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들, 마마가 온 데스요.”
“마마! 마마가 온 테치!”
“우마우마, 우마우마는 구한 테치?”
“마마, 오늘도 고생 하신 테치.”
늦여름. 해가 짧아지고 있기 때문인지 친실장의 귀가는 어느 날 보다 빨랐다.
“테프프. 그런데스. 모두 착한아이로 잘 지내고 있었는 데스?”
“물론인테치! 모두 착한 아이로 있었는 테치!”
“장한데스. 역시 와타시의 자들인데스.”
친실장의 질문에 장녀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마마의 기분이 좋아보이는 테치... 분명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테치.’
평소라면 지쳐서 데힛데힛 거리며 쓰러지듯 들어오는 친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친실장의 바뀐 분위기를 자실장들은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데프프.’
물론 친실장도 바보는 아니다.
평소라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자실장들이 자신을 이렇게 반겨주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친실장은 웃었다.
오히려 자들이 그렇게 눈치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했다.
눈치는 공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마가 뭘 가져온 지 보는 데스.”
친실장은 그 말과 함께 비닐 봉투를 골판지 바닥에 내려놓았다.
친실장의 손을 떠난 비닐 봉투는 툭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입구가 벌어졌다.
“테츄와아!”
동시에 봉투가 열리며 풍겨오는 우마우마한 향기에 자실장들은 일제히 합창했다.
평소라면 반도 차 있지 않았던 봉투이다.
친실장 하나, 자실장 셋이라는 대가족에 비상시를 대비한 보존식을 빼놓으면 주린 배를 달래기도 힘든 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이 가득 차 있다.
저기서 보존식으로 얼마나 보관한다 하더라도 지금 한 번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마마! 얼른! 얼른!”
“밥인테츄! 밥인테츄!”
장녀와 차녀가 신나서 비닐 봉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평소라면 배가 꺼진다고 잔소리 했을 친실장도 오늘은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마마가 항상 미안한데스. 오로로로롱.’
자신이 자였던 시절은 달랐다.
마마가 들고 오는 봉투는 항상 우마우마가 가득했고, 어쩔 땐 일찍 들어와 두 번이나 봉투를 채워 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 풍족하게 큰 친실장이었기에 자실장들에게는 배불리 먹여주지 못하는 것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마마는 정말 대단했던 데스... 하지만 나도 힘내는 데스. 내일도, 그 내일도 마마처럼 봉투를 가득 채워 오는 데스.’
이 친실장은 자신이 마마로서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친이 지금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것은 동족들이 그만큼 늘어난 탓이기 때문이다.
“그럼 준비하는 데스. 마마가 밥을 나눠주는 데스.”
“하잇테츄!”
자들의 배고프다는 칭얼거림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친실장은 봉투에서 자실장들이 먹을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과일의 씨나 껍데기. 눅눅하고 젖어버린 튀김가루. 한 입 물고 버린 야채 찌꺼기.
인간들이 보면 코를 감싸쥐고 인상을 찌푸릴 광경이지만 자실장들은 그것들이 봉투에서 꺼내질 때 마다 테츄아, 테츄아를 연발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데프프프. 이제 먹는 데스.”
“잘 먹겠는 테치!”
그동안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조금 넉넉하게 꺼낸 밥에 자실장들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 옆쪽에서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뎃? 삼녀. 밥 안먹고 뭐하는 데스?”
“마마는 안먹는 테치?”
“와타시도 먹는 데스. 걱정말고 삼녀도 어서 밥을 먹는 데스.”
“와타치는 마마랑 같이 먹고 싶은 테치.”
“데엣?”
삼녀의 말에 친실장은 깜짝 놀랐다.
늘 어리광을 부릴 줄 만 알고 있었던 막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말을 할 줄이야.
그러고보니 밥을 구해오지 못할 때도 친실장에게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인사를 했던 삼녀였다.
친실장은 삼녀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오로로로롱. 고마운데스 삼녀. 오마에는 와타시의 자랑인데스.”
“마마.”
그렇게 친실장과 삼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이 장녀와 차녀의 식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테치?“
자신들이 밥을 먹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기에 친실장과 삼녀의 모습을 보고 잠시 갸우뚱 거렸던 둘은 이내 흥미가 없어졌는지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친실장과 삼녀의 밥에 손을 대서 한바탕 혼쭐이 났을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넉넉히 밥을 꺼낸 친실장 덕분에 배가 불러 크게 식탐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마, 이것도 먹어 보는 테츄. 시큼시큼하지만 굉장히 우마우마한 테츄.”
“삼녀는 이것도 먹어보는 데스. 짭짤짭짤하고 고소한 데스.”
서로 밥을 나눠먹은 친실장과 삼녀.
마침내 모두의 식사가 끝나고 운치를 싸고 나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잘 시간이 되었다.
“삼녀. 이리 오는 데스요. 오늘은 삼녀가 마마랑 같이 자는 데스.”
“테츄융~!”
온 몸이 축축해 닿기만 해도 서로 짜증을 냈던 여름이 끝났다.
이제는 서로 붙어 자면 선선한 바람 속에서 기분 좋은 따뜻함과 냄새를 느낄 수 있기에 친실장의 옆 자리는 자실장들 모두가 탐내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를 손쉽게 차지한 삼녀는 장녀와 차녀의 시기 섞인 시선을 받으면서도 웃으며 친실장에게 안겼다.
“오늘은 옛날 이야기를 해 주는 데스. 이건 마마의 마마의 마마가...”
친실장의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드는 자실장들.
테휴우 하는 자실장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자 친실장도 말을 멈추고 잠을 청했다.
“뎃흐응.”
낮의 피로 때문인지 순식간에 잠이 드는 친실장. 이렇게 공원 한 구석에서 흔하디 흔한 실장석의 가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 오늘도 집 잘 보고 있는 데스.“
“알겠는테치!”
또다시 아침이 찾아와 친실장은 밖으로 나섰다.
항상 신신당부 하기 때문에 모르는 실장석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힘내는 데스!’
다시 한 번 어제와 같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친실장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잔디밭을 헤치고 나아갔다.
“싫은테치이이이! 주인님! 제발 살려주는 테츄우우!”
“어휴 그러게 진작 잘 할것이지.”
‘데겍!’
친실장은 영리한 덕분에 먹이터로 가는 길을 여러 개로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먹이를 모으고 돌아오는 길을 습격당하는 일도 없어지고, 진짜 집의 위치도 쉽게 찾을 수 없게 한다.
친실장의 마마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 중 한가지다.
그리고 그 길을 걷던 도중 닌겐의 목소리에 재빨리 몸을 숨기고 상황을 파악했다.
“이제 정말 잘 하는 테치! 밥도 불평하지 않는 테치! 운치도 아무데나 누지 않는 테치! 제발 버리지 마는테치잇!”
“웃기지마. 내가 한두 번 속냐?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다 해라.”
이 길은 친실장이 사용하는 먹이 통로 중에서도 특별히 은밀한 길이다.
인간에게도, 동족에게도 잘 보이지 않은 길 덕분에 친실장은 무려 인간에게도 들키지 않는 것에 성공했다.
“똥닌게에엔! 오마에는 와타치를 키울 의무가 있는 테칫! 안 그러면 직무유기인 테치!”
“어휴, 병신.”
사육실장이 솎아내지는 광경이다!
친실장은 더더욱 잔디 속으로 파고들며 엎드렸다.
자세히 살피자 실장석들이 사용하는 갈색의 더러운 골판지 대신 특특한 파란색의 골판지 집이 보였다.
그 집 가운데서 테치테치 씨끄럽게 떠들고 있는 자실장과 그런 자실장은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는 닌겐.
골판지의 입구로 얼핏 보이는 각종 물품들에 친실장의 눈에 탐욕이 타올랐다.
“대충 네가 쓰던 거는 다 넣어왔으니 이제는 정말 네가 알아서 해라. 굶어 죽던지, 맞아 죽던지. 최소한의 자비로 근처에 야생 실장석들이 없는 곳으로 골랐으니 문을 잠그고 먹이만 먹으면 한 달은 살 수 있을거다.”
“그런건 모르는테치! 여기는 화잘실도 없는 테치! 아마아마한 푸딩도 없는 테치! 스시는! 스테이크는!”
“에휴. 그럼 진짜 간다.”
“가지마는테치!!!”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남자를 필사적으로 쫒아가는 (전)사육실장.
닌겐의 발걸음을 실장석이, 그것도 자실장이 따라 갈 수 있을 리가 없건만 이 자실장은 달랐다.
버려지면 죽는다는 것을 아는지 빵콘한 채로 남자를 필사적으로 쫓는 덕에 어떻게든 근처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친실장은 빠르게 잔디속에서 튀쳐나왔다.
“데엣!”
버려진 사육실장의 골판지 속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친실장은 저도 모르게 빵콘할 뻔 했다.
산더미 같이 커다란 실장 푸드 봉지와 말로만 듣던 테치카 요술봉. 멀리 떨어져있어도 향긋한 냄새가 나는 부드러워 보이는 모포에 분홍색의 세레브한 실장가방까지.
골판지는 지금까지 친실장이 살아오며 상상만 하던 ‘세레브’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서두르는데스!”
공원의 외곽이지만 근처에 다른 실장석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자실장이 씨끄럽게 고함을 치며 자신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떠들고 있다.
언제 다른 실장석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친실장은 먹이용 봉투에 손에 집히는 대로 각종 용품을 쓸어넣었다.
“푸드는 무조건 챙기는데스. 데겍! 왜 이렇게 안뜯기는 데스! 봉지씨는 당장 뜯겨서 푸드를 내놓는데스!”
조그마한 틈을 만들어 간신히 몇 개 빼낸 실장푸드. 부드러워 보이는 모포. 자실장들에게 줄 장난감등.
허겁지겁 챙기자 봉투는 금방 가득찼다.
“이제 빨리 돌아가는데스!”
친실장은 무거워진 봉투를 끌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이 와중에도 은밀한 길을 사용하는 것은 잊지 않은 친실장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테챠아아앗!”
“...죽은 데스까.”
반 정도 오자 들려오는 자실장의 비명소리에 친실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한낱 자실장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 더 갈 수 있었다면 단번에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 다른 실장석들이 달려들어 골판지 채로 사라졌을 것이다.
“자들, 마마가 온 데스!”
“테엣?! 마마! 왜 이렇게 일찍 온 테치?”
어느새 집에 도착한 친실장은 호쾌하게 문을 열어 젖혔다.
평소라면 올 시간이 아님에도 온 마마를 의아한 눈으로 본 자실장들은 이내 친실장이 든 봉투가 묵직해 보이는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테엣?!”
자실장들의 기대 속에 친실장은 골판지의 중앙에 봉투를 거꾸로 들고 내용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물품들에 자실장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빵콘하며 외쳤다.
“테엣? 뭐인테치! 엄청나게 부드러운 이불씨인테치!”
“저기 분홍색 공도 있는 테츄! 전혀 찌그러지지 않은 공인 테츄!”
“혹시 저건 말로만 듣던 실장 푸드 아닌테치?! 꼭 먹어보고 싶은 테치!”
저마다의 외침 속에서 친실장은 거꾸로 쏟은 내용물을 살폈다.
골라서 가져올 여유는 없었다.
손에 집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쏟아 넣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만족할 만한 전리품이었다.
저실장과 자실장이 그려진 노란색의 모포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쓰다듬으면 보드라운 보풀들이 손을 간질였다.
음식물을 옮기던 봉투에 넣은 탓에 군데군데 찌꺼기가 묻어있었지만 향긋한 냄새는 감출수가 없었다.
자실장용 분홍색 공은 굉장히 가벼웠다.
찌그러진 면이 전혀 없이 탱글탱글한 그 공은 차녀가 건들이자 통통 튀며 골판지 구석까지 굴러 갈 정도였다.
얼마 가져오지 못한 원통형의 실장 푸드는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털어내느라 살짝 생긴 부스러기를 친실장의 눈치를 살피며 주워먹은 장녀가 테엣! 하며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분홍색의 사육실장복 세트였다.
곱게 졉혀 비닐에 들어있는 사육실장복은 봉투 안에서도 전혀 더러워지지 않았다.
앞에 나 있는 단추는 자실장 혼자서도 갈아입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수줍게 둘러진 실장 가방에는 콘페이토가 그려져 있었다.
약간 진한 색의 앙증맞은 신발까지. 정말로 세레브한 실장복.
저 실장복을 입고 공원을 걸으면 누구나가 우러러볼 만한 사육실장으로 여겨질 것이다.
“테츄와아.”
당장 실장푸드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기세의 장녀조차 그 사육실장복 세트를 보더니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릴 뿐이었다.
“데엣!”
자실장용이기 때문에 그나마 자신은 입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닳은 친실장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자실장들은 모두 사육실장복에 눈이 박혀있었다.
‘하나 뿐인데스.’
사육실장복이 세 벌 있었다면 하나씩 가지면 된다. 하지만 자실장은 셋이지만 실장복은 하나 뿐이다.
두건이나 옷, 신발과 가방을 각각 따로따로 가지면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무리였다.
저것들은 한 실장석이 입어야만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친실장은 내심 주고 싶은 자가 정해져 있었다.
세레브한 자신의 자 들 중에서도 한층 더 세레브한 막내, 삼녀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막내가 저 옷을 입고 사육실장이 된다면 일가가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한 친실장이 사육실장복을 삼녀에게 주겠다고 선언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와타치는 필요없는테츄.”
친실장은 믿을 수 없었다. 삼녀가 스스로 실장복을 가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왜...인데스?”
“와타치는 너무 작은 테치. 와타치가 입기에는 옷이 너무 큰 테츄. 저 옷은 장녀 오네챠나 차녀 오네챠에게 주는 테치.”
삼녀의 말에 친실장은 황급히 실장복과 삼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제야 장녀와 차녀보다 한뼘은 작은 삼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늦게 태어난 것도 모자라 장녀와 차녀에게 조금씩 먹이를 양보하고 있던 삼녀였기에 어느새 차이가 벌어져 있던 것이다.
“테프프프. 삼녀챠의 말이 맞는 테치. 저 옷은 삼녀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테치.”
“그런테치. 저 옷은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어울리는 테치. 치프프픗”
장녀와 차녀의 말에 친실장은 표정을 굳혔다.
사육실장복을 보고서 분충성이 개화한 것인지 양보하겠다는 삼녀의 말에 비웃는 모습이 갑자기 역겨워보였다.
‘어떡하는데스?’
지금은 깨끗하지만 한번 입는 순간 순식간에 더러워 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인간에게 길러지기 위해서라면 단 한순간, 직전에 입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자기가 입지 않겠다고 한 삼녀에게 준다고 말하면 장녀와 차녀의 분충성이 본격적으로 폭발할 것이다.
‘그건 안되는 데스.’
분충성이 잠깐 보이긴 했지만 사랑스러운 자들이다.
이런 일로 솎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친실장의 뇌 속에서 전류가 흘렀다.
‘그런데스! 그렇게 하면 되는 데스!.’
“흠흠. 그럼 삼녀는 양보한다고 말 한데스. 대신 삼녀에게는 이 공을 주는 데스.”
“테챠앗! 마마! 고마운테츄웅!”
한손을 입가에 대고 아첨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친실장은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장녀와 차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말도 안되는 테치! 왜 삼녀챠에게 저 공을 주는 테치까?”
“그런테치! 이건 너무한 테치.”
“데에. 삼녀는 대신 실장복을 받지 않는 데스. 이 실장복은 장녀나 차녀에게 주는 데스.”
“테에... 그럼 봐주는 테치.”
욕심 많은 실장석의 본능대로 실장복도 공도 모두 갖고 싶었던 장녀와 차녀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삼녀가 공을 안고 뛰어와 장녀와 차녀에게 내밀었다.
“장녀 오네챠, 차녀 오네챠. 같이 노는 테츄. 공씨는 같이 가지고 놀 수 있는 테츄.”
“! 그런테치! 공씨는 같이 가지고 놀면 되는 테치!”
삼녀의 말에 언제 시무룩해 있었냐는 듯 확 밝아지는 장녀와 차녀.
슬슬 친실장은 그런 둘이 역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데흠, 데흠. 하지만 장녀와 챠녀는 둘인데 사육실장복은 하나인데스. 그러니 마마가 잘 생각해보고 더 훌륭한 자에게 이 사육실장복을 주는 데스. 알겠는데스까?”
“하잇테츄!”
친실장은 작전대로라고 생각하며 사육실장복을 비닐 째로 보존식 통으로 옮겼다.
이러면 자실장들이 함부로 꺼낼 수 없을 것이고 비닐 덕에 더러워질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작전이 잘 맞아떨어져 어느새 닝겐의 집에서 살고있는 자신을 떠올리며 친실장은 데프프하고 웃었다.
***
“테칫테칫”
“테츄테츄”
이제 완전히 여름이 지나 쌀쌀한 가을이 다가왔다.
친실장 가족이 사육실장복을 얻고 나서 벌써 몇 달이 지난 것이다.
“이쪽인데스 이모토챠!”
“오네챠, 받는테츄!”
그날 구한 자실장용 공 덕분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지 않고 자실장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친실장의 말을 듣지 않거나 분충끼가 보이면 친실장의 마법의 말인
‘그러면 샤육실장복은 장녀/차녀에게 주는 데스?’
한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장녀와 차녀는 착한 자를 연기했다.
덕분에 그 어느때보다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던 친실장은 슬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들은 듣는 데스.”
그날 저녁, 친실장은 보존식 통에서 사육실장세트를 꺼내 골판지 바닥에 펼쳐놓았다.
비닐로 쌓여 있기 때문인지 냄새는 조금 났지만 여전히 때 한점 묻지 않은 깨끗한 실장복이었다,
“오늘 이 실장복의 주인이 결정되는 데스.”
“드디어테치...”
친실장의 말에 장녀와 차녀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먹을 꼭 쥐고 서로 자신이 받을 거라 의심하지 않는 둘.
친실장은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힘든 고민이었던 데스. 둘 다 마마의 사랑스러운 자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주어도 남은 자에게 너무 미안했던 데스.”
“고민할 게 없는 테치. 와타시가 더 어울리는 테치.”
“웃기지 마는 테치. 저 시장복은 오네챠보다 세레브한 와타치가 더 어울리는 테치.”
“조용히 하는 데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다시 말다툼을 하던 장녀와 차녀에게 친실장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둘. 사육실장복을 인질로 잡힌 이후로한결같은 흐름이었다.
“둘 중 한명에게 실장복을 주는 데스가... 이 가방은 다른 쪽에게 주는 데스. 안그러면 너무 가엽기 때문인데스.”
“가방을 말인테치?”
“말도 안돼는 테치! 그건 전부 와타치의... 테에...”
다시 떼를 쓰려는 둘을 친실장은 눈빛으로만 제압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던 자실장 둘은 마침내 친실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알겠는테츄. 와타치는 실장복만으로 참는 테치.”
“이모우토챠, 웃기지 마는 테치. 실장복을 가지는 것은 와타치인 테치. 오마에가 가방을 가지는 테츄.”
“데샤아악! 씨끄러운데스!”
계속되는 둘의 신경전에 마침내 친실장의 화가 폭발했다.
그 모습에 움찔한 장녀와 차녀는 다시 찌그러져 조용히 하고 있었다.
“장녀! 오마에가 옷을 가지는 데스!”
“해냈다 테츄! 와타치가 입는 테츄!”
“말도 안돼는 테치!!!!”
차녀가 악을 쓰며 대들었지만 이미 결정은 났다.
테프프프하고 자신을 비웃는 장녀를 쏘아죽일 듯 노려보지만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친실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테끕. 테끕.”
“오네챠. 울지 마는 테치. 그래도 가방을 오네챠 것인 테치.”
“테에에에엥!”
억지로 울음을 참는 차녀에게 삼녀가 다가가 위로해 줬지만 역효과였다.
차녀의 상상 속에서 실장복을 걸치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저 사육실장복을 입고 똥닌겐을 노예로 부리며 공원을 지배하는 것이 차녀의 꿈이었는데...
가방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마마! 얼른 실장복을 주는 테치!”
“기다리는 데스, 장녀,”
장녀는 그런 차녀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실장복을 졸랐다.
마침내 친실장의 손에서 실장복을 감싸던 비닐이 뜯어졌다.
사육실장의 증거이자 세레브의 상징인 분홍색 사육실장복.
ᄌᆞᆼ녀는 기쁜 마음으로 옷을 벗어던진 채 실장복을 입으려다 멈칫했다.
“테엣?”
작다.
손이 들어가지 않는다.
“테에에엣?”
분명히 자신에게 꼭 맞는 사이즈의 실장복이 어느새 작아져있었다.
혼란해하는 장녀를 보고 친실장은 계획대로 되었다며 속으로 웃었다.
일반적인 실장석은 평생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실장복은 실장석의 성장에 따라 자연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이 나중에 크면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실장이 눈치채기는 힘들었다.
“테프프프프! 당연한 테치! 실장복은 세레브한 와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 테치! 똥오네챠가 못 입는 것은 당연한 테치.”
그런 장녀의 모습을 보고 차녀는 순식간에 기운을 차렸다.
“마마! 어서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실장복을 주는 테츄웅~”
멍해있는 장녀를 밀치며 차녀가 친실장에게 다가갔다.
친실장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헛소리만 반복하는 장녀에게서 실장복을 빼앗아 이번에는 차녀의 손에 넘겨주었다.
“테츄웅! 이걸로 와타치도 사육실장인... 테엣? 왜 옷씨가 작아진 테치?”
애초에 체격차가 크게 나지 않던 둘이다.
장녀에게 맞지 않는 옷은 차녀에게도 맞지 않는다.
그렇게 차녀도 옷을 입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며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자 친실장은 차녀의 손에서도 빠르게 실장복을 회수했다.
그리고 둘에게 만져진 사이에 뭔가 묻은 것이 없는지 툭툭 털어내고는 실장복을 삼녀에게 건네주었다.
“삼녀가 입어보는 데스.”
“마마... 하지만 이 옷은...”
“장녀도 차녀도 옷을 입지 못하는 데스. 그러니 삼녀는 사양하지 말고 입어 보는 데스.”
친실장의 말에 쭈뼛거리며 실장복을 입는 삼녀.
친실장은 생각대로 삼녀에게 꼭 맞는 크기의 실장복을 보고 데프프하고 웃었다.
“웃기지 마는 테치!! 그건 와타치의 것인 테치!”
어느새 정신을 차린 차녀가 귀신같은 얼굴로 삼녀에게 달려들었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삼녀를 깔아뭉갠 차녀는 주먹질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가 곧바로 친실장의 발에 치여 날아갔다.
지벳
골판지 구석으로 날아갈 만큼 강하게 얻어맞은 차녀는 크게 빵콘한 채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친실장은 씩씩거리며 차녀에게 외쳤다.
“작작하는 데스! 와타시는 오마에에게 분명히 기회를 준 데스! 오마에가 덜떨어진 년이라 못입는 걸 왜 삼녀에게 화풀이 하는데스! 슬픈일을 당하고 싶은 데스까!”
“테..칫... 마마...”
친실장의 기세에 장녀와 삼녀는 바들바들 떨었다.
차녀는 색색의 눈물을 흘리며 눈물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옷은 삼녀에게 준 데스! 불만있으면 당장 말하는데스! 장녀! 불만있는데스까?!”
“없는테츄! 와타치는 불만 없는테츄!”
친실장의 기세에 황급히 부정하는 장녀. 그제야 친실장은 씩씩대던 걸 멈추었다.
“이제 자는 데스. 모두 자리로 가는 데스.”
“하잇테츄!”
몸이 부숴졌는지 꼼짝도 하지 못하는 차녀를 두고 장녀와 삼녀는 모포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마마가 구해온, 따뜻한 모포.
어느새 흙과 똥이 묻어 예전만큼의 부드러움은 잃어버렸지만 겨울이 다가오는 요즘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지던 모포였다.
그것이, 장녀에게는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장녀 오네챠...”
“뭐인 테츄까?”
삼녀의 말에 장녀가 뾰루퉁하게 대답했다.
그런 장녀의 반응에 흠칫한 삼녀였지만 이윽고 결심한 듯 한 표정으로 장녀에게 가방을 건네었다.
“마마가 가방과 옷은 따로따로라고 했던 테츄. 장녀 오네챠가 가방을 가지는 테치이.”
“...”
장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필요 없다는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삼녀를 쏘아 볼 뿐이었다.
삼녀는 그런 장녀의 반응에도 장녀의 근처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장녀와 삼녀의 사이, 차녀가 있어야 할 공간이 비어있어 둘 사이가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오마에들 안자는 데스?”
“지금 자는 테치.”
친실장의 말에 황급히 눈을 감는 장녀와 삼녀.
삼녀는 꼼지락 거리며 차녀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친실장의 무서운 표정에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삼녀.
그리고 삼녀가 잠들 때 까지 눈을 뜨고 있는 친실장.
기절한 듯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추운 구석에 혼자 쓰러져 신음하는 차녀.
덕분에 친실장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장녀를 보는 실장석은 아무도 없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불편하다는 듯 억지로 잠을 청하는 삼녀를 노려보는 장녀의 눈빛을.
‘와타치의 것인 테츄.’
‘와타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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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에에에엥.”
친실장은 삼녀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급히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차녀를 껴안고 엉엉 우는 삼녀의 모습이 있었다.
“마마, 마마! 차녀 오네챠가 이상한 테츄!”
“...”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슬슬 겨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평소에 덮던 담요조차 덮지 못하고, 체온을 나눌 자매조차 없이 홀로 밤을 세워야 했던 차녀가 얼어 죽은 것이다.
“삼녀, 울지 마는데스.”
‘실장복이 더러워지는 데스.’
뒷말을 삼키며 친실자은 삼녀를 차녀의 시체로부터 떨어뜨렸다.
세레브한 사육실장복에 혹시나 차녀가 묻을 까 걱정 한 것이다.
“씨끄러운테치.”
장녀 역시 차녀의 시체를 발견했지만 삼녀처럼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원래는 사이좋은 자매였다.
하지만 친실장이 사육실장복을 둘 중 한명에게 주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장녀와 차녀는 언제나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죽었다고 슬퍼 할 사이는 아니다.
“차녀는 분충이었던데스. 자기가 사육실장복에게 선택되지 않았다고 삼녀에게 화풀이한데스.”
“하지만 마마...”
“조용히 하는데스. 이건 마마의 결정인데스.”
친실장의 진지한 말에 뭔가 말하려던 삼녀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삼녀 역시 어제 차녀가 자신을 공격한 것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삼녀에게 차녀는 결코 나쁜 오네챠가 아니었다.
삼녀는 사육실장복을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장녀와 차녀는 삼녀를 전혀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고, 특별한 괴롭힘 같은 것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실장석의 사회에서는 힘이 강한 쪽이 괴롭히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친절인 것이다.
“테끅, 테끅.”
결국 이 일가에서 차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은 삼녀뿐이었다.
삼녀는 간신히 진정하고 눈물을 훔쳤다.
“뎃?!”
분홍색 사육실장복의 소매에 삼녀의 적녹색 눈물이 번졌다.
친실장은 더 이상 실장복이 더럽혀지지 않게 황급히 삼녀에게서 실장복을 벗겨냈다.
“마마?”
그런 친실장의 행동에 삼녀가 두려워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보고 친실장은 안심하라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빼앗으려 하는 것이 아닌 데스우. 이 실장복은 삼녀의, 아니 이제 차녀의 것인 데스. 하지만 계속 입고 있으면 실장복이 더러워지니 특별한 날에만 입는 데스.”
“특별한 날 테치까?”
“사육실장이 되는 날인 데스.”
“테엣!”
친실장이 삼녀의, 아니 차녀의 실장복을 벗길 때만 하더라도 다시 자신이 실장복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녀.
그리고 그 기대가 바로 사라져 다시 흥미를 잃었던 장녀의 고개가 다시 친실장을 향했다.
장녀는 짧은 시간 동안 고개를 휙휙 돌려 어지러운 것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사육실장이라니... 설마 삼녀챠를 이야기하는 것인 테치?”
“삼녀가 아닌 차녀인데스, 장녀.”
“그게 중요한 테치? 그럼 차녀차가 사육실장이 되냐고 물은 테치!”
“물론인데스.”
친실장이 흥분한 장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 테치! 사육실장은 차녀보다 훨씬 세레브한 와타치가 되어야 하는 테치! 설마 저 사육실장복인 때문인 테츄까?! 그럼 똥마마는 빨리 나에게도 세레브한 사육실장복을 내놓는테치! 와타치도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장녀...”
장녀의 완벽한 분충성 말에 친실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원래는 장녀와 차녀 모두 사랑스러운 자들이었다.
그랬기에 되도록 솎아내는 것은 자제하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사육실장복을 두고 경쟁하는 장녀와 차녀의 모습은 제 3자인 친실장의 입장에서는 매우 추했다.
저런 자들을 데리고 간다면 친실장도 쫒겨날 것이 뻔했다.
“괜찮은테츄 오네챠! 모두 함께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테치! 그럼 장녀 오네챠도 사육실장복을 입을 수 있는테치!”
친실장에게서 흐르는 불온한 공기를 민감하게 감지한 차녀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 소리에 장녀를 솎아내기 위해 다가가려던 친실장이 멈칫했다.
장녀 역시 사육실장복을 입을 수 있다는 말에 악을 쓰는 것을 멈추었다.
“그런데스. 장녀. 차녀가 사육실장이 되면 우리 모두 사육실장복을 입을 수 있는데스. 아닌데스까?”
“마마의 말이 맞는테치.”
벌써부터 솎아내기에는 이르다.
장녀의 도움이 있다면 차녀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할 지도 모른다.
친실장은 속내를 숨기며 장녀를 달랬다.
“알겠는테치.”
“테휴.”
장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차녀가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일가의 갈등은 간신히 봉합되는 듯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차녀의 특훈이 이어졌다.
“형편없는데스! 다시 하는 데스!”
“알겠는테츄!”
지금 차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공원에 버려진 전 사육실장인 미도리다.
버려진 사육실장은 십중팔구 그 날에 들실장의 먹이가 되고, 간신히 살아 남는다고 해도 독라가 되어 출산 노예가 될 뿐이다.
하지만 미도리는 달랐다.
특별한 사유 없이 더 이상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진 미도리는 분충끼가 없는 실장석답게 빠르게 공원에 적응해나갔다.
근처의 실장석들을 흉내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억지로 집어삼켰다.
그렇게 몇 개의 계절을 넘긴 미도리는 공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테... 테츄웅. 더러움씨는 얼른 떨어지는 테츙.”
“아첨은 금기인 데샤아앗!”
친실장은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몰랐다.
때문에 전 사육실장인 미도리에게 차녀의 교육을 부탁한 것이다.
“자기 옷을 빠는 것은 중요한데스! 운치가 전부 떨어져나갈 때 까지 빠는데스!”
“테에엥. 힘든테치.”
잘못 아첨하면 죽는다.
운치를 아무데나 흘리면 죽는다.
분충끼가 보이면 죽는다.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훈련은 지옥과도 같다.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이기에 죽일 수는 없었지만 미도리의 교육은 엄격했다.
차녀가 혈통 있는 사육실장 출신이었던 미도리의 교육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늘은... 데엣? 완벽한데스.”
“만세! 와타치 힘낸 테치! 칭찬해 주는 테츄!”
들싱장치고 특출난 지능 덕분일까.
그렇지 않으면 장녀에게 실장복을 선물하고 싶다는 가족애 덕분일까.
차녀는 기적처럼 한 달 만에 미도리의 교육을 모두 통과할 수 있었다.
“역시 차녀는 와타시의 보배인데스. 이걸로 안심인데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닝겐의 집에서 지낼 수 있는데스.”
“전부 마마와 장녀 오네챠의 응원과 미도리 오바상의 교육 덕분인테치! 정말 감사한테치!”
잘 해냈다고 칭찬해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적당히 애교를 부리는 차녀의 모습.
인간이 사육실장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실장숍에서 정식으로 교육받았다면 A급은 확실한, 들실장의 기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고마운데스 미도리상. 이건 약속한 물건인데스.”
“...이쪽이야말로 고마운데스.”
전 사육실장인 미도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친실장의 일가가 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분충이던 양충이던 상관없다.
애호파던 학대파던 상관없다.
인간의 기분 하나로 실장석은 가볍게 목숨이 좌우된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이 일가가 떠나면 봐두었던 모포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도리는 떠나갔다.
***
“테치테치.”
“이건 또 뭐야.”
토시아키는 도시락 봉투에서 기어 나온 차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봉투 속은 안 봐도 뻔했다.
설령 자실장이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실장의 몸에 묻은 운치가 섞여 들어가 있을 것이다.
더러운 기분에 차녀를 집어 내팽겨치려던 토시아키가 멈칫했다.
“사육실장복?”
차녀가 입고 있는 것은 이날을 위해 한 번 밖에 입이 않은 분홍색 사육실장복이었다.
그새 성장한 덕분에 약간 달랑한 그 모습은 실장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소를 감추지 못 할 만큼 귀여운 모습이었다.
“보나마나 바꿔치기용으로 뺏을 거겠지.”
하지만 토시아키는 그런 정신나간 애호파가 아니었다.
다시 차녀를 잡으려 손을 뻗으려는 순간 차녀가 외쳤다.
“테치잇! 테츄!”
보나마나 똥닌겐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무시하고 차녀를 잡으려다가 그래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에 토시아키는 링갈앱을 켰다.
“아닌테치! 이 옷은 빼앗은 것이 아닌테치!”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입고 있는 옷을 빼앗은 거면 이렇게 깔끔깔끔하지 않는테츄!”
그러고보니 그랬다.
머리카락은 간신히 들실장 치고 깨끗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깔끔함을 좋아해 목욕을 하는 실장석이라면 가능한 수준.
하지만 옷은 다르다.
운치와 흙,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사는 실장석이 세제도 없이 옷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 사육실장이냐?”
“... 그건 아닌테츄.”
잠시 고민한 차녀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닝겐은 실장석이 아무리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있더라고 전부 알아낼 수 있다.
미도리의 교육 덕분에 차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와타치는 탁아된 테치.”
차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마마가 우연히 사육실장복을 구한 일.
원래 이 실장복은 장녀나 차녀에게 주기로 했던 것.
하지만 작아서 입지 못하게 되어 자신이 입게 된 것.
전 사육실장에게 훈련받은 것까지.
이야기를 전부 들은 토시아키는 이 차녀가 보기 드문 양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도시락은 어쩔거냐? 너 때문에 손해 본 내 밥은?”
“괜찮은테츄! 와타치 닌겐상의 도시락에는 손씨 하나 대지 않은 테치!”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그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운치를 주물럭거리는 실장석에 묻은 온갖 균이 찜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먹지 않았다는 데도 화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자실장이 그런 개념을 이해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시아키는 한숨을 쉬며 봉투 속에서 도시락을 버리려 꺼내려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차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수건?”
“그런테츄. 와타치는 계속 그걸 깔고 앉아있었던 테츄. 그래서 닝겐씨의 도시락은 무사한테츄,”
“이건... 이야.”
토시아키는 감탄했다.
보기 드물게 봉투속의 음식을 건드리지 않는 양충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손수건을 깔고 앉는 실장석이라니?
이건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한낱 독라조차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하다고 여기는 실장석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토시아키는 차녀에게 급격하게 흥미가 끌어올랐다.
‘일단 고비는 넘긴 테치.’
그런 토시아키를 보며 차녀는 속으로 한숨 돌렸다. 그리고선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며 그 생각조차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없앴다.
닝겐은 실장석의 속마음조차 읽을 수 있다.
불순한 생각이 들면 바로 없애야 한다.
모두 미도리에게서 배운 것이다.
생각보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차녀가 마음에 든 미도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쳤다.
심지어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도 과거의 자신을 미화하여 가르쳤기에 차녀는 그야말로 완벽한 사육실장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흠... 그럼 한번 키워볼까?”
“테엣? 정말인테치?”
“그래. 네가 분충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지.”
“감사한테치. 감사한테치.”
차녀는 적녹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몇 번이고 숙였다.
양 손을 배 앞으로 모으고 무거운 머리를 몇 번이고 빠르게 숙인 덕에 앞뒤로 출렁거리는 차녀.
그런 차녀의 모습을 토시아키는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대신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사육실장복 같은 건 못 사줘. 그런건 이상하게 비싸서 말이지. 대신 콘페이토 같은 건 얼마든지 먹게 해 줄게.”
“...괜찮은 테치! 와타치는 사육실장복 같은 건 없어도 되는 테치. 그런데 콘페이토 까지 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한테치.”
“좋아.”
차녀는 사육실장복을 사줄 수 없다는 말에 장녀를 떠올렸다.
사육실장복 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장녀와 차녀.
사육실장복 때문에 마마에게 대들기까지 했던 장녀.
그래도 목적과 과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사육실장복을 입고 싶었던 것은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서다.
이미 사육실장이라면 굳이 장녀도 굳이 사육실장복을 조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친실장조차 먹었던 적이 거의 없는 콘페이토를 잔뜬 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래 입던 실장복을 입어도 장녀는 만족할 것이다.
“저기... 닝겐상...”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돼.”
“테치. 주인님테치. 와타치 탁아당한테치.”
“알고 있어. 네가 아까 말했잖아.”
“곧 있으면 와타치의 마마와 오네챠가 오는 테치.”
“아! 그랬었지.”
차녀는 보기 드문 양충이다.
거기에 다른 실장석과는 달리 지혜를 활용할 줄 아는 실장석.
단순히 가지고 노는 것으로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실장과 장녀 역시 양충이라 할 순 없다.
애초에 어떤 사정이 있건 탁아를 하는 시점에서 분충이다.
그렇다면 자실장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음주운전 같은 것이다.
음주운전법은 단순 동승자도 말리지 않은 죄가 있다고 봐서 처벌한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동승자의 상사와 같이 위계관계가 있다면 말릴 수 없었다고 보고 처벌을 하지 않는다.
자실장이 자신이 탁아되기 싫다고 하면 끝은 죽음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실장과 친실장의 탁아에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불공평하다.
“좋아. 그럼 일단 보고 결정하도록 하자.”
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자실장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보자마자 죽였으면 기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토시아키는 일단 친실장과 장녀를 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어디에 사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오는 길이 위험하니 이쪽에서 데리러 가도록 하자.”
“감사한테치. 주인사마.”
그렇게 토시아키는 차녀의 안내를 받으며 공원으로 향했다.
똑똑한 차녀가 완벽하게 길을 기억한 덕분에 친실장이 장녀를 솎아낼 시간조차 없이.
“데에. 이게 아와아와인데스?”
“기분 좋은 테츙. 몸씨가 노곤노곤한 테츄.”
공원에서 친실장과 장녀를 데려온 토시아키는 대야에 물을 받아 셋 모두 목욕을 시켜 주었다.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들어가 있자 온 몸이 빨개지면서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는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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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엣? 너무 기분 좋아서 운치나오는테츄.”
“데겍? 장녀! 뭐하는데스!”
장녀는 실장생 처음의 거품목욕에 총구의 힘이 풀렸는지 거하게 운치를 싸댔다.
친실장이 기겁하며 장녀에게 한마디 하려 했지만 토시아키가 손을 들어 말렸다.
“괜찮아. 금방 물을 갈아 줄 테니까.”
“감사한데스 주인사마.”
애초에 들실장을 데려오려고 했을 때부터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토시아키는 오히려 친실장은 목욕을 하면서도 운치를 흘리지 않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테치. 테치치.”
친실장과 장녀가 다시 깨끗해진 물에 거품을 올려 목욕하는 사이 차녀는 자신들이 입고 있던 옷을 열심히 빨고 있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사육실장복과 장녀와 친실장의 녹색 실장복.
자실장의 약한 힘으로도 실장복을 건드릴 때 마다 녹색과 검은색의 땟국물이 흘러나왔다.
“옷씨는 어서 깨끗깨끗해지는 테츄.”
자실장의 몸에는 너무 큰 친실장의 실장복도 텟치치하며 열심히 주물렀다.
힘이 들 때면 잠시 토시아키가 만들어준 온탕에 들어가 몸을 풀고는 다시 열심히 움직이는 차녀.
덕분에 일가가 목욕을 끝마칠 쯤에는 냄새가 거의 빠져 깨끗해 져 있었다.
“빨래도 배운 거니?”
“네 테치. 미도리 오바상이 가르쳐 준 테치.”
온갖 똥과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뒹군 옷을 세탁기에 넣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손빨래를 하기에도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토시아키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준 차녀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감사한테치 주인사마. 앞으로도 열심히 빨래하는테치”
양손을 곱게 모으고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차녀.
역시 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실장석이 탁아를 위해 하는 교육이래 봤자 뻔하다.
짧은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이상한 춤을 가르치거나,
씨끄러운 고주파의 목소리로 언어조차 되지 않는 노래를 가르치거나,
고작해야 텟츙~ 하며 아첨을 하는 법이나 가르칠 뿐이다.
자기 자신만 있으면 인간이 기뻐할 거라 생각하는 오만한 존재.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고 전사육실장에게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지식을 얻은 친실장은 제법 현명하고, 그 지식을 체화한 차녀는 특이한 존재였다.
“테프프프. 드디어 사육실장이 된 테츄. 이제 매일 스시와 스테이크, 콘페이토를 먹는 나날인 테츄.”
...답도 없는 분충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만간 저놈 때문에 일이 벌어질수도 있겠군.’
토시아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조취를 취하지는 않았다.
아직 하지 않은 일로 벌하는 것은 그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저런 분충을 두고 차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역시도 그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장녀오네챠. 스시와 스테이크는 닝겐상들 사이에서도 비싼 음식인 테츄. 대신 주인사마가 콘페이토는 주신다고 한 테츄.”
“텟? 웃기지 마는 테츄. 당장 스시와 스테이크를 대령하는 테치! 똥...”
“데갸악!”
장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실장의 손이 장녀의 입을 막았다.
답답한 듯이 친실장의 손을 마구 두드리는 장녀였지만 성체와 자실장의 힘의 차이로 인해 그 정도로는 아무런 저항이 되지 않는다.
“데에.”
장녀의 입을 막은 채 살며시 토시아키의 눈치를 보는 친실장.
토시아키가 그런 시선에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딴청을 피우자 데휴 하며 안심한 듯 한숨을 쉰다.
그러고는 다시 장녀를 노려보는 것이 전형적인 ‘약간 똑똑한’ 실장석의 모습이었다.
‘고전적이지만 이런 것도 재밌단 말이지.’
분충인 자식을 둔 실장석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느끼는 재미
이미 오래 전 질렸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고전에는 고전의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차녀쪽이...’
그렇게 생각한 토시아키가 차녀는 방금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고개를 돌리다 흠칫했다.
차녀가 토시아키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친실장을 관찰하는 토시아키.
그리고 그런 토시아키를 관찰하는 차녀.
토시아키가 어색한 듯 웃어보이자 차녀는 텟츄 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텟치텟치 소리를 내며 친실장에게 달려가는 모습.
역시 제법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일가를 관찰하며 토시아키는 이번에야 말로 싱긋 웃었다.
***
토시아키가 실장석 일가를 거둔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일가는 위태위태하지만 잘 지내고 있었다.
곧 문제가 될거라 생각했던 장녀의 분충성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들실장 치고는 현명한 개채인 친실장과 차녀의 존재가 장녀의 분충성을 가려주고 있던 것이다.
“운치 나온 테치.”
“장녀! 운치는 운치굴에 하라고 몇 번을 말한 데스!”
“괜찮은테치. 와타치가 닦는 테츄.”
장녀가 아무데서나 빵콘하면 차녀가 어디선가 달려와 운치를 화장실에 털어내고, 더러워진 총구를 닦아주고 새 속옷을 가져다준다.
혹시 바닥에 흘리기라도 하면 청소하라고 준 물티슈를 열심히 문질러 닦아낸다.
“슬슬 푸드가 질리는 테치.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테치.”
“와타치가 더 맛있게 먹는 법을 개발한 테츄”
장녀가 음식투정을 하면 다시 차녀가 나선다.
이럴때를 대비해 차녀는 자신이 받은 콘페이토를 전부 먹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커터칼을 능숙하게 사용해 실장 푸드를 기세 좋게 잘라내고 가루로 만든 콘페이토를 뿌린다.
층층이 쌓인 녹색의 푸드와 여러 색의 콘페이토가 늘 먹던 푸드를 먹음직한 음식으로 보이게 한다.
“테텟? 제법 우마우마한데스.”
“다행인테치. 얼마든지 만드는 테츄.”
실장석의 싸구려 입맛답게 일단 단맛이 들어가자 만족하는 장녀.
식사시간 때 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장녀에게 여러 바리에이션을 선보이는 차녀 덕에 먹는 것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단지, 한 가지 불안요소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와타치도 세레브한 분홍색 실장복을 입고 싶은 테치!!”
친실장과 차녀가 아무리 달래도 장녀의 사육실장복에 대한 집념을 막을 수는 없었다.
“흠... 그럼 네가 성체가 되면 하나 사 주지.”
“정말인테치?”
또 다시 장녀의 발작이 시작되자 토시아키가 꺼낸 말에 차녀가 반색했다.
다른 문제는 전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
유일한 불안요소였던 실장복 문제만 해결된다면 계속 사육실장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친실장, 혹시 너도 갖고 싶어?”
“데에. 감사한데스.”
‘마마도 사육실장복을 입는 테치.’
분명 처음에는 사육실장복이 비싸기 때문에 사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싼 실장복을 두 벌이나 사 준다고 했다.
이걸로 사육실장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은 차녀였지만 그 생각은 곧 장녀의 발작에 사라졌다.
“지금! 지금이 좋은 테치!”
“어이. 지금 사면 네가 자랄 때 마다 또 사줘야 되잖아. 그렇게까지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럼 저녀석은 왜 입고 있는 테챠앗!”
장녀가 발작하며 차녀를 가리켰다.
그렇다. 지금 차녀는 여전히 한 달 전의 그 분홍색 실장복을 입고 있었다.
차녀가 원래 입고 있던 녹색 실장복은 차녀가 탁아된 직후 장녀의 화풀이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일로 당장 솎아내질 뻔 했지만 토시아키가 빠르게 공원까지 마중을 나가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다.
“아. 저거 알고 보니 로젠 사에서 만든 비싼 실장복이더라고.”
“텟?”
처음에는 토시아키도 녹색의 실장복을 알아보고 있었다.
점점 자라는 것 까지 고려하여 조금 커다란 치수의 실장복으로.
하지만 치수를 재기 위해 실장숍에 갔을 때 직원에게 들은 것이다.
지금 차녀가 입고 있는 것은 로젠사의 최신형 사육 실장복이다.
야생 실장석의 연구 끝에 나온 상품으로 특이하게도 자실장 시절 입히면 그 자실장의 체격과 함께 자란다고 했다.
“그럼 와타치도 비싼 실장복을 사주는 테치!”
“안돼. 저건 진짜로 비싸거든.”
안 그래도 실장석의 기호 물품은 제법 비싸다.
인간의 상품도 자연이나 친환경이라는 말이 붙으면 가격이 뛰는데 자연스러운 실장석의 생태를 컨셉으로 한 이 제품이 비싼 것은 당연한 것이다.
“테챠앗!”
비싼 것은 곧 세레브 한 것.
차녀가 입고 있는 것을 자신이 입지 못한다.
나중에 사 준다는 실장복 역시 차녀보다는 세레브하지 못한 실장복이다.
그렇게 생각한 장녀의 발작은 토시아키가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려도 계속되었다.
얼마 후에는 운치까지 흩뿌리며 발작한 흔적조차 차녀의 청소로 전부 사라졌지만 말이다.
***
“네가 미도리냐?”
“그런데스. 닝겐상. 와타시에게 볼 일이 있는 데스까?”
“아아. 니-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니-데스까?”
니-는 토시아키가 차녀에게 준 이름이다.
친실장은 레이(0)
장녀는 이치(1)
차녀는 니-(2)
성의 없는 네이밍이라 생각했지만 이름이 주어졌다는 기쁨에 친실장과 장녀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차녀 역시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며 평소보다 기뻐하는 느낌이었다.
“네가 사육실장의 지식을 알려줬던 자실장 말이야.”
“아, 그 차녀 데스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 데스네.”
“뭐, 그렇지.”
친실장 역시 장녀의 발작이 불안요소라고 느꼈는지 장녀에게 사 주기 전까지는 자신도 사육실장복을 입지 않겠다고 했다.
장녀 혼자만 녹색의 실장복을 입고 있었다가는 발작이 더 심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가의 모습을 즐겁게 관찰하던 토시아키는 미도리라는 실장석에게서도 흥미를 느꼈다.
그렇기에 공원을 뒤져 이렇게 찾아 온 것이다.
“제법 똑똑한 실장석인 데스. 와타시가 교육받을 때도 그런 똑똑한 녀석은 드물었던 데스.”
“그런건 알고 있어. 그것보다 네가 공원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느낌을 물어보는 거야.”
“그렇게 물어봐도... 데에. 자실장들은 집에 꼭꼭 숨어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데스. 그냥 가족을 위해 열심히 와티시의 말을 들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는데스.”
“그래?”
토시아키는 그러고보니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자실장은 가족이 아닌 성체실장에게는 먹잇감일 뿐이다.
그렇기에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는 낮 동안 집에 박혀있기만 할 뿐.
다른 실장석이 자실장에게 가지는 감성은 기껏해야 우마우마한 고기일 것이다.
“너는 전사육실장 이었다던데. 공원은 어때? 지낼 만 하냐?”
“걱정해 주셔서 감사한데스. 사육실장이었던 시절보다는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데스.”
말 그대로 제법 월동준비가 잘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쉽게 썩어버리는 축축한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 보다 말린 것 위주의 보존식.
바닥에는 먼저 낙엽을 깔고, 그 위에 신문지를 덮어 공기층을 만들고 맨 위는 부드러운 모포를 덮어 땅의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응? 그 모포는...”
토시아키가 친실장 일가의 집에서 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딱히 세탁할 방법이 없기에 새로 사준다는 말로 버리고 온 일가의 재산.
아무래도 그 모포를 미도리가 가져간 모양이다.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한데스. 하지만 어차피 그 일가는 돌아오지 않을 거인 데스. 와타시가 써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데스.”
“그래. 어차피 필요 없어서 버리고 간 거야. 상관 안해.”
토시아키의 시선을 눈치채고 미도리고 고개를 숙였다.
딱히 분충끼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왜 버려진거지.’
잠시 고민하던 토시아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인간이 실장석을 버리는 이유야 뻔했다.
굳이 고민해봐야 좋을 일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잘 지내라.”
그렇게 별 다른 수확 없이 자리를 떠나는 토시아키를 미도리가 붙잡았다.
“잠깐만, 닌겐상. 기다려주는데스.”
“뭐야?”
미도리는 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었다.
혹시 자신도 키워달라는 것일까?
토시아키는 버려진 사육실장이 할 법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니-의 일인데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스. 어쨌거나 혹시 닝겐상이 니-를 버리려는 생각이 있다면... 여기로 데려와주지 않겠는데스?”
“응?”
“니-는 똑똑한 실장석인데스. 와타시도 아는 데스. 하지만 그런 건 닝겐상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데스. 그러니 닝겐상이 니-를 버릴 수도 있는데스. 그때 와타시에게 데려와주면 좋겠는데스.:
“흠...”
토시아키는 미도리의 두 눈을 보았다.
오른쪽 눈이 기이하게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요즘 사육실장은 다 불임수술을 한다고 했었나.’
잠시 살피자 토시아키는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든 눈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이 미도리라는 사육실장은 버려진지 시간이 꽤 흘렀을텐데도 자실장 없이 홀로 지내고 있었다.
“좋아. 약속하지.”
“감사한데스. 닝겐상. 그럼 안녕히 가시는데스.”
양손을 모아 꾸벅 인사하는 미도리의 모습이 니-와 겹쳐 보였다.
니-가 미도리에게 교육받았다는 확실한 증거.
니-가 제법 인복이, 아니 실장복이 있는 실장석이라고 생각하며 토시아키는 일가가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장녀인 이치면 모를까 니-를 버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미도리의 말대로 똑똑하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인간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
얼마 뒤, 장녀를 억제하던 친실장의 죽음 이후로 사태는 급격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들실장이 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학대파에게, 구제업자에게 죽는다.
물을 구하지 못해 죽는다. 먹을 걸 구하지 못해 죽는다.
동족에게 먹혀 죽는다. 마마에게 먹혀 죽는다.
그런 면에서 친실장이 맞이한 죽음은 들실장에게는 거의 허락되지 않은 기적이다.
천수를 다했다는 것.
수많은 자를 낳았고 수많은 자의 죽음을 보았다.
그 중에는 자신이 직접 솎아 내거나 식량으로 쓴 자도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데스.”
지금껏 낳은 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자.
차녀인 니-가 있기 때문이다.
“마마...”
“데프픗. 울지마는데스요.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인데스.”
우연히 사육실장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추운 겨울 가운데 마마를 잃은 차녀의 운명은 분명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충인 장녀와 원차녀가 제멋대로 보존식을 먹고 일가실각하는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친실장은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탁아라는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주인사마...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스. 니-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게 해 주는데스.”
“그래.”
“감사한데스.”
토시아키는 친실장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직전의 유언이다.
마지막 말 정도는 편히 하게 둬도 괜찮다고 생각헀다.
“니-. 이리로 오는데스.”
“마마... 마마... 테에엥.”
그토록 현명하고 영리한 실장석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아껴준 친실장의 죽음에는 어쩔 수 없었다.
니-는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격한 감정을 토해내며 친실장의 품에 안겼다.
적록색의 눈물이 친실장의 가슴을 더럽히고 순식간에 축축히 적셨다.
“이치를 죽이는데스.”
“테엣?”
친실장은 그런 니-를 쓰다듬으며 자그마하게 중얼거렸다.
상상치도 못한 친실장의 말에 니-는 울음도 멈춘 채 고개를 번쩍 들어싿.
“장녀는 분충인데스. 이대로면 장녀의 잘못에 오마에도 주인사마에게 죽는데스.”
“괜찮은테치. 지금까지처럼 와타시가 잘 해결할 수 있는테치.”
“무리인데스.”
친실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장녀는 상분충인데스. 원래라면 이곳에 오기 전에 와타시가 솎아내려 한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가 마중을 나온 탓에 솎아내지 못한 데스.”
“그래도... 그대로 가족인테치!”
“장녀는 오마에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데스.”
니-의 반론에 친실장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알고있는데스. 장녀는 이미 거의 성체실장이 다 된데스. 아직 자실장인 오마에가 장녀를 죽이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는데스. 하지만 똑똑한 오마에라면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데스.”
“...”
친실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녀와 차녀에게는 중실장과 자실장이라는 격차가 있지만 차녀가 가진 지혜에 의하면 그 차이는 우스운 것이다.
차녀는 장녀를 죽이는 방법을 순식간에 대여섯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집에 와서도 틈틈이 노린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주인사마의 눈을 피해 죽이는 방법은 찾지 못한데스. 하지만 오마에라면 가능한데스.”
‘무리인테치.’
차녀는 알고있었다.
실장석은 인간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가끔 잘된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인간이 일부러 속아주는 척 하는 경우일 뿐이라는 것을.
“대답하는데스. 할 수 있겠는데스?”
“...알겠는테치.”
결국 차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장녀를 죽이고자 각오를 다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죽음의 앞에 있는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어주기를 바란 행동이었다.
“아, 이제 안심인데스. 니-. 꼭 콘페이토의 낙원에서 만나는데스. 아아. 보이는데스. 마마가 기다리고 있는데스...”
“마마? 마마!”
그렇게 친실장은 행복한 듯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방 밖까지 흘러나오는 비통한 니-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에도 이치는 테프프하며 미소지었다.
***
혼자서도 충분히 이치의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을거라는 니-의 생각은 어설펐다.
중실장으로 성장한 이치는 자실장 시절에 비교해 모든 것이 한 단계 상승했다.
분충성도, 욕구도, 폭력성도 말이다.
“운치 싸는 테스. 테프프”
혼자서는 제대로 운치도 가리지 못하는 이치.
운치를 누는 장소에 가는 것은 알지만 일부러라도 사방에 운치를 묻히며 뿌닷하고 힘을 주며 배설한다.
당장의 쾌감을 위해 사방으로 튀는 운치를 닦는 것은 니-의 몫이었다.
“뭐하는테스! 운치를 눴으면 빨리빨리 치워야 하지 않냐는테스! 더러워서 똥주인에게 혼나면 오마에가 책임지는 테샤앗!”
“당장 치우는 테치.”
이치의 고함소리에 헐레벌떡 뛰어가는 니-
중실장이 된 이후로 운치의 양이 늘어나 이전에는 쉽게 했던 것도 지금은 빨리 하지 않으면 운치가 말라 떼어네기 힘들 정도이다.
“텟츄. 텟츙.”
“테프프프”
열심히 사방에 튄 운치를 닦아내는 니-의 모습을 이치가 비웃으며 쳐다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니-를 보던 이치는 괜히 심술이 나 발로 찼다.
“테챠앗.”
가볍게 찼다지만 체격차로 인해 데굴데굴 구르는 니-
아직 덜 닦인 운치가 니-의 분홍색 실장복에 군데군데 묻으며 얼룩을 남긴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데프프하고 웃는 이치.
“운치노예 주제에 빨리 닦지 않으니 그런 꼴을 당하는 테스. 교육을 시켜주는 와타시에게 감사하는테스.”
“...감사한테치. 오네챠.”
“테갸악! 오마에같은 운치노예가 와타시를 오네챠라고 부르지 마는 테샤앗!”
토시아키는 일가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분충인 이치를 데리고 일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던 것은 친실장.
그 친실장이 죽자 이제 자신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한 이치는 점점 난폭해져갔다.
“데프프픗. 와타시는 곧 성체가 되는 데스. 그러면 자를 낳아서 이곳의 똥주인을 죽이고 이 집을 차지하는데스. 오마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봉사하면 노예로 계속 살려둘 수 있는데스. 데프프픗.”
‘무리인데스.’
실장석이 몇이 있던 인간을 해칠 순 없다.
더군다나 저런 식으로 자신의 계획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더욱 더.
‘주인사마...’
니-는 흐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주인사마는 아마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니-가 필사적으로 이치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치의 말도 안되는 계획도.
그럼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 기유는 주인사마가 이치의 매력에 메로메로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을 즐기는 학대파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이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미도리 오바상.’
니-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 어께를 어루만졌다.
전사육실장이었던 미도리가 가르쳐 준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미도리는 사육실장의 증표는 이름이나 분홍색 옷 따위가 아니라고 했다.
왼쪽 어께에 박아 넣는 칩.
그 칩이야 말로 자신의 사육실장을 책임진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증명이다.
하지만 얼마나 지나도 토시아키는 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냥 구경거리인테치.’
니-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친실장의 죽음 이후로 자실장의 가장 큰 영양인 애정을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마, 장녀오네챠, 차녀오네챠,..’
정말 외로워 견딜 수 없을 때는 자실장 놀이용 공을 품속에 꼭 껴안았다.
다른 것들은 더러워 공원에 두고 왔으면서도 유일하게 챙긴 물건.
장녀와 차녀가 분충끼를 보이면서도 아직 상냥함이 남아 있었던 시절의 물건.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나가면 함께 가지고 놀던 그 공을 안고 있으면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이 느껴졌다.
‘장녀 오네챠는 개미씨를 좋아했던 테치.’
푸드와 콘페이토를 섞어 게걸스럽게 처먹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니-의 기억 속 장녀는 친실장이 나눠 준 개미를 한 마리 씩 입에 넣고 있었다.
간혹 수확이 좋아 개미경단을 만들어 줄때면 빵콘을 하며 기뻐 어쩔줄 모르던 장녀.
‘차녀 오네챠는 힘이 셌던 테치.’
식탐이 많았지만 많이 먹어서인지 그만큼 힘도 셌던 차녀.
여름의 배수로 공사에서 니-의 두세 배나 되는 일을 거뜬히 해 낼만큼 힘이 셌던 차녀.
‘마마는 엄청, 엄청 대단했던 테치.’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니-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수차례 자식을 독립시킨 경험을 가진 친실장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학대파 닝겐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동족의 위협 속에서도 천수를 누릴 만큼 장수했던 친실장은 지금도 니-의 우상이었다.
‘이 옷만 아니었어도 됬던 테치.’
설령 친실장이 한 겨울에 죽더라도 어떻게든 될지 몰랐다.
힘센 차녀가 있었으면 친실장이 막아놓은 보존식 통을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장녀가 식탐이 많다고는 하지만 두 실장석이 힘을 합치면 겨우 내 보존식을 아껴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모두 독립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테프프. 테프픗.“
니-가 지금까지 빠져본 적 없던 행복회로.
그 안에서 세 자매는 성체가 되어 각자 여러 자실장을 낳아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콘페이토의 낙원에서 지켜보는 친실장.
“아직 안 일어나고 뭐하는 테샤앗!”
“테엣!”
이치의 고함소리에 니-는 허둥지둥 일어났다.
그리고 좌우를 둘러보고는 테에 하며 혀를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본 것이 거짓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똥닝겐이 나갔는데 아침 준비를 하지 않고 뭐하는 테스! 와타시의 세레브한 배씨가 꼬르륵하면 책임지는 테샷!”
“금방 준비하는 데스, 오네챠.”
니-는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치는 다시 분노를 터트렸다.
“노예년이 와타시를 오네챠라고 부르지 말라는 테샤앗!”
“테벳.”
주먹으로 니-를 후려치는 이치.
이치가 화를 낼 걸 알면서도 오네챠라는 호칭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런 니-의 말에 몇 번을 말해도 들어먹지 않는 노예에의 분노를 담아 소리치는 이치는 한 대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지 씩씩 거렸다.
“텟? 저건 뭐인테스? 테프프. 오마에는 아직도 저딴 더러운 공이나 가지고 있는 테스?”
주위를 둘러보다 니-가 끌어안고 있던 공을 발견하고 비웃는 이치.
소중히 여기며 매 번 광이 날 정도로 닦는 공이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빛이 바랜 공이었다.
지금 닝겐의 집에서 살며 가진 물품 중에 저것보다 세레브하지 못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공은 안돼는 테치!”
“노예가 감히 명령하는 테스? 이딴 공은 이렇게 해 주는 테스!”
공을 건드리자 지금까지와 달리 소리치는 니-의 모습에 반항한다고 느낀 이치는 공을 쥐어 밟았다.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서인지 탄력을 잃은 공은 몇 번 찌그러지더니 이네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빠져 쭈글어들었다.
“테프프프. 그것 참 꼴이 오마에같은테스, 테프프픗.”
“테에...”
완전히 찌그러진 공을 보고 비웃는 이치.
니-는 기어가듯 공으로 다가가 바람 빠진 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혼이 나간 것처럼 주저앉아 멈춰있는 니-를 이치가 다시 한 번 후려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일하는테샷! 배씨가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테스? 빨리 하지 않으면 오마에도 저 꼴로 만들어 버리는테스.”
“...알겠는테치.”
니-는 찌그러진 공을 끌어안고 조용히 일어났다.
터덜터덜 토시아키가 매일 먹이를 주던 곳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치는 씩씩거리던 것을 멈추고 만족한 듯 웃었다.
그날 토시아키가 집에 돌아와 본 것은 한 실장석이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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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한거냐?”
“네. 테치.”
죽어있는 이치와 그 옆에 멍하니 앉아 있는 니-를 보고서도 토시아키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요 며칠간 이치의 행동은 니-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둘 중 누구든 조만간 죽을 거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겠지.’
토시아키는 그가 없는 사이 방 안을 녹화하던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이 재생되자 흥미를 느낀 것인지 가만히 앉아있던 니-도 영상이 보이는 곳으로 다가왔다.
‘운치싸는테스. 테프픗.’
‘...’
이치가 운치를 싸는 순간 습격하는 니-의 모습.
실장석 특유의 테치테치거리는 소리 없이 쭈그려 앉은 이치의 이마에 칼을 휘두른다.
그러고보니 야생동물이 가장 방심할 때가 배설행위를 할 때라고 했었던 것 같다.
운치를 누기 위해서 팬티를 내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황.
쭈그려 앉아 딱 자실장에게도 습격하기 좋은 높이.
평소 조리 할 때 자주 쓰던 칼날.
세 박자가 고루 어우러져 이치는 니-의 습격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테샤앗! 뭐인테스! 갑자기 이마씨가 따끔따끔한테스’
그래도 체격과 힘의 차이 덕분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이치가 마구잡이식으로 사방으로 휘두르는 주먹을 맞는 것조차 니-에게는 커다란 타격이다.
만약 이때라도 이치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텟? 자가 나오는 테스. 안되는 테스. 와타시는 이런 운치 누는 곳이 아닌 세레브한 곳에서 닝겐노예의 시중을 받으며 자를 낳아야하는 테스. 텟, 텟테로게~“
흐르는 피로 양 눈이 붉은색이 되어 강제출산을 시작하는 이치.
실장석의 본능에 따라 마구잡이로 생성된 저실장을 낳으면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모습.
“테챠앗!”
니-는 그제야 기합성과 함께 .온 몸을 내지른다.
양 눈에는 적록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치의 위석이 있는 곳에 정확히 칼끝이 향하도록.
파킨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양 눈에 빛을 잃어버리는 이치.
무언가 말하려는 듯 텟텟 하며 손을 뻗어 보지만 의미 있는 몸짓이 되지 않고 사라진다.
이치의 죽음을 제자리에서 한참을 확인하더니 구석에 가서 주저앉는 니-.
토시아키가 들어올 때와 같은 위치인 걸 보니 아마 저 이후 계속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걸로 보고 있었던 테치?”
“그래.”
니-의 말에 토시아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는 피식하고 웃었다.
이번에는 충동적으로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방식이 됐지만, 사고사를 위장했더라도 금방 들켰을 것이다.
“이제 와타치가 분충이 되었으니 죽이는 테치?”
이제 일가중에 남은 것은 니-뿐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관찰한 토시아키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니-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응? 아니. 딱히 그럴 생각은 없어. 이것도 최대한 노력한 뒤에 어쩔 수 없이 죽였으니까. 뭐, 정당방위라고 볼 수도 있지.”
“그럼 테치?”
“계속 기를 생각인데? 이번에는 약간 뻔 하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앞으로 너를 기르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더 생길 것 같고.”
“재미, 테츄까. 테프프프픗.”
그제야 니-는 토시아키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장석 치고는 똑똑한 자신이 필사적으로 고민하며 하는 행동을 즐기는 것.
이번 일도 그의 연장선상에 있다.
토시아키는 어찌되던 상관없었다.
만약 니-가 끝까지 가족애를 발휘하여 예정된 파멸을 맞이해도 토시아키는 그것을 즐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편이 재미있으니까.
그게 인간에게 사육되는 애완동물의 운명이라고 니-는 이해했다.
“공원에 돌아가고 싶은 테츄...”
니-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토시아키가 자신을 놓아 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있었다.
어쩌면 니-가 낳을 자들 까지도 토시아키의 ‘재미’를 위해서 이곳에서 수명을 마칠 것이다.
공원에 비하면 천국이라 생각 할 수도 있다.
밥을 먹지 못하고 굶어 죽고, 방한 도구를 챙기지 못해 얼어 죽는 동족이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니-는 어릴 적 공원 생활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래? 그럼 돌려보내 줄게.”
그런 니-에게 토시아키의 말을 상당히 의외였다,
어째서 그러는 거냐고 눈을 크게 뜬 니-에게 토시아키가 말했다.
“애초부터 혼자 있던 나에게 탁아를 한 건 너희 일가였잖아. 제멋대로긴 하지만 돌아간다는 데 딱히 말릴 생각은 없어. 네가 지금 이대로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고. 싫어하는 실장석을 괴롭히면서 듣는 비명에 즐거움을 느낄 나이는 지났거든.”
어께를 으쓱하는 토시아키의 모습.
그 모습에 그렇다면 지금 당장 공원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말하려던 니-를 토시아키가 잠깐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봐. 윽, 더러운데. 네가 찾아봐라. 여기 뭐 없냐?”
토시아키가 니-를 데려간 곳은 변소였다.
니-가 이치를 죽인 그 장소.
어째서 자신을 데려 온 줄 모르고 혼란해하던 니-에게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와줘요 레후. 마마 어디있는 레후.”
“테엣!”
강제 출산된 이치의 자들 중에서 살아있던 저실장이 있었다.
니-는 황급히 운치덩이 사이를 뒤지며 저실장을 찾아내었다.
“레후? 오네챠인레후? 우지챠 외로워서 파킨 할 뻔 했던 레후. 마마는 어디있는레후?”
니-를 보고 반갑다는 듯 꼬리를 페타페타 흔들며 반기는 저실장.
꼬리가 흔들릴 때 마다 묻어있던 운치가 사방으로 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니-는 우지차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네챠. 프니프니를 원하는 레후. 프니프니.”
“프니프니...”
지성이라곤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저실장과의 대화.
저실장의 요구에 니-는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 복부를 살살 눌렀다.
“레퍄퍗! 오네챠의 프니프니는 극락인레후.”
물똥을 지리고 온몸을 비틀며 환희의 목소리를 높이는 저실장.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프니프니는 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우지챠... 프니프니 기쁜 테치?”
“기쁜레후! 좋은레후! 우지챠는 프니프니해주는 오네챠가 제일 좋은레후!”
“테에에엥.”
저실장의 말에 오열하며 프니프니를 계속하는 니-.
저실장이 더 이상 흘릴 변조차 없이 황홀한 표정으로 탈진할 때까지 프니프니는 계속됬다.
“레후. 프니후.”
쌕쌕 소리를 내며 기절하듯 잠이 든 우지챠와 그런 우지챠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는 니-의 모습.
분충이었던, 자신을 가족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던 이치가 낳은 우지챠였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가족애를 느끼개 해준 우지챠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너 혼자라면 어떻게든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지챠는 어떨까?”
“텟.”
니-는 그제서야 이곳을 나와 공원으로 가려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니-의 뛰어난 두뇌로도 우지챠와 함께 공원에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네가 성체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아, 이런.”
토시아키는 그때 갑자기 미도리의 제안이 떠올랐다.
만약 니-를 버리게 된다면 자신에게 데려와 달라던 제안.
“그러고보니 미도리가 이런 말을 했었지.”
니-가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기에 토시아키가 말하지만 않으면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토시아키는 그것이 어쩐지 불공평하다고 생각됐다.
그런 식으로 하나 둘 좋을 대로 판단하다 보면 이 일의 ‘재미’또한 반감될 것이다.
“네게 사육실장으로서의 지식을 알려줬던 미도리말이야. 그녀석이 너를 데려와 달라고 하더라고.”
토시아키는 결국 미도리와의 대화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
“닝겐사마, 고마운테치.”
“고마운레후.”
미도리의 집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니-.
그리고 그런 니-를 그저 오네챠가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따라하는 저실장.
토시아키는 아쉽게 됐다는 생각을 했다.
저 저실장이 자라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과연 저 저실장은 양충으로 자랄까. 그렇지 않으면 이치의 피를 이어 완벽한 분충으로 자라날까.
이번에는 분충으로 자라나더라도 니-쪽이 힘도, 체격도 위다. 저번보다 수월하게 해결 할 수도 있다.
혹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못해 오히려 맞으며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종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토시아키는 바로 떨쳐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만 관찰하는 것은 실장석 다큐멘터리라도 보면 된다.
그거 원하는 것은 실장석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그리고 니-는 공원을 선택했다.
“결국 버려진데스까...”
인간이 온 기척에 몸을 숨겼던 미도리가 그 정체가 토시아키와 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수풀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월동준비를 완벽히 해냈기에 전에 봤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오바상은 누구인 레후?”
“미도리 오바상...”
저실장은 니-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동족의 모습에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니-는 설령 미도리가 오라고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먹서먹한 기색이었다.
“괜찮은데스. 괜찮은데스.”
“테.. 테에엥.”
미도리는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니-를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그 온기에 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무서웠던 테치! 힘들었던 테치!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테치! 하지만 와타치가 포기하면 오네챠는 죽어버리는 테치! 그래도 오네챠는 그런 와타치를 계속 괴롭혔던 테츄!”
“오네챠 울지 마는 레후. 오네챠가 울면 우지챠도 슬픈 레후. 레훼엥.”
미도리의 품을 파고들며 그동안의 서러움을 쏟아내는 니-의 모습.
토시아키는 한참을 기다려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니-의 못브에 미도리에게 말을 전하기로 했다.
“저실장도 한 마리 데려왔는데 괜찮겠어? 일단 한참 월동중일테니 먹이가 모자랄 수도 있겠다 싶어 푸드를 조금 가져왔는데. 니-뿐만 아니라 저실장도 늘었으니 먹이가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감사한데스. 닝겐상. 닝겐상이 주신 푸드가 있다면 남은 겨울정도는 문제없는데스.”
“그래. 그럼 이만.”
양손에 각각 니-와 저실장을 안고 고개를 숙이는 미도리.
니-의 울음이 그치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려던 토시아키는 그냥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기로 했다.
딱히 작별인사는 필요치 않았으니까.
“닝겐상! 기다리는테치.”
그리고 뒤에서 작게 들리는 테치테치 하는 소리에 토시아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던 테치. 분명 와타치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테치. 오네챠도 목숨을 잃은 테치. 하지만 마마는, 마마는 정말 행복해 했던 테치. 정말 감사한 테츄.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 테치.”
“...그래. 잘 지내라.”
토시아키는 피식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니-는 그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테치테치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자신의 집이 될, 미도리의 집을 향해.
***
“거기를 붙잡는 데스.”
“알겠는데스.”
겨울이 완전히 지나고 봄이 다가왔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니-는 마침내 성체실장이 될 수 있었다.
원래 성체실장이 될 시기이다.
이치를 돌봐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육체적 학대가 멈추니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마마! 오네챠! 와타치도 돕는 레치!”
미도리와 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구더기는 강제출산에서 태어난 구더기라고는 생각지도 않게 고치를 틀고 엄지가 되었다.
두 현명한 실장석의 교육 덕에 딱히 분충이 되지도 않은 엄지는 작은 몸으로도 미도리와 니-를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이제 다 된데스. 조금 쉬고는 밥을 먹는 데스.”
“알겠는데스. 오바상.”
니-는 결국 미도리를 마마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미도리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니-가 마음을 열기를 기다릴 뿐.
니-는 그 마음이 기뻤지만 결국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성체가 될 때 까지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콘페이토를 준비한데스”
“콘테이토레츄! 마마 정말 좋아하는 레츄웅.”
“데프프프. 기다리는데스. 니-가 아직 준비가 안된데스.”
“오네챠! 빨리, 빨리 오는 레츄!”
“알겠는데스. 금방 가는데스.”
성체가 된 니-는 이제 미도리와 함께 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일가는 니-가 새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모두 나서 마침내 오늘 이사에 성공한 것이다.
‘행복한데스.’
미도리가 주는 콘페이토를 받아 자리에 앉으며 니-는 생각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실장생이었다.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마가 있었고, 자신을 의지하는 이모토챠가 있다.
일가의 축복 속에서 독립할 수 있다.
‘독립하더라도 다시 찾아오는데스.’
자들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들을 보란 듯이 키워내 미도리와 이모토챠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미도리에게 마마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게 니-는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를 핥았다.
햇빛도 독립하는 니-를 축복하는 듯 따뜻한 햇살을 내려주고 있었다.
“데갸앗!”
“레챠앗!”
그 직후 한 웅큼 피를 토하는 니-.
온 몸에 감각이 사라지고 가슴에 엄청난 통증이 닥친다.
내장이 녹는 듯 한 고통과 함께 끊임없이 울걱거리며 올라오는 피.
니-의 현명한 두뇌는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코로리다.
“먹으면 안 되는 데샷!”
호흡조차 하기 힘든 폐를 억지로 쥐어짜 외쳤다.
하지만 니-가 먹은 직후 들렸던 불길한 소리.
니-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엄지를 바라보았다.
“이모토챠... 오로로로롱.”
성체인 니-가 한 번 핥자마자 이정도의 고통을 준 것이다.
엄지는 혀를 댄 순간 파킨하여 목숨을 잃었다.
“마마! 마마는 괜찮은데스?”
다행히 비명은 한 번만 들렸다.
자신이 마마라고 부른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미도리 쪽을 바라본 니-는 죽기 직전임에도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죽기 직전이라 환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도리는 죽어가는 니-와 엄지를 보고 데프프프하고 웃으며 콘페이토를 핥고 있었다.
“어째서인데스?”
니-는 미도리가 일부러 코로리를 자신과 이모토에게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일 거라면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자신이 자실장이던 시절 죽였다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월동식량도 아낄 수 있다.
어째서 봄이 되어 독립하려는 지금에서야 자신을 죽이는 걸까.
미도리는 니-의 마지막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데프프픗. 멍청한년인데스. 자기가 낳은 것도 아닌데 키워주는 병신이 어디있는데스?”
미도리는 니-의 마지막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고있는데스? 오마에의 그 실장복은 굉장히 세레브한 물건인데스. 자실장이 성체가 되면 그에 따라 성장하는, 엄청나게 세레브한 실장복.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어울리지 않겠는데스?”
니-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니-가 성체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은 실장복이 자신의 몸에 맞을 정도로 커질 때 까지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 닝겐에게 사는 곳을 들킨데스. 그러면 오마에타치를 살렸다가 새 보금자리를 만들 때 노동력으로 쓰면 좋은데스. 데프프픗. 역시 와타시는 현명한데스.”
이미 죽어가는 니-의 실장복을 벗기며 미도리가 말했다,
니-는 미도리가 실장복을 갈아입고 데프프하고 웃는 모습을 보며 죽어갔다.
최후의 순간에 믿었던 실장석에게 배신당하여 검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지만 원래 실장석이라는 생물이 그런 것이다.
토시아키는 원격으로 감시하고 있던 카메라를 회수하며 주억거렸다.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