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가득 찬 행복

 


철수씨는 오늘의 첫 출근을 준비한다.
부모님의 성화에 결정한 진로지만 아무튼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이기도 하다.
하지만...정말로 꿈을 포기한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졸라메는 넥타이와 거울에 비춘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입은 자신의 모습은 어린
시절 꿈꾸던 그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어색하기까지 하다.
일터로 떠나는 길,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봄날의 따스한 햇볕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에 지쳤는지 비틀비틀 힘없이 돌아다니는 실장석들이 보였다.

1년 365일, 사시사철 실장석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성체나 되어야 대형갑충류와의 싸움이 성립할 정도로 허약해 빠진
이 괴생물체들은 생태계의 최약자.

멀리 원정을 나온 개미나 지렁이 정도 외에는 사냥이 불가능하고 채집을 하려해도
그 통제불능의 번식력과 자에 대한 미칠듯한 욕구로 불어난 지나친 머릿수와
기본적으로 거주공간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공원이라는 점에서 오는
식량과 식수의 절대 부족.
자연이 풍요로운 계절이라도 하루 끼니 구하기도 버겁거니와 이제 봄을 겨워
여름을 맞이하려는 때에 이 공원에는 먹을 만한 과일이나 열매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도 작년에 비해 구하기 어려워진지 오래.
예전이라면 연말의 도로 정비로 쏟아부을 남은 예산들을 실질적 실장석 피해에
대한 방지책이라는 명목으로 대부분의 지자체가 실장석 대비 공사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나마 J시는 먹거리로 유명한 고장이라 음식점들도 노점들도 그만큼 많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가 좀 있기에 이 공원의 실장석들도 버틸
수 있는 셈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인간이 설치한 상하수도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사막이나 다름없는
메마른 공간이다.
그렇기에 실장석들은 매순간, 자신과 자신의 자들을 위한 먹거리와 마실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지금 공원의 한켠, 어젯밤 누군가 먹다가 두고 간 비닐봉투를 뒤적이는 이
친실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데히....귀한 봉투를 얻은 건 좋지만 먹을 건 별로 없는데스우...”

실망한 표정으로 입가에서 침을 조금 늘어뜨린 체 비닐봉투를 접어 자신의 봉투에
밀어 넣는다.
집에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귀여운 자들. 어제는 지렁이 한 마리로 참아야했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보이는지 어제 거의 빈 봉투를 보고는 삼녀는 피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서든 먹을 것을 구해야만 하는데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동족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굶주림에 지친 표정으로 여기저기
를 소득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간간히 공원에 보이는 닝겐에게 다가가 먹을 것을 구걸해보지만 운이 좋아야 그냥
쫒겨나고 재수 없으면 죽음이 어깨동무를 걸어온다.
친실장은 지친 발에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주변을 살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상냥하고 든든하던 마마, 다른 자매들. 모두 함께 노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그 때까지는 아직 공원에 동족이 이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식사시간에는 밥이 항상
풍족했다.
자신까지 10명이나 되는 자매들이 먹어도 보존식을 확보할 수 있을만큼, 지금 자신은
고작 4명의 자를 키우는 것도 버겁지만.....

‘어쩌면 그게 마마와 와타시의 차이일지도 모르는데스. 와타시가 무능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인데스.‘

친실장은 잠시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막 깊어지는 봄. 춘궁기라는 말이 있듯 풍요할 것 같으면서도 정작 먹을
것은 부족한 계절.
늘어난 실장석으로 인해 주변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 관리에 더욱 신경 쓰게
되면서 정말이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와타시 힘든데스우...그래도 마마인데스우...힘내야하는데스...’

데-히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쉰 친실장은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그 때, 저 멀리에서 데스데스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 마마와 함께 나왔던 소풍의 날, 좋은 닝겐상
들이 푸드를 뿌려주던 그 날처럼.

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 발걸음을 소리가 울려퍼지는 쪽으로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의심은 확신으로 그리고 이내 환희로 변했다.

다시 돌아왔다! 좋은 닝겐상들이 다시 와주었다!
이제 곧 공원은 예전처럼 풍요로워지겠지.
닝겐상들이 주는 것에만 의지하지 말고 더 열심히 밥을 모아서 보존식을 챙기고
보존식이 충분해지면 마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들과 함께 소풍을 나서자.
마마에게서 독립할 때 선물로 받은 소중한 콘페이토도 챙겨나가자.
두 알이니 반으로 쪼갠 것을 자들에게 하나씩 주면 딱 떨어진다.
착한 자들이 마마에게도 나눠주겠다고 해도 꾹 참고 양보해야지.
아마 그런 것들이 행복일 것이다.

“데? 뭔가 다른데스우?”

공원 중앙의 광장에는 친실장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푸드를 뿌려주는 닝겐상들. 그리고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아줌마들이 버둥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푸드를 마구 주워 입에 우겨
넣거나 봉투에 집어넣는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은 데스데스 떠들지 언정 둥글게 뭉쳐있는 것이 아니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파란 옷의 닝겐상이 크게 말했다.

“자-!푸드를 받고 싶은 실장석은 줄을 서서 기다리렴. 그렇지 않으면 푸드는 주지
않을거야! 줄을 서!“

보통이라면 분충이 이럴 때 나서서 ‘고귀한 와타시에게 무조건 다 바치는데스!’
라며 땡깡을 부리겠지만 혹독한 겨울을 버텨낸 실장석들 중 그렇게 멍청한
녀석은 없는 듯 하다.
적어도 파란 옷의 닝겐은 무섭고 그 뒤에 서있는 다른 닝겐이 들고있는 길쭉한
막대기에서 동족의 피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는 것이다.

“오마에도 푸드를 받으러 온 데스까? 정말이지 다행인데스. 이제 자들이 굶지
않아도 되는데스. 오로롱 오로롱-“

친실장은 줄 끝으로 가서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앞의 실장석들은 모두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오로롱 오로롱 울며 앞에서 푸드를
받아 자신의 집으로 신나게 뛰어가는 동족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공원 내부의 실장석들이 얼마나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친실장의 차례가 돌아왔다.
파란 옷의 닝겐상, 아니 이제 닝겐사마라고 불러야할 그 분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친실장에게 말했다.

“새끼는 몇 마리나 있니?”
[데...4녀까지 넷인 데스우...]

검은 기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그 닝겐사마는 친실장의 봉투에 듬뿍 푸드를
담아주었다.

친실장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푸드! 인간들이 실장석의 입맛에 맞춰 만든 신비한 먹거리. 좀처럼 썩어버리지도
않고 오래 두었다가 먹어도 맛도 한결같은. 무엇보다 맛좋은 먹거리.
자신이 평생 노력해야 이 정도의 푸드를 모을 수 있을까.
어쩌다가 공원에 방문해주는 고마운 닝겐상들의 선물로 한 줌의 푸드를 모아봐야
당장 하루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실장석의 생인지라
바로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그대로 먹어치워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아깝고 아까워서 자들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푸드를 나누어줄 때 묻은
가루를 쪽쪽 빨며 제발 내일은 먹이를 구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 정도 양의 푸드라면 푸드만 먹더라도 일주일은 버틸 것이다.
자신은 어찌어찌 잡초나 다른 것들을 먹고 버티며 자들만 먹인다면 한 달도 버틸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친실장의 두 눈에서는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이 위기를 넘겼다.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은 이제 살아남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롱, 오로롱~고마운데스우. 정말로 고마운데스우~]
“자, 그럼 집으로 가기 전에. 좋은 이야기 하나 듣고 가렴.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봐도 좋으니까.“
[데?]

친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이야기라니 무엇일까. 아무튼 푸드도 나누어준 좋은
닝겐상이니 어떤 이야기건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친실장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정도 푸드면 너희 가족이 일주일은 먹을거야 그렇지?”
[그런데스우.]
“그런데 그 일주일이 지나면?”
[어떻게든 먹을 것을 모아보는데스.]
“갈수록 밥을 구하기 힘들어 질거야. 벌써 여름이 다가오잖아. 물도, 밥도 모으기도
보존하기도 힘들거다. 게다가 많은 비가 오면 대부분의 실장석은 죽어버리겠지.“

남자의 말에 친실장은 자신의 마마가 해준 교육들을 떠올렸다.
여름에는 밥이 쉽게 상해서 먹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물도 금방금방 어디론가 사라지니 패트병을 꼭 구해서 뚜껑을 닫아두어야 한다고
했다.
뜨끈뜨끈한 병이 찾아와 자들을 아프게 하니 자들이 마구 노는 것을 못하게 교육
시켜야 한다고도 했었다.
비가 마구마구 내릴 때가 많으니 조금만 수상해도 집으로 돌아와 비닐을 지붕에
올려서 돌로 눌러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닝겐상들이 평소보다 화가 많이 나있을 때가 많으니 가능하면 접근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도 했다.
무서운 바람이 불어올 때를 대비해서 집을 고정시킬 무거운 돌도 며칠이 걸리건
조금씩 끌어와서 준비해야한다고도 했다.

‘마마에게 배운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무서운 계절이었던데스우...’

겨울의 가혹함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자매들 중 살아남은 것은 와타시 하나, 나머지는 전부 얼어죽거나 식량을
훔쳐 먹으려다가 죽거나 마마에게 반항하다가 죽거나, 사육실장이 되겠다고 나가서
아무 소식도 없거나, 아무튼 죽어버려서 보존식이 되었다.
친실장은 늦여름에 태어났기에 다소 덥고 목마르고 가려워 힘들기는 해도 버틸만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이제 자신과 자신의 자들이 함께 견뎌야 하는 여름은 그
수십배는 가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자신은 실장석이고 견뎌야만했다.
사랑스러운 자들을 위해서.
그 때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나하마. 사육실장은 아니지만 너희 가족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거야. 밥도 나오고 가족을 흩어놓지도 않는다. 어떠니?“
[데스우?]

친실장은 순간 굳어버렸다.
너무 좋은 제안이라서 역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분명 이 닝겐상은 아주 좋은 닝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고작 실장석’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한 이야기를 해주다니?

특별한 와타시 어쩌고하는 행복회로가 발동했다면 순식간에 넘어갔겠지만 친실장은
어릴 때부터의 삶의 경험과 마마의 교육으로 인해서 적어도 인간들은 자신들을 별로
특별히 여기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특별히 죽이고 싶어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기에 치솟는 욕망에도 선뜩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남자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극소수 개념개체인가...거 참.’이라고 못 알아들을 말을
중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다시 말했다.

“네가 마지막인 것 같으니 좀 더 이야기가 길어져도 상관없겠지. 아무튼 네가
새끼들을 키우기에는 점점 힘들어질거란다. 하지만 우리를 따라오면 새끼들도 너도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세레브한 생활은 아니다만 위험하거나 힘든
생활도 아니란다. 그건 내가 약속하마. 자, 이걸 받고 집으로 가서 잘 생각해보렴.
만약 나를 따라올 거라면 내일 다시 이 곳으로 나오면 된단다.“
[알겠는데스...푸드 감사한데스우...]

친실장은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옆의 다른 닝겐상과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친절한 닝겐상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집으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푸드를 받아가던 다른 실장석들도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신나게 뛰어가면서도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임은 틀림없었던 것이다.

툭!

“뎃? 집에 벌써 온데스우...”
“마마테치! 마마가 온테치!”
“마마 오늘은 밥 있는테치? 와타치 배가 꼬르륵꼬르륵하는테치!”
“테에엥! 마마가 없어없어되어버린줄 알았던테치!”
“마마가 온테치! 행복테치-!”

멍하니 걸어오다가 자신의 집에 몸이 부딪히고서야 집에 도착했음을 깨달은 친실장.
사랑스러운 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언제나 같은 집의 모습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슬슬 낡아 버석거리기 시작하는 골판지, 마마가 독립선물로 구해준 것이지만 새것을
구해줄 수는 없었기에 겨울을 못 견디고 죽은 다른 일가의 것을 가져왔다.
안에 깔린 낙엽도 마르다 못해 바스러진 가루가 되어가고 있다.
패트병도 고작 하나. 물을 저장하기에 충분치 않아 여름이 온다면 물이 부족할
수도 있다.
아직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운치굴도 충분히 깊지 않다.
마마가 말했던 배수로라는 것을 여름이 오기 전에 파기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친실장은 자신의 집을 보면 볼수록 여름나기에 대해서 회의적이 되어갔다.
자들은 바로 집으로 들어와 밥을 주지 않는 어미에게 보채기 시작했다.

“마마-빨리 와주는테치! 배고픈테치!”
“집 잘 본 테치! 마마, 좋은아이 해주는테치!”
“배가 계속 꼬르륵하는테에엥-”
“마마! 어서 들어오는테치!”

고민은 고민이고 자들은 자들이다.
친실장은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옷과 머리에 온통 바스러진 나뭇잎이나 흙알갱이 따위를 묻힌 자들을 들어 한 번씩
핥아주었다.
끈적거리는 친실장의 혀가 얼굴과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은지 ‘테츄웅~’
이라고 울음소리를 내며 귀와 손발을 파닥여 행복감을 표시하는 자실장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친실장은 넘쳐오르는 행복감에 미소지었다.
먹을 것이 없다면 이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굶주린 자들의 투정과 무능한
친으로서의 비애만이 남아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어야 했겠지만 오늘은 푸짐한 밥이
있다.

자실장들도 친실장이 들어올 때부터 피어오르는 고소한 냄새와 근래 보기 드물게
빵빵해진 봉투에 눈치를 챈 것인지 눈을 밤하늘의 콘페이토마냥 반짝이며 다물어지지
않는 입가에서 끊임없이 군침을 흘려가며 친실장의 봉투와 손을 보고 귀를 파닥이고
있었다.

그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서 친실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봉투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눈으로 확인한 자실장들은 일제히 행복감에 겨워 빵콘하며
뒤로 넘어져버렸다.

“테햐아아~ 푸드인테치!”
“마마 굉장한테치! 푸드가 한가득인테치! 너무너무 많은테치!”
“이런 마마의 자로 태어나서 와타치는 행복한 실장석인테츄~”
“대단한테치! 마마는 위대한테치! 최고인테치!”
“데프프프~ 자들은 어서 먹는데스. 마마가 나주어주는데스.”

친실장은 자들에게 푸드를 넉넉하게 3개씩 꺼내어 주었다.
자실장에게 푸드 3알은 조금 많은 느낌이고 아껴야할 소중한 식량이지만 지금까지
굶주려온 자식들에게 배부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테챱테챱테챱-최고테치! 푸드인테치!”
“행복한 맛인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아이라 정말 행복한테치!”
“테챱테챱.....”

바닥에 놓인 푸드를 아이들이 곰인형을 품에 안 듯 끌어모으고 고개를 그대로
쳐박은 체 테챱테챱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침과 푸드 가루가 휘날리는 와중에도
마마에 대한 감사와 칭송을 잊지 않는 자실장들.

자들의 자신을 칭송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와 행복감을 가득
채워준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들은 배를 곯게 되겠지.
굶주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마마 배고픈테치....’하는 힘없는 울음을 내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것은 다시 하기 싫은 경험이었다.

친실장은 다시 한 번 사랑스러운 자들이 정신없이 밥을 먹으며 행복감으로 테츄웅~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입을 놀리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그 친절한 닝겐상을 따라가기로.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실장석이라도 지금의 공원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도박을 해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간만의 포식으로 배가 잔뜩 부른 채, 행복한 울음소리와 함께 쉼없이 귀를 파닥이며
잠든 자실장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운 친실장이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깨웠다.
어제의 결정대로 오늘은 그 친절한 닝겐상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지사 자실장들도 자신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 친실장은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소중한 패트병을 기울여 그 안의 물을 다용도로 사용하는 이빠진 간장 종지에 담고
먼저 고개를 기울여 한 모금 가득히 들이켰다.
밤새 차가워진 물이 주는 청량감에 데캬아~하고 시원한 울음소리를 낸 친실장은 남은
물로 얼굴을 되는대로 깨끗이 닦아낸 후, 친실장은 간만에 포식을 한 덕분에 여느
때보다 깊게 잠들어있는 자실장들을 흔들어 깨웠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모두 어서어서 일어나는데스우~ 빨리 일어나지 않는 자는
푸드없는데스~“
“텟!”
“푸드테치!”
“일어난테치! 와타치 일어나버린테치!”
“와타치는 아까부터 일어난테츙~”

어제 먹었던 푸드가 그렇게 맘에 들었던 것일까.
팔다리를 바둥대며 후다닥 일어나 눈을 비비며 부산을 떠는 자실장들, 친실장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보며 하나씩 품에 안아 물을 먹도록 도와준다.
자실장들은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몸으로 팔은 물그릇에 넣어 고정시키고 머리를
처박으며 물을 혀로 핥아 입으로 가져가고 그 청량감에 어미와 마찬가지로 테츙~
하며 기분좋음을 표현한다.

친실장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푸드를 꺼냈다.
자실장들은 어제의 푸드 맛이 기억났는지 귀를 파닥이며 분홍색의 혀를 날름거리며
쉼없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번에는 자실장들에게 2개씩 놓인 푸드, 어제보다 적은 양의 푸드에 잠깐 귀가
아래로 쳐지는가 싶었지만 고소한 향기가 올라옴에 따라 입꼬리도 따라서 올라간다.
친실장 4개, 자실장 2개씩. 즐거운 식사시간은 금새 끝나고 친실장은 만족스러운
테츙~소리와 함께 빵빵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는 자실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들은 모두 잘 듣는데스우.”
“테치?”
“오늘 우리는 어떤 친절한 닝겐상을 만나러 가는데스. 이 푸드도 그 닝겐상이
마마에게 주신데스. 그러니 자들도 인사를 잘 하는데스.“
“테에...고마운 닝겐상테치. 인사 잘 하는테치.”
“와타치도 인사 잘 하는 아이라고 칭찬받는테치.”
“그리고 닝겐상이 우리를 어딘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던데스.”

친실장의 한 마디에 자실장들이 일제히 술렁거린다.
인간이 자신들을 데려간다. 이것은 곧 사육실장이 된다는 말 아닌가?

“테챠아아! 마마 굉장한테치! 어마어마한테치! 사육실장이 되는테치카?”
“테츙~ 와타치도 마마 덕분에 사육실장인테츙~”
“세레브해지는테치! 사육실장이되는테츄!”

친실장은 흥분해서 마구 떠드는 자실장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닌데스. 사육실장은 아닌데스. 하지만 배고프거나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
간다고 한 데스. 우리 모두 가서 행복해질 수 있는데스. 자들은 그러니 마마를
따라서 오도록 하는데스.“
“테에이이....”

사육실장이 아니라는 말에 자실장들의 귀가 쳐지고 입꼬리도 아래로 내려간다.
하지만 위험하거나 배고프지 않다는 말에 만족한 듯, 이내 귀를 파닥이며 마마의
품에 안겨온다.

“마마 덕분에 좋은 곳으로 가는테츄~”
“마마의 아이라서 행복해지는테치~”
“사육실장은 나중에 해도 되는테츄. 마마랑 같이가면 더 좋은 테츄~”
“텟테로게~ 행복해지는테츙~”
“정말 다들 좋은 자들인데스. 자, 그러니 지금부터 몸을 깔끔깔끔이 하는데스.
닝겐상이 보더라도 좋아할만큼 깔끔하게 하는데스.“

말을 마친 친실장은 입을 남은 물로 헹궈내고 한 마리 한 마리씩 자실장들을 안아
올려 혀로 얼굴과 몸을 핥아주었다.
친실장의 분홍색 혀가 자실장의 얼굴과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푸드 부스러기나
음식물 찌꺼기의 국물, 흙이나 나뭇잎 부스러기 따위가 묻어나왔다. 친실장은 끈기
있게 입을 물로 계속 헹궈가며 머리카락이나 얼굴은 물론 팬티를 벗겨내고 녹색의
운치 찌꺼기가 눌러붙은 총구까지 샅샅이 핥아주었다.

개운해지는 느낌과 함께 오는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떤 장녀를 내려두고 다음 차녀,
삼녀, 사녀를 연속해서 핥아내고 나니 패트병에 물이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이 잘 된다면 더 이상 이곳으로 오지 않을테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이 남은 친실장은 마지막으로 남은 푸드를 잘 묶어 돌로 눌러서
떠돌이 고아실장이 넘보지 못하도록 단속한 뒤 자실장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가족의 발걸음을 축복하는 듯이 하늘도 너무나 맑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스하고 좋은 날씨였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바깥 나들이에 흥분한 것인지 자실장들은 팔을 휘적휘적 내지르며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텟테로게~ 마마와 함께 행복한 곳으로 가는테치~ 텟테로게~ 사육실장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사는테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실장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던 친실장은 다른
쪽에서 걸어오는 일가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얼어붙고 자실장들은 양쪽 모두 자신의 친실장의 뒤로 숨었다.
잠시 동안의 긴장이 지나고 친실장이 말했다.

“오마에도 그 닝겐상에게 가는데스....?”
“데! 그런데스! 와타시도 거기로 가는데스. 오마에도 그런데스?”

목적지가 같은 곳임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어제 간만의 포식으로 만성적으로 자신들을 지배하던 허기에서 벗어나서일까.
분위기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두 친실장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가기로 했다.
자실장들도 어느새인가 어울려 함께 텟테로게~ 하며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팔짝팔짝
뛰어 자신들의 어미를 쫒아오고 있었다.

다시 찾은 광장, 그곳은 우글우글 모여든 실장석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많은 숫자의 닝겐상들이 그 실장석들을 가족끼리 모아 커다란
골판지 상자같은 곳에 옮기고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압도된 친실장이 다소 주눅든 목소리로 데스우~하고 울어
자신의 새끼들을 근처로 끌어모았다.
너무 많이 모여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소중한 자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푸드를 받아갈 때와는 다르게 줄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기다릴 것 없이 가족 숫자만 확인하면 그대로 골판지같은 것에 집어넣어주기 때문
인 것 같다.
친실장은 이곳까지 함께 온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어제의 그 닝겐상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자들과 함께 온 데스우 닝겐상. 앞으로 잘 부탁드리는데스.]
“오, 그래! 잘 왔다. 앞으로 행복하렴. 최군. 친실장 하나. 자실장 넷.”
“예, 중간 사이즈 하나 주세요.”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청년은 다른 한 사람에게서 넘겨받은 플라스틱 상자를 능숙하게
조립하더니 그곳에 매직으로 1+4 라고 적고 그 안으로 친실장과 자실장들을 들어
올려 집어넣었다.

친실장은 그 손놀림이 거칠거나 사납지 않고 얌전히 다뤄준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는 도중에도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자들만큼은 살릴 방법이 없을
까 계속 고민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좋을 듯 싶었다.
친실장은 낮선 환경에 긴장한 자실장들을 달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내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가족별로 상자에 담겨 차로 옮겨졌다.
상자의 뚜껑이 덮혀 하늘이 어두워지자 자실장들이 일제히 놀라 울기 시작했다.

“마마, 어두워진테치! 갑자기 밤이온테치!”
“테에에엥 무서운테치! 깜깜한테치!”

울며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들을 끌어안고 친실장은 이것은 무서운 것이
아니며 닝겐상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자실장들은 진정이 되었는지 아침에 세수를 시킨 보람도 없이 적록의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을 친실장의 품에 마구 부비며 테츙~하고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친실장 역시 자실장들의 체온으로 인해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보에 보에
자장가를 불러 자실장들을 재우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일까?
자실장들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친실장 자신도 몰려오는 잠에 조금씩 눈이 감기는
것을 느끼며 자실장들을 더욱 꼭 품에 끌어 안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정말 이 자들만큼은 행복하고 또 행복할 수 있기를.
은근히 풍겨오는 정체모를 달큰한 냄새와 함께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맞기며
친실장은 천천히 코를 골기 시작했다.

털컹!

얼마나 잠을 잔 거지?
친실장은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모두 그대로 있다.

아직도 자고 있는 새끼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깨를
쓰다듬었다.
배가 고픈 것과는 조금 다르게 무언가 허한 느낌이 잠시 들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웅웅거리는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실장석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곳은 여러분에게 있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일 것
입니다. 모두 앞의 파이프를 봐주세요!“

테챠아아!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놀라 잠에 깬 새끼들을 달래며 친실장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제 와서 안 일이지만 아까의 그 단단한 골판지 상자가 아니라 뭔가 푹신한 것이
잔뜩 깔린 집 안에 자신들은 들어와 있었다.

원래 사용하던 것보다 크고 모양도 멋진 녹색의 그릇도 하나.
자실장들을 위한 것인지 깨지거나 뭉개지지 않은 말짱한 공도 하나 있었다.

역시 그 닝겐상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친실장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지금 들려오는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도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자실장들의 키와 비슷한 높이에 굵직한 기둥같은 것이 가로로
지나가고 있었다.
닝겐상들이 토관이라고 부르던 작은 동굴과 비슷하면서도 크기는 좀 더 작은 것
같았다.

“자, 그 곳을 보면 여러분 방향으로 튀어나온 수도꼭지가 있고 그 아래 녹색의
버튼이 있을 것입니다! 찾았나요?“

그 목소리에 대답하듯 여기저기에서 데스데스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친실장은 집(이라고 생각되는 것) 바깥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본다.
놀라웠다. 놀라운 광경이다.
닝겐상들이 아파트라고 부르던 그것처럼 실장석들이 들어간 집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자신처럼 주변을 살펴보려고 나온 것인지 놀란 표정으로 사방을 훑어보는 동족들이
잔뜩이다.
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까마득하게 있는 것이 전부 집이란 말인가.
옆으로는 또 어떤가.
대체 닝겐상들은 이렇게 많은 실장석들과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친실장은 어제부터 계속된 변화와 충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자실장들은 공을 발견했는지 그것으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다시 큰 닝겐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 수도꼭지 아래에 그릇을 대고 버튼을 누르세요. 물을 구하는 것과 비스한
겁니다!“

친실장은 수도꼭지 아래에서 물을 받아내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참 공놀이에 열중한
자실장들 옆에 놓인 그릇을 가져왔다.
놀랍게도 전에 쓰던 그릇과 다르게 크면서도 굉장히 가벼워 쉽게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녹색의 버튼을 눌렀다.
자실장들도 어느새 노는 것을 멈추고 자신들의 친이 하는 모양새를 집중하여 바라
보고 있었다.

천천히 눌리는 버튼. 친실장은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긴장된 표정으로 버튼을
눌렀다.
달깍, 끝까지 버튼이 눌리자 수도꼭지 같은 것에서 미묘한 적갈색의 무언가가 쏟아져
그릇에 들어찼다.
뎃? 친실장은 놀라서 버튼을 누르던 손을 땠다.
그러자 더 이상 아무것도 토하지 않는 수도꼭지.
친실장은 곧바로 이해했다. 버튼을 누르면 이 뭔지모를 것이 나온다고.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밥입니다! 분명 맛있을거에요! 먹어보세요!”

닝겐상의 목소리가 마치 친실장이 무엇을 하는지 보기라도 한 것처럼 들려온다.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릇에 담긴 것을 보았다.
아무리봐도 보기에 영 먹고 싶어지는 색은 아니다.
모양도 꼭 자신들의 운치처럼 질척질척, 이게 밥이란 말인가?

근처의 다른 일가에서는 닝겐에게 속았다느니 운치는 밥이 아니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친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속은 것일까? 그 친절하던 닝겐상이 우리를 속인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 친절한 닝겐상이 그럴 리가 없다.
친실장은 눈을 딱 감고 그 뭔지 모를 것을 손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마마...안 되는테치...”

장녀의 힘없이 말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먹어야만 한다. 만약 위험하거나 못 먹을 것이라면 자신 하나의 고통으로
끝내야 한다.
친실장은 그 미묘한 물건을 입으로 옮겨 눈을 꼭 감은 채 천천히 삼켰다.
씹을 것도 없이 말캉말캉 부드러워 먹기는 쉬웠다.

데?

친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
맛있다!
달고 맛있다!

들실장으로 태어났다면 운이 좋아야 한 두 번, 운이 나쁘다면 일평생 꿈만 꾸다가
죽거나 코로리나 도로리, 도돈파 따위를 잘못 알고 먹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콘페이토만큼이나 달고 또 달다.

게다가 이 감칠맛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것보다도 좋은 맛이 난다.
게다가 잘 몰랐으나 입에 넣고 씹다보니 은은한 향기까지 풍겨난다.
최고! 최고! 그 닝겐상은 역시 천사였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우리를 구원해주는 천사였다!

친실장은 마구 입으로 퍼넣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자실장들에게 음식을
권했다.
마마의 풀어진 표정과 흘러내리는 군침에서 이미 맛을 짐작이라도 하거나 아니면

아침에 먹은 푸드가 이미 전부 소화가 되어버렸는지 망설임없이 그릇으로 달려든
자실장들.
이내 그것들의 표정도 풀려나가며 먹을거리가 주는 즐거움에 팔다리와 귀를 정신
없이 파닥거려 행복을 표현한다.

“마마! 대단한테치! 이게 콘페이토테치?”
“와타치는 이제 이것만 먹고사는테치! 행복인테치!”
“마마가 옳았던테치! 마마를 따르면 행복해지는테츄~”
“테챱테챱테챱! 와타치는 행복한 실장인테츙~”

머리를 숫재 그릇에 집어넣다 못해서 그릇 안으로 들어가다시피 하는 자실장의
왕성한 식욕으로 인해서 순식간에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아직 배가 덜 찬 것인지 아쉽게 서로의 얼굴과 손에 묻은 것까지 샅샅이 핥아내는
자실장들의 분홍빛 혀, 핥다보니 간지러운지 테프프프 웃어가며 다시 장난을 치려
다가 마마가 이 맛나맛나한 것을 주었음을 기억해냈는지 일제히 빛나는 눈과 파닥
거리는 귀로 어미를 바라본다.

“마마, 더 주는테치!”
“더 먹고싶은테치!”
“아직 배가 덜 찬 테치! 더 먹어야하는테치!”
“와타치는 착한 자이니까 이 맛나맛나를 더 먹을 자격이 있는테츄~”
“데..안 데스.”

친실장은 주변의 동족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곳에서는 어미가 자식들을 밀쳐내고 이 맛있는 것을 독점한 듯 비통한 테에엥
소리가, 다른 곳에서는 자신들은 저렇게 좋은 것을 못 먹는다며 괴로워하는 레에엥
소리가. 또 어떤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싸우다가 밀려난 것인지 고통을
알리는 테에엥 소리가 들려온다.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자실장들의 혀로 설거지까지 말끔이 끝난 그릇들 들어 다시
수도꼭지 아래에 두고 흘끔 눈치를 본다.
4쌍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기대에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친실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슬쩍 수도꼭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닝겐상, 이 맛나맛나를 더 주시는데스우...”

그리고 버튼을 꾸욱.
꿀렁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그릇이 차오른다.
친실장의 행복도 함께 차오른다.
자실장들의 기쁨도 차오른다.

가득 차오른 그릇에 이번에는 아까처럼 마구 들러붙지 않고 점잖게 둘러앉아서
식사시간을 가진다. 행복한 맛이 입 안을 가득히 채운다.
아아 정말 그 닝겐상의 말을 따르기를 잘 했다.
배가 가득해질 때까지 먹고 또 먹은 가족은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다른 집들도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버튼을
눌러서 먹으세요!‘ 라고 한 이후로는 다툼이 없어졌는지 행복한 웃음소리만이 들려
오다가 이내 도로롱 도로롱 코고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자실장들과 다른 동족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친실장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커다란 행운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몇 달 후.

오늘도 일가의 하루는 여느 때와 같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편히 쉬며 사랑스러운 자들과 시간을 보낼 뿐인데
이상하게 피곤해 느지막이 눈을 뜬다.
그 때 즈음 마찬가지로 늦게 눈을 뜬 자실장들과 함께 수도꼭지 주변에 둘러앉아
버튼을 꾸욱 눌러 그릇을 채운다.

자실장들도 하품을 하거나 귀를 긁적이면서 밥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가득 차오른 맛나맛나를 실컷 먹는다.
부족하니 또 한번 가득 채워서 먹는다.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이상하게 항상 행복한 맛이 나는 맛나맛나지만 배가 잘 안차는 것 같다.
아니, 배가 부르기 전에 다시 고파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행복의 시간이 길어지니 상관없다고 친실장은 생각했다.
자실장들도 여기 처음 온 그 날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 맛은 정말이지 항상 행복한 맛이다.

데~끄윽~
테끄~윽

배가 불러오면 이제 잠시 쉬는 시간, 자실장들은 함께 놀거나 친실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한다.
가끔은 옆집으로 가서 그 집의 자실장들과 놀기도 한다.
다들 같은 먹이를, 그것도 무제한으로 먹기에 예전처럼 동족식이나 습격 따위를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

친실장은 잠시 혼자 쉬다가 옆집으로 놀러간 자실장들을 부르러 갔다.
같이 놀던 옆집 자실장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친실장을 따라 다시 집으로 오는
자실장들. 언제 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나저나 옆집에도 운치구덩이가 없다.

이곳으로 온 이후에 운치를 해본 적이 없다.
빵콘도 물론 해보지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친실장은 배에 힘을 주었다.
아까 배가 터질 듯이 밥을 먹었으니 힘만 주면 빵콘이 되리라.
피식-
가스만 조금 나오고 빵콘은 소식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자실장들은 마마의 방귀에 놀랐다는 듯이 코를 부여잡고 테프프프 웃으며
뒹굴고 있다.
친실장도 멋쩍게 데프프 웃으며 자실장들을 끌어안았다.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방금 전 밥을 먹은 것 같은데 어느새 5개의 배꼽시계가 울린다.
다시 밥을 먹자. 친실장은 자실장들과 함께 그릇에 둘러모여 다시 버튼을 꾸욱
누른다.
또 행복이 가득히 쏟아져 그릇에 차오른다.

자들만 빨리 커져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친실장은 요즘 유일한 걱정거리인
생각을 하며 혀를 자극하는 멋진 맛을 즐긴다.
어째 겨울을 날 때의 자신보다 성장이 더디다. 이래서야 다시 봄이 올 때 독립을
시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맛난 것을 배불리 먹으니 분명 크고 건강한, 
좋은 마마가 되어서 자식도 많이많이 낳을 것이다.
그럼 손녀챠들과 함께 모여 행복하게 지내야지.
친실장은 다가올 더욱 행복한 미래에 웃으며 버튼을 또 한 번 눌러 이 무한하고
멋진 맛의 밥이 주는 행복을 즐겼다.
5개의 웃음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아, 이번에 여기로 배정된 분이구만!”

쾌활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긴장한 듯 조금 뻣뻣한 청년을 반긴다.
청년은 자신보다 나이도 직급도 높은 상대의 친밀한 대응이 멋쩍은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악수를 받아들인다.

“네! 이번에 J시 실장발전소. 실장관리과에 배속된 이철수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나는 그냥 김과장이라고 부르면 되요. 철수씨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나?“
“네, 실장석들의 전반적 관리입니다!”

청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한번 끄덕인 김과장은 철수의 손을 잡고
그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사실 실장석 관리라는게, 우리가 저것들을 사육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저 밥만
먹고 또 먹게 하면 되는 셈인데...그 밥 나오는 파이프 관리가 첫 번째.
“네..파이프 관리가 첫 번째.”
“두 번째가 바로 이거지. 위석 관리.”

김과장이 철수를 데려온 곳은 어떤 커다란 광장같은 곳이었다.
정체모를 기계장치들이 가득했는데 가운데의 그야말로 거대한 수조는 안을 가득 메운
녹색의 보석들로 그 광체가 주변을 환하게 밝힐 지경이었다.
김과장은 철수의 놀란 표정을 즐기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하나라도 검은 위석이 생겨나 파동이 변질되면 바로바로 찾아내서 꺼내
는게 우리의 주 업무지. 아~ 저 많은 것들 중에서 검은걸 어떻게 찾냐 하는 표정인데
위석이라는게 수명이 다 하면 가벼워지는건지 위로 떠오르니까 그냥 건지면 되요.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철수씨, 땡보로 온거야 땡보로. 하하.“
“아..그렇군요.”

여전히 긴장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 철수의 등을 한번 가볍게 친 김과장은 다른
직원에게 철수씨를 인수인계 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2028년, 실장석이라는 바퀴벌레처럼 번식하는 쥐새끼, 백해무익한 해충, 도저히 쓸모
없는 물건, 어느 별에서 왔니? 따위의 별명으로 불리던 실장석의
완전히 새로운 용도가 발견되었다.

한 과학자가 던진 가벼운 의문. [위석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서 이것들을 재생시키고
불사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반대로 에너지를 위석에서 뽑아올릴 수도 있는게
아닌가?]에서 시작된 연구는 그야말로 혁명을 일으켰다.

물론 실장석 하나의 위석이 발하는 에너지야 건전지 하나 수준. 그나마도 꾸준히
먹고 먹어야 그 정도이니 쓸모가 없다.
하지만 위석의 신비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대량의 위석이 모이면 모일수록 에너지가
증폭되는 성질이 있었고 시험적으로 준비된 환경에서 고작 10만 마리 실장석의
위석이 내뿜는 에너지 총량이 중소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하나와 맞먹을 지경이었다.

그 결과에 고무된 과학자들은 위석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추출. 전기에너지로 전환
할 수 있는 장치의 개발에 매달렸고 2년 전, 실용화에 성공했다.
역할성제라는 이름이 붙은 특수한 약물에 위석을 넣어두면 실장석이 살아서 에너지를
섭취하는 이상 그 에너지는 전부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는 신비한 장치.

그러나 그 에너지를 위해서 비싼 먹이를 실장석에게 먹이는건 본말전도이다.
그러므로 값싼 먹이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실장석의 생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관찰-학대파 연구진들이 나섰다.

실장석의 입맛이 극히 단순하며 첫인상에 강하게 좌우되는 점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압착, 가열하여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사카린 용액을 섞어 적절한
점도의 죽처럼 만든 후 식용향료를 섞는다.

최저한의 비용으로 만들어진 이 에너지 스프는 실장석들의 입맛에 딱 맞았고
실장석들은 들생활에서 마지못해 먹던 음식물 쓰레기를 천상의 음식으로 여기고
먹어치우게 된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에너지로 바꾸는 21세기 최고의 마법.
그것이 실장석 발전소였다.

“자, 철수씨. 여기가 실장석들 먹이 가공되는 장소. 음식물 쓰레기 처리소에서
건조 파쇄까지 돼서 오면 여기에서 사카린 용액하고 향료를 섞어서 나가는거야.“
“네...그런데 저것들 똥은 어떻게 하나요? 실장석이 똥 많이 싸는걸로 유명하던데..”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과장에 이어 자신을 안내해주고 있는 이대리라는 사람에게
철수씨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규모의 오폐물 처리 시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거. 안 싸.”
“네?”
“안 싼다구.”

위석에서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면서 얻은 또 다른 이익, 위석으로 보내질 에너지를
확보하기도 바쁜 실장석의 몸은 운치라고 불리는 배설물을 만들지 않는다.
모든 음식물을 완전히 에너지로 전환시켜버리는 것이다.
이 원리는 아직도 해명이 되지 않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냥 [아직 연구여지가
많이 남은 카오스파워 현상] 정도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럼...”
“그래서 새끼 때 오면 죽을 때까지 새끼지. 몸을 키울 수 없으니까.”
“아....조금 불쌍한 거 같네요.”
“뭐..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건 아닌데. 그래도 저것들은 이걸 행복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니까. 죽는 그 날까지 행복할거야. 적어도.“

철수씨는 유리창 너머 펼쳐진 실장석들의 대규모 주거공간을 바라보았다.
먹이가 끝없이 공급되는 파이프. 자식들을 잃을 걱정도 없는 삶. 분명히
공원에서 살아가는 들실장들과 다른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것들에게는 더 이상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곳에서 살다가 죽으면 바깥의 다른 실장석이 잡혀와 자리를 메울
뿐, 번식도 시도해봤지만 에너지를 끝없이 위석에 빼앗기기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J시는 이제 도시 필요 전기에너지 110%를 이 실장석 발전소로 충족하고
있어. 내후년 정도면 전국으로 확대될 거야. 원자력처럼 위험하거나 화력처럼
환경오염이 있는 것도 아니니....어제 뉴스보니까 이 기술을 미국이나 일본에서
사가고 싶어한다더라구. 완전 실장석 혁명이야.“
“그렇군요....”

실장석 혁명, 그 단어를 곱씹으며 철수씨는 집으로 돌아간다.
바람에 날리는 전단지에는 [당신의 애완실장석을 집안의 피카츄로! 실장석 5마리면
에어컨 전기세 걱정 끝! 배변교육도 필요없어집니다! 임신 걱정도 없습니다!
완벽한 실장석을 위한 최고의 선택 –가정용 실장석 발전기-]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편의점에서 가벼운 안주와 술을 사서 나서자 저 멀리에서 초겨울의 차가움에 견디지
못하고 탁아라도 시도하려는 것인지 자실장 몇 마리와 함께 서성이는 실장석들이
보였다. 
녀석의 텅 빈 비닐봉투는 초겨울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극과 고통과 망상일지라도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저 녀석들이 행복한걸까.
아니면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안주할 땅과 평화를 찾은 발전소의 그
녀석들이 행복한걸까.

열이면 열, 너 그걸로는 밥 못 벌어먹는 다는 말에 죽도록 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고 대신 누구나 부러워할 직장에 안착한 자신은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발전소의 실장석도, 공원의 실장석도.
물론, 철수씨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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