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페이토










실장 꽃놀이



어느 교외에 있는 공원, 마을에서 떨어진 산 기슭에 있는 이 공원은 꽤나 넒지만 교통의 불편도 있어 찾는 사람이 적다.

공원에 따라붙는 실장석이 살고있지만 인간이 남긴것을 별로 기대할수 없는 환경 때문에 나무열매와 벌레 따위를 먹고, 나뭇가지와 잎을 엮어 하우스를 짓는다든가 하는 산실장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애호파의 원조를 기대할수 없는 대신 학대파의 위협도 거의 없다.
자연에 가까운 엄한 환경이 자동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하기에 마을의 공원에서 흔히 보이는 들실장의 포화상태를 방지하고 있다.
인간에의 의존심이 옅은 개체에 있어서는 좋은 환경이라 할만한 장소이다.

그러한 이 장소에서 최대의 시련은 역시 겨울. 산에 접한 이 공원의 겨울은 혹독하다.
식량의 비축을 게을리한 자, 겨울나기 둥지를 준비하지 않은 자, 애초에 겨울을 모르는 자.
살아남을 자격이 없는 자는 자비도 용서도 없이 겨울이라는 괴물에게 목숨을 빼앗긴다.
그런 가운데, 훌륭히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연으로부터의 포상.

봄이 오려고 하고있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에는 듯하던 차가운 공기도 조금씩 누그러지면서 둥지구멍에 틀어박혀있던 실장석들을 유혹한다.

벌거숭이였던 나무에도 새순이 싹트고, 마른 잎으로 덮여있던 갈색 땅도 새로운 녹색으로 덧칠되어간다.
모습을 감췄던 벌레들도 돌아오고있다.

겨울 동안 마른 몸을 끌고 나온 실장석들은 한껏 햇빛을 쬔다.
부드러운 새순과 벌레들을 탐하며, 봄의 은혜를 만끽한다.

누구나 수개월만의 해방감에 젖어있는 가운데, 동떨어진 분위기의 친자일행.
손에 든 식량을 그 자리에서 입에 대지않고, 봉지 대신인 두건 안에 담는다.
그 모양은 마치 겨울나기 전의 비축을 모으는것 같다.
어미는 벌레를 잡거나, 자실장의 손이 닿지않는 곳에 있는 나무 싹을 모으고, 두 마리의 자실장은 온몸을 사용하여 산나물과 새싹을 뽑는다.

「마마, 보는테치, 이렇게나 모은테치!」
두 손 가득히 새싹을 안은 장녀가 비틀거리면서도 자랑스럽게 달려온다.

「테에… 힘드는테치, 빨리 밥 먹고싶은테치…」
대조적으로 차녀는 재미없다는듯이 쇠뜨기 하나만을 어깨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친자가 모은 식량을 합치니 친실장의 두건이 가득찼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데스, 장녀쨩은 정말 고생한데스」
어미가 머리를 쓰다듬자 멋적게 웃는 장녀.
그것을 보고 재미없다는 얼굴로 차녀가 한숨을 섞으며 말하길
「이런일 하는건 와타치들 뿐인테치, 이제는 꽁꽁도 끝난거 아닌테치?」
차녀의 말 대로, 다른 실장석들은 손에 든 식량을 그 자리에서 먹으며 배를 채우고있다.
비축의 필요는 더 이상 없다는 봄의 해방감 아래, 다들 소풍 기분으로 천연의 식량 뷔페를 즐기는 가운데, 구태여 두건 가득히 짐을 만들고있는 것은 이 일가 뿐이다.
「추운것은 이젠 끝난데스, 그래도 이것은 이제부터 필요하게되는데스, 제대로 모으지않으면 안되는데스 차녀쨩」
조금 엄격한 말투로 꾸짖음을 듣자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다무는 차녀.

「이모토쨩은 지친테치, 빨리 돌아가서 밥먹는테치!」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고자 장녀는 어미와 동생의 손을 끌면서 밝게 말한다.
착한 아이로 자랐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어미도 기분을 추슬렀고, 일가는 둥지구멍으로 돌아갔다.

도착하고나서는 드디어 식사. 모은 식량 중에서 보존할수 있는것은 저장하고 남은 것을 가족끼리 나눠 먹는다. 여기에서도 장녀는 웃는얼굴로 식사, 차녀는 더 먹고싶다, 잔뜩 모았으니까 배부르게 먹게해달라며 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끈질기게 투정을 부리는 차녀를 어미가 질책하고, 기어코 손을 대려고 하지만 장녀가 필사적으로 말려서 그 자리에서는 수습이 되었지만, 차녀 안에는 어미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여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것은 폭발했다.
「이젠 싫은테치! 꽁꽁도 끝났는데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하지않으면 안되는테치!」
모아들인 식량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면서 차녀가 외친다. 식량모으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고, 다른 가족은 아직 잠자고 있는 시간부터 일어나서는 다른 새끼들이 즐겁게 놀고있는 옆에서 땀흘려 일한다는 것은 한창 놀 나이인 자실장에게는 괴로운 일이었고, 노력형인 장녀는 몰라도 보통의 자질인 차녀에게는 참을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매일 모은 식량도 금새 둥지구멍을 메울것같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에는 없어져 있다.
어미는 「다른 장소에 두었다」라고 말하고있지만 차녀에게는 믿을수 없었다.
모은 식량을 어미만 독차지하고있는게 틀림없다며 한층 더 불신을 품는다.

그런 감정이 폭발한 방아쇠가 된 것은 다른 실장들로부터의 비웃음이었다.
「따뜻해졌는데 저녀석들 아직도 저러고있는데스, 분명히 봄도 모르는 바보인데스, 데프프프」
「츗츄ー웅♪ 현명한 와타치는 현명한 마마에게 들어서 알고있는테치ー♪ 이제부터 분홍색 꽃이 잔뜩 피고 따끈따끈한 음식 잔뜩인테치ー♪ 오마에의 마마는 그런것도 모르는 바보인테치♪」 

항상 남을 깔보고 우월감에 젖는다는 실장석의 기질에 충실한 차녀에 있어 남으로부터 깔봄을 당한다는것은 도무지 용납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와타치들을 놀리는테치! 이젠 봄인테치! 이런거 안해도 되는테치!」
「봄은 마마도 알고있는데스, 분홍색 꽃은 벚꽃이라고 하는데스, 따뜻해지는것도 먹을게 많아지는것도 알고있는데스, 그래도 이것은 그 전에 해두지않으면 안되는 일인데스, 마마를 믿는데스」
「거짓말인테챠아아아! 밥도 배부르게 먹지못하는테치! 놀지도 못하는테치!
  마마는 와타치들을 괴롭히고 밥을 독차지하는 분충인테치이이이이!!」

어깨를 세우면서 주름투성이인 새빨간 얼굴로, 온몸을 떨면서 거의 위협상태로 절규하는 차녀.
어미는 조용히 차녀 앞까지 걸어가더니
「적당히 하는데스!」
그 얼굴에 힘껏 따귀를 날리자 작은 몸이 성체의 진심이 담긴 일격에 날려가고, 땅바닥에 흘린 똥의 흔적을 그리면서 두세번 튕긴다.

「테에에엥! 마마 그만두는테치이! 이모토쨩 때리면 싫은테치이!」
장녀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움찔움찔 경직하면서 쓰러져있는 차녀를 안아 일으킨다.

그 후에 공원 안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 데려갔고, 그 날의 식량수집은 중단되었다.
「오마에들이 힘든것도 아는데스, 그래도 이것은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인데스, 이유는 아직 말할수 없어도 곧 알게되는 때가 오는데스」
차녀의 속옷을 빨면서 꾸짖는 친실장, 하지만 차녀의 어미에 대한 감정은 이미 최악이었고, 입에 담지만 않을 뿐 어미가 몸을 씻어주는 동안에도 묵묵히 악귀같은 얼굴로 어미를 노려보았다.

그 날, 둥지 안에서 잠자는 친자. 장녀는 어미를 끌어안고 잤지만 차녀는 스스로 떨어진 자리에서 어미에 등을 돌리고 잤다.

차녀의 마음속에서 친실장과의 사이에 결정적인 균열이 생겼다.

「마마, 보는테치, 분홍색 꽃의 봉오리가 나온테치!」
드디어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고, 벚나무에 봉오리가 나타났다. 아직 본적이 없는 벚꽃에의 기대에 까부는 장녀.
그 이후 어미와 그다지 말도 섞지 않게된 차녀는 완전히 삐쳐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상황의 두 마리 옆에서, 친실장의 표정에는 긴박감이 차있었다.

「드디어 이 때가 온데스…」
친실장은 새끼들을 불러모으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듣는데스, 오마에들, 지금부터 이 공원을 나가는데스」
「테에? 어째서인테치? 집은 어떡하는테치?」 묻는 장녀에게
「여기에서 떨어진 장소에 또 하나의 집을 만들어둔데스, 밥도 거기에 모아둔데스」
그렇게 답하는 어미. 장녀는 그 한 마디에 그렇구나, 지금까지의 작업은 그것을 위한것이었구나 하고 알아챘지만, 삐쳐있던 차녀는 「뭐인테치? 새로운 괴롭힘인테치?」 하면서 일그러진 웃는 얼굴로 비아냥을 말한 뿐이었다.

차녀의 발언을 무시하고 둥지구멍에 남겨둔 짐을 모으고, 떠나려고 하던 그 때.
공원의 입구에서 거의 볼 일이 없던 인간이 대거 나타나다.

「와버린데스! 서두르는데스! 발각되지않도록 덤불 속으로 가는데스!」
한층 긴장감이 넘치는 친실장에 이끌려 서두르는 장녀. 하지만 차녀는 발을 멈추고 인간을 보고있다.

자신과 비슷한, 하지만 훨씬 크고 늘씬한 체격.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간의 모습에, 모든 면에서 평범한 실장인 차녀의 실장적 본능이 자극되었다.
행복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 파멸 밖에는 초래하지않는 회로가 윙윙거리며 전력회전하기 시작한다.

 와타치는 알고있다, 저것은 와타치를 행복하게 하는것
 와타치를 귀여워하고, 와타치에게 봉사하는 와타치를 위한 노예이다
 스시, 스테이크, 목욕, 예쁜 옷, 폭신폭신 침대, 키워진다…키워…키우게한다, 그렇다,
 와타치를 키워라! 귀여워해라! 행복하게해라! 그게 오마에들의 사명이다!

제멋대로이기 그지없지만 본인에 있어서는 자연의 섭리인 충동에 따라, 인간들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하는 차녀의 손을 잡아 멈추게하는 친실장.
「뭐하는데스, 이쪽인데스!」
「놓는테치! 저 닝겐들에게 와타치를 키우게하는테치!」
이젠 어미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발버둥치는 차녀. 그 시야에는 작은 알갱이를 흩뿌리는 인간들의 모습.

그 알갱이에 다른 실장들도 몰려들어서 무아지경으로 먹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차녀의 머리에 달콤한 전류가 흐르면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것이지만 본능이 알려준다.

 알고있어! 저건 콘페이토다!
 달콤달콤하고, 행복하고, 와타치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와타치를 위한 보물이다!

「저건 먹으면 안되는데스! 죽어버리는데스!」
「거짓말마는테챠아아아! 이 똥할망구! 언제까지 와타치의 행복을 방해할 생각인테챠아아아아아!」
기어이 어미의 손을 뿌리치고 덤불에서 뛰쳐나가는 차녀.

「이모토쨩, 안되는테치! 돌아오는테치이!」
「시끄러운테치! 오마에는 그렇게 착한척이나 하면서 평생 똥할망구의 노예나 하는테치!
  와타치는 더 이상 속지않는테치! 사육실장이 되어 닝겐을 노예로 삼아, 행복해지는테치!」
그렇게 내뱉고는, 인간쪽으로 전력으로 달려간다.

「닝게에에엔! 그 콘페이토를 전부 내놓는테치이이이! 와타치를 키우는테치이이이이이!」

「이모토쨩…」 망연자실하게 그 등을 바라보는 장녀.
「저 자는…이젠 틀린데스…」 장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실장이 슬픈듯이 얼굴을 좌우로 흔든다.
「하지만…」 망설이는 장녀의 손을 다소 힘주어 당기면서, 친실장이 걸어나선다.
「포기하는데스, 저 닝겐들은 와타시들을 죽이러 온데스, 빨리 가지않으면 와타시들도 죽임당하는데스」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인간, 그리고 별사탕에 흥분하는 실장석들의 난리법석을 등지고, 친자 두 마리는 살그머니 공원을 떠나갔다.


이렇다할 산물이 없는 이 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랑할만한 것이 이 공원의 벚꽃이다.

보통은 사람의 왕래가 없고 넓이만이 강점인 이 공원은, 봄이 되면 지역에서도 유수의 벚꽃 명소로 탈바꿈한다.
엄청난 사람들이 꽃놀이를 하러 오는 이 시즌이 되면 마을도 가장 활기넘치고 시설과 상점이 윤택해진다.
그 한 해의 경기를 좌우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중요한 기간이다.

그렇기에 주민회는 여러가지 대책을 수행하고있고, 그 중의 하나가 실장석의 일제구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꽃놀이, 그런 곳에 실장석 가족이 한 가족이라도 끼어들면 심각한 위생피해가 생긴다.
꽃놀이꾼들의 흥도 깨지고 명소라는 평판도 깎여버린다. 
그것은 이 마을로서는 극력 피하고싶은 사태이다.

그래서 겨울에 수가 줄어들게하고, 봄이 되어도 살아남은 놈들이 모두 둥지구멍에서 나왔을때에 구제한다.
타이밍이 너무 빠르면 벚꽃이 필 때까지 시간간격이 크고 그동안 흘러들어온 실장이 꼬여들 위험이 있기때문에, 기본적으로 벚꽃의 봉우리가 나왔을때 행해진다.

물론 그러한 인간측의 사정을 실장석들이 알 도리가 없다.
오직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실장자매, 그녀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슨일이 벌어질지 알고있는 그 한 마리가 하는 말을 믿는것 뿐이었다.
언니는 믿었다.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여동생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허억, 허억, 아마아마테치! 행복인테치! 텟치텟치…

「오ー오ー, 계속 모여드네, 코로리 먹으러」
「지효성이 아닌데 괜찮은가요? 먹은 동료가 죽는거 보고 도망치지않을까요?」
「아ー, 너는 처음이라서 그렇지, 흩어져서 죽으면 회수하기도 귀찮으니 이 자리에서 죽이는게 편해.
  게다가 뿌려진 먹이에 곧바로 달려드는 수준의 바보라면 괜찮아. 코로리 뿌리는것 만으로 쓸어버릴수 있어」
「하아ー, 그런겁니까」

 텟치텟치… 후욱ー후욱ー 도착한테치 닝게에에에엔! 빨리 콘페이토를 내놓는테치이이이!

「오오, 보라구 이 쪼맨한 놈이라든가, 벌써 주위에 죽은 녀석이 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않고 여기까지 전력질주해온 낯짝이잖냐」
「우와아… 엄청 필사적인 얼굴이네요. 뭔가 외치고있고… 조금 겁나는데요 저는」
「자아ー, 수고했다ー」 휘익

 영차 와타치의 것인테치! 테…? 주위 녀석들이 이상한테치?…죽은테치?

「아, 눈치챘네요, 동료가 죽었다는거」
「오오, 잘 보라구ー」

 치프프픗, 분명히 와타치의 콘페이토를 가로채려고 한 벌을 받은테치!
 하느님은 귀여운 와타치의 편인테치! 와타치의 행복을 방해하는 녀석은 벌을 받는테치! 치프프프프!

「죽은 동료를 보고 웃고있네요… 왠지 열받는 표정으로」
「그치, 분명히 독이니까 위험하다든가 하는 생각이 닿지않는거야. 다른 녀석들은 못생겨서 심한꼴을 당했다, 나는 귀여우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거겠지. 이녀석들 머리속이라는게 대개 그런거야」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렇습니까… 동물이라고는 해도 조금 머리가 나쁘네ー 말도안돼ー…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데요 저」
「그ー런 생물이라는거 확실히 알아두라고. 이녀석들 상대로 일일히 너무한다든가 불쌍하다든가 생각해도 헛수고일 뿐이야. 정 붙이지 말고 후딱후딱 처분하는게 기본이야」

 아마아마인테치! 아드득아드득 달콤한테치! 참을수없는테치! 더 내놓는테치!

「자아, 얼마 안 남았으니 이젠 전부 털어버릴까」 좌르륵ー

 텟츄ー♪ 콘페이토의 대홍수인테치! 치프프프! 그런테치! 그러면 되는테치!

「자, 코로리는 끝. 이제부터가 힘든일이야ー, 경계해서 먹으러 오지않은 놈을 찾아서 잡지않으면 안되고, 이녀석들이 만든 둥지도 전부 부수러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니까」
「으헤ー, 공원 전부를 말입니까」
「매년 하는 일이니까 군소리 하지말어. 나중에 포상도 있으니까. 간다ー」

 테엣?! 어디가는테치 닝겐! 와타치를 키우는테풋
 우게에에에에! 뭐인테치! 괴로운테치! 아픈테치! 츄보오! 죽어버리는테치이!
 …죽는테치? 싫은테치이! 죽고싶지않은테치! 와타치는 이제부터 잔뜩 행복해지는테치이!
 닝게에에엔! 살리는테치! 귀여운 와타치가 죽어버리는테치이이! 어디가는테치이이!
 돌아오는테치! 살…리는…테치…누…가………마…마…


「도착한데스, 당분간 닝겐이 마주치지 않도록 여기에서 지내는데스」
어미가 한 마리만 남은 새끼를 데리고 온 곳은 공원의 부지에서 약간 떨어진 산 속에 파묻힌 장소.
나무들이 자라있지 않은 곳이 작은 방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천연의 광장처럼 되어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지 길다운 길도 나있지 않다.

천연 광장을 둘러싼 덤불 안에 피난소로 만든 둥지가 있다. 겨울나기가 끝나고 계속 모아들인 식량도 모두 그 안에 있다. 그러기 위한 먹이수집이었다.
어미가 한 말은 진짜였다.

「마마…」 「오마에는 똑똑하고 착한 아이인데스, 그러니까 전부 말해두는데스…」
저장식량으로 배를 채우고, 잔뜩 걸어 피곤한 몸을 쉬게하면서 어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봄이 되고 벚꽃이 피려고 하면 인간이 자신들을 죽이러 온다는 것
자신은 작년의 살육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라는 것
잔뜩 있던 자매들, 착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지쨩도, 모두 죽임당한 것
마마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어버렸다는 것
이판사판으로 개울에 몸을 던지고, 기슭에 도착하니 그곳은 공원에서 약간 떨어져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그런 여러가지 행운의 은혜를 입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마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잔뜩 생각하는데스, 뭘 하면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데스, 오마에는 똑똑한 아이인데스, 분명히 살아남는데스」

지금은 어미가 된 실장석은 그 말을 지켰다. 이 공원은 살기에 나쁘지않다. 하지만 벚꽃이 피는 때에 오는 인간, 그 마수에서 도망치기 위해 준비를 잊어서는 안된다

「…어째서 이모토쨩과 다른 모두에게 알려주지 않았던테치?」
이야기를 다 듣더니, 장녀가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목소리를 쥐어짠다.

「모두에게 알려주면 모두가 와타시들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스. 봄이 되면 먹이는 늘어나지만 전원이 먹이 모으기를 하려고 하기에는 부족한데스. 숨을 장소도 부족한데스.
  살아남기위해 나쁜짓을 하는 동료도 있는데스. 그렇게되면 먹이도 숨을 집도 가지고있는 와타시들이 노려지게 되는데스」
「……」
「오마에들에게 가르쳐주지않은것도 그렇게 되지않기 위함인데스. 오마에는 상냥한 아이인데스.
  모두를 도와주고싶어서 분명히 모두에게 가르쳐줄것인데스. 차녀쨩도…」
차녀도 말해버리리라. 다만 그쪽은 「현명한 와타치들만 살아남는다」라고 자랑한다는 실장석다운 이유가 있었기에 어미는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
말이 없는 장녀. 살아남기 위해 한 것, 그것은 알고있지만 그것을 위해 많은 것을 버렸다는 사실에 무겁게 짓눌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장녀의 마음속을 어미도 읽는다.
「마마를 원망해도 상관없는데스, 모두를 버리고 차녀쨩도 버린데스.
  하지만…와타시들은 약한데스. 잔뜩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뭐든지 하지않으면 살아갈수 없는데스.
  와타시들만 살아남는게 고작인데스. 모두를 구하겠다고 욕심을 부려도 무리인데스.
  차녀쨩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어만 하면… 지금 살린다 해도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끝장나는데스」

장녀는 똑똑하다, 논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상냥한 마음이 논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분한테치, 모두도… 이모토쨩도… 살려내고싶었던테치…」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그럼에도 머리를 흔들고 얼굴을 든다.
「그래도 마마는 심하지 않은테치, 와타치도 마마도 이렇게 있을수 있는것은 마마가 노력해준 덕분인테치」
「…오마에는 정말로 착한 아이인데스」
최대한 미소를 띄우는 장녀. 그 새끼의 머리를 쓰다듬는 친실장.
어느쪽도 웃는 얼굴인 채로 울고있다.

「…저것을 보는데스」
울음이 멈추자 어미는 새끼를 둥지에서 데리고나와 광장을 안내하더니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덤불을 지나온 장녀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몇 그루의 벚나무가 있었다.

「…분홍색 꽃봉오리…벚꽃…테치」
「이 장소를 고른것에는 이것도 있었던데스. 이 꽃이 피고 전부 져서 잎으로 변하면 닝겐들이 없어지는데스. 
  그러면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는데스」

어미도 새끼도, 잠시동안 벚나무를 바라본다.
따스함이 커져갈수록, 이 봉오리도 금방 피기 시작하리라.


며칠 후, 만개한 꽃 아래에서 꽃비를 맞으며 빙글빙글 춤추는 자실장의 모습이 있다.
여동생을 잃은 충격을 추스르고, 이제야 미소를 되찾은 장녀.
식량은 아직 충분히 있다. 이전처럼 먹이수집은 더 이상 하지않아도 된다. 마음껏 놀수있다.
「춤이 능숙해진데스, 장녀쨩」
어미도 되도록 장녀의 상대를 해주고있다. 머리를 쓰다듬자 뺨을 물들이며 웃더니
「먹을것 찾아오는테치! 또 맛있는 딸기를 찾아보이는테치!」
하고 기운차게 춤추면서 달려간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벚꽃잎에 문득 위를 바라본다.

나무를 뒤덮은 분홍색 구름바다처럼 펼쳐진 벚꽃은 아름다웠다.
겨울의 끝과 봄의 개막을 알리는 축복의 꽃. 
동시에 이 실장석에 있어서는 파멸의 도래를 고하는 저승사자의 꽃이기도 했다. 
흐드러진 꽃과 수많은 사람의 웅성임,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남은 작년 봄을 떠올린다.
아름답고, 하지만 무서운, 잊을수 없는 꽃.

꽃이 지고, 인간이 떠나고, 드디어 돌아온 공원.
사람도 실장도 없는 공백기간 덕택에 자실장 한 마리였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을수 있었다.

여름, 거의 성체의 크기가 될 정도로 살아남는 것은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나날이 성장하면서도 늘어난 들실장들의 먹이가 되지않기위해 숨어서 살아남았다.
그 생활 가운데 발각되기 어렵고 지내기 좋은 둥지를 짓는 법을 익혔다.

가을, 월동준비에 일찌감치 착수하고, 절반정도 끝났을때 새끼를 낳았다.
원래라면 추자는 겨울나기의 부담밖에 되지않지만, 자실장인 동안에 겨울의 혹독함을 경험시켜주고 싶었기에 일부러 이 계절에 낳았다. 
부담이 지나치지 않도록 선별도 잊지않았다.
태어난 것은 자실장 네 마리, 구더기 두 마리. 구더기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영양이 되었다.
체격이 작고 몸이 약한 새끼와 명백한 분충기질의 새끼도 다른 두 마리 몰래 솎아내어 둥지 안에 모은 식량에 끼워넣었다. 남은 옷과 머리털은 월동용 잠자리에 보태었다.

출산후의 몸으로 새끼 두 마리를 돌보면서 월동준비를 하는것은 고되었지만 어떻게든 해내었다.
그때부터 이미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던 장녀의 존재가 컸다.

여러가지를 해왔구나.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자신은, 약하다.
인간에게 모든것을 돌보아달라고할 정도로 잘 될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있다. 
자신들을 쓰레기처럼 죽이는 인간은 그러할 것이라고 이 눈으로 보아왔기때문에.
산실장 태생도 아닌 자신은 완전히 마을에서 떠나 산 속에서 살아갈 정도로 강하지않다.
사람에 다가가지않고, 사람과 완전히 떨어지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들실장.
그런 자신이기에,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가족이,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누군가가 갖고싶었다.

하지만 어미에게서 마음이 떠난 차녀도 잃었고, 지금은 장녀만이 남은 가족.
가장 기대를 걸었던 우수한 새끼가 살아남은 것은 기쁘지만, 약간 쓸쓸하다.
이 꽃을 써서 새로운 새끼를 낳자, 친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구제가 끝나고 인간도 없어진 공원은 안전지대이다. 겨울까지 시간도 있으니 우수한 장녀는 믿음직한 언니가 되어 새로운 여동생들을 돌보아주리라.

그런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하고있어서였을까.
바로 가까이까지 오고있는 인간들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것은.

「히이이임들다니까요 이거, 길도 없잖습니까. 짐까지 싸들고 이런데를 지난다는건 못 들었어요」
「어허ー 어허ー, 다른 꽃놀이꾼의 방해도 없는 절호의 스팟이야. 군소리하지말어. 동네에 사는 녀석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장소라고. 구제로 고생한 우리들만의 특권이야. 보라구, 저기 보이지」
「오오, 확실히 괜찮네요, 이게 나중의 포상이라는겁니까」
「괜찮지, 여기서 마시는 술은 아주 그냥…어?」
「실장석?」

 데…?
 어째서…어째서…여기에…닝겐이 온데스?

알아챈 것은 동시였다.
기적적으로 먼저 움직인것은 실장석 쪽.

아이의 모습을 찾는다, 광장에는 없다, 덤불 안의 어디일까, 다행이다, 발각된건 아직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취할 행동은 정해져있다.

달린다, 둥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새끼가 있을 가능성이 낮은 방향으로.
「데샤아아아아아ー!!」
전력으로 외치면서 달린다. 기합을 넣기 위해, 인간을 유인하기 위해, 새끼에게 경고를 하기위해
「어째서 이런데까지?」
「됐으니까 잡아!」

짐을 내려놓고 달려오는 인간. 스타트가 한참 늦었는데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다.
뻗어오는 손, 하지만 기적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잡히지않고 찔리는 정도로 끝났다.
그 충격으로 휘청이지만 기적적으로 넘어지지않았다. 신발이 한 짝 벗겨져나간다.
노출된 부드러운 발바닥에 작은 돌이 찔리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은 없다.

머리 속이 엉망진창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 버려온 것, 모든 것이 뒤섞여 어지럽게 뇌리에 박힌다.
그렇게나 해왔는데,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어째서인데스? 어째서인데스? 어째서인데스?

「어째서, 어째서인데샤아아아아아ー!!!」
또다시 잡힐뻔하지만, 기적적으로 인간이 발치의 조약돌에 발이 걸렸고 그 손이 허공을 가른다.
「…이런!」
하지만 또 한 명의 손이 뒷머리를 잡는다.
그럼에도 머리털도 버린다는 정신력과 극한상황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뿌드득 하고 머리를 남기고 다시 달린다.

이 친실장은 똑똑했고, 생각함에 게으르지 않아 살아남아올 수 있었다.
자실장때부터 행운의 은혜를 받아, 훌륭하게 여기까지 살아남아왔다.
지금도 여러가지 기적적인 행운에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는 인간과 대치했다.
그 손쓸수 없는 불운에는 그 많은 기적이 겹쳐져도 이르지 못했다.
실장석으로 태어났다는 어쩔 도리가 없는 운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덤불에 뛰어들기까지 앞으로 몇 걸음.
거기에서 드디어 짓밟힌채로, 바둥바둥 몸부림치는것밖에 할 수 없는 친실장의 모습이 있다.
「…젠장, 땀빼게만드네 이 분충」
「이런데까지 오는건가요ー」

 놓는데스! 와타시가 뭘 했다는것인데스!

「다들 오기 전에 처리해두지않으면 꽃놀이 분위기도 꽝이야. 짐에서 쓰레기봉투 가져와」
「네에」

 놔라! 놔라! 놔라!

펼쳐진 쓰레기봉투. 그 안에 쑤셔넣고는, 봉투 너머에서 머리를 쥔다.

「넌 조금 돌아다녀봐. 동료가 있을지도 몰라」
「정말요? 아ー아…」

 끝장… 이젠 끝장? 와타시는 이젠…

(그 아이는…안되는데스…)

 그 아이처럼…

「장녀쨔아아아ー앙!! 이쪽으로 오면 안되는데스ー!! 닝겐인데스ー!! 여기에서 멀리가는데스우우우ー!!!」

대절규.
최후의 힘을 쥐어짜듯이, 전력으로 어딘가에 있을터인 장녀를 부른다.

「와타시에 다가오면안되는데스ー! 오마에는 똑똑한 아이인데스우ー!!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는데스우우우우!!!」

「아ー 진짜, 시끄러워!」
콰득
목이 부러지자 축 처지는 몸에서 마지막으로 뿌지직 하고 똥이 새어나오며, 친실장은 죽었다.

최후의 행운. 인간이 링갈을 가지고있지 않았기에, 어미의 말은 그저 짖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
그 목소리가 확실히 장녀에게 닿았던 것, 주위를 둘러보던 인간이 귀찮아하여 후딱 둘러보기만 해서 덤불에 숨어있던 장녀를 알아채지 못한 것.

「마마…」
손에 들고있던 산딸기를 떨구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미의 최후를 지켜보는 자실장.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는데스우우우우ー!!!)
어미의 말을 지켜야한다. 떨어진 산딸기를 주워 입 안에 쑤셔넣더니 둥지로 돌아가지않고 덤불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 눈은 강한 결의로 충만하다.

고생을 겪으며, 배우고, 행운에 돌보아지며 살아온 실장석.
그 행운도 끊어지고 덧없는 최후를 맞았지만, 그 새끼를 남길수는 있었다.
새로운 교훈 하나와 함께.

 여기에도…닝겐이 오는테치… 다른 장소를 찾는테치…

모친처럼 살아남아서, 자신의 경험도 더해서 언젠가 자신의 새끼에게 그것을 전해줄수 있을것인가.
내년에 벚꽃이 필 때, 이 자실장은 살아남아있을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을 아는 것은, 다만 변함없이 피고 지기를 계속하는 벚꽃 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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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작

白:유리창 너머의 실장석、UMA実装、초고급 사육실장

塩:実装が大好き、捨て実装、실장사양시대、実装通信、実装で星新一パロ
  감 따는 실장、양식 복저실장、갬블실장、숄、立体視実装
  중앙분리대실장、親指上げ落とし四連

なんでも:노실장











그것은 해바라기의 꽃이 고개를 숙이는, 여름이 끝나는 때의 일.
정수리를 흔드는 매미소리. 살갗을 꿰뚫는 햇빛의 화살.
빨려들어갈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저 파란 하늘.
그것이 무척이나 무서웠다는 것을 자실장 스이는 잘 기억하고 있다.


마마가 누구니? 라고 물어도 스이는 고개를 흔들수 밖에 없었다.
낳아준 어미는 스이를 포함한 새끼들에게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면, 아무리 분충이라도 주먹질 한 방이라도 날리는 정도의 행동은 취할테지만, 스이를 낳은 부모는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것인지, 짖어도 떠들어도 방치했다.
자실장이 짖는 소리 따위,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매미소리에 비하면 미미한 소리.
낮잠의 방해는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이는 태어나서 한번도 쓰다듬어지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조차 듣지 못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자실장을 낳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인 철저한 무시, 무관심.
그것이 스이를 낳은 어미였다.


처음에는 본능에 따라, 낳아준 어미가 자고있는 동안에 젖을 빨아 목숨을 이어갔지만,
이윽고 젖이 나오지 않게되자 쇠약해져 죽는 자매가 여럿 나왔다.
그대로는 죽어버린다.
용기를 쥐어짠 스이는 먹이찾기에 나서기로 했다.


무엇이 먹을것이고, 무엇이 위험한 것인가?
스이는 그 모두를 알지 못했다.
친실장이 주워온 잔반을 먹으며, 무엇이 먹을것인지 학습할 기회가 없었던 스이는 돌을 먹을것으로 착각하고 삼켜버린다.
시간이 지나 배에 격통이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이것은 먹을것이 아니라고 학습하는 것이었다.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며, 쇠약해진 스이는 길가에 쓰러진다.
그런 몸에 용서없이 쏟아져내리는 햇빛의 화살.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 빨려들어갈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무서워서 테치ー하고 짖었다.

몇 시간 후, 휘청휘청 하면서도 둥지로 돌아가는 스이.

녹초가 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런 시간에 들려오는 음탕한 소리.
그것은 낳아준 어미의 교성이었다.
일심불란하게 사타구니를 쓰다듬으며, 쾌감에 몸을 맡긴다.
그런 소리에 이끌렸는지, 마라실장이 다가온다.
그 다음은 똑같이, 매번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뎃풍뎃풍 하며 허리를 흔드는 마라와 어미의 교미가 장시간 행해진다.
그 소리가 저주처럼 스이의 귀에 와닿는다.
두 귀를 막으며, 눈물을 흘리며 그 소리를 견디는 스이.
왠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눈물만은 막을 도리 없이 흘러나온다.

그날, 스이는 의식이 몽롱해져 있었다.
먹이부족, 애정결핍, 그리고 이 기온.
바로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조건이 갖춰져있다.
그런 조건 하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일어나는 스이.


눈 앞에는 숨소리를 내며 자는 어미가 있다.
잠시 동안,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낳아준 어미의 앞머리를 쥐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린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데갸악-하는 비명.
황급히 일어나는 어미는 주춤거리며 자신의 앞머리에 손을 뻗는다.
닿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중한 앞머리를 빼앗은 범인은 옅은 웃음을 띄우면서 자신을 낳아준 어미를 올려다보고있다.


분노에 몸을 실어서, 어미는 스이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오른팔은 뜯겨나갔다. 왼팔은 박살이 났다.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하반신은 그대로 없어졌고, 내장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진다.
두 손으로 스이의 얼굴을 움켜쥐고, 그대로 힘을 주어 뭉개려고 하는 어미.
분노와 굴욕에 찬 시선을 스이에게 향한다.
오른눈은 날아가고, 코피를 흘리며, 우득우득 하면서 자신이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지막 말을 입에 담는 스이.


드디어… 와타치를 보는테치…


말을 마치기나 했는지, 애초에 그 말이 어미에게 전해졌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어쨌거나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스이는 절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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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펫숍에서 사온 자실장이 있었다.
그 작은 요정은 틀림없이 사육주인 그 여성의 아이돌이었다.
알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먹는 모습. 쿠키를 아작아작 먹는 사랑스러운 행동.
놀아달라며 여성의 뒤를 불안한 발걸음으로 열심히 뒤쫓는 모습.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아픔에 눈물을 흘린다.

테엥ー테엥ー하고 울기 시작하는 자실장을 향해 자신의 손이 약손이라며 여성이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방금까지의 울음은 어디로 갔는지 텟치-텟치-하며 기뻐한다.
빙글빙글 돌며, 테칫 하고 웃는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목욕을 한다.
태어나자마자 매일, 훈육이라고 이름 지어진 조교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그런 자실장에게 찾아온 안식의 때.
어미라고 할만한 존재를 알지못하는 자실장은 여성의 안에서 마마의 그림자를 찾은 것이었다.
잔뜩 어리광부리고, 잔뜩 사랑받는다. 그것만이 자실장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별사탕과 옷, 장난감, 스시, 고기.
그런것 따위보다도 훨씬 가치있는 행복을, 이 자실장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어느덧 붕괴되었다.
여성의 방에 남성이 다니기 시작하자, 여성은 자실장에게 별로 어울려주지 않게 되었다.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여성에게 구입되었다는 사실을 자실장은 알지 못한다.
여성의 마음을 위로하는 도구로서의 성능은, 자실장보다도 남성 쪽이 우월한 모양이다.

그런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자실장은 여성의 흥미를 끌만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똥을 던지고, 밤에 짖는다. 모든 것은 자신을 보아달라고 하는 행동, 말하자면 뒤틀린 애정.
노래와 춤, 아첨으로는 묵살당하지만, 똥을 던진다든가 하면 확실하게 여성은 자실장에게 얼굴을 향했던 것이다.
그것이 여성의 마음을 더더욱 떠나게 하는 행위라는 것 따위는, 자실장에게는 알 턱도 없는 나날.
그 행동은 에스컬레이트하고 있었다.


그 날 자실장은, 가구 틈새에 그 작은 몸을 쑤셔넣고 숨을 죽여 숨어있었다.
뇌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얼마전의 일. 한참 장난꾸러기이던 자실장은, 숨바꼭질을 칭하여 이 장소에 숨었던 일이 있었다.
여성은 초조해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자실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실장 혼자서 밖에 나가기라도 했다간 죽음은 피할수 없다.

여성은 자실장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닌다.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자실장은 틈새에서 기어나와, 텟츄ー하고 소리를 낸다.
자실장을 껴안으며, 다신 이런짓 하지말라며 말을 건넨다.
자신이 나쁜짓을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여성을 보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던 모양이다.


그 일을 떠올리며, 테프프 하고 웃는 자실장.
잔뜩 걱정하게 해주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거기에는 쓸쓸하게 한 여성에의 복수심과, 주인님은 반드시 자신을 보아준다는 신뢰감이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흔들림없는 확신이 자실장을 사로잡고 있었다.


어느틈엔가 잠들어버린 자실장.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아무래도 여성이 돌아온 모양이다.

기대되는걸.
힘들었어〜 따위의 대화가 들려온다.

자실장은 무심코 혀를 차버린다.
그 남자도 함께냐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도 약간일 뿐인 불쾌감.
금방 얼굴을 펴기 시작한다.
케이지에 자실장이 없다는 것을 안 여성이 허둥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테프프 하고 작게 웃는다.
가슴 설레는 기대에 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약간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 후에 여성은 요리를 만들기 시작해버렸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남성과 식탁에 앉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끝나더니 TV를 보기 시작한다.
자실장은 초조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며 당황하기 시작한다.
울어버리고 싶을 때에,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도움이 나타났다.

「저기, 미미한테 먹이 안 줘도 되겠어?」

그것은 자실장이 싫어하던 남성으로부터의 도움이었다.
흥, 가끔은 쓸만할때도 있다면서 남성의 평가를 약간 상향하는 자실장.
남성의 지적이 여성이 일어나더니, 먹이의 준비를 시작한다.

자아, 잔뜩 걱정하는테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상황을 지켜보는 자실장.
어라? 하는 여성의 놀란 소리가 자실장의 귀에 와닿자, 흥분해서 탈분해버릴것 같았다.


미미가 없어.

여성은 남성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완전히 마음편하게 있던 남성은 그 소리를 듣더니 일어나 케이지 안을 수색한다.

「수건을 덮고 자고있는 것도 아니고…」걱정스러운 듯이 주변을 둘러본다.

「잠깐 근처를 찾아볼게」

왠지 서두르는 남성이 겉옷을 입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
그런 남자의 행동을 제지한 것은 여성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돼…

차가운 목소리가 자실장에게 들려온다.
그 다음에 들려온 것은, 듣고싶지도 않은, 싫은 진실이었다.

똥 던지고, 날뛰고, 떠들어대서 조금도 귀엽지 않아.
실장석은 성장하면서 사육주를 바보취급한다고 들었어.
분명히 미미도 나를 바보취급하는게 분명해. 손을 대지 못하게 되기전에 사라져줘서 정말 다행이야.
사실은 내일모레 미미를 처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치도 않았던 말에 남성이 굳어버린다.

그 이상으로 굳어버린 것은 자실장이었다.

빨리 영화나 계속 보자며 남성에게 권하는 여성.

어느샌가 눈물이 흘러나오는 자실장. 큰 소리로 울어야겠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방에 벼락이 떨어졌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는? 귀엽지 않으니까 버린다고?
실장석은 물건이 아니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웃고 화내고 우는 그런 생물을 간단히 내다버린다고 말하지마.
버릴거라면 처음부터 키우지도 말았어야지!!!」

남성은 화내고있었다. 경솔하게 버린다고 입밖에 내어버린 여성은 슬퍼했다.
미안하다며, 남성의 팔을 잡으면서 왠지 사죄의 말을 하는 여성.
남성은 그 손으 떨쳐낸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미미한테 해야할텐데, 라면서 화를 낸다.

「방안에 없다면 밖에 나갔을 가능성이 높아. 찾을수 있는 만큼은 찾아보지.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그 다음이야」

남성은 겉옷을 걸치고는 자실장을 찾으러 밖에 나갔다.

방에 남겨진 여성은,

그런, 아니야… 라면서 힘없이 주저앉는다.

여성은 슬퍼하고있다. 그 사실을 민감하게 느낀 자실장은 틈새에서 기어나온다.
방금 자신을 필요없다며 버린 여성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자실장이 행동을 취한다.
무슨 말을 듣던, 자실장에 있어 여성은 바꿀수도 없는 존재였기에.

텟츄ー텟츄ー하면서 밝은 목소리를 내며 덩실거리는 자실장.
기운내라는 마음으로 춤춘다. 그런 자실장에게 던져진 말…

나를 바보취급하는게 그렇게 즐겁니?

다음 순간, 자실장은 목이 졸리고 있었다.
기운내라고 춤춘것은 좋았는데, 여성의 눈에는 그것이 슬퍼하는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테 엣케 테엣

괴로워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자실장.

하지만 저항은 하지않았다.
여성이 자신을 진짜로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프게 하는 일을 저질러버린 벌. 이건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자실장은 생각했다.

목에 여성의 손톱이 파고들고, 목 안쪽에서 피맛이 올라올 무렵, 갑자기 편해졌다.
테봇, 테봇 하며 괴로워하며 기침하는 자실장의 눈에,
일방적으로 힐책을 듣는 여성이 보였다.
자실장은 남성에게 도움받은 것이다.
올려다본 남성의 얼굴은 악귀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여성을 괴롭히는 남성의 목을 물어뜯어주겠다고 생각했지만, 대미지가 컸기에 자실장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결국 남성은 이 여성의 집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자실장과 여성만의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실장을 거절하던 여성이었지만, 몇번이고 무시당해도 질리지도 않고 웃음짓는 자실장에게 여성은 차츰 마음을 열었다.
똥을 던지지도 않고 밤에 짖지도 않으며 착한 아이로 돌아간 자실장.
원래부터 애완용 실장이다. 사랑받고있다고 충분히 느끼면 옛날처럼 돌아가는 것도 빠르다.
그런 자실장을 여성은 다시 소중히 대해주었다.
미미는 다시 아이돌의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미미.
그런 어느 날, 미미를 안고 산책을 하던 여성이 말을 건넨다.

있지, 나 또 사귀게 되었어. 이번 사람은 무척 상냥해보이는 사람이야.

사귄다는게 뭔지는 모르지만, 여성이 웃고있기에 같이 웃는 미미.

그래서말이지, 미미가 도와줬으면 하는게 있단다

와타치가 할수있으면 뭐든지 도와준다면서 텟츄ー하고 소리를 높이는 미미.

그래, 도와주는구나. 고마워.


여성은 그러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텟츄ー텟츄ー하며 기분좋게 짖는 미미의 소리를 들으면서,
연기를 모락모락 뿜는 건물을 바라보는 여성.
그 안에 들어가더니, 간단한 수속을 밟는다.
또다시 실장석이 원인이 되어 헤어진다는 것은 여성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이번에는 미리 손을 써두기로 한 모양이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그렇게 금방 다녀온다는 느낌으로 미미에게 말을 건넨 여성.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몇 시간 후, 몇번이고 여성의 이름을 부르며 업화에 불타는 미미의 모습이 있었다.
사지의 끄트머리부터 불타 바스러지고, 너덜너덜 사그러드는 몸.
마마아아아 마마마마아아아아아 하며 여성에게 도움을 구하여 힘닿는대로 외친다.
피부 아래에서 끓어오른 혈액이 울룩불룩 움직이자, 견딜수 없는 불쾌감이 덮친다.
그 옆에서는 순식간에 피부가 불타 떨어져나간다.
눈알이 데구르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미미의 의식은 멀리 떠나가버렸다.


그날 밤, 쓰레기장에 대형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그 쓰레기에 발이 걸려 넘어진 주정뱅이가 화를 내며 그 원인인 쓰레기를 걷어찼다.
차인 충격에 케이지의 이름표가 벗겨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 이름표에는 미미라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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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者 :마루카지리 マルカジリ










유기실장



그 실장석은 고통에 신음하고있다.
브리더 아래에서 엄격한 훈육을 받고, 자실장일 때부터 인간에게 키워져 온 실장석.
인간은 한참 격이 높은 존재, 노하게 해서는 안된다, 거스르면 안된다, 하고 뼛속까지 박혀있을 터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훈육완료 실장석에 있어 그것은 트라우마이며 족쇄일 뿐이다.
자신을 얽매는 부담스러운 것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 어딘가에서는 해방을 원하게되고
기회가 생기면 그 계율을 스스로 버린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을, 자신의 파멸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기특한 실장은 적다.

억지로 때려넣어 어쩔수없이 지키고있는, 그런 개체가 태반이라는 것이 분충으로 전락하고, 그 결과 버려지는 사육실장이 많은 원인이다.
실장에 있어 인간을 상위의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도 재능인 것이다.
그 재능에 축복을 받았으며 사육실장의 지위를 얻었다면 어리광을 받아줘도 기고만장하지 않을수 있다.
또는 실장은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고 훈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터득하고 있는, 제대로 된 사육주에게 키워지면 대부분의 훈육완료 실장은 문제없이 키워진 채로 생애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태반에 해당하는 「억지로 때려박았」을 뿐인 실장석일 뿐이었다는 것
사육주가 흥미본위로 실장석을 키워보는, 공부가 부족한 초심자였다는 것
그 두 가지가 겹친 것이, 지금 공원에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있는 원인이다.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귀여움받고, 어리광이 받아지고, 사소한 실수도 울며 사과하는 자신을 웃는 얼굴로 용서해주는 사육주.
그런 달콤한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그렇다면 혹시, 라는 느슨함이 생겼다.
마음에 솟아나는 욕심과 호기심에 실려, 키워지고나서 처음으로 작은 투정을 입에 올렸다.

어떤 투정이었는지는 이미 기억도 나지않는다.
그저, 별것 아니었다는 것과, 사육주도 웃으며 용서해줬다는 것은 기억하고있다.
처음의 한 발짝을 내딛으면 두 발짝째는 간단히 내딛을수 있다.
세 발짝, 네 발짝째부터는 가속되어갈 따름이다.


아장아장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작은 몸집은 갑갑함이 느껴지는 크기로 성장했고
테치테치 지저귀는 것같던 목소리는 데스으하고 묵직하게 신음하는 듯한 낮은 소리로 변화해간다.
언제부턴가 허락을 구하는 일도 없어졌고, 당연한 듯이 생각나는대로 요구를 말한다.

사육주의 미소는 사라져가고, 푸근하던 눈길은 나날이 차갑게 변해간다.
그렇게나 자주 말하던 귀엽다는 말도 들리지 않게되어간다.
실제로는 비탈을 굴러떨어지고 있으면서, 언제까지고 솟아오르는것 같은 어리석은 착각을 하고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내가 키우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
「내 책임이니까」

그러한 사육주의 죄책감만이 자신의 목숨줄이 되어있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그 줄을 깎아나간다.
한계를 맞은 사육주가 반성을 기대하며 가한, 키워져서 처음 있었던 체벌과 힐책.
바닥에 퍼지는 탈분과 침과 함께 쏘아내는 욕설로 답했다.

「죄도 없는 와타시에게 무슨 짓을」「이 똥노예」「와타시의 똥을 먹고 사과해라」

도무지 자각도 없는, 자신을 향한 마무리 일격을, 자신이 확실하게 찔러넣었다.


사육주의 분노에 찬 얼굴, 노성, 휘둘러지는 주먹, 걷어차는 발.
직면하는 것은, 자신이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던 것과 정반대의 말.

부러지는 손발, 부풀어오르는 얼굴, 찢겨나가는 자신을 위한 귀여운 옷, 뽑혀진 자랑스러운 모발.
모든것을 잃었다는 것과, 그것을 막을수도 없는 무력함을 알게된다.

한 번 소리지르면 겁먹고 사죄를 청할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미성은 추한 짖는소리일 뿐이었다.
피범벅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하며 휘두른 손발은 쓸모없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인간이 기피하기 때문에, 인간에 있어서 맹독, 인간 상대의 조커라고 생각하고 있던 똥은 오히려 인간의 화를 북돋는 오물일 뿐이었다.

자신의 절정의 지위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모두 환상일 뿐이었다는 사실에 마주치고
마지막으로 공원에 내던져진 지금의 자신
옷을 잃고 온몸의 상처를 드러낸 참혹한 몸, 꼴사납게 몇가닥만 남기고 뽑혀나간 머리털
여기저기 뼈가 부러진 아픔,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지면의 차가움, 지리는 똥이 한 순간 그것을 완화하지만 금방 더 차갑고 불쾌하고 질척한 것으로 변한다.

그것이, 숨길수 없는 지금의 자신의 현실이다.


이것은 나쁜 꿈이다, 라며 현실도피를 시작하는 실장석에게 산책하고 있는 사육실장과 그 사육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옆집의 사육실장, 료쿠쨩이다.
입고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스스로 갖고있던 실장복.
방금까지 자신이 입고있던 프릴과 리본이 잔뜩 붙은 분홍색 고급옷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전에 고급옷을 보여주면서 용케도 그런 옷으로 바깥에 나선다며 비웃던 자신에게

「주인님이 빨래의 방법을 알려주셔서 언제나 깨끗하게 하고있는데스, 와타시는 주인님이 깨끗하게 입고있다고 칭찬해주는 이 옷이 좋은데스」

하고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때는 지기 싫어서 부리는 억지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오히려 아프게 받아들여진다.
생각해보면 바보취급하던 그 촌스러운 옷은 얼룩도 더러움도 없이 언제나 좋은 냄새를 내고 있었다.

자신의 옷은 호화롭긴 했지만 흘린 과자와 침 때문에 때와 똥의 냄새가 절어있었다.
주인이 자신의 옷을 빨아주지 않게 된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차례차례 떠올려가는 기억, 파우치가 빵빵해지도록 채워넣은 별사탕을 으적으적 씹으면서

「료쿠쨩은 가지고있지 않은데스? 료쿠쨩의 노예는 무능해서 불쌍한데스, 데프프」

하고 웃던 자신.

료쿠쨩은 약간 부럽다는 듯이 보였지만

「착하게 있으면 저녁밥의 디저트로 한 알 받는데스. 주인사마에게 「착하다 착해」를 받으면서 먹는 콘페이토는 무척 맛있는데스」

라고 말했다. 하루에 단지 한 알이라는 부분에만 반응해서 비웃던 자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하던 료쿠쨩은 무척 행복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주인이 자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미소지으며 바라봐주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소리지르는 자신에게 찌푸린 얼굴을 향하며 별사탕이 들어있는 봉투를 가져와서 주루루룩 아무렇게나 접시에 담는다.
침을 흘리며 접시에 코를 박을 때에는 이미 주인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등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입 안 가득히 들어있는 별사탕의 달콤함에 비하면 주인의 그런 태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였을텐데도.


거의 머리 위로 올린 손을 사육주와 맞잡고있는 료쿠쨩.
외출할 때에는 실크로 짠 고급 목줄, 그나마도 그것조차 갑갑하다,
이런것으로 와타시를 묶지말라며 물어뜯어 너덜너덜하게 만들던 때의 자신이 보면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빈티나는 모습이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꼭 붙잡고 있는 저 손은 무척 따쓰해보인다.
사육주도 료쿠쨩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고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이 함께 외출해도 자신을 보고있는 일이 없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욕설을 붙여서 부를 때에만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만 외출하는 일이 많아졌고, 개운하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고, 요구는 전부 통하고, 똥을 던져도 넘어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샌가 주인은 자신을 만지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이 자신을 부른 것은 언제였더라.
마지막으로 안아주었던 것은
마지막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은
마지막으로 웃음을 보여준 것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처량맞다고 바보취급하던 료쿠쨩이 부러워서 참을수 없었다.

이쪽으로 다가오자 알아보기 전에 자리를 피했다.
도와달라며 친분에 매달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의 처참한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나 행복해보이는 료쿠쨩에게 직접 이야기가 될 정도로 다가가면 그 눈부심에 비참한 자신이 녹아 없어질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야에서 료쿠쨩이 사라지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울고있었을까.
주인님에게 사과하자, 하고 실장석은 생각했다.
사과하면 다시 키워줄게 틀림없다, 라는 천박한 속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료쿠쨩같은 행복을 자신도 쥘 수 있었던 것
그것을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 것이다.
사과한다 해도 아마 주인은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있다.
그저, 사과하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 갖는 기특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실장석은, 자신이 어느샌가 들실장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버려진 사육실장, 들실장에 있어서는 절호의 노예 겸 식량이다.
이미 체격이 좋은 한 마리가 손을 붕붕 휘두르며 다가가고 있다.

「사과하러 가는데스, 주인님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데스, 이제 키워주지 않아도 상관없는데스, 얻어맞아도 좋은데스
그러지 않으면 와타시는 정말로 분충인데스」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드는 실장석의 얼굴에 들실장의 주먹이 박힌다.
아무래도 이 실장석도 정말로 분충으로 생애를 마치게 될 모양이다.











실장의 서




천국의 장


1. 선택받은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

한 자실장이 수조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수조, 수많은 자실장들이 보였다. 저 멀리에서는 한 남자가 머리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자실장은 자리에 털썩 앉아 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유리 바깥으로 보이는 햇님이 반짝반짝하다. 자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햇님을 따라가며 손을 뻗어보지만 수조에 막혀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자실장은 한숨을 쉬며 다시 수조 한가운데로 돌아온다. 

[지루한테찌…]

자실장은 자리에 앉아 유리로 된 문을 바라본다. 저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와야 자신들이 선택될 수 있지만 문은 야속하게도 굳게 닫혀있었다. 자실장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있는 자실장들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사육실장이 되는 것. 실장석을 훈육한다는 것은 실장석의 본능에 ‘덮어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장석에게는 행복을 추구한다라는 궁극적 본능이 자리잡고 있다. 이건 실장석의 본능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어떤 훈육사도 고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궁극적인 본능을 없애는 대신 조금만 개조하면 어떨까? 해서 나온 것이 이 훈육법이었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

실장석들에게 덮어씌워진 본능이다. 태교로 본능에 덮어씌워진 자실장들을 가지고 교육시킨다.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서는 운치도 가려야한다. 요구는 정중하게 해야하고, 아첨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교육을 통해 훈육사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자실장을 실장샵에 공급하는 것이다. 

처음 실장샵에 온 자실장들은 제일 사람의 눈에 띄기 좋은 자리인 4열에 배치된다. 그러다가 주인을 못찾고 새로운 사육실장들이 입고가 되면 3렬로 밀려난다. 그렇게 2열, 1열로 점점 밀려난다. 마지막 1열에서도 주인을 못찾은 자실장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볼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1열의 자실장들은 모두 필사적이다. 훈육 때 절대로 안된다고 한 아첨도 해본다. 점원도 1열의 자실장이 필사적인 것을 알기에 속으로는 비웃어도 못본 척하고 넘어간다.

수조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는 이 자실장도 마찬가지의 자실장이었다. 자실장 AF0973719. 사육실장으로 출하되었을때부터 얻은 등록번호다. 사육실장은 각자가 고유 등록번호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이 번호로 인해 생산 추적이 가능하다. 유기되는 사육실장이 많아진 현재, 사육실장들은 모두 등록번호로서 관리가 되며, 유기 시에는 벌금이 부과된다. 물론 그런 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벌금이 부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실장 AF0973719는 2열에 있었다. 이 자실장 또한 처음에는 열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했었다. 훈육사에게 칭찬받았던 비장의 실장댄스도 춰보았지만 인간들은 그저 힐끔힐끔 바라볼 뿐 이 실장석을 데려가지 않았다. 3열로 내려갔을 때는 춤과 노래를 더 열정적으로 불렀다. 매일매일 땀이 차도록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렇지만 2열로 내려와버렸다.

[왜 와타시는 선택받지 못한테찌? 사육실장이 되지 못하면 행복해지지 못하는테찌…]

자실장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답을 얻기위해 사육실장으로 나가는 자실장들을 관찰도 해봤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알 수 없다.’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훌륭한 실장댄스를 추던 자실장이 선택받지 못한다. 그저 수조 안을 뛰어다니기만 하던 자실장이 선택되어 나간다. 인간들의 선택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자실장은 수조 안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와타시가 열심히 한다고 뽑히는 것은 아닌테치.]

가끔 나가는 실장석들을 바라본다.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다. 어떤 자실장은 부끄러워하고, 어떤 자실장은 뿌듯해하고, 어떤 자실장은 우쭐댄다. 하지만 제각기 공통점이 있었다. 행복해보인다는 것이다. 주저앉은 이 자실장은 궁금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자신도 원해본다. 

[와타시도 행복해질 수 있는테찌?]

딸랑거리면서 문이 열린다. 제각기 편한자세로 쉬고 있던 자실장들은 벌떡 일어나 자기 어필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른다. 혹시나 자신이 선택받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안고서. AF0973719는 다른 자실장처럼 춤과 노래를 하진 않지만 그래도 슬그머니 일어나 수조 벽에 기대어서 남자를 바라본다. 거대한 인간. 머리가 짧고, 바지와 간단한 옷을 입은 인간. 틀림없이 남자라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남자와 점원은 무언가 말을 주고받는 거 같더니 이쪽으로 다가온다. 

실장석들은 더더욱 미친듯이 움직인다. 춤사위가 커지고 노랫소리가 커진다. 1열에 있는 자실장들은 미친듯이 소리를 내지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1열은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AF0973719은 알고 있었다. 1열과 2열의 자실장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4열에서 고른다는 것을. 혹여나 넘어와도 3열이면 끝이다. 그렇지만 그런 현실이라도 희망이라는 것이 파고들어 잔인하게 실장석들을 이끌어 간다. 1열과 2열의 자실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위해 최선을 다해본다. 이 자실장도 작은 희망을 가지고 수조 벽에 붙어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인간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1열의 자실장들이 남자의 얼굴을 본다. 1열에 와서 이정도로 가깝게 인간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행복회로라고 불리는 실장석 특유의 현실 회피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2열의 자실장들도 매한가지였다. 아니, 2열의 자실장들이 더하면 더 했지 모자라진 않는다. 바로 자신들 눈 앞에 남자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실장석들의 노래를 빙자한 비명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수조에 기대어 남자를 보던 AF0973719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가만히 AF0973719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점원에게 무엇이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AF0973719의 수조를 꺼내들었다. 일순간 수조들이 조용해졌다가 더 커진 비명들이 쏟아져 나온다. 왜 저런 세레브하지 못한 녀석을! 저녀석 대신 와타시를! 이런 자실장들의 외침을 뒤로 한 채 카운터로 향하는 AF0973719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운터에 수조를 놓고 남자와 점원은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다. 푸드는 무엇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집은 이것정도면 충분하다. 실장석을 키울 때는 무엇을 주의하는 것이 좋다. 남자와 점원이 그렇게 몇십분동안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자실장 AF0973719는 그저 남자만 쳐다볼 뿐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남자가 점원에게 네모난 무엇인가를 건넬 때에서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AF0973719에게 슬쩍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점원의 인사소리와 다른 자실장의 비명소리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간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실장이 담긴 케이스를 놓는다. 케이스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본다. 그동안 보았던 것과는 다른 바깥들의 풍경. 휙휙 지나가며 바뀌는 풍경들이 모두 새롭다. 반대쪽 창문을 통해 남자를 본다. 기분이 좋은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남자. 가끔 자실장쪽을 힐끔이다가, 자실장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웃어주는 남자였다. 괜스레 부끄러워진 자실장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케이스 구석으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는다. 서서히 풀리는 긴장에 눈이 감겨온다. 자실장은 밀려오는 졸음에 저항하지 않았다.

덜컹하는 느낌에 자실장은 놀라 깬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빛이 쏟아진다. 자실장은 쏟아지는 빛을 맞으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밖으로 나오자 너무나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가리고 찡그린다. 점점 익숙해지는 햇살에 눈을 떠본다. 깔끔히 정돈된 방이 보인다. 나무색의 방바닥에 비치는 햇살이 따뜻해보인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 자실장의 앞에 남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놀랐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인이 될 남자에게 인사를 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자세를 잡고 정중히 인사를 해본다.

-테찌,테찌!
“응, 잠깐만 기다려봐.”

남자는 무언가를 만지느라 정신이 없다. 잠깐의 기다림 후, 남자는 자실장에게 무엇인가를 가져간다. 흠짓 놀란 자실장. 하지만 인간 주인이 무엇을 하든 복종해야한다는 훈육이 떠올랐다. 무심코 뒤로 내딛었던 발을 다시 끌어온다. 남자는 그 모습에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자실장의 목에 빨간색 무엇인가를 달기 시작했다. 자실장은 자기의 목에 달린 것을 더듬기 시작한다. 딱딱한 무엇인가가 손에 닫는다. 남자는 거울을 들어 자실장에게 보여준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는 자실장. 자기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는 거울을 신기해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자신의 목에 달린 것을 확인한다. 목걸이다. 

“어때?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드는테찌! 감사한테찌!>
“거 참, 기계를 쓴다지만 그래도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는 생물이라니. 신기하군.”

남자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한다. 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던 자실장은 남자를 따라 같이 갸우뚱해보다 옆으로 넘어진다. 테치테치 거리며 일어나는 자실장을 보며 웃음이 터진 남자. 자실장은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남자가 좋아하니 같이 웃는다. 

“좋아. 니 이름은 포포로 하자.”
<와타시의 이름인테찌?>
“그래. 포포야.”

그제서야 자실장은 실감이 난다. 자신이 사육실장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목에는 목걸이가 있다. 자신에게 이름이 주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사육실장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표들인 것이리라.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2열에 내려오자마자 그만두었던 실장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슬쩍 남자를 올려다보니 실장댄스를 추는 자신을 남자가 즐겁게 바라본다.

[이게 행복인테찌! 와타시는 행복한테찌!]

자실장 AF0973719, 포포는 수조 속에서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답한다.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고.


2. 믿는 자만이 구원받는다.

포포와 남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포포는 우수한 개체였다. 훈육사의 훈육도 모두 우수하게 통과하였다. 다만 출산석의 등급이 낮았기에 높은 등급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만약 출산석의 등급만 높았더라면, 충분히 세레브등급의 실장석이었을 개체가 바로 포포였다. 실장석을 처음 길러보는 남자로서는 천만다행인 것이다.

실장석을 키워나가면서 남자도 실장석에 대해 공부해갔다. 남자는 실장석에 대해 공부해나가면서 포포의 훌륭함을 깨닫는다. 화장실에 대해 단 한번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철저하게 화장실을 지킨다. 몸도 알아서 잘 씻고 목욕을 할 때 자신의 옷도 같이 잘 세탁한다. 주인이 하지 말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무언가 요구사항이 있으면 주인에게 잘 말한다. 주인이 들어주면 감사를 제대로 표한다. 실장석들에게는 어려운 요구사항들이지만 포포는 이를 무리없이 해낸다. 남자가 상으로 콘페이토를 주더라도, 감사히 받아먹을뿐이다. 포포가 먼저 콘페이토를 요구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남자는 그런 포포에게 점점 더 마음을 열었다.

남자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였다. 남자가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는 것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특한 포포는 그것을 금방 알아챈다. 남자가 일을 할 때는 방해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포포는 항상 남자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일을 할 때는 그 뒤에 앉아 조용히 블록을 쌓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남자가 기지개를 피면, 포포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던지고 남자만을 바라본다. 기지개를 핀 남자는 뒤를 돌아 포포를 바라본다. 포포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바닥을 톡톡 친다. 포포는 재빨리 일어나 남자에게로 달려간다.

“많이 심심했어?”
<아닌테쮸! 쭈인사마, 일하느라 고생하신테찌!>
“그래그래. 오늘은 산책이나 나갈까?”
<산책말인테찌? 완전 좋은테찌!>

포포는 신나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대강 옷을 갈아입는다. 준비가 된 남자가 손을 바닥에 댄다. 포포는 달려와 남자의 손에 앉는다. 포포는 웃으며 손을 번쩍 든다.

<산책인테찌!>

포포는 방긋방긋 웃는다. 산책은 좋다. 햇님이 있다. 지나가는 다른 인간들도 구경할 수 있다. 공원에 가면 다른 실장석들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자와 함께 간다는 것이다. 포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주인님. 그런 주인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해도 좋은 것이다. 

[와타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테찌!]

포포는 남자의 손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남자는 포포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공원으로 향한다. 남자의 걸음으로 십분쯤 걸어가니 작은 공원이 나온다. 남자는 모래밭이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포포를 내려놓는다. 신난 포포는 이미 몸이 달아있어 어디로 뛰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남자는 그런 포포에게 주의를 준다. 

“반드시 이 근처에서만 놀아야해. 들실장이 보이면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알았지?”
<알겠는테찌!>

포포는 신나서 가지고 온 장난감을 들고 모래밭으로 뛰어간다. 남자는 그런 포포의 뒷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을 보기 시작한다. 

포포는 신나게 모래 장난을 친다. 이 작은 가루들은 언제 만져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렇게 모래장난을 치다가 질릴 때 쯤에는 가져온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집에서도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지만 모래와 함께하면 또 새로운 장난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을 때 테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들실장 하나가 포포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기로 봤을 때는 자신과 같은 자실장이었다. 포포는 장난을 멈추고 일어나 경계를 한다. 언제라도 남자에게 달려갈 수 있도록 한 뒤에 물어본다.

<오마에는 뭐인테찌? 친구인테찌?!>
<테찌… 장난감 가지고 놀고싶은테찌…>
<테찌?>

동문서답으로 답하는 들자실장에게 당황한 포포. 하지만 적의는 없는 것 같다. 포포는 슬쩍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들어보인다. 달려와서 냉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들자실장이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노는 것이 더 좋다. 포포는 남자와 놀 때만 놀 수 있었던 공을 꺼내본다. 

<와타시랑 같이 공놀이하는테츄!>
<공놀이인테찌! 좋은테찌!>

포포와 들자실장은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공을 주고받는 것뿐이지만 자실장들에게는 이보다 더 한 액티비티는 없는 것이다. 이내 지쳐서 모래밭에서 뒹구는 자실장들이다. 포포와 들자실장은 서로를 보며 웃는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녀! 어디있는데스!>
<마마!>

포포와 놀던 들자실장은 자신의 친실장을 향해 달려간다. 포포는 그런 들자실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주인에게 돌아가기로 한다. 장난감을 주섬주섬 정리하는 포포에게 친실장이 물어본다.

<오마에. 사육실장인데스?>
<그런테치! 와타시는 포포인테찌!>

친실장은 자신의 장녀와 포포를 번갈아가며 처다본다. 더럽긴 하지만 초록색 실장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장녀. 포포 또한 주인이 특별한 옷을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초록색 실장복을 입고 있었다. 자신의 장녀와 포포의 큰 차이가 저 붉은 색 목걸이밖에 없다고 생각한 친실장의 눈이 초승달처럼 되었다. 

<데프프프프. 장녀, 사육실장이 되고싶은데스?>
<테찌? 와타시가 가능한테찌?>
<물론인데스!>

문득 든 불길한 느낌에 포포는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런 포포에게 점점 다가온다. 친실장은 손을 내밀며 이야기한다.

<오마에, 좋게 말할 때 오마에의 목걸이를 내놓는데스. 안그러면 슬픈 일을 당하는데스.>
<아...안되는테찌! 이건 주인사마가 주신 소중한 목걸이인테찌!>
<그런데스? 그럼 그 목걸이를 와타시의 장녀가 소중하게 써주는데스!!>
<테찟! 오마에! 와타시가 사육실장이 되게 내놓는테찟!>
<쭈...쭈인사마!!!>

포포는 자신의 장난감을 모두 집어던지고 주인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실장에게 금세 잡히고 말았다. 친실장은 목걸이를 잡아당겼지만, 단단하게 고정된 목걸이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화가 난 친실장은 목걸이를 포기하고 포포를 마구 후려치기 시작한다. 오른쪽 귀가 떨어져 나간다. 포포는 비명을 질렀다. 그 옆에서 친실장의 장녀는 눈이 초승달이 되어 있었다.

<뎃! 왜 안풀리는데스! 짜증나는데스!!>
<텕!!! 쭈인사마!! 살려주는텟!!!>
<데프프프프프. 오마에의 주인이 안보이는데수웅- 그런데스! 오마에의 머리를 따버리면 되는데스!>

친실장은 웃으며 포포의 머리로 손을 가져간다. 포포는 발버둥쳐보지만 성체실장의 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들실장의 더러운 얼굴이 보인다. 때가 꼬질하게 쌓여있는 얼굴, 눈에는 잔뜩 낀 눈꼽, 누렇게 샌 이, 입에서 나는 더러운 냄새가 포포의 코를 찔러온다. 목이 빠질듯한 고통에 포포는 비명만을 지를 뿐이었다.

[아픈테찌! 쭈인사마! 살려준테찌! 쭈인사마!]
“이 개새끼가!”
<덹!>

그 순간 친실장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리둥절해진 포포에게 남자가 보인다. 자신의 주인사마. 와타시가 제일 좋아하는 주인사마. 포포는 펑펑 울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힘없이 팔을 든다. 남자는 재빨리 두 손으로 포포를 안는다. 

“포포야! 괜찮아?! 응?!”
<테찌… 주인사마…>
“얼른 치료받으러 가자!”
<구...구해주신…>
“아...안돼!”

포포는 너무나 큰 충격에 기절해버렸다. 놀란 남자는 재빨리 자신의 짐을 챙긴다. 서둘러 포포를 들고 가려는 남자의 눈에 도망치려는 친실장과 그의 장녀가 눈에 띈다. 남자는 재빨리 달려가 장녀를 밟아버린다. 지벳!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발 밑으로 사라진 장녀를 친실장이 본다. 고함을 지르며 남자의 다리에 달려와 자신의 주먹으로 남자의 다리를 후려친다. 물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남자가 발을 드니 적록의 무엇인가가 딸려 올라온다. 그것을 본 친실장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로롱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것을 들어줄 의리도, 이유도 없었다. 친실장의 기름진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올린다. 장녀의 죽음에 애통할 새도 없이 자신의 머리카락과 두피에 가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친실장이다. 친실장의 팬티는 어느새 운치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는 친실장을 잡고 으르렁거린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이정도로 끝낸다. 포포가 죽으면 공원에 사는 실장석은 다 뒤질 줄 알아.”
<데샤아아아아아!!>

울부짖는 친실장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공원 바깥으로 달려간다. 처음 겪는 사육실장의 부상에 당황한 남자는 가까이 보이는 실장샵에 뛰어든다.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던 점원은 뛰어든 남자에 놀라 벌떡 일어난다. 남자는 점원에게 포포를 보여준다. 

“실장석이 다쳤는데 여기서 치료 가능한가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원은 재빨리 냉장고와 서랍을 뒤적이며 이것저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무엇인가를 가득 부은 점원은 실장석의 옷을 벗기고 그릇에 넣어둔다. 점원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본다.

“일단 일차적인 치료는 끝냈는데, 위석처리를 할까요?”
“위석처리요?”

점원은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실장석에게는 생명을 담당하는 위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빼서 영양드링크에 담가주는 것만으로도 회복력이 몇 배는 오른다는 것이다. 만약 빼는 게 꺼림직하다면 코팅을 통해 강화시키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추가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설명을 듣고 남자는 짧게 고민했지만 그래도 신체 기관인데 빼낸다는 것은 꺼림직했다. 남자는 코팅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점원은 능숙하게 실장석의 배를 가른다. 남자는 순간 고개를 돌린다. 개구리 해부도 제대로 안해본 그였다. 그렇게 쉽게 다른 생물의 뱃속을 볼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남자를 두고 점원은 여유롭게 위석을 찾아 먼저 영양제를 듬뿍 뿌려준다. 위석은 금방 흡수를 한다. 점원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는 지 남자를 보며 말을 꺼낸다.

“사육실장 등록 하셨죠?”
“네, 당연하죠.”
“그럼 혹시 실장디텍터를 달아보실래요?”
“실장디텍터요?”
“위석의 힘으로 돌아가는거라 별 다른 배터리가 없어도 잘 돌아가요. 이거 있으면 사육실장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수 있죠.”
“아, 네. 그럼 그것도 해주세요.”

점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능숙하게 위석 옆에 작은 회로를 붙여놓는다. 그 뒤에 빠르게 코팅을 마치고 절개부위를 잘 덮어 다시 영양제 속에 넣어놓는다.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본 남자는 신기해한다.

“와, 진짜 회복이 빠르네요.”
“그렇죠. 아무리 봐도 참 엉터리 생물이에요.”
“예?”
“아하하, 떨어진 귀는 재생이 안될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게 없네요. 그대로 들고 가시면 아마 늦어도 하루이틀이면 멀쩡해질겁니다. 이거 재료비만 받을게요.”

엉터리 생물이라는 점원에 말에 의아해하는 남자였지만 점원은 재빨리 얼버무린다. 점원은 자실장을 잠깐 검은색 플라스틱 판 위에 올린다. 컴퓨터를 두들겨 등록을 마친 점원은 재빨리 자신이 썼던 재료들의 바코드를 찍는다. 남자는 카드를 내밀며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가게를 떠난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자신이 좀 더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남자는 끊임없이 자책하며 포포에게 미안해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키보드를 두들겨 보지만 신경은 온통 탁자에 놓인 포포에게 향해있다. 이렇게 해서는 되는 일도 안된다. 남은 기간도 충분했기에 남자는 일을 놓고 포포에게만 신경을 쓰기로 한다. 조금씩 줄어드는 영양제를 채워넣는다. 남자는 그렇게 밤새 포포를 돌보았다.

새의 지저귐이 멀리서 들려오는 느낌에 포포는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주위를 둘러본다. 낯익은 곳이다. 자신의 수조가 보이고, 자신이 누워있던 탁자가 보인다. 탁자 구석에는 남자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포포는 남자를 보며 생각한다.

[와타시는 분명 공원에 있었는테찌. 왜 여기있는테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간다. 공원의 들자실장과 공놀이를 했었다. 들자실장의 마마를 보았었다. 그리고 그 친실장이 나를 공격했…? 그제서야 모든 기억이 돌아온 포포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본다. 팔과 다리도 멀쩡하고 아픈 곳도 없다. 마지막 순간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을 걱정하는 남자의 얼굴이. 

포포는 깨닫는다. 남자가 자신을 살려준 것이구나. 포포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남자의 뺨을 만져본다. 따뜻한 남자의 뺨.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마가 있었다면 마마의 품은 이렇게 따뜻했으리라. 포포는 남자의 뺨을 쓰다듬는다. 간지러운듯 남자의 눈이 움찔움찔하다 슬그머니 떠진다. 포포는 그런 남자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날린다.

<아...안녕히 주무신테찌?>
“너…괜찮은거야?”
<괜찮은테찌! 이젠 몸도 아프지 않은테치! 이것보는테찌!>

포포는 남자가 걱정하지 않게 밝게 웃어보이며 몸을 쫙 펴보기도 하고 팔을 당겨 알통을 만드는 시늉도 해본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얼굴을 굳혔다. 그 얼굴에 포포도 바싹 긴장을 했다.  

“너, 내가 분명 들실장 보면 이야기하라고 했잖아. 왜 안했어?”
<테찌… 죄송한테찌. 친구인줄 알았는테찌…>
“들실장은 니 친구 아니야. 알았어?”
<알겠는테찌! 앞으로는 조심하는테찌!>

남자는 엄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담긴 걱정을 포포는 알아챘다. 포포는 일부러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는 밝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 손에 포포는 얼굴을 가져다가 부빈다. 자신의 주인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자신을 고쳐준다. 포포는 안도감과 행복함을 동시에 느낀다.

[와타시는 쭈인사마의 사육실장이어서 행복한테찌!]


3.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공원에서의 그 사건 이후, 포포는 공원 산책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포포를 데리고 실장 카페나 실장 놀이터를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체실장 전부를 무서워하던 포포였지만 사육실장들을 만나고, 어울리게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오른쪽 귀가 날라가긴 했지만 그것은 두건으로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들실장만 보면 공포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남자는 그렇게 매달린 포포를 밀어내지 않고 힘껏 토닥여주었다.

포포는 중실장을 거쳐 성체실장이 되었다. 테찌테찌거리던 포포가 데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변화에 포포는 놀랐지만 남자는 변함없이 자신을 대해준다. 성체가 된 포포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자신이 못했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일회용 물걸레를 뽑아 바닥을 닦는다. 남자가 걷어놓은 빨래들을 가지런히 접어 서랍속에 넣어놓는다. 남자가 대충 놓은 쓰레기들을 차곡차곡 분리수거한다. 

포포가 집안일을 거들수록 남자는 집안일을 줄이고 일을 늘렸다. 포포덕분에 일의 능률이 조금씩 오른다. 전같으면 1만큼의 일을 할 시간에 1.5개의 일을 해낸다. 결과물의 평가도 좋아졌다. 그렇게 지내던와중에 생각치도 못한 돈이 들어왔다. 클라이언트의 추가보수였다. 남자는 이 돈을 포포에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쓸 곳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포포는 성체실장이 된 지금도 수조에서 지냈다. 넉넉한 크기의 수조였기 때문에 사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조 안은 매우 단촐했다. 포포의 화장실과 낡은 수건만 있는 수조. 남자는 못내 걸리던 포포의 집을 새로 마련해주기로 마음먹는다.

<ㅇ...와타시의 것인데스?>
“마음에 들어?”
<완전 마음에 드는데스! 와타시에게는 주인사마밖에 없는데스!>

남자가 사온 실장석용 세레브 하우스를 본 포포는 상자를 돌며 기쁨의 실장댄스를 추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는다. 실장석용 세레브 하우스는 실장석을 위한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모델이었다. 옷장부터 시작해서, 침실, 화장실까지 모두 갖추어진 최신형이었다. 남자가 조립해준 세레브 하우스 안에 냉큼 들어간 포포는 안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부터 거기가 포포 집이야. 알았지?”
<알겠는데스!>

다음 날, 실장카페에 간 포포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들은 다들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에 어깨가 절로 으쓱였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쁨을 받는지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던 도중에 문이 열리면서 테찌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실장이 왔나싶어 고개를 돌린 포포의 눈이 커졌다.

거기에는 한 가족이 있었다. 성체실장과 자실장 세 마리. 성체실장은 자신의 친구인 에메랄드였다. 요 며칠 안보인다 싶었는데 자를 낳아서 온 것이다. 모두가 에메랄드에게로 달려간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포포도 뒤늦게 달려간다. 

<에메랄드상! 어찌된 일인데스?!>
<데프프프프프… 미도리상. 와타시가 자를 낳은데스!>
<주인사마가 허락해주신데스?>
<물론인데스- 포포상. 와타시의 댄스에 메로메로된 주인상이 기꺼이 허락한데스->
<데에에에…>

카페에 있는 모든 실장석들의 시선이 에메랄드에게 쏠렸다. 특히나 막 성체가 된 실장석들은 에메랄드 옆에 바싹 붙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포도 그 중 하나였다. 포포는 에메랄드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인다. 에메랄드에게 달라붙는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그런 자실장을 껴안는 에메랄드를 본다. 자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포포는 그 미소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행복해보이는데스… 자를 낳으면 행복해지는데스?]

그렇게 실장석들이 에메랄드를 보고 행복해했지만 에메랄드를 보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사육실장이 자를 가지면 백 마리 중 99마리가 분충이 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을 보고 사육실장들은 본능적으로 자에 대한 욕구를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실장카페 중에서는 사육실장이 임신하거나 출산한 경우에 자를 데리고 오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 많다. 원래는 이곳도 그 중에 하나였다. 하필 아르바이트가 이제 갓 들어온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 저렇게 데려오는 건 당연히 입장이 안된다고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아이고… 큰일났네 저거.”

점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점장은 그런 점원을 혼내고는 있지만 딱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어 연신 가슴만 칠 뿐이었다. 사람들을 수근거리기 시작하다가 한명씩 자신의 사육실장을 데리고 사라졌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포포를 불러 집으로 향한다. 남자의 품에 안긴 포포는 나가는 그 순간까지 시선을 에메랄드와 자들에게서 떼지 못했다.

실장카페에서의 일이 있고 사흘이 지났다. 포포는 남자와 밥을 먹고 있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푸드를 먹는 포포였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포포는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아졌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올려다보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를 힐끔힐끔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그런 포포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듯 밥을 먹을 뿐이었다. 남자를 그렇게 훔쳐보기만 하던 포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꺼냈다.

<데… 주인사마.>
“왜 그러니?”
<와타시도 자를 가지고 싶은데스…>
“...자실장말이니?”
<그런데스! 에메랄드상도 자를 가지고 난 뒤에 행복해보이는데스! 그러니 와타시도…!>
-땡그랑!

거친 소리에 놀란 포포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본 포포는 흠짓하며 말을 꺼낸 것을 후회했지만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손을 들어 잠시 얼굴을 덮었던 남자는 말없이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그릇이 덜그럭댈때마다 포포는 움찔했다. 그릇을 다 씻고 온 남자는 포포의 앞에 앉는다. 남자는 말 없이 포포를 바라보다 손을 뻗어 포포를 말없이 쓰다듬는다. 포포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본다. 남자의 눈이 차분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솟아올랐지만 남자의 말을 그런 기대감을 부수는 말이었다.

“포포야. 나는 딱 너까지만을 키울 수 있어. 여기서 숫자를 더 늘리는 건 무리야.”
<데… 와타시가 잘 돌보는데스! 와타시의 자니 와타시가 책임지고 기르는데스!>
“어떻게 책임을 질건데? 먹을 걸 네가 구해올 수 있어?”
<데스…>
“결국 사오는 건 나잖아. 너를 키우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이야.”
<......> 
“너도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너도, 나도 사정이 안돼. 사정이 안될 때 키우는 건 자식한테도 못할 짓이야. 알았지?”
<알겠는데스…>
“그래. 착하지. 우리 포포. 나는 다시 일하러 갈게.”

남자는 포포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주고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갔다. 포포는 멍하니 앉아 남자가 했던 말들을 정리한다. 자신이 자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정이 안되어서 안된다고 말한다. 

[왜 사정이 안되는데스?]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를 바라본다. 저 세레브 하우스도 자신에게 마련해준 주인이다. 자실장 몇 마리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서너마리라면 충분히 잘 가르칠 자신도 있다. 정말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자신이 먹는 실장푸드를 자실장들에게 나누어주면 될 것이다. 차곡차곡 미래계획을 쌓아가는 포포에게 더 이상 남자의 말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포포는 떠올린다. 자실장 시절 자신의 실장댄스를 귀여워해주던 주인의 모습을. 포포는 떠올린다. 자신이 들실장에게 공격당했을 때 걱정해주던 남자의 모습을. 포포는 떠올린다. 성체가 된 자신에게 세레브 하우스를 주었을 때 자신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기뻐하던 남자를. 포포는 굳게 마음을 먹는다.

[와타시의 자를 낳으면 와타시는 행복해지는데스! 그런 와타시를 보면서 주인사마도 같이 행복해지는데스!]

포포는 그 날 이후로 남자에게 임신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포포가 임신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했다. 남자는 안쓰러워하며 포포에게 더욱 더 잘해주지만 포포는 어떻게 하면 남자에게 걸리지 않고 임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었다. 

어느 날, 포포는 남자에게 말했다.

<와타시 오랫만에 주인사마와 공원에 가고싶은데스. 괜찮은데스?>
“안될 거 있나. 지금 다녀오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남자와 함께 포포는 공원으로 향한다. 하네스를 찬 포포는 자실장 시절 다니던 공원에 오랫만에 왔다. 남자와 포포는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을 걸었다. 자실장 때 습격당했던 이야기도 나온다. 남자는 웃으며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들실장에게 이가 갈린다며 웃는다. 포포는 웃으며 맞장구를 치지만 포포의 신경은 오직 ‘그것’에만 쏠려 있었다. 그렇게 공원을 걷던 포포와 남자의 앞에 들실장 하나가 나타났다.

-데스! 데에스! 데스!
“...쟤가 뭐라고 하는거니?”
<주인사마에게 말하기 너무나 상스러운 단어인데스… 와타시는 차마 말을 못하는데스…>
“대충 알겠네. 잠깐 기다려.”

남자는 가져온 티슈를 손바닥에 감고 들실장의 머리카락을 잡아든다. 비명을 지르는 들실장을 들고 남자는 수풀 사이로 사라진다. 포포가 기다리던 그 순간이었다. 재빨리 길가에 있는 ‘그것’을 뽑아 자신이 제일 아끼던 가방에 쑤셔넣는다. 그 순간 남자가 수풀 속에서 나온다. 자신도 모르게 굳은 포포는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는다. 남자는 그것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는다.

“녀석, 아직도 들실장이 무섭냐?”
<데...데스… 아닌데스!>
“아니긴 뭘 아니야. 그렇게 굳어있구만. 이제 가자.”

남자는 다시 포포의 몸끈을 잡고 공원을 산책한다. 남자가 들어갔던 풀숲을 보며 포포는 들실장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것이 곤죽이 된 실장석에게는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포포는 자신의 가방을 품 안에 꼭 안았다.

남자와의 산책을 마치고 이틀 뒤 남자가 잠시 외출을 했다. 그 기회를 포포는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가방에서 가져온 그것을 꺼낸다. 들꽃이었다. 조금 시들었지만 괜찮다. 세레브 하우스 안 침대에 팬티를 벗고 누운다. 들꽃을 총구에 넣고 비비기 시작한다. 세레브 하우스 안에 헐떡이는 숨소리와 교성으로 가득찼다. 잠시 후 두 눈이 초록색이 된 포포가 나온다. 포포는 베란다로 가 흰색의 탁한 물로 엉망이 된 들꽃을 밖으로 버렸다.

남자가 돌아왔다. 남자의 손에는 치킨이 들려있었다. 계약을 잘 끝낸 남자가 기분 좋게 사온 것이었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온 남자의 눈에 포포가 보인다. 포포는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포포를 들어올린다. 포포가 깜짝 놀라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웃으며 보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두 눈이 녹색이다. 남자는 표정이 굳어진다.

“포포… 너 어떻게 임신한거야?!”
<데?! 데?! 와타시 임신한데스?!>

포포도 같이 놀란 척을 한다. 포포는 등 뒤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거칠게 내려놓고는 포포의 세레브 하우스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찾는 걸 못찾은 남자는 쓰레기통부터 시작해서 샅샅히 살펴본다. 그런 남자의 등 뒤에서 포포는 긴장하는 얼굴로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데스… 꽃씨는 제대로 버린데스… 완전범죄인데스…]

꽃을 찾지 못한 남자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다. 봄의 꽃가루만으로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글을 발견한다. 남자는 열려있는 베란다 문을 확인한다. 자신이 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가물가물하다. 설령 포포가 열었다 하더라도 포포의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남자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런 남자를 포포는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후… 이런 망할…”
<고...괜찮은데스, 주인사마?>
“아무래도 너 임신한 거 같다. 실수인 거 같은데, 지워야하나?”

남자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포포였다. 포포의 기죽은 모습이 남자의 양심을 자극했다.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해했다. 남자도 포포도 그렇게 말없이 있었다. 그 짧은 침묵을 포포가 깬다. 고개를 번쩍 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한번만 키워보면 안되는데스…?>
“키운다고?”
<와타시가 잘 가르치는데스! 분충이면 와타시가 솎아내는데스!>

남자가 포포를 바라본다. 포포가 간절하게 남자를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남자도 처음 읽었던 훈육 책을 기억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임신이 되었을 때 강제적으로 출산시키는 것은 실장석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포포를 버릴 수는 없다. 아니 버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포포는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는 쓰게 웃으며 포포가 기대한 말을 한다.

“...네가 정말 잘 키워야해. 분충이면 나 정말 화낼거야.”
<알겠는데스! 주인사마! 감사한데스!>

포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주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이런 포포를 보고 차마 기뻐할 수 없는 주인이었지만, 포포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포포는 생각한다. 임신을 했음에도 자신은 버려지지 않았다고. 주인은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와타시는 앞으로도 더더욱 행복해지는데스! 행복할 일만 남은데스!]


4. 믿음을 저버린 자는 천국에 있지 못하리

<주인상- 와타시랑 공놀이하는테찌!>
<와타시랑 책 읽어주는테찌!>
<테칫! 닌겐상은 와타시랑 노는테찌!!>
“...포포야! 얘네 좀 데리고 나가!”

남자는 포포에게 소리쳤다. 허둥지둥 남자의 방에 들어온 포포는 남자에게 꾸벅 인사한 후 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자들은 떼를 써보지만 포포의 힘에는 이길 수 없었다.

<데스! 죄송한데스! 자들은 어서 마마와 나가는데스!>
<싫은테찌! 와타시는 닌겐상하고 노는테찌!>
<마마 말을 안들으면 분충인데스! 주인사마는 바쁘신데스!>

포포는 화장실에서 자실장을 낳았다. 본능적으로 대야에 물을 받고 그 곳에서 자를 낳은 것이다. 처음 자를 낳았을 때는 자신의 총구가 찢어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나온 자를 힘겹게 안아 저실장을 감싸고 있는 점막을 핥아주었다. 점막이 제거된 저실장은 손씨와 발씨가 쑥쑥 자라 자실장이 되었다. 자실장은 포포를 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신테찌! 마마인테찌? 잘부탁하는테찌>

이 얼마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가. 포포는 자신의 장녀를 보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동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장녀를 보던 도중 배에 통증이 왔다. 재빨리 다시 자세를 잡는다. 포포를 보며 긴장하는 자실장. 그렇게 포포는 세 마리의 자를 더 낳았다. 모두 건강한 자실장이었다.

집에 돌아온 남자에게 포포는 자실장을 인사시키며 자랑했다. 기뻐할거라 생각한 포포와는 다르게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실장들을 반긴다. 그런 남자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낀 포포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는다. 포포에게 남자는 한가지 부탁을 했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니 자실장을 자신의 방으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포포는 아쉬웠지만 주인의 부탁인 것이다. 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실장들에게도 저 방은 주인사마의 방이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엄하게 말을 해놓았다.

하지만 자실장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마가 주인사마라고 부르는 닌겐과 놀고 싶다. 와타시타치는 귀여우니까 닌겐이 귀여워할 게 분명할 것이다.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될 것이다. 온갖 자신감으로 무장한 자실장들은 포포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포포가 한 눈을 팔 때면 남자의 방에 불쑥불쑥 들어가는 것이다. 남자는 포포에게 소리치고 포포는 자실장들을 데리고 나온다. 그렇게 오늘과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었던 것이다.

자실장들을 세레브 하우스에 데려온 포포는 자실장들을 매섭게 혼내킨다. 자실장들을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뿐이었다. 다만 한 자실장은 그저 발을 툭툭치며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오마에들! 마마가 몇번이나 말한데스! 주인사마는 바쁘신데스! 그런 주인사마를 힘들게 하는 자는 분충인데스!>
<테찌…>
<그리고 차녀! 닌겐상이 아닌데스! 주인사마인데스!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는데스!>
<테찌? 들은테찌?>
<조심하는데스! 마마한테는 투정부릴 수 있는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에게 투정부리면 안되는데스!>
<죄송한테찌…>
<오늘은 너무 잘못한데스! 다들 벌인데스! 밥을 반 빼는데스!>
<테에에에엥…>
<우는 자는 분충인데스! 집에서 조용히 있는데스!>

포포는 자들을 무섭게 노려본 뒤에 쌩하고 하우스를 나왔다. 하우스를 나온 포포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자들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렇게 포포가 찌뿌둥한 몸을 피고있을때 남자가 피곤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포포는 남자를 따라간다. 남자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포포는 남자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죄송한데스… 와타시의 자들이 폐를 끼친데스…>
“음… 뭐 애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남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컵을 내려놓았다. 남자의 입이 들썩들썩 한다. 불안한 느낌을 받은 포포는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남자는 말했다.

“예전에 너 자실장 때 쓰던 수조에 넣어두면 안될까?”
<데에… 그래도 자들은 뛰어노는 게 좋은데스. 그래야 튼튼해지는데스!>
“네가 모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까 하는 이야기지. 아니면 한둘은 다른 곳으로 보내는게…”

다른 곳으로 보낸다니. 생각치도 못한 말에 포포는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몸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실장들은 자신의 행복이다. 거기서 행복을 받지 못할 망정 다른 곳으로 보내라니. 올라오는 것이 머리를 뚫는다. 포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와타시가 제대로 키우는데스! 그런 말씀 하지 마는데샤!>

갑작스럽게 화내는 포포에게 남자는 적잖이 당황한다. 그런 남자를 씩씩대며 노려보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포포는 깨닫는다. 사육실장이 주인에게 화를 냈다. 잘못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 새하얘진 얼굴로 포포는 얼른 남자에게 엎드린다.

<죄송한데스! 죄송한데스! 와타시가 주인사마에게 화를 낸데스!>
“아니야… 괜찮아…난 들어갈테니 자실장들 들어오지 못하게 해줘.”

남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포포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주인에게 화를 내다니. 사육실장으로서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포포는 용서받았다. 왜 용서를 받은 것일까? 포포는 스스로 답을 낸다.

[주인사마는 와타시가 없으면 안되기 때문인데스. 와타시는 주인사마의 행복인데스-]

포포는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선은 남자에게도 포포에게도 보이지 않기에 알 수 없었을 뿐이었다. 주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포포는 점점 자실장들의 통제를 줄여나갔다. 남자의 방에 들어가더라도 흘끗 보고는 대충 넘어간다. 주인이 소리를 지르면 그때서야 달려간다.

[와타시의 자를 보는 것은 행복인데스. 주인사마도 꽤나 귀찮은 일을 시키는데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도 겉으로는 고개를 팍팍 숙이며 사과를 한다. 그러니 남자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넘어간다. 포포는 제멋대로 용서받았다고 생각한다. 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주인을 흘끔 바라본다. 한숨을 쉬며 일을 하는 주인의 등이 유난히 작아보였다.

남자가 쉬러 나온다. 거실에 대충 누운 남자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은 포포는 자신의 자실장들의 엉덩이를 은근슬쩍 남자에게로 민다. 남자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자실장들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실장들은 장난감들을 들이밀며 남자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쓴다. 자실장들의 떼를 참지 못한 남자는 머리를 거칠게 부비며 일어나 자실장들을 노려본다. 겁을 먹은 자실장들은 포포에게로 달려간다. 포포는 그런 자들을 안아주며 주인을 노려보지만 주인은 이미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자실장들의 눈에 남자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니었다. 포포가 남자를 주인으로 부르라고 말하기에 주인이라고는 불렀지만 주인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자신에게 실장푸드를 주지도 않고, 자신들을 혼내지도 않는다. 집안일은 자신의 마마가 도맡아한다. 그렇다면 왜 자신들의 주인인가? 이 집은 자신들의 집이고 남자는 그저 같이 살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실장석의 사고방식으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를 낸 것으로 생각한 것일수도 있다.

다만 그 중에서도 유독 차녀는 튀었다. 닌겐이라고 부르며 간을 보기 시작한 차녀는 남자가 그 말에 반응을 하지 않자 점점 남자를 자신의 밑으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포포가 남자에게 부탁하고 그것을 남자가 들어주는 모습을 본 뒤로는 남자는 자신의 마마의 노예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다. 자신의 마마의 노예니까 자신의 노예도 된다! 차녀는 그렇게 남자를 노예라 부르며 낄낄대었다. 

그런 차녀의 눈에 요즘 남자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신의 시중을 들어야할 노예 주제에 방 하나를 잡고서는 잠깐씩 나오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최근에는 자신들이 못들어오게 문을 잠가버리는 것도 더더욱 마음에 안들었다. 언젠가는 한번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벼르고 있던 차녀의 눈에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평소같으면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향했던 남자였지만 이번에는 문을 열어둔 채였다. 기지개를 펴며 부엌으로 향하는 남자를 본 차녀는 실장신이 준 기회라 생각하며 남자의 방에 들어갔다. 

남자의 앉은뱅이 책상에는 노트북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차녀는 그게 노트북이라는 물건인줄은 모르지만 남자가 매일같이 그 물건을 잡고 투닥이는 것을 보았기때문에 저 물건이 남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녀는 노트북의 연결된 선을 타고  앉은뱅이 책상에 올라간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남자가 거실에서 보던 텔레비전과도 비슷해 보인다. 노트북 위에 올라가니 볼록한 것들이 보인다. 하나하나씩 밟아보는데 쏙쏙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기분이 좋아진 차녀는 볼록한 것들을 마구 밟으며 실장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중간에 화면이 꺼진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차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재미있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했을뿐이다. 그렇기에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야!!!!!!!!!”

남자의 소리에 놀라 차녀는 빵콘해버리고 만다. 차녀가 지린 운치는 볼록한 것들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남자는 이제까지 보지못한 표정으로 차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성큼성큼 차녀에게 다가간다. 아니 차녀에게 다가온다고 차녀는 생각했다. 닌겐노예주제에 감히 세레브 사육실장인 와타시에게 소리를 치다니. 혼을 내줘야겠다! 라고 차녀는 생각했다. 혼을 내려고 입을 여는 순간 배경이 훅 하고 지나간다. 강한 충격이 느껴진다.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아? 아? 아파? 아파!!!

<테차야아아아아아아아아!!!!>
“이...이 시발새끼가 무슨 짓을…”

남자는 컴퓨터를 다시 켜보려고 한다. 자실장의 운치가 노트북 키보드를 적셨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이 아까부터 공들인 자료, 그 자료만 남아있으면 된다. 하지만 남자의 기대는 헛되게 끝나버렸다.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계속 눌러보지만 켜지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이 헛되어져버린 것을 깨달은 남자는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런 남자의 등 뒤로 포포의 소리가 들렸다.

<뎃?! 차녀!! 무슨일인데스!!>

포포는 쓰러진 차녀에게로 달려간다. 몸의 반이 벽에 부딪쳐 뭉개진 차녀를 안고 마구 흔들어댄다. 차녀는 온 힘을 다 해 남은 한 손으로 남자를 가리킨다. 포포는 분노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달려간다.

<주인사마! 와타시의 차녀를 왜 이렇게 만든데스!!>
“...뭐?”

남자의 목소리를 자신이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싸늘한 목소리였다. 포포는 흠짓했지만 품 안의 자실장의 신음소리에 다시 용기를 낸다. 

<주...주인사마가 와타시의 차녀를 죽일뻔한데스!>
“...니 차녀가 무슨 짓을 했는 지 보여줄까?”

남자는 몸을 돌려 자신의 노트북을 보여준다. 노트북이 뭔지는 몰라도 남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아는 포포는 운치범벅이 된 노트북을 보고 놀란다.

<뎃?!>
“니 차녀라는 새끼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알아?”
<데… 아무리 그래도 와타시의 차녀를 이렇게 만든 건 너무한데스!>

포포는 화를 냈다. 노트북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자실장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그깟 노트북에 운치를 지렸다고 차녀를 죽을 정도로 후려친 것이다. 포포는 자신의 분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포포의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야, 내가 분명히 니 자식새끼들 교육 잘 시키라고 했지? 그거 못할거면 수조에 쳐넣자고. 근데 지금 이 꼴이 뭐야. 지금 니 새끼가 얼마짜리 날린건지 알긴 해?”
<데스! 그게 뭐가 중요한데스! 와타시의 차녀를 어서 살려내는데스!>
“이새끼가…”

남자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으름장에 남자가 겁을 먹은것이구나! 의기양양해진 포포는 더욱 강력하게 남자를 밀어붙이기로 한다.

<와타시는 사육실장인데스! 와타시는 행복해져야하는데스! 주인사마도 와타시의 행복을 위해야하는데스! 그런데 자들을 가지는 걸 허락하지 않은데스! 그래서 와타시가 몰래 자를 가진데스! 보는데스! 얼마나 귀여운 자인데스! 와타시의 자들을 보고 오마에는 당연히 행복해지는데스! 그런데 그 행복의 댓가를 제대로 내놓지 않은데스!>
“...몰래 자를 가졌다고?”
<그러니까 얼른 와타시의 자륽?!>

포포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남자가 멱살을 잡고 포포를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포포는 그런 남자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켁켁대며 남자를 올려다 본 포포는 빵콘을 해버렸다. 분노로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 생전 처음 본 남자의 무서운 모습에 지려버리고 만 것이다. 남자의 손을 타고 포포의 운치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개새끼야. 다시 한번 말해봐. 몰래 자를 가졌다고?”
<켁! 켁! 아닌데스! 잘못말한데스!>
“솔직하게 말해라. 진짜로 찢어버리기 전에!”

남자의 고함에 몰래 상황을 보던 자실장들도 빵콘을 해버렸다. 포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총구에서 운치가 쉴새없이 새어나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남자에게 잡혀 도망갈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 무서웠다. 포포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켁! 죄송한데스! 와타시 너무 자를 가지고 싶었는데스! 주인사마와 산책하던 도중에 꽃 하나 꺾어와서 만든데스! 죄송한데스! 죄송한데스!>

남자는 포포를 집어던졌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포포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혐오스러운 것들을 보는듯한 남자의 눈. 많이 보아온 눈이다. 자신과 함께 산책을 갈 때 들실장을 보던 눈이다. 왜 자신에게 그런 시선을 던지는가. 자신은 사육실장 아닌가. 포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들이 포포에게 달려온다. 자들이 달려오는 뒤로 운치의 길이 보인다. 자신의 품에 안겨 온다. 포포는 그런 자들을 힘껏 안아준다. 자실장들은 제각기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마마! 괜찮으테찌?!>
<못된 닌겐상인테찌! 혼내줘야하는테찌!>
<차녀챠가 아픈테찌! 차녀차가…!>
<데… 안되는데스… 주인사마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데스…>

포포는 힘겹게 자실장들에게 주의를 준다. 자신은 버려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지만 자들은 그렇지 않다. 남자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잘보이면 남자가 용서해줄 것이다. 자들에게도 잘해줄 것이다. 차녀도 잘 치료해줄것이다. 남자가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포포는 그렇게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큰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손에 잡히는대로 자실장을 잡아 박스 안에 던지기 시작한다. 반쯤 뭉개진 차녀도 넣어버린다. 자실장들이 박스 안에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곧 포포까지 잡혀 박스에 넣어진다. 던져진 충격에 정신이 든 포포는 남자를 바라보려하지만 남자는 박스를 닫아버린다. 

남자는 박스를 거칠게 다루었다. 포포와 자실장들은 그런 박스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굴러다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칠게 내려놓아지고 뚜껑이 열린다. 포포와 자들은 간신히 일어나 뚜껑 위를 바라본다. 깜깜한 하늘과 밝은 가로수가 보였다. 가로등을 가리고 선 남자의 그림자때문에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데에… 여기가 어딘데스…?>

남자는 포포에게 손을 가져간다. 포포는 반사적으로 양 손을 내민다. 항상 남자가 손을 내밀면 이렇게 해야 제대로 안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손은 포포의 몸이 아닌 목으로 향했다. 거친 손놀림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벗겨내는 남자에 놀란 포포는 남자의 손을 마구 쳐보지만 막을 수 없었다. 

<안되는데스! 목걸이는 사육실장의 상징인데스! 벗기면...데-데스데스!>

목걸이를 다 벗겨낸 남자는 포포와 자들이 든 박스를 거칠게 차버렸다. 박스 안에서 포포와 자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정신이 없었지만 포포는 남자의 말이 너무나도 똑똑히 들렸다.

“더 이상 보지말자. 배은망덕한 새끼.”
-데! 데스!

남자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걸어나간다. 포포는 깜짝 놀라 몸을 부둥거렸다. 골판지 상자가 쓰러지고 포포와 자들이 쏟아져나왔다. 포포는 데굴데굴 굴러떨어졌지만 재빨리 일어나 남자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남자와 같이 산책을 했을 때 자신과 남자가 나란히 걸었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데스! 와타시를 기다리는데스! 주인사마!]
[와타시를 버리지 마는데스!]

포포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남자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다리에서는 힘이 빠진다. 하지만 포포는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기는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쫒아가보지만 남자는 어느덧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포포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뒤에서 자실장들이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지만 포포의 시선은 남자가 사라진 곳에서 떠나지 못했다.


#종장

남자는 집에 돌아와 털썩 주저앉는다. 냉장고에서 들고 온 맥주를 까서 벌컥벌컥 마신다. 개같은 실장석 새끼들. 남자는 손에 쥔 캔에 힘을 준다. 우드득 소리가 나며 캔이 일그러졌다.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아낀 실장석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자신이 열심히 일한 작업물을 망친 것도 말이다. 

납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작업물이었다. 남자같은 프리랜서에게는 납기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것이 다른 클라이언트들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라가버린 것이다. 남자는 다른 캔을 꺼내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 벨소리가 들린다. 손을 더듬어 탁자에 놓인 전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요- 뭐하십니까.”
“술먹는다.”
“와, 혼자먹냐?”
“지금 누구랑 같이 먹을 기분 아니다.”
“왜 그래?”
“집에서 기르던 사육실장놈이 노트북에 똥을 지려대서 노트북이 망가졌다.”
“헐. 진짜?”
“하… 시발… 안에 작업한 거 다 있는데…”
“어… 그럼 한 번 가지고 와봐라. 살릴 수 있나 한번 보자.”

남자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살릴 수 있다고? 

“진짜? 살릴 수 있어?”
“나도 봐야 알지 임마. 그래도 한번 가져와봐. 궁상떨지말고.”
“아...알았다! 기다려!”

남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노트북을 챙겨 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친구집에 도착한 남자는 벨을 마구 눌러댔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부스스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빚쟁이냐. 수금하러 왔어?”
“나, 나 지금 너무 급하거든?”

남자는 친구를 밀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한 남자의 집과는 달리 어지럽게 널려진 친구의 집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친구를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에게 손을 내민다. 남자는 친구에게 노트북가방을 내밀었다. 친구는 노트북을 열다 올라오는 운치냄새를 맡고 얼굴을 찌푸린다.

“새끼… 좀 닦고 오지.”
“미안하다…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됐으니까 거기 앉아. 냉장고에 물 있으니 먹던가.”

친구는 드라이버를 꺼내 남자의 노트북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물 한 잔을 마시며 숨을 돌리는 남자는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친구의 싱크대를 본다. 대체 언제 설거지하는거지? 깔끔한 성격의 남자는 한숨을 쉬다가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소리친다.

“이거 내가 해도 되냐?”
“오, 해주면 나야 고맙지.”

친구는 손을 들어 흔든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무장갑을 잡는다. 덜그럭거리는 설거지 소리와 친구가 이것저것 만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방안이었다. 능숙하게 설거지를 마친 남자는 싱크대를 마저 닦아주고 행주까지 깔끔하게 널어놓는다. 친구는 거뭇하게 수염이 난 턱을 쓰다듬으며 남자에게 손짓한다.

“야… 이리로 와봐.”
“어어, 잠깐만.”

남자는 친구 옆에 앉는다. 친구가 이것저것 만지다가 파일을 열어본다. 그 파일 안에는 남자가 직전까지 작업한 작업물이 그대로 있었다. 남자의 눈이 커진다.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마구 찌른다.

“어! 이거 맞아! 이거! 살릴 수 있어?!”
“오케오케, 잠깐만 기다려라.”

친구는 USB메모리를 꺼내 컴퓨터에 꽂는다. 파일이 옮겨지는 창이 뜬다. 친구는 파일이 제대로 옮겨겼는지 확인한 후에 남자에게 USB 메모리를 건넨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리를 받는다.

“나중에 한 턱 크게 쏴라.”
“아하하하하하!! 진짜 고마워!”
“이거 노트북은 어쩔거냐?”
“버리고 새로 사야지 뭐. 내일 아침에 마트 열자마자 가서 사야지.”
“그럼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 내일 같이 나가서 사러가자. 나도 사러갈 게 있으니.”
“그래그래. 진짜 고맙다.”

남자는 친구의 등을 치며 웃었다. 포기했던 것을 다시 찾은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물론 그 포기했던 것에 포포는 포함되지 않는다. 포포는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남자가 스스로 버린 것이니까. 


연옥의 장


5. 천국에서 떨어진 자들

포포는 그저 멍하니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뒤늦게 달려온 자들이 포포를 마구 때려도 포포는 남자가 사라진 곳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포포의 자들은 포포를 때리다가 지쳐 쓰러져 있었다. 어기적어기적 포포가 일어난다.

<데에에… 장녀… 삼녀…사녀... 일어나는데스…>
<테에에에엥!!!>
<와타시타치는 이제 어찌하는테찌!!!>
<마마…>
<모르겠는데스… 일단 골판지로 돌아가는데스…>

포포와 포포의 자들은 터덜터덜 자기들이 버려진 골판지 상자로 걸어갔다. 형편없이 찌그러지고 넘어진 골판지 상자. 그 옆에는 반쪽이 뭉개진 차녀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힘없이 그 앞에 주저앉은 포포는 그저 울 뿐이었다. 자들도 지쳐 그 옆에 주저앉았다.

<오로롱… 차녀… 미안한데스… 오로롱…>
<마...마마…!>
<데스?>

자신을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장녀를 바라본다. 장녀는 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포포가 그 곳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한 들실장이 있었다. 그제서야 여기가 어디인지 깨닫는다. 공원이었다. 포포는 벌떡 일어난다. 들실장들은 위험하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야한다. 재빨리 골판지 상자를 챙긴다. 

<자...자들은 따라오는데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는데스!>
<테찌!>
<같이가는테찌!>
<똥마마는 와타시를 업고가는테챠아아!>

골판지를 챙겨 달려가는 포포의 뒤로 자실장이 쫒아간다. 제대로 쉬지 못해 힘들고 지치지만 여기서 마마를 놓치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온실 속에서 자란 사육실장의 자들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렇게 들실장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도망간 포포와 자들은 헉헉대며 적당한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길게 나온 혀에서 침이 마구 새나온다. 그렇지만 마냥 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주인이 다시 자신들을 찾으러 올 때까지 여기서 지내야한다. 포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골판지 상자로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데에에에… 이...이렇게 하는 것이었는데스!>

주인과 같이 보았던 들실장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용케 기억해낸다. 이리접고 저리접어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다.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낀 포포는 골판지 하우스 안에 들어가 털썩 주저앉아 옆자리를 톡톡 친다. 자들은 쭈뼛쭈뼛 들어와 포포의 주위에 앉는다.

<어떤데스? 마마가 열심히 만든데스!>
<테에에에에…>
<침대는 어디있는테찌? 화장실은 어디있는테찌?>
<화...화장실데스? 자...잠깐만 기다리는데스!>

포포는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본다. 들실장 다큐멘터리에서는 운치굴을 판다고 했었다. 손으로 땅을 파보려고 하지만 금세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들실장들도 운치굴을 파기 위해서 도구를 쓴다는 것을 포포는 몰랐던 것이다. 일단 화장실이 급하다는 삼녀를 데리고 나와 골판지 하우스 뒤편으로 데려간다. 

<여...여기서 싸는데스!>
<테에엥! 여기는 화장실이 아닌테찌! 화장실로 데려가주는테찌!>
<화장실 없는데스! 여기서 싸지 않으면 팬티에 지리는데스! 나쁜 자인데스!>
<테에에에엥!!>

삼녀는 울먹이며 팬티를 내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내린다.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운치가 나온다. 냄새가 사방으로 풍겨나온다. 다 쌌음에도 불구하고 삼녀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한다. 포포는 의아해하며 묻는다.

<데…? 삼녀? 다 싸지 않은데스?>
<마마… 휴지가 필요한테찌…>
<데…>

당황한 포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떨어진 잎 하나가 보였다. 재빨리 줏어와 삼녀에게 건넨다. 삼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포포는 잎을 내밀며 재촉할 뿐이었다.

<휴지없는테찌? 휴지가 필요한테찌! 휴지!>
<휴지같은 건 없는데스! 이걸로라도 닦는데스!>
<테에에에엥…아픈테찌! 따가운테찌!>

울며 겨자먹는 느낌으로 삼녀는 나뭇잎으로 뒤처리를 한다. 매끈매끈하고 부드러운 휴지가 아닌 딱딱하고 거친 느낌의 나뭇잎으로 뒤처리를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들실장들이라면 이런 나뭇잎을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 뒤처리를 하는 것에 익숙하겠지만 포포는 그런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테에엥 거리며 우는 삼녀를 달래며 들어오는 포포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밤에 쫒겨나서 아직 한 숨도 못잔 것이다. 장녀와 사녀도 어느새 쌔근쌔근 잠든 지 오래였다. 삼녀를 옆에 내려놓는다. 울던 삼녀도 지쳤는지 장녀 옆에 가서 눕는다. 포포도 그 옆으로 가 눕는다.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눈이 스르륵 감겨온다. 

“포포야, 포포야!”
<데...데? 주인사마!>
“괜찮은거야?”

포포가 눈을 눈을 뜨자 주인이 환하게 웃는다. 포포는 벌떡 일어나 주인에게 안긴다. 주인이 살며시 안아주며 등을 토닥인다. 그 짧은 고생이 너무 서러웠는지 포포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적록의 눈물이 남자의 옷을 적시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자는 포포를 들어 이곳저곳 살펴본다. 물티슈를 꺼내 포포의 얼굴을 닦아낸다. 

<데… 주인사마… 와타시가 잘못한데스…>
“괜찮아. 내가 너무 심했어. 우리 스테이크 먹으러 갈까?”
<스테이크데스?! 좋은데스!>

자들도 어느새 일어나 자신의 옆에서 방방 뛰어논다. 남자는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다가 포포에게 손을 내민다. 행복해진 포포는 기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아보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도 남자의 손을 통과할 뿐이었다. 포포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남자는 평온한 표정 그대로였다. 

<데갸아아악! 왜 안잡히는데스!>
“안잡을거야? 그럼 나 혼자 간다?”
<아닌데스! 잡는데스! 기다리는데스!>

남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남자를 쫒아 바지를 잡아보려하지만 그래도 손이 빗나간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포포. 남자는 일으켜세워주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같이가는데스! 주인사마!>
<마마! 마마!>
<데에엙?!>

포포는 벌떡 일어난다. 하늘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장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포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보았던 주인을 찾는다.

<주인사마! 주인사마!>
<주인사마는 안온테찌!>
<데...데스…>

장녀의 비명같은 말에 포포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꿈이었다. 주인사마는 여기에 오지 않았다. 포포의 눈에서 적록의 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옷을 잡는 당기는 사녀가 있다. 포포는 눈물을 닦고 사녀를 바라본다.

<데… 사녀챠. 왜 그런데스?>
<마마… 배고픈테찌…>

그러고보니 쫒겨난 이후로 밥 한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것을 깨달으니 포포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포포는 힘겹게 일어나 사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녀는 포포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포포도 힘들게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자들은 조금만 기다리는데스. 마마가 먹을 것을 구해오는데스.>
<기다리는테찌!>
<장녀는 다른 자들을 잘 돌봐주는데스.>
<알겠는테찌. 조심하는테찌.>


6. 너희들을 구해줄 신은 없나니

막상 자들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나왔지만 막막한 포포였다. 먹을 것은 어디서 구해야한단 말인가? 정처없이 공원을 걷고 있는데 한 들실장이 비닐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보였다. 들실장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틀림없이 먹이를 구하러 가는 모습일 것이다. 포포는 몰래 들실장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들실장은 매번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도 뒤는 보지 않아 포포는 들키지 않는다. 그러다가 재빨리 뛰어간다. 놀란 포포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다. 뛰어간 들실장이 도착한 곳은 공원에 있는 편의점 쓰레기장이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먹고 제대로 정리해 버리지 않아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들실장이 신나게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포포가 뒤에서 바라본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들실장에게 다가가다 무심코 과자봉지를 밟아버린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놀란 들실장은 포포를 바라본다. 재빨리 위협자세를 취하는 들실장이었다.

<데샤아아아아!! 오마에는 뭐인데샤!!>
<오...와타시는 싸울 생각이 없는데스! 그저 먹을 것을 구하러 온데스!>
<데에에에에에…>

들실장은 재빨리 포포를 아래위로 관찰한다. 별 다른 무기가 없음을 확인한 들실장은 포포에 대한 흥미를 끄고 다시 쓰레기더미를 뒤지기 시작한다. 포포는 그 옆에서 들실장이 무엇을 구하는지를 본다. 과자부스러기를 담는다. 김치쪼가리를 담는다. 먹다버린 닭다리를 보고는 화색을 하며 봉투에 담는다. 모두 포포가 보았을 때는 쓰레기일뿐이었다. 

<데에… 푸드는 없는데스?>
<오마에는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데스?>

들실장은 날이 선 대답을 한다. 포포는 흠짓한다. 들실장은 쓰레기를 뒤지던 것을 멈추고 포포를 다시 살펴본다. 들실장치고는 깨끗한 옷이다. 얼굴도 깨끗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이 기름기로 번들거리지 않는다. 들실장은 다시 쓰레기를 뒤지며 말한다.

<오마에, 사육실장이었는데스?>
<데엣? 어찌 알았는데스?>
<그건 중요한 게 아닌데스. 멍청하게 그렇게 있을거면 다른 곳으로 가는데스.>
<데에… 자들이 굶고있는데스. 푸드를 구해가야하는데스.>

푸드에 집착하는 포포를 보며 들실장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들실장의 비웃음에 포포는 노골적으로 불쾌해하지만 들실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들실장은 계속 쓰레기를 뒤지면서 말을 한다.

<데프프프프프… 공원에 푸드 같은 건 애호파가 오지 않은 이상 없는데스. 오마에도 헛소리하지말고 먹을 거나 줍는데스.>
<하...하지만 그건 다 쓰레기인데스!>
<와타시타치에게는 이게 먹는 것인데스. 먹기 싫으면 굶는 것밖에 답이 없는데스.>

들실장은 딱잘라 말한다. 포포는 풀이 죽어 슬금슬금 들실장 옆으로 다가온다. 같이 쓰레기를 뒤지는 포포. 들실장은 그런 포포를 흘깃 쳐다보지만 도와주지는 않는다. 포포는 머뭇거리며 쓰레기를 하나씩 바라본다. 음식물 쓰레기를 발견했지만 담아갈 도구가 없다. 슬그머니 들실장의 옆을 바라본다. 잔뜩 구겨진 편의점 봉투가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도 봉투를 찾아본다. 

포포는 똑똑한 실장석이었다. 들실장이 하는 것정도는 금방 따라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정말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도 일단은 음식물 쓰레기를 열심히 줏어보지만 자기도 이것을 먹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더더욱 걱정인 것은 자기는 먹어도 자신의 자들이 과연 먹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포포는 더욱 더 힘을 내에 음식물 쓰레기를 줍는다. 

옆에서 톡톡 치기에 돌아본다. 아까 그 들실장이다. 포포에게 무엇인가를 내민다. 빈 페트병이었다. 얼떨결에 받는다. 들실장은 가득 찬 비닐을 짊어지며 포포에게 조언을 해준다.

<공원에서 살아가려면 페트병은 반드시 필요한데스.>
<고...고마운데스.>

포포는 감사인사를 전한다. 들실장은 그런 포포를 두고 쓰레기장을 떠났다. 포포는 그런 들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모은 음식과 페트병을 담은 비닐을 짊어진다.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사랑스러운 자들이 굶는 것이다. 자신도 배가 고프지만 힘을 내어 걷기 시작한다.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가 가까워질 쯤에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느낌에 포포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실장석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동물의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고양이씨다. 포포는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가 보인다. 고양이도 보인다. 고양이가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를 할퀸다. 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포포는 봉투를 집어던지고 고양이에게 달려갔다. 고양이가 뒤늦게 포포를 본다. 포포는 각오를 굳히고 몸으로 들이박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가볍게 뒤로 피한다. 몸통박치기가 빗나간 포포는 데굴데굴 굴렀다. 

<마마!>
<괜찮은데스?! 데샤아아아아!!>

포포는 재빨리 일어나 실장석의 위협자세를 취한다. 자들을 지켜야한다는 본능에서 나온 자세였지만 이내 다리가 후들거려왔다. 고양이도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거린다. 고양이과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피식자들에게 공포였지만 포포는 소리를 지르며 이겨낸다. 자들을 위해서라도 이겨내야만 했다. 

고양이가 달려든다. 반사적으로 고양이 앞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또 잽싸게 피하고 포포의 등을 할퀸다. 순간 비명이 나올 뻔 했지만 억지로 참는다.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다시 공격자세를 잡는다. 재빨리 자세를 잡아보지만 통증때문에 행동이 둔해진다. 고양이는 다시 재빠르게 달려들어 포포를 할퀸다. 포포의 옷이 찢긴다. 찢긴 곳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포포는 이를 악물어본다. 

고양이가 다시 달려든다. 이번에는 재빨리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려 피해본다. 예상치 못한 포포의 움직임에 고양이는 미처 멈추지 못하고 골판지 하우스에 몸을 박았다. 나동그라진 고양이와 골판지 하우스. 그 충격에 가벼운 사녀가 튕겨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고양이는 놓치지 않았다. 

<사녀!!! 도망치는데샤!!!>

사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마마를 바라보려고 하지만 이미 자신의 앞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재빨리 사녀를 낚아챈다. 사녀는 놀라 비명을 지른다. 몸을 마구 흔들어도 본다. 하지만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마!!!!!! 살려주는테찌!!!!!!>
<사녀!!!!>

포포는 고양이를 쫒아가보려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벌써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사녀의 비명소리도 점점 사라졌다. 포포는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다. 사녀는 사라졌다. 고양이에게 당한 상처에서 이제서야 통증이 느껴진다. 포포는 쓰러졌다. 쓰러진 포포에게로 장녀와 삼녀가 달려왔다.

<마마! 괜찮은테찌?>
<마마! 마마!>
<데… 장녀… 삼녀… 마마는 괜찮은데스… 오마에들은 괜찮은데스?>  
<테에엥… 사녀챠가… 사녀챠가…>
<오로롱… 사녀챠는 좋은 자였는데스… 그런 사녀챠를 고양이씨가 잡아간데스…>

포포와 장녀와 삼녀는 서로를 부둥겨안고 울기 시작한다. 차녀가 죽고 자신은 집에서 쫒겨났다. 사녀는 고양이에게 잡혀갔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자를 낳았던 것뿐이다. 그걸 주인은 야박하게 쫒아냈다. 자신이 해온 수많은 행복해지는 것들은 무시한 채로! 포포는 힘겹게 일어난다.

<안되겠는데스… 닌겐상에게 따지러 가는데스…>
<테에엥? 마마? 어떻게 가는테찌?>
<어떻게는 가는데스. 와타시타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데스!>

포포는 이를 악물고 걷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장녀와 삼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따라간다. 몇걸음 걷고 휘청이는 포포였지만 억지로 힘을 낸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된다. 반드시 따지러 가야만 한다. 그런 포포에게 낮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사육실장 아닌데스?>


7. 거짓된 구원자에게 넘어가지 말것이다

편의점 쓰레기장에서 보았던 그 들실장이다. 손에는 번쩍번쩍하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고양이 소리가 계속 들렸으니 상황을 보려고 나온 것일것이다. 포포는 그렇게 지레짐작한다. 들실장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포포의 상태를 살펴보는 들실장이다.

<고양이씨에게 당한데스?>
<그...그런데스… 사녀챠가 잡혀간데스…>

들실장은 고개를 들어 장녀와 삼녀를 바라본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표정이다. 이윽고 생각을 마쳤는지 눈이 초승달이 되도록 웃는다. 장녀와 삼녀는 흠짓하며 포포의 뒤로 달려간다. 들실장은 그런 자실장들을 보고만 있는다.

<여기 있으면 위험한데스. 와타시의 집으로 가는데스.>
<가...감사한데스! 감사한데스!>
<데프프프… 별 거 아닌데스. 저 봉투는 와타시가 들고가는데스.>

들실장의 마지막 웃음이 거슬렸지만 포포와 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포포가 집어던진 봉투를 짊어지고 들실장은 앞장섰다. 되도않는 박자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실장은 걸어나간다. 뒤에서 포포와 자들은 서로 수군댔다.

<마마… 괜찮은테찌?>
<마마는 괜찮은데스… 다만 오늘은 좀 쉬어야하는데스…>
<저 오바상은 괜찮은테찌? 와타시는 불안한테찌…>
<달리 방법이 없는데스… 그래도 아까 마마에게 페트병도 챙겨준 이웃상인데스…>

포포와 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들실장의 귀에도 들렸지만 들실장은 못들은 척 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골판지 하우스가 보였다. 들실장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골판지의 문을 연다.

<이리로 들어오는데스.>

장녀가 들어간다. 삼녀가 들어간다. 그리고 포포가 들어가려고 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자신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배에 튀어나온 뾰족한 것이 보였다가 다시 쑥 사라졌다. 고통이 순식간에 전신에 퍼져나간다. 팔에도, 다리에도 몸통과 비슷한 고통이 느껴졌다. 포포는 앞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마마! 마마!>

장녀와 삼녀는 포포에게 달려오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들실장때문에 포포에게 안길 수 없었다. 포포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들실장을 바라본다. 초승달처럼 생긴 눈. 비열한 입매가 보인다. 들실장은 쓰러진 포포를 비웃으며 장녀에게 다가간다. 장녀는 도망가려고 하지만 들실장에게 붙들린다. 들실장은 망설임없이 옷을 찢는다. 장녀는 몸을 마구 흔든다. 앞머리를 뽑는다. 장녀는 자신의 앞머리에 손을 더듬거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뒷머리를 뽑는다. 넋이 나간 표정의 장녀를 내려두고 삼녀에게도 손길을 내뻗는다. 삼녀는 빵콘한 채로 주저앉아버린다.

순식간에 독라가 되어버린 자신의 자들이었다. 포포는 비명을 질렀지만, 들실장은 그런 포포를 발로 후려친다. 코에서 피가 나온다. 들실장은 포포의 옷을 벗기고 마찬가지로 머리를 뽑아버린다. 독라로 만들어버린 포포를 집 구석에 쳐박아 둔 들실장은 장녀를 들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뭉툭하게 떨어지는 소리와 장녀의 절규가 들린다. 손을 탁탁 털며 들어온 들실장은 자신의 배를 매만진다. 그리고 삼녀를 바라본다.

삼녀를 든 들실장은 삼녀를 빤히 바라본다. 삼녀는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자실장의 힘으로는 성체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발버둥치던 삼녀는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간다.

<테에츙?>
-아그작
<데샤아아아아아!!!>

삼녀의 아첨을 보고 망설임없이 삼녀의 머리를 씹는다. 포포는 그 모습에 버둥거려보지만 하루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포포에게는 힘이 없었다. 들실장은 삼녀의 머리를 씹는다. 삼녀의 축 쳐진 손과 발이 포포의 눈에 들어온다. 포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달려들어 보지만 들실장의 발길질 한번에 뻗어버린다. 

<꺼어억. 맛있었는데스. 오마에의 자는 맛나맛나였는데스!>
<왜...왜 와타시의 자를 먹은데샤!!!>
<데프프프프… 배가 고프고 먹을 게 있으니 당연한 게 아닌데스?>

들실장은 포포는 두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포포의 눈에는 집의 모습이 들어온다. 낡아빠진 수건, 물이 담긴 페트병, 버려진 과자상자, 그리고 벽에는 배가 갈라져있는 저실장 몇마리가 걸려있었다. 집을 정리한 들실장은 번쩍번쩍한 무언가를 들고 포포에게 다가왔다. 포포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들실장은 포포의 다리를 잡고 썰기 시작했다. 자신의 다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본다. 포포는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휘둘러보지만 들실장의 보검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다리가 잘린 포포가 구석에 쳐박힌다. 잘린 두 다리도 들실장의 입으로 들어간다. 포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방 가운데 편하게 눕는 들실장을 바라본다. 들실장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음정도, 박자도 안맞는 노래. 포포는 떨리는 목소리로 들실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왜 그런데스…>
<뭐가 말인데스?>

들실장은 퉁명스럽게 답한다. 

<왜 와타시의 자를 잡아먹은데스… 왜 와타시를 독라로 만든데스…>
<데프프프프프… 멍청한 소리인데스.>

들실장은 몸을 벌떡 일으킨다. 포포는 흠짓하며 그런 들실장을 쳐다본다.

<약하면 먹히는 건 당연한데스. 오마에는 약하고 와타시는 강한데스. 먹히는 게 당연한데스.>
<그럼 아까는 왜 와타시에게 페트병을 준데스…?>
<데프프프프… 정말 멍청한 사육실장인데스. 오마에가 왜 쫒겨났는지 알만한데스.>

들실장은 포포를 크게 비웃는다. 포포는 화가 났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마에를 기른 닌겐도 오마에에게 잘해줬을 것인데스.>
<......>
<하지만 그게 언제나 계속되는 건 아닌데스. 당연한 것인데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스.>
<데프프프프… 오마에는 와타시가 왜 페트병을 준 지 궁금한데스? 페트병을 구하는 건 이 공원에서는 어렵지 않은데스. 그렇게 처음 오는 자들에게 한두번 도와주는 건 와타시에게는 일도 아닌데스. 그렇게 도움을 주고 만약 살아남으면 와타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스.>
<......>
<닌겐도 똑같은데스. 다만 닌겐은 와타시타치보다는 훨씬 가진 것이 많은데스. 그래서 닌겐은 와타시타치를 더 많이 도울 수 있는데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스.>
<...그럼 주인사마한테 쫒겨난 것은 와타시가 잘못한 것이라는 말인데스?>
<와타시는 모르는데스. 관심도 없는데스. 하지만 오마에가 닌겐이 정한 선을 넘은 것은 분명한데스.>

포포는 고개를 숙인다. 들실장은 낡아빠진 수건을 들고 다시 벌러덩 눕니다. 수건을 덮고 잘 준비를 마친 들실장은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와타시도 원사육실장이었는데스.>
<데에…?>

포포의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이 들실장이 사육실장 출신이었다고?

<쭈뼛쭈뼛 다가오는 오마에의 모습에서 와타시가 처음 버려진 모습이 떠올랐을 수도 있는데스. 그래서 도움을 줬을지도 모르는데스.>
<데에에… 와타시는…>
<하지만 오마에는 멍청했는데스. 고양이씨가 있었으면 도망갔어야 했는데스. 자는 또 낳을 수 있는데스.>
<......>
<꼴을 보니 어차피 오마에는 이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데스. 와타시가 노예로 써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데스.>

들실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에 빠졌다. 포포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깜깜했다. 들실장의 말들이 포포의 머리에서 울린다. 주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주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주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포포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포포의 기나긴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8. 연옥의 끝자락은 뜨겁지 않다

포포에게 들실장이 바란 것은 출산석이었다. 들실장은 운치를 찍어 포포의 빨간 눈에 발랐다. 양눈이 초록색으로 물든 포포는 배가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안되는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데프프프프…>

태교를 시작하는 포포를 비웃으며 이번에는 포포의 눈에 상처를 낸다. 빨간 피가 눈에 스며든다. 두 눈이 빨갛게 되면서 포포는 총구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총구에 힘을 주려고 해보지만 헛된 것이었다.

<안되는데스! 자들은 나오면 안되는데스!>

포포의 애절한 부탁에도 총구에서는 스물스물 저실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실장들은 나오자마자 마마를 불러대며 자신을 핥아줄 것을 말한다. 들실장은 만족스러운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는 피를 잘 닦아 포포를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린 후, 저실장들을 봉투에 담아 운치굴에 가져간다. 운치굴에서는 멍한 표정으로 포포의 장녀가 앉아있었다. 저실장들을 운치굴에 쏟아넣는다. 떨어지는 저실장들을 맞으며 정신을 차린 장녀가 위를 보며 소리를 지른다.

<오바상! 와타시를 꺼내주는테찌!>
<데프프프프.. 오마에는 거기서 우지챠들 프니프니나 하는데스.>
<레후? 오마에는 뭐인레후?>
<맛있는레후! 이건 뭐인레후?>

저실장들은 맛있게 운치를 먹기 시작한다. 장녀는 위만 바라보고 계속 소리쳤지만 이윽고 위에서 떨어지는 운치를 맞고 만다. 질겁하는 장녀는 뒷걸음질치다가 저실장 하나를 밟고 만다. 레짓하며 터지는 저실장. 저실장들은 그 모습을 보며 제각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레챠아아아아아!!!>
<오마에가 우지챠를 죽인레챠!!!!>
<나쁜 오마에인레후!>
<오마에! 우지챠를 죽이면 오마에를 먹어버리는데샤!!!!>

들실장은 이를 드러내며 장녀에게 경고한다. 장녀는 자기도 모르게 운치를 지린다. 들실장은 거칠게 운치굴의 뚜껑을 덮는다. 어두워지는 운치굴에 장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먹을 것도 부족하지 않았고, 모두 다 즐겁게 놀던 시절이다. 이게 다 우리를 쫒아낸 남자의 잘못이다. 장녀는 이를 간다. 하지만 장녀에게는 남자를 탓할 기회조차 없었다.

<오마에! 어서 프니프니를 해주는레후!>
<프니프니 안해주면 또 소리지르는레후!>
<...알겠는테찌. 기다리는테찌.>

들실장은 포포와 장녀를 완전히 지배했다. 해씨가 두번 들어갔다 나오면 포포를 출산시킨다. 그렇게 출산시킨 저실장들은 운치굴에 넣어놓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저실장들은 꺼내서 먹는다. 처음에는 자신이 낳은 저실장이라며 먹기를 거부하던 포포도 몇번 입에 쳐박아주니 이제는 알아서 잘 먹는다. 포포의 장녀는 가끔 트집을 잡아 다리를 분질러버린다. 비명을 지르는 포포의 장녀를 뒤로 한 채 통통한 저실장을 집에 데려오는 건 들실장의 기분을 매우 좋게 했다.

어느 날 들실장은 꽃을 하나 따왔다. 팬티를 내리고 총구에 꽃을 비빈다. 흥분한 실장석의 교성이 골판지 하우스에 울린다. 포포는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이윽고 절정에 다다른 들실장은 꽃을 집어던진다. 두 눈이 초록색으로 물든 들실장은 팬티를 올리며 웃는다.

<데프프프프… 출산노예덕분에 와타시는 건강한 자를 낳을 수 있는데스. 와타시의 자로 이 공원을 가득가득 메우는데스.>
<...와타시의 장녀는 어찌된데스?>
<오마에의 장녀는 잘 있는데스. 지금쯤 운치굴에서 열심히 우지챠들을 프니프니하고 있는데스. 데프프프프.>

포포는 눈을 감았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으로 빠져나왔다.

<와타시는 불행한데스…>
<데프프프프프… 출산노예가 불행한 것은 당연하데스.>

들실장은 포포의 혼잣말을 듣고 비웃었다. 발끈한 포포는 들실장을 노려본다. 초승달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발작적으로 외쳤다.

<와타시는 행복해지고 싶었는데스! 세레브 하우스도! 자도!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왜 와타시를 방해하는데샤!!!>
<와타시도 행복하려고 하는데스- 그러니 오마에를 잡아온 거 아닌데스? 데프프프프->

들실장의 말에 힘이 빠진 포포는 발라당 누워버린다. 행복회로도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왜 파킨하지 않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들실장도 그것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게 포포의 출산은 반복되었고 들실장의 배는 나날이 부풀어갔다. 물을 구할 때나 돌아다녔지 그 이외에는 출산석을 이용한 저실장만 먹어도 충분했다. 들실장으로서는 최고의 나날이었다.

배가 잔뜩 불러 출산이 임박했을 때였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와 함께 닌겐들이 나타났다. 들실장은 흠짓한다. 이 쪽은 인간들이 거의 오지 않았기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인간들이 쳐들어온 것이었다. 몸도 무거워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다 죽어버리는 것이다. 들실장은 잔뜩 긴장한 채로 인간들을 바라본다.

인간들은 어떤 네모난 것을 들고 두리번거린다. 그것을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 위에다가도 대본다. 큰 소리가 난다. 고개를 끄덕이는 인간들을 곧 자신의 하우스 안을 살펴본다. 손을 집어넣어 자신의 출산석을 꺼낸다. 

-데에스! 데스! 데샤아아아!! 

안된다! 그건 나의 출산석이다! 들실장은 절박하게 말하며 손을 흔들어댔지만 인간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네모난 것을 포포에 몸에 대본 인간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귀에 무엇인가를 끼는 인간들. 포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 원래 사육실장이었니?”
<데에에… 그런데스...?>
“이름이?”
<포포...포포인데스…>
“좋아. 주인에게 데려다줄게.”

포포와 들실장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이렇게 쉽게? 들실장은 멍하니 있다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른다. 인간들의 시선이 들실장에게로 향한다. 

<와...와타시도 사육실장이었는데스! 미도리인데스! 와타시도 주인상에게 데려다주는데스!>
“...넌 등록되어 있지 않은데? 데려다줄 수 없어.”
<데… 왜 안되는데샤!!! 와타시도 사육실장이었는데샤!!!>
“네가 그렇다고 말해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단다. 그럼 안녕.”
<그...그렇게 가버리면 안되는데스!!!>

들실장은 인간들을 쫒아가려 하지만 인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인간의 품 안에 안긴 포포는 인간의 옷깃을 잡는다. 인간은 포포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듯이 눈짓을 한다.

<와...와타시의 장녀가 저 운치굴에 있는데스… 와타시의 장녀도 데려와줄 수 있는데스…?>
“음… 그건 좀 곤란해.”

인간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등록된 사육실장의 구출일 뿐이야. 안그랬으면 아까 그 들실장도 데려왔겠지. 안그래?”
<...알겠는데스.>

포포는 순순히 포기한다. 포포를 좀 더 설득할 준비를 하던 인간은 의외라는 듯 옆의 인간과 시선을 교환한다. 포포가 장녀를 쉽게 포기한 것은 들실장이 해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는 또 낳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끝인 것이다. 여기서 인간들을 놓치면 자신은 절대로 출산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장녀… 미안한데스…]

포포는 마음속으로 장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전해지리라 제멋대로 생각한 사과. 당연히 그 사과는 전해지지 않는다. 포포는 그렇게 인간에게 안겨 잠이 든다. 너무나 지켰다. 이제는 쉬고 싶다.

포포가 잠든 사이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호파로 구성된 구조단은 공원에 유기된 사육실장들을 구조하는 자원봉사단체였다. 등록된 사육실장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였기에 한 번에 많은 수를 구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번 모일때마다 몇몇씩은 구조하고는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한 사육실장들은 보건소에 전달한다. 전달받는 보건소 직원의 얼굴이 굳어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들은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구조단은 오늘도 보람찬 일을 했다 생각하며 해산한다.

포포는 한 철장 안에 들어갔다. 철장 안에는 허름한 베개와 이불이 있었다. 그릇에는 푸드와 물이 있었다. 푸드를 한 줌 쥐어 먹는다. 눈에서는 적록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이다. 푸드를 먹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한다. 어리석은 선택들의 결과로 자신은 독라가 되었다. 차녀는 죽었고, 장녀는 운치굴 노예가 되었다. 사녀는 고양이씨에게 잡혀갔으며 삼녀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들실장에게 먹혔다. 

밥과 물을 다 먹은 포포는 철장 끝으로 그릇을 밀어넣는다.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는다. 이제 여기서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주인이 오면 옷도 다시 받을 수 있다. 목걸이도 다시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에서 잘 수 있다.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되면 주인과 다시 즐겁게 지내리라. 주인을 만나면… 행복해질 수 있다.

포포는 그렇게 잠들었다. 주인이 올 날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행복해질 날을 꿈꾸면서.


#종장1

들실장은 그렇게 떠난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의 출산석이 사육실장이었다는 이유로 사라진 것이다. 이가 갈린다. 왜 저런 구원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것인가. 들실장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다 쓰러진다. 배가 아파온다. 출산이 시작된 것이다. 공동으로 출산할 때 쓰는 공원 화장실은 너무나 멀다. 집에 숨겨놓은 그릇을 꺼내고 페트병에서 물을 따른다. 팬티를 벗고 총구를 들이댄다. 찢어질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자...자들은 어서 나오는데샤!>

퐁당 소리가 나며 한 마리가 나온다. 들실장은 재빨리 점막을 핥아준다. 손과 발이 자란다.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들실장은 자신의 장녀를 내려놓는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자신의 장녀를 바라보며 감동에 빠질려는 찰나 통증이 정신을 일깨운다. 재빨리 자세를 잡는다. 한번 나온 뒤로는 쑥쑥 나온다. 제일 큰 저실장을 잡아 또 점막을 제거해준다. 장녀도 잡히는대로 꺼내 점막을 핥아준다. 똑똑한 장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이윽고 출산을 마친 들실장은 헉헉대며 주변을 정리한다. 장녀, 차녀, 삼녀, 그리고 엄지와 저실장들. 

<오마에는 장녀인데스.>
<테찌! 낳아주셔서 감사한테찌!>
<오마에는 차녀, 오마에는 삼녀인데스.>
<귀여운 삼녀인테찌! 어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주는테찌!>
<테...테찌… 삼녀챠… 그러면 안되는데찌…>

삼녀의 분충발언에 얼굴을 찌푸리는 들실장이었다. 그리고 그 발언을 받아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는 엄지는 더 꼴보기 싫었다. 

<레츄웅! 와타시는 사녀인레츙! 마마는 세계 제일 귀여운 와타시에게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는레츙!>
<...장녀와 차녀는 어서 이것들을 먹는데스. 삼녀와 엄지는 따라오는데스.>

들실장은 저실장들을 들고 운치굴로 향했다. 삼녀와 엄지는 재빨리 들실장을 쫒아가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굴었지만 들실장은 대강대강 고개만 끄덕이며 흘려들었다. 이윽고 운치굴에 다다른 들실장은 운치굴을 덮고 있는 것을 치운다. 안을 보니 쏟아진 빛에 당황한 포포의 장녀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삼녀와 엄지도 들실장을 따라 운치굴을 내려다보았다. 운치굴에서 나오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독라의 자실장을 보고 배꼽이 빠지도록 비웃는다. 독라의 실장석은 노예다. 위석 깊숙히 박혀있는 그 정보에 따라 저 독라의 자실장은 자기들 밑인 것이다.

<테치치치칫!! 노예인테찌!>
<레찌! 와타시의 노예인레찌! 레퓨퓨퓨퓨.>

자신의 총구에서 나온 자들이지만 너무 심한 분충이다. 들실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삼녀에게 손을 뻗는다. 운치굴의 독라를 놀리느라 정신이 없는 삼녀였다. 들실장은 망설임없이 머리카락을 잡고 힘을 준다. 두두득하며 삼녀의 머리카락이 뽑혀나간다. 삼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화를 내려다가 자신의 마마 손에 쥐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넋이 나간다. 재빨리 자신의 뒤통수를 더듬어 보지만 풍성하고 세레브한 자신의 머리카락은 없어진 지 오래다. 

<테….테!!!>
<레퓨퓨퓨퓨퓨!! 오네챠 꼴이 뭐엔레… 마마? 마마!!>

삼녀를 비웃기 시작한 엄지도 마찬가지로 머리를 뜯어준다. 둘 다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녀석들이다. 재빨리 운치굴에 밀어넣는다. 그 뒤로 자신이 낳은 저실장도 집어넣는다. 포포의 장녀에게 손을 내민다.

<오마에는 지금 올라오는데스.>
<테…? 진짜인테찌?>
<싫으면 마는데스.>
<아닌테찌! 올라가는테찌!>

장녀는 들실장의 손을 잡고 운치굴을 빠져나온다. 들실장의 삼녀와 엄지도 들실장의 손을 잡아보려했지만 들실장은 매몰차게 그 손을 쳐낼 뿐이었다. 포포의 장녀를 꺼낸 들실장은 운치굴의 뚜껑을 닫으며 자신의 삼녀와 엄지에게 이야기한다.

<오마에들은 더이상 와타시의 자가 아닌데스. 거기서 우지챠들 푸니푸니나 하는데스. 우지챠들이 죽으면 오마에들이 죽는데스.>
<똥마마!!! 꺼내주는테찌!!!!!>
<와타시의 애교를 보고 메로메로되는레찌!?>

들실장의 손을 잡고 올라온 포포의 장녀는 울먹거리는 표정이었다. 들실장은 시끄러운 운치굴의 뚜껑을 닫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들실장이 준 먹이를 먹고 있던 장녀와 차녀는 독라의 자실장을 보고 흠짓한다. 포포의 장녀는 집 안을 둘러본다. 자신의 마마가 보이지 않는다.

<오바상. 와타시의 마마가 안보이는테찌…>
<오마에의 마마는 닌겐들이 데려간데스.>
<테?>
<사육실장이라서 데려간다고 했는데스. 근데 오마에는 버리고 간데스. 데프프프프프…>

들실장은 포포의 장녀를 보며 비웃었다. 포포의 장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했다. 집 안을 마구 둘러보지만 자신의 마마는 보이지 않았다. 털썩 주저앉았다. 들실장은 그런 포포의 장녀를 들어올린다. 

<오마에가 이제부터 와타시의 출산노예인데스. 일단 발씨부터 잘라주는데스.>
<테…? 테…! 안되는테찌!!!! 와타시를 구하는테찌! 와타시를 살려주는테찌! 똥마마!!!!>

무언가를 썰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포포의 장녀가 비명을 지른다. 그 비명은 골판지 하우스를 울렸지만 들실장도, 들실장의 자들도 신경쓰지 않는다. 


#종장2

유리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온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다. 716번. 대기인수 15명. 남자는 한숨이 나온다.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남자는 자리에 앉아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벨이 울릴 때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윽고 715번이 울리자 남자는 일어나 슬그머니 앞으로 향한다. 716번. 남자는 자신의 번호표를 들고 창구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문자를 받고 왔는데요.”
“네, 잠시 문자 좀 보여주시겠어요?”

남자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건네 문자를 보여주었다. 여자는 나온 일련번호를 입력 후 고개를 끄덕였다.

“사육실장 분실로 오신거네요.”
“예? 사육실장이요?”
“네. 혹시 잃어버리신거 아니신가요?”

남자는 문득 포포에게 실장디텍터를 달았던 것을 떠올린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접수원은 그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보아온 얼굴이다. 아낄 때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끼다가 버릴 때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사람들. 하지만 자신 또한 실장석이라는 생물을 잘 아니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하지 않는다. 실장석은 그런 생물이니까. 

남자가 받은 문자내용을 창구에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던 것도 실장석관리법 때문이었다. 혹시나 모를 유기의 가능성에 대비해서 일부러 부르는 이유를 표시하지 않는 것이다. 실장석관리법에 따라 실장석을 고의로 유기하는 사람은 1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 라는 규정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사육실장을 버린 대다수의 사람은 이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법을 있으나마나한 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법을 적용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적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잠시만요… 어제 실종신고하신걸로 처리할게요.”
“네?”
“어제 실종신고하신걸로 하고, 오늘 찾으신걸로 하면 벌금 물 일이 없겠죠?”

접수원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는다. 남자는 두드러지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런 녀석을 버린 것을 가지고 돈까지 깨질 줄 알았는데 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접수원은 무표정하게 말을 잇는다. 

“대신, 정식으로 여기에 신고하신 후에 처리하셔야해요. 한 달 뒤에요.”
“한달이나요?”
“네. 고의로 유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기간이라나 뭐라나. 높으신 분들이 정하는 것이라 저로서는 그저 따를 뿐이죠.”

접수원은 어깨를 으쓱한다. 남자는 한숨을 쉬지만, 방법이 없었다. 100만원따위를 실장석에게 쓰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니까. 오히려 이렇게 남자의 편의를 봐준 접수원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남자는 실종신고 서류를 작성한 후에 접수원에게 넘겨준다. 접수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타자를 두들긴다. 지지직 거리며 낡은 프린터에서 서류 하나가 나온다. 여자는 부드럽게 뽑아 남자에게 건네준다.

“여기 실종신고서입니다. 지하에 있는 실장석 보호소 가셔서 제출하시면 되요.”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지하로 향했다. 데스크에 좀 전에 받은 서류를 제출했다. 공익복을 보아하니 여기서 일하는 공익인가보다. 매일같이 저런 실장석을 관리해야하다니. 불쌍한 친구군.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공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딱판과 열쇠뭉치를 잡는다. 

“이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남자는 공익의 뒤를 따라걸었다. 철문을 여는 소리가 차가웠다. 공익은 열쇠뭉치를 한 손으로 돌리며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휘휘 걸어갔다. 그런 공익의 뒤를 남자가 따라 걸어갔다. 공익과 남자가 들어오자 수많은 실장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건물 안이라서 더 울리는 것일까? 남자는 못참고 얼굴을 찡그리며 귀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런 남자를 보며 공익은 웃으며 말한다.

“너무 시끄럽죠?”
“아… 네…”
“링갈이 없어도 얘네가 하는 이야기는 뻔해요. 자기를 꺼내달라. 사육실장으로 해달라. 이미 나는 너의 사육실장인데 안데려가고 뭐하냐… 정말 구역질나는 녀석들이죠.”
“그렇죠. 구역질나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익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곳에 멈춰섰다. 딱판과 철창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열쇠를 넣고 돌려 문을 연다. 그리고 손을 넣어 아무렇게나 끄집어낸다. 한 독라의 실장석이 끌려나온다. 남자는 이마를 찌푸린다. 독라의 실장석은 정신이 든 듯 힘없이 고개를 들다가 남자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뜬다. 이윽고 소리를 치며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남자의 눈이 실장석의 귀로 향한다. 오른쪽 귀가 뜯겨져 있다. 포포가 자실장 때 공원실장에게 뜯겼던 그 귀였다. 남자는 공익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공익은 말없이 철창문을 닫는다. 

남자와 공익은 빠른 걸음으로 돌아나갔다. 실장석의 비명을 지하공간을 타고 울려서 기괴하게 들렸다. 재빨리 빠져나온 후 공익은 다시 문을 잠근다. 공익의 손에 매달린 독라의 실장석은 남자만을 바라보며 몸을 버둥거리지만 남자는 눈길조차 주지않는다. 공익은 익숙하게 검은색 에코백을 꺼내 실장석을 담아 남자에게 건네준다. 남자는 마치 냄새나는 것을 받은 양 몸에 멀찌감치 떨어뜨려놓는다. 

“에코백까지해서 삼만원입니다.”
“카드도 되죠?”
“카드로 하시면 삼만오백원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익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드 단말기의 버튼을 누른다. 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온다. 남자는 카드만 받는다. 공익은 영수증을 주욱 찢어 옆에 있는 휴지통에 버린다. 

“수고하세요.”
“네. 조심히가세요.”

남자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 봄인데도 태양볕이 너무나 뜨겁다.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땀이 나다니. 남자는 괜스레 화가 난다. 에코백을 괜히 한 번 벽에다가 박는다. 데엙 소리가 난다. 에코백 안에서 실장석이 버둥거리기 때문에 괜한 힘이 더 든다.

“버둥거리지마라. 죽여버리기 전에.”

에코백의 버둥거림이 잠잠해졌다. 개새끼.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옥의 편


9. 여기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데엙!

집에 오자마자 남자는 에코백을 대충 집어던져버린다. 던져진 에코백에서 포포는 엉금엉금 기어나와 선다. 포포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남자의 집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집, 익숙한 방, 익숙한 거실이었다. 포포는 서서히 거실을 향해 걸어나갔다. 남자는 그런 포포의 뒷모습을 혐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포포는 쉬고 싶었다. 단 며칠뿐인 공원생활이었지만 그것은 포포에게 심적으로 너무나 많은 고통을 주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들이 다 죽어버린 며칠이었다. 자신은 운치굴 노예로 지내야만 했던 며칠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구원받았으니 이제 그런 생활을 끝이리라. 지금은 좀 쉬자. 포포는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없다. 흔적 조차 없었다. 나의 세레브 하우스가 보이지 않는다. 포포는 남자를 바라본다. 여전히 남자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남자에게 가서 바지를 잡고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가 있던 위치를 가리켜보지만 남자는 묵묵부답이다. 

-데스! 데스데스데에스! 

남자는 거칠게 다리를 흔들어 포포를 떼어냈다. 나동그라진 포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자신이 맞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포포는 다시 남자에게 매달렸다. 남자는 발로 포포를 차버렸다. 굴러 나가떨어진 포포. 자신의 이해범위를 벗어난 남자의 행동에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한번 더 차버린다. 벽에 부딪치고 떨어진 포포. 남자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방에 들어가버린다. 

-데에스…

포포는 힘없이 주저앉는다. 자신은 그저 세레브 하우스를 돌려달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주인이 자기를 때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쉴 곳도 없지 않는가. 적어도 자신의 침대정도는 돌려주었으면 한다. 그때 문득 떠올린다. 자신의 목걸이. 목걸이가 있어야만 남자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포포는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빨간 목걸이를 본다. 웃으며 목걸이를 향해 달려가는 포포. 목걸이를 목에 대본다. 이정도면 남자와 대화할 수 있으리라. 

남자의 방문 앞에 선 포포는 문들 두들긴다. 한참을 두들기니 문이 빼끔 열리고 남자가 얼굴만 내밀어 포포를 바라본다. 명백히 귀찮아하는 표정이다. 그런 남자에게 포포는 빨간 목걸이를 내민다. 얼굴을 찡그리는 남자. 목걸이를 흔들어보지만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답답함을 느낀 포포는 목걸이를 목에 대고 남자에게 말을 건다.

<데에에… 주인사마…>
“......”
<와타시는 쉬고 싶은데스… 와타시의 세레브 하우스는 어디있는데스…?>
“...이 새끼가?”

남자의 거친 말에 포포가 놀랐다. 남자는 문을 벌컥 열고 현관으로 향한다. 불안해진 포포는 남자의 등 뒤를 쫒는다. 남자가 무엇인가를 들고 온다. 구두주걱이다. 포포는 남자에게 매달려보려 하지만 남자의 구두주걱이 포포에게 먼저 닿았다. 포포는 나동그라졌다. 그런 포포에게 구두주걱이 휘둘러진다.

“이 새끼가!”
-데엙!
“오자마자 한다는 이야기가!”
-뎈!
“고작 그딴거냐?!”
-뎃! 뎃!
“이 배은망덕한 새끼!”
-데갸아아아악!

포포는 머리가 잡혀 들어올려졌다.  포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가 자신을 구해온 것은 다시 키우겠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왜 자신을 때리는것이지? 그런 포포를 남자가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끌어당기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한다. 포포에게는 그런 남자의 목소리가 공원에서 만났던 고양이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운치가 흘러내린다.

“한달, 한달동안 신나게 괴롭혀주마. 씨발새끼.”
-데...데샤아아아아!

남자는 아무렇게나 포포를 집어던진다. 몇바퀴나 굴러가던 포포는 탁자의 다리에 걸려 멈춘다. 고통속에서 포포는 남자를 올려다본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싸늘하게 내려보다가 휙 하고 사라진다. 포포는 일어나려고 팔에 힘을 줘보지만 이내 쓰러진다. 포포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적록의 눈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자를 가졌던 대가가 너무 컸다. 단지 자신은 자를 가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자를 가져서 행복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자신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남자도 행복해졌을게 틀림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행복을 거부했다. 행복을 거부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버렸다. 자신에게 메로메로된 인간들이 주인을 찾아주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을 맞은 건 휑한 빈자리와 남자의 폭력 뿐이었다.

[와타시는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것뿐인데스. 그런데 왜 와타시는 행복해지지 않는데스?]

포포의 질문에 대답을 해줄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행복의 파랑새를 쫒아낸 줄도 모르는 독라의 실장석은 그렇게 남자의 거실에서 소리내어 흐느껴 울 뿐이었다.

“시발새끼야! 누가 그렇게 쳐 울래!”

방문이 쾅 하고 열리며 남자가 열받은 표정으로 달려나온다. 포포는 너무나도 놀라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그친다. 하지만 바닥에 묻어있는 적록의 눈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까 지린 운치도.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다시 구두주걱을 들고 온다. 포포는 놀라 일어나려고 하지만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넘어질뿐이었다. 다가오는 남자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기어가보지만 포포의 노력이 야속하게도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시 구두주걱으로 후려치는 남자. 포포는 그저 몸을 구부려 어떻게든 맞는 면적을 줄여보려 애쓸 뿐이었다.

“이 개새끼가!”
-뎃!
“니가 싸재낀 운치는 재깍재깍 치워야 할 거 아냐!”
-데스우! 데스우!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마!”
-데엡!

남자는 그렇게 포포를 후려갈겼다. 살점이 튀고 피가 나오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때로는 구두주걱을 세로로 세워 후려친다. 날카롭게 다가오는 고통에 포포는 자신도 모르게 전신이 쭉 펴진다. 그런 포포에게 다시 남자의 구두주걱 찜질이 내려진다. 포포는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 남자의 앞에 엎드린다. 실장석들이 자신을 용서하기를 바랄 때 취하는 가장 마지막 자세인 도게자였다. 남자는 그렇게 엎드린 포포의 등에 몇 번 더 후려갈기다가 구두주걱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다시 한번 시끄럽게 굴거나 정리 안하면 그 때는 한달이고 뭐고 죽여버릴거다.”
-데...데스우…
“개같은 새끼.”

남자는 엎드린 포포를 그대로 차올린다. 얼굴을 맞은 포포는 그대로 코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대자로 뻗은 채 덜덜거리는 포포를 보며 남자는 씩 웃고서 다시 들어간다. 포포는 간신히 몸을 돌렸다. 아마 이쪽이었을 것이다. 포포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물걸레가 있는 곳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포포의 지옥은 이제 시작이었다.


10. 신과 악마는 동전의 양면이다

남자의 방 문이 열린다. 오랫만에 푹 잔 남자는 기지개를 펴며 방에서 나온다. 그 앞에는 포포가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다. 남자는 포포를 보자마자 인상이 우그러진다. 좋았던 기분이 한 순간에 날아가고 불쾌감만 남는다. 남자의 마음을 모르는 포포는 연신 굽신거리며 인사를 한다.

<아...안녕히 주무신데스… 주인사마…>
“...시발.”
-퍽
<덹?!>

남자는 발을 들어 포포를 걷어찬다. 날라간 포포는 데굴데굴 굴러간다. 포포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남자의 앞에서 다시 엎드려 인사하는 포포. 남자는 그런 포포를 다시 걷어찬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찼는지 얼굴에서 피를 뿜으며 날라간다.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엎어진 포포. 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 엉금엉금 남자에게로 기어간다. 포포가 기어간 자리에는 핏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시 남자의 앞에 선 포포는 엎드린다. 부들부들 떨리는 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남자는 씩 웃으며 부엌으로 향한다. 포포는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난다. 일회용 물걸레를 들고 자신의 핏자국을 닦는다. 드디어 아침 인사가 끝났다. 

벌써 일주일이었다. 일주일동안 남자는 포포를 꾸준히 괴롭혔다. 이 집에 다시 온 첫날 남자보다 늦게 일어났다고 죽도록 맞았다. 그 다음 날 남자보다 먼저 일어나 졸린 눈을 부여잡고 인사를 했지만 주인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죽도록 맞았다. 셋째 날이 되서야 포포는 남자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 남자의 방 앞에 엎드려 있었다. 남자는 만족한 듯 두어번만 걷어차고 말았다. 

남자는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향긋한 음식 냄새가 포포의 코를 자극한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부엌으로 향한다. 부엌 한 귀퉁이에서 남자를 몰래 올려다본다. 남자는 흥겹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전의 자신이라면 지금쯤 일어나서 남자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남자는 웃으면서 자신을 반겨주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남자쪽으로 향한다. 남자는 느껴지는 기척에 포포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남자를 본 순간 포포는 뒤로 튀어 도망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남자는 걸려있는 효자손을 들고 포포에게로 향한다. 포포는 청소하던 물걸레를 잡고 미친듯이 자신이 닦았던 곳을 닦으며 남자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소용없었다.

<아닌데스! 아닌데스! 와타시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던데스!>
“이 개새끼가 또 거짓말을 해?!”

남자의 효자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포포는 억지로라도 몸을 굽힌다. 등으로 맞아야 조금이라도 덜 다친다는 것을 일주일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포포다.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억지로 틀어막는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남자의 매타작은 더더욱 오래간다. 이 또한 일주일간의 경험이었다. 등에서 피와 살점이 튀지만 포포는 입을 틀어막는다. 이를 악문다. 포포의 입에서는 작은 신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남자가 효자손을 집어던진다. 드디어 매타작이 끝난 것이다. 남자는 휑하니 몸을 돌려 다시 밥을 먹으러 간다. 그 뒤로 포포의 감사인사가 들린다.

<가...감사한데스…>

포포의 목에는 붉은 목걸이가 달려있었다. 둘째날 남자가 신나게 포포를 패다가 다시 달아놓은 것이다. 그 전과는 목적이 달랐다. 처음 이 목걸이를 달 때 남자는 포포와 ‘소통’을 위해 달았다. 지금은 아니다. ‘복종’을 위해 단 것이다. 주인에게 군소리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노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 지 주인은 알아야하는 것이다. 다시 이 목걸이를 목에 걸었을 때 뛸듯이 기뻐했던 포포도 지금은 이 목걸이가 족쇄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살점과 피를 닦아낸다. 벌써 이것도 일주일째다. 셋째 날까지는 운치를 지려댄 포포였지만 이제는 또 적응했다고 운치는 지리지 않는다. 닦아낸 물걸레는 휴지통에 잘 넣어둔다. 일을 마친 포포는 지정된 장소에 가서 앉아있는다. 남자가 그릇에 무엇인가를 담아온다. 음식물 쓰레기다. 상추의 잔해라던가, 참치 찌꺼기, 남은 김치, 밥 등이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먹는 음식물 쓰레기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포포를 보며 남자는 비웃는다.

“왜? 먹기싫어? 치워줄까?”
<...아닌데스. 감사히먹는데스.>

포포는 엎드려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먹기 시작한다. 실장푸드만 먹던 사육실장에게는 스트레스인 상황다. 공원에서는 자신이 낳은 저실장도 먹었다지만 그것은 살기 위해 먹은 것에 불과하다.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 남자의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저 남자가 괴롭히기 위한 것이다. 남자가 미처 버리지 않은 실장푸드 봉투가 부엌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이 그 증거이리라. 

실장푸드를 가리키며 애원을 한 적도 있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구두주걱이 날라왔다. 그 뒤로 포포는 절대로 실장푸드를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포포는 상추찌꺼기를 들어본다. 입에 넣는다. 그래도 공원에서 먹던 썩은 것들보다는 조금 낫다. 일주일째 먹는터라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있을 것이다. 포포는 조금씩 조금씩 입에 넣는다. 

남자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포포는 구석에 가서 조용히 앉아있는다. 위잉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없어진 사이에 새로 들어온 것 중 하나다. 동그란 그것은 남자의 방과 거실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자신이 하던 일을 빼앗긴 느낌이다. 가만히 그것을 노려보지만 그것은 포포의 노려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집에 다시 들어온 이후, 포포에게 안식이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받던 귀여움을 받을 수가 없다.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니 쓰레기처럼 대우받는다. 폭력과 멸시. 폭력은 참을 수 있다. 아무리 아파도 주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멸시는 너무나 힘들다.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소중한 돌씨가 갈라지는 느낌이다. 

남자의 집에 돌아오고 나서 해가 다섯 번 떴을 때, 돌씨가 너무 아파서 남자의 앞에 엎드려 울었던 적이 있었다. 포포는 남자에게 말했다. 제발 상냥했던 주인사마로 돌아와달라고. 한참을 울다 남자가 가만히 있는 것을 느끼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날, 남자는 자신이 봤던 가장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냥했던 주인이라고?”
-철썩!
<뎃!>
“니가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철썩!
<자...잘못한데스!>
“그런 말은 한참 전에 했어야지.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짜악!
<데갸아아악!>

남자는 손에 잡히는 것들을 전부 포포를 패는 데 사용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듯이 후려치는 남자에게 공포를 느낀다. 어떻게든 살기위해 남자에게 기어가 발을 잡아보지만 남자는 더러운 것이 자기 몸에 닿은 듯 걷어차버린다. 피로 흥건해진 포포였다. 지금도 그 상처를 전부 회복하지 못해 욱신거린다. 

포포는 이제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용서를 빌지도 않는다. 하지만 용서를 받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 왔었을 때, 남자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한 달, 한 달동안 신나게 괴롭혀주마. 씨발새끼.’

주인은 분명 말했다. 한 달동안 괴롭혀주겠다. 그 말 뜻은 분명 한 달동안 견디면 자신을 용서해준다는 뜻이리라. 포포는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한 달… 한 달인데스… 한 달만 버티면 되는데스…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스...]

포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한 달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11. 너에게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

“워… 그렇게하면 재미없을텐데.”
“뭐가?”

남자는 퉁명스럽게 받는다. 그 앞에는 자신의 친구가 앉아있었다. 오랫만에 외출을 하지만 만나는 것은 다 그놈이 그놈. 자신의 인맥에 한숨이 나오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에게 친구는 싱글벙글 웃으며 답한다.

“그렇게 괴롭히기만 하면 실장석놈들은 또 그런 것에 익숙해진다니까.”
“그건 그래. 진짜 잘 버티긴 하더라. 다른 실장석들은 가출도 한다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올렸다 내리기’를 하라는거야.”
“올렸다 내리기?”

처음 듣는 말에 남자는 갸우뚱한다. 친구는 열정적으로 말을 잇는다. 

“실장석은 만족을 모르는 놈들이라, 대우를 잘해주면 잘해주는대로 더 달라고 하는 놈들이라고. 그렇게 잘해주다가 갑자기 확 조지면? 얘는 더 나락으로 빠지지! 그 표정이 진짜 끝내준다고.”
“미친,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이 주 뒤면 보건소에 가져다 버릴 놈이야.”
“에잉, 재미없는 놈.”

친구는 빨대를 거칠게 빨면서 창밖을 쳐다본다. 남자도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신다. 올렸다 내리기라. 실장석따위에게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나? 남자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초록색 무엇인가가 보인다. 꼬질꼬질한 꼴을 보아하니 들실장인가보다. 남자를 보며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댄다.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다. 화가 난 들실장이 카페의 유리창을 마구 치지만 남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친구는 그 모습을 웃으면서 구경한다.

이윽고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 몽둥이를 들고 나온다. 들실장은 놀라 도망치려고 하지만 사람에 비하면 한참 느린 생물이 실장석이다. 머리가 으스러지도록 맞고 실장석 처리 봉투에 담긴다. 아르바이트생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하며 뒷처리를 한다.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남자를 바라본다.

“그럼 이 주 동안은 어떻게 할건데?”
“그러게 말이다. 이제 때리는 것도 귀찮아. 솔직히. 반응도 없고.”
“아, 실장석은 또 안기를거냐?”
“미쳤냐?”

남자는 친구를 째려본다. 친구는 실실거리며 남자의 째려봄을 넘긴다. 

“아니면, 다른 실석류는? 실창석도 있고, 실홍석도 있고, 실취석도 있고?”
“생각없어. 너도 한 번 분충한테 데여보고 그딴 소리를 하든가.”
“다른 것들은 분충이 없다는데? 실장석같은 똥벌레보다 훨씬 귀엽고.”
“지금은 다 싫어. 그딴 소리만 할거면 난 간다?”
“야야, 이 야박한 새끼.”

남자가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하자 친구는 손사레를 친다. 남자는 다시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 뒤로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누가 누구랑 사귄다던가, 헤어졌다든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더라,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 남자는 그렇게 친구와 웃고 떠들다가 헤어졌다.

남자는 편의점에 들려 저녁거리를 샀다. 남자는 흥얼거리며 이어폰을 다시 낀다. 그 뒤로 초록색 무엇인가가 접근한다. 초록색 무엇은 남자의 봉투에 무엇인가를 넣는다. 남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안도한 그것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만 본다. 힘없이 뒤돌아 선 그것 앞에는 편의점 앞치마를 입은 남자가 열받은 표정으로 몽둥이를 들고 서 있다. 놀란 그것은 도망치지만 이내 머리가 뭉개진 채 편의점 뒤로 사라졌다.

남자는 집에 도착한다. 포포는 엎드려 남자에게 인사하지만 남자는 무시한다. 이제는 때리는 것도 귀찮은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사왔던 것들을 꺼내기 위해 봉투를 열어본다. 이상한 냄새가 남자의 코를 자극한다. 봉투 안에는 불청객이 있었다.

-테..테찌?
“...이런 씨발!”

남자는 화가 난다. 가뜩이나 실장석때문에 열받는데 탁아라니. 다행이도 자신의 음식에 손을 대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는 거칠게 다른 물건들을 꺼낸다. 자실장은 나뒹그라졌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않는다. 물건들이 문제없음을 확인한 남자는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꼴에 나름 똑똑한 자실장이라 이건가. 남자는 힘겹게 일어나는 자실장을 보며 생각한다.

문득 친구가 아까 말했던 ‘올렸다 내리기’가 생각난다. 2주뿐이라면… 남자의 머리 속이 맹렬하게 돌기 시작한다. 자실장은 그런 남자를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별로다. 냄새도 좋지 않다. 일단은 씻겨야지. 남자는 자실장을 한 손에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남자는 샴푸와 바디샤워등으로 자실장을 대충 씻긴다. 옷도 열심히 빨아본다. 땟국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옷이라 한참을 빨아 겨우 깨끗해졌다. 자실장도 깨끗해진 자신에게 만족한듯 춤을 춘다. 맨몸의 자실장이 춤을 추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남자는 고개를 대충 주억거리며 넘긴다. 

“너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거지?”
-테엣?! 테찌! 테테찌!

남자의 질문에 자실장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자실장의 눈이 반짝인다. 남자가 원하던 반응이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실장은 자신이 해낸 것처럼 팔을 번쩍 들어 소리를 친다. 자실장의 구역질나는 소리가 화장실을 울리지만 남자는 꾹 참는다. 다 자신의 계획을 위한 인내인 것이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실장을 들어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포포는 거실의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탁자에 자실장을 내려놓는다. 포포와 자실장은 서로의 모습에 놀란다. 포포는 남자가 자실장을 데려왔다는 것에서, 자실장은 독라의 성체실장이 이 집에 있다는 것에서 놀란다. 남자는 스마트폰의 링갈을 켜고 자실장과 대화를 시도한다.

“너 누가 탁아한거야?”
<와타시의 마마인테찌! 공원에 너무 다른 오바상들이 많아서 먹을 게 부족하다고 한테찌… 그래서 와타시보고 닌겐상을 메로메로해서 잘 살라고 한테찌!>

분충이네. 남자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다.

“그래도 봉투 안에 음식물은 안먹었네.”
<그런테찌! 마마가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고 한테찌! 와타시도 배고프지만 안먹은테찌! 잘한테찌?>

남자는 자실장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그래, 이정도면 괜찮을거야. 흘끔 포포를 쳐다본다. 포포는 그저 무표정하게 자실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을 자실장에게서 떼지 못한다. 무슨 생각일지는 뻔히 보인다. 남자는 굳이 입 밖으로 그 생각을 꺼내지 않고 씨익 웃는다.

“좋아, 오늘부터 너는 사육실장이다.”
<정말인테찌?! 기쁜테찌!>

자실장은 두 팔을 벌리고 방방 뛴다. 포포는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본다. 아직 놀랄 게 그건 아닐텐데 말이지. 남자는 속으로 짖궂게 웃으며 다음 말을 한다.

“이름은… 포포로 하자.”
<알겠는테찌! 와타시는 포포인테찌!>

자실장의 이름을 듣고 포포는 경악했다. 포포는 자신의 이름 아니었나? 자신이 나서면 남자에게 죽도록 맞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고 포포는 허둥지둥 남자의 앞으로 나선다. 자실장은 달려오는 포포를 보며 흠짓한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포포를 바라본다.

“뭐? 니가 왜 튀어나와?”
<오...와타시가 포포인데스! 주인사마!>
“아, 그래. 니 이름도 정해줘야지. 니 이름은 앞으로 ‘분충’이다. 잘 기억해둬라.”
<아닌데스! 와타시의 이름이 포포인데스!>
“그럼 포포야, 궁금한 거 있으면 이 ‘분충’에게 물어보고. 집은 지금 없으니까 내일 구해다줄게. 알았지? 분충, 너는 포포 건들이면 죽여버릴거니까 잘해.”
<알겠는테찌! 감사한테찌!>
<주인사마! 주인사마!>

포포의 간절한 부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매정하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남자가 들어간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포포의 등 뒤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자실장이 탁자 위에서 방방 뛰고 있는 것이다. 

<분충! 오마에! 어서 와타시를 모시지않고 뭐하는테찌!>
<...오마에… 어디서 지금 지랄인데스…?>
<테…? 테…?!>

포포는 이를 갈며 자실장에게 달려든다. 자실장은 도망치려 해보지만 탁자 위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자실장을 잡은 포포는 으르렁거리며 자실장을 위협한다. 자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빵콘한다. 운치가 흘러내리는 자신을 손을 바라보며 포포는 씨익 웃는다. 자실장에게는 그 모습이 공포스럽다.

<오마에… 죽고싶은데스?>
<아닌테찌! 아닌테찌!>
<와타시가 포포인데샤! 어디서 나온 지도 모를 천한 들실장따위가 와타시의 이름을 가져가는데샤! 죽여버리는뎁?!>
“이 새끼, 내가 지랄할 줄 알았지.”
남자는 효자손을 들어 포포를 내려친다. 포포는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다. 포포의 손에서 벗어난 자실장은 남자에게로 달려간다. 그런 자실장을 남자는 조심스럽게 받는다. 자실장은 남자의 손가락에 얼굴을 부비면서 뭐라뭐라 하지만 남자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자실장을 왼손에 든 채로 오른손에 든 효자손을 포포에게 휘두른다. 피가 튀는 모습에 왼손에 있던 자실장은 테프프프프... 하고 포포에게 비웃음을 날린다. 남자는 씩 웃으며 즐겁게 후려친다. 

포포를 한참동안 후려친 남자는 효자손을 집어던진다. 남자의 손에는 자실장이 흘린 운치가 묻어있었다. 남자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지다가 억지로 펴진다. 남자는 웃으며 자실장에게 말한다. 

“운치 지렸잖아. 씻으러가자.”
-테? 테에찌!

부끄러운듯이 몸을 배배꼬는 자실장을 들고 남자는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 남자의 뒤를 포포가 절망스럽게 쳐다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자식도, 남자의 사랑도, 그리고 이름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포포는 서럽게 울부짖었다. 적록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지만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이 눈물을 닦아줄 자는 오직 자신뿐이리라. 


12. 믿지 않은 자들의 최후

새로온 자실장은 나름 개념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포포를 비웃는건 사육실장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공원에서 자랐다는 걸 감안하면 허용 가능한 범위이다. 조금만 교육시키면 훌륭했을 수도 있고, 출산석으로 썼어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있는 대로 올려버린다. 

<테츄웅? 닌겐상은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는 테츄웅!>
“하하하하하, 이 귀여운 녀석.”

애교를 부리면 부리는대로 웃어준다. 

<이건 이제 맛이 없는테찌! 더 좋은 실장푸드를 가져오는테챠아아!!>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실장푸드도 거침없이 올려준다. 

“자 여기 콘페이토. 좋아하지?”
<테프프프프프! 제법인테찌! 와타시가 칭찬해주는테찌!>

콘페이토도 가득가득 준다. 

<우마우마한테치! 이게 스시인테찌?!>
“자, 여기 스테이크도 있으니 천천히 먹으라구.”

스시와 스테이크도 준다. 

“짜란. 어때? 마음에 들어?”
<완전 마음에 드는테찌! 닌겐상 제법인테찌!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이런 대접은 당연한테찌!>

분홍색 사육실장옷도 준비해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중고나라에서 얻어온 것들이다. 스시와 스테이크는 마감 떨이로 사온 것이다. 남자의 수고로 인해 자실장은 나날히 분충화되었다. 그리고 그 분충기는 온전히 포포가 받는 것이다.

<오마에! 운치를 이렇게 지려버리면 안되는덻?!>
“이 분충새끼야. 너 내가 제깍제깍 치우라고 몇번을 쳐말해야 알아들어?”
<테찟! 그런테찟! 분충주제에 사육실장에게 이래라저래라하지 마는테찌!>

남자는 오로지 자실장만을 위한다. 그것이 포포를 너무나 서럽게 했다. 남자가 말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며 살아간다. 그래도 이제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포는 그렇게 거실 한 구석에서 잠을 이루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이었다. 전화를 마친 남자는 포포와 자실장을 케이지에 담아 어디론가 향한다. 자실장은 포포를 때리고 깨문다. 포포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자실장을 은근슬쩍 눌러버린다. 자실장은 비명을 지르지만, 남자는 신경쓰지 않는다.

“예악하고 왔는데요.”
“네, 근데 한 마리만 예약하신 거 같은데…”
“아, 오는 길에 하나 주웠어요. 그냥 넣어도 상관 없을 거 같아서요.”
“뭐, 딱히 상관은 없죠. 문 열어드릴게요.”

남자는 직원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한다. 직원은 철문을 열어준다. 뜨거운 열기가 남자에게 쏟아진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남자는 문 안으로 들어간다. 케이스에서 자실장과 포포를 꺼낸다. 포포와 자실장들은 주위를 둘러본다. 거무칙칙한 조명, 차가운 철제 구조물들이 눈에 띈다. 벽에는 작은 창이 있고 그 뒤에는 빨간 무언가가 넘실대고 있었다. 포포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불안함을 느꼈지만 자실장은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지 남자에게 손을 내민다. 남자는 그런 자실장을 손에 올려놓고 자실장에게 묻는다. 

“포포야.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니?”
<테찌? 와타시가 그딴 걸 왜 알아야하는테찌?>

포포는 의아해하며 남자를 바라본다. 오늘이 무슨 날일까? 특별한 날은 아닌 거 같다고 포포는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자실장은 그런 것에 관심 없다는 듯이 남자의 질문에 답을 한다. 남자는 포포를 흘깃보며 씩 웃는다.

“오늘이 바로 한 달이 되는 날이란다.”

한 달. 포포는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자신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나온다. 그런 자신을 보며 자실장이 뭐라 비웃지만 포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바라보다 자신의 손바닥 위의 자실장에게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죽는 날이란다. 포포짱.”
<텟? 테프프프프프… 닌겐노예주제에 무례한 말을 하는테찌!>
“아니야. 진짜야. 너 오늘 죽어. 저기 불 보이지? 저기에 널 넣을거란다.”

포포와 자실장은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유리로 막힌 소각장이었지만 그 안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은 누가봐도 위험해보였다. 포포와 자실장은 굳어버린다. 포포는 남자를 바라본다. 차가운 눈초리. 자신이 구해져서 집에 왔을 때 보여준 그 눈빛이다. 포포의 눈에는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실장은 그런 남자의 눈을 읽지 못했는지 남자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소리쳤다.

<테프프프프. 헛소리 말고 집에 가는테찌! 여기는 사육실장인 와타시가 있을 곳이 못되는테찌! 사육실장으로서 명령하는테찌! 가서 아와아와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테찌!>
“정말 멍청한 포포짱이구나.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아?”

소각장의 문이 열린다. 뜨거운 화염이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가 자실장을 그 앞으로 내민다. 열기가 자실장을 핥는다. 서서히 자실장은 불꽃 앞으로 밀려가기 시작한다. 자실장은 뒤를 돌아보며 남자를 향해 외치기 시작한다. 남자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어서 와타시를 여기서 꺼내지 못하는테찌?! 사육실장인테찌! 노예주제에 무례한테찌!>
<똥닌겐! 꺼내는테찌! 명령하는테찌!>
<닌겐상! 제발 꺼내주는테찌!>
<주인사마! 주인사마!>
<테쮸웅~ 와타시의 애교에 메로메로되어서 더 이상 밀리지마는테갸아아아아아!!!!!!>

자실장은 그대로 밀려 불꽃을 떨어졌다. 자실장의 절규가 소각장 안을 잠시 울렸지만 곧 그마저 불꽃에 삼켜져버렸다. 포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몸을 떤다. 드디어 저 빌어먹을 자실장이 사라진 것이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보며 싱긋 웃는다. 

“이제 니가 포포네.”
<데?>
“니 이름을 뺏아간 포포가 죽었으니 이제 니가 포포라고.”
<데...데! 그런데스! 와타시가 원래 포포인데스!>
“그리고 이제 다시 사육실장이 된거고?”
<맞는데스! 와타시는 사육실장인데스! 다시 주인사마와 같이 행복하게 사는데스! 와타시는 그저 주인사마만 있으면 되는데스!>

포포는 웃으며 방방 뛴다. 까먹었다 생각한 실장댄스도 절로 나온다. 흥겹게 남자의 곁을 도는 포포. 하지만 그런 포포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남자는 포포의 뒷목을 잡아 든다. 가볍게 들린 포포. 하지만 포포는 행복회로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 남자와의 행복한 미래.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에서 일어나, 남자와 같이 밥을 먹고 남자와 같이 산책을 간다. 남자가 잘자라는 인사를 하면 자신은 남자를 꼭 안아줄 것이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포포에게 남자는 말한다.

“자, 그럼 죽자. 포포짱.”
<데?>
“너도 죽으라고.”

남자는 아까처럼 포포를 밀어넣기 시작한다. 자실장보다는 천천히 밀리는 포포. 멀어지는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뒤를 바라본다. 넘실대는 불꽃이 보인다. 남자를 보며 미친듯이 소리친다.

<데샤아아아아아아!!!!>
<와타시를 버리지마는데샤!!!!>
<안되는데스! 안되는데스! 밀리지마는데스!>

포포는 있는 힘껏 밀어보지만 포포의 마음을 모르는 야속한 기계는 계속 포포를 불꽃으로 인도할 뿐이었다. 포포는 남자에게 손을 뻗어본다. 남자는 그런 포포를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왜 와타시가 죽어야하는데샤! 와타시는 사육실장인데스!>
<주인사마! 와타시를 버리지마는데스!>
<와타시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는데샤!!!!>
<똥닌겐!!!!!!!!!!!!!>

자기를 잡아먹는 불꽃 속에서 포포는 남자에게 묻는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하지만 포포가 그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에 불꽃은 포포를 삼켜버렸다. 포포는 그렇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듣지 못한 채, 실장석의 삶을 마감했다.

넘실거리는 불꽃을 보던 남자는 말없이 소각로의 문을 닫고 소각장을 나선다. 구름이 가득 낀 날씨다. 곧 비가 올 거 같다고 생각한 남자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남자는 문득 소각장의 굴뚝을 본다. 굴뚝 위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보인다. 남자는 고개를 흔들고 차에 탄다.

포포는 몰랐다. 다른 실장석들도 모른다. 자기가 스스로 얻지 못한 행복은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말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기대서만 행복할 수 있는 실장석들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