자실장이 고기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왓! 손에 묻었어! 제기라아아알!!"


 남자는 손에 한방울 튄 자실장의 녹색똥에 절규하며 뛰어간다.



 "데, 데, 데, 데......"


 친실장은 온몸을 벌벌 떨면서 허둥지둥 자실장의 잔해로 다가간다.
 터져버린 핏덩이 앞에 털석 무릎을 꿇는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손으로 조금전까지만해도 딸이었던... 고깃덩어리를 조심스레 끌어안는다.


 주륵

 툭

 투둑


 친실장이 손을 대자마자 고깃덩어리는 마치 흐물거리는 죽처럼 파스라진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고 조심조심 고깃덩이를 헤쳐나간다.
 그리고 자실장의 머리통을 발견한다.


 "데, 데, 데, 데, 데... 데데...."


 머리통이라고 하지만 절반 밖에 없다.
 이마 위쪽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으깨져서 순두부같은 회백색 점액이 걸쭉하게 묻어나온다.
 두 눈알은 완전히 짓뭉개져 있었고, 이빨은 하나같이 깨져 있었다.
 예쁜 테치테치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던 목구멍으로 찌부러진 내장이 스멀스멀 밀려나오고 있다.


 "데, 데, 데, 데, 데쟈아아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아아!!!! 데쟈!! 데쟈! 데쟈아아아아아아!!!"


 친실장은 자실장의 반 남은 머리통을 붙잡고 절규한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처절한 비명만을 지르는 친실장.
 눈에서는 피눈물을 넘어 새까만 눈물이 흘러나온다.
 슬플때 나온다는 적록색의 피눈물보다 한 단계 위의 검은 눈물이다.
 위석을 자괴시킬 정도로 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흘린다는 눈물.

 그만큼 지금 친실장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전부인 아이였다.
 하나뿐인 아이.
 모든 것과 바꾸어 겨우 지켜낸 아이였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쯤이야 언제든지 줘도 아깝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아이도 참 순박하고 착했다.
 가끔 아이다운 실수도 저지르긴했지만, 자신에게 아까우리만치 착하고 현명했던 딸이었다.
 희망이었다.
 마지막 삶의 보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그런 딸이.
 지금은 머리통만 남았다.
 대답없는 고기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친실장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그 절망감이 얼마나 깊은지.
 그 누구도 감히 짐작조차 못하리라.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갸아아!! 데갸! 데갸!! 데갸아아아아아!!!"


 친실장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위로 젖혀 연신 기성만을 질러댄다.
 눈물은 흘리지만 특유의 오로로롱하는 슬픔의 소리도 없다.
 딸을 죽인 남자. 닌겐에 대한 원한도 토로하지 않는다.

 지금 친실장이 절규하는 대상은.
 비탄하는 상대는 그 남자도. 닌겐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왔던 모든 것.
 어린 시절 어미의 뱃속에서 강제로 끄집어 나온 이후부터 시작해서,
 자매와 친구들이 모조리 어육이 되어 갈려나가던 교육석 시절,
 애완실장 판매대에서 하루 열일곱시간씩 애교를 부려야했던 그때,
 남자에게 팔려와서 며칠만에 질려버려 구박을 받던 때,
 그리고 아이를 낳자마자 쫓겨나버렸던 때,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박해와 괴롭힘을 당했던 때...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그 무언가.
 그녀를. 아니 실장석이란 존재 자체를 휘감고 있는 온갖 부조리함에 대해 그녀는 절규하는 것이다.


 케폿!!


 "쿨럭!쿨럭!"


 연신 괴성을 버럭버럭 질러대던 친실장의 입에서 검은피가 쭈욱 솟구친다.
 너무 소리를 지르느라 목이 심하게 상해버린 것이다.
 큰 혈관이라도 터진듯 연신 꺼룩꺼룩하면서 검은 핏덩이를 토해낸다.
 한참을 토해내고서야 멈춘 친실장은 조금 정신을 되찾은듯 조용해진다.


 질퍽


 다시 딸의 사체를 만져보는 친실장.
 아까와는 달리 차갑다.
 식어버린 것이다.


 "데스우... 데스... 데스......... 데...... 데데... 미안한데스우... 미안한데스... 마마가 미안한데스..."

 "마마가... 마마가...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것인데...스...."

 "숨는게 아니라 도망갔으면 괜찮았을 것인데스... 마마때문인데스... 마마때문에 네가 죽은데스... 미안데스.... 미안해데스.."


 친실장은 무릎을 꿇은 채로 중얼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두건을 벗어 땅에 펼친다.
 두건 위에 딸의 시체. 아니 잔해를 옮기기 시작하는 친실장.


 철퍽...

 주르륵..

 "데에에엥... 데엥... 마마와 같이 산으로 가잔데스...."


 철퍽


 "너는 없지만... 그래도 마마와 함께 가는데스... 좋은 곳에 묻어주는데스..."


 툭

 투둑


 "집앞에... 아니 집 안에 묻는데스... 거기서라도 마마와 함께... 오래오래... 계속 살아가는데스우..."



 친실장은 연신 검은 눈물을 뚝뚝 흘러가며 딸의 잔해를 담는다.
 땅에 떨어진 신발, 손끝, 발끝, 피부조각까지 샅샅이 찾아 옮기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서 비척비척 움직인다.


 "......산으로 가는데스... 이 아이의 소원이었던데스우... 산으로 가서... 산을 보여주는데스..."


 힘이 완전히 빠진듯 비척비척 비틀비틀대는 걸음이지만 그래도 친실장의 걸음은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눈앞의 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실장석의 걸음으로라도 이삼십분만 걸으면 어귀에 닿을 것이다.


 "산.... 산인데스... 보이는데스우? 저곳이...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살고 싶어했던 산 데스우..."


 굳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 든 두건에 말을 거는 친실장.


 그때 친실장의 뒷편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 저깄다!! 저놈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친실장은 뒤를 돌아본다.
 나타난 것은 아까전 자실장을 죽인 남자와 처음보는 남자였다.
 처음보는 남자는 손에 이상하게 생긴 긴 막대기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저놈이라구요! 나한테 탁아하려고했던 놈이!!"

 "아,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시죠."


 처음보는 남자는 긴 막대기를 들어 친실장을 가리킨다.


 "이, 이자식이 사람 장사를 말아먹어도 유분수지! 어디 할 짓이 없어 내 가게 앞에서 탁아질이냐!!"


 긴 막대기는 호를 그리며 친실장의 목덜미로 떨어진다.




 "데에?"





 뻐억!






 툭





 "우왓?! 죽었어요?"

 "그럼요! 한방에 머리를 날려버렸습니다."

 "정말... 이런 대낮에 탁아나 당할뻔하고..."

 "며, 면목이 없습니다 손님! 항상 가게 주변은 깨끗이하려고 애쓰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아! 손은 닦으셨나요?"



 두 남자는 무어라고 제멋대로 지껄여대며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길가에는 친실장이었던 머리통과
 자실장이 담긴 두건이 오도카니 놓여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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