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전쟁

 


애호파의 천국이었던 후타바 제 2공원. 그러나 애호파들의 발길이 하나둘씩 끊어짐에 따라 식량공급에 한계를 느낀 제 2공원의 실장석들은 몰살의 위기에 몰린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애'오(汚)파' 커뮤니티 회원들에 의한 실장석 집단이주. 매일 같이 동족식과 처참한 구걸 떼가 이어지자 구청에서는 제 2공원의 실장석들을 구제토록 결정했는데, 우연찮게 그것을 알게된 애오파 커뮤니티 회원들이 돈을 모아 5톤 트럭을 빌려 제 2공원의 실장석들을 인근의 제 3공원으로 모두 실어나른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굴러온 돌' 제 2공원 실장석과 '박힌 돌' 제 3공원 실장석간의 생존을 건 대투쟁을 유발할 수 밖에 없었다.




생존 전쟁




"데스…"
"데스데스"

이론상 백만 개체 중에 하나 꼴로 볼 수 있다는 '적당한 자제력과 지능을 갖춘 마라실장'. 일반 실장석에 비해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마라실장이 자제력과 지혜까지 갖출 경우, 그것은 혼자 수십마리의 실장석을 처치할 수도 있는 괴물로 거듭난다. 그것이 바로 후타바 제 3공원의 우두머리, '미도리'. 

후타바 제 1공원, 제 2공원, 제 4공원 모두가 식량 및 물 부족 사태로 인해 난리가 났음에도 제 3공원만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도리의 철혈 통치 덕분이었다.

공원 내 모든 친실장들의 2마리 이상 자실장 키우기 금지, 그 이상의 자들은 모두 죽이고 말려 비상식량으로 사용. 닌겐에게 해를 끼치는 분충은 즉각처결. 

마치 산실장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엄격한 규율로 인해 공원은 분충도 없고, 개체수 조절이 적당히 되어 절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이 유지될 수 있었다. 덕분에 애호파 닌겐들의 발걸음도 모두 이 제 3공원으로 몰려 다른 공원들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모두 싸움을 준비하는데스"

미도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 공원 입구 앞에 늘어선 약 1,000여 마리의 제 2공원 실장들을 응시했다. 

"쉬운 싸움이 아닌데스"

제 3공원의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우수한 개념개체. 게다가 애호파들의 영양공급 덕분에 상대적으로 체구도 좋았지만, 절대적인 개체수 조절 덕분에 실제로 싸움이 가능한 성체 실장은 200마리 미만이었다. 숫자상 1:5의 싸움. 

"하지만 상대는 분충들인데스! 이길 수 있는데스! 이긴다면 저 모두를 독라 노예로 쓸 수 있는데스"

그랬다. 마치 병정개미떼처럼 철저한 규율과 단합 속에서 하나가 아닌 모두를 위해 살아온 제 3공원의 실장석들은 그동안 길고양이, 들개, 까마귀 등과 싸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갑작스러운 침입자 앞에 하나로 단결했고, 싸우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모두들 각자 핀침, 부러진 나무젓가락, 클립, 녹슨 못, 빨대 끝 등 비장의 무기들을 챙겨 나왔다. 

"오늘 우리의 저녁은 저 분충들의 위석인데스!"
"하잇하잇하잇데스!"

미도리의 외침에 맞추어 제 3공원의 실장석들은 모두들 팻트병 뚜껑 방패를 앞으로, 그 뒤를 각자의 무기들로 챙겨 천천히 앞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데에에에"
"데샤아아아아아!"
"이게 뭐인 데슷?"

애호파 닌겐들의 "살기 좋은 천국으로 데려다 줄거야"라는 말만 믿고 본인과 자들의 몸뚱아리 하나만 달랑 챙겨 트럭에 올라탄 제 2공원의 실장석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애호파 닌겐은 공원 주차장에서 실장석들만 내려주고는 서둘러 도망치듯 가버렸다. (당연한 것이, 실장석들의 무단 대량투기는 유해조수 관리법에 의거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행동이니까)

결국 모두들 어리둥절한 채로 모두가 하나되어 그저 위석의 지시에 따라 공원 입구로 걸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보고받은 제 3공원 실장석들은 그것을 침입으로 규정하고 전투 태세에 들어간 것이었다.



"데, 데데…"

저어거 멀리 앞에서부터 제 3공원 실장군은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명백히 적대적 의사를 보이면서 날카롭고 반짝이는 것들을 앞으로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제 2공원 실장석들은 겁을 먹고 빵콘을 하는가 하면, 비명을 지르고 곧바로 도망칠 준비부터 했지만 역시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고 했던가.

"자들로 방패를 삼는데스우!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스!"

지시를 내린 것은 전직 사육실장이자 제 2공원 최강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원 세레브 실장 '에메랄드'였다. 지능이 높은 개체답게 단박에 현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명령을 내렸다. 자실장 및 엄지, 구더기들로 실장방패를 삼는다….

한쪽 눈알이 세라믹으로 된 불임실장인 탓인지 자들을 희생시키라는 에메랄드의 지시에는 요만큼의 망설임도 없었다. 멘붕 직전의 상황 속에서 '살 수 있다'라는 외침은 제 2공원 실장석들의 생존욕을 불러일으켰고, 분충들은 전혀 망설임 없이 자들을 대열 앞으로 내보냈다. 조금이라도 자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친실장들은 "그럴 수 없는데스우!"하며 눈물을 쏟기 시작했지만, 에메랄드가 그런 친실장 하나의 목을 물어뜯자 곧바로 대부분의 친실장들이 자들을 대열 앞으로 자실장들을 내보냈다.

"자는 새로 낳으면 되는데스!"

에메랄드는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속 쓰린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외침에 제 2공원 실장 전체의 생존이 걸려있었다. 




"데에?"

미도리는 깜짝 놀랐다. 완전무장한 제 3공원군이 전열을 짜서 전진하자, 제 2공원 실장석들은 도망치는대신 자들을 대열 앞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자들을 두 마리 이상은 키울 수 없는 제 3공원 실장석들은 그런만큼 자에 대한 애정이 지극히 높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자들을 방패막이로 쓰는 제 2공원 실장석들을 보자 크게 분노했다.

"데샤아아아아아!"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언제나의 훈련 때처럼 천천히 전열을 맞춰 진격했어야 할 제 3공원군의 몇 마리가, 파렴치한 제 2공원 실장석들의 행동을 보고 분개한 나머지 먼저 달려드는 돌발행동을 한 것이다. 



"지금인데스! 모두들 팬티 속에 손을 넣어 똥을 꺼내는데스! 투분 준비!"

숫자는 이쪽이 저쪽을 압도한다. 에메랄드는 전열이 흔들린 제 3공원군을 앞에 두고 침착하게 이쪽의 대응을 유도했다. 그리고 분노한 제 3공원군 실장석 몇 마리가 사정권 안으로 달려들자 에메랄드는 외쳤다.

"투분!"

퍽퍽 퍽퍽 퍽 퍼퍽 퍼퍼퍽, 퍽, 퍽 퍽퍽!

기세는 좋았지만, 천 마리 가까운 실장석 군집 앞에 서너마리만 뛰어들어서야 답이 없다. 맨 앞 열의 투분이 쏟아지자 곧바로 달려오던 제 3공원 실장석들은 똥투성이가 되었고, 마침 배가 고프던 참에 큼지막한 똥탑이 생겨나자 앞열로 밀려나와 있던 자실장과 엄지실장들은 "똥인테치! 밥인테치!" 하며 달려들었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악!"
"테치 테치"
"이렇게 많은 운치는 처음인테치"

근 기백마리의 자들이 몰려들어 똥투성이의 실장군을 깨물어댔다. 아무리 자실장이라고는 하나 수백의 머릿수가 덤벼들자, 마치 피라니어 떼에 잡아먹히는 말처럼 삽시간에 그 전투실장들은 자실장들의 뱃 속으로 사라졌다. 




"데에에에"
"데, 데샤아아아"

그 모습은 전열을 갖춰 전진해 오던 저 뒤의 제 3공원 실장군에게도 충격이었다. 성체들의 투분에 이은 자실장 떼의 동족식. 눈 앞에서 처참한 꼴을 보자 그들의 마음 속에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고, 일사분란하던 움직임에도 빈틈이 생겨났다.

"데에이이이!"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미도리는 분노한 듯 마라를 잔뜩 세우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진격하는데스! 내가 모조리 몰살시켜버리는데스!"

미도리의 참전에 흔들리던 전열이 단번에 안정되고 사기가 찌를 듯했다. 천천히 전진하는 제 3공원 실장석들과, 저 앞 공원 입구에서 대기 중인 제 2공원 실장석들의 거리는 이제 불과 15미터도 되지 않았다.




"저 놈이 우두머리인데슷"

에메랄드는 중얼거렸다. 역시 고지능 개체답게 저 마라실장이 이 공원의 지배자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에메랄드는 눈 앞의 자들에게 외쳤다.

"저 마라실장의 마라는 우마이봉인데스!"

우마이봉. 미처 콘페이토나 실장사료를 챙기지 못한 일반인이나 애호파들이 임시방편으로 공원의 실장석들에게 부수어 나누어주는 과자의 이름, 우마이봉. 덕분에 자들은 항상 부스러진 조각만 맛보았기에, 마라실장의 저 큼지막한 마라가 우마이봉이라고 하자 그것을 진짜라고 믿은 것이다. 뭐 실제로, 마마에게는 달려있지 않은 어떤 거대하고 길쭉한 그 무엇. 자실장들의 저열한 시력으로 보았을 때는 마치 저 앞에서 왠 아줌마가 큼지막한 먹거리를 들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우마이봉인테츄카?"
"뿌니뿌니를 원하는레후"
"먹는레치!"

'우마이봉'이라는 소리를 듣자 제 2공원 실장석들 앞의 자들은 일제히 제 3공원군 중앙의 마라실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 큼지막한 우마이봉을 먹기 위해. 




"데에에에?"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결사적으로 이쪽으로 달려드는 수백마리의 자실장, 구더기, 엄지실장을 보자 제 3공원군은 조금 충격을 먹었다. 게다가 그 눈빛들은 지독히도 결사적이 아닌가. 

"주, 죽는데샤아!"

두 군세는 충돌했고, 중앙의 마라실장에게 집중적으로 달려드는 자들을 막기 위해 제 3공원 실장석들은 거침없이 방패와 무기들을 휘둘렀다.



"죽는테치이이이!"
"아픈테챠아아아아아아아!"
"무서운레- 파킨!"

파킨! 파킨! 파킨, 파파파파파파파킨! 파킨! 파킨! 

어쨌거나 자실장들이다. 먹을 것이 저 앞에 있다는 말에 달려들었을 뿐이지만 갑자기 난데없이 이 아줌마 실장들이 못과 병뚜껑을 휘두르며 잔인하게 자실장과 구더기들을 도륙하자, 순간 공포에 질린 자들은 쇼크로 인해 마구마구 죽어나갔다. 파킨 파킨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데에에엑? 지, 지금은 안돼는데슷! 제, 젯데게로~ 뎃데레로~"

한편, 부러진 커터칼날로 제 2공원 자실장들의 목을 날린 한 제 3공원 실장은 그 피가 눈에 들어간 탓에 갑작스레 강제출산을 시작했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음에는 그저 걱정스러울 따름이었지만 과연 눈 앞에서 자들 수십, 수백이 마구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제 2공원 실장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라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죽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녀챠아아아아아아아!"
"삼녀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이는데샤아아아아아!" 

에메랄드는 그 분노를 제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개념 친실장들은 일제히 달려나가며 투분을 개시했고, 그 대변을 맞자 제 3공원 실장군의 대열이 매우 혼란해졌다.

"지금인데스! 숫자는 우리가 압도하는데슷! 저들을 모두 죽이고 이 천국의 콘페이토와 스시와 스테이크를 뺏는데샤! 저들을 모두 노예로 만드는데샤!"
"데스아?"

그때까지도 주춤하던 제 2공원 실장석들은, 에메랄드의 외침에 고무되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봐야 갈 곳도 없고, 애호파 닌겐들이 분명히 천국이라고 한 말을 더 믿고 싶었다. 제 2공원 실장석들을 죽을 힘을 쥐어짜며 앞으로 달려나가 제 3공원 실장석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데샤! 데샤! 데샤!"
"테주와! 테츄아!"
"아픈데샤아아아!"
"죽이는, 죽이는데스아!"
"테츄…"
"그극, 그그그극…"


싸움은 난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역시나 무기를 든 제 3공원 실장석들이 전황을 압도, 1,000 vs 200은 금새 600 vs 170까지 줄어들었지만, 실장석의 저열한 체력이 문제였다.

수십 마리를 죽이고 찌르고 베어넘기자, 무기를 손에 들고 있기도 힘들어졌다. 게다가 마치 좀비떼마냥 한 마리당 대여섯마리가 덤벼드는 상황 속에서야 무기의 효율적인 사용도 힘들었다. 

"데샤아아아!"
"무기를 빼앗은데샤!"
"죽는…테규왁!"
"테샤 테챠 데샤!"
"아픈 아픈데스!"

제 3공원 실장군의 체력이 고갈되자 전황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550 vs 130, 390 vs 72… 그 와중에도 미도리는 양쪽 팔에 쇠못을 든 채로 거의 혼자 100마리가 넘는 실장석들을 죽이는 눈부신 무용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절반 이상이 죽어나간 것을 눈대중으로 짐작한 미도리는 외쳤다. 

"제 2 방어선으로 후퇴하는데스!"



이어지는 난전을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에메랄드는 지금이 자신들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쪽이 지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원은 저들의 홈그라운드. 

만약 저들이 잠시 물러나 쉴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잘 짜인 방어선을 재구축한다면, 이제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 제 2공원 실장석들은 꼼짝없이 몰살 당하거나 독라노예가 되어 대대손손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한다.

원 세레브 실장으로서의 자존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탓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휘만을 했던 에메랄드였지만, 지친 제 2공원 실장들을 한계까지 몰아부쳐서라도 지금 승기를 확실히 굳해야했다.

"죽이는데스아아아아아아!"

에메랄드는 땅에 떨어진 핀침을 집어들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잠시 숨을 고르던 제 2공원 실장석들도 힘을 얻고 맹렬한 추격을 개시했다.



"테에, 저 놈이 우두머리인데수까?"

미도리는 문득 저기, 혼자 유독 튀는 놈들 발견했다. 대단한 미모의 실장석. (그도 그럴 것이 원 세레브 실장이니까) 게다가 이 부랑자 녀석들이 저 실장석의 지시에 따라 싸우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상대의 우두머리를 파악한 미도리는 그 새삼 매력적인 외모의 미도리를 보자 한층 더욱 불끈하며 그쪽으로 향했다.



우두머리 vs 우두머리, 대장전 일기토. 마라실장 미도리와 원 세레브 실장 에메랄드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사실상 그 둘의 싸움이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 분명했다. 고로 그 순간 모두의 싸움이 중지되었고 숨쉬는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그 모두가 둘만 바라보았다.

"데스아…"
"데스, 데스"

하지만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세레브 실장은 전문 브리더들이 수백, 수천마리의 실장석들을 희생시켜가며, 사육용 실장 중에서도 제일 아름답고 예쁜 녀석들로만 골라서 키워내는 것. 까다로운 눈을 가진 부호들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이는 귀여움의 극치가, 가뜩이나 성욕이 끓어넘치는 마라실장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미도리의 눈에 에메랄드는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와도 같았다. 제 3공원 내의 그 어떤 실장석보다 예뻤다.

한편 에메랄드의 눈에 있어서 미도리는 가히 압도적인 그 무엇이었다. 브리더의 손에서 철저히 훈육받고 최고급 사료만을 골라먹은 원 세레브 실장에게 공원의 다른 개체들은 언제나 자신에게는 '열등한 생물'일 뿐이었다. 분충 차원의 근거없는 선민의식이 아니라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도리는 다르다.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마라실장으로서의 피지컬과 저 당당한 마라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력한 존재였다.

에메랄드의 눈에 미도리는 자신이 '남편님'으로 모시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순간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옆에서 목숨 걸고 싸우던 다른 실장석들은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본디 실장석은 지극히 멍청하고도 이기적인 생물이다. 당장의 싸울 이유를 찾지 못하자 모두들 뿔뿔히 흩어져 제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났다. 두 지도자의 사랑을 시작으로 말이다. 



"우리는 하나인데스!"
"우리는 하나인데슷!"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죽고 죽이던 그들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제 2공원 실장석들은 죽은 제 3공원 실장석들의 집을 차지했고, 미도리는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둔 구호물자(?)들을 모두 풀어 그네들을 도왔다. 

제 3공원 실장석들은 어쨌든 '굴러들어온 돌'에게 자신들만 양보하게 된 격이라 조금 불합리를 느끼기도 했지만, 현명한 에메랄드가 그 상황을 눈치채고 재빨리 "앞으로 미도리상의 마라는 내가 전담하는데스우" 라며 미도리의 마라를 강제로 받아야했던 고통을 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뭐 그래서 더 분노한 조금 밝히는 개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전쟁은 종결되었고 두 시간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 물론입니다. 시장님. 제가 이런 말 하기도 조금 뭣하지만 도대체가, 제 1 제 2 제 4공원 관리자들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후타바 제 3공원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6급 공무원 토시아키는 시장님은 물론 사찰단을 데리고 공원으로 진입했다. 후타바 시 공무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 업무 성과 자기 추천제도 > 사례로, 토시아키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다른 공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깨끗한 제 3공원을 추천했다. 마침 동물애호가이기도 한 시장은 토시아키의 자기추천에 관심을 갖고 사찰단과 함께 공원을 찾았다.

"게다가 실장석들이 화목하게 뛰놀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보다 더…"
"어흠! 흠! 흠!"


하지만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토시아키는 대경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수백마리의 실장석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있었고 바닥은 실장석의 피와 똥으로 아예 거대한 웅덩이가 고일 지경이었다. 냄새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시장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사찰단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가버렸다. 토시아키는 서둘러 차 뒤를 반쯤 울며 쫒아갔지만 허사였다. 그로서는 그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도 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3일 뒤, 후타바 제 3공원은 약 5일에 걸쳐 위석 스캐너까지 동원한 외부 전문 실장구제업체의 철저한 구제작업으로 공원 내 모든 실장석이 살처분되었다. 물론 토시아키는 공원 관리직보다 더욱 한직으로 밀려났다. 

두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생존을 건 전쟁까지 벌인 결말로서는 어이없이 허무했지만… 
원래 이 세상 모든 전쟁의 결말도, 실장석들의 미래도 항상 덧없는 법이 아니던가.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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