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이겨낸 실장석

 


 겨울도 이제 거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린 것도 한 달쯤 전의 일이었고, 얼음도 대부분 녹아 그늘진 곳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도 한풀 기세가 꺾여 햇볕이 구름에 가리지 않는 날이면 그럭저럭 외투를 입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봄의 기운이 제법 가까워진 것이다.


 [텟챠아... 따뜻따뜻한 햇볕인테치...]


 다 무너져가는 골판지 상자에서 자실장 하나가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린다.
 어떻게든 겨울을 이겨낸듯하지만 그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걸레같이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진데다가 온갖 오물이 묻어 원래의 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짙은 회색빛의 옷에다가 비듬과 기름때가 켜켜히 눌러붙어 마치 똥휴지를 연상케하는 두건도 그랬지만,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자실장의 얼굴이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원래는 둥그스름한 실장석의 머리통이 찌그러진 탁구공처럼 쪼그라들어있었다.
 양쪽 볼은 안쪽으로 움푹 패어있었고, 입술은 물기가 하나도 없어 마치 말라비틀어진 북어껍질 같았다.
 이빨은 여기저기 숭숭 빠져있어서 제대로 자리잡은 이빨은 안쪽의 어금니밖에 없었고, 침조차 나오지 않는 것인지 입안은 바짝 말라있었다.

 그리고 눈...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물들어있어야할 두 눈동자는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회색빛과 하얀빛만이 감돌고 있었다.

 잠깐 일어나 문밖으로 손 하나만을 내밀었을뿐인데도 자실장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댔다.
 물기 하나 없어 보이는 얼굴에도 끊임없이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테... 테에... 테... 테보오....]

 한참동안이나 선채로 부들부들 떨던 자실장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또각하는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만이 외롭게 울려퍼졌다.


 [데.... 쓸데없이 움직이지마는데스...]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던 자실장의 뒤에서 한 마리의 성체 실장석이 다가와 앉는다.
 땅바닥에 꺼져버린 자실장을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다시 골판지 상자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데엑... 데엑... 그러니까 조용히 누워있는....데스... 쓸데없는데 힘을 빼면 안되는데스...]

 [테에.. 테류보오... 테에... 마마아... 미안한테치...]

 [...데... 말을 아끼는데스.....]

 친실장은 뼈와 가죽만 남은 자실장을 구석의 누더기 위에 눕힌다.
 회색빛 누더기 위에는 다른 자실장 하나가 더 있었다.
 그 역시 비쩍 말라있어 마치 미라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둥그스름한 머리통에 빵빵한 배.
 토실토실한 볼살과 두툼한 체구.
 흔히 실장석이라고하면 떠올리는 모습이지만 이들에게 그런 모습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원래는 체구에 딱 맞았을 옷은 이제 온몸을 두 번이나 더 감싸고도 반틈이나 더 남는다.
 팔다리는 정말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뼈와 가죽.
 가느다란 뼈를 기둥 삼아 살가죽만이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둘 사이에 있어야할 지방과 근육은 이미 생존을 위해 모두 태워먹고 없어진지 오래였다.

 몸통도 마찬가지다.
 풍요로운 가을녘에 투실투실하게 살찌운 뱃가죽은 이미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안쪽으로 푹 꺼져있었다.
 하도 굶어서 처음에는 배안쪽으로 물이 점점 차서, 온몸이 굶주림때문에 바짝 말랐는데 유독 배만 흉물스럽게 툭 불거져나왔던 적도 있었지만 물마저 마시지 못하게되자 이젠 배도 다른 사지와 마찬가지로 안쪽으로 말려들어갔다.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버려서 반독라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칼이 화장실 수세미처럼 거칠어지는가하더니 얼마 더 가지 않아 더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연한 갈색이던 머리카락이 점점 빛을 잃어가더니 나중에는 자실장인데도 머리칼이 하얗게 변했다.
 그그 다음에는 이제 머리카락이 힘없이 머리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가닥 정도만 빠졌던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한움큼이 되고, 나중에는 몇몇 가닥만 남기고 모두 뽑혔다.
 처음에는 독라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피눈물을 흘렸지만 이젠 눈물을 흘릴 수분도 없다.
 빠진 머리카락도 전부 먹어치웠다.


 [테에... 테.... 테에에에에.... 테....]

 [테휴..... 테휴...... 테....... 테히이..... 테.....]

 [테보.... 테에.... 테.... 테히... 테히.... 테히.....]

 자실장들은 각기 누더기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은 채 숨만 내뱉고 있었다.
 친실장도 골판지 상자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을 굶었을까.
 이 가족들은 그것도 잊어먹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똥이었다.
 똥을 먹고 다시 똥을 싼다.
 새로 누는 똥을 그대로 다시 받아먹는다. 
 아니,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흘릴 새라 항문에 입을 바짝 붙여서 쪽쪽 빨아먹는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횟수가 반복될 수록 싸는 똥은 점점 줄어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원래는 먹음직스러운 초록색 페이스트였던 똥이 점점 더 초록빛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끈적끈적한 페이스트였던 것도 수분이 사라지면서 딱딱한 콩과 같은 형태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그 딱딱하고 회색빛의 똥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누워있는 것 뿐이었다.
 움직이면 힘을 쓰게 되고 배가 고파진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가만히 누워있는다.
 눈도 감고 숨만 쉬면서 누워있는다.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지만 너무 배가 고파 잠도 잘 수가 없다.

 뭐라도 먹을 것을 구하러 가야겠지만 그럴 힘도 없다.
 동족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더 이상은 할 수 없다.
 벌써 여섯 마리의 자매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니까 지금 남은 이 두 마리는 마지막까지 죽일 수 없었던 소중한 아이들인 것이다.
 가장 똑똑하고,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착한 장녀쨩과 4녀쨩.
 친실장은 차라리 굶어 죽더라도 더 이상의 자식들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자기가 희생하여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약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살린다고 해도 미래가 없다.
 비록 봄이 올 때까지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자실장 둘만으로는 거친 들생활을 이겨낼리가 만무한 것이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잔뜩 탁해진 눈으로 멍하니 어두운 구석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숨만 조용히 내뱉으며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테히이이이... 마마.... 목.... 목이 마른테....치....]

 4녀가 겨우 입을 열어 친실장에게 말한다.
 그 짧은 말 한 마디를 하는 것도 이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4녀에게는 큰 부담이다.
 마른 나무를 긁는 것 같은 거칠고 쉰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4녀는 연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친실장은 필사적으로 몸을 곧추세우고 4녀에게로 다가간다.
 역시 네발로 기어가는 모양새다.
 한참이나 꿈지럭거리며 4녀에게 다가간 친실장은 빳밧하게 말라붙은 4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데에... 물이 없는데...스우... 조금만 참는 데스...]

 물을 구하려면 공원 밖으로 나가서 하천까지 가야한다.
 정상적인 체력을 가졌을 때도 넉넉잡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강행군이다. 
 이전이라면 가까운 화장실의 변기물이나 수돗가의 배수구 구멍 근처에서라도 목을 축일 수 있었지만, 겨울에 접어들면서 화장실은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문이 잠겨버렸으며 수돗가 역시 두터운 비닐과 천으로 꽁꽁 싸매는 바람에 물은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마... 너무... 목이.. 마...른....테....치...이....]

 [.....데.....스우.....우.....]

 친실장은 가슴이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항상 얌전하고 조용했던 4녀였다.
 그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단 한 번도 먹이를 보채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없는 4녀였다.
 똥을 먹기 시작했을 때도, 차녀에게 습격당해 한쪽 손목을 뜯어먹혔을 때도 무엇하나 불평하지 않았던 4녀였다.
 그런 4녀가 물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 4녀를 잠깐 바라보던 친실장은 이빨을 꽉 깨물고 몸을 추켜세운다.
 무릎이 달달 떨리고, 슬개골에서 삐걱이는 비명을 지르지만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일어서려고 다리와 허리에 잔뜩 힘을 준다.
 덜걱덜걱거리는 무릎과 달달 떨릴는 두 다리. 그리고 우드득 소리가 나는 허리.
 얼마만에 두 다리로 일어선 것일까. 
 갑작스러운 격한 운동 탓에 머리가 핑 돌기 시작한다.
 친실장은 비틀비틀 요타요타 몇 번 뒷걸음질 치다 겨우 골판지 벽을 붙잡고 균형을 다잡을 수 있었다.

 [데엑.. 데엑... 데휴보.......]

 겨우 일어선 것 뿐인데 숨이 가빠온다.
 눈 앞도 좀 침침해진 것 같다.
 그래도 잠시 벽에 기대 숨을 고르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데....에.... 마마는 잠깐... 잠깐 나갔다 오는데스.. 조금만 참는데수... 물과 밥을 구해오는데스....]

 [테휴... 테... 마....뫄........]

 아이들은 답할 힘도 없이 그저 눈만 꿈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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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실장은 발을 질질 끌면서 공원을 돌아다닌다.
 수돗가는 여전히 꽁꽁 묶여 있는 상태다. 몇 번이고 토닥여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공중화장실로 발길을 돌린다.
 걸음걸이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느려져 있었다.

 [데에... 이제 따뜻해진데스.... 분명 따뜻해진데스.... 봄이... 봄이 온게 틀림없는데스...]

 [이제 풀이 쑥쑥 자라는뎃슨... 예쁜 새싹이 고개를 드는데스.. 날이 따뜻해져서 닌겐들도 다시 오는데스...]

 [봄이 오면... 물이 나오는 기둥도... 다시 물이 나올 것인데스우. 화장실도 다시 열리는데스... 전에도 그랬던데스..]

 [그럼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데스. 닌겐들이 밥을 주는데스... 아니 밥을 주지 않아도 남긴 찌꺼기만 먹어도되는데스.. 그런데스...]

 [그러면 이제 굶는 일도 없어지는데스... 봄이 온데스... 봄이 오면 풍족해지는데스... 그때.. 그때가 오는데스....]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때가 다시 오는데스... 상냥하고 착한 장녀쨩... 개구쟁이지만 씩씩한 차녀쨩... 애교많은 3녀쨩... 조용한 4녀쨩... 호기심 많은 5녀쨩... 엄지쨩과 구더기쨩을 잘 돌보는 6녀쨩... 그리고 엄지쨩... 구더기쨩... 모두 다 배불리 먹는 그 때가 되는데스우...]

 친실장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지껄이며 타박타박 걸음을 걷는다.
 하지만 걸음은 점점 느려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두 발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질질 끌기만 한다.

 [이제 봄인데스... 봄이 온 데스... 다시... 행복해지는데스...]

 이제 친실장은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상체가 부르르 부르르르 끊임없이 경련이 일어난다.
 입은 데- 하고 벌리고 있고, 회색빛 눈동자에는 촛점이 없다.

 [데... 잠이 오는데스... 봄이라서 그럴 것인데스... 데데.... 맞는데스... 조금 자고 일어나면 다시 문이 열릴 것인데스... 그러면 물을 떠서... 4녀쨩에게 주고... 장녀쨩에게도 마시게하고.. 와타시도 조금 마시는데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닌겐상들이 버린 쓰레기를 찾아나서는데스... 없으면 새싹을 뜯어먹어도 좋은데스... 봄이 와서... 우린 다시 살 수 있는데스...]

 털썩

 [데............. 스....우.......]

 결국 친실장은 길가에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눈동자가 회색빛에서 흰색으로 점점 색깔이 사라져간다.

 [데..........에........ 봄....... 봄이 온 데스.... 겨울을....... 버텨낸데스..... 데........]


 파킨!







 이젠 제법 따뜻해진 바람이 친실장 주변을 상냥하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완연한 봄빛 햇살이 푸지게 공원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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