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시장 1~5, 외전


 

 후타바시의 후타바 자연공원 중심가에 위치한 공중화장실.
 시끌벅적한 일요일의 풍경을 남기고 월요일의 새벽이 밝아온다.
 보통 때라면 실장석들조차 자취를 감춘 시간대이지만, 오늘만은 다르다.
 어디선가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대한 하나의 무리가 되어 공중화장실에 도착한다.

 공중화장실 중에서도 여자 화장실이 시끄럽다.
 데에 데 하는 외침소리와 데엑! 거리는 비명소리. 통제하려는 고성이 계속해서 오간다.
 하지만 모여든 실장석들의 수에 비해서 제법 질서정연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실장석들에게는 생소한 줄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차례로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인간의 그것과도 흡사하다.

 주변의 실장석들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데스데스하고 떠든다.
 몇몇 실장석들은 데려온 자실장을 혹시나 잃어버릴까 꼭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각자의 많고 적음이 있지만, 한 손에는 소중한듯 콘페이토를 들고 있다.

 오늘은 실장석들의 장날이다.



 [데엑! 멈추는데스! 콘페이토를 보여주는데스!]

 험상궃게 생긴 실장석이 화장실 입구에 들어가려는 실장석을 막아선다.
 막아선 실장석은 보통의 초록옷 위에 얼기설기 엮은 골판지를 배와 다리에 둘렀다.
 그리고 날카롭게 갈린 쇠못을 허리춤에 끼고, 손에는 긴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은 오금이 저릴 정도다.
 하지만 실장석의 손에 들린 콘페이토를 보더니 별 상관않고 들여보내준다.

 [다음데스!]



 [테에에... 마마.. 실장석들이 정말 많은 테찌...]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친실장에게 안겨 주변을 둘러보던 자실장 하나가 놀란듯이 중얼거린다.
 수를 제대로 못 세는 자실장이지만, 주변의 실장석은 평생 봐온 실장석들보다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전혀 싸우지도, 싸움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닌겐상이 와서 음식을 주는 기분좋은 날마저도 심심찮게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4녀.. 목소리를 낮추는데스..]

 하지만 그런 자실장의 머리를 푹 누르며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데스! 콘페이토를 보여주는데스!]

 친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앞치마의 주머니에 든 콘페이토들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내 노성이 돌아왔다.


 [데엑! 뭘 하는 데스! 이건 검사를 받지 않은 콘페이토인데스! 당장 꺼지는데스!!]

 [데, 데, 데, 데에??]

 [다음데스!]


 순식간에 끌려난 친실장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버버거릴 뿐이다.
 하지만 한 켠에 서있던 다른 실장석이 그런 친실장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더니 이내 한쪽을 가리킨다.

 [시장엔 처음 온 데스? 그럼 일단 저쪽으로 가서 검사를 받는데스]

 [거, 검사데스?]

 [가보면 아는데스]


 귀찮은듯 손짓을 하는 실장석을 뒤로 하고, 친실장은 그 실장석이 가리킨 방향으로 간다.
 얼마 가지 않아 실장석들이 모여있는 무리가 나온다.
 근처의 낡은 가로등 불빛 아래 몇마리 실장석들이 작은 골판지 상자를 엎어놓고 책상을 삼은채로 무엇인가 데스데스하고 있다.
 구더기 몇마리와 이상한 기계도 보인다.
 그리고 아까 전에 봤던 나무젓가락과 못을 든 무서운 실장석도 곳곳에 보인다.

 친실장은 줄을 섰다.
 자신의 앞에는 3마리가 더 있다.


 [뭐인데스?]

 [이 봉투는 야채조각인데스. 이 봉투는 밥알갱인데스]

 [잠깐 기다리는데스]

 .
 .
 .

 [밥알갱이는 3묶음이 조금 넘는데스. 야채조각의 값은 밥 2묶음인데스. 합쳐서 6묶음 주는데스]

 [데, 데엑?! 저건 자들이 10끼도 먹는 분량인 데스우우!! 6묶음이라니 말도 안된다데스!]


 실장석의 고성에 양옆에 선 험상궃은 실장석들이 조금 앞으로 나온다.
 그 모습에 소리치던 실장석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그럼 이거 가지고 돌아가서 자들이랑 먹어라데스]

 [데, 데에... 알겠는데스..]


 실장석은 아까의 위세는 다 사라지고 무언가 꾸러미를 들고 힘없이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 다음의 실장석의 차례가 왔다.

 두번째 실장석은 콘페이토를 5알 꺼내 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상자 뒷편의 실장석은 콘페이토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책상 한 켠에 누워있는 구더기쨩을 데려와 콘페이토를 햝게 한다.


 [레후~ 레후~ 또 콘페이토 먹는레후~ 구더기는 최고로 고귀한레후~]

 건방진 구더기의 노랫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장석은 5개의 콘페이토를 조금씩 구더기가 햝게 만든다.
 그리고 잠시 기다린다.
 구더기는 여전히 레후레후 흥얼거린다.
 고개를 끄덕인 실장석은 상자 밑에서 파란색 종이를 꺼내더니 콘페이토를 하나씩 싸서 되돌려준다.

 [다음데스!]


 친실장의 바로 앞 실장석도 콘페이토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상자 뒷편의 실장석은 몇 번 냄새를 맡더니 책상 한 켠의 구더기를 끌고와 콘페이토를 햝게 한다.

 [레훈~ 렛훈~ 또 콘페이토레후~ 달콤한레후~]

 구더기는 천천히 두 개의 콘페이토를 빤다.
 그리고 세번째 콘페이토를 빠는 순간.

 [렛훈~ 콘페이토도 지겨운레후... 레, 레? 이것은 맛이 조금 다른 레... 레! 레! 레! 레삐야아아아앗!!!!!!]


 흥얼거리던 구더기의 뒷편으로 엄청난 초록색 물줄기가 뿜어져나온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자실장을 놓쳐버렸다.
 자실장으로선 밑으로 떨어진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덕분에 대변을 모두 쏟아낸 구더기가 허물어지듯 무너지는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았으니.


 [도돈빠인 데스읏!!]

 상자 뒷편의 실장석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리고 그걸 가져온 실장석을 노려본다.

 [끌고가는 데스!]

 앞의 실장석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빵콘한 채로 어버버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험상궃은 실장석 둘이서 그 실장석을 끌고 다른쪽으로 사라진다.


 [다음데스!]

 [다음데스!]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차리던 친실장은 뒤에서 누가 쿡 찌르는 덕분에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넘어진 자실장을 들고 앞으로 나간다.
 친실장은 얼이 빠져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상자 뒷편의 실장석은 담담하다.
 어느새 책상위의 구더기와 똥도 치워져 있고, 새로운 구더기가 한 마리 올라와 있다.

 [뭘 가져온 데스?]

 [데, 데... 야, 야채찌꺼기와 밥알갱이. 그리고 콘페이토가 있는데스...]

 [처음 온 데스?]

 [데, 데, 데뎃. 그, 그런 데스....]


 죄라도 지은듯 고개를 푹 숙이는 친실장에게 실장석은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여기선 다른 실장석들이 주워온 콘페이토가 '독'이 아닌지 검사하는 곳인데스. 방금 전처럼 독을 가져온 실장석은 보복을 받는 데스우.
  너는 통과할 자신이 있는 데스?]

 [데에... 와타치의 콘페이토는 애호파 닌겐상이 주신데스... 걱정없는 데스....우...]

 [뭐 곧 밝혀질 것인 데스. 데프프.. 그 전에 야채와 밥부터 정리하는데스]

 [야, 야채도 콘페이토로 바꿔주는 데스?]


 친실장이 기쁜듯이 말한다.
 그러나 실장석은 인상을 쓰며 설명해준다.


 [처음 왔다고 하니 한 번만 말해주는데스. 저 안의 시장에선 콘페이토와 우리가 묶은 밥알갱이. 이 2개만 쓸 수 있는 데스.
  밥알갱이 30개가 1묶음이 되고, 밥알갱이 20묶음은 콘페이토 1개인데스. 야채같은 찌꺼기는 우리가 무게를 보고 주는데스.]

 [데, 데에...]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한 번 더 물어보면 맞을 것 같다...
 친실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야채찌꺼기는 모두 해서 3묶음. 밥알갱이가 5묶음인데스. 콘페이토를 보여주는데스]

 [데스우...]

 친실장은 밥알갱이 8묶음이란게 많은지 적은지 감이 안 왔지만, 일단은 시키는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치마에서 콘페이토를 꺼냈다.
 정확히는 콘페이토가 아니라 콘페이토 봉지였고, 그건 뜯지 않은 신품이었다.
 친실장은 애호파 닌겐에게서 신품 콘페이토 봉지를 받은 것이다.


 [데, 데, 데, 데엣!]

 괴성을 지른건 상자 뒷편의 실장석이었다.
 그는 친실장이 꺼내놓은 봉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찍힌 그림을 몇 번이고 살펴보고, 혹시 봉투가 찣어지진 않았는지 몇 번이나 흔들어봤다.
 한참을 쳐다보다 다시 그걸 친실장에게 내민다.


 [잘 듣는데스. 이건 바꿔주지 않는데스. 대신 시장 안에 들어가서 애꾸할망구에게 보여주는데스. 꼭! 그래야하는데스!]

 고개를 바짝 내민채 소근거리는 실장석의 기세에 눌려 친실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실장석은 돌아가려는 친실장을 불러세운다.


 [시장에 들어가려면 최소 콘페이토는 하나 있어야 하는데스. 이걸 가져가는데스.]

 책상 위에는 콘페이토 2개가 있었다.




 다시 줄을 처음부터 서서 두번째로 문지기 실장석을 만났다.
 실장석은 파란색 종이에 싸인 콘페이토를 보더니 이번에는 두말 않고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화장실 안에 들어선 친실장은 너무도 놀라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밖에서 본 실장석 무리들도 생전에 몇 번 보지 못한 많은 수였는데, 이 안쪽에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가 있었다.
 그것도 싸우지 않으면서.

 입구의 왼편에 있는 출산실(대변칸)부터 시작해서 정면 끝에 있는 벽과 오른편의 벽까지 빼곡히 실장석들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각자가 가져온 물건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언뜻봐도 처음보는 기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야채찌꺼기, 달걀껍데기, 말린 풀, 도토리, 비닐조각, 무섭게 매달린 구더기 육포, 빨갛고 파란 액체가 담긴 병, 초록색과 노란색과 갈색 등등 형형색색깔의 실장푸드, 커다란 골판지, 처음보는 깨끗한 천조각, 자들이 정말 갖고 싶어하던 장난감 공, 인형 등등 상상도 못할 만큼의 물건들이 있었다.

 품에 안긴 자실장 역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침이 흘러나오는 것도 모른채,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물건을 본 적도 없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실장의 작은 뇌로는 이만한 숫자는 꿈에서조차 불가능한 수였다. 태어나서 가장 많다고 느낀게 나무 밑에 떨어진 낙엽이었는데, 이건 그때 그 낙엽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는 친실장을 누군가 뒤에서 툭친다.
 돌아보니 문지기 실장석과 비슷한 옷을 입고 녹슨 못을 허리에 찬 실장석이다.


 [처음 오는데스? 자실장 간수 잘해라데스. 여기서 소동을 피우거나 똥을 싸거나 싸움을 하거나 하면 즉시 끌고가는데스]


 친실장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입구에서 비키는데스]

 경비 실장석은 친실장을 한쪽으로 옮기고 떠난다.




 겨우 정신을 차린 친실장은 자실장을 꼭 안은 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난리통에 잠깐이라도 놓치면 잃어버리는 건 둘째치고, 곧바로 고기반죽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실장을 껴앉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자실장은 사방천지를 구경하느라 정신조차 없는 상태였다.

 조금 진정된 친실장은 원래의 목표인 자의 옷을 사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얼마전 4녀와 7녀가 학대파 닌겐에게 모르고 접근했다가 7녀는 산채로 불태워져 고통스럽게 죽었으며, 4녀는 머리칼과 옷을 모두 잃고, 사지가 잘린채로 버려졌다.
 뒤늦게 알아챈 친실장이 달려가 오뚝이가 된 4녀를 구해냈고, 오랜 간호 끝에 사지도 재생되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옷과 머리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활기차던 4녀는 절망에 빠져 밥조차 먹지 않고 어두워져 갔으며 다른 자매들과도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자매들은 여전히 4녀를 아꼈지만, 4녀 스스로가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피했던 것이다.
 그런 4녀를 안쓰럽게 바라만 보던 친실장이 어디선가 실장석의 옷을 판다는 것을 들은 것은 전전날이었다.
 콘페이토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민했지만, 절망에 빠져 골판지 상자 구석에서 벽만 바라보며 죽어가는 4녀를 보다못한 친실장은 결국 숨겨진 비상식량을 꺼내 이곳에 온 것이었다.




 화장실의 벽면에는 빼곡히 들어선 실장석들이 벽에 등을 붙인채, 노점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는 길게 3줄씩 노점들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친실장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음식가게였다.
 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가게는 역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실장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음식가게였다.

 그러나 음식가게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성체실장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찌꺼기라든가 닌겐상이 공원에서 먹다 버린 음식물찌꺼기는 길게 늘어선 3줄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엉껍질, 감자껍질, 당근껍질, 무 껍질 등 싸구려 야채찌꺼기를 더러운 화장실 타일바닥에 그대로 늘어놓은채 파는 실장석,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계란껍데기를 여러개 겹쳐 놓은 채로 좌판을 늘어놓은 실장석, 이리저리 깨진 도토리를 초라하게 몇 개 늘어 놓고 엄지실장을 품에 안고 손님을 기다리는 실장석 등 들실장이라면 흔히 먹는 음식들을 파는 가게들이었다.

 그에 비해 보통의 들실장이라면 보기 귀한 형형색깔의 실장푸드와 틀림없이 닌겐상의 음식이라고 생각되는 기묘한 모양의 먹거리, 향긋한 냄새가 나는 액체, 트야트야한 붉은 열매, 처음 보는 노란색 덩어리 등등의 귀한 물건은 벽면에 위치한 실장석들 앞에 늘어서 있었다. 노점 앞에서 흥정하는 실장석들도 유형이 판이하게 달랐다. 앞서 말한 일반 음식가게 앞에는 꾀죄죄한 실장석들이 가격을 두고 데스데스거리며 다투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벽면의 가게에서는 제법 깔끔한 옷을 입고, 어깨에는 그럴싸한 가방까지 맨 실장석들이 여유있게 둘러보고 있었다.

 음식가게 다음으로 많은 것은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들이었다.
 파는 실장석 자신조차도 어디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온갖 잡동사니를 되는데로 주워와서 파는 것이다.
 물론 사는 실장석도 어디 쓰는지 모른다. 그저 본능에 따라 가지고 싶으면 집어서 사는 것이다.
 산 물건은 그야말로 쓰레기라 허공에 콘페이토를 날리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가다 정말 유용한 물건을 헐값에 사서 몇십 배로 되파는 경우도 일어난다.
 사실 잡동사니 가게 앞에서 서성이며 여러 물건을 들춰보는 실장석도 이런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 절대다수이다.
 걔중에는 좋은 물건을 추천해주며 밥알갱이 몇 묶음을 받아챙기는 일종의 감정사도 있다.
 대부분 원사육실장 출신이며 닌겐에게 사육되면서 이야기나 텔레비젼을 통해 들은 것을 얼추 조합해서 물건의 용도를 짐작하는 것이다.
 제대로 들어맞으면 포상금으로 어마어마한 몫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잘못 되서 쓰레기를 비싼 돈 주고 사게 되면 잘해야 독라노예로 팔리고, 보통은 찣겨죽게 되는 것이기에 그리 좋은 직업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찣어죽이는 행위는 시장 안에서는 절대 엄금이다.
 시장 안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폭력 및 분충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도둑을 잡든 사기꾼을 잡든 간에 처벌은 반드시 시장 밖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큰 싸움이 벌어지면 경비 실장석은 두말하지 않고 쌍방 모두를 즉시 도살한다.

 범죄가 일어나면 물건을 파는 주인들만 나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경비원이 나서주는 것이다.
 도둑의 경우에는 훔치려고 한 물건의 2~3배를 물어내게 한다.
 그러나 도둑질을 하는 실장석이 재산이 있을리 없으므로 대개는 주인의 노예가 된다.
 이를 노리고 몇몇 질나쁜 실장석들은 일부러 값싼 물건을 파는 시늉을 하며 도둑을 유인한 다음 노예로 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건 경비 실장석들이 상관하지 않는다.

 경비 실장석은 하나같이 성체실장석 중에서도 특별히 몸집이 크고 힘이 좋아 가려 뽑힌 것들이다.
 화장실의 입구쪽 세면대 밑이 경비 실장석 본부인데, 이곳에서는 신규 경비를 모집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에만 해도 열이 넘는 실장석들이 경비원이 되려고 줄을 서있다.

 경비원이 되면 무기와 장비가 주어지고, 보스에게서 식량도 주어진다.
 식량은 혼자 먹기에 충분하고 필요한 것은 몸밖에 없기에 주로 떠돌이 실장석들이 많이 지원한다.
 하지만 심사가 꽤나 까다로워서 열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될까말까한 수준이다.
 심사는 힘겨루기로 하는데, 너무 약하면 당연히 탈락이고, 과도하게 강하면 은근슬쩍 유인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
 너무 약한 개체는 경비원으로 쓰지 못하니 돌려보내지만, 너무 센 개체는 조직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비원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친실장은 4녀를 품에 꼭 안고 시장을 대충 둘러보았지만 옷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이 음식을 파는 가게 아니면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였고, 간혹 가다가 신기한 물건을 파는 곳이 보였다.
 4녀는 그동안의 우울함이 거짓말이었던듯 연신 테찌테찌거리면서 구경하기에 바빴다.
 특히 중간의 노점상에서 발견한 깨진 거울조각을 보고 신기한듯 연신 바라보았다.


 [마마! 이 안에 작은 독라가 있는테찌!]

 [데에....]

 [데프프프 그건 너인 데스]


 신기해하는 4녀를 보며 한심하다는듯 주인이 말하자 4녀는 독라인 자신을 거울 속에서 발견한다.
 금새 시무룩해져 눈물이 글썽이는 4녀.
 친실장은 서둘러 거울조각을 내려놓고 4녀를 안고 다른 곳으로 간다.

 4녀는 그 좋아하던 구경도 그만두고 친실장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테흑테흑거리며 울고있다.
 원래 온 목적을 다시 떠올린 친실장은 퍼뜩 정신이 들어 옷가게를 찾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데에... 이상한데스... 분명히 옷을 판다고 들었던데스...)


 그런 친실장의 눈에 경비원 실장석이 들어온다.
 험상궃게 생겼지만, 조금 전 처음 온 자신에게 이런저런 것을 알려줬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실례하는데스우... 자의 옷을 사려는데 어디로 가면 되는데스우?]

 [처음오는데스? 옷은 저쪽 출산실의 첫번째 집에서 파는데스]


 경비원은 대수롭지않게 대답해준다.
 친실장은 옷가게를 찾았다는 기쁨에 감사하다는 말을 흘리며 그 쪽으로 달려간다.

 과연 출산실(대변칸) 앞에는 실장석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비원들도 둘씩이나 앞에 서 있어서 수에 비해 제법 질서정연했다.
 앞뒤에서 데스데스하고 떠드는 말을 들어보면 이곳 옷가게는 다른 노점과는 달리 출산실 문 안쪽을 전세 내어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기때문에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수도 제한되어 있고, 물건을 고르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고 하는 것 같다.

 잠시 뒤 친실장이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다음 줄 들어가는데스]


 들어간 친실장은 입을 떡하고 벌렸다.
 품에 안긴 4녀도 마찬가지였다.

 출산실의 벽면에는 빼곡히 온갖 옷들이 걸려 있었다.
 입구의 왼쪽에는 구더기옷이 빼곡히 쌓여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자실장옷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안쪽 벽면에는 나뭇가지를 옷걸이처럼 만들어 옷 사이에 끼우고, 그 나뭇가지는 하나의 긴 나무젓가락에 겹쳐 끼워 놓은 다음 양 끝을 독라노예 둘이 지고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인간의 옷가게에서나 보이는 매대를 만든 것인데 제법 그럴싸했다.
 몇몇 실장석은 그 매대에서 이런저런 옷을 꺼내 자신의 몸에 대보고 있었다. 벽면 구석구석에는 금이 간 거울까지 놓여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출산실의 가운데 흰색 구덩이(화변기)를 큰 나무조각으로 덮어놔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놨는데, 그 위에는 다른 바닥보다 약간 높게 골판지 상자가 있었다.
 골판지 상자 위에는 보통의 초록색 옷이 아닌 핑크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등 형형색깔의 옷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육실장의 옷이다. 닌겐상이 만든 옷인 것이다.
 닌겐상이 만든 옷은 보통의 실장옷과는 차원이 다르다.
 질기고 튼튼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예쁘다.
 하늘하늘한 소매나 프리프리한 레이스, 우아한 곡선, 허리춤에 들어간 맵시... 
 들실장이라면 꿈에서조차 볼 수 없는 그 사육실장 옷이 여기에는 한두벌도 아니고 여러벌 널려있었다.


 [테에에에... 마마... 너무 예쁜테찌...]


 4녀는 언제 울었던듯 황홀한 표정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특히 상자 위의 사육실장 옷을 처음 보는 순간 부르르 떨더니 입을 헤-하고 벌리고 있었다.
 며칠째 우울해하며 밥을 거의 안 먹었었기에 망정이지, 보통이었다면 반드시 빵콘해버렸으리라.
 친실장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4녀에게 말했다.


 [4녀. 마마가 옷을 사주는데스!]







 [테, 테, 테, 테찌이이이?? 마마, 와, 와타치에게 옷을 사주는테찌이이??]

 [물론인데스! 오늘 여기온 건 4녀의 옷을 사기 위한 것인 데스!]

 [테... 테... 테에에... 마마! 마마! 너무 좋아하는 테쮸우우!!!!]


 4녀는 친실장에게 안긴 상태에서 친실장의 목을 껴안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친실장의 뺨을 부비면서 울먹이는 4녀.
 그런 4녀를 보면서 친실장도 가슴 한 구석에서 무언가 뜨겁게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4녀는 한참동안이나 친실장의 목을 껴안고 테에에.. 테에에.. 거리며 울먹인다.
 독라가 된 이후 얼마나 절망에 빠져있었을까.
 무서운 닌겐에게 팔다리가 찢기고, 가장 사이가 좋았던 7녀 동생이 자신의 눈앞에서 불타 죽었다.
 그 뒤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위석의 붕괴를 막기 위해 스스로의 두뇌가 기억을 잃은 것이지만, 4녀는 그런 것을 알 수 없다.

 다만 정신을 차린 이후로 자신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절규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꼬불꼬불한 뒷머리도, 눈가에까지 내려오는 앞머리도.
 그리고 연약한 자신의 피부를 보호해주던 초록색 옷도.
 까끌까끌한 모래밭에서도 발을 아프지 않게 감싸주던 초록색 장화도.
 답답하다고 자주 벗다가 마마에게 혼났던 두건마저도...

 아무 것도 없었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독라는 곧 노예로 취급받는다.
 어제까지 살을 부비고 같이 자고 먹고 놀던 자매라도 독라가 되는 순간, 자매가 아니라 노예로 취급된다.
 하지만, 친실장의 가정에서는 그것이 통용되지 않았다.
 분충이 아닌 이상, 마마가 슬픈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모두가 함께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살아왔다.

 친실장은 4녀를 가슴에 안고 다른 자매들에게 마마의 자매들 사이에도 독라가 있었으며, 결국 그 자매들도 자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4녀를 상냥하게 바라보며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의 마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매들 역시 납득했다.

 [4녀쨩! 오늘은 날씨가 좋은테츄! 와타시와 차녀쨩이랑 산책을 가는테치! 마마도 허락한테치~]

 [4녀쨩! 밤 산책을 하는테치! 마마도 함께 간다고 하는테치~ 밤이라서 아까 전처럼 누가 보지도 않는테치!]

 [4녀 오네챠! 와타치랑 같이 돌놀이를 하는테치! 와타치가 돌을 던지는테치!]



 [테에... 4녀쨩... 밥은 함께 먹어야 맛있는 테치이...]

 [4, 4녀쨩? 벌써 몇 끼나 밥을 굶은테츄우... 어서 밥을 먹는 테치...]

 [테에에에엥~ 4녀오네챠... 무슨 말이라도 해보는테츄우우....]


 자매들은 슬픈 일을 당한 4녀를 위해 평소보다 더욱 더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친절을 보이면 보일수록 4녀의 마음은 병들어갔다.


 (와타치가 독라라서 오네챠와 동생쨩이 위해주는 것인테치....)

 (사실 와타치를 비웃고 있을테치...)

 (너무 부끄러운테치... 독라.. 와타치는 독라... 그것뿐인테치... 테에에에.....)


 그런 4녀를 보고 친실장은 위로도 해보고, 몰래 콘페이토도 줘보고, 때로는 크게 꾸짖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4녀는 마음 깊이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항상 골판지 하우스의 벽면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4녀.
 밥도 하루에 겨우 한끼를 먹을까말까다.
 그런 4녀의 모습에 자매들도 지쳐가고, 친실장도 괴로워한다.

 그리고 이제 그런 것은 여기서 끝난다.



 [자! 4녀쨩! 원하는 옷을 골라보는 데스!]

 [테에에... 마마... 괜찮은....테찌?]

 [걱정마는데스우! 마마를 믿는 데스!]

 [테에.. 테에에에.. 테에에에엥! 마마! 고마운테치이이이!!]


 4녀는 친실장의 목을 다시 끌어 안는다.



 [데에~ 처음 오신 분인 데스우? 와타치는 이 가게의 주인인데스우~]

 친실장과 4녀 앞에 거구의 실장석이 다가온다.
 실장석은 분홍빛을 띤 화려한 사육실장용 옷을 입고, 프리프리한 레이스가 잔뜩 달린 두건을 썼다. 신발은 세련된 모양의 굽 높은 실장 신발이었으며 그 색깔은 약간 진한 자줏빛이라 상의의 분홍빛과 대비되어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우아하게 흔드는 오른손 아래에 빨갛고 파란 팔찌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손에는 아름다운 반지도 여럿 끼고 있다.


 [테에에... 멋진 테츄...]

 자신도 모르게 4녀가 탄성을 자아낸다.
 친실장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랜 경험덕에 입밖에는 내지 않았다.


 [데에~ 귀여운 꼬마 손님인 온 데스우~ 자실장 옷을 보러 온 데스?]

 [데? 데, 데에... 그런 데스...]

 [이런 귀여운 꼬마에게는 아무래도 화려한 옷이 더 어울리는데스~ 이리 오는데스! 어울리는 옷이 마침 있는 데스우~]

 [데에....]

 4녀가 독라가 된 이후로 마마 이외의 사람에게 귀엽다고 칭찬 받은 건 처음이었다.
 친실장은 처음 보는 실장석의 갑작스러운 환대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지만, 아직 어린 자는 테찌테찌하며 기쁘게 실장석을 따라 중앙의 골판지 상자로 달려간다.

 [역시 어린 아이에게는 핑크색이 어울리는데스~ 아주 예쁜데스~ 이런 옷을 입으면 분명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우~]

 [테테테테테! 사육실장테찌?]

 [물론인데스우~ 얼마 전에도 이 프리프리한 핑크색 옷을 사간 자가 사육실장으로 데려가지는걸 본 데스우~]

 [테에에...]

 4녀는 온몸을 부들거리며 핑크빛 자실장용 옷을 바라본다.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지고의 경지인 사육실장.
 허황된 꿈을 꾸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교육받아온 4녀였지만, 갑작스러운 주인 실장석의 이야기에 숨겨왔던 본능이 꿈틀거린 것이다.

 (와, 와타치가 사육실장테츄... 독라인 와타치가 그럴리가 없는테치.... 아닌 테치! 저 프리프리한 옷을 입으면 분명 닌겐상도 더 귀엽게 봐줄 것인 테치... 분명 그런 테찌이...)

 멍하니 옷을 바라보는 4녀를 보며 주인 실장석은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데프프프프 또 하나 넘어온 데스웅♥)

 이 주인 실장석은 드물게도 서비스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굉장히 똑똑한 개체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수라장과도 같은 들실장의 삶을 계절이 3번 바뀌도록 살아남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격만이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라는 것을 읽고, 그 흐름을 타도록 부추기는 기술. 상대방이 자기보다 한없이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도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면 아첨도 가리지 않는다는 자세.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도록 상대를 한껏 추어세워주는 교묘한 화술. 이것이 지금 가진 옷가게 전체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주인 실장석의 무기인 것이다.


 [마마! 와타치 이 옷이 마음에 드는 테찌!]

 4녀는 뒤돌아서 친실장을 보며 핑크색 옷을 가리킨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친실장의 냉혹한 대답이었다.

 [이건 안 되는 데슷! 평범한 옷을 고르는 데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실장은 4녀의 오른손을 잡아 벽면에 있는 초록색 실장석 옷이 있는 쪽으로 끌어당긴다.
 갑작스런 마마의 큰소리와 잡아당기는 팔의 아픔에 4녀의 달콤한 상상이 깨지고 만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 감정은 곧 분노로 바뀌어 상상을 깨뜨린 친실장에게 날아간다.

 [테에에에엥!! 와타치는 저 옷이 좋은테찌이!! 저 옷을 사는 테찌이!! 마마도 내가 원하는걸 사준다고 한 테찌!!]

 4녀는 곧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흘러 나오는 눈물은 투명한 거짓눈물이 아니라 극한의 상태에서나 나온다는 색깔있는 피눈물이다.

 친실장은 갑작스러운 4녀의 고성에 놀라 급히 4녀를 끌어안는다.
 소란스럽게 하면 쫓겨난다.
 그걸 기억하고 놀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가게에 있는 경비 실장석들은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사실 자실장이 친실장에게 떼쓰는 광경은 이곳 옷가게에선 굉장히 흔한 일이고, 주인 실장석이 요청이 없는 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언질도 있었기에 경비 실장석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것이다.

 다행히 자신들을 주목하는 실장석들이 없는 것을 깨달은 친실장은 4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아직 테에엥 테에에엥 거리고 있지만, 큰 울음은 그친 상태다.
 친실장은 4녀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한다.

 [4녀! 정신차리는데스! 내 말 똑바로 듣는데스!]

 [테끅! 테끅! 테에에에... 마, 마마....]

 친실장이 이럴 때는 굉장히 화났을때 뿐이다.
 잠시 이성을 잃고 울었던 4녀지만 끔찍한 친실장의 체벌과 이전의 몇몇 슬픈 일을 기억해내고서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마에 대한 아쉬움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4녀는 똑똑한 데스우. 잘 생각해보는데스. 오마에가 저런 사육실장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스?
  4녀는 예전에 길 잃은 꼬마 사육실장이 어떻게 됐는지 기억못하는데스?]

 [테에엥... 테엥... 테.... 하지만... 하지만... 와타치는 사육실장이 아닌데치!]

 [그런건 상관없는데스! 사육실장옷을 입고 다니는 순간부터 공격을 받는다는 것인 데스우! 말해보는데스!
  그때 그 꼬마 사육실장은 어떻게 된 데스?!]

 [테에에에...]

 [말해라데스!]

 [테에.. 테... 찢겨죽은... 테찌...]


 친실장은 대답한 4녀를 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잘한 데스. 역시 4녀는 똑똑한 자인데스우]

 [테에.. 마마...]

 [4녀는 똑똑하니 이해하는데스. 저런 옷은 예쁘지만 입는 순간 곧바로 표적이 되는 데스우. 똑똑한 4녀는 그것도 아는데스?]

 [......네 테찌...]


 4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분명 마마의 말이 맞다.
 아까 전만 해도 핑크색 프리프리한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모두가 떠받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마마의 말을 듣고 과거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해보니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길잃은 사육실장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은 너무도 자주 봤다. 그런 자신이 저런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면... 4녀는 순간 머리를 스친 끔찍한 상상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체.... 제법 똑똑한 놈인데스우...)

 그런 모녀를 못마땅한듯이 바라보는 실장석이 있었다.
 주인 실장석이었다.
 거의 다 넘어간 먹이였는데, 친실장이란 놈이 생각보다 똑똑한 놈이었다.
 자도 제법 똑똑한 것 같았지만, 어차피 자실장. 조금만 더 행복회로를 자극했더라면 친실장의 설득도 먹히지 않는 분충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친실장의 입장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사주던가, 아니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물론 자는 순순히 나가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한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발광을 한다. 친실장을 분충이라 매도하거나 똥을 던지거나하며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 실장석이 나서서 모녀를 둘 다 끌고 간다. 가게를 소란스럽게한 죄로 합법적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녀는 두 개의 선택지를 모두 피해갔다.
 공들인 먹이를 놓친 건 오랜만이었기에 입안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래서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쌀쌀맞아질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자실장 옷은 저쪽 벽을 보는데스]


 아직 테끅 테끅 거리는 4녀를 데리고 친실장은 벽면에 도착했다.
 벽면에는 친숙한 초록색깔의 실장석 옷이 잔뜩 나뭇가지에 꿰인 채로 걸려 있었다.
 친실장은 4녀를 한 번 들어서 어림짐작해보고 옷을 고른다.
 옷은 크기별로 잘 나눠져 있어서 4녀에게 맞는 옷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을 뒤적이다가 4녀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았다.
 찢어진 데도 없고, 구멍도 없다.
 앞치마도 확실히 달려있고, 리본도 있다. 
 한 번 빨아서 확실히 말린듯 기름에 쩐 흔적도 없고, 굉장히 깨끗하다.
 이만하면 충분히 쓸 수 있으리라.
 4녀도 마음에 드는듯 연신 테찌테찌거렸다.

 [이 옷은 얼마인데스우?]

 [콘페이토 10개인데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 먼저 덱- 하는 멍청한 소리를 뱉었고, 4녀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듯 친실장과 옷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콘페이토 10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다.
 친실장은 내심 1~2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다.

 콘페이토 10개라니.
 아까 밥알 20묶음이 콘페이토 1개라고 했는데, 그럼 밥알 200묶음이다.
 친실장은 사실 200까지 세지도 못했지만, 엄청난 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밥알 1묶음 정도면 자실장의 한끼 분량. 100개면 하루에 세끼를 먹이고 한 달을 살게 할 수 있다.
 200개면 두 달이다.

 그런데 자실장 옷이 이렇게 비싸다고?
 친실장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장석의 옷이란 건 태어나면서 한 벌 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어느 자실장이든 최소 한 벌의 옷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자실장 하나만 잡으면 옷 한 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자실장 하나. 사실 하나도 아니고 옷 하나가 콘페이토 10개의 가치가 있다고?
 제법 들실장 생활을 오래해 온 친실장의 가치관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친실장의 생각을 짐작한듯 점원 실장석이 말했다.
 이미 주인 실장석은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한껏 열변을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데...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스. 왜 이렇게 비싸냐고 생각하는데스?
  옷의 상태를 보는데스. 그렇게 깔끔한 옷은 아무 들실장의 자를 잡는다고 생기는게 아닌데스]

 점원의 말에 친실장이 다시 옷을 살펴보니 과연 그렇다.
 옷은 얼룩 하나 없이 굉장히 깨끗하다. 지나칠 정도로.
 친실장은 머릿 속으로 다른 자들의 옷을 떠올려본다. 
 나의 자들은 이렇게 깨끗한 옷이 있었는가.....?

 항상 자신을 따라서 먹이를 챙기느라 여기저기 옷이 찢어진 장녀.
 동생들을 돌보느라 얼룩덜룩 침과 체액이 묻은 차녀.
 항상 골판지 하우스의 청소를 하느라 온몸에 먼지와 기름때가 진 3녀.
 개구쟁이라서 이리저리 흙먼지가 묻은 5녀...
 ....


 그런 더러움은 단순히 옷을 물에 빤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설사 지워진다고 하더라도 이리저리 옷이 찢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옷은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다.
 찢어진 곳은 물론 얼룩도 하나 없다.


 [데에... 그럼... 이건...?]

 [당연히 닌겐상의 옷인데스.]


 역시 그랬다.
 실장석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질긴 천.
 때도 쉽게 빠지는 특수한 재질.
 역시 이 옷은 닌겐상이 만든 옷이었던 것이다.


 [데, 데에.....]

 친실장은 상황을 짐작했지만, 깨끗한 옷을 본 4녀는 그저 테찌테찌거리며 옷에 얼굴을 부빌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4녀를 야멸차게 밀어내며 점원은 말한다.


 [보아하니 별로 콘페이토가 없는 데스. 보통의 실장석 옷은 저기 입구 앞에나 보는데스]

 점원은 4녀를 밀어내면서 지금까지의 옷을 다시 나뭇가지에 끼워 매대에 건다.
 4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테에? 테찌! 거리지만, 이내 상황을 짐작하고 귀가 축 늘어진다.
 친실장은 가슴 속에서 아까 전과는 다른 의미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테에... 이게 뭐인테찌....]

 [.....데.....]


 4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말은 안 했지만, 친실장도 같은 마음이다.

 입구에 쌓여진 옷.
 양은 많았지만, 질은 너무나도 형편없다.

 앞치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거기에다 구멍이 초록색 옷부분보다 많은 옷.
 간신히 앞치마는 반쯤 남아있고, 옷도 형체는 갖추고 있지만 목부분부터 검은 얼룩이 치마 아래까지 늘어진 옷.
 구멍이 몇 개 뚫렸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형태지만 전신이 검은 얼룩으로 물들어 처음의 초록색은 아예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옷.
 초록색을 갖추고 있지만, 가슴 아래로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옷.
 ......



 [이건... 얼마인 데스...우?]

 [콘페이토 하나인데스]

 [데, 데에.... 이런... 걸레가... 너무 비싼데스우...]

 [싫으면 나가면 되는 데스. 데프프프]


 입구 옆에 있는 매대의 점원은 아예 친실장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싫으면 그냥 가라는 태도다.
 아까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태도지만 뭐라고 할 여지도 없다.
 친실장도 본능적으로 여기가 마지막인 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찾는다.
 아까 전의 실장석 옷을 찾는 것 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옷을 찾는다.
 그러나 그러는 친실장은 그녀 혼자 만이 아니다.
 언뜻 봐도 열이 넘는 성체실장이 자실장의 옷을 뒤지는 것이다.


 [데! 데에에엣! 찾은 데스!]

 옆의 성체실장이 옷을 하나 찾는다.
 앞치마는 다 뜯겨나갔고, 배 부분에 큰 구멍이 보이는 옷이지만 어쨌든 형태는 갖추고 있다.
 그리고 점원에게 콘페이토 하나를 내고 희희낙락하며 가게 밖을 나간다.

 그걸 본 친실장은 마음이 급해진다.


 (나도 찾는데스! 나도 찾을 수 있는데스!)


 [데에에에에! 나도 찾은데스! 이걸 사는데스!]

 [데엣! 이 정도면 만족하는데스! 이걸로 하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데에에에! 와타치 이걸로 하는데스!]


 (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찾을 수 있는데스!)



 그러나 친실장은 찾을 수 없었다.
 사실 찾기는 했지만, 너무도 초라하고 삭아버린 옷이었다.
 그나마 가장 괜찮은 옷을 4녀에게 보여줬지만, 4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친실장도 화내지 않았다.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앞치마도 없고, 큰 구멍이 앞뒤로 크게 뚫렸으며, 검은 얼룩이 목부터 배까지 흘러나온 것이었으니까.



 [시간이 다 된 데스. 너와 너. 나가는데스.]


 그리고 그렇게 친실장과 4녀는 옷가게에서 쫓겨났다.



옷가게에서 쫓겨난 모녀는 멍하니 가게 앞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미 옆에서는 다음 줄의 입장이 시작되고 있다.
 대부분이 자신의 자를 데려온 친실장들. 각자의 콘페이토를 손에 들고, 무슨 옷을 살지 데스데스 테치테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마, 와타치 이번에는 프리프리한 사육실장 옷을 살 수 있는테찌?]

 [뎃슨~♬ 물론인데스. 자매들이 만들어준 콘페이토가 많으니 충분한뎃스~]

 [마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테찌이이이이이~!!!]



 [7녀쨩. 더이상 오마에는 독라가 아닌데스! 와타치가 옷을 사주는데스!]

 [테에에에에에!!! 마마!! 정말 고마운 테찌이이이이이!!!]



 [생각보다 야채가 많이 팔린뎃슨~♪ 자의 옷을 사서 돌아갈 수 있는 데스우웅~♥]



 그러나 그런 대화는 쫓겨난 모녀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가는 데스.]

 [테흑! 테흑.... 테에에에에엥.....]

 [......그만 우는데스]

 [테, 테에.... 테... 테흑! ....테,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그만 울라고 하는 데스.....]

 [테... 테에에엥... 마마... 와타치도... 옷을 가지고 싶었던테찌이....]

 [........]

 [더 이상 독라는 싫은 테치이이이!! 왜 와타치만 독라인 테찌? 왜?! 왜! 와타치만... 장녀오네챠도... 차녀언니도... 5녀도... 독라가 아닌테치...]

 [........]

 [근데 왜 와타치가 독라인테치? 와타치는 잘못한건 아무것도 없는테치이이이이!!! 마마의 말대로 좋은 자로 있었던 테치이이이!! 근데 왜 와타치만 독라인테치?]

 [...그만하는데스]

 [와타치만.. 와타치만 독라인테치이이이!!! 오네챠도 동생쨩도 와타치를 불쌍히여기는테찌이! 와타치도.. 와타치도 옷을 사주는테찌이!!!]

 [그만하라고 말하는데스!!!]


 친실장은 결국 주먹으로 4녀의 얼굴을 때린다.


 퍽!!

 퍽! 퍽!! 퍼퍽!!


 [데겟! 테, 테츄보오오! 테아챳!! 아픈 테치이이이!!]

 [그만! 그만하는 데스우우우웃!!!]

 [.....마마....]


 맞은 4녀는 울지 않지만, 오히려 때린 친실장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꽉 쥔 주먹에는 4녀의 피인지, 친실장의 피인지. 알 수 없는 적록색 체액이 흐르고 있다.


 [......이만 가는데스.]



 모녀는 옷가게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아무런 목적지도 없는 발걸음.
 모녀는 터벅터벅 챠박챠박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눈물을 훔치는 친실장도. 맞아 부어오른 얼굴을 문지르는 자실장도. 아무런 말이 없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뭘 사야겠다는 마음도 사라졌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아프니까 움직일 뿐이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서성이던 모녀가 두번째 집 앞에 몰려선 대규모 인파에 휩쓸린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너! 자를 팔려고 온 데스? 그럼 빨리 줄 서는데스! 지금 물건이 많이 모자란데스! 적당한 때에 잘 온 데스~♪]

 [데, 데에?]

 [빨리 들어오는뎃슨~ 비키는데스!! 귀중한 물건을 가져온 분인데스우!]


 인파를 헤쳐나가던 모녀를 어느 성체실장이 갑자기 튀어나와 모녀를 두번째 출산실로 끌어당겼다.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모녀는 당황한 채로 데- 하는 멍청한 소리만 남긴채 출산실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대답할 여지도 없었다.



 [오네챠! 여기 새로운 물건이 온 데스!!]


 갑작스럽게 모녀를 출산실로 끌어당긴 성체실장은 다른 성체실장에게 모녀를 넘겨주고 다시 황급히 출산실 밖으로 빠져나간다.
 아까 전부터 너무 빠른 전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모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다.
 4녀는 테에.. 테... 하는 얼빠진 소리만 내뱉을 뿐이고, 친실장은 그래도 어떻게든 사태를 파악하려 주위를 둘러보지만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잠시 주변을 둘러볼 새도 주지 않고, 방금 끌고 온 성체실장과는 다른 성체실장이 말을 건다.


 [잘 온 뎃스웅~♥ 마침 물건이 떨어진 상태라 급했던 데스.]

 [데.... 데에? 와타치는 갑자기 끌려와서....]

 [데프프프프. 역시 많이 대비하는 가을은 바쁜데스. 차라리 굶는 겨울이 편한데스... 뎃! 아무런 뜻도 아닌데스♡ 이쪽으로 오는 데스.]

 [데... 와타치들은....]


 무어라고 말하고 싶었던 친실장이지만, 앞서 길을 안내하는 성체실장은 그러한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지나 모녀 앞에 나타난 것은.
 흔히 실장석들이 출산실로 사용되는 하얀색 둥근 수조(화변기)였다.

 그러나 그 둥근 수조는 친실장이 자들을 출산했던.
 친실장의 마마가 친실장과 그 자매를 세상에 내보냈던.
 마마의 마마의 마마가 사용했던.

 그런 숭고하면서도 성스러운 모양이 아니었다.
 적당한 수분으로 자실장의 점액을 벗겨내고, 구더기쨩의 껍질을 벗겨내던 성소가 아니었다.
 공원의 모든 수분이 사라진 여름에도 목을 축이게 해주던 우물을 만들어 주던 축복받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피에 얼룩진 구더기와 자실장의 점액과 살점과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나의 도살장이었다.




 [테에에에에!! 마마아아아앗!!!!!!!!!!]


 쩌어어어억!


 4녀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친실장은 출산한지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출산실(화변기)은 피와 비명으로 둘을 반겨줬다.
 둘을 반겨주는 것은 지독한 괴성과 각각의 얼굴을 흠뻑 적셔주는 어떤 자실장의 따뜻한 혈액이었다.



 [테....]

 [데, 데.... 뎃?]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녀 앞에서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잡은 자실장 고기인뎃슨~♥ 고기는 역시 따끈따끈할때 먹어야 제맛인데스! 자! 특별할인가로 모시는데스~☆]



모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자실장과 성체실장의 머리통, 몸통, 다리, 팔, 내장이 사방에 널려 있다.
 비릿한 피냄새와 역겨운 똥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한다.
 이쪽을 보면 축축한 녹색 배설물이 그득히 쌓여있고, 저쪽을 보면 붉은 피가 아직도 더운 김을 내뿜으며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땅바닥은 그 두가지 색깔이 섞여 질척질척하다.
 바닥의 하얀색 타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와 녹색 배설물이 널려있다. 
 하얀색이었을 벽면 역시 진액이 주르르 흘러내려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가 없다.

 간혹 다른 색깔로 보이는 것은 피부조각과 내장조각이다.
 약간 밝은 색깔에 연한 연둣빛깔이 언뜻 보이는 것이 아마 내장조각이고, 연한 갈색이 찢겨나간 피부조각일 것이다.
 내장과 피부조각에서 흘러나온 진액은 군데군데 제법 큰 물줄기를 만들어 다른 바닥으로 퍼져나간다.
 보글보글 거품이 일고, 아직 식지 않은듯 더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거기에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테챠아아아아아!!!! 아픈테치!! 아픈테치!! 그만하는테치!!! 와타치의 배가..!! 배가....! 테테테테테?! 찢어, 찢... 테갸보오오...ㅇ.....]

 [데갸아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자가!!! 용서하지 않는... 데갸보웁!!! 덱!! 그르르...]

 [마마!! 마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더주는데스우!! 저 자를 살찌우느라 엄청 고생한데스우! 콘페이토를 하나 더주는 데슷!!]

 [눈이! 눈이 보이지 않는 테챠아아!! 테, 테테?? 무, 무엇테치? 그만하는테치!! 와타치의 팔을 자르지 마는 테체아아아!!!]

 [데에! 이 팔은 중간에서 잘린 데스... 좀 깎아주면 좋은 데스웅~★]


 잠깐의 쉬는 시간도 없이 울려퍼지는 비명소리와 역시 끊이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더운 피.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녹색과 붉은색, 핑크색의 물줄기.
 친실장을 찾는 소리, 자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소리, 자를 팔아 콘페이토를 받아내는 친실장의 외침, 방금 뜯어내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팔다리를 두고 흥정하는 소리...

 모든 것이 어우러진 이곳은 실장석 시장의 명물.
 2번째 출산실, 실장석 정육점이다.  





 [데갸아아아아!!! 이 분충은 더럽게 질긴데스!! 왜 이렇게 안 뜯어지는 데스우우~!!!]

 [테챠!! 테챠아아아!! 그만!! 그만하는 테치이이~~~!!! 목이 찢어지는 테치!!]


 출산실의 한가운데, 하얀색 둥근 수조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얀색 둥근 수조에 반쯤 걸터앉은 거대한 성체실장이 두손으로 중실장 하나를 움켜쥐고 있다.
 오른손은 중실장의 머리에,
 왼손은 중실장의 몸통을 꽉 쥐고 있다.
 그리고 머리를 뽑아내기 위해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있는 힘껏 당긴다.


 [데스우우우우우우우웃!!! 하아... 하아... 제법인데스. 이렇게 와타시를 고생시킨 놈은 드문데스. 넌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뎃승~★]

 [그만하는테치! 그만하는테치! 제발 그만하는테치이이이!!!]

 [여기서 그만두면 와타시의 체면이 서지 않는 데스!! 이제 진짜 와타시의 힘을 보여주는 데스우우!!!]



 성체실장은 툭 튀어나온 배를 몇번 불룩거리며 스하~ 스하~ 심호흡을 한다.
 깊게 들이마시고, 깊게 내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두손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뎃샤아아아아아아아아앗~~~~~!!!!]

 [테챠?! 아, 안되는 테챠아아아아~~~~~ 테게보옷!!!!]


 찌이이이익....

 뚜두두둑!!! 


 중실장의 목부분에 검은색 금이 비치는듯하더니 이내 섬뜩한 소리와 함께 금이 커지며 목이 떨어져나간다.
 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척추뼈가 드르륵하며 딸려나간다.
 마지막으로 척추뼈와 함께 붉은색 피와 초록색 똥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테.....치......... 마...마마........ 왜 나를 판 테치....]


 목과 몸통이 분리된 중실장은 무어라 뻐끔뻐끔거리더니 이내 숨이 끊어진다.








 [후우... 후우... 더럽게 질긴 놈이었던데스... 아? 새로 오신 손님인 데스우? 기다리게한 데스.]


 한참이나 헐떡거리던 성체실장이 실장 모녀를 이제야 눈치챈듯 말을 걸어온다.


 [잠깐만 기다리는데스. 곧 정리하는데스.]


 성체실장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한 실장 모녀를 뒤에 두고, 능숙한 솜씨로 중실장 시체를 정리한다.
 찢어낸 머리통에서 척추뼈를 다시 뽑아내어 뒤쪽 구석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머리통은 왼편의 골판지 상자 위에 올려둔다.
 먼저 온 친구들의 머리통이 새친구를 반겨준다.

 그리고 몸통은 피를 빼기 위해 벽면에서부터 내려오는 갈고리에 푸욱 꿰어둔다.
 아직 꿈틀거리는 몸통에서는 피와 녹색 분비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 몸통 역시 먼저 온 친구들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성체실장은 이전의 몸통들과 헷갈리지 않게 새로운 손님을 맨끝으로 치워둔다.

 마지막으로 매달린 몸통에서 팔다리를 찢어내면 끝이다.
 팔다리는 먹기가 쉬워 찾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즉석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린 뎃승~ 옆의 분충을 팔러 온 데스?]

 [데........]

 [데~ 신선한 고기인뎃승~♥ 좀 마른 것 같지만, 지금 자실장이 많이 부족한데스. 비싸게 쳐주는데스우. 콘페이토 2개면 어떤 데스?]

 [데에...? 데, 데엣? 뭐, 뭐라고 말한데스?]

 [데프프프 욕심이 많은 데스~☆ 하지만 오늘은 물건이 부족하니 내가 양보하는데스. 3개 주는 데스]

 [데... 데데데데....]


 친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황급히 4녀를 감싸안는다.
 4녀는 눈앞의 끔찍한 광경에 눈을 감지도 못한채 입만 뻐끔뻐끔거리고 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에 놀라 비명과 눈물은커녕 빵콘조차도 하지 못한다. 
 자실장의 작은 뇌가 위석의 충격을 막기 위해 전원을 꺼버린 것이다.


 [데데데데... 이.. 이 아이는 파는게 아닌데스! 와타시들은 잘못 들어온데스! 제발 이대로 보내주는데스우우우!!!]


 겨우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 4녀를 끌어안은 채로 부르짖는다.
 사실 친실장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동족식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자들은 물론이고, 친실장이 친실장의 친실장 밑에서 자랄 때부터 동족식은 해서는 안되는 분충의 짓이라고 교육받았다.
 때문에 친실장도 주변의 소문과 간간히 발견되는 뜯어먹힌 실장석 시체만을 봤을 뿐, 이렇게 본격적이고 적나라한 동족식의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광경은 상상보다 몇십 배는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어서 친실장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4녀의 존재때문에 억지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상한 실장석에게 잡혀온 데스!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던 데스우우!!! 제발 보내주는 데스!!]


 친실장은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내 눈앞의 성체실장에게 사정한다.
 힘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눈앞에서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기가 꺾여버린 것도 있었지만, 그전에 저 성체실장은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는 족히 큰 것 같았다.
 거기에다 몸통은 적게 잡아도 자신의 두배는 될 것 같다. 당장 중실장 하나를 말그대로 뜯어내버린 저 굵은 팔뚝만해도 거의 자신의 다리굵기와 같은 수준이다.
 그런 친실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벌벌 떨어가며 눈물과 함께 비는 것뿐이었다.


 [데... 처음오신 손님인 것 같은 데스우~~ 놀란데스? 무서워할 필요없는 뎃승~ 와타시는 팔지 않은 새끼는 절대 손대지 않는 데스우~~]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침과 눈물, 대변을 흘려가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친실장의 귀에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과는 달리 아주 상냥했다.
 성체실장은 괴성을 지르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목소리로 친실장과 4녀에게 다가왔다.
 뒷편에 떨어져있던 초록색 천조각에 양손을 쓱쓱 문질러 닦은 성체실장은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친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님은 자실장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으신 데스?]

 [그, 그, 그런데스우...]

 [그럴줄 알았던데스. 여기는 자실장 고기... 데... 친실장과 중실장 고기도 있는데스. 여하튼 고기를 파는 곳인데스. 처음 온 손님들은 모두 놀라는데스. 하지만 일단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장담하는뎃스웅♥]


 성체실장은 만면에 미소를 띄며 근처 바닥에서 방금 뜯어낸 중실장의 팔조각을 하나 줍는다.
 한쪽손으로 무게를 가늠해보더니 몇 번 휘휘 휘둘러 주르르 흘러내리는 피를 좀 털어낸다.
 그리고는 그 팔조각을 한편에 마련된 골판지 상자에서 나뭇잎을 꺼내 정성스럽게 포장한다.


 [여기 받는데스. 시식용으로 하나 주는데스~ 공짜이니 걱정하지마는데스우]


 성체실장은 나뭇잎으로 감싼 팔조각을 친실장에게 내민다.
 그러나 친실장은 여전히 두려운 얼굴로 입만 뻐끔뻐끔할뿐 감히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양할 필요없는데스. 가져가서 맛보는데스. 그리고 맛있으면 다시 찾아오는데스우~~]


 성체실장은 억지로 친실장의 팔을 펴고 고기를 안긴다.


 [7녀쨩! 이분들 밖으로 모시고가는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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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충 두마리 내보낸데스]

 [수고한데스 7녀]

 [데... 그런데 왜 또 아까운 고기는 준 데스우? 장녀 오네챠는 손이 너무 큰 데스. 아까운데스...]

 [데프프프프 7녀쨩은 멀리 내다볼줄 모르는데스.내가 아까운 고기를 준 것은 미끼인뎃승~]

 [미끼데스?]

 [그런데스우. 아까 전의 친실장은 동족식을 해보지 못한 풋내기였던데스. 실장고기 맛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데스. 그런 녀석에게 고기맛을 한 번 보여주면...]


 성체실장은 양팔을 벌리고 주변의 피투성이 벽면을 휘 둘러본다.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아오게 되있는데스우~★]

 [데에.....]

 [7녀쨩도 당장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는 걸 좀 배우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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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친절한 들실장




 "데스우우웃!! 데스우우우우!!!! 어디간데스!!! 대답해보는데스우우우우!!!!"


 저녁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는 공원을 한마리 성체실장이 갈팡질팡 뛰어다닌다.
 프리프리한 레이스가 아름답게 수놓여진 분홍색 실장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색 핸드백을 메고 있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턱받이는 아무런 오물도 묻어있지 않다. 공원에서 사는 들실장이 보면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호화스러운 복장이지만, 정작 그 주인은 그것을 뽐낼 여유도 생각도 없다.


 "대답하는데스우우!!! 코토리쨩!! 우지쨔아아앙!!! 대답해보는데스우우우!!!!"


 한 눈에 봐도 사육실장임을 알 수 있는 이 실장석의 이름은 미도리.
 이 근처의 주택가에서 상냥한 주인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팔자 좋은 실장석이다.

 친절하고 상냥한 주인님, 맛있고 풍부한 밥,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실장석이라면 거의 허락받지 못하면 자신의 아이까지. 부족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행복감에 휩싸여 살고 있던 미도리는 지금 때아닌 불행에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코토리쨔아아앙!!! 우지쨔아아앙!! 어디있는데스!!"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와타시가 나빴던데스!! 주인님의 말씀대로 집에 있었어야하는데스우..."

 "코토리쨩.... 어디간데스.... 우지쨩... 보고싶은데스..."


 발단은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햇살 좋은 봄날, 거실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던 미도리를 깨운 것은 장녀인 코토리쨩이었다.


 "마마! 밖에 나가보는레치!"

 "데에? 무슨 소리를 하는데스? 밖은 위험한데스우. 주인님과 함께가 아니라면 안되는데스...."

 "레챠! 하지만 바깥을 보는레치!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레치! 와타치 우지쨩이랑 조금만 놀고 싶은레치!"

 "데.... 안되는데수.... 주인님과 아니라면...."

 "레에에에에엥!!! 레에에에엥!!!! 나가고 싶은레츄!! 나가고 싶은레치!! 레에에엥!! 마마아아!!!"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미도리의 말에 그대로 코토리는 바닥에 누워 울음을 터뜨린다.


 "데에에에... 코토리쨩... 이러면 다-메 데수... 바깥은 위험한데스우..."

 "레에에엥!! 레에에엥!! 그런거 모르는레치! 밖에 나가고 싶은레츄! 밖에! 밖에! 밖에! 밖에!"

 "데스우... 마마의 말을 들어야하는데스....."

 "마마! 구더기쨩도 나가고 싶은레후!"

 "데에... 우지쨩...."


 바닥에서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코토리 옆에 막내인 우지쨩도 와서 꼬리를 빼타빼타 흔들며 말한다.


 "햇님이 너무 좋은제이! 구더기 바깥에서 햇볕 쬐고 싶은레프!!"

 "레칫! 마마! 보는레치! 구더기쨩도 바깥에 나가고 싶어하는레치! 분명 바깥 구경은 즐거울 것인레츙!"

 "레후! 마마! 오네챠 말이 맞는레후! 구더기도 바깥 구경하고 싶은 제이!"

 "마마!! 마마!! 마마아아아아!!"

 "마마레후! 나가는레후!! 구더기 소원인레프!"

 "데에에에에....."



 미도리는 당황한다.

 사실 이 아이들은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낳은 아이들이다.
 애완용 실장석 출신인 미도리는 선천적으로 아이를 잘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실장석의 무분별한 아이 낳기를 막기 위해서 왠만한 실장샵에서는 쉽게 임신을 하지 않도록 처리를 가한다. 고객들도 실장석이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고, 실장샵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공급루트가 생기는 것은 그다지 반길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도리 역시 그런 브리더에게 의해서 분대 축소 수술을 받고 출하되었다.
 뱃속의 분대에서 아이를 기르는 실장석의 특성상, 이렇게 분대 축소 수술을 받게 되면 여간해서는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 기껏해서 생겨봤자 좁은 분대때문에 얼마 가지 못해 유산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도리는 너무나 자신의 아이들을 갈망했고, 결국 세번째만에 엄지실장 하나와 구더기 실장 하나를 놓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낳은 아이들이니 만큼 미도리가 아끼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모든 수발을 다 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실장석인 미도리로서는 힘든 요구도 거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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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미도리는 코토리의 억지를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불안불안했지만, 즐거워하는 두 아이를 보자 그런 마음도 씻은듯이 사라져버렸다.
 코토리는 동생인 우지쨩을 안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구경을 한다.


 "레치! 우지쨩! 보는레치! 꽃인레치!!"

 "레에? 저게 꽃인 레후? 구더기 처음보는레후! 구더기 꽃은 처음보는제이!"

 "레뿌뿌뿌뿌 구더기쨩은 아직 어린렛치이~ 꽃을 처음보는 구더기쨩을 위해 오네챠가 가까이서 구경시켜주는 레튠~★"

 "제이! 구더기 즐거운레프!"


 세 마리의 실장석 가족은 공원에서 여유로운 봄날을 만끽한다.
 미도리도 간만에 하는 공원구경이지만, 아이들의 걱정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


 "데에! 코토리쨩! 멀리 나가면 안되는데스우!"

 "알고있는레츄! 마마는 너무 걱정이 많은레치!!"

 "데... 그래도... 조심하는데스우..."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늘 조마조마하는 미도리.
 아이들이 항상 보이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뒤를 따라간다.


 "레츄! 나비인레치!!"

 "나비레후?"

 "오네챠도 그림책에서만 본 레치! 쫓아가보는레치!"

 "레후! 즐거울것같은제이!"

 "오네챠에게 맡겨주는레츄!"


 그러던중 하얀 나비를 발견한 코토리가 갑자기 산책로를 벗어나서 덤불 속으로 뛰어든다.
 뒤따라오던 미도리는 그런 코토리의 돌발행동을 감지하지 못하고, 산책로를 따라 지나친다.
 두 아이와 친실장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미도리는 한참이나 걸었는데도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다.
 조금 더 길을 따라 뛰어봐도 흔적이 전혀 없자, 덱!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황급히 길을 따라 되돌아간다.
 그래도 없다.

 다시 한 번 길을 따라 가본다.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 미도리는 거의 반쯤 미쳐 공원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한다.


 "데에에에엥!!! 코토리이이이이!!! 우지쨔아아아앙!!!!! 데에에에에엥!!"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토테토테 뛰어다니는 미도리.

 좋은 아이로 집보기를 하고 있으라는 주인님의 말씀대로 얌전히 있었으면 좋았을 걸...
 미도리는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난 것이다. 지금 아무리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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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이제 어둠이 짙게 깔려 제대로 공원의 길바닥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도리는 덜컥 겁이 난다.


 "데... 어쩌면 좋은데스...."


 다시 한 번 길을 따라 찾아볼까하지만 자신이 없다.


 "데스... 데스... 할 수 없는데스... 집에 돌아가서... 주인님께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데스우...."


 그렇게 발길을 돌리려는 미도리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너, 뭐하는데스?"

 "데, 데덱!!"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미도리는 놀라 철푸덕 땅에 주저앉고 만다.
 놀란 얼굴을 들어보니 실장석이다.


 ".......너.... 사육실장인데스우? 여기서 뭐하는데스?"


 침착하게 보니 상대는 들실장인 것 같다.
 낯선 동족의 등장에 미도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주섬주섬 대답한다.


 "데에.... 와타시의 아이들을 찾고 있는데....스...."

 "데? 아이데스? 잃어버린데스?"

 "데에에엥... 그런데스우... 와타시의 아이들... 데에에엥...."

 "......혹시 엄지실장과 구더기인데스?"

 ".....데, 덱?! 그, 그런데스우!! 맞는데스!! 코토리와 우지쨩이라하는데스!! 혹시 본 데스?! 어디서 본 데스?! 가르쳐주는데스!! 가르쳐주시는데스우우!!!"

 "치, 침착하는데스. 이리로 오는 데스. 와타시가 안내해주는데스."


 미도리는 두 말 않고 뒤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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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인데스. 다행인데스. 아이들을 찾은데스.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데스.'


 짧은 다리를 놀려 바삐 걸으면서 미도리는 연신 주인님과 실장석의 신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안내해주는 친절한 동족에게도.


 '데... 들실장은 무서운 존재라고 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이도 있는데스... 고마운데스...'


 미도리는 그런 실장석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말을 건다.


 "저기... 고마운데스... 아이들을 계속해서 못찾았던데스. 다시 한 번 고마워요데스."

 "......그럴 거 없는데스."

 "데에... 아이들은 어디있는데스? 다친데는 없는데스?"

 "....와타시의 언니쨩이 돌봐주고 있을 것인데스. 아까 전에 데려가는 것을 본 데스."

 "데... 그것 참 고마운데스..."


 잠시 대화가 끊긴다. 


 "언니쨩과 뭐하며 지내는데스?"


 실장석은 성체실장이 되면 왠만하면 혼자 살아간다.
 아무리 친한 자매라고 해도 같이 사는 경우는 드문데, 이 실장석은 언니와 함께 지내는 것 같다.
 그것이 신기해서 미도리는 물었다.


 "언니쨩과 나는 시장의 상점을 하는데스."

 "데....? 시장데스? 상점데스?"

 "......그러고보니 넌 사육실장인데스... 그러면 모를 수도 있는데스우. 여기 이 공원에서는 정해진 날의 밤이면 시장을 여는데스."

 "데에에에... 닌겐사마의... 그런 가게 같은 것인데스?"

 "그런데스. 닌겐과 같은데스. 거기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파는데스. 와타시는 언니와 거기서 물건을 내다파는 일을 하는데스."

 "데.... 대단한데스우.... 와타시는 상상도 못해본데스."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는데스..."

 "그런데 무엇을 파는데스?"

 "데...?"

 "데스우.... 물건을... 내다 판다고 하길래... 물어본 것인데스..."

 "데에.......... 그것보다 서두르는데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스."

 "데, 뎃! 아, 알겠는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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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도리가 도착한 곳은 공원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공중화장실이었다.
 가로등의 불빛도 제대로 비춰지지 않아 어두컴컴한 곳이어서 미도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데... 아이들이 정말 여기에 있는데스?"

 "그런데스... 와타시가 먼저 들어가서 언니쨩에게 말하는데스. 따라 들어오는데스."

 "알겠는데스."

 "자, 와타시의 손을 잡는데스. 어두워서 넘어지면 큰일인데스."

 "데에.. 고마운데스우..."


 미도리는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이끄는 실장석에게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한다.
 실장석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여자화장실이라 쓰인 곳이 나온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지독한 악취가 미도리의 코를 때린다.


 "데기- 고약한 냄새인데스우...."

 "언니쨩? 언니쨩? 언니쨩 있는데스?"


 하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쿵쿵거리는 소음과 무언가 어린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같은 것만 들릴 뿐이다.


 "데엣! 저건 코토리의....?"

 "잠깐 기다리는데스!"

 "데, 데에? 데, 데, 덱!! 저기 실장쨩!! 손을 너무 꽉잡은데스!! 이타이한데스!! 조금 살살 잡는데스!"


 그러나 들실장은 손에 더욱더 힘을 쥐고 미도리를 끌어당긴다.
 들실장은 두번째 변기칸 문을 연다.
 거기에는 미도리가 그렇게나 찾던 코토리쨩과 우지쨩이 있었다.






 "...................................데..........스...........우?"


 갑작스러운 광경에 미도리는 얼음처럼 얼어버린다.


 "...................................................이게... 뭐인....데스?"


 흔들흔들 몸을 기우뚱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려 미도리는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눈에는 초점이 없다.
 너무나 큰 충격에 뇌가 제대로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차녀가 아닌데스? 왠일인데스?"

 "이 녀석 아까 와타시가 데려온 놈들의 마마라고 하는데스. 방금 잡아온데스."

 "신선한 고기인 뎃스웅~♬ 오늘은 정말 횡재한 날인데스!! 고기가 제발로 세마리나 걸어오다니~♪"

 "이 녀석은 옷도 좋은 걸 입고 있는데스. 이것도 꽤 돈이 될 것인데스."

 "데프프프프프 그것도 그런데스. 그럼 얼른 옷을 벗기고 이쪽으로 밀어넣는데스. 꽤나 뚱뚱한 놈이니 빨리 작업해야 오늘중으로 끝날 것인데스. 3녀!! 4녀!! 이쪽으로 오는데스!!"

 ""오네챠 지금 가는데스!!"




 흔들거리며 서있는 미도리의 뒤에 다른 실장석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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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비

 혼자서 성체실장 서넛은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에다 구더기 갑옷, 못 등으로 무장하여 매우 강력하다.
 주요 업무는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난동을 부리는 분충들을 제압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재력가에게 고용되어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중갑실장

 보스 직속의 친위대로 분류되는 엘리트 병사.
 골판지를 잘라 겹겹히 붙인 갑옷과 방패, 페트병의 목을 잘라 만든 투구 등으로 무장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기는 따로 휴대하지 않으며 장창실장과 2실장1조로 움직인다.
 방패의 앞쪽에 적을 열받게 만드는 음란하고 불쾌한 그림을 그려두는 풍습이 있다.



 장창실장

 자신의 키보다 훨씬 긴 나뭇가지 등의 장병기(長兵器)로 무장한 병사.
 재빠른 움직임이 요구되고 활동량이 많아, 가볍고 질긴 구더기 갑옷과 장창만으로 무장한다.
 보통 중갑실장과 2실장1조로 움직이며 중갑실장 뒤에 숨어 적을 공격한다. 서로 간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둘은 친자매로 구성될 때가 많다.
 두건과 옷을 입지 않고, 뒷머리를 길게 묶어 늘어뜨리는 풍습이 있다.









 실장전차

 거대하게 살찌운 성체실장을 4족보행하도록 만들고 겉을 골판지 따위로 감싼 다음, 그 위에 4~6마리의 자실장을 태운 병기.
 멍청한 자실장을 골라 성체실장까지 길러야하고, 4족보행을 하도록 교육까지 시켜야하며, 자실장 육성비용, 대량의 골판지 등등 수많은 자원이 들기 때문에 만들기 아주 까다롭다.
 하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실장전차가 있는 무리는 그렇지 않은 무리보다 훨씬 높은 군사적 우위에 설 수 있어 대부분의 두목실장들은 실장전차를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위에 탑승하는 자실장 역시 특수하게 교육을 받은 정예이며 주로 투창 등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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