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사진기사 (pp5873(223.39))


나는 실장석의 권리와 고통받는 현실을 개선하기위해 활동하는 실장석보호단체 '전국 테츄웅조합'의 부서 중 들실장들을 위해 활동하는 들실장 보호 부서의 사진작가 태준이다.

오늘도 괜찮은 사진을 찍기 위해 들실장들이 잔뜩 모여있는 후타바공원에 사진기를 들고 찾아갔다.

후타바공원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것은 들실장들의 무리다. 이렇게 많으면 오히려 괜찮은 사진을 찍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장석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공원의 외곽으로 갔다. 그쪽은 사진을 찍기 좋은 환경이다.

[데수웅?]

얼굴에는 운치가 묻어있고 옷은 피투성이에 찢어져 넝마가 되어있다. 이런 모습은 동정심을 얻을 수 없다.

[데스! 데스! 데샤아아아!]

"비켜"

내 앞을 가로막는 들실장을 발로 차서 옆으로 치워버리고 좀더 돌아다니다가 골판지 상자를 발견했다.

[데스! 데스!]

[테츄! 테츄!]

골판지안에 있던 들실장일가는 옷도 깔끔하고 얼굴에 흉도 없다. 이제 애호파들과 일반시민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포즈를 취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골판지 상자를 기울여서 안에 있던 들실장 가족들을 밖으로 꺼내고 박스는 멀리 집어던진다.

[닌겐상! 우리의 집을 왜 부수는ㅇ 데스! 와타시의 자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데스? 그렇다면 사과하는데스!]

나는 자실장 한마리를 손으로 살짝 잡아서 들어올렸다.

[데엑! 삼녀를 놓아주시는데스! 닌겐상! 부탁드리는데스! 죽이지마시는데스!]

[테...테에에엥!! 무서운테츄우! 내려주시는테츄우!]

일을 시작해볼까 우선 가볍게 독라로 만들어버리자

[마마아아아! 머리카락이! 옷이! 독라가 되는건 싫은테츄우우! 멈추는테츄!]

[닌겐상! 뭐하시는데스! 왜 삼녀를 독라로 만드는데스!]

이정도로는 부족하다. 절박함이 없다. 나는 자실장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테츄우우! 아픈테츄! 아픈테츄! 마마! 제발 살려..]

우드득

철퍽!

[삼녀어어어어어!!! 어째서인데스! 어째서인데스! 닌겐상들은 늘 피해다닌데스! 건방지게 콘페이토를 바치라고하지도 않은데스! 탁아도 하지않은데스! 왜 이런 슬픈일을.... 오로롱..오로롱...]

[닌게에엔! 용서하지않는테츄우우!!]

[테에에엥! 삼녀 이모토챠.....]

좋은 표정이다. 우선 한장 찍어두고 남은 자녀들도 죽여버리면 더 좋은 표정이 나올듯하다. 학대파가 하는 짓같지만 나는 다르다. 이건 전부 저 들실장들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다.

[닌겐! 멈추는데스! 장녀는 착한아이인데스!]

콰직!

[장녀어어어!!!]

마지막 남은 아이는 머리를 뽑아버리자

[테에에에! 테챠아아아!]

오도독!

생각보다 상쾌한 소리가 나며 차녀의 얼굴은 몸과 떨어져나가 땅바닥을 굴렀다.

[데샤아아악!! 차녀어어!!]

친실장이 주저앉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의... 자들.... 자들.... 어째서? 닌겐? 어째서.....]

닌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않기위해 자식의 시체를 먹어야해도 운치를 파먹어야해도 탁아는 하지않았다. 학대파를 만날까봐 공원 외진곳에서 살았다. 콘페이토를 뿌리는 애호파도 콘페이토가 아니라 코로리가 아닐까 학대파의 미끼가 아닐까 의심하고 다가가지않았다.

콘페이토를 보고도 이성을 잃지않고 늘 자매들을 생각하던 장녀는 이제 도로의 얼룩이 되었다.

굶주렸으면서도 자신의 푸드를 죽어가던 삼녀에게 주며 간호하고 그 정성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삼녀를 보고 기쁨으로 가득했던 차녀의 얼굴은 이제 공포와 슬픔에 뒤덮인 상태로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마마를 호강시켜주겠다고 매일매일 말한 애교넘치는 삼녀는 그 귀여운 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작은 입에서는 피를 토해내며 그 상태로 아직 살아있었다.

[마. .ㅁ... ㄷ토도마... 가...]

파킨!

임신하고 출산한 다음 분충을 솎아내는걸 몇번이고 반복해서 얻은 훌룡한 3마리의 자들 그 모든 자들을 그동안의 노력을 삶의 목적을 잃은 친실장은 그대로 주저앉아서 검은색 눈물을 흘렸다. 울음소리조차 내지않고 검은색 눈물이 나오는 그 상태로 굳어졌다.

찰칵!

태준은 검은 눈물을 흘리는 친실장과 자들의 시체를 카메라에 담았다.

"흠 제목은 자식잃은 부모의 절규라고 할까? 친실장 너는 기대이상으로 잘해줬어 너의 자들의 희생은 내가 기억할게 그럼 잘있어"

[기대이상? 희생? 기억한다? 그게 무슨 말인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희생당한데스? 기억하는데스? 그런다고 나의 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데스... 이제 더 이상....]

친실장의 몸에서 파킨소리가 들리고서도 친실장의 검은눈물은 멈추지않았다.




[작가님! 이번에도 고생하셨어요. 저번달에 주신 나뭇가지에 매달린 들실장사진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사진이네요. 이건 사장님께서 주시는 보너스에요.]

[감사합니다.]

[저.. 많이 힘드시죠?]

[네? 아.. 네 죽어가는 실장석들의 모습은 보기힘드네요.]

[그래도 작가님이 찍어주시는 사진덕에 들실장의 복지가 굉장히 좋아지고있어요. 늘 응원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태준은 방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힘들지는 않은데..."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남아있었다.









어느 천재 화가 이야기 -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 (Dr.참, Sinner)


중간에 첨부된 사진들은 전부 실제 미술관, 실제 판매중인 작품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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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천재 화가가 있었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의 이름이 철웅이라는 것
외에는 작가의 대해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의 작품과 인기는 날이
지날수록 높아져 어느새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말한다. 현대 미술이라는 것들은 그저 캔버스
에 점 하나, 선하나 찍 긋고는 '여기에 어떤 숨겨진 뜻이 있다,'. '작가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생동감 있는 작품이다.' 라는 평가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높은 가
치를 매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아주 흔하고도 독창성 없는 바로 그 현대 미술
중에 하나였다. 그저 녹색으로 캔버스를 칠한 것. 수십 개의 작품이 전부 그랬다.







하지만 모든 미술품 감정사들은 그의 작품에 최고에 가치를 매기는 것을 주저
하지 않았고, 어떤 일반인도 그의 작품을 폄하하려 들지 않았다.

일본의 유명 미술 평론가 토시야키는 말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기이한 생명력과 생동감, 열망이 느껴지고 그가 작품들에
사용하는 녹색빛은 어떤 배합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세상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날로 높아지는 그의 인기에 더불어, 한 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전을 열게 되었
고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감정사들과 지식인들, 일반인들까지 모두 몰려와서
미술관은 거의 마비가 올 뻔 했지만, 총 7일의 작품전 기간중 앞의 6일은 일반인
들이, 나머지 하루에는 감정사들과 지식인들이 전세를 내고 관람하는 것으로 결
정함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의 전시전은 꽤나 평범했다. 전시장의 가운데에 큰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있
다는 것을 빼고는 각 벽면에 그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전형적인 형태였다.

첫날부터 5일째까지, 일반인들이 관람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관람객들
에게 단 하나의 불만이라 함은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있지만 가동하지 않고 있
다는 점이였다.

"역시 천재다 천재다 해도 자기 작품은 감정사들에게 먼저 보여준다는 건가? 
스크린과 프로젝터는 마지막날 전문가들에게만 보여줄 껀가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새 작품을 보는 걸로 만족하는 수 밖에, 그런데 이번 작
품은 어떤 종이와 색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여.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작품명 183. 이번 전시에 첫 공개된 새 작품을 보며 한 여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183?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리고 여기 와서 스크린 아래를 봐봐."
스크린 아래에는 마치 이것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듯 제목이 써있었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미완성'
스크린 아래의 제목과 작품들, 새 작품의 녹색빛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남자는 
여인에게 말했다.
"난 왠지 알꺼같아. 마지막 날 이 미술관에는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날꺼야."
그렇게 말한 여인과 남자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새 전시일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 세계 각국의 미술품 감정사, 전문가, 지식인들은 모든 작품들의 관
람을 마치고 스크린 앞에 모여서 프로젝터가 켜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철웅 작가님이 그린 작품들의 비밀을 공개한다는 말이 있소, 아는 사람
들은 다 알겠지만 그 소문을 듣고 당신도 온거겠지?"
"후우, 당신도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군. 과연 저 신비한 녹색의 작품들은 도대
체 무슨 붓으로 무슨 종이에 어떻게 그리는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소근소근 떠들던 사람들이 잠잠해지자 스크린 뒷편에서 철웅이 걸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철웅입니다. 오늘 저와 제 작품들을 보러 와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미리 들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 작품들의 비밀을 보여드리려
고 합니다. 스크린에 동영상을 재생할테니 재미있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스크린에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며 관람을 시작했다.
동영상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다.
철웅은 빈 캔버스 앞에서 붓을 이리 쥐고 저리 쥐며 그림을 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여러 붓을 번갈아가며 써보기도 했지만 영 마음에 드는 눈치가 아니였다.
철웅의 옆에는 그가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친실장과 저실장, 구더기가 그를 쳐다
보고 있었다.

"젠장, 이게 아니야. 이런 붓으로는 내가 원하는 질감을 표현할 수가 없어. 이런
그림으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있던 붓을 분질러버리는 철웅
[주인상, 오늘도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 데스?]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던 친실장이 말했다.
"미도리......그래 오늘도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수가 없구나. 어서 좋은 그림을
그려서 부자가 되야 너희들한테 스시도 사주고 스테이크도 사줄텐데 말이야."
[데뎃??스테이크와 스시같은 우마우마 말인데스? 미도리는 괜찮은데스. 그저 주
인상과 같이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좋은 데스으....]
옆에 있던 구더기도 한마디 거든다.
[구더기는 스시 먹고싶은 레후! 스테이크도 좋은 레후! 하지만 그보다 좋은건 바로
프니프니인 레후!! 프니프니를 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레후!]
[데에......와따시의 자 지만 정말 귀여운데스. 주인상, 와따시와 구더기가 주인상을
도와주는 데스!]
"어떻게 말이니 미도리야?'
[주인상이 프니프니를 해주면 되는데스! 구더기의 귀여운 머리와 옷, 꼬리를 보면서
프니프니를 하면 주인상의 기분도 풀릴 것인데스!]
철웅은 대답없이 프니프니를 한다.
[레후~~역시 주인상의 프니프니가 최고인 레후! 마마의 프니프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레후우~~~~ 구더기 좋아서 운치 지리는 레후!]
손에 묻은 운치를 닦기 위해 한손으로 구더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티슈를 뽑던
철웅은 그 순간 돌처럼 굳어버렸다.
습관처럼 붓을 잡는 방법으로 구더기를 잡은 손을 바라보는 철웅.
그리고 미도리를 한번 쳐다보고, 구더기를 한번 쳐다보고, 붓을 쳐다보고, 다시 그것
을 반복하면서 중얼거린다.
"귀여운 머리......귀여운 머리......도와준다고? 머리?붓?프니프니?"
철웅의 눈이 커지며 마치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 바로 그거야! 구더기야 정말 날 도와줄 수 있겠니?"
그를 미친 사람 쳐다보듯 보던 구더기가 대답했다.
[구더기를 어려운거 몰라레후~프니프니~프니프니~]
[마마인 와따시가 대신 대답하는데스. 구더기는 주인상을 위해 뭐든지 어서 하는데스!]
"고맙다 미도리야. 고맙다 구더기야. 정말 고맙다......"

화면이 바뀌며 철웅은 구더기를 들고 책상에 앉는다. 손에 칼을 들고 구더기를 쳐다보
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구더기의 배를 가르고 위석을 꺼내 미리 준비한 컵에 위석을 담
는다. 컵에는 초 재생액이 가득 담겨있다.
[레삐이이이이잇!!!!아픈레후! 아픈레후!]
"미안하다 구더기야 조금만 참아주렴"
초 재생액 덕분인지 구더기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철웅은 손을 멈추지 않는다.
구더기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서 앞으로 모으고 레진 코팅재를 머리카락과 입을
제외한 구더기의 몸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이제 니가 나의 붓이 되어주는거야 구더기야"
아픔이 사라지자 구더기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레후? 붓씨가 되는 레후? 그런거 모르는 레후! 프니프니를 해주는 레후!}
"걱정마렴. 프니프니......영원히 프니프니를 해줄께."
[프니프니를 영원히 해주는레후?? 구더기 너무 쪼은레후!신나는레후! 근데 몸씨가 이상한
레후. 몸씨가 움직이지 않는레후. 딱딱한 레후! 움직일수가 없는 레후!! 레훼엥........]
딱딱하게 굳어진 구더기를 이리 저리 잡아보더니 마음에 드는지 싱긋 웃음을 지은 철웅은
구더기의 머리카락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더기(붓)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구더기의 배 부분을 누르게 되어 구더기는 기분좋은
표정을 한다.
[프니프니후! 너무 쪼은 레후! 좋아서 운치가......운치가? 운치가 안나오는 레후! 그래도 좋은
레후~~!]
초 재생액에 위석을 담구고, 레진으로 딱딱하게 굳은 구더기는 먹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영
원한 프니프니를 받을 수 있어 파킨!하지도 않는 정말 붓이 되어버렸다. 다만 일반적인 붓과
다른 부분은 그림을 그릴 때 계속 소리를 낸다는 점 정도일까.
[와따시의 자가......와따시의 세레브한 구더기짱이 붓이 되버린데스......오로롱~오로롱~]
"미도리야, 너와 구더기가 말했잖니. 나를 도와준다고. 구더기는 행복하니까 걱정하지 마렴,"

화면이 바뀌며 사진들이 지나간다. 새 붓(구더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꽤나 잘 팔리게 된 철웅
의 작품들이 팔리는 모습들. 그로 인해 어느정도 살림살이가 나아진 철웅의 집. 그리고 스시
와 스테이크는 아니여도 고급 실장푸드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미도리, 영원한 행복을 느끼게
된 붓, 아니 구더기짱의 사진이 지나가고, 처음과 같은 구도에서 다시 영상이 이어진다.

"젠장, 이게 아니야! 이런 물감으로는 내가 원하는 색을 표현 할 수가 없어. 이 정도의 깊이감
으로는 내가 원하는 생동감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있던 붓(구더기)를 분지를 뻔 한 철웅. 다행히 구더기의 [레뺘아아아아앗!]
하는 소리를 듣고 손에 힘을 푼다.
"후우, 구더기를 부러뜨릴 뻔 했군."
그를 쳐다보고 있던 미도리가 입을 연다.
[주인상, 다시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데스? 구더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데스. 주인상은 약속
을 지키는데스. 스시와 스테이크는 어디 간 데스? 산책은 언제 가는데스?]
"미도리야 예전에는 괜찮다고 했잖니. 그리고 고생은 구더기가 하고 있단다. 산책은 어제도 나
갔다 왔는데 조금만 참아주려무나."

살림살이가 나아진 철웅이 너무 잘 대해줘서일까? 고급 실장푸드를 먹으면서 땡깡을 부리던
미도리는 어느새 분충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듯 했다.
[데샤아아아아아앗!!!! 주인상은 약속도 안 지키는데스. 예의상 거절한 건데 그것도 모르는데스?
바보인 데스? 어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주는데스! 안그러면 주인상은 운치나 맞는데스!!]
투분을 하기 시작한 미도리. 미도리의 녹색빛 운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지만 모자란 힘
탓에 철웅이 아닌 철웅이 그리던 캔버스에 착지하고 말았다.

"미도리야! 오냐오냐했더니 니가 점점 기어오르는구나. 이 캔버스에 운치 묻은거좀 봐 어떻게 
할꺼야? 마음에는 안들어도 그리던 그림인데, 이 운치 묻은 것좀보렴. 색이......색이?색이......내가
원하던. 아름다운.......녹색빛이구나......"
캔버스에 묻은 운치는 철웅이 그리던 녹색빛의 물감과 섞여 정말 아름다운 녹색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구더기를 붓으로 만들때와 같은 표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철웅의 눈에는 어느새 광기마
저 감돌고 있었지만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젓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미도리에게 말했다.

"고맙다 미도리야. 이번에도 니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 색이라면 내가 원하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거야."
[고마운데스? 고마우면 스시랑 스테이크를 얼른 대령하는데스! 주인상은 역시 와따시가 아니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데스~ 구더기에 이어서 세레브한 와따시가 주인상을 구원한데스~~]

철웅은 대답도 없이 달려나가 유리로 된 수조를 주문했다. 주문한 수조의 바닥에는 원형으로 구멍
을 뚫고 그 아래에 물감을 풀어놓은 양동이를 놓았다. 고급 실장푸드도 평소와는 달리 20kg이나
주문하고 미도리를 데려와 수조에 넣었다.
"미도리야 이제부터는 많이 먹고! 많이 싸려무나. 여지껏 풀어놓고 길렀다가 수조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도 이제 너의 운치를 한곳에 모아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단다. 대신 니가 좋아하는
고급 실장푸드를 원하는 만큼 잔뜩 줄께."
[잔뜩?잔뜩인데스?스시와 스테이크는 아니더라도 아마아마를 잔뜩 준다하면 특별히 미도리가 용
서 해주는데스. 데프픗. 그런데 산책은 언제 가는데스? 그리고 이 좁은 곳에 세레브한 와따시는 살
수가 없는뎃]
"아니야 미도리야. 살 수 있어. 많이 먹고 많이 싸자."
이 남자의 눈에 깃든 그림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것에 압도된 미도리는 하려던 말이 끊겼지만 더
이상 잔말하지 않고 실장푸드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다.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작품들이 하등생물인 실장석의 똥.......운치를 섞은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였다는 사실은 그
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개진 한 평론가가 철웅에게 외쳤다.

"철웅 선생. 이게 진짜인가? 당신 작품들의 그 신비한 녹색빛이 고작 실장석의 똥이였다고? 지금
우리들을 놀리는 건가? 아니 놀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우선 끝까지 영상을 보시지요. 질문은 그 뒤에 받겠습니다."

울그락붉그락해진 표정의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농락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우선 참고 끝까지 영상을 관람하였다.

화면에는 이전보다 더 성공한, 지금의 철웅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는 사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작품들에 매겨지는 가격들, 그의 작품과 신비한 녹색빛(운치)에 대한 칼럼과 감상들이 적힌
잡지와 신문들. 일약 슈퍼스타가된 철웅과 철웅의 거대한 저택. 그와 함께 그토록 원하던 스시와
스테이크를 양 손에 들고 와구와구 먹는 미도리의 사진도 함께였다.

철웅의 새 대저택에서 영상이 이어진다. 구도만큼은 처음과 같다. 철웅, 그리고 반쯤 그리다 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  붓(구더기)와 물감(운치). 달라진것은 세레브한 실장복을 입고 유리
수조에서 운치를 누고 있는 미도리였다.

"젠자아아아앙!!!!!!! 이게 아니야!!!!좀 더, 좀 더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불어 넣은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여느 때와 같이 광인처럼 소리소리를 지르며 등장하는 철웅.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미도리는 반응도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영감 불어넣고 방법을 찾아주던 
미도리를 쳐다보며 철웅은 말했다.
"미도리야, 이번에도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하지만 이미 미도리는 구제할 도리가 없는 분충이 된지 오래였다.
[데프픗. 닝겐상은 또 세레브한 와따시가 필요한데스? 와따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스?
와따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똥노예인데스~ 와따시의 세레브한 운치나 가져가는데스!]
이제 주인상도 아닌 닝겐상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말을 들은 철웅의 이성의 실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껴지는 무력감에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철웅의 눈에, 분충이 되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정이 들었던 미도리는 더 이상 가족
이 아니였다.

수조에서 미도리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고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셀 수도 없을
만큼 주먹으로 내려쳐진 미도리는 이미 원래의 형태는 온데간데 없어진 녹색의 떡이 되어버리고 말
았다.
[데........샤....ㅅ..............데.....갸....ㄱ.........}
녹색의 떡, 녹색의 거대한, 미도리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유일한 흔적인 그 것을 철웅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미도리의 피, 미도리의 살, 미도리의 모든 것들이 섞인 그것. 녹색에 아주 희미한 살색, 조금의
붉은빛이 도는 그것을. 철웅은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5분째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영상을 시청하던 사람들에게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적막에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상황이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철웅은 소리질렀다. 
앞서 영상에서 들렸던 그의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였다.

"이거야!!!!!!!!!!!!!!!!!!!!!!!!!!!!!!!!! 이거라고,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색이야. 이거면
생동감 넘치는, 아니 아예 살아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이게 정답이였어!
고맙다! 고맙다 미도리야!!! 정말 고맙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너는 내게 영감만을 주는구나. 
영감을 주고 떠나는구나......"

철웅은 곧바로 실장샵과 구제업체에 전화를 한다. 어느 정도의 실장석이 필요할 지 몰라 여유있게
200마리의 실장석을 주문한다. 주문한 실장들이 도착하자 망치를 들고 실장석들을 으깨서 한곳에
모은다. 캔버스만한 크기가 될 정도로 모이자 레진 코팅제를 정성스럽게 발라서 굳힌고 겉면은 코팅
한다. 네모 모양으로 코팅된 실장석들의 시체는 마치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처럼 보였다. 철웅은
망치로 으깨고 남은 실장석들의 수를 세어본다. 1, 2, 3......17마리. 총 183마리의 실장석으로 만들어진
그 작품 밑에 조심스럽게 글씨를 쓴다. '183'

영상이 멈추는 순간 철웅의 작품들에 있던 유리막들이 열리고, 환기장치와 에어컨들이 전부 꺼졌다.
사람들은 그림들의 상태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유리막으로 작품들을 막아 놓았다고 생각했지
만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 철웅이 준비한 안배였다. 

순식간에 전시장 안은 실장취와 운치냄새로 가득찼고 에어컨마저 꺼져 그 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토악질을 하는 사람, 심지어는 머리에 손을 올리면서 졸도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철웅!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화가가 아니야 그저 학대파이자 정신나간 인간이였군. 이건 그림이 아
니야. 당신의 광기일 뿐이지. 더 이상 이 미친곳에서 당신의 미친 짓에 맞장구 쳐줄 생각은 없네."

외마디를 남기고 속칭 '전문가', '감정사'들은 전부 전시관에서 빠져나갔다.

듣는 이 없이 철웅이 홀로 말했다.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 나의 작품들의 정체를 알고나니 다르게 느껴지는가? 작품은 달라진 것이
없거늘 달라진 건 오직 당신들의 평가와 시선뿐이지."

그러나 영상은 멈추지 않았다. 철웅은 이 현장을 처음부터 녹화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그의 인생 
최고의 작품 상영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전부 전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스크린에 이어서 상영
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프로젝터가 멈추자 홀로 남은 철웅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미완성'
미완성이라는 부분은 스티커였고, 철웅이 그 부분을 때어내자 비로소 작품은 완성되었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

"나의 예술은 이로써 완성된다, 아니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게 조금 섭섭하군.
이것이야말로 예술, 살아있는 작품그 자체이거늘, 안그러니 미도리?"
[데........샤....ㅅ........]
작품명 '183'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든 아주 조그마한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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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철웅의 방식은 후세에 낭만파, 인상파를 뛰어넘는
'실장파' 또는 '학대파' 화가로 불리우는 하나의 장르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여인과 함께 미술관에 와서 철웅의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눈치챈
그 청년은 철웅의 뒤를 이어 '실장파' 화가가 되어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그것은 또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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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구하기


1

''어디보자. 여기가 거긴가?''

한 남자가 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의 이름은 구시야키.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는 마침내 구석에 있는 커다란 상자를 발견한다.

구시야키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접근해 노크를 한다.

''뭐인 데... 닝겐상? 닝겐상이 여기는 무슨 용건인 데스?''

상자 안에서 나온 실장석은 이 공원의 보스. 녀석은 적당히 힘도 쌔고 머리도 좋아 먼저 인간에게 다가가지 않는 분충도 양충도 아닌 녀석이었다.

''안녕. 실장석아. 너한테 좋은 제안이 있어서 왔단다.''

''데에...''

보스는 두려움에 구시야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구시야키는 그걸 보고 웃으며 준비한 '그걸' 꺼낸다.

''특제 과일향 콘테이토란다.''

''뎃?''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가득한 콘테이토가 봉지 안에 가득이다. 제아무리 공원의 보스라도 이렇게 많은 콘테이토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턱이 빠진 것처럼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 녀석. 처음에 보였던 경계심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콘테이토 한 봉지를 자판기 한마리랑 바꿔줄게. 여러마리를 넘겨주면 여러 봉지를 주도록 하지.''

구시야키의 제안을 들은 보스는 냉정하게 판단한다.

'공원에서 콘테이토 하나는 우지챠 열마리 만큼의 가치가 있는 데스. 자판기 한마리로 뽑을 수 있는 우지챠는 대략 20~30마리 정도인 데스. 저 콘테이토는 와타시 일가가 겨울 동안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데스. 이건 바꾸는 게 이득인 데스.'

한참을 생각하던 보스는 구시야키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비닐로 덮어둔 운치굴을 열어재낀다.

''와타시가 가진 자판기 세마리를 바치는 데스. 그러니 콘테이토 세봉지를 주시는 데스.''

''자, 여기 콘테이토 세봉지.''

구시야키는 상자 앞에 콘테이토 봉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빈 봉투에 반 시체 상태인 자판기 세마리를 넣는다.

''좋은 거래였어.''

''데프픗. 나중에 또 오시는 데스.''


2

집에 도착한 구시야키는 봉지에서 자판기를 꺼내 수조 안에 넣어둔다.

''심각한 상처로군.''

두개골이 함몰되어 뇌를 관통한 상처를 세마리 모두 가지고 있다. 아마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실장석은 뇌도 재생하지. 그걸 막기 위해 두개골의 파편이 뇌를 파고들게 만든 거야. 정말이지 잔혹한 습성이라니까.''

구시야키는 한마리 씩 수조에서 꺼내 실장석용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메스와 주사기, 집게를 꺼내든다.

''먼저 위석을 꺼내 영양액에 담군다. 재생이 느린 특수영양액이다. 너무 빨리 재생하면 수술이 힘들어져.''

남자는 가볍게 위석을 꺼내 영양액이 담긴 접시 위에 올려둔다.

''다소 거친 치료가 되겠지만 불만은 없겠지. 마취도 필요 없을 테고.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는 없을 테니까.''

메스로 머리뚜껑을 열고 그 속에 박혀있는 두개골의 파편을 꺼낸다. 그리고 손상되어 열화된 조직도 제거한다.

''다음은 팔다리. 상처에 운치와 모래를 문질러서 재생을 막아두었군. 여긴 간단하지. 해당 부위를 제거하기만 하면 되니까.''

구시야키는 과감하게 상처 부위를 도려낸다. 그걸로 치료는 종료다.

''남은 건 스스로 재생하는 것 뿐이다.''


3

자판기 세마리는 모두 온전한 독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극심한 고통 속에서 계속 살아왔을 테니까. 눈앞에서 자를 빼앗겨 먹히고 재생할 때마다 깍여나가고... 인간이라도 그런 고통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구시야키는 독라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구석에 숨어 들어간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잘못한 데스.''

''주인사마. 다시는 자를 낳지 않는 데스. 운치를 던지지 않는 데스. 그러니 용서해 주시는 데스.''

''무서운 데스. 이제 더 이상은 싫은 데스.''

PTSD.

''녀석들은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정신적 고통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식사도 조금씩은 하고 있지만 대부분 토해내거나 억지로 삼키고 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세심한 멘탈케어가 필요할 것 같다.''

구시야키는 잠시 밖으로 나간다.


4

''레후? 독라 오바상들이 가득인 레후?''

''독라 오바상 투성이인 레후~''

''프니프니후~''

구시야키는 우지챠 여러마리를 준비했다.

그동안 자를 빼앗기면서 살아왔을 녀석들. 정신이 피폐해진 녀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줄 방법은 이것 뿐이다.

우지챠들이 꿈틀거리며 쓰러져있는 독라들에게 다가간다.

''오바상들이 우지챠의 새로운 마마인 레후?''

우지챠의 목소리에 독라들이 반응한다.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고 점점 활기가 살아난다.

''우지챠?''

''프니프니후?''

독라가 우지챠를 향해 손을 내민다. 녀석은 우지챠를 번쩍 안아든다. 그리고,

오도독

''레뺫! 우지챠는 먹는 게  아닌 레후!''

''이런 프니프니는 싫은 레삐야아앗!''

우지챠를 잡아먹기 시작하는 녀석들. 전부 한마리씩 입에 넣고 맛나게 뜯어먹고 있다.

''그래! 이거야! 자신의 자를 다른 녀석에게 빼앗겨 먹히던 녀석들이 이제 다른 녀석들의 자를 잡아 먹는다! 이것 만큼 휼룡한 정신적 힐링은 없지!''

우지챠를 잡아먹은 녀석들은 기운을 되찾은 듯 하다. 구시야키의 멘탈 치료가 성공한 것이다.

''이런 맛이었던 데스까. 우지챠의 맛은,''


5

독라들은 다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듯 하다. 구시야키의 손길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행동도 다채로워졌다. 우지챠를 잡아먹는 걸로 식욕도 돌아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제 자존감을 되찾아 줘볼까?''

실장석의 자존감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것'이다.

''우선 마취.''

구시야키는 수조에 네무리를 뿌린다. 안좋은 기억이 있는지 놀라서 탈분하지만 곧바로 잠들어 얌전해진다.

''주변 공원의 들실장으로부터 구한 머리카락(피부까지 전부 뜯어내 가져왔다)과 실장복. 우선 독라들의 피부를 약간 제거하고 그 위에 들실장의 머리 붙은 피부를 이식한다. 그리고 거기에 영양액을 바르면 완성. 이전 수술에 비해 간단하다.''

잠에서 깨어난 독라, 아니 이제는 독라가 아니다.

''뎃? 뒷통수가 갑자기 무거워진 데스?''

''머리가 생긴 데스! 찰랑찰랑해진 데스!''

''닝겐상이 주신 머리 데스? 감사한 데스! 정말 감사한 데스!''

한때 자판기였던 녀석들이 나에게 도게자를 해대며 감사를 표한다. 감사해하는 녀석들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 구시야키.


''옷도 준비해두었으니 입으라고.''


6

마지막 과정이다.

''모두 수레에 올라타렴.''

케이지 달린 이 수레는 실장석들이 내부에 타서 밖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 수레를 준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외출이다.''

''데뎃?''

''데에... 밖은 무서운 데스. 수조 안에 있고 싶은 데스.''

밖이 두려운 녀석들. 그런 경험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계속 회피하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당당히 직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 갈 곳은 녀석들이 자판기로 살던 그 공원이다.

''뎃! 이곳은!''

''무서운 데스! 여긴 싫은 데스!''

치과에 온 어린아이처럼 난동을 부리는 녀석들. 하지만 구시야키는 계속 수레를 민다.

''저길 보렴.''

구시야키가 도착한 곳. 그곳은 이 공원의 보스실장. 자판기들을 착취하던 그 녀석이 있는 곳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 데스?''

''보스일가가 실각한 데스?''

보스실장이 있던 곳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름 깔끔한 편이던 상자는 완전히 무너져있으며 여기저기 운치가 묻어있다.

''내가 나눠준 콘테이토. 그건 사실 실장석의 근육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는 성분으로 되어있다. 그 약을 겨울 내내 먹었으니 녀석들의 일가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겠지. 그런 상태에서 다른 들실장의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보스실장은 머리카락이 뜯겨나가고, 팔다리가 잘린 채 운치굴에 던져져 있다. 집은 다른 들실장에게 빼앗겼으며 녀석의 자들은 전부 뼈만 남았다.

''자, 어떻게 생각하니?''

구시야키는 한때 자판기였던 녀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판기들은 잠시 망설인다.

''데....꼴 좋은 데스! 그렇게 와타시타치를 부려먹더니 이제 똑같은 꼴이 된 데스!''

''사필귀정인 데스!''

자존감 회복의 최종단계.

한때 자기들을 괴롭히던 녀석이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판기들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다.

다른 녀석들이 난리를 피우는 와중에 한 녀석이 구시야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건 닝겐사마가 한 일인 데스?''

''맞아.''

그 녀석은 구시야키가 내심 기대하던 질문을 던졌다. 나름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되는 녀석이다. 왜 굳이 구시야키가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닝겐상이 보호해주면 와타시타치도 안전한 데스.''

자신들을 괴롭히던 보스일가를 손 하나 안대고 실각시켰다. 인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인간의 보호 아래 있으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런 생각을 녀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 외출의 진짜 목적이다.

''맞는 데스! 닝겐상만 믿고 의지하는 데스!''

''닝겐상 만세인 데스!''

신나서 춤을 춰대는 녀석들. 구시야키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7

그 후로 약간의 훈육과 예의범절 교육이 있었다. 녀석들은 구시야키의 말에 철저히 복종했다.

''두번 다시 자판기는 되고 싶지 않은 데스!''

보통의 사육실장과 다르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녀석들이다. 게다가 자판기로 고통받던 기억이 있어 자를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닝겐상 말만 잘 들으면 편한 실생을 살 수 있는 데스!''

무엇보다 인간에게 의지하며 무조건적으로 복종한다. 사육실장으로써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좋은 소식이다. 너희들을 입양하겠다는 주인님들이 나타났다. 이제 사육실장으로써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구시야키는 비싼 값을 받고 녀석들을 팔았다. 수술비용이나 기타 지출을 제외해도 상당한 흑자이다.

한때 자판기였다는 사실이 애호파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게다가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예의바른 양충. 비싼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구시야키는 그 점을 노린 자판기 전문 브리더이다. 최근 훈육이 제대로 된 성체실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그의 사업에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오로롱. 그곳에서도 닝겐상의 은혜는 잊지 않는 데스.''

''절대 주인사마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스!''

''아리가또데스웅~''

구시야키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도할게.''


8

구시야키는 또다시 공원을 방문했다.

''이 콘테이토 한 봉지랑 그 자판기랑 바꾸지 않을래?''

''가져가는 데스. 어차피 괴롭힐 생각으로 자판기로 만든 녀석인 데스.''

구시야키는 미소를 지으며 운치굴의 자판기를 꺼낸다. 그 자판기는 처음에 그와 거래를 했던 그 보스실장이다.

녀석은 팔다리가 잘렸지만 뇌만은 멀쩡한 상태이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괴롭히기 위해 자판기로 만든 것이다.

''역시 끔찍하군. 자판기란 습성은 말이야.''

''그때... 그 닝겐상인 데스?''

보스실장이 정신을 차린다.

''그래. 오랜만이네?''

''왜 그런 일을 하신 데스? 왜 굳이 와타시에게 그런 약을 먹여서 괴롭힌 데스?''

구시야키는 웃으며 설명해준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목적까지 전부 다.

''이해...한 데스.''

''그래. 똑똑하구나.''

''하지만 그냥 자실장 한마리 키우는 게 더 이득 아닌 데스? 닝겐상의 힘이라면 충분히 양충 사육실장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닌 데스?''

역시 이 보스실장은 똑똑한 녀석이다.

녀석이 말한대로 어린 자실장을 키우는 게 더 이득이다. 굳이 수술을 할 필요도 없고, 번거로운 멘탈치료도 필요없으며, 구시야키의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양충으로 훈육할 수도 있다.

자판기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 일은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작업을 늘리는 귀찮은 일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 데스?''

보스의 질문에 구시야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왜냐니 그야... 재미있으니까.''









다수결 (어랫,오랭이,dd(49.163))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작은 지하실.
조그마한 형광등이 유일한 광원인 방 안에, 더 자그마한 수조가 9개, 실장석도 9마리가 들어있었다.
모두 공원에서 살다가 인간에게 잡혀온 놈들이다.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둥글게 배치된 수조 속에서, 한마리씩 네무리에서 깨어났다.

"뎃..? 여긴 어디인데스?"
"닌겐, 닌겐은 어디로 간데스!
차녀를 왜 죽인데스!
장녀는 어떻게 한데샤!"
"테에..마마의 목소리가 들리는테치..."

각자 소란스러운 와중에,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자들은 서로를 비웃고, 이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각자 옷을 잃었거나, 머리를 잃어버렸거나, 귀 한쪽이 뜯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와타시의 소중한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데스...오로롱!"

[모두 들어라.]
소란스러운 방의 어딘가에서, 갑자기 스피커를 통해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직은 들을 생각이 없겠지만.]
""뎃뎃텟뎃!@%^""
인간의 목소리에 소동이 더욱 커져버리는 것을 예상한 것처럼, 이어서 기계음이 들려오고서는 소리는 끊어졌다.

그날 밤.
실장석들이 갇힌 수조 내부는 의외로 쾌적한 곳이었다.
물은 자동공급되고, 바닥은 촘촘한 망으로 만들어져 운치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가 지자 수조 뚜껑에서 비눗물과 보통 물이 차례로 뿜어져나와 바닥과 벽, 실장석을 씻어냈다.
이어서 젖은 수조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금세 말려주니 추위에 떨 일도 없었다.
수조 구석에 놓인 스폰지 두 장을 침대이자 이불로 쓸 수 있어 잠자리에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실장석들은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밥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 굶주린 실장석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런 와중에, 다시
[모두 들어라.]
라고 인간의 말이 들려오면, 모두 흥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푸드와 콘페이토를 내놓는데샤아아앗!!"
같은 소리로 지하실이 가득 차버렸다.

그리고,
[밥 이야기는 내일 조용히 있을 때 다시 해보자.]
그걸 끝으로 다시 인간의 말은 끝났다.
실장석들은 비명과 애원으로 인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길 요구했지만,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삼일 째 아침,
[모두 들어라.]
라는 말이 다시 흘러나왔을 때, 실장석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장족의 발전이자 굶주림에 대한 굴복일 것이다.

[밥을 주는 방식을 설명한다.
공정한 다수결로 밥을 어떻게 줄지 정할 것이다.
수조 벽을 보면 빨간색과 녹색의 버튼이 있다.
내가 각 버튼에 대한 조건을 설명하면, 너희 9마리가 둘 중 마음에 드는 조건의 버튼을 눌러라.
더 많이 누른 쪽의 조건에 따라, 밥을 줄 것이다.]
"데, 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스!"

[일단 며칠 해보면, 알게 될 거다.
오늘의 안건은, 전원 푸드를 3알 먹고 싶다면 빨간 버튼, 먹고싶지 않다면 녹색 버튼이다.]

3마리의 실장석들이 룰을 이해하지 못하고 녹색 버튼을 고르기는 했지만, 나머지의 선방으로 다행히도 푸드는 먹을 수 있었다.

그 뒤, 매일 조금씩 다른 조건으로 그들의 다수결은 계속되었다.
시간 제한 1시간, 불참자에겐 푸드도 미지급된다는 것, 어떤 조건이 유리한지 비교하는 방법 등을 배우며, 제법 이 감금상태에도 익숙해졌다.

이름 또한 받았다.
외관을 기준으로 정해진 이름이지만, 실장석들은 그 이름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사육실장의 상징인 이름을 받고 싫어할 들실장은 없었다.

대머리, 한쪽 귀가 잘린 성체는 독이성.
대머리, 성체는 독성.
대머리, 팬티가 없는 성체는 독팬성.
대머리, 한쪽 귀가 잘린 자실장은 독이자.
알몸, 한쪽 귀가 잘린 성체는 라이성.
알몸, 성체는 라성.
알몸, 앞머리가 없는 성체는 라변성.
알몸, 한쪽 귀가 잘린 자실장은 라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멀쩡한 성체는 무결.

2주일이 흘렀다.
실장석들도 이제는 느긋하게 아침의 다수결을 기다릴 정도로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장 불만이 많은 독이성이 투덜거렸다.
"이제는 지겨운데스.
시간을 보낼 거리가 필요한데스우~.
다수결을 해봐야 5분이면 다 끝나는데스.
푸드 3알씩 받고 끝나는 거 다 아는데스!
언제까지 여기에 가둬둘 작정인데스?"

하지만, 오늘은 다수결의 내용이 좀 달랐다.
[오늘의 다수결을 시작하자.
조건이 달라졌으니 잘 들어라.
머리가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빨간 버튼을,
옷이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녹색 버튼을 눌러라.]

"데엣..? 이건 무슨 말인데스? 와타시는 지금 머리가 있고, 데에..옷은 없는데스.
그럼...푸드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데스우?!"
라성은 혼란에 빠졌다.

성체들도 갑작스러운 조건의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으니, 자실장들은 상태가 더 심했다.
"테? 이해가 안되는테치! 왜 둘 다 푸드를 주는테치?
아무거나 누르면 되는테치??"
라성의 장녀인 라이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조건을 기억하지 못한 실장석들의 애원 소리에 반응한 듯, 조건을 두 번 더 다시 설명하고, 대략 40분 정도가 지나서야 실장석들은 오늘의 다수결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고른 뒤...
[5 : 4로 빨간 불이 많으니 머리가 있는 실장석에게 푸드를 6알 지급한다.]
달그락달그락, 5마리의 수조에 공급기를 통해 푸드가 떨어졌다.

"푸드가 6알이라니 오늘은 횡재한데스~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스~."
"데샤아악!! 어떤 운치나 퍼먹을 놈이 빨간 버튼을 누른데스!!
이건 사기데스!"

그 후로도 며칠동안 동일한 조건으로 다수결이 진행되었다.
머리가 있는 쪽과 옷이 있는 쪽 사이에서 환호와 비명이 오가는 와중, 라변성이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소리를 질렀다.

"알아낸데스!
오마에, 무결상! 오마에는 어떤 선택을 해도 푸드를 받을 수 있었던데스.
그래서 결과가 왔다갔다했던데스.
대답하는데스!"

"뎃..? 데퍄퍄퍄! 그랬던데스.
바로 그거였던데스!
와타시가 고르는 쪽이 항상 푸드를 받았던데스!"
무결은 라변성의 말에 상황을 깨닫고, 크게 웃었다.

"오마에타치가 아무리 자기 쪽 버튼을 눌러봐야, 와타시가 골라주지 않으면 푸드는 못받는데스!
와타시가 바로 킹-메이커!
이 다수결의 여왕인뎃샤!
데퍄퍄퍄!"

그 뒤, 지하실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푸드를 못받는 쪽이 받는 쪽을 욕하고 받는 쪽은 비웃음으로 돌려주는 상황에서, 모두가 무결에게 자신 쪽을 골라달라고 아부를 하게 되었다.

"무결사마! 제발 옷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무결사마라면 와타시의 진심을 알아주실 것인데수!"
"닥치는테챠! 무결사마는 머리가 가장 아름다운 와타치 쪽을 골라주실 것인테치!
이 머릿결을 보는테치.
아름답지 않은테치?"
"..."

[5:4로 녹색 불이 많으니 옷이 있는 실장석에게 푸드를 6알 지급한다.]
"테챠아아아!
안되는테챠앗!"
"데샤앗쓰!!
라성 상은 저 망할 분충 입 좀 다물게 하는데샤!!"

일주일 뒤, 다수결에 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오늘부터는, 이웃에게 선물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받을 푸드 중에서 수량을 정해 이웃에게 선물한다고 정하면, 이웃은 푸드를 받을 때 그 수만큼 각설탕을 더 받을 수 있다.
다수결을 진행하는 1시간 동안 선물이 가능하다.]

"....와타시의 푸드를 왜 남에게 바치는데스?
코로리라도 먹은 거 아닌데스?"
독이성은 코웃음쳤지만, 그 웃음은 20분 뒤 사라졌다.

"...와타시가 선물을 하는데스.
6알 중에 1알을 무결 상에게 주는데스.
그러니 무결상은 머리가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
평소에는 조용하던 라변성의 폭탄선언이었다.

당연히 무결은 머리가 있는 쪽을 골랐고, 다수결 후 옷이 있는 쪽은 비명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며칠 뒤,
"와타시는 무결상에게 3알을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도데스!!
차녀! 아니 독이자! 오마에는 어서 네 알을 선물하는데스!!"
"텟, 테엣?!
마마! 그건 너무한 거 아닌테치?
와타치가 먹을 양이 부족한테치!"
"입다물고 시킨대로 하는데스!
말 안들으면 나갔을 때 노예닌겐의 운치굴에 처박아버리는데샤!!"
"테챠아! 안테치! 말 듣는테치!
와타치는 무결사마에게 네 알을 선물하는테치!"

"데퍄퍄퍄!
좋은데스. 오늘도 이 무결사마께서 옷이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요~"

무결은 이제 지하실의 명실상부한 여왕, 지배자였다.
다른 실장석들은 자기 배를 채울 3알의 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에게 바치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한동안 저항하던 독이성조차 3일 동안 푸드 대신 다른 옷 있는 실장석의 욕을 먹은 뒤에는 자신의 개가 되었다.
오늘부터는 옷 있는 쪽의 자실장이 푸드 4알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다수결 종료 후 떨어지는 각설탕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무결은 중얼거렸다.

"각설탕만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이제 푸드는 지겨운데스.
먹을 생각이 안드는데스...
뎃, 푸드를 봤더니 기분이 우울해진데스.
와타시를 즐겁게 해줄 노예는 없는데수?
..거기! 라이자 오마에! 감히 여왕께서 말씀하시는데 불경하게도 누워있는데스?"
"텟...죄송한테치.
일어나는테치...
테흐읍....테휴, 테휴."
이틀 동안 푸드를 먹지 못하고, 오늘도 굶어야하는 라이자는 한계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낮 동안은 마음편히 누워있다간 무결의 분노를 사 다음날도 선택받지 못하기에, 말라버린 몸을 억지로 세워야만 했다.

다음날.
"와타치는...무결사마에게 푸드 3알을 선물하는...테치..."
털썩!
라이자는 선물 선언 직후 쓰러져 버렸다.

"장녀! 안되는데스. 일어나는데스!
무결사마, 제발, 제발 오늘은 머리 있는 쪽을 골라주시는데스!"
"시끄러운데스.
오늘도 옷 있는 쪽이 머리 있는 쪽보다 1알 더 바치기로 한데스.
와타시가 왜 너희를 골라주는데스?"
"뎃..데샤앗!
안데스. 와타시가 더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는 무결사마에게 다섯 알을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를 골라주는데샤!!
라이자를 골라주는데샤아앗!!
오로롱!"
라성은 색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데프픗.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데스.
노예는 얌전히 와타시에게 바치는 게 좋은데스."
"데에엣??
저 년이 결국은 미쳐버린데스.
푸드 한 알은 먹으나 마나인데스!
죽을 생각인데스까!"
무결은 만족하고, 머리 있는 쪽은 비명을 지르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달그락달그락!
세 알의 푸드가 라이자의 수조에 떨어졌다.
하지만, 라이자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4일만에 푸드 한 알을 받게 되었지만 라성은 푸드를 보지도 않고 라이자 쪽을 보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수조 벽에 달라붙었다.
"장녀! 일어나는데스.
푸드가 나온 데스! 빨리 먹고 기운을 차리는데스!
장녀어!"

...하지만 라이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첫 사망자였다.
다음날 실장석들이 잠에서 깼을 땐 라이자의 수조 자체가 사라져 있었고, 라성은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인간을 찾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균형이 무너졌다.
죽은 자는 의견을 낼 수 없는 법.
머리 있는 쪽에서 사망자가 나오면서 다수결에서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데샤앗!!
옷 있는 노예들! 당장 와타시에게 각설탕을 바치는데샤!
머리 있는 노예가 있든 없든 바치란 말인데수!"
무결이 다수결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덤.

결국 머리 있는 쪽은 5일만에 전멸해버렸다.
"왜 이렇게 된데스...
다수결은 분명 공평한 룰 아니었던데스..?
어떻게 했어야...살 수...있는..."
파킨.
머리 있는 쪽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라변성의 단말마.

"데퍄퍄퍄!
이제 맘편히 푸드를 먹을 수 있는데스~
매일매일 6알!
여유로운 실장생의 재시작인데스~
이제 닌겐노예만 나타나서 와타시를 모셔가면 더더욱 행복해지는데수~"
반면 옷이 있는 쪽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
[오늘의 다수결을 시작하자.
조건이 달라졌으니 잘 들어라.
귀가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빨간 버튼,
귀나 팬티가 없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녹색 버튼을 눌러라.]
"뎃..?"
다수결은 끝나지 않았다.








농장의 부수입원 (어랫,오랭이,dd(49.163))


저실장 한마리가 쳇바퀴통에 들어있다.

쳇바퀴 밖의 기억이 전혀 없는 우지는 이곳에서 늘 행복했다.

[우지챠~ 프니프니 시간인레치. 오네챠에게 오는레츄웅~.]
“프니후~ 우지챠 지금 가는레후.”
저실장은 쳇바퀴 옆에 뚫린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나가 목소리의 주인인 엄지에게 향한다.
통로 끝의 작은 방에 있는 것은 벽에 그려진 엄지실장의 그림과 그 앞에 매달려 있는 작고 투명한 유리 막대기 뿐이지만, 어리석은 저실장에게는 엄지가 프니프니를 해주려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오네챠 앞에서 눕는레치. 오네챠의 안보이는 손으로 프니프니해주는레치.]
“오네챠의 안보이는 프니프니 좋은레후~. 운치가 멈추지 않는레후~.”
녹음된 엄지실장의 목소리를 따라 발랑 드러누운 저실장의 배에, 유리 막대기가 내려와 꾹꾹 누르며 강렬한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프니프니~프니프니~]
“프니♡프니훗♡ 우지챠 좋은레후웃!♡”
물똥을 내뿜으며 움찔거리는 저실장.
막대기가 계속 움직이는 와중에 엄지실장의 말은 계속된다.
[오네챠의 안보이는 손은 굉장한레치. 우지챠에게도 안보이는 손이 있는레치.
우지챠의 안보이는 손으로 프니프니를 하게 되면 지금보다도 더 굉장한 프니프니가 되는레치요?
그러니 우지챠는 열심히 안보이는 손을 달라고 기도하는레치.]
“프니힛♡ 안보이는 손♡ 우지챠 필요한레훗! 굉장한 프니프니 원하는레후웃~♡”
저실장은 쾌감에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기도를 올린다.
프니프니와 기도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프니프니가 끝난 뒤에 저실장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이번에는 쳇바퀴 쪽에서 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지챠~밥먹을 시간인레치. 오네챠를 따라오는레츄웅~.]
“마침 배가 고픈레후~ 우지챠 지금 가는레후.”

쳇바퀴로 돌아가니, 공중에 실장푸드 한 알이 둥실 떠있었다.
푸드에 달린 가느다란 실은 저실장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푸드씨 둥실둥실 신기한레후. 오네챠의 보이지 않는 손은 대단한레후.”

전등에 그려진 엄지의 모습이 빛을 타고 쳇바퀴의 연녹색 바닥에 비친다.
마치 낚싯대를 어깨에 진듯한 엄지의 형상에, 푸드가 낚싯대 끝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저실장에게는.
[우지챠. 밥먹기 전에 오네챠랑 술래잡기하는레치.
오네챠를 따라잡으면 이 푸드를 주는레치.]
“우지챠 배고픈레후! 어서 주는 레휑!”
저실장은 순진하게 그 말을 믿고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기어 전진하면, 그만큼 쳇바퀴가 돌아가 저실장은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것을 저실장이 깨닫는 일은 없었다.

“레훗! 레훗! 푸드씨는 어서 우지챠에게 오는레후!”
[우지챠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 생기면 멀리 있는 푸드도 한번에 가져올 수 있는레치.
힘을 내는레치!]

그렇게 한동안 저실장에게 운동을 시킨 뒤에 푸드에 연결된 실이 풀리며 저실장에게로 굴러갔다.
“레후~맛있는 푸드인레후~레챱레챱~.”

저실장의 생활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
반복 속에서 엄지의 목소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다.
“보이지 않는 손씨가 생기면 우지챠에게 좋은레후.
손발긴긴씨보다 더 중요한레후?
그럴지도 모르는레후!
보이지 않는 손씨는 빨리 생기는레훙~.”
자연히, 저실장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원하게 된다.

5일의 시간이 지나자,
언제나처럼 프니프니를 받던 저실장에게 변화가 생겼다.

“프니프니~♡ 오네챠의 보이지 않는 손♡ 프니...레훗?”
저실장의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실장에서 엄지실장으로 변화하는 데에 필수적인 영양낭이, 보이지 않는 손의 체현을 위해 본디 기능을 버리고 변화한다.
그리고,
“오네챠의 손과는 다른 손이 우지챠를 프니프니하는레후~ 있을 수 없는 쾌감레후응♡”
저실장은 카오스력에 각성했다.

과거의 한때, 카오스 실장석이라 불리는 실장석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가 있었다.
인간에게조차 위협이 되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여러 괴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던 놈들.
이제와서는 그러한 힘은 사라진 채, 인간에게 덤빌 뿐인 추한 생물이 되었지만, 실장석에게 아직 카오스력의 잔재는 있었다.

각성 후, 저실장은 달라졌다.
[우지챠~ 프니프니 시간인레치. 오네챠에게 오는레츄웅~.]
“레프픗, 우지챠가 하는 프니프니가 더 좋은레후.
우지챠는 가지 않는레후!
프니프니~프니후♡ 우지챠 운치 나오는 레후웃♡”
쳇바퀴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 저실장의 배가, 무언가에 눌리는 듯 꿈틀거리며 자극을 받았다.
카오스력을 이용한 프니프니.
부릿부릿 새어나오는 물똥은 저실장의 몸에 묻지 않은 채 둥실 공중에 떠오른다.

“오네챠는 우지챠의 운치나 닦는레후!”
휙! 운치가 통로를 지나 엄지의 그림으로 날아가 충돌한다.
그림은 이미 초록 운치로 더럽혀져 원래 그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지챠~밥먹을 시간인레치. 오네챠를 따라오는레츄웅~.]
“이미 와있는레후! 푸드는 어서 나와 우지챠에게 오는레후.”
실에 매달려 나오는 푸드는 저실장에게 인식되자마자 실에서부터 떨어져 저실장에게로 날아간다.
더이상 운동을 하며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레프프, 이제 우지챠가 최고인레후. 레후웃~.”
키오스력을 휘두르는 사이 저실장의 자만심은 끝을 모르고 올라간다.
저실장은 이 쳇바퀴 안에서 왕이 되었다.
각성 후 3시간, 수면 시간을 빼면 단 20분만의 일이었다.

인간이 각성을 알아차리는 데 걸린 시간도 3시간이었다.

“어...28일 꺼 8747호가 카오스력 각성했네?
이주일만에 나왔구만."
"그러게요. 바로 챙겨 놓을게요."

얼마 후 덜커덕, 소리와 함께 저실장의 쳇바퀴 왕국이 두 조각 난다.
"레후? 우지챠의 집이 이상해진레뺘아앗!"
쳇바퀴에 고정된 저실장 사육장치를 분리한 것이지만 저실장에게는 세상이 쪼개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패닉에 빠진 저실장을 옮겨 옷을 빼앗고 소독실에 넣는다.
저실장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신에게 뿌려지는 자극적인 소독액 샤워에 온몸을 비틀며 저항해댄다.
"레삐잇!! 따가운레후! 따끔따끔 물씨는 저리로 가는레후웃!!"
카오스력을 써서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마셔버린 소독액에 포함된 도돈파 때문에 운치를 지리느라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평범한 저실장이었다면 이런 거친 소독에 일찌감치 파킨했을만한 상황에서도, 자만심이 넘치는 카오스 저실장은 충분히 버텨낸다.

이윽고 소독과 건조가 끝나고 인간이 저실장을 소독실에서 꺼냈다.
"렛...똥노예! 우지챠를 구하는 게 너무 늦은레후!
당장 예뻐예뻐 포대기와 푸드를 가져오는레후!
그럼 특별히 우지챠의 애교를 볼 기회를 주는레후.
렙후응♡"
저실장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대로 포장용 비닐봉지에 투입.
틈새를 막고 내부의 공기를 빨아들인다.
자실장은 처음엔 소음이 심하다고만 느끼고 있었지만 어느새 주변의 비닐이 몸에 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시끄러운레후! 우지챠의 보이지 않는 손맛을 보고 싶은레후!?
레, 레후? 왜 우지챠에게 달라붙는레삐이!!"
불평이 비명으로 바뀌는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차라리 비명은 지르지 않는 것이 좋았다.
내쉬는 숨이 그대로 빨려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몸에 붙은 비닐은 점점 더 꽉 조여온다.
이제 말로 협박을 할 때는 지났다.
저실장은 바로 보이지 않는 손, 카오스력으로 비닐을 밀어내본다.
하지만 기껏해봐야 저실장의 힘.
강화된 비닐과 압축기계를 이길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다.
총구에서 슉슉 나오는 방귀소리는 저실장의 의도인지 압박에 의한 것인지.
그저 빠져나온 공기의 양만큼 배가 움푹 들어갈 뿐이다.
비닐 벽은 어느새 저실장의 얼굴을 덮으며 찰싹 붙었다.
이제까지 이상으로 급해진 저실장이 전력으로 힘을 쓰며 숨을 들이마셨지만 이미 쪼그라든 폐는 도무지 펴질 기미가 없다.
머리에 산소가 돌지 않는다.
"레...히이…"
한껏 벌어진 입에서 새나온 신음을 끝으로, 산소 부족에 의한 가사 상태가 되면서 저실장의 의식은 끊겼다.

이곳은 식용 저실장 농장.
저실장을 주요 상품으로 취급하며, 그 중 일부 저실장에게 카오스력을 억지로 각성시켜 판매하고 있다.
조건을 잘 갖춰도 저실장 일만마리 중 한마리 나올까말까한 희귀성과, 카오스 실장석만의 특이한 맛에 힘입어 일반 저실장의 수천배 가격으로 판매하여 부수입원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비교하자면 로얄제리와 꿀 같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에서 승진 선물로 택배를 보냈다고 하더니, 상자를 열어보자 저실장 한마리가 비닐에 담겨 있었다.
겨우 저실장 한마리로 뭘 하라는 건지.
투덜거리며 포장을 들여다보니,
"헉 뭐야. 카오스 저실장이었어?"
예상보다 값이 나가는 선물에 깜짝 놀랐다.

처음 먹어보는 비싼 요리재료이니 매뉴얼을 따라서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같이 배달된 설명서를 훑어보니 원재료의 맛을 알려면 찜이 가장 좋다고 한다.
복잡하지도 않고 딱이네.
저녁 먹기 전에 간식으로 결정이다.

푸쉬익.
비닐 포장을 뜯어내자 들어있던 저실장이 가사 상태에서 깨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레삐야아아아!!"
"누가 감히 우지 대왕에게 반역을 하는 레후오옷!"
뭔가 레후레후 거리는 걸 도마에 떨어뜨려 말을 막았다.

이제 한동안 괴롭히는 시간이다.
젓가락으로 쿡쿡 찔러 쉴 시간 없이 계속 카오스력을 쓰게 하자. 힘을 쓸수록 육질이 좋아진다고 하니까.
"당장 그만두는레후! 똥노예!
우지챠의 보이지 않는 손에 혼쭐이 나는레귯!
레삣! 찌르지 말란레후!!"
휙! 툭!
오오, 뭔가가 젓가락을 막았어!
진짜 카오스력을 쓰다니 대단한걸.
그런다고 멈추지는 않지만 말야.
"레삐이잇!"

20분 정도 찌르고 때리고 했더니 반응이 약해졌다.
이젠 저항할 힘이 빠진 것 같다.
그럼 찜을 해볼까.
찐다고 해도 찜통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냥 물이 끓는 냄비에 던져넣고 뚜껑을 닫으면,
"뜨거운레뺘악!! 뜨거뜨거 물씨는 저리가는 레훼에엥!"
제 힘으로 물을 밀어내서 수증기로 찜이 된다고 하니까.
"뜨거뜨거 싫은레후! 아파아파 싫은레후!
우지대왕은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는 레후우!!"
숨쉬는 것도 괴로울텐데 비명만은 잘도 질러대는구나.

지쳐서 물에 빠졌다가 비명과 함께 다시 물을 밀어내길 7번.
5분이 지나니 한계가 왔는지 물에 빠진채로 나오질 않기에, 죽기 전에 불을 끄고 집게로 꺼냈다.
이건 찜이라기보단 찜+데치기라고 해야할 거 같은데?

마무리로 벌겋게 익은 살에 칼집을 내어 맛소금을 살짝 뿌렸다.
"레흐으.."
저실장은 감각이 거의 없을 텐데도 몸을 비틀며 고통을 호소해온다.
괴롭힐만큼 괴롭혀야 맛있어지는 게 실장석이니 맛있게 먹으려니 손이 많이 가네.

젓가락으로 총구부터 입까지 꿰어 눈 높이까지 들어올리자, 비어있는 두 눈과 마주쳤다.
"잘 먹을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한입에 쏙 넣고 씹자,
"레삣!"
소리와 함께 다른 고기로는 절대 맛볼 수 없을 기묘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맛이 입안에 퍼졌다.
삼키는 게 아쉬울 정도야!









악마가 나타났다 1~2 (완)



친실장은 새끼였을 시절 친과 자매를 버리고 도망쳤다. 골판지 박스안에서 공포에 질려 덜덜떨며 인간에게 맞서 싸우러 나간 마마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이겨서 자신들을 구하러 와줄거라 믿으며 도망을 포기한 자매들은 모조리 불속에서 춤을 추다 까맣게 변해 사라졌다. 

당시 차녀였던 친실장은 마마의 말에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도망을 칠수 있었고 수풀이 우거진 작은 틈 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얼굴이 안보이는 인간들의 습격을 똑똑히 봤다. 

평소 무적같았던 마마는 인간의 앞에선 큰 아줌마들이 구더기나 엄지를 일방적으로 잡아 때리고, 사지를 찢은뒤 먹었던것 이상으로 약하고 무력했다. 인간의 발길질 한번에 머리가 쑥쓰러웠는지 몸통씨 안으로 쏙 들어가 머리없이 몸통만 부들거리며 대여섯 발자국을 걷다 쓰러져 다 커서 부끄럽지도 않은지 팬티에 운치를 잔뜩 싼뒤 떼를 쓰는 엄지챠 처럼 바닥에 뒹굴며 마구 팔다리를 흔들며 떼를 썼다. 

마마를 믿고 기다린 8자매들은 골판지 박스안에서 인간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 바닥에 떨어져 팔다리가 부져신채 구더기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다 발이나 긴 막대기로 머리나 몸통이 터지거나 눌려 죽었다. 그럼에도 살아있거나 팔다리만 부러져 있던 자매들은 밥 봉투 안에 갇혀 어디론가 가져갔다. 

차녀였던 친실장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친실장이 알려준대로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조금씩 이동해 공원 중앙에 착한 인간들이 공물을 바치는 곳으로 쫓아갔다. 중앙광장엔 빨간 불들이 타오르면서 울부 짖으면서 똥을 지리며 질질 끌려가는 살아있는 큰 아줌마들이나 죽은 큰 아줌마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아직 어린 자실장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죽은것과 산 것들이 밥 봉투안에서 섞여 불 안으로 쏟아졌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엄지나 우지차들은 운치굴로 도망쳤고 인간들은 운치굴을 흙으로 덮어 전부 생매장 당해 전멸당했다. 불 안에서 춤추는 아줌마들과 자실장들. 그리고 살아있던 삼녀, 육녀, 칠녀도 예외없이 불 속에서 춤추다 사라졌다. 인간들이 떠난 자리엔 검은 재만 소복히 쌓여있었다. 

그렇게 자실장이였던 친실장은 인간의 무서움을 알았다. 항거할수 없는 재앙. 막을수도 없고 운이 좋다면 간신히 모든걸 포기해야 목숨만 부지할수 있다. 이것이 대체 무시무시한 겨울같은게 아니고서야 뭐라 설명을 할 것인가. 웃으며 공물을 바치는 착한 인간도 화내면 큰 아줌마들을 바닥에 들러붙은 쫀득한 별미인 납작고기로 만들거늘, 학대파는 이름만 들아도 오금이 저리고 하얀 악마는 그저 정신을 차리면 팬티위에 앉아있었다. 

구제가 끝난 공원은 골판지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자실장은 추가적인 위협없이 살아서 성장할수 있었다. 자실장이 성체가 될 무렵 어디선가 온 이웃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그리고 다시 착한 인간들이 찾아왔고, 그와 동시에 학대파라는 나쁜 인간들도 찾이오기 시작했다. 소규모 구제를 하던 학대파들은 공원 격리 후 집중구제를 하는 하얀악마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적어도 대화는 시도할수 있었기에. 

하얀 악마들은 애교도, 아첨도, 위협 및 협박, 심지어 경고 조차도 무시했다. 그저 보이는 곳 마다 닥치는대로 죽이고 갈아엎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피와 똥이 가득했고 그 마저도 긴 대롱이에서 물을 뿌리자 녹아 없어져 사라졌다. 

그렇게 겨울를 2번이나 넘긴, 유일하게 이 공원의 비사를 알고 있는 능숙한 들실장으로 성장한 차녀는 3번째 임신으로 다시금 새끼를 얻었다. 

때는 춘삼월. 
완연한 봄이였다. 드디어 두번의 실패를 통해 친실장은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된 새끼들 이라고 해도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걸 깨달았다. 이 친실장의 새끼들에겐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수없었지만 훈육을 통해 새끼들은 그나마 다른 들실장보다 아주 약간 생존에 한발짝 앞서나갈수 있었다. 

“자들은 듣는 데스. 만약 하얀 악마가 오면 어떻데 하라고 한 데스?”

“도망치는 테치!”
“와타치 누구 보다 빨리 도망칠 자신 있는 테치!”
“마마랑 같이 도망치는 테치?”
“마마랑 함께 있는 테치! 그런 테치! 와타치 정답인 테치!”
”테...도망치는 테치. 마마랑 오네챠들이 살려달라고 해도 다 무시하고 도망가야 한다고 한 테치. 그리고 수풀에 잘 숨어야 하는 테치“

친실장은 사녀를 제외한 나머지 4마리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먼 훗날 이 지식은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어리광만 심한 사녀는 어쩔수 없다. 자신과 함께 미끼가 되리라. 

”그런 데스우. 마마의 마마가 말했던것 처럼 하얀 악마들에게 죽기 싫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했던 데스. 하지만 마마의 자매들은 무섭다고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가만히 있다가 하얀 악마들에게 잔인하게 마마를 제외하고 다 죽어버린 데스. 엄지나 구더기들도 운치굴에 생매장당해 죽어버린 데스.“

”하얀 악마씨 무서운 테치...보고 싶지 않는 테치“
”걱정마는 테치! 와타치의 주먹 앞에선 하얀 악마따윈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테치!“
”마마가 있으니 와타치타치 안전 테츄~ 그런 걱정 하나도 안하는 테츄“
”테프프프~ 삼녀 오네챠 말대로 마마의 품안에 있으면 다 괜찮은 테치. 안전한 테치! 마마가 있는데 와타치 위험해질 일 없는 테치“
”테...“

친실장은 막내인, 몸이 제일 허약한 오녀만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장녀는 별 생각이 없다. 
차녀는 허세가 심하다. 
삼녀는 자신을 너무 믿는다. 
사녀는 그저 어리광만 피우고 분위기도 잘 못 읽는다. 
오녀는...다 좋은데 몸이 약하다. 다른 자들에 비해 체력이나 힘이 반도 안된다. 이래선 도망친다고 해도 가망이 없다. 

”아무튼 명심하는 데스. 하얀 악마는 언제올지 모르는 데스. 마마는 이제 밥을 구하러 가는 데스.....“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말을 하며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열어 나갔다. 친실장이 밥을 구하러 나간 사이 자실장들은 조용히 누워 낡고 헤진, 갈색의 지붕을 보며 눈을 감았다. 들실장이 자실장을 기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버겁다. 혼자 살면 풍족하게 하루 밥을 구하고 하루 쉬면서 여유롭게 살수 있지만 새끼를 낳게 되면 그 새끼들은 양충이나 분충이냐를 떠나서 자실장이나 자실장 이하의 개체들은 밥과 관련되서는 절제따윈 모른다. 그저 입안에 모조리 쑤셔넣고 똥으로 배설하며 고작 한 시간뒤에 약간의 공복감을 고통으로 받아들여 발광한다.

그렇기에 들실장의 새끼들은 배고픔과 기아에 익숙해져야 했다. 매일 나간다고 해도 그날 밥을 구해올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2~3일을 허탕치고 굶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아침에 밥 따위는 주지 않는다. 아침을 주고 점심에 먹으라고 밥을 남겨주면 자신이 떠나자마자 다 먹어치우곤 왜 점심을 주지 않아 자신들을 굶게 만드냐며 역으로 친실장인 자신을 매도 하기에 수 많은 실장일가에선 홧김에 자실장들을 때려 죽이고 먹어치우는 광경은 흔하다. 

자실장들이 하루에 밥을 먹는 것은 오로지 저녁 한끼. 이것도 풍족하지 않는다. 그저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성장이 가능한, 집안에서 놀거나 떠드는 헛짓거리를 하지 않는 가만히 누워 잠만 자는 자실장만 약간씩이라도 성장 가능할 정도만 준다. 

매일 기아 상태에 빠진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나가면 드러누워 잠만 잔다. 적어도 자는 동안에는 공복의 배고픔은 없으니. 간간히 깨어 다같이 물을 마시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친실장이 없는 골판지 하우스 안에는 잡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동족을 잡아먹는 개체들도 무시한다. 자실장들의 안전과 친실장 자신의 권력를 다 잡는 들실장만의 노하우 인셈. 

“마마 언제 오는 테치....”

오녀가 중얼거린다. 작고 약한 울음소리지만 다른 자매들의 귀가 쫑긋 거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겹고 지루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는 행복한 밥먹는 시간이 온다. 그렇게 참는 법을 배우는 자실장들. 다만 너무 과하면 기다리는게 익숙해져 도망쳐야할때 기다리다 일가실각의 원인이 되긴 하지만 이 자실장들은 따로 도망치라는 교육을 받았기에 다른 들실장의 자실장 보다 약간은 나았다. 

“오녀챠 자꾸 말하지 마는 테치...쓸데 없이 힘을 낭비 하니 오녀챠가 약한 테치...잠이나 더 자는 테치...”

장녀의 말에 오녀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고요해진 집안. 이미 오녀의 말에 다른 자매들은 잠이 다 깼다. 오지않는 잠에 오녀를 노려보던 자매들은 이런 짓 조차 쓸데없이 낭비라고 생각하며 애써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흐르고 친실장이 돌아왔다. 

친실장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았음을. 
자실장등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갈수있음을. 
저마다 각자의 상념을 품고 안도했다. 

들실장들이 밥을 먹는 시간은 보통 9시 전후. 8시쯤 돌아온 친실장은 한시간을 보존식을 고르는데 쓰인다. 최후의 순간에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서 보존식은 필수. 그렇기에 친실장은 등 뒤에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들으란듯 배를 쭉 내밀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알려주는 자실장들을 무시했다. 

자실장이냐 보존식이냐. 어느걸 더 중요시 하는것에 따라 일가의 미래가 바뀐다. 자신도 첫 출산후 일가실각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돌아왔기에 그 어떤 들실장보다 뼈져리게 알았다. 

“꼬륵꼬륵 뱃씨 우는 테치~”
“오늘도 밥 맛나게 먹어주는 테치~”
“밥먹고 누는 운치가 제일 좋아 테치~”
“어떤 밥을 먹을까 이 순간이 제일 좋아 테치~”
“밥주는 마마가 제일 좋아 테치~”

자실장들은 노래를 부르며 친실장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나마 친실장이 생각하기에 교육이 제일 빠른 오녀조차 그래봤자 자실장이였다. 애초에 탄생조차 인간의 선별을 걸치고 수십~수백마리를 고문과 학대에 가까운 훈육을 통해 말 그대로 갈아서 선별한 최후의 한마리인 사육실장이 아니고선 들실장의 레벨에선 이 정도면 거의 최상급이였다. 

들평균 몇몇 덜떨어진 놈들은 친실장이 보존식을 고르는 와중에 밥에 눈이 돌아가 시끄럽게 지랄발광을 하다 자신을 탄생시킨 친실장의 분대로 도로 환원되거나 봉지에 뛰어들어 분노한 친실장의 주먹과 발로 봉지안에서 으깨져 밥과 함께 뒤섞여 자매들의 한끼로 전락한다. 아니면 거의 빈사상태까지 친실장에게 쳐 맞아 교보재로 쓰인다거나. 도저히 못써먹을 정도면 팔다리를 먹어 치우곤 거친 흙바닥에 비벼 재생을 막고 독라로 만들어 운치굴에 쳐 넣는다. 

“다 된 데스. 이제 밥을 먹는 데스”

신중히 골라낸 봉투는 반이 비었지만 자실장들은 몰랐다. 반이라도 남는게 이 친실장이 다른 들실장보다 얼마나 우수한지를. 보통 들실장들이 보존식을 빼내면 1/3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자실장들은 귀를 까닥이며 앉아 친실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가며 밥을 먹는다. 장녀라고 더 주는거 없고 오녀라고 덜 받는것도 없다. 다른 들실장 일가면 장녀가 눈알을 부라리고 친실장을 향해 침을 튀기며 빵콘한채 괴성을 지르며 불공평 하다고 항의하지만 이 친실장의 자실장들은 그런게 없었다. 

그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그 짓을 했던 장녀가 어떻게 됐는지를. 
그렇게 차녀가 장녀가 되고 삼녀가 차녀가 되고 사녀가 삼녀로, 오녀가 사녀로, 육녀가 오녀가 된 것을 알고있기에. 장녀라는 것도 친실장이 부여한다. 자실장들사이에만 존재하는 계급 마저도 친실장의 허락하기에 존재하기에 언제든지 친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녀는 막내가 될 수 있다는걸 기억하기에 분배에 대해서 불만조차 가질수가 없었다. 

친실장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밥을 허투루하게 대하는 자실장을 찾기 위해 눈을 매섭게 치켜떴지만 걸리는 녀석들은 없었다. 걸리면 먹던 밥을 몰수하는 자실장들에게 최악의 형벌인 ‘밥빼기’를 당한다. 자실장들 또한 전부 한번씩 당해보기도 하고 그 불합리한 처사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친실장에 의해 영영 목소리를 잃어버릴뻔 했다. 

품안에 나눠준 밥을 끌어 모아 엎드려 두 팔로 감싸안아 조금씩 팔을 오므리며 입안으로 밀어넣는다. 친실장은 자신을 향해 자실장들이 엎드려 조아린채 밥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오늘 하루도 밥를 구하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모든 정신이 밥에 쏠린채 행여나 자신의 밥을 탐하는 녀석이 있을까 허겁지겁 먹으며 두 팔로 밥을 보호하는 모습. 들생활, 빼앗긴 놈이 잘못이기에 친실장은 자신의 교육을 잘 지키는 자실장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마지막 남은 밥을 털어 먹었다. 

그렇기에 들실장들은 엎드려 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먹기에 주변시야를 전혀 못본다. 입안에 밀어넣고 씹기 바쁘기에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들실장들이 가장 무방비하게 되는 순간이며 자신들을 보호할 집이 없는 들실장들이 죽는 원인 일 순위가 밥먹다 정신차리니 내 옆에 자신들을 잡아먹는 짐승이 있는 상황. 

식사시간이 끝나고 패트병뚜껑에 따라준 물을 한마리씩 먹고선 다시 누웠다. 친실장의 옆에 몰려 쫑알거리는 소리에 친실장이 가볍게 한마디 했다. 

“오마에들 성장하기 싫은 데스? 마마가 말하지 않는 이상 오마에들도 말하지 마는 데스. 그렇게 주절거리면서 애써 마마가 구해온 영양을 쓸데 없이 낭비할꺼라면 당장 집밖으로 내보내 주는 데스. 마마가 준 것을 소홀히 하는 자는 필요없는 데스. 밖에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데스.”

순식간에 적막이 감도는 집안에 만족한 친실장은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잠을 자는 친실장을 보며 불만이 가득찬 얼굴인 자실장들도 조금이나마 허기가 사라진 배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시간이 지나 허기가 사라지면 잠을 자는 시간동안 고통이기에. 

“데하~암~....오늘도 마마는 가보는 데스. 집 잘지키는 데스. 그리고 만약....아닌 데스“

친실장은 잠기운이 안사라진 자실장들을 보며 피식 웃으며 집 문을 열었다.

-도, 도망치는 데스-! 모두 도망치는 데스으-! 하얀 악마인 데스! 하얀 악마가 나타난 데스우!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동족의 고함에 귀를 귀울이자 몸이 덜컥 굳었다. 친실장의 귓가엔 다른건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저 하얀 악마라는 말이 또렷하게 들려 머리를 때렸다. 

”데, 데에...!! 모두 일어나는 데샤아아-!!!“

친실장의 비명과 같은 고함에 발딱 선 자실장들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불안한 눈으로 친실장을 보았다. 

”하얀 악마가 온 데스! 오마에들 빨리 준비하는 데스! 도망칠 준비를 하는 데스!!“

자다깨 영문도 모른채 얼떨떨한 표정의 자실장들은 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친실장이 그토록 말했던 하얀 악마. 친실장과 자실장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존식을 다 먹어치우는 데스. 도망도 힘이 있어야 하는 데스. 어차피 보존식은 인간들이 가져가 사라지니 차라리 먹어치우는게 나은 데스“

친실장은 보존식 통을 가져와 집 가운데에 쏟아냈다. 자실장들은 평소라면 눈이 돌아가 대가리를 쳐박고 먹었겠지만 이제는 집 안에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소리와 그 어느때보다 딱딱하게 굳은 친실장의 표정이 결코 장난이나 연습 상황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먹는 데스! 먹고, 잔뜩 먹어서 힘을 내는 데스! 그래야 사는 데스!“

자실장들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보존식을 먹었다. 친실장이 엄선한 보존식은 그동안 먹었던 밥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이걸 다 먹는 순간 일가가 두번 다시 모일수 없다는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친실장과 자매들의 얼굴을 기억하던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물마저 아낌없이 주는걸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뿔뿔히 흩어졌다. 

“이걸로 된 데스...마마는 다 커서 숨을 곳이 없는 데스. 오마에들을 일부러 잘 먹이지 않던 이유가 다 있었던 데스...마마처럼 잘 숨어서 다시 이 공원에서 자들을 낳아 살아가는 데스.”

친실장은 집안에 숨겨두었던 보검을 꺼내들었다. 같은 동족조차 제대로 찔린다면 단숨에 절명하는 보검. 이길거라곤 생각조차 안들었다. 그저 자신의 자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면 댔다. 친실장은 보검을 든 손을 높이 올리며 공원 중앙 방향을 보며 당당히 외쳤다. 

“와-바-랏 데샤아아-!! 와타시는 여기에 있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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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이 살고 있는 공원에 구제가 실시된지 2년이 흘렀다. 2년사이 공원은 다시금 들실장들이 마구잡이로 개체수가 증가하여 시민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개체수 추정 약 380마리. 성체의 숫자가 저정도였고 자실장 까지 포함하면 대략적으로 850마리가 넘어가는 숫자였다. 공원은 진작에 포화상태였으며 그간 애호파들의 무분별한 실장푸드 살포에 아슬아슬하게 마릿수가 유지되었다. 

친실장은 알게 모르게 예전과 비교하여 먹이를 주로 수급하는 쓰레기장이 과거와 다르게 더럽고 너저분한 것을 천천히 오랜시간동안 바뀌었기에 모르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쓰레기 봉투가 다 찢겨 바닥에 쏟아져 악취로 온갖 민원을 야기시킨다는 것을 몰랐다. 

몇몇 들실장들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이주 및 공원내 2세대, 3세대, 4세대 들실장들은 그런걸 몰랐다. 애초에 2년전 구제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건 이 친실장 한마리. 나머지는 다 이주해서 텅 빈 공원에 정착한 녀석들이기에 사정따윈 몰랐다. 그저 심해지는 경쟁에 자신들이 벌인 일을 수습하기 보단 하나라도 봉지를 더 뜯어 구하기 급급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난장판의 끝은 하약 악마라 칭해지는 서울시 특별구제반이 과거 2년전 그랬듯 다시한번 이 곳을 방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친실장은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너무나 강렬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살려달라 비는 자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던 인간들. 그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친실장. 비록 그 희생으로 자신만 살아남았지만 자매들과 친이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홀로 남겨진채 눈물을 흘리며 수 없이 상상하며 밤을 보냈다. 

텅 빈 공원에서 외로움에 사무쳐 아무리 울어도 찾아오는 이 없고 눈물자국이 가득한채 일어나 간신히 죽지 않을 만큼 밥을 구하며 살았다. 가끔 찾아오는 것은 그저 자신을 먹이삼을려는 날아다니는 새들과 개, 고양이들뿐. 

“하지만......단 한번도 복수를 잊어본적 없던 데스”

친실장은 눈을 빛내며 죽은 자매들과 친실장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 상상만하며 하얀 악마들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생각할때 첫 자를 가졌다. 그 순간 친실장은 깨달았다. 하얀 악마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그것은 하얀 악마들에게만 적용되는 복수가 아니였다. 가끔 와서 먹을것을 나눠주고 정작 길러줄 생각은 전혀 없는 인간들(애호파)이나 긴 막대를 가지고 온갖 방법으로 잔혹하게 가지고 놀다 죽이는 인간들(학대파) 모두 복수할 방법 이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고 좌절하고 괴로워 하는 것을 즐기던 인간들에게 자매들과 친실장에게 이어받은 생명을 끝까지 이어가는 숭고한 사명과 함께 수 많은 자들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인간들이 질투에 미칠 그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였다.

“지지않는 데스! 적어도 두번다시 와타시타치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한방 먹여주는 데스...”

애초에 이 친실장은 2번의 양육실패에서 복수고 뭐고 다 끝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도망쳐 살았으니 자들도 살아서 다시금 이 공원에 뿌리를 내리리라 여겼다. 죽어도 자신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자들에게 이어지는 생명의 숭고함. 비록 자를 가득낳아 질투에 미치는 인간들을 보지 못했으나 그것은 자신의 역활이 아닌 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제 자신은 과거 친실장이 그랬던것 처럼 도망친 자를 믿고 인간에게 맞서 싸울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몸부림일 지라도 생명을 이어간다는 의지는 끊을수 없으리. 

친실장은 구제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 들실장에게 얼마나 운이 중첩되야 하는지 알수도 알지도 못했다. 만약 구제가 없었다면 이 운을 가지고 모든 실장석들의 꿈이자 최종 목표인 사육실장이 될 정도였다. 그저 친실장 조차 감당할수 없는 천운으로 살아남았음을 모른다. 

“오는 데스..! 어서 들어오는 데스!!”

나무 뒤에 숨어 보검을 품에 안고 힐끔힐끔 전방을 보는 친실장은 자신의 뒷쪽 수풀에 숨어서 지켜보는 한쌍의 눈동자를 몰랐다. 수풀더미에 숨에 엎드린채 자신을 보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교육을 가장 잘 받아들인 오녀였다. 

‘마마...’

체력적으로 다른 자매들과 달리 약했던 오녀는 도망치고 나서 곧바로 다른 자매들을 놓쳤다. 친실장이 그렇게 당부하였건만 장녀와 차녀, 삼녀와 사녀는 짝을 이루어 도망쳤다. 아이러니 하게도 무리에 낄 수 없는 체력을 지닌 오녀만이 친실장의 당부처럼 혼자 남아 도망칠수가 있었다. 아니, 도망도 제대로 치지 못한채 잔류하였다. 

그나마 과거 친실장보다 나은 것은 집안에 남은 자실장들이 없다 정도. 


장녀와 차녀는 달렸다. 자매들중 체력이 가장 좋은 이 둘은 도망치는걸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선 비명과 죽어가며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하지만 소리에 다리를 멈출수가 없었다. 

“무서운 테치...무서운 테치...!”
“죽는 테챠! 죽기 싫은 테챠아-!”

장녀와 차녀는 친실장이 도망친뒤 숨어야한다는 말 중에서 도망만 기억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향하는 곳은 그저 비명이 안들리는 곳을 향해 방향을 바꾸며 뛰었다. 

장녀와 차녀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안들리는 구제업자들이 집결한 가장 조용한, 공원 중앙 광장으로 조금씩 조금씩 향하고 있었다. 



삼녀와 사녀는 걷다가 뛰는걸 반복했다. 수풀 사이에 숨어 천천히 기어가듯 주변을 경계하다가 수풀이 끊긴 화단의 끝에서 후다닥 달려 반대변 화단으로 넘어갔다. 

“오네챠, 이제 안전한 테치?”
“테? 잘 모르는 테치. 하지만 멀리가면 좋을꺼라 생각되는 테치.”

사녀는 삼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풀사이로 잦은 이동으로 머리카락과 두건, 옷이 찢어진 독라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살필 여유도 없을 뿐더러 사방에서 죽어가며 도망치는 동족들도 독라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큼지막한 빵콘을 매단채 어기적 거리며 기어가다 죽는다. 팬티를 버리고 뛰면 그나마 더 멀리 갈수 있지만 팬티조차 버리지 못한 미련이 발목을 잡아 죄다 대가리가 깨져 바닥에 피를 흘려 죽는다. 죽은 동족의 피가 강처럼 흘러 배수구로 빨려들어가는 상황. 

삼녀와 사녀의 전략은 제법 먹혀들어갔다. 독라이기에 주변의 풀색이랑 어울리지 않아 눈에 띄여야 했지만 은폐에 신경을 써서 아직까지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경계하는것과 은폐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이동 속도는 최악을 달렸다. 삼녀와 사녀는 골판지 하우스를 기준으로 고작 4m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마마...이기는 테치. 마마가 이기는 모습 와타치가 확실히 보는 테치...“

오녀는 과거 친실장이 그랬던것 처럼 집 근처 수풀 사이에 숨어 친실장을 지켜보았다.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하며 주변을 살피는 친실장의 모습.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인간이 드디어 친실장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긴장한 오녀는 침을 삼키며 친실장과 인간의 격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녀는 몰랐다. 친실장 바로 뒤에 숨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과거 친실장이 숨었던 방향은 이쪽이 아니였다. 

구제업자인 그는 나무 뒤에서 옆으로 퍼진 몸을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귀와 머리카락, 치맛단, 그리고 자신을 엿보기 위해 고개를 나무 밖으로 완전히 내민 성체실장 한마리를 보고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친실장 뒤에 멍청하게 수풀로 우거진 화단 나뭇가지 사이로 전혀 숨을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쌀 한톨만한 지성의 조각도 없어 보이는 자실장의 누런 얼굴이 보였다. 뭐 실장 구제업이라는 것이 이런 병신들을 잡는거라지만 이럴때면 힘이 빠진다. 

”오는 데스..오는 데스...!!“

친실장은 긴장으로 땀을 주륵주륵 흘리디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과 자신, 죽거나 죽이거나 둘중의 하나만 남은 결과. 누가 이기던, 누가 지던 예측할수 없는 싸움을 앞둔 친실장은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것 같았지만 무거운 발소리를 내는 인간이 시야 가득 들어오자 역으로 불안했던 마음과 혼란스러운 정신이 가라앉았다. 호흡을 가다듬던 친실장은 생각했다. 

맑게 변한 정신으로 아무리 계산해봐도 인간을 이기는건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처음 생각한대로 한방 먹여주자 라고 결심했다. 

”목숨을 거는 데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누가 봐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 그저, 인간에게 알려주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할수있다는 데스! 생명을 품은 이 세상에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생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똑똑히 각인 시켜주는 데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오녀... 오마에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마마는 이런 데스. 마마는 지지않고 싸웠던데스! 마마의 마마가 그랬던것 처럼 와타시도 생의 이어짐을 위해 싸우는 데샤-! 인간! 와타시의 보검을 받으는...!?! 데걋!”

오녀는 친실장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마마에게 외치고 싶었다. 자신이 보고 있다고. 자신이 보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마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마마의 의지는 와타치가 확실히 이어받았노라고. 

하지만. 
필사의 각오를 한 친실장이 뛰쳐나가는 것을 본 오녀는 눈알가가 찢어질 정도로 눈을 크게 떳다. 그야말로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것이다 라는 말을 뼈에 새긴채 달려나간 친실장이 얕은 비명과 함께 넘어지는 어이없는 불행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이여 자신의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을 보았다. 

넘어진 친실장은 웃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봐도 웃고 있던 것이다. 오녀는 그런 친실장의 웃는 표정이 낮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 

그랬다. 오녀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익숙한 친실장의 표정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과거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실장을 따라갔던 처음본 바깥세상. 친실장은 몰려드는 큰 아줌마들에게 엄지2마리와 구더기 3마리를 던지고 나서 유유히 자신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며 보여준 미소였다. 

‘그런 테치! 역시 마마인 테치! 마마는 다 계획이 있었던 테치! 와타치는 마마가 자랑스러운 테치...! 마마는 훌륭했던 테치! 그 어떤 아줌마들보다 마마가 제일 훌륭했던 테치!! 마마는 와타치타치의 자랑인 테치! 와타치 살아남아 마마의 모습을 반드시 자들에게 알려주는 테치!!‘

오녀는 소리없이 울며 친실장의 목숨을 판돈으로 건 일생일대의 최후의 도박을 지켜보았다. 인간이 다가와 넘어져 엎드린채 일어나지 못하는 친실장의 앞에서서 발을 들어 올렸다. 오녀는 그 순간 친실장의 품안에 날카로운 보검이 친실장의 목 바로 밑에 세워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려는 몸을 간신히 제어했다. 마마가 만들어준 생을 바친 기회다. 허무하게 날려버릴순 없었다. 

’보는 테치...! 보는 테치이! 똑똑히 기억해서 와타치도 훗날 인간에게 복수하는 테치! 인간에게 복수하는 테치...!!‘

악 다문 입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친실장은 짧은 순간에 수 없이 고민했다. 지켜보는이 없이 홀로 고독한 싸움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가치있는 일이며 제법 할만하지 않은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자신만 알면 됐지. 친실장은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 처럼 중얼거리며 인간에게 어떻게 한방 먹여줄지 고민했다. 

보검을 들고 뛰쳐나가 찌를까?
안된다. 인간은 자신들보다 수백배 크다. 접근하기 전에 당한다. 

아픈척 위장해서 접근할까?
안된다. 하얀 악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근처에 다가기만 해도 곧바로 죽일터. 

하지만 친실장은 위장을 한다는 것에 무언가 느꼈다. 자신들을 바보처럼 여기는 인간들이라면 이건 통한다. 어차피 보는 눈도 없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딱 한번 바보같은 연기를 하면 된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한 친실장은 용기를 얻었다. 

“해보는 데샤아-!! 목숨을 거는 데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누가 봐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 그저, 인간에게 알려주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할수있다는 데스! 생명을 품은 이 세상에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생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똑똑히 각인 시켜주는 데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오녀... 오마에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마마는 이런 데스. 마마는 지지않고 싸웠던데스! 마마의 마마가 그랬던것 처럼 와타시도 생의 이어짐을 위해 싸우는 데샤-! 인간! 와타시의 보검을 받으는...!?! 데걋!“

친실장은 마치 나 습격하는거에요를 티를 내며 뛰쳐나가 일부러 화단 끝에 발을 살짝 걸고 넘어지며 굴렀다. 품에 안은 보검의 끝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 옅은 자상을 남겼지만 상관없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이미 자신은 죽고 없다.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이딴 상처는 상처 축에도 안들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과도한 오버 액션을 취했지만 역시나 인간들은 자신들을 얕잡아 보고 어색함을 눈치 못챘다. 슬며시 나오는 웃음을 참고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못차린듯 무릎과 손을 바닥에 집고 어서 빨리 밟아 죽이라는듯 보기좋게 만들었다. 

인간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건 굴욕적이였지만 자신의 소중한 돌은 배 가장 아래에 있다. 적어도 소중한 돌이 깨지기 전까지 약간은 산다. 고통에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며 죽는것도 나쁘지 않으리. 친실장은 바닥을 보고 있었지만 알수 있었다.

드디어. 
발이. 
자신의 목과 뒷통수를 향해. 
내려오고 있음을. 

친실장은 재빠르게 보검을 일자로 세워 목 끝에 갇다댔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가려진 보검을 눈치 채지 못했다. 두건 넘어로 뒷통수에 무언가 살짝 닿는다. 

”데...프프프프프...!!“

친실장은 두 눈에 아른거리는 자들이 보였다. 썩 괜찮은 실생이 아니던가. 인간에게 복수도 하고 자들은 뿔뿔히 흩어져 다시금 이 공원에 뿌리를 내리리. 자신이 만든 생명의 이어짐은 이 사건으로 더욱더 강하게 자라리라. 

-치익, 칙. 치이이익-, 칙. 
아아, 구제본부상황실에서 전파드립니다. 현재 13시 37분. C구역 구제인원 몇 분이 성체 들친실장이 못을 품에 안고 일부러 구제인원 앞에 넘어지는 연기를 하며 밟아 죽일때 못을 세워 발을 공격하는 것에 신발이 뚫렸다고 합니다. 다행이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 부상은 없었지만 구제본부에서는 이 사건을 사람을 고의적으로 해할려는 것임을 인지하고 현 시간부로 D공원은 해골 3단계로 격상, 즉시 모든 구제인원들은 구제를 중지하시고 지급한 도로리 용액으로 즉각적인 말살 및 소독작업을 지시합니다. 반복합니다. 현 시간부로 들실장에 의한 인간의 고의적인 상해 상황증거가 포착되었으니 해골 3단계로 격상 도로리 용액으로 말살을 지시합니다. 

친실장은 인간의 어깨에서 난 소리에 머릿속이 텅 비었다.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던 발이 더이상 내려오지 않는 다는 것을 느낄수가 없었다. 

어째서. 
왜?

”...안되는 데스...! 어째서인 데스! 이건, 이건 선택받은 와타시만이 할수있는 계획인 데스! 와타시만이 가능한 계획인 데스!! 삶을 이어받은, 다른 동족따위가 아닌! 오로지 와타시만 생각해낸 특별한 계획이였던 데스우-!! 어째서인 데스! 인-가아아아안-!! 당장 말해보는 데스! 왜! 왜 그딴 소리가 들려오는 데샤아아아-!!! 말해보는 데스! 오마에들에게 마마와 자매들이 죽었을때 부터 품었던 와타시만의 고귀한 생각인 데샤아-!! 인가아안-! 말해보라는 데스우! 당장 대답하라는 데스!!“

친실장은 믿을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그제서야 인간을 마주보며 노려보았다. 증오로 일그러진 얼굴. 두 눈에는 진한 적색과 녹색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세상에 단 하나. 오로지 자신만이 생각해내고 깨달은 생의 의지와 온갖 추잡한 몰꼴(일부로 넘어지기)을 하더라도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굳은 증오로 만든 완벽한 계획이 다 까발려졌다. 그것도 어디있는지 모를 이상한 분충이 먼저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깨달은 고귀한 지식이 실은 실장석이라면 아무나 다 생각하는 흔하디 흔한 아무런 가치없는 것임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하지만 발을 거둔 인간은 등에 맨 긴 통에 달린 대롱이를 꺼내 들었다. 친실장은 과거 이것을 이용한 인간들이 죽은 동족의 사체를 지워나가는 것을 보았다. 눈 앞에 멈춘 대롱이를 봐도 반응이 없는 친실장. 

-치익

1초도 남짓한 시간의 분사. 친실장의 반응은 뿌리자 마자 바로 나왔다. 

”데갸아아-!! 데끼이잇-!! 데,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이 녹는다. 
안구가 녹아내리며 물처럼 흘러 사라졌다. 텅 빈 안구 구멍에선 눈물만 흘러 넘쳤다. 농축 도로리 용액은 단 한방울을 실장석의 정수리에 떨어뜨려도 정수리에서 총구를 뚫고 녹여 바닥에 떨어진다. 화학적 화상으로 재생조차 할수 없다. 그런 용액을 얼굴 전체에 분사당했으니 이 친실장이 멀쩡할리 없다. 

빵콘을 지린채 바닥에 엎드려 파닥거리는 친실장의 품에서 굴러나온 갈색의 녹슨 못. 금속 특유의 쨍소리와 함께 굴러 인간의 신발 코에 부딫쳐 멈췄다. 

”데캬아아아-! 데끼이-,이...이.....!!“

안면이 녹아 뇌가 보이기까지 분사후 1초. 성체 한마리를 5초만에 녹여 버리는 즉효성 농축 도로리. 안면부터 녹아내려 성대마저 녹은 성체실장은 안면구멍에서 뇌가 들어난채 그저 신경이 교란되어 바닥에 쓰러져 간간히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뇌는 이제 막 녹아내리기 시작하여 운치를 부루룩 싸지르며 팬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테...? 마마...?“

자실장은 믿을수가 없었다. 그 친실장이 누워서 빵콘을 한채 떼를 쓰며 팔다리를 마구 휘젓다니. 뭐라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인간에게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오자 마마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저 모양이다. 오녀는 친실장이 엄지 처럼 인간의 앞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자 친실장에 대한 믿음이 쩍 하니 갈라졌다. 

“마마...! 어째서 테치이...? 마마는 아이가 아닌 테치! 일어서라 테치! 일어서서 당당히 인간과 마주보는 테치! 그대로 누워있지 말고 일어서는 테치-!!!”

오녀는 친실장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마마의 단단하고 결연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추잡하기 그지 없는 모습. 자신들에게 당당히 살아가라고 했던 친은 이제 없다. 그저 인간의 앞에서 추레하게 몸부림 치며 아양떠는 가증스런 성체실장만 있을뿐. 

오녀는 자신이 왜 저런 친실장을 향해 달려가는지 스스로도 이해할수 없었다. 아니, 고작 저런 친실장에게 태어난 자신을 용납할수 없었다. 

“와타치 만이라도...! 와타치 만이라도 와타치타치의 의지를-, 긍지를-,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테치이잇-!!”

오녀는 눈물을 닦으며 달려서 인간의 앞에 섰을때. 
고개를 아무리 올려도 제대로 볼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때. 비로소 느꼈다. 저것은 무리라고. 살고 싶다고. 구해달라고. 다시 도로 도망치고 싶다고. 

삶을 갈망하는 오녀의 생각과 다르게 전신이 공포로 굳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의 인간의 형상은 공포와 죽음이였다. 오녀는 그저 눈알만 굴리며 똥을 지릴뿐 빵콘을 해도 스트레스는 해소는 커녕 두려움만 겹겹히 쌓여갔다. 오녀가 눈알을 굴리자 비소로 친실장의 모습을 제대로 볼수가 있었다. 정수리와 뒷 껍데기만 남은채 녹아서 뭔지 알수 없는 물처럼 흐르는 친실장의 모습을. 아양떠는게 아니였다.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냥 죽은 것이다. 오녀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친실장 처럼 소리라도 지를 용기조차 없었다. 친실장처럼 뭔가 움직이는 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저 숨만쉬며 눈알만 굴릴뿐 그 어떤 무엇도 친실장의 티끌이라도 따라 할수가 없었다. 

수풀에서 뛰쳐나오기전의 다짐은 인간을 앞에서 제대로 본 순간 빠그라져 사라졌다. 왜 나왔을까 미칠듯한 후회가 되지만 행복회로도 감당 못하는 상황에서 실장석의 유일한 도피처로 도망도 칠 수가 없었다. 오녀는 자신의 시야 정면에 내밀어진 둥글게 생긴, 빈 구멍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뭐라도 해야한다. 오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적어도. 
적어도 인간의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뜻을 세운 마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야한다. 이 무시무시한 자연재해같은 인간의 앞에서 적어도 마마처럼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마마의 자였다는 증거를 보여줄 것이다. 오녀는 당장이라도 도망갈것같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바짝주고 척추를 곧게 폈다. 그럼에도 한눈에 인간을 다 담을수가 없었다. 그저 인간의 얼굴이라도 생각되는 곳을 보며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혼과 생명을 모두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테, 텟츙~!“

아첨이였다. 

-치익

0.3초의 분사. 오녀는 아첨을 한 모습 그대로 자신의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녹아 흘러 내렸다. 브릿 거리며 똥을 한 무더기 싸지른채 신경이 녹아 없어진 오녀는 친실장 옆에 쓰러져 친실장과 함께 그대로 녹아 땅에 스며들었다. 

공원내 들실장들은 죽어가면서 믿었다. 
그래도 한마리 혹은 어쩌면 어린 자실장이나 운치굴의 엄지라도 살아서 자신들의 유지를 이어가기를. 하지만 못을 든 시점에서 그 모든건 불가능했다. 실장석이 인간을 공격한다. 이건 지금까지와 다르게 그냥 넘어갈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공원내의 바리게이트가 2중으로 구성되었고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150여명의 추가인원이 도착, 지금까지 쓰던 농축액의 3배가 넘는 초고농축 액으로 무장한채 3중으로 공원을 둘러 쌓은채 도로리 약액으로 높게는 나무위. 낮게는 땅 밑으로 1m이상 스며들게 뿌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나무 위에 던져져 있을 녀석부터 땅밑으로 파고든 녀석들까지 모조리 용액으로 녹이기 시작했다. 3중으로 펼쳐진 소독작업은 조명을 킨 채 밤 10시까지 5번에 걸쳐 이어졌다. 그 모든 작업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했다. 보이면 뿌려서 녹인다. 성체실장도 1초만에 녹아 흐를 정도. 말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골판지 밑, 운치굴, 낙엽 밑, 눈에 보이는 곳, 안보이는 곳 공원에 존재하는 땅과 수목들 전체가 도로리로 젖지 않은 곳이 1mm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상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해 자신을 공격하는 것들을 역으로 지배하며 과학을 통해 먼 미래에 자연마저 지배할려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였다. 그리고 들실장들은 ‘구제’가 아닌 ‘말살’ 혹은 ‘소독’으로 변경되는 차이를 몰랐다. 

구제는 몇 마리 흘리거나 업자들이 눈감아 주지만 이건 다르다. 과거 수십 종의 생물을 멸종시킨 인간. 그것이 실장석들에게 진짜 제대로 겨눠진적이 없기에 그저 인간들을 우습게 여기는 실장석들에게 국소적이지만 이 공원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공원 밖에서 몰래 인간의 품에서 훔쳐보던 사육실장들은 스스로 위석을 깨고 자살하는 개체가 속출하는 소독작업. 

실장석이란 것이 단 한마리도 존재하지 않는 공원에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이 지저귀며 실장석이 녹은 영양가득한 수분을 빨아들인 꽃들은 여태껏 보지 못한 화려한 색들로 꽃봉우리를 펼쳤다. 과거 이 공원이 실장석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앞으로 1년간 이 공원엔 사육실장도 출입할수가 없다. 초고농축 도로리로 인해 바닥에 닿기만 해도 발이 녹으며 공원안의 모든걸 만지기만 해도 손이 녹아버리기에. 이주나 정착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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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2023


어미가 죽고나서, 상자 안에는 어리고 연약한 자식들만이 외로이 남겨졌다. 식어버린 몸뚱이에 아무리 말을 걸어보아도 돌아올 대답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엔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까지 어미의 몸뚱이에 매달리며 울어대던 유약한 사녀와 응석꾸러기 십녀를 장녀가 제지한 끝에야 겨우 어미의 옷자락에서 손을 뗐다.

연약한 새끼들의 힘과 의지로는 묻어줄 땅을 파는 일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조그만 혀로 어미의 차갑고 굳은 피부를 닦아낸 뒤, 골판지 하우스 구석에 방치해둘 뿐이었다. 새끼들은 그게 죽은 어미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한걸까, 그런 처사에 토다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다른 개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먹히지 않고 조용히 썩어 문드러져 망각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은 들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겐 특별한 최후이긴 했다. 십녀는 한사코 어미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마치 죽음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어미에게 계속 들러붙으며 이리저리 말하고 좋을대로 안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차 어미에게서 풍겨나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린 십녀는 다시는 어미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했다.


자식들을 먹여줄 어미가 사라졌기에, 자식들은 그저 비축해둔 보존식을 먹으며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버틴 끝에 희망이 오리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본능, 어미의 생전 교육에 따른 행동.

새끼들 중 가장 강인한 장녀는 어미의 일을 떠안았다. 장녀는 자매들을 앉힌 뒤, 먹이통을 뒤적였다. 떫은 맛을 내는 벌레 사체, 수풀 열매조각, 가끔씩 애호파가 뿌리고 가던 실장푸드를 나눈 일부분. 장녀는 차례대로 자매들에게 음식의 조각을 분배했다. 한창 먹어야 성장하는 자실장과 엄지실장에겐 턱없이 모자라는 빈약한 끼니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줄기만 하고 늘 일이 없는 식량을 최대한 아끼려면 그 방법 뿐인 것을...

분배의 차별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먹이의 배분을 맡는 장녀는 스스로 가장 많은 먹이를 가졌고 그 뒤로 차녀, 삼녀, 사녀... 먹이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적어졌다.

장녀는 우월감이나 사적인 악의를 품고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일이었다. 몸집이 클 수록 많은 영양이 필요했다. 십녀에 들어서 엄지들에겐 그 작은 엄지의 손으로도 완전히 감싸지는 적은 먹이만을 받았고 구더기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신의 몫이 없다는 걸 안 구더기는 꼬리를 흔들며 무어라 짖어대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시선을 감지한 십일녀가 간신히 프니프니를 약속하며 구더기를 달랬지만 구더기의 몫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십일녀가 의아해하며 레치-레치 물었지만, 장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구더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렇게 되뇌이는 장녀는 눈이 시큰해졌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구더기 따위에 할애할 수 없다, 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동생인 녀석은 굶긴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먹이의 배분이 끝나자, 속으로 각자 이런 상황에서 할법한 불평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불만의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장녀의 엄한 눈초리와 굳게 쥔 주먹 뿐만 아니라... 그냥 무언가 트집 잡을만한 거리를 기다리는 듯한 이 위태로운 분위기 자체가, 불만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유일하게 엄지 십녀는 대담하게도 먹이의 양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가 뺨을 한대 후려맞았다. 십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불만 제기에 폭력이 가해지자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지만 차녀가 한대 더 뺨을 후려치자 조용해졌다.

돌이켜보면 항상 철 없고, 생각 없이 구는 녀석이었다. 대책도 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결코 자신이 스스로 먹고, 싸고, 씻는 일도 없었으며 항상 어미의 뒷바라지가 필요했다. 식시 사긴마다 자신의 밥이 모자라다며 칭얼대서 자매들의 밥을 어미로 하여금 빼앗아 자신에게로 돌려지게 했다. 그러면 귀신같이 울음을 뚝 그치고 그릇에 게걸스레 얼굴을 파묻었다. 어미야 녀석이 귀여웠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겠지만 파멸을 향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서고 있는 새끼들에겐 이런 관용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차녀는 생각 끝에, 내심 십녀가 역겨운 녀석이라 생각했다.



머릿수만 11에 달하는 새끼들이 원을 둘러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한다. 실장석의 식사란 게걸스럽고 소란스럽고 불결한 것이지만 이 일가의 모습은 더 없이 엄숙하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수저를 드는 조문객같다.  부분의 먹이를 조각내어 조금씩 씹는다, 아주 천천히, 그럼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미가 살아있었을때도 그다지 배부르게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빈곤하다.

가장 먼저 끼니를 마친 엄지 십일녀가 빈약한 찌꺼기가 묻은 손을 핥으며 언니들을 바라보고 있다. 십녀는 사녀에게 달라붙어 어리광을 부리며 여분의 밥을 졸랐다, 사녀는 곤란해하는 눈치이면서도, 자신의 밥을 조금 떼어주었다. 점점 식사를 마친 자매들의 시선을 느끼게 된 웃언니 실장들은, 허겁지겁 먹이를 먹어치웠다. 마치 빠르게 먹어치우지 않으면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구더기 십이녀는 원을 이룬 자매들의 등 뒤로 부지런히 기어다니며 배고프다며 울음소리를 높였다. 허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미가 죽은 뒤로 막내로서 예쁨 받던 구더기는 무관심, 냉대를 받고 있었다. 평범한 일가에서 베풀 수 있었던 돌봄과 사랑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했다. 절망하고 있는 자매들에게 구더기는 철저히 무시, 배격의 대상. 아무것도 모르는 구더기로선 모든게 이해되지 않았다. 구더기는 슬펐지만, 그래도 견뎠다. 견뎌야 했다... 모두가... 구더기는 매몰된 운치굴의 흙더미 위로 올라가 흙에 반쯤 스며든 녹색 덩어리를 핥았다.


먹이통에 기대어 힘 없이 자고 있던 장녀는 소란에 깨어났다. 장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앞을 보니, 차녀와 오녀가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고 있었다. 장녀는 차녀가 오녀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는 광경에 깜짝 놀라 앞으로 뛰쳐나가 둘의 사이를 밀어내며 고함을 쳤다.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오녀는 악을 써대며 차녀의 방향으로 주먹과 발을 내질러댔다.

어느 샌가 골판지 하우스 내에선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미의 죽음과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먹이통이 암시하는 불길한 미래에 스트레스를 받은 자매들 사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친실장이 살아있을 때엔 한없이 사소했던 모든 일이, 미숙한 장녀에게 일가의 통제권이 쥐어지자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이유, 식사할때 쩝쩝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 하품이 거슬린다는 이유, 괜히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언성을 높이고, 아랫동생일 경우엔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차녀가 오녀를 때린 이유는 단지 자고 있던 자신의 발을 툭- 치고 지나갔다는 사소한 이유였다.

장녀는 차녀와 오녀를 간신히 떼어놓고 각자를 다그치지만 그런걸로 분위기가 풀어질 리는 없다. 장녀의 존재에도 집 안은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어미의 무덤이 되어버린 이 상자 안에 점차 쌓여가고 있는 분노와 절망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서로를 헐뜯으며 무의미하게 체력을 낭비한다. 중재에 힘을 쏟던 장녀조차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자신에게 끝까지 대드는 차녀에게 분개해 뺨을 때렸다.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장녀의 폭력이 신호탄이었는지... 실장석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인 폭력은 이 상자 안에서 공공연해졌다. 장녀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매에게 손찌검을 했고, 차녀는 트집을 잡힌 자매를 때렸으며, 차녀에게 맞은 녀석들은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이 패륜의 사슬에 가장 밑에 있는 것은 구더기, 십녀가 구더기가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깬 육녀에게 관리소홀이라는 명분으로 얻어맞자, 십녀는 자신의 동생이 죽을 듯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두들겨 주었다.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해라.

너 때문에 내가 맞았다.

너 같은 것은 그냥 구석에 박혀 쥐 죽은 듯이 있으면 좋다.

샌드백이 되어야 하는 구더기는 그저 몸을 둥글게 말며 서럽게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퍽... 퍽... 꼬리를 힘껏 발로 밟고, 주먹으로 더이상 포동포동하지 않은 배를 두들긴다. 항상 맞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남을 때려보니, 기분이 썩 좋았다. 엄지의 분노가 점차 해갈되고 그 자리를 쾌감과 기쁨, 통쾌함이 채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열렬히, 난폭하게 구더기를 두들겼다.

엄지의 폭력이 끝날 기미가 없자 장녀는 조용히 십녀의 팔을 잡아끌며 단호히 제지했다. 미치기 일보 직전인 자매들의 상태를 이해한다더라도, 때리다가 죽이기라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십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콧방귀를 흥- 내쉬더니 구석에 가서  벽을 보며 누웠다. 장녀는 멍투성이에 찢어진 구더기를 조심스럽게 밀어 녀석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인 매몰된 운치굴 위로 돌려놓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벌벌 떠는 구더기는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도저히 허기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몇몇 녀석들이 대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시고 쓴 맛에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식량마저 빼앗는 언니들의 모습을 본 구더기는 기나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항의했다. 육녀는 거칠게 꼬리를 흔들면서 눈물을 흘리고, 짖어대는 녀석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아 발로 녀석을 걷어차 구석으로 날려보냈다. 구더기는 움찔거리고 조금 경련하며 가냘프게 울었다. 십일녀는 구더기에게 다가와 녀석을 안아주며 달랬다. 이 모습을 장녀와 사녀만이 슬프게 바라보았다. 이 구더기는 스스로가 불행하다 생각하겠지만, 특이한 성정을 가진 자매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으로 행운의 소유자라 할 만 했다...

녀석들이 어미를 먹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녀석들은 어미를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과거에는 어미를 따라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주우러 나갔다가, 들실장 녀석들이 독라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 혐오감도 혐오감대로 들었지만 포식자들이 갑자기 입에 고기를 문채로 칠공분혈하며 절명하는 모습을 보자 녀석들은 압도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독라는 단순히 실장석 구제용 독이 든 별사탕을 먹고 죽어 그것을 먹은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죽었을 뿐이지만, 그날 일가에게는 동족식=죽음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어미의 시신은 지독한 부패를 허락받았고, 구더기에게는 약간의 연명이 허락된 것이다. 먹거나 싸우는 일을 제외하면 상자 안에서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다들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누운 채로 자리를 뒤척이거나, 무언가 트집 잡을 거리를 찾아 상자 안을 응시했다.  삭막해진 자매들 간에 대화라 할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배고프다던지, 부패가 시작된 어미의 시체를 바라보며 친실장을 그리워하는 말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을뿐. 마지막까지 이성의 끈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장녀는 자매들을 돌아가면서 보듬어주거나 조용히 어미에게서 배운 노래를 낮게 흥얼거렸다. 그것만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붙잡고 모든게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자 안에서 활기를 띄는 경우라고 한다면, 가끔 행복회로가 돌아가 기분이 좀 풀린 엄지들이 구더기를 프니프니 해주는 일이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구더기가 오랜만에 주어진 애정과 체온의 행복함, 프니프니의 쾌감으로 교성을 높일때면, 숨죽이고 있던 자매들의 신경을 거슬려 무자비한 응징을 당했다. 차녀와 팔녀, 구녀가 달려들었다. 복부를 가격당하고, 등에 발길질을 당하고, 꼬리를 짓밟히고, 구더기 관리를 똑바로 안하냐는 트집으로 엄지들도 폭행당했다. 사녀의 머리카락을 손질해주던 장녀는 그 모든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게 꼴사나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구태여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다... 말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장녀는 다시 시작된 난투에 몸을 떨며 우는 사녀를 조용히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소 거친 분풀이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저녁밥 시간이었다. 장녀는 자신 앞에 선 구녀에게 마른 메뚜기의 조각을 주었다. 구녀가 자리로 돌아가자 십녀는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의 몫을 기다리던 십녀는 의아해했다. 장녀는 먹이통 안과 십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그냥 먹이통의 뚜껑을 닫아버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장녀의 의중은 명확했다.

'엄지들, 너희들에게 줄 밥은 이제 없다.'

그날 저녁밥 시간은 어미의 죽음 이후 가장 활기찼다. 십녀와 십일녀는 울고, 소리 지르며, 바닥에 엎어져 마구 몸을 흔들었다. 둘은 얼마간 소리를 지르다 장녀에게 달려들어 몸을 붙잡고 횡설수설하며 울어댔지만 장녀는 매몰찼다.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의 몫을 꼭 붙든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자신들은 구더기와 다르게 팔과 다리도 있으니 쓸모 있으며, 버려질 일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을까? 녀석들의 태도는 마치 믿을 수 없는, 일어날 수 없는 현실에 배신당한듯 분개하고 절망하고 있는 듯 했다. 엄지들은 반응하지 않는 장녀에게 끝까지 달라붙을 심산이었겠지만, 장녀는 참다못해 팔꿈치로 퍽-치며 둘을 밀어내었다, 둘은 비틀거리며 밀려나는 중에, 차녀에게 부딪혔다. 다혈질의 심성인 차녀는 갑작스러운 충돌을 용납할 수 없었다. 차녀는 이를 악물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둘의 머리카락을 잡아 바닥에 엎은 뒤 마구 짓밟아댔다.

닥쳐!

닥쳐!

꺼져!

꺼지라고!

여윈 채로 숨만 쉬고 있는 멍투성이 구더기는 그 광경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찔할 정도의 굶주림과 무관심, 냉대와 폭행에 조각날 대로 조각난 상태임에도 아직 구더기는 살아있었다. 무언가 강렬한 의지가 생명줄을 붙잡고 있었다. 탁해진 구더기의 두 눈알은 자신과 같은 신세로 떨어지고 있는 언니들을 담고 있다.

차녀가 씩씩대며 둘을 마지막으로 걷어 찬 후, 엄지들은 겨우 몸을 추스른 뒤 골판지 구석으로 피신했다. 확고하게 버려진 녀석들에게 이제 유일한 공간이라고는 구멍이 숭숭 뚫려  하우스 안에서 가장 모진 바람이 들어오는 그 곳 뿐이다. 악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간다. 십녀는 식사중인 언니 자실장들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시선에 유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장녀와 사녀였다. 사녀는 눈물 흘리고 있었다. 장녀도 눈물 흘리고 있었다... 십일녀도 눈물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식사 시간이 되면 구석에 박힌 엄지들은 먹이통 뚜껑을 여는 장녀에게 기대의 시선을 보냈다. 어쩌면 다시 밥을 받지 않을까... 용서받지 않을까? 장녀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의 몫이 없는 식사가 두 번 이어지자 엄지들은 확신하며 구슬피 울었다. 이제 녀석들은 장녀로부터 확실하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가증스럽게도 십녀는 쫒겨난 후에야 매몰차게 대했던 구더기를 다시 안기 시작했다.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약하고 자신보다 더 여윈 구더기를 안으며 위안을 얻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더 빨리 죽을 녀석의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경멸스러운 유대감이었다. 오랜만에 십녀에게 안겨본 구더기는 다시 언니가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했는지 힘겹게 레후- 울었다. 여위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버린 동생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어느날 아침, 장녀가 자매들의 상태를 살펴보자 구더기는 포대기가 사라져있었다. 아사 직전의 구더기는 자신이 소중히 하던 옷을 스스로 벗어 질겅질겅 씹었다, 반 정도 먹은 후로는, 턱에 들어갈 힘이 없었기에, 핥았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하던 꼬질꼬질한 피투성이, 오물투성이 포대기를 삼키며 구더기는 진한 잿빛의 눈물을 흘렸다. 턱받이도 없고 투박했지만 마마로부터 받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무엇을 준대도 바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 스스로 씹어서 먹고 있다. 

포대기마저 먹어치운 후, 그 포대기를 소화한 끝에 배설한 찌꺼기까지 먹어치운 후로는 알몸으로 힘겹게 바닥을 기어다니며 먼지와 모래를 핥던 구더기는 하루 쯤 지났을까, 기력이 다해 죽었다. 구더기가 몇시간째 미동도 없이 바닥을 얼굴에 쳐박고 있자 십일녀가 이상하게 여겨 살펴보니, 눈에는 아무런 색과 빛이 없었고 오물 투성이 혀는 입밖으로 툭 튀어나와 뻗어있었다. 최초의 죽음. 모두에게 찾아올 사신의 첫번째 방문이었다. 장녀는 비통하게 우는 십일녀에게서 구더기를 조용히 떼어냈다. 장녀에게 안긴 구더기의 얼굴은 굶주림과 절망, 고통에 절어있었다. 한편으로는 희망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장녀가 조금 더 살펴보자 녀석의 콧구멍에서 조그마한 녹색 실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고치실이었다. 구더기가 다음 단계로 자라기 위한 유일한 희망. 지독한 영양실조에도 불과하고 마지막으로 짜낸 구더기의 구원의 동앗줄이었다.

그랬구나, 이것 덕분에 견딜 수 있었구나.

장녀는 묵묵히 생각했다. 녀석은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이 짓누르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의지의 힘은 위석의 붕괴를 막았다. 몸이 먼저 스러졌을지 언정 마음은 스러지지 않았다. 훌륭한 엄지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무사히 자라 성체가 되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 일가가 이런 꼴이 아니었다면... 필사적으로 삶을 붙들며 고통받는 모습에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고 애를 태웠던 장녀는 마음 한 쪽이 찢겨져 나감을 느꼈다. 막내의 싸늘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힘내는레후 힘내는레후, 힘내서 우지차 실 잔뜩잔뜩 내는레후 손발 긴긴되서 다시 예쁨받는레후 밥 받는레후 오네차들이랑 다시 노는레후'

"다음 생에서는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테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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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가 구더기의 몸을 깨끗히 핥아주는 동안, 사녀는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장난감 상자에서 조그만한 주황색 스펀지공을 꺼냈다. 구더기가 제일 좋아하던 장난감이었다. 십녀가 (괘씸하게도)귀찮아 하거나, 자고 있다면 그 공 위로 올라타서 자신의 배를 누르며 프니프니를 하면 그만이었다. 사녀는 고무공 위에 조심스럽게 동생의 시신을 올려놓았다.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구더기의 몸은 고무공을 잘 붙들었다. 장녀는 구더기가 붙든 고무공을 썩어가는 어미의 몸 옆에 내려놓았다. 마치 장례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무시하던 구더기가 죽자 모두가 울었다. 차녀마저도 구더기의 죽음에 한때의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을 회상하며 상념에 잠겼다. 자매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고통받으며 죽어간 구더기는 마침내 구원받았다. 비록 녀석의 영혼이  원통함에 구천을 영원히 떠돌지 몰라도, 자매들의 마음 속에서 구더기는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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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의 죽음에 더더욱 자신들의 처지를 실감한 엄지들은 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허나 엄지가 생각해내는 방도라 해봐야 거기서 거기일뿐이다. 십녀 엄지는 결국 구석에 떨어져 있기를 그만두고 자매들에게 끝없이 아첨하고, 빌붙었다. 귀뚜라미의 다리 한 짝이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떨었다.

아무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십일녀 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장녀가 가끔씩  환기를 위해 상자 뒷편을 살짝 열어두는 시기를 틈 타, 그 공간을 통해 상자를 나간 것이다. 장녀가 깨닫고 십일녀를 다급히 찾아봤을 때는, 십일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잘 살아가겠지.'

장녀는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십일녀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함께했다면 좋았을걸.'

십녀는 구더기처럼 바보같이 조용히 죽길 원하지 않았다. 자매들이 신경질을 내도 아첨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적개심 어린 반응 뿐임에도, 배가 고프다며 마구 들러 붙어댔다. 사녀가 한번은 십녀에게 푸드 조각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장녀가 억지로 손을 붙잡으며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넣으며 제지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꼴을 두고보지 못한 차녀가 십녀의 얼굴에 주먹을 먹이는 것을 시발점으로, 분노가 폭발한 자매들이 십녀 엄지를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엄지를 둘러싸고 두들기는 자매들에의 머릿 속에는 과거가 상기되어 있었다.

삼녀는 십녀에게 밥을 억지로 양보한 적이 있었다.

오녀는 십녀의 대변 뒷바라지를 했다. '와타치는 그런거 할줄 모르는레치'라는 속 편한 말 한마디를 수긍한 어미가 시켰기 때문이었다.

육녀는 십녀와 놀다가 십녀가 스스로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를 난 것 때문에 어미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잘못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팔녀는 십녀의 빨래를 대신 해주어야 했다.

차녀는 그냥 십녀가 꼴 보기가 싫었다. 일가가 이 꼴이 나기 이전에도 이기적인 녀석이었다. 상냥한 마마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버려졌을 녀석이 꼴에 자매로 거두어져서 예쁨 받는것도 싫었는데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진 못할 망정 왜 이렇게 끈질기게 연명해서 눈에 밟히는 거지?

모두는 십녀가 싫었다. 

주먹질과 발길질에는 과거의 사소한 원한과 복수심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일격과 일격에 몸이 터져나가는 십녀는 비명을 지르며 애처롭게 장녀와 사녀를 불렀다. 사려깊은 장녀는 인자했고, 다정한 사녀는 십녀에게 남긴 밥을 몰래 챙겨주곤 했다.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서 동생이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장녀는 차라리 버리기로 결심한 십녀가 조금이라도 더 자매들의 스트레스를 많이 풀게 해줘서, 서로 싸우는 가슴 아픈 일을 막아줬으면 했다. 사녀는 험악한 자매들의 난동에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대로 장녀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

십녀는 자매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점차 분쇄되었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목을 가격당해 괴로운 기침 이외는 아무것도 낼 수 없게된 후에야 집단구타는 멈췄다. 차녀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엉망이 된 엄지의 머리카락을 쥐고 골판지 구석에 내동댕이쳤다. 십녀 엄지는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


반병신이 된 십녀 엄지는 체온을 나눌 자매가 사라진 후로 처음 밤을 맞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밤의 추위는 혹독했다. 자매들은 신문지를 펼쳐서 각자 껴안고 자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한기에 떨고 있었는데 십녀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피투성이 십녀는 파열된 몸으로 억지로 웅크리며 추위를 이겨내려 노력 했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십녀는 점점 감각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질렸다. 손가락이 굳었다. 어깨가 뻣뻣해졌다. 입김을 불어가며 손을 녹이려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몸이 점점 얼어가고 있었다. 그 지경이 되서야, 십녀는 도움을 청하려 장녀를 불러보려 했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십녀는 하루 전만 해도, 자신은 바보같은 구더기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녀석은 결국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십녀는 한때 따뜻했던 과거의 추억을 생각했다.

좋을대로 투정했고, 좋을대로 어리광을 부렸고, 좋을대로 억지를 부렸다.

상냥한 마마는 그러면 자신이 좋을대로 해주었다.

좋을대로 먹었고, 좋을대로 놀았고, 좋을대로 언니들이 자신이 할 일을 대신 해주었다.

'와타치는 이런거 먹기 싫은 레치이이이!'
무작위의 식사 배분에서, 귀뚜라미가 싫어서 떼를 쓰자, 마마는 삼녀 언니가 받은 쿠키 조각을 바꿔주었다.

빨래가 싫었다. 힘들고 귀찮았으니까, 깨끗한 옷은 너무 좋았지만 옷을 깨끗히 하는 일은 별개였다. 떼를 쓰면 마마는 자신의 옷을 팔녀 언니에게 주었다. 그럼 자신은 좋을대로 놀면 좋았다.

마마는 최고였고, 마마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자신도 최고였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정답이었다.

십녀는 과거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자 다시 자신의 비참한 몰골을 직면했다. 마치 방금전까지 꿈을 꾸었던듯 당황한 십녀는 현실을 직시하고 눈물을 흘렸다. 외롭다, 배고프다, 힘들다, 춥다. 언니들에게서 버림받은 십녀는 하다 못해 다시 한번 사랑했던 어미의 품 속에 안기기를 원하며, 맞은편에 누워있는 친실장을 향해 기어갔다. 어느 정도 기어가다가, 엄지는 전에 없던 끔찍한 악취를 맡고는 기겁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친실장의 몸뚱이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십녀는 단순히 자신의 안위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오랫동안 어미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마라고 해봐야 그 뿐, 엄지란 녀석은 그런 녀석이다.

십녀가 바람막이라도 되어줄 수 있을터인 어미의 몸뚱이에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 칼 같은 바람이 자비없이 닥쳐왔다.녀석의 몸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굳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렛- 하는 나지막한 단말마와 함께 절명했다.

파킨-

장녀가 자고 일어나보니, 원래 자리에서 살짝 떨어진 채로 십녀가 죽어 있었다. 살아남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항상 자기 멋대로였고,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동생이었다. 장녀는 피투성이 십녀를 안아들어 친실장의 배 위에 올려주었다. 십이녀의 죽음과는 다르게, 분위기는 차분했다. 구더기를 냉대하긴 했지만 몸을 어루만져주며 슬퍼한 자매들은 피투성이 십녀의 시신을 마치 독라노예라도 보는마냥 보기에 거북하다는 이유로 눈에도 담으려 하지 않았다. 사녀만이 조용히 십녀의 몸뚱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장녀는 화목함이란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붕괴해버린 일가의 모습에 속으로 한탄했다. 아무리 속을 썩이던 녀석일지라도 자매였는데...

가족이었는데... 


-


며칠이나 좀 지났을까, 항상 중압감에 시달리던 장녀의 어깨는 마침내 가벼워졌다.

먹이가 바닥나, 배분하는 일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은 동생들에게 장녀는 아주 홀가분하게, 개운한 듯한 동작으로 뚜껑 연 먹이통을 들어올리며 바닥을 향해 탁-탁 털어보였다. 먹이통에서 나오는 것은 약간의 부스러기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장녀는 자매들이 알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해 먹을것이 얼마나 남았는지 철저히 숨겨왔다. 하지만 그런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장녀의 강렬한 퍼포먼스는 아주 뚜렷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죽음, 종말, 파멸, 몰살.

파랗게 질린채로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울부짖는 여동생들을 바라보며 장녀는 그저 미소지었다. 슬픔, 허탈함, 개운함...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뒤섞여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고 그저 자리에 주저 앉으며 고개를 떨궜다. 사녀가 울면서 달려와 장녀에게 안겼다.

'이 철부지, 밑으로 동생만 몇 명인데 어쩜 이리 어리숙할까...'

장녀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으며 우는 사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이 여기 있으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는 듯이. 

...얼마 안 가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 볼 심산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차녀의 선동에 오녀와 육녀, 칠녀, 팔녀가 가세해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기로 한 것이다. 바깥에 대한 공포감이 이들을 상자 안에 강력하게 묶어놓고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이 이들을 바깥으로 내몰게끔 하였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차녀조차 계획의 무모함에 절망하고 겁에 질렸다. 바깥에 나가서 먹을 것을 찾으면 좋다, 더 운이 좋으면... 인간을 만나서...

차녀가 열심히 떠들고 동생들이 열심히 듣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나마 자매들중에서 현실감각이 있고 가장 어미로부터 가르침 받은게 많은  녀석이여서 그랬을까, 자매들을 향한 그 미소엔 어쩌면 조소라고 할만한 면이 엿보였다. 이미 본인들 스스로 계획의 허술함을 알고 있는것 같고, 그럼에도 굳이 노력하는 이를 비웃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장녀는 침묵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결국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무력하다 해도 무의미하다며 깎아내릴 일이 아니다. 얻어맞고, 때리는 관계였던 자매들이 처음으로 화합을 이루었다. 텟치-텟치 하며 서로 돌발상황을 가정하고 행동요령을 정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조화로웠다.

곧 다섯 자매는 하우스 안에 남기로 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허례허식의 인사를 한 뒤, 하우스 밖으로 떠나갔다. 텟치텟치 하는 구령소리는 점차 멀어져갔다.

그에 맞춰 장녀는 마지막으로 떠난 팔녀를 배웅한 뒤, 다시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서부터 점점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골판지 하우스로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자매들을 진정시키는 장녀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런 소리가 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 비명의 주인공은 하우스를 나간 자매들이었다. 장녀는 혀를 찼다,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났다는 말인가...

얼마 안 가 문 밖에서는 세 마리 정도의 자매들의 헉헉 거림과 처절하게 문을 열어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에 반응한 것은 사녀였다, 자매들의 위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힘없는 몸을 일으켜 다급하게 문을 향해 달려갔다. 사녀는 응석꾸러기임과 동시에 정이 많았다, 십녀에게 자신의 식사도 조금 양보했을 정도로. 그 정은 아직까지도 사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문을 단단히 걸어두고 있던 쇠젓가락을 빼려던 사녀였으나, 이내 장녀에게 제지당했다. 사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장녀를 올려다보자, 장녀는 고개를 저으며 사녀를 문에서 떼어냈다. 이 문을 열어제낀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 장녀의 결단이었다. 죽으면 죽는거지만, 행복했던 우리 일가의 집 안에서 다른 분충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라고 장녀는 생각했다.

녀석들도 각오했던 일이다, 실패하면 죽는 일을 실패했다면, 그저 죽을 뿐이다...

사녀는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장녀의 완력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사녀는 장녀에게 끌려가며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세 자매들의 외침은 점점 다급해져갔다. 그리고 이윽고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정말 엄청난 기세로 비명을 질러대며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왜 열어주지 않는 것이냐, 너희의 소중한 자매가 위기다, 빨리 문을 열어줘라, 우리들을 버릴 셈이냐.

절박한 호소는 이내 모멸적인 저주로 변했다. 자신들을 버리기로 한 골판지 상자 안 자매들의 의중을 눈치 챈 모양이다. 

텟챠아아아-
텟챠아아아-

자신들은 자매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건만, 속 편하게 안에 남아있던 녀석들은... 그냥 우리를 버렸다. 마지막까지 문을 두들기던 차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저 상자 안의 쓰레기들을 저주했다.

곧, 성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비명소리,살점 뜯기는 소리, 기괴하게 꺽꺽대는 자매의 신음이 얼마간 들리더니 무시무시할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바탕의 살육극에 동생들은 마지막 기둥인 장녀에게 몰려들어 그저 하염없이 울어댔다. 그런 여동생들을 어루 달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진정된 여동생들은 바깥의 자매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채곤 비통한 울음소리를 높였다.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였을까,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혈연의 정 때문이였을까.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이후로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썩어가는 상자 안에서, 장녀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녀의 앞머리를 만져주고 있었다. 사녀는 미동도 없이 누운채로 가끔 기침만 할 뿐이었다. 장녀는 사녀가 좋았다, 겁 많고 어리숙했지만 다정했고 다른 자매들을 아낄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많은 먹이를 주었다. 그게 사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였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곁에 두고 싶은 녀석이었다. 다른 자매들의 시신은 장녀가 어미의 곁에 안치했다. 잡아먹힌 자매들은 장녀가 밤중에 몰래 밖으로 나와 녀석들의 잔해를 물병 뚜껑에 모아서 안으로 가져왔다. 시신 더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고,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였다. 

가족이 함께였다는 것에 충분했다.

홀로 생각하던 장녀는 자신을 부르는 사녀의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엾은 여동생은 여윌대로 여위어 이제 죽음만을 앞두고 있었다. 사녀는 예정된 파멸 앞에 겁을 먹고, 가엾게도 떨고 있었다. 장녀는 사녀 옆에 조심스럽게 누우면서 팔베개를 해주었다, 사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라버린 장녀의 품속으로 안겼다. 장녀는 사녀를 쓰다듬어주며, 괜찮아... 괜찮아...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다 괜찮을거야,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다.

그 말 뿐으로도, 완전히 위안과 구원을 받은 듯 사녀의 표정은 희미하게 밝아졌고, 그대로 아무런 미동도 없게 되었다.

장녀는 조금 넓게 찢어져 있는 벽의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주황의 햇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달님이 곧 올라올때 햇님이 발하는 마지막 색깔의 빛이라고 했다. 


사람의 말로는 황혼 녘.

황혼 녘마저 끝난다면 햇빛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삼라만상 모든 세상은 짙은 어둠에 잠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혼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나 인물의 거의 마지막, 끝만을 남겨둔 우울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끝이다.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이었다.


장녀는 얼마 안 가 조용히 잠들었다.


-







용기


이른 아침 두루마리 공원에서는 공원 환경 미화 작업이 한창이다.
환경미화 작업이란 정기적으로 연초에 시행하는 공원 청소로,
주로 포함되는 업무는 공공 화장실 청소, 실장석 운치굴 메우기,
골판지 철거 및 소각 등이다.

이 작업에서는 굳이 실장석을 구제하지 않는데,
연초. 즉, 한겨울에 골판지를 철거당하고 운치굴을 메워진 실장석이
봄까지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철거당하는걸 보면서도
실장석들은 반항할 엄두도 내지못한다.
철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허리춤에 실장석 대가리(로 보이는 조형물)을 달고 있기 때문에,
동족을 학살하고 머리를 수집해서
주렁주렁 달고다니는 학대파에게 덤빌 실장석은 없기 때문이다.

극도의 분충이거나 실장석을 초월한 용기있는 개체가 아닌 이상.

J는 오늘의 스무번째 골판지를 뒤집었다.

"덱!" "테갹!" "테치!" "렛!" "레후.."

이번 골판지에 살던 실장석 일가는 꽤나 가족간에 애정깊은 일가였는지,
엄지와 구더기조차 운치굴로 보내지 않고 키웠던 모양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사람이 버리고 간 스티로폼 조각등의 보온재가
주변에 어지럽게 떨어진다.

날벼락을 맞은 친실장은 겨울의 칼바람에서 자들을 보호하며
J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난다.
경험있고 현명한 친실장은 아는 것이다.
지금 인간에게 대들어봤자 죽음뿐이다.
겨울에 맨몸으로 맞서는 것도 죽을 확률이 높지만,
인간에게 덤비면 확실한 죽음이다.

친실장은 약간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했다.
그것도 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보호하면서.
애호파가 봤더라면 눈물을 폭풍처럼 쏟았겠지만,
아쉽게도 J는 정해진 돈을 받고 정해진만큼 일하는 무관심파 용역이었다.

"테! 테치! 테테치!"

가장 덩치가 큰 자실장.
아마 장녀일 자실장이 무언가 깨닫고 친실장에게 외친다.

구더기 막내챠가 하나 모자라다.

"데! 데뎃스? 데스!"

친실장은 당황해서 두리번 거린다.
친실장의 눈에 골판지 박스를 뒤집을때 채 떨어지지 않은
구더기 하나가 골판지 안쪽 벽에 있는 것이 보인다.
골판지 틈새에 끼인채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갑자기 사라진 마마와 자매들을 찾으며. 색눈물을 흘리며.

"레! 레후! 레후우!"

친실장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눈물을 삼키며 친실장이 돌아서려는 그때,

"텟치! 테테챠아!" "데! 데후아!"

차녀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친실장은 뒤늦게 당황해서 말리려했지만,
겨울만 지나면 성체가 되어 독립할 정도로 자란
자실장,
거기다 평소에 재빠르고 행동력이 있는 차녀를 막기엔 너무 늦었다.

J의 발밑까지 뛰어온 차녀는 열심히 J에게 외친다.

"텟치! 테테찌! 테치테치 테치아!"

닝겐상 집을 돌려주시는테치. 겨울인테치.
집이 안된다면 우지챠라도 돌려주는테치.
집에 우지챠가 남아있는테치.

자실장의 한계를 초월한 용기를 짜낸 차녀.
열심히 인간에게 호소한다.
애호파가 봤다면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질 장면.
하지만 J는 무관심파며, 링갈도 없다.

J는 자실장 하나가 자신의 발밑으로 다가와서 뭐라고 외치는걸 들었다.
평소 TV에서 흔히 나오는 들실장의 생태에 관한 다큐에서
그들의 이기심과 흉포함에 대해 많이 본 J는,
으레 흔한 분충발언이겠거니 하고 허리춤의 제압봉을 빼든다.

끝부분에 강력한 전압을 걸어 순간적으로 전류가 흐르게 하는
대인용, 대실장용 제압봉은 공원 미화 작업을 하는 인부들에게 지급된다.

J는 자실장에게 길쭉한 제압봉을 갖다대고 스위치를 누른다.

"테?"
ㅡ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ㅡ
"테삐챠기이이이이이이익! 테케뵤오오오오오오! 찌기이이이잇!"

마음약한 사람이라면 자실장을 무력화 시킬 정도로만 했겠지만,
J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매뉴얼에 적힌대로 5초를 채웠다.
연약한 자실장의 내부까지 고전압 전류가 확실히 태워버리기에 충분하게.

풀썩 하고 차녀가 쓰러진다.
숨만 겨우 붙은 차녀는 흐려져가는 의식속에서 어미를 찾아 손을 뻗는다.
그러나 차녀의 눈에는 자신을 버리고 뒤돌아서는 어미가 보인다.

'기다리는테치.. 버리고 가지 마는테치.. 와타치 살아있는테치 마마...'

친실장이 멀어져서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된지 조금 뒤.
파킨 하는 건조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들실장에게 용기는 사치다.
그런 한 겨울날의 풍경이었다.








어느 자실장의 일기


-아타시는 일가의 장녀인테치.
공원에서 상냥한 마마랑 귀여운 차녀랑 살고있는테치.
삼녀도 같이 살았었지만 지금은 사육실장이 된 테치!
마마는 착한 아이가 되면 사육실장이 될수있다고 했던테치.
삼녀는 착한 아이라 상을 받은게 분명한 테치.


-테에엥... 지나가던 닌겐에게 머리를 채인테치.
정신을 잃었다가 깨보니 집이었던테치.
머리는 너무 아야아야했지만 "죽지 않아 다행인데스우" 라며 마마가 아타시를 껴안아줘서 좋았던 테치.


-머리가 아야아야한건 없어졌는데 그 뒤로 뭔가 이상한테치.
마마랑 차녀쨩 위에 이상한 숫자가 보이는테치.
아타시는 마마한테 숫자를 배워서 읽을수 있는테치!
마마는 19 차녀쨩은 1이라고 되있는테치.


-숫자의 비밀을 알겠는테치!
이건 분명 신님이 착한 일 점수를 매기는게 분명한테치!
오늘 공원의 나쁜 보스랑 부하가 와서 마마를 괴롭힌테치!
그리고 그 둘의 머리 위에 0이라고 적혀있는걸 똑똑히 본 테치!


-테엥... 마마랑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아타시를 비춰주는 깨진 반짝반짝을 본 테치...
그런데 아타시의 머리위의 숫자는 1이었던테치.
아타시는 계속 착한 아이로 있었는데 신님은 너무한테챠!


-나쁜 보스의 부하들이 마마를 또 괴롭힌테치!
둘이 왔는데 둘다 점수가 0이었던테치!
다행히 마마랑 친한 이웃의 아줌마가 말려줬던테치.
착한 아줌마 점수는 26이었던테치.
0점짜리 나쁜 실장석은 언젠가 신님에게 벌을 받을게 분명한테치!


-자고 일어나보니 차녀가 없어진테치.
마마한테 물어보니 닌겐이 와서 사육실장으로 만들었다고 한 테치!
분명 아타시랑 똑같은 1점이었는데 어째서 차녀쨩만!
아타시는 테엥테엥 울고말았던테치...
마마는 아타시를 안아주면서 장녀쨩은 착한 아이니까 곧 사육실장이 될수있다고 말해준테치.
아타시는 겨우겨우 울음을 꾹 참은테치.
그러자 마마가 착한 아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테치!
눈물을 닦고 보니 마마의 점수는 20점이 되있던테치.
분명 차녀쨩을 행복한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걸 보고 신님이 점수를 준게 분명한테치.
아타시가 울음을 그치니까 마마가 차녀를 데려간 닌겐이 줬다면서 음식을 가져온테치.
그건 평생에 딱 한번밖에 못 먹어봤던 스테이크였던테치!
아타시도 모르게 마구마구 먹어버린테치.
그런데 마마는 어쩐지 먹지 않았던 테치.
아타시가 같이 먹자고 하니까 마마는 이미 먹어서 배부르다고 한 테치.
분명 아타시를 배불리 먹이려고 양보한게 분명한 테치.
마마는 너무 상냥한 마마테치.


-아타시의 점수가 오른테치!
마마랑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깨진 반짝반짝을 본 테치!
점수가 2점으로 오른 테치!
아타시도 곧 사육실장이 될게 분명한 테치!


-보스랑 0점짜리 부하들이 옆집 아줌마를 죽인테치...
아타시는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가 덜덜 떨고있었던테치...
마지막으로 본 착한 아줌마의 점수는 28이었던 테치...
어째서 신님은 0점짜리 분충들을 계속 봐주시는테치?


-테엣! 대박인테치!
마마가 아타시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다고 한 테치!
마마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내일 아침 일찍 닌겐을 만나러 갈 테니 얼른 자라고 한 테치!
아타시는 착한 아이니까 마마의 말을 잘 듣는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닌겐상에게 부탁해서 마마랑 같이 사는테치!
너무 행복한테치.
내일 눈을 뜨면 아타시도 사육실장인테치!








가보


며칠을 굶었다. 친실장도, 자실장도. 추자였던 엄지와 구더기마저 알뜰하게 아껴먹었음에도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다. 운치를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십수번을 반복했더니 더 이상 나오는 운치도 없다.

그러나 아직 먹을 것은 있다.

아직도 자실장인 차녀는 물론이고, 이미 말투가 테스로 바뀐지 좀 된 장녀마저도 언청이 입에서 새어내리는 슬라임 같은 침을 애써 꼴깍 삼켜대며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처럼 건조하고 추운 계절 - 겨울씨의 습격으로 인해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친실장은 입을 꽉 닫으라고 강조했지만, 역시 기형적인 구조의 입으로 그러라는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이 일가는 며칠이나 굶었고, 바닥을 드러낸 보존식 창고 밑바닥에서 친실장이 꺼내든 최후의 그것은 두 자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콘페이토. 그것도 자실장 뚝배기만한 사이즈. 특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달콤한 행복의 덩어리를 보고도 장녀와 차녀가 달려들지 않는 것을 보면 친실장이 솎아내기는 확실히 한 듯 하다. 극심한 허기 속, 꾸르륵거리는 분대를 움켜쥐면서도 적녹의 두 눈을 반짝이며 그들은 콘페이토를 동경하듯 바라보고 있다.

비닐로 잘 포장된 콘페이토. 모든 실장석이 껌뻑 죽는다는 핑크핑크한 빛깔 - 정확히 말하자면 벚꽃 색 - 의 콘페이토. 여름의 열기에 살짝 녹아내린 흔적이 있지만, 어차피 원래 모양도 울퉁불퉁해서 여간해서는 티가 안나는 완벽한 콘페이토. 자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차녀챠... 와타시를 때려보는 테스..."

비록 힘이 없어 조곤조곤 말하지만, 확실히 알아들을 수는 있게 장녀가 말했다. 장녀는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의 행복회로가 만들어 낸 환상인지 의심되었다. 어떻게 저런 보물이 뜬금없이 자기네 골판지 하우스에서 나올 수 있냐는 거다. 사실 지난 밤에도 스테이크와 스시를 잔뜩 먹는 꿈을 꾸었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꿈에서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장녀는 현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지만, 친실장과 차녀가 물 씨가 나왔다며 양 쪽에서 달라붙어 쪽쪽 빨아먹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 이 일가의 상황이었다.

"테븃-!"

차녀가 옛날에 엄지 후드려패던 힘을 겨우 쥐어짜내어 장녀에게 한껏 죽빵을 갈겼다. 장녀의 부탁이기 때문에 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실려있다고는 말 못한다. 하기야, 장녀가 요 며칠간 계속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면 그 누구라도 차녀와 똑같이 할 것이지만. 덕분에 거하게 얻어맞은 장녀는 자신의 뺨이 얼얼한 것을 깨닫고는 눈 앞의 별사탕이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마마, 진짜 콘페이토인 테스우?"

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녀와 차녀는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마우마다. 우마우마지만 우마우마 중 특히 맛나다는 아마아마이다. 아마아마한 것. 아마아마한 꿈. 아마아마한 행복......일까? 영특한 편인 차녀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 아직 겨울 씨가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메로메로되어 물러가주기 전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머리만한 콘페이토라 해도 저걸 먹으면서 그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

"테에에... 마마... 혹시 최후의 만찬인 테치? 막판 스퍼트 테치?"

"바보같은 소리 집어치우는 데스. 이건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는 매우 소중한 것인 데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데스."

친실장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콘페이토의 역사만큼이나 묵어있던 그 한숨이다.

"...이 콘페이토는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아무튼 매우 옛날옛날부터 전해내려온 일가의 소중한 보물 데스요."

친실장이 말해준 콘페이토의 역사는 이러했다. 사육실장이었던 이 일가의 (세대로 따지면) 먼 것 같으면서도 (년 수로 따지면) 의외로 가까운 조상이 멋대로 자를 가져 주인에게 쫓겨날 당시 그래도 정은 들었는지 작별의 선물이라고 받은 특제 콘페이토. 주인이었던 남자는 사육실장이 공원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들실장이 시비를 걸면 이것을 주라고 했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뇌물 격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다행히 당시의 공원은 풍족했던지 사육실장은 기적적으로 이것을 사용하는 일 없이 공원에 무사히 정착하여 지금까지 대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 콘페이토를 사육실장은 주인과의 인연을 이어주는 그 특수한 무언가라 여기고는 일절 손대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다. 그것의 자들이 독립할 때가 되자 사육실장은 그 중 제일 똑똑한 자 - 일가실각 안 당할 만한 자 - 에게 그것을 물려주었다. 그 자는 또 자신의 자에게 물려주었다. 이것이 이어져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사족 : 콘페이토는 설탕으로 이루어져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상하거나 썩지 않는다.) 그러나 콘페이토의 역사는 오늘 친실장에 의해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을 보스 상에게 가져가 다른 먹을 것으로 바꿔오는 데스."

이 공원의 현 보스는 단 것이라면 미칠듯이 좋아한다. 가끔 들실장들이 애호파가 뿌리는 콘페이토를 여러개 받아다 보스에게 바치면 다른 먹을 것이나 독라노예 등으로 바꿔주곤 하였는데, 이 한겨울에도 풍족하게 지내는 보스에게 이 커다란 콘페이토를 바치면 봄이 올 때까지 버틸만한 양의 도토리, 실장푸드, 물, 독라달마 자판기를 받고도 남을 것만 같다. 일가 대대로 내려온 가보이긴 했지만... 친실장은 굳게 결심했다.

"와타시에겐 가보도 소중하지만, 장녀챠와 차녀챠 너희들이 제일 소중한 보물인 데스."

"마마..."

두 자매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이제 더는 눈물을 핥아먹을 필요는 없다. 고생하던 나날은 이제 저만치 물러가고,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행복만이 멀리서 일가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스테이크, 주인님, 분홍 드레스, 마카롱, 흑발의 자, 세상을 가득가득...



"그럼 다녀오는데스."

차녀에겐 골판지 밖은 위험하므로 혼자서 집을 보게 했다. 어차피 지금같은 때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닌겐도 없고, 동족의 습격에 대비해 골판지에는 일종의 잠금장치도 있다. 보스가 보상으로 준 식량이 많을 때를 대비하여 장녀는 같이 데려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듯 비닐봉지를 양 어깨에 걸치고, 그 안에 소중한 가보를 넣었다. 차녀가 골판지 안 낙엽속에 파고들어간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장녀와 같이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보스의 골판지로 향했다.

"데... 데에에... 저게 뭐인데스..."

아무래도 보스를 찾아갈 생각을 한 것이 친실장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보스의 대형 골판지 앞은 아껴둔 콘페이토, 초콜릿, 약간 남은 음료수 페트병을 들고 식량과 바꾸러 온 들실장들로 참산참해를 이루었다. 녹색의 물결이 우글거렸으나, 보스의 경호원들의 통제 하에 묘하게 질서가 지켜지고 있었다. 친실장과 장녀는 재빨리 줄의 맨 뒤에 섰으나, 곧이어 다른 들실장들도 몰려들어 일가의 뒤로 쭉 늘어섰다.

이러면 곤란해진다. 앞에 있는 실장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보스가 아무리 식량을 어마어마하게 쌓아놨다고 한들 친실장의 차례가 오기 전 그것들이 다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보다도 보스 또한 자기 먹을건 남겨놔야 하니 그보다 한참 전에 거래가 중단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걱정하는 친실장 앞에 한 차례 소동이 일어났다. 두건이 없는 한 들실장이 골판지 입구에서 끌려나와 내던져졌다.

"이러는게 어디있는 뎃샤아아아아아!!! 콘페이토 하나에 고작 실장푸드 두 알이라니 이게 무슨 창렬인 뎃샤아아아아아!!!!!!"

경호실장도 이에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창렬은 오마에인 데스! 콘페이토 하나를 자판기 하나로 바꿔달라니 코로리라도 한사발 들이킨 데스? 평소 같았으면 오마에를 자판기로 만들었겠지만 지금 몰려든 실장이 많아서 이정도로 봐주니 썩 꺼지는 데스!"

물론 저 분충의 잘못도 있지만, 보스 쪽의 조건도 여름에 비해 시세가 너무 변했다. 친실장은 긴장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온 콘페이토는 보통 콘페이토의 수십 배는 될 크기이다. 보통 콘페이토가 실장푸드 2개라면 이 정도 크기의 콘페이토는 꽤 풍족한 양이 될 것이었다. 친실장과 장녀는 다시 희망을 가졌다. 저 폭리에 오히려 앞에 있던 들실장들 다수가 투덜대며 줄에서 나와 발걸음을 돌렸다. 게다가 친실장의 차례가 올 때까지 보스가 모아둔 식량도 충분히 남으리라. 장녀는 어느새 행복회로를 가동하여 보스가 스테이크로 바꿔주는게 아닐까 하며 침을 흘렸다.

어느덧 차례가 되어 보스의 골판지 안으로 영광스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친자. 보스의 거처는 일반적인 종이 골판지가 아니라 이삿짐 센터에서 흔히 쓰는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를 여러개 이어붙인 형태였다. 궁전같은 내부 한가운데에 분홍 수건을 왕좌처럼 깔고 앉은 보스실장은 손짓 하나만으로 친자를 멈춰세웠다. 친실장은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자랑스럽게 그 가보를 꺼내보였다.

"!!!!!!!!"

보스도, 경호실장도, 독라노예마저도 모두 거대한 콘페이토의 위력에 압도되어 휘둥그레진 두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특히 보스는 이미 콘페이토에 메로메로되어 체통도 잊고 달려나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비닐에 싸인 콘페이토를 만져보았다.

"이거 실화인 데스우?"

"데프프프, 세레브한 와타시의 일가 대대로 전해지는 가보인 데스."

얼씨구, 자랑이다. 월동준비 제대로 못해서 가보까지 팔러 나온걸 친실장은 자신감있게 말한다. 그러나 보스는 일가 대대로 전해내려온 보물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더욱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색깔도 크기도 매혹적이기만 한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이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에 보스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걸 자신에게 바치다니, 푸드 한 무더기에 물병 하나, 독라노예 둘을 하사해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다 주긴 아까우니까 독라노예는 하나만 줘야겠다고 보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단내가 풀풀 풍기는 데스우. 가짜는 아닌 것 같은 데스."

비닐을 벗겨 이 콘페이토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 아까 전에도 어디서 주웠는지 콘페이토랑 비슷하게 생긴 하얀 돌을 주워와 사기를 치려 했던 분충을 달마로 만들었었다. 그 분충은 자기도 몰랐다고 억울하다고 울부짖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자의 사정이다. 보스의 언청이 입에도 역시나 침이 흘러내렸다. 한 번만 핥아보자. 이런 귀중한 보물은 겨울 내내 아껴먹을 생각이지만 한 번 핥는다고 양이 크게 줄어들 건 아닌만큼 보스는 혀를 최대한 길게 빼내었다. 그리고는 콘페이토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쓱 훑었다.

"!!!!!!!!!!!!!!!!"

극상의 아마아마. 실장석 3대 쾌락 중 하나인 달콤함 - 나머지는 각각 프니프니와 총구 사이로 물체(운치, 마라, 자 등)가 통과하는 것 - 이 선홍빛 혀 표면의 미뢰를 지나 신경을 타고 보스의 온 몸으로 구석구석 퍼진다. 이 정도면 하늘로 승천해도 눈치 못 챌 정도이다. 그리고 독 성분 또한 식도를 지나 분태를 통해 보스의 온 몸으로 구석구석 퍼진다. 이 정도면 진짜 하늘로 승천할 독성이다. 보스는 쓰러졌다. 피를 토하며 장렬히 쓰러졌다. 극상의 아마아마로도 커버 못 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파킨 소리가 플라스틱 박스 하우스 내에 청명히 울려퍼진다.

"데에에에에에엣!!!!!!"

친실장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소중하게 여긴 가보가 코로리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친실장도, 친실장의 마마도, 친실장의 마마의 마마도... 지금껏 그 추악한 진실을 모른 채 그것을 실장생의 희망의 지표삼아 열심히 살아왔었다. 선조가 한때 사육실장이었다는 증표. 언젠가 그 혈통인 와타시들도 다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그것이 보스를 죽였다. 그렇다. 이제 마라되었다.

경호실장들이 보스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친실장을 쳐다보았다. 보스의 집 안에서 파킨소리가 들리자 구경거리라도 있나 몰려든 다른 들실장들의 주목을 한 번에 받은 친실장은 이제 큰일이 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경호실장이 보스가 죽었다고 소리쳤고, 갑자기 들실장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졸지에 보스 암살범이 된 친실장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다. 박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미 입구는 실장들 틈에 끼어 터지고 밟혀서 찌부가 된 시체들이 즐비했다.

피냄새 운치냄새 풀풀 나는 참상 속에서도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장녀의 손을 붙잡은 친실장은 더 안쪽으로 뛰었다. 경호실장들이 그들을 쫓아왔고, 위기상황에 초실장적으로 향상된 시력이 플라스틱 박스를 이어붙인 벽 아래쪽에 존재하는 약간의 틈을 포착했다. 친실장이나 장녀가 쉽게 통과할 크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친실장은 유일한 희망을 향해 장녀를 이끌었다. 그 약간의 틈 사이로 겨울일지언정 밝은 햇빛이 스며드는 광경은 마치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녀! 벌리는데스!"

그 틈은 양쪽의 플라스틱 박스 모서리가 각각 안으로 휘어있기에 생성된 틈. 친실장과 장녀가 하나씩 붙잡고 당기면 당연히 틈은 좀 더 커질 것이다. 소재가 플라스틱인지라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두 실장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당기자, 마치 기적처럼 성체실장도 통과할 사이즈로 구멍이 늘어났다. 친실장이 잽싸게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고, 장녀가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생각한 대로만 풀리면 그것이 과연 실장생일까? 친실장이 무사히 밖으로 나왔으나, 장녀는 친실장을 따라나오다 도로 줄어든 구멍에 꽉 끼어버려 역시 실장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을 알차게 증명하고 만다. 방법이 없다. 구멍을 다시 벌리려면 안쪽에서 모서리를 잡아당겨야 하지, 바깥에서 어떻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닌겐이 개입하여 박스채로 뽑아버리면 모를까. 아, 물론 그럴만한 인간이 여기에 있다면 친실장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지만 말이다.

"마마! 살려주는 테스!"

친실장이 장녀를 당겨봐도 가망이 없다. 안그래도 며칠을 굶었다. 더 이상 이런 추운 곳에서 에너지 낭비를 하면 집에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 굳게 결심한 친실장은 뒤로 물러났다.

"이러다간 우리 둘 다 죽는데스."

"하, 하지만 아까 와타시를 소중하다고 하지 않은 테스!!!"

눈물나는 장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친실장은 뒤로 돌아서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마에보다는 역시 와타시가 소중한 데스우!!! 자는 또 낳으면 되는데스!!!!"

버려진 장녀는 배신감에 피눈물을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데시벨이 너무 커서 링갈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테스테스 거리는 소리. 어차피 번역 안해봐도 뻔한게, 친실장을 저주하는 내용일 것이었다. 설마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표정에 탁해지는 두 눈으로 마마에게 꼭 살아남으라고 행운을 빌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친실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친실장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들실장이 보스의 집 안으로 달려든 이유. 안쪽으로 도망가는 친자를 경호실장이 쫓아온 이유. 사실 양 쪽 모두 보스에 대한 보복으로 친실장에게 린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보스가 죽었으니 이제 보스 집 내부 식량창고에 쌓여있는 식량은 모두 먼저 집어가는 놈이 임자라는 규칙이 생겨난 것 뿐이었다. 물론 만약 친실장이나 장녀가 눈치가 빨라서 이 사실을 알아내 자기들도 식량을 챙기러 더 안쪽으로 달려갔다 하더라도 수많은 들실장들이 높은 밀도로 붐비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턱없이 적었겠지만, 만일 더 눈치가 빨라서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피했다가 입구로 빠져나갔다면야 둘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죽은 동족들 시체라도 조금이나마 챙겨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친실장은 가보를 잃었다. 장녀도 잃었다.

그러나 아직 차녀는 있다.



"마마, 다녀온 테치?"

얌전하게 집을 보던 차녀가 친실장을 맞았다. 친실장은 한참을 뛰어온 터라 무척 지쳐있었다.

"장녀 오네챠는 어디있는 테치?"

며칠을 굶었다. 친실장은. 추자였던 엄지와 구더기마저 알뜰하게 아껴먹었음에도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다. 운치를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십수번을 반복했더니 더 이상 나오는 운치도 없다.



그러나 아직 먹을 것은 있다.



친실장은 언청이 입에서 새어내리는 슬라임 같은 침을 애써 꼴깍 삼켜대며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처럼 건조하고 추운 계절 - 겨울씨의 습격으로 인해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분보충은 이제 충분히 할 것이었다.

차녀. 뚝배기가 한때 가보였던 대형 코로리만한 사이즈. 중실장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그 행복의 덩어리를 보고 친실장은 달려든다. 극심한 허기 속, 꾸르륵거리는 분대를 움켜쥐면서도 적녹의 두 눈을 반짝이며 그것은 차녀를 바라보고 있다.

두건으로 잘 포장된 머리통. 뜯어내면 모든 실장석이 껌뻑 죽는다는 우마우마한 육즙의 고기. 여름의 열기에 살짝 화상이 입은 흔적이 있지만,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 완벽한 고기. 그것을 맛보는 친실장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