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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풍경이었다.
평범한 공원, 중앙의 분수대에 실장석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실장석이 드글거리지 않으면 왠지 공원같지가 않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게다가 식수를 구하기 편하고 인간과 접촉하기도 좋은 중앙 분수대 근처는 항상 실장석들의 좋은
집합처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 영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 있다.
키가 크다. 라기보다 곰이야 사람이야. 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 우락부락하게 튀어나온 근육.
얼마나 단련했는지 차돌처럼 안쪽으로 쭉 말려 들어가 거의 완전한 원형을 가지는 주먹.
누구라도 어디서라도 시비붙을 일은 좀처럼 없을 것 같은 평화주의적인 모습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데스데스테치테치거리며 무언가를 그 남자
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실장석이 사람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사람보는 눈은 있다.
어린이들은 천적이나 다름없으니 무조건 회피, 머리짧은 닝겐은 손에 뭘 들었는지, 복장은 양복인지
편안한 츄리닝인지 확인하고 접근. 머리 긴 닝겐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안심하고 접근.
당연히도 지금 저 남자처럼 딱 봐도 맨손으로 백만실장쯤은 다져서 햄버그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사람은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실장석들이라도 좀처럼 접근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이 공원의 조건이 나빠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접근하는 것도 
아닐 터였다.
애호파들이 자주 오는 이 공원은 여러모로 실장석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참 실장석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던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맨 앞의 성체 실장 하나를 들어
분수대 옆의 장식용 기둥 위에 올려둔다.
무언가 잔뜩 기대한 것인지 귀를 파닥이고 콧김을 흥흥 내뿜으며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는 실장석.
A자 모양으로 벌어진 입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침이 슬슬 흘러내린다.

남자는 기둥 위에 올려둔 실장석과의 거리를 두어번 가늠해보더니 뒤로 두어걸음 물러났다.
그 기묘한 대치를 본 한 애호파 여성이 남자와 실장석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거...꺄아아아아아악!"

여성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고 손에 들고 있던 콘페이토 봉투도 떨어뜨렸다. 
남자는 기둥 위에 올려둔 실장석을 향해서 그 무시무시하게 큰 주먹을 냅다 휘두른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건한 흉터가 훈장처럼 아로세겨진 그 주먹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다.
여성은 드디어 이 공원에도 대낮부터 학대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비명을 
내질렀다.

"하, 학대파다!"
"뭐?"
"아니, 대체 왜 한낮부터..."
"특별히 분충성있는 아이들은 없었는데.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이 멋대로 설치는거야?"

여성의 고함소리에 주변에 있던 애호파들이 하나 둘 분수대 주변으로 모여든다.
아직 특별한 분충성이 발현되지도 않은 공원에 대낮부터 찾아온 학대파를 망신줄 생각으로 모여
들었겠지만 남자의 덩치와 인상을 보고는 누구 하나 섣부르게 다가설 수 없었다.
간신히 용기를 낸 한 사람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다, 당신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대낮부터 학대라니. 여기는 아직 아무 문제 없는 공원이라구요!"

맞아 맞아 하는 호응이 뒤에서 들려온다.
그제서야 자신을 바라보는 애호파 회원들을 인식한 남자가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표정으로
뒷통수를 긁적인다.

"아, 무슨 생각하지는지는 알겠는데. 저..그런게 아닙니다."
"아니긴! 이 아가씨가 다 봤는데!"

남자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오자 자신감이 올라간 것인지 애호파 인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저는 학대파가 아닙니다. 이 애들을 위해서 이걸 해주는거라구요."

모여있던 애호파 회원들의 얼굴에 일제히 의문의 빛이 감돌았다.
실장석들이 맞아죽는걸 원했다고?
언제부터 실장석들에게 자살선망이나 마조히즘이 유행했다는 말인가.
영문모를 소리에 애호파 회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남자를 본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 애호파 회원들에게 말한다.

"자, 이걸 잘 보세요."

그러고보니 아까 기둥 위에 올려두었던 실장석, 아직 죽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카오스 실장이나 실장씨도 아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냥 실장석이다. 
그런데 어떻게....아니지, 카오스 실장이나 실장씨도 저런 주먹으로 후려맞으면 죽고말 것이다.
자신들의 상식과 이성을 벗어난 사태에 애호파 회원들이 넋이 나간 사이 남자는 기둥 위에 있던
실장석을 조심스럽게 잡아 땅으로 내려두었다.

그 실장석은 행복한 표정으로 멍하니 '데에~'하는 멍청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자신을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고는 해도) 보통의 실장석처럼
자신이 사육실장이 되었다며 성질을 부리거나 바둥거리지도 않고 그저 앉아서 저 멀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다른 실장석들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멍청히 앉아서 넋이 나간 다른 실장석이 있음에도 공격하거나 비웃는 대신 맹렬하게
그 남자를 바라보며 '데스데스!' 하며 울 뿐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다음은 누구지?"

남자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다른 실장석 하나를 들어 기둥에 올려두었다.
이번 실장석도 아까의 그 녀석과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며 흥분으로 인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링갈을 떠올린 한 애호파 회원이 링갈을 작동시켰다.

[큰 닝겐상! 빨리 해주시는데스! 와타시도 낙원을 구경하고 싶은데스!]

낙원? 이게 무슨 귀신씨나락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애호파 회원들이 대체 실장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남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발은 앞으로 튀어나가기 위해서 살짝 기울어지고 허벅지는 힘줄이 불끈 올라오며 찢어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억센 팔과 어깨 근육도 한줄기 소나무처럼 단단하게 부풀고 그 끝의 주먹은 바윗덩어리마냥 단단하게
쥐어져 그 안에 담긴 힘이 보기만해도 느껴질 정도였다.
자기 앞에 있는 실장석을 노려보는 눈은 아까 그 순박하게 웃음을 짓던 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차갑고도 날카롭게 빛나고 힘을 주려고 이를 악물었는지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애호파 회원들도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 광경을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살기라고 할만한 것을 받은 실장석은 데에...데에 하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지 바짝
굳어 다리만 조금 떨고 있었다.

하압!

남자의 기합성과 함께 아까처럼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주먹은 실장석의 바로 코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주먹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던 실장석은 아예 넋이 나가
버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뎃데로게~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행복회로가 발동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남자는 그 실장석을 조심스래 들어 아까 내려둔 그 실장석 옆에 두었다.
두 녀석 모두 데에..하면서 먼 산을 아련한 행복감이 깃든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애호파 회원들이 남자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실제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는데 행복회로..아니, 저거 행복회로는 맞나?"
"처음보는 반응이에요. 꼭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왜 이러는거죠?"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애호파 회원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실장석들이 '왜 이렇게 늦는데스! 닝겐상!' 하며 항의했지만 그것들도 남자의
힘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러다가 남자가 그냥 가버리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투분하거나 남자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항의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예전에 다른 공원에 산책을 갔을 때, 다 죽어가는 실장석 하나가 와서 도저히 
고통스러워서 못 살겠으니까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더라구요. 맘같아서는 불쌍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키울 수도 없고 해서. 그럼 정말로 깔끔하고 편하게 보내주자 해서 아까처럼 정권지르기로
아예 박살을 내서 깨끗하게 죽여주려고 했는데..못 죽이겠더라구요."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바로 직전에서 주먹을 멈췄을 때, 그 다 죽어가던 실장석이 갑자기 
뎃데로게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낙원을 봤노라며 열심히 살아서 꼭 낙원에 가겠다고 닝겐상 덕분에 낙원을 알게 
되었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 저곳 공원을 돌아다니며 실장석들에게 직전에서 주먹을 멈추는 정권지르기를 해주고
있는데 하나같이 저렇게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애호파 회원들은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런 방식의 애호라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고 낙원이라니! 혹시 실장석들이 사후세계를 증명
하는 단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애호파 회원들은 남자에게 한 번 더 그 장면을 보여주기를 부탁했다.
남자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뭘'이라며 다음 실장석을 기둥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에도 기대에 부풀어 바둥거리는 실장석, 날아가는 주먹. 행복에 가득차 멍한 표정으로 데에 하며
내려지는 실장석.
한 애호파 회원이 링갈을 들고 그 실장석에게 다가갔다.

"대체 뭘 본거니?"

실장석은 멍한 표정으로 애호파 회원을 한번 쓰윽 돌아보더니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대답했다.

[꿈같은 광경이었던데스...마마도, 이모토챠도, 오네챠들도 모두모두 있었던데스...콘페이토가
마구 굴러다니고 따끈따끈했던 데스. 더운거 아니고 따끈따근인데스. 다함께 뎃데로게 노래를
부른데스. 언젠가 죽어버렸던 사녀도, 밥을 못 구해서 굶어죽었던 차녀도 모두들 배부르게 먹고
자를 가득 가득 낳으면서 행복했던데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데에 하고 앉으며 한 마디를 보탠다.

[언젠가는 와타시도 그곳으로 가서 같이 행복해지는데스. 그 때까지 살아가는데스.]

애호파 회원들은 그 내용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냥 전형적인 행복회로같다. 하지만 행복회로에 한번 들어갔던 실장석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몇 시간 후,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공원 분수대 근처에 둘러앉아 데에~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이상하다 못해서 괴이쩍은 광경이 펼쳐졌다. 
남자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심호흡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한 애호파 회원이 아까의 링갈 대화를 보여주며 남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남자는 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주마등, 아닐까요?"
"주마등이요? 그 죽을 때 보인다는 그거요?"

주마등이라고 하기에 이 이야기는 실장석들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실장석이라는 동물은 행복회로라는 걸로 다들 저 좋을대로 생각하잖아요. 주마등도 그거랑 섞여서
비슷하게 되는거 같아요. 
살아오면서 슬펐던 일, 후회하는 일 전부 묶어서 가장 좋은 쪽으로 상상하고 보는거죠.
그런데 그건 이미 지나온 길이니까 현실은 아니라는걸 이 애들도 아는거 같아요.
그래서 그걸 낙원이라고 부르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그리고 그래서인지 가끔씩 이렇게
해주면 실장석들이 좀 얌전해진다고 해야하나. 사람한테 덤비거나 막 굴지도 않고 저들끼리 다투지도
않고 그러더라구요."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라 애호파 회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참 신기한 일을 봤다고 생각하면서.
남자도 돌아간 공원, 모든 실장석들은 낙원과 자신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잘못,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행복들이 모여있던 그 '낙원'을 생각하며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동족들이 보이지만 서로를 공격하지도, 약탈하지도 않는다. 모두 서로가 바라본
낙원을 꿈꾸는 것을 알기에 아둥바둥 다투면서 지금의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쫒을 필요가 없다.
언젠가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된 실장석들은 덧없지만 확고한 희망과 행복을 가지고 
내일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검은 신발!

 

"아악! 늦었어! 완전 쳐늦었어!"

여고생인 은지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다니는 J여고의 등교시간은 7시 55분까지. 다행히 집과 가까운 곳이라
열심히 걸어가면 15분 거리. 하지만 잔혹하게도 시계는 7시 43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손으로는 쉴세없이 가방을 꾸리며 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만약 지각하면 벌점은
둘째치고 히스테리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의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릴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지각을
피해야한다. 버스나 택시나 주택가인 이 곳에서 잡아타고 가려고 해봤자 무계획적인 이 동네의 특성상 빙빙 돌아서
학교에 도착하면 어차피 지각 확정. 도저히 방법이 없다...방법이....

"응?!너 왜 아직 학교 안 갔냐."

그 순간, 그녀에게 구원이 내려왔다.

"아...쪽은 좀 팔려도....영혼하고 엉덩이가 같이 탈곡되는거보다는 나은 선택이지 뭐."

아까까지만해도 지각의 위기에 몸부림치던 가여운 영혼은 없었다. 사뭇 여유롭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로 
발을 들여 놓지 않을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냄새..."

시립 J공원, 2010년부터 정부가 일본에서 식량,의료,노동자원 수입계약으로 들여온 실장석이라는 민폐생물에 
의해 점거당한 공원 중 하나. 분명히 잦은 구제활동이 잇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처럼 자라난 그것들이 
뿌리내린 장소. 

평소라면 절대로 이곳을 통해 학교를 향하지 않는다. 비록 공원을 통해가면 15분 거리가 5분 거리로 단축된다지만 
그럼 뭐하는가. 교복이 온통 실장석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똥이나 침으로 범벅이 되버릴텐데. 하지만 오늘의 은지는 
굉장히 여유롭게 공원을 걸어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만 보이면 우르르 달려들어 온갖 잡다한 것을 요구하며 
귀찮게구는 실장석들은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잠깐 전, 은지가 공원에 발을 막 들인 그 순간.

"닝겐! 닝겐이 온 데스!"

"콘페이토를 내놓는 데샷!!"

평소처럼 실장석들은 간만의 공원 방문객에 흥분하여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은지가 신고 있는 신발이 보이는
그 위치, 딱 그곳까지 간 순간 실장석들은 모두

"데...와타시는 바쁜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할거 같은데스."

"와타시도 자들이 집에서 기다리는데스."

"와타시는 원래 콘페이토같은거 안 좋아하는데스."

바람처럼 흩어져 자신의 집으로 달아나 자들과 함께 덜덜 떨고 있었다. 은지가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바로
예비군인 오빠가 내준 전투화. 비록 발크기 차이가 심각해 안에 휴지를 한뭉탱이씩 넣고 걸어야하지만 그녀에게 
지금 그것은 구원이었다.

"와...진짜로 실장석들이 근처에도 못 오네."

한국에 실장석이 도입되고 사회문제가 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급박하게 커진 실장석 문제에 
성남이나 서울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대응할만한 메뉴얼도, 예산도 없었다. 그리고 항상 이럴 
때 만만한게 군대요 예비군인 법. 일당 6천원으로 향방작계에서는 6시간씩 
일년에 두 번, 동원훈련에서는 하루 8시간씩 3일을 부려먹을 수 있는 인력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일본에서 수입된 이 실장석들은 그녀들을 괴롭히던 공포의 '하얀 악마' 대신, '얼룩덜룩 악마' 를 맞이하게 
되었고 구형 전투복과 혼용된 복장에 혼란을 느낀 단순한 실장석들은 하얀 악마에 비해서 확 눈에 띄는 차이점, 
즉 검은 신발을 새로운 악마의 특성으로 기억하고 위석에 새겨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검은 신발! 검은 신발이 온데스!"

"마마, 무서운테치!!!"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레에에엥! 검은 신발이 와버린레치!"

"빨리 숨는데스!"

은지가 신고온 전투화 덕분에 공원은 일대 혼란, 그럼에도 은지가 가는 길은 평온했다. 아무리 실장석들이라도 
구두나 다른 신발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전투화와 그 발소리는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감히 그 방향을 바라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은지의 오빠는 3일 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고 아직 전투화에서는 실장석의 피냄새도 완전히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장석들에게 지금 은지는 동족의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검은 신발의 악마' 
그 자체였다.

"이쪽으로 오지마는 테챠! 오지마는테챠아아아아아아!"

"왜 이리오는테치! 마마! 싫은테치! 와타치는 살아야하는테치! 살아서 콘페이토도 스시도 스테이크도 
먹어야하는테치이!"

파킨! 

"오로롱~어째서 우리 자가 이런 죽음을 맞이한데스까...오로롱~"

간혹 멘탈이 약한 실장석들은 은지가 학교로 걸어가는 방향에 하필 재수없게 집이 있었던 관계로 조용한 
파킨사를 맞이하기도 했으며,

"죽기 전에 배나 실컷 불리는데스! 장녀,차녀,삼녀,사녀,엄지에 구더기! 자들은 모두 이리와서 마마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데스!"

"마마!"

"먹어도 괜찮은레치?"

"이건 전부 겨울을 위한 보존식인테스!"

"상관없는데스, 어차피 저 검은신발 악마가 온 이상 살아남기는 글러먹은데스. 자들, 지금까지 못난 마마 밑에서 
고생 많았던데스.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모두 실장석의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데스."

"마마! 테에에엥~"

"레후? 구더기도 밥 먹는레후? 먹고나서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대뜸 눈물의 잔치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휴, 다행히다. 지각 안 하고 통과했네."

막 교문을 통과한 은지는 미리 가져온 비닐가방에 오빠의 전투화를 벗어 밀어넣고 챙겨온 자기 신발로 갈아 신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오빠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나이차가 좀 많이 나서 약간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고마움의 표시로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교실로 향했다.

한편 공원에서는

"데..? 뭐인데스. 검은 신발이 그냥 지나간데스까?"

"왜 그냥 간 데스? 어째서인데스? 왜 나의 자들은 죽어야했던데스?"

"데샤아앗! 그만 처먹는데스! 이 분충들!"

"마마가 먹으래서 먹은테챠! 그런데 왜 때리는테치! 이 똥마마!"

"데프프프프, 검은 신발 악마도 와타시의 위엄에 놀라 달아난게 분명한 데스!"


"그런데스! 우리가 검은 신발 악마를 물리친데스!"

"이제 검은 신발 악마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진데스! 전부 우리가 물리치는데스!"

데스데스하며 왁짜지껄한 소란이 일어났다. 두달 뒤, 이번에는 향방작계로 J공원에 구제작전을 나간 예비군들이 
어째서인지 예전처럼 달아나지도 숨지도 않고 덤벼오는 실장석들 덕분에 전원 1시간내 목표량 달성 후 조기 퇴소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것은 아직 조금 뒤에 있을 이야기.







잠복소

 

“데...히..역시 엄청 추운데스. 빨리 추운데스....”

차가운 바람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며 매섭게 땅을 스치고 지나가는 계절, 
자연의 가혹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동물들은 모두 살아가기 버겁다. 
이는 인간들의 거주지 근처 공원을 삶의 터전으로 고른 실장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모발의 양과 질에서 다른 야생동물들에게 크게 뒤처지며 의복이라고 입는 것도 결국
허접한 펠트 덩어리. 
대부분의 성체 실장석들과 그 성체가 독립시키려고 마음먹은 자들이 봄에 태어나는 춘자나 여름에 
태어나는 하자이기에 그나마 옷이 얇은 것도 겨울의 추위 앞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더 얇은 의복과 봄에 태어나 가을에 독립했을 경우 말로만 들어본 겨울의 추위에 대한 
무지와 방심....이 모든 것이 겨울을 실장석들에게 지옥 같은 계절로 만들어준다.
경험이 있다고 해도 지옥같은 것은 마찬가지. 지금 공원을 헤매며 먹잇감을 찾는 이 친실장 역시 
다가오는 겨울의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번과 지난번 겨울과는 차원이 다른데스...왜 빨간노란 낙옆이 이렇게 빨리 떨어지는데스
이해할 수 없는데스...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방심할 수 없는데스.....“

이 친실장은 벌써 2번의 겨울을 난 베테랑이다. 
겨울을 두 번정도 극복한 실장석이라함은 그 지혜와 능력은 물론 타고난 천운이 하늘을 찌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행운도 여기까지 인 듯. 
친실장은 착실히 닥쳐오는 자신들의 일가실각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겨울은 지난번의 두 번과는 확실히 달랐다. 
일본에서 막 건너온 이 친실장의 마마는 일본의 겨울을 기준으로 겨울나기 준비를 교육했고. 
덕분에 삼일은 춥다가 따스해지기를 반복하는 날씨에 ‘데? 벌써 봄인데스?’ 라며 밖으로 나섰다가 
죽을 뻔하기를 몇 번 되풀이하고서야 겨울이라는 것이 마마의 교육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최선을 다해 쌓아올린 경험과 노력과 지혜는 이 실장석을 J시의 두루마리 공원에서 
가장 괜찮은 생활을 하는 들실장으로 만들어주었고 지금까지 안정적인 삶을 이어오게 해주었으나 
인간들도 당황할 정도로 빠르게 몰아닥치는 강추위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아는대로 낙옆과 보온재로 쓸만한 것들, 그리고 하루하루 보존식에 손을 대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먹잇감을 찾아 모으고 또 모으는 것 뿐.

“데...다녀온데스.”

친실장은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골판지 상자 3개를 써서 만든 든든한 집이다. 그 허접한 신체능력과는 별개로 이상하리만치 땅을 잘 파는 실장석들. 
아마 그들의 조상인 실석류가 식물의 재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게의 실장석들은 귀찮아서, 혹은 옷이나 머리카락에 흙이 묻는 것이 싫어서 그 능력을 거의 
사용하려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현명한 이 친실장은 달랐다.

몸이 더러워지건 말건. 소중한 물을 조금씩 땅에 뿌려 촉촉하게 만들어가며 성체가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넓은 운치굴과 도토리 따위를 보존하기 위한 보존식 굴 하나씩을 파고 그걸로도 부족해
집을 지을 지반 자체를 일부러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 곳으로 골라 3cm 정도 깊이로 땅을 넓게 파고 
골판지 하나를 통째로 깔아 고정하고 돌로 운치굴과 식량창고의 입구를 뚫었다. 

그 위에 뒤집어 세운 골판지. 그리고 그 위에 좀 더 큰 골판지 하나.
또, 그 위에는 비를 막기 위해 올려둔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못 쓰게 된 비닐과 골판지를 가져가
버리는 머리하얀 닝겐을 막기 위해 치덕치덕 발라둔 운치. 공원 어떤 실장석도 부러워할만큼
잘 만들어진 집이었다.

“마마, 다녀오신테치!”
“밥테츙~밥먹는테츙~”
“어서오시는테치~”
“구더기 프니프니하면서 기다린레치.”
“프니프니후~”

친실장이 돌아오자 반기는 자실장들. 불안으로 어둡던 친실장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다.
집 내부에는 다른 골판지보다 큰 이 곳이 비좁을 정도로 우겨넣은 나뭇잎과 각종 보온재들.
물을 뜨는 작은 패트병이 둘, 떠온 물을 만에 하나를 대비해 보관하기 위한 큰 패트병이 하나. 
보존식 굴에 넣고 남은 보존식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돌을 올려 막아둔 보존식 통이 둘...
구더기와 엄지의 침실이자 나중에는 소중한 식량이 될 잡초 한 무더기. 
본격적으로 겨울이 다가오면 운치굴에 밀어 넣을 엄지 하나, 구더기 4마리.

다른 집보다 크고 멋진 이 집을 탐내 덤벼왔다가 역으로 독라노예가 되어 팔다리는 뜯어먹고 출산노예로 
쓰기 위해 운치굴에서 키우는 노예 한 마리. 
작년 겨울이라면 이걸로 문제는 없는데스! 이제 봄을 기다리는데스! 
할만한 풍요로움이지만 이성도 본능도 한 목소리로 이대로는 죽어버리는데스! 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

친실장은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군침을 반쯤 흘리고 반쯤 삼키는, 쉴 세없이 귀가 퍼덕이는 
자식들을 바라보았다. 봄에 집을 개보수하느라 가지지 못해 여름에 가진 자들....
자실장들을 보며 느릿한 움직임으로 친실장은 보존식이 될 만한 것들을 신중히 봉투에서 골라내어 
보존식통으로 조심히 옮겨둔다.

그러면서 보존식의 양이나 위치가 변하지 않았는지 확인, 또 확인. 모으고 또 모아도 부족한 것이 보존식. 
그 양과 질의 확인은 친실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루의 일과였다. 
여전히 귀를 파닥이며 친실장의 손과 봉투를 번갈아 바라보는 자실장들. 맛좋은 푸드나 벌레 시체
따위가 보존식통으로 갈 때마다 조금씩 귀가 쳐지지만 이내 다시 파닥이며 기대감에 입맛을 다신다.

“자~밥을 먹는데스우~”
“테츙~”

친실장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신에게 배분된 먹이에 달려드는 자실장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실장석이기에 또, 성장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시기이기에.
무엇보다도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먹어야 후일의 생존 경쟁에서 미세한 우위나마 점할
수 있음을 알기에 자실장들은 필사적으로 먹거리를 집어 삼킨다.

“테챱테챱....맛나맛나테츄!”
“밥좋은테치! 행복한테치!”
“더 먹고 싶은테치. 너무 적은테치....”
“와타치는 오늘도 이거인레치....오네챠....아닌레치.”

가장 괜찮은 먹거리는 친실장의 몫, 그 다음으로 괜찮은 것들은 추려서 이번 겨울을 나면 성체가 되어 
독립할 것이 확실한 장녀의 몫, 나머지 중 대부분이 두 자실장의 몫, 가장 허접한 찌끄러기와 자실장들은 
아직 거들떠도 보지 않는 잡초뭉치가 엄지의 몫.
구더기들은 아까 친실장이 집어서 다시 운치굴에 넣어두었다. 
운치굴에서 들려오는 노예의 고통스러운 데에에하는 소리와 운치를 먹어치우는 구더기들의 레후레후 
소리. 식사 후에는 엄지도 넣어서 프니프니를 시키고 다시 꺼내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 와중에 엄지는 자매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해보려다가 자매들의 관심도 없는 태도에 실망해 그대로 
고개를 숙인다.

“테끄윽~ 잘 먹은테치!”
“엄지챠는 이제 프니프니하러 운치굴로 들어가는테츄!”
“레에에....안 레치.”
“프니프니가 다 끝나면 마마를 부르는데스.”

엄지를 집어 운치굴로 집어넣는 친실장. 엄지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기에 큰 반항이나 불만없이 
운치굴로 들어간다. 
이내 들려오는 프니프니로 인한 구더기들의 교성.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친실장은 저 정도 프니프니 실력이면 겨울에도 구더기들이 파킨할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래 미소짓는다.

프니프니가 끝나고 엄지를 끌어올려준 친실장. 엄지는 자신의 신발에 운치가 묻은 것이 영 마뜩찮은지 
자꾸 바닥에 쓰윽쓰윽 문질러댄다. 
그 모습을 테프프프 비웃으며 바라보는 자실장들. 이렇게 매일 엄지를 운치굴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 
나중에 엄지를 운치굴에 아예 집어넣을 때도 자들이 별로 놀라지 않아서 좋다. 
친실장은 자실장들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어준 뒤. 잠자리에 들었다. 테치테치레치거리는 소리로 
저들끼리 떠들기도 잠시. 모두 잠든 상황에서 친실장은 고민으로 아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번과 그 전의 겨울보다 명백하게 빠르고 무서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가실각이 아닐까. 어쩌면 추자를 대량으로 확보해서 미리미리 옷과 머리카락을 더 
확보했어야하는게 아닐까. 
내일 먹이를 얻을 수는 있을까. 
지금 있는 보존식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친실장은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 마마는 다녀오는데스~”
“다녀오시는테치!(레치!)”

자실장들의 배웅을 받으며 오늘도 먹이를 찾으러 나선 친실장. 어제보다 부쩍 추워진 공기가 느껴진다.
분명히 겨울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도 밥을 찾는데...데? 저게 뭐인데스우?”

공원 한 가운데있는 지금은 작동을 멈춘 분수 옆의 광장에 파란 옷의 닝겐들이 무언가를 두고 있었다.
사방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적록의 눈동자들.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막바지 월동 준비와 먹이활동에 바쁜 실장석들이다.
저 파란옷의 닝겐들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기에 앞으로 나서는 머저리는 없지만 다들 무언가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닝겐이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때로는 실장생 평생에 믿기 힘들 정도로 좋은 무언가를 내어놓기도 한다.
파란 옷의 닝겐들이 전부 사라진 후.
실장석들은 하나 둘 공원 한가운데를 가득 채운 그것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것은 뭐인데스?”
“네모인데스가...엄청 크지만 꼭 골판지 하우스같은데스....녹색인데스...”

외형을 살펴보는 놈

“데헥..꽤 단단한데스. 이건...세레브 골판지와 같은 느낌인데스. 비가 와도 끄덕없는데스..”
“세레브데스? 한번 들춰보는데스. 데에...무거워서 들 수가 없는데스.”

두드려보는 놈. 골판지와 비슷하다니 들춰서 아래를 확인하려는 놈.

“별 맛은 없는데스.”

핥아보는 놈까지. 데스데스 소리로 겨울이 다가오는 공원이 떠들썩해진다.

“데? 모두 보는데스!”

그 중 한 실장석이 볼록 튀어나온 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는

“푸드인데스! 푹신푹신한 이불도 있는데스! 게다가 이 안은 바람도 안 통해서 따끈따끈데스!
굉장한 세레브 하우스인데스!”
“데갸아아! 그건 고귀한 와타시의 것인데샤!”
“내놓아라데샤!”
“잔뜩 있는데스! 모두 하나씩 들어가도 충분한 하우스들인데스! 푸드도 잔뜩인데스!”

정말이었다. 가끔 공원에 찾아오던 애호파라는 닝겐들이 뿌리던 것과 같은 푸드가 그야말로 한 가득. 
지금까지 평생 모아왔던 먹어왔던 푸드와 음식물을 전부 합쳐야할만큼 많이 쌓여있다.
귀하디귀한 푸드가 이렇게 잔뜩이라니. 이건 어쩌면 꿈이나 행복회로가 아닐까 싶을 정도.
아까 맨 처음 열린 하우스를 차지하려고 위협부터하던 분충들도 이 어마어마한 양의 푸드에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그대로 굳어있다.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바닥과 벽을 메운 푹신푹신한 담요를 만져보았다.

“대단한데스....”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낙엽이나 자실장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낡은 수건 따위는 쓰레기로
여겨질만큼 푹신푹신하고 보드라운 감촉.
문도 닫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후끈후끈 할 정도로 따스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친실장. 다른 실장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상자들을
벌컥벌컥 열어보고 있다. 모든 상자 안에는 같은 것이 갖춰져있다.

“자들을 데려와야하는 데스....”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여기있는, 공원 안의 모든 실장석들에게 돌아갈만큼 넉넉한 양이다.
그렇다면 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잠시 움직여도 별 탈이 없으리라.
친실장은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바로 옆에 비어있는 상자를 두고 내것 네것 해가며 다투는 멍청한 분충들이 보였다.

“자들! 서둘러서 마마를 따라오는데스!”
“테? 마마 무슨 일인테치?”
“테츄~ 밥부터 주는테치!”
“닥치고 빨리 따라오지 않으면 슬픈 일인데스!”
“테챠아! 슬픈 일 싫어싫어테치! 가는테치! 빨리 가는테치!”
“레챠아- 와타치는 작아서 빨리 못 가는레치! 조금만 천천히 가는레치!”

친실장은 자신의 집을 흘끔 뒤돌아 보았다. 보존식과 운치굴의 구더기와 노예가 아깝지만 저런 보물을
두고 망설일 시간은 없다.
물이 들어찬 작은 패트병 두 개만 비닐봉투에 찔러넣고 거의 달리다시피하며 자들과 함께 하우스가 
모인 광장으로 향했다.

“테챠-어마어마한테치!”
“세레브테치! 멋진테치! 완벽한테치!”
“마마는 최고인테츙~”
“레헥...레헥....레츙~”

서두르느라 숨을 몰아쉬는 자실장들. 하지만 세레브 하우스의 내부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이 밝아진다.
우르르 몰려들어가 자리를 잡는 자실장들.
전에 쓰던 골판지 하우스도 다른 동족의 것보다 넓은 편이었지만 이것을 그보다도 훨씬 넓다.
낙옆이나 다른 보온재를 가득 채워넣지도 않았으니 자실장들이 뛰어놀아도 될 정도로 공간이 남는다.

“자들은 이 세레브 하우스를 지키는데스. 마마는 빨리 돌아가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돌아오는데스. 절대로 소리를내면 안 되는데스야.“
“하잇테츄!”

주변에 동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차지한 놈들은 자신의 자들을 데리러 갔거나 안에 
틀어박혀 있음이 분명했다. 
기본적으로 동족이 삶에 큰 위협인 실장석들인만큼 동족들이 모여있는 이 상황은 꽤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안의 보물들 ,지금 하고 있는 삶에 대한 모든 고민을 일거에 날려줄 행운으로 멋진 삶을 
누리려면 집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 꽤 있다.

친실장은 거칠어진 숨을 제대로 고를 틈도 없이 집으로 달려가 우선 운치굴로 내려갔다.
독라노예가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친실장은 망설이지 않고 독라노예의 오른팔이 있었던 부위를 힘껏 깨문다.

“데갸아아악!!”
“구더기 프니프니나 열심히 하고있는데스. 와타시는 이제 새로운 집으로 가는데스. 
나중에 와서 구더기가 하나라도 줄어있다면 그 3배로 낳게 해버리는데스.“

아스팔트에 문질러 재생을 막아둔 팔이 뜯어지며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대로 운치를 먹으며 일주일이면 팔이 돋을 것이다.
이미 운치굴 비상식량은 큰 필요가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고 비상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그 다음 친실장은 운치굴에서 나와 나뭇잎은 그대로 두고 수건들과 비장의 콘페이토, 푸드같은 
귀한 식량들만을 챙겨 다시 새로운 집으로 걸어갔다.
모든 고민이 일거에 해소된 행운에 그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마마가 다시 온 데스~”
“어서 오시는테치!”
“여기 좋은테치! 따끈따끈테치!”
“놀 수도 있는테치! 마마, 공씨를 구해주는테치!”
“온통 보들보들 부드러운레치...최고인레치.”

자실장들은 그새 신이나서 집에서 뛰놀고 있었다. 다른 집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상황은 
같은 모양이다. 
친실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딱 성체 실장석의 높이에 맞춰진 푸드 봉투의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늘부터는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다.
자실장들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하고 귀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파닥이고 있었다.

무려 엄지까지도 푸드를 배분받고 그 행복감에 빵콘하며 먹어치운 후 자실장들과 친실장은모두 잠이 들었다.
운치굴이 없고 이 단단한 하우스는 어떻게 구멍을 낼 방법이 없기에 운치는 해가 떨어지고 친실장의 인솔 
하에 조용히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 보고 오기로 했다.
변의를 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친실장은 원래 집의 운치굴에서 데에엥데에엥 울며 구더기를 프니프니하는 노예에게 운치를 뿌리며 
자들과 함께 데프프 웃어댔다.
이렇게 겨울을 무사히 편안히 날 수 있다니 이건 지금까지 현명하고 착하게 살아온 와타시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이 분명했다.

하루...이틀... 겨울은 한참 본격적이 되어 어제는 첫눈이 내렸다. 모든 것이 풍족하기 때문일까?
실장석들은 예전처럼 서로를 경계하지 않았다.
자실장들은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다.
운치도 이제 원래의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 공동으로 적당한 구멍을 파서 해결하게 되었다.

이게 행복이라는 것이리라.
친실장은 만족스럽게 미소지으며 오늘도 신나게 놀고 들어와 푸드로 푸짐하고 맛좋은 식사를 한 
자실장들을 쓰다듬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는 따뜻하고 포근하며 편안했다.
자실장들도 모두 토실하게 살이 오르고 부쩍 자라났다. 장녀는 조금만 더 있으면 중실장이 될 것이다.
막내인 엄지는 자실장으로 성장했다.

요즘 왜인지 파란옷의 닝겐들이 주변에서 자주 보이지만 특별히 자신들을 해코지 하지 않고 있기에
이제야 저 닝겐들이 분수를 알았다고 기세등등한 실장석들이었다. 
물론 여전히 무섭기 때문에 함부로 다가가는 일은 없었다.

매일 매일이 평화롭다.
이제는 성체 실장들도 간간히 집에서 나와 이런저런 잡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앞으로도 이런 행복은 계속될 것이다.
바깥은 이제 하얀 눈도 쌓일 정도로 엄청나게 추워져서 나갈 일은 없지만...다시 봄이 오면 이제 
장녀는 독립을 하고 다른 자들도 모두 잘 키워서 독립시킬 수 있겠지. 
원래라면 버리는 패로 쓸 엄지마저도 자실장이 되니 애정이 느껴지며 독립시켜보이겠다는 의지가 차오른다.

덮쳐오는 수마 속에서 친실장은 자신의 품에 안긴 자들과 함께 행복감에 미소지었다.

“자~ 이제 구제작업 잠복소 시작합니다. 모두 빨리 작업해주세요.”
“예~”

공원의 가로등 불빛과 유독 밝은 달빛이 눈에 부딛혀 반사되어 어둡지만 어둡지 않은 공원의 광장. 
위생과 공무원들과 구제업체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달려와 실장석들이 집으로 삼은 상자의 바깥쪽 
걸쇠를 걸어 잠근다. 
이 정도만 해도 성체실장이 온 힘을 다해도 어쩔 수 없건만 미리 준비된 덕테이프를 발라 완전히 봉쇄.
그리고 그 상자를 트럭에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안에서는 잠이 깨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는지 데갸아아하는 위협의 소리와 상자를 마구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이 상자는 종이로 만들어진 골판지가 아니니 실장석 따위가 목숨을 건다고 해서 뚫어볼 수 
있을리가 없다. 상자를 나르던 공무원이 문득 궁금해졌는지 옆의 구제업체 직원에게 물어본다.

“저기 이거 원가가 얼마나해요?”
“예? 거의 안 들어갈걸요? 재료 자체가 다 싸구려 쓰레기에요. 쓸만한건 외형짜는 플라스틱 정도?.
안에 깔 폐천. 비닐.푸드도 초저가형이라 완전 싸구려에 우리는 재료도 우리가 공급하니까 더 싸구요.
애시당초 이게 사람이 쓸 물건도 아니라 안전기준도 없어~ 위생기준도 없어~ 뽑으면 뽑는대로 공짜니까요.
장사가 한철 장사라서 그렇지.“
“아...그렇군요.”

공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작업에 집중한다.

한 편, 상자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 부딛혀 다친 자실장들. 
푹신푹신해서 죽음은 면했지만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테엥테엥 울부짖고 있다.
친실장도 부상을 당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서둘러 자들을 수습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을 든든히 지켜주던 집은 이제 
감옥으로 변해 탈출을 굳게 막고 있다.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가벼운 진동.
친실장의 예민한 직감이 죽음을 예고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자실장들을 훑어본다. 장녀, 차녀, 삼녀. 
얼마 전 자실장으로 성장한 막내....막내가 보이지 않는다.
친실장은 막내가 밤중에 운치를 하러 나갔다가 이곳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다행이다.
하나라도 살아남을 수 있어서.
엄지였던 막내지만 이제는 당당한 자실장.
비록 이 따끈따끈 집은 없지만 예전의 집으로 찾아간다면 어떻게 해서든 봄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친실장은 공포에 떠는 자실장들과 함께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빨리 빨리 옮깁시다.”

다시 상자가 덜컹덜컹 움직인다.
들려오는 동족들의 비통한 비명소리 무언가가 부서지는 둔탁하고 차가운 소리.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실장들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마 무서운테치! 무서운테치!”
“살려주는테치! 와타치 밥 잘 먹는테치! 운치 잘 싸는테치! 살려주는테챠!”
“왜 고귀한 와타치가 죽는테치! 왜인테치! 대답하라는테챠아아 똥마마!”

벌컥!

상자의 문이 열렸다.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인간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들려져서 내팽개쳐졌다.

“데? 뭐인데스. 살아남은데스?”
“산테치! 역시 와타시는 고귀한테치!”
“테테....마마...”
“데? 왜그러는데수?”

바닥이 꿈틀거린다. 그 기묘한 움직임과 촉감, 그리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데에에하는 동족의
고통에 찬 신음에 바닥을 바라본 친실장은 그대로 빵콘해버렸다. 
바닥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들이 부어진 실장석들의 파도. 

그것이 거대한 분쇄기임은 알 수 없지만 아래에서 들려오는 그 불길하고 거대한 소름끼치는 기계음과
맞춰 들려오는 살려주는데스! 하는 비명.
무언가 터지고 뭉개지고 자기 위의 다른 실장석으로 인해 눌려 그 무게로 안으로 빨려들어가며 
으깨지는 실장석들의 최후의 비명이 온통 가득했다.

자실장들도 일제히 빵콘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무언가를 피하려는 듯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있는대로 일그러진 얼굴. 
다른 동족들도 깔려 뭉개지지 않았으면 같은 모양새로 살기 위해 부질없는 발버둥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착실히 바닥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철로 만들어진 방벽. 탈출할 방법 따위는 없다.
자실장들은 아무 의미없이 빙글빙글 돌며 똥과 피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운명과 세상과 똥마마를 
저주하는 말을 쏟아낼 뿐이었다. 
친실장은 절망했다. 
결국 모두 함정이었구나. 
차라리 그냥 원래의 집에서 조용히 겨울을 버텼다면...

하지만 모든 것이 때늦은 후회. 친실장의 위로 다른 실장석들이 마구 쏟아진다.
처음에는 옆으로 밀어낼 수 있었지만 이내 가득 찬다.
자실장들은 이미 뭉개졌는지 비명도 울음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소음 속의 무음이 더욱 친실장의 피눈물을 진하게 만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괜찮은데스. 와타시는 막내짱을 남겨두고 온 데스. 
결국 그 자가 공원을 가득가득 채울 것인데스! 오마에 똥닝겐들은 승리한 것이 아닌데샤아아!“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죽는데스? 태어나서 행복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스.
이제 겨우 행복이란게 뭔지 배운데스.
그런데 죽어버리는데스?
자도 더 못 낳는데스.
맛있는 것도 더 먹어야하는데스. 
아와아와한 목욕도 해야하는데스.
닝겐노예도 가져서 사육실장으로서의 고귀하고 세레브한 삶을 누려야할 
와타시가 왜 이렇게 되는데샤아아아아아!“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살려주는데스! 살려만주시면 뭐든하는데스! 독라가 되는데스! 노예가 되는데스! 
목숨만 살려주는데스! 이렇게 부탁하는데스! 
마구 괴롭히고 때려도 좋으니까 살려만 주시는데스으으!!“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데갸아아아- 공원에! 공원에 똥막내가 있는데스! 
그 막내를 가져다가 대신 죽이고 고귀한 와타시를 살려내라는데샤아아---!“

우드드득 빠각!“

분쇄기에 말려들어간 친실장.
다른 실장석들도 자신의 공포스러운 운명을 피하기 위해 마구
발버둥치고,비명지르고,사정하며 울부짖고 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죽고, 죽고 죽어나갈 뿐.

“자, 오늘 작업량 얼마 안 되니까 서둘러주세요. 안에 들어있던건 또 이 똥벌레 새끼들이 귀신같이 
냄새맡고 불안해하니까 다 소각로에 올려주시고.
외형틀만 옆에 작업로로 위치시켜주시면 됩니다.
푸드요? 그거 저기 분쇄기에 같이 부어주세요. 그럼 또 다시 푸드로 나오니까요. 
실장석들꺼 다른 쓰레기들도 전부 소각이에요~“

“마마가 없어진테챠아아아! 버려졌다테치! 버려진테챠!”

모든 상자가 사라진 공터에서 조금 작은 자실장 하나가 발버둥치며 울고 있다.
마구 울다가 혹시 자매나 마마가 왔을까 싶어 흘끔 주변을 살피고 다시 울기를 수 분 여. 
다행히 영양상태가 좋아져 당장 얼어죽지는 않았지만 12월 말의 맹추위는 실장석이 견딜 수 없다. 
그나마 눈이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밟혀 쌓여있지는 않은 것이 다행일까. 
한 때 막내였던 자실장은 자신이 버려졌음을 이해하고 희미한 기억을 따라 원래 살던 집을 향해 갔다.

“집에서 와타치 혼자라도 살아남는테치. 우지챠도 먹는테치. 보존식도 전부 먹는테치. 먹고
살아남아서 봄님이 오면 와타치의 자로 공원을 가득 채우는테치.“

천천히 집이 가까워질수록 차오르는 자그마한 희망. 언젠가 자신의 자가 이 공원을 가득가득 채워
가는 상상을하며 막내 자실장의 발걸음은 힘차다. 
이미 최저급이라지만 푸드를 잔뜩 먹어오며 입맛이 올라갔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주거공간에서 살며 추위를 잊어버린 자실장이 이전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동시에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테? 왜인테치? 어디로 가버린테치?”

희미하게 가족과 운치굴의 냄새가 남은 땅을 두드려보지만. 관리원들이 전부 치우고 땅을 메워 밟아 
다진 후에 눈까지 내린 곳이 갑자기 골판지 하우스로 변할 리가 없다.
자실장의 눈에서 천천히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땅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이곳이 
집터가 확실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록 검은색으로 짙어진다.

“테챠아아-죽기 싫은테챠! 이럴 수는 없는테치! 와타치는 행복해져야하는테챠아아!
똥마마! 똥오네챠! 와타치를 당장 모셔가는테치이이이이이-!“

자실장의 비명과 울음이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가 
달빛을 푸짐하게 받으며 춤추듯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의 훈육방법

 

통상 실장석은 키우기에 노력이 많이 필요한 생뭉이라고 한다. 그 어설픈 지능과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주인들에게 적나라하게 전해주는 링갈이라는 기계의 존재에 의해서 뭐랄까. 인간의 기대심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동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대부분의 경우 실장석을 막 키우는 초보자들은 질릴대로 질려서
학대파로 전향하거나 다시는 그것들과 엮이지 않으려 하게 된다. 

나는 애호파다. 그리고 내가 키우는 실장석이 죽는 그 날까지. 잘 돌보고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만의 교육방식으로 소위 말하는 분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주인님, 외출하시는테치?]
"그래, 너도 오늘은 같이 가자 초록아."
[테츙~ 오래간만의 외출인테치! 주인님 감사한테치!]

이 실장석은 내가 키우는 사육실장인 초록이다. 아는 동생이 하는 실장숖에서 사온 개체로 평범보다 다소
높은 지능을 가진 자실장. 내 훈육방식은 머리가 좋은 개체여야 편하기 때문에 골라서 대려온 녀석이다.
나는 주문제작한 투명 케이지에 초록이를 집어넣었다. 바닥은 쿠션이 깔려있지만 주변은 강화 아크릴로
만들어져 사방을 다 볼 수 있다. 초록이는 한달만의 외출에 다소 흥분한 듯, 테치테치거리며 콧김을 뿜고
벽에 손을 붙여 얼굴을 들이민 채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아크릴에 초록이의 콧김에 의해 김이
서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0cm 가량의 크기인 자실장에게 갑자기 사람의 손에 들려서 움직이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전신주 위에
올라가서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나는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초록이를 흘끗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전부 까먹었구나. 한달만에. 다시는 나가기 싫다고 울었으면서....
하긴, 그러니까 이런 훈육을 해야하는거겠지. 

"어서오세요~어, 형님 오셨어요?"
"음, 오래간만이네. 밥은 먹었어?"
"저야 아직이죠. 형님은요."
"나도 너랑 먹으려고 식전이다."

딸랑하는 방울 소리와 함께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짧은 머리의 아직 애티가 나는 이 친구가 내 학교 후배
이자 친한 동생이며 이 가게의 점장인 ㅇㅇ다. 항상 싹싹하고 웃는 얼굴이라 서비스 직종에서 대성할 거라고
다들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실장숖을 차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덕분에 나야 좋은 가격에 관련
물품들을 공급받으니 좋은 건 사실이다.

ㅇㅇ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온 나는 초록이를 바라보았다. 초록이도 이 실장숖 출신, 불안하게 떨리는
적록의 눈동자와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훈육받던 시절의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모양
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1년 이상 전문 브리더 훈련까지 받고 돌아온 ㅇㅇ가 직접 훈육했으니 그 때의 
고통과 불안은 아무리 머리가 나쁜 실장석이라도 몸에 세겨진 것이리라. 

[주인님....여기는 초록이가 전에 살던 곳 테치...'학교'인테치...왜 여기를 오신테치? 초록이는 이미 졸업
이란걸 한 테츄....]

여전히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초조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니 A형의 다물어지지 않는
입 끝에서 침이 번들거리며 주변으로 퍼진다. 귀엽다면 귀여운 모습이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 번, 훈육의
시간. 나는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들고 응접실을 나서 실장숖을 한 바퀴 돌았다. 다행히 다른 손님은
없는 시간. ㅇㅇ은 그런 나와 초록이를 보며 미묘하게 뿌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전에 들어본 바로는 이렇게
'우수한 고객'은 일본에서도 본 적이 없다나?

초록이는 간식과 장난감, 옷이 걸린 곳을 지나갈 때는 눈을 빛냈다. 욕망에 충실한 동물인 실장석답다.
하지만 내 목적지는 다른 실장석들이 진열된 곳. 무수히 많은 케이지 안에 무수히 많은 실장석들. 
사람이 다가오자 데스데스 테치테치 레치레치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히 채운다. 링갈을 확인해보았다.

[주인님....친구들이 많은테치...다들 아직 졸업은 못한 친구들인테치...혹시 초록이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오신테치카?]

나는 고개를 한번 저어주고 초록이에게 말했다.

"초록아, 주변을 봐. 초록이 너도 저렇게 있다가 나에게 선택되어서 사육실장이 되었어 그렇지?"
[그런테치! 주인님이 초록이를 선택하신테치!]

사육실장이라는 말에 주변이 더욱 소란스러워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계속 초록이에게 말했다.

"자, 여기 수많은 실장석들 중에서 왜 너를 골랐을까?"
[테에....]

초록이의 A자 입이 더욱 벌어지고 표정이 멍해진다. 어째서 자신을 골랐을까. 자신이 특별하게 때문에?
보나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는 초록이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대답을 던졌다.

"아냐, 초록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냥 나는 수많은 실장석들 중에 하나를 골랐고 우연히 그게
초록이였던거야. 물론 초록이는 내 좋은 사육실장이지만 분충이되면....알지? 나는 다시 이곳으로 와서
수많은 이 실장석들 중 하나를 골라서 새로운 사육실장으로 할거야."
[테!]

이제야 확 정신이 드는 듯 표정이 변하는 초록이. 이래서 어느 정도는 머리가 좋아야한다. 멍청한 개체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못 알아먹으니까. ㅇㅇ가 훈육한 실장석들은 대부분 내 기준치를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초록이는....대신할 수 있는테치?]

나는 일부러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소중한 사육실장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절대로는 아냐. 언제든 나는 다른
실장석을 구해서 새롭게 사육할 수 있어. 여기 이 많은 실장석들 중에서 말야."
[안테치! 초록이는 계속 계~속 좋은 자로 있는테치! 주인님이 바꾸지 않게 하는테치!]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초록이, 적록의 두 눈에는 안구와 같은 색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는게 느껴진다.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단다 초록아. 분충이 되지 않는 방법은 이
것 뿐이니까. 조금만 참으렴.

"자, 그럼 초록이는 저기 초록이의 '선생님'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렴."
[하이테츄!]

짐짓 활기차게 대답하는 초록이. 내가 초록이를 들어서 놓은 곳은 한달에 한 번, 폐기하는 실장석들을
갈아버리는 분쇄기의 바로 옆자리. 이 또한 ㅇㅇ이 나에게 해준 크나큰 배려이다. 보통은 이런거 옆에
실장석을 두도록 해주지 않으니까. 아니, 애호파 손님들을 고려하면 아예 그런건 없는 것처럼 해두는게
더 좋으니 말이지. 나는 초록이를 두고 다시 응접실로 갔다. ㅇㅇ은 나를 기다리며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
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평소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ㅇㅇ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그럼 저는 가서 할 일 좀 하고 있겠습니다. 금방 음식 온다니까 조금만 기다리시죠."
"그래, 빨리 끝내고 너도 안 늦게 와서 같이 먹자. 식으면 맛 없어."
"네 형님."

나는 ㅇㅇ이 갈 곳을 알고 있다. 링갈의 모드를 일반에서 초록이 전용으로 전환했다. 미리 초록이의
위석 파동과 동기화를 시켜두었기에 사방 30m 안에만 있으면 링갈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링갈에는 초록이가 하는 말들이 계속해서 텍스트로 전환되어 표시되고 있다.

[테...주인님이 기다리라고 하신테치. 초록이는 착한 자로 있기 위해서 기다리는테츄.]
[테? 선생님이신테치...그런테치. 초록이는 주인님께 이쁨받는 좋은 사육실장으로 사는테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교육덕분인테치. 감사하는테치.]
[테.....? 친구들인테치? 아줌마들도 있는테치. 반가운테치. 와타시는 초록이라고 하는테치.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좋은 주인님과 함께 사는 사육실장인테치. 테? 다들 표정이 안 좋은테치. 왜 우는테츄? 어디 아픈
테치? 선생님, 이 친구들이 모두 아픈 테치. 아줌마들도 아파보이는테츄.]
[테? 테?! 테!!! 기억나버린테치! 예전에도 한번 이랬던테치! 친구들도 아줌마들도 전부 드륵드륵 부서져
버리는테치! 갈려버리는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악! 주인님! 주인님! 초록이 무서운테치! 
살려주시는테치! 주인님!!]
[안테치! 확실히 배운테치. 절대로 분충이 되지 않는테치. 분충이되면 초록이도 다른 실장석과 교환되서
드륵드륵되어버리는테치! 절대로 분충 안 하는테치. 주인님 말 잘 듣는테치! 운치도 더 열심히 참는테치!
밥투정은 꿈도 안 꾸는테치! 주인님이 놀아주고 싶을 때만 노는테치! 드륵드륵 안 되는 테치!]

ㅇㅇ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막 도착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으로 나와 함께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초록이의 자기 반성과 미래의 노력에 대한 다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뭐...한달에 한번 폐기하는거니까
한 40분은 있어야 다 갈려나가겠지. 나는 내 훈육을 위해 여러가지로 편의를 봐주는 ㅇㅇ에게 언제나처럼
감사를 표했고, ㅇㅇ이는 언제나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ㅇㅇ의 배웅을 받으며 실장숖을 나서는 나의 손에는 ㅇㅇ에게 감사의 표시도 할 겸 사들인 초록이의 간식들이 잔뜩 들어있는 봉투가 들려있었다. 아직도 공포에 덜덜 떨며 나를 계속 바라보는 초록이를 케이지에서 
꺼내 한번 쓰다듬어 준 다음 다시 케이지에 넣었다. 
그나마 나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마음이 편해진 것인지 더는 떨지 않는 초록이. 다소 험하지만 
이게 너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려면 희생해야하는 것이 있으니까.

다음 목적지는 공원, 초록이는 주변의 가로수를 물들인 단풍에 신이 난 것인지 테츄테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링갈에는 주인인 나의 자상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사가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초록아
아직 오늘의 훈육은 끝나지 않았단다. 

공원에 도착한 나와 초록이. 초록이는 가끔 산책으로 공원에 가본 적이 있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목에 걸 목줄을 찾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그게 아니지, 평소에 산책가는 공원은 조금
멀지만 사육실장을 그냥 풀어두어도 고양이만 없다면 안전할 정도로 안전하고 정돈된 곳이라면 이곳은
그 반대. 아마 조만간 구제작업이 대대적으로 있을 것이 분명한. 소위 파탄난 공원이다. 

역시나 사람도 얼마 없고, 그나마 실장석을 때려잡으러 온 학대파들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내가 벤치에
앉자마자 주변에 제 나름대로 숨었다고 믿으며 나를 바라보는 들실장들. 온통 땟국물로 더러운 옷과 
머리카락,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잔뜩 베어들어간 듯, 울긋불긋한 무늬가 보이는 피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더러움을 아름다움이라고 착각하는 저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와 표정. 짜증이 올라온다.

기본적으로 길고양이나 떠돌이개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만 높지 집에서 키우는 녀석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인데 저것들은 대체 왜 완전히 다른 종으로 느껴지는 걸까. 기본적인 태도나 성품의 문제일까
아니면 어설프게 인간과 닮아서 그런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걸까.
마음속의 작은 의문을 뒤로 한 체. 나는 우선 초록이에게 커다란 고급 별사탕 하나를 주었다. 모양만 
별사탕이지 실장석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깔끔한 단맛이 듬뿍 포함된 고급 간식이다. 초록이는 자기 머리
통만한 그것을 끌어안다시피하며 할짝할짝 먹기 시작했다. 나에게 몇번씩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린 것은
물론이다. 아직 내가 사육실장을 미끼로 학살을 하는 학대파인지. 진짜 애호파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지
슬금슬금 다가오며 간을 보는 들실장들.

나는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지를 바닥에 두었다. 갑자기 달라진 주변의 풍경에 당황한 듯 먹던 고급 
별사탕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초록이. 하지만 이내 다시 별사탕에 집중한다. 자, 그럼.

"먹어라"

한 마디 말과 함께 나는 따로 사온 싸구려 별사탕을 케이지 주변에 흩뿌렸다. 애호파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별사탕에 눈이 뒤집혔는지 일제히 뛰어나오는 들실장들. 내 링갈은 들실장들의 짜증스러운
울음소리를 번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록이 전용모드로 전환해서 쓸걸 그랬나. 거의 동시에 별사탕이
뿌려진 바닥에 도착한 들실장들은 서로를 마구 밀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별사탕을 입에 쑤셔넣기 위해
바둥거린다.

[데샤아아! 이건 세레브한 와타시를 위해 준비된 공물인데샤아!]
[헛소리마는테샤! 이건 와타시를 위한 것인테스!]
[어디서 까부는데스! 이건 전부 와타시의 것인데샤아아악!]
[마마! 와타시도 주는테치! 와타시의 것인테치! 테? 아줌마 누구인...테챠아아아! 먹는게 아닌테치!
똥마마! 고귀한 와타시를 구해라테챠아!]

하나라도 많이 먹기 위해 옆의 실장석을 두드려패고 밀치고 물어뜯고, 그 와중에 다른 실장석의 자를
잡아먹기도 하고...아수라장이 된 풍경에 덜덜 떠는 초록이. 나를 찾기 위해서 케이지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지만 구조상 위를 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실장석의 몸 구조 때문에 나를 보지는 못 하고 있다.
이내 바닥에 더는 별사탕이 없는 것을 깨달은 들실장들. 데프프프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이 상태로
몇 초만 더 있으면 더 내놓으라던가. 고귀한 와타시를 키우라던가 하는 개소리가 나올태니 보자..역시
여기있네. 

부웅-!

공원 벤치 옆에 긴 사슬로 묶어 고정된 실장석 구제용 초록색 막대를 휘둘러 바닥에 후려치자 그제서야
내가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인식한 것인지 슬쩍 물러선다. 그리고 주변을
확인하는 실장석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투명한 케이지 안에서 자기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맛있어보이는 별사탕을 끌어안고 있는 초록이. 일제히 눈이 뒤집힌 들실장들이 초록이가 들어있는 
케이지를 향해서 돌진한다. 지금까지 주변의 참상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던 초록이는 그제서야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른다.

[테,테챠아아아! 주인님! 구해주시는테치! 초록이를 구해주시는테치! 살려주시는테치!]
[오마에! 이리 내놓는데스! 그 아마아마를 내놓는데스! 그것은 와타시의 것인데샤아아!]
[오마에의 몸뚱이도 고귀한 와타시의 일용할 양식으로 바치는데스! 어서 내놓는데샤!]
[데-갸악! 어째서 저 사육분충에게 갈 수 없는데스! 뭐가 막고 있는데샤!]
[깨버리는데스! 깨버리고 저 사육분충의 고기를 씹고 피를 마시고 아마아마는 후식으로 하는데스!]
[내놓는데스! 내놓아라데샤!]

한달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사이에 초겨울이 다가오니 더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나보군.
초록이는 너무 큰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꼼짝도 못하며 그저 '주인님, 주인님'하며 나를
찾고 있다. 아크릴 케이스를 마구 이빨로 물어대는 들실장. 돌로 후려치는 들실장. 몸으로 부딛히는
들실장. 뭐 하나같이 아무 쓸모없는 짓이고 아크릴 케이스에는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하지만 작은 초록
이에게는 그것도 어마어마한 공포인 모양이다. 온통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빵콘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인지 웅크리고 엎드린 자세에 보이는 팬티는 움찔움찔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초록이의 그런 약한 모습이 실장석 특유의 가학성에 불을 붙였는지 들실장들은 한 층 더 광분
해서 아크릴 케이스에 자신들을 부딛혀대고 있다. 음...실장석 피로 아크릴 케이스가 더러워지는 것도
그렇고. 좀 더 지나면 투분을 할테니 슬슬 처리할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함을 질렀다.

"이 똥버러지들이! 내 사육실장한테 무슨 짓거리야!"
[데?]

나를 돌아본 실장석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구제용 막대기. 한번에 한 놈씩, 나는 이것들을 괴롭힐
생각도 없다. 그래서 뭘 이해할 것들도 아닌데 뭐.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죽이는게 최선이다. 
4번째 놈이 죽어갈 때 쯤 상황을 파악한 것들이 모조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성체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자실장들이 고아가 되거나 짓밟혀 죽은 것은 덤이고. 나는 마찬가지로 사슬에 묶인
집게를 들어 박살난 실장석들의 시체를 전용 쓰레기통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덜덜 떨며 나를 찾는 초록이를 왼손으로 부드럽게 잡아 케이지에서 꺼냈다. 초록이는
간신히 자신이 케이지에서 꺼내졌음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손가락을 부여잡고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주인님, 초록이 무서웠던테치! 정말 무서웠던테치. 주인님이 살려주신테치. 테에엥 테에엥]
"그래, 그래 이젠 괜찮아 초록아. 이젠 괜찮아."

나는 초록이를 쓰다듬어 달래준 후, 케이지에 다시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초록이를 목욕시키며
마지막 훈육을 시작했다.

"아까 들에 사는 실장석들은 어땠어 초록아?"
[너무 무서웠던테치. 초록이를 마구 잡아먹으려고 한 테치. 다들 너무 더럽고 무서운테치..무서웠던
테치....분명히 죽을뻔한테치...핀치였던테치...]
"그래, 나는 초록이가 그런 분충이 되면 싫을거 같아. 초록이는 들실장같은 분충이 되지 않을거지?"
[하이테츄...초록이는 그런 분충이 되지 않는테치.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테치...주인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실장석이되는테치...]

저녁을 배불리 먹고 잠이 든 초록이를 확인한 후, 나도 휴일을 즐기기 위해 거실로 나와 TV를 켰다.
오늘도 무사히 한달만의 훈육을 끝냈다. 실장숖에서 다른 개체를 보여주고 그 최후를 구경시켜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망가뜨린다. 실장석의 분충성의 가장 큰 시발점은 바로 그 자신은 특별하다는 의식
이니까. 자신은 특별하기에 실패할 리 없다. 특별하기에 뭐든 잘 될거다.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부분을 제거해버리면 실장석의 분충성 90%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능이 썩 높지는 않아 반복
숙달이 필요하기는해도 배우면 배운대로 익히고 기억해서 지키는, 기본이 갖춰진 개념실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들의 살벌한 생활상을 계속 보여주어 자신이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복종하는 실장석이 된다. 비록 한달에 한번이나 두 달에 한 번은 계속 이걸 반복해야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애완동물이 생긴다면 남는 장사이다. 친한 동생 얼굴도 주기적으로 보고 말이지.

무엇보다 이 훈육방식으로 키운 실장석들은 개념실장의 파멸이라고 불리는 임신욕구가 거의 없다. 아마도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이 없으니 자신의 자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실장석의 멘탈에서 가장 큰 부분이 망가진 셈이라서 그런지 수명이 4년이 한계이다. 아무리 잘 먹이고 
보살펴도 4년 쯤 되면 위석이 저절로 검어지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초록이의 위석이 담긴 통에 영양제를 부어넣었다. 역시 오늘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고농축 영양제
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옆에는 작은 보석함에 담긴 2개의 검은 위석이 있다. 초록이도 아마 4년 뒤에는
이 옆에 검은 위석을 남기고 떠나겠지. 그래도 분충성이 개화해 어떤 일에도 만족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며 실제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죽어가는 다른 사육실장들보다 내가 키워온 이
녀석들이 훨씬 행복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 증거로 앞의 두 녀석도 죽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하고 떠나갔으니까. 오늘도 나는 실장석과
함께 살아간다.









주인과 고치와 목줄

 

"데에...주인님...."

초록이는 자신의 뭉툭한 손(그걸 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내려다보았다.
도저히 어디 한 군데 쓸모가 없다. 청소도 설거지도 빨래도 필사의 노력으로 해내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실장석 수준, 주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쓸모가 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신이 하루 종일 쓸고 닦아봐야 주인님이 작정하고 30분 청소한 것만 못하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설거지를
해봐도 주인님이 한 것처럼 반짝반짝하지 못하다. 수건 하나 정리하는 것도 수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데에...오로롱...오로롱..."

조용히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왜 나는 실장석인걸까. 어째서 주인님에게 아무 도움도 못 되는걸까.
심지어 초록이는 자신이 귀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 주인님을 만났던 그 때, 슬슬 중실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자실장이라 폐기처분이 코 앞이었던 그 때까지만해도 나름 귀여운 모습이었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절대로 귀엽지 않다. 물론 친절하고 좋은 주인님은 지금도 가끔 자신을 귀엽다고 해주지만....차라리

야옹야옹이나 멍멍처럼 평생 귀엽고 폭신폭신한 동물로 태어났다면 주인님께 귀여움으로 즐거움이라도 드릴
수 있었을텐데. 천만마리에 하나 있기 힘들다는 초 개념체, 바로 폐기처분되는 실장석들이 갈려나가는 
분쇄기가 있는 방 바로 옆이 초록이가 있던 수조여서 어릴 때부터 실장석의 쓸모없음과 허무한 삶의 끝을
끝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실장석들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나만은 특별하다'는 개념과 행복회로도
초록이에게는 해당이 없는 듯 하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데스까....?"

이대로라면 분명히 자신은 일평생 주인에게 한톨 도움도 되지 않고 기생충처럼 살아가다가 죽을 것이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이 때 즈음해서 '귀여운 자로 주인님께 기쁨을' 따위의 헛소리를 하겠지만 초록이는 자신이, 또 
자신의 동족이 주인님께 행복을 주기는커녕 생활의 윤택함만 줄이는 부담덩어리임을 알기에 지난 봄 날, 우연히
날아든 꽃가루에 임신을 했을 때도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한쪽 눈을 다시 붉게 물들여 자들과 이별을 고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초록이는 어쩌면 자신이 죽어 사라지는게 더 주인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진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귀엽지도, 뭔가 쓸모가 있지도 않은 식충이가 구태여 주인님께 부담을 끼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뭔가 고통을 받는 중도 아닌데 자살을 고민하는 실장석이라니! 학계가 한번 뒤집힐 일이었지만
주인은 [동물의 말을 구태여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주의였기에 링갈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초록이의 자살고민은 주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주인은 초록이를 아꼈다. 처음 사왔을 때는 내일이면 폐기처분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동정심이 들어 사왔으나
사온 이상 책임지고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인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실장석의 훈육에 대한 정보로 긴장한
것도 허무하게 초록이는 생각 이상으로 현명하고 착한 아이였고, 주인은 그런 초록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의 애정을 베풀었으며, 자신이 알아본 정보로 실장석이 살기에 괜찮은 환경을 최대한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분충성이 폭발해 들실장으로 전직하거나 보건소에서
마지막 후회의 울음을 울게 되는 결말만이 남을 그런 환경에서 초록이는 끝까지 주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로 처음의 마음과 감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아무튼 주인은 초록이가 데스데스 오로롱 하고 우는 것을 듣고 초록이의 위석을 담궈둔 보관함을 보았다. 오늘도
예쁜 녹색으로 빛나는 초록이의 보석. 영양제의 양도 충분하다. 초록이는 아픈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울고 있다.
그럼 뭔가 먹고싶다는거지. 그러고보니 간식시간이다. 주인이 생각하기에 동물이 울 때는 아프거나, 놀고 싶거나
배가 고플 때이다. 그런데 초록이는 낮시간에 놀아달라고 조른 적이 없고 위석도 멀쩡하니 배가 고픈거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 주인은 실장석용 푸딩을 하나 까서 초록이의 밥그릇에 놓아주었다.
초록이는 밥그릇에 놓인 푸딩을 보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보아라, 주인님은 '일-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해님이
떠오를 때 나가서 별님이 반짝일 때 몹시 지쳐 돌아오는 어떤 아주 힘든 것' 을 해서 자신의 푸드와 간식 등을 
구한다고 했다(실장 교육 TV에서 본 것이다. 물론 그걸 보고 이 정도의 판단을 내리는 개체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것을 소비하기만하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실장숍에 있을 때 저 멀리 공원 입구에서
보이던 실장석 가족이 기억난다. 친실장은 무언가를 열심히 모으는데 주변을 돌며 놀기만 하는 자실장들.
자신은 그런 자실장보다 쓸모없다. 주인은 좋아하는 간식을 보고도 우는 초록이의 모습에 당황해 물었다.

"초록아, 왜 그래. 산책가고 싶어서 그래?"

"오로롱~ 주인님 죄송한데스우...오로롱~"

주인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어투에서 알아챈 초록이는 훌쩍이며 애써 웃어보이고 밥그릇으로 가 푸딩을 집어
들었다. 항상 좋아하고 즐겨오던 간식이지만 오늘은 맛을 알 수 없었다. 주인은 초록이가 웃으며 간식을 먹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초록이는 가끔 실장석 답지 않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어쩌면 실장석들도 개나 고양이처럼 우울증이 있는걸지도 모른다. 주인은 언제 한 번
동물병원에 가보자고 마음먹으며 다시 휴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날 밤.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유달리 크게 떠오른 달을 보며 초록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달님....소원이 있는데스. 다음날 폐기처분되서 위잉위잉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을 때도 빌지 않은 소원인
데스우...꼭 들어주시면 좋겠는데스. 초록이에게 주인님처럼 손가락이라는게 필요한데스. 그럼 빨래도
설거지도 잘 하는데스. 또 오래오래 움직일 수 있게 튼튼해져야하는데스. 그리고..그리고...주인님께서
예전처럼 귀엽다귀엽다 해주실 수 있게 멍멍씨나 야옹씨처럼 귀엽게 변했으면 좋은데스요....."

초록이는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인님을 사랑하고 싶다는 외침이 들여오지만
주인을 사랑하는 것은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교육에서 자를 가지면 안 된다 와 함께 충분히 교육받은 금기
사항. 초록이는 그 외침을 조용히 삼키며 처음의 소원을 반복하며 달을 바라보았다.

막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를 무렵, 초록이는 자신의 소중한 돌이 있던 장소가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초록이는
아픔을 삼키며 바닥에 엎드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혹시 이대로 죽는
것인가? 주제넘게 주인님께 사랑받고 싶다는. 사랑하고 싶다는 소원을 가졌기 때문에? 적록의 눈물이 다시
한 번 초록이의 옷을 적셨다. 초록이는 자신의 의식이 까무룩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보고 싶은데스우...."

주인은 여느 때처럼 초록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일찌감치 일어난 초록이가 '주인님 다녀
오시는데스.'(물론 주인에게는 그저 데스데스로 들릴 뿐이다) 하며 배웅을 했겠지만 오늘은 뭔가 몸이 안 좋은지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주인은 정말 뭔가 문제가 있는가 싶어 초록이의 위석을 담아둔 통을 보지만 평소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는 녹색의 보석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양제의 양도 문제가 없고....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휴일에는 동물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인은 집을 나섰다.

기절한 초록이가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정오를 알리고 있었다. 자신이 주인을 배웅도 못한 사실을 깨달은 초록이는
집 안의 공허함을 더욱 크게 느끼며 밥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데? 이게 뭐인데스까?"

은색의 실이 초록이의 입에서부터 뻗어나와 손에 닿아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초록의의 입에서 서서히 풀려나온
그 은색의 실이 초록이의 온 몸을 칭칭 감아갔다. 초록이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30분 가량이 지나고, 초록이는 하나의 거대한 고치덩어리가 되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밤 하늘에 빛나는
달을 닮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 주인은 귀가했다.

"초록아 나왔...는데...."

주인은 말을 잃었다. 평소라면 데스데스거리며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릴 초록이가 보이지 않아 정말로 몸이 안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항상 익숙한 집 안의
풍경 속에서 그를 반긴 것은 아파서 누워있는 초록이가 아닌 은색의 거대한 실뭉치였다.

상식을 넘어가는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잊은채로 굳어있던 주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래...가만있자..이런걸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초록이 처음 기를 때 인터넷에서 대충이지만 봤는데...'

주인은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실장석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뒤지며 고치, 실, 실뭉치 등으로 검색을 해댔다.
그리고 잠시 후 긴장되어있던 몸을 뒤로 편히 젖히며 기지개를 켰다.

"어휴~ 원래 저실장이 엄지가 될 때 이런걸 만든다고. 그럼 아픈게 아니구나 초록이...다행이네. 그런데 초록이는
성체 아니었나? 대체 왜....? 혹시 내가 먹이를 덜 줬나? 그래서 덜 큰게 이제 크는건가? 그게 말이 안 되는데..?"

애시당초 실장석에 뭔가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록이의 불쌍한 모습에 동정심을 느끼고 사육을 결정한
남자는 사육에 필요한 지식만을 검색으로 얻어왔다. 그나마도 초록이가 워낙 흔치않은 개념개체였기에 얼마 후에
별 쓸모가 없어졌고. 그래서 남자는 실장석을 기르는 사람치고 너무나도 실장석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다.

"그럼...일단 그냥 둬도 되겠지. 위석도 멀쩡하고."

초록이의 위석은 한층 더 밝은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이제 거실의 불을 꺼버리면 살짝 주변이 밝아질 정도
였다. 주인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영양제를 추가로 부어두고 보관함의 뚜껑을 잘 닫은 뒤, 초록이가
안에 들어있을 고치를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모르게 고치가 부르르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부터 주인의 일과에 아침저녁으로 초록이의 위석을 확인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행여나 영양제가 부족
해지거나 위석이 검게 변하거나 깨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또 커졌어...."

위석은 매일같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크기가 커지고 빛을 내뿜으며 형태도 육각형에 가까운 모습에서
팔각형, 혹은 원형에 가깝게 변모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주인이 보기에 긍정적이기에 당장 초록이가 들어
있는 고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간다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고치에 함부러 손을 대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판단도 있었다.

초록이가 고치로 변하고 10여일. 어제부터 고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느낀 주인은 아예 3일 휴가를
내고 초록이의 고치 옆을 지키기 시작했다. 주인이 고치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 시각, 고치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내 옆으로 벌어지며 서서히 그 형태를 무너뜨려갔다.

"아....?"

초록이는 낮선 풍경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익숙하지만 낮설다. 분명히 매일같이 보고 또 보던 집의 풍경인데
너무나도 낮설다. 모든 것의 위치가 변해버린 느낌. 그리고 그녀는 그제서야 예전과 뭔가 다른 감각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데....?!"

손가락, 그토록 갈구하던 손가락. 이제 주인님만큼 빠르게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길쭉한 다리. 이제 충분히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낼 수 있다. 초록이는 자신도 모르게 거실 한 구석의 작은
거울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인간에 비하면 크고 뾰족하지만 작아진 귀. 이제 제대로 다물어지는
입과 붉은 입술. 풍성한 머리카락, 초록색의 하늘하늘한 원피스.....여전한 것은 적록의 눈동자 뿐일까.

초록이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주인님을 찾기 위해 자신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주인도 옅은 잠에서 깨어 초록이를 보았다.

"너....초록이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초록이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주인님이 나를 알아봐주었다! 이제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생 곁에 있을 자격을 얻었다! 주인님께...어쩌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지만...가슴터지도록 하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다!

초록이는 주인에게 뛰어가 그를 끌어안았다. 150cm 조금 안 되는 작은 여성 정도의 키, 주인은 대뜸 자신에게
안긴 초록이(라고 생각되는 여성? 혹은 그무언가)를 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실장인인가 뭔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초록이를 키우기 위한 정보 검색 중 보았었지만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다행히 실장인은
실존하기에 그 특수성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도 있다고는 하지만...주인은 다시 한 번 이런저런 것을 검색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부비고 있는 초록이를 슬쩍 끌어안아 주었다.

"주인님....이제 주인님 옆에 있을 수 있는거에요. 도움도 되는 거에요. 주인님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거에요. 주인님께...주인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 그래 초록아. 고생 많았다."

주인은 아무튼 초록이를 쓰다듬어주며 대꾸했다. 그 순간, 주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말이 통해?!"

"데?! 그, 그런거에요! 이제 주인님과 말이 통하는거에요! 주인님이 제 말을 알아주시는거에요!"

초록은 기쁨에 겨워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동한 주인님이 실장숖에서 사용하는 말톨하는 기계를 사용
하지 않아 얼마나 불편이 컸던가. 같이 지낸 시간이 1년을 넘을 때 즈음에서는 말없이도 뜻이 통했지만 그래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래, 초록아 몸은 이상없지?"

주인은 가장 걱정이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초록이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발도 슬쩍 굴러보고 손가락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거에요!"

주인은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초록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방으로 향했다. 초록이는 
가만히 서서 주인님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된 감격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님에게 했던 말을 다시
곱씹으며 얼굴을 곱게 붉혔다.

"사랑....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주인님은 화내지 않으신거에요....제 마음을...아주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주신
거에요...."

싱그러운 미소가 초록이의 입가에 머문다. 초록이는 자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으며 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좀처럼 오지 않는 주인님을 찾아 주인님의 방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잘 열 수 없던 둥글둥글한 
손잡이도 손가락으로 잡고 돌리니 쉽게 열렸다. 주인님은 그곳에서 컴퓨터를 보며 뭔가를 끙끙 고민하고 
있었다. 초록이는 주인의 고민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이거는 사이즈는 되는데 초록이한테 너무 아플거 같고....이건 조금 작지 않나? 다른데서 찾아야하나...."

주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대형견용 리드줄을 파는 사이트. 실장인으로 우화하며 인지력과 판단력도 대폭
늘어난 초록이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데...? 주인님, 왜 이걸 보고 계신거에요?

주인은 태평스럽게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대꾸한다. 

"전에 쓰던 리드줄은 이제 니가 커져서 안 맞겠더라. 산책 매너가 있는데 리드줄은 제대로 차야지."

주인의 대답에 초록이는 더욱 더 얼어붙었다. 지금 주인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지?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렇게 변했는데 왠 리드줄? 그건 실장석일 때나 차는게 아닌가?

"보자....푸드도 큰걸로 하나 더 시켜야지. 아, 혹시 배고프니?"

"주인님....주인님을 사랑하는거에요. 주인님은 어떠신거에요?"

초록이는 간신히 충격을 이겨내며 주인에게 아까의 고백을 반복했다. 주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이는
살짝 굳었던 얼굴이 다시 펴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사랑하지. 내가 너 키운게 몇년인데. 너만한 실장석 없다고 하더라. 내가 키워본 동물 중에 니가 제일...."

쿵!

주인이 쿵 소리에 뒤를 보았을 때, 초록이는 웃는 얼굴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주인은, 실장석의 우화에 대해 
정말 대충 알아보고 넘어갔던 주인은. 실장인을 여전히 실장석과 같은 카테고리에 넣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대형견용 리드줄이나 추가로 푸드를 구매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초록이의 고백도 개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달려오는 그 정도로 인지한 것이다. 주인의 뜻을 전부 이해한 초록이는 그 충격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잠시 후, 기절에서 깨어난 초록이는 주인에게 달려들다시피 하여 울며불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리고 그 다음 달부터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국제기관에서 보내온 인증칩을 어깨에 삽입한 실장인 한 명이, 
남자와 함께 정말이지 행복한 얼굴로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가끔 보였다고 한다.









그릇에 가득 찬 행복

 


철수씨는 오늘의 첫 출근을 준비한다.
부모님의 성화에 결정한 진로지만 아무튼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이기도 하다.
하지만...정말로 꿈을 포기한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졸라메는 넥타이와 거울에 비춘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입은 자신의 모습은 어린
시절 꿈꾸던 그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어색하기까지 하다.
일터로 떠나는 길,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봄날의 따스한 햇볕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에 지쳤는지 비틀비틀 힘없이 돌아다니는 실장석들이 보였다.

1년 365일, 사시사철 실장석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성체나 되어야 대형갑충류와의 싸움이 성립할 정도로 허약해 빠진
이 괴생물체들은 생태계의 최약자.

멀리 원정을 나온 개미나 지렁이 정도 외에는 사냥이 불가능하고 채집을 하려해도
그 통제불능의 번식력과 자에 대한 미칠듯한 욕구로 불어난 지나친 머릿수와
기본적으로 거주공간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공원이라는 점에서 오는
식량과 식수의 절대 부족.
자연이 풍요로운 계절이라도 하루 끼니 구하기도 버겁거니와 이제 봄을 겨워
여름을 맞이하려는 때에 이 공원에는 먹을 만한 과일이나 열매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도 작년에 비해 구하기 어려워진지 오래.
예전이라면 연말의 도로 정비로 쏟아부을 남은 예산들을 실질적 실장석 피해에
대한 방지책이라는 명목으로 대부분의 지자체가 실장석 대비 공사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나마 J시는 먹거리로 유명한 고장이라 음식점들도 노점들도 그만큼 많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가 좀 있기에 이 공원의 실장석들도 버틸
수 있는 셈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인간이 설치한 상하수도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사막이나 다름없는
메마른 공간이다.
그렇기에 실장석들은 매순간, 자신과 자신의 자들을 위한 먹거리와 마실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지금 공원의 한켠, 어젯밤 누군가 먹다가 두고 간 비닐봉투를 뒤적이는 이
친실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데히....귀한 봉투를 얻은 건 좋지만 먹을 건 별로 없는데스우...”

실망한 표정으로 입가에서 침을 조금 늘어뜨린 체 비닐봉투를 접어 자신의 봉투에
밀어 넣는다.
집에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귀여운 자들. 어제는 지렁이 한 마리로 참아야했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보이는지 어제 거의 빈 봉투를 보고는 삼녀는 피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서든 먹을 것을 구해야만 하는데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동족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굶주림에 지친 표정으로 여기저기
를 소득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간간히 공원에 보이는 닝겐에게 다가가 먹을 것을 구걸해보지만 운이 좋아야 그냥
쫒겨나고 재수 없으면 죽음이 어깨동무를 걸어온다.
친실장은 지친 발에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주변을 살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상냥하고 든든하던 마마, 다른 자매들. 모두 함께 노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그 때까지는 아직 공원에 동족이 이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식사시간에는 밥이 항상
풍족했다.
자신까지 10명이나 되는 자매들이 먹어도 보존식을 확보할 수 있을만큼, 지금 자신은
고작 4명의 자를 키우는 것도 버겁지만.....

‘어쩌면 그게 마마와 와타시의 차이일지도 모르는데스. 와타시가 무능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인데스.‘

친실장은 잠시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막 깊어지는 봄. 춘궁기라는 말이 있듯 풍요할 것 같으면서도 정작 먹을
것은 부족한 계절.
늘어난 실장석으로 인해 주변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 관리에 더욱 신경 쓰게
되면서 정말이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와타시 힘든데스우...그래도 마마인데스우...힘내야하는데스...’

데-히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쉰 친실장은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그 때, 저 멀리에서 데스데스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마치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 마마와 함께 나왔던 소풍의 날, 좋은 닝겐상
들이 푸드를 뿌려주던 그 날처럼.

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 발걸음을 소리가 울려퍼지는 쪽으로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마다 의심은 확신으로 그리고 이내 환희로 변했다.

다시 돌아왔다! 좋은 닝겐상들이 다시 와주었다!
이제 곧 공원은 예전처럼 풍요로워지겠지.
닝겐상들이 주는 것에만 의지하지 말고 더 열심히 밥을 모아서 보존식을 챙기고
보존식이 충분해지면 마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들과 함께 소풍을 나서자.
마마에게서 독립할 때 선물로 받은 소중한 콘페이토도 챙겨나가자.
두 알이니 반으로 쪼갠 것을 자들에게 하나씩 주면 딱 떨어진다.
착한 자들이 마마에게도 나눠주겠다고 해도 꾹 참고 양보해야지.
아마 그런 것들이 행복일 것이다.

“데? 뭔가 다른데스우?”

공원 중앙의 광장에는 친실장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푸드를 뿌려주는 닝겐상들. 그리고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아줌마들이 버둥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푸드를 마구 주워 입에 우겨
넣거나 봉투에 집어넣는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은 데스데스 떠들지 언정 둥글게 뭉쳐있는 것이 아니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파란 옷의 닝겐상이 크게 말했다.

“자-!푸드를 받고 싶은 실장석은 줄을 서서 기다리렴. 그렇지 않으면 푸드는 주지
않을거야! 줄을 서!“

보통이라면 분충이 이럴 때 나서서 ‘고귀한 와타시에게 무조건 다 바치는데스!’
라며 땡깡을 부리겠지만 혹독한 겨울을 버텨낸 실장석들 중 그렇게 멍청한
녀석은 없는 듯 하다.
적어도 파란 옷의 닝겐은 무섭고 그 뒤에 서있는 다른 닝겐이 들고있는 길쭉한
막대기에서 동족의 피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는 것이다.

“오마에도 푸드를 받으러 온 데스까? 정말이지 다행인데스. 이제 자들이 굶지
않아도 되는데스. 오로롱 오로롱-“

친실장은 줄 끝으로 가서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앞의 실장석들은 모두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오로롱 오로롱 울며 앞에서 푸드를
받아 자신의 집으로 신나게 뛰어가는 동족들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공원 내부의 실장석들이 얼마나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친실장의 차례가 돌아왔다.
파란 옷의 닝겐상, 아니 이제 닝겐사마라고 불러야할 그 분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친실장에게 말했다.

“새끼는 몇 마리나 있니?”
[데...4녀까지 넷인 데스우...]

검은 기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그 닝겐사마는 친실장의 봉투에 듬뿍 푸드를
담아주었다.

친실장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푸드! 인간들이 실장석의 입맛에 맞춰 만든 신비한 먹거리. 좀처럼 썩어버리지도
않고 오래 두었다가 먹어도 맛도 한결같은. 무엇보다 맛좋은 먹거리.
자신이 평생 노력해야 이 정도의 푸드를 모을 수 있을까.
어쩌다가 공원에 방문해주는 고마운 닝겐상들의 선물로 한 줌의 푸드를 모아봐야
당장 하루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실장석의 생인지라
바로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그대로 먹어치워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아깝고 아까워서 자들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푸드를 나누어줄 때 묻은
가루를 쪽쪽 빨며 제발 내일은 먹이를 구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 정도 양의 푸드라면 푸드만 먹더라도 일주일은 버틸 것이다.
자신은 어찌어찌 잡초나 다른 것들을 먹고 버티며 자들만 먹인다면 한 달도 버틸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친실장의 두 눈에서는 적록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이 위기를 넘겼다.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은 이제 살아남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롱, 오로롱~고마운데스우. 정말로 고마운데스우~]
“자, 그럼 집으로 가기 전에. 좋은 이야기 하나 듣고 가렴.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봐도 좋으니까.“
[데?]

친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이야기라니 무엇일까. 아무튼 푸드도 나누어준 좋은
닝겐상이니 어떤 이야기건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친실장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정도 푸드면 너희 가족이 일주일은 먹을거야 그렇지?”
[그런데스우.]
“그런데 그 일주일이 지나면?”
[어떻게든 먹을 것을 모아보는데스.]
“갈수록 밥을 구하기 힘들어 질거야. 벌써 여름이 다가오잖아. 물도, 밥도 모으기도
보존하기도 힘들거다. 게다가 많은 비가 오면 대부분의 실장석은 죽어버리겠지.“

남자의 말에 친실장은 자신의 마마가 해준 교육들을 떠올렸다.
여름에는 밥이 쉽게 상해서 먹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물도 금방금방 어디론가 사라지니 패트병을 꼭 구해서 뚜껑을 닫아두어야 한다고
했다.
뜨끈뜨끈한 병이 찾아와 자들을 아프게 하니 자들이 마구 노는 것을 못하게 교육
시켜야 한다고도 했었다.
비가 마구마구 내릴 때가 많으니 조금만 수상해도 집으로 돌아와 비닐을 지붕에
올려서 돌로 눌러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닝겐상들이 평소보다 화가 많이 나있을 때가 많으니 가능하면 접근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도 했다.
무서운 바람이 불어올 때를 대비해서 집을 고정시킬 무거운 돌도 며칠이 걸리건
조금씩 끌어와서 준비해야한다고도 했다.

‘마마에게 배운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무서운 계절이었던데스우...’

겨울의 가혹함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자매들 중 살아남은 것은 와타시 하나, 나머지는 전부 얼어죽거나 식량을
훔쳐 먹으려다가 죽거나 마마에게 반항하다가 죽거나, 사육실장이 되겠다고 나가서
아무 소식도 없거나, 아무튼 죽어버려서 보존식이 되었다.
친실장은 늦여름에 태어났기에 다소 덥고 목마르고 가려워 힘들기는 해도 버틸만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이제 자신과 자신의 자들이 함께 견뎌야 하는 여름은 그
수십배는 가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자신은 실장석이고 견뎌야만했다.
사랑스러운 자들을 위해서.
그 때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나하마. 사육실장은 아니지만 너희 가족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거야. 밥도 나오고 가족을 흩어놓지도 않는다. 어떠니?“
[데스우?]

친실장은 순간 굳어버렸다.
너무 좋은 제안이라서 역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분명 이 닝겐상은 아주 좋은 닝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고작 실장석’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한 이야기를 해주다니?

특별한 와타시 어쩌고하는 행복회로가 발동했다면 순식간에 넘어갔겠지만 친실장은
어릴 때부터의 삶의 경험과 마마의 교육으로 인해서 적어도 인간들은 자신들을 별로
특별히 여기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특별히 죽이고 싶어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기에 치솟는 욕망에도 선뜩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남자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극소수 개념개체인가...거 참.’이라고 못 알아들을 말을
중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다시 말했다.

“네가 마지막인 것 같으니 좀 더 이야기가 길어져도 상관없겠지. 아무튼 네가
새끼들을 키우기에는 점점 힘들어질거란다. 하지만 우리를 따라오면 새끼들도 너도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세레브한 생활은 아니다만 위험하거나 힘든
생활도 아니란다. 그건 내가 약속하마. 자, 이걸 받고 집으로 가서 잘 생각해보렴.
만약 나를 따라올 거라면 내일 다시 이 곳으로 나오면 된단다.“
[알겠는데스...푸드 감사한데스우...]

친실장은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옆의 다른 닝겐상과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친절한 닝겐상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집으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푸드를 받아가던 다른 실장석들도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신나게 뛰어가면서도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임은 틀림없었던 것이다.

툭!

“뎃? 집에 벌써 온데스우...”
“마마테치! 마마가 온테치!”
“마마 오늘은 밥 있는테치? 와타치 배가 꼬르륵꼬르륵하는테치!”
“테에엥! 마마가 없어없어되어버린줄 알았던테치!”
“마마가 온테치! 행복테치-!”

멍하니 걸어오다가 자신의 집에 몸이 부딪히고서야 집에 도착했음을 깨달은 친실장.
사랑스러운 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언제나 같은 집의 모습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슬슬 낡아 버석거리기 시작하는 골판지, 마마가 독립선물로 구해준 것이지만 새것을
구해줄 수는 없었기에 겨울을 못 견디고 죽은 다른 일가의 것을 가져왔다.
안에 깔린 낙엽도 마르다 못해 바스러진 가루가 되어가고 있다.
패트병도 고작 하나. 물을 저장하기에 충분치 않아 여름이 온다면 물이 부족할
수도 있다.
아직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운치굴도 충분히 깊지 않다.
마마가 말했던 배수로라는 것을 여름이 오기 전에 파기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친실장은 자신의 집을 보면 볼수록 여름나기에 대해서 회의적이 되어갔다.
자들은 바로 집으로 들어와 밥을 주지 않는 어미에게 보채기 시작했다.

“마마-빨리 와주는테치! 배고픈테치!”
“집 잘 본 테치! 마마, 좋은아이 해주는테치!”
“배가 계속 꼬르륵하는테에엥-”
“마마! 어서 들어오는테치!”

고민은 고민이고 자들은 자들이다.
친실장은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옷과 머리에 온통 바스러진 나뭇잎이나 흙알갱이 따위를 묻힌 자들을 들어 한 번씩
핥아주었다.
끈적거리는 친실장의 혀가 얼굴과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은지 ‘테츄웅~’
이라고 울음소리를 내며 귀와 손발을 파닥여 행복감을 표시하는 자실장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친실장은 넘쳐오르는 행복감에 미소지었다.
먹을 것이 없다면 이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굶주린 자들의 투정과 무능한
친으로서의 비애만이 남아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어야 했겠지만 오늘은 푸짐한 밥이
있다.

자실장들도 친실장이 들어올 때부터 피어오르는 고소한 냄새와 근래 보기 드물게
빵빵해진 봉투에 눈치를 챈 것인지 눈을 밤하늘의 콘페이토마냥 반짝이며 다물어지지
않는 입가에서 끊임없이 군침을 흘려가며 친실장의 봉투와 손을 보고 귀를 파닥이고
있었다.

그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서 친실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봉투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눈으로 확인한 자실장들은 일제히 행복감에 겨워 빵콘하며
뒤로 넘어져버렸다.

“테햐아아~ 푸드인테치!”
“마마 굉장한테치! 푸드가 한가득인테치! 너무너무 많은테치!”
“이런 마마의 자로 태어나서 와타치는 행복한 실장석인테츄~”
“대단한테치! 마마는 위대한테치! 최고인테치!”
“데프프프~ 자들은 어서 먹는데스. 마마가 나주어주는데스.”

친실장은 자들에게 푸드를 넉넉하게 3개씩 꺼내어 주었다.
자실장에게 푸드 3알은 조금 많은 느낌이고 아껴야할 소중한 식량이지만 지금까지
굶주려온 자식들에게 배부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테챱테챱테챱-최고테치! 푸드인테치!”
“행복한 맛인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아이라 정말 행복한테치!”
“테챱테챱.....”

바닥에 놓인 푸드를 아이들이 곰인형을 품에 안 듯 끌어모으고 고개를 그대로
쳐박은 체 테챱테챱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침과 푸드 가루가 휘날리는 와중에도
마마에 대한 감사와 칭송을 잊지 않는 자실장들.

자들의 자신을 칭송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와 행복감을 가득
채워준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들은 배를 곯게 되겠지.
굶주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마마 배고픈테치....’하는 힘없는 울음을 내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것은 다시 하기 싫은 경험이었다.

친실장은 다시 한 번 사랑스러운 자들이 정신없이 밥을 먹으며 행복감으로 테츄웅~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입을 놀리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그 친절한 닝겐상을 따라가기로.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실장석이라도 지금의 공원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도박을 해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간만의 포식으로 배가 잔뜩 부른 채, 행복한 울음소리와 함께 쉼없이 귀를 파닥이며
잠든 자실장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운 친실장이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깨웠다.
어제의 결정대로 오늘은 그 친절한 닝겐상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지사 자실장들도 자신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 친실장은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소중한 패트병을 기울여 그 안의 물을 다용도로 사용하는 이빠진 간장 종지에 담고
먼저 고개를 기울여 한 모금 가득히 들이켰다.
밤새 차가워진 물이 주는 청량감에 데캬아~하고 시원한 울음소리를 낸 친실장은 남은
물로 얼굴을 되는대로 깨끗이 닦아낸 후, 친실장은 간만에 포식을 한 덕분에 여느
때보다 깊게 잠들어있는 자실장들을 흔들어 깨웠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모두 어서어서 일어나는데스우~ 빨리 일어나지 않는 자는
푸드없는데스~“
“텟!”
“푸드테치!”
“일어난테치! 와타치 일어나버린테치!”
“와타치는 아까부터 일어난테츙~”

어제 먹었던 푸드가 그렇게 맘에 들었던 것일까.
팔다리를 바둥대며 후다닥 일어나 눈을 비비며 부산을 떠는 자실장들, 친실장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보며 하나씩 품에 안아 물을 먹도록 도와준다.
자실장들은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몸으로 팔은 물그릇에 넣어 고정시키고 머리를
처박으며 물을 혀로 핥아 입으로 가져가고 그 청량감에 어미와 마찬가지로 테츙~
하며 기분좋음을 표현한다.

친실장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푸드를 꺼냈다.
자실장들은 어제의 푸드 맛이 기억났는지 귀를 파닥이며 분홍색의 혀를 날름거리며
쉼없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번에는 자실장들에게 2개씩 놓인 푸드, 어제보다 적은 양의 푸드에 잠깐 귀가
아래로 쳐지는가 싶었지만 고소한 향기가 올라옴에 따라 입꼬리도 따라서 올라간다.
친실장 4개, 자실장 2개씩. 즐거운 식사시간은 금새 끝나고 친실장은 만족스러운
테츙~소리와 함께 빵빵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는 자실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들은 모두 잘 듣는데스우.”
“테치?”
“오늘 우리는 어떤 친절한 닝겐상을 만나러 가는데스. 이 푸드도 그 닝겐상이
마마에게 주신데스. 그러니 자들도 인사를 잘 하는데스.“
“테에...고마운 닝겐상테치. 인사 잘 하는테치.”
“와타치도 인사 잘 하는 아이라고 칭찬받는테치.”
“그리고 닝겐상이 우리를 어딘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던데스.”

친실장의 한 마디에 자실장들이 일제히 술렁거린다.
인간이 자신들을 데려간다. 이것은 곧 사육실장이 된다는 말 아닌가?

“테챠아아! 마마 굉장한테치! 어마어마한테치! 사육실장이 되는테치카?”
“테츙~ 와타치도 마마 덕분에 사육실장인테츙~”
“세레브해지는테치! 사육실장이되는테츄!”

친실장은 흥분해서 마구 떠드는 자실장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닌데스. 사육실장은 아닌데스. 하지만 배고프거나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
간다고 한 데스. 우리 모두 가서 행복해질 수 있는데스. 자들은 그러니 마마를
따라서 오도록 하는데스.“
“테에이이....”

사육실장이 아니라는 말에 자실장들의 귀가 쳐지고 입꼬리도 아래로 내려간다.
하지만 위험하거나 배고프지 않다는 말에 만족한 듯, 이내 귀를 파닥이며 마마의
품에 안겨온다.

“마마 덕분에 좋은 곳으로 가는테츄~”
“마마의 아이라서 행복해지는테치~”
“사육실장은 나중에 해도 되는테츄. 마마랑 같이가면 더 좋은 테츄~”
“텟테로게~ 행복해지는테츙~”
“정말 다들 좋은 자들인데스. 자, 그러니 지금부터 몸을 깔끔깔끔이 하는데스.
닝겐상이 보더라도 좋아할만큼 깔끔하게 하는데스.“

말을 마친 친실장은 입을 남은 물로 헹궈내고 한 마리 한 마리씩 자실장들을 안아
올려 혀로 얼굴과 몸을 핥아주었다.
친실장의 분홍색 혀가 자실장의 얼굴과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푸드 부스러기나
음식물 찌꺼기의 국물, 흙이나 나뭇잎 부스러기 따위가 묻어나왔다. 친실장은 끈기
있게 입을 물로 계속 헹궈가며 머리카락이나 얼굴은 물론 팬티를 벗겨내고 녹색의
운치 찌꺼기가 눌러붙은 총구까지 샅샅이 핥아주었다.

개운해지는 느낌과 함께 오는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떤 장녀를 내려두고 다음 차녀,
삼녀, 사녀를 연속해서 핥아내고 나니 패트병에 물이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이 잘 된다면 더 이상 이곳으로 오지 않을테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이 남은 친실장은 마지막으로 남은 푸드를 잘 묶어 돌로 눌러서
떠돌이 고아실장이 넘보지 못하도록 단속한 뒤 자실장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가족의 발걸음을 축복하는 듯이 하늘도 너무나 맑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스하고 좋은 날씨였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바깥 나들이에 흥분한 것인지 자실장들은 팔을 휘적휘적 내지르며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텟테로게~ 마마와 함께 행복한 곳으로 가는테치~ 텟테로게~ 사육실장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사는테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실장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던 친실장은 다른
쪽에서 걸어오는 일가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얼어붙고 자실장들은 양쪽 모두 자신의 친실장의 뒤로 숨었다.
잠시 동안의 긴장이 지나고 친실장이 말했다.

“오마에도 그 닝겐상에게 가는데스....?”
“데! 그런데스! 와타시도 거기로 가는데스. 오마에도 그런데스?”

목적지가 같은 곳임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어제 간만의 포식으로 만성적으로 자신들을 지배하던 허기에서 벗어나서일까.
분위기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두 친실장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가기로 했다.
자실장들도 어느새인가 어울려 함께 텟테로게~ 하며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팔짝팔짝
뛰어 자신들의 어미를 쫒아오고 있었다.

다시 찾은 광장, 그곳은 우글우글 모여든 실장석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많은 숫자의 닝겐상들이 그 실장석들을 가족끼리 모아 커다란
골판지 상자같은 곳에 옮기고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압도된 친실장이 다소 주눅든 목소리로 데스우~하고 울어
자신의 새끼들을 근처로 끌어모았다.
너무 많이 모여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소중한 자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푸드를 받아갈 때와는 다르게 줄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기다릴 것 없이 가족 숫자만 확인하면 그대로 골판지같은 것에 집어넣어주기 때문
인 것 같다.
친실장은 이곳까지 함께 온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어제의 그 닝겐상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자들과 함께 온 데스우 닝겐상. 앞으로 잘 부탁드리는데스.]
“오, 그래! 잘 왔다. 앞으로 행복하렴. 최군. 친실장 하나. 자실장 넷.”
“예, 중간 사이즈 하나 주세요.”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청년은 다른 한 사람에게서 넘겨받은 플라스틱 상자를 능숙하게
조립하더니 그곳에 매직으로 1+4 라고 적고 그 안으로 친실장과 자실장들을 들어
올려 집어넣었다.

친실장은 그 손놀림이 거칠거나 사납지 않고 얌전히 다뤄준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는 도중에도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자들만큼은 살릴 방법이 없을
까 계속 고민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좋을 듯 싶었다.
친실장은 낮선 환경에 긴장한 자실장들을 달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내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가족별로 상자에 담겨 차로 옮겨졌다.
상자의 뚜껑이 덮혀 하늘이 어두워지자 자실장들이 일제히 놀라 울기 시작했다.

“마마, 어두워진테치! 갑자기 밤이온테치!”
“테에에엥 무서운테치! 깜깜한테치!”

울며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들을 끌어안고 친실장은 이것은 무서운 것이
아니며 닝겐상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자실장들은 진정이 되었는지 아침에 세수를 시킨 보람도 없이 적록의
눈물로 더러워진 얼굴을 친실장의 품에 마구 부비며 테츙~하고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친실장 역시 자실장들의 체온으로 인해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보에 보에
자장가를 불러 자실장들을 재우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일까?
자실장들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친실장 자신도 몰려오는 잠에 조금씩 눈이 감기는
것을 느끼며 자실장들을 더욱 꼭 품에 끌어 안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정말 이 자들만큼은 행복하고 또 행복할 수 있기를.
은근히 풍겨오는 정체모를 달큰한 냄새와 함께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맞기며
친실장은 천천히 코를 골기 시작했다.

털컹!

얼마나 잠을 잔 거지?
친실장은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모두 그대로 있다.

아직도 자고 있는 새끼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깨를
쓰다듬었다.
배가 고픈 것과는 조금 다르게 무언가 허한 느낌이 잠시 들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웅웅거리는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실장석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곳은 여러분에게 있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일 것
입니다. 모두 앞의 파이프를 봐주세요!“

테챠아아!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놀라 잠에 깬 새끼들을 달래며 친실장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제 와서 안 일이지만 아까의 그 단단한 골판지 상자가 아니라 뭔가 푹신한 것이
잔뜩 깔린 집 안에 자신들은 들어와 있었다.

원래 사용하던 것보다 크고 모양도 멋진 녹색의 그릇도 하나.
자실장들을 위한 것인지 깨지거나 뭉개지지 않은 말짱한 공도 하나 있었다.

역시 그 닝겐상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친실장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지금 들려오는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도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자실장들의 키와 비슷한 높이에 굵직한 기둥같은 것이 가로로
지나가고 있었다.
닝겐상들이 토관이라고 부르던 작은 동굴과 비슷하면서도 크기는 좀 더 작은 것
같았다.

“자, 그 곳을 보면 여러분 방향으로 튀어나온 수도꼭지가 있고 그 아래 녹색의
버튼이 있을 것입니다! 찾았나요?“

그 목소리에 대답하듯 여기저기에서 데스데스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친실장은 집(이라고 생각되는 것) 바깥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본다.
놀라웠다. 놀라운 광경이다.
닝겐상들이 아파트라고 부르던 그것처럼 실장석들이 들어간 집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자신처럼 주변을 살펴보려고 나온 것인지 놀란 표정으로 사방을 훑어보는 동족들이
잔뜩이다.
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까마득하게 있는 것이 전부 집이란 말인가.
옆으로는 또 어떤가.
대체 닝겐상들은 이렇게 많은 실장석들과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친실장은 어제부터 계속된 변화와 충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자실장들은 공을 발견했는지 그것으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다시 큰 닝겐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 수도꼭지 아래에 그릇을 대고 버튼을 누르세요. 물을 구하는 것과 비스한
겁니다!“

친실장은 수도꼭지 아래에서 물을 받아내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참 공놀이에 열중한
자실장들 옆에 놓인 그릇을 가져왔다.
놀랍게도 전에 쓰던 그릇과 다르게 크면서도 굉장히 가벼워 쉽게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녹색의 버튼을 눌렀다.
자실장들도 어느새 노는 것을 멈추고 자신들의 친이 하는 모양새를 집중하여 바라
보고 있었다.

천천히 눌리는 버튼. 친실장은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긴장된 표정으로 버튼을
눌렀다.
달깍, 끝까지 버튼이 눌리자 수도꼭지 같은 것에서 미묘한 적갈색의 무언가가 쏟아져
그릇에 들어찼다.
뎃? 친실장은 놀라서 버튼을 누르던 손을 땠다.
그러자 더 이상 아무것도 토하지 않는 수도꼭지.
친실장은 곧바로 이해했다. 버튼을 누르면 이 뭔지모를 것이 나온다고.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밥입니다! 분명 맛있을거에요! 먹어보세요!”

닝겐상의 목소리가 마치 친실장이 무엇을 하는지 보기라도 한 것처럼 들려온다.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릇에 담긴 것을 보았다.
아무리봐도 보기에 영 먹고 싶어지는 색은 아니다.
모양도 꼭 자신들의 운치처럼 질척질척, 이게 밥이란 말인가?

근처의 다른 일가에서는 닝겐에게 속았다느니 운치는 밥이 아니라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친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속은 것일까? 그 친절하던 닝겐상이 우리를 속인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 친절한 닝겐상이 그럴 리가 없다.
친실장은 눈을 딱 감고 그 뭔지 모를 것을 손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마마...안 되는테치...”

장녀의 힘없이 말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먹어야만 한다. 만약 위험하거나 못 먹을 것이라면 자신 하나의 고통으로
끝내야 한다.
친실장은 그 미묘한 물건을 입으로 옮겨 눈을 꼭 감은 채 천천히 삼켰다.
씹을 것도 없이 말캉말캉 부드러워 먹기는 쉬웠다.

데?

친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
맛있다!
달고 맛있다!

들실장으로 태어났다면 운이 좋아야 한 두 번, 운이 나쁘다면 일평생 꿈만 꾸다가
죽거나 코로리나 도로리, 도돈파 따위를 잘못 알고 먹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콘페이토만큼이나 달고 또 달다.

게다가 이 감칠맛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것보다도 좋은 맛이 난다.
게다가 잘 몰랐으나 입에 넣고 씹다보니 은은한 향기까지 풍겨난다.
최고! 최고! 그 닝겐상은 역시 천사였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우리를 구원해주는 천사였다!

친실장은 마구 입으로 퍼넣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자실장들에게 음식을
권했다.
마마의 풀어진 표정과 흘러내리는 군침에서 이미 맛을 짐작이라도 하거나 아니면

아침에 먹은 푸드가 이미 전부 소화가 되어버렸는지 망설임없이 그릇으로 달려든
자실장들.
이내 그것들의 표정도 풀려나가며 먹을거리가 주는 즐거움에 팔다리와 귀를 정신
없이 파닥거려 행복을 표현한다.

“마마! 대단한테치! 이게 콘페이토테치?”
“와타치는 이제 이것만 먹고사는테치! 행복인테치!”
“마마가 옳았던테치! 마마를 따르면 행복해지는테츄~”
“테챱테챱테챱! 와타치는 행복한 실장인테츙~”

머리를 숫재 그릇에 집어넣다 못해서 그릇 안으로 들어가다시피 하는 자실장의
왕성한 식욕으로 인해서 순식간에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아직 배가 덜 찬 것인지 아쉽게 서로의 얼굴과 손에 묻은 것까지 샅샅이 핥아내는
자실장들의 분홍빛 혀, 핥다보니 간지러운지 테프프프 웃어가며 다시 장난을 치려
다가 마마가 이 맛나맛나한 것을 주었음을 기억해냈는지 일제히 빛나는 눈과 파닥
거리는 귀로 어미를 바라본다.

“마마, 더 주는테치!”
“더 먹고싶은테치!”
“아직 배가 덜 찬 테치! 더 먹어야하는테치!”
“와타치는 착한 자이니까 이 맛나맛나를 더 먹을 자격이 있는테츄~”
“데..안 데스.”

친실장은 주변의 동족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곳에서는 어미가 자식들을 밀쳐내고 이 맛있는 것을 독점한 듯 비통한 테에엥
소리가, 다른 곳에서는 자신들은 저렇게 좋은 것을 못 먹는다며 괴로워하는 레에엥
소리가. 또 어떤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싸우다가 밀려난 것인지 고통을
알리는 테에엥 소리가 들려온다.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자실장들의 혀로 설거지까지 말끔이 끝난 그릇들 들어 다시
수도꼭지 아래에 두고 흘끔 눈치를 본다.
4쌍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기대에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친실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슬쩍 수도꼭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닝겐상, 이 맛나맛나를 더 주시는데스우...”

그리고 버튼을 꾸욱.
꿀렁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그릇이 차오른다.
친실장의 행복도 함께 차오른다.
자실장들의 기쁨도 차오른다.

가득 차오른 그릇에 이번에는 아까처럼 마구 들러붙지 않고 점잖게 둘러앉아서
식사시간을 가진다. 행복한 맛이 입 안을 가득히 채운다.
아아 정말 그 닝겐상의 말을 따르기를 잘 했다.
배가 가득해질 때까지 먹고 또 먹은 가족은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다른 집들도 커다란 닝겐상의 목소리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버튼을
눌러서 먹으세요!‘ 라고 한 이후로는 다툼이 없어졌는지 행복한 웃음소리만이 들려
오다가 이내 도로롱 도로롱 코고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자실장들과 다른 동족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친실장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커다란 행운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몇 달 후.

오늘도 일가의 하루는 여느 때와 같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편히 쉬며 사랑스러운 자들과 시간을 보낼 뿐인데
이상하게 피곤해 느지막이 눈을 뜬다.
그 때 즈음 마찬가지로 늦게 눈을 뜬 자실장들과 함께 수도꼭지 주변에 둘러앉아
버튼을 꾸욱 눌러 그릇을 채운다.

자실장들도 하품을 하거나 귀를 긁적이면서 밥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가득 차오른 맛나맛나를 실컷 먹는다.
부족하니 또 한번 가득 채워서 먹는다.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또 한 번.

이상하게 항상 행복한 맛이 나는 맛나맛나지만 배가 잘 안차는 것 같다.
아니, 배가 부르기 전에 다시 고파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행복의 시간이 길어지니 상관없다고 친실장은 생각했다.
자실장들도 여기 처음 온 그 날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 맛은 정말이지 항상 행복한 맛이다.

데~끄윽~
테끄~윽

배가 불러오면 이제 잠시 쉬는 시간, 자실장들은 함께 놀거나 친실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한다.
가끔은 옆집으로 가서 그 집의 자실장들과 놀기도 한다.
다들 같은 먹이를, 그것도 무제한으로 먹기에 예전처럼 동족식이나 습격 따위를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

친실장은 잠시 혼자 쉬다가 옆집으로 놀러간 자실장들을 부르러 갔다.
같이 놀던 옆집 자실장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친실장을 따라 다시 집으로 오는
자실장들. 언제 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나저나 옆집에도 운치구덩이가 없다.

이곳으로 온 이후에 운치를 해본 적이 없다.
빵콘도 물론 해보지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친실장은 배에 힘을 주었다.
아까 배가 터질 듯이 밥을 먹었으니 힘만 주면 빵콘이 되리라.
피식-
가스만 조금 나오고 빵콘은 소식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자실장들은 마마의 방귀에 놀랐다는 듯이 코를 부여잡고 테프프프 웃으며
뒹굴고 있다.
친실장도 멋쩍게 데프프 웃으며 자실장들을 끌어안았다.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꼬르륵

방금 전 밥을 먹은 것 같은데 어느새 5개의 배꼽시계가 울린다.
다시 밥을 먹자. 친실장은 자실장들과 함께 그릇에 둘러모여 다시 버튼을 꾸욱
누른다.
또 행복이 가득히 쏟아져 그릇에 차오른다.

자들만 빨리 커져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친실장은 요즘 유일한 걱정거리인
생각을 하며 혀를 자극하는 멋진 맛을 즐긴다.
어째 겨울을 날 때의 자신보다 성장이 더디다. 이래서야 다시 봄이 올 때 독립을
시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맛난 것을 배불리 먹으니 분명 크고 건강한, 
좋은 마마가 되어서 자식도 많이많이 낳을 것이다.
그럼 손녀챠들과 함께 모여 행복하게 지내야지.
친실장은 다가올 더욱 행복한 미래에 웃으며 버튼을 또 한 번 눌러 이 무한하고
멋진 맛의 밥이 주는 행복을 즐겼다.
5개의 웃음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아, 이번에 여기로 배정된 분이구만!”

쾌활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긴장한 듯 조금 뻣뻣한 청년을 반긴다.
청년은 자신보다 나이도 직급도 높은 상대의 친밀한 대응이 멋쩍은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악수를 받아들인다.

“네! 이번에 J시 실장발전소. 실장관리과에 배속된 이철수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나는 그냥 김과장이라고 부르면 되요. 철수씨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나?“
“네, 실장석들의 전반적 관리입니다!”

청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한번 끄덕인 김과장은 철수의 손을 잡고
그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사실 실장석 관리라는게, 우리가 저것들을 사육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저 밥만
먹고 또 먹게 하면 되는 셈인데...그 밥 나오는 파이프 관리가 첫 번째.
“네..파이프 관리가 첫 번째.”
“두 번째가 바로 이거지. 위석 관리.”

김과장이 철수를 데려온 곳은 어떤 커다란 광장같은 곳이었다.
정체모를 기계장치들이 가득했는데 가운데의 그야말로 거대한 수조는 안을 가득 메운
녹색의 보석들로 그 광체가 주변을 환하게 밝힐 지경이었다.
김과장은 철수의 놀란 표정을 즐기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하나라도 검은 위석이 생겨나 파동이 변질되면 바로바로 찾아내서 꺼내
는게 우리의 주 업무지. 아~ 저 많은 것들 중에서 검은걸 어떻게 찾냐 하는 표정인데
위석이라는게 수명이 다 하면 가벼워지는건지 위로 떠오르니까 그냥 건지면 되요.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철수씨, 땡보로 온거야 땡보로. 하하.“
“아..그렇군요.”

여전히 긴장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 철수의 등을 한번 가볍게 친 김과장은 다른
직원에게 철수씨를 인수인계 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2028년, 실장석이라는 바퀴벌레처럼 번식하는 쥐새끼, 백해무익한 해충, 도저히 쓸모
없는 물건, 어느 별에서 왔니? 따위의 별명으로 불리던 실장석의
완전히 새로운 용도가 발견되었다.

한 과학자가 던진 가벼운 의문. [위석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서 이것들을 재생시키고
불사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반대로 에너지를 위석에서 뽑아올릴 수도 있는게
아닌가?]에서 시작된 연구는 그야말로 혁명을 일으켰다.

물론 실장석 하나의 위석이 발하는 에너지야 건전지 하나 수준. 그나마도 꾸준히
먹고 먹어야 그 정도이니 쓸모가 없다.
하지만 위석의 신비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대량의 위석이 모이면 모일수록 에너지가
증폭되는 성질이 있었고 시험적으로 준비된 환경에서 고작 10만 마리 실장석의
위석이 내뿜는 에너지 총량이 중소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하나와 맞먹을 지경이었다.

그 결과에 고무된 과학자들은 위석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추출. 전기에너지로 전환
할 수 있는 장치의 개발에 매달렸고 2년 전, 실용화에 성공했다.
역할성제라는 이름이 붙은 특수한 약물에 위석을 넣어두면 실장석이 살아서 에너지를
섭취하는 이상 그 에너지는 전부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는 신비한 장치.

그러나 그 에너지를 위해서 비싼 먹이를 실장석에게 먹이는건 본말전도이다.
그러므로 값싼 먹이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실장석의 생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관찰-학대파 연구진들이 나섰다.

실장석의 입맛이 극히 단순하며 첫인상에 강하게 좌우되는 점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압착, 가열하여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사카린 용액을 섞어 적절한
점도의 죽처럼 만든 후 식용향료를 섞는다.

최저한의 비용으로 만들어진 이 에너지 스프는 실장석들의 입맛에 딱 맞았고
실장석들은 들생활에서 마지못해 먹던 음식물 쓰레기를 천상의 음식으로 여기고
먹어치우게 된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에너지로 바꾸는 21세기 최고의 마법.
그것이 실장석 발전소였다.

“자, 철수씨. 여기가 실장석들 먹이 가공되는 장소. 음식물 쓰레기 처리소에서
건조 파쇄까지 돼서 오면 여기에서 사카린 용액하고 향료를 섞어서 나가는거야.“
“네...그런데 저것들 똥은 어떻게 하나요? 실장석이 똥 많이 싸는걸로 유명하던데..”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과장에 이어 자신을 안내해주고 있는 이대리라는 사람에게
철수씨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규모의 오폐물 처리 시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거. 안 싸.”
“네?”
“안 싼다구.”

위석에서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면서 얻은 또 다른 이익, 위석으로 보내질 에너지를
확보하기도 바쁜 실장석의 몸은 운치라고 불리는 배설물을 만들지 않는다.
모든 음식물을 완전히 에너지로 전환시켜버리는 것이다.
이 원리는 아직도 해명이 되지 않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냥 [아직 연구여지가
많이 남은 카오스파워 현상] 정도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럼...”
“그래서 새끼 때 오면 죽을 때까지 새끼지. 몸을 키울 수 없으니까.”
“아....조금 불쌍한 거 같네요.”
“뭐..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건 아닌데. 그래도 저것들은 이걸 행복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니까. 죽는 그 날까지 행복할거야. 적어도.“

철수씨는 유리창 너머 펼쳐진 실장석들의 대규모 주거공간을 바라보았다.
먹이가 끝없이 공급되는 파이프. 자식들을 잃을 걱정도 없는 삶. 분명히
공원에서 살아가는 들실장들과 다른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저것들에게는 더 이상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곳에서 살다가 죽으면 바깥의 다른 실장석이 잡혀와 자리를 메울
뿐, 번식도 시도해봤지만 에너지를 끝없이 위석에 빼앗기기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J시는 이제 도시 필요 전기에너지 110%를 이 실장석 발전소로 충족하고
있어. 내후년 정도면 전국으로 확대될 거야. 원자력처럼 위험하거나 화력처럼
환경오염이 있는 것도 아니니....어제 뉴스보니까 이 기술을 미국이나 일본에서
사가고 싶어한다더라구. 완전 실장석 혁명이야.“
“그렇군요....”

실장석 혁명, 그 단어를 곱씹으며 철수씨는 집으로 돌아간다.
바람에 날리는 전단지에는 [당신의 애완실장석을 집안의 피카츄로! 실장석 5마리면
에어컨 전기세 걱정 끝! 배변교육도 필요없어집니다! 임신 걱정도 없습니다!
완벽한 실장석을 위한 최고의 선택 –가정용 실장석 발전기-]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편의점에서 가벼운 안주와 술을 사서 나서자 저 멀리에서 초겨울의 차가움에 견디지
못하고 탁아라도 시도하려는 것인지 자실장 몇 마리와 함께 서성이는 실장석들이
보였다. 
녀석의 텅 빈 비닐봉투는 초겨울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극과 고통과 망상일지라도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저 녀석들이 행복한걸까.
아니면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안주할 땅과 평화를 찾은 발전소의 그
녀석들이 행복한걸까.

열이면 열, 너 그걸로는 밥 못 벌어먹는 다는 말에 죽도록 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고 대신 누구나 부러워할 직장에 안착한 자신은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발전소의 실장석도, 공원의 실장석도.
물론, 철수씨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