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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 실장훈련소 1~2, Operation Mt.Jissou

 


서기 20XX년. 실장석은 그 불가사의한 번식력으로 대한민국의 공원들을 장악해나갔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게 된 상황. 중앙정부의 누군가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낸다. 훈련시킨 실장석으로 실장석을 상대하자는 것이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실장석 부대. 부대의 효과는 놀라웠다. 인간 구제업자와 동일한 효과를 냈지만,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싸고, 부대 운용도 정부가 직접 운용하기에 구제 사이클도 매우 빨랐다. 사람들은 이 실장석부대에 만족했고, 더 확대운용하기로 결심했다. 

“이 개 시발것들 빨리빨리 안뛰냐!!”
-테에에에에에!!!
-테샤샤샤샤샤샤!!!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들의 소리에 실장석들은 정신없이 뛰었다. 분명 잠들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들은 자신들의 친실장 곁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일어나보니 왠 풀 한포기 없는 공원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저 눈이 까만 인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겁에 질린 자실장들은 일단 시키는대로 뛰었다.

“자, 주목.”

귀에 블루투스형 링갈을 단 교관이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실장석 사냥부대의 일원이 되었다. 여기서 훈련을 마치고 너희들의 임무를 잘 수행하면, 영광스러운 군실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분충기를 보인다면! 그때는 너희를 공원의 얼룩으로 만들어주겠다.”
<테프프프프프, 똥닌겐은 헛소리하지마는데샤!!>
<내 총구나 핥는테스, 테프프프>

몇몇의 자실장들은 비웃으면 투분을 한다. 그런 반응을 짐작했다는듯이 교관은 조교들에게 턱짓을 한다. 조교들은 투분한 자실장들을 골라내 앞으로 끌고온다.

<테프프프프. 오마에도 내 운치를 맞고싶은테치? 얼른 와타시를 내려놓고 도게자를 하는테샤!!!>
<테프프프프프프, 멍청해보이… 갸아아아아아아악!!>

조교들은 이윽고 자실장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한번에 죽이는 것이 아닌, 왼쪽 팔,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 오른쪽 팔 순으로 뽑기 시작한다. 그 장면은 연병장에 모여있는 모든 자실장들이 보고 있다. 몇몇의 자실장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실장들은 팔을 뽑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빵콘을 하였다. 몇몇은 뒤로 도망가려고 하지만 이미 뒤를 지키고 있던 조교에 의해 밟혀 실장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죽여도 아직 충분한 자실장이 남아있다.

“자, 제군들은 봐라. 명령을 어긴 분충은 처형될 것이다. 하지만, 매일 훈련을 잘 통과한다면, 그 상으로 푸드와 콘페이토를 제공할 것이다. 각자 열심히 하도록. 이상.”

교관은 자기 할 말을 끝내고 실장석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려온다. 콘페이토에 환장하는 실장석이지만 분위기가 환호할 분위기가 아니다. 조교들은 발을 구르면서 실장석들을 샤워실로 끌고 간다.

“자, 일단 너네부터 옷 벗고 다들 들어간다. 실시!”
<테에에에에! 옷은 안되는테치!>
<웃기지마는테캬악!>
“반항하는 분충은 처형이다.”

자신의 옷과 머리카락을 중요시하는 실장석답게 반항하는 실장석이 있었지만 곧장 처형되었다. 겁에 질린 자실장들은 모두 실장복을 벗고 들어간다. 샤워실에는 따뜻한 물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테에에에에… 기분좋은테샤!>
<공원에서는 이런 아와아와를 한 적이 없는테스….>
“이새끼들이! 멍때리지말고 얼른 비누로 씻지 못해!”
<테에에에에!!>

생전 처음 맞아보는 따뜻한 물에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듯했으나, 조교의 고함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비누에 몸을 비비는 자실장들이었다. 그렇게 씻은 자실장들을 맞이하는 것은 새파랗게 날이 선 가위였다. 

“자, 너부터 온다.”
<테스스스스스스스!!!!!>

거부할 틈도 없이 뒷머리가 잘려나간다. 뽑혀져 나간 독라급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이 잘려나간 수준이다. 뒷머리가 잘린 자실장은 다음 구역으로 던져지듯 이동한다. 다음 구역에 도착한 자실장은 자신이 입었던 옷과 다른 옷이 입혀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테에?? 옷이 두꺼운테치!>

분명 베이스는 초록색이지만 얼룩무늬에 두꺼운 옷. 그리고 뒤에는 흰 네모가 커다랗게 박혀있다. 어리둥절하지만, 그동안 입었던 꼬질한 옷에 비해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든다. 팬티도 새것이라 뽀송뽀송하다. 왜인지 모르게 새 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다.

<테츄웅~>
“좋아. 너는 앞으로 일칠오 자실장이다. 알겠나?”
<테치? 와타시의 이름인테치?? 와타시 사육실장인테치?>
“아니, 너는 사육실장이 아니다. 너는 사육실장보다 더 대단한 군실장이 될 것이다.”
<테… 군실장테치?>
“그렇다. 사육실장보다 더 강하고, 똑똑하고, 세레브하지. 네가 이 훈련을 극복해낸다면 말이야”
<테… 와타시 노력해서 군실장이 되는테치!>
“좋은 태도다. 일칠오. 나머지 옷을 받고 자리로 들어가도록.”

일칠오라고 불린 자실장은 나머지 물건들을 지급받고 조교의 안내를 받는다. 그 방에는 이미 배치받은 100번대 자실장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일칠오는 비어있는 곳에 자신이 받은 스펀지를 내려놓는다. 따뜻한 물에 씻고 뽀송한 새 옷을 받고 푹신한 스펀지에 누우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그렇게 쉬고 있는 100번대 자실장의 방에 인간 조교와 왠 성체실장이 나타난다.

“일어나서 조용히 해!!!”

인간 조교의 말에 쥐죽은듯이 조용해지는 방. 만족스러운듯이 끄덕이는 조교였다.

“자, 여기 너네의 선배가 있다. 훌륭한 군인실장이지. 앞으로 너희 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다. 조교 앞으로.”
<앞으로데스!>

성체실장은 절도있는 발걸음으로 자실장들 앞에 선다. 

<반가운데스. 와타시는 찰리데스. 이 방의 자실장들은 모두 와타시의 관리를 받는데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하는데스. 이상!>
“자, 앞으로 찰리 조교의 말을 잘 듣도록. 그럼 찰리 조교는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도록.”
<멸! 충!>

우렁찬 경례와 함께 인간 조교를 보내는 실장조교. 인간이 떠나자 한두마리씩 테치거리기 시작한다. 실장조교는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오마에. 지금 왜 소리를 내는데스까>
<테츙? 무서운 똥닌겤!!>

똥닌겐의 똥자가 나오기 무섭게 자실장을 내려치는 찰리실장. 다시 분위기가 싸해진다. 일칠오도 이러한 찰리의 행동에 얼음이 된다. 

<오마에들은 듣는데스. 앞으로 닌겐상들에게 똥닌겐이니, 닌겐노예니 지껄이면 와타시가 먼저 쳐죽이는데스. 알겠데스까?>
<아...알겠는테치!>
<모두 대답 안하는데스까?>
<알겠는테치!>
<대답은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 하는데스. 알겠는데스?>
<옛치!>
<좋은데스. 또 질문있는 자 없는데스?>
<와타시 궁금한 게 있는테치!>

찰리실장은 고개를 돌린다. 일칠오가 손을 들고 찰리실장을 바라본다. 찰리실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는데스.>
<오마에는....>
<와타시를 부를때는 찰리 조교라고 하는데스. 다른 닌겐상들도 조교상이라고 부르면 되는데스.>
<알겠는테치, 찰리 조교는 훈련을 모두 받은테치?>
<그렇데스.>
<많이 힘든테치?>
<그렇데스. 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와타시처럼 세레브해지는데스.>
<알겠는테치. 와타시 해보는테치.>
<오마에, 이름이 무엇인데스?>
<일칠오테치!>
<일칠오데스. 기억해두는데스.>

훈련소의 아침은 구보로 시작한다. 인간 조교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자실장들은 달리기 시작한다. 뒤쳐지는 자실장들은 조교실장들이 커버한다. 물론 드러눕는 분충들은 인간 조교들이 자비없이 밟아버린다. 연병장에 적록색의 얼룩이 늘어날때마자 자실장들은 위석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일칠오는 이를 악물고 달린다. 

구보가 끝나면 아침식사를 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절한 당분으로 지친 실장석을 금세 회복시켜주는 실장푸드다. 이 실장푸드는 어떤 자실장도 투정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물론 콘페이토나 스시, 스테이크를 찾는 자실장이 있으면 그 즉시 얼룩으로 만들어준다. 

1주차동안에는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고 이 생활에 적응시킨다. 그리고 시계보는 법과 왼쪽, 오른쪽 구별법 등, 인간이라면 정말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교육시킨다. 이는 차후 실장석 토벌작전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이해해야 작전대로 움직일 수 있다. 코로리와 네무리, 도로리와 콘페이토도 구별시킨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만든 함정에 자신들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칠오는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다. 

2주차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이다. 실장 제식부터 시작해서 맨손격투, 실장석들은 보검이라고 부르는 대못을 사용한 전투법을 배운다. 일칠오가 받은 보검의 첫 느낌은 차가움이었다. 

“보검 5개식 준비!”
<준비데스!>
“시작!”

앞으로 찌른다. 뒷부분으로 후려친다. 옆으로 흘려낸다. 휘두른다. 찍는다. 다섯개의 동작은 간단하지만 보검으로 할 수 있는 동작의 모든 진수를 담아낸 동작이다. 찰리 조교가 보여준 동작은 절도가 있고 강력했다. 일칠오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마에, 동작에 힘이 없는데스!>
<오마에, 거기서는 그렇게 휘두르면 빈틈이 생기는데스. 최대한 동작을 간결하게 하는데스.>

조교들이 돌아다니면서 동작을 지적해준다. 일칠오는 후들거리는 팔을 겨우 붙들고 다시 자세를 취한다. 

<텟치… 너무 힘든테치…>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테치…>

일칠오는 옆에서 칭얼거리는 일사오를 달래준다. 어느덧 10여일이 지난 지금. 옆 동료들 얼굴정도는 충분히 익었고, 그 중에서는 친한 사이도 생기는 것이다. 일칠오는 일사오, 일육팔, 일구구와 친해진 상태였다. 일사오는 간신히 따라오는 수준이었고, 일육팔은 평균수준, 일칠오와 일구구는 아주 우수한 상태였다. 벌써 인간 조교들 사이에서는 일칠오와 일구구는 1등 수료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을 정도였다. 

<조금만 힘내는테치. 일사오도 잘할 수 있는테치.>
<그런테치. 와타시타치도 도와주는테치.>
<알겠테치. 열심히 하는테치.>

2주차까지는 전투를 위한 기초를 닦았으면 3주차부터는 본격적인 전투훈련이다. 오전에는 2주차때까지 배웠던 체력과 전투 기초를 연습하고 오후에는 실장석의 생활을 배운다. 자실장들은 배우면서 자신들이 왜 인간을 이길 수 없는지를 깨닫는다. 자신들보다 더 자신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인간들이었다. 본인들은 본인이 보는 세계 이외에는 깨닫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 위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씩이지만 인간 전투에 대한 것들도 배운다. 군 통신선이나 도폭선등을 끊은 방법이라든가, 밥에 사보타주하는 방법들을 배운다. 왜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배운다.

전투에서 다쳤을 때, 응급조치 요령도 배운다. 실장석은 간단하다.

<부러진 팔이나 다리는 자르는데스.>
<테치?!>
<뭘 놀라는데스? 오마에들이 잘만 해준다면 잘라서 재생하는 것이 더 빠르게 회복하는데스. 어설프게 안자르면 오히려 이상하게 재생이 되어서 두번 고생하는데스.>



마지막 4주차. 실전 전투훈련이다. 한 공원에서 3일 주야로 있으면서 실장석들을 구제한다. 이때쯤이면 자실장이었던 실장석 대부분은 중실장으로 성장해있다. 전투기술까지 합치면 성체실장도 1:1로는 충분히 상대해볼만하다.

<일칠오, 오마에가 리더인데스. 배운대로만 하면 무리가 없는데스.>
<꼭 승리하는테스.>

일칠오는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일구구를 먼저 보내 정찰을 시킨다. 일구구의 정찰결과, 이 공원 내에는 보스 실장이 있는 모양이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논의 끝에 보스실장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정리하기로 한다. 작전시간은 모두가 골판지 하우스에 들어가있는 밤에 하기로 한다.

<와타시는 마마가 최고로 좋은텟치!>
<마마도 우리 자들이 최고로 좋은데스요?>

어느 공원의 밤, 골판지 하우스에는 친자실장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친실장은 이번에 독립한 실장석으로 반드시 자신의 자들을 이 공원에 가득가득 채우겠다고 마음 먹었기에 정말 양껏 자를 낳았다. 그래서 자실장만 5마리, 엄지 3마리, 구더기 4마리라는 대가족이 되었다. 가을이 아니였기에 엄지와 구더기도 운치굴에 보내지 않고 정성스럽게 키운다. 

-톡톡
<마마, 밖에서 뭔가 두들기는텟치.>
<자들은 누워있는데스. 마마가 보고오는데스요.>

친실장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밖에 누굳...!>

일육팔은 훈련받은대로, 보검으로 실장석의 목을 노린다. 한번에 위석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확실한 목을 찔러 일단 성대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제대로 박힌 보검으로 인해 친실장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거...거엌…. 걱….>
<미안한테스. 와타시적 감정은 없는테스.>

일육팔은 친실장을 제치고 골판지 하우스로 들어간다. 자실장들은 놀란 눈으로 침입자를 바라본다. 일육팔은 재빨리 달려들어 장녀로 추정되는 제일 큰 자를 노린다. 장녀는 도망치려고 하지만 누워있는 자세에서 바로 일어나기는 실장석으로서는 힘든 것이다. 일육팔은 장녀의 목을 잡고 180도로 돌려버린다.

-우드득
<케….케…>
<자실장은 보검을 쓸 필요도 없는테스.>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자실장들은 도망치려고 하지만 지옥훈련으로 단련된 중실장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자들도, 엄지도, 구더기도 사이좋게 목이 돌아가서 버둥댄다. 그렇게 하우스를 제압한 일육팔은 다시 친실장에게 다가간다. 친실장의 눈에 적록의 눈물이 쏟아진다. 눈으로 마치 ‘왜 자신과 사랑스러운 자들을 죽이는지.’ 묻는 것 같았다. 일육팔은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오마에들은 적당히 했어야 했는테스. 알아서 공원에서 자를 적당히 깠어야 하는테스. 그렇지 못했기에, 오늘 다 죽는테스.>
<거…. 거어어어어어!!!!!>

친실장은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려들지만 일육팔은 슬쩍 옆으로 물러난다. 균형을 잃은 친실장은 다시 엎어지고만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일육팔은 뒤를 잡고 눌러버린다. 일육팔은 또다른 보검을 꺼내어 머리를 겨눈다.

<한번에 죽기를 바라는테스.>
<거---->

다행이도 위석이 머리에 있던터라 친실장은 한번에 죽을 수 있었다. 일육팔로서도 수고를 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작전 후에 나온 이야기지만, 위석이 특이하게 옆구리에 있는 바람에 수십번을 찌른 일사삼의 고생담이 참고사항으로 배포되었다. 일육팔은 자들이나 엄지, 구더기의 위석도 모두 부순 후에 골판지 하우스를 열어놓는다. 나머지는 인간 구제업자들이 처리해줄 것이다. 일육팔은 다음 하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일육팔과 자신들의 다른 동료들을 믿고 보스실장에게 곧장 달려간다. 보스실장은 호위가 넷이나 있다는 일구구의 정찰결과에 자신과 일구구가 처리해야한다고 일칠오가 생각했다. 일구구도 동의했다. 저 멀리 보스실장의 하우스가 보였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일단 숨을 고른다.

<호위는 넷이지만 기본적으로 둘만 있는테스.>
<일단 한놈을 유인해서 먼저 처리하는테스.>

의견의 일치를 본 일칠오와 일구구는 침묵한 채 접근한다. 문득 일구구는 자신이 받았던 첫 훈련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만큼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테치거리면서 다니면 적한테 ‘나 여기있어요.’하는 것밖에 더 되냐! 입 안다물어?!”
<테...테….>

그 덕분인지 몰라도 훈련받은 실장석들은 실장석들이 걸어다닐 때 내는 소리들을 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라들은 일칠오와 일구구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한다. 일칠오는 작은 돌을 들고 일구구를 바라본다. 일구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칠오는 하우스 뒷편으로 돌을 던진다. 

-퍽
<음? 무슨 소리 안들리는데스?>
<확인해보는데스.>

독라호위 둘 중 하나가 소리를 확인하러 간다. 생각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다는 증거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대충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훈련이 된 것이 오늘의 패착이리라. 물론 이 패착을 발전의 기회로 삼을 필요는 없다. 오늘 죽을테니까.

<데에…. 아무것도 어….>

일칠오는 재빨리 보검으로 목을 찌른다. 기습을 당해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지만 독라호위는 있는 힘껏 자신이 들고 있던 대바늘로 일칠오를 노린다. 하지만 재빨리 대바늘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칠오. 그리고 그 뒤에서 일구구가 달려든다. 일구구는 보검으로 머리 한 가운데를 노린다. 정확히 들어가는 보검. 독라호위는 일격에 쓰러진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재빨리 보검으로 독라호위를 쑤셔버린다. 위석을 부순 뒤, 나머지 독라호위에게 슬금슬금 접근한다. 지루한 지 하품하고 있는 독라호위. 일구구가 달려든다. 어디서든 정확하게 목에다가 꽂아버리는 솜씨는 인간 조교들도 칭찬하는 일구구의 특기인 것이다. 마무리는 일칠오가 한다. 그렇게 독라호위를 처리한 일칠오와 일구구는 조용히 자고 있는 나머지 독라호위도 마무리짓는다. 그래도 자는 도중에 죽었기 때문에 친구들처럼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 일칠오와 일구구는 마무리를 짓기위해 보스의 하우스로 들어간다.

<데프프프프… 제법인데스.>
<....깨있었는테스?>
<그정도 감은 있어야 공원의 보스가 되는데스. 오마에타치가 원하는 건 와타시의 목숨인데스?>
<그렇데스.>
<그렇다면 얼른 덤볐어야 했는데스!>

보스는 자신의 보검을 들고 달려든다. 재빨리 좌우로 피하는 일칠오와 일구구. 그 둘의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보스, 위험하다!’
일칠오는 제대로 붙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일구구에게 외친다. 

<와타시가 최대한 붙잡는테스! 한번에 빈틈을 노리는테스!>
<와타시만 믿는테스!>

재빨리 보검을 들고 달려드는 일칠오. 보스는 비웃으며 바라보다가 일칠오를 향해 보검을 찔러온다. 배운대로 오른쪽으로 보검을 쳐내는 일칠오. 일구구는 틈이 생기자마자 보검을 일직선으로 찔러들어간다. 그런데 그 때, 보스는 몸을 수그려 왼쪽 어깨로 보검을 흘려버린다. 보검으로 인해 어깨가 파였지만 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일구구의 몸통에 박아버린다. 

<크아아아아아!>
<일구구!>

일구구가 날라가는 걸 본 일칠오는 보검을 들어 보스를 노린다. 하지만 보스는 우에서 좌로 보검을 휘두른다. 간신히 막아내는 일칠오. 보통의 성체실장이라면 전투기술로 커버할 수 있지만 이 보스는 보통이 아니다. 같은 기술을 가졌다면 체격이 큰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칠오는 침착했다. 자신을 믿는다. 자신이 처음 봤던 찰리 조교의 빛나는 모습이 생각난다. 자신은 훌륭한 군실장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일칠오는 자신을 왼쪽 얼굴을 찔러오는 보검을 피한다. 완벽히 피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얼굴에 실선이 그려진다. 따끔한 고통은 무시한 채 달려드는 일칠오. 그리고 자신의 직감대로 보스실장의 발을 찔러버린다. 

<끄아아아아!>

일칠오의 예감은 적중했다. 보스는 일칠오가 목을 찌르리라 생각했고, 왼팔을 내줄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 무기를 잃고 접근전을 펼치면, 체격이 큰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칠오는 자신의 발을 찔러버렸다. 예상치못한 공격에 균형이 무너지고 보스는 결국 엎어져버렸다. 일칠오는 보스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일구구에게 달려간다.

<일구구, 괜찮은테스?>
<멍청한테스! 와타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른 마무리짓지 않고 뭐하는테스!>

일구구의 일갈에 아차한 일칠오. 보스는 서서히 일어나 자신의 발에 박힌 보검을 뽑는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힘겹게 일어나서 다시 자신들의 보검을 잡는다. 일칠오는 후회한다. 먼저 보스의 위석을 부셨어야 했다. 이제는 보스도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고생한데스.>
<찰리 조교!>

박스 입구에서 찰리 조교가 나타났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생각지도 못한 원군에 얼굴이 밝아진다. 찰리 조교는 맨손으로 뚜벅뚜벅 보스를 향해 다가간다. 일칠오는 그런 찰리 조교를 바라보며 외친다.

<위험한테스! 보통이 아닌테스!>

일칠오의 외침에 피식하는 찰리 조교. 이윽고 보스 앞에 선다.

<어떤데스? 꽤 괜찮지 않은 데스?>
<그런데스. 마지막이 좀 어설프긴 했지만, 발을 찌른 건 확실히 의외인데스.>
<와타시가 가장 관심있는 둘인데스. 이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곤란한데스.>
<테?>
<테스?>
<소개한데스. 와타시의 선배인 제비인데스.>
<테에에에에?!>

이윽고 훈련 종료의 사이렌이 울린다. 일칠오를 비롯한 훈련 실장석들은 모두 지정된 장소로 모인다. 일칠오와 일구구는 찰리 조교와 공원 보스와 같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는 오마에들의 훈련을 위해 조성된 공원인데스. 물론 들실장들이 자유롭게 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통제되고 있는 구역인데스. 그 통제를 와타시의 선배인 제비가 하는데스.>
<데프프프프. 은퇴한 군실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스. 이 것도 그 중 하나인데스.>
<전혀 몰랐는테스… 와타시는 그저 보스가 너무 세다고만 생각했는테스.>
<일구구인데스? 오마에는 너무 정직하게 찔러온데스. 앞으로는 와타시 같이 돌진하는 경우도 생각하는데스요.>
<알겠는테스.>
<일칠오는 동료를 챙기는 건 좋은데스. 하지만 우선 눈 앞의 적을 완전히 침묵시키는 게 중요한데스.>
<명심하는테스.>


전투훈련도 끝나고 수료만 앞둔 일칠오들에게 검은 정장의 무리가 나타난다. 인간 조교들과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몇몇 중실장들은 관심있게 쳐다보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하게 쉬고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인간 조교들이 몇몇 실장석들을 불러낸다. 그 실장석 중에는 일칠오와 일구구도 끼어있었다. 일칠오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 각자가 평이 괜찮은 실장석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정보부에서 온 사람이다.”
<정보부가 어디인테스?>
“너희들이 실장석을 토벌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보들을 모아서 오는 곳이지.”
<와타시타치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테스?>
“여기 실장석들은 모두 훈련과정에서 우수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여기 중 몇몇을 군실장이 아니라 정보실장으로 하려고 하는것이다.”
<테? 정보실장테스?>
“군실장은 어디까지나 토벌이 주 임무다. 하지만 정보실장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혼자서 일해야하기 때문에 아주 우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볼 실장석 있나?”

몇몇 실장석이 손을 들었다.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손 든 실장석 중에서는 일구구도 있었다. 일칠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구구를 바라보았다. 
“좋아. 지원한 실장석들은 모든 짐을 싸서 나오도록. 해산.”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실장석들은 자신이 지내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일칠오와 일구구도 나란히 자신들의 방으로 향한다.

<괜찮은테스?>
<문제없는테스.>
<혼자 일한다는 건 더 힘든 일이라는테스…>
<알고 있는테스, 하지만 와타시는 왠지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인테스.>
<그런테스?>
<와타시는 동료가 귀찮은테스. 오마에는 그나마 와타시와 같이 세레브해서 편하지만, 다른 실장석들은 와타시의 발목만 잡는테스. 그렇다면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것이 나은테스.>
<일구구…>
<오마에는 좋은 군실장이 될 것인테스. 와타시처럼 모나지 않은테스. 세레브한 리더가 되는테스.>
<알겠는테스. 오마에도 세레브한 정보실장이 되는테스.>

그 날을 마지막으로 일구구는 볼 수 없었다. 일육팔도, 일사오도 일구구를 아쉬워했다. 일칠오는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수료를 기다렸다.

“일칠오, 본 실장석은 훈련 내내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상과 부상을 수여한다.”

일칠오는 1등으로 수료했다. 훈련생 대표로 상과 부상을 받고 기뻐하는 일칠오. 일육팔이나 일사오도 내 일처럼 기뻐해준다. 찰리 조교도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고생한데스. 와타시가 생각한대로 오마에가 최우수였던데스.>
<감사한데스, 찰리 조교.>
<이제 조교는 끝났으니 선배라고 하면 되는데스.>
<알겠는데스. 찰리 선배.>
<오마에는 어디를 가든 잘 할 수 있는데스. 와타시는 믿는데스.>
<감사한데스.>

일칠오는 새 군복을 받아들고 냄새를 맡는다. 새 옷의 냄새는 언제나 좋다. 내가 갈 곳은 어디일까?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어딜가나 지금처럼만 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칠오는 떨리는 가슴으로 자신의 새 근무지를 향해 간다.




“작전 시작”
20XX년 X월 X일 17:00 
대한민국 경북 문경 주흘산 일대
위스키 병장

<저 병신오마에는 또 지랄인데스. 잘라버리는데샤!>
<데에에에에에에!>
<닥치고 이거나 무는데스. 적진인 거 모르는데스까?>

위스키 병장은 한숨을 쉬었다. 저 오마에는 이제까지 5번 공수강하를 했으면 다리정도는 멀쩡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오늘도 여지없이 다리를 분질러먹었다. 그래도 낙천적인 성격이고 회복도 금방 되기 때문에 계속 작전에 투입은 되고 있다. 위스키 병장은 그레이 상병의 보고를 받는다.

<총원 30, 부상 1, 현재원 29데스.>
<알겠는데스. 오마에는 다른 오마에들을 준비시키는데스. 미도리, 오마에는 와타시를 따라오는데스. 접선이 필요한데스.>

미션 목표를 다시 생각한다. 소백산맥은 워낙 산세가 거칠어서 인간의 접근이 힘들뿐더러 야생동물 때문에 함부로 인간이 드나들어서도 안된다. 산실장들이 살기 최적의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야생동물의 위험도 있지만, 인간만큼의 위협은 아니다. 오늘날 소백산맥에는 꽤나 많은 산실장 군락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목표는 그러한 산실장 군락 중 하나였다. 19:00에 작전에 투입되어서 07:00에 빠져나오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 생포할 수 있는 산실장은 최대한 생포한다. 그 외에는 전부 남김없이 부수고 탈출하면 된다. 간단한 목표였다. 문제는 산실장 군락이 어디있느냐는 것이지.

그렇기에 정보실장들이 산을 넘나들면서 산실장 군락을 찾아다닌다. 야생동물에 희생당한 실장석들도 많지만 꽤나 많은 정보실장들은 산실장 군락을 찾아낸다. 찾아낸 이후에는 지급된 기기로 GPS를 키면 되는 것이다. 실장석이 적으면 초록색, 꽤 많으면 노란색, 아주 많으면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된다. 혼자서도 상대 가능하다 싶으면 정보실장의 독단으로 전멸시킬 수도 있지만 사후보고는 필수다. 

오늘의 목표는 빨간색 군락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정보실장과 접선을 해야한다. 정보실장은 아마 군락에 섞여들어갔을 것이다. 군락의 구조를 완벽히 익혀 우리의 섬멸에 도움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이라면 GPS가 켜지고 난 후 12시간 내에 하늘에서 드론 불빛으로 작전 투입을 확인받는다. 그 불빛이 보인다면 다음 날 19시에 작전이 시작한다는 뜻이다. 정보실장과 접촉하지 못한다면,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부딛쳐야 한다. 위스키 병장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처음 임무 투여된 정보실장이라는 것이 더더욱 불안하다.





“수색”
20XX년 X월 X일 18:00 
대한민국 경북 문경 주흘산 일대
위스키 병장

<정보실장하고 접촉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스까?>
<뭘 묻는데스. 작전 힘들어지는데스.>

위스키 병장과 미도리 일병은 잡담을 나누며 주변을 수색했다. 수색은 은밀하고 정확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역시 정보실장이 필요하다. 위스키와 미도리는 일단 접선예상장소에서 잠복하고 있는다. 

<데에… 병장사마는 언제 전역하는데스.>
<오마에들이 잘하면 와타시가 마음놓고 전역하는데스.>
<데프프프. 그러면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데스.>
<자랑인데스까.>

언제나적인 군실장 토크를 하며 잠복중인 위스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손짓으로 미도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미도리도 곧 확인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독라로 정찰을 하는 산실장 둘이였다. 손에는 나무를 조잡하게 깎아만든듯한 창이 들려 있었다. 위스키와 미도리는 각자 보검을 손에 꼬나쥐고 저 둘을 노려본다.

<데프프프프.. 오마에는 자를 언제 가질 예정인데스까.>
<이제 봄도 지났는데 무슨 자인데스까.>
<데프프프프프. 자는 여름에도 가질 수 있는데스. 와타시의 뿅 가는 총구 비비기를 전수해주는데스웅~>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는 산실장들. 위스키와 미도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아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미도리의 발이 나뭇가지를 밟지 않았다면 말이다. 

-바스락
<거기 뭐인데스!>

총구 비비기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던 산실장의 눈이 날카롭게 바뀐다. 위스키와 미도리는 긴장한다. 솔직히 산실장 둘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둘과 싸우느라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무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포위되어서 처참하게 죽거나 독라노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스키는 번뜩이는 보검을 들고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간다. 미도리는 일단 대기시킨다.

<오마에는 누구인데스.>
<미안하지만 오마에는 뒤져야하는데스.>
<데프프프프프… 둘이서 하나를 못잡을 거 같은데스요?>
<맞는데스. 둘이면 하나정도는 잡는데스.>

뒤에 있던 독라 산실장이 재빨리 창을 찔러온다. 위스키쪽이 아니라 다른 독라 산실장에게로. 뒤에서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 산실장은 목에 창이 박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켁켁댈 뿐이다.
위스키와 미도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보검을 치켜든다. 독라가 말한다.
<오마에들이 이번 임무에 투여된 군실장인데스? 와타시가 정보실장인데스.>







“접촉”
20XX년 X월 X일 18:30 
대한민국 경북 문경 주흘산 일대
정보실장 일구구

독라 산실장을 끌고 가는 것은 훈련받은 실장석 셋이면 운치 싸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일구구는 와타시와 아까까지 잡담을 하던 산실장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미안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와타시와 은근히 죽이 잘 맞아서 외지에서 온 자신을 잘 대해준 산실장이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군실장을 본 순간 바로 입막음으로 창을 꽂아버린다. 정보실장이란 그런 것이다. 

<성체가 80마리라고 한데스?>
<그렇데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병장은 산전수전을 겪은 병장일 것이다. 그런 병장임에도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80마리짜리 산실장 군락은 듣도보도 못했을터이니. 실제로 자신도 처음 보았을 때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이쪽에는 물이 있는데스, 저쪽에는 열매도 풍성하게 열리는데스. 양지라서 겨울도 수월하게 보냈다고 한데스. 가장 중요한 건 워낙 거친 곳이라 동물들도 잘 안오는데스. 그러니 자를 다른 군락보다 더 까는데스.>
<아무리 그래도 그런데스.>
<자들도 30마리정도 되는데스. 많이 까면, 분충도 많겠지만 양충도 많은데스. 그렇게 빠르게 군락을 불리고 있는데스.>
<굴도 복잡할 거 같은데스.>
<맞는데스. 분충이라고 바로 솎아버리는 게 아니라 노예로 만들어서 굴을 파게하는데스. 그래서 구조가 복잡한데스. 다행이 와타시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스.>
<다행인데스.>

일구구는 그렇게 병장과 대화를 나누며 따라갔다. 이번이 첫 임무라 혹시나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와타시는 세레브한 정보실장이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를 되새긴다. 

도착한 곳에는 군실장이 바글댄다. 얼추 20마리는 넘어보인다. 공수투입되는 군실장들은 정예 중에 정예라고 한다. 믿음직스러운 군실장들의 얼굴을 보다가 문득 일칠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싶다. 그녀석이라면 어딜가든 잘 해낼 것이다.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일구구에게 병장이 무언가를 던진다. 받아보니 군실장복이다. 

<미안하지만, 오마에도 같이 들어가야하는데스. 와타시의 부하 중 하나가 부상인데스.>
<알겠는데스.>
<오마에, 솜씨는 어떤데스? 정보실장 솜씨는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스.>
<보면 아는데스.>

일구구는 옷을 입으며 씨익 웃었다.





“섬멸”





20XX년 X월 X일 21:30 
대한민국 경북 문경 주흘산 일대
위스키 병장

<저 오마에… 이번이 첫 투입인 애송이라고 들었는데스. 그런데 그냥 애송이가 아닌데스.>

위스키는 일구구을 보며 자신이 처음 했던 걱정을 지웠다. 일구구는 확실히 유능했다. 굴이 복잡하게 파져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포위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산실장굴에서 정확하게 방향을 안내하고 후방 역습에 대비도 하는 한편, 자신을 공격하는 산실장을 여유롭게 처리한다. 위스키 병장으로서는 저런 자가 정보실장인 것이 안타깝다. 자신의 후배라면 그냥 자기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은퇴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레이랑 미도리는 아직 더 배울 게 많은데스.>

짬으로서는 그레이가 자기 다음이지만 아직 자기 수준은 아니다. 그레이보다 후배인 미도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나머지들도 각자 자신에게 부여받은 행동들은 잘하지만, 중요한 것은 명령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전술을 세우는 것이지. 아직 그레이와 미도리는 그런 점에서는 실격이다. 그래도 아직 창창한 녀석들이니 좀 더 키우면 쓸만해질 것이다. 위스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토벌은 거의 완료되었다. 보스와 장로실장들은 모두 머리를 박살내버렸으며, 일구구가 지목한 주의해야할 호위병들도 싸그리 팔다리를 박살내버렸다. 이렇게 강자들을 제압해버리면, 나머지들은 빵콘한 채로 순순히 말을 잘 듣는다. 그래, 이것이 실장석이다. 자신의 분수를 모를 때는 한없이 강하다가 자신의 분수를 깨닫는 순간 한없이 약해진다. 위스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레이를 바라본다.

<그레이, 다친 자들은 없는데스?>
<그런데스. 아까 다쳤던 자도 다 나은데스.>
<그 오마에는 맨날 끝나서야 다 나은데스. 웃기지도 않는데스.>
<데프프프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데스. 27마리는 죽였고 나머지는 다 생포한데스.>
<죽은 자들까지 모두 묶어서 데려가는데스. 오마에가 확실히 해주는데스.>
<알겠는데스. 멸충>
<멸충>

그레이의 경례를 받고 위스키는 일구구에게 향한다. 일구구는 자신이 숨겨두었던 GPS 장비에 묻은 흙등을 털어내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 위스키는 일구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오마에, 제법인데스요. 훈련소에서 1등이라도 한데스요?>
<끝까지 수료를 안해서 모르는데스. 하지만 그래도 1등은 아니었는데스.>
<호오, 오마에보다 더 유능한 자가 있는데스? 흥미가 생기는데스.>
<와타시가 인정한 자가 하나 있긴 한데스. 잘 지내는지 궁금한데스.>
<데프프프… 오마에정도 수준이면 어딜가든 잘 지낼것인데스. 오마에를 가르친 자는 누구인데스?>
<찰리 조교인데스.>
<찰리 녀석이 거기 가있는데스?>
<아는데스?>
<와타시의 동기인데스. 훈련조교 모집한다고 하니까 훌륭한 군실장을 만들겠다면서 바로 지원해서 가버린데스. 거기서는 잘 지내는데스?>
<찰리 조교는 잘 지내는데스. 제비 선배도 있던데스.>
<제비 선배데스까, 참 오랫만에 듣는데스.>

위스키는 그렇게 일구구와 대화를 나누며 인간과의 접선장소로 나아간다. 그 뒤로는 굴비엮듯이 묶인 산실장들이 순순히 끌려오고 있었고 자신의 부대원들은 그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 오늘도 별 문제 없이 끝났다. 돌아가면 아와아와한 거품 목욕 후에 자신의 세레브 하우스에서 콘페이토나 씹으며 푹 쉴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실장생에 내려온 하나의 보람 아니겠는가.









아파트의 들실장 1

 


어느 한 일본인은 한국을 가리켜 ‘단지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본인의 눈에는 다니는 길마다 존재하는 아파트 단지가 신기했겠죠. 한국은 그만큼 아파트가 많습니다. 아니, 아파트는 이미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주거 수단입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입니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도 48%나 됩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죠.

이런 ‘아파트 공화국’에서 들실장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전편인 서울의 들실장에서 본 것처럼 산에 만들어진 공원에 사는 들실장도 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가는 들실장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파트에서 들실장이 살아가는 법을 보도록 하죠.

쓰레기장 뒤에 스티로폼 상자 여럿이 놓여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죠. 한 들실장 가족이 있습니다. 모두 세상모르게 쌔근쌔근 자고 있군요. 눈에 낀 눈꼽이라든가, 입에서 질질 흐르는 침을 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군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럽지는 않습니다. 들실장과 사육실장을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카락입니다. 주인이 관리해주는 사육실장과는 다르게 들실장은 제대로 씻지 못해서 흔히 말하는 ‘떡진 머리’가 되어서 다니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여기 자고 있는 들실장 가족은 비록 머리결이 거칠긴 해도 기름기가 흐르지는 않는군요. 아, 성체실장이 일어납니다. 이 일가의 친실장입니다. 이름은 편의상 미도리라고 하겠습니다. 미도리는 일어나서 잠시 눈을 부비고는 자신의 자실장들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와타시의 자들은 어서 일어나는데스->
<테찌?>
<테에에에엥… 졸린테찌…>
<와타시는 더 자는테찌…>

세 마리의 자실장들은 일어날 기색이 없군요. 그래도 미도리는 자신의 자가 사랑스러운가 봅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바로하고 엄한 목소리로 자들에게 말합니다.

<마마의 말을 안듣는 자는 분충인데스. 오마에들은 분충인데스?>
<아닌테찌!>
<와타시는 착한 자인테찌!>
<테에에에에에엥!>
<그럼 어서 일어나는데스- 늦으면 맛나맛나한 아침을 못먹는데스.>

미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하우스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햇볕이 드는 자리는 많지 않지만 용케 그런 곳에 자리를 잡은 미도리 일가의 하우스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안에 있는 가재도구는 들실장과 비슷합니다.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그릇과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보존식 박스라든가 하는 것들은 없습니다. 하우스도 들실장이 선호하는 골판지가 아니라 좀 더 튼튼한 스티로폼입니다. 정말 부유하네요. 미도리.

들실장들은 이 스티로폼 박스가 더 고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티로폼 박스는 꽤나 싼 물건입니다. 특히 재활용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재활용 수거업체에서도 기피하는 물건이죠. 차라리 같은 무게면 골판지 박스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사는 들실장들은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들실장들로서도 이득입니다. 스티로폼 박스는 훌륭한 단열재이기 때문이죠. 우연찮게 들실장이 이득을 보는 형태인 것입니다.

하우스를 대충 정리한 미도리일가는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옵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합니다. 목적지는 옆 수돗가입니다. 이미 많은 들실장 일가들이 나와 몸을 씻고 있습니다. 미도리일가는 일단 수돗가 옆 배수로로 향합니다. 몸을 씻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거든요.

<자들은 어서 운치를 싸는데스.>
<알겠는테찌!> 
-부릿 -부리릿

다들 팬티를 내리고 운치를 누기 시작합니다. 자들이 운치를 싸는 모습을 흐믓하게 보던 미도리는 자신도 팬티를 내리고 운치를 누기 시작합니다. 표정이 묘하군요. 실장석은 생식기와 배설기가 하나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배설을 하면 생식기도 자극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설의 쾌감과 성적 쾌감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운치를 다 싼 미도리 일가는 팬티를 마저 벗어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럼 자들은 모두 씻는데스- 아침부터 깨끗한 것은 중요한데스->
<테프프프프! 시원한테찌!> <기분좋은테찌!> <테에에에에…>

가져온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받아다가 하나씩 씻기기 시작합니다. 아까 운치를 누고 더러워진 총구도 깨끗하게 씻기고 팬티도 깨끗히 빨아놓습니다. 다른 들실장에 비해서 이곳의 들실장이 깨끗한 이유입니다. 매일 수돗가에서 씻을 수 있는 것은 들실장에게는 특권이나 다름없죠. 이렇게 씻은 물은 아까 운치를 누었던 배수로에 버립니다. 자연스럽게 들실장들의 운치는 하수로 흘러 내려갑니다. 

들실장 일가들이 모두 씻고 자신들의 몸을 말리고 있을 때쯤, 파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귀에는 무언가를 끼고 있군요. 들실장들에게 말을 거는 남자입니다.

“모두들 따라온나.”
<자들은 모두 기다리는데스. 마마가 밥을 가져오는데스.>
<알겠는테찌!> <맛나맛나로 가져오는테찌!> <다녀오는테찌!>

성체실장들은 자실장들을 놓고 남자가 가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손에는 각자 음식을 담을 봉투를 들고 갑니다. 남자는 노란색 긴 통을 열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올라오는 냄새가 좋지 않군요. 하지만 같은 냄새를 맡은 들실장들은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재빨리 가져온 집게로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냅니다. 음식물 쓰레기이군요. 들실장이 가져온 봉투를 내밀면 거기에 두세번에 걸쳐 퍼줍니다. 그렇게 들실장들에게 먹을 음식을 퍼주고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남자입니다. 미도리도 봉투에 가득 담긴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도 밥이 푸짐한데스->
<잘먹겠는테찌!> <맛있는테찌!> 
-테첩테첩테첩

사람들이 보면 인상이 찌푸려질만큼 더럽게 먹는 자실장들이지만 미도리 눈에는 이뻐보이기만 합니다. 자실장들이 먹는 것들 지켜보다가 자신도 하나둘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합니다. 쿱쿱한 냄새가 올라오는 음식물쓰레기이지만 들실장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진미입니다. 

아파트 내부에 있는 음식물쓰레기는 통별로 거래가 됩니다. 통 하나당 수거비용 얼마씩인 것이죠. 그렇기때문에 아파트마다 큰 통이 몇 개씩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담아버리는 단독주택 단지와는 다르죠. 그렇기때문에 아파트에 사는 들실장들은 인간의 절대적인 호의가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통 안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퍼주면서 들실장들을 돌보는 것일까요? 단순한 인도주의? 애호파? 좀 더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밥을 다 먹은 미도리의 자실장은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습니다. 잔뜩 먹었는지 다들 배가 볼록하군요. 흐믓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대충 하우스 안을 정리한 미도리는 손님을 맞이합니다. 옆에 사는 들실장입니다. 에메랄드라고 부르기로 하죠. 

<미도리상, 슬슬 출발하는데스.>
<벌써 그렇게된데스? 알겠는데스. 마마는 일을 다녀오는데스. 자들은 오바상 말을 잘 듣는데스요.>
<다녀오시는테찌!> <장난감 주워오는테찌!> <테에츄… 테에츄…>

금세 또 잠이 든 한 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도리를 배웅합니다. 미도리는 하우스를 나와 에메랄드와 같이 갑니다. 이미 모여있는 들실장들입니다. 미도리와 에메랄드까지 해서 총 6마리입니다. 줄을 맞추어 조심스럽게 어디론가 향하는 들실장들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는 있지만 들실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걸어갈 뿐입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이 아파트의 경비실입니다. 아까 그 남자가 있군요. 다른 곳에서도 들실장 무리가 오고 있습니다. 이쪽은 7마리입니다. 반갑게 서로를 맞이합니다. 미도리도 익숙한 얼굴과 인사를 나눕니다.

<잘지냈는데스. 장녀?>
<그런데스! 마마도 잘 지냈는데스?>
<물론인데스. 장녀의 이모토챠도 많이 늘었는데스.>
<와타시도 이번에 자를 둘이나 낳은데스.>
“자, 조용히 좀 해라.”

남자가 하품을 쩍쩍하며 나옵니다. 들실장들은 제각기 떠들던 것을 멈추고 모두 남자만을 쳐다봅니다. 눈으로 들실장의 수를 세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젓습니다.

“음… 뭐 상관없나. 다들 왔나?”
<그런데스!> <맞는데스!>
“좋아. 오늘은 별 일이 없으니 어제처럼 하도록 한다. 이상.”

남자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는 다시 경비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잤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하품을 쩍쩍 하는 남자를 뒤로 하고 두 무리의 실장석들은 제각기 흩어집니다. 

아파트 뒤 잔디밭에 들어간 미도리무리는 제각기 허리를 굽혀 잡초들을 뽑기 시작합니다. 민들레가 이쁘게 피었어도 잔디밭에서는 그저 잡초일 뿐이죠. 쓰레기를 줍기도 합니다. 보도블럭 바닥에 붙은 껌도 떼냅니다. 그것은 아까 흩어진 다른 무리들도, 그리고 다른 경비실에서 점호를 받은 또 다른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실장들은 마치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마냥 익숙하게 일을 해나갑니다. 아주 신기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국에서 아파트 경비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감시-단속 근무자라고 부릅니다. 단속, 즉 연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상주하지만, 연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이 없을 때는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 본래 경비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경비원은 보통 경비업체랑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경비업체는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죠. 보통 3년이나 5년 단위로 재계약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사무소는 끊임없이 경비업체를 후려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 후려침을 당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 바로 경비원입니다. 

대기만 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관리사무소는 자꾸 경비원에게 추가 업무를 주는 것이죠. 조경도 니네가 해라, 쓰레기장이 왜 저리 더럽냐, 낙엽 좀 쓸어라. 택배도 너희가 받아라. 똥벌레들도 니네들이 때려 잡아라. 원래는 관리사무소가 해야할 업무들이 조금씩 경비원들에게 넘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경비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하는 것이죠. 그렇게 과중한 업무로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질 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낸 겁니다.

‘저 똥벌레들을 부려먹으면 어떨까.’

라고 말이죠.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들실장은 그저 똥벌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습관대로 판 운치굴의 냄새나 제대로 씻지 않아 생긴 실장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단골 민원거리였죠. 골판지를 찾겠다고 쓰레기장을 뒤적거려 정리해놓은 것들을 망치는가하면, 음식을 얻겠답시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오는 사람들에게 투분하기 일쑤였죠. 들실장이 나타났다 하면 경비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몽둥이를 들고 가기 바빴습니다. 

10여년 전, 어느 경비원은 그런 들실장을 보며 생각한 것입니다. 말이 통하고, 훈육도 가능하다면 저 놈들을 부려먹지 못할 것은 뭐람? 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경비원은 자기 시간을 들여가며 들실장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합니다. 우선 들실장들 중에 똑똑한 놈들만 남기고 전부 잡은 후, 똑똑한 놈들은 모두 쓰레기장 뒤편으로 옮겨줍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골판지 하우스 대신 스티로폼 하우스를 주는 것도 있죠. 이렇게 하면 동네 주민들에게도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리고 쓰레기장에는 사람이 쓰기 위해 만들어놓은 수도가 있고, 이 수도를 이용해 매일매일 씻도록 합니다. 실장석 또한 씻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생활 습관입니다. 습관처럼 파는 운치굴을 무너트리고 배수로에만 싸게 교육시킵니다. 밥은 아침과 저녁만 줍니다. 뭐라고 떠드는 분충들은 그때그때 머리를 터트려서 다른 들실장들의 교육재료로 삼습니다. 

일을 시켜봅니다. 처음에는 잔디를 뽑기도 했지만 이내 열심히 교육시킨 보람이 있는지 잡초만 잘 뽑습니다다. 쓰레기도 줍게 시키고, 보도블럭에 붙은 껌도 제거하게 합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 되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골판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가르치고 반항하는 분충들을 솎아내기를 어언 2년. 이제는 훌륭한 일꾼들이 된 들실장입니다. 들실장들도 깨닫습니다. 매일 이렇게만 한다면 밥 걱정, 자식새끼 걱정은 없겠다 싶은 것이죠. 그리고 이 들실장들은 빠르게 다른 아파트 단지로 퍼져 나갑니다. 교육받은 들실장 세 마리만 데려와도 금방 자식을 낳아 아파트 전체를 커버할 수 있게 됩니다. 10년이 지나고 지금에 와서는 일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아파트 들실장이 흔하디 흔한 존재가 된 이유지요. 이제는 이런 들실장까지 고려해서 아파트 주변설비를 설계하는 것도 당연시 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 미도리는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울타리 너머로 손이 쑥 올라오더니 자실장 한마리가 풀밭에 털썩하고 떨어집니다. 이어서 또 한마리가 털썩하고 떨어지는군요. 그렇게 몇마리가 떨어지더니 낑낑대며 들실장 한마리가 올라옵니다. 

<데프프프프프… 이젠 여기가 와타시의 집인데스!>
<오마에는 뭐인데스?>
<데엣?!>

좋아하던 들실장은 그제서야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미도리무리를 발견합니다. 잠시 놀란 표정이었던 들실장은 실장석 특유의 비열한 웃음을 짓습니다. 

<데프프프프프… 오마에들이야말로 뭐인데스?>
<와타시타치는 이곳에서 일하는데스.>
<닌겐들은 뭘하는데스?>
<와타시타치가 일을 하면 닌겐들은 밥을 주는데스.>
<데프프프프프… 멍청한데스. 왜 닌겐노예를 부리면서 세레브하게 살지 않는데스?>
<...분충인데스. 쳐죽이는데샤!!!>
<데갸갸갸갸갸갸갸악!>

분충은 들실장 커뮤니티를 붕괴시키는 제 1 요인입니다. 여기서의 삶을 위해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분충은 적극적으로 배제해야합니다. 미도리와 에메랄드를 비롯한 6명의 들실장은 몰래 들어온 들실장을 잡아 패기 시작합니다. 몰래 들어온 들실장은 그제서야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려 하지만 이미 붙잡힌 뒤입니다. 머리를 뜯기고 옷이 찢깁니다. 자실장들은 자신의 친실장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빵콘을 하는군요. 미도리무리는 자실장도 한 마리씩 붙잡고 같이 독라로 만들어줍니다. 한참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무슨 일이냐?”
<데스? 경비상. 와타시타치가 분충을 처리한데스!>

교대한 경비원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미도리들입니다. 경비원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비닐을 꺼냅니다. 실장석 회수 봉투군요. 손끝으로만 독라들실장을 잡아 휙휙 넣습니다. 비닐에서는 독라들실장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지만 그것도 비닐을 잘 묶으니 새어나오질 않습니다. 

“고생혀.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알겠는데스!>

비닐을 챙겨 뒤돌아 가는 경비원의 등에 대고 꾸벅하는 미도리들입니다. 이렇게 아파트 들실장들은 관리되지 않은 야생의 들실장들이 외부에서 몰래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욕구와 욕망

 


“...그러니깐 실장석 훈육에서 중요한 것은 욕구와 욕망의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남자는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계속 바라보았다. 독특한 실장석 훈육방식을 유튜브에 하나둘 올리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애호파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훈육이라는 것은 애호파가 보기에는 학대나 다름 없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훈육방식으로 효과를 보았다는 댓글이 하나둘 달리고, 좋아요가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고, 지금은 구독자 수 30만의 어엿한 대기업 유튜버가 되었다. 

“제가 준비한 자실장은 3일 전에 탁아를 받아온 들-자실장입니다. 혹시라도 숍에서 사온 자실장이라고 의심하실 분이 계실까봐 영상도 따로 찍어놓았죠.” 

영상이 전환되고 화면에는 핸드폰 시계가 보인다. 날짜는 정확히 3일 전이다. 

“...지금 보시면 봉투 안에 탁아 된 자실장이 하나 있습니다. 일부러 탁아를 받기 위해 삼각김밥 하나를 넣어두었죠. 지금 꺼내볼까요?”

남자는 봉투 안이 보이도록 봉투를 뒤집었다. 봉투 안에는 예상대로 뜯겨진 삼각김밥과 그것을 먹고 있는 자실장이 보였다. 자실장의 팬티는 이미 실장석의 똥으로 빵빵해져 있었다. 한참을 고개를 파묻고 먹던 자실장은 남자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눈을 반달로 만들고 치프프프 웃기 시작했다. 자실장이 말하기 시작하자 자막으로 자실장의 말이 번역되어 나온다. 남자의 영상이 인기인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섬세함 때문이지.

<치프프프프… 노예가 준 공물이 별로였는테치! 더 맛나맛나한 스시와 스테이크를 가져다 바치는테치!>
“예상대로 분충이군요. 어떻게 훈육을 하는 게 좋을까요?”
<테챠아아아아!!! 닌겐노예주제에 와타시에게 무슨 무례인테챠!!>

남자는 손가락 끝으로 살짝 자실장을 들고, 매직을 꺼내 이마에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기분나쁜 느낌인지 자실장은 마구 발광하지만 남자는 머리를 붙잡고 화면 가득 자실장의 얼굴을 보인다. 

“혹시라도 몰래 바꿔채는 거 아니냐는 분이 가끔 보여서 말이죠. 이 화면 캡쳐하시고 3일 뒤 자실장 얼굴도 크게 보여드릴테니 한번 비교해보세요.”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남자는 자실장을 준비한 수조에 가볍게 던져넣고 뚜껑을 닿는다. 수조에 던져진 자실장은 뒹굴거리며 정신을 못차린다. 남자는 수조를 들고 베란다에 가져다 놓는다. 영상이 전환되고 수조를 꺼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자, 3일이 지났군요. 지금쯤이면 굶어서 힘도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핀셋으로 자실장의 머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힘없이 딸려온 자실장의 팔다리는 빼쩍 말라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화면 가까이에 자실장의 머리를 들어댔다. 3일 전에 매직으로 그린 동그라미가 있었다.

“의심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보여드립니다. 한번 확인해보시면 되겠군요.”
<테에에에에… 또...똥닌겐…>
“그럼 이제 훈육을 시작해볼까요. 우선 그 전에 조금 씻겨놓죠. 저도 실장석 똥은 만지기 싫으니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실장을 싱크대에 데려갔다. 남자는 싱크대 안에 던지듯 자실장을 내려놓고 물을 틀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에 자실장은 연신 허우적대며 도망다녔지만 남자는 호스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자실장에게 물을 쏘아댈 뿐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물을 끄고 자실장을 꺼냈다. 다시 거실로 보이는 곳에 데려간 남자는 탁자 위에 자실장을 내려놓았다. 이제 훈육의 시작인걸까.

“자실장, 내 말이 들리나?”
<테...테챠아아아아!!! 똥닌겐!! 이 무슨 폭거인테챠!!! 이 무례는 독라달마로도 용서할 수 없는테챠!!!>
-쌔액! 챡!
<텟챠아아!!! 아픈테챠!! 똥->
-챡!
<챠아아아!!!>
-챡!
“일단은 실장채를 이용해서 자실장을 두들겨줍니다. 이런 실장채로는 자실장도 크게 다치지 않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는 높낮이 없는 말투로 조근조근 말하며 손을 휘둘렀다. 이 남자는 이럴 때가 제일 무섭단 말이지. 나는 과자를 한입 물어 우물우물 씹으며 영상에 집중했다.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조심스럽게 실장채를 내려놓았다. 웅크린 채 몸을 말고 부들부들 떨던 자실장은 고통이 사라지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눈 가득 적록의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니 꽤나 아팠는 모양이다.

“이제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
<그...그런테치…>
“좋아. 나는 너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려고 한다.”
<테텟?! 와타시가 사육실장인테치?! 신나는테치! 즐거운테치! 콘페이토가 가득가득한테치~ 스시와 스테이크를 마음껏 먹는테치!>
-차악!

자실장은 3일이나 굶었음에도 사육실장이라는 말에 신이 났는데 온몸을 흔들며 기뻐했다. 그런 자실장의 옆을 남자가 실장채로 후려친다. 이내 얼음이 된 자실장. 남자는 실장채를 자실장 코 앞에서 흔들어댔다.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다고 했지 사육실장이라고는 안했다.”
<테...텟…>
“사육실장이 되려면 힘들고 괴로울거다. 스스로 슬픈 일을 당하고 싶을 정도일거다. 그래도 되고 싶나?”
<텟… 그...그런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좋은테치!>
“좋아. 배고프지 않나?”
<그런테치! 어서 우마우마한 스테이->
-차악!
<텟챠아아!!>

스테이크라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실장채로 자실장을 내려친다. 자실장은 엉겹걸에 팔로 실장채를 막았지만 자실장의 약하디 약한, 그리고 3일이나 못먹어서 말라 비틀어진 팔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자실장이 뜯어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건 말건, 남자는 실장채로 자실장을 후려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욕구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차악!
<텟챠아아!!>
“배고프면 먹어야하고, 졸리면 자야죠. 용변이 마려우면 봐야하구요.”
-챠악!
<챠아아아아!!!>
“이런 걸 교정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죠. 이런 건 교정하는 게 아닙니다. 교정하는 건…”
-챠악!
<테챠아아아아!!! 아픈테챠!!>
“욕망이죠.”

남자는 실장채를 내려놓고 다시 자실장에게 물었다. 

“배가 고프지 않니?”
<그...그런테치…>
“무엇이 먹고 싶지?”
<테...텟...>

자실장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남자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나는 감탄했다. 

“야… 편집 잘했네.”

나는 콜라를 마시며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눈을 굴리던 자실장은 남자를 슬쩍 바라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코...콘페이토인테->
-챠악!
<테챠아아아!!!>

남자는 망설임없이 실장채를 휘둘렀다. 자실장은 다시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짧은 체벌이 끝난 후 남자는 실장채를 내려놓고 다시 자실장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이 먹고 싶니?”
<아...아무거나 주는테치…>
“그래. 알았어.”

남자는 그제서야 꺼내놓은 실장푸드 몇 알을 내려놓는다. 자실장은 자기 앞에 놓인 실장푸드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와 실장푸드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남자가 아무말이 없자 슬금슬금 푸드를 먹기 시작했다. 남은 한 팔로 어떻게든 고정시켜놓고 먹어댄다. 그런 자실장을 클로즈업하면서 남자는 설명을 이어간다.

“먹고싶다. 는 제어가 되지 않는 욕구입니다. 하지만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욕망이죠.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건 이 욕망인겁니다. 욕망을 죽이고 욕구만 발현시키는 거. 그것이 실장석 훈육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잠시만요.”

남자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아, 죄송합니다. 목이 말라서... 다시 돌아와서, 실장석은 그냥 애완동물인겁니다. 개한테 꼭 감사인사를 받나요? 고양이는요? 다른 동물들에게는 안받는데 왜 실장석에게는 감사인사를 받아야 하나요? 포기하세요. 얘네들은 말이 링갈로 번역될 뿐이지. 그냥 동물입니다.”

클로즈업된 자실장이 보인다. 게걸스럽게 푸드를 입에 집어넣는 자실장이 보인다. 과연, 이 사람은 그냥 실장석을 이렇게 보고 있는거구나. 

“말을 한다고 다 통하는 건 아닙니다. 이 녀석들과 말이 통한다고 얘네에게서 사람과 같은 이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포기하세요. 이녀석들은 동물이니깐요. 다만 다른 동물보다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 훈육도, 기르기도 쉬운 거 뿐이죠.”

자실장은 남은 실장푸드를 입에 털어넣었다. 빵빵해진 배와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남자는 그런 자실장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남자가 아까까지 자신을 때린 것을 잊어버렸는지 자실장은 기분좋다는 표정을 짓는다.

<테츄융~>
“잘 먹었니?”
<그런테츄웅->
“이것만 하더라도 한편이군요. 다음편에서는 이제 목욕과 배변 교육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남자의 말이 끝나고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 유튜브에서는 다음편을 자동재생하겠다는 화면이 보인다. 일단은 정지를 눌러놓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까 묶어놓은 봉투를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구멍은 조금씩 뚫어 놓았으니 죽진 않겠지.

“삼일… 삼일은 좀 짧은 거 같으니까 사일정도 냅둘까?”

봉투가 부스럭거리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베란다 문을 닫는다. 실장채, 저건 얼마정도 하려나? 나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몸을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세레브




<똥닌겐!!! 세레브한 와타시를 얼른 모시지 않고 뭐하는데챠!!!!!!>

A는 항상 궁금했다. 정말 실장석들은 세레브한 것에 목숨을 거는지. 그래서 여러가지 준비를 마치고 아침일찍 공원으로 향했다. 역시나 사람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실장석, 예상대로 세레브함을 외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A가 바라던 것이다.

“네가 그렇게 세레브하냐?”
<데프프프프… 보면 모르겠는데스? 멍청한 똥닌겐인데스.>
“정말 네가 세레브하다면, 사육실장으로 삼아줄 수도 있을텐데.”
<테에에에에엣!!! 얼른 데려가지 않고 잔말이 많은데스!!!>
“좋아. 그럼 널 한번 데려가보도록하지.”

A는 조심스럽게 들실장을 집었다. 냄새가 너무나도 고약했기 때문이다. 들실장은 초승달과 같은 눈으로 데프프프 웃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역겨웠지만 이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생각하며 참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들실장을 들고 온 A.

“자, 일단 밥 먹기 전에 씻는게 세레브한 것이겠지?”
<데프프프. 얼른 아와아와한 거품목욕을 준비하는데스->

A는 따뜻한 물을 틀고 들실장을 씻기기 시작했다. 공원생활동안 제대로 씻지도 않았는지 물을 뿌리자마자 땟국물이 줄줄이 흘러나왔지만 A는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씻긴다. 옷도 일단 빨아서 드라이기로 잘 말려둔다. 그렇게 열심히 씻겨놓으니 이제 좀 냄새가 안 나는 거 같다. 

<데프프프… 세레브한 목욕이었는데스. 노예닌겐, 이제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는데스…>
“좋아. 잠깐 여기 앉아서 기다려.”

A는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한다. 스테이크 굽는 냄새에 들실장은 마구 발광하기 시작한다. 

<테에에에에에!!! 얼른 스테이크를 바치…>
“세레브하지 못하네.”
<데?>
“세레브한 실장석은 가만히 앉아서 나올때까지 기다리는거야. 그게 세레브함이지.”
<데... 데스. 알고있는데스. 와타시만큼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는데스웅~>

들실장은 갑자기 자세를 잡으면서 조용해진다. A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면서 스테이크를 마저 굽는다. 그리고 접시에 스테이크를 올려서 들실장에게 건네준다.

“자, 스테이크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

A가 내놓은 것은 확실히 호주산 소고기 스테이크가 맞았다. 단지 크기가 USB 메모리의 반정도의 크기일뿐. 스테이크의 크기에 화가 난 들실장은 소리치려고 한다.

<테에에에에!!!! 똥노예닌겐!!! 이게 뭐인데….>
“왜? 세레브한 사람들이나 실장석은 그렇게 먹는데?”
<테?>
“그렇게 조금씩만 먹는 게 세레브의 상징이지. 봐봐. 나도 세레브하니까 딱 그정도만 먹잖아? 아니면 너 설마 세레브하지 않은거야? 날 속인거야?”

세레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뜨끔한 들실장.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데… 세레브한 와타시가 모를 리가 없는데스. 노예닌겐을 시험해본데스. 노예닌겐주제에 세레브함도 알고 제법인데스.>
“그렇지? 그럼 먹자. 물론 그 옆에 있는 나이프랑 포크를 쓰는 세레브함도 잊지 않았을거야.”

그러고서 조용히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 A. 들실장은 그런 A를 흘금흘금 쳐다보면 나이프를 든다. 한입거리도 안되는 고기를 나이프질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 세레브한 것이라는 걸 들은 순간 나이프질을 포기할 수 없는 들실장. 물론 이것 또한 A의 장난인 것이다. A는 시침을 뚝 뗀 채로 식사를 마친다. 

“어라? 안먹어?”
<데… 잠깐 기다리는데….>
“과연, 진짜 세레브한 실장석은 눈으로만 먹는다는 것이 사실이었구나. 너 진짜 세레브하구나? 그럼 접시는 이만 치울게!”
<테에에에에에에!!!!>

A는 잽싸게 접시를 치워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진다. 들실장은 맛도 못본 스테이크가 사라진 것에 대해 분노를 표할려고 하지만,

“너 진짜 세레브하다.”

라는 말에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했다. 이것이 정말 세레브함인가? 들실장은 이제 슬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A가 준비한 분홍색 드레스를 본 순간 다시 그 생각은 날라간다.

<데스! 똥닌겐 보는 눈이 있는데스! 그 옷이야말로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어울리는 옷인데스!>
“오, 그래? 그럼 일단 이것부터 하자.”
<데?>

A가 또 준비한 것은 코르셋이었다. 물론 들실장은 그런 코르셋을 처음본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

“이것이야말로 이 세레브한 실장 드레스를 입는데 필수요소지. 당연히 세레브한 실장석인 너는 알고 있었지?”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다. A는 조심스럽게 코르셋을 입히고는 끈을 쫙 당겼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실제로 코르셋을 입다가 갈비뼈가 부러진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처럼, 이 들실장도 갈비뼈가 부러졌다. 숨막히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들실장. 
<테에에에에에!!! 얼른 벗기는데샤!!!! 죽는데샤!!!!>
“왜? 이걸 입어야 세레브한 실장 드레스를 입을 수 있다고.”
<테!!!! 죽는데…. 데?>
“자, 이제 입어보자.”

A는 잽싸게 실장 드레스를 입힌다. 과연 실장 드레스답게 반짝반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입은 들실장은 코르셋 때문에 숨이 막혀 그 반짝반짝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재빨리 실장화를 벗기고 실장 하이힐을 신긴다. 

“너 진짜 세레브하다. 한번 걸어볼까?”

A는 그렇게 말하며 들실장의 등을 떠민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버틸 수나 있을 거 같은데 ,익숙치 않은 하이힐의 충격이 척추를 때리면서 부리진 갈비뼈의 통증을 배가시킨다. 들실장은 죽을 기분을 떠나서 진짜 죽을 거 같다.

<데에에에에… 죽을 거 같은데스.>
“원래 세레브하다는 것은 그런거야. 알고 있잖아?”

A는 끝까지 시침을 뚝 뗀다. 그리고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지도하기 시작한다. 턱은 치켜들 것. 척추를 곧게 세울 것. 발꿈치부터 걷지 말 것. 물론 그것을 이루는 마법의 단어는 세레브이다. 그런 정자세로 걸어본 역사가 없는 들실장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마다 

“너 정말 세레브하다!”

라는 말을 A가 하는 바람에 다시 욕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걸음연습을 시키고 난 후, 계획대로 공원으로 향한다. 물론 이 때는 조심히 들고 간다. 들실장은 또 금세 우쭐해진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한 A와 들실장. A는 다시 들실장을 내려놓고 걷게 시킨다.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너 걸음걸이가 세레브하지 못하다.”

라는 말을 던지는 A. 들실장은 죽을 거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워킹을 계속한다. 주위에는 점점 들실장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자, 그럼 너의 세레브함을 저 미천한 들실장들에게 보여주자!”
<데프프프프. 와타시의 세레브함을 보면 다들 파킨하는데스!>

들실장은 자신있게 워킹을 시작한다. 숨 쉬기가 힘들고, 척추에 충격이 쿵쿵 와닫는 고통이 들실장의 얼굴을 굳게 만들지만 애써 웃으면서 공원에 모여있는 들실장들 사이로 걸어간다. 들실장들의 멍청한 표정을 보니 고통도 참을만하다. 들실장은 데프프 웃으며 계속 나아간다. A는 그 모습을 촬영하면서 슬쩍 숨는다. 

들실장들의 눈에는 시기와 질투가 넘실댄다. 그 시선을 알아챈 세레브실장은 무심코 피식 비웃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들실장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세레브실장은 도망치려고 하지만 하이힐때문에 뛰지 못한다. 들실장이 태클을 한다. 이미 부러진 갈비뼈에 또다시 충격이 온다. 세레브실장은 비명을 지르면서 똥닌겐을 찾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똥닌겐은 보이지 않는다. 세레브실장은 마구 뜯기기 시작한다. 드레스가 찢어진다. 하이힐이 벗겨진다. 안쪽의 코르셋을 탐하는 들실장도 있지만 이건 사람 손으로 조인 것이라 실장석의 힘으로는 벗겨지지 않는다. 코르셋을 벗기지 못해 화가난 들실장은 마구 밟기 시작한다. 세레브실장은 고통속에서 몸부림친다.

이 모습을 즐겁게 A가 촬영한다. 독라가 된 세레브실장을 가지고 가려는 들실장들이 보인다. 운치굴노예로 쓰려나보다.  A는 캠코더를 들고 세레브실장에게로 향한다. 들실장들은 재빨리 도망가고 세레브실장은 뒤늦게 나타난 A에게 화를 낸다.

<테에에에에에에!!! 쿨러…. 노예닌겐!!! 왜 이제서야 나타난데스!!!!>
“아, 그럴 수도 있지. 세레브하지 못하게 소리를 왜 질러?”
<미친데스?! 여기까지 와서 세레브인데스?!>

A는 크게 웃으며 답했다. 

“나는 너의 세레브함을 보고 사육실장으로 선택한거였잖아? 그럼 끝까지 세레브했어야지.”

A는 녹화를 종료하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테에에에에에!! 똥닌겐!!! 와타시를 데려가는데!!!!>

뒤에서 세레브실장의 비명이 들리지만. 알 게 뭔가. 이제 이 영상들을 편집해서 유투브에 올리면 된다. 그 전에 집에 남겨놓은 스테이크나 먹어야지. A는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두루마리 쓰레기장

 


-삐익! -삐익! -삐익

시끄럽게 울려대는 부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데스우- 데스-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들 힘에 겨운듯, 얇은 신음을 내밷는다. 그것은 짝귀도 매한가지였다. 오른쪽 귀가 날라가서 다들 짝귀라고 부르는 통에 결국 자기 자신도 짝귀라는 이름을 받아버린 들실장이었다. 짝귀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 옆에서는 자실장들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짝귀는 조심스럽게 뚜껑에 물을 따라 한 모금을 마셨다. 밤새 말랐던 자신의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느낌을 느꼈다. 그 옆 그릇에 조심스럽게 물을 가득 채워놓은      짝귀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허리를 풀어주었다. 

<테에… 마마?>
<데… 장녀, 깼는데스까. 미안한데스우- 더 자는데스.>
<아닌테치… 마마 나가는 거 보는테치.>
<데스우… 참으로 착한 자인데스. 장녀는 와타시의 보물인데스.>

짝귀는 자신을 배웅하려는 장녀를 뭉클하게 쳐다보다가 꼬옥 안아준다. 장녀는 그런 짝귀의 품에 안겨 기분좋은듯 테프프프프-하고 웃는다. 짝귀는 품에서 장녀를 떼놓은 후에 장녀에게 말했다. 와타시가 없으면 장녀가 다른 이모토챠들을 챙겨야하는데스. 아침에 일어나면 저기 떠 놓은 물을 마시고 상자에서 푸드를 두개씩 꺼내먹는데스. 해씨가 높이높이 떠있으면 푸드를 하나씩 먹는데스. 하우스에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는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짝귀의 말을 들었다. 매일같이 하는 말이지만 매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실장석이다. 짝귀는 장녀를 다시한번 안아준 뒤 집을 나섰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짝귀는 문을 닫고 돌로 단단하게 괴어둔다. 혹시라도 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단단하게 고인 돌을 확인한 후 짝귀는 봉투를 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아갔다. 자기가 가는 곳으로 실장석들이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익숙한 얼굴도 몇몇 보인다. 서로 꾸벅거리며 인사를 나눈다. 누군가 짝귀의 등을 툭하고 친다. 짝귀가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다. 

<삐삐상인데스.>
<그런데스. 오마에도 좋은 아침인데스.>
<데에… 정말 좋은 아침인데스까.>
<데프프프… 닌겐들은 항상 좋은 아침이란 인사를 해야하는데스. 사육실장으로서 당연한 말인데스.>
<데스우… 알겠는데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삐삐상도 좋은 아침인데스.>
<데프프프… 오늘도 같이 하지 않겠는데스? 오마에랑 하는 게 손발이 잘 맞는데스.>
<그러는데스. 와타시도...>
“야- 똥벌레들! 빨리빨리 안움직여!”
-빠앙!!
<데갸갸갸갸갸!!>
<귀 터지는데스우!!!>

아는 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실장석들에게 사이렌을 울리며 외치는 청색 작업복의 남자가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걸음을 서두르는 짝귀와 삐삐였다. 그렇게 달린 실장석들에게 보인 것은 거대한 하얀 봉투의 산이었다. 남자는 확성기로 소리를 질렀다.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작업 시작해라! 똥벌레들!!”
<데- 데스우!>
<어서 시작하는데스!>
<데갸갸갸갸!>

녹색의 파도가 흰색의 산을 부수었다. 흰색의 산은 초록색 파도에 휩쓸려 점점 깎여나갔다. 초록색 파도 속에 있던 짝귀와 삐삐도 그 중 하나였다. 재빠르게 봉투 하나를 둘이 들고 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짝귀는 주변의 돌을 이용해 봉투를 주욱 찢었다. 삐삐는 봉투를 뒤집어 쓰레기를 쏟아냈다. 짝귀와 삐삐는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조각이 보였다. 짝귀는 봉투에 그것을 담는다. 주황색 병뚜껑이 보였다. 삐삐가 주워 봉투에 담는다. 

실장석은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해산물을 캐내게 시키려고 해도 힘이 너무 없다. 논에 피를 뽑게 하려고 해도 벼와 피를 구별하지 못한다. 가사노동을 시킬거면 차라리 무선청소기가 낫다. 하나하나 밀려나던 실장석이 구원받은 곳은 쓰레기장이었다. 모든 쓰레기들이 모이는 이곳, 여기서 실장석들이 하는 일은 다양했다. 짝귀가 일하는 그 곳은 일반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일반쓰레기는 다 태워버린다. 하지만 플라스틱이라던가 비닐등을 소각로에 넣으면 다이옥신이 생긴다. 이를 막으려면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다 걷어내야 하지만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결국 일이 맡겨진 것은 실장석이었다.

일반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은 제일 단순한 일이었다. “단단한 쓰레기랑 봉투랑 같은 비닐은 전부 뺄 것.” 실장석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실장석이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실장석들은 쓸모없는 똥벌레에서 그나마 쓸모있는 똥벌레가 되었다. 

짝귀와 삐삐는 바삐 손을 놀리며 쓰레기를 정리해담았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를 가져와 봉투를 깠다. 쓰레기를 정리하던 삐삐는 문득 생각났다는듯 짝귀에게 말을 걸었다.

<짝귀상, 들은데스?>
<무엇을 말인데스.>
<여기서 일을 잘하는 자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스.>
<데에… 그런데스까.>
<더 많은 푸드와 더 따뜻한 집이라고 했는데스.>
<데에…>
<데프프프… 거기로 가면 와타시의 자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인데스. 와타시의 자처럼 귀여운 자들은 좋은 것을 먹어야…>
<데샤아아아아!!! 못해먹겠는데스!!! 고귀한 와타시가 할 일이 아닌데스!!! 똥닌겐은 어서 나오는데샤아아!!!>

쓰레기장은 적막감에 휩쓸렸다. 소리를 지른 실장석은 씩씩거리다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다른 실장석들을 보며 움찔했다. 자신을 바라보면 표정은 한결같았다. 못볼 것을 봤다는 표정. 실장석은 발끈하여 외쳤다. 

<무...뭘보는데샤!! 어서 똥닌겐은 앞으로 나오는데샤!!!>
“왜 작업을 안해. 똥벌레새끼들아.”

작업복의 남자는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실장석은 남자를 보며 씩씩댔다. 남자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남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실장석을 바라보았다. 

<똥닌겐! 어서 와타시를 모셔가는데샤!! 와타시는 여기 있을만한 자가 아닌데스!!>
“흐음… 간만인가.”
<뭘 보고만 있는덹?!>

한참 열변을 토하던 실장석의 배에 남자의 워커가 박혔다. 실장석은 5m를 날라가다가 떨어져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다른 들실장에 부딛혀 더 이상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부딛친 다른 들실장은 화들짝 놀라며 굴러온 실장석에게서 떨어진다.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가는 소리가 실장석들 사이에 선명하게 울렸다. 초록색 바다가 남자가 갈 길을 가로질러준다. 남자의 목적지는 그 실장석이 있는 곳이었다. 콜록거리던 실장석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데...데극… 오...오마에… 이런 짓...이런 짓을 하고서도…>
“미안하지만 나 니가 하는 말 하나도 모르거든?”
<데...데갸아아악!!>

남자는 손에 든 몽둥이로 실장석을 후려쳤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속은 텅텅 빈 몽둥이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너무 패는 맛이 없어 인기가 없었지만 끝부분에 무게추를 달아 보강을 했던 것이 먹혀 학대파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몽둥이였다. 사람을 때리면 살짝 아픈 정도였지만 실장석에게는 죽을만큼 아픈, 하지만 죽지는 않을 아픔을 선사해주었던 것이다. 지금 맞고 있는 이 실장석도 그렇게 남자의 몽둥이찜질에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데...데스우!!! 잘못했는데스!!!>
<다시는 안그러는데스!! 용서해주는데스!!>
<미안한데스!!! 죄송한데스!! 닌겐상!!>
<닌겐사마!!!>

넓은 쓰레기장에 울리는 것은 남자의 몽둥이가 실장석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맞는 실장석의 비명뿐이었다. 한참을 두들기던 남자는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몽둥이를 허리춤에 다시 끼워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마대자루를 꺼내 실장석을 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는 주위에 있던 애꿎은 실장석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고 있어!! 어서 일하지 않고!!”
<데갸악!?>
<데...데스우!!>
<일하는데스!!>
<어서 끝내는데스!!>

실장석들은 허둥지둥 자신들이 뒤적거리던 쓰레기더미로 달려들었다. 짝귀와 삐삐도 머리를 쳐박고 얌전히 쓰레기를 분류할 뿐이었다. 한참동안 쓰레기장에서는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 분류한 쓰레기들은 파여진 구멍에 잘 넣어놓는다. 그러면 닌겐들이 무시무시한 노란색의 팔로 쓰레기들을 들어서 나를 것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흰색의 산이 정리된다. 실장석들은 각자의 봉투에 자신이 분류한, 태우면 안되는 쓰레기들을 담아 남자의 앞에 차례대로 줄을 서있다. 짝귀는 살짝 무거워진 자신의 봉투를 흐믓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삐삐도 매한가지였다. 

<데프프프… 이정도면 오늘도 충분할 거 같은데스.>
<그런데스. 자도 배불리 먹고 보존식도 충분한데스.>
<보존식? 오마에 그런 것도 하는데스?>
<당연한 거 아닌데스. 모아도 부족한 것이 식량인데스.>
<데퍄퍄퍄퍄퍄!!! 매일 일하면 이렇게 푸드가 나오는데 무엇을 걱정하는데스?>
<와타시는 와타시의 방식이 있는데스.>

짝귀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삐삐는 멋적은듯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짝귀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참을 지나 짝귀와 삐삐의 차례가 되었다. 남자의 앞에 모아온 재활용 쓰레기들을 부어 놓고 빈 봉투를 남자 앞에 내민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하지 않고 모아놓은 쓰레기만 볼 뿐이었다. 잠시 뒤 남자는 말했다. 

“야. 거기 둘.”
<데스?>
<무슨 일인데스?>
“끝날 때까지 남아라. 말 못알아들으니까 구석에 처박혀 있어.”
<데에… 무슨 일인데스.>
<와타시도 모르는데스…>

짝귀와 삐삐는 남자가 가리킨 구석에 들어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쑥덕댔다. 한참이 지나 모든 실장석이 다 간 뒤에 남자는 짝귀야 삐삐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한 뒤 어디론가 향했다. 남자의 뒤를 따라 헐레벌떡 쫒아간 둘은 맞이한 곳은 남자의 사무실이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검은색 네모난 것을 들었다. 몇번을 툭툭 치고 흔들다가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짝귀와 삐삐를 향해 말을 건다.

“내 말이 들리나.”
<드...들리는데스.>
<잘 들리는데스.>
“잘 듣고 내가 지적하는 놈부터 천천히 얘기해라.”

남자는 말을 시작했다. 너희는 꽤 잘하니까 선택권을 주겠다. 여기 내 밑에서 일하지만 관리실장이 되어서 쓰레기 분리하는 녀석들을 감시하는 것과 재활용 파트로 넘어가서 재활용 분리 일을 하는 것. 둘 다 여기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지만 재활용쪽은 머리가 좋아야하고 관리실장은 다른 실장석의 미움을 받아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자, 어떤 걸 선택할거냐.”
<데… 지금 바로 선택해야하는데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데에… 그럼 와타시는 여기 남아서 관리실장을 하는데스.>
<삐삐상…>
<쓰레기를 뒤지는 건 이제 싫은데스! 기회가 왔으니 잡아야 하는데스!>
<데에… 와타시는 그럼 재활용으로 가는데스. 와타시는 다른 자들하고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데스.>
“알았다. 내일 중으로 너희들은 새로운 곳으로 집을 옮긴다. 오늘 다 미리 챙겨두고 내일 가족이랑 다 나오도록.”
<알겠는데스.>
<데… 오늘 푸드는…>
“아, 맞다. 여기. 오늘은 특별히 가득 주도록 하지.”
<감사한데스!>
“그리고 표식을 그려야겠다. 나는 니네 구별 못해.”

남자는 팔에다가 매직으로 별을 그려주었다. 푸드를 받고 남자의 사무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둘이었다. 둘은 아무말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약속이나 한듯 둘은 똑같이 멈춰섰다. 짝귀와 삐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스. 잘 지내는데스.>
<오마에도인데스.>

둘은 별 말없이 헤어졌다. 삐삐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짝귀는 간단한 인사 후 몸을 돌렸다. 딱히 말할 것도 없었다. 집을 향해 터덜터덜 돌아가는 짝귀는 그러했다. 어차피 실장석이다. 어딜가나 흔한 실장석. 여기서 못봐도 상관없고, 내일 당장에라도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실장석이다. 공원에서 살아온 짝귀에게 실장석은 그런 것이었다. 

문에 괴어놓은 돌을 치우고 문을 연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다. 짝귀는 밝게 웃으며 집에 들어왔지만 풍겨오는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둘러 본 방은 똥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장녀는 구석에서 삼녀를 껴안고 달래고 있었고 방 한 가운데서는 차녀가 마구 뒹굴며 똥을 뿌려대고 있었다. 방바닥을 뒹굴던 차녀는 짝귀가 돌아오자마자 똥으로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달려온다. 

<마마- 보고싶었던테츙->
<...장녀. 무슨 일인데스?>
<테엥… 마마…>

짝귀는 그런 차녀의 머리를 밀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게 한 뒤 장녀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저녁때까지 마마가 오지 않자 장녀는 밥을 꺼내 나눠먹으려고 했다. 차녀가 밥을 더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장녀는 그런 차녀를 말려보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삼녀의 밥까지 뺏어먹은 차녀는 더 먹고 싶다고 난리를 부리다가 똥까지 뿌려 보존식과 물그릇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짝귀는 장녀의 말을 들으며 엉망이 된 집안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데퓨…>
<텟… 미안한테치…>
<테엣! 마마! 봉투에 푸드가 가득한테치! 역시 와타시의 마마인테츄->
<그 더러운 손으로 봉투를 만지면 각오하는데스.>
<텟?!>

차녀는 푸드로 가득찬 봉투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짝귀는 그런 차녀를 저지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마의 말에 차녀는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장녀와 삼녀도 처음듣는 마마의 목소리에 놀라 짝귀를 바라보았다. 짝귀는 차녀에게 다가갔다.

<오마에는 뭐인데스? 마마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얻어온 귀한 푸드에 운치를 뿌린데스?>
<텟… 테에…>
<방 안도 엉망인데스. 이걸 다 누가 치우는데스? 데스? 말 좀 해보는데스.>
<테에… 그...그러니까... 마마! 마마가 치워주는테치! 와타시는 아직 아가인텟ㅊ…>
<분충인데스. 와타시의 총구에서 나온 자가 분충이라니 용서가 안되는데스!>
<테...테챠아아아아!!!>

짝귀는 차녀에게 달려들었다. 차녀는 그런 짝귀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짝귀는 차녀를 잡고 옷을 벗겼다. 차녀는 옷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이내 옷이 벗겨지고 말았다. 실장복은 다른 곳에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 곱게 빼앗았지만 차녀의 머리카락은 달랐다. 찌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피에서의 강한 고통이 차녀에게 느껴졌다. 차녀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테챠아아아!! 와타시의 머리카락!!! 와타시의 세레브한 머리카락이!!!>
<이젠 오마에는 와타시의 자가 아닌데스.>
<똥마마- 이런 무례를 와타시가 용서할 거 같은테치!!!>
<오마에가 용서 안하면 뭐 어쩔 것인데스. 어서 와타시의 집에서 꺼지기나 하는데스.>
<텟?! 테챠아아아!! 아직 와타시는 아가인테츄!! 밤에 나가면 죽는테챠아아아!!>

짝귀는 비명을 질러대는 차녀를 옆구리에 끼고 장녀와 삼녀에게 말했다.

<장녀와 삼녀는 잠시 기다리면서 집을 좀 치우는데스. 와타시는 이 분충을 버리고 오는데스.>
<텟치… 알겠는테치!>
<마마 무서운테치…>
<그런 말 하면 안되는테치. 마마는 와타시타치를 아끼는테치. 못된 건 저 분충인테치.>
<테...테챠아아!! 누가 분충인테치!! 오마에들이 분->
<분충은 이제 닥치는데스.> 

자신에게 겁을 먹은 삼녀를 늠름하게 달래주는 장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본 짝귀는 페트병과 차녀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 수돗가에 도착한 짝귀는 차녀를 버려두고 물을 뜨기 시작했다. 물을 다 뜬 뒤에는 차녀를 버려두고 집으로 향했다. 차녀가 뒤에서 자신을 쫒아오면서 뭐라 말하자 짝귀는 차녀를 돌아보았다. 차녀는 짝귀가 다시 자기를 보자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대며 테츙- 했다. 

<테프프프… 똥마마가 다시 와타시에게 메로메로->
<한 마디 해주는데스. 독라가 그런 짓을 하면 오마에는 못살아남는데스. 와타시는 자비로우니 다리 하나로 봐주는데스.>
<텟- 테엣?! 아...안되는테치! 그러면 안되는테-테챠아아아!!!!>

차녀의 다리 하나를 뽑아버리고 아무렇게나 던진 짝귀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차녀는 울부짖으며 짝귀를 쫒아가려 했지만 한쪽만 남은 다리로 성체를 쫒아간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울부짖는 차녀를 뒤로하고 집에 온 짝귀. 자신이 치운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치워진 집을 보며 장녀와 삼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짝귀는 장녀와 삼녀를 한번씩 쓰다듬어주고는 푸드를 다섯개씩 나누어주었다. 장녀와 삼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녀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짝귀를 바라보았다.

<마마…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테치?>
<물론인데스. 오늘은 특식을 받았는데스. 내일은 새 집으로 옮겨야하니 짐을 좀 줄일 필요도 있는데스. 많이 먹고 쑥쑥 크는데스.>
<테에… 마마 고마운테치!>
<마마가 최고인테츙->

장녀와 삼녀는 신나게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짝귀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챙겨가야할 것들을 챙기는 짝귀다. 이제 내일이면 이 집에서도 떠나야한다. 짝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집안 곳곳을 둘러본다. 

<데에… 이제 자야할 시간인데스. 자들은 일찍 자는데스. 내일은 마마와 같이 일찍 일어나는데스.>
<알겠는테치! 안녕히 주무시는테치!>
<잘자는테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 짝귀는 그렇게 다짐하며 장녀와 삼녀의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도 잠에 빠졌다.

P.S.

<테...테엑… 또...똥마마!!!>
<데에… 뭐인데스?>
<텟치?>

미도리는 버려진 사육실장이었다. 자를 가졌다는 흔한 이유였다. 보건소에서 소각로와 여기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다. 살아야한다. 어쨌든 살아야한다. 그래야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는 기꺼이 쓰레기장행을 택했다. 그렇게 택한 첫날밤에 왠 독라분충이 찾아온 것이다.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마에는 뭐인데스?>
<텟… 마마… 마마는 어디있는테치?>
<오마에의 마마를 왜 여기서 찾는데스? 여기는 와타시의 집이니 다른 곳으로 꺼지는데스!>

괜히 이상한 독라때문에 잠에서 깼다고 생각한 미도리는 화를 내며 문을 닫았다. 밖에서 시끌시끌하게 구는 녀석도 이내 지쳤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도리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할테니 말이다.











저실장만 애호합니다 1~2 (완)




“하암…”

나는 쩍쩍 벌어지는 입을 간신히 닫으며 창고로 향했다. 나의 귀여운 애완저실장들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꼬물거리는 녀석들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창고에 들어서니 판 위에서 열심히 꼬물거리는 녀석들이 보인다. 대충 20마리 정도 되려나. 다들 잘먹고 건강한 저실장들이다.

“안녕, 귀여운 저실장들.”
<안녕한레후!>
<주인사마인레후!>
<와타시 배고픈레후!>
“뭐? 아직 밥 안먹었어?”
<그런레후! 프니프니도 바라는레후!>
“이새끼들이…”

나는 이를 갈며 옆에 있는 작은 상자를 내려쳤다. 레헷 하는 소리와 함께 앞머리가 없는 엄지실장들이 뛰쳐나왔다. 엄지들은 나의 화난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모습이다. 

“이 개새끼들이… 내가 분명 아침에 일찍일찍 일어나서 우지들을 챙기라고 했어 안했어?”
<해...했는레찌! 와타시가 피곤해서 그런…>
“변명을 해?!”

나는 엄지 하나를 들어 쥐어 짰다. 레에에에- 거리던 녀석의 육편이 나머지 녀석들에게 후두두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녀석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팬티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빨리 가서 우지들 챙겨라. 죽고 싶지 않으면.”
<레찟! 알겠는레찌!>

엄지들은 그제서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실장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재빨리 프니프니부터 시작한다.

<느린레후! 똥엄지주제에 왜 이렇게 늦은레후!>
<레에… 미안한레찌! 와타시가 열심히 프니프니 해주는레찌!>
<레흣… 거기인레후! 좋은레후! 프니프니후!>

저실장은 프니프니를 받아 기분이 좋은 지 물똥을 싸댄다. 물론 치우는 것도 엄지들의 몫이다. 세 마리가 열심히 저실장들을 프니프니하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마리는 저실장들이 먹을 것을 준비한다. 실장푸드에 물을 뿌리고 열심히 짓이기면 훌륭한 저실장용 먹이가 된다. 세 마리가 그럭저럭 할만한 일이었지만 좀 전 한마리가 죽은 것 때문에 두 마리가 힘겹게 하는 모습이다.

<레엑...레엑…>
<어서 젓는레찌! 서둘러야하는레찌!>

그렇게 만들어진 저실장용 먹이를 저실장들이 맛나게 먹는 것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그렇게 즐겁게 저실장들을 보고 있는데 엄지 한마리가 붕쯔거리는 것이 보인다. 불쾌하다.

“왜? 쓸데없는 소리면 죽인다.”
<아...아닌레찌! 저기 고치가 흔들리는레찌!>
“그래?”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고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게 흔들리다가 점점 격렬해지더니 이내 고치가 깨졌다. 깨진 고치에서 나온 엄지는 붕쯔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손씨발씨가 다 자란레찌! 이제 와타시도 엄지인레찌!>
<치프프프프프…>
<레찌? 앞머리 없는 주제에 와타시를 비웃는레찌? 레쨔아아!!>

막 나온 엄지를 보며 엄지들이 비웃기 시작하자 막 나온 엄지는 당황하며 화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엄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막 나온 엄지는 그것을 다른 엄지들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는지 다른 엄지들을 비웃으려 했지만 나는 망설임없이 엄지의 앞머리를 뽑아버렸다.

<레쨔아! 레...레…? 와타시의 앞머리가…?>
“교육시켜라.”
<알겠는레찌! 오마에! 이리 오는레찌!>
<레… 레....>

앞머리가 뽑힌 엄지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듯 앞머리만을 더듬을 뿐이었다. 그런 엄지를 다섯 마리의 엄지들이 린치하기 시작했다. 

<말이 말같지 않은레찌?>
<오라는 말이 안들리는레찌!>
<렛! 렛! 때리지마는레찌! 아픈레찌!>
<아프라고 때리는레찌!>
“그만, 그만 때리고 교육이나 시켜라.”

적당한 순간에 개입하여 엄지들을 멈추게 한다. 일시킬 엄지들을 구하는 것도 일이니까. 쉽게 죽이게 두어서는 안된다. 내 말이 끝나자 엄지들은 씩씩대며 린치를 중단한다. 두들겨 맞던 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레에에… 와타시 닌겐상에게 이쁨 받으려고 손씨발씨 얻은레찌… 그런데 왜 와타시를…>
“푸. 내가 좋아하는 건 저실장이지 엄지실장이 아니야. 니 대가리가 멋대로 굴러간 게 잘못이지.”

나의 말에 엄지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지가 울먹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엄지를 향해 다른 엄지가 다가왔다. 

<오마에! 또 맞고 싶은레찌?! 어서 오는레찌!>
“그래. 어서 꺼져.”
<레에에에…>

울상인 엄지는 터덜터덜 선임 엄지를 쫒아갔다. 앞으로도 많은 구박을 받을 녀석이겠군. 나는 엄지들을 보며 기분이 안좋아진 것을 저실장을 지켜보며 풀어냈다.

“역시 저실장이 제일 귀여워.”
<프니프니후->


저실장 애호력을 충분히 채운 나는 밖으로 향했다. 마당 텃밭에는 여러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다 심심풀이로 먹는 것들이다. 방울토마토라든가, 오이라든가, 가지라든가. 나는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따먹었다. 달달한 게 올해도 괜찮은 것이다. 다만 잎이 조금씩 시드는 게 영양분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거 같다. 나는 텃밭 구석에 놓여져 있는 박스를 발로 찼다. 

“이 새끼들아. 일 똑바로 안해?”
<테에에엥…>

머리와 몸을 부여잡으며 나오는 자실장들이다. 하나같이 대머리다. 저실장을 돌보던 엄지실장들이 자실장이 되면 쳐박아 놓는 곳이다.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뒤지고 싶냐? 응?”
<아닌테찌! 잠깐 쉬고 있던테찌!>
<그런테찌!>
<일하는테찌!>

자실장들은 이리저리 굴러대며 일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재빨리 수돗가로 달려가는 녀석들과 운치굴로 달려가는 녀석들이 보인다. 운치굴에서는 멍하니 앉아있는 독라의 자실장들이 보였다. 

<오마에! 어서 운치를 퍼오는테찌!>
<텟?! 아...알겠는테찌!>

옷과 머리카락만으로 서열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편한 일이다. 그래도 옷이라도 있는 녀석은 옷도 없는 녀석을 마구 부려먹는다. 운치굴에 쳐박혀 있다는 것도 감점 요인이겠지. 운치굴 독라녀석들은 운치를 열심히 손으로 퍼다 자실장이 가져온 바가지에 담는다. 그 바가지를 곱게 올려주는 녀석들이다. 대머리 녀석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 바가지를 받는다.

<테에에에엥… 와타시도 물씨를 하고 싶은테찌!>
<닥치는테찌! 와타시도 안되는 걸 오마에가 뭘 하는테찌!>

그렇게 운치굴에서 퍼다 나른 운치들을 작물 밑에 조금씩 퍼다 넣는다. 실장석들의 소화효율은 심각하게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운치에 많은 영양분이 남아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같이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비료대용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냄새 나서 싫다고 비료를 사서 쓰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운치를 넣으면 그 뒤로 물을 떠온 자실장들이 물을 준다. 계속 지켜본 바에 따르면 물을 나르는 쪽이 좀 더 안에서 서열이 높은 거 같다. 뭐 그래봐야 자실장들이지만.

“새끼들… 게으름 피면 밥 없을 줄 알아.”
<텟! 아닌테스! 와타시타치는 열심히 하는테스!>
“판단하는 건 나란다. 새끼들아. 그리고 너는 좀 큰 거 같다?”
<텟?! 아닌테스! 와타시는 자실장인테스!>
“개소리하지말고. 너는 이제 중실장이네. 이리 와라.”

중실장이 된 자실장의 뒷덜미을 붙잡고 구석의 울타리로 향한다. 나에게 붙잡힌 녀석은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뭐라하지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내가 보이니 울타리로 달려오는 몇마리의 독라 성체실장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초록색 눈깔이다. 그 사이로 녀석을 던져준다. 

“야! 신입이다!”
<텟?! 안되는테스! 와타시의 옷인테…>
<시끄러운데스!>
<어서 내놓는데스!>

초록색 눈깔의 성체실장들은 새로온 녀석의 옷을 뜯어냈다. 자기가 입어서 조금이라도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것이겠지만 여러마리가 달려들면 찢어지는 게 당연한 실장복이다. 산산조각이 난 실장복에 화가 난 녀석들은 새로 온 녀석을 밟기 시작한다. 녀석은 테에에엥하고 울며 몸을 움크린다.

휘휘 둘러보지만 오늘은 없는가보다싶어 가려는데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울타리 저 너머에 있던 한 놈이 뒹굴고 있는 거 아닌가. 울타리를 타고 넘어 눈깔을 까보니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곧 출산이네. 나는 재빨리 대야에 물을 담아왔다.

<데힛… 데힛…>
“자, 어서 낳으라고.”
<아...안되는데스! 닌겐상이 있을 때 낳으면 안되는데스! 뎃!>

헛소리를 하지만 이미 출산이 임박한 녀석은 어쩔 수 없이 대야에 걸터앉는다. 총구가 벌어지고 비명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윽고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저실장들이다. 

<텟! 와타시가 나온테찌!>
<마마! 세레브한 와타시가 나온테찌!>
<테츄웅? 닌겐상인테찌?>

대충 다 낳았나? 나는 대야를 들고 울타리를 넘어간다. 출산을 마친 녀석은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나를 쫒아온다.

<와타시의 자들을 내놓는데스! 와타시의 자인데스!>
“거 참 시끄럽네. 내꺼야.”
<웃기지 마는데샤!!!! 똥닌겐!!!>

나에게 저실장을 빼앗긴 녀석은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울타리를 쾅쾅 치지만 튼튼하게 지어진 울타리는 부서질 기미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야에서 점막에 쌓인 자실장들을 꺼내어 지켜봤다. 

<테찌? 어서 벗겨주는테찌!>
<텟…! 굳어지는테찌! 안되는테찌!>
<손씨발씨가 사라지는테찌! 텟!>

자실장들은 다급하게 점막을 벗겨달라 소리치지만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다. 이윽고 단단하게 굳은 점막과 저실장들만 남았다. 저실장들은 흐느끼고 있었다.

<레… 왜 안벗겨준레후?>
<손씨발씨가 사라진레후!>
<레에에에에엥…>

왜 그럴까. 귀여운 저실장이 되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저실장을 나의 애호소로 가져갔다. 애호소에는 귀여운 저실장들이 엄지들에게서 프니프니를 받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로운 저실장 3마리를 내려놓았다. 엄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 마리 추가다. 잘 돌봐줘라. 안돌봐주면 알지?”
<레… 알겠는레찌…>
<레에에엥… 와타시 팔 빠지는레찌…>
<닥치는레찌!>

저실장들은 끊임없이 프니프니를 요구하고 끊임없이 먹어댄다. 일과가 먹고싸기가 전부인 삶이 저실장인 것이다. 하지만 귀여우니까 그정도쯤은 얼마든지 해줄 수가 있다.

<와타시도 손씨발씨가 나와서 얼른 닌겐상의 사육엄지가 되고싶은레후!>

한 저실장이 자신있게 외친다. 엄지들은 그 말을 듣고 피식거리다 나의 매서운 눈초리에 고개를 숙인다. 저실장의 배를 슬슬 긁으며 나는 말을 걸었다.

“나는 저실장이 더 귀여운데?”
<레후! 와타시가 엄지가 되면 더 귀여워지는레후!>
“흐음… 안그랬으면 좋겠어.”
<똥닌겐은 말이 많은레후!>

저실장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사실인걸. 어쩔 수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하고 엄지들에게 일러둔다.

“잘 키워. 혹시 몰라? 엄지가 될 수 있을지도.”
<레치치치치치… 알겠는레치!>

엄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프니프니를 시작했다. 나도 이제 내 할 일을 해야겠지.











Into The False Stone

 

#

“...그러니까 내가 선택된 이유라는 게…”
“그렇네. 어찌보면 자네가 이번 일에서는 최고 적임자일 수도 있겠지.”

무거운 공기가 두 사람을 짖눌렀다. 소파에 앉아있는 한 남자는 깍지를 낀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댄 채 분노를 억눌렀다. 마주 앉아있는 노인은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앞주머니를 눌러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노인이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찾지 못한 노인은 깍지 낀 남자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남자는 진작에 눈치챘지만 아까부터 거슬리는 말을 지껄이는 노인에게 원하는 것을 가져다 바칠 이유는 없었다. 결국 쓴웃음을 지은 노인은 입에 문 담배를 고이 담배곽에 넣었다.

“거 참, 야박한 친구군.”
“불러서 하는 말이 그따위인 친구는 애초에 둔 적이 없소만.”
"애초에 친구가 없는 게 아니고?"

남자와 노인은 다시 서로를 노려본다. 침묵이 둘을 감싼다. 침묵을 깬 것은 노인의 웃음이었다. 왼쪽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 사람들은 이것을 비웃음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울컥했지만 여기서 노인을 때릴 수는 없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간신히 가라앉힌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오른손을 내민다. 하지만 남자는 그 손을 받지 않는다. 머쓱해진 노인은 문으로 나가려고 한다. 문고리를 잡은 노인은 남자를 보며 말한다.

“우리에게 자네는 꼭 필요한 인재일세. 세상에는 모두가 하나쯤을 쓸모가 있다고 하지 않나.”
“......”
“시간을 많이는 줄 수 없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도록 하지.”

노인은 그래도 문을 열고 나간다. 덜컹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잠시 울리는 소리는 듣던 남자는 탁자를 후려친다. 그래도 남자의 화는 풀리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방은 남자가 뱉는 욕지거리로 넘치기 시작한다.

“씨발… 씨발!!!”

몇번을 외쳐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노인에게 모욕당한 자신이, 그럼에도 반박할 수 없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에 강한 욕망을 느낀다. 남자, 철웅은 깨달았다. 여기 오기 전부터 자신은 이 일을 해야만한다고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철웅은 좀 전 노인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아니, 지금 이 일로 몇번이나 여기에 오시는거에요. 아저씨!”
“...실장석은 유해조수 아니오? 처리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오.”
“그렇게 때려잡는 게 문제죠!”

한 남자가 파출소에서 경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철웅이었다. 그는 이 파출소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이유는 실장석 때문이었다. 철웅의 말처럼 실장석은 유해조수였다. 잡아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철웅이 잡는 방식은 너무나 잔인했다. 한번에 때려잡는 것이 아닌 거칠지만 한번에 죽지 않게, 최대한 고통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 잔인한 모습에 공원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고를 당했다. 파출소에서도 익숙하다는 듯이 키보드를 두들긴다. 딱히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신고가 들어온 이상 신고를 처리해야한다. 앞에 앉은 경찰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모습을 철웅은 멍하게 바라본다.

문득 파출소의 문이 열린다. 파출소의 모든 시선이 들어오는 사람에게 쏠린다. 노인과 검은 정장의 남자가 들어온다. 노인은 철웅의 모습을 보더니 검은 정장의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검은 정장은 파출소장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내밀며 뭐라 말한다. 파출소장은 벌떡 일어난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철웅을 제외한 파출소의 모두는 긴장한다. 철웅은 느긋하게 상황을 구경중이었다. 그런 철웅에게 노인이 다가온다. 

“안녕하신가. 김철웅군.”
“...당신은 누구요?”
“자네에게 제안을 하러 온 남자지.”

제안이라니. 철웅은 호기심과 경계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 사이 파출소장은 철웅의 앞에 있던 경찰에게 뭐라 말을 건넨 후 철웅에게 말한다.

“가셔도 됩니다.”
“...음.”

철웅은 느긋하게 몸을 일으킨다. 노인은 그런 철웅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파출소의 문을 나선다. 철웅이 따라 나가자 검은색 리무진이 파출소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정장의 남자가 문을 연다. 노인은 당연하다는듯이 탄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철웅에게 말한다.

“타시지요.”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 철웅은 살짝 긴장했지만, 이내 태연하게 리무진에 탄다. 문이 닫치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철웅은 시트에 몸을 묻는다. 자신이 타봤던 차 중에 제일 푹신한 시트였다. 눈을 감는다. 노인도 그런 철웅을 딱히 제지하지 않는다. 

차가 서고 문이 열린다. 철웅은 졸린 눈으로 밖으로 나간다. 따가운 햇살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노인이 성큼 앞장선다. 철웅은 그런 노인을 따라 들어간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 전부 노인에게 인사를 한다. 노인은 인사를 받는둥마는둥하며 자신의 갈길을 갈 뿐이었다. 이윽고 노인은 어느 방문을 열고 그 방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간 철웅은 방문을 닫았다. 큰 방이었다. 한 벽을 차지하는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고 저쪽에는 커다란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커다란 소파 두 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노인은 한 소파에 털썩 앉아 철웅에게 반대편을 가리킨다. 철웅은 얌전히 반대편 소파에 앉는다.

“김철웅군. 자세는 훌륭한 학대파로군?”
“잘 모르겠소만, 개인적으로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오.”

노인은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며 철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철웅은 대답했다. 철웅의 대답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렇다. 자신은 훌륭했다. 데스넷에서도 자신의 학대 영상이 베스트 영상으로 올라간다. 철웅의 학대를 보는 학대파 모두는 철웅을 찬양했다. 철웅은 자신의 학대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자부심을 슬쩍 넘기며 질문을 던졌다.

“딱히 직업이 있거나 하진 않군?”
“...그렇소.”
“그렇다면 적임이군.”

서류철을 덮으며 노인은 철웅을 바라본다.

“일을 해줬으면 하네만.”
“거절하오.”

철웅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노인의 흰 눈썹이 꿈틀댔다.

“일의 내용도 듣지 않고 거절하는 것인가?”
“관심없소. 이만 집에 가도 되오?”
“자네에게는 부양해야하는 홀어머니가 있지 않나? 보수는 섭섭치 않게 줄 생각이네만.”
“그건 노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오.”

철웅은 냉정하게 잘랐다. 노인은 철웅의 아픈 부분을 찔렀지만 철웅은 내색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철웅이 일을 안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내몰리게 되었다. 결국 완전히 내몰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에 빈대처럼 붙어살며 실장석을 학살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철웅의 내력은 노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노인은 철웅을 비웃는다.

“크크크… 그럼 자네와 참피가 다를 게 뭔가?”
“하?”

철웅의 눈썹이 꿈틀한다. 이 미친 노인네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지? 철웅은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비웃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을, 순간 머리에 피가 확 몰리는 느낌이었다. 철웅은 고함을 지르려고 했지만 노인이 말을 잇는다.

“자네는 무능력하지. 지금 나이에 변변찮은 직업도 없어. 홀어머니가 간신히 자네를 먹여살리는데,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지.”
“이… 이…!”
“보다못한 자네의 어머니가 일자리를 구해주어도 자네는 하루면 때려치지. 그러고서 하는 일이 겨우 실장석을 때려잡는건가? 푸흐흡… 차라리 구제업체라도 들어가지 그랬나?”
“......”
“아, 아니지. 들어갔었지. 다만 거기서도 습관적으로 학대를 하다가 능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짤렸지. 취미와 일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건가? 응?”

노인의 말은 철웅은 잔인하게 후벼댔다. 움켜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철웅은 앞의 노인이 두려웠다. 자신을 어디까지 조사한거지?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친다. 철웅의 이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계속 지껄인다.

“자네가 이제까지 살았던 것만 보면 말일세. 자네는 참피보다 못한 인간일세. 공원에 사는 성체참피도 자기 먹을 거는 노력해서 찾는데, 자네는 자네 어머니 밥이나 쳐먹으며 살지 않는가? 응?”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요!”
“참피를 잡는 것일세.”

노인의 뜬금없는 말에 철웅은 어이가 나간다. 이제까지 자신을 모욕하던 사람이 기껏 자신에게 원한다는 게 고작 실장석을 잡는 것이라니. 넋이 나간 철웅에게 노인은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해준다.

“그냥 참피를 잡는 일이라면 자네를 찾지도 않았어.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닐세.”
“...그럼?” 
“참피의 행복회로라는 것을 알고 있나?”
“...참피놈들이 현실을 도피하는 거 말하는 거잖소.”
“맞네. 그럼 어디까지 도피할 수 있는 것일까?”
“아?”

철웅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다. 노인은 일어나 창문으로 향한다. 건물 옆에 있는 큰 공원이 보인다. 멀리서 햇살이 내려쬐는 푸른 공원을 보는 것은 언제나 눈을 즐겁게 한다. 노인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철웅에게 말한다. 

“우리는 말일세. 참피를 연구하고 있네.”
“참피 연구라니. 연구할 거리가 아직도 남아있었소?”

철웅은 노인의 진지한 말에 비웃음을 터트렸다. 철웅이 아는 한 실장석은 너무나 단순한 생명체였다. 벌써 DNA 분석까지 끝났다고 했던가. 소화기 구조도 단순하고, 행동도 단순하다. 그런 실장석을 아직 붙잡고 있다니. 철웅이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는 노인의 연구는 충분히 비웃을만 했다. 하지만 노인은 진지했다.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위석이라네.”
“위석?”
“자네는 위석이 무엇인지 아는가?”
“...참피들의 생명력 그 자체요.”
“맞네. 그 불가사의한 생명력은 위석에서 오지. 위석을 활성제에 담그면 몸을 반으로 갈라도 죽지 않아. 그럼, 그 위석은 대체 무엇으로 구성된 것일까?”
“......”
“성분은 이미 분석이 끝났네.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결정체야. 그렇지만 위석을 다이아몬드로 대체할 수는 없네. 위석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어!”

노인은 열정적으로 외친다. 갑자기 20년은 젊어진듯한 패기가 느껴진다. 노인의 패기에 움츠러드는 자신을 철웅은 발견했다. 철웅은 억지로 어깨를 펴고 노인에 맞서 소리쳤다.

“카오스 파워 아니오! 그건 누구나 아는...”
“그렇다면 그 카오스 파워를 분석해야지! 카오스 파워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러고 끝을 낼까! 그건 과학이 아니야! 과학자로서 그런 패배는 용납할 수 없네!”

철웅은 발작적으로 말을 내뱉었지만 노인의 패기에 묻혀버렸다. 철웅은 노인이 싫었다. 첫 인상도 별로였고, 아까 노인이 자신을 비웃던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철웅은 만난 지 얼마 안된 이 노인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노인은 자신과 다르다. 열정이 있고,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위석의 비밀이라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노인은 힘을 다 쏟아낸듯 아까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철웅을 바라본다. 차분해진 노인의 눈이 철웅을 바라본다. 철웅은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철웅을 원한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이제부터 본론일세. 외부에서 접근하는 건 이미 다 해봤네. 이제 남은 건 내부에서 침입하는거야.”
“내부…?”
“실장석의 행복회로. 우리는 그것을 타고 위석의 내부로 들어갈걸세.”

철웅은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철웅이 지금 당장 이해하기를 노인도 바라지는 않는다. 노인은 앞에 놓여진 물을 마셔 목을 축신 후 다음 이야기를 꺼낸다.

“실장석을 극한까지 몰아버린 다음에 실장석이 행복회로로 빠질 때 인간의 꿈으로 납치한다. 그런 다음에 인간의 꿈에서 다시 실장석을 극한으로 몰아넣을걸세. 거기서부터는 실장석의 행복회로를 타고 넘어가는거지. 행복회로를 타고 넘어갈때마다 계속 쫒아가는걸세. 그렇게 쫒고 쫒다보면 행복회로의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을걸세. 거기에 위석이 비밀이 있을 것이야. 나의 가설은 이렇네.”
“...하하, 너무 거창해서 할말이 없소만.”
“그렇겠지. 누가 들어도 처음 들으면 다 그 반응일걸세. 하지만 그렇기에 자네가 필요하지.”

노인은 고개를 젖치고 실소를 머금었다. 철웅은 그런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다. 

“...그러니까 내가 선택된 이유라는 게…”

#

“잘 결정했네.”

노인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노인의 손을 맞잡는다. 가볍게 흔든 노인은 철웅에게 손짓을 했다. 작은 방에 들어간다. 방 한가운데는 한 미니어처가 놓여져 있었다. 그 미니어처를 처음 본 철웅이지만 왠지 낮익은 장소였다. 노인은 미니어처를 뚫어지게 보는 철웅을 보며 슬쩍 웃는다.

“어디서 많이 본 공원이지?”
“...이건 설마?”

“자네도 익히 알고 있는 그 공원일세.”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해준다. 그 공원이었다.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공원. 자신이 빠루를 들고 으례 향하는 그 곳. 하지만 왜 이 공원의 미니어처가 여기에 놓여져 있는가? 철웅은 답을 재촉하는 눈길을 노인에게 쏘아보낸다. 노인은 웃으며 그 눈빛을 흘린다.

“자네가 이제부터 할 일은, 이 공원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일세.”
“재현…”
“꿈을 완벽하게 만들려면, 설계가 필요하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만드는 것이지.”

노인에 말에 철웅은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이 공원을 완벽하게 외우라는 것이오?”
“그렇지. 쓰레기통 하나까지 전부.”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철웅도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노인은 웃으며 다시 손짓한다. 좀 말로 하면 안되나? 철웅은 살짝 불만이 올라왔지만 그러려니 하며 노인을 따라간다. 구석의 책상에는 몇가지 도구들이 올려져 있다. 콘페이토와…

“이건?”
“자네거지? 우리가 가져왔네만.”

철웅은 빠루를 든다. 익숙한 감촉이 느껴진다. 손잡이 부분에 감아놓은 밴드도, 이 무게감도 자신의 빠루라는 확신을 준다. 빠루를 휘둘러본다. 바람을 가르는 빠루의 소리에 기분이 좋다. 철웅은 빠루를 놓고 옆의 물건을 바라본다. 이건 좀 괴상하다.

“VR기기 같이 생겼소만.”
“그렇지?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익숙한 게 나아서 그렇게 만들었네.”

노인은 그 물건을 들었다. 눈과 머리 전체를 덮는 기기이다. 노인은 철웅에게 그것을 씌워준다. 컴컴한 화면만이 보인다. 철웅은 노인에게 묻는다.

“이 기기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이오?”
“그건 작동하는 게 아니네.”

노인의 말에 황당한 듯 기기를 벗는 철웅이었다. 노인은 껄껄 웃는다. 철웅은 노인을 황망하게 바라본다. 작동하지 않는 기기를 왜 주는가?

“이건 꿈에서만 작동하는 것일세.”
“꿈에서만?”
“상상하면 되지 않는가? 꿈에서는 뭐든 할 수 있지.”

노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왠지 무책임해보이는 노인의 반응에 철웅의 황당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철웅에게 노인은 숙제를 준다.

“자네는 이것도 다 기억해야하네. 자네 빠루의 무게부터 생김새, 느낌, 그리고 저 기기의 느낌도. 물론 꿈속에서 어떻게 작동시켜야하는지는 충분히 교육시켜주지. 꿈에서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게 훈련도 받을 것일세.”
“...언제까지 하면되오?”
“자네가 할 수 있게 되면 바로 시작할걸세. 그 동안은 이 건물에서 지내면 되네.”

노인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철웅은 자세를 바로잡는다. 노인은 철웅의 어깨를 두드리며 묻는다.

“할 수 있겠는가?”
“...해보겠소. 이게 내 유일한 쓸모랬잖소?”

철웅은 씩 웃는다. 노인도 마주 웃어준다. 

#

“준비는 다 끝났나.”
“음. 아무래도 어색하오.”
“하하, 다 그런 거지.”

노인은 철웅의 어깨를 톡톡친다. 철웅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난 1개월동안의 훈련은 참으로 고되었다. 원래 좋지 않은 머리였던 철웅은 자신이 해야될 것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뇌가 빠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다 해냈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 자리에 왔다.

가벼운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철웅은 실험실을 둘러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한가운데 있는 침대가 보인다. 자신이 누워야할 곳이다. 철웅은 한숨을 쉬며 몸을 푼다. 그런 철웅을 노인이 바라본다.

“한 가지 사과할 게 있네.”
“무엇이오?”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들. 미안하네.”
“하,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셨소?”

철웅은 씩 웃었다. 노인도 그런 철웅을 바라보며 씩 웃는다. 웃음을 거둔 철웅은 노인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잘못된다면... 약속은 꼭 지키리라 믿소.”
“나만 믿게나. 반드시 지키도록 하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철웅도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 눕는다. 사람들이 몰려와 철웅의 몸에 여러가지 전극을 붙이기 시작한다. 바이탈 사인이 뜬다. 정상. 정상. 정상. 모두 다 정상이다. 수석 연구원이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네. 접속 1분전.”
“접속 1분전.”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몸에 온갖 전극을 덕지덕지 붙이고 누워있는 철웅은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몸에 전극을 붙이고 침상에 묶여있는 실장석들에게 실장채로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실장석들의 절규가 실험실 안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철웅조차도.

<데갸아아아아아아!!!>
<똥닌겐!!! 죽여버리는데샤아아아아!!!>
<살려주는데스! 제발 살려주는데스!!!>
“접속 20초전. 철웅군. 집중하게.”

노인의 말이 철웅을 현실로 꺼내온다. 머리를 바로하고 눈을 감는다. 자신만의 세계를 머리 속에서 그리기 시작한다. 

“카운트 다운 시작합니다.”

10 “철웅군. 
9 성공하길 
8 바라네.”
7
6
5 “...
4 알겠소”
3
2
1
.
.
.
.

“...여긴?”

눈을 뜬 철웅은 주위를 둘러본다. 익숙한 곳이다. 저 벤치도, 저 놀이기구도, 이 산책로도. 모두가 익숙한 곳이다.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자신의 애병, 빠루가 들려있었다. 철웅은 재빨리 자신이 메고 있는 가방을 뒤져본다. 콘페이토와 꿈 링크 도구가 있었다. 철웅은 가방을 부여잡고 주저 앉는다.

“다행이오… 다행이오…”

가방을 부여잡고 중얼거리던 철웅은 벌떡 일어난다. 꿈 설계만으로는 1단계가 완료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공원에 실장석이 없으면 이 실험은 실패인 것이다. 철웅은 공원을 미친듯이 돌아다녔다. 철웅의 가상공원 모델이 된 실제 공원은 실장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매년 구제를 해도 되돌아오는 실장석들때문에 구청에서는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가상공원에서는 실장석의 운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철웅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때였다.

<데...데스? 여긴 어딘데스?>
“...찾았다!”

철웅은 손을 번쩍 들어 실장석을 맞이했다. 철웅을 보고 놀란 실장석은 이내 데프프프 웃는다. 철웅은 계획대로 확인 질문을 던진다.

“실장채로 맞고 있던 거 너인가?”
<그런데스! 그런데 눈 앞이 새하얘지더니 여기로 온데스! 와타시에게는 초능력이 있는데스! 데프프프프. 똥닌겐은 알아서 와타시를 모시는데스!>

한달 전의 철웅이었으면 이런 건방진 말을 하는 분충의 머리는 진작 박살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철웅은 가방에서 콘페이토를 꺼내 실장석에게 던져준다. 철웅이 준 콘페이토를 허겁지겁 먹는 실장석이었다. 실장석의 눈이 확장된다.

<아마아마한데스! 이게 콘페이토인데스! 대단한데스!>

실장석이 콘페이토를 먹는 사이 철웅은 냉정하게 준비를 마친다. 기어를 머리에 얹고 선을 정리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게 준비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철웅의 손에는 빠루가 쥐어져있다. 이제 노인이 기대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다. 철웅은 빠루를 높이 들어 콘페이토를 먹고 있는 실장석을 내려친다.

<데갸아아아아!!! 아픈데스!>

철웅의 빠루 한 방에 팔이 이그러진다. 실장석은 마구 비명을 지르지만 철웅은 냉정하게 빠루로 발을 노린다. 발이 부숴진다. 실장석은 절규한다.

<갸아아아아아!!! 아픈데스! 아픈데스! 닌겐상은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는데스! 더 이상 아프게 하면 안되는데스!>

이제 단 한 번이다. 빠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으로 근육이 굳었지만 그건 팔 한번 휘두르면 풀리는 것이다. 실수하면 안된다. 실수하지 않는다! 

-빠아악!
<가야아아아아아!!! 아픈...데에에에에…>

노인이 눈여겨 본 철웅의 능력은 실장석을 단시간에 행복회로를 돌리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평소 학대를 즐기던 철웅은 실장석의 행복회로를 이용해서 올렸다 떨어뜨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실장석의 행복회로를 돌릴 것. 노인에게 있어서 피실험자가 아지고 있어야 할 가장 최고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철웅은 가지고 있었다.

실장석이 완전히 행복회로에 빠지려면 아직 약간의 타임-랙이 있었다. 그 타임-랙을 놓치지 않아야한다. 철웅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어에 연결된 선을 실장석에게 꽂는다. 학대로 단련된 손은 꽂아야 하는 부위에 정확히 꽂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선을 다 꽂은 철웅은 기어를 내렸다. 잠시 후 기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단어들이 나열된다. 그 단어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모든 단어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제 빛이 쏟아진다. 쏟아지는 빛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철웅은 눈을 감는다.


“바이탈 확인. 동공 체크. 이상 없습니다.”
“접속한 실장석 확인. 나머지는 전부 사망했습니다.”
“접속된 실장석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전부 폐기하도록.”

“과연… 대단한 능력이군.”

노인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반신반의했다. 과연 저 무뢰배같은 남자가 해낼 수 있을 지 의문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은 저런 능력이 없었으니까. 

자신의 부하들은 사회적으로 우수한 자들이었다. 성적도 뛰어나고 육체적인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실험에 번번히 실패했다. 아무리 해도 단시간에 실장석의 행복회로를 일깨우지 못한 것이다. 물론 실험실에서 죽어라도 쳐대면 힘없는 노인조차도 행복회로를 돌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시간에 행복회로를 돌려 그 안에 진입하는 것. 그것만이 노인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도중 흥미로운 영상을 보았다. 학대파들의 사이트인 데스넷에 올라온 영상이었디. 영상의 만듦새가 조악한 것을 보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듯한 이 영상이 노인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 남자가 실장석을 후려친다. 하나, 둘, 셋, 단 세 방만에 실장석은 맛이 간 표정을 짓는다. 행복회로를 돌릴 때의 표정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바로 실장석을 행복회로에서 깨워서 학대했지만 그 뒷부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 세 번의 휘두름으로 실장석의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했다.

뒷조사의 결과는 가관이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변변찮은 직업도 없었다. 학력도 중졸에 불과했고, 주위의 평가도 좋지 않았다. 공원에서의 학대로 경찰서를 자기 집마냥 다니는 것도 문제였다. 연구소에서는 격렬한 회의가 오고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능력은 우리가 갖출 수 없다. 아니다, 저 남자를 불러서 노하우만 전수를 받자. 온갖 토론이 오가던 중 노인은 결단을 내렸다. 저 남자를 스카웃 하겠다고.

지금도 자신의 그 결정에 확신은 없었다. 다만 철웅의 그 능력만을 믿었을뿐. 그리고 철웅은 멋지게 성공했다. 긴장했던 노인의 몸에서 힘이 풀린다. 준비된 의자에 넘어지듯 앉았다. 주위 사람들이 노인에게 달려들었지만 노인은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자… 철웅군. 달려보게나. 끝까지.”

#

<데갸아아아아아!!!>

실장석은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본다. 어딘가 낮익은 곳이었다. 골판지 하우스가 보인다. 실장석은 뒤뚱뒤뚱 조심스럽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낮익은 하우스 안. 낮익은 도구들이 보인다. 

<이...이건 와타시의 하우스인데스! 돌아온데스?!>

자신이 영문도 모르고 잡혀오기 전 자기가 살던 곳이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자신이 돌아온 것은 확실했다. 실장석은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흰 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 맞고, 어떤 남자에게 빠루로 맞았던 것은 다 꿈이었나보다. 돌아온 자기의 집에서 기쁨의 댄스를 추고 있을 때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데스? 뭐인데스?>

실장석은 춤추던 것을 멈추고 집 안에 조용히 숨을 죽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다가오지만 실장석은 그저 벌벌 떨며 있을 뿐. 이윽고 소리가 바로 옆에서 멈춘다. 그리고 엄청난 힘이 골판지 하우스째로 실장석을 들어올린다. 실장석은 밖으로 튕겨나갔다. 충격에 정신이 잠시 나간 실장석에게 쿡쿡 찌르는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시선이 따라간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데...데!! 아까 그 학대파인데샤!!!!>

얼굴 윗부분을 이상한 것으로 덮은 아까 그 학대파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 학대파는 손에 든 빠루를 높이 든다. 

<아...안되는데샤!!! 와타시는 살아야하는데샤!!!>

실장석은 눈을 감는다.


<...장녀! 장녀! 정신차리는데스!>
<데...데에??>

실장석은 눈을 뜬다. 자신의 눈 앞에 한 실장석이 자신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누구인지 생각하던 실장석의 눈이 점점 커진다.

<마...마마?!>
<그런데스! 장녀가 오늘 좀 이상한데스!>

자신의 마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장석은 눈물이 터지는 것을 막아보려 했지만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의 마마, 자신을 사랑으로 길러준 그 마마가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마마는 놀라 눈물을 닦아준다.

<왜 우는데스?>
<마마...마마…>
<독립이 두려운 건 알고 있는데스… 마마도 그랬던데스… 그래도 장녀는 잘 해낼거라 믿는데스.>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던 마마가 환하게 웃는다. 그래, 이 미소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미소였다. 실장석은 눈물을 삼키며 마마를 마주본다. 그리고 실장석이 본 것은 마마의 머리를 우그러트리는 빠루였다. 

<데에에에에에에에에에?!>

실장석은 놀라 빵콘해버린다. 마마가 쓰러진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무엇인가가 나타난다. 실장석의 시선이 위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실장석의 눈이 커진다. 

또 그 닌겐이었다. 얼굴 윗부분을 이상한 것으로 덮은 닌겐. 실장석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이 막혔는지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닌겐은 빠루를 높이 든다. 실장석은 또 눈을 감는다.


<테에에에에에엥!!!!>

실장석은 벌떡 일어났다.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공포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기어를 낀 남자는 자신을 계속 쫒아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쫒아오는거지? 공포로 정신이 물들어가는 실장석의 이마가 차가운 무언가가 닫는다.  

<장녀? 괜찮은데스?>
<텟?! 마마인테찌? 테찌?>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그러고보니 자신의 몸도 무언가 이상하다. 실장석은 자신의 팔다리를 살펴본다. 짧아보인다. 마마를 바라본다. 마마가 엄청나게 커보인다. 서서 봐도 거대해보이는 마마다. 하우스 구석에 있는 거울로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귀엽다. 아니아니, 작다. 자신은 지금 성체가 아니라 자실장인 것이다.

<마...말도 안되는테찌…>
<장녀? 뭔가 이상한데스…>
<오네챠? 괜찮은테찌?>

뒤를 돌아본다. 자신을 묘하게 바라보는 마마가 있다. 그 옆에는 자실장이 서 있었다. 자신의 동생, 차녀였다. 분명 차녀는 학대파에게 걸려서 죽었었는데… 장녀는 터덜터덜 차녀에게 걸어간다. 차녀를 더듬어본다. 차녀가 의아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런 차녀를 덥썩 안는다. 당황한 차녀. 그리고 흐믓한 눈의 마마가 있다. 실장석은 고개를 번쩍 든다.

<이럴때가 아닌테찌! 도망가야하는테찌!>
<그게 무슨 말인데스?>
<학대파… 학대파가 와타시를 쫒아오는테찌! 가야하는테찌!>
<...장녀가 악몽을 꾼데스.>
<악몽이 너무 실감났는테찌?>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답답한 실장석이었다. 하지만 곧 주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과 차녀를 껴안았다.

<조용… 조용히 하면 지나가는데스.>
<아닌테찌! 도망가야하는테찌!>

실장석은 버둥거렸지만 마마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이윽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몇 번 주위를 살펴보는 거 같았지만 이내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마마는 그제서야 안심한듯 자신과 차녀를 풀어주었다.

<마마의 말이 맞는데스- 조용히 하면->
-꽈지직
<데샤아아아아아!!!>
<테칫!>

그 순간 골판지 하우스에 큰 충격이 닥쳤다. 안에 있던 실장석 모두가 밖으로 튕겨나왔다. 실장석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 닌겐이었다. 실장석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외쳤다.

<도망가는테찌!!!!!!!!!!!!!!>

하지만 닌겐은 재빨랐다. 일어나려는 차녀를 발로 뭉갠다. 차녀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마마의 머리를 빠루로 으깬다. 순식간에 자신의 가족들이 몰살된 실장석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왜… 왜 와타시를 쫒아오는테찌! 이제 그만 쫒아오는테찌!>
“......”

닌겐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닌겐의 빠루에서는 적록의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마의 뭉개진 머리에도 같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실장석의 팬티에 운치가 넘쳐 다리에 흘러 내렸다. 닌겐은 빠루를 높이 들었다. 실장석은 햇빛을 가린 그 빠루를 지켜본다. 제발 이번에는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테챠아아아아아아!!!>

#

찾고, 찾아내고, 또 찾아낸다.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를 숨바꼭질의 연속. 철웅은 자신의 정신이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철웅의 몸은 그 녀석을 찾고 또 찾는다. 그리고 학대하고, 학대하고, 또 학대한다. 행복회로로 들어가려는 녀석을 잡아 또 그녀석의 행복회로와 연결하는 지루하고 익숙한 작업을 반복한다.

행복회로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실장석이 점점 어려지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성체실장이었던 녀석이 지금은 자실장이었다. 행복회로 속 녀석은 들실장이었으니 엄지나 저실장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행복회로 속 세상이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철웅은 쫒아가고 또 쫒아간다. 어디까지 쫒아야하는가. 저 실장석은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는가. 그런 철학적인 질문 따위는 철웅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학대하고 또 학대하며 실장석을 쫒아갈 뿐이었다.

화장실이 보인다. 서쳐의 불이 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철웅은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 주변에는 수많은 실장석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태교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중요하지 않다. 철웅은 그런 실장석들을 발로 툭툭 쳐내며 안으로 들어간다. 화장실 안에서는 실장석들의 비명이 울려댔다. 하나, 둘, 여기다. 철웅은 세번째 칸의 문을 연다. 막 출산을 한 성체실장이 당황하며 철웅을 올려본다. 변기 안에는 지금 막 나온 저실장이 있었다. 철웅은 손을 뻗어 저실장을 든다. 대충 점막을 벗겨낸다. 

손과 발이 나와야 할 저실장이었다. 하지만 저실장은 철웅은 바라볼 뿐이었다. 철웅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분명 서쳐는 이 녀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저실장은 철웅에게 말을 걸었다. 링갈은 필요없었다. 

“각오는 된레후?”
“...각오?”
“여기서부터는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되는레후.”
“여기에 들어온 거 자체가 인간이 들어오면 안되는 거 아닌가.”
“레프프프프. 하긴, 그런레후.”

저실장은 철웅의 손바닥 안에서 몸을 쭉 편다. 그리고 철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웅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오무렸다. 따뜻한 저실장의 감촉이 느껴졌다. 철웅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힘을 주었다. 자신의 주먹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온다. 철웅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만다.

#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 없어?!”
“깨워야 합니다!”

철웅의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연구진은 철웅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한다. 한 연구원은 철웅을 깨워야한다고 노인에게 외친다. 하지만 노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강심제는 서둘러 주사하게. 하지만 깨우지는 말게.”
“하지만…!”
“모든 책임은 내가 지네. 걱정말고 계속 진행해!”

노인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깨우는 것을 제안했던 연구원은 고개를 떨구었다. 다른 연구원이 심장에 주사를 가져간다. 약물이 순식간에 심장으로 빨려들어가지만 심박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노인에게 모여있지만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인이 쥔 의자 손잡이가 땀으로 흥건해져간다. 노인은 30분 전 철웅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뭐라고?”
“내가 깨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했소.”

철웅은 노인을 보며 말했다. 노인은 소리쳤다.

“말도 안되네. 자네의 생명이 위험하다면 당연히 깨워야지!”
“모든 건 위험을 감수해야한다고 말한 건 노인이오만.”
“그건 내 목숨을 걸었을 때 이야기야! 남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진 않아!”
“그러니까 노인에게 미리 말해두는거요. 내 목숨을 내가 건다는 걸을 말이오.”

철웅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노인은 왠지 철웅이 낮설게 느껴졌다. 한달 전의 그 무례했던 남자는 어디로 간 것인가? 자신의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모든 것을 각오한 남자였다. 노인은 철웅의 팔을 움켜쥐었다. 단단해진 팔뚝이 느껴졌다. 철웅은 씩 웃었다.

“물론 나는 꼭 살아 돌아올 것이오. 노인에게 약속한 돈도 받을 것이고.”
“그래야지. 이 사람아!”
“그래도, 만약 내가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조금은 위험을 감수할 것이오. 설령 그것이 내 목숨을 갉아먹는다면 그것도 감수해야할 것이오.”
“......”
“노인은 나를 필요로 해주었소. 물론 그 필요가 별 거 아니라고 해도 말이오.”

철웅은 노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보겠소. 그리고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어머니에게 잘 전해주시오.”

회상을 끝낸 노인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철웅과 자신은 약속을 했다. 철웅의 의지를, 자신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저 노인은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철웅군… 무사히 돌아오게!’

#

철웅은 눈을 떴다. 새하얀 공간이 있었다. 이윽고 새하얀 빛이 걷히더니 아까 그 실험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자신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철웅은 발을 땅에 댄 후 누워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허. 말로만 듣던 그 유체이탈인가 뭔가 하는 느낌인가?”

철웅은 누워있는 철웅의 손을 살짝 만진다. 그 순간 방안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철웅은 긴장하지만 그 순간 철웅은 엄청난 광경을 본다. 모든 사람의 등 뒤로 그 사람이 쭉 나열되는 것이다. 그 나열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철웅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의 기록 전부였다. 

철웅은 다시 자신을 내려다본다.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밑으로 자신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였다 마신다. 자신이 가야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각오를 굳히기 위한 숨쉬기였을 뿐이다. 자신들이 나열된 그 곳으로 철웅은 뛰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정말 쓰레기였소.”

철웅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방바닥에 누워 티비나 보는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밖에서 일을 하고 계시겠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이제서야 자신이 어떤 불효를 했는지를 깨달은 기분이다. 아니, 사실 알고는 있었다. 그것을 마주보지 못했을 뿐이지. 철웅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뛰어들었다.


“...철웅군, 어머니가 얼마나 자네를 부탁했는 줄 아나?”
“그걸 내가 알 바요? 힘들기만 하고 재미도 없는 일 따위 할까보나.”

“...멍청한 놈이었군. 나는.”


“밖에서 그렇게 실장석만 때려잡지 말고 다른 걸 하면 안되겠니…?”
“...흥.”


“내가 왜 당신같은 사람에게 번호를 줘야하죠?”
“저… 그게…”
“별 거지같은 게…”


“이 병신같은 게!”
-퍽
“으... 아…”
“꺼져 좀. 더러우니까.”

...

“아이고… 철웅아빠… 아이고…”
“엄마… 아빠가 왜 저기 있어? 응?”
“아이고… 이 어린 것을 두고 어떻게 먼저가요… 아이고…”


스쳐지나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철웅은 울고 화내고 슬퍼하고 웃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힘든 인생이었지만, 그 힘든 인생을 비참하게 했던 것은 그 힘듦을 핑계대고 도망갔던 자신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날아가던 철웅은 문득 멈춰선다.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그네를 미는 남자. 그네에 앉은 아이는 신나서 즐겁게 웃고 있었다. 철웅은 그 남자에게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남자는 철웅을 눈치챈 듯 뒤를 돌아본다.

“...철웅이냐?”
“네, 아버지.”

남자는 웃으며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철웅은 머뭇거리다가 그 옆에 앉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가 말을 건넸다.

“...네 어머니는 잘 지내냐?”
“아니오… 고생만 하십니다…”
“저런…”
“저때문에… 못난 저때문에…”

철웅의 두 손이 철웅의 얼굴을 덮는다. 손 밑으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철웅은 그저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그런 철웅을 남자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지나 감정을 추스린 철웅이 고개를 든다.

“저는 다시 가야합니다.”
“알고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끝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끝을 봐야지요.”

철웅과 남자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어느덧 자기보다 커진 철웅을 올려다본다. 철웅의 어깨에 손을 뻗어 토닥여준다. 철웅은 말없이 남자의 행동을 지켜본다. 남자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철웅을 바라본다. 

“나가게 되면 어머니한테 효도 좀 해라. 그리고 내 말도 전해다오. 당신을 두고가서 미안하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아버지.”

철웅은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철웅은 그네를 타고 있는 자신에게로 다시 달려가 뛰어든다.


철웅은 병원에 있었다. 문을 열고 수술실에 들어간다. 자신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수술실 안에는 어떤 여성이 한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 생명의 탄생을 위한 숭고한 고통. 철웅은 그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이윽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의사가 아이를 안아 여자에게 보여준다. 울음이 터져나온 여자는 아이를 안고 울먹인다. 철웅은 다가가 아이를 받아든다.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철웅을 올려다본다.

“...여기까지 온거야?”
“...그렇소.”
“대단하네.”

아이는 방긋 웃었다. 철웅도 따라 웃었다.

“각오는 했어?”
“그건 여기 올 때부터 했었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을 보겠다고 말이오.”
“그래. 그럼 끝을 보자. 거기에 네가 원하는 것이 있기를 바랄게.”
“내가 원하는 걸 보고싶은게 아니오. 거기에 있는 것 그 자체를 보고 싶을뿐.”

철웅의 말에 아이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네. 그럼 끝에 있는 걸 잘 보기 바랄게.”
“...고맙소.”

철웅은 아이를 들어 자신의 이마를 아이의 이마에 가져다대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폭발하는 빛이 모든 것을 감쌌다. 

#

: 너는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자신을 묻는 목소리에 철웅은 눈을 떴다.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흰 공간과 자신뿐. 철웅은 그래도 그 질문에 대답하기로 한다.

“나는 철웅이라고 하오.”
: 여긴 왜 왔어? (왜 왔어? 왜 왔어? 왜 왔어? 왜 왔어? 왜 왔어?...)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오.”

철웅의 대답에 잠시 침묵하는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건… 너의 궁금함이 아니었잖아? (었잖아? 었잖아? 었잖아? 었잖아?...)
“그렇소.”
:그렇다면 왜 네가 온 거야? (온 거야? 온 거야? 온 거야? 온 거야? 온 거야?...)
“나만이 올 수 있었기 때문이오.”

철웅의 대답에 잠시 침묵하는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제는 알 거 같아? (알 거 같아? 알 거 같아? 알 거 같아? 알 거 같아?...)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소.”

철웅의 쓰게 웃는다. 꺄르륵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여기에 온 인간엔 네가 처음일거야. (일거야. 일거야. 일거야. 일거야. 일거야….)
:그러니까 (니까 니까 니까 니까 니까 니까 니까…)
:나들이 도와줄게 (줄게 줄게 줄게 줄게 줄게 줄게…)
:네가 궁금해 하던 그 답을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좋소. 각오하고 있던 바요.”

철웅은 웃는다. 언제 지었는지도 모를 푸근한 미소.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준비한다. 꽉 쥔 손은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될 정도였다. 각오를 다진 철웅은 외쳤다.

“자 오시오!”

철웅의 외침과 동시에 공간에 있던 모든 빛이 철웅에게 달려든다. 철웅의 모든 곳에 빛이 쑤셔들어간다. 머리도,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손도, 발도, 다리도, 팔도, 몸도. 부위를 가리지 않고 빛이 쑤셔들어간다. 철웅은 크나큰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앙다문 입에서 피가 튄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흐른다. 하지만 철웅은 참는다.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있는지를…! 이제 알 수 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철웅은 고통을 잊기 위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

“심박수 200! 아니 250!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동공이 미친듯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깨워야 합니다! 이러다가 죽습니다!”

누워있는 철웅이 미친듯이 떨기 시작한다. 연구원들의 절규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가장 철웅의 생환을 바라는 그였지만 철웅이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그 의지가 노인의 입을 막는다. 손잡이를 쥔 손이 저리다. 오랫동안 너무 세게 잡고 있던 나머지 피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저린 손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제발… 제발 철웅군!’

노인은 간절히 기도했다. 그 순간이었다. 철웅이 딱 멈추었다. 모든 바이탈 사인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방 안에 있던 모두도 멈춰섰다. 지금 방 안에서 들리는 것은 기계들이 내는 소리뿐이었다. 노인은 벌떡 일어나 철웅에게 향한다. 누워있는 철웅을 바라보더니 손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흔들림은 점점 커졌다.

“일어나게… 일어나!!”

노인이 절규한다. 그런 노인을 말리기 위해 연구원들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 순간, 철웅의 눈이 열렸다. 동공이 수축되는 것이 보인다. 노인과 연구원들을 할 말을 잃는다. 철웅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한다. 노인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철웅에게 말을 건다.

“철웅군… 내 말이 들리는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주게…!”








“...레후?”



















초록&초록 - 공포의 공원 1~2

 


# 비 오는 날, 영화 같은 삶

“비가 오는구나.”
<비가 오는데스.>

나와 초록이는 멍하니 비가 오는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녀석하고 지낸 지도 어언 720시간을 훌쩍 넘겼다. 우리는 매우 쿵짝이 잘 맞는다. 내가 쿵하고 때리면 초록이는 짝하고 맞아주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은…

<똥닌겐. 혼자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데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나래이션이랄까.”
<데? 또 무슨 운치같은 짓을 하려는데스.>
“그건 그렇고 비가 오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생각하지마는데스. 똥닌겐이 생각하는 것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스.>

효자손으로 등을 벅벅 긁으며 농담을 던지는데 단칼에 잘라버리는 녀석, 요즘 좀 덜 맞았구나. 살짝 혈압이 오르면서 얼굴에 핏줄이 서는 것이 느껴지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초록이에게 한마디 던진다.

“정말 록키는 다시봐도 명작이야.”

나는 영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록키. 실베스타 스텔론이 자신이 주연과 각본을 맡았던 영화. 정말 남자라면 혼을 불사를 마지막 장면은 언제 다시봐도 감동이었다. 그렇게 감동에 빠져있는 날 건져올린 것은 초록이의 비웃음이었다.

<데프프프프. 멍청한 똥닌겐들이 주먹질하는 게 뭐 그리 재미있는데스.>
“...뭐?”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초록이를 노려보았다. 많이 때리기는 하지만 좀처럼 노려보지는 않던 나의 째려봄에 당황한 녀석.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데… 무식해보이는데스.>

실례. 변명이 아니라 불 난 집에 휘발유를 부었다. 나는 나의 명작을 단 몇마디로 부정해버린 초록이에게 어떤 벌을 내릴까 생각을 했다. 잠깐, 초록... 록키… 초록키?! 나는 벌떡 일어나 초록이를 이끌고 현관을 나섰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한번 해보자꾸나. 초록키!”
<데샤!!!!!!! 끌고가지마는데샤!! 똥닌겐!!>

그렇게 나와 초록이... 아니 초록키의 훈련은 시작되었다. 근육트레이닝은 일단 제외하기로 하고 런닝과 자세 위주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실장석 특유의 짧은 팔은 리치가 너무 안나온다는 단점이 있었다. 너는 아웃 복서는 무리다. 그러니까 역시 답은 맷집이야.

“게으름 피면 맞는거야!”
-딱
<데샤!!!!!>

무려 일주일만에 자세를 갖춘 초록키. 본인은 왠지 만족한 느낌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시 부족하다. 필요하다. 라이벌이라는 존재가. 록키에게는 크리드라는 인물이 있던 것처럼 이 녀석에게도 무언가 라이벌의 존재가 필요하다. 나는 공원실장들에게 물어물어 초록이와 함께 보스실장을 찾아갔다.

<데… 무슨일인데스. 닌겐상.>
“네가 이 공원의 보스냐?”
<그...그런데스. 닌겐상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직책인데스.>
<데프프프프. 이제 와타시를 보스실장으로 만드는데스? 똥닌겐도 제법인데스!>
“햇님이 7번 떴다 지면, 다시 찾아오겠다. 이 ‘초록키’님이 널 박살내줄테니까. 초록키님. 선전포고는 끝났습니다. 가시죠.”

나는 멍해진 보스실장을 두고 마찬가지로 멍해진 초록키와 함께 보스의 하우스를 떠났다. 내가 밀어줘야 걸을만큼 정신이 빠진 초록키는 공원을 벗어나니 그나마 정신을 차린듯 나에게 미친듯이 따지기 시작한다.

<데? 데?! 와타시가 어째서인데스?!?!?!>
“이제까지 훈련한 게 아깝지도 않니. 한번은 써먹어 봐야지.”
<와타시랑 보스실장이랑 체격부터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스!!!!>
“그걸 극복하기 위한 게 바로 트레이닝 아니냐. 오늘부터는 지옥일것이야. 넌 할 수 있어! 초록키!”

그 뒤로 일주일간은 내가 말한대로 지옥의 트레이닝이었다. 일단 손과 발에 1kg짜리 추를 테이프로 칭칭감아 달아두는 것은 기본이었다. 근육 트레이닝은 당연하다. 실장석은 사람과 다르게 재생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근섬유 파괴만 시키면 자동적으로 크기 마련이다. 즉, 근육을 조지면 실장석은 바로바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데… 뒈지겠는데스…>
“아직이야. 자 이제 다시 자세 잡아라!”
<데!!!>

그 다음은 맷집과 회피능력을 기르기위한 트레이닝이었다. 작은 막대기 두 개를 구해와 끝을 적당히 버리는 옷등을 찢어만든 헝겊으로 감싸 가상의 실장석 펀치를 구현했다. 이것으로 계속 초록키를 때린다. 죽기 직전까지. 그리고서 박카스를 부어 회복시킨 뒤 다시 반복. 죽기 싫으면 알아서 가드를 올리거나 피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초록키는 나에 의해 한 마리의 복서로 담금질 되었다. 

오늘은 결전의 그 날이었다. 초대손님이자 심판으로 나의 후배(역시 학대파)를 모셔왔다. 수건으로 간단히 만들어 준 후드를 뒤집어 쓴 초록키와 나는 당당하게 보스실장에게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는 이미 수많은 눈들이 모여있었다. 적록색의 눈뿐만 아니라 검은색의 눈들도 많았다. 그 동안 공원에서 하던 뻘짓들의 결과로 동네 사람들의 관심 또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왠지 부담되는데?

“어이, 보스실장. 준비되었어?”
<준비된데스. 그런데 와타시가 이기면 무엇을 주는데스?>
“아, 물론 대전료는 지급해야지.”

나는 콘페이토 한 봉지를 바닥에 던졌다. 보스실장을 비롯한 적록색의 눈들에서 탐욕이 비춰졌지만 일단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한봉지를 더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이기면, 너는 두 봉지를 갖는거야. 지면, 하나만 갖는거야.”
<데… 알겠는데스!>

보스실장의 눈에서는 이제 살기가 튀어나온다. 초록키도 지지않고 노려본다. 일주일간의 지옥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후배는 핸드폰 스톱 와치를 준비한 뒤,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자, 룰은 간단해. 무기를 안쓰고, 발 안쓰면 된다. 2분 5라운드야. 심판은 쟤가 봐줄거야. 그럼 시작!”
-땡!

경쾌한 종소리(어플)과 함께 대결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견제에 들어가는 두 실장석. 하지만 곧 보스실장은 데프-라는 비웃음과 함께 오른쪽 주먹을 휘두른다. 내 예상대로 권투를 배우지 않아서 대충 휘두른 주먹이다. 몸이 열리자 초록키는 놓치지 않고 왼손으로 콤팩트하게 바디 블로우를 노린다. 

-퍽
<데샤!!!>

펄쩍 뛰는 보스실장. 자신만만해지는 초록키. 하지만 역시 체력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보스실장이 신중하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초록이는 가드를 올렸지만 체격에서 오는 힘의 차이로 뒤로 쭉쭉 밀린다. 이대로는 힘들 거 같은데. 

-땡!
“1라운드 끝!”

마침 벨이 울리고 심판이 라운드를 종료시켰다. 1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보스실장에게는 세컨드가 없기 때문에 후배가 세컨드도 겸해준다. 물론 물이나 주는 정도지만. 그리고 내 예상대로 보스실장은 물을 주자마자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반면 우리의 초록키는 내가 준 물을 입에 머금다가 뱉어버린다. 

“잘했어. 계획대로 되가고 있다. 2라운드도 계획대로 하는거야.”
<데… 알겠는데스. 똥닌겐!>
-땡!
“2라운드 시작!”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서로에게 달려드는 초록키와 보스실장. 이제 탐색전따위는 필요없다. 격렬하게 보스실장에게 붙는 초록키. 당황한 보스실장은 뒷걸음질치지만 초록키는 끝까지 따라붙는다. 그리고서는 복부를 가격하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다른 충격에 휘청이는 보스실장. 공원에 있던 사람들과 들실장들은 감탄하기 시작한다.

“저거, 저 놈 좀 제대로 배웠네.”
“엄마! 저거 봐!”
<데! 데! 데! 데!>

이상한 구령을 붙이며 계속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초록키. 보스실장은 당황한다. 아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에서 왜 충격이 더 오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왜 그렇겠냐. 니가 물 먹어서 그렇지. 물을 마시면 복부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기에 선수들도 물을 마시지 않고 그냥 갈증만 해소하고 뱉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체급차를 극복하는 작전1이란다.

공격이 먹혀들어가자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하는 초록키. 하지만 보스도 그냥 보스가 아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라운드가 끝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스가 원한대로 2라운드도 이렇게 끝났다.

-땡!
“좋아! 잘했다. 이정도면 3라운드에 이길 수 있겠어!”
<데프프프프. 콘페이토나 잔뜩 준비하는데스!>

다음 라운드에 끝내리라 자신있게 외치는 나와 초록키. 하지만 3라운드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보스실장의 주먹에 초록키의 오른 눈꺼풀이 찢어진 것이다. 물론 실장석답게 금방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바로는 회복이 안된다. 일단 지혈을 위해 오른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고, 이건 초록키에게 불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보스도 집요하게 오른쪽만을 공략한다. 초록키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으며 3라운드를 보냈다. 그리고 그 것은 4라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보스의 왼손 스트레이트에 그대로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초록키 다운! 10! 9!...”
“초록키!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
<데… 뒈지겠는데스…>
“할 수 없을 거 같으면 얘기해! 수건 던질게!”
<아닌데스… 우마우마한 콘페이토와 스테이크가 기다리고 있는데스!>

분명 나는 콘페이토만을 말했는데 어느새 스테이크가 추가되었다. 시부럴놈. 그렇게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일어나는 초록키. 주변 사람들과 들실장들은 어느새 초록키의 열렬한 응원자가 되어 있었다. 심판은 초록키의 상태를 확인 후 경기를 재개하려고 했으나 벨이 울려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만 남았다. 아무래도 최후의 방법을 써야겠다. 나는 조용히 유리병을 땄다.

“자! 힘내자!”
<?! 갑자기 힘이나는데스! 똥닌겐은 보고만 있는데스!>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자, 보스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5라운드를 거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자기와는 다르게, 초록키는 1라운드처럼 쌩쌩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미친듯이 두들기는 초록키의 파상공세. 결국 초록키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정확히 턱을 맞고 쓰러진 보스. 심판은 카운트를 셌다. 10...9...8…...4...3...2...1!

“초록키 승!”
<에이드리언데수!!!!!!>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외치는 초록키. 에이드리언은 록키가 경기가 끝난 뒤 불렀던 자기 애인 이름이잖아… 여튼 나는 초록키에게 수건을 덮어준 뒤 보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적이지만 훌륭했다. 선물로 콘페이토 두 봉지를 줄테니 너만 먹지말고 공원 다른 실장들도 나눠주고 그래.”
<데...감사한데스. 초록키에게 대단했다고 전해주는데스.>
“좋아. 초록키. 집에 가자!”
<데스! 와타시가 앞장서는데스! 똥닌겐!>

어깨가 뻣뻣해진 초록키 뒤로 나는 <going to distance> 음악을 깔아주었다. 비장미 넘치는  록키사운드와 함께 그렇게 공원을 퇴장하는 나와 초록키. 그렇게 초록키는 공원에 또 다른 전설이 되었다. 



# 영화같은 삶 epiloge

<우마우마한데스~>

초록이는 내가 준 함박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비록 자기의 머리 속에서 나온 행복회로의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를 잘 따라줬으니, 상으로 편의점에서 사준 것이다. 한참 함박 스테이크를 즐기던 초록이는 다 먹었는지 플라스틱 포장을 탁탁털고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똥닌겐! 이제는 스시를 사오는데스!>
“이게 미쳤나봐.”
<데프프프프프. 이제 와타시는 대단해진데스! 숨겨진 힘도 발휘할 수 있는데스! 똥닌겐따위는 한방인데스!>
“숨겨진 힘 같은 소리하네. 요거나 맞아라. 냥냥펀치!”

나는 트레이닝할 때 쓰던 펀치도구로 초록이에게 소나기 펀치를 날려댔다. 훈련할때와는 차원이 다른 스피드에 당황한 초록이는 결국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이 녀석 뭐라고 중얼대는거야.

<이제 된데스… 이제 나오는데스… 와타시의 새로운 힘…!>
“뭐지…?”
<우오오오오오오오!!! 데샤!!!!>

초록이는 기운차게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나의 펀치에 맞고 그대로 K.O. 되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안나오는데스. 와타시의 새로운 힘이…>
“...너 혹시 이거 이야기하는거냐?”

나는 유리병을 꺼내 흔들었다. 거기에는 초록이의 위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아까 붓고 남은 것을 부어주었다. 초록이는 갑자기 눈이 커지더니 반응이 온 것처럼 벌떡댔다.

<이 힘인데스!>
“카페인 부스팅가지고 숨겨진 힘같은 소리하네.”
<데스?>

5라운드의 비밀은 이것이었다. 위석에 대고 에너지 음료를 부어준 것이었다. 실장석들도 카페인 부스팅 잘 받는구나. 초록이는 자신의 숨겨진 힘의 정체를 깨닫고 좌절했다.

<데… 똥닌겐을 이길 수 있는 힘인줄 알았는데스…>
“거 참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그건 그렇고 반란의 죗값은 치뤄야겠다.”
<데...데!!! 잘못한데스!!!>






#막간극

실장석은 공원을 걷고 있었다. 이 공원에 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공원에서 이주해온 것이다. 같이 데리고 오던 자들은 다 죽어버렸다. 이제는 자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탁아해서 닌겐을 메로메로시킬 자가 없으니 스스로 인간을 메로메로시킬 수 밖에 없다. 고 실장석은 생각했다. 마침 한 닌겐이 지나간다. 실장석은 말을 건다.

-닌겐상! 닌겐상! 와타시를 데려가는데스!
“이 똥벌레는 또 뭐라고 하는거야…”

닌겐은 중얼거리면서 네모난 기계를 꺼낸다. 저 기계는 닌겐들이 와타시와 대화하기 위해서 쓰는 기계라는 걸 알고 있다. 멍청한 닌겐들이다. 와타시는 그런 것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데 말이지.

“그래, 다시 말해봐. 뭐라고 한거야?”
<데-스. 참으로 귀찮은 닌겐상인데스. 와타시는 닌겐상에게 행복을 드리는데스!>
“오, 그래? 행복 좋지.”
<데프프프프프. 그런데스. 와타시를 키우면, 닌겐상은 행복을 얻는데스! 와타시는 그저 스시와 스테이크면 충분한데스!>
“아항, 스시랑 스테이크를 매일 너한테 주면 나한테 행복을 주겠다?”
<그런데스! 닌겐상 똑똑한데스- 데프프프->

제법 말이 통하는 닌겐노예다. 이 다음에는 당연히 와타시를 사육실자….

“그럼 그냥 내가 스테이크랑 스시를 매일 먹는 게 내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데스?>
“생각해봐라. 스테이크랑 스시는 내가 먹어도 행복해지는 음식인데. 그럼 굳이 중간에 널 안끼워넣어도 그냥 내가 먹고 행복해지는 게 낫지. 안그래?”
<데…? 데…?>

뭔가 이상하다? 와타시는 이미 사육실장이 된 것이 아니었나? 저 똥닌겐은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시끄럽고 당장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데스!!! 라고 말할려는 찰나 닌겐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너, 여기 온 지 얼마 안되었지?”
<그런데스->
“그러니까 나한테 말을 걸지. 저기 다른 애들이 멀리서 나 보는 거 안보이냐?”
<데…?>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같이 저 멀리서 나를 보며 수근대는 들실장들이다. 더러운 녀석들. 와타시는 이제 사육실장이다. 너희같은 더러운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하지만 어째 저 눈빛들이 불안하다. 아니 불쾌하다. 어서 똥닌겐에게 쳐죽이라고 해야겠다!

<똥닌겐! 당장 저 놈들을…!>
“왜 그런 지 알아…?”
<데…? 왜…>
“그건 내가 학.대.파.라서 그런다! 이 놈아!”

-뻥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와타시의 몸이 공중에 뜬다. 왜? 와타시가 왜 날고있지? 달님이 왜 이리 가깝지? 어라? 왜 달님이 멀어지지? 똥닌겐!! 사육실장인 와타시를 얼른 챙기지…

-지벩!
“진짜 별 재수가 없으려니.”

피떡이 된 들실장을 뒤로 하고 남자는 집으로 향한다. 그 남자는 자신을 집에서 기다릴 자신의 사육실장을 생각한다. 신이 난다. 오늘은 어떻게 골려줄까? 우리 귀여운 초록이!



#1

-덜컹
“초록아! 주인 왔다… 엥?”
<데엣! 또...똥닌겐! 왜 벌써온데스!!!>
“엑? 너 운치 쌌어?”

바닥은 운치범벅이었다. 초록이는 걸레를 들고 운치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엥? 좀비영화? 너 설마…

“푸하하하하하하!! 너 영화보다가 무서워서 싼거냐?!”
<아… 아닌데스! 똥좀비따위는 절대 무섭지 않은데스!!!!>
“그럼 운치는 왜 싼거야?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무서웠어? 푸하하하하하하.”
<데샤아아아아아아아!!! 똥닌겐!!! 와타시는 무서운 게 없… 으헤레레레레레렉?!>

티비에서 나오는 좀비에 또 놀란 초록이는 빵콘을 하고야 만다. 안무섭기는 개뿔. 겁나 무서워하는구만. 나는 일단 티비를 껐다. 빵콘하는 녀석이 웃기기는 하지만 이러다가 바닥이 운치바다가 될 거 같아서였다. 티비를 끄자 내 눈치를 보는 초록이. 지가 잘못한 건 아나보지?

<데… 똥닌겐…>
“일단 화장실 들어가서 니꺼 빨래하고 씻어라. 운치는 내가 닦고 있을게.”
<데스! 알겠는데스!>

뒤뚱거리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초록이. 그 뒤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줄을 보며 한숨을 쉰다. 진짜 저건 언제 다 치우냐. 그렇게 운치를 치우는 도중에 화장실에서 초록이가 부른다. 왜 또?

<똥닌겐!!! 비누가 없는데샤!!!!>
“이 새끼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네. 야!!!”
<데엙!>

울분을 터트리며 던진 비누가 정확히 면상에 박힌다. 데베베 하는 녀석. 나는 한숨을 쉬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다시 티비를 켜고 영화를 보며 운치를 치운다. 좀비가 마침 사람을 뜯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멍하니 티비를 보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화장실에서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씻으면서 노래라도 부르나보다. 나는 음흄한 미소를 짓는다. 우후후후후. 기대하시라. 



#2 

“야, 저기 공원에 보스 기억하냐?”
<당연한데스.>
“걔한테 가서 내가 달라고 한 거 받아와.”
<밖이 깜깜한데스. 와타시같은 세레브한 사육실장에게는 위험한데스. 똥닌겐이 갔다오는데샭?!>
“얘가 요즘 또 말 안듣네. 이번에는 뭘로 맞을래?”
<데샤아아아!!! 갔다오면 되는 거 아닌데샤!!!>

초록이는 문을 박차고 달려나간다. 현관까지 단숨에 달려가니 숨이 찬다. 슬슬 걸으면서 똥닌겐 욕을 한다. 멍청한 똥닌겐, 집에 오는 길에 받아오면 되는데 왜 안받아와서 와타시같은 사육실장을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조만간 똥닌겐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리라. 괜히 길가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를 하나 차본다. 둔탁하게 굴러가는 돌멩이의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초록이는 보스의 골판지 하우스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보스상- 와타시 초록이인데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 골판지 하우스. 주변도 너무나 조용하다. 보스야 자들을 독립시키고 지금은 혼자사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조용하다. 불안해진 초록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연다. 

<보스상…? 와타시 초록ㅇ…?>

가로등의 불빛이 보스의 집에 쏟아진다. 문을 연 초록이는 보스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괜히 놀랐나, 생각한 초록이는 피식 웃는다. 

<보스상. 미안한데스. 와타시의 똥닌겐이 부탁한 것이 있다고 들은데스.>
-그으으으으으으으으
<...보스상?>

보스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이상한 소리가 커진다. 초록이의 손이 보스의 어깨를 흔든다. 

<보스상? 괜찮은데스?>
-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

초록이의 손에 의해 돌아선 보스의 얼굴에는 적색의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었다. 이상한 소리는 보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초록이를 보자마자 초록이에게 달려드는 보스. 초록이는 놀라서 재빨리 골판지 바깥으로 뛰쳐나온다. 그런 초록이를 보스였던 무엇이 쫒아온다. 초록이는 다른 골판지로 달려간다. 보스의 오른팔인 녀석. 여기라면 괜찮을 것이다!

<큰일난데스! 큰일난데스! 보스가 이상…>
-그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

여기에서도 달려든다. 이미 팬티는 운치로 물든 지 오래였다. 초록이가 달릴 때마다 뒤로 초록색 줄이 생겼다. 초록이는 문득 저번에 보았던 좀비 영화가 생각난다. 닌겐좀비는 닌겐을 먹었다. 그렇다면 실장좀비는 실장석을 먹나…? 아닌데? 원래 실장석은 실장석을 먹잖아? 아니 그거랑 무슨 상관이겠어. 일단 도망쳐야지!!! 초록이는 아무 골판지에나 뛰어든다. 

<데스데스데스. 큰일난…>
-그어어어어어어어어
<데샤!!! 여기도 그런데샤!!!>

초록이는 다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집도, 저 집도, 다 마찬가지였다. 문을 연 곳마다 좀비실장들이 뛰쳐나온다. 이제 문을 여는 것은 포기하고 그저 달릴 뿐이었다. 데스데스데스하고 자신이 달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느정도 달렸으니 되었겠지. 초록이는 슬쩍 고개를 돌린다.

<데샤!!!! 졸라많은데샤!!!>

공원은 오염된데샤! 어서 공원을 벗어나야하는데샤! 초록이는 공원 후문으로 달려갔다. 초록이의 집과 제일 가까운 문이었다. 근데 이 문 앞에 왠 닌겐이 얼쩡대고 있다. 자세히 보니까 똥닌겐이다.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에 똥닌겐에게로 달려간다.

<똥닌겐! 똥닌겐! 큰일난데샤!!! 공원이 위험한데샤!!!>
“......”
<똥닌겐!!! 똥…>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닌겐?>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



#3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초록이는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익숙한 느낌. 틀림없이 와타시의 세레브 하우스다. 밝은 것을 보니 햇님이 뜬 거 같다. 재빨리 일어나보니 똥닌겐이 밥을 먹고 있었다.

<똥닌겐! 똥닌겐! 큰일난데샤!!>
“뭐가?”
<공원이 좀비실장 투성이가 된데샤!!!>
“그게 또 무슨 개소리야.”
<와타시가 틀림없이 봤는데스!! 보스도, 보스 오른팔도 다 좀비가 된데스!!!>
“...너무 많이 머리를 때렸나?”
<데샤아아아아아아!! 답답한데스!!!>

초록이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두들긴다. 너무나 억울하다. 와타시가 진짜로 봤다니까? 왜 안믿어주는거냐!! 똥닌겐!! 그런 초록이를 심드렁하게 보는 남자. 다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말한다.

“그럼 한 번 공원에 가보자. 네 말대로라면 정말 큰일난거니까.”
<데!! 그런데샤!! 와타시의 말이 틀림없는데샤!!>

남자와 초록이는 공원으로 향한다. 초록이도 작은 몽둥이를 들고 남자도 오랫만에 사육봉을 들었다. 그렇게 공원에 들어선 남자와 초록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공원이다. 친실장과 자실장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초록이. 반면에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간다. 

<데?! 위험한데스! 일단 거리를 두고…>
“야, 거기 친자실장.”
<데?>
<테치?>
“어제 뭐 여기서 좀비 비슷한거라도 나왔냐?”
<데… 모르겠는데스. 와타시는 잠만 자서 잘 모르는데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들실장들. 초록이의 눈이 커진다. 남자의 눈은 가늘어진다. 남자와 초록이의 시선이 교차한다.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는 남자. 초록이의 손이 마구 떨린다.

“야…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인가 했더니… 죽을래?”
<데스! 아닌데스! 와타시가 틀림없이 본데스!!>
“아니래잖아.”
<데...데스! 그런데스! 보스상에게 찾아가는데스!!!>
“너… 후… 아니다. 그래, 가보자.”

앞장서는 초록이. 서두르는 초록이 뒤로 남자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보스의 하우스에 다다른 초록이는 문을 마구 두들기고는 재빨리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혹시나 보스가 좀비라면 단숨에 후려치기 위해서였다. 꾸물꾸물대며 나오는 보스. 몽둥이를 움켜진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데… 초록상 아닌데스. 닌겐상도 반가운데스.>
<데스…?>
“멀쩡하잖아…”
<데스? 무슨일인데스?>
“이 녀석이 자꾸 어젯밤에 네가 좀비가 되어서 자기를 공격했네, 어쨌네 하잖아.”
<데프프프프프프. 무슨 소리인데스. 와타시는 밤에 잠만 잔데스. 요즘 좀 피곤한데스.>
“...초록아? 설명 플리즈.”
<데스? 아닌데스? 와타시가 틀림없이 본데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말 못들었어? 오늘 확실하게 두들겨주마.”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진실

나는 떡이 되도록 맞은 초록이를 집에 던져넣고서는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왔다. 보스의 하우스 앞에 선 나는 다시 보스를 불렀다. 보스는 다시 어기적어기적 나온다. 

“야, 어제 동원된 애들도 다 불러.”
<감사한데스. 모두 다 불러오는데스!!!>

공원의 실장석들이 어기적어기적 나타난다. 보스 부하들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는 실장석들. 나는 녀석들에게 포장한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하나씩 건넨다. 받고서는 신나게 돌아가는 실장석들이다. 

“이정도면 충분히 나누어준 거 같은데. 이건 네 몫이다. 고생했어.”
<감사한데스, 닌겐상. 또 필요하신 건 없는데스?>
“있으면 또 찾아올게. 그 때도 말 잘들으면… 알지? 나는 보상과 처벌이 확실한 사람이야.”
<데프프프프프… 걱정마는데스.>

이정도 되었으면 사람들은 다 깨달았을 것이다. 이번 일을 꾸민 것이 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발단은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좀비영화를 보고 초록이가 공포에 질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계획을 짰다. 일명 좀비의 공원. 나는 계획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돈은 충분했다. 저번에 <초록키 대결>을 데-스튜브에 올리면서 얻은 수익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서바이벌에 쓰이는 페인트탄을 산다. 그리고 액션캠도 몇 개 산다. 중국산 짝퉁이지만 가로등으로 충분한 광량이 있으면 찍는데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소품들을 다 마련한 나는 역시나 공원 보스에게 향했다. 공원 보스는 나름 익숙한지 땀을 흘리며 나를 반겨준다. 몇가지를 물어본다. 이 공원을 보스가 얼마나 통제하고 있는지, 실장석들을 얼마나 동원가능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보스는 친절하게 나와 같이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준다. 역시 왼손에는 빠루를 들고 친절한 말을 하면 더 효과가 좋다는 게 사실이었네.

“좋아. 그럼 동원할 수 있는 애들 다 불러봐.”
<데스. 알겠는데스.>

어우야. 이 공원에 이렇게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건 또 처음이네. 나는 약간 질린 표정으로 실장석들을 바라본다. 실장석들도 나와 빠루를 보며 질린 표정이다. 보스가 나 대신 설명해준다. 한 실장석을 쫒아가면 된다. 쫒아가기 전에는 이 페인트탄을 터트려서 얼굴에 바르고 쫒아가면 된다. 만약 잡으면 이 닌겐이 꽤나 큰 상을 줄 것이고, 못 잡아도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줄 것이다. 대신 잘하지 못하면 빠루로 저세상 하직을 할 수도 있다.

몇몇의 분충들이 콘페이토 소리를 듣자마자 발광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보스의 부하들이 독라로 만들어 내 앞에서 치워버린다. 하긴, 내가 갑자기 다 때려치고 자기네들을 다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 보스로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무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초록이를 캐스팅만 하면 끝. 

초록이는 주인공답게 퍼펙트한 연기를 펼쳤다. 나중에 열어본 보스 시점의 캠을 볼 때는 진짜… 우리 초록이가 좀 많이 못생기긴 했지만 적록의 눈물과 콧물이 같이 나오는 그 영상은 정말 못생겼다. 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다른 가로등이나 실장석에 달아놓은 액션캠에도 훌륭한 영상이 찍혀있었다. 정성껏 편집해서 데-스튜브에 올린다. 이번 것도 반응이 아주 좋다. 다음에는 뭘 하면 좋을까?



# 청소하는 실장석

어느 사육실장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공원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멍하니 구경중이었다. 그 사육실장은 보고야 말았다. 한 실장석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 실장석을 쫒는 실장석 무리들을. 무언가가 이상했다. 다들 이상한 것들을 몸에 바르고 실장석을 쫒아가고 있었다. 실장석은 한 닌겐을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갑자기 닌겐이 확 소리를 지른다. 자빠진 실장석은 그대로 뻗어버린다. 남자는 그 실장석을 대충 잡아든다. 공원의 실장석에게 뭐라뭐라하는 닌겐. 실장석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고개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 사육실장의 눈에는 자들이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닌겐 주인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밖의 공원과는 다른 평화로운 방 안. 

<다녀온데스.>
“어, 쓰레기는 잘 버리고 왔냐?”
<그런데스, 와타시는 주인을 잘 찾은 거 같은데스.>
“갑자기 뭔 소리야?”
<그런 게 있는데스. 와타시는 주인상에게 항상 감사하는데스.>

사육실장은 이 말만 남긴 채 자들과 함께 자기의 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 안에서 뭔가 데스거리는데 링갈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닌겐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티비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