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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참피 나래



진폐증 판정을 받은 이후, 정말 오랜만에 천생산공원에 온 철웅은 정말 기묘한 것을 보았다.
다 해진 녹색의 누더기를 걸친, 사람같은 생물체 하나가 두 손에 안경 닦는 헝겊을 돌돌 말아 든채 공원의 벤치에 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뎃승 뎃승 거리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켜서 보다가는 바로 시선을 다른데 둘 뿐이었다. 그러면 그 생물체는 또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 뎃승 거렸다.
엄마를 따라 공원에 온 어린이 하나가 핸드폰을 보더니 "엄마, 쟤 데려가고 싶어." 라고 말하자 그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안돼! 지지야. 지지. 저런거 만지다가는 병걸려요." 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황급히 가버리는 것이었다. 몇번이고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며 뎃승거리던 그 생물체는 그만 자리에 주저 앉더니 무릎에 헝겊을 놓아두고 오로롱 오로롱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철웅은 호기심에 옆에 앉아있던 중학생쯤 되는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 학생, 저게 뭐야?
- 아, 저거요? 참피예요.
- 그런데 왜 저러구 울고 있어?
- 네, 아까 제가 번역한 거 보여드릴께요.
그 학생은 핸드폰을 켜더니 링갈 화면을 철웅에게 보여주었다.
그 참피의 딸이 매우 아프게 되었으니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철웅은 그 순간 낳은지 며칠 되지 않아 죽어버린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군대를 제대한 후,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철웅은 일은 힘들지만 보수가 넉넉하다는 구미의 한 공장에 취직했고, 거기서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조산으로 낳은 첫딸은 인큐베이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집에 데려왔으나 그후 사흘을 채 못버티고 떠나가버리고 말았고, 아내도 반쯤 정신을 놓은채 연락처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힘든 야간근무를 마치고 낮에는 아내를 찾아 수소문하던 몇달이 지난 후 아내마저 영원히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철웅은 그 때부터 미친 사람처럼 일만 했다. 모두 자기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일이라고. 자기가 모자랐기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 둘을 지킬수 없었노라고 자책하면서.

그러나 십여년의 혹독한 노동은 철웅의 몸을 갉아먹었고, 그동안 악귀같이 모아두었던 재산은 악착같은 노동의 댓가인 진폐증이 다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철웅은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몸이 조금 괜찮을 때에만 간신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죽지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 쟤 내가 데려가야겠다.
- 네? 아저씨가요? 저거 산참피라 기생충이나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 괜찮아. 저 참피랑 얘기하려면 어떻게 해야돼?
- 잠깐만요. 아저씨 핸드폰 좀 줘보세요. 제가 링갈앱 깔아드릴께요.


학생이 깔아준 링갈앱으로 철웅은 그 산참피에게 말했다
- 울지마라. 네 딸의 병은 내가 고쳐주겠다. 네 딸을 이리 다오


산참피는 어둠속에서 빛을 본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더러운 헝겊쪼가리를 철웅에게 내밀었다.
그 헝겊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엄지참피 하나가 거의 말라붙어 있는 채, 초록색 옷 군데군데가 불룩 솟아나와 있는 것이었다.
철웅이 슬쩍 실장복을 들추자 그 안에는 커다란 진드기가 세마리, 작은 새끼 진드기가 대여섯마리 보였다.


아... 이런 이건 여기서 뗄수 없는데...
군대에서 짬고양이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본 경험이 있는 철웅은 이 진드기란놈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손으로 잡아 떼다간 머리만 남고, 그렇게되면 정말 뽑아내기 힘들어진다.








- 네 딸은 내가 집에 데려가서 고쳐주겠다. 여기서는 고칠 수 없어. 걱정하지 마라. 사흘 후에 네가 여기 오면 내가 네 딸을 돌려주겠다.
마마참피는 철웅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몇번이고 도게자를 했다.

철웅은 다 죽어가는 엄지를 집에 데려와서 십여년전 공장에서 쓰던 트위저를 찾아 진드기 대가리 부분을 깊숙히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다행히도 진드기들이 배가 불렀는지, 엄지참피가 죽었다고 판단했는지 쉽게 떨어져나왔다. 진드기를 제거한 후 엄지 입에 빨대로 물을 담아  몇방울 넣어 주고 두루마리 휴지로 이불을 만들어 감아주었다. 혹시 깨어나면 먹으라고 누룽지맛 사탕 하나는 작은 접시위에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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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치 레치 레에엥... 레에엥..."
철웅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 해가 뜬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질긴 생명력이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았던 엄지참피는 빼빼 마른 몸이지만 살아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철웅은 링갈앱을 켰다.

"마마 어딨는 레치? 와타치 무서운 레치. 레에엥..."
- 네가 너무 아파서 내가 고쳐줬다. 이제 안아플거다. 두 밤만 자고 몸이 다시 튼튼해지면 엄마에게 보내주겠다. 
"동생 우지차도 아픈 레치. 내가 없으면 프니프니 못하는 레치. 빨리 가서 우지차 프니프니 해 주는 레치"
- 일단 네가 튼튼해져야 동생을 돌볼 수 있다. 밥을 먹고 물도 마셔라. 옷은 여기 내가 깨끗이 빨아 놓았으니 이걸 입어라.
엄지는 그때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철웅에게 도게자를 하고 철웅이 준 사탕을 핥기 시작했다. 눈물이 번진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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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가겠다는 철웅의 약속은 벌써 열흘째 지체되고 있었다. 엄지의 몸이 다 낫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흘 뒤 약속한 날에는 철웅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였고, 그 다음날부터는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철웅의 집은 해가 쨍쨍한 낮에도 컴컴한 반지하이므로 날짜가 가는 것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엄지도 약속한 사흘이 훨씬 지났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오늘은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렸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 왜그러니 나래야. 어디 아프니?
죽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이름,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떠나버린 딸이 너무 안타까워 불러주고 싶었던 이름인 나래라고 불리게 된 엄지참피는 다시 한번 도게자를 하고 철웅에게 말했다.
"닌겐상은 정말 고마운 분인레치. 와타치를 살려 주시고 매일매일 맛난 콘페이토도 주시는 분인 레치"
"하지만 와타치 마마가 생각나면 눈물이 나는레치. 마마 너무 불쌍한레치. 와타치 때문에 고생 많이 많이한 레치"
"와타치 오네챠 하나,둘,셋보다 많았던 레치. 벌레가 뜯어먹고 털많은 동물이 물어간 레치"
"와타치 뜯어먹는 나쁜 벌레가 마마도 뜯어먹는 레치. 귀여운 우지챠도 뜯어먹는 레치"
"밤이면 바늘달린 벌레가 날아와서 마구 마구 찌르는 레치. 마마짱과 우지챠 지금도 찔리는 레치"
"우지챠랑 마마 고생하는데 와타치만 아마아마한거 먹고있는 레치. 와타치 가슴이 아픈 레치"

몸도 괜찮아진 것 같고, 내일은 비도 잠깐 소강상태가 된다는 뉴스를 들은 철웅은 젊었던 시절 아내와 함께 갈 때 썼던 캠핑장비 중 남은 몇가지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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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에 도착했으나 엄지는 자기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열흘만에 장마비를 맞고 쑥쑥 자라버린 나무와 풀들이 철웅의 어깨위에 올려진의 엄지의 눈에는 전혀 딴 세상 처럼 보였으리라.
보다 못한 철웅이 고개를 바닥으로 바짝 숙이고 거의 기다시피해서 헤메다 엄지가 어느 나무 뿌리 근처에 뛰어내려 "여기인 레치, 바로 여기인 레치"라고 소리지른 것은 한시간도 넘은 뒤였다.
생각보다 꽤 되는구나. 여기에서부터 공원 벤치까지 그 작은 발로 오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마짱, 마마짱"
엄지의 목소리에 나무뿌리에 있던 돌이 슬쩍 움직이더니 마마참피가 고개를 내밀었다. 건강해진 엄지를 보고 기뻐한 것도 잠시, 엄지 뒤에 서있는 철웅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채 도게자를 했다. 인간에게 둥지를 들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마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철웅은 캠핑 장비를 꺼내 버너에 불을 켜고 코펠에 물을 담아 그 위에 올렸다. 배낭에서 트위저를 꺼내 버너에 달궈 소독을 한 후 도게자를 한 채 떨고 있는 마마에게 말했다.
- 이리와 옷을 벗어라.
"닌겐상. 엄지를 살려주어 정말 고마운데스. 와타치를 괴롭혀도 좋으니 엄지와 막내 우지챠만큼은 살려주시는 데스. 오로로롱..."
철웅은 순간 자기가 학대파처럼 보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짓고 마마참피에게 말했다.
-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너를 도와주려는 거야. 나래랑 약속한 게 있거든.
철웅은 마마와 우지짱이 벗은 옷을 냄비 안에 던져 삶고는 마마의 몸을 둘러보며 트위저로 진드기들을 잡아 뽑아 내기 시작했다.
- 자. 이제 진드기들은 다 처리 했다. 소독약을 상처에 바를텐데 꽤 아플거야.
"데갸앗!" "레삐잇!"








바위 위에 널어두었던 옷은 잠깐 나왔던 햇빛에 금방 말랐다.
철웅은 다시 옷을 입혀주고서 마마에게 말했다.
"여기서 고생 많지? 나래는 내가 데리고 살려고 해. 그런데 나래가 엄마 걱정이 많으니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때?"


마마참피는 다시 도게자를 한 다음 말했다.
"닌겐상은 너무 고맙고 고마운 분인데스. 하지만 고마운분에게 실례를 끼칠수 없는 데스. 엄지챠만 거두어 주시는 것으로도 감사한데스"
- 하지만 나래는 아직 어리다구. 엄마가 보고 싶을 텐데.
"매번 달님이 둥그렇게 되면 와타치가 닌겐상네 집 근처로 가겠는 데스. 어디인지만 알려 주시는 데스.
- 알았어. 그럼 막내만이라도 데려갈께. 그게 나래한테도 좋을 거 같아서
"닌겐상 너무 너무 감사한 데스"


철웅은 가지고 왔던 진드기 기피제와 바르는 모기약을 마마에게 주고 엄지와 우지차를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참피가 오기에는 너무 먼 거린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철웅의 집이 있는 장소의 특징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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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도 가고, 가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착한 엄지와 우지는 철웅의 반지하 셋방에서 철웅이 주는 사탕을 받아먹으면서 매일매일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음력 보름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실장을 맞이하러 해가 떨어지면 반지하 셋방 바깥으로 나가는게 매월 모두의 즐거운 행사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철웅도 가을이 깊어가면서 자신의 병도 깊어지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의 겨울은 이별처럼 불쑥 찾아왔다.

"와타치 닌겐상을 만나게 되어 정말로 행복한테치"
-...
"닌겐상 덕분에 우지차도 무럭무럭 자라서 곧 고치를 틀고 손씨 발씨가 생길거인 테치"
-...
"닌겐상, 와타치 더 씩씩하고 착한 아이가 될거인 테치"
-...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달님이 둥그렇게 되는 테치. 와타치 마마짱을 만나면 닌겐상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또 얘기해 주겠는 테치"
-...
"닌겐상?"
-...
"닌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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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며칠째 반지하 현관문에서 통통통통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앞집 꼬마가 수상쩍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발견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찰이 왔다 가고, 시신이 옮겨졌다. 철웅은 연고가 없었기에 방안에 있는 기물들은 꺼내어져서 빠르게 처분되었다.
구청 직원들과 업체 사람들이 정리를 다 마쳤을 때는 짧은 겨울해가 져서 이미 어둠이 깔린 다음이었다.
- 여기 작은 자충이 하나 있네요. 이거 어떻게 하죠?
- 얘가 문을 두드려서 철웅씨 죽음을 알린 애구나.
-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무연고 사망자의 참피는 살처분이야.
- 어휴... 불쌍하네.








직원은 종이 박스 안에 웅크리고 있는 참피를 꺼내 높이 들어 비닐봉지 안에 넣고 코로리 가스를 뿌렸다. 나래는 뿌옇게 된 비닐 봉지 안의 코로리 가스를 넘어 전봇대 뒤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마마를 보고는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마마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비닐봉지 안의 흰 가스. 마마참피가 몸서리를 치면서 인동공원을 떠나 천생산 공원으로 간 것은 마마의 마마와 오네차가 흰 가스가 들은 비닐봉지에 담겨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에 들뜬 주민들은 밤새도록 오로롱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아침이 되어 전봇대 아래 얼어붙은 채 죽어 있는 참피 하나를 무심한 듯 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1전봇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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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다녀왔습니다.
- 얘. 그거 뭐니?
- 이거? 참피 고치
- 어디서 났어?
- 비밀. 내가 키울거야
- 어서 갖다 버리지 못해?
- 지금 버리면 얼어 죽어. 얘 이름도 있어. 종이 박스에 "나래"라고 써 있던데.

옆집 소년은 우지챠의 고치를 두루마리 휴지에 살살 감아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어서 빨리 엄지로 태어나길 기대했다.







겨울 참피탕


겨울 방학을 맞아 시골 사촌형네 집에 놀러간 철웅은 도시와는 달리 무료할 정도로 조용한 시골 생활에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

그걸 눈치챈 사촌 형은 다음날 아침, 철웅을 불러냈다.

"철웅아! 가자!"

  " 응? 어디?"

"참피 사냥하러. 오늘 같이 눈내린 다음 추워진 날에는 참피 사냥이 딱이야."

참피를 사냥하다니. 마트 식실장코너에서 도축된 참피육만 봐 왔던 철웅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사촌 형은 산쪽으로 한 십분 쯤 걷다 철웅에게 말했다. 

"이쯤이 좋겠다. 밑에 개울이 있고, 햇빛을 등진 이쪽 쯤에 참피가 둥지를 틀거든.
여기 눈이 쌓인 곳에서 살짝 녹아 손가락 하나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린 곳을 찾아봐. 참피굴은 운치굴에서 나는 열기로 보통 숨구멍에 위에 내린 눈이 녹아 있어."

  "형, 여기 어때?"

"보자... 여긴 아닌것 같네."

  "어떻게 알어?"

"응. 오늘 같이 추운 날엔 그 구멍에서 김이 살짝 나거든."

  "어? 형, 여기 봐! 이거 이쪽 구멍에서 김나는 거 같은데?"

"진짜네..."

형은 집에서 가져온 쇠꼬챙이로 구멍 주변을 찔러보았다. 쑥 들어갔다.

"이거 참피굴 맞다. 철웅아, 가방!"

철웅이 건네준 가방에서 사촌형은 네무리탄을 꺼네 불을 붙인 다음, 숨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됐다. 이제 한 5분 쯤 있다가 여길 삽으로 뜨면 돼."

형을 도와 흙을 퍼내려가던 철웅은 낙엽더미 아래 잠들어 있는 참피를 발견하곤 살살 꺼내 가방에 담았다.

"모두 몇 마리야?"

  "큰 거 하나랑 새끼가 셋. 그리고 저 운치굴 속에도 더 있는거 같은데?"

"너 구더기 좋아해?"

  "아니 뭐 별로."

"그럼 저건 걍 두고가. 겨울 참피가 별미인게 겨우내 겨울잠 자느라 뱃속에 똥도 없고, 그래서 참피 분취도 안나고 고기도 야들야들하거든. 그런데 저런 구더기들은 겨울잠도 안자고 계속 똥만 쳐먹어서 냄새 짱 구려."

  "알았어 이정도면 충분하지 뭐."

철웅은 사냥한 참피를 조심조심 가방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와 철웅이 꺼낸 참피들을 본 숙모는 솥에 물을 올리셨다.

     "에이그... 참피 그거 뭐 맛있다고 잡아왔니. 그냥 닭이나 삶아줄걸 그랬네."

  "아녜요. 형이랑 같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엄마가 참피 안드셔서 몰라서 그래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형은 참피 주둥이를 수도 꼭지에 꽂아 물을 먹여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를 뱃속 운치를 쓸어냈다.

"데뵥, 데갸악! 풒!"

잠들어 있던 참피들이 난폭한 세척에 놀라 깨어나기 시작했다. 새끼 참피들은 아직 뭐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아무래도 연륜이 있는 마마는 사냥당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숙모가 새끼들을 씻으러 데려가자 사촌형은 핸드폰을 꺼내 링갈앱을 켰다.

"어. 참피야. 일어났냐? 그래. 맞어. 새끼들이랑 지금 여기잡혀온거야. 너희들 모두 맛있어지게 될거야" 

"히엑, 닌겐상, 제발 부탁인데스. 살려주시는데스."

"싫은데? 너같으면 하루종일 애써 잡은 사냥감을 그냥 놔주겠냐?"

그러자 참피는 옷을 벗고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그 위에 올려서 형 앞에 내밀더니 도게자를 했다.

"이게 와타치가 가진 전부데스. 제발 살려주시는데스. 오로롱..."

"흠... 도게자까지 하니 마음이 약해지네. 그렇다고 너희들 모두를 놔줄수는 없고... 

그래, 너 둘 중 하나 선택해. 너를 놔 줄까, 아니면 네 자들에게 여길 나갈 수 있는 선택권을 줄까?"

참피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굵은 색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시는데스."

"알았다. 그럼 너는 여기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씼어라. 탕으로 먹을거니까."

마마가 오로롱거리며 자기 몸을 다 씼었을 즈음, 숙모가 참피옷을 벗기고 세척까지 끝난 새끼 참피들을 가져왔다. 사촌형은 마마를 솥안에 넣고는 그 앞에 새끼들을 세워놓고 물었다.

"자, 너희들 마마는 여기 있기로 했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도 된다. 집에 가겠다는 참피는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 

"그게 무슨 소리 테치? 마마만 아와아와한 목욕 계속하고, 우리는 집에 가는테치?"

"똥마마였던 테치! 혼자서만 사육이 되고, 우리는 쫓아내려는 고약한 심보인 테챠악!"

예상치 못했던 자들의 반응에 당황한 마마는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이런 분충 자들! 당장 집에 돌아간다고 하는데스! 여기 남으면 일가실각데스!"

"와타치 그런 거지같은 집에는 다시는 안돌아가는 테치! 마마가 태교노래에서 들려준 사육이 되는 테치! 똥닌겐 노예를 부리면서 세레브하게 사는 테치!"

형은 마마에게 말했다.

"들었지? 난 분명히 네 자들에게 집에 돌아갈 선택권을 주었다. 근데 어쩌냐. 네 자들은 여기 그냥 남겠대. 그럼 가족끼리 다시 만나."

형이 새끼참피들을 솥 안에 던져 넣자 마마는 난리를 쳤지만 솥뚜껑이 닫히면서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형은 철웅을 바라보곤 말했다.

"자. 산참피 요리는 이렇게 하는거야. 아무리 참피라지만 산참피 어미는 힘이 졸라 쎄. 그거 옷벗기고 털 뽑고 씻기기까지 하려면 정말 힘들어. 그런데 이런식으로 하면 제가 알아서 스스로 다 하니 얼마나 편해. 게다가 참피는 죽기전 스트레스를 받아야 고기가 맛있어지는거 알지? 오늘 너 인생 최고의 겨울 참피탕 먹어보겠다."








참피와의 인연은 불행




"어이, 거기 닌겐상!"

휴학하고 입대를 기다리고 있던 철웅이 영등포공원을 산책하다가 뒤에서 들린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와타치를 입양하는데스."

- 하아... 참피인가. 이 겨울에 용감하네.

"용감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데스. 학대파에게 당해 집도 부서지고 식량도 다 거덜난데스."

- 미안, 나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널 입양해도 두어달 후에 군대가게되면 더이상 널 돌봐줄 수 없어.

"왜 닌겐상이 와타치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스까? 와타치가 닌겐상을 돌봐줄수도 있는거 아닌데스?"

- 뭔 소리야? 너 학대파에게 당하더니 미쳤구나? 아님 내가 미쳤나?

"둘 다인데스. 제정신인 닌겐이 들참피와 이렇게 계속 얘기를 나누겠는데스우?"

철웅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 그래. 군대 가기 전에 두어달이라도 나랑 살자. 그러면 겨울도 대충 지나겠고 너도 살 방법이 생기겠지.

그러고보니 평생 남한테 뭔가 도움을 주고 살아본 적이 없었구나. 그런데 그 첫 대상이 참피라니.

철웅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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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은 철책근무 중 사고로 두 발을 잃었다. 군대에서 다치면 개값도 못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철웅은 효용가치가 없어진 자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군은 철웅을 바로 제대시켜버렸고, 가족과 헤어진지도 오래고 마땅히 갈곳도 없던 철웅은 그나마 자기가 살아왔던 영등포로 돌아왔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영등포 공원을 산책하던 철웅은 예전의 그 참피를 만났다. 

참피는 저으기 놀란 표정이었으나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닌겐상 돌아온 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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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참피는 철웅과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참피는 아무말없이 집안을 치우거나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참피는 잘 해주면 점점 더 기고만장 해 진다더니 이 참피는 그런게 없었다. 철웅에게 뭘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밥은 철웅이 먹다 남긴 잔반으로 대충 해결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장애인 재활원에서 맛난 것을 받아와서 같이 먹자고 불러도 참피는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철웅상이나 먹는데스. 많이 먹어서 빨리 발 재생해야 되는데스!"

- 인간은 발 없어지면 재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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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라 어쩔줄 몰라하던 철웅도 참피와 함께라면 금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성질내지 마는데스. 그런다고 없어진 다리가 다시 생기지도 않는데스. 오히려 철웅상 자신을 불행에 몰아넣는거인데스. 와타치 학대파에게 집도, 자들도 잃고, 와타치도 더이상 자를 가질수 없게 되었지만 닌겐상 원망 않는데스. 와타치가 닌겐상 원망하고 살았다면 철웅상을 만날 수 있었겠는 데스우?"

철웅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특별 대출로 중고 트럭을 사서 푸드트럭 밥차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밥차는 인기가 있었다. 자리도 자리지만,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아온 철웅은 음식을 빨리, 맛있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쓰러질 듯 잠을 자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있었고, 음식재료 준비할 때는 참피가 도와주어 더욱 수월했다. 

철웅의 생활은 곧 안정을 찾게되었고 몇 년의 세월이 금방 지났다.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수험생 시절부터 밥차를 애용했던 손님이었는데 시험에 합격했다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웃는 모습에 마음이 끌리곤 했었다.

집에 오면 참피에게 주저리주저리 그 아가씨 얘길 했고, 참피가 듣고는 오히려 코치를 해 주기도 했다.

"그럴때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데스. 철웅상 발이 없다고 괜히 쫄 필요 없는데스. 밝고 자신있는 닌겐보면 없던 애정도 생겨나는법인데스. 참 못써먹을 수컷닌겐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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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웅은 참피가 가르쳐준대로 더욱 밝고 자신있게 그녀를 대했고, 결국 그녀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철웅이 어렵사리 결혼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히려 그녀가 기다렸다는듯이 받아들여 철웅은 날 듯이 기뻤다.

집에 돌아와 이 기쁜 소식을 참피에게 알려주고자 했으나 참피는 청소하다 떨어진듯, 탁자 아래 엎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요즘들어 참피의 건망증도 심해지고, 움직임도 예전같지 않다는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다니. 저으기 당황스러웠다.

- 참피야, 이제 고생 그만하고 제대로된 사육실장으로 살아야지, 이러면 어떡해. 내가 너한테 빚진게 얼마나 많은데...

"오마에 실장석 수명이 어느정돈지도 모르고 같이 살았던거인데스? 역시 어쩔 수 없는 똥닌겐데스.
됐고, 다음 생에서 다 갚으란데스. 다음 생에도 꼭 만나 오마에 잔뜩 뜯어먹을거인데스. 테끅, 테끅."

참피는 철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굵은 두줄기 색눈물을 흘렸다.

"죽고 싶어도 덜 떨어진 오마에 놔두고 가기가 너무 불안하고, 맘아픈데스...

하지만 이제 오마에도 결혼하게 되니 그나마 한시름 놓은데스. 오마에 행복하고, 부디 자들로 세상을 가득가득 채우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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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공원 한켠에 작은 무덤이 생겼다.

그까짓 참피새끼 한마리가 뭐라고...

이렇게 생각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철웅은 가슴이 먹먹했다.


"참피와의 인연은 불행이라더니..."






출산참피가 된 미도리


 

- 벌써 며칠째야! 안된다면 안돼!너 여기 오기 전에 공장에서도, 여기 와서는 나한테도 약속했었잖아. 너 여기서 내가 최고급 푸드에, 사육참피 옷 수십벌에, 욕실까지 딸린 세레브 하우스까지 해 줬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잘 먹고, 잘 입고, 좋은데서 사는 것만이 참생의 전부가 아닌데스. 못먹고, 헐벗고, 좀 험한데서 살더라도 자를 가질수 있기만 하면 와타치 행복해지겠는데스."

- 안돼. 여긴 네 자들까지 키울 돈도 공간도 없어. 포기하든지, 딴데로 가.

"닌겐상, 닌겐상, 와타치 말 좀 들어보는데스! 와타치를 닮은 예쁜 자들과 함께라면 닌겐상도 분명 행복해질 것인데스!:

- 아니, 그 반대다. 이렇게 자를 갖겠다고 떼를 쓰는 참피가 또나온다면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 너 자꾸 이렇게 떼쓰면 공장에 돌려보낸다!

"쳇! 좋은데스! 공장에 돌려보내란데스! 이런 쩨쩨한 집구석 와타치도 맘에 안드는데스. 넓디 넓은 공장에 가서 와타치 기어코 자를 갖고 말겠단데스!"

- 좋아. 너 후회 안하지?

철웅은 바로 인터넷으로 참피 회사 사이트에 접속해 반품 신청을 하고 교품 참피를 골랐다. 그로부터 한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서비스 직원이 방문했다.

[띵동]

- 누구세요?

- [참좋은참피] 서비스 입니다.

[딸깍]

- 네, 어서오세요.

- 안녕하세요. 반품 신청하셨죠?

- 네 맞아요. 얘 입니다.

- 아이구 이녀석아. 그냥저냥 좀 잘살지 왜 자를 갖겠다고 응석을 부려서는... 고객님, 잠깐 동영상 촬영 좀 하겠습니다.

- 네

서비스 직원은 핸드폰 동영상 촬영모드를 켜고 참피에게 물었다.

- 참피 미도리, 자를 낳기 위해 지금까지의 사육생활을 포기 하는것 맞죠?

"그런데스."

- 공장으로 돌아가면 자를 낳을 수 있습니다만, 자신에게 불이익이 많습니다. 다 감수할건가요?

"문제 없는데스."

- 마지막 질문입니다. 누가 시킨게 아니고 본 참피 의견 맞죠? 지금 선택한 것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뭐 이렇게 말이 많은데스. 후회 안하는데스!"

- 네, 그럼 이 핸드폰 화면에 손을 갖다 대고 지장을 찍으세요.

"참 번거로운데스..."

미도리가 거침없이 지장을 찍자 철웅이 말했다.

- 미도리, 내가 그동안 키운 정을 생각해서 말하는 건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자 없이 여기서 살어.

"필요 없는데스! 이제 오마에 와타치의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스! 왠 오지랖인데스!"

그러자 서비스직원은 참피캐리어에서 교품 참피를 꺼내 철웅에게 주었다.

- 여기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선택하신 참피입니다. 2달된 S급이구요, 기본 훈육은 다 마쳤습니다. 이름은 에메랄드입니다.

"텟츙~"

- 아이구 귀엽네요. 자, 오늘부터 네가 내 사육참피다. 배고플테니 먼저 이 푸드 먹고, 이 사육참피옷으로 갈아입어. 네 집은 저기구, 밥 다 먹으면 목욕 시켜줄께.

"감사한테치. 앞으로 잘 부탁드리는테치."

그것을 본 미도리는 화가 나 소리쳤다.

"아니 저년이 왜 와타치의 옷을 입고 와타치 밥에 손을 대는데스우? 당장 꺼지는데스!"

- 너 이제 내 참피 아닌데? 너야말로 왠 오지랖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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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고향에 돌아온데스우..."

미도리는 서비스팀의 차로 참피공장에 돌아와 출산참피 대기실로 옮겨졌다.

- 자, 먹어라.

"헤? 콘페이토 아닌 데스우? 철웅 고 닌겐은 살찐다고 안주던 콘페이토를 여기서... 아하! 앞으로 자를 낳을테니 영양보충을 하라는 뜻인데스!"

그러나 미도리는 그것을 먹자마자 부리릿하며 거하게 운치를 지리기 시작했다.

"와타치 속인데스! 이건 도돈파였던데스!"

- 속이긴 뭘 속여. 그거 도돈파 맞어. 넌 이제 출산참피야. 조금이라도 더 큰 자를 가지려면 분대에 아무것도 들어있으면 안되지.

"에? 그럼 와타치 뭐 먹고 사는 데스우?"

- 앞으로 입으로 먹는 밥은 없다. 모든 영양분은 링거액으로 주사한다.

운치가 다 빠져나온 게 확인되자 생산담당자는 미도리의 옷과 머리를 뜯어내었다.

"너무 거친데스! 와타치 처음이니 부드럽게 해 달란데스! 오마에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 무슨 소리야?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려라. 여긴 너 상대해줄 인간 없다.

"에? 그럼 꽃이라도 괜찮은데스. 와타치는 데이지가 좋은데스."

- 꿈 깨라. 여기선 이렇게 한다.

미도리의 눈에 녹색 물감이 떨어지자 곧바로 강제 임신의 격한 복통이 밀려왔다.

"데뵥!"

그리고선 바로 미도리는 자충 생산라인으로 옮겨져 컨베이어 벨트위에 묶였다.

"잠깐, 닌겐상, 이래가지고는 자를 낳더라도 할짝할짝 해줄 수 없는데스!"

- 점액제거는 자동 세척기로 하니 넌 걱정 안해도 돼.

"그럼 내 귀여운 자들을 만져볼 수도 없는데스?"

- 너 바보 아니냐? 너도 여기 출신이면서 여기에 대한 기억 없냐? 너 네 마마 한번이라도 만나본 적 있어?

"테엥... 내가 생각했던건 이런게 아니었던데스우..."

- 울지마라. 행여나 미숙한 자 낳으면 저기 노동참피들이 다 솎아낼거다.

"오로롱... 그러면 와타치가 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건 태교노래뿐인데스..."

- 아니, 이제 바로 성대 제거수술에 들어간다. 자충의 분충화 방지를 위해 쓰잘데 없는 태교노래따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헥? 여긴 지옥인데스! 와타치 아직 젊은데 굶주리고 헐벗은 채 이 차가운 벽에 매달려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스?"

- 걱정마라. 계속되는 강제 출산으로 여기서 한달이상 버틴 참피는 없었다. 자, 성대 수술 전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

"돌려보내주는데스! 철웅상에게 가겠단데스! 사육참피로 돌아가겠는데스!"

- 그럴줄 알았다. 자. 비디오 틀어주마.

그러자 미도리 앞 흰 벽에 후회 안한다고 웃으면서 지장을 찍는 한시간 전 자신의 모습이 영사되어 나타났고, 그것을 본 미도리는 외쳤다.

(미친년인데스! 저런 미친년은 당장 쳐 죽이는데스!)

하지만 이미 성대 제거가 된 미도리는 작은 삐이삐이 소리만 낼 뿐이었다.







판도라의 상자

사육실장 미도리가 점점 분충성을 드러내자 철웅은 결단을 내려야 될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미도리를 처음 만났던 영등포공원에 미도리를 데려온 철웅은 말했다.

- 안되겠다. 미도리. 오늘로 너와 난 남남이다. 가라. 난 널 더이상 감당 못하겠다.

그 말을 들은 미도리는 처음엔 똥닌겐 노예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협박하며 걷어찼지만, 철웅의 태도가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것을 알게되자 비굴한 표정으로 계속 애교를 떨어보다가 그것마저 통하지 않자 마침내 울부짖기에 이르렀다.

"철... 철웅상, 이 추운 겨울에 아무것도 없이 밖에 나가면 와타치는 살 수 없는데스. 예전의 정을 봐서라도..."

- 저기 까만 골판지 상자 보이지? 예전의 정을 봐서 내가 만들어 논 거다. 수건 한장이랑, 물통 하나, 그리고 운치굴도 넉넉히 파 놨다. 저기서 겨울 나라.

"그래도 먹을거 하나 없이..."

- 자. 이 상자 받아라. 이게 내 마지막 선물이다. 단, 골판지하우스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운치굴 안에다 놓고 열어봐라.
너 나랑 같이 살 때는 내 말 더럽게 안들었지만, 이 마지막 말 만큼은 꼭 들어야한다.

"데..."

철웅이 떠나버린 자리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쳐다보던 미도리는 선물받은 상자를 들고 골판지하우스를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데, 박스가 움직이고 안에서 무슨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미도리는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걸까.
아직 골판지하우스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철웅도 가벼렸으니 상자 안쪽을 살짝 쳐다봐도 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들았다.
미도리가 조심조심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 보려는 순간, 갑자기 상자가 열리면서 자실장들이 튀어나왔다.

"어서 빨리 도망가는 테치! 아까 그 닌겐상이 와타치다치가 저 오바상 겨울나기용 운치굴노예랑 구더기자판기로 쓰여질거라고 했던 테치!"

자실장들이 다 도망가버린 빈 상자안 구석에는 작은 우지 한마리만 남아 꼬물거리고 있었다. 허탈함에 빠져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던
미도리의 눈에 우지의 포대기에 쓰여진 철웅의 익숙한 글자가 들어왔다.

[희망]






사육은 하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