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놀이문화 '실장방'

 


강아지, 고양이에 이어 제 3의 애완동물이 되는 것은 아닌가 했던 실장석 열풍은 어이없으리만치 빠르게 식어버렸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장점 이면에 너무나 큰 단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장석 특유의 건방진 성격과 폭언, 개나 고양이의 몇 배에 달하는 양의 배설물 뒷처리, 툭하면 자들을 마구잡이로 낳아버려 처치곤란하게 만드는 출산욕 등등.  

게다가 후타바 제 1공원에서 있었던 들실장들에 의한 영아살해 사건은 실장석에 대한 여론을 아예 파멸적으로 뭉개버리기에 충분했다. 사실 동물에 의해 유아나 영아가 공격 당하거나 하는 사건은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이미 애완동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개와 달리 실장석은 이미 들실장들에 의해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져있는 상황이었고 결정적으로 개나 고양이 애완동물 업계의 견제로 붐은 빠르게 식고 말았다.

그러나 실장석 업계 역시 재빠른 대처를 취해, 기존의 '사육을 대상으로 한 개인점포 및 실장석 마켓'은 '잠깐 들러 즐기기 좋은 실장석 방'으로 변신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요즘 새롭게 생기고 있는 '실장방'이다.





 실장방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네, 두 분이요. 이쪽에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커플이 들어가자 알바생이 잠시 옆의 대기석으로 둘을 인도한다. 둘이 자리에 앉자 알바생은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처음 오셨나요? 네, 처음 오신 분들은 귀여운 실장석에게 먹이를 주고 실장댄스와 실장연극을 구경할 수 있는 애호 코스를 추천 드립니다. 30분, 60분, 90분 코스가 있구요, 또 말 안 듣는 나쁜 실장석을 호되게 혼내는 훈육 코스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커플은 잠시 고민하다가 여자가 "30분 코스로 보자" 하고 애호 30분 코스로 골라서 핑크 커튼을 젖히고 왼쪽의 출입구로 들어갔다.


그에 바로 뒤이어 검은 코트를 입은 신사가 들어왔다. 단골 손님인지, 알바생은 "데스 코스로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오른쪽의 훈육 코스쪽으로 데려갔다. 애호 코스로 들어가던 커플의 남자는 문득 들어가던 도중 메뉴에도 없는 '데스 코스'라는 말에 흘낏 뒤를 돌아보았지만 여친을 따라 그냥 애호 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호 코스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놀이공원에라도 온 듯 즐거운 음악이 천장의 스피커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오빠, 저거봐. 너무 귀엽다1"

여자는 남자의 팔뚝을 연신 때리며 너무 좋아라 했다. 

"하하"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 앞의 단상 위 실장댄스 무대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테치테치, 테치테치, 테테치 테치 테치!"

고가의 브리더 생산품으로 채워지는 애호 코스인만큼 실장 댄스의 수준은 대단히 높았다. 실장석이 이렇게 유연한 생물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다리를 쭉 찢어가며 일곱마리씩 좌우로, 열 네 마리의 자실장이 앞 줄에서 계속 캉캉 댄스를 주고, 그 뒷 줄에서는 요즘 핫한 인기 걸그룹 복장으로 그 안무를 어설프게나마 따라하는 다섯 마리의 자실장이 있었다.


"테치테치, 테치테치, 주, 죽는테치, 물을 마시고 싶은테챠!"
"닥치는테챠! 계속 다리 높이 유지하는테치!"
"사녀, 사녀! 힘을 더 내는테치!"
"앞 줄은 닥치고 다리 쭉쭉 올리는테치!"

전체적으로 연녹색 톤의 인테리어에, 죽 이어진 복도를 따라 유리 수조 속에서 열심히 실장댄스를 추는 자실장들. 지나가며, 혹은 앞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그녀들의 30분 짜리 공연 1회분을 감상하고 있는 즐거운 사람들의 표정과는 달리, 수조 속 자실장들은 간신히 표정을 유지하며 죽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초,총배설구가 찢어질 것 같은테치이이이!"
"참는테치!"

앞줄의 캉캉 댄스 팀은 너무 다리를 있는 힘껏 위로 계속 차올리다보니 총배설구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마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알고 있다. 중간에 못하겠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 자신들이 어떤 꼴을 겪게 될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든 30분간의 공연 1회 타임이 끝나면 다음 팀의 로테이션이 돌아가는 동안 쉬면서 콘페이토도 먹을 수 있다….




"춤은 대충 똑같은 패턴이네. 연극 보자"
"응"

남자는 서서히 지겨워졌는지, 옆의 수조로 눈길을 돌렸다. 옆의 수조에서는 실장 연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은 연극은 놀랍게도 < 햄릿 > 이었다. 실장석들이 대사를 치면, 린갈에 연결된 아래 설치된 모니터에 그 대사가 번역되어 표시되는 방식이었다.

"와, 이거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실장석을 훈육시킬 수 있을까" 

남자는 감탄했다. 

"계속 연습시키겠지 뭐"
"그런다고 되는 수준이 아니야 이건"

남자는 거기까지 말했다가 멈칫 하고는 다시 "수준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 말을 정정했다. 여친은 어깨를 으쓱하고 계속 연극을 감상했다.

"죽는테치, 사는테치, 그것이 문제인테치!"

연극은 한참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햄릿 역을 맡은 자실장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비통한 표정으로 연극 대사를 읇고 있었다. 남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실장석을 훈육시킨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하고 싶을 정도였다. 

남자가 너무 빠져들어가는 눈으로 연극을 바라보자 조금 심심해진 여자는 "됐어, 나 햄릿 몰라. 별로 재미없어. 옆에 먹이나 주러가자" 하고 남자의 팔뚝을 붙잡고 옆으로 끌고 갔다.

"그래"

옆 칸은 실장석들에게 콘페이토나 실장푸드를 줄 수 있는, 위의 칸막이가 뚫려있는 수조들이 있었다. 수십마리의 실장석들이 팔을 휘저으며 자신에게 먹이를 던져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물론 애호파 코스의 그것인만큼 먹이를 내놓으라던가 똥닌겐이라던가 하는 무례한 폭언을 쓰는 녀석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먹이를 던져주면 "감사한테치"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열심히 먹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와 쟤 봐. 너무 귀여워. 아 쟤한테 이거도 사줄래"
"그래"

실장푸드와 콘페이토는 무료로 줄 수 있고, 건 스테이크 조각과 미니 스시코스 12피스는 각각 500엔, 천엔의 추가금이 있었다. 여자는 건 스테이크 조각을 구입해서 실장석들에게 뿌려댔다. 

남자는 그 모습에 조금 씁쓸하게 웃었지만, 여친에게는 그저 "얘들 너무 귀엽다"라는 말을 건냈을 뿐이다. 그렇게 일련의 코스를 마치고 커플은 실장방을 나섰다. 



실장방. 꺼져가는 실장석 열풍을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한 신개념 놀이문화로, '동물과 놀고는 싶지만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은' 요즘 세대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사업. 

이후 메인드 사의 부도와 함께 실장석 산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기까지 근 15년 간 제법 훌륭한 창업 아이템으로 활약한 '실장방'의 추억은, 수많은 커플들의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다.



- fin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