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첨부된 사진들은 전부 실제 미술관, 실제 판매중인 작품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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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천재 화가가 있었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의 이름이 철웅이라는 것
외에는 작가의 대해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의 작품과 인기는 날이
지날수록 높아져 어느새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말한다. 현대 미술이라는 것들은 그저 캔버스
에 점 하나, 선하나 찍 긋고는 '여기에 어떤 숨겨진 뜻이 있다,'. '작가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생동감 있는 작품이다.' 라는 평가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높은 가
치를 매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아주 흔하고도 독창성 없는 바로 그 현대 미술
중에 하나였다. 그저 녹색으로 캔버스를 칠한 것. 수십 개의 작품이 전부 그랬다.
하지만 모든 미술품 감정사들은 그의 작품에 최고에 가치를 매기는 것을 주저
하지 않았고, 어떤 일반인도 그의 작품을 폄하하려 들지 않았다.
일본의 유명 미술 평론가 토시야키는 말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기이한 생명력과 생동감, 열망이 느껴지고 그가 작품들에
사용하는 녹색빛은 어떤 배합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세상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날로 높아지는 그의 인기에 더불어, 한 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전을 열게 되었
고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감정사들과 지식인들, 일반인들까지 모두 몰려와서
미술관은 거의 마비가 올 뻔 했지만, 총 7일의 작품전 기간중 앞의 6일은 일반인
들이, 나머지 하루에는 감정사들과 지식인들이 전세를 내고 관람하는 것으로 결
정함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의 전시전은 꽤나 평범했다. 전시장의 가운데에 큰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있
다는 것을 빼고는 각 벽면에 그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전형적인 형태였다.
첫날부터 5일째까지, 일반인들이 관람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관람객들
에게 단 하나의 불만이라 함은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있지만 가동하지 않고 있
다는 점이였다.
"역시 천재다 천재다 해도 자기 작품은 감정사들에게 먼저 보여준다는 건가?
스크린과 프로젝터는 마지막날 전문가들에게만 보여줄 껀가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새 작품을 보는 걸로 만족하는 수 밖에, 그런데 이번 작
품은 어떤 종이와 색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보여.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작품명 183. 이번 전시에 첫 공개된 새 작품을 보며 한 여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183?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리고 여기 와서 스크린 아래를 봐봐."
스크린 아래에는 마치 이것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듯 제목이 써있었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미완성'
스크린 아래의 제목과 작품들, 새 작품의 녹색빛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남자는
여인에게 말했다.
"난 왠지 알꺼같아. 마지막 날 이 미술관에는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날꺼야."
그렇게 말한 여인과 남자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새 전시일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 세계 각국의 미술품 감정사, 전문가, 지식인들은 모든 작품들의 관
람을 마치고 스크린 앞에 모여서 프로젝터가 켜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철웅 작가님이 그린 작품들의 비밀을 공개한다는 말이 있소, 아는 사람
들은 다 알겠지만 그 소문을 듣고 당신도 온거겠지?"
"후우, 당신도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군. 과연 저 신비한 녹색의 작품들은 도대
체 무슨 붓으로 무슨 종이에 어떻게 그리는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소근소근 떠들던 사람들이 잠잠해지자 스크린 뒷편에서 철웅이 걸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철웅입니다. 오늘 저와 제 작품들을 보러 와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미리 들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 작품들의 비밀을 보여드리려
고 합니다. 스크린에 동영상을 재생할테니 재미있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스크린에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며 관람을 시작했다.
동영상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였다.
철웅은 빈 캔버스 앞에서 붓을 이리 쥐고 저리 쥐며 그림을 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여러 붓을 번갈아가며 써보기도 했지만 영 마음에 드는 눈치가 아니였다.
철웅의 옆에는 그가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친실장과 저실장, 구더기가 그를 쳐다
보고 있었다.
"젠장, 이게 아니야. 이런 붓으로는 내가 원하는 질감을 표현할 수가 없어. 이런
그림으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있던 붓을 분질러버리는 철웅
[주인상, 오늘도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 데스?]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던 친실장이 말했다.
"미도리......그래 오늘도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수가 없구나. 어서 좋은 그림을
그려서 부자가 되야 너희들한테 스시도 사주고 스테이크도 사줄텐데 말이야."
[데뎃??스테이크와 스시같은 우마우마 말인데스? 미도리는 괜찮은데스. 그저 주
인상과 같이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좋은 데스으....]
옆에 있던 구더기도 한마디 거든다.
[구더기는 스시 먹고싶은 레후! 스테이크도 좋은 레후! 하지만 그보다 좋은건 바로
프니프니인 레후!! 프니프니를 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레후!]
[데에......와따시의 자 지만 정말 귀여운데스. 주인상, 와따시와 구더기가 주인상을
도와주는 데스!]
"어떻게 말이니 미도리야?'
[주인상이 프니프니를 해주면 되는데스! 구더기의 귀여운 머리와 옷, 꼬리를 보면서
프니프니를 하면 주인상의 기분도 풀릴 것인데스!]
철웅은 대답없이 프니프니를 한다.
[레후~~역시 주인상의 프니프니가 최고인 레후! 마마의 프니프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레후우~~~~ 구더기 좋아서 운치 지리는 레후!]
손에 묻은 운치를 닦기 위해 한손으로 구더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티슈를 뽑던
철웅은 그 순간 돌처럼 굳어버렸다.
습관처럼 붓을 잡는 방법으로 구더기를 잡은 손을 바라보는 철웅.
그리고 미도리를 한번 쳐다보고, 구더기를 한번 쳐다보고, 붓을 쳐다보고, 다시 그것
을 반복하면서 중얼거린다.
"귀여운 머리......귀여운 머리......도와준다고? 머리?붓?프니프니?"
철웅의 눈이 커지며 마치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 바로 그거야! 구더기야 정말 날 도와줄 수 있겠니?"
그를 미친 사람 쳐다보듯 보던 구더기가 대답했다.
[구더기를 어려운거 몰라레후~프니프니~프니프니~]
[마마인 와따시가 대신 대답하는데스. 구더기는 주인상을 위해 뭐든지 어서 하는데스!]
"고맙다 미도리야. 고맙다 구더기야. 정말 고맙다......"
화면이 바뀌며 철웅은 구더기를 들고 책상에 앉는다. 손에 칼을 들고 구더기를 쳐다보
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구더기의 배를 가르고 위석을 꺼내 미리 준비한 컵에 위석을 담
는다. 컵에는 초 재생액이 가득 담겨있다.
[레삐이이이이잇!!!!아픈레후! 아픈레후!]
"미안하다 구더기야 조금만 참아주렴"
초 재생액 덕분인지 구더기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철웅은 손을 멈추지 않는다.
구더기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서 앞으로 모으고 레진 코팅재를 머리카락과 입을
제외한 구더기의 몸에 정성스럽게 발랐다.
"이제 니가 나의 붓이 되어주는거야 구더기야"
아픔이 사라지자 구더기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레후? 붓씨가 되는 레후? 그런거 모르는 레후! 프니프니를 해주는 레후!}
"걱정마렴. 프니프니......영원히 프니프니를 해줄께."
[프니프니를 영원히 해주는레후?? 구더기 너무 쪼은레후!신나는레후! 근데 몸씨가 이상한
레후. 몸씨가 움직이지 않는레후. 딱딱한 레후! 움직일수가 없는 레후!! 레훼엥........]
딱딱하게 굳어진 구더기를 이리 저리 잡아보더니 마음에 드는지 싱긋 웃음을 지은 철웅은
구더기의 머리카락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구더기(붓)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구더기의 배 부분을 누르게 되어 구더기는 기분좋은
표정을 한다.
[프니프니후! 너무 쪼은 레후! 좋아서 운치가......운치가? 운치가 안나오는 레후! 그래도 좋은
레후~~!]
초 재생액에 위석을 담구고, 레진으로 딱딱하게 굳은 구더기는 먹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영
원한 프니프니를 받을 수 있어 파킨!하지도 않는 정말 붓이 되어버렸다. 다만 일반적인 붓과
다른 부분은 그림을 그릴 때 계속 소리를 낸다는 점 정도일까.
[와따시의 자가......와따시의 세레브한 구더기짱이 붓이 되버린데스......오로롱~오로롱~]
"미도리야, 너와 구더기가 말했잖니. 나를 도와준다고. 구더기는 행복하니까 걱정하지 마렴,"
화면이 바뀌며 사진들이 지나간다. 새 붓(구더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꽤나 잘 팔리게 된 철웅
의 작품들이 팔리는 모습들. 그로 인해 어느정도 살림살이가 나아진 철웅의 집. 그리고 스시
와 스테이크는 아니여도 고급 실장푸드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미도리, 영원한 행복을 느끼게
된 붓, 아니 구더기짱의 사진이 지나가고, 처음과 같은 구도에서 다시 영상이 이어진다.
"젠장, 이게 아니야! 이런 물감으로는 내가 원하는 색을 표현 할 수가 없어. 이 정도의 깊이감
으로는 내가 원하는 생동감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있던 붓(구더기)를 분지를 뻔 한 철웅. 다행히 구더기의 [레뺘아아아아앗!]
하는 소리를 듣고 손에 힘을 푼다.
"후우, 구더기를 부러뜨릴 뻔 했군."
그를 쳐다보고 있던 미도리가 입을 연다.
[주인상, 다시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데스? 구더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데스. 주인상은 약속
을 지키는데스. 스시와 스테이크는 어디 간 데스? 산책은 언제 가는데스?]
"미도리야 예전에는 괜찮다고 했잖니. 그리고 고생은 구더기가 하고 있단다. 산책은 어제도 나
갔다 왔는데 조금만 참아주려무나."
살림살이가 나아진 철웅이 너무 잘 대해줘서일까? 고급 실장푸드를 먹으면서 땡깡을 부리던
미도리는 어느새 분충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듯 했다.
[데샤아아아아아앗!!!! 주인상은 약속도 안 지키는데스. 예의상 거절한 건데 그것도 모르는데스?
바보인 데스? 어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주는데스! 안그러면 주인상은 운치나 맞는데스!!]
투분을 하기 시작한 미도리. 미도리의 녹색빛 운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지만 모자란 힘
탓에 철웅이 아닌 철웅이 그리던 캔버스에 착지하고 말았다.
"미도리야! 오냐오냐했더니 니가 점점 기어오르는구나. 이 캔버스에 운치 묻은거좀 봐 어떻게
할꺼야? 마음에는 안들어도 그리던 그림인데, 이 운치 묻은 것좀보렴. 색이......색이?색이......내가
원하던. 아름다운.......녹색빛이구나......"
캔버스에 묻은 운치는 철웅이 그리던 녹색빛의 물감과 섞여 정말 아름다운 녹색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구더기를 붓으로 만들때와 같은 표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철웅의 눈에는 어느새 광기마
저 감돌고 있었지만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젓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미도리에게 말했다.
"고맙다 미도리야. 이번에도 니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 색이라면 내가 원하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거야."
[고마운데스? 고마우면 스시랑 스테이크를 얼른 대령하는데스! 주인상은 역시 와따시가 아니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데스~ 구더기에 이어서 세레브한 와따시가 주인상을 구원한데스~~]
철웅은 대답도 없이 달려나가 유리로 된 수조를 주문했다. 주문한 수조의 바닥에는 원형으로 구멍
을 뚫고 그 아래에 물감을 풀어놓은 양동이를 놓았다. 고급 실장푸드도 평소와는 달리 20kg이나
주문하고 미도리를 데려와 수조에 넣었다.
"미도리야 이제부터는 많이 먹고! 많이 싸려무나. 여지껏 풀어놓고 길렀다가 수조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도 이제 너의 운치를 한곳에 모아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단다. 대신 니가 좋아하는
고급 실장푸드를 원하는 만큼 잔뜩 줄께."
[잔뜩?잔뜩인데스?스시와 스테이크는 아니더라도 아마아마를 잔뜩 준다하면 특별히 미도리가 용
서 해주는데스. 데프픗. 그런데 산책은 언제 가는데스? 그리고 이 좁은 곳에 세레브한 와따시는 살
수가 없는뎃]
"아니야 미도리야. 살 수 있어. 많이 먹고 많이 싸자."
이 남자의 눈에 깃든 그림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것에 압도된 미도리는 하려던 말이 끊겼지만 더
이상 잔말하지 않고 실장푸드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다.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작품들이 하등생물인 실장석의 똥.......운치를 섞은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였다는 사실은 그
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개진 한 평론가가 철웅에게 외쳤다.
"철웅 선생. 이게 진짜인가? 당신 작품들의 그 신비한 녹색빛이 고작 실장석의 똥이였다고? 지금
우리들을 놀리는 건가? 아니 놀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우선 끝까지 영상을 보시지요. 질문은 그 뒤에 받겠습니다."
울그락붉그락해진 표정의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농락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우선 참고 끝까지 영상을 관람하였다.
화면에는 이전보다 더 성공한, 지금의 철웅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는 사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작품들에 매겨지는 가격들, 그의 작품과 신비한 녹색빛(운치)에 대한 칼럼과 감상들이 적힌
잡지와 신문들. 일약 슈퍼스타가된 철웅과 철웅의 거대한 저택. 그와 함께 그토록 원하던 스시와
스테이크를 양 손에 들고 와구와구 먹는 미도리의 사진도 함께였다.
철웅의 새 대저택에서 영상이 이어진다. 구도만큼은 처음과 같다. 철웅, 그리고 반쯤 그리다 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 붓(구더기)와 물감(운치). 달라진것은 세레브한 실장복을 입고 유리
수조에서 운치를 누고 있는 미도리였다.
"젠자아아아앙!!!!!!! 이게 아니야!!!!좀 더, 좀 더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불어 넣은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여느 때와 같이 광인처럼 소리소리를 지르며 등장하는 철웅.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미도리는 반응도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영감 불어넣고 방법을 찾아주던
미도리를 쳐다보며 철웅은 말했다.
"미도리야, 이번에도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하지만 이미 미도리는 구제할 도리가 없는 분충이 된지 오래였다.
[데프픗. 닝겐상은 또 세레브한 와따시가 필요한데스? 와따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스?
와따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똥노예인데스~ 와따시의 세레브한 운치나 가져가는데스!]
이제 주인상도 아닌 닝겐상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말을 들은 철웅의 이성의 실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껴지는 무력감에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철웅의 눈에, 분충이 되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정이 들었던 미도리는 더 이상 가족
이 아니였다.
수조에서 미도리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고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셀 수도 없을
만큼 주먹으로 내려쳐진 미도리는 이미 원래의 형태는 온데간데 없어진 녹색의 떡이 되어버리고 말
았다.
[데........샤....ㅅ..............데.....갸....ㄱ.........}
녹색의 떡, 녹색의 거대한, 미도리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유일한 흔적인 그 것을 철웅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미도리의 피, 미도리의 살, 미도리의 모든 것들이 섞인 그것. 녹색에 아주 희미한 살색, 조금의
붉은빛이 도는 그것을. 철웅은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5분째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영상을 시청하던 사람들에게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적막에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상황이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철웅은 소리질렀다.
앞서 영상에서 들렸던 그의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였다.
"이거야!!!!!!!!!!!!!!!!!!!!!!!!!!!!!!!!! 이거라고,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색이야. 이거면
생동감 넘치는, 아니 아예 살아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이게 정답이였어!
고맙다! 고맙다 미도리야!!! 정말 고맙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너는 내게 영감만을 주는구나.
영감을 주고 떠나는구나......"
철웅은 곧바로 실장샵과 구제업체에 전화를 한다. 어느 정도의 실장석이 필요할 지 몰라 여유있게
200마리의 실장석을 주문한다. 주문한 실장들이 도착하자 망치를 들고 실장석들을 으깨서 한곳에
모은다. 캔버스만한 크기가 될 정도로 모이자 레진 코팅제를 정성스럽게 발라서 굳힌고 겉면은 코팅
한다. 네모 모양으로 코팅된 실장석들의 시체는 마치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처럼 보였다. 철웅은
망치로 으깨고 남은 실장석들의 수를 세어본다. 1, 2, 3......17마리. 총 183마리의 실장석으로 만들어진
그 작품 밑에 조심스럽게 글씨를 쓴다. '183'
영상이 멈추는 순간 철웅의 작품들에 있던 유리막들이 열리고, 환기장치와 에어컨들이 전부 꺼졌다.
사람들은 그림들의 상태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유리막으로 작품들을 막아 놓았다고 생각했지
만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 철웅이 준비한 안배였다.
순식간에 전시장 안은 실장취와 운치냄새로 가득찼고 에어컨마저 꺼져 그 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토악질을 하는 사람, 심지어는 머리에 손을 올리면서 졸도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철웅!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화가가 아니야 그저 학대파이자 정신나간 인간이였군. 이건 그림이 아
니야. 당신의 광기일 뿐이지. 더 이상 이 미친곳에서 당신의 미친 짓에 맞장구 쳐줄 생각은 없네."
외마디를 남기고 속칭 '전문가', '감정사'들은 전부 전시관에서 빠져나갔다.
듣는 이 없이 철웅이 홀로 말했다.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 나의 작품들의 정체를 알고나니 다르게 느껴지는가? 작품은 달라진 것이
없거늘 달라진 건 오직 당신들의 평가와 시선뿐이지."
그러나 영상은 멈추지 않았다. 철웅은 이 현장을 처음부터 녹화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그의 인생
최고의 작품 상영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전부 전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스크린에 이어서 상영
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프로젝터가 멈추자 홀로 남은 철웅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미완성'
미완성이라는 부분은 스티커였고, 철웅이 그 부분을 때어내자 비로소 작품은 완성되었다.
'희생과 알량한 이중성에 대하여'
"나의 예술은 이로써 완성된다, 아니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게 조금 섭섭하군.
이것이야말로 예술, 살아있는 작품그 자체이거늘, 안그러니 미도리?"
[데........샤....ㅅ........]
작품명 '183'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든 아주 조그마한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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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철웅의 방식은 후세에 낭만파, 인상파를 뛰어넘는
'실장파' 또는 '학대파' 화가로 불리우는 하나의 장르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여인과 함께 미술관에 와서 철웅의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눈치챈
그 청년은 철웅의 뒤를 이어 '실장파' 화가가 되어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그것은 또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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