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 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아카기 산.
평균 해발고도 700미터의 제법 높은 산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후타바 시 남동쪽 전체와 서쪽 일부까지 감싸는 모양으로 있어 후타바 시민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 만발하는 봄이나 더운 여름이나 아름다운 단풍을 보여주는 가을이나 눈꽃을 피우는 겨울이나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에 관광지나 레져로서의 가치도 높다. 후타바 시에서 자란 시민이라면 학창시절에 누구나 가보는 아카기 하이킹 코스도 유명하고, 남쪽 호수에서 여름이면 시작하는 수상스키도 명물이다. 그외에도 다른 현에서까지 찾아오는 아카기 단풍축제, 아카기 눈꽃축제 등등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역시 후타바 시민에게 친숙한 것이라면 후타바 농산물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오랜 옛날, 아직 후타바 시(市)가 세워지기 한참 전부터 아카기 산 아래에는 농가(農家)가 있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아카기 산은 산밑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고,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지류는 근처의 농토를 가꾸기에 충분했다. 기름진 옥토에서는 질 좋은 쌀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나왔고, 산 바로 밑의 지대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다져진 썩은 낙엽들이 비료가 되어 훌륭한 야채들이 자랐다. 그리고 아카기 산의 나무가 나눠주는 밤, 호두, 죽순, 은행, 버섯 등등의 먹거리와 야생이 가꾼 합비, 임해, 영선 같은 약초는 주변 지역에서도 서로 사려고 달려들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후타바 시가 생기고부터는 농가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적지 않은 수가 남아있어 '후타바'라는 이름을 붙인 농산물과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었다. 경작하는 농토의 크기는 작아졌고, 사람들은 많이 떠났지만, 그 자리를 고효율 고소득의 특용작물과 농기계가 채웠다. 조합과 위원회가 자발적으로 설립되어 무분별하게 채취하던 산의 선물도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만큼만 채취하게 하여 농가의 수입과 자연의 보존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렇듯 아카기 산자락의 농가는 도시화로 인해 처참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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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시의 외곽의 도로.
아카기 산의 초입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검은색 웨건이 멈춘다.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트렁크를 열고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두 개 꺼낸다.
남자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마음을 굳힌듯 상자를 들고 도로를 벗어나 들판으로 걸어간다.
한참을 걸어 타고 온 웨건이 상자만하게 보이게 됐을 무렵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상자를 내려놓는다.
두 개의 상자 중 조금 더 작은 윗쪽의 상자를 치우자 데스- 데스- 하며 실장석 한 마리가 머리를 내민다.
[데에... 여기인데스우? 주인님....]
[그래 부타쨩. 이제 여기서 살아가야하는거야.]
[...책에서 본 곳과 비슷하게 생긴데스우... 언젠가 주인님이 읽어주셨던 동화책이었던데스.]
[.....부타쨩.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어떻게든 너 하나만이라면 다른데 맡길 수 있으니까...]
[데에에에... 아닌데스우... 와타시는 마음을 이미 굳힌데스... 주인님의 말씀은 정말 고맙지만, 자들을 버릴 수는 없는데스.]
[........]
[그래도 지금까지 와타시를 길러주시고, 또 자들까지 낳게해주시고, 또 이만큼이나 또 길러주셔서 정말 감사한데스우...]
[와타시 절대로 주인님의 은혜는 잊지 않는데스!]
[그래....]
남자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실장석을 내려다본다.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입었던 초록색 실장복을 입고, 옆의 자실장들의 손을 꽉 쥐고 있다.
자실장들은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테- 벌리고만 있을 뿐이다.
이전부터 말해왔지만, 이제 진짜로 주인님과 헤어져서 살아야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정말 실감하는 것이다.
[말한대로... 일단 당장 필요한 건 모두 이 상자에 있어. 그리고 이 전에 지어놓은 집도 실장석하우스라고 따로 파는 거니까 물에 젖고 그런 일은 없을거야. ...아마도.]
[걱정마시는데스! 와타시... 와타시는 잘 해낼 수 있는데스... 반드시 해내는데스우...]
[...그럼... 난 이만 갈테니까.]
[...잘 지내렴 부타쨩.]
[데, 데에... 안녕히 가시는데스우.... 주인님....]
남자는 말이 끝나자 바로 뒤돌아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실장석도 남자가 등을 돌리자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참았던 눈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두 손으로 꾹꾹 눈을 매만지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났다.
[데, 데데데데!! 주인님!!]
실장석의 목소리를 듣고 남자는 멈추어 선다.
[언젠가...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봐주러 와주시는데스우!! 그때까지 와타시가 자들을 훌륭하게 키워놓는데스!!]
실장석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는다.
남자는 잠시 멈춰 서있다가,
뒤는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흔든다.
[그래... 잘 지내고 있어.]
남자가 계속계속 멀어진다.
그렇게 컸던 주인님이 자기만하게 작아졌다가, 나중에는 자실장만큼 작아졌다가, 결국에는 아예 안보이게 된다.
남자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실장석은 쓰러지듯 엎어져 비통의 눈물을 흘린다.
오로로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로로로롱~~~~
새 손님이 아카기 산의 외곽에 자리잡았다.
손님의 이름은 부타.
3살짜리 성체실장과 8마리의 자실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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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타는 실장석 붐이 불었을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애완용실장석 공급업체에서 태어났다.
급조한 회사답게 혈통이 좋은 출산석은 거의 없었고, 알 수 없는 유통경로로 얻은 질 나쁜 출산석들 중 하나가 부타의 친실장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마마의 얼굴도 모르고 교육시설에 들어간 부타는 그 후 3개월 동안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독한 훈육과정을 거치고 살아남았다. 함께 들어갔던 자매와 친구들 중 90%가 눈앞에서 죽었고, 그 몸뚱이를 다음 끼니로 먹었다. 그나마 부타는 성품이 조용하고, 기억력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한 번 혼난 실수는 다시 저지르지 않아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던 것이다. 그 후 샵의 진열장에 진열되어 다시 3개월을 보냈다. 성체실장이 될 때까지 팔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햄버거 스테이크가 되는 그 샵에서 부타는 막 성체실장이 되기 직전에 남자를 만났었다.
그리고 남자와 함께 한 2년 반의 세월이 부타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후타바 소재의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하던 남자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실장석을 구입했고, 부타는 최선을 다해 남자의 외로움을 덜어주려 노력했다. 특별한 재주는 없었지만, 성품이 조용하고 몇 번 가르치면 간단한 집안일은 할 수 있어서 남자도 부타를 좋아해줬다. 애호파까지는 아니었지만, 학대파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 부타는 괴롭힘이나 아픔은 전혀 당하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집에 온 지 2년째 되던 해에는 남자의 허락으로 지금의 자들까지 가질 수 있었고, 이는 사육실장 중에서도 굉장히 드문 케이스였다.
분충이 태어나면 슬픈 솎아내기까지 각오한 부타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여덟마리의 자실장과 엄지실장들 중에 분충은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가 어미인 부타를 닮아 성품이 조용하고 착했으며, 실장석으로는 드물게 만족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실장푸드를 줘도, 다양한 장난감이 없어도, 콘페이토를 자주 주지 않아도 보채는 일이 없었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동안, 부타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침착하게 기다려준 남자의 공로도 큰 것이었다.
이후로도 부타의 행복은 계속 되었다.
남자의 졸업과 함께 취직이 결정되기까지는.
남자는 다른 현의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되었고, 독신자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당연히 기숙사에서는 부타를 기르지 못하였기에 따로 집을 구하려고도 해봤지만, 사회초년생인 그가 가진 돈으로 실장석 O,K인 집을 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주변 사람이나 부모님에 맡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실장석 한 마리라면 모를까 아홉마리나 되는 대식구를 맡아줄 곳은 없었다. 남자는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사실 이미 결론은 나있는 것이었다.
[마마... 주인님이 정말 떠난테치이...?]
[테에에... 마마... 무서운테치...]
[이곳이 산인테치? 굉장히 넓은테치! 너무 높아 천장이 보이지 않아테치!]
[레츄! 조금 추운레치이... 마마 추운레츄.]
부타는 자실장들의 목소리를 듣고 겨우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게다가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좌절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약속...
언젠가... 아주 많은 날이 지나더라도... 언젠가 다시 찾아올 주인님을 위해서라도 이 자들을 훌륭하게 길러야 할 사명이 그녀에게는 있는 것이다.
남자가 다른 공원이나 공터에 부타를 내버리지 않고, 굳이 이런 시의 외곽까지 와서 버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헤어짐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됐지만, 그래도 죽을 것이 뻔한. 최소한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은 곳에 아무렇게나 던져둘 수는 없다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것으로 부타를 버린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진심으로 부타가 오래오래 자실장과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들실장으로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부타가 살아가려면 일단 들실장이 없는 곳이라야 한다.
이곳은 근처에 주택지는커녕 민가조차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 들실장이 살고 있을 리는 없다.
간혹 이주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들실장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실장석이라는 레벨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차로도 최소 20분. 실장석의 걸음으로는 두 달이 걸릴지, 세 달이 걸릴지 모르는 거리다. 이주해온 들실장도 없을 것이다.
들실장이라는 위협도 피해야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식료의 조달이었다.
당장은 고영양 실장푸드 5킬로그램짜리를 4봉지 구입해서 넣어주고, 특별 영양공급용 콘페이토도 10개들이 3키트 준비해주었다.
식수 역시 개울가 근처를 일부러 찾아 놓아줬으므로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을 담을 페트병도 큰 것 작은 것 각각 5개씩 넣었다. 페트병에 물을 담는 방법도 집 근처의 고수부지 공원에서 두어 차례 실습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변의 식재를 채취해서 먹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책이나 도감을 보여주면서, 때로는 텔레비젼을 통해, 때로는 직접 부타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느 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어떻게 얻는지. 무엇을 먹으면 안되고, 어떤 것을 피해야하는지. 나무에는 열매라는 것이 열리고, 땅속에는 뿌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이건 잎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건 독이 있으니 근처에도 가지말 것. 등등을 가르쳤다.
부타가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타를 둔 곳은 입산금지 지역이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다.
남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2년 전에 입산금지 조취를 취한 곳이라 어느 정도 임산물이 다시 자라 있을 것이다. 그럼 그것을 먹고 버틴다면... 정말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외에도 챙겨준 여러 가지 서바이벌 물품들까지 더한다면...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자실장들은 몰라도...
부타 하나만은 살아남아줄지 모른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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