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

 


<테에엥… 테에엥…>
<테찌…>
“...뭔 소리야 이건.”

나는 철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녹슨 철문이 끼이익하고 열린다. 담장을 따라 허술한 흙길을 걷는다. 쌓인 눈때문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딛으면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본다. 담장 밑에 눈이 쌓이지 않은 돌에 실장석 둘이 사이좋게 껴안고 있었다. 아니, 사이좋게라는 말은 사치이지. 아마 추우니까 둘이 껴안아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하는거겠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을 켰다.

“...겨울인데 왜 여기있어?”
<테엣?!>
<니...닌겐?!>

뇌가 얼어붙었는지 내가 말을 걸어서야 나를 인식하는 녀석들이다.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당황했는지 나한테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녀석들. 그래봐야 담벼락을 등으로 미는 수준이지만. 

“...다시한번 물어본다. 왜 여기있지?”
<테...테엥…>
<마마가… 마마가…>

나의 질문에 울음부터 터트리는 자실장들이다. 나는 한숨을 쉰다. 제대로 된 문답이 불가능하다. 나는 녀석들을 하나씩 한 손에 집는다. 나한테 집히자 놀라서 버둥거린다. 그래봐야 자실장이 버둥거리는 것이지. 나는 녀석들을 들고 와 빨간 다라이에 넣어놓는다. 대충 물 온도를 맞추고 다라이에 붓는다. 녀석들은 물을 보고 깜짝 놀란다.

<무...물씨인테찌!>
<추울 때 물씨 맞으면 안되는테… 테? 차갑지 않은테찌?>
“일단 씻어라. 냄새나니까.”

나는 조각난 비누를 던져주며 말했다. 조각난 비누를 받아들고 어찌할 줄 모르는 녀석들. 하는 수 없이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두 손으로 비비니 거품이 인다. 두 자실장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와아와한 거품인테찌!>
<와타시타찌도 거품목욕을 할 수 있는테찌!>
“이렇게 비비고 씻으면 된다. 옷도 다 빨아.”

나는 거품 낸 비누를 던져주고서는 자리를 떴다. 테쮸테쮸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먹다만 밥을 먹기 위해 밥상에 앉았다. 대충 차린 밥상이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 정도. 혼자 살다보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대충 밥을 먹고 그릇을 담가놓고 아까 그 다라이의 상태를 본다. 으… 냄새, 거품은 사라지고 초록색 물만 남아있다. 녀석들은 그 한가운데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똥 정도는 화장실에서 싸라고!”
<테...테에에엥…>
<죄...죄송한테찌…>

나는 녀석들을 꺼내고 다라이의 물을 흘려보낸 다음, 다시 물을 받아준다. 녀석들한테 자율적으로 씻기게 하다간 언제 끝날 지 모르겠으니 내가 대충 씻기는 수밖에. 나는 비누에서 거품을 낸 뒤에 자실장 하나를 잡고 마구 문질러댔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몸, 팔, 머리, 그리고 머리카락과 정수리까지 구석구석 비벼댄다. 녀석은 마구 비명을 질러대지만, 내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놈을 끝내고 다른 한 놈도 마저 비빈다. 수건으로 대충 닦아낸 뒤에 수건으로 덮어버린다.

“그러고 있어. 니네 옷도 빨아야하니까.”
<테...테에엥… 추...추운테찌…>
<테...이모토챠는 와타시랑 어서 껴안는테찌!>

녀석들은 수건 속에서 서로 껴안아 온기를 지켜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녀석들의 옷을 빤다. 진녹색 물이 나오는 옷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그냥 밟아버리면 끝인 녀석들인데.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저녀석들의 옷을 빡빡 비빈다. 이건 뭐 얼마나 더러운지 땟국물이 계속 나오네.

그렇게 낑낑대며 빨은 옷과 녀석들을 들고 방 안에 들어간다. 따뜻한 구들장에 놓으니 녀석들이 탭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너무 뜨거운가? 

<뜨거운테찌! 발씨가 타는테찌!>
<테에에엥!! 살려주는테찌!>
“호들갑떨기는.”

나는 녀석들을 구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따뜻한지 테에엥 거리며 푹 퍼지는 녀석들이다. 옷은 대충 빨래집게로 집어 걸어놓고 아까 못들었던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아까 거기에서 왜 떨고 있었냐?”
<테에… 그러니까 와타시는…>

그러고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친실장이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고양씨가 와서 자기네 하우스를 털었다. 자기는 장녀고 차녀와 같이 도망쳤다. 나머지는 모르겠다. 정말 뻔하디 뻔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끝마친 녀석들은 적록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테에엥… 이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는테찌…>
<오네챠… 테에엥…>
“날 따뜻해지면 나가야지 뭐.”
<텟?!>
<테찌?!>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녀석들이다. 왜. 사육실장이라도 시켜줄 줄 알았어?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하긴 똥벌레들이 다 그렇지. 나는 티비를 켜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녀석의 다음 말은 의외였다.

<그럼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여기서 살아도 되는테찌?>
“어...어?”

나는 티비를 돌리다 놀란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 참피같이 않은 말은?

<테에… 와타시는 지금이라도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테찌… 닌겐상에게 신세질 수는 없는테찌… 그래도 갈 곳이 없어서 걱정한테찌… 와타시타치는 약해서 나가도 소용이 없는테찌… 그래서 걱정한테찌…>
“흐음…”

관심없다고, 너의 사정따윈. 나는 지지직거리는 티비를 툭툭 쳐댔다. 이제야 좀 제대로 나온다 싶다. 나는 구들장에 누워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내 옆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보니 자실장 하나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배...배고픈테찌…>
<테에… 와타시도 먹을 게 없는테찌…>
“...거기서 날 본다고 뭐가 나와?”

나는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내 말에 고개를 숙이는 녀석들이다. 씻겨주고 따뜻한 곳에 놔뒀으면 되었지. 염치도 없는 녀석들 같으니. 나는 신경질적으로 티비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는 목소리를 죽였는지 작게 테찌거리고 있다. 하지만 요즘 휴대폰 링갈은 그정도도 잡아낼정도로 성능이 좋단 말이지.

<차녀챠… 어서 자는테찌... 그럼 조금 덜 배고파지는테찌…>
<테에엥… 배고파서 잠이 안오는테찌…>
<와타시가 내일은 어떻게든 먹을 걸 구해오는테찌. 그러니까 오늘은 자는테찌.>
“...아, 진짜 왜 내가 줏어와서는.”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벌떡 일어났다. 녀석들이 놀라 움찔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창고를 뒤져본다. 포대 안에 개사료가 2/3쯤 남아있었다. 스댕 그릇에 가득 퍼온다. 방 안에 들어가 겁에 질린 녀석들 앞에 내려놓는다. 

“이거밖에 없으니까 이거라도 대충 쳐먹어라. 스테이크니 스시니 하면 죽는다.” 
<감사한테찌! 차녀챠! 어서 먹는테찌!>
<테챱테챱- 우마우마한테찌! 장녀챠도 어서 먹는테찌!>
“먹고 똥 싸지마라. 여기서 똥싸면 진짜 죽는 게 더 나은 수준을 보여줄테니까.”
<아...알겠는테찌! 절대로 운치 안싸는테찌!>

나는 똥싸지 말라는 으름장을 내뱉은 후에 다시 구들장으로 몸을 던졌다. 티비를 보는데 눈이 슬슬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저항하지 않고 나는 눈을 감았다. 

-테찌! 테에에!!
-테엣! 테에찌!
“아 시끄러!”

나는 벌떡 일어났다. 새소리가 들리고 창밖이 훤한 걸 보니 아침인가보다. 그런데 왤케 시끄러워.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록색이 눈에 띈다. 아, 맞아. 어제 줏어온 실장석들이지. 나는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찾았다. 링갈… 링갈…

“아침부터 왜 지랄이야. 지랄이.”
<테엣… 닌겐상… 와타시 운치가… 운치가…>
<테에에엥… 이제 참을 수 없는테찌…>
“어...어이 시부럴.”

나는 녀석들을 낚아채듯 들었다. 재빨리 슬리퍼를 신고 마당으로 향한다. 아무곳이나 내려놓는다. 녀석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저앉아 똥을 싼다. 뷰리릿하며 똥을 누는 녀석들. 표정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똥이 작은 산이 될때쯤에야 일어나는 녀석들이다. 

<테에… 큰일날뻔한테쮸…>
<그런테찌!>
“하… 조그만한 놈들이 똥들은 오라질나게 싸대네. 비켜라. 날라가기 싫으면.”

나는 녀석들의 똥을 삽으로 퍼다가 밖에 있는 작은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녀석들은 이제 한기가 도는지 자신들의 몸을 잡고 오들오들 떨어댄다. 하긴 옷도 없으니. 나는 녀석들의 엉덩이를 대충 씻겨주기 위해 물을 틀었다. 조금만 씻길거니까 찬물로 해도 되겠지. 바가지에 물을 담은 뒤에 녀석들의 하반신만 넣어놓고 마구 흔든다. 

<차...차가운테쮸!!!!>
<텟?! 차...참는테찌! 차녀챠!>
“닦아주는데도 참 더럽게 지랄이네.”

대충 흔들어 닦아낸 뒤에 휴지로 마무리한다. 휴지는 대충 버려두고 밤새 마른 옷을 던져준다. 잽싸게 자기 옷을 찾아입는 자실장들이다. 신났는지 방방 뛴다. 나는 녀석들에게 물어본다.

“야, 이제 어쩔거야?”
<테찌? 이제 와타시타치는 사육실장이 된 게 아닌테찌?>
<테엣?! 아닌테찌! 차녀챠! 잠시 신세지는 거 뿐인테찌!>
“그래. 저 놈이 잘 알고있네. 니네 좀 만 있다 나가라고.”
<테칫! 그러면 닌겐상은 왜 와타시타치에게 밥을 주고 씻겨주고 재워준테쮸?! 와타시타치가 귀여워서 사육실장 삼은 거 아닌테찌?!>
“이 쉬벌놈이.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고 지랄이네. 지금 콱 죽여줘?! 엉?!”
<아닌테찌! 아닌테찌! 와타시타치가 잘못한테찌! 용서해주는테찌!>

장녀는 그래도 똑똑한 축에 속하는지 재빨리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차녀는 위기의식이 없는지 당당하게 어깨를 쭉 펴고 나에게 말했다.

<사육실장으로 명령하는테찌! 오마에는 와타시를 모시는테찌!>
“...하. 됐다 됐어. 실장석같은 걸 들인 내 잘못이지. 당장 꺼져.”
<테엣?! 와타시는 갈 데가 없는테찌!>
“내 알바야 시발?” 

나는 둘을 움켜쥐고 길을 나섰다. 장녀라는 놈은 눈물을 흘리며 나한테 용서를 구하는 거 같았지만 차녀라는 놈은 화를 낼 뿐이었다. 대충 내 집이 안보일때까지 걸어온 뒤에 둘을 던져놓는다. 눈이 쌓인 곳에서 몇바퀴를 구르는 녀석들.

“진짜 이래서 실장석이 싫다니까.”
-테엣?! 테에에에에!!!
-테쮸?! 테츄우아악!!

녀석들은 재빨리 날 쫒아오려하지만 나는 성큼성큼 집을 향해 걸어나갔다. 날도 추운데 진짜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실장석따위랑 엮이는 게 아니다. 역시 그 말이 진리다. 나는 속으로 진리를 다시한번 되뇌이며 집에 들어갔다. 

여전히 맛없는 식사를 마치고 티비를 튼다. 겨울이 되면 딱히 할 게 없다. 몇가지 할 것만 마치면 그저 봄을 기다릴 뿐. 밖에서는 새가 짖는 소리, 고양이가 우는 소리만 들린다. 시린 하늘이 참으로 푸르르다. 나는 멍때리며 이 여유를 즐겼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문단속을 하기 위해 나가는데 대문을 힘없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자실장 하나가 힘없이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키고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엉망진창이었다. 팔 한쪽은 어디다가 날려먹고 왔고, 옷도 뜯겨나간지 오래, 머리카락도 한쪽이 뜯겨나가고 한쪽도 엉망진창이었다. 힘없이 나를 올려다보며 테찌거리는 녀석이다.

“뭐냐. 왜 또.”
<테… 왜… 왜 와타시타치를 버린테찌…?>
“...아. 아까 그놈들이냐.”

머리를 긁적였다. 자실장 걸음으로는 못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오긴 왔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나를 향해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왜… 와타시를 버린테찌…? 왜…>
“건방지게 굴었잖냐. 사육실장이니 뭐니 하면서. 딱 질색이거든.”
<테에엥… 그럼 왜… 왜 와타시에게 그렇게 상냥하게 해준테찌…?>
“허 참, 웃기지도 않는 새끼네.”

나는 기가 차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쏟아질 거 같은 하늘이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호의를 베풀었던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다. 거기서 만족 못하고 지랄떤 게 잘못이지.”
<테에… 우.. 웃기지 마는테찌! 오...오마에때문에 오네챠가… 오네챠가 죽어버린테찌!>
“하? 니가 그 차녀구나. 그래도 똑똑한 장녀가 살아남을 줄 알았는데.”
<테ㅉ… 와타시는 살아남아야 하는테찌… 오네챠도 와타시가 살아남길 바랐는테찌… 그러니 어서 오마에는 와타시를 사육실장으로 삼는테쨔! 어서!>
“싫어.”

나는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100% 확신에 가득찬 고백에서 차여버린 남자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내가 준 호의에 만족 못하는 새끼따위, 키우고 싶지 않아.”
<오...오마에…!!!>
“남의 사정따위 생각하지도 않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뭐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 결정이 남을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는 생각도 안하는 결정이잖아. 대체 이런 이기적인 새끼들을 뭐가 좋다고 키우는거야?”

나는 쉴새없이 말을 내뱉으며 녀석을 주워들었다. 녀석을 화를 내려고 했지만 내가 주워드니 테프프프프 웃기 시작한다. 자신을 키울거라 생각하는가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밤거리를 걷는다. 녀석은 멀어지는 내 집을 보며 당황한다. 아까와 똑같은 곳에 서서 내려놓는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다음에 또 오면 그때는 그냥 밟아버린다.”
-테...테챠아아아아!!!

소리지르는 자실장을 뒤로하고 컴컴한 시골길을 걸어나간다. 고양이 소리가 유난히 울리는 밤이다. 나는 손을 호호 불며 대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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