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 시를 둘러싸고 있는 아카기 산자락 일대에는 농가가 자리잡고 있다.
가구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산어귀부터 시작되는 임야와 과수원, 도시의 외곽과 맞닿은 제법 넓은 들판에서는 쌀과 여러 가지 특용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강을 끼고 있어 토질이 비옥한데다가 공장 같은 산업시설은 거의 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후타바 시의 농산물은 주변은 물론이고, 다른 지방에서도 질이 좋기로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농산물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여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외국의 저렴한 농산물에 밀려 맥을 추리지 못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대단히 특기할만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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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도 이제 거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린 것도 한 달쯤 전의 일이었고, 얼음도 대부분 녹아 그늘진 곳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도 한풀 기세가 꺾여 햇볕이 구름에 가리지 않는 날이면 그럭저럭 외투를 입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봄의 기운이 제법 가까워진 것이다.
[데에... 오늘도 겨우 살아남은데스우...]
허름한 창고에서 성체 실장석 하나가 주춤주춤 걸어나온다.
아직 아침이지만 구름이 없는 탓에 햇빛이 잘 내리쬔다.
실장석은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넝마같이 헤진 자신의 옷을 두손으로 감싸안고 한 번 부르르 떤다.
타박타박...
실장석은 마치 유령처럼 힘없이 걸어간다.
겨울의 기세가 꺾였다고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얇은 옷 한겹뿐인 실장석에게는 여전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추위다.
얇은 옷을 한껏 추켜올려 추위를 막아보려고 하지만, 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얼굴이나 다리, 손끝, 그리고 여기저기 찢어진 구멍 사이로 보이는 살결은 보라색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동상이 계속해서 도져 살결마저 너덜너덜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옷이라고 해봐야 벌써 삼 년의 세월동안 세탁을 한 것은 채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처음의 푸릇푸릇한 초록색은 간데없고, 온갖 때와 오물이 찌들어서 짙은 회색으로 보인다. 자주 살결에 스치는 겨드랑이 부분과 옆구리 언저리는 이미 헤질대로 헤져서 구멍이 나있었다. 악취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신발...
역시 옷과 같은 세월을 견뎌온 만큼 그에 만만치 않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다.
평생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비사육실장의 일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 실장석이 다다른 곳은 한 농가였다.
농가라고는 하지만 목재를 뼈대로 하고 기와를 올린 것이 작은 저택같은 크기다.
실장석은 그 크기에 눌린듯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대문 근처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서성인다.
조금 기다리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차림의 실장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가장 먼저 도착한 실장석만큼이나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실장석, 대머리에 옷도 반쯤 찢어져 비닐봉지를 두르고 있는 실장석, 자그마한 자실장 하나를 두건에 넣고 어깨에 걸머진 실장석... 모두 족히 열 마리는 넘는다.
실장석은 주변의 다른 동족과는 한마디 인사도 나누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할 곳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깨끗하게 정리된 집앞 도로는 변변한 흙더미조차 없어서 세찬 아침의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수 밖에 없다.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도 보고, 한 걸음 전진 한 걸음 후퇴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얼어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대문을 힐끔힐끔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린다.
삐이걱...
첫번째 실장석이 도착하고 거의 삼십 분이 흘렀을 무렵 대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것을 신호로 군데군데 퍼져 있던 실장석들이 우르르 뛰어온다.
[데데데데데스우우우~~~ 닌겐상~~ 일자리를 주시는데스우~~]
[데에에엑!! 와타시! 와타시가 먼저인데슷! 와타시가 제일 먼저 온 데스우우우!!]
[데갸아아!! 이 똥벌레가 무슨 소리를 하는데샤아아!! 넌 분명 나보다 늦게 온데스!!]
[닌겐상! 닌겐상!!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시는데스우!! 와타시는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일을 하지 못한데스! 이대로라면 자들이 모두 굶어죽는데스! 제발... 제발 일을 시켜주시는데스!!]
[와, 와타시도 마찬가지인데스!! 무슨 일이든 다 하는데스!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는데스!!]
[와타시는 자도 데려온데스! 와타시는 자와 함께 하기 때문에 일을 더 빨리 끝낼 자신이 있는데스! 먹이는 한 마리분만 주셔도 좋은데스!! 와타시에게 맡겨주시는데스우우우!!!]
실장석들은 집안에서 나온 남자를 향해 데스데스하며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대부분의 얼굴은 초록색과 빨간색의 눈물이 주르르르 흐르고 있다.
가식이 아닌 진짜 비통한 울음소리가 가슴 속 폐부를 지나 하얀 입김과 함께 토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자와의 어느 정도 거리는 유지한다.
아무리 사정이 급박하다고해도 인간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예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대문 앞의 실장석 무리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제 너희들이 할 일 따윈 없다고! 다들 돌아가버려!!]
[데데데데스우.... 제발 부탁드리는데스! 돌 고르기도, 쓰레기 줍기도, 풀뽑기도 모두모두 자신있는데스우!!]
[데개에에~ 와타시는 사정하는데수... 벌써 사흘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한데수... 이대로는 정말 죽는데수..]
[데승... 데승... 밥은 반절만 받아도 좋은데스.. 무엇이라도 시켜주시는데스.. 제발 부탁드리는 데스 닌겐사마...]
실장석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갖다 댄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모든 실장석들은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발 일거리를 달라고 끊임없이 사정한다.
잠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이라도한단말이지? 그럼 이리 따라와라.]
그리고 앞장 서서 집의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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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줄줄이 실장석들을 뒤에 붙이고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도랑이었다.
눈앞의 논에 물을 대는 것으로, 너비는 약 1미터에 깊이는 그 반 정도였다.
바닥과 벽면을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꾸며놓았지만, 지난 봄과 여름에 물대기를 한 이후에는 거의 손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붙은 진흙과 이끼가 벽면과 바닥에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를 전부 깨끗이 청소해라.]
[[[[데에........]]]]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고 멍하니 도랑을 쳐다보았다.
도랑의 길이는 약 500미터에 육박한다. 당장 여기서 쳐다봐도 실장석의 낮은 키로는 그 끝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깊이도 자신의 키만큼이나 깊다. 언뜻 상태를 봐도 심각하다. 인간의 '깨끗하게'라는 말이 주는 엄정함을 지난 몇 번의 노동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는 실장석들로서는 지금 남자가 말한 일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 것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데... 데, 데, 데, 데에에에... 너무 긴 데스우...]
[......그런데스... 이렇게 많은 일은 우리들이 다 할 수 없는데스... 너무 많은데스...]
몇몇 실장석이 조심스럽게 남자를 올려다보면서 어렵게 입을 뗀다.
입을 놀려 말을하면서도 모든 신경은 남자에게 쏠려있다.
연신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이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남자의 한 마디에 그런 시도도 모두 무산으로 끝나버렸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데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있던 실장석들의 어깨가 추욱 늘어진다.
[어차피 이런 겨울에 할 일 따위가 있을리 없잖아. 농사일은 봄부터 하는 거라고 이 머저리들아.]
[그래도... 뭐 그 동안의 성의를 봐서 이렇게 일거리를 주는 건데, 뭐? 일이 많아? 싫으면 하지마!!]
남자는 도로변의 흙덩이를 발로 차 날리면서 고함을 지른다.
움츠러든 실장석의 어깨가 다시 한 번 더 좁아진다.
실장석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나 일거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조금씩 모아왔던 먹이라든가 얼음을 녹인 물로 버텼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당장 자신은 둘째치고 아이들은 하루라도 더 굶는다면 필시 죽고 말 것이다.
[데이... 와... 와타시는 하는데스! 와타시에게 시켜주시는데스!!]
야윌대로 야윈 자실장을 등에 업은 친실장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실장석들도 하나둘 힘없이 손을 든다.
길게 뻗어있는 도랑을 데- 하며 멍하니 바라보던 실장석도, 남자의 발 근처에 무릎을 꿇고 있던 실장석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할 수 없이 손을 든다.
[좋~~아. 모두 하겠다는거지? 그럼 규칙은 알고 있겠지? 일을 제대로 마치면 밥을 준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다 끝내지 못하면 밥은 없어! 알겠지?]
남자의 으름장에 실장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마치 송장이 무덤으로 들어가듯이 느릿느릿 도랑으로 뛰어든다.
[데기... 축축한데스... 차가운데스...]
[데에... 발이 시려운데스... 저릿저릿한 물이 가득인데스...]
[데에에에~~엣! 들어와보니 더 넓은데스... 무리인데스... 너무 넓은데스우... 데에에엥... 데엥...]
[.....마...마? 그럼 와타치랑 마마 밥 없는테치? 또 굶어야되는테치?]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실장석은 모두 열여덟마리.
그 중 자실장은 모두 세마리였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해 노동에는 거의 힘을 쓸 수 없는 자실장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노동력은 열다섯마리가 전부였다.
어찌보면 꽤 많은 숫자지만, 오늘의 할당량인 도랑 청소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건강한 실장석 하나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열심히 논밭의 쓰레기와 돌을 골라내도 그 면적은 대여섯평에 불과하다.
오늘의 일은 논밭에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작은 도랑을 청소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열다섯 마리의 실장석으로 장장 오백미터에 이르는 길고 긴 농수로를 청소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떠들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스우. 입을 놀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을 하는데스.]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살집 있는 실장석 하나가 손을 걷어붙이고 버려진 고무호스 조각을 주워 비닐봉투에 담는다.
비닐봉투는 남자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 말에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실장석도, 엎드려 통곡하던 실장석도 눈물을 쓱쓱 문질러 닦고 하나둘씩 비닐봉투를 들어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실장석이 살아가려면 전적으로 인간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도시에서라면 깊은 밤이나 새벽을 틈타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아니면 약간의 행운이 필요한 일이지만 애호파의 눈에 띄어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런 농촌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직접 소각로를 가지고 있어서 집에서 나오는 왠만한 생활쓰레기는 그냥 태워버린다. 그래서 쓰레기장에는 태울 수 없는 가구나 폐가전제품, 깡통이나 유리병 같은 재활용품만 나올 뿐이다.
애호파 역시 이런 시골까지. 시에서 차로 달려 삼십분 이상 걸리는 이런 곳까지 올리가 만무하다. 거기에다 지역 주민들은 실장석을 농사일을 망치는 해수(害獸)로 취급하기 때문에 먹이를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봄이 되면 보리싹이 푸릇푸릇하게 올라오고, 여름이 되면 온갖 과일과 푸성귀가 돋아나온다. 가을이면 그야말로 온 들녘이 황금빛 벌판이 되어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나무마다 달콤달콤 향기가 나는 열매가 잔뜩 익어서 빠알간 빛깔을 자랑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나무열매도 여기저기서 열린다. 그 양은 실장석들로서는 눈으로 보고도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들의 신체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넘을듯한 양이 차곡차곡 들판에, 집에, 창고에 쌓여간다. 그것들 중 아주 조금...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의 양만 있더라도 자신과 자식들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실장석들도 배부르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들판에 열리는 곡식도, 산에서 나는 푸성귀나 버섯도, 나무마다 열리는 열매도, 심지어 땅에 떨어진 낟알 하나하나마저 주인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것이었다.
들판 전체를 뒤덮은 보리밭에서 보리싹 하나를 딴 실장석은 그 자리에서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썩은 나뭇껍질에서 돋아난 버섯을 몇 개 딴 자실장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집에 숨어있던 동생들과 나중에 돌아온 친실장까지 모두 오뎅꼬치에 엉덩이부터 입까지 꿰뚫린채 땅에 꽂혀 말라죽었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과일나무에 가까이 간 실장석은 풀어놓은 고양이에게 사지가 찢어발겨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곡식 한 톨을 줍던 실장석 가족은 머리 위에서 뿌려진 실장도로리에 온 놈이 걸죽걸죽하게 녹아버렸다....
아무 것도 없다.
들판과 산녘에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있었지만, 그것들 중에 실장석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먹을 것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꽤나 자주 보이던 골판지 상자도 여기서는 거의 찾기 어렵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음료수병, 항상 유용하게 쓰이는 노끈, 여름에는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따뜻함을 주는 천조각이나 헌옷 등등의 생활용품도 도시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실장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인간에게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실장석이 비록 형편없는 신체능력을 가지긴했지만, 그래도 '숫자'가 있다.
모내기라든가 모판 만들기, 가지치기, 수확 등의 큰 일은 못하지만, 사람을 쓰기에는 아깝고 하긴 해야하는 일 정도는 실장석에게 맡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약을 쓰지 않고 실장석에게 잡초나 해충을 모두 잡게해서 유기농 농작물을 재배한다거나, 비가 오는 날에 물꼬가 무너지지 않게 밤새도록 지켜보도록 시킨다거나, 우물이 막히면 아래로 넣어서 상황을 살펴보게 한다거나, 가을 수확 후 관리하지 않은 농수로를 청소하게 시킨다거나 말이다.
그 대가로 인간은 실장석에게 살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을 준다.
사는 곳은 폐가가 된 곳이나 무너져 쓸 수 없게 된 옛날 창고에다 덮을 것은 비료포대 정도가 전부였고, 음식은 잔반찌꺼기 아니면 최하급 실장석 사료가 전부였지만, 어쨌든 주긴 주는 것이다.
[데히... 데히... 너무 힘든데스... 그리고 너무 큰 데스... 도저히 이건 못 끝내는 일인데스]
[....입을 놀리면 더 빨리 지치는데스. 천천히라도 일을 하는데스우.]
[아줌마 말이 맞는데스우. 한 번 쉬면 다시 일어나는 건 배나 힘이 드는데수. 힘을 내는데스]
[데히... 데히이... 와타시가... 와타시가...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은 이런 것때문이 아니었던데스... 데히히히히히히...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실장석 하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철퍼덕 주저앉아버린다.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막힌 흙덩이를 돌로 부숴뜨리던 실장석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볼 뿐, 이내 신경을 끄고 다시 자기 일에 매진한다. 일을 하면서 보는 흔하디 흔한 광경일 뿐이다.
[데히히히힉... 데힉... 데에에에엥!! 미안한데스우우!! 마마가 미안한데스우우우!! 괜히 '이주'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스우!!]
울음은 점점 통곡으로 변해간다.
보다 못한 가장 나이 많은 실장석이 뒤돌아 그 실장석에게 다가가려 할 때,
[테에에에엥!! 마마아아아!! 울지마는테체!! 와타치가... 와타치가 있는테치이이!!]
한 자실장이 뛰쳐나와 울고있는 실장석의 배에 달라붙는다.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마마가 울면 와타치는 이야테치! 울지마는테치! 울면 와타치도 슬픈테치이이이!!]
[데스우우우우우!! 마마가... 마마가 미안한데스!! 마마가 바보라서 네 언니도, 네 동생도 모두 죽은데스우우우웃!!!]
[아닌테체! 아닌테체! 그런거아닌테찌이이이!! 동생쨩도, 언니쨩도 마마를 원망하지 않는테치!! 마마 잘못이 아닌테찌이!]
[데에에...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테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엥!!! 마마아아아아!!!]
다가가려던 나이 많은 실장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쓰레기를 주으러 간다.
이곳에 사는 실장석의 절반은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주'를 온 들실장이었고, 또 다른 절반은 깊숙한 산 속의 실장석 부락에서 살다 '탈출'을 한 산실장이었다.
밥이 없어서, 공원이 황폐해져서, 천국이 있다는 말에.
더 이상 자식을 겨울나기 식량으로 삼기 싫어서, 너무 엄격한 부락의 규율에 지쳐, 아이를 마음껏 가지고 싶어서.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이곳에 흘러들어왔다.
도시에 사는 실장석들은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본 원 사육실장에게서 음식이 온 지천에 널려있는 '천국'이라는 존재를 들었다. 부락에 사는 실장석들은 먼 곳으로 사냥을 나간 이들에게서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매가 달린 나무가, 그것도 수십 수백그루 있는 '극락'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각자 들은 방법과 그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다.
먹을 걱정, 죽을 걱정, 아이들을 잃을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런 일념만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그런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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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능선 뒤로 넘어가고 있는 태양을 보자 실장석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맡은 일은 무조건 해가 지기 전에 끝을 내야한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그 날 일한 품삯은 조금도 받지 못한다.
실장석들이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싶어도 가로등조차 없는 암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데에 불을 비춰줄 한가한 인간도 없는 것이다.
[아직도 쓰레기가 남은 데스우?]
나이 많은 실장석이 불안한 얼굴로 앞서 나가있는 실장석들에게 묻는다.
[일단 흙덩이 정리는 놔두고 어서 가서 쓰레기부터 줍는데스!]
[데스! 모두 함께 쓰레기부터 줍는데스!]
너나 할 것없이 몸을 정신없이 놀린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도랑을 모두 정리해놓지 않으면 오늘 먹을 밥을 받을 수 없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어도,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정해진 분량보다 적게 하면 하나도 인정받지 못한다.
거기에는 어떤 변명도 사정도 통하지 않는다.
그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실장석들이기에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서두르는 것이다.
[테치! 손이 너무 아픈테치... 쥘 수도 없는테찌...]
자실장 하나가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부여잡고 울먹인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돌아봐주는 이가 없다.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손이 상처투성이다.
날카로운 깡통을 줍다가 뾰족한 나뭇가지를 치우다가 날카로운 철사에 찔려서...
하지만 상처를 돌볼 여가가 나지 않는다.
일단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쓰레기부터 다 치워야하는 것이다.
[데수우! 저기도 있는데수!]
[빨리 치우는데스우!]
[데갸악!! 아픈데스! 깨진 병조각인데스!!]
[데에!! 위험한데스! 큰 것만 줍고, 나머지는 일단 여기 흙으로 덮어두는데스우! 어서어서 서두르는데스!! 곧 해가 지는 데스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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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실장석 열다섯마리... 나중에는 자실장들까지 고사리같은 손을 보태기는 했지만, 여하튼 열다섯에서 열여덟마리의 힘으로 장장 오백미터나 되는 농수로를 제법 깨끗하게 치워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잘 띄지 않는 자잘한 것까지 모두 깨끗이 치웠다.
도랑이 구부러지는 부분에 쌓인 토사도 말끔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물의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치워놓기까지 했다.
비록 아침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거의 12시간이나 걸리긴 했지만, 건장한 남자 두어명이 달라붙어도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만한 일이었던 것을 생각해볼때 정말 열심히 일한 것만은 분명했다.
실장석들도 자신들이 이루어낸 것이 믿기지 않는지, 아니면 자랑스러운 것인지 너나할 것 없이 농수로 위의 도로에 한데 모여 배를 보이고 누워있었다.
[데히... 데히이.... 어떻게... 다 끝낸데스....]
[데에에에... 정말... 와타시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날인데스... 집에 돌아갈 힘도 없는데스...]
[데승... 데승... 맞는데스... 정말 손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는데스...]
[걱정마는데스우. 맡은 일을 모두 끝냈으니 닌겐이 밥을 줄 것인데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돌아가는데스우...]
[테에? 마마... 정말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있는테찌?]
[그런데수우~ 너도 오늘 열심히 도와서 이렇게 일을 모두 끝낼 수 있었던데스... 수고한데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밥먹는데스.]
[테에에에!! 와타찌 밥먹고싶은테찌! 그리고... 그리고... 동생쨩들에게도 밥 가져다 주고 싶은테찌...]
[데에에...]
[동생쨩도 며칠이나 굶은테찌... 밥을 가져가면 동생쨩들도 반드시 아주아주 기뻐할 것인텟츙★]
[데스우우우.... 너는 착한 언니인데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한쪽 끝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서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아직 태양은 산마루 중턱에 걸려있어 눈부신 황금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두려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던 실장석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지만 곧 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흥! 제때에 끝냈다고? 그럼 어디 검사를 해야겠어....]
남자는 늘어져있는 실장석을 보고 콧방귀를 뀐 다음 농수로의 끝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주의깊게 바닥을 살펴보고, 도랑이 구부러지는 지점에서는 근처의 나뭇가지를 꺾어 바닥을 쿡쿡 찔러보기까지 한다.
끝까지 간 다음에도 다시 돌아오며 꼼꼼히 살펴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어라... 깨끗하잖아... 난감하군... 당연히 실패할줄 알고 먹을 건 아무 것도 안 들고 왔는데에....)
애초에 남자는 실장석들이 이번 일을 성공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백미터가 넘는 농수로. 가을 수확 이후 전혀 관리하지 않아 온갖 쓰레기가 쌓여있고, 봄날이지만 아직 추위가 온전히 가신 것도 아니다.
필시 반의 반도 끝내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아님 얼어죽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실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렇게 다 끝낸 것이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게.
(음.... 어떡한다.... 먹을 걸 가지러 집까지 다시 가기 귀찮은데....)
실장석들이 모여있는 곳과 가까워질수록 남자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한숨을 쉬며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남자.
그리고 주머니의 무언가를 꺼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래...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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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츙♥ 이제 밥을 먹을 수있는테치이~]
자실장 하나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고 빙그르르 돌며 춤을 춘다.
야윌대로 야위어 신고 있던 신발마저 헐렁해진 앙상한 몸매지만, 곧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테에~ 마마아~ 오늘 밥은 무엇인테치? 와타치 밥알갱이를 먹고 싶은테츄!]
다른 자실장은 친실장의 다리를 배고 누운 채로 말한다.
오른손을 심하게 베여 친실장의 두건으로 감싼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퐁퐁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다.
손은 아프지만, 어쨌든 곧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어 기쁜 것이다.
[데에... 밥알갱이가 나오면 꼭 먹여주는데스... 꼭 먹여주는데스우...]
[테쮸! 와타찌는 밥알갱이가 너무 좋아테츄! ...씹으면 말랑말랑하고... 또오... 입에 넣고 오~~래 기다리면 달콤달콤한 맛이나는테쮸!]
[.....오늘 반드시 그렇게 먹을 수 있을 것인데스...]
친실장은 누운 자실장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어이!! 이게 뭐야!!!!]
하지만 그런 행복한 상상은 남자의 고함소리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이봐!! 이게 뭐냐고!! 이러고도 일을 다했다는거냐!!]
실장석들이 모여있는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자는 두손을 허리에 짚고 서있었다.
화가 난듯한 얼굴에 고함소리.
실장석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데, 데, 데, 데, 데에에..... 니, 닌겐사마... 무, 무, 무, 무, 무슨 일이신...데스우...?]
가장 나이가 많은 실장석이 남자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실장석들도 우르르 뛴다.
[이것봐! 여길 보라고!! 이렇게 쓰레기가 있는데 무슨 청소를 했다는 거야!!]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곳의 도랑에는 파란색 담뱃갑이 하나 떨어져있었다.
[데, 데에?! 데에에에?! 이, 이럴 리가 없는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이 구르듯이 도랑으로 뛰어들어가 담뱃갑을 줍는다.
[이, 이, 이, 이럴 리가 없는데스우!! 분명히... 우리들이 몇 번이나 살펴본데스!! 도랑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고... 위에서도 또 살펴본데스... 분명히 다 치운데스!!]
[그럼 뭐냐 그건?! 도랑에 떨어진 걸 네 손으로 방금 주웠잖아?!]
[덱?! 데..... 데.... 데...... 그, 그, 그래도 아닌데스우!! 정말 우리들은 깨끗이 치운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은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하려는듯 모여있는 실장석들을 쳐다본다.
[그런데스! 맞는데스우!! 우리들 정말 열심히.. 꼼꼼히 살펴본데스!! 그렇게 큰 게 있었다면 못봤을리가 없는데스!!]
[마마 말이 맞는테찌! 와타찌도 몇 번이고 찾은 테찌! 도랑 위에서도 보고, 도랑 안에서도 많이 많이 돌아다닌테찌이!!]
[우리들은 조그만 유리조각도, 찢어진 비닐조각도 모두모두 주워낸테치! 그렇게 크고 눈에 띄는 것을 못 찾았을리가 없는테치!]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너나할 것 없이 그럴리 없다고 항변한다.
너무 당황하여 입만 뻐끔뻐끔거리는 녀석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을 빌미로 오늘 일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에 이를 수도 있기에 모두가 하나같이 필사적이다.
[흥! 말은 번지르르하구만!! 어차피 너희들 실장석 따위가 제대로 일을 할 리가 없지. 분명 대충 시간만 떼우고 놀다가 다했다고 우기는거겠지? 일을 제대로 못 끝냈으니 오늘 품삯은 없다!!!]
[[[[[[[[[[데갸아아아아악?!!!]]]]]]]]]]]
남자의 그 말에 실장석들 모두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너무나 놀라 눈이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려 눈물조차 쏟지 못한다.
모두가 할 말을 잊고... 아니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입만 뻐끔거린다.
[데.... 데.... 데개.... 닌겐사마... 아닌데스.. 아닌데스... 우리들... 정말정말 열심히 일한데스... 조금도 쉬지 않았던데스... 목숨을 걸고 모두가 일해서.... 겨우 다 끝낼 수 있었던데스...]
그나마 나이 많은 실장석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남자에게 애원한다.
[여기.. 여기를 보시는데스!! 오늘 우리들이 주운 쓰레기인데스! 이렇게 많이 주운데스... 제발 봐주시는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이 가리키는 곳에는 오늘 실장석들이 주운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가 몇 개나 쌓여있었다.
20리터 용량은 됨직한 봉투마다 음료수캔, 농약병, 쓰다버린 고무호스, 찢겨진 비료포대 등등 온갖 쓰레기가 가득 차있었고, 그 봉투만해도 거의 스무 개가 넘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실장석이 조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이다.
[흥! 믿을 수 없다! 어차피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걸로 대충 채운거겠지!]
근처에는 쓰레기장도, 그리고 쓰레기장에는 변변찮은 쓰레기도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데에.. 아닌데스우... 믿어주시는데스... 믿어주시는데스 닌겐사마... 데에...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나이가 다른 실장석들보다 곱절로 많아 항상 리더 역할을 하던 나이 많은 실장석도 복받치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통곡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 광경을 질렸다는듯이 흘끗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며...
[춥구만... 이럴 때는 한 대...]
남자는 담배를 빼 한개피 입에 물고 불을 당긴다.
연기가 곧 입과 코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그때,
[데에? 어째서 닌겐사마가 쓰레기를 입에 물고 있는데스우?]
유일하게 울고 있지 않던 실장석 하나가 남자를 가리키며 묻는다.
남자는 몰랐지만, 처음 담뱃갑을 제대로 치우지 못했다고 실장석들을 탓할 때부터 주의깊게 남자를 관찰하던 실장석이었다.
나이 많은 실장석이 말한 것처럼 실장석들은 몇 번이나 도랑을 돌아다니며 미처 줍지 못한 쓰레기를 찾고, 그것도 모자라서 도랑 위를 돌아다니면서도 쓰레기가 있는지 없는지 주의깊게 보았다.
그런데 저렇게 큰 물건이 있는지 몰랐다니? 실장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실장석은 다른 동료들이 항의할때도, 사정할때도, 그리고 지금 통곡할때도 주변에 전혀 휩쓸리지 않으며 남자를 관찰했다.
그리고 실장석은 주워낸 담뱃갑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분명히 남자가 '쓰레기'라고 말한 그것을 입에 무는 것까지 보았다.
[뭐, 뭐?]
남자 역시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그 이상한 낌새에 통곡하던 실장석들도 눈물을 거두고 남자를 바라본다.
[데.....스우?]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남자도 눈치챈다.
이럴 때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지금 똥벌레주제에 나를 의심하는거냐아아!!!]
퍼어어억!!!
[데기이이이잇!!!!!]
똑똑한 실장석의 똑똑한 머리통은 남자의 발에 걷어차여 도랑 너머로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주제에 감히 사람을 의심해?! 안되겠구만! 너희들에게 밥은 없다!! 당장 꺼져버려!!]
남자는 씩씩거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른 실장석들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직 푸들거리는 몸통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인지 남자에게 달려가며 눈물로 사정한다.
[데에에에엥!!! 닌겐사마아아아!! 가지 마시는데스!! 가지 마시는데스우우우!!]
[밥을!! 밥을 주시는데스!! 밥을 주시는데스우!! 오늘 우리 모두 일을 마친데스!! 왜 안주시는데스우우우!!]
[제발.. .제발 밥을 주시는데스우우우!! 오늘도 굶으면 죽어버리는데스!! 오로로로로롱!!!]
그러나 실장석들의 느린 걸음으로 뛰다시피 가는 남자를 따라잡을리가 만무하다.
몇걸음 가보지도 못하고 남자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젠 완전히 탈진해버려 눈물만 줄줄 흘린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실장석들에게 남겨진 세마리의 자실장이 머뭇머뭇하며 다가온다.
[테에.... 마.....마....? 밥은.... 어디있는테......치?]
고개를 돌려 자실장을 쳐다보는 친실장의 눈에 태양이 완전히 산 뒤로 저물어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어둠이 깔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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