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처럼 후타바 공원에서 따사롭게 햇살을 맞으며 슬슬 학대용으로 잡아갈 놈들을 찾아볼까, 하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그녀를 발견했다.
"토시코…"
망했다. 저 년 때문에 우리가 재작년 가을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어이!"
내가 그녀를 부르자, 등에는 백팩, 손에는 캐리어까지 든 토시코가 이쪽을 흘낏 바라보니 나를 보곤 웃었다. 반갑다는 듯이 손까지 흔들면서.
"오우! 오래간만이야. 잘 지냈어?"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이렇게나 화사하게 웃어보이면서 친근하게 인사를 하면 결국 사르르 나도 모르게 화가 녹아내린다.
"뭐, 그럭저럭. 그보다 여긴 왠일로 온거야? 너 또…"
그러자 토시코는 묘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안돼?"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안 되긴 뭐가 안 돼" 하면서 까르르 웃으며 수풀이 우거진, 실장석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공원 안쪽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갔다. 하기사 이 공원이 뭐 내 것도 아니고, 학대파들의 것은 더더욱 아니고 내가 그녀를 말릴 방법은 없다.
"귀여운~♪ 실장석아~ 얼른, 얼른 나와봐라~♪"
혼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린갈을 귀에 끼우고 실장석을 불러대는 토시코. 처음에는 인간을 경계해서 그 어떤 실장석도 다가오지 않지만 '머리카락이 긴 닌겐'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하나둘씩 실장석들이 접근했다.
실장석들도 아는 것이다. 보통 학대파 중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녀석들이 우리 남자들을 '마라 닌겐'이라고 부르던가.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우리가 고추를 덜렁덜렁 내놓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마라'가 달려있다는 것은 어떻게 안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무언가의 가능성이 떠올라 소름 끼쳤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기로 하자.
"자, 이거 먹어"
토시코는 등에 맨 백팩에서 실장푸드를 한움큼 꺼내서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머지않아 수십, 수백마리의 실장석들이 실장푸드를 얻어먹고자 정신없이 달려왔다. 등에 맨 백팩에서 실장푸드를 충분히 나누어주고, 슬슬 배가 부른 분충들이 먼저 떠났다. 이후 자들의 음식을 챙겨가고자 뒤늦게 눈치를 보며 다가온 실장석 몇 마리들에게 토시코는 말했다.
"이 언니는 애호파야. 너희들을 도우러 왔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빵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토시코가 애호파라니. 제일 지독한 년인데. 어쨌거나 그녀가 손짓 발짓을 써가며 실장석들에게서 신뢰를 얻어낸 후, 이윽고 한 녀석이 먼저 "따라오는데슷" 하며 그녀를 자신의 실장 하우스로 안내했다.
토시코 역시 나에게 눈짓을 하며 "따라와" 하고, 자신의 학대를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나를 종군시켰다. 제일 보기 싫은데.
"우리 귀염둥이들! 착한 장녀, 씩씩한 차녀, 든든한 삼녀, 귀여운 사녀구나?"
어쩜 저리도 사랑을 듬뿍 담아 말하는지. 토시코는 캐리어에서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조금씩 꺼내, 실장 일가에게 충분히 나누어주었다. 이미 자신에게 실장푸드를 꽤 얻어먹은 친실장 역시도 조금 소화가 되었는지, 콘페이토를 맛보기 시작했다.
"자, 우리 귀요미들. 이 언니가 요만큼 더 두고 갈테니까 얼른얼른 다 먹어. 언니가 내일 또 와서 배터지게 나누어줄께"
골판지 하우스 속의 자실장들은 기뻐 난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어본 것이다. 그것도 마마가 어쩌다 한번씩 가져오는 그 동글동글하고 맛있는 '실장푸드'라는 것을, 배가 이따이할 정도로 엄청나게 먹었다. 콘페이토라는 것의 맛도 보았다. 게다가 그걸 조금 남겨두고 가기까지 했다. 앞으로 매일 공원에 찾아올 것이란다.
친실장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마운데스, 고마운데스, 자들을 배불리 먹여보는 것이 소원이었던데스. 콘페이토는 너무 우마이한데스"
"하하, 이 언니가 내일 또 푸짐하게 나누어줄께. 내일 봐"
그리고 토시코는 옆의 골판지 하우스로 다가가서 콩콩콩 두드렸다. 한참 잠에 취해있던 성체 실장이 눈을 뜨고, "데겍!" 하며서 갑자기 나타난 닌겐의 모습에 그만 빵콘을 했지만, 역시 '머리카락이 긴 닌겐'이라는데에서 한번 안심을 하고, 또 토시코가 친근하게 대하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아 징한 년"
오전 10시 반부터 시작된 실장석 밥주기는 어느새 저녁 9시 40분이 되어 있었다. 나도 그녀도, 점심 저녁을 모두 빵과 우유로 때웠다. 보통 아무리 광기의 학대파, 학살파라고 해도, 그냥 눈에 띄는 놈들을 괴롭히지, 이 기집애처럼 정말로 꼼꼼하게 지도까지 그려가면서 한 가족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공원 안 골판지 하우스마다 다 찾아다니는 애들은 거의 없다.
"아우 피곤해"
토시코는 허리를 쭈욱 펴며 말했다. 오늘 하룻동안 들린 실장 하우스만 총 200채가 넘는다. 여름이라면 거의 400채 이상까지 늘어나지만 아직은 겨울이라 이 정도가 전부다. 토시코는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 같이 다녀주니까 덜 심심하고, 좋더라. 더 재미도 있고"
"에휴, 징한 것"
"하하"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토시코. 데스넷에 가장 정통적이면서도 새로운 학살법을 전수한 젊은 레전드. 이른바 '최후의 만찬'.
그녀는 이처럼 하루종일 꼼꼼하게 공원 안을 돌며 모든 들실장 일가들에게 배가 터지도록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먹인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쭉 매일 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게다가 배가 터지도록 먹이고도 약간의 여분까지 남겨두고 간다.
그리고 철저히 발길을 끊는다.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라도 올 것 같은데 발길을 끊는다. 최소 1년 이상.
한편 실장석들은 그녀를 기다린다. 배가 터지도록, 분대가 늘어나도록 충분히 먹은 만큼, 그 다음 날부터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심하게 고프지만, 먹이를 찾으러 가는 대신 그녀가 오기만을 철저히 믿고 기다린다. 너무나 절실하게 믿는다.
그것은 그 어떤 애호파라고 해도 그저 동정 어린 시선으로 먹던지 말던지 대충 먹이나 뿌리다 가지, 토시코처럼 개체 하나하나에 말도 붙이고 걱정도 해주면서 따뜻한 애정을 쏟으며 웃음과 함께 충분한 양의 먹이를 배터지게 주고 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육실장이 되는 행복 비슷한 그 어떤 것을 느끼게 해준 만큼, 설령 토시코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공원의 실장석들은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려가며 그녀를 기다린다. 게다가 사실 이미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린 이상 공원의 쓰레기 따위는 더이상 먹고 싶지도 않다.
겨우겨우 '약간의 여분'까지 소모하고 3일 4일 동안 계속 토시코를 기다린 실장석들 중 약하고 어린 개체들은 이 시점에서 죽어버리기도 한다. 행복회로를 돌리다 돌리다 결국 '그 머리카락 긴 여자 닌겐에게 무슨 일이 생겨버려서 올 수 없는 것이 분명한 데스'라는 결론에까지 이를 시점이면, 더이상 먹이를 구하러 가기도 힘들 정도로 굶고 지친 상태이다.
그렇게 수백 마리의 실장석들이 굶어죽는다. 비싸진 입맛과 끝없는 기다림 끝에.
간신히 일찍 정신을 차리고 먹이를 찾아나선 개체들이 다소 있다 해도, '배가 터질 정도로 먹어본 콘페이토와 실장푸드'의 맛은 죽는 그 순간까지 떠오른다. 음식물 쓰레기는 아무리 먹는다 해도 그때의 그 맛에 미치지 못한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식사시간이 가장 불행한 시간이 되어버린다. 마마에 대한 실망, 투정을 부리는 자에 대한 실망, 유대 깊은 일가의 사랑도 깨지고야 만다. 곳곳에서 솎아내기가 밤낮없이 이어진다. 솎아내기라는 핑계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동족식도 이루어진다.
어쨌든 대부분의 실장 일가가 처참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한바탕의 대 아사극이 지나고 나면 공원 안의 실장석 개체는 크게 줄어버린다. 회복하려면 거의 1년 가까이 걸리고야 만다.
그녀가 < 학살 게시판 > 에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그 '최후의 만찬'이라는 게시물을 올렸고, 이후 우리는 그녀를 '유다녀'라고 놀리곤 했다.
어쨌거나 높은 학살 효과를 보여주면서도 손에 피 한방울 안 묻고, 애호파로 위장하기도 좋고 '굶어죽기'라는 상당히 강도높은 고통을 스스로 택하게 만드는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데스넷 올해의 학대파 후보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던 그녀다.
"오늘 즐거웠어, 그럼 조만간 또 봐"
토시코는 그렇게 손을 흔들며, 공원 저 편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아마 내년 이맘 때 쯤일 것이다. 안녕, 나의 전 여자친구여.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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