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 공포의 공원 1~2

 


# 비 오는 날, 영화 같은 삶

“비가 오는구나.”
<비가 오는데스.>

나와 초록이는 멍하니 비가 오는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녀석하고 지낸 지도 어언 720시간을 훌쩍 넘겼다. 우리는 매우 쿵짝이 잘 맞는다. 내가 쿵하고 때리면 초록이는 짝하고 맞아주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은…

<똥닌겐. 혼자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데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나래이션이랄까.”
<데? 또 무슨 운치같은 짓을 하려는데스.>
“그건 그렇고 비가 오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생각하지마는데스. 똥닌겐이 생각하는 것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스.>

효자손으로 등을 벅벅 긁으며 농담을 던지는데 단칼에 잘라버리는 녀석, 요즘 좀 덜 맞았구나. 살짝 혈압이 오르면서 얼굴에 핏줄이 서는 것이 느껴지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초록이에게 한마디 던진다.

“정말 록키는 다시봐도 명작이야.”

나는 영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록키. 실베스타 스텔론이 자신이 주연과 각본을 맡았던 영화. 정말 남자라면 혼을 불사를 마지막 장면은 언제 다시봐도 감동이었다. 그렇게 감동에 빠져있는 날 건져올린 것은 초록이의 비웃음이었다.

<데프프프프. 멍청한 똥닌겐들이 주먹질하는 게 뭐 그리 재미있는데스.>
“...뭐?”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초록이를 노려보았다. 많이 때리기는 하지만 좀처럼 노려보지는 않던 나의 째려봄에 당황한 녀석.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데… 무식해보이는데스.>

실례. 변명이 아니라 불 난 집에 휘발유를 부었다. 나는 나의 명작을 단 몇마디로 부정해버린 초록이에게 어떤 벌을 내릴까 생각을 했다. 잠깐, 초록... 록키… 초록키?! 나는 벌떡 일어나 초록이를 이끌고 현관을 나섰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한번 해보자꾸나. 초록키!”
<데샤!!!!!!! 끌고가지마는데샤!! 똥닌겐!!>

그렇게 나와 초록이... 아니 초록키의 훈련은 시작되었다. 근육트레이닝은 일단 제외하기로 하고 런닝과 자세 위주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실장석 특유의 짧은 팔은 리치가 너무 안나온다는 단점이 있었다. 너는 아웃 복서는 무리다. 그러니까 역시 답은 맷집이야.

“게으름 피면 맞는거야!”
-딱
<데샤!!!!!>

무려 일주일만에 자세를 갖춘 초록키. 본인은 왠지 만족한 느낌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시 부족하다. 필요하다. 라이벌이라는 존재가. 록키에게는 크리드라는 인물이 있던 것처럼 이 녀석에게도 무언가 라이벌의 존재가 필요하다. 나는 공원실장들에게 물어물어 초록이와 함께 보스실장을 찾아갔다.

<데… 무슨일인데스. 닌겐상.>
“네가 이 공원의 보스냐?”
<그...그런데스. 닌겐상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직책인데스.>
<데프프프프. 이제 와타시를 보스실장으로 만드는데스? 똥닌겐도 제법인데스!>
“햇님이 7번 떴다 지면, 다시 찾아오겠다. 이 ‘초록키’님이 널 박살내줄테니까. 초록키님. 선전포고는 끝났습니다. 가시죠.”

나는 멍해진 보스실장을 두고 마찬가지로 멍해진 초록키와 함께 보스의 하우스를 떠났다. 내가 밀어줘야 걸을만큼 정신이 빠진 초록키는 공원을 벗어나니 그나마 정신을 차린듯 나에게 미친듯이 따지기 시작한다.

<데? 데?! 와타시가 어째서인데스?!?!?!>
“이제까지 훈련한 게 아깝지도 않니. 한번은 써먹어 봐야지.”
<와타시랑 보스실장이랑 체격부터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스!!!!>
“그걸 극복하기 위한 게 바로 트레이닝 아니냐. 오늘부터는 지옥일것이야. 넌 할 수 있어! 초록키!”

그 뒤로 일주일간은 내가 말한대로 지옥의 트레이닝이었다. 일단 손과 발에 1kg짜리 추를 테이프로 칭칭감아 달아두는 것은 기본이었다. 근육 트레이닝은 당연하다. 실장석은 사람과 다르게 재생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근섬유 파괴만 시키면 자동적으로 크기 마련이다. 즉, 근육을 조지면 실장석은 바로바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데… 뒈지겠는데스…>
“아직이야. 자 이제 다시 자세 잡아라!”
<데!!!>

그 다음은 맷집과 회피능력을 기르기위한 트레이닝이었다. 작은 막대기 두 개를 구해와 끝을 적당히 버리는 옷등을 찢어만든 헝겊으로 감싸 가상의 실장석 펀치를 구현했다. 이것으로 계속 초록키를 때린다. 죽기 직전까지. 그리고서 박카스를 부어 회복시킨 뒤 다시 반복. 죽기 싫으면 알아서 가드를 올리거나 피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초록키는 나에 의해 한 마리의 복서로 담금질 되었다. 

오늘은 결전의 그 날이었다. 초대손님이자 심판으로 나의 후배(역시 학대파)를 모셔왔다. 수건으로 간단히 만들어 준 후드를 뒤집어 쓴 초록키와 나는 당당하게 보스실장에게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는 이미 수많은 눈들이 모여있었다. 적록색의 눈뿐만 아니라 검은색의 눈들도 많았다. 그 동안 공원에서 하던 뻘짓들의 결과로 동네 사람들의 관심 또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왠지 부담되는데?

“어이, 보스실장. 준비되었어?”
<준비된데스. 그런데 와타시가 이기면 무엇을 주는데스?>
“아, 물론 대전료는 지급해야지.”

나는 콘페이토 한 봉지를 바닥에 던졌다. 보스실장을 비롯한 적록색의 눈들에서 탐욕이 비춰졌지만 일단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한봉지를 더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이기면, 너는 두 봉지를 갖는거야. 지면, 하나만 갖는거야.”
<데… 알겠는데스!>

보스실장의 눈에서는 이제 살기가 튀어나온다. 초록키도 지지않고 노려본다. 일주일간의 지옥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후배는 핸드폰 스톱 와치를 준비한 뒤,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자, 룰은 간단해. 무기를 안쓰고, 발 안쓰면 된다. 2분 5라운드야. 심판은 쟤가 봐줄거야. 그럼 시작!”
-땡!

경쾌한 종소리(어플)과 함께 대결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견제에 들어가는 두 실장석. 하지만 곧 보스실장은 데프-라는 비웃음과 함께 오른쪽 주먹을 휘두른다. 내 예상대로 권투를 배우지 않아서 대충 휘두른 주먹이다. 몸이 열리자 초록키는 놓치지 않고 왼손으로 콤팩트하게 바디 블로우를 노린다. 

-퍽
<데샤!!!>

펄쩍 뛰는 보스실장. 자신만만해지는 초록키. 하지만 역시 체력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보스실장이 신중하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초록이는 가드를 올렸지만 체격에서 오는 힘의 차이로 뒤로 쭉쭉 밀린다. 이대로는 힘들 거 같은데. 

-땡!
“1라운드 끝!”

마침 벨이 울리고 심판이 라운드를 종료시켰다. 1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보스실장에게는 세컨드가 없기 때문에 후배가 세컨드도 겸해준다. 물론 물이나 주는 정도지만. 그리고 내 예상대로 보스실장은 물을 주자마자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반면 우리의 초록키는 내가 준 물을 입에 머금다가 뱉어버린다. 

“잘했어. 계획대로 되가고 있다. 2라운드도 계획대로 하는거야.”
<데… 알겠는데스. 똥닌겐!>
-땡!
“2라운드 시작!”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서로에게 달려드는 초록키와 보스실장. 이제 탐색전따위는 필요없다. 격렬하게 보스실장에게 붙는 초록키. 당황한 보스실장은 뒷걸음질치지만 초록키는 끝까지 따라붙는다. 그리고서는 복부를 가격하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다른 충격에 휘청이는 보스실장. 공원에 있던 사람들과 들실장들은 감탄하기 시작한다.

“저거, 저 놈 좀 제대로 배웠네.”
“엄마! 저거 봐!”
<데! 데! 데! 데!>

이상한 구령을 붙이며 계속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초록키. 보스실장은 당황한다. 아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에서 왜 충격이 더 오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왜 그렇겠냐. 니가 물 먹어서 그렇지. 물을 마시면 복부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렇기에 선수들도 물을 마시지 않고 그냥 갈증만 해소하고 뱉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체급차를 극복하는 작전1이란다.

공격이 먹혀들어가자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하는 초록키. 하지만 보스도 그냥 보스가 아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라운드가 끝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스가 원한대로 2라운드도 이렇게 끝났다.

-땡!
“좋아! 잘했다. 이정도면 3라운드에 이길 수 있겠어!”
<데프프프프. 콘페이토나 잔뜩 준비하는데스!>

다음 라운드에 끝내리라 자신있게 외치는 나와 초록키. 하지만 3라운드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보스실장의 주먹에 초록키의 오른 눈꺼풀이 찢어진 것이다. 물론 실장석답게 금방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바로는 회복이 안된다. 일단 지혈을 위해 오른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고, 이건 초록키에게 불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보스도 집요하게 오른쪽만을 공략한다. 초록키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으며 3라운드를 보냈다. 그리고 그 것은 4라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보스의 왼손 스트레이트에 그대로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초록키 다운! 10! 9!...”
“초록키!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
<데… 뒈지겠는데스…>
“할 수 없을 거 같으면 얘기해! 수건 던질게!”
<아닌데스… 우마우마한 콘페이토와 스테이크가 기다리고 있는데스!>

분명 나는 콘페이토만을 말했는데 어느새 스테이크가 추가되었다. 시부럴놈. 그렇게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일어나는 초록키. 주변 사람들과 들실장들은 어느새 초록키의 열렬한 응원자가 되어 있었다. 심판은 초록키의 상태를 확인 후 경기를 재개하려고 했으나 벨이 울려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만 남았다. 아무래도 최후의 방법을 써야겠다. 나는 조용히 유리병을 땄다.

“자! 힘내자!”
<?! 갑자기 힘이나는데스! 똥닌겐은 보고만 있는데스!>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자, 보스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5라운드를 거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자기와는 다르게, 초록키는 1라운드처럼 쌩쌩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미친듯이 두들기는 초록키의 파상공세. 결국 초록키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정확히 턱을 맞고 쓰러진 보스. 심판은 카운트를 셌다. 10...9...8…...4...3...2...1!

“초록키 승!”
<에이드리언데수!!!!!!>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외치는 초록키. 에이드리언은 록키가 경기가 끝난 뒤 불렀던 자기 애인 이름이잖아… 여튼 나는 초록키에게 수건을 덮어준 뒤 보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적이지만 훌륭했다. 선물로 콘페이토 두 봉지를 줄테니 너만 먹지말고 공원 다른 실장들도 나눠주고 그래.”
<데...감사한데스. 초록키에게 대단했다고 전해주는데스.>
“좋아. 초록키. 집에 가자!”
<데스! 와타시가 앞장서는데스! 똥닌겐!>

어깨가 뻣뻣해진 초록키 뒤로 나는 <going to distance> 음악을 깔아주었다. 비장미 넘치는  록키사운드와 함께 그렇게 공원을 퇴장하는 나와 초록키. 그렇게 초록키는 공원에 또 다른 전설이 되었다. 



# 영화같은 삶 epiloge

<우마우마한데스~>

초록이는 내가 준 함박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비록 자기의 머리 속에서 나온 행복회로의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를 잘 따라줬으니, 상으로 편의점에서 사준 것이다. 한참 함박 스테이크를 즐기던 초록이는 다 먹었는지 플라스틱 포장을 탁탁털고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똥닌겐! 이제는 스시를 사오는데스!>
“이게 미쳤나봐.”
<데프프프프프. 이제 와타시는 대단해진데스! 숨겨진 힘도 발휘할 수 있는데스! 똥닌겐따위는 한방인데스!>
“숨겨진 힘 같은 소리하네. 요거나 맞아라. 냥냥펀치!”

나는 트레이닝할 때 쓰던 펀치도구로 초록이에게 소나기 펀치를 날려댔다. 훈련할때와는 차원이 다른 스피드에 당황한 초록이는 결국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이 녀석 뭐라고 중얼대는거야.

<이제 된데스… 이제 나오는데스… 와타시의 새로운 힘…!>
“뭐지…?”
<우오오오오오오오!!! 데샤!!!!>

초록이는 기운차게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나의 펀치에 맞고 그대로 K.O. 되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안나오는데스. 와타시의 새로운 힘이…>
“...너 혹시 이거 이야기하는거냐?”

나는 유리병을 꺼내 흔들었다. 거기에는 초록이의 위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아까 붓고 남은 것을 부어주었다. 초록이는 갑자기 눈이 커지더니 반응이 온 것처럼 벌떡댔다.

<이 힘인데스!>
“카페인 부스팅가지고 숨겨진 힘같은 소리하네.”
<데스?>

5라운드의 비밀은 이것이었다. 위석에 대고 에너지 음료를 부어준 것이었다. 실장석들도 카페인 부스팅 잘 받는구나. 초록이는 자신의 숨겨진 힘의 정체를 깨닫고 좌절했다.

<데… 똥닌겐을 이길 수 있는 힘인줄 알았는데스…>
“거 참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그건 그렇고 반란의 죗값은 치뤄야겠다.”
<데...데!!! 잘못한데스!!!>






#막간극

실장석은 공원을 걷고 있었다. 이 공원에 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공원에서 이주해온 것이다. 같이 데리고 오던 자들은 다 죽어버렸다. 이제는 자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탁아해서 닌겐을 메로메로시킬 자가 없으니 스스로 인간을 메로메로시킬 수 밖에 없다. 고 실장석은 생각했다. 마침 한 닌겐이 지나간다. 실장석은 말을 건다.

-닌겐상! 닌겐상! 와타시를 데려가는데스!
“이 똥벌레는 또 뭐라고 하는거야…”

닌겐은 중얼거리면서 네모난 기계를 꺼낸다. 저 기계는 닌겐들이 와타시와 대화하기 위해서 쓰는 기계라는 걸 알고 있다. 멍청한 닌겐들이다. 와타시는 그런 것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데 말이지.

“그래, 다시 말해봐. 뭐라고 한거야?”
<데-스. 참으로 귀찮은 닌겐상인데스. 와타시는 닌겐상에게 행복을 드리는데스!>
“오, 그래? 행복 좋지.”
<데프프프프프. 그런데스. 와타시를 키우면, 닌겐상은 행복을 얻는데스! 와타시는 그저 스시와 스테이크면 충분한데스!>
“아항, 스시랑 스테이크를 매일 너한테 주면 나한테 행복을 주겠다?”
<그런데스! 닌겐상 똑똑한데스- 데프프프->

제법 말이 통하는 닌겐노예다. 이 다음에는 당연히 와타시를 사육실자….

“그럼 그냥 내가 스테이크랑 스시를 매일 먹는 게 내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데스?>
“생각해봐라. 스테이크랑 스시는 내가 먹어도 행복해지는 음식인데. 그럼 굳이 중간에 널 안끼워넣어도 그냥 내가 먹고 행복해지는 게 낫지. 안그래?”
<데…? 데…?>

뭔가 이상하다? 와타시는 이미 사육실장이 된 것이 아니었나? 저 똥닌겐은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시끄럽고 당장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데스!!! 라고 말할려는 찰나 닌겐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너, 여기 온 지 얼마 안되었지?”
<그런데스->
“그러니까 나한테 말을 걸지. 저기 다른 애들이 멀리서 나 보는 거 안보이냐?”
<데…?>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같이 저 멀리서 나를 보며 수근대는 들실장들이다. 더러운 녀석들. 와타시는 이제 사육실장이다. 너희같은 더러운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하지만 어째 저 눈빛들이 불안하다. 아니 불쾌하다. 어서 똥닌겐에게 쳐죽이라고 해야겠다!

<똥닌겐! 당장 저 놈들을…!>
“왜 그런 지 알아…?”
<데…? 왜…>
“그건 내가 학.대.파.라서 그런다! 이 놈아!”

-뻥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와타시의 몸이 공중에 뜬다. 왜? 와타시가 왜 날고있지? 달님이 왜 이리 가깝지? 어라? 왜 달님이 멀어지지? 똥닌겐!! 사육실장인 와타시를 얼른 챙기지…

-지벩!
“진짜 별 재수가 없으려니.”

피떡이 된 들실장을 뒤로 하고 남자는 집으로 향한다. 그 남자는 자신을 집에서 기다릴 자신의 사육실장을 생각한다. 신이 난다. 오늘은 어떻게 골려줄까? 우리 귀여운 초록이!



#1

-덜컹
“초록아! 주인 왔다… 엥?”
<데엣! 또...똥닌겐! 왜 벌써온데스!!!>
“엑? 너 운치 쌌어?”

바닥은 운치범벅이었다. 초록이는 걸레를 들고 운치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엥? 좀비영화? 너 설마…

“푸하하하하하하!! 너 영화보다가 무서워서 싼거냐?!”
<아… 아닌데스! 똥좀비따위는 절대 무섭지 않은데스!!!!>
“그럼 운치는 왜 싼거야?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무서웠어? 푸하하하하하하.”
<데샤아아아아아아아!!! 똥닌겐!!! 와타시는 무서운 게 없… 으헤레레레레레렉?!>

티비에서 나오는 좀비에 또 놀란 초록이는 빵콘을 하고야 만다. 안무섭기는 개뿔. 겁나 무서워하는구만. 나는 일단 티비를 껐다. 빵콘하는 녀석이 웃기기는 하지만 이러다가 바닥이 운치바다가 될 거 같아서였다. 티비를 끄자 내 눈치를 보는 초록이. 지가 잘못한 건 아나보지?

<데… 똥닌겐…>
“일단 화장실 들어가서 니꺼 빨래하고 씻어라. 운치는 내가 닦고 있을게.”
<데스! 알겠는데스!>

뒤뚱거리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초록이. 그 뒤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줄을 보며 한숨을 쉰다. 진짜 저건 언제 다 치우냐. 그렇게 운치를 치우는 도중에 화장실에서 초록이가 부른다. 왜 또?

<똥닌겐!!! 비누가 없는데샤!!!!>
“이 새끼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리네. 야!!!”
<데엙!>

울분을 터트리며 던진 비누가 정확히 면상에 박힌다. 데베베 하는 녀석. 나는 한숨을 쉬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다시 티비를 켜고 영화를 보며 운치를 치운다. 좀비가 마침 사람을 뜯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멍하니 티비를 보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화장실에서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씻으면서 노래라도 부르나보다. 나는 음흄한 미소를 짓는다. 우후후후후. 기대하시라. 



#2 

“야, 저기 공원에 보스 기억하냐?”
<당연한데스.>
“걔한테 가서 내가 달라고 한 거 받아와.”
<밖이 깜깜한데스. 와타시같은 세레브한 사육실장에게는 위험한데스. 똥닌겐이 갔다오는데샭?!>
“얘가 요즘 또 말 안듣네. 이번에는 뭘로 맞을래?”
<데샤아아아!!! 갔다오면 되는 거 아닌데샤!!!>

초록이는 문을 박차고 달려나간다. 현관까지 단숨에 달려가니 숨이 찬다. 슬슬 걸으면서 똥닌겐 욕을 한다. 멍청한 똥닌겐, 집에 오는 길에 받아오면 되는데 왜 안받아와서 와타시같은 사육실장을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조만간 똥닌겐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리라. 괜히 길가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를 하나 차본다. 둔탁하게 굴러가는 돌멩이의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초록이는 보스의 골판지 하우스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보스상- 와타시 초록이인데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 골판지 하우스. 주변도 너무나 조용하다. 보스야 자들을 독립시키고 지금은 혼자사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조용하다. 불안해진 초록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연다. 

<보스상…? 와타시 초록ㅇ…?>

가로등의 불빛이 보스의 집에 쏟아진다. 문을 연 초록이는 보스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괜히 놀랐나, 생각한 초록이는 피식 웃는다. 

<보스상. 미안한데스. 와타시의 똥닌겐이 부탁한 것이 있다고 들은데스.>
-그으으으으으으으으
<...보스상?>

보스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이상한 소리가 커진다. 초록이의 손이 보스의 어깨를 흔든다. 

<보스상? 괜찮은데스?>
-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

초록이의 손에 의해 돌아선 보스의 얼굴에는 적색의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었다. 이상한 소리는 보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초록이를 보자마자 초록이에게 달려드는 보스. 초록이는 놀라서 재빨리 골판지 바깥으로 뛰쳐나온다. 그런 초록이를 보스였던 무엇이 쫒아온다. 초록이는 다른 골판지로 달려간다. 보스의 오른팔인 녀석. 여기라면 괜찮을 것이다!

<큰일난데스! 큰일난데스! 보스가 이상…>
-그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

여기에서도 달려든다. 이미 팬티는 운치로 물든 지 오래였다. 초록이가 달릴 때마다 뒤로 초록색 줄이 생겼다. 초록이는 문득 저번에 보았던 좀비 영화가 생각난다. 닌겐좀비는 닌겐을 먹었다. 그렇다면 실장좀비는 실장석을 먹나…? 아닌데? 원래 실장석은 실장석을 먹잖아? 아니 그거랑 무슨 상관이겠어. 일단 도망쳐야지!!! 초록이는 아무 골판지에나 뛰어든다. 

<데스데스데스. 큰일난…>
-그어어어어어어어어
<데샤!!! 여기도 그런데샤!!!>

초록이는 다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집도, 저 집도, 다 마찬가지였다. 문을 연 곳마다 좀비실장들이 뛰쳐나온다. 이제 문을 여는 것은 포기하고 그저 달릴 뿐이었다. 데스데스데스하고 자신이 달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느정도 달렸으니 되었겠지. 초록이는 슬쩍 고개를 돌린다.

<데샤!!!! 졸라많은데샤!!!>

공원은 오염된데샤! 어서 공원을 벗어나야하는데샤! 초록이는 공원 후문으로 달려갔다. 초록이의 집과 제일 가까운 문이었다. 근데 이 문 앞에 왠 닌겐이 얼쩡대고 있다. 자세히 보니까 똥닌겐이다.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에 똥닌겐에게로 달려간다.

<똥닌겐! 똥닌겐! 큰일난데샤!!! 공원이 위험한데샤!!!>
“......”
<똥닌겐!!! 똥…>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닌겐?>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



#3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초록이는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익숙한 느낌. 틀림없이 와타시의 세레브 하우스다. 밝은 것을 보니 햇님이 뜬 거 같다. 재빨리 일어나보니 똥닌겐이 밥을 먹고 있었다.

<똥닌겐! 똥닌겐! 큰일난데샤!!>
“뭐가?”
<공원이 좀비실장 투성이가 된데샤!!!>
“그게 또 무슨 개소리야.”
<와타시가 틀림없이 봤는데스!! 보스도, 보스 오른팔도 다 좀비가 된데스!!!>
“...너무 많이 머리를 때렸나?”
<데샤아아아아아아!! 답답한데스!!!>

초록이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두들긴다. 너무나 억울하다. 와타시가 진짜로 봤다니까? 왜 안믿어주는거냐!! 똥닌겐!! 그런 초록이를 심드렁하게 보는 남자. 다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말한다.

“그럼 한 번 공원에 가보자. 네 말대로라면 정말 큰일난거니까.”
<데!! 그런데샤!! 와타시의 말이 틀림없는데샤!!>

남자와 초록이는 공원으로 향한다. 초록이도 작은 몽둥이를 들고 남자도 오랫만에 사육봉을 들었다. 그렇게 공원에 들어선 남자와 초록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공원이다. 친실장과 자실장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초록이. 반면에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간다. 

<데?! 위험한데스! 일단 거리를 두고…>
“야, 거기 친자실장.”
<데?>
<테치?>
“어제 뭐 여기서 좀비 비슷한거라도 나왔냐?”
<데… 모르겠는데스. 와타시는 잠만 자서 잘 모르는데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들실장들. 초록이의 눈이 커진다. 남자의 눈은 가늘어진다. 남자와 초록이의 시선이 교차한다. 몽둥이를 붕붕 휘두르는 남자. 초록이의 손이 마구 떨린다.

“야…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인가 했더니… 죽을래?”
<데스! 아닌데스! 와타시가 틀림없이 본데스!!>
“아니래잖아.”
<데...데스! 그런데스! 보스상에게 찾아가는데스!!!>
“너… 후… 아니다. 그래, 가보자.”

앞장서는 초록이. 서두르는 초록이 뒤로 남자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보스의 하우스에 다다른 초록이는 문을 마구 두들기고는 재빨리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혹시나 보스가 좀비라면 단숨에 후려치기 위해서였다. 꾸물꾸물대며 나오는 보스. 몽둥이를 움켜진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데… 초록상 아닌데스. 닌겐상도 반가운데스.>
<데스…?>
“멀쩡하잖아…”
<데스? 무슨일인데스?>
“이 녀석이 자꾸 어젯밤에 네가 좀비가 되어서 자기를 공격했네, 어쨌네 하잖아.”
<데프프프프프프. 무슨 소리인데스. 와타시는 밤에 잠만 잔데스. 요즘 좀 피곤한데스.>
“...초록아? 설명 플리즈.”
<데스? 아닌데스? 와타시가 틀림없이 본데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말 못들었어? 오늘 확실하게 두들겨주마.”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진실

나는 떡이 되도록 맞은 초록이를 집에 던져넣고서는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왔다. 보스의 하우스 앞에 선 나는 다시 보스를 불렀다. 보스는 다시 어기적어기적 나온다. 

“야, 어제 동원된 애들도 다 불러.”
<감사한데스. 모두 다 불러오는데스!!!>

공원의 실장석들이 어기적어기적 나타난다. 보스 부하들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는 실장석들. 나는 녀석들에게 포장한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하나씩 건넨다. 받고서는 신나게 돌아가는 실장석들이다. 

“이정도면 충분히 나누어준 거 같은데. 이건 네 몫이다. 고생했어.”
<감사한데스, 닌겐상. 또 필요하신 건 없는데스?>
“있으면 또 찾아올게. 그 때도 말 잘들으면… 알지? 나는 보상과 처벌이 확실한 사람이야.”
<데프프프프프… 걱정마는데스.>

이정도 되었으면 사람들은 다 깨달았을 것이다. 이번 일을 꾸민 것이 나라는 것을.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발단은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좀비영화를 보고 초록이가 공포에 질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계획을 짰다. 일명 좀비의 공원. 나는 계획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돈은 충분했다. 저번에 <초록키 대결>을 데-스튜브에 올리면서 얻은 수익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서바이벌에 쓰이는 페인트탄을 산다. 그리고 액션캠도 몇 개 산다. 중국산 짝퉁이지만 가로등으로 충분한 광량이 있으면 찍는데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소품들을 다 마련한 나는 역시나 공원 보스에게 향했다. 공원 보스는 나름 익숙한지 땀을 흘리며 나를 반겨준다. 몇가지를 물어본다. 이 공원을 보스가 얼마나 통제하고 있는지, 실장석들을 얼마나 동원가능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보스는 친절하게 나와 같이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준다. 역시 왼손에는 빠루를 들고 친절한 말을 하면 더 효과가 좋다는 게 사실이었네.

“좋아. 그럼 동원할 수 있는 애들 다 불러봐.”
<데스. 알겠는데스.>

어우야. 이 공원에 이렇게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건 또 처음이네. 나는 약간 질린 표정으로 실장석들을 바라본다. 실장석들도 나와 빠루를 보며 질린 표정이다. 보스가 나 대신 설명해준다. 한 실장석을 쫒아가면 된다. 쫒아가기 전에는 이 페인트탄을 터트려서 얼굴에 바르고 쫒아가면 된다. 만약 잡으면 이 닌겐이 꽤나 큰 상을 줄 것이고, 못 잡아도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줄 것이다. 대신 잘하지 못하면 빠루로 저세상 하직을 할 수도 있다.

몇몇의 분충들이 콘페이토 소리를 듣자마자 발광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보스의 부하들이 독라로 만들어 내 앞에서 치워버린다. 하긴, 내가 갑자기 다 때려치고 자기네들을 다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 보스로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무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초록이를 캐스팅만 하면 끝. 

초록이는 주인공답게 퍼펙트한 연기를 펼쳤다. 나중에 열어본 보스 시점의 캠을 볼 때는 진짜… 우리 초록이가 좀 많이 못생기긴 했지만 적록의 눈물과 콧물이 같이 나오는 그 영상은 정말 못생겼다. 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다른 가로등이나 실장석에 달아놓은 액션캠에도 훌륭한 영상이 찍혀있었다. 정성껏 편집해서 데-스튜브에 올린다. 이번 것도 반응이 아주 좋다. 다음에는 뭘 하면 좋을까?



# 청소하는 실장석

어느 사육실장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공원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멍하니 구경중이었다. 그 사육실장은 보고야 말았다. 한 실장석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그 실장석을 쫒는 실장석 무리들을. 무언가가 이상했다. 다들 이상한 것들을 몸에 바르고 실장석을 쫒아가고 있었다. 실장석은 한 닌겐을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갑자기 닌겐이 확 소리를 지른다. 자빠진 실장석은 그대로 뻗어버린다. 남자는 그 실장석을 대충 잡아든다. 공원의 실장석에게 뭐라뭐라하는 닌겐. 실장석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고개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 사육실장의 눈에는 자들이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닌겐 주인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밖의 공원과는 다른 평화로운 방 안. 

<다녀온데스.>
“어, 쓰레기는 잘 버리고 왔냐?”
<그런데스, 와타시는 주인을 잘 찾은 거 같은데스.>
“갑자기 뭔 소리야?”
<그런 게 있는데스. 와타시는 주인상에게 항상 감사하는데스.>

사육실장은 이 말만 남긴 채 자들과 함께 자기의 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 안에서 뭔가 데스거리는데 링갈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닌겐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티비에 집중한다.









댓글 2개:

  1. 데프프프픗!! 개꿀잼 몰카라니 천재인데수! 감동한 데햐햣ㅠ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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