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그녀는 일가의 오녀였다. 엄하지만 자상한 어미 밑에서 자란 자실장 다섯은 전형적인 오인조의 성격을 가졌다. 호기심 넘치고 리더십이 강한 장녀, 식탐이 강하고 불만이 많은 차녀, 얌전하고 겁이 많은 삼녀, 개구쟁이 사녀. 오녀는 가장 작고 약해 자매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지금 그녀는 고아 신세가 되어 과거 온가족이 들어가 있던 나무둥치 속에서 홀로 떨고 있다. 체온으로 그녀의 작은 몸을 꼭 감싸 덥혀주던 마마와 오네챠들은 이제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이 잊으려고 해도 또다시 머리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치이이...."


그녀가 태어난 숲을 나오면 높다란 언덕이 봉긋봉긋 솟은 탁 트인 풀밭이 펼쳐진다. 인간들이 '공동묘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산에서 굴을 파고 살던 일족에서 독립한 마마는 지난 봄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실장석의 나쁜 기억력과 구술 능력 탓에 '힘들고 또 힘들었'다고밖에 설명해줄 수 없는 고난을 딛고 정착할 장소를 찾았다.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보금자리였다. 남향이므로 볕이 들면 따뜻했고 조금만 내려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가끔 오는 참배객들이 남기고 간 음식과 버린 비닐, 음료수병을 주워 활용하니 산실장 시절보다 윤택한 삶이었다. 주저 없이 들꽃으로 임신한 마마는 그녀들을 낳고 길렀다.

최대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게 조심했다. 물론 그런다고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까지 굳이 실장석을 학대하려는 인간은 없기에 내버려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들의 행복을 묵인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마마는 먹이를 모으러 나가고, 자매들은 집 근처에서 놀며 기다리던 어느 날. 여기저기 찢기고 터지고 너덜너덜해진 마마가 기어서 돌아왔다. 팔은 거의 닳아 없어지고 배는 땅에 쓸려 금방이라도 내장이 쏟아져나올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가족의 묘비가 배설물에 더럽혀진 것을 발견한 사람에게 잡혀 몇번이고 차이고 두들겨맞은 것이다. 마마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잠시 보기만 해도 실장석이 아닌 떠돌이 개의 짓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운나쁘게 화풀이 대상으로 근처에 알짱거리던 실장석이 보인 것뿐.

울부짖는 자매들을 달래며 마마는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은 곧 죽으며, 이제 자매끼리 힘을 합쳐 살아야 한다는 것. 이른 아침과 해가 질 무렵에만 먹이를 찾아 언덕을 내려갈 것. 절대 내려가서 운치를 보지 말 것. 인간이 남긴 음식이 없다면 숲 속의 버섯이나 풀을 먹을 것. 엄지와 구더기들을 잘 보살피고 정말 먹을 게 없을 땐.... 겨우 생존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려주기를 끝마치고서 마마의 눈은 흐려졌다.

그날 이후로 자매들의 삶은 달라졌다. 가장 똑똑하고 행동력이 있는 장녀의 지휘로 마마의 시체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옮기고, 그녀들만 들어갈 수 있게 나뭇가지를 모아 입구를 가렸다. 자실장인 그녀들은 성체인 마마보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좁았기에 묘지의 구역을 나눠 채집할 생각을 낸 것도 장녀였다. 마마의 역할을 대신한 장녀를 자매들은 믿고 의지했다.

어린 그녀들에게는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참아낼 수 있었다. 언젠가 마마처럼 커져 서로서로 자를 낳고 행복해지기를 꿈꾸며.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녀는 전날 넘어져 다리를 다쳐 회복할 겸 쉬면서 집인 나무둥치에서 자매들을 기다렸다. 자기 때문에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오네챠들을 걱정하며 입구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까마득히 먼 산을 응시했다. 언제쯤 밑에서부터 무덤처럼 둥근 오네챠들의 머리가 나타날까 하고.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뜻밖의 굉음이 들려왔다.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숲밖으로 나온 오녀의 눈에 비친 광경은 아비규환이었다. 인간들이 거대한 무언가를 들고 다가오자 잘린 풀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앞에 자신의 자매들이 있었다. 앞치마에 가득 든 떡조각들을 포기하지 못한 듯 어기적거리고 뛰다가 넘어진 차녀, 차녀를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녀, 한계인 듯 무너져 빵콘하고 있는 삼녀. 장녀는 최후의 수단으로 인간 앞에 뛰어나가 외치고 있었지만 예초기 소리와 흩날리는 풀 때문에 장녀의 부르짖음은 인간에게 닿지 않았다.

싹둑, 싹둑, 싹둑, 싹둑.

언니들의 몸뚱이가 허망하게 잘려나가는 순간이 오녀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어? 뭐야. 참피들이 죽어 있잖아."
"진짜네! 아직 새끼들이구만요. 여기 사는 놈들인가?"
"왜 저번에 관리인 양반이 요근처에 큰놈 하나가 어슬렁거린다고 그랬잖아. 그놈 새끼들인가 보지."
"어미가 죽었나보네. 보통 이만한 새끼들은 숨겨서 잘 안 보이지 않아요?"
"그럴거야. 뭐 곧 추석인데 잘 됐지. 아무리 그래도 참피가 이런 데 있으면 안 되지... 불쌍하지만 운이 없었구만."


벌초하러 온 지역 청년단원들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베어낸 풀과 장녀들의 시체를 치우고 떠나갔다.

그늘에 주저앉은 오녀는 하염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마마가 죽었다. 오네챠들도 죽었다. 엄지와 구더기 동생들이 뒤를 따랐다. 이미 마마가 죽은 뒤부터 자매들의 운치로는 충분히 먹지못해 여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녀는 둥지 속 깊숙한 곳에 숨겨둔 보존식의 일부까지 나눠주며 하나라도 살리려 했지만, 노력도 헛되이 차례로 숨을 거두었다. 불과 오일만에 오녀는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다.

마마의 마지막 가르침을 따라 오녀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의 시체를 먹었다. 이것으로 며칠간을 더 집안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왔을 때 묘지를 떠들썩하게 만들던 인간은 모두 떠나간 후였다.

뜻밖의 운으로 당장의 위험은 넘겼지만, 오녀의 마음속은 외로움과 공포만이 가득해졌다. 갈수록 쌀쌀해지는 날씨도 원인이었다. 숲의 나무들의 잎은 그녀의 옷과 같은 녹색에서 빨갛게 변하고 떨어져 갈색으로 변해갔다. 언젠가 마마가 말하던 겨울씨가 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녀는 작은 몸으로 홀로 겨울씨를 넘기고 자신이 태어난 봄을 맞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면 누구도 이 작은 자실장이 살아남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스스로 될대로 되라며 인간에게 다가온 오녀의 속사정이었다.


아침에 묘지로 터덜터덜 내려온 오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숲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색을 잃어가는 잔디밭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 밑의 무덤에 인간이 와 있었다.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으로 주저앉아 물 같은 것을 연신 들이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덤 쪽에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인간의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실장석인 그녀가 보아도 인간의 얼굴은 슬퍼보였다.

이윽고 결심했다. 오녀는 천천히 인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혼자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닌겐의 친구가 되어도 좋다, 닌겐에게 잔인하게 죽더라도 괜찮다. 이미 이 세상은 그녀에게 희망이 없는 공간이니까.

가까이 다가가자 인간의 얼굴이 더욱 잘 보였고, 인간이 떠들어대는 말도 잘 들렸다. 비록 몇 대째 인간과의 교류가 없어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남자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을 때, 오녀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감정이 점점 격해짐을 느끼며 오녀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테에엥, 테에에엥...."



남자는 무덤 곁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자실장을 눈치챘다. 어째서 이런 게 여기서 울고 있는지 의아해지며 남자는 말을 건다.

"운 좋은 줄 알어라. 저리 가"

"텟?"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는 자실장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왜 여기서 우는 거야? 엄마 찾아가라고."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던 자실장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나참. 잃어버리기라도 한거냐? 그런다고 안 길러줘. 돌아가."

반응 없이 가만히 있는 자실장을 남자는 특이한 놈이라 생각하고 무시하고 남은 소주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많이 말랐구만. 먹을 거도 없는데... 가만, 가족이 다 죽은 건가?"

갑자기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는 자실장이었다. 죽음이라는 말을 겨우 알아들은 오녀는 남자의 말을 긍정하고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혼자란 말이지.. 나랑 똑같네."

못마땅한 얼굴로 오녀를 응시하던 남자는 중얼거렸다.

"형이 너희들을 참 좋아했었지..."

그러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남자는 오녀를 집어들어

홱.

자신의 외투 앞주머니에 넣었다.

"테칫?"

"똥싸면 버릴거야."

남자는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묘지 입구를 향한다. 오녀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떨어질까봐 주머니에 꼭 매달릴 뿐. 이 닌겐은 언젠가 마마가 말했던, 와타치타치를 괴롭히고 죽이는 닌겐일까. 하지만 너무 슬퍼보였다. 와타치와 같은 슬픔을 느끼는 닌겐이라면, 쓰다듬어주거나, 한번에 자비롭게 죽여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인연일까..."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은 오녀에게 닿지 않았다.

만약 남자의 오녀를 기르겠다는 즉흥적인 결정을 이해했다면, 그녀는 망설임없이 주머니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가 바란 결말 중 인간의 사육은 없었다. 마마의 가르침은 '닌겐에게 길러지는 것은 불행'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대로 남자의 집에 무사히 도착하게 될 오녀에게 운명은 손을 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당장은 혹독한 생존 문제에서 벗어났고, 사육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전제지만 다시 가족을 이룰 가능성도 생긴 것이므로.

운명을 비관하고 내던질 각오가 된 실장석에게, 얄궃게도 운명이 비로소 미소를 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맞춤 훈육

 

예비 사육실장의 훈육.
실장업계 관계자에게 이만큼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며 지긋지긋한 말이 또 있을까.

거의 모든 실장석은 잠재의식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인간에게 용납되려면 그 속의 '분충성'이란 본능을 억누르거나 감춰야 한다. 그것을 이해시키든, 억지로 몸에 배게 만들든 해서 애호용으로 적합하게 교육된 실장석을 만드는 것이 훈육이다. 말뿐이라면 쉽지만 지금껏 수많은 숍과 개인 브리더들이 온갖 방법을 연구하였음에도 완벽한 훈육법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언젠가 실장석은 주인의 기대를 배반한다. 최고급 세레브 사육실장도, 떨이판매 싸구려 실장도 마찬가지다. 실망한 주인은 다시는 실장석을 기르지 않고, 고객층도 점점 축소되는 판국이라 훈육 단가 맞추기도 힘들고, 더 분충화하기 쉬운 어설픈 훈육 실장들이 시장에 나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펼쳐진다. 점점 거세지는 고객들의 항의에 대응해 보증기간 동안 동급의 사육실장을 교환해주는 숍도 생겼다. 실장석이 소모품 취급당하는 날도 멀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이런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숍이 있다. 모시에 위치한 실장석 전문점 ""이 그곳이다.
""의 사육실장은 타 업체에 비해 고객 만족도가 월등히 높고, 이곳에서 판매된 사육실장의 평균 수명, 자손 여부, 재방문율 등 모든 수치가 업계 최고를 가리키고 있다. 판매하는 사육실장의 수는 매우 적은데, 그럼에도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되어 있어 전국의 애호파들이 번호표를 뽑고 찾는 곳이 되었다.

""의 성공 비결은 바로 다른 곳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미래 주인의 사육 방향에 대한 맞춤 훈육에 있었다.


"데후우웁~!!"


"텟테레~"

막 태어난 건강한 자실장들을 직원이 한마리씩 상자에 옮겨담는다. 전용 출산석으로부터 자실장을 얻는 것은 다른 숍과 동일하다.

"이번에도 귀여운 아이들이네~ 배고프지? 자 맛나맛나 먹을 시간이에요~"

아무 이유 없는 칭찬은 그때부터 '올리기'가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훈육 중에는 절대 금기이다. 또한 음식에 대한 자각이 없는 갓 태어난 자실장에게는 가장 낮은 등급의 푸드부터 먹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직원은 진성 애호파나 할법한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친 다음 최고급 스테이크맛 푸드를 자실장들에게 건넨다.

테챱테챱..."우마우마한 테챠!! 태어나길 잘한테치!!"
"치프프... 고귀한 와타치에게 어울리는 첫식사인 테치."
"조금 짠 테치... 아마아마가 좋았을 테치, 하지만 배고프니 먹는 테치."

저마다 떠들면서 생애 첫 식사에 집중하는 자실장들. 여기까지는 이곳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정신없이 한 알을 다 먹은 자실장들은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아까 다정한 말을 해주고 푸드까지 준 닌겐상을 찾는다. 그것을 확인한 직원은 다시 또 한알씩을 건넨다. 자실장들이 푸드를 원할 때마다 아낌없이 주면서, 그 개수를 표시한다.

"자꾸 먹어도 맛있는 테치! 또 또 먹고 싶은 테치!!"
"또 이맛인 테치.. 닌겐!! 더 우마우마한 먹이를 준비하는 테치!"
"테.. 배부른 테치. 이 밖엔 뭐가 있는 테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개체간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이미 배가 빵빵하게 불러 일부를 빵콘해 흘렸으면서도 계속해서 푸드를 요구하는 분충이 있는가 하면, 더 못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듯 바닥에 흘린 푸드를 핥기에 여념이 없는 개체도 보인다. 대부분은 식곤증에 못이겨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어 있다.

직원은 이 가운데서 세알 이하만 먹은, 그저 앉아 있거나 먹는 것보다 호기심이 우선인 듯 작은 상자 안을 돌아다니는 몇마리를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다. 그리고 자실장들이 든 상자는 "최고급"이라는 문패가 붙은 방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첫 선별이 끝났다.


일반적인 사육실장 선별은 태생적 분충과 지능이 낮은 개체를 걸러내며 마지막까지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자실장을 최고급으로 치는 계단식 훈육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은 반대다. 그들은 먼저 최고급 사육실장이 될 개체를 골라낸 다음 마지막까지 훈육이 안 되는 분충을 끝으로 선별을 마친다.

욕망 덩어리인 실장석에게 처음부터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당연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져지기 마련인 자실장 중에서, 드물게 요구하지 않는 개체를 먼저 골라낸다. 천성적으로 느긋하고 겸손해서건, 무엇이 훌륭한지 구별할 지능이 없어서건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것만으로 '최고급 실장'이 될 자격을 갖추었으니까.

최고급 실장은 실장석이 원하는 것은 아낌없이 사줄 수 있는 주머니가 넉넉한 고객이 사간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자실장은 사실 귀엽고 티없는 외모와 발랄하되 온순한 성격이면 족하다. 똑똑한 자실장에게 괜히 이것저것 가르쳐봐야 그곳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다. 혹독한 훈육을 견뎌왔을 수록 사육되는 행복한 생활에 긴장이 풀어져 분충화하는 강도가 세다. 지능이 비상할 수록 금방 자신의 세레브한 대접과 다른 실장석의 차이를 이해해 오만방자해진다. 차라리 일반적인 기준에서 조금 떨어지는 실장석이 나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응석이 심해도, 울보여도, 똥을 다소 못가려도 애호파는 이해해주니까.

그래서 최고급 실장의 훈육비용은 사실상 0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것이 높은 마진으로 이어진다.

이 방법으로 선별된 최고급 사육실장은 사육주에게 다른 만족감도 선사한다. 다른 곳에서 '세레브 사육실장'으로 길러진 자실장은 긴 훈육 끝에 감정 자체가 메말라 정숙하기는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거나, 이미 상당 부분 성장해 어린 자실장을 원하는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의 최고급 실장은 최소한의 건강 검진과 간단한 배변 교육을 마치고 바로 판매하므로, 아직 이조차 제대로 나지 않은 갓난 자실장의 활발한 귀여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반대로 그다지 여유있지 않은 계층의 고객에게 필요한 사육실장은 똑똑해야 한다. 태어난 이 세상은 생각만큼 상냥하지 않고, 주인에게 길러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주제넘게 과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 잘못하면 버려질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처음의 선별에서 탈락한 개체들은 혹독하게 배울 것이다. 점점 푸드의 등급과 환경이 나빠지고, 불만을 표하면 표하는대로 대우는 내려간다. 그와중에 되풀이되는 체벌과 본보기 처형. 가장 낮은 등급까지 떨어진 자실장들은 "올렸다 떨어뜨리기"의 극한을 맛보았기에 쉽게 분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들을 사갈 주인들도 그다지 '올려줄' 형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의 자실장들도 평판이 좋다. 좀처럼 불평하지 않고 말을 잘 들으며 똑똑하다는 것이 "" 출신 중간급 이하 자실장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물론 주인의 사정에 의해 갑자기 키울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 에서 구입한 사육실장이란 사실이 분양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애호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자실장을 구입한 사람들도 만족한다고 한다. 이렇게 꼼꼼하게 행복과 반대되는 생활을 해온 자실장을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나.


오늘도 "" 한쪽의 훈육방에서는 최하급 자실장의 서러운 흐느낌이 들려온다.

"테에엥... 사육실장은 언제 될 수 있는 테치... 따끔따끔은 싫은테치.. 나가고만 싶은테치.. 이제 밥투정 안하는테치..."













맨발의 기봉이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서 홀로 울고 있던 자실장을 주워와 기르고 있다. 나를 애호파 기분을 내고 싶은 얼치기나 수틀리면 괴롭힐 예비 학대파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오해는 말길. 이래봬도 인터넷에서 실장석에 대한 지식은 전부 찾아봤고 이녀석에 필요한 건 제대로 사주는 주인이란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녀석의 가장 큰 특징, 내가 데리고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이 자실장은 맨발이다.

길가에서 테에엥 테에엥 울고 있는 자실장을 발견한 나는 그날따라 호기심이 발동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넘어져서 한쪽 신발을 잃어버렸고, 당연히 잘 걷지 못하게 된 자실장을 친실장은 매몰차게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솎아내기라던가, 제대로 살 수 없게 된 새끼를 버리는 것은 들실장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아무튼 없어진 신발을 찾아줄 길도 없고 다른쪽 신발까지 벗긴 뒤 나는 이녀석을 길러주기로 했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이 선택은 뜻밖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침해가 밝았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둔 자실장용 침대에서 녀석이 부스스 눈을 뜬다. 텟치텟치 소리가 들리고 나는 부엌에서 부드럽게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기봉아, 나와~ 아침 먹어야지."

코도 없다시피한 놈에게 그런 이름이라니 너무하지 않냐 싶지만 그래도 맨발에 딱 어울리는 어엿한 사육실장의 이름이다. 기봉이는 잠시 테에.. 한숨쉬더니 이윽고 결연하게 발걸음을 뗀다.

텟치 텟치

기봉이가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자기 침대 주변 매트를 깔아놓은 범위까지다. 자실장의 부드럽고 약한 맨발이 딱딱한 바닥을 딛을 때마다 충격이 그대로 전달된다. 저절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기봉이.

"늦게 오면 1분에 한알씩 빼는 거 알지?~"

테엣!!

당황한 기봉이의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동시에 발에 가해지는 충격도 강해진다. 저절로 눈물콧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어떻게든 앙다문다. 아하핫. 귀여워.

기진맥진한 기봉이가 밥그릇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식사를 끝마쳤다. 그래도 밥은 줄이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

"테..테츄웅..."


내가 설거지를 하고 이를 닦는 동안 헐떡이는 호흡을 진정하고 식사를 마친 기봉이. 빨갛게 부어올랐던 발도 약간 가라앉은 듯하다.

"그럼 화장실 가야지?"

"테.. 그런 테치..."

실장석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녀석들에게 나는 특유의 체취다. 하지만 이것은 사육 환경에 따라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좁은 수조 안에 먹이그릇과 화장실을 전부 넣어두면 냄새가 안 날 수가 없다. 운동량도 부족해진다. 그래서 나는 기봉이가 집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하되 밥은 꼭 부엌에서, 용변은 꼭 화장실에서 보도록 교육했다. 이부자리와 밥그릇과 화장실이 서로 거의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건 덤이다.

"테... 운치 나올것 같은 테츄.. 참는 테츄... 아직 멀은 테츄..."

아까보다도 괴로운 표정으로 한발짝 한발짝 힙겹게 내딛는 기봉이. 가다가 나와버리면 전부 도로 핥아먹는 벌이 기다리고 있다. 남들은 손발을 꺾는다는데 나 정도면 정말 온건하지 않나?

기봉이 녀석, 다 와가니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고 있다. 힘내라.

"테츄~웅... 테.. 어째서 이만큼밖에 안 나오는 테츄..."

그야 가다가 힘을 너무 써서 소화해버린 탓이겠지. 그리고 기봉이의 여정은 아직 안 끝났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할텐데.


"그럼 갔다올게~ 얌전히 있어."
"테츄웅..."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자실장을 주인 부재시에 집안에 혼자 풀어놓는 행위지만 어떠한 걱정도 없다. 발이 아픈 기봉이가 자기 자리를 나오는 건 점심을 먹을 때뿐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기봉이는 처음 올 때와 비교해도 별로 성장하지도 살이 찌지도 않는다.


훈육안된 들실장이 그러하듯 기봉이도 금방 기고만장해져 나를 노예라 부르며 투분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실장의 허약한 팔힘으로 무언가를 던지려면 온몸을 사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축이 되는 발에 하중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

"테챠아앗! 닌겐노예는 와타치의 운치를 맞고 주제를 깨닫는 테ㅊ...테텟!!"

발이 너무 아파 힘이 풀려버린 기봉이는 자신의 운치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만 것이었다.

"자, 이제 누가 노예지?"
"테...테에에엥!! 테에에엥!"

눈을 질끈 감은 덕에 강제임신까지는 안 갔다지만 곧 자신의 운치냄새에 기겁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후로 기봉이는 나에게 고분고분해졌다.


이동 자체가 고역인 기봉이는 놀이보단 그림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산책 나가자고 조르지도 않으니 좀 편하다.

"주인님 주인님, 발씨가 불편한 닌겐상이 바퀴가 달린 의자씨를 타고 다니는 거 본 테츄. 와타치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는 테치.."

어디서 휠체어라도 본 모양이다. 그렇게 조르니 한번 알아보기나 할까. 세상에, 애호파란 인간들은 안 만드는 게 없었다. 실장용 휠체어를 사다주니 기봉이는 뛸듯이 기뻐했다. 물론 뛰지는 않는다.

"주인님!! 감사한 테츄!! 정말정말 좋아하는 테츄~웅"

바로 휠체어를 타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글쎄. 휠체어의 존재를 안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타고 다니는 사람의 팔근육을 보지는 못한 걸까.

얼마 후.

"기봉아. 왜 휠체어를 타지 않니?"
"테에.. 손씨 너무 아픈테츄.. 힘든 테츄.. 그냥 걷는 게 나은 테치."

휠체어는 주변 애호단체에 기부했다.


이렇게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실장석도 적응력이 있는 생물이다. 야생에 사는 수많은 독라 실장도 어쨌든 잘 걸어다니지 않는가. 기봉이의 부르튼 맨발도 어느덧 단단해졌다.

"오~ 요즘 좀 빨라졌는걸?"
"텟치! 이제 발씨 덜 아픈 테츄웅~"
"하하. 그래. 오늘은 오랜만에 '아와아와'할까?"
"좋은 테츄웅~"

기봉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온수목욕이다. 물론 샤워는 매일 하고 있지만 제대로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은 잘 시켜주지 않는다.

데지 않을 정도로 뜨끈한 물을 전용 욕조에 담는다. 다 됐다고 하자마자 냉큼 입수하는 기봉이. 금방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물장구를 친다.

"따뜻한 테츄웅~ 기분좋은테츄~"

떠드는 것도 잠시 노곤해졌는지 꿈뻑꿈뻑 눈이 감긴다. 총구 힘도 풀려 운치를 약간 흘리지만 눈감아주기로 한다.

작은 손톱깎이를 가져와 잠든 기봉이의 발을 들어올린다.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발끝을 조심스럽게 깎는다. 불린 발에 박힌 굳은살을 잘라내는 것이다. 발밑동을 자르면 간단하겠지만 재생하는 데 시간도 걸릴 뿐더러 그동안은 움직이지 못한다. 무엇보다 난 학대파가 아니다. 그저 기봉이의 아장거리는 모습, 애쓰는 표정이 보기 좋을 뿐이다. 

금방 맨들맨들해진 발끝을 문질러 다듬으면 끝. 아직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물기를 닦아주고 침대에 옮겨 이불을 덮어준다. 내일부터 아픈 발을 감싸쥐고 호호 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봉아. 우리 이렇게 오래오래 살자.













그 섬의 실장석들

 

"자들, 이리 나오는 데스우~ 집보기 잘하고 있던 데스우?"
"그런 테치! 우마우마 먹고싶은 테츄웅~"
"프니프니 더해주는 레후~"


후타바시에 위치한 한 생태공원. 여기 사는 들실장들은 공원의 풍부한 식생을 기반으로 주변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름대로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장석이 어떻게 살고 있건 구제반은 찾아온다.


"데갸아악!! 도망치는 데스우!! 하얀 악마들이 다시 나타난 데슷!!"


혼란에 빠진 공원의 실장석들에게 다가오는 구제반원들. 그런데 다른 공원의 구제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빠루를 휘두르고 코로리 스프레이를 분사하기 마련인 하얀 닌겐들은 어쩐지 도망치는 실장석을 정중히 잡아 한마리씩 봉투에 넣는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골판지 속 일가에게 뿌리는 건 단순한 네무리다.


"데게뵤앗!! 죽기 싫은 데스!! 코로리는 싫은 데수!! 자들만이라도...데...샤....음냐...쿨...."



얼마 후 그녀들은 낯선 곳에 한데 모여 눈을 떴다.

"데에... 여기는 어디인 데스?"

처음에는 인간들의 도로 한복판으로 착각했다. 땅이 온통 평평한 회색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끝없는 수평선만이 펼쳐졌다. 어디에도 닌겐은 없었다.

그녀들은 한쪽 끝으로 걸어가보았다.


"물 속이 보이는 데스! 물고기씨가 많은 데슷! 맛있겠는 데스웃~"
"마마 힘내는 테츄~"

성질급한 개체들이 물에 뛰어든다. 물론 성체실장의 키를 훌쩍 넘는 깊이에 차례차례 물거픔을 남기고 익사한다. 실장석의 시체들은 상어밥이 된다. 이를 보며 다른 자들이 포기한다.

"가운데로 가보는 데스우..."

그 선택이 맞았다. 우묵하게 파인 부분에 맑은 물이 고여 있다. 빗물이 모인 듯하다.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실장석들에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마! 여기 하우스가 있는 테치!"
"데에.. 뭔가 이상하지만 들어가는 데스우."
"굴도 있는 레후~"

딱딱한 콘크리트지만 공원에서 살던 골판지집과 유사한 구조의 집이 곳곳에 널려 있다. 내부에는 더 깊게 파인 운치굴도 있다. 실장석들은 일가마다 하나씩 들어가 자기집으로 삼았다.

이제 딱 하나만이 문제다.


"데.. 먹을 게 안 보이는 데스우.."
"마마~ 푸드가 있는 테츄!!"

섬 한쪽에 있는 큰 원통 모양 탑에서 푸드가 쏟아지고 있다. 실장석 일가들이 모여 잔뜩 먹을 만큼 가져가고도 남았다. 그녀들 일생에 처음일 포식에 행복도가 거침없이 상승한다.

"데프픗... 닌겐들이 와타시타치를 위해 바친 낙원인 데스우? 나타나지 않는 게 괘씸하지만 일단 넘어가주는 데스."



실장석들이 떨어진 이곳은 태평양 복판에 있는 산호초 암초였다.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는 해수면이 상승하여 암초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콘크리트를 억지로 부어 넓혔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아무도 살지 않는 인공 구조물인 콘크리트
덩어리를 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일단 '섬'에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정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리고 콘크리트 돌덩이 위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은 실장석이 유일했다.

공원과 비슷한 구조물을 꾸며놓고, 당분간 먹이를 배급해가며 실장석의 개체수를 늘린다. 충분히 늘어나면 그 다음은 동족식을 하며 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정착해 실장석들을 노동력과 실장육으로 써먹는다. 그러면 인간이 자급 가능한 섬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일본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실장석들은 행복했다. 인간은 없지만 먹을 것과 지낼 곳이 있다. 비가 자주 내려서 마실 물도 충분하다. 따뜻하고 겨울도 오지 않는다. 포식자도 나타나지 않아 자들이 무사히 쑥쑥 자란다. 다음 선택지는 명확하다.

"데프프프. 여기는 낙원이 틀림없는 데스우. 자들을 순풍순풍 낳아 가득 채우는 데스우."

성체실장들은 서로의 오른눈에 운치를 발라 임신했다. 여기저기서 태교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자실장들은 순조롭게 성장해 아직 비어있는 많은 콘크리트집을 차지해 독립했다.

인간과 실장석들 모두 만족했다. 그러나 자연은 이런 욕심을 두고보지 않았다.


어느 끝없이 이어지던 여름날.


"데에엣!! 하늘이 심상치 않은 데스우! 곧 큰비가 내리는 데스!! 자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어오는 데스웃!!"

'섬'이 초대형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하늘이 뚫린 듯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졌다. 빗물에 잠긴 웅덩이가 넘치고, 바닷물이 수면을 넘어 들이친다. 곧 물이 집안으로 들어와 자실장들의 키보다 높아진다.

"심상치 않은 데스우~!! 서둘러 집 위로 올라가는 데스!!"
"마마, 마마~!!!"
"레구굻..."

움직임이 굼떴던 일가는 일찌감치 집안에서 익사하고, 물살에 휩쓸린 자실장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가까스로 높은 곳에 피신한 실장석들의 운명도 오래가지 못한다.

"데에에... 이럴 리가 없는 데스우... 노예닌겐이 구하러 와야 할 터인 데스... 무능한 노예! 어딨는 데스우!! 세레브한 와타시가 절체절명의 위기인 데샷!!!"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실장석들이 열심히 행복회로를 굴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갠다. 그러나 '섬'의 실장석들은 한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실장석들이 분에 맞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에 자연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이용하려던 인간들에게도.












실패한 실장

 

그 친실장은 너무도 물렀다.

친실장의 친실장은 매우 똑똑한 개체였다. 봄에 낳은 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자를 남기고 일찌감치 전부 솎아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빠짐없이 가르쳤으며 자 역시 잘 배웠다. 아니 오히려 그 친실장보다 머리가 좋았다. 사육실장으로 태어났다면 분명 최고급 도우미 실장이 되었을 지능이었다. 그래서 문제없이 독립하여 임신하고 자들을 낳아 현재의 친실장이 되었다. 성공적인 들실장생이었다.

하지만 이 친실장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자들에게 물렀다는 것은 다른 어설프게 양충인 실장석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결점이었다. 하지만 이 친실장의 것은 결이 조금 달랐다. 그것은 지능이 높은 인간에게도 종종 보이는 문제였다. 어미를 제외한 다른 실장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자신이 현명하니까 다른 실장석도 똑같이 현명하리라는 착각을 한 것이다.

분명 뛰어난 자만 골라내 기르라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의 태교를 과신해서 태어난 자들을 엄지까지 솎아내지 않고 그대로 키웠다. 자들이 부족한 점을 보여도 똑똑한 자신이 공들여 교육하면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엄지가 언니들에게 괴롭힘당하고 비뚫어져도 타이르면 그만둘 것이라 믿었다. 밖은 위험하니 나가 놀지 말라고 일러두면 들을 것이라 믿었다.

자들이 친실장의 충고를 무시하고 나와 놀다 모조리 잡아먹히거나 노예로 끌려간 날, 친실장이 집에 돌아와 본 것은 오도카니 집안에서 떨고 있는 엄지의 모습이었다. 이미 괴롭힘당하는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 어미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한, 쓸모없는 작은 엄지일 뿐이었지만 친실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실장까지 길러내면 착한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들실장이라면 엄지까지 솎아내고 늦기 전에 새로운 자를 낳으려고 할 것이다. 친실장의 특유의 자존심이 이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이미 오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단단히 닫아둔 보존식 상자 뚜껑을 열려고 애쓰는 엄지의 모습을 스물여섯번째로 목격했을 때, 친실장은 마침내 포기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먹지 못하는 이 분충을 남겨둔 것은 자신의 실패라고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실장은 이해심이 약간 부족할 뿐 기본적으로는 애정이 있었다. 스스로 솎아내는 대신 인간에게 탁아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똑똑한 들실장답게 친실장의 탁아는 조심스럽고 완벽했다. 엄지가 들어간 봉투를 든 인간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탁아당했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친실장은 집에 돌아가 스스로 코에 운치를 묻히고 뒹굴었다. 엄지의 약한 냄새는 금세 사라졌다. 이제 친실장이 엄지가 탁아된 집으로 찾아가기는 불가능했다. 그정도로 친실장은 물렀지만 똑똑했다.

하지만 두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오로롱... 마마, 와타시는 실패한 마마인 데스우. 어떡해야 하는 데스."



"으응? 이게 뭐야!!"

편의점 봉투를 열어본 남자는 포장을 뜯으려다 어느 하나도 제맘대로 되지 않자 벌러덩 누워 울고 있는 엄지를 보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일단 먹을것을 지킨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봉투 안에 있는 존재. 실장석의 탁아를 당한 것도 처음이었고 오며가며 본 실장석이라고는 큼지막하고 못생긴 성체 들실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생물이 실장석인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내려다보는 인간의 시선이 느껴지자 엄지는 울음을 멈추고 일어나 짖기 시작했다.

"레챠아앗! 닌겐!! 이게 뭐인 레챠!! 어째서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레치! 어서 우마우마를 대령하는 레치! 마마가 닌겐의 집씨에서 우마우마도 아와아와도 실컷 할 수 있다고 한 레챠!!"

다른 인간이 보았다면 망설임없이 학대 코스로 직행했을 발언이었지만 링갈이 없는 인간의 눈에는 얼굴에 눈물자국을 남기고 짧은 팔다리를 동동 구르며 레치레치 떠드는 엄지의 모습이 무언가를 간곡히 호소하는 것으로 보였다.

"흠. 이렇게 작은 건 처음인데, 자세히 보니 귀엽잖아.."

자기가 귀엽다고 착각하는 실장석들 가운데서도 가장 증상이 심한 엄지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게 엄지는 객관적으로 귀엽다 할만한 요소를 제법 갖추고 있다. 작은 얼굴 안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들어가 있어 큰 눈이 더욱 돋보이고, 우지챠에서 팔다리만 삐져나온 꼴이라 머리통의 비율이 큰 것이 앙증맞다. 더구나 현명한 친실장 밑에서 자랐으므로 들실장치고는 냄새가 적고 단정한 용모인 것도 플러스였다.

"한번 길러볼까."

툭.

"레챠아앗!!"

엄지가 떨어진 곳은 빈 반찬통이었다. 잠시 남자가 내버려둔 동안 엄지는 통 안을 둘러보고 이곳이 인간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불투명한 벽 사이로 심통이 가득한 엄지의 외침이 울린다.

"닌겐!! 무례한 레치!! 귀여운 와타치를 모실 때는 더 세레브한 집씨를 준비해야 하는 레챠!!!"

하지만 남자의 눈에는 벽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엄지의 화난 표정이 왜곡되어 비쳤다.

"하하. 몹시 기쁜가보네. 음. 뭘 주면 좋아할까."

툭.

"레에?"

"사탕이면 되겠지."

당연히 사탕은 들실장인 엄지에게 처음 먹어보는 특식. 금방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풀리며 정신없이 핥는다.

"치프프... 아는 레치. 이게 아마아마인 레치. 이걸로 누추함을 사과하는 레치? 이번만 특별히 봐주는 레치. 내일은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대령하는 레치."

역시 모르는 인간에게는 단순히 웃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착하게 잘 먹네. 내일은 흙을 구해올게."
"레에?"


야생의 환경과 똑같이 꾸며주기로 마음먹은 남자와 엄지의 생각은 완벽한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엄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애초에 남자는 링갈의 존재를 알았어도 이렇게 하찮은 엄지와 대화할 생각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말뜻을 알아먹지 못하는 이상 엄지가 무슨 생각과 말을 하건 엄지이기 때문에 무시당했다. 떼를 쓰고 위협해도 남자는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그렇게 골판지집보다 약간 나은 반찬통에서 살던 엄지는 문득 친실장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레에엥... 마마. 이런 건 사육실장 실패인 레치... 어떡해야 하는 레치.."









스완 송



내가 기르는 사육실장 '해쉬'는 올해로 네살이 넘은, 말하자면 노실장이다. 실장석치고는 얌전한 성격이어서 기르는 동안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왔다. 새끼를 낳아서 잠깐 기르다 그 아이들을 각각 다른 집에 주어버렸을 때 펑펑 운 게 전부다. 해쉬의 새끼들은 성체가 된 이후 저마다의 이유로 친실장보다 오래 살지 못했지만 해쉬는 그저 자들이 건강히 살아 있다고만 믿고 있다.


요즘 고민이 있다면 역시 해쉬의 건강 문제다. 실장석의 노화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 인간의 수명을 20분의 1로 압축시켜놓은 듯한 과정이니 당연한가. 하루하루 무거워지는 몸과 침침해지는 시야, 흔들거리는 이빨이 점점 해쉬를 울적하게 만드는 게 보여 안타깝다.


해쉬는 좋아하던 산책을 포기하고 집안에서 그림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음을 다룬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동화에서 자세히 다룰 리가 없으니 나만 피곤해졌다.


"주인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데스우."


내가 고생해서 찾은 이야기들 중 해쉬의 관심을 확 잡아끈 것은 스완 송, 즉 일생 동안 울지 않는 백조가 죽기 직전 딱 한번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닌 이야기고, 걸핏하면 엉터리로 노래부르는 실장석에게 빗댈 말은 더더욱 아니지만, 무언가 필생의 대작을 완성하고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 해쉬에겐 아름다워 보였을 게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해쉬의 집쪽에서 작게 억누른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데엣, 데. 데로게...


듣다 못한 내가 해쉬에게 가자 나쁜짓을 하다 들킨 어린애마냥 화들짝 놀라 머리를 연신 조아린다.


"데뎃!! 죄, 죄송한 데스우. 조용히 하겠는 데.."


"그래,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단 거지?"


"데?!"


며칠 뒤 주문한 실장용 방음부스가 도착했다. 이런 물건이 그렇듯 더럽게 비쌌지만 그동안 잘해준 해쉬에게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움이 덜했다. 다른 애호파의 사육실장들은 이런 상자 안에 들어가 꽥꽥 노랠 부르거나 욕을 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모양이다. 해쉬는 평소에도 조곤조곤한 타입이라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너무 오래 안에 있다가 질식하지 않도록 사육주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건 좀 귀찮다.


해쉬는 하루에도 몇번씩 부스에 들어가 떠들었다. 실장석이 생각하는 생애 최후의 노래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살고 싶다며 추하게 발버둥치는 것보다 저렇게 뭔가 준비하는 게 대견할 뿐.


종막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나는 거실에 있고 해쉬는 평소처럼 부스에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해쉬가 그 앞에 엎어졌다. 놀라서 다가가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위석을 담아둔 병을 보니 부들부들 떨며 기포가 맺히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


해쉬가 힘겹게 입을 뗐다.


"주인님....괘, 괜찮은 데스우. 와타..시를... 거실로.. 옮겨주시는 데..에...콜록.."


해쉬를 조심히 안아 소파에 앉혔다. 조금 호흡은 안정됐지만 위석의 떨림은 여전했다. 무서운 속도로 병에 담아둔 영양제가 줄어든다.


해쉬는 약간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인님, 주인님과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던 데스우. 감사한 데스. 아무리 말해도 모자랄 것인 데스우. 하지만 와타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건 싫었던 데스우. 아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모두 슬픈 일을 당했을 것인 데스우."


이녀석. 알고 있었던 건가.


"주인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귀여운 자를 남기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준비한 노래를 들려드리고 가는 데스우. 잘 들어주시는 데스우."


해쉬는 자기의 남은 생명력을 짜내는 듯한 분명한 목소리로 생애 최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뎃데데 데데뎃데, 데롯게~롯게.


노래라기엔 리듬이 너무 괴상하다...라고 느끼는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랩이구나.


해쉬가 자라며 들은 노래라는 게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힙합 음악이긴 하지만.. 해쉬의 저 발성과 플로우는, 키가 유난히 작고 코먹은 듯한 톤이 특징인 한 래퍼를 떠올리게 했다.


링갈에는 너무 빨라서 번역이 안 되는 건지, 빠르게 말하다보니 발성기관의 한계로 뭉개지는 것인지 의미불명의 문자들이 표시된다.


하지만 나는 해쉬의 노래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이건 분명 해쉬가 주인인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준비해 바치는 노래. 전무후무한 실장석의 랩송이니까.


나는 급하게 해쉬의 랩에 맞춰 노래를 찾아 틀었다. 비트 위에 깔리는 원 래퍼의 랩과 실장석 해쉬의 노래가 마치 더블링하듯 집안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다. 적막만이 찾아들었다. 해쉬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대로 눈빛이 흐려진다. 아니 내 시야가 흐려진 걸지도 모른다. 뒤이어 울려퍼지는 청명한 소리.


파킨.









안심 돌봄 서비스

 

"치치!! 나 동남아여행권 당첨됐어!!"
"텟!! 정말인 테스?! 너무 기쁜 테스우~"

독신인 A씨와 소중한 사육실장 치치.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해외여행 기회에 한껏 들떴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실장석은 동반 금지라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던 A의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실장석은 어느 나라에서건 반입 절대 금지이다. 위생 문제도 있을 뿐더러 여행지에서 버려져 애생화하면 뒷일은 뻔하기 때문이다.


치치를 여행 기간 동안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골치다. 주변에 애호파 친구가 있다면 간단한 거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의 실장석을 가장 귀찮아하는 게 애호파란 사람들. 서로 다른 사육 환경에서 자란 실장석이 섞이는 것만으로 무수한 문제가 일어난다. 이쪽에서도 달갑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다음 선택은 치치를 집안에 홀로 남겨두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지능이 높다한들 실장석은 실장석. 어린이 수준의 지능으로 혼자 얌전히 집을 지킬 수 있을 리 없다. 어린이를 집에 열흘 이상씩 방치한다면 아동학대 확정이듯이, 실장석을 내버려두는 것도 실장 학대다. 더구나 치치는 곧 성체가 될 중실장이다. 외로움을 못 견뎌 스스로 임신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마지막이 이런 경우 실장석을 맡아주는 전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인데, 최하급은 닭장 이하의 환경이고 최고급은 분충 양성소라고 알려져 있다. 애당초 다른데서 온 실장석이 섞이는 것만해도 최악의 조건이다. A씨는 검색을 하면 할 수록 암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한 곳...

"여기라면 혹시..."


몇주 후.

얼굴이 한껏 그을린 A씨가 '실장 안심 돌봄센터'의 입구에 나타났다. 치치의 이름을 대자 잠시 후 몸크기에 딱 맞는 케이스 속에 잠든 치치와 위석 케이스, 그리고 조그만 알약이 A씨의 손에 들어온다. 비용을 지불하고 주의사항을 듣는 A씨.

"짜주신 기억대로 심어드렸습니다. 이 약으로 깨우시고 다시 잠들면 저희가 보내드릴 음성파일을 이어폰으로 들려주시면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 음성파일이란 게.."
"아, 그냥 노래에요. 하하."

집에 도착한 A씨는 알약을 치치의 입에 넣고 약이 녹아 치치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잠시 후 눈꺼풀이 들리며 천천히 눈을 꿈뻑거리는 치치.

"텟?! 주인님? 여기는 어디인 테스우? 집인 테스?"

A씨는 웃음을 꾹 참고 연기한다.

"그래 인석아.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올때까지 세상모르게 코를 골아? 우리 치치는 정말 잠꾸러기라니깐."
"테에... 부끄러운 테스우.. 비행기씨 의자가 너무 포근해서 그만 자버린 테스."

일단 기억 주입이 잘 된 듯하다고 생각한 A씨는 치치에게 실장푸드를 먹이고 식곤증으로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메일로 받은 음성파일을 잠든 치치의 귀에 들려주었다.

자신이 먼저 들어보았지만, 링갈로도 번역이 완전하지 않은 실장석의 태교노래라 알아듣기 힘들다. 대충 여행도 즐거웠지만 가장 행복한 건 주인님과 함께 있는 집에서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 같다.


실장 안심 돌봄 서비스의 원리는 간단하다. 장기 출장이나 해외여행 등으로 주인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사육실장을 수면 상태로 만들고, 미리 세팅된 노래를 계속 들려주어 가짜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실제론 가지 않았지만 사육실장은 주인과 쭉 함께 있었다고 착각하게 되어 외로움도, 배신감도 느끼지 않는다. 나중에 세부적인 기억이 달라져도 그것은 실장석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탓이라고 하면 간단하다. 위석에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여 그상태에서 성장하지 않도록 한다.

이 서비스는 자기 사육실장이 버릇없어졌다고 느끼지만 직접 손을 대기는 싫은 애호파에게도 유용한데, 반대로 학대파에게 끌려가 심한 짓을 당했다는 기억을 심어주면 저절로 말잘듣는 착한 아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사를 해서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자실장에게도 쓸 수 있다. 주인도 연기를 해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만 감수한다면 나무랄 데 없는 방법이다.


다시 깨어나 완전히 컨디션을 회복한 치치, A씨와 즐겁게 여행의 추억을 공유한다.

"코끼리씨 정말 컸던 테스! 악어씨 무서웠던 테스. 하지만 두리안은 너무 맛없었던 테스.. 역시 와타시의 입맛엔 주인님이 주시는 푸드가 제일인 테스."
"하하하, 그래. 그럼 나중에 다시 가볼까?"
"물론인 테스우!"











실장 크래용 / 산후조리원


 


실장 크래용


시중에 판매되는 애완용 실장석은 선별을 통해 걸러진 일반적으로 지능이 높은 개체들이다. 이 실장석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왕성해서 적절한 완구와 놀이활동으로 욕구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장석용 놀이기구나 장난감은 자칫 비참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장석, 특히 자실장과 엄지의 내구력은 끔찍하게 약한데다 주의력과 위험 감지 능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실장석의 '예술'적 능력을 함양시키고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그림그리기 활동을 권장한다. 인간의 눈에는 낙서 수준이지만 조그만 종이 하나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고, 도구 하나만 있으면 되니 더없이 안전하다.

실장석이 사용할 그림도구로 몽당색연필을 주어도 되지만, 앞서 말했듯 자실장 이하의 내구력은 끔찍한 수준이기 때문에 제대로 쥐거나 눌러서 칠하는 데 큰 힘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나온 제품이 실장 크래용이다.

실장 크래용은 실장석의 뭉툭한 손으로도 쉽게 쥘 수 있도록 표면이 콘페이토와 같은 우둘투둘한 처리가 되어 있으며, 작은 힘으로도 쉽게 색을 칠할 수 있다. 인간과 실장석에게 무해한 성분으로 만들어져 먹거나 묻어도 문제가 없다.

물론 이 제품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만큼 매우 작은 세트임에도 가격이 고급 미술도구와 맞먹는다는 것. 




산후조리원


실장석을 위한 산후조리원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애당초 실장석에게 산후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니 말이다. 실장석의 총배설구는 신축성이 뛰어나서 후유증이 거의 없고 해산한 친실장은 바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고 싶어하는 사육실장과 애오파의 취향을 장삿속이 만난 흔한 사례인가 싶지만, 실은 반대다. 산후조리원은 실상 재훈육소에 가깝게 운영되는 것이다.

훈육내용을 잊지 않은 우수한 사육실장이라 해도 첫 출산과 육아에는 무수한 난관과 장애물이 따른다. 태교를 잘못하여 분충이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막론하고 친실장에게도 분충화의 위험이 상존한다. 대개 주인의 허락에는 자실장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며, 출산한 친실장은 거의 예외없이 칭찬과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주인을 기쁘게 해주었다는 성취감을 넘어서 자신의 집안에서의 지위가 올라갔다고 느껴 고귀한 존재로 스스로를 격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실장의 재교육도 꼭 필요하다.

조리원에 입원하는 친실장은 음식부터 평소 환경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산후특식으로 제공되는 푸드는 영양분이 풍부한 재료로 고급 사료에 전혀 뒤지지 않는 원가로 만들어졌고 양도 넉넉하지만, 친실장들은 거의 모두 첫 식사를 남긴다. 산후조리 푸드는 고급 실장 푸드와 달리 맛이 지독히 없기 때문. 오히려 실장석이 싫어하는 시고 씁쓸한 맛을 일부러 첨가한 수준이다. 이렇게 먹는 것에서부터 철저한 '내리기'를 시키며 친실장에게 편한 생각 따위는 할 수 없게 만든다.

전문 훈육사와 역전의 노실장들이 친실장 훈육팀을 구성한다. 훈육사는 친실장들에게 주인과 인간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혹독하게 재주입하며, 노실장들은 옷 갈아입히기, 목욕시키기와 실장용품 사용법 등 자들을 다루는 방법을 실장석의 눈높이로 전수한다. 이 중 가장 까다롭고 섬세한 교육은 나중에 분충인 자가 나왔을 때 비밀스럽게 '솎아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것까지 배웠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진다.

사실상 조리원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전문 팀이 만들어졌다면 조리원의 문을 엶과 동시에 성공이 보장된다 할 수 있다. 친실장의 훈육실패는 용납되지 않으므로 아무 훈육사나 쓸 수 없고, 여러 차례 자를 낳아본 노실장을 찾아내 기증(처분)받기도 쉽지 않다. 그 대신 업계 최고의 대우와 안락한 최후를 약속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에 반해 같이 입원한 자들은 친실장이 받는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자실장 이하를 관리하는 직원에게는 별다른 전문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다. 약간의 배변과 식사예절, 엄지에게는 프니프니 교육이 추가될 뿐 자들의 나머지 시간은 전부 놀이로 채워져 있다. 엄격하고 잔혹한 훈육은 누구에게 팔릴지 모르는 사육실장 후보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사육실장의 자로 태어나는 행운을 타고난 어린 실장석들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물론 어린 실장들의 행복 뒤에는 감시와 평가의 눈길이 있다.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사육실장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개체는 자매들이 모르게 처분된다. 지능이 현저히 떨어져 의사소통 또는 기본적인 교육이 불가능하거나, 욕심이 많고 난폭하거나, 구더기의 경우 공복 상태에서도 습관적으로 프니프니를 요구하며 울어제끼는 개체가 그 예다. 일과가 끝나 젖을 먹고 자기 위해 가족이 모일 때 구성원의 공백이 드러나지만, 친실장은 그저 사고로 슬픈 일을 당했을 것이라 둘러댈 뿐이다. 자매가 솎아내기 교육의 교보재로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어린 실장석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짧게는 1주, 길게는 한달여의 과정을 끝마치고 실장 가족은 퇴원하여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다. 친실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살아나오지만, 자실장 이하의 퇴소율은 20% 미만이며 홀몸 혹은 구더기들만 데리고 퇴소하는 친실장도 부지기수다. 일반 숍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생존률이기는 하나 눈앞에서 자신의 자가 대부분 솎아내지는 것을 본 친실장들은 깊이 낙담하게 된다. 남은 자들을 잘 키우고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결과는 가족 전체의 파멸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래서 처음 길러질 때보다 더 우수한 사육실장으로 돌아온다. 때문에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으며 퍽 부담스러운 요금에도 불구하고 애호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완전범죄



"처음엔 깜빡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같아서..."

TV에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에 관한 제보자의 증언이 음성변조 처리되어 흘러나온다. 살인방식도, 동기도,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목격자도 없던 완벽한 밀실살인 미스테리. 그런데 사건 며칠 전 현장 주변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모양이다. 방송국에서는 급히 특집을 편성했다. 진행자가 준엄한 말투로 범인은 꼭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코웃음을 치며 채널을 돌렸다. 저 정도 증언 가지고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단 말인가? 오히려 저 제보자만 위험해질 뿐이다. 범인은 자신의 완벽한 살인에 오점을 남긴 저 자를 찾아내 죽이려들 것이다. 이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저놈을 찾아서 죽일 거거든.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나머지 내용은 완전히 헛다리짚는 것들 뿐이다. 제보자의 인터뷰 영상만 분석하면 된다. 말을 들어보니 언제 어디서 나를 보았는지 기억난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겠군... 촬영 장소로 자기 집을 선택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주변에 마땅한 인터뷰 장소라고는 조그만 카페나 공원이 다니까. 더 쉽게 찾아냈을 것이다. 거실은 아니고 방인 듯하다. 커튼은 쳐져 있지 않지만 창문이 불투명해서 바깥이 잘 안 보인다. 큰 가구도 없다... 가만, 알겠다. 이녀석. 실장석을 키우고 있구나.

인터뷰는 사육실장의 방에서 진행된 것같다. 핑크색 벽지와 자실장의 크기에 맞춘 조그만 용품들, 그리고 화면 구석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자실장의 존재가 그 증거다. 짧은 영상 속에서 자실장은 공을 굴리거나, 이쪽을 쳐다보며 아양을 떨거나, 목까지만 나온 주인의 곁에 다가와서 놀아달라는 듯 무릎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자실장을 기른다고? 저녀석은 운이 없다. 나야말로 실장석의 전문가니까.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간의 지루한 탐색과 준비과정을 견디게 해준 것은 전부 그 똥벌레들 덕분이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실장석을 괴롭히고 죽이기는 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다. 실장석이 지루해질 때쯤 인간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고, 당장 행동에 나설 여건이 안 되면 실장석에게 화풀이를 했다. 온라인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각자 자신이 범한 완전범죄를 자랑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곳의 규칙은 절대 꼬리를 밟히지 말 것, 만약 목격자가 나타나면 그도 죽일 것. 그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동료들이 나를 놀리는 메시지가 속속 도착한다. 이 굴욕,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실장을 힌트로 제보자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


제보자는 꽤 자실장을 애호하며 기르는 것 같다. 자실장을 위해 방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고, 여러 세간살이를 빠짐없이 들여놓았다. 하우스는 큼직하고 화려하여 자실장의 허영심에 꼭 맞는 디자인이다. 지붕 달린 침대도 보인다. 그 옆에는 자실장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발코니에 있는 물건은 자실장용 샤워부스로 보인다. 자실장은 좋은 먹이를 먹고 자란 듯 혈색이 좋고 통통하다. 화면 너머에 낯선 인간들이 잔뜩일텐데 그다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태어나서 한번도 불행을 겪어본 적 없는 순진한 얼굴이다. 아기자기한 프릴이 달린 핑크색 실장복과 빨간 리본이 돋보인다.

저 정도로 애지중지 기르는 것을 보니, 제보자는 독신이 틀림없다. 부부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자실장을 위해 단독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가족과 더 가깝게 두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자실장의 방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에 여유 공간이 많다는 말이다.

조금 살펴보고 자실장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이 자실장은 인간을 좋아하지만 그다지 똑똑한 개체는 아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화장실로 보이는 공간에 놓인 독라모양 변기를 보고 심증을 굳혔다. 저런 본능을 자극하는 제품은 사용법을 이해시키기는 좋으나 분충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 즉 훈육을 제대로 받은 고급 실장은 아니란 말이다. 저런 녀석은 적당히 치켜세워주면 칭찬받은 아이마냥 전부 떠벌릴 것이다. 나는 한번더 자실장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영상을 껐다.


화창한 봄날이다. 휴일을 맞아 피크닉을 나온 가족과 사육실장들이 즐겁게 떠들고 있다. 벤치에 앉아서 그 제보자와 자실장을 기다린다. 이런 날에 실장석 애호파라면 반드시 이 공원에 올 것이다.

얼마쯤 기다리니 그녀석들이 나타났다. 제보자는 역시 혼자였고, 자실장은 그때 본 옷을 그대로 입고 제보자에게 안겨 있었다. 제보자, 그 놈은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아 어렵잖게 제압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자실장은... 여전히 세상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놈은 근처 풀밭에 자실장을 내려놓고 얼마간 같이 놀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는지 어디론가 떠나갔다. 자실장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혼자 풀밭을 뛰어다니고 나비를 쫓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자실장에게 미소를 띄우며 다가가 가져온 콘페이토를 건넸다.

"참 귀여운 아이구나. 먹을래?"
"텟? 콘페이토인 테치? 감사한 테츄웅~"
"먹는 것도 귀엽구나. 틀림없이 너의 주인님도 너같은 아이를 길러서 행복할 거야."
"칭찬해주니 부끄러운 테츄..."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부럽네.. 음,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물론인 테치! 친절한 닌겐상에게는 전부 알려드리는 테치!"

주인이 사라진 쪽을 신경쓰면서 자실장의 수준에 맞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주인의 생활 패턴, 집의 구조, 산책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여러번 반복해서 물어도 주인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머지는 내가 스스로 알아내면 된다. 마지막으로 자실장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주인님은 너와 잘 대화하지 않니?"
"주인님은 상냥한 테츄... 하지만 와타치가 말을 걸면 잘 듣지 않는 테츄. 그래서 닌겐상 말걸어줘서 감사한 테치."
"그렇구나. 주인님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럼 나와 얘기한 건 비밀로 하지 않을래? 주인님이 질투할 수도 있으니까 말야."
"테엣! 그건 안 되는 테치! 꼭 비밀로 하는 테츄."

자실장은 나의 비밀이라는 손모양을 따라하며 고개를 연방 끄덕였다.


그놈이 자실장을 데리고 떠나기를 기다려 뒤를 밟아 집의 소재를 알아냈다. 이제 남은 것은 밤에 문을 따고 들어가 부엌칼로 잠든 놈을 찌르면 끝. 며칠을 그 집 앞에 잠복하며 그놈의 생활패턴을 파악한 결과 자실장이 알려준 것과 대강 비슷했다. 생각보다는 더 똑똑한 놈이었나보다. 동료들은 자실장을 이용한 살인 계획을 듣자 끝나고 그 자실장을 넘겨달라며 아우성이다. 어차피 살인자들은 하나같이 갈 데까지 간 실장석 학대파들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넘길 생각이 없다.

달이 어둡고 비가 내리는 밤을 골라 실행에 나섰다. 그놈이 자실장을 데리고 집을 비웠을 때 알아둔 비밀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문이 열리자 잠시 숨을 죽이고 집 안 분위기를 살폈다. 그놈은 눈치채지 못한 듯 방 안에서 코를 골아대고 있다. 집 구조는 이미 알고 있다. 부엌으로 가 식칼을 꺼내고 먼저 자실장의 방으로 향한다. 실장석은 둔해빠진 생물이라 도중에 깨어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확실히 해두기 위해 잠든 자실장에게 네무리를 뿌렸다. 이제 자실장은 헬리콥터가 눈앞에서 이륙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놈이 자고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바로 뛰어들어가 놈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이 순간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다. 잠시 숨을 고르고 손잡이를 힘껏 돌렸다.




"?"
그는 방 한복판에서 얼빠진 자세로 동작을 멈췄다. 그놈이 잠들어 있어야 할 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맡에 놓인 작은 스피커에서 녹음된 코고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허를 찔려 멍하게 있는 사이 뒤에서 그림자가 날렵하게 뛰어들어 그를 제압했다. 작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날렵하고 단단한 체구의 그놈을 그는 당해낼 수 없었다. 어느새 식칼을 뺏기고 두손이 등뒤로 묶인 그에게 수갑을 채우며 그놈이 말했다.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그놈은 제보자가 아니었다. 제보자의 집에 대신 잠복해 있던 형사였다.

비슷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은 살인범이 제보자를 처리하러 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방송이 나가자마자 제보자에게 연락을 취해 살인범을 검거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제보자 대신 인상착의가 비슷한 형사가 대신 들어가 살며 제보자의 생활패턴을 따라한 것이다. 제보자의 사육 자실장 '리리'도 경찰에게 인수되었다. 리리가 주인과 대화가 없다고 말한 것도 새 주인인 형사가 의도적으로 리리의 대화를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형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리리는 주저없이 낯선 인간의 질문에 술술 대답했고, 그를 역으로 추적해 신상을 알아냈을 때 이미 그는 독안에 든 쥐였던 것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가 살인 모임의 존재를 실토하자 나머지 멤버도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수년간 골치를 끓게 한 사건 수십 건이 단박에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일에 지대한 업적을 세운 리리는 원래 주인인 제보자에게로 돌아갔다. 실장석이기 때문에 포상은 고급 콘페이토 몇봉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리는 이것만으로도 기뻐했으니 잘 된 일이었다.

"주인님, 요즘 콘페이토가 더 달달해진 테치. 어떻게 된 테치?"
"하하, 우리 리리가 똑똑해서 더 콘페이토가 맛있어진 거란다."
"그런 테치?! 몰랐던 테치! 치프프, 역시 와타치는 똑똑한 테츄!!"










마지막 임신 (폐경)

 

밥을 먹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집 사육실장, 나코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수저를 놓고 나코에게 다가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데.. 주이ㄴ니ㅁ.."
"말해봐."
"아..아니ㄴ 데스."

나코는 햇수로 3년이 넘은, 노실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실장석이다. 머리칼은 색이 빠져 회색에 가깝고 눈알의 광채도 흐려져 실장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장님이나 다름없다. 이빨도 몇개 안남고 빠져 요즘엔 갓난아기 시절에 주던대로 푸드를 우유에 불려 먹게 하고 있다. 말하기도 힘든지 발음이 새고 목소리도 꺼져갈 듯 작다. 그래서 할 말이 있으면 먼저 나를 본 다음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할 말이 생긴 것 같은데, 좀처럼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녀석이었는데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답답해진다. 곧 생일이라 선물을 원하는 건가? 아니, 나코는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다. 녀석이 먼저 말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며칠 후 드디어 결심한 듯 나코가 꺼낸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주인님, 자..자가 가지고 싶은 데스."



나코는 죽어가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평범한 들실장으로 태어났다면 꿈꾸지 못했을, 천수를 다하는 생. 그 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나코는 우수했다. 검증된 숍에서 사온 최상급 사육실장의 자질을 가진 개체였다. 훈육받은대로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실장석답지 않은 소박한 천성을 타고난 진정 세레브한 자실장이었다. 성장한 후에도 나코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떼쓰거나 몰래 임신을 시도하거나 나를 유혹하려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나코가 이제 와서 자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역시 실장석의 본능은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왜지, 나코? 넌 이제 늙고 약해.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아는 데스... 하지만, 낳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데스."
"응?"
"와타시...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스. 와타시가 죽으면, 주인님 혼자 살아야 하는 데스."
"음.. 슬프지만 그렇게 되겠지."
"주인님이 와타시같은 실장석을 다시 키운다면, 와타시의 자였으면 좋겠는데스."
"그리고, 와타시의 몸은 와타시가 아는 데스... 곧 와타시는 자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는 데스. 그 전에 한번이라도 자를 가져서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데스."


따로 배란하지 않는 생물임에도, 실장석에게 '폐경'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는 일견 간단하다. 나이를 먹어 신체기능이 저하되면 분대의 소화와 임신 능력 또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생명체로서의 생명 유지를 우선시해 임신 기능이 먼저 없어지고 분대는 소화기관으로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동물병원에 가서 나코를 보여주자 의사가 이렇게 오래 산 실장석은 드물다며 알려준 말이다.

"아직 임신은 가능해 보입니다만.. 실장석이 스스로 느낀다는 것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자를 낳고 싶다고 한 나코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그게 내 생각과 일치하느냐는 둘째치고... 아무튼 이만큼 살아오면서 나코가 소원을 말한 적도, 내가 선물을 준 적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장미꽃 한송이를 사와 나코에게 주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꽃을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는 나코를 보고 나도 괜스레 쑥스러워졌다.

얼마간의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 확인한 나코의 양눈은 다행히 녹색이 되어 있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나코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임신한 나코는 무슨 내용의 태교를 들려줄까.


뎃데로게, 뎃데로게~
듣는 데스 와타시는 마마인 데스
귀여운 아기의 마마여서 마마는 행복한 데스우
상냥한 닌겐 주인님과 함께 사는 데스
주인님과 함께면 모든게 행복한 데스우
주인님은 정말 좋은 데스
마마가 없어도, 주인님 말을 잘 듣는 데스우
귀여운 와타시의 아기라면 꼭 잘할 것인 데스우


인간의 지식은 문자의 발명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장석은 문자를 모르는 생물. 그 뻔한 지능에서 나오는 부정확한 구술의 태교는 2대를 쉽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게 한다.

사육실장의 2대가 그렇게 분충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대다수의 친실장이 사육실장이 되기까지의 애환은 싹 생략한 채 현재의 행복만을 전하기 때문이고, 들실장은 반대로 현재의 고달픔을 속이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행복회로 속의 공상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나코의 노래도 크게 기대되진 않지만 언뜻언뜻 주인님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내 얘기를 많이 노래하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닌데 말이지...


최고급 사육실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구입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사육주로 등록되자마자 집에 애호협회 이름으로 꾸준히 편지가 날아왔다. 모월모일에 지역 모임이 있으니 가급적 참가하라는 내용. 모임은 솔직히 즐겁지 않았다. 실장석을 통해 자신의 부와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려는 부류와, 실장석을 단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인형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부류, 사육실장을 인간 이상으로 보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까지. 그들의 사육실장은 겉으로는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뒤에 감춰진 썩은 내면이 너무나 잘 보였다.

그에 비해 나코는 사람들에게선 무시당했지만, 실장석들 사이에서는 스타였다. 평범한 옷을 입고 외모도 특출난 점이 없었지만 사육실장들은 나코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애써 연기하는 상냥함과 자애를 꾸밈없이 있는그대로 드러내는 실장석은 나코밖에 없다고, 간신히 친해진 내 또래 애호파 여성이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틈에 질투의 괴롭힘을 당한 듯 나코는 마지막에 항상 훌쩍훌쩍 울면서 모임을 마무리하곤 했다.

나와 나코는 둘다 불편한 세레브 애호파 모임은 관두고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가곤 했다. 그곳에 오는 애호파들은 양쪽 모두 평범한 사육주와 사육실장들이었다. 새끼를 거느린 사육실장들도 있었는데 나코는 이 새끼들을 귀여워했다. 나는 그걸 보며 혹시 나코도 새끼를 낳게 해달라고 할까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코는 그저 남의 새끼를 보면서 만족해했다.

해가 바뀌고 나코가 늙으면서 우리의 산책은 뜸해졌다. 공원의 멤버는 변동이 심했다. 사육주는 똑같은데 사육실장이 저번과 다른 경우도 있었고, 사육실장이 집을 나갔거나 버리든가 해서 더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친구가 하나둘 사라지고, 그녀만큼 오래 산 실장석을 찾기 어려워지자 나코는 뭔가 이해한 듯했다. 이 추한 늙은이는 뭐냐고 비웃음당한 적도 있다. 그 건방진 말을 뱉은 자실장은 그 자리에서 '처분'당했고... 나코는 그 뒤로 그 공원을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코의 배는 조금씩 불러왔다. 그래도 마른 몸에 배만 툭 튀어나온 정도라 안의 새끼는 두세마리 아니면 더 적은 듯하다. 늙은 분대가 많은 태아를 담을 능력이 없어졌을 것이다.

점점 뱃속의 새끼의 실감이 나는지 나코의 노래는 힘이 들어갔다. 목소리도 약간 커진 듯하고, 식사량도 많아졌다. 거동이 불편해진 나코를 위해 집이 푹신하게 쿠션을 더 넣어준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뱃속의 두 자는 듣는 데스우
상냥한 마음을 잃지 마는 데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친구인 데스우
서로서로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데스
누가 비웃어도 흘려버리는 데스
와타시타치만 서로 아낀다면 걱정없는 데스우


성체로 성장하고, 예의 다른 실장석들과의 사건을 겪으며 나코는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자아가 성숙하면서 보이는 정신적 '독립'과는 또 다른, 어떤 쉽사리 말못할 느낌이었다. 집안에 틀어박힌 나코가 안타까워 내가 없을 때 심심함을 달랠 수 있도록 TV를 새로 사서 조작법을 가르쳐주었다. 본래 집안 물건은 하나도 다룰 줄 모르던 나코고 나도 원하지 않았던 바지만, 어떻게든 익혔다.

나코는 그로부터 하루 종일 TV를 보게 되었다. 애호파용 실장석 채널은 수신료도 만만찮고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 투성이라 결제하지 않았다. 나코가 좋아하는 방송은 아침 드라마와 뉴스였다. 인간 세상의 일이 실장석에게는 이해 못할 것 천지일텐데도 나코는 화면이 뚫어져라 집중해서 보곤 했다. 가끔 나에게 설명을 구하며. 그렇게라도 부쩍 말수가 준 나코와 대화할 수 있어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바깥 세상은 위험한 것이 많고 많은 데스우
멋대로 나가면 슬프고 슬픈 일을 당하는 데스
언제든지 주인님 곁에 있는 것을 잊지 마는 데스우
주인님은 우리를 지켜주는 데스
주인님만 믿으면 되는 데스
와타시타치는 주인님이 전부인 데스우


시간이 무르익어 슬슬 출산이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쯤, 다시 나코가 말을 걸었다.

"주인님, 산책하고 싶은 데스우."
"밖에 나가기 싫어하지 않았어?"
"자들에게 바깥을 가르쳐주고 싶은 데스."

만삭인 몸으로 혼자 걷는 건 무리다. 어릴 때 태워서 다니던 먼지쌓인 실장 유모차를 꺼냈다. 조금 불편해보여도 억지로 들어가 있을만은 했다. 예전에 산책나가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는 듯 나코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공원에 도착했다. 알맞게 선선한 날씨 속에 볕이 잘 드는 풀밭에 자리를 깔고 나코를 앉혔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나코도 감회가 새로운 듯 노래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다 불쾌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저분한 들실장이 겁도 없이 공원 한복판을 의기양양하게 걷고 있었다. 한손에 든 줄 같은 것이 뒤따라 끌력나느 초라한 독라의 목을 감고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 독라의 것이었을 목줄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쪽 손에 방금 벗긴 듯한 옷이 들려 있었다. 분명 사육실장을 기습하여 제압하고 노예로 삼으려고 끌고 가는 상황이다.

'데프프프프, 사육분충을 잡았으니 올해 겨울도 안심인 뎃스우-'

멀어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필경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히죽대고 있으리라. 나코도 이걸 보고 있을까 그쪽을 돌아본 순간.

"내버려두는 데스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나코가 말했다.

"저 친구는 이제 그른 데스우. 버려진 걸지도 모르는 데스. 아니면 멋대로 제 주인 몰래 다니다 저런 꼴을 당했을 게 틀림없는 데스우. 어떤 쪽이든 저 자에겐 이제 피할 수 없는 데스."

평소의 착한 나코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상상할 수 없던 차갑고 매몰찬 말이었다. 그것보다 나코가 이렇게 논리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는지가 놀라웠다. 세레브한 것은 성격뿐 지능은 순박한 실장석 그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나코는 왠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와타시.. 티비씨를 보며 알아버린 데스우. 닌겐상들은 와타시타치를 싫어하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닌겐상들을 속으로는 미워하는 데스. 그동안 만난 친구들도 그랬던 데스. 그뿐만이 아닌 데스. 닌겐은 서로 미워하는 데스. 속이고 싸우고 죽이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마찬가지인 데스우. 세상은 무서운 일 뿐인 데스."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와타시는 몰랐던 데스. 주인님과 있으면 행복한 데스. 하지만 와타시도 자를 가지면, 자들이 와타시를 싫어하면 어떡하는 데스? 걱정된 데스. 주인님이 와타시의 자들을 싫어하면 어떡하는 데스? 와타시는 알 수 없었던 데스. 그래서 와타시, 자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데스."

멀리서 억울함과 비통함이 섞인 실장석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러다가 생각한 데스. 와타시는 죽어도 주인님은 사는 데스. 와타시와 주인님은 행복했던 데스. 하지만 주인님이 다른 실장석을 기르게 되면 다른 데스. 주인님의 새 실장석은 속으로 주인님을 미워하는 나쁜 아이일지도 모르는 데스. 좋아하는 주인님이 그런 아이 때문에 아파하는 건 싫었던 데스. 와타시는 결심한 데스.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아서, 와타시가 없어도, 주인님을 꼭 행복하게 해줄 아이로 기르겠다고... 데에에엥..."
마지막 말은 복받쳐나오는 울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의도만 다를 뿐 전형적인 실장석의 사고방식이지만, 내가 어떻게 나코의 고결한 마음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감정에 취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나코의 양쪽 눈이 붉게 변색하고 있었다.

"나코, 너???"
"뎃?"

아뿔싸, 현실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너무도 급했다. 유모차도 자리도 내팽개치고 나코를 안고 달렸다. 불결한 공중 화장실에서 나코가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달렸다. 내 품에 안긴 나코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총구가 벌려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끊어질 듯 말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애처로웠다.

"뎃..데로게...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우.."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나코를 쿠션 위에 앉히고 출산 준비를 서둘렀다. 대야에 물을 받고, 나코의 옷을 벗겨 물 속에 가라앉혔다. 나코는 이번에는 꽉 조여진 총구를 벌리려 힘을 주고 있었다. 얼마나 버텼으면 가벼운 마비가 온 것이었다.

태어날 때가 다가온 태아는 모체와 연결됐던 태반에서 떨어져 총배설구 쪽으로 내려온다. 보통은 가볍게 배출되지만 어떤 사정으로 체내에 오래 머물게 될 경우, 더이상 태아로 인식하지 않은 분대 속에서 최악의 경우엔 소화될 위험이 있다. 이런 난산의 경우 간단하게 '제왕절개'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코같이 늙은 실장석에게는 그대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나코가 힘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1초가 1년같은 격투 끝에, 드디어 총구가 열리며 두마리의 자실장이 풍덩 물로 나왔다.

"텟테레~"
"텟테레~"

기진맥진한 나코에게 한마리씩 안겨주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점막을 벗겨주는 나코.

"태..태어난 데스. 와타시가 마마인 데스."
"테츄웅~"

어미의 혀놀림이 간지러운지 방긋 웃는 두 자실장을 번갈아보며, 나코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대야에서 꺼내 몸을 닦아주고, 쿠션 위에 나코와 두 자실장을 앉혔다. 나코는 가슴으로 새끼를 가져가 젖을 물려주었다.

"행복한 데스.. 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데스. 와타시의 이름에서 따오는 데스. 장녀는 나나, 차녀는 코코인 데스. 앞으로 오마에타치의 이름인 데스."

"테쭈쭈.."

그리고 나코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까지 지켜본 나는 마음을 놓고 출산으로 더러워진 대야를 씻고, 체력이 떨어진 나코를 위해 준비해둔 영양제를 찾았다. 어느새 노랫소리가 끊겼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다시 나코들에게 돌아왔을 때의 참혹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코는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문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 두 눈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공기가 빠져나가 쭈글쭈글해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말라붙었다. 나코가 이름을 지어준 두 새끼, 나나와 코코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젖을 빨다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이 순식간에 벌어진 참상에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시리도록 맑은 소리가 났다.

'파킨'

나코의 마지막 생명이 스러지는 소리였다.

나코는 아기들을 건강하게 낳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섭취하는 영양은 모두 태아에게 향했고 나코는 속으로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격해진 데서 비롯한 갑작스러운 출산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체력 소진을 불러왔다. 마침내 태어난 건강한 아기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모유를 분비하는 데 쥐어짠 나코의 몸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며칠 후 애호파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나코의 사육실장 등록을 말소하기 위해서였다.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다. 조금만 더 빨리 영양제를 주었다면, 아니 나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면, 나코는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코는 죽었고, 이 모습을 방금 태어난 아이들이 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조심스럽게 나나와 코코를 나코의 집안에 들였다. 마마의 냄새가 가득한 아늑한 쿠션에 눕혔다. 그리고 나나의 시신을 수습했다. 부질없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옷을 입히고 눈을 감겼다. 내 방으로 옮긴 나코의 시체 앞에서 나는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름-나코, 연령-생후 3년, 구입처-XX세레브숍, 사망원인-출산후유증, 출산경험-1회.. 간단한 사항의 문답이 이어지고 상담원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최고급 사육실장이 사망했을 시에는 그 시체와 위석을 실장석 연구에 기증하시고 소정의 사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동일 숍에서 동급의 사육실장을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해드리고요. 원하신다면 그 아이들을 위한 무료 훈육 프로그램도 안내해드릴까요?"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나코의 마지막이 보건소의 불구덩이일지라도 저들의 연구대상으로 줄 수는 없다. 물론 나나와 코코가 있는데 다른 사육실장도 무의미하다. 훈육? 나코의 태교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단 거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코가 얘기했던 그 다른 실장석들을, 나는 알고 있다. 나코를 만나기 전에 길렀던 실장석들을 통해 나는 실장석을 깊이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실장석은 어차피 자기 위주일 뿐인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 실장석을 기른 건 내 삶의 공허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실장석과는 다른 나코를 마음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진심을 다 주지 않았다. 그저 비싼 게 돈값한다는 감상 또는 귀찮지 않아 좋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나코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 수록 소중한 기분이 들었다. 나코는 어쩌면 이런 내 내면마저 꿰뚫어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 아이를 낳았던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실장석을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나나와 코코가 가르쳐줄 것이다. 제 어미를 쏙 빼닮아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이가 정말 좋은 쌍둥이 자매가 내 곁에 있다. 나코의 뜻은 이 두 딸에게 이어졌다는 것을 믿고 있다. 나코도 그것으로 됐다 생각하겠지.






















레뺘앗~!!!! 나때는 말인 레후~!!!!

 




나때는 말인 레후,,

ㄷㅊㅈㅅ 참피 만화 보다가 부족해서
카연갤에 참피 검색해서 정주행하던 시절을 오마에들이 아는 레후?

나때는 말인 레후,,,

두루마리 카페 밤새서 정주행하다가 똥글 사이에서 명작을 발견했을 때,,
기립박수 치던 기분을 오마에들이 알겠는레후??

우지챠가 기가 차는 레후,,,

이제는 뉴비들도 명작선인지 뭔지 하나 훑고 참생 만렙되었다 꺼드럭거리는 레후,,
존경 받아 마땅한 세레브한 와따시 같은 올드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후!!

세상이 말세인 레후!!










특별한 참피

 


-와타시는 특별한 데스-

퇴근길에 잠깐 공원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내 발길을 멈췄다.

거기에 있는 것은 독라실장석 한 마리.

-닝겐상. 특별한 와타시를 보는 데스-

나는 또 왠 분충실장 한마리가 분충 레퍼토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녀석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타시는 다른 실장과 다른 데스-

녀석의 춤은 확실히 내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다른 실장석들의 엉성한 개다리춤이 아니다. 선이 살아있는 발레였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한번도 아첨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이 독라에게 흥미가 생겼다.

-왜 너가 특별하지? 특별하다면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겠니?-

보통 실장석들이라면 여기서 말이 막히거나, 어불성설 논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는 게 전부이다. 하지만 녀석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데스-

라고 하며 자신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와타시는 음식물 쓰레기나 벌레는 먹지 않는 데스. 그렇다고 콘테이토나 스시, 스테이크를 원하지도 않는데스. 와타시는 오로지 향기나는 풀과 도토리만 먹는 데스.-

-와타시는 스스로 독라가 된 데스. 머리나 옷은 지저분해지기만 하고 따뜻하지도 않은 데스. 필요가 없는 데스. 그래서 스스로 벗고 스스로 뜯어버린 데스.-

-와타시는 하루에 세 번 식수대씨에서 목욕재개 하는 데스. 위생이야말로 미(美)의 기본조건인 데스.-

-와타시는 스스로 몸을 단련한 데스. 불필요한 비계와 군살은 모조리 발레를 통해 없앤 데스. 지금 와타시는 최적의 몸매가 된 데스.-

-아첨아나 애교따위 하지 않는 데스. 그런 건 미(美)가 뭔지 모르는 분충이나 하는 짓 데스. 와타시는 그저 와타시의 미를 아는 존재가 오길 기다리는 데스.-

나는 조용히 그 독라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녀석이 하는 말은 전부 사실일 것이다.

녀석에게는 들실장 특유의 악취도 없고 지저분한 것도 없다. 행동도 사육실장 이상의 기품이 있었다.

-확실히 특별하군. 하지만 왜 그런 너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혼자 덩그라니 남겨진 채로-

-와타시의 마마는 와타시가 음식물 쓰레기를 안 먹는다는 이유로 와타시를 쫓아낸 데스. 그리고 와타시가 자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미에 방해되기 때문인 데스. 자를 낳으면 피부가 망가지고 살이 늘어지는 데스.-

그 질문을 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이야 말로 내가 기다려온 실장석.
-너, 나랑 같이 가지-

그러자 독라는 고고하게,

-알겠는 데스. 좋은 데스-

라고 말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

-이야기가 틀린 데스!!! 오마에는 분명 특별한 와타시를 사육실장으로 삼아준다고 한 데스!!!-

-응? 나는 그런 소리 한 적 없는데?-

나는 오븐에 들어가길 저항하는 녀석을 다시 한번 억지로 밀어넣었다. 팔다리도 이미 잘려나갔는데 엄청 씽씽하네.

결국 녀석은 인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오븐에 처박혔다.

-도토리와 허브만 먹고 살아서 냄새가 없고, 스스로 위생 관리를 해서 깨끗한 실장석 고기. 거기다 발레(운동)으로 육질까지 조절되어 있다니. 최고로 특별한 식실장이야.-

한 동안 오븐 안에서 난동을 피우며,

-와타시는 여기서 죽을 존재가 아닌 데스!!! 와타시는 특별한...-

-미(味)를 아는 네가 희생해주렴!-

...파킨!

청명한 소리와 함께 요리가 완료되었다.

나는 잘 익은 녀석의 뱃살을 한 점 뜯어내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그레이비 소스에 찍어서 한 입 먹으니,

-세상에! 너 정말 특별한 녀석이었구나!-

특별한 식사가 되어 준 녀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식사를 마쳤다.













자실장이 먹이경쟁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거 같지않냐

 

먹이사슬 최하층에 위치한 실장석은 성체이거나 성체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 남을 수조차 없어.

당연히 새끼 실장들은 많은 먹이를 먹어서 빠르게 성장을 해야 살아남을 건덕지가 생겨.

지들도 본능적으로든 이성적으론 그걸 알고 있어서 먹을 것에 심각하게 집착하게 된 거야.

그러다보니 친실장이 먹이를 쏟아놓으면 같이 놀던 동생을 내팽겨치고 달려드는 것이지.



먹을때도 그냥 먹는게 아냐.

먹이에 머리를 쳐박고 다리로 자매의 머리를 짓눌러가며 팔로는 먹이를 최대한 끌어모으지.

힘이 약하거나 덩치가 작을 경우엔 밀쳐지고 걷어차여 먹던 것도 빼앗기기 일쑤일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울거나 할 새는 없어. 가만히 있는 동안 자매들은 덩치를 불려나갈 것이기에.

그리고 끝내는 자신의 몸뚱아리조차 탐할 것임을 알기에 억지로 먹이를 우겨넣는거야.

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덩치가 있을때 가능하기에 엄지따위는 경쟁에 참여조차도 못하지.

뭔가 먹으려고 끼어들다가 걷어차여 울며 마마를 찾으면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야.

재수가 없으면 오네챠들의 발길질에 팔이 부러지고 눈이 터져나갈 수도 있거든.

그러다보니 엄지가 유난히 보존식을 먹다 걸려 죽는 비율이 높아.

밥은 못먹는데 보존식은 뻔히 전시되어 있거든. 굶주린 엄지들에겐 참을 수 없는 유혹이지.

물론 친실장은 그 광경을 뻔히 보고 있음에도 개입하지 않아. 오히려 찬찬히 뜯어보지.

비정한 것이 아니라 우수한 새끼를 골라내기 위함이야.

제 몸의 안전까지 지키며 하루에 확보할 수 있는 먹이는 한정되어 있고, 자들은 빠르게 성장해가지.

공평히 밥을 나눈다 한들 오히려 성장만 더뎌져서 다른 일가의 자실장들에게 추월당해.

자신의 자를 세상에 뿌리는게 최종목적인 실장석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날때부터 덩치가 큰 새끼를 장녀라고 좋게 봐주고, 엄지같은 작은 녀석은 무시하는거야.

작은 놈들은 그저 먹이만 축내면서도 경쟁에 밀려 성장도 제대로 못하니까.

물론 이것만 들어서는 늦게 태어난 것들이 무조건 경쟁에서 패배할 것 같은데 꼭 그런것만도 아냐.

"테에, 맛없는테치. 똥마마가 좀 더 노력했다면-"
"장녀, 지금 뭐라 지껄인데스."

일찍 태어났다고 한들 꼭 개념까지 알차게 들어있진 않거든. 지금 이 자실장처럼 말야.

이 녀석은 잘못을 두개나 저질렀어. 마마를 욕하고 먹이를 먹기 싫다고 둘러 말한 것이지.

그래도 눈치는 빠른 것인지 장녀가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늦었어.

친실장은 장녀를 집어들더니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운치굴에 넣더니 반성하라고 말해.

친실장은 이정도면 솎아낼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네. 하루정도만 가두고 꺼낼 생각인가봐.

보기엔 가벼운 체벌같지? 자실장들 사이에선 상당히 중한 벌에 속해.

덩치가 커서 예쁨 받는다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자실장끼리는 덩치 차이가 크게 안 나.

장녀와 사녀쯤을 비교한다면 모를까 차녀와 삼녀랑은 아슬아슬하게 더 크단 말이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자실장에게 하루 굶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

성장하지 못하는건 물론이고 몸이 상해서 다시 성장하려면 몇일을 잘 먹어야하지.

다른 자매는 한 마리가 빠져 먹이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터, 잘못하면 덩치에서 밀릴 수 있어.

그래서 어떤 일가들은 아예 덩치를 기준으로 삼아서 장녀가 바뀌고 차녀가 바뀌고 하더라.

이쯤에서 하나 궁금해질거야. 경쟁에서 밀린 새끼는 어떻게 되느냐? 우린 이미 답을 알고 있어.

달조차 보이지 않는 한밤중. 다들 잠든 와중에 친실장이 보존식을 만지고 있네.

친실장은 연신 주변을 돌아보더니 이윽고 한 자실장의 입가에 가루같은 것을 뿌리더니 자리로 돌아갔어.

다음날, 친실장의 불호령이 하우스에 울려퍼져.

"보존식을 건드린 분충은 누구인데샤!"

아무리 새끼라고 해도 보존식의 중요성은 알 터, 빠릿하게 일어나서 친실장의 앞에 집합해.

생각해보니까 보존식의 중요성을 안다기보다 제 목숨 소중한걸 안다 해야겠다. 아무튼.

서로 자기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와중에 친실장에 누구를 지목해서 말해.

"오마에 어째서 입에 가루가 묻어 있는데스?"

지목된 자실장은 똥마마가 누구에게 누명을 씌우냐고 울부짖지만 이미 여론은 기울었지.

친실장은 분충을 잡아들어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뽑아. 그리고는 운치굴에 아무렇게나 던져넣지.

다른 새끼들은 당연한 것이다. 정의가 승리했다고 떠들며 운치굴에 몰려가 분충을 비웃어.

친실장은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뒤를 돌아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소매로 닦아내.

실장석은 황새처럼 수집한 먹이를 늘어놓고 새끼들이 자유롭게 먹게 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그렇게하면 자연히 도태되어야될 새끼가 찌꺼기를 먹어가며 어떻게든 살아남지.

아까도 말했듯 먹이는 한정되고 자들은 계속 커가지. 입이 줄지 않으면 이후의 성장도 불투명해지는거야.

황새의 경우에는 가장 약한 새끼를 잡아먹는 것으로 딜레마를 해결해. 하지만 실장석은?

차라리 지성이 없다면 좋으련만. 어중간하게 지성의 저주를 받았기에 자매가 잡아먹히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서 나아가서 나도 곧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눌려 파킨하거나 어미를 피하게 되는거야.

친실장은 하루 대부분을 먹이 수집에 써서 자들을 교육시킬 짬이 좀처럼 나질 않아.

그럼에도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들을 전수하려고 안갖힘을 쓰는데 그래도 많이 힘겹지.

그 와중에 자실장이 어미를 피하게 된다면 교육은 의미가 없어. 얌전히 있어도 듣는척만하지.

그래서 누명을 씌워 솎아내는거야. 입을 줄인다는 이유로 솎아내기엔 반발이 워낙 심하니.

하지만 아무리 실장석이라 해도 자기 새끼에 누명을 씌워 해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

차라리 분충이면 속은 후련하련만. 분충에 민감한 친실장들이 많은 이유가 이거야.

그렇게 친실장이 새끼를 솎아내다보면 어느순간 안정기가 찾아와.

자들이 먹이를 양껏 먹어도 모자라지 않고, 보존식을 반발 없이 축적할 수 있는 시기.

그때쯤엔 자들도 덩치가 커져서 친실장은 자들을 데리고다니며 자신의 모든것을 전수해줘.

그렇게 자실장은 어미의 기르침을 받아가며 중실장을 거쳐, 어엿한 성체가 되어 독립하게 돼.

그리고 그 성체가 새끼를 낳음으로써 다시 시작되는거지.

난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이 너무 좋더라. 뭐 이 공원에선 내일로 끝이지만.

구제를 본업으로 하면 페이도 좋고 대우도 좋고 다 좋은데 밤중에 판넬 까는건 너무 싫더라.

실장석이 공원에 빠져나가면 안돼서 대충할 수도 없는데 

아무튼 이따 밤에 있는 작업 때문에 일찍 자러간다. 너네들도 수고해.










작명실장

 

그동안 후타바 공원에 실장석이 떼지어 살고 있었다지만 워낙 구제가 많아 일어나서 실장석들은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살아 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목격이 늘어나고 있는데 단순히 개체 수 증가에 따라 자주 보이는 것이 아닌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학대파가 공원 채 올리기라도 했는지 세레브를 입에 달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콘페이토를 달라 아마아마를 내놓으라 요구하며 투분까지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다.

애호파는 아니지만 공원에 갈 때마다 자주 보여 친해진 양충 친실장한테 물어 보니 몇 주 전에 어느 성체 실장이 나타난 뒤로 실장석들이 단체로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실장과 이야기하며 이 사태의 원인을 들었다.

"그깟 이름이 뭐냐고 세레브해졌다고 닝겐들한테 해를 끼치는지 모르겠는데스우. 여기 더 있다간 자들까지 물들게 생겨서 와타시타치는 다른 공원으로 이주하려는데스우. 그동안 감사햇던데스우."

이름. 실장석이 세레브로 여기는 증표가 몇 개 있다. 대게 사육실장만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사육실장 옷(주로 핑크 옷), 호신용 스프레이랑 간식 콘페이토 같은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공산품, 그리고 이름이다. 근데 실장석들이 이름을 받았다고? 애호파가 실장권 운운하면서 이름을 지어준 것일까.

과연 공원에 잠깐 있으니 곳곳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사람끼리 부르는 게 아니라 실정석끼리 이름을 부르고 있다. 이름이 없으니 자는 낳은 순서에 따라 장녀 차녀 삼녀로 부르고 이웃은 이웃 보스는 보스 모르는 실장석이면 오마에라 부르지만 오마에를 빼면 서로 아는 사이라면 모두 이름을 부른다. 그것도 미도리 초록이 그린 같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 아니라 모두 개성 넘치는 이름이었다. 물론 사람 이름과는 많이 다른 게 가나다라부터 시작해서 참치 꽁치 방어 어물전 시리즈도 있고 앙귀비 민들레 단풍처럼 꽃과 풀 이름도 있었으며 으아아 악어 자판 같은 무슨 뜻으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이름도 있었다.

"오마에! 거기서 와타치타치들을 왜 힐끗힐끗 보는데스! 와타시타치의 옥체는 오마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팔아도 10초도 보지 못하는 세레브함의 극치인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관대하니 특별히 콘페이토 한 봉지로 봐주는데스!"

딱 봐도 상분충 친실장 하나가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문득 이 녀석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주머니에 있는 콘페이토를 하나를 꺼내 들자 친실장과 자실장들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흐르며 내게 전력질주해왔다.

"야. 너희 이름이 뭐야. 이름을 말하는 녀석한테는 콘페이토를 하나씩 줄게."

평소에는 쳐다도 냄새도 못 맡는 콘페이토를 준다는 말에 녀석들은 제 이름을 공원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와타시는 그물인데스! 아타치는 귀걸이인테치! 아타치는 소화기인테치! 아타치는 씨앗인테치!

이름 한 번 누가 지었는지 개성넘치는구나. 약속대로 콘페이토를 하나씩 나눠주고 하나를 더 깨냈다.

" 그럼 이름은 누가 지어줬어? 알려 주는 녀석은 하나 더 준다."

"아타치! 아타치가 말하는테치! 저 뒤쪽에 사는...테벳!"
"똥차녀는 닥치는데스! 배은망덕하게 마마한테 방금 받은 콘페이토를 바쳐도 시원찮은데 저것도 뺏어먹으려는데스! 오마에는 저 콘페이토를 먹고 후식으로 먹어주는데스!"
"그래서 어디 있는데. 빨리 말 안 하면 안 준다."
"뎃...데... 말로 하기 어려운데스. 앞장설 테니 함께 가는데스. 대신 발품 판 대가는 비싸게 받아야하는데스! 콘페이토를 이 자리에서 두 개 주고 가서 두 개 더 주지 않으면 꼼짝않는데스! 세레브한 와타시가 움직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특별히 자비를 베푸는데스!"

그래 그래 줄게. 콘페이토 두 알을 주자 그 자리에서 해치워버린다. 그래 실컷 먹어둬. 너희는 제거 1순위니까. 친실장은 뒤뚱거리며 공원 안 쪽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지어준 게 아닌가 보다. 그럼 실장석이 지어줬나. 그럴 리가 없다. 제 이름도 못 붙이는 실장석이 어떻게 다른 실장석한테 이름을 지어주겠는가.

방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는 티비 진기명기에도 나오지 않는 기이한 실장석이 있었다. 집인 듯한 골판지 상자 앞에 성체 실장 하나가 양반 다리 자세를 하고 앉아 있다. 눈에는 안경을 끼고 있는데...안경이라고? 자세히 보니 철사를 안경 모양으로 만들었다. 귀에는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성체 실장 앞에는 넓적한 돌이 있었고 위에 문고본 크기 국어사전이 있었다. 굉장히 오래 됐는지 종이는 누렇고 여기 저거 찢어졌는데 용케 쓰고 있구나.

"오마에는 그물이 아닌데스. 와타시가 분명 닝겐을 데려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떻게 된데스!"
"데프프 시끄러운데스. 콘페이토를 준다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스? 똥닝겐! 약속한대로 콘페이토 두 봉지를 주는데스! 건빵에 담긴 싸구려 콘페이토로 준다면 오마에를 건빵 부스러기처럼 갈아버리는데스!"

어느새 두 알이 두 봉지가 되었다. 이제 필요 없어진 친실장을 뻥 차버리고 박사라 불린 성체 실장한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네가 쟤네 이름 지어줬어? 사전도 있는데 한글 읽을 줄 알아?"
"물론인데스. 글도 못 읽는데 어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데스."

말투가 은근 고풍스럽다. 원사육실장인가? 시험 삼아 아무 장이나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읽어 봐. 박사실장은 안경 기능도 없는 안경을 손으로 올리며 뚫어져라 보더니 장독대라 읽었다. 정답이다. 몇 개 더 가리켜봤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모두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너 진짜 읽을 줄 아는구나."
"당연한데스. 주인사마가 글을 가르쳐준데스. 모두 주인사마의 은덕인데스."
"주인? 주인이 있었어? 쫓겨났어?"

박사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주인사마는 노환으로 88세 때 돌아가신데스. 주위 닝겐들은 호상이라고 한데스. 주인사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호상인데스! 주인사마의 자들은 와타시를 싫어한데스. 자들한테 가봤자 천대받다가 죽을 운명이 보여 장례가 끝나고 여기로 온데스. 주인사마와 살 때랑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름을 지어주고 식량을 받으니 제법 넉넉한 삶인데스. 자판기도 있고 운치 노예로 셋이나 있는데스. 겨울 준비도 이미 끝난데스."
"그렇구나. 대단하네. 원사육실장이 이렇게 살아남기 쉽지 않는데. 그런데 밀아야."

박사 뒤에 있는 골판지 집을 발로 툭 찼다. 물 한 방울 묻은 곳 없던 골판지 상자는 가운데가 찌그러져 집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박사는 5초 동안 뒤를 돌아보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데챠아아아아악!!! 똥닝겐 이게 무슨 짓인데스! 와타시의 궁궐을 부숴버린데스! 제정신인데스! 와타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데스! 학대파인데스!"
"학대파는 아니야.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했다는 말은 이해 못하겠는데. 너 때문에 공원이 난리난 거 알아?"
"뎃? 그게 무슨 말인데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하긴 공원 끝자락 아무도 안 오는 깊숙한 데 사니까 모를 수도 있겠다. 말을 들어 보니 식량 수집도 잘 안 나가는 듯하니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겠지.

"네가 이름을 지어주는 바람에 다른 실장석들이 서로 세레브하다며 사람한테 온갖 해를 끼치고 있어. 실장석한테 이름은 세레브함의 상징인 거 알지. 함부로 지어주면 올리기 밖에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그랬지? 밥 빌어먹고 살려고 그러지는 않았겠지. 너처럼 똑똑한 살정석이 고작 식량 구하기 좀 힘들다고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

박사는 찌그러진 골판지 상자를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와타시는 닝겐과 어울려 산데스. 닝겐타치는 갓난아기라도 이름을 가진데스. 이름을 서로 불러주면서 서로를 존중하는데스. 이름은 그 닝겐만이 가진 고유의 것이니까 스스로를 세레브한 존재로 만드는데스. 반면 와타시타치는 이름도 없이 살다 가는 데스. 이름도 없이 오마에 오마에라고만 불리며 죽으면 이름도 없이 길거리에 나뒹구는데스. 자가 친을 그리워하며 친이 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데스. 이게 다 이름이 없기 때문인데스. 서로가 대단한 존재가 아닌데 존중이 어딨겠는데스. 와타시는 모두가 이름을 가지면 서로가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는 세상이 찾아오리라 믿은데스. 그래서 이름을 지어준데스. 스스로를 세레브하다 여기고 남도 세레브하다 여기면 와타시타치도 언젠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닝겐타치처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생각하는데스."

박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실장석이었다. 평화로운 사회를 꿈꾼다니.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조차 이런 생각을 하기 힘들다. 하물며 이웃조차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실장석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학대파가 아니기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대파였다면 너는 인간 사회에 해악이다라며 바로 빠루로 머리를 날려버렸겠지.

"네 말이 뭔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네가 바라는 세상이 오려면 다른 실장석들도 너처럼 생각해야해. 하지만 다른 실장석들은 이름을 가졌으니 자신이 더욱 세레브하다 여기며 사람을 아예 운치굴 똥노예로 보고 있어. 이상한 뜻으로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니란 건 알겠지만 이름은 이제 그만 지어줘. 그리고 다른 공원으로 가고.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구제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안되는데스. 와타시가 죽을지언정 이름짓기는 멈추지 않는데스. 누군가 한 실장이라도 생각을 바꾼다면 언젠가 세상은 달라지는데스."
"그때가 올 때까지 사람이 기다려줄지 모르겠네. 어쨌든 난 경고했어. 아 난 구제업자가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여기서 널 만난 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돌아가려다 분충을 꼬실 때 쓰려고 가져온 남은 콘페이토를 모두 꺼내 놓았다. 집값이다. 문득 멀리서 돌아 보니 박사는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색 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적인 실장석. 이름이 박사인 걸 보니 아무래도 주인은 교수나 박사가 아니었을까. 실장석한테 왜 이런 걸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주인의 이상은 박사한테 이어졌고 박사는 나름대로 실장석에 맞춰 바꾸어 이상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도 이룩하지 못한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실장석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일렀다.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실장석을 만났고 서른 마리가 넘는 실장석이 나를 똥닝겐이라 불렀고 마주치는 실정석마다 나한테 아마아마를 내놓으라 했으며 일곱 마리는 자를 내밀며 사육실장으로 삼아달라고 했고 세 마리는 나한테 투분을 했다. 모든 실장석이 제 이름을 외치며 와타시는 이름도 가진 세레브한 실장석인데 어째서 말을 듣지 않는데스라며 화를 냈다. 이 녀석들은 끝까지 자신만 세레브한 줄 알 것이다.

며칠 뒤 구청에서 후타바 공원 구제가 결정났고 2주 뒤 전문 구제업자를 공원을 이잡듯 뒤지며 실장석의 95%를 구제했다. 구제가 끝나고 난 박사가 살던 곳으로 갔으나 거기에는 골판지 상자도 박사도 없었고 다만 사전만 덩그러니 펼쳐져 있었다. 하필 펼쳐져 있는 장에 '포기'가 적혀 있던 건 우연일까.

그 뒤로 이름을 가진 실장석은 원사육실장을 빼면 공원에서 사라졌다.


















틀린그림찾기

 

친실장은 밤길을 달렸다. 짦은 다리에 군살이 출렁거리는 몸으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좀만 달리면 넘어졌고 돌바닥이라면 옷도 살짝 찢겨나갔지만 친실장은 자신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듯 달렸다.

소중한 자가 납치되었다. 해가 질 때면 공원에 인적이 드물어지고 먹이를 모은 실장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여서 친실장은 이때만큼은 자들이 뛰놀 수 있게 하였다. 하루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 모든 걸 가진 듯 뛰어노는 자들을 보며 친실장은 자 키우는 보람을 느꼈다. 그만큼 사랑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가 납치되었다.

납치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 뒤돌으니 닝겐이 자들을 보며 웃더니 냅다 장녀를 낚아채고 사라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친실장은 한동안 상황 파악이 안 되었고 자들은 오네챠 어디 간 테치하며 고개를 갸우뚱댔다. 머리를 정리한 친실장과 그제야 장녀가 납치되었음을 깨닫고 자들을 집으로 들여보냈다.

"오네챠 다시 볼 수 있는 테치? 오네챠가 죽는 건 싫은 테챠아!"
"걱정 마는 데스우. 마마가 꼭 데려올 테니 꼼짝 말고 있는 데스우."

평범한 실장이었다면 졸지에 사육실장이 되었다고 행복회로를 돌리며 자들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친실장은 어릴 적 원사육실장이었던 마마의 교육으로 행복회로가 말끔하게 사라져 있다. 게다가 모성애가 강한 개체여서 친실장은 지금 자신이 납치된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장녀는 좀만 기다리는 데스우. 마마가 달려가는 데스우."

단서는 하나도 없었고 오직 자의 냄새만 맡으며 길을 찾은 친실장은 냄새의 끝에서 그만 멈춰섰다. 냄새는 아파트 단지까지 이어졌고 냄새는 현관에 있는 스크린도어에서 끊겼다. 분명 이 안으로 장녀가 들어간 데스우. 하지만 투명한 문은 두드리고 발로 차고 보검으로 마구 찔러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칠대로 지친 친실장은 결국 어릴 때부터 분충이나 하는 짓이라고 배워온 짓을 하기로 했다. 친실장은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폴짝 뛰며 왼다리를 살짝 들고 오른손을 뺨에 대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데스웅~ 와타시는 장녀를 찾아야 하니 문씨는 어서 열리는 데스웅~"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한 아첨이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친실장은 이제 모든 것을 잃은 듯 무너졌다. 피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어찌 할 도리도 없어 오로롱거리며 울기만 하던 그 때 문이 열리며 닝겐이 나타났다. 옷은 달라졌지만 잠깐이었지만 얼굴을 보니 틀림없었다. 이까 자를 납치한 닝겐이었다.

"데샤아아앗! 장녀를 내놓는 데샤악!"

친실장은 보검을 꺼내고 번개처럼 달려들었지만 남자는 바로 친실장의 머리를 붙잡고 들었다. 남자는 친실장이 올 줄 알았다는 듯 비닐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친실장은 겁먹지 않고 보검을 휘둘렀지만 친실장의 보검은 남자의 옷에도 닿지 않았다.

"데엑! 이거 놓는 데샤악! 장녀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데샷!"
"오 당연히 사육실장 운운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교육을 잘 받았나?"
"와타시는 사육실장 같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 데스우! 빨리 자를 내놓는 데샷!"

이러면 더 재밌겠다. 남자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머리를 집은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발로 걷어차일 각오는 하고 왔는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니 친실장은 닝겐이 학대파라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학대파가 아닌 이상 굳이 자를 납치할 일이 없었다. 이미 친실장의 머릿속에서 자는 닝겐의 학대의 희생양이 되어 죽지 못하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마마를 찾는다 생각하니 친실장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집에 들어온 남자는 친실장을 신발장 쪽에 내려놓았다. 친실장이 다시 달려들지 남자는 구두주걱으로 뺨을 후려쳤다. 남자가 힘조절을 해 친실장은 목이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날아가 신발장에 부딪쳤다.

"가만히 있어. 내 말만 들으면 자를 돌려줄게."

친실장 눈에서 독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남자가 다시 구두주걱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친실장은 움츠러들었다. 친실장도 잘 알고 있었다. 닝겐은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 보검을 꺼내든 건 순간의 감정에 휘둘렸기 때문이지만 한 대 맞고 냉정해진 친실장은 보검을 품에 넣었다.

"정말인 데스우? 닝겐은 학대파가 아닌 데스우?"
"학대파였으면 내가 니랑 말하고 있었겠어? 난 거짓말 안 해. 내가 내는 문제 하나만 맞추면 내가 손수 자랑 함께 에스코트해서 돌려보내줄게. 거기에 이것까지 주지."

남자는 콘페이토가 한 줌 담긴 지퍼백을 보여주었다. 친실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콘페이토에 눈이 휘둥그레져 저도 모르게 침을 줄줄 흘렸다.

'뎃. 정신 차리는 데스우. 콘페이토에 정신 팔리면 안 되는 데스우. 콘페이토는 장녀를 되찾고 실컷 구경해도 늦지 않는 데스우.'
"알겠는 데스우. 빨리 문제를 내는 데스우. 가볍게 맞추고 장녀와 함께 돌아가는 데스우."
"그래. 이렇게 고분고분한 건 네가 처음이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문제를 가지고 올게."

남자는 콘페이토를 한 알 꺼내 친실장한테 던져주었다. 살면서 두번째로 보는 콘페이토는 천장에 있는 빛을 받아 탐스럽게 빛났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친실장은 넋 놓고 보다가 정신 없이 핥았다. 콘페이토는 친실장이 맛을 즐기기에는 너무 작았다. 콘페이토를 다 먹은 친실장은 아쉬운 마음에 손을 핥았다.

"데...콘페이토가 벌써 사라진 데스우. 문제를 맞추고 콘페이토를 더 얻는 데스우. 뎃 이게 아닌 데스우! 콘페이토는 필요 없으니 장녀라도 돌려받는 데스우!"

친실장은 힘겹게 자를 되찾겠다는 목표를 잊지 않았다. 친실장은 남자가 의도한 함정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와 친실장이 닿지 않을 거리에 내려놓았다. 친실장은 보더니 반갑게 장녀를 부르려다 멈칫했다. 친실장의 눈앞에 놓인 두 자실장은 서로가 너무나 똑같아 마치 쌍둥이 같았다.

"자 문제야. 여기 두 자실장이 있어. 누가 네 자인지 알아맞추면 네가 이겨. 뭘해도 좋지만 거기서 벗어나면 안돼. 시작."
"뎃...이게 문제인 데스우? 데..."

친실장은 다시 두 자실장을 보았다. 두 자실장은 눈을 감은 채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지만 코츄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친실장은 문제만 듣고 생각보다 쉬워 다행이라 생각했다. 외국인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것처럼 사람이나 실장석이 거기서 거기지 실장석끼리는 서로를 구별할 수 있다. 하물며 제 배에서 낳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먼저 친실장은 옷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장녀는 놀다가 나뭇가지에 두건이 걸린 적이 있어 왼쪽 귀쪽 두건이 살짝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두 자실장의 두건은 말끔했다. 옷도 마찬가지로 방금 태어난 자처럼 깔끔했다.

"옷은 내가 갈아 입혀줬어. 너무 더러워서 불쌍하더라고. 잘했지?"

전혀 잘하지 않았다. 장녀를 구별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서가 사라졌다. 두 번째는 목소리였다. 친실장은 구슬픈 목소리로 장녀를 불렀다.

"장녀차! 마마가 온 데스우! 빨리 눈 뜨는 데스우! 마마랑 집으로 돌아가는 데스우!"

하지만 두 자실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보여서 네무리로 곤히 재웠어. 잠든 모습이 참 귀엽지 않아?"

닝겐이 맞는 말을 하는 데스우. 와타시의 자가 자는 모습은 감히 선녀도 비할 바가 못 되는 데스우. 뎃 이게 아닌 데스우! 목소리로도 구별하지 못하는 데스우!

다음은 크기였다. 자실장은 하루가 다르게 크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거기서 거기인 크기라도 실장석끼리는 모두 구별할 수 있다.

"닝겐. 자들을 세워 줄 수 있는 데스우?"
"물론 물론. 잘 보여?"

자들이 서서 크기를 구별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너무나 똑같았다. 팔 길이 다리 길이 머리 크기 몸집 모든 게 똑같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남들보다 살짝 작은 윗니마저 똑같았다. 애써 힘을 내며 친실장은 마지막 희망인 냄새를 맡기로 했다. 친실장은 얼굴을 내밀고 킁킁거렸지만 장녀의 냄새는 나지 않았고 오직 향긋한 냄새만 났다.

"옷을 갈아 입히는데 몸이 더러우면 쓰나. 향균 비누로 말끔하게 씻겨줬지. 자가 참 좋아하더랴."

이 문제는 풀 수 없다. 남자는 실장석끼리 서로를 구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엇고 그 방법을 쓰지 못하게 미리 손을 썼다. 친실장이 애타게 장녀를 불렀지만 두 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무효인 데스우! 역시 만지지 않는다면 맞추지 못하는 데스우!"

친실장이 신발장에서 올라오려 하자 나자는 구두주걱을 다시 들었다.

"신발장에서 벗어나면 무효라고 했을 텐데. 또 맞고 싶어?"

친실장은 조용히 신발장으로 돌아갔다.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두 자를 쳐다보았다. 만지면 알 수 있을 텐데. 밤마다 잠들기 전 자들을 쓰다듬으며 옛날 이야기를 하던 그떄가 떠올랐다. 그때 쓰다듬던 자들은 참으로 부드러웠다. 단 한 번만 만질 수 있다면. 만질 수 없다면 눈에라도 넣어 본다면. 아프지 않은 눈으로 자를 되찾을 수 있다면 두 눈을 잃어도 상관없었다. 친실장은 감을 곤두세웠다. 눈이 빠져나올 만큼 부릅떴고 머리는 이미 실장석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돌아가 활활 타올랐다.

"못 맞추겠어? 난 휴대폰 할 테니까 알겠다 싶으면 불러."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려고 다시 두 자를 눕힐 때 친실장은 보았다. 오른쪽에 있는 자의 손이 빛났다. 깨끗해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친실장은 오른쪽 자를 자세히 보았다. 자를 눕히는 것까지 본 친실장은 눈물을 멈추었다. 자를 알아냈다.

"안 데스우. 와타시가 보는 데서 왼쪽에 있는 자가 진짜인 데스우."

이어폰을 꽂으려던 남자는 이어폰을 내려놓고 친실장을 보았다.

"얘가 가짜라고? 왜? 자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그냥 찍지는 않았겠지?"
"닝겐이 오른쪽 자를 눕힐 때 손이 빛나는 걸 본 데스우. 그 빛은 깨끗해서 나는 빛이 아닌 데스우. 와타시는 방금 비슷한 빛을 본 데스우. 콘페이토에서 나던 빛과 자의 손에서 난 빛은 똑같았던 데스우!"
"오호라."
"와타시는 곧 닝겐이 자를 내려놓을 때 본 데스우. 왼쪽 자는 부드럽게 흘러가듯 내려갔지만 오른쪽 자는 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간 데스우. 와타시는 좀 더 오른쪽 자를 자세히 본 데스우. 그러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인 데스우. 오른쪽 자의 손과 다리는 콘페이토 겉처럼 반짝이는 데스우! 와타시의 자는 이렇게 반짝이지 않는 데스우. 따라서 왼쪽에 있는 자가 장녀인 데스우!"

결정타. 친실장은 의기양양했고 긴장이 풀려 숨을 헐떡거렸다. 남자는 진심으로 놀란 눈빛을 띄었다. 남자는 박수를 쳤다.

"대단해. 너처럼 똑똑한 녀석은 처음이야. 감으로 찍지도 않고 생각을 하고 답을 이끌어내다니. 너 정말 실장석 맞아? 맞아 왼쪽이 네 자야. 축하해."

남자는 오른쪽 자를 들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구었다. 오른쪽 자는 죽지 않고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텅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오른쪽은 3D프린터로 네 자를 똑같이 복사해서 만든 인형이고. 알아차릴 줄 몰랐는데 진짜 대단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친실장은 잘 몰랐지만 어쨌든 친실장이 이겼다. 친실장은 기쁨의 피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길고 외로운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친실장은 당장이라도 자한테 달려가 끌어안고 싶었지만 구두주걱이 무서워 참았다.

"자. 자를 돌려주는 데스우!"
"그래 돌려줄게."

남자는 자를 들고 다가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런데 네 자한테 물어봤어? 돌아가기 싫어할 수도 있잖아."
"뎃? 갑자기 무슨 말인 데스우? 당연히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는 데스우?"
"그래? 한 번 물어볼까?"

남자는 주머니에서 스프레이를 자한테 뿌렸다. 곧 장녀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테...여긴 어디인 테치?"
"장녀챠! 괜찮은 테치? 마마가 온 테치!"

친실장은 반가운 얼굴로 달려가려 했으나 신발장을 막 벗어나려고 할 때 제자리에서 굳었다. 이상한 데스우. 장녀는 누구보다 마음씨가 곱고 마마를 잘 따르는 자였는데 지금 장녀의 얼굴은 탐욕과 허영으로 얼룩진 모습이었다. 장녀는 친실장을 보고 그리움에 울거나 반가워하지 않고 입을 가리며 테프픗 웃었다.

"초록아. 네 엄마가 널 찾으러 왔대. 이제 돌아가도 돼."
"텟? 싫은 테챠아아! 아타치는 저런 더러운 오바상 모르는 테치! 아타치는 이미 오마에의 사육실장인 테치! 사육실장한테 들실장 마마가 어디 있는 테챠앗!"
"장녀챠! 마마한테 무슨 말버릇인 데스! 마마가 오마에를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데스! 빨리 돌아가는 데샷!"

친실장이 억지로라도 장녀를 데려가려고 신발장 위로 올라오니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구두주걱을 휘둘렀다. 친실장은 뒤로 날아가 문에 부딪쳤다. 친실장은 온몸이 아프고 쑤셨지만 장녀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장녀를 본 친실장은 주저앉았다. 친실장이 맞았으니 당연히 괜찮냐고 울 줄 알았는데 장녀의 비웃음은 더욱 커졌다. 이제는 입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손가락질까지 했다.

"치프프픗! 들실장 따위가 세레브한 아타치한테 다가오려고 하니 이 꼴이 된 테츄. 아타치한테 똥마마는 필요 없으니 돌아가서 운치나 퍼먹는 테치!"

이럴 리 없는 데스우. 이건 악몽인 데스우. 친실장은 볼을 꼬집었다. 아픔이 밀려왔지만 장녀의 비웃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귓가를 맴돌며 집안을 가득 채웠다.

"미도리는 돌아가기 싫나 본데. 혼자 돌아가야겠네. 약속했으니까 콘페이토는 줄게."

남자는 문을 열고 콘페이토가 든 지퍼백을 쥐어주고 친실장을 등 떠밀어 내보냈다. 친실장의 눈은 이미 모든 걸 잃어버린 눈이었다. 콘페이토 따위로는 지금 친실장이 느끼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다. 친실장은 문밖에 나와서 보검을 꺼내들고 남자한테 달려들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장녀를 데려갔어야 했다. 장녀의 비웃음에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친실장은 다른 자들한테 장녀를 데리고 오겠다 약속했고 콘페이토가 눈앞에 있음에도 장녀를 먼저 생각했다.

와타시의 노력은 무엇이었던 데스우. 처음 태어나자마자 제 말을 듣고 이모토챠를 핥던 장녀, 늘 마마를 돕고 싶다고 조그만 일도 배우려고 했던 장녀, 누구보다 말을 잘 듣고 영특했던 장녀는 사라지고 녹돼지 분충만 남았다. 지금이라도 되돌리기에 늦지 않았다 생각하며 문을 두드리고 다시 장녀를 부르고 싶었지만 이미 발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장녀를 포기한 친실장이었다.

"그런 데스우. 남아 있는 자도 생각해야 하는 데스우. 장녀는 닝겐 집에서 우마우마한 콘페이토를 즐기며 아와아와한 거품목욕을 즐길 테니 오히려 잘 된 데스우. 입도 줄어들었으니 남은 자들한테 돌아갈 밥도 많아진 데스우. 돌봐야 할 자가 하나 줄었으니 와타시도 이득인 데스우. 뎃데로게~ 모두한테 좋은 데스우~ 모두한테 좋은 세레브 엔딩인 데스우~"

달빛을 등지며 걷는 친실장의 눈에 맺힌 피눈물과 경쟁하려는 듯 알록달록한 콘페이토는 달빛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밝게 빛났다.





"테프픗! 똥마마도 갔으니 밥을 대령하는 테치! 아타치는 지금 채끝살 스테이크가 땡기는 테치! 3분 줄 테니 빠르게 가져오는 테치!"
"역시 부모랑 자식이 닮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어떻게 저런 부모한테서 너 같은 놈이 나오냐."
"방금 놈이라 한 테치? 세레브한 아타치한테 무슨 말버릇인 테치! 불쌍해서 때리지 않았더니 아주 그냥 기어오르는 테치! 머리 딱 갖다대는 테치! 오마에는 고속도로형인 테치!"

웃기고 있네. 남자는 자실장이 죽지 않을 만큼 힘조절을 해서 바닥에 내던졌다. 자실장은 사경을 헤매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했지만 자실장의 머리로는 도저히 남자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잠깐이지만 즐거웠지? 네가 즐긴 만큼 나는 배로 즐겨야겠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가는 자실장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스테이크를 썰 때보다 가늘고 날카로운 칼이었다.











비기너즈 럭

 

 “자 줄서요 줄서~ 다 할 수 있으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서~ 줄 서지 않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공원에는 늘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하는 실장석이 많지만 한 곳에 모여 있는 실장석을 보기는 드물다. 더욱이 질서를 지키며 줄을 서는 실장석이라니 전문 브리더가 교육하는 게 아니라면 들실장들이 줄을 서는 일은 없다. 줄을 선 실장석들은 떠들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손을 보니 저마다 저실장을 한 마리씩 들고 있다. 끝없이 늘어선 줄 앞에는 낚시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줄을 세우고 있다.

“야! 내가 새치기하지 말라고 했지. 풍당아 쟤는 끌어내라.”

주인의 명령을 들은 성체실장 풍당이는 눈치를 살살 보며 새치기를 한 실장석을 냅다 집어 패대기친다. 바닥에 닿은 충격으로 품에서 벗어난 저실장은 하늘을 난다고 좋아하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쇼크사로 죽는다.

“데샤아아아아! 간신히 한 마리 구한 구더기가! 오로롱 이 날만 기다렸는데 이럴 수는 없는 데스 오로롱.”

울거나 말거나 줄을 선 다른 실장들은 쌤통이라며 비웃는다. 일을 마친 풍당이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가득 쌓인 구더기를 한 마리 집어 먹는다. 남자는 다시 맨 앞에 선 실장석을 내려다  본다.

“넌 오늘만 네 번째네. 구더기는 어디서 구해온대?”
“다 수가 있는 데스우. 어서 슬롯을 돌리게 해주는 데스우.”


구더기 잘 받았다. 실장석이 내민 구더기를 풍당이가 받고 풍당이는 코인을 준다. 코인을 받아든 실장석은 숨을 고르며 슬롯머신에 천천히 코인을 넣는다. 코인이 땡그랑하며 들어가자 실장석은 있는 힘껏 스틱을 내린다. 

“가는 데샤아아아아아아!!!”

슬롯 세 칸이 빙글빙글 돈다. 체리, 포도, 7. 여러 그림이 빠르게 돌아간다. 슬롯을 돌린 실장석은 침을 튀기며 7을 외친다. 지켜보던 실장석들도 고개를 내밀고 본다. 오늘은 과연 행운의 777이 나올 것인가. 슬롯이 느려지며 첫 번째 칸이 멈춘다. 7. 시작은 좋다. 실장석은 상모돌리기를 하며 남은 두 칸도 7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 칸도 역시 7. 여기까지 오니 실장석들은 집단으로 괴성을 지른다. 슬롯을 돌린 실장석은 숨넘어갈 듯 쳐다본다. 남자는 싱글벙글하며 실장석들을 보고 풍당이는 구더기를 으적이며 한심한 눈으로 실장석을 쳐다본다. 드디어 세 번째 칸이 멈췄다. 체리.

“데...데...데샤아아아아아아!!! 말도 안 되는 데스! 세레브한 와타시한테 어째서 777이 나오지 않는 데스! 이건 똥닝겐의 농간인 데스! 똥닝겐이 7씨가 나오지 않게 슬롯씨를 협박한 게 분명한 데스! 데스웅~ 슬롯씨는 와티시의 애교에 메로메로되어 7을 돌려주는 데스웅~”
“응 끝났어. 77에 체리면 콘페이토 세 알이네. 근데 방금 나보고 똥닝겐이라 했지? 분충은 용서하지 않는다.”


남자는 막대기로 입을 잘못 놀린 실장석을 내리친다. 성체실장이라도 힘껏 내려친 막대기에 머리를 맞으니 머리가 음푹 파인다. 뇌가 으깨진 실장석은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며 하무라뾰 무라뾰 메뺘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다만 줄 서있는 놈들이 이미 자판기감으로 점찍었으니 무사히 살아남을지는 모른다. 다른 실장석들은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본전도 못 찾은 들실장을 비웃는다.

“치프프~ 분충이 돌리니 슬롯씨가 화난 테치. 아타치가 돌리면 777이 아니라 777 할아버지도 나오는 테치.”
“자실장 주제에 건방진 데스. 777은 와타시가 이미 접수한 데스. 눈앞에 777이 뜨는 모습이 선히 보이는 데스.”


남자는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 실장석들을 쳐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일본에서 기념품으로 미니 슬롯 머신을 살 때만 해도 이리 재밌는 짓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슬롯 머신도 한두 번이지 777이 나온다고 대박이 터지는 것도 아니라 남자는 금방 질렸다. 어느 날 풍당이한테 777이 나오면 간식을 두 배로 준다고 농담으로 말했다. 그날 뭔가 자꾸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남자는 풍당이가 눈이 퀭해진 채 슬롯 머신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간신히 말리고 간식을 두 배로 주고 풍당이를 잠재운 남자는 문득 들실장한테 슬롯 머신을 돌리게 하면 어떨지 생각했다.

바로 다음 날 남자는 슬롯머신을 챙겨들고 풍당이와 함께 공원으로 갔다. 풍당이 대신 저를 키우는 영광을 준다는 들실장 몇 마리를 막대기로 후려치고 남자는 미니 슬롯머신에 대해 설명했다. 슬롯을 돌리면 세 칸에서 다른 그림이 나온다. 같은 그림이 나올수록 좋은 선물을 줄이며 특히 777이 나오면 상상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번 돌리려면 저실장 한 마리를 가져오면 된다.

물론 말만 해서 알아먹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당이가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학대파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경계했고 분충들이 몰려들었지만 분충한테는 응징을 하고 학대파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고 특히 말한 대로 보상을 철저히 주었기 때문에 곧 공원에 사는 들실장치고 슬롯 머신을 돌리지 않은 실장은 없었다. 처음에는 들실장이 몰려든다고 사람들이 애호파라 욕하기도 했고 신고가 들어왔지만 곧 실장석이 질서에 맞춰 슬롯머신을 돌리는 모습은 공원의 신기한 명물로 등극했고 오히려 저실장을 돈으로 받으니 번식력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나와 남자는 ‘후타바 카지노 마스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남자는 콘페이토 한 알에 아등바등하는 들실장을 보며 재미를 얻었고 들실장들은 본전이라도 저실장으로 평소에 꿈도 못 꾸는 콘페이토를 얻으니 일거양득이요 미묘한 관계지만 공생이라 부를 만했다. 남자는 2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왔다. 처음에는 시간을 모르던 실장석들도 해씨가 14번 째 뜨는 날 남자가 온다고 학습했다. 그리고 이번 일요일도 남자는 어김없이 왔다.

“자 다음 놈. 풍당이한테 구더기 주고 코인 받아.”
“데...와타시는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데스우?”
“처음이면 친절히 설명해줘야지. 풍당아. 시범 보여줘.”


풍당이는 코인을 넣고 스틱을 내려 슬롯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장석은 코인을 조심스레 넣고 스틱을 내린다.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슬롯. 이 실장석은 뭐가 좋은지는 모르고 다만 그림이 같아야 좋다는 것만 알았다.

 첫 번째 칸이 멈춘다. 7. 오늘은 7이 자주 나오네. 두 번째 칸이 멈춘다. 7. 첫째 칸과 둘째 칸이 잇따라 7이 나오면 콘페이토 하나다. 이 실장석은 처음 한 것치고 운이 좋다. 비기너즈 럭이라고 하는 게 있다던데 이 실장석은 처음 돌린 게 행운인 듯하다. 셋째 칸이 멈췄다. 7. 야 대단하네. 777이라니. 운 되게 좋다. 응?

“주인사마. 777인 데스우...777이 나온 데샤아아!”

남자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해 슬롯을 집어 든다. 777. 정말 777이다. 처음 샀을 때 밤새도록 돌려도 777은 딱 한 번 나왔다. 귀하디 귀하신 몸인 777이 오늘 처음 돌린 실장석 앞에 납셨다. 그야말로 비기너즈 럭의 산 표본이다. 다른 실장석들은 제 눈을 의심하다 곧 질투와 시샘에 사로잡혀 단체로 소리를 지르고 정작 장본인은 뭐가 뭔지 몰라 멀뚱히 서 있다.

조용히 해! 남자가 호통 치자 실장석들이 잠잠해진다. 남자는 슬롯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축하해. 처음 돌렸다고 초심자 패키지 통 크게 주네. 777은 안 나올 줄 알고 아직 상품을 안 정했는데.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받아라. 777 상품이다.”

남자가 가방에서 꺼낸 건 남자 발만 한 크기의 봉다리다. 검정색이어서 안이 보이지 않아 남자는 손수 안에서 내용물을 꺼낸다.

“이거 다 콘페이토야. 가족끼리 먹어도 몇 주는 먹을 걸.”
“데? 이게 와타시 것인 데스우?”
“응. 777 상품이야. 이 정도는 들고 갈 수 있지?”


들실장이 겉에서 봉지를 만지자 콘페이토의 질감이 느껴진다. 꿈인가 싶어 볼을 쭈욱 땅긴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실장석은 공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데퍄퍄퍄퍄퍄퍄!!! 콘페이토 데스우! 콘페이토인 데스우! 저 많은 콘페이토가 젠부 와타시 것인 데스우!”

콘페이토 한 봉지를 줘도 어차피 대량으로 사서 얼마 안 한다. 남자는 더욱 흥미진진한 슬롯에 몰입한다. 실장석이 봉지를 들고 가기 전에 남자가 막대기를 두드려 다른 실장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내가 가면 쟤네 꺼 뺏을 생각하는 놈들 분명 있을 거야. 만약 다음에 왔는데 쟤네가 죽어 있거나 콘페이토를 뺏겼다. 이 공원에 사는 놈들 다 죽을 각오해.”

남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공원을 훑어보자 방금까지 어떻게 해야 잘 뺏었다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실장석들은 아쉬워하며 혀를 찬다. 자 다음 놈. 슬롯은 계속 돌아가고 행운의 실장석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간다.

“뎃데로게~ 자들~ 마마가 돌아온 데스우~ 선물도 가져온 데스우~”
“어서 오는 테치 마마. 보고 싶었던 테치.”


친실장은 몸이 약할 때 자를 낳아서 셋밖에 낳지 못했고 막내는 엄지였다. 주변에서는 엄지는 자가 아니니 운치굴이라고 했지만 마음이 약한 친실장은 차마 엄지를 내치지 못했다. 그나마 자가 적은 덕에 배를 곯는 일은 없었지만 들실장이 늘 그렇듯 넉넉하게 끼니를 챙겨주지는 못했다. 늘 배고파하는 자들한테 미안해 한 친실장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진짜로 마마다운 일을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했고 뿌듯했다.
“마마가 가져온 걸 보는 데스우.”

“테햐하하하~ 이 많은 콘페이토는 대체 뭐인 테치?”
“테에에에엥~ 꿈 아닌 테치? 아타치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테치~”
“꿈이 아닌 데스우. 정말로 마마가 받아온 것인 데스우. 기념으로 한 알씩 먹는 데스우.”

친실장은 자들한테 한 알씩 주고 저도 한 알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는 데스우~ 자실장들은 콘페이토가 커서 할짝이며 단 맛에 눈물을 흘렸다. 친실장은 그래도 덩치가 있어 한 입에 삼킬 수 있지만 귀하신 콘페이토한테 감히 결례를 범할 수는 없어 공손히 천천히 핥았다. 혀를 타고 드는 단맛이 뇌에 닿더니 곧 온몸에 퍼져나갔다. 이제까지 먹은 맛없는 먹이나 말 그대로 아무 맛도 안 나는 먹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맛을 내는 콘페이토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콘페이토는 사라졌고 집이 온통 눈물 바다였다.

“테에에에엥~ 이런 맛은 실생에서 처음인 테치~ 아타치 이제까지 살길 잘한 테치~”
“모두 아타치타치가 착하게 살아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 레츄.”
“아타치 하나만 더 먹어도 되는 테치? 마마 부탁하는 테치~”
“물론인 데스우~ 하지만 아껴 먹어야 하니 오늘은 이게 마지막인 데스우.”


실장석들은 콘페이토를 하나씩 더 먹었고 또 눈물 바다를 만들며 먹었다. 잠들 때까지 자들은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곤히 잠들었다. 친실장도 이리 편히 잠들기는 처음이었다. 잠자리를 눈물 바다 때문에 오히려 축축했지만 메말랐던 마음에 단비가 내려 싱그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먹이를 구해도 배는 풍족히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엄지도 어엿한 자가 될 테고 자들은 다른 실장보다 빠르게 성체실장이 되어 독립할 것이다. 친실장은 어느새 자실장들이 친실장이 되어 자실장의 자실장을 데려오는 꿈을 꾸었다. 이제 힘든 삶은 끝이다. 친실장 앞에 놓인 미래는 콘페이토처럼 참 새하얀 미래였다.



“맛없는 테치. 콘페이토 먹고 싶은 테치...”

장녀는 힘없이 밥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풍족했지만 반응은 전보다 나빠졌다. 콘페이토를 받은 지 보름이 지났다. 친실장이 극한의 절제력으로 콘페이토는 하루에 두 알로 제한했기 때믄에 콘페이토는 아직 충분했다. 친실장도 먹고 싶었지만 좀 더 미래를 내다보았다. 곧 여름이 다가오면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보존식도 빠르게 상한다. 콘페이토는 상하지도 않고 보존하기도 쉽기 때문에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비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자실장들한테 콘페이토는 별미를 넘어 이제는 당연한 식사가 되었다. 자실장의 눈에 검정 봉다리는 콘페이토가 끊임없이 나오는 화수분이었고 왜 친실장이 식사량을 제한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친실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설명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자실장들은 여전히 친실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또 구하기로 했다. 이미 한 번 777이 납신 몸이다. 제가 콘페이토가 필요하다면 슬롯은 다시 777이 나올 거라 믿고 친실장은 보존식으로 만들려던 구더기 한 마리를 들고 슬롯으로 갔다.

그 날 수확은 꽝이었다. 친실장은 보존식 하나만 손해 보고 돌아왔다.

“마마. 콘페이토 가져온 테치?”

“좀만 더 기다리는 데스. 곧 마마가 배불리 먹게 해주는 데스우.”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분명 나올 것이다. 아직 콘페이토는 많으니 오늘은 기분 내서 3개를 먹어볼까. 이제는 익숙해져 한 입에 집어넣고 입안에서 굴리며 친실장은 봉지가 넘칠 만큼 콘페이토가 많이지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아쉽네. 77에 포도야. 콘페이토 세 알 받아가.”
“포도 배 체리. 과일 가게구만. 꽝이야. 다음엔 잘 나오겠지.”
“체리 키위 체리. 수미상관 구조네. 수미상관 구조는 콘페이토 한 알이야. 본전치기네.”



“어째서 777씨가 안 나오는 데샤아아아아! 와타시 이번이 13번째인 데스! 슬롯씨가 잘못 된 거 아닌 데스? 한 번 확인해야 하는 데스!”
“시끄러운 데샤! 와타시는 얼마나 많이 돌렸는지 자판기가 말라 죽어버린 데스! 일 끝났으면 비키는 데샷!”

친실장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친실장은 자판기가 없었다. 슬롯머신 때문에 공원은 자판기로 난리였다. 친실장네는 남자가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놨기 때문에 안전했지만 다른 집은 일가족이 통째로 자판기가 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친실장도 자판기를 구해보려 했지만 힘세고 머리 좋은 다른 실장들이 다 가져갔기 때문에 친실장 몫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친실장은 물물교환을 했다. 콘페이토 한 알에 저실장 한 마리를 바꿨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는데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실장들도 777로 대박을 터트릴 생각만 했기 때문에 쉽사리 구더기랑 콘페이토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따금 바꾼 구더기는 잘 모아두었고 오늘 다 쏟아 부었다. 슬롯을 13번 돌려 얻은 건 고작 콘페이토 5알. 반타작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8알을 자들한테 먹일 걸하고 친실장은 후회했다. 친실장은 털레털레 오늘 밥을 구했다.

“자들. 마마가 온 데스. 오늘은 밥을 조금밖에 못 구한 데스.”

장녀도 둘째도 막내도 친실장이 가져온 밥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자들은 천장을 보며 콘페이토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엄지가 벌떡 일어나 친실장을 노려보았다.

“더는 못 참는 레츄! 아타치 마마가 콘페이토를 배불리 먹게 해준다고 해서 무려 해씨가 40번이나 나오는 때까지 기다린 레치! 근데 이게 뭐인 레챠아악! 그 많은 구더기는 다 가져가서 엿 바꿔먹는 레챠앗! 마마 혼자서 구더기랑 콘페이토 바꿔서 다 먹고 오는 거 아닌 레치! ”

노력도 몰라주고 철없는 소리만 하는 자실장한테 친실장은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다.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실장은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좋게 타일렀다.

“마마를 믿고 좀만 더 기다리는 데스. 배불리는 아니지만 오늘은 콘페이토를 가져온 데스. 사이좋게 나눠먹는 데스.”
“싫은 레챠아아아! 저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되는 레츄아! 이제 쓰레기 밥은 먹기 싫은 레츄아아앙! 빨리 콘페이토 더 가져오는 레챠악! 콘페이토 콘페이토 콘페이토!!!”


엄지는 조용해졌다. 친실장은 주먹으로 엄지를 내리쳤다. 남들보다 잘 먹어 곧 자실장이 되었을 엄지는 머리가 사라졌다. 갑자기 변한 친실장을 보고 장녀와 둘째는 사태를 파악하고 조용해졌다.

“진작에 이웃상의 말을 들었어야 한 데스. 엄지는 자가 아닌 데스. 지금까지 저 쓰레기 같은 것에 콘페이토랑 밥을 넣어주었다고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데스. 오마에타치도 밥 먹기 싫은 데스?”

“아닌 테치. 감사히 먹겠는 테치. 아 우마우마한 테치~ 콩나물 줄기랑 과자 부스러기 맛있는 테치~”

누가 보아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지친 친실장은 대충 넘기고 밥은 입에도 안 대고 잠들었다.

꿈에서 친실장 주위에는 슬롯이 잔뜩 있었다. 친실장이 건들지도 않았는데 슬롯이 멋대로 돌아가더니 모두 777이 떴다. 코인을 넣는 데서 콘페이토가 쏟아져 나왔다.
콘페이토인 데스~! 콘페이토가 비처럼 쏟아지는 데스~! 이제 그만 나와도 좋은 데스~! 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데스? 똥슬롯은 와타시의 말을 듣는 데샤아아! 그만...그만 나오는 데스...숨을 못...쉬는...데....


“데샤아아아아앗!!! 데엑...데엑...기분 나쁜 꿈인 데스. 물...물이 어디 있는 데스...데?”

뒤척이던 친실장의 머리에 무언가 닿았다. 밤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촉감. 분명 콘페이토였다. 밤눈에 적응한 친실장은 콘페이토를 봉지 한 쪽이 찢어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서 나는 천박하고 추잡한 소리를 들었다.

“테햐아아아아~ 여긴 천국인 테치~ 이렇게 많이 있는데 마마는 욕심쟁이인 테치~ 이 천국에는 마마도 못 오는 테치~ 젠부 아타치 것인 테치~ 아타치가 다 먹어버리는 테츄아~”
“오마에. 지금 무슨 짓인 데스?”
“테? 마마? 깬 테치?”


친실장이 깰 줄은 몰랐는지 장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오른쪽 뺨에 손을 갖다 댔다.
테츙~!
테벳



다음 날 아침 친실장은 남은 콘페이토를 긁어모았다. 조그만 몸으로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3분의 1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것도 장녀가 운치를 그 자리에서 지리며 먹는 바람에 남은 반이 운치범벅이 되었다. 콘페이토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 없었지만 운치가 묻으면 비상식으로서 의미가 사라진다. 눈물을 머금고 운치가 묻은 콘페이토도 전부 버리니 남은 콘페이토는 보존식 상자에 담을 만큼 적어졌다. 입이 두 개로 줄어들었지만 이 정도면 더 이상 끼니마다 콘페이토를 먹지 못한다.

“둘째는 듣는 데스. 이제 둘째가 장녀인 데스. 오마에의 전 오네챠가 콘페이토를 죄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이제 콘페이토를 아껴야 하는 데스. 겨울이 올 때까지 콘페이토는 봉인인 데스.”
“테...그럼 이제 콘페이토 못 먹는 테치? 테...”


둘째는 친실장을 잘 따랐다. 차마 뭐라 불평은 못하고 시무룩해하니 보는 친실장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친실장은 전보다 더욱 열심히 밥을 구했고 조금이라도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이라면 닥치는 대로 주워서 다른 실장들한테 구더기를 받고 바꾸었다. 보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모은 구더기는 20마리. 이 정도로 모았는데 설마 777이 안 나올까. 친실장은 운치굴에 가득한 구더기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내가 다른 놈들은 구별 못해도 이제 너는 알아보겠다. 오늘 되게 많이 왔는데 결과가 어찌 시원찮아. 풍당이한테 콘페이토 하나 받아가.”
“이럴 수 없는 데샤아아아아!!! 20번인 데샤! 20번을 했는데 어떻게 한 번도 안 나오는 데샤아아!”
“안 나오는 사람은 20번이 아니라 2000번을 돌려도 안 나오지. 애초에 너 말고 777이 나온 실장이 없어. 네가 되게 운이 좋았던 거야.”
“그 운 여기서 다시 한 번 보여주겠는 데스! 한 번만...한 번만 다시 돌리게 해주는 데스! 20마리나 주었으니 한 번 쯤은 그냥 돌리게 해줘도 되지 않는 데스?”
“난 자선 사업하려고 있는 거 아니다. 풍당아 끌어내.”


친실장은 풍당이한테 질질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슬롯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귀영화를 안겨줄 슬롯이 눈에서 멀어져 갔다. 바닥에 엎드려 오로롱 우는 친실장은 슬롯에서 들려온 환호성에 고개를 들었다.

777이 있었다. 행운의 들실장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며 그 자리에서 데에엥하며 울었다. 이야 말하자마자 한 번 더 뜨네. 777이 떴으니 콘페이토 한 봉다리야.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 때 누군가 행운의 들실장한테 돌진했다. 친실장은 보검을 꺼내 들실장의 목을 꿰뚫고 보검을 비틀어 목을 찢었다. 행운의 들실장은 목숨까지 보전하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달려드는 풍당이한테 친실장은 마구 보검을 휘두르며 이미 죽은 들실장을 마구 발로 밞았다.

“오마에 잘못인 데샤! 오마에가 내 777을 가져간 데샷! 도둑 분충은 보검을 맞고 죽은 데샤아아! 정당한 대우인 데스! 도둑의 최후인 데스! 아니 똥닝겐 잘못인 데스! 똥닝겐이 한 번만 더 하게 해주었다면 777은 와타시의 품에 들어왔을 것인 데샤! 똥닝겐은 와타시의 천벌을 맞고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데샤아아아!”

독기 서린 눈으로 달려드는 친실장. 남자는 벌레 보는 눈으로 막대기를 들어 친실장을 후려쳤다. 저 멀리 날아간 친실장은 다리가 부러졌지만 기어서 남자한테 다가왔다. 남자는 친실장이 오지 않아도 되도록 친절하게 친실장 쪽으로 갔다.

“내가 777 나온 놈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고 말했잖아. 넌 죽었다.”

남자는 딱 한 대 세게 내리쳤다. 살점이 사방으로 튀며 친실장은 곤죽이 되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머리는 때리지 않아 의식은 있게 했다.

“아 기분 잡쳤네. 풍당아. 오늘은 이만 가자. 아 저 분충 때문에 진짜. 이 짓도 그만 둬야 하나.”

남자랑 풍당이는 짐을 챙겨 떠났고 순서를 기다리던 실장석들은 보름 동안 기다린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차마 남자한테 뭐라고 말은 못하고 이미 반시체가 된 친실장을 마구 때렸다.

“오마에는 공원의 수치인 데샤! 슬롯 닝겐이 다음부터 안 오면 어떻게 보상할 것인 데샤아!”
“오마에가 병신 짓만 안 했어도 와타시도 오늘 777이 나왔을 데샤! 괘씸하니 더 맞는 데샤!”


이미 온 몸의 감각이 사라져서 아무리 맞아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친실장은 마지막 순간에 집에 홀로 남겨 둔 전 둘째 장녀가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과분할 만한 행운이 찾아온 게 잘못이었을까. 비기너즈 럭은 행운이 아니라 끝없는 늪으로 빠지게 유혹하는 미끼인지도 모른다. 감당하지 못하는 행운은 다른 모습을 한 불행이었다. 친실장은 이 놈이라도 먹어야겠다고 머리를 집어든 들실장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