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실장 푸치의 추락 1~4

 


 "푸치쨩? 집에서 나가줘야겠어. 준비하렴."


 남자의 말은 아무런 대비없이 찾아왔다.
 저녁시간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 하나뿐인 자실장 테치와 공놀이를 하고 있던 푸치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듯 데- 하며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자실장인 테치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남자를 쳐다본다.







 "주인님? 어딜가는데스? 밤산책을 나가는데스우?"

 "테-! 와타치 나가고 싶은테치! 산책테찌!"


 태평하게 산책타령이나 하는 푸치, 테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는 남자.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산책같은게 아니라 너희 둘은 오늘부터 이 집에서 나가서 사는거야."


 어리둥절하는 두 모녀를 자리에 앉히고 그 앞에 앉은 남자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 푸치와 테치는 이해하지 못한다.


 "집밖이라면 어디서 사는데스우? 주인님도 같이 가시는데스?"

 "테엣! 이건 캠핑이라는것테치! 와타치 텔레비젼에서 본테찌! 아주아주 재밌어보였던테치!"


 자실장 테치는 남자의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한건지 연신 쿵쾅거리며 테치테치 신나게 뛰어다닌다.
 그러나 친실장인 푸치는 평소와는 어딘지 다른 남자의 분위기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듯 얼굴이 조금 굳은 채로 남자의 안색을 살핀다.


 "정말 머리가 나쁘구나... 너희 둘은 오늘부터 여기서 쫓겨나는거야."


 남자는 한심하다는듯 푸치를 쳐다보며 말한다.


 "데에?"

 "테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뜬채로 멈춰버린 푸치.
 팔을 벌리고 테찌테찌 춤추던 자세 그대로 얼어버린 테치.
 두 모녀는 각기 다른 자세로 굳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정신을 수습한 푸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기분좋은 놀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던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손발을 벌벌 떨면서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되물었다.


 "쫓겨....나는.... 데스우?"


 아마 푸치도 무슨 말인지는 본능적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라고. 
 방금 머릿속을 스치고 간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래 나가라고. 너랑 테치 둘 다."

 "지금 당장"


 풀썩


 자실장인 테치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것도 깨닫지 못한채 몸을 사시너무 떨듯 덜덜 떨어가며 친실장인 푸치를 쳐다보는 테치.


 "마...마..? 주인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테...츄?"

 "데....? 데데에? 데뎃?"


 그러나 어리둥절해서 정신을 못차리는 것은 푸치가 더하다.
 푸치는 마치 지금 꿈이라도 꾸는가 싶어 연신 토실토실한 볼을 찰싹찰싹 두드려보고, 두직한 뱃살을 양손으로 꼬집어보기도 한다.
 꿈이 아니다.

 무언가를 말해보려고 입을 뻐끔뻐끔해보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데-데-하는 의미없는 소리만 입가를 맴돌뿐이다.
 땀을 비오듯이 흘려가며, 몇번이나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간신히 말 한마디를 내뱉는다.


 "왜...왜..... 왜인.... 데스우....?"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태연하다.


 "응. 친구한테서 혈통있는 사육실장을 얻게됐거든. 너희들과 같이 키울수는 없으니 버리려는거야."


 남자는 참으로 무서운 소리를 대수롭지않게 말했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로 푸치의 물건을 하나둘 정리해간다.
 아까까지만 해도 맛있는 점심밥을 담아줬던 밥그릇, 주사위놀이를 할때 쓰던 스펀지 주사위, 노란 고무공, 방금 테치가 떨어뜨린 보라색 스펀지볼.
 테치가 가장 아끼는 엄지실장 인형, 푸치가 어렸을때 타고 놀던 미니카 붕붕쨩.
 시원한 물이 항상 담겨있는 급수기.
 모두모두 남자의 손에 들려 비닐봉투로 옮겨진다.


 "깨끗이 씻어놔야지.. 실장석은 다른 실장석 냄새를 싫어한다고하니..."

 "새로올 아이 이름은... 응.... 귀찮으니 그냥 푸치라고 할까... 이름표 다시 달기도 귀찮으니까.... 그래, 그게 좋겠어."

 "너희들도 빨리 준비해야지? 아, 뭐 챙길 것도 없겠구나. 너희들 줄 건 없으니까... 가만... 신문지가 조금 남았던가..."


 남자는 일어서서 창고로 간다.
 푸치는 멍하니 서서 데-- 하고 희미하게 울뿐이다.
 옆에서 테치가 피눈물을 흘리며 푸치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어대지만, 푸치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마! 마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인테치? 왜 우리가 집에서 쫓겨나는테치? 이게 정말인테치? 마마!! 마마!!"

 "데.... 데---- 데에----- 데수...."

 "마마! 마마아아아!! 대답을 해보는테치!! 마마!! 마마아아앗!!!"

 "데에에........뎃데로게.... 뎃데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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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치의 머릿속에서 지나간 일들이 영사기에 감긴 필름처럼 흘러나온다.



 "응~~ 좋아. 네 이름은 푸치로 정했어."

 "푸치테치?"

 "그래 귀엽지? 한참 생각한거야."

 "테에에! 와타치는 푸치테치! 와타치 이름을 얻은테치이!! 닌겐사.... 아니 주인님! 고마운테치!"

 "그래 잘 지내보자."

 "네 테치! 푸치도 힘내는테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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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 테에? 이게 소문의 스테이크인테치?"

 "그래그래. 싼 거지만....."

 "테츄------웅♡"

 "황홀한 냄새테치! 굉장한 냄새테치! 정말 맛있겠는테치!! 주, 주인님 먹어도 되는테치? 먹는테치?"

 "자아~ 뜨거우니까 여기 포크를 써."

 "테에에에!! 합!"

 "테튜우우웅♡"

 "텟츈♥ 텟츈♡ 텟츄우우우우웅-----웅☆"

 "테츄아! 정말 맛있는테치! 상상도하지 못한 맛인테치! 이게 스테이크테치? 스테이크란거 정말 굉장한테치! 따끈따끈테치! 호카호카테치이!!"

 "천천히 먹어. 아직 많으니까."

 "테에에엣챠★ 주인님이 최고인테치! 푸치는 주인님이 있어 최고로 행복한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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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 보는데스!! 보는데스우--!! 와타시의 공주님인데스우우웅☆"

 "지금은 테츄테츄하며 자고 있는데스우... 곧 깰 것인데스... 하나뿐이지만 누구보다 똑똑할 것인데스우"

 "응응. 귀엽구나."

 "데스우우웅♪"

 "자, 그럼 나도 뒷정리를 해볼까..."

 "저기, 주인님!"

 "응?"

 "데에에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 데스우..."

 "주인님 정말 고마운데스. 부족한 와타시를 키워주신것도... 그리고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신것도..."

 "하지만 와타시... 정말 이렇게 '마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데스... 사실 생각은 했지만 꿈이라고만 생각했던데스... 그런데도 주인님은... 주인님은..."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주인님 고마운데스우우우우!! 아이를 낳게해주셔서 감사한데스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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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마..."

 "........마마!"

 "마마아아아!!!"



 푸치는 긴 상념에서 깨어났다.
 갑작스럽게 노도처럼 몰아친 엄청난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푸치의 뇌가 스스로 차단기를 내렸다.
 그 여파로 예전의 행복했던 기억 ~행복회로~이 상영되었지만, 그 덕분에 푸치의 위석이 깨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을 뜬 현실은 너무도 비참한 것이었다.
 차라리 추억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 위석이 깨져 즉사하는 것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마마아아앗!! 주인님이 우리들의 물건을 모두 가져가는테치이이이!!"

 절규하는 테치의 머리는 큼지막한 혹이 대여섯개나 불쑥불쑥 나있었다.
 한쪽 눈을 시퍼렇게 멍이 들어 두배쯤 부어올라 있었고, 앞이빨은 모두 부러져있었다.
 왼팔은 어깨뼈 아래부터 부러져서 덜렁덜렁거리고 있었고, 탈분을 잔뜩해서 흰색팬츠는 녹색똥으로 빵빵하게 빵콘한 상태였다.


 "데에에에? 왜, 왜, 왜이렇게 다친데스? 왜이런데스?"

 "테에에에엥!! 주인님이 때린테치이이!! 와타치의 이불과 잠자리를 뺏어가는걸 말리다가 두들겨맞은테체!"

 "데엑?!"

 "마마!! 그것보다 어서 주인님을 말리는테치!! 주인님이 이제 마마와 와타치를 집밖으로 보낸다고한테체아!!"

 "데엑?!"


 푸치는 볼살이 푸들푸들거릴정도로 심하게 경련한다.
 연이은 충격적인 말과 테치의 끔찍한 모습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나뿐인 아이지만 절대 방종하여 기르지 않았던 아이다.
 행여라도 주인님께 실례를 끼칠까 염려되어 자신이 실장교육센터에서 받은 훈육을 그대로.
 몇몇은 더욱 엄하게 업그레이드 시켜 가르친 것이 푸치였다.
 심할때는 남자가 그런 푸치를 말리기도 했을 정도로 푸치의 자식교육은 지독했다.
 그덕에 테치는 단 한 번도 남자에게 실례를 저지른 일도. 혼이 난 적도 없었다. 맞은 적이 없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그 지난 날의 전적은 산산히 박살났다.
 도대체 무엇으로 때렸는지 자그마한 테치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있다.
 보통이었다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엄중한 상태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깨닫고 있기 때문이리라.

 푸치는 정신없이 남자에게 달려든다.


 "왜, 왜이러는데스우!!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이러지마시는데스!! 무엇을 잘못한데스? 와타시와 테치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데스?"

 "잘못한데스! 잘못한데스! 무엇이든 잘못한데스우우!! 용서를.. 용서를 바라는... 데걋!!"


 적록색 눈물을 흩뿌리며 남자의 다리에 매달리는 푸치를 남자는 가볍게 들어 휙 던져버린다.
 감정이 실려있었을까.
 푸치는 자신의 키보다 대여섯배는 높게 뜬 상태로 공중을 가로질러 딱딱한 방바닥에 떨어진다.


 "데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와타시의 팔이이이이!!!"

 "마마아아아앗!!"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즉사였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푸치는 오른팔부터 떨어졌다.
 그렇다고해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떨어지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오른팔부터 땅바닥을 짚은 탓에 오른팔은 아래에서 윗쪽으로 산산히 박살이나버렸다. 팔뚝뼈가 박살이 나고, 일부는 살가죽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팔꿈치뼈는 비스켓처럼 으스러졌고, 어깨뼈까지 두동강 나버렸다.
 너무나 큰 충격에 푸치는 뿌지지지지직-하며 성대한 빵콘을 한다.


 "데갸아아아아악!! 팔이!! 팔이이이이!! 데갸아아아아아!! 아픈데수우우우우!!!!"

 "마마아아아아!! 마마!!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엥!!!"

 "팔이! 팔이! 팔이 아픈데샤아아아아!! 팔이 아파데스!! 와타시의 팔이 찌부러진데스우우우!!!"

 "주인님! 주인님!! 도와주시는데스! 주인님!!"

 "마마아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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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분 뒤.

 남자와 푸치, 테치는 거실 한가운데 서로를 마주보며 앉았다.
 푸치의 덜렁거리던 오른팔은 깔끔하게 떨어져나가 있었고, 똥을 잔뜩 지린 팬츠도 똥을 덜어내 그런대로 봐줄만한 꼴을 하고 있었다. 팬티를 빨아주지는 않았지만.

 테치 역시 조금 진정된듯 테끅테끅 울음소리를 삼키기는했지만, 그런데로 괜찮아보였다. 최소한 아까전처럼 발광을 하거나 거품을 물고 기절하지는 않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보다 푸치테치 모녀를 쫓아내는게 힘들어져 어딘지 피곤한 기색이었다.


 "너희들이 쫓겨나는건 기정사실이야. 아무리 울고 발광해도 이건 변하지 않아."

 "......데스....."

 "일단 그냥 나가라는건 아냐. 신문지라든가... 종이박스 정도는 구해줄거고..."

 "..................."

 "공원까지 내 차로 데려다줄꺼니깐. 그런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째서......데스?"


 푸치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땅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 말에 남자의 얼굴에 짜증어린 기색이 서린다.


 "몇 번이나 말하게 만드는거야! 말했잖아! 새 실장석을 기르게...."

 "그게 아니라 어째서 우리들을 버리는데스?"

 "뭐?"

 "....주인님이 말씀하신데스. 와타시가 처음 왔을때 하신 말씀을 와타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스."

 "무슨 소릴하는거야!"

 "분명히 기억한데스. 주인님은 와타시가 죽을때까지 돌봐주신다고. 언제나 돌봐주신다고 하신데스! 와타시 분명히 기억하고있는데스! ....왜냐하면 그건 와타시가 들어본 가장 따뜻한 말이었기 때문인데스!!"

 "........."

 "그리고 테치쨩이 태어날때도 그렇게 말씀하신데스! 그때도 분명 말씀해주신데스! 테치도 함께 와타치도 함께.... 그렇게 영원히 함께 해주신다고.....말하신데스...."


 푸치의 마지막 말은 눈물과 섞여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푸치가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다시 통곡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테에에에엥!! 마마!! 울지마는테챠!!"

 "오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롱!!"

 "마마!! 마마!! 울지마테치! 울지마테치! 와타치도 슬픈테치.. 테에에엥...."

 "주인님 우리들을 버리지마는테치!! 우리들을 왜 버리는테치?! 그런거 이야테치..."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래서는 아까 전과 똑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남자는 주머니에서 콘페이토 두 개를 꺼낸다.


 "이걸봐라."


 그리고 콘페이토를 푸치와 테치 앞에 놓는다.


 "로로로롱.... 데에?"

 "콘....페이토... 테치?"


 콘페이토의 갑작스런 등장에 두 모녀는 의아한 빛을 띄운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콘페이토였지만, 지금같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까지 탐닉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먹보인 실장석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런 상황에 저런 콘페이토 두 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어쩐지 콘페이토도 조금 이상하다.
 보통 콘페이토라고 하면 빨간색, 녹색, 노란색, 분홍색, 흰색 등등의 예쁜 색깔을 띄고 있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칙칙한 검은색이다. 어쩐지 걸쭉걸쭉해보이고, 또 어쩐지 불길해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이건 콘페이토가 아니라 코로리다."

 "...........먹으면 죽는 독약이지."

 "텟챠?!"

 "데엑!?"


 죽는다는 말에 푸치와 테치는 기겁하듯 놀란다.


 "그렇게 나가기 싫다면....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기 싫다면.... 여기서 이걸 먹고 죽어라."

 "데..... 데데데데데.... 주, 주인님!"

 "고통은 없을거다. 먹으면 성체실장이라도 5초 안에 숨이 끊어지는 맹독이니까."

 "........길지는 않을꺼야."

 "..............."




 "선택해라. 나가든지. ......아니면 여기서 죽든지."

 "..........데스우......"




 차가 멈춘 곳은 시외에 위치한 후타바 자연농원의 끝자락이었다.
 남자는 벌벌 떨고 있는 푸치테치 모녀를 내리게 한 다음 트렁크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을 꺼낸다.
 통신판매로 샀던 건강식품 박스와 반쯤 썩어버린 걸레가 몇 장, 신문지 서너 묶음,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나온 쉬어버린 반찬과 국 따위가 든 큰 비닐봉투가 하나였다.
 모두 다 합쳐봐야 그리 크지 않은 골판지 박스에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사실 푸치테치의 물건은 이것 외에도 플라스틱과 하드보드지로 지어진 하얀색 궁전(복층 구조로 되어 있고, 응접실과 침실까지 나눠진 특제 실장하우스)이라든가 누르면 콘페이토가 쏟아져나오는 자판기 모형이라든가 목욕할때 쓰는 수영셋트, 공원에 갔을때 쓰는 흙장난놀이키트, 자실장 두셋쯤은 너끈히 태우고 놀 수 있는 무선조종모형카, 말랑말랑한 고무공이 십수개, 보드라운 감촉이 놀라운 깔개수건, 푹신한 거위털 배개, 따끈한 보온담요... 작은 방 하나정도는 너끈히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바깥으로 가져나간 것은 박스와 걸레, 신문지, 썩어가는 음식뿐이었다.
 남자가 내일 모레쯤 도착할 새로운 '푸치'가 써야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수건도, 단 한 개의 장난감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는 테치가 피눈물을 흘려가며 애원하던 등신대 엄지실장 인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울며불며 사정하는 테치에게 남자는 "어차피 들실장한테 그런건 필요없어." 하며 야멸차게 거부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테치는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로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며 푸치에게 안겨 있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데................."


 푸치도 그리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간신히 몸의 기능만 유지하고 있을 뿐, 정신은 오래전에 깨끗이 날아가 있었다.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버려진다는 이런 현실은 제아무리 똑똑하고 현명한 푸치라고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버려지는 이유가 자신의 행동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다른 '혈통 좋은 실장석'을 기르기 위해서 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절망감은 수백배가 되어 푸치의 가슴을 찢어버렸다.


 "주인님! 어째서인데스우! 어째서 와타시를 버리는데스? 대체 와타치타치가 무슨 잘못을한데스?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쫓아내는 것은 너무 가혹한데스! 가혹한데스우우우!!"


 그렇게 푸치는 울부짖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푸치의 비통한 절규를 간단하게 반박해버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자식아! 넌 내가 돈 주고 데려온 내 물건이야! 이제 지겨워졌으니 다른 걸로 바꾸겠다는데 건방진 소리하지마라!!"


 그리고 날아온 것은 주먹이었다.



 한시간 전, 전 주인님과의 담화에서 푸치는 사는 것을 선택했다.
 남자가 내민 검은 콘페이토를 받아들고 삼십분이나 고민한 끝에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너무나 큰 절망에 당장이라도 그 콘페이토를 씹어먹고 피를 토해 죽고 싶었지만, 자신의 무릎 옆에서 울다지쳐 기절해버린 테치가 눈에 들어온 순간, 살아야겠다는 감정이 푸치의 몸을 타고 흘렀다.

 '사는데스! 사는데스! 살아서 이 아이를 기르는데스!'

 푸치 하나뿐이었다면 그 콘페이토를 삼켰으리라.
 그 콘페이토가 하나뿐이었더라면 그리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먹었으리라.
 그러나 두 개의 콘페이토.
 하나에 목숨 하나.
 푸치와 테치.

 '와타시가 죽는 건 괜찮지만...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안되는데스우...'

 '들실장으로 살아도... 들실장으로 살더라도... 이 아이에게 이 세상을 좀 더 보여주고 싶은 데스...'

 '힘들어도... 조금쯤은 더 이 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은데스....'


 그리고 푸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공원으로........ 보내주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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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그리 오래 끌기도 귀찮은지 박스에 푸치테치를 집어넣은 다음 성큼성큼 자연농원 한구석으로 들어간다.
 주변도 별로 살피지 않고, 덤불 근처를 뉘엿뉘엿 돌아다니는듯 하더니 어느 관목더미의 옆에 박스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주변에 떨어진 돌들을 주워 박스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받쳐놓는다. 
 신문지를 깔고, 걸레를 펼친 다음 국과 반찬이 담긴 비닐봉투를 박스 앞에 놓는다.


 "음~ 여기가 괜찮을거 같네. 여기 나뭇가지에 가려서 잘 안보인다구. 옆에는 나무도 있으니 열매도 열리겠고... 어디보자... 사이프러스? 이게 뭐지? 뭐 여하튼 맛있는 열매가 열릴거야. 그걸 먹고..."

 "으~~응~ 근처에 풀도 많이 자랐네. 이거 먹어 이거. 너희들 이런것도 먹을 수 있지?"


 눈앞의 골판지 하우스를 보며 멍하니 서있는 푸치테치 모녀 옆에서 남자는 한가하게 떠들어댄다.


 "아, 그리고 이건 밥이야. 테치 너 인간이 먹는 음식 먹고 싶댔지? 여기 많이 담아왔으니 먹어. 몇주는 괜찮을꺼야."

 "..........조금 상하긴했지만 그정도는 괜찮지? 너희들도 이제 들실장이니 그런건 익숙해지라고."

 "...................데"

 "그리고.......... 뭐 됐다. 할말은 이게 다야. 그럼 너희들 이제 잘 살아? 응? 난 이만 갈테니까."

 "또 보...는게 아니라 다신 보지말자. 어차피 집에서 몇십킬로나 떨어져있으니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시나해서 말해주지만 여기에서 집까진 너희들 발걸음으로는 반년을 걸어도 못 올 거리니까 이상한 생각하면 안된다?"


 남자는 계속 떠들면서 점점 뒷걸음질 친다.
 혹시나 푸치테치가 따라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새였지만, 지금의 푸치테치는 너무도 심한 스트레스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 그럼 난 갈게! 푸치! 정 못견디겠으면 그걸 먹으라고 하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차를 몰고 사라졌다.
 1년 반 동안 함께 살아왔던 것 치고는 의외로 빨리 끝난 이별이었다.


 "데.................................................."


 푸치는 몇 번 몸을 흔들흔들거리다가 이내 푹 쓰러져버린다.
 너무나 큰 스트레스때문에 뇌가 과부하를 견디다 못해 셧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푸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테치는 이미 십분도 더 전에 쓰러진 상태였다.


 그렇게 밤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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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푸치는 자신의 새집.
 골판지 하우스를 손보느라 여념이 없다.
 엊저녁에 남자가 세워두고 갔지만, 성의가 없었던 탓인지 어두워서 잘 몰랐던 탓인지 집의 위치는 너무 바깥에 있어서 쉽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남자가 서투른 온정을 보여 골판지가 바람에 날아갈새라 무거운 돌로 눌러놓은 덕에 돌을 치우는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남자에게는 그저 조금 무거운 돌이었지만, 푸치에게 있어서는 바윗덩이와 다를바 없었기 때문이다.
 테치가 좀 도와줬으면 수월했겠지만, 테치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나절에 겨우 눈을 떴다가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픽 쓰러져버렸다.
 다행히 숨은 쉬는 것 같아 푸치는 테치를 신문지와 걸레로 따뜻하게 감싼 다음 옆의 나무에 기대어 주었다.


 "데히... 데히... 힘든데스... 그래도 이제 여기라면 안심데스우..."

 "교육방송에서 봤던 산실장 집을 흉내낸데스. 그집은 위에 나뭇가지와 잎으로 위장을 했지만 잎이 거의 없어 못 구한데스..."

 "그래도 충분한데스. 이만하면 썩 훌륭하게 된 데스우."


 이곳에 오게된 이후 푸치는 혼자 중얼거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위석에 가해진 스트레스 때문일까.
 누구에게 호소하고 싶지만,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테치는 반쯤 죽어있다.
 그래서 푸치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절거렸다.
 그럼으로써 조금쯤 마음이 가라앉는다는듯이...


 "데에... 해가 높이뜬데스... 시계가 없지만 지금이 점심때일것인데스."


 남자는 푸치를 혈통서도 없는 싸구려 실장샵 출신의 실장석이라고 무시했지만, 기실 푸치의 지능은 매우 뛰어난 편에 속했다. 다만 그것이 특유의 너그러운 성품에 가려진 탓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 뿐이다. 실제로 푸치는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대부분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 지식은 남자와 함께 본 실장교육방송이라든가 실장그림책을 보고 배운 것도 있었지만, 남자가 흘리듯이 해주고 간 이야기나 티비에서 흘러나온 정보도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또 자연현상을 관찰해서 그 시간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행위는 유수의 엘리트 애완실장이라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푸치의 모습을 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데에... 배고픈데수...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부터 쭉 굶었던데스..."

 "얼른 테치쨩이 일어나야 함께 밥을.......데, 데!"


 푸치는 나무에 기대놓은 테치에게 허둥지둥 달려간다.
 테치가 몸을 반쯤 일으켰던 것이다.


 "데스데스! 괜찮은데스? 이제 정신이 좀 드는데스?"

 "테... 테테... 마... 마마..."

 "마마는 여기있는데스! 안심하는데스!"

 "마... 마마... 마마아아아....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울지마 울지마는데스! 울것없는데스우. 마마가... 마마가 지켜주는데스..."

 "테에에엥.. 테에에엥.... 와타치들.. .와타찌들... 정말 버려진테치? 정말 그런거인테찌?"

 "테치쨩....."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꿈이라고 생각했던테찌... 꿈이라고 믿었던테찌... 그런데... 그런데... 꿈이 아니었다테찌...."

 "테치챠....."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어째서... 어째서인테치? 어째서 우리들이 이래야되는테찌? 왜 버려진테찌?"

 "........."

 "너무한테찌.. 너무한테찌... 가혹한테찌... 너무 심한테찌요....."

 "데......."

 푸치는 그저 테치를 꼭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다.



 .
 .
 .

 푸치는 테치를 안고 골판지 하우스로 돌아왔다.
 바닥에는 근처에서 뜯은 잔디풀을 깔고, 그 위에는 신문지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그런 다음 위에는 걸레를 낡은 것이 아래로 가도록 몇겹이나 겹쳤다.


 "보는데스! 꽤나 근사한데스!"

 "........."

 "여기서 테치쨩과 마마가 함께 사는데스! 걱정할것은 전혀 없는데스."


 푸치는 손을 턱 허리춤에 얹으며 짐짓 허세를 부려본다.
 그러나 테치의 찡그린 얼굴은 펴질줄 모른다.


 "......좁은테치."

 "데에?"

 "이전의 집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테찌."

 "데...."

 "2층은 어딨는테츄? 2층이 와타치의 방테치."

 "이, 이층은 없는데스.... 이, 이곳에서 마마와 함께 자는데..."

 "냄새나테츄."

 "데, 데스?"

 "신문지 냄새, 걸레 냄새 고약한테츄. 여기서 어떻게자는테치?"

 "내, 냄새가 나는 데스우? 킁카킁카.... 데.... 조, 조금은 나는데스... 하, 하지만 곧 안나게 되는데스! 마마가 향기나는 꽃을 꺾어놓으면...."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이런거.... 이런거 싫은테치...."

 "........테치챠....."


 테치는 굵은 피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제만 해도 지금 시간쯤이면 궁궐같은 2층의 방에서, 따끈따끈한 보온이불에 오리털 배개를 배고, 엄지쨩 인형을 꼭 끌어안고 느직하게 늦잠을 잤었다. 시간이 되면 뿌려지는 자동향수기계에서는 꽃, 과일, 바다, 바람 향기를 다양하게 뿌려줬으며, 하우스 안에 냉방기와 가습기, 제습기가 있어 항상 기분좋은 온도를 맞춰줬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1층에 있는 마마의 배위에서 뒹굴거리거나 아니면 거실에 있는 티비를 봐도 좋았다. 배가 고프면 마마에게 숨겨둔 실장푸드를 보채서 먹거나 함께 손을 잡고 하우스를 나와 방 한켠에 놓여진 콘페이토우 자판기를 눌러 달콤한 별사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점심은 언제나 실장푸드였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겨워질 일은 전혀 없었다.
 남자가 준비해주는 실장푸드는 고가의 고급푸드로 자그마치 128종이나 되는 다양한 맛이 농축되어 있어, 언제먹어도 새로웠다. 새우맛, 구운 소고기맛, 양념을 한 닭고기, 살짝 매콤한 돼지고기맛, 피자맛, 가라아게맛, 카레맛, 아이스크림맛, 초콜릿맛, 풍선껌맛, 데리야키맛, 치즈맛, 포테이토맛, 송이버섯향, 크림스튜맛, 버터맛, 콘소메맛... 언제나 가득가득 먹었다. 

 밥을 먹은 다음에는 다시 자유시간.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다시 낮잠을 자는 것도 좋았고, 마마가 밀어주는 미니카를 타고 노는 것도 재밌었다. 마마가 던져주는 고무공 캐치볼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건 없다.

 테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다 허물어져가는 골판지 하우스.
 푸치의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그 좁은 곳에 있는 것은 신문지와 걸레. 그뿐이었다.
 이불도 배개도 인형도 향수도 없다.
 냉방기도 가습기도 제습기도 없다. 작은 구멍이(이건 손잡이였다.) 두 개 빠끔히 뚫려있을 뿐이다.
 티비도 자판기도 점심도 없다. 아니 밥그릇도 없다.
 고무공에 미니카는 커녕 동생처럼 여겼던 엄지쨩인형도 없다.


 "테에에.... 이건.... 이건 너무한테치..."


 너무 울어서일까.
 테치의 눈에선 더이상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눈물을 뚝 그치는데스. 참고 살면 좋은 일도 반드시 있을것인데스우."


 푸치는 테치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자, 그것보다 얼른 밥먹는데스요.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반드시 배고픈뎃슨."


 초췌한 모습으로 테끅테끅거리는 테치를 새로만든 집 바닥에 앉히고 푸치는 서둘러 밥먹을 준비를 한다.
 그녀 자신도 배가 상당히 고팠지만, 그것보다 아직 어린 테치가 걱정이다. 자실장은 성체실장과 다르게 단 한끼를 굶어도 성체가 세끼를 굶은 것 만큼이나 영향을 준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실장석 특유의 체질때문이다. 새끼일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고, 나아가 성장하는데도 막대한 차질을 준다.
 질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자실장은 7~8개월만 있으면 건강한 성체실장으로 자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실장은 1년이 넘게 걸려야 겨우 데스- 데스- 하는 목소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성장속도뿐만 아니라 나중에 출산을 할때에도 어렸을때부터 다져진 체력은 큰 도움을 준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푸치는 어떻게든 테치에게 밥을 먹여주고 싶었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밥을 기다리는데스우. 마마가 밥을 준비하는데스."


 푸치는 통통한 두손을 제법 재주있게 놀려 남자가 두고 간 검은 비닐봉투를 풀어낸다.
 매듭이 꽉 묶여있어 두손과 두발, 이빨까지 동원해서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겨우 열 수 있었다.
 푸치는 기쁜 표정으로 안에 든 작은 비닐봉투를 하나씩 꺼내본다.


 "데.... 이건 물인데스...?"

 "데에... 이건... 데개! 고약한 냄새데스우... 아마도 상한 것일 것인 데스..."

 ".....데... 이것도 뭔지 모르겠는데스..."

 "...데...."


 푸치가 꺼낸 내용물은 총 여섯개.
 큰 것은 푸치의 머리통만큼이나 컸고, 작은 것은 테치의 몸통정도였다.
 모두 물렁물렁한 감촉을 가지고 있었고, 각각의 것은 비닐봉투에 잘 싸여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푸치는 그런 것을 보는게 난생 처음이었다.


 "데기... 이것은... 아마도 주인님이 먹던 음식인데스..."


 푸치는 손을 뻗어 가장 큰 물건을 꾹꾹 눌러본다.
 물컹물컹한 이상한 느낌이다.
 이번에는 코를 가까이대고 킁카킁카 냄새를 맡는다.
 처음 맡아보는, 야릇하면서도 굉장히 이상한 냄새다.


 "데... 푸드는 없는데수...?"


 푸치는 다시 한번 큰 비닐봉투를 들어 펄럭여본다.
 나오는 것은 먼지밖에 없다.
 그렇게 푸치는 멍하니 서있었다.



 푸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입에 댄 것은 실장석 전용으로 나온 실장푸드뿐이었다.
 그 옛날 실장샵에서 먹던 싸구려 보급형 푸드에서부터 남자의 집에서 먹던 고급미식가푸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실장푸드를 먹어왔다. 그것들은 딱딱한 것, 퍼석한 것, 말랑한 것, 촉촉한 것 등등 모양새와 맛이 모두 달랐지만, 어쨌든 실장푸드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꾸러미는 실장푸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음식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음식이라는 기분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축축하고, 어떤 것은 물컹물컹해서 기분이 묘하다.
 냄새를 맡아봐도 툭 쏘는 듯한 자극적인 향취가 코로 밀려들어 조금 불쾌하다. 특히 어떤 것은 참을 수 없는 쿰쿰한 악취가 밀려나와 자신도 모르게 코를 감싸쥘 정도다.


 "..........이걸 먹는데스우?"


 푸치는 멍하니 땅에 앉아 꾸러미들을 다시 본다.
 분명히 주인님이 주고 갈 적에 이것이 먹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먹을 수 있는 것일텐데...
 이상하게 전혀 식욕이 일지 않았다.
 분명 배에서는 연신 꾸르륵 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할 수 없는데스우..."


 푸치는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결심을 한듯 하나를 들고 집으로 가져간다.
 그나마 가장 냄새가 적고, 물컹거리지도 않은 것이다.


 "일어나는데스. 마마가 밥을 가져온 데스요."

 ".....뭐인테치?"

 "밥인데스. 주인님이 주고가신 맛난 밥인데스우. 어서 그릇을 준비하는데스."

 "......그릇같은거 없는테치."

 "데?"


 푸치는 그릇을 찾으려는듯 두리번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그릇같은 것이 집안에 있을리가 없다.
 집안의 가구라고는 쓰다남은 낡은 신문지 묶음 몇 개가 전부인 것이다.
 찾느라고 뒤적일 필요도 없다.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데에...."

 푸치는 고개를 푹 숙인다.
 지금까지 이 모녀들은 항상 밥은 깨끗하게 접시에 담아, 예절을 지켜 점잖게, 흘릴 위험이 있는 음식은 단정하게 냅킨을 펼친 다음, 포크와 수저로 먹는다.... 라는 모습으로 식사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접시도 냅킨도 포크도 수저도 아무 것도 없다.
 푸치는 다시 멍하니 서있는다.


 "할 수 없는데스우.... 일단 여기서 바로 꺼내먹는데스..."


 한참을 고민한끝에 푸치가 내린 결론은 비닐봉투에 든 음식에 고개를 박고 먹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품위있는 식사광경과는 적어도 몇광년쯤 떨어진 것이지만 이젠 할 수 없다.
 단 하루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푸치는 묵묵히 봉투를 풀어 테치 앞에 놓는다.


 "테.... 마마.... 이게 뭐인테치?"

 "......마마도 잘 모르겠는데스... 그래도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인데스.."

 "테... 뭔가 좀 무서운테치..."

 "뭐가 무서운데스? 걱정하지 마는데스. 마마가 먼저 먹어보이는데스."


 약간 불안해하는 테치를 안심시키려는듯 푸치는 활짝 웃어보이며 봉투에 손을 집어넣는다.


 "자, 보는 데스. 이걸 그대로 한입......."


 "케포옷!!!!!"


 푸치는 손에 든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맹렬하게 다시 내뿜고만다.


 "게보오오오!! 퉤! 퉤엣! 퉤!"

 "마, 마마?"

 "데기이이... 고, 고약한 맛인데스... 끔찍한 냄새데스우..."


 푸치는 조각을 토해내고도 모자라서 연신 침을 퉤퉤 뱉는다.
 겨우 한 번 씹었을 뿐인데, 끔찍스러운 맛과 향이 아직까지 가득 끼어있는 불쾌한 기분이다.
 침을 뱉는 걸로 모자라 왼손을 들어 혓바닥을 싹싹 닦아내기까지 한다.


 "데에.. 데에... 괴로운데스... 이게 뭐인데스?"


 푸치는 토해낸 물체를 조심스럽게 발로 건드려보며 중얼거린다.
 테치도 가까이 다가와 불안한듯 푸치의 치맛자락을 손으로 꼭 잡으며 그걸 내려다본다.


 물체는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회색빛이 드문드문하게 보였지만 그건 검은색에 비해 비율이 적었다.
 간간히 푸치의 옷색깔같은 초록색 반점같은 것도 눈에 보였다.

 그것은 우엉조림이었다.
 언젠가 남자의 친가에서 보내준 반찬을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쳐박아둔 것을 남자가 푸치에게 떠넘긴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싱싱한 우엉을 간장에 맛있게 조린 것이라 실장석인 푸치테치가 먹어도 충분히 그 달큼짭잘한 맛을 느낄 수 있었을테지만, 그러기에 그 우엉조림은 시간이 너무 흘렀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우엉조림이 냉장고에 쳐박힌 것은 족히 두달은 넘었던 것이다. 그덕분에 우엉조림은 바닥까지 푸욱 썩어있었다. 푸치가 본 검은색은 우엉이 말라비틀어져 시꺼멓게 변색된 것이었고, 회색은 그 바로 전 단계였다. 그리고 초록색 반점같은 것은 곰팡이였다.

 하지만 푸치는 그것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실장샵 교육센터로 보내져 지옥의 훈육과정을 거쳐 남자의 집에서 함께 살기까지.
 그리고 남자의 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푸치는 단 한 번도 상한 음식이나 썩은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교육센터와 실장샵에서는 소중한 '상품'이었기에 맛없는 싸구려 푸드일 망정 그래도 상한 음식을 주지는 않았다. 남자의 집에 와서는 쫓겨나기 직전까지 애완실장 기준으로도 상당한 호사를 누렸기에 썩은 음식을 입에 댈 일은 일절 없었다.

 그랬기에 푸치는 지금 눈앞의 음식의 정체를 도무지 가늠하지 못하고있었다.
 한번도 썩은 음식을 보지 못한 이가, 또 음식이 썩는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썩은 음식을 처음 봤다면 누구라도 이럴 것이다.


 "데에.... 고약한맛데스우... 테치챠는 이런걸 먹으면 이야데스. 마마가 다른 걸 가지고 오는데스우."


 푸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우엉조림이 든 봉투를 다시 묶어 구석에 치운다음, 밖으로 나가 다른 꾸러미를 가져온다.


 "데개! 지, 지독한 냄새데스! 이, 이건 뭐인데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썩어문드러진 오이지였다.


 "데갸악!! 이, 이건 무리데스! 이건 도, 독인데스우!"

 한 달 넘게 묵혀져 곰삭은 냄새를 맹렬히 내뿜는 미역초무침이었다.


 ".........이건..... 똥데스?"

 초록색 곰팡이에 뒤덮인 두부조림이었다.

 .
 .
 .
 .


 "딱딱한데스... 마치 돌같은데스... 냄새....는 별로 안나는데스...."

 여덟개의 꾸러미 중 마지막 것에서 푸치는 겨우 먹을만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마른 오징어 조각이다.
 언젠가 남자가 맥주안주로 먹다 남긴 것이었는데, 운좋게 이번 식량보따리에 포함될 수 있었다.
 이 오징어도 냉장고에 봉인된지 족히 삼주일은 넘은 것이라 빈말로도 좋은 상태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건어물이었고, 무엇보다 약간 고기냄새가 나는 것이 푸치의 마음을 끌리게 했다.

 푸치는 봉투를 뒤적거려 그나마 작게 잘린 오징어 다리조각을 찾아내어 테치에게 건낸다.

 "먹는데스! 이정도라면 테치챠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인데스"

 "..........."

 "조금... 딱딱한데스... 우물우물.... 입에 넣고 천천히 녹여먹는데스우.. 짭쪼롬한 맛이 나서 제법 이이데스."

 ".........."

 테치는 멍하니 자기몫으로 주어진 오징어 다리를 내려다볼뿐이다.
 집에 두고 온 고급실장푸드를 생각하는 것일까.
 푸치는 그나마 가장 괜찮은 조각을 건냈지만, 테치는 단 한톨의 식욕도 생겨나지 않는다.
 말이 오징어다리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뭇가지인줄 알 것이다.
 원래는 물렁물렁했을 오징어다리가 냉장고에 삼주일 넘게 갇혀있으면서 마치 고목나무의 가지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푸치는 고기냄새라고 느낀 그것도 어린 테치에게 있어선 쿰쿰하고 이상한 냄새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젠가 산책을 실컷하고 땀을 잔뜩 흘린 머리두건에서 맡아본 그 냄새다. 그런걸 입에 넣으라니. 항상 향기롭고 맛좋은 고급푸드만 먹었던 테치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마마...... 와타치는 안먹는테츄...."

 테치는 힘없이 오징어다리를 떨군다.
 그말에 푸치는 펄쩍 뛰며 놀란다.

 "데---! 무슨 소릴하는데스! 안되는데스! 오마에는 벌써 하루를 꼬박 굶은데스우! 더 굶으면 안되는데스!"

 "......배고프지 않은테치."

 "그럴리없는데스. 마마에게 거짓말하면 나쁜 아이인데--스."

 ".....괜찮은테치. 안먹는테치...."

 "밥먹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데스. 테치챠는 얼른 자라고 싶지 않은데스요?"


 푸치는 다정하게 테치를 어루만지면서 달랜다.
 그러면서 한손으로는 테치가 들고있던 오징어다리를 다시 주워 내민다.


 "자-- 밥먹는데스- 딱딱하면 마마가 대신 씹어...."

 "저런건 밥이 아닌테체!!!!"


 테치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지른다.


 "데, 데애?!"

 "저런건 밥이 아닌테치!! 먹을 수 없는테치!! 고약한 냄새가 나는테챠!!"

 "밥! 밥을 가져오는테치!! 먹을 수 있는걸 달라는테치!! 이게 왜 밥인테치?! 이런건 쓰레기테치!!!"


 푸치가 손에 쥐어준 오징어다리를 힘껏 던진다.


 "밥! 밥! 우마우마한 밥을 가져오는테체아!! 콘페이토!! 쵸코!! 없으면 우유라도 가져오는테챠!!"


 테치는 무언가가 폭발한듯 발을 연신 쿵쿵 구르면서 외친다.
 콧김을 풍풍 뿜어내고, 인상을 잔뜩 찡그리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소리친다.


 "그런테치! 배고픈테치!! 배고파죽을것같은테챠!! 그러니 밥을 내놓는테치!! 저런 쓰레기말고 제대로된 밥! 밥! 밥을 내놓아라테체아아아!!!!"


 마른줄 알았던 테치의 눈에서 다시 적록색의 물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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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치와 테치는 모녀지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개체라고 봐도 좋았다.
 푸치는 비록 제대로된 혈통서가 없는 싸구려 애완실장이라곤 하더라도 어찌됐든 애완실장은 애완실장이었다. 그리 대단찮은 친실장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그 친실장 역시 출산석으로 키워진 개체였고, 그것은 그 친실장의 친실장, 친실장의 친실장의 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만큼 푸치는 출산석의 모친, 조모, 증조모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아 실장석치고는 그런대로 봐줄만한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테치는 다르다.
 테치 역시 푸치에게서 태어났으니 푸치처럼 출산석 조상의 혈통을 이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푸치는 출산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출산석이라고하면 그저 성체실장을 잡아다가 눈에 빨간 잉크를 떨어뜨려 무자비하게 자실장을 뽑아내는줄 알지만, 애완실장 출산석은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일단 애완실장을 낳는 출산석은 자실장때부터 엄한 교육을 받는다. 
 '어떻게 해야 성실한 아이를 낳을 것인가', '아이가 갖춰야할 덕목은 무엇인가', '태교는 어떻게해야 인간에게 예의바른 아이가 나오는가', '점막을 핥아주면서 분충을 가려내는 방법' 등등 그녀들도 왠만한 애완실장 못지 않은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게다가 테치는 푸치와 달리 애완실장으로서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푸치가 모든 정성을 쏟아부어 테치를 가르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장석의 레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푸치는 어설프게 테치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어린 자실장 시절부터 애완실장교육센터에 끌려가 배웠던 예의범절에 대한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어 테치에게 전수해주었지만, 자신이 교육받는 입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다시 다른 이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푸치가 애완실장교육센터의 우수 자실장으로 선정된 똑똑한 개체였기는 하지만, 인간이 오랫동안 쌓아온 실장교육의 노하우를 알고 있을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푸치는 테치의 친실장. 애정 깊고 상냥한 성격인 푸치가 애완실장교육센터의 교관처럼 무자비한 폭력과 체벌을 하나뿐인 아이에게. 테치에게 가할 수도 없었다.
 제딴에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주먹으로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지만, 겨우 그정도의 체벌은 푸치가 실장교육센터에서 겪었던 것의 백분지일. 아니 천분지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장석에게 있어 폭력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말이 통한다고는 하지만, 그 품성이 너무도 천박하여 조금만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거나 경계가 느슨해지면 이내 주인도 몰라보고 더러운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 실장석이다. 그런 실장석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애완실장으로서 언제든지 주인을, 인간을 공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만으로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만큼 머리가 좋지만, 결코 말만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로서의 본능도 가진 것이 실장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애완실장교육센터에서는 엄청난 폭력으로 실장석들을 교육시킨다.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애호파나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대파라고해도 풋나기 애송이는 놀라 까무러칠 정도이다.
 간단히 말해서 애완실장교육센터의 애완실장 출하율은 공급대비 2~3%에 지나지 않는다.
 즉, 100마리 중 살아나가는 것이 두세마리뿐인 것이다. 1000마리가 들어가야 겨우 30~50마리를 건질 수 있다.
 그외의 98마리. 950마리는 죽는다.
 죽는 것은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팔다리가 모두 잘려 발버둥치다 죽고, 친구와 자매가 모두 보는 앞에서 다리부터 으깨져서 죽고, 코로 꼬챙이를 쑤셔넣어 뇌를 헤집어 죽이고, 긴 꼬치로 엉덩이부터 입까지 꿰어 죽이고, 기름에 튀겨 죽이고, 불에 새카맣게 구워버리고, 독라로 만들어 노예로 부려먹다 죽이고, 얼려죽이고, 물에 빠뜨려죽이고, 뜨거운물에 데쳐 죽이고, 자매끼리 싸움을 시켜 둘 다 죽여버리고, 강제출산을 시켜 미이라처럼 만들어버리고... 이루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끔찍한 고통 속에 죽인다.


 ...푸치는 그런 수라장을 살아나왔다.
 함께 들어간 자매는 모두 죽었다.
 센터에 들어가서 사귀었던 여러 친구도 모두 죽었다.
 푸치도 죽지는 않았지만, 팔다리가 잘려나간 적은 많았다.
 채찍으로 하얀 등뼈가 보일때까지 두들겨 맞은적은 셀 수조차 없었다.


 그런 수라장을 무사히 빠져나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뼛속 깊이. 아니 위석 깊숙히 새긴 푸치와,
 겨우 '똑똑한 친실장'에게 몇가지 잔재주를 배운 테치가 같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테치도 푸치가 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예절과 지식은 갖출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실장인 푸치가 엄하게 대하기 때문에.
 또 그렇게하면 맛있는 밥과 포근한 잠자리, 재밌는 장난감이 주어지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처럼 맛좋은 푸드도, 따뜻하고 향기로운 침대와 이불도, 귀여운 엄지챠 인형과 미니카도 없는 가난한 들실장 생활에 마주하자 테치의 본성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데기... 그런 것은 없는데스우... 테치챠... 억지를 부리는 것은 다--메데스... 어서 밥을 먹는데수..."

 "싫은테찌! 싫은테찌! 푸드!! 푸드!! 푸드!! 푸드를 가져와라테체!!! 푸드말고는 먹지 않는테체아아아!!!"


 푸치는 어떻게든 테치를 달래 밥을 먹여보려고하지만 그럴수록 테치는 막무가내다.
 결국 자리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테챠테챠 휘두르며 소리높여 운다.


 "테에에엥!! 배고픈테찌! 배고픈테찌!! 밥!! 푸드!! 푸드를 가져오는테체!! 푸드가 아니면 안먹는테체아아아!!"

 "푸드!! 푸드!! 푸드가 아니면 콘페이토라도 가져오는테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달란테치!!"

 "데에에.. 테치챠... 떼를 쓰면 안되는데스... 떼부리기는 나쁜짓인데스..."

 "나쁜건 마마테찌! 왜 밥을 안 가져오는테찌? 마마가 밥을 구해오면 될것인테체! 밥! 밥을 구해와라!!"

 "데스우...."


 푸치는 허둥지둥하며 테치를 달래보려하지만 테치는 그런 푸치도 뿌리쳐버린다.
 안아주려고해도 푸치를 밀어낸다.
 테치몫으로 나눠준 오징어 조각은 이미 집밖으로 던져버린지 오래다.


 "데에에에.. 알겠는데수.. 마마가 다른 것을 구해와보는데스... 그러니 울지마울지마는데수..."


 십여분 간의 설득도 통하지 않자 결국 푸치가 항복한다.
 다른 맛있는 음식을 구해오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나서야 테치는 겨우 울음을 멈춘다.


 .
 .
 .
 .

 "알겠는데스? 절대 바깥에 나와서는 안되는데스우. 이곳은 아주 위험데스. 그러니 마마가 돌아올때까지 이 안에서 꼼짝말고 있는데스요?"

 "................."


 토라져서 대답도 않는 테치를 안쓰럽게 한 번 쳐다본 푸치는 골판지 상자 밖으로 나가 문을 닫는다.
 뭔가 고정할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건 없다.
 자그마한 조약돌 몇개로 지나가는 바람에 골판지 상자가 뒤집어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녀오는데스.."


 푸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빈 비닐봉투 하나를 품에 안고 숲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정오무렵의 뜨끈한 햇볕이 대지를 달군다.
 푸치테치 모녀의 들실장 생활은 17시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데에에... 아무 것도 없는데스우...."

 푸치는 한참동안 주변 숲을 뒤적였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생각대로라면 주변의 나무에서 맛있는 열매를 많이 주워 테치에게 먹이고 있어야하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똑똑한 푸치는 평소 테치가 좋아하던 사과나 포도, 오렌지와 같은 과일이 나무에서 열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주변에는 온갖 나무가 즐비했다. 그래서 푸치는 이런 나무 주변을 돌아다니면 떨어진 과일 몇 개쯤은 손쉽게 찾을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푸치가 과일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자작나무와 사이프러스, 모감주나무 같은 것이었다. 이런 나무들은 당연히 푸치가 생각하는 것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꽃이라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절은 이제 겨우 여름에 접어들고 있어 꽃조차도 대단히 이르다. 지금은 하나같이 푸릇푸릇한 잎을 돋우면서 힘을 비축하는 계절이지, 무언가 성과물을 내뱉어주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치는 그런 것을 모른다.
 자신의 하나뿐인 딸 테치에 관한 것이라면 미련하리만치 우직해지는 푸치였다.
 그런 푸치였기에 벌써 두시간째 연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떨어진 열매가 없나 열심히 찾고 있었다.


 "데헥... 데헥... 데헥... 더운데수.... 땀이 흠뻑나는데수..."

 "데히.... 데히... 데히.... 여기도 없는데스우... 데...."

 "이상한데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데스? 너무한데스..."


 푸치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내쉬면서 몸을 바삐 놀리지만 성과는 전혀 없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봐야 결국은 실장석. 과일이 나무에서 열린다고 알고 있지만, '어떤' 나무에서 열리는지는 떠올리지 못한다. 그저 푸치에게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가 그저 다 같은 하나의 '나무'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데에.... 아무것도 찾지 못한데스... 사과도... 오렌지도... 없었던데스... 데에... 테치챠가 실망할것인데스..."


 땀을 비오듯이 흘리던 푸치의 눈이 까맣게 죽어간다.
 자신도 꼬박 하루를 굶은데다 몇시간이나 격한 움직임을 보였기에 온몸에 힘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푸치에게 있어서는 노곤한 자신의 몸뚱이보다 어린 테치의 실망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데... 조금이라도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데스... 하지만...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데스우..."


 사실 그런 음식은 많았다.
 지금까지 나무 사이를 돌아다닌 것이 푸치가 아니라 노련한 들실장이었다면 이미 푸치가 품에 끼고 있는 비닐봉투의 삼분의 이 이상을 먹을 것으로 채웠을 것이다. 푸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쳤지만, 나무 밑에 돋아 있는 버섯, 바닥을 꾸무럭거리며 기어다니는 지렁이, 아직 다 피지않은 꽃봉오리, 아직 덜 자라 억세지 않고 푸긋푸긋한 잎, 꽃잎 사이에 숨어있는 무당벌레, 나무껍질 틈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딱정벌레... 먹을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푸치는 그런 것을 음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푸치가 찾고 있는 것은 언젠가 남자의 집에서 먹었던 예쁜 모양의 과일이었다. 버섯을 봐도 '데- 기묘한 것인데스- 나무쨩의 자식인데스?' 하고 신기하게만 바라볼 뿐이었다. 꽃을 봐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데- 향기가 좋은데스우-'하고 넘길 뿐이다. 벌레를 보면 오히려 기겁하고 달아나기 바쁘다.


 . 
 .
 .
 .


 "마마가 돌아온데스..."

 푸치는 자신이 놓아둔 조약돌이 그대로 있는 것에 안심을 하며 골판지 상자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테치가 구석에 등을 기대 쪼그려 앉아있다.
 또 한바탕 울었는지 얼굴과 앞치마가 온통 적록색 체액으로 얼룩져있다.
 푸치가 들어오자 안색을 확 밝혔던 테치였지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듯 이내 고개를 홱 옆으로 돌린다.

 "집을 잘 보고있었던데스우? 역시 테치챠는 착한아이인데-스."


 푸치는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다.


 "......푸드는 구한테치?"


 낮은 목소리로 테치가 추궁하듯 물어온다.
 순간 푸치는 데- 하는 멍청한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황급히 비닐봉투를 앞으로 내민다.


 "푸, 푸드는 아니지만 머,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져온데스!"


 그리고는 허둥지둥 비닐봉투의 입구를 열어 안에 든 것을 우수수 쏟아낸다.
 테치는 푸치가 무언가를 잔뜩 꺼내놓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잠시 미소 비슷한 것이 테치의 얼굴에 서린다.
 하지만 그 미소는 나타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푸치가 꺼낸 것은 여러 종류의 잎이었다.
 여러 개를 두서없이 따왔는지 잎의 모양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바람에 날려갈 것처럼 잎이 부들부들 부드러운 것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석에 무언가가 베어먹은듯한 흔적이 있었다.

 푸치는 어떻게든 테치에게 먹이기 위해서 직접 이 잎 저 잎을 베어먹어가며 그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쓴맛이 덜한 것을 골라온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온나무 잎처럼 괴이한 향취가 나는 잎도 씹어야했고, 빨간화살나무처럼 독이 들어있는 잎을 씹다 잔뜩 위액을 토해내기도 해야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이 있었기에 지금 꺼낸 잎처럼 말랑말랑하고 쓰지도 않은 잎을 골라낼 수 있었다.


 "자, 먹는데스! 이거라면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에도 편한데스우!"

 "과일은테치?"

 "과, 과, 과일은 구하지 못한데스... 하지만 이 잎은 먹을 수 있는데스! 마마가 직접 먹어본데스! 조금 씁쓸한 맛이 나지만 부드럽고 사각사각거리는 맛도 있는...."


 "............."


 테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원래의 구석자리로 돌아가 푸치를 등지고 주저앉는다.
 푸치는 멍하니 테치를 보며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를 하나 줍는다.
 그중에서 가장 괜찮아보여 되도록 많이 챙겨온 잎사귀. 오연나무의 잎사귀다.


 "테, 테치쨩? 한입이라도 먹어보지 않는데스? 이 잎은 잎이지만 맛이 있는데스. 왠지 그리운맛이 나는데스우. 테치챠도 반드시 좋아할것인뎃슨!"

 "........와타치는 그런거 못먹는테치."

 "데에... 테치챠는 너무 오래 굶은데스우! 뭐라도 먹지않으면..."

 "그럼 푸드를 가져오는테치."

 "하, 하지만 이런 곳에 푸드는 없는데스우....."

 ".........마마는............. 무능한테치."


 그말을 끝으로 테치는 바닥에 눕는다.
 등은 여전히 푸치를 향한 상태였다.


 푸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오연나무의 잎사귀만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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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사귀를 한데 잘 모아서 테치의 옆에 놓아둔 푸치는 골판지 상자 밖으로 나왔다.
 테치가 한시라도 빨리 밥을 먹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화장실 문제다.

 똥압축기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실장석의 맹렬한 분뇨는 유명하다.
 몸뚱이는 겨우 사람의 반의 반 정도밖에 안되면서 내뿜는 똥오줌의 양은 오히려 인간의 그것을 훌쩍 상회할 지경이니 알만하다. 연구에 따르면 체적의 80%를 똥으로 되뱉어낼 수 있다고하니 어찌보면 조금 두려운 수준이다.

 그런만큼 실장석에게 있어 화장실은 먹는 것 다음으로 해결해야할 중차지대한 일인 것이다.


 푸치는 재빨리 미리 눈여겨 봐둔 골판지 하우스 인근의 풀숲으로 간다.
 풀숲은 잎이 무성하게 자랐지만, 줄기는 낭창낭창 잘 휘어져서 쉽게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거기다 흙도 보들보들하니 부드러워 땅을 파내기도 쉽다. 근처에서 주운 부러진 나뭇가지로 열심히 땅을 파던 푸치는 어느 정도 깊이가 되자 재빨리 팬츠를 벗고 엉덩이를 구덩이에 조준한다.

 "뎃슨!"

 뿌직뿌직뿌직....

 뿌지지지지직!!

 "데에에... 시원데스우."

 푸치의 엉덩이에서 녹색 대변이 맹렬한 기세로 뿜어진다.
 하루를 꼬박 굶었지만 나오는 똥의 양은 남자의 집에서 길러졌을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실장석에게 있어 똥이란 먹는 것만큼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가교환이라는 자연의 법칙마저 거스르는 이 똥압축기계는 똥주머니라고 불리우는 분대에서는 먹은 것이 없어도 스스로 똥을 분비해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똥을 뿜어내는 것이다. 도저히 적응해내지 못하는 테치때문에 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집에서 쫓겨나 들실장이 된 것은 푸치에게 있어서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준 것이다.

 파낸 구덩이를 거의 반이상이나 똥으로 채운 푸치는 준비해둔 잎사귀로 엉덩이를 쓱싹쓱싹 문지른다.

 "데에에... 조금 거친데스우. 따끔따끔데스..."

 늘 쓰던 고급티슈와는 전혀 다른 나뭇잎은 생각처럼 잘 닦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조금만 힘을 잘못줘도 찢겨져 버리는 것이다.
 푸치는 준비해간 나뭇잎을 모두 쓰고도 똥을 제대로 닦아내지 못해 진땀을 흘리다가 할 수 없다는듯 조심스레 팬츠를 추켜올린다.

 "데... 축축데스우..."

 엉덩이에 느껴지는 물똥의 감촉이 몹시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푸치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골판지 상자로 돌아간다.
 테치도 똥을 누게해주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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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개!!"


 골판지 하우스로 돌아온 푸치는 깜짝 놀란다.
 분명 테치의 머리맡에 놓아두었을 나뭇잎이 골판지 하우스 밖에서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걸레조각과 신문지 다발도 보인다.
 혹시 없는 사이에 습격을 받은 것일까.
 푸치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간다.


 "테치쨩!! 무슨일인데스!!"


 골판지 상자의 문을 열어젖힌 푸치의 눈에 띈 것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뭇잎과 신문지를 갈가리 찢고있는 테치였다.


 "테치쨩!! 이게 무슨 짓인데스!!"

 푸치는 테치가 찢으려고 하는 신문지를 빼앗아 옆으로 치우고 테치의 어깨를 붙잡고 다그친다.

 "지금은 이런 신문지도 매우 귀한데스! 함부로 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데스!"

 "테챠아아아!! 냄새나는테챠아아아!! 더러운테챠!!! 이딴건 모두 버리는테챠아아!!"

 "테치쨩!!"

 "이, 이 똥마마!! 똥마마는 꺼지란테챠아아아!! 밥!! 밥을 가져오는테챠!! 배고픈테챠!!"

 "테치쨩!! 그런 말은 다---메데스!! 마음대로 하는 것은 용서치않는데스!"

 "넌 분충테챠!! 똥벌레테챠!! 왜 와타치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는테치?! 당장 와타치를 집으로 보내라테햐아아!!"


 테치는 두눈을 부릅뜨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맹렬히 푸치에게 달려든다.
 그 기세에 움찔한 푸치가 손에 힘을 푸는 사이 테치는 푸치의 오른쪽 다리에 붙어 뽀후뽀후 주먹질을 해댄다.

 "죽어라! 죽는테챠! 똥마마는 죽어버리란테챠!!"

 통통

 통통

 "네가 못생겨서 와타치까지 버려진테챠!! 너때문인테햐아아아!! 너따윈 죽어버려라테에퍄아아!!"

 통통

 통통

 "당장 푸드를 가져오는테찌! 나뭇잎 따위나 먹으라니 넌 미쳐버린테찌? 저딴건 너나 쳐먹는테퍄!!"


 처음에는 테치를 말리려고 했던 푸치였지만, 연이은 딸의 매도에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거나말거나 테치의 주먹은 쉬지 않는다.


 뚝


 테치의 두건 위에 적록색의 물이 떨어진다.














댓글 2개:

  1. 다음편은 없는데스? 테치챠 솎아내는걸 보고싶은데스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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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데히... 분충 테치가 갈가리 찢겨 죽는걸 봐야 개운한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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