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속








낙서 짤방 모음






뒤쪽




공원을 걷는 도중,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사육실장을 보았다.
주인은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었지만, 사육실장은 평범하지 않았다. 엉망이었다.
프릴이 잔뜩 달린 화려한 핑크색의 사육실장복, 디자인이나 색이나 모두 그 사육실장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무심코 욕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가터벨트에 망사스타킹. 그리고 무엇보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비웃는 그 눈.

말이 필요 없다. 전형적인 분충 사육실장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사육실장을 어떻게 기르던 자기 맘이지만, 사육주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녀석을 기르는 걸까? 아마 저 사육실장은 주인을 주인으로 생각지 않을 것이다. 노예로 생각할 것이다.

"뎃푸푸푸!! 뎃승!!!"

"데기이이이이......!!"

"데에에에..."

사육실장은 근처에 있는 들실장에게도 연신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코디를 하고, 노예의 비호를 받으며, 천한 동족들 앞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영광스러운 행차, 사육실장은 지금의 산책을 그정도의 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던 나와 사육실장, 그리고 사육주의 거리가 가까워져 스쳐가게 되었다.

'응..?'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무언가를 본듯한....








'푸흡..!!!!'

사육실장의 몸 뒷면은 알몸이었다
하늘하늘한 실장복도, 화려한 액세서리도 모두 앞부분만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 그것을 끈이나 테이프로 대충 몸에 묶었을 뿐이다.
어찌 된 건지 뒷머리도 뽑혀있다. 사육실장에게 진짜 의복은 신발밖에는 없다.

확실하다. 사육주는 애오파 따위가 아니다. 학대파일 것이다.
아마 네무리로 재우던가, 콘페이토 따위를 주어 정신못차리게 하고는 머리를 뽑고 저 화려한 가짜 옷을 입혔겠지.
자기 몸의 앞부분밖에 볼 수 없는 실장석은 뒷면이 텅 빈 가짜라는 것도 인식 못한 채 뒷면 독라가 되어 의기양양하게 산책을 나왔을 테고.
그렇다고 해도 정말 우둔한 생물이다. 아무리 눈으로 뒷쪽을 보지 못한다 해도 이상한 느낌은 있을텐데. 아니, 어쩌면 행복회로 때문에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데뿌뿌뿌뿌뿌!!!"

"데햐햐햐햐햐햐!!!!"

주변의 들실장들도 사육실장의 뒷면 독라 모습을 보고는 역으로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사육실장은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비웃는 들실장들에게 소리를 지르지만, 어째서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는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육주는 그런 사육실장의 모습을 핸드폰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아마도 나중에 정신적 학대에 써먹을 생각이겠지.

'저녀석, 오래 살지 못하겠구만.....'

자기 주인이 학대파인 것도 모른 채 노예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사육실장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건방진 녀석이 학대를 당할걸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저녁에는 실장 불고기나 사먹어야 겠다.









눈사람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곧 겨울이 오겠지요.
겨울이 되면 눈이 오고, 그 아래에서 아이들은 뛰어놀 것입니다. 뛰어다니며 서로 눈싸움을 하고, 이리저리 뭉쳐 모양을 만들고, 썰매를 타고, 그리고 눈사람을 만들겠지요.

눈사람은 겨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겨울을 표현하는 그림에는 으레 들어가있기 마련이죠.
또 그만큼 즐거운 놀이이기도 합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눈덩이를 크게 굴리고,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어가며 눈사람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은 어른들에게 있어서도 순수한 시절의 동심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눈이 언제나 크게 쌓일만큼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후상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대개 신발 밑창에 깔릴 정도만 오고 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럴때는 실장석을 이용하여 '눈실장'을 만들어 봅시다.

실장석을 구하는 방법까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요. 공원에 가서 '사육실장이 될 놈 선착순 단 1마리!' 라고 외치기만 해도 수십마리는 튀어나올 겁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라잡읍시다.

잡은 실장석은 일단 도돈파를 먹여 똥빼기를 하거나, 반대로 역도돈파를 먹여 똥을 싸지 못하도록 막아둡시다. 실장석을 다룰때의 기본석인 유의사항이죠.

그 다음에는 팔다리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합시다. 노끈이나 테이프를 사용해도 좋고, 둥글게 말린 실장석의 뒷머리를 풀어 팔다리를 묶어두면 머리가 뽑힐까 무서워 얌전해지기 때문에 편합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실장석을 핵으로 삼아 몸에 눈을 붙여가며 눈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갑시다. 실장석이 몸부림치다 눈덩이가 부서지는 일이 없도록, 꾹꾹 눌러 단단하게 모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실장석이 갑작스런 쇼크나 저체온에 동사하지 않도록 미리 실장활성제를 먹이거나 위석을 적출하어 활성제에 담가놓는 조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실장석이 대부분의 부피를 차지하게 되므로, 적은 양의 눈으로도 충분히 큰 눈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장석의 처절한 모습을 보며 들기는 것은 덤이죠.

"테치!! 테치이!!!"

"테텟!! 테츄!"

이런, 자실장들이군요. 아마도 눈사람이 된 실장석의 새끼들인듯 합니다. 린갈을 켜고 들어보니 '마마를 풀어주는 테치!' 라고 하는군요.

이 자실장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여러분들의 창의력에 달려 있습니다. 어미와 똑같은 꼴로 만들어 친자 눈실장을 만들수도 있고, 나뭇가지를 꽂아 만든 눈실장의 양손 끝에 매달아 겨울바람 지옥을 맛보여줄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지요.

"너희 마마는 못난 분충이라 벌을 받는 거란다. 고귀하고 세레브한 너희들에게 저런 마마는 필요 없어, 여기 콘페이토 받으렴"

"치프프, 그런 테치, 똥마마인 테치."

"꼴 좋은 테치, 이거나 받으라는 테치!!"

몇마디의 말과 콘페이토 한알로 자실장들은 훌륭한 분충이 되었습니다. 어미에게 똥을 던지기 시작하는군요.

"데에에에엥.....데에에엥.....데에에에에에에엥"

눈사람이 된 친실장이 적록의 눈에서 색깔 있는 눈물을 철철 흘리기 시작합니다. 하얀 눈사람이 적록의 컬러풀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군요.

친실장은 동상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 소중히 키워온 새끼들이 덜떨어진 분충이었다는 것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 이대로 놓아두면 얼마 못가 파킨하겠네요. 친실장에게 약간의 희망을 줍시다.

"네가 죽지 않고 내일까지 버티면 무사히 돌려보내주곘다고 약속하지, 덤으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따뜻한 모포와 실장푸드도 주마"

"데에! 데데데!! 뎃스웅!!"

엉터리 생물답게 희망이 돌아오니 창백해진 얼굴에 금새 혈기가 돌고 빛을 잃어가던 눈이 다시 적록으로 반짝이는군요. 객관적으로는 상황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물론, 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눈사람에 갇혀 새끼들의 욕설을 들어가며 지켜질리 없는 약속에 목숨을 거는 실장석, 재미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올 겨울, 눈실장을 만들며 겨울의 풍류와 실장석 학대를 같이 즐겨 보세요.
독라로 만들어 끝없는 절망을 안겨준 뒤 눈실장으로 만들어도 좋고, 은근히 희망을 남겨주어 이를 악물고 버티는 눈실장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친 눈실장 위에 자 눈실장을 얹어 2단 눈실장을 만드는것도 재미있지요.

모든것은 여러분의 창의력과 학대심에 달려 있습니다.






절망육



"자, 기상! 어서 일어나라!!"

"데이이......"

"데후으으으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을 알리는 인간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허름한 창고 안에서 낡은 모포며, 걸레나 다름없는 수건 따위를 덮고 자던 실장석들이 눈을 비비며 굼실굼실 깨어난다.
겉모습은 하나같이 민둥민둥한 독라, 귀에는 관리용의 ID태그, 오랜 노동으로 홀쭉해진 모습들. 전형적인 노동석들의 모습이다.

"빨리 움직여 이 똥벌레 새끼야!!"

"데갹!!!"

"이녀석은 왜 안 움직여?.......이런, 죽었잖아?? 젠장!!"

꾸물대던 녀석들이 걷어차이고, 밤새 죽은 실장석들의 시체가 인간들에 의해 난폭하게 붙잡혀 창고 밖으로 내던져진다. 그러나 그런 소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석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관심을 두지 않고 일렬로 서서 느릿느릿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도 노동석들은 멍한 눈동자로 그저 눈앞에 놓인 먹이를 기계적으로 입에 집어넣을 뿐이다.
먹이는 몇알의 실장푸드와 그보다 조금 더 큰 정체불명의 정육각형 젤리 하나. 애초에 기뻐하며 맛을 음미할만한 식단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식욕의 화신인 실장석의 식사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용하고 무기력하다.

식사가 끝날 때가 다가오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져 간다. 무기력함을 넘어 공포와 절망이 실장석들을 잠식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멈출 도리는 없다.

"식사 끝! 어서 모여라!!"

"데히익!!!"

"데에에에에엥!!!"

식당 출구가 열리며 인간의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곳곳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동 없이 실장석들이 질서정연하게 출구로 향하는 것은 노동석들의 위석에 폭력으로 각인된 기억이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리라.
실장석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울고, 몸을 떨면서도 한발한발 익숙한 그 길을 따라 공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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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1조 준비해라."

비명과 울음소리로 얼룩진 행군이 끝나고. 노동석들은 공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작업에 투입되지는 않는다. 이 공장에서는 매일 아침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실장석들을 공포에 젖게 만드는 최대의 원인이다.

"자, 이제 뿌린다. 눈 크게 떠라"

말을 마친 남자는 다리를 벌리고 줄지어 앉아있는 노동석들의 녹색 눈에 붉은 액체를 뿌렸다.
실장석의 생태에 대해 약간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테지만, 이렇게 되면 실장석은 강제출산 모드에 들어가 불과 수초간의 짧은 임신 후 곧바로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 물론 이곳의 노동석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액체를 맞은 1조 노동석들은 곧바로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다리 사이에 놓인 플라스틱 그릇에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

"텟테레~"

"텟테레~"

"렛치레~"

비록 수초만에 형성되어 세상으로 나온, 그래서 정상적인 임신기간을 거친 자실장들보다 훨씬 보잘것없고 멍청한 녀석들이지만 탄생의 기쁨을 알리는 소리는 우렁차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해 친실장, 즉 노동석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간다. 10분 후의 미래를 알지 못하고 방긋방긋 웃으며 점막을 떼내려 몸부림치는 아이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1조! 끝났으면 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서 일할 준비를 해라! 2조! 너희는 그릇 놓고 앉아서 준비해라!!!"

인간들은 강제출산을 마친 노동석들에게 조금의 쉴 시간도 주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발로 차며 윽박지른다.
강제출산으로 체력이 소모된 탓에 데히데히 가쁜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실장석들은, 그 소리에 놀라 간신히 무릎을 세워 일어나서는 갓 태어난 새끼들이 든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작업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동석들의 작업공간은 심플하다. 눈앞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고, 한쪽 옆에는 구멍이 뚫린 작은 탁자가 있을 뿐이다. 실장석들의 신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편히 앉아서 작업할 의자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줄 여유공간도 없다. 작업이 끝날때까지 실장석들은 오로지 서서 일해야 하며, 탁자에 슬쩍 기대는 것 외에는 피로를 덜 방법도 없다.

그 가혹한 작업장에 도착한 1조 노동석들은 탁자 위에 그릇을 내려놓고, 음울한 얼굴로 자실장들의 점막을 핥아서 벗기고 있다. 그것은 기념할만한 친자의 첫 스킨십, 일생일대의 기쁨의 순간이어야 하건만, 기쁜 얼굴로 테치테챠 떠드는 자실장들과 달리 어미의 표정은 굳어서 풀어질줄을 모른다.

"마마! 낳아줘서 감사한 테치! 앞으로 행복하게 사는 테치! 마마를 많이많이 돕는테치~"

"테프프, 못생긴 마마 테치, 독라인 테치, 얼른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세레브한 생활을 시켜주지 않고 뭐하는 테챳!!"

노동석들에게 첫 인사를 올리는 자실장들의 행동은 다양하다. 꾸벅꾸벅 인사하는 양충도 있고, 독라모습의 친실장을 비웃는 분충도 있다. 하지만 노동석들은 그런 자신의 자들을 공평하게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마 이상한테치....쓰담쓰담도 안해주는 테치....와타치가 뭔가를 잘못한 테치? 화난테치???"

"똥마마!! 빨리 콘페이토를 대령하는 테챠아!!! 쓸모없는 테치이이이!!!"

자실장들이 그런 친실장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때쯤, 큰 벨소리와 함께 공장 전체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실장석들의 눈앞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듯이, 노동석들은 자실장들을 하나씩 잡아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뽑는다. 분충이건 양충이건 관계 없다. 자실장의 성품은 이 공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마마! 왜 이러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테히....테히....."

순식간에 공장은 자실장들의 울음과 비명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석들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굳게 입을 다물고, 눈에 힘을 주고, 손을 들어 자실장들을 내려친다.

"테갹!! 테히!!"

"테에에엥!!! 테챠아아아앗!!!"

갓 태어난 연약한 자실장들은 친실장의 구타에 몸이 멍들고, 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한다. 하지만 간신히 죽음만은 면해 가늘게 테히테히 새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전신이 박살난 자실장들은 '왜 마마는 와타치를 때리는거야?' '와타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라고, 작은 뇌를 굴려 생각해 보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노동석들은 그렇게 '고뇌하는 고깃덩이'가 된 자실장들을 하나하나씩 컨베이어 벨트에 내려놓는다. 사지가 비틀리고 허리가 꺾여 기괴한 모습이 된 자실장들이, 원망의 눈으로 친실장을 응시하며 벨트에 실려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져간다.

친실장인 노동석들도 장막 속으로 사라져가는 자실장들을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한 가운데 무언가가 터져나올듯한 긴박감이 얼굴에 깃들어 있다. 그 모습을 공장 직원 외에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실장석의 얼굴에서 그렇게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떠나보낸 아이들의 머리털과 옷을 손에 쥐고 잠시 온기를 느끼던 노동석들은 자신을 다잡고 그것을 탁자에 뚫린 구멍에 버렸다. 자실장들을 모두 떠나보냈지만, 실장석들의 일과는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컨베이어 벨트 저편에서 다른 구역의 출산석들이 낳은 아이들이 온다. 그 아이들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아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보내는 것, 말하자면 독라만들기가 이곳의 노동석들에게 주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처지는 노동석의 아이들보다는 한층 낫다. 독라가 될지언정, 적어도 친실장에게 온몸이 짓이겨지지는 않으니까.

인간은 노동석들에게 '네놈들의 새끼는 네놈들의 손으로 으깨서 벨트에 놓아라, 출산석들의 새끼는 독라만 만들어서 내놓아라'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유를 안다고 해도 실장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불공평하다며 울부짖던 몇몇이 본보기로 쳐형당한 이후, 노동석들은 모든걸 체념하고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매일같이 아이들을 독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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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반,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다.

노동석들에게 인간기준의 24시간이란 시간개념은 없지만, 오래도록 패턴화된 생활을 해온 덕분에 실장석들은 오전의 일과가 끝나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쓰러지지 않도록 기력을 짜내고 있다.

사건은 그때 벌어졌다.

"더이상은 못하겠는 데스으우우우우우우!!!!"

어딘가에서 비통한 울부짖음이 터져나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저앉아 땅바닥을 치며 적록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왜 이래야 하는 데스!! 너무 괴로운 데스!!! 이제 아이들에게 슬픈일을 하는 것도 지친데스!! 차라리 죽여주는 데스우우우우!!!!"

아아, 또 나왔구나. 노동석들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쉰다.
일주일에 한마리 정도는 저런 녀석이 나온다. 노동의 양도, 내용도 가혹하니만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렇게 난동을 부린 이상 그 실장석의 최후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데스데스데스 씨끄럽네, 이리 와 이자식아."

감시역의 젊은 공장직원이 말썽을 일으킨 노동석의 귀를 잡아 올렸다. 노동석은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 한층 눈물콧물을 뿜어내며 버둥거리지만, 그래 봐야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아픔만 더할 뿐이다. 총배설구의 근육도 어느새 풀려 운치가 부릿부릿 흘러내린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익숙한 듯이, 직원은 운치가 자신에게 튀지 않도록 노동석을 멀찍이 들고는 작업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간 작업장에 적막이 흐른다. 반복되지만 익숙해질수는 없는 풍경이다. 고통스러운 노동석의 삶 속에서 정신은 한계에 달해 동료의식이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의, 언젠가는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동료의 최후를 보며 노동석들은 잠시 회한에 빠졌다.

직원은 난동을 부린 실장석을 들고 작업장 건물을 나와 공장 부지 한구석에 있는 작은 건물로 향했다.
아무리 청결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수십 수백마리의 실장석이 모여있는 만큼 상당한 실장취가 나는 작업장에 비하면 맑은 공기가 감돌고, 살풍경한 기계 대신 사무용 가구와 컴퓨터, 진료대 따위가 놓여 있어 오래된 병원같은 인상을 풍기는 건물이다.

"반장님~샘플 가져왔어요~"

힘차게 문을 열며 밀어닥친 직원이 꾸벅 인사하고는 말했다. 반장이라 불린 중년의 남자는 보고 있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되묻는다.

"어디의 몇조?"

"C동 1조요."

"여기 두고 가봐."

젊은 직원은 옙, 하고는 노동석을 빈 수조에 내려놓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목으로만 가볍게 인사한 뒤 문을 나섰다.

'여긴 어디인 데스.....와타시는 어떻게 되는 데스우......"

수조에 갇힌 노동석은 난생 처음 와보는 건물의 벽이나 천장을 쳐다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
실장석답게 행복회로가 발동하여 '옷과 머리를 되찾고 사육실장이 되어 행복하게 될지도 모르는데스!' 라는 생각이 위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동안 노동석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비참한 기억들은 그런 형편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어 행복회로를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어차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석들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수조 안의 독라 노동석은 그리 길지 않은 실장생에서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 보자. 흠흠"

그러는 사이에 반장이라는 남자는 서류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동석이 들어 있는 수조로 다가왔다. 짧은 키에 튀어나온 배, 반쯤 벗겨진 머리, 농담으로라도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나 간신히 프로다운 풍모를 유지시켜주고 있다.

"음.....이정도면 나쁘지 않군.....색도....근밀도도....음, 꽤 좋아."

반장은 노동석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노동석은 반장의 거친 손길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때때로 그 손길이 민감한 곳을 향할 때마다 성적 쾌감을 느끼고 있다.

"뎃! 데훙!! 데우우우웅~~♡"

공장의 다른 구역에서 출산석의 새끼로 태어나 평생 인간을 위한 노동만을 해온 그녀에겐 처음 맛보는 강렬한 쾌감이다. 그리고 그 쾌감은 쉽게도 노동석의 정신무장을 해제하고, 행복회로가 만들어낸 망상이 뇌에 자리잡도록 도움을 준다.

'설마...와타시를 신부로 삼는 데스?? 사육실장이 아니라 신부로??? 그래서 아이를 잘 낳을수 있는 몸인가 만져보는 데스???'

약간의 상황변화가 일어나자 행복회로는 멈출줄 모르고 맹렬히 타오른다. 방금 전까지 훌륭히 억제하고 있었던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지금까지의 불행한 삶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끝을 모르고 나아간다.

"나....남펴....아니 닌겐상.....와타시는 이제 어떻게 되는 데스우??"

반장의 손놀림이 멈추자 노동석이 묻는다. 다리를 살짝 꼬고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돌린 그 모습은 이미 노동석의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신부가 된다는 망상에 빠진 분충의 얼굴이다. 지금의 질문도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것이 아니다. 이미 머릿속에서 확정된 장미빛 미래를 확인받고자 일부러 떠보는 것이다.

하지만 반장의 대답은, 노동석이 상정한 것과는 크게, 너무나도 크게 어긋나 있었다.

"인간에게 먹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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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의 고기는 스트레스를 주면 줄수록 맛있어진다.
특별히 대단한 지식은 아니다. 자취하는 대학생조차 알고 있을 만한, 자기 손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상식이다.

규격화된 실장육은 대개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 좀 더 정확하게는, 푹 익혀 부들부들해진 돼지고기의 식감에 닭고기의 담백한 맛이 함께한다고 표현할수 있다. 이렇게 익숙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면서도 가격은 한결 싸다는 것이 실장육의 장점으로, 보통 실장육 하면 이 맛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신과 육체의 상태에 따라 고기의 맛이 천차만별으로 변하는 실장석은 요리사와 미식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고,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실장석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망육이라 부르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오랜 기간, 최소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상당한 강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은 실장석의 고기는 체내의 아미노산이 스트레스에 의한 변이를 일으켜 일반적인 실장육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내게 되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특정한 성분이 담긴 먹이를 먹여 키움으로서 풍미를 더하고 운동으로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하면 흔히 '절망육'이라 불리는 실장육이 만들어진다.

절망육의 맛 자체는 대중적이라 할 수 없다. 삭힌 홍어와 비슷하게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에 산초와 같이 아린 맛, 지방이 제거되어 실장육 특유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질긴 식감. 일견 값싼 보통 실장육에 비해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절망육을 사랑하는 소수의 매니아들은 바로 그 점에 절망육의 진가가 있다고 말한다. 얼굴을 돌리고 싶게 만드는 지독한 첫 맛은 그야말로 실장석의 일생 그 자체이며, 충분히 씹고 목으로 넘길때 느껴지는 약간의 달큰한 뒷 맛은 지독한 절망속에서도 실장석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던 희망, 행복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묘한 중독성이 있는 맛과 실장석의 일생 자체가 응축되어 있다는 철학적 상징성 덕분인지, 절망육 요리는 당당히 미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다는데 있다.

6개월 이상의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가하면서도 파킨사시켜서는 안된다. 육체가 파괴되면 재생되는 과정에서 변이된 아미노산도 원래대로 복구되므로 육체재생을 일으키는 중대한 외상을 입혀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한 운동으로 지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복잡한 조건이 얽히고설켜 있다.

따라서 절망육 등장 초기에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여겨졌고,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학대사나 고급 실장육업자에게 따로 주문을 넣어 만들어야 했으며, 한마리의 절망육 실장석을 만드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내는 법, 각고의 노력 끝에 노동석으로 절망육을 만드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노동석들이란 대개 규칙적인 생활과 강도높은 노동 덕분에 들실장이나 사육실장에 비해 지방질이 적은,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이런 몸은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절망육에 있어서는 오히려 좋은 조건이라고 할 만 하다.

여기에 더해 지방질을 한층 더 감소시키고,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선택된 방법이 강제출산이다. 정상적인 임신과는 달리 강제출산 은 태아실장의 급격한 형성과, 출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열량이 높은 지방을 최우선적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꾸준히 강제출산을 시킴으로서 실장석의 지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강제출산은 실장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어 절망감을 심어주는데도 이용된다.
녹색 눈을 적색으로 물들이는 형태의 강제출산은 그 자체로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폭력적이고, 신체에 무리를 주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여기에 더해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직접 독라로 만들고 짓이겨서 내놓으라는 명령은 노동석들의 정신을 극한으로 내몬다.

그리고 차별, 노동석들의 아이들과는 달리 출산석들이 낳는 자실장들은 독라가 될 뿐, 짓이겨지지는 않는다. 그런 차별이 노동석들을 더욱 괴롭게 한다. 똑같은 아이인데, 아니, 내 아이가 더 귀여운데 어째서 이쪽만 그렇게 끔찍한 꼴을 당해야 하는가. 부조리한 현실에 노동석들은 속을 태우지만 인간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내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끔찍하게 죽일 뿐.

하지만 노동석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이곳은 식용 실장 공장이다.
짓이겨진 노동석들의 새끼도, 멀쩡한 출산석들의 새끼도, 결국에는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형태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석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이 겪는 가혹한 노동과 끔찍한 체험은 실장석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함과 동시에 절망육을 숙성시킴으로서 절망육의 대량생산과 코스트 다운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악마적인 지혜가 만들어낸 절묘한 서커스 쇼와 같다. 노동석들은 원치 않는 쇼의 주인공이 되어 평생을 비탄과 절망속에서 살다 결국 먼저 떠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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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네 친구들은 바로 그 절망육용 노동석이란 말씀."

"데.....데데데......"

반장이 들려준 지나치게 가혹한 진실에 노동석은 뭐라 대꾸할 말조차 잊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충격으로 위석이 자괴할만도 하지만, 매일 아침 먹는 젤리에 들어있는 위석강화성분이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

"너희 1조는 이제 딱 한살이지? 성체가 되기까지 6개월, 그 후 노동석으로 일한게 6개월. 아주 좋아. 맛이 딱 좋을 때지."

"데히......."

"네 친구들은 며칠 내로 세척과 똥빼기를 한 다음에 진공포장해서 전국의 음식점으로 보내질거야. 그리고 산채로 육회가 되어 먹히는거지. 아니면 가볍게 익혀서 소스와 함께 먹는것도 좋고."

능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반장이 끔찍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노동석은 자기가 아닌, '친구들'이 먹히게 된다는 이야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행복회로를 돌려보지만, 그것은 이내 깨지게 된다.

"너는 좀 별개야. 아까 남편상이니 뭐니 하면서 역겨운 포즈로 몸을 꼬았지? 너같이 아직 행복회로를 돌릴만한 기력이 남은 놈들은 좀 더 '숙성'시키면 아주 깊은 맛이 나거든. 너는 내가 맡아서 더 숙성시킬거야. 그리고 아마 최고급 호텔에 납품되어 일류 셰프에게 요리될거고. 아마 먹는 사람도 대단한 부자일걸?"

"데...데.....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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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의 소동이 지나간 작업장은 다시 분주한 모습이다. 노동석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닫고 있어 독라가 되는 자실장들의 울음소리와 기계의 육중한 구동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끝없이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다잡고 있다. 며칠 후면 모두 인간에게 먹힐 자신들의 운명을 모르고서.

'오늘도 살아가는 데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는 데스'







무서운 집


늦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한낮의 햇살은 따갑다. 열에 약한 실장석의 피부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친실장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곧 가을이 된다. 먹을 것이 풍족해지는 계절이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보존식을 모으고, 골판지 하우스를 보강하고, 방한용 신문지나 수건 따위를 구하고, 보존식 창고 겸 월동굴을 하나쯤 파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따위는 없다. 아니, 오히려 상황에 따라선 자실장이라 하더라도 먹이 수집에 나서거나 낙엽 따위를 주워 골판지 하우스 바닥에 까는 일을 해야 한다. 가을 이후로는 자실장들도 본격적으로 생존경쟁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여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살아남을 확률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장석에게는 그것도 녹록한 일이 아니다. 어설픈 손과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린 그림은 도통 알아보기 힘들고, 지식은 있지만 그것을 조리있게 풀어낼 지능은 없는 친실장의 입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중언부언, 산발적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알겠는 데스? 이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하는 데스."

"네~테치"
"알겠테치!"
"어려운 레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실장의 열의에 답하듯 아이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진지한 자세로 배움에 임했고, 같은 이야기를 몇번씩 들어가며 그럭저럭 지식을 흡수해 나갔다.

하지만, 장녀만큼은 동생들과 달리 멀찍이 떨어져서 심드렁한 얼굴로 어미를 바라보고 있다. 장녀가 어미의 말을 거역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아 한번에 어미의 가르침을 모두 기억했기 때문에 더이상은 같은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 집은 아주아주 무서운 집 데스, 그곳에 들어간 실장석들은 모~두 끔찍하게 죽은 데스.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되는 데스."

"테히이......"
"테에엥! 무서운 테치!!"
"레에에에에......"

친실장이 오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공원 한켠에 있는 '무서운 집'에 관한 것이다. 그 집은 넓고, 튼튼하고, 편리한 도구마저 갖추어져 있지만, 어쩐지 그 집을 차지한 이들은 모두 참혹하게 죽어갔다. 친실장은 아이들이 독립할 때 혹시라도 그 집에 욕심을 내어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절대로 그 집에는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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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집의 첫번째 주인은 떠돌이 거대 마라실장이었다. 압도적인 체격과 완력을 가진 그는 어느날 홀연히 공원에 나타나 실력자들을 때려눕히고 공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곧이어 거대 마라실장은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강대한 완력을 지닌 거대 마라실장이라도 골판지 이외의 재료로 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였지만 골판지 하우스라도 그 크기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공원 밖으로 나가 냉장고를 포장하던 엄청난 크기의 골판지 상자를 들고 온 것이다.

거대 마라실장은 폐쇄된 등산로 근처의 낡은 화장실 뒷편에 그 거대한 골판지 상자를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은, 본채라고 할 수 있는 냉장고 상자 외에 별채인 보통 크기의 골판지 하우스와 전속 독라노예의 숙소, 거기에 공물창고까지 딸린 호화 저택이었다.

거대 마라실장은 이 호화 저택에 기거하며 공원을 공포로 다스렸다. 조금이라도 성미에 거슬리면 때려 죽이고, 자실장마저 성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폭주는 오래가지 않았다. 왕노릇을 하며 교만해진 거대 마라실장은 겁도 없이 산책하던 사육실장을 주인의 눈 앞에서 범하고는, 그 주인까지 덮치려 했다.

결과는 뻔했다. 최강의 실장석이라 해도, 인간 중에서는 약한 부류에 들어가는 10대 소녀조차 이기지 못한다. 거대 마라실장은 분노한 소녀의 손에 독라가 되고, 곧이어 마라가 뜯겨서 죽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공원의 들실장들은 폭군이 사라졌다는 기쁨과, 그 강력한 폭군을 너무나도 쉽게 제압하는 인간의 무서움에 웃으면서 울고, 빵콘했다.

두번째로 그 집을 차지한 것은 탁아왕이라고 불리는 실장석이었다. 기이하게 생긴 팔로 완벽하게 탁아를 성공시켜 주는 그녀는 이전의 폭군과는 달리 많은 실장석들의 존경을 받았고. 덕분에 폭군의 저택을 물려받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탁아왕의 팔이 망가졌다. 더이상은 탁아를 성공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수많은 자실장들이 인간의 가방이나 비닐봉투에 안착하여 사육실장으로의 새 삶을 시작하는 대신, 차가운 땅바닥에 내던져져 적록의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물론 탁아가 성공한다고 사육실장이 될 리가 없다. 분노한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탁아왕의 팔을 망가뜨린 것도 탁아 피해에 분노하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뒷편에 인간의 개입이 있음을 알 리 없는 친실장들은 아이를 잃고 사육실장이 되는 길이 막혀버린데 분노하여 탁아왕과 그녀의 아이들을 독라달마로 만들어 지독한 고문을 가하여 죽이고, 저택은 약탈하여 폐허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저택을 차지한 실장석은 안경을 쓴 실장석이었다. 이미 저택은 폐허가 된 데다가 전 주인들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불길한 괴담까지 덧붙여져 있어 실장석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는 곳이 되었지만, 안경 실장은 그에 개의치 않았다.

안경 실장이 폐저택을 차지한 이후 폐저택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더더욱 기이한 기운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문틈으로는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때때로 실장석의 비명과 함께 광기어린 웃음도 새어나오곤 했다. 공원 이곳 저곳에서 의문의 실장석 실종사건이 발생했고, 그 실장석들은 폐저택에서 안경 실장에 의해 실험체로 쓰인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때까지 폐저택 근처에서 살던 실장석들도 결국 공포심에 사로잡혀 하나 둘 이사를 가기 시작했고, 넓은 공터에 덩그라니 남겨진 거대한 저택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침내 폐저택의 주인이던 안경 실장마저 미쳐버린 모습으로 저택을 떠났다.
한때 총명함으로 빛나던 매서운 눈은 탁한 유리구슬처럼 되어 좌우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그 눈 위에 씌어진 안경은 금이 가고 깨져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다른 실장석들을 기만하고 업신여기던 소리가 나오던 입에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병자의 중얼거림만이 들려왔다. 옷과 머리는 이미 사라져 몸은 이미 민둥민둥한 독라의 모습이다.
안경 실장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했다. 일생을 건 실험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것이 자해로 발전하며 미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다른 실장석들이 알 수는 없는 것이었고. 그녀들은 안경 실장이 미친 것은 저주받은 집에 들어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제 폐저택은 그 어느 실장석도 접근하려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친실장들은 아이들에게 그곳은 저주받은, 무서운 곳이니 절대 가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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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었다.
꽃망울이 하나 둘 터져나올 무렵. 겨울나기에 성공해 성체가 된 두마리의 실장석이 어미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기의 가족을 만들기 위해 정들었던 골판지 하우스를 떠나려 하고 있다.

살아남은 것은 지난 여름 그 누구보다 어미의 말을 열심히 귀담아 들은 삼녀와 어미의 말을 한번에 기억했던 장녀다. 나머지 셋은 겨울의 끝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마마....몸 조심 하는 테스, 자주 놀러오는 테스우....."

아직 완전히 성체의 목소리가 되지 않은 삼녀가 눈시울을 붉히며 어미의 손을 꽉 잡는다.
홀로서기는 슬프고 힘든 과정이다.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실장석에게는 더욱 그렇다. 헤어지기 싫은것도 당연지사다. 삼녀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장녀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한참동안 어미의 손을 잡고 머뭇거리다 마침내 장녀의 손에 뒷머리가 붙잡히고 나서야 어미의 손을 놓고 독립을 위한 여행길에 올랐다.

"오네챠, 우리 서로 도우면서 재미있게 사는 테스, 아이도 같이 나아 구별없이 키우는 테스~ 소풍도 가고 물놀이도 하는 테스~ 분명 행복할 것인 테스!"

묵묵히 길을 걷는 장녀에게 삼녀가 말을 걸어 보지만, 장녀는 까불거리는 동생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녀가 입을 연 것은, 옛 집을 떠나 한시간쯤 되었을 무렵, 갈림길에서였다.

"이제 오마에와는 작별인 데스. 와타시는 이 길로 가는 데스."

"테에에에에에!!!????"

독립을 위한 여행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미 일주일쯤 전부터 자매는 어미와 함께 공원을 돌며 정착할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조금 좁지만, 풀숲의 안쪽에 있어 인간이 접근하기 어렵고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 식량걱정이 덜한 곳이다. 단점이 있다면 출산장, 즉 공중화장실과의 거리가 멀고 물을 구하기 조금 힘들다는 정도.

하지만 벤치 밑에서 살아가는 독라도 있는 마당에 이정도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모든것은 어미가 독립하는 자들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발품을 팔아 공원을 돌아다닌 덕분이다.

그런데 장녀는 어미가 마련해준 집터로 가는 길이 아닌, 전혀 엉뚱한 길로 가려 하고 있다. 삼녀가 깜짝 놀라 운치를 조금 지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무....무슨 소리인 테스?!! 와타시타치가 갈 곳은 거기가 아닌테스!"

"알고 있는 데스, 하지만 거기에는 가지 않는 데스, 와타시는 '그 집'에 가는 데스."

그 집, 이라는 단어를 듣고 삼녀는 잠깐 혼란에 빠졌지만, 곧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장녀가 가리킨 길로 가면 나오는 것은 그 '무서운 집'이다. 장녀는 무서운 집에 가겠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안돼는 테스! 안돼는 테스! 마마가 말한걸 잊은 테스?!! 거기 가면 죽는 테스!!!!"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길을 막는 동생을 보고, 장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집에 가지 않는다고 안 죽는 데스?"

"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동생을 보며, 장녀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자매들도 와타시와 오마에를 빼고는 모두 죽은 데스, 오녀를 기억하는 데스??"

엄지실장이었던 오녀는 인간의 발에 밟혀 죽었다. 오녀에게 무언가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도 악의는 없었다. 그저 너무 작아서, 길을 건너는 오녀를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았을 뿐이다. 가족들은 길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보며 숨을 죽인채 울었다.

"사녀는 어떤 데스? 정말 착한 아이였던 데스."

사녀는 머리가 조금 나쁘지만 자매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착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가족을 도우려 했다. 그래서 죽었다.
가을 무렵, 어미가 먹이를 모으러 나간 사이 조금이라도 마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며 집 밖으로 나가 낙엽을 모으다 까마귀에게 채여간 것이다. 사녀가 남긴 것은 날아가는 도중 빵콘의 충격으로 벗겨져 떨어진 낡은 팬티 뿐이었다.

"차녀도 죽은 데스, 차녀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데스??"

차녀는 약간 분충성이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허용범위 내의, 친실장이 훈육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분충성이었고, 그 울타리 안에서 차녀는 그저 조금 짖궂은 아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늦가을의 어느 날, 인간이 손을 댄 이후로 모든것이 달라졌다.
단 하루, 인간의 집에서 꿈과 같은 호화생활을 맛본 차녀는 통제불가능한 분충이 되어서 돌아왔고, 빈곤한 들실장의 삶을 저주하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곧 겨울이다. 생존만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기가 온다. 그런 때 이런 자가 가족 내에 있으면 단순한 소동에서 끝나지 않고 일가실각의 위기가 찾아온다.

결국 친실장은 자신의 손으로 슬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이 일가에게 비극을 안겨주기 위한, 학대파라 불리는 인간의 악의가 빚어낸 사건이었다.

"테.....테에에에......."

삼녀는 할 말이 없었다. 장녀의 말대로였다. 그 집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마마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자매들은 결코 그 집에 가까이 간 적이 없음에도 모두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

"실장생은 가혹한데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스,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데스. 집 때문에 죽고 사는게 아닌 데스."

평소에는 과묵하던 장녀가 오늘은 말의 홍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저주받은 집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실장생이란 본래 가혹한 것이기에 '무서운 집'의 옛 주인들도 한순간의 실수, 혹은 욕심으로 죽음을 맞았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실장석 치고는 나름대로 논리가 서 있는 주장이었다.

삼녀는 평소답지 않은 장녀의 그런 모습에 기가 눌려 변변한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한바탕 일장연설을 끝낸 장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와타시는 기왕이면 큰 집에서 살 것인 데스, 내일을 모르는 실장생인데 헛된 이야기가 무서워서 그 큰 집을 버려두는건 멍청한 짓인 데스."

말을 마친 장녀는 다시 몸을 추스리고, 등을 돌려 갈림길로 아장아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삼녀는 손을 뻗어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장녀의 작별인사가 들려왔다.

"잘 있는 데스, 행복하게 사는 데스. 와타시는 죽으러 가는게 아닌 데스, 와타시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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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후 일주일간은 삼녀에게 있어 일생에서 가장 보람찬 시간이었다.
비록 어미가 구해준 것이긴 하지만 깨끗한 새 골판지 상자로 자신만의 집을 만들었다.
이튿날 처음으로 쓰레기장에 나가 먹이를 구할 때, 운 좋게도 깨끗한 패트병을 얻었다. 삼녀는 독립 직후부터 이런 운이 따르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삼일째 되던 날에는 드디어 목소리가 성체실장의 그것으로 변했다.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에, 삼녀는 자축의 의미로 독립할때 마마로부터 받은 콘페이토를 한 알 먹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이 응축된 듯한 맛이었다.

오일째 되던 날에는 마마를 만나러 갔다. 옛 집도, 마마도, 떠날때의 그모습 그대로 있어 기뻤다.
서로 실없는 잡담을 나누고, 밥을 먹고, 마마에게 생활의 지혜를 몇개 더 배웠다. 따끈따끈한 행복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삼녀는 다음번에 올때는 손녀들을 낳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옛 집을 나섰다.

아이를 낳으면 이제 어느 일가의 삼녀가 아닌, 친실장으로서 새로운 일가의 가장이 된다. 삼녀는 자기의 발치에 올망졸망 모여서 테치테치거리는 미래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고 기뻐할 마마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상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장녀가 마마를 찾아오지 않았다는데서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을 완전히 지울수는 없었다.

일주일째 되던 날, 삼녀는 장녀를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마마는 '무서운 집'에는 절대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엔 장녀 오네챠가 있다. 어느쪽을 우선해야 할까. 삼녀는 한참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장녀에게 찾아가 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집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는 데스, 그냥 밖에서 장녀 오네챠가 잘 있는지만 보고 빨리 돌아오는 데스'

그렇게 하면 마마의 말도 어기지 않고, 장녀의 상황도 확인할수 있을것이다. 삼녀는 그렇게 믿고 집을 나섰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삼녀는 장녀와 헤어졌던 그 갈림길 앞에 섰다. 이 길을 따라가면 그 '무서운 집'이 나온다. 삼녀는 잠시 길을 바라보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침내 발을 내딛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삼녀는 생각보다 오래 걸어야 했다. 그것은 실제로 갈림길과 '무서운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이기도 하고, 삼녀의 조급한 마음이 빚어낸 착각이기도 했다. 길은 삼녀의 등줄기에 땀이 흐를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길을 빠져나온 삼녀의 눈에 거대한 저택이 보이고, 그를 둘러싸듯이 늘어선 나무들이 보였다.
나무에는 열매가 열려 있다. 녹색의 열매, 아니,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장녀의 머리였다.





뒷머리카락을 나뭇가지에 묶어 매달아놓은 장녀의 머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몸은 머리와 분리되어 그 아래에 넘어져 있다. 절단된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이미 끈적하게 굳었고, 부풀어오른 팬티에서 새어나온 똥은 썩어가고 있다.

"뎃....."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된다. 위석을 차가운 금속에 갖다 댄듯한 섬뜩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곧이어 위석이 불타오르는 감각과 함께 심장이 터져나갈듯이 격렬하게 맥박친다. 삼녀는 뜨거워진 위석에 깜짝 놀라 제정신을 차렸고, 그제서야 장녀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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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삼녀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울부짖으며 '무서운 집'에서 도망쳐 나오느라 옷은 눈물로 얼룩졌고 팬티는 빵콘으로 불룩해졌다. 나뭇가지에 걸린 뒷머리를 억지로 뽑으며 도망쳐 나와 소중한 머리카락이 꽤나 뜯겨나갔다. 넘어지고 굴러 여기저기가 까지고 흙으로 더러워졌다. 하지만 삼녀는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괴담은 현실이 되었다. 무서운 집은 오네챠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그러니까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왜 그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삼녀는 장녀가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헤어질때 해야 할 말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장녀를 놓아줘 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또한 밀려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네챠를 잡아야 했다. 그랬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 부질없는 고민이다. 죽은 실장석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로롱......오로로롱......."

삼녀는 밤새워 울었다.
이튿날, 삼녀는 다시 집을 나섰다.

'오네챠가 너무 불쌍한데스.....적어도 좋은 곳에 묻어주고 싶은 데스우.....'

가족에 대한 연민이 공포심을 극복했다. 굳건한 마음을 가진 삼녀의 눈은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다.
다시 장녀의 시체 앞에 섰을때도 더이상 떨지 않았다. 삼녀는 부패의 조짐이 보이는 장녀의 목 없는 몸통을 수습하여, 수풀 한켠에 고이 눕혀놓았다.

하지만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려있는 장녀의 머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검은 눈물을 흘리며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눈을 감겨주고 싶은데 실장석의 키로는 닿지 않고, 둔한 실장석의 손발로는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없다.

장녀의 머리는 어쩌다 저런곳에 걸리게 된 걸까. 실장석의 짓이 아님은 명백해 보였다. 고양이나 까마귀의 짓일까? 그것들이라면 실장석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그저 목만 잘라서 내던져둘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범인은.......

"어, 뭐야 실장석이잖아."

"데히이이이이이이익!!!!!!"

삼녀가 마음속으로 '학대파 닌겐'을 범인으로 꼽고 있을때, 마치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듯이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녀는 기겁하여 뒤로 나동그라지며 크게 빵콘하고는 꼴사납게 버둥거렸다.

"데히!! 데히이익!!! 살려주는 데스!!! 죽기 싫은 데스우우우우!!!!!"

그런 삼녀를 보고 인간은 크게 웃었다. 삼녀에게 있어서는 필사의 저항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희한한 몸부림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야 너 사람을 무슨 학대파 취급하고 있어......난 이 공원 직원이야."

한참을 웃던 인간은 그렇게 말했다.
공원의 직원이라니, 그것이 무엇일까. 들실장인 삼녀는 알리가 없다. 하지만 일단 학대파가 아니라고 하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삼녀는 울음과 비명을 멈추고, 똥으로 부풀어오른 팬티에서 빠져나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학대파가 아닌 데스? 그럼 여기엔 무슨 일인 데스우??"

삼녀가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간을 먼 발치에서 보거나, 애호파 인간에게 아양을 떨어 실장 푸드나 콘페이토를 얻어내는 마마의 곁에 있었던 적은 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친실장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절대 건방지게 굴지 마라, 애호파라는 확신이 없으면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마라, 애호파라고 해도 사육실장으로 삼으라고 해서는 안된다. 비굴해도 좋다, 비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거대 마라실장이 인간에 의해 허무하게 죽던 그날 친실장은 인간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고, 성체가 되어 아이를 낳고서도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교육해 왔다. 그리고 삼녀는 지금 그 교육에 응하듯이. 공원 직원에게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오, 너는 꽤 예의가 바르구나, 이녀석은 완전 건방졌는데."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장녀의 머리가 매달린 나뭇가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상하로 튕기는 나뭇가지에 따라 장녀의 머리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삼녀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꾹 인내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뎃? 오.....오네챠가 무슨 짓을 한 데스???"

삼녀는 의연히 말하고자 노력했지만, 새파래진 안색과 떨리는 목소리를 완전히 막을수는 없었다. 직원도 그 태도에서 무언가를 눈치채고, 린갈과 삼녀를 번갈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오네챠?.....아......이녀석이 네 언니였나......."

아무리 해수인 실장석이라지만 눈앞에서 육친의 시체로 장난을 쳤다. 나쁜 짓이다. 게다가 며칠전에는 더 나쁜 짓을 했고, 지금 그것을 눈앞의 실장석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실은....내가 네 언니를 죽였다."

"데히이이이익!!! 역시 학대파 닌겐!!!!"

삼녀는 경악하여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는, 도망가려 등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녀가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인간에게는 아장아장 걷는 것으로만 보일 뿐, 직원은 손쉽게 삼녀의 어깨를 붙잡아 주저앉히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야! 그녀석은 분충이었다고!! 아무 이유없이 죽인게 아니란 말이야!"

분충? 그 똑똑한 장녀 오네챠가?

"잘 들어 봐, 시에서 이 근처를 개발하기로 했어. 이 낡은 화장실을 없애버리고 숲을 깎아서 테니스장이랑 체력단련시설을 만들거야,그렇게 되면 너의 언니도 여기에서는 살 수 없게 돼. 나는 엊그저께 사전답사겸 이곳에 와서 네 언니를 보고는 이 사실을 알려주었어."

'시'라던가, '테니스장'이라던가, 삼녀에게는 모르는 단어가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사정으로 오네챠가 더이상은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네 언니를 해칠 생각은 없었거든? 그래서 너는 여기서 더이상 살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 저쪽 숲 안으로 들어가 살면 인간과 부딫히지 않고 살 수 있을거다. 그렇게 말해 줬어.

하지만 네 언니는 길길이 날뛰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더구만,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느니, 정당하게 차지한 집이니 보상을 주어야 한다느니."

삼녀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간다. 장녀는 우려했던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뭐, 나도 질려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는데, 똥을 던지더군, 자기를 키워야 한다면서. 그래서 열이 올라서 그만........
하지만 저런걸 분충이라고 하지? 너희들의 세상에서도 저런 녀석은 그 뭐냐.....'솎아내기'를 한다면서?"

그랬다. 장녀는 분충이었다. 무척이나 똑똑해서 분충임을 알아채기 힘들지만. 분충이다. 어릴때는 몰랐지만, 삼녀는 성체가 되며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챘다.

단순한 분충이라면 생각없이 본능대로 행동할 것이다. 조금 똑똑한 분충이라면 그 지능을 남을 속이고 기만하여 이익을 얻는데 쓸것이다. 하지만 장녀는 다르다. 장녀는 그 높은 지능을 자기합리화에 사용했다.

물론 멍청한 분충들도 자기합리화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개 '나는 고귀하니까','네가 나쁘니까'로 귀결되는, 멍청한 분충다운 멍청한 자기합리화이다.

그러나 장녀는, 이치에 닿는 논리를 세울 지능이 있음에도 그것을 오직 자기합리화만을 위해 사용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하는 행동은 멍청한 분충과 별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독립의 때, 장녀는 실장생의 가혹함과 '무서운 집'의 옛 주인들이 자만과 욕심 때문에 파멸했음을 강변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장녀 또한 크고 좋은 집을 '욕심'내어 그곳을 차지하고자 했다. 그곳이 살기에 적합한지, 위험한 동족이나 고양이 등의 천적은 없는지에 대한 고려는 일절 없었다. 친실장이 고생하여 준비한 집터와 깨끗한 골판지를 버리는것에 대한 미안함도 없었다.

그저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속이고, 삼녀를 기만하고는 '무서운 집'에 들어 앉아 욕심을 채웠을 뿐이다.

삼녀는 이것을 깨달았다.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 매끈하게 표현할수는 없었지만, 장녀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장녀와 헤어질 때,

"그건 분충의 행동 아닌 테스?"

라 묻고 싶었지만, 장녀의 작별인사가 입을 막아 결국 말할 수 없었다.

죽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장녀 나름대로는 논리적인 사고과정을 거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에게 주제넘는 것을 요구하거나, 자기를 기르라고 말하거나, 똥을 던지는 것은,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 도출되었건 결국 분충의 행동일 뿐이다. 그리고 분충의 행동을 한 결과 인간의 분노를 사 장녀는 죽고 말았다.

공원 직원은 몇번이나 언니의 죽음에 대해 사과했다. 목을 떼어서 나뭇가지에 걸어둔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건 일을 마칠 때까지 다른 실장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해 둔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삼녀도 처음 보았을때 기겁을 하고 도망쳤으니, 효과가 있었던 셈이었다.

삼녀는 눈앞의 인간이 미웠다. 아무리 분충이라고 해도, 육친을 죽이고 시체를 그런 식으로 다루었으니 밉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말이 옳은 면도 있다. 분충은 솎아내야 한다. 분충이 있으면 일가가 몰락한다. 차녀도 그래서 죽었다. 아니, 차녀는 그나마 멍청한 자실장 분충이기었에 일가의 위기에서 끝나지만, 장녀같이 머리좋은 분충은 언젠가는 공원 전체를 위기로 빠뜨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삼녀는 한숨을 쉬고 속으로 장녀를 원망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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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판지가 언니의 집이라고 했지? 혹시 유품으로 가져갈것이 있으면 어서 챙겨"

직원은 본래 이 골판지 하우스를 폐기처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장녀에게 말했듯이, 곧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변을 청소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어느정도 진정시킨 삼녀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무서운 집'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친실장의 말을 어기는 것이긴 하지만, 장녀를 위해서는 그것을 무릅쓰고라도 유품 하나정도는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중 대부분은 전 주인인 안경 실장의 생체실험 도구였지만, 삼녀는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삼녀는 오직 장녀의 물건을 찾기 위해 맹렬히 적록의 눈알을 굴렸고,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한장의 수건을 발견했다. 마마와 함께 살 때부터 사용하던, 장녀의 이불이다.

"닌겐상....부탁이 있는 데스."

집에서 나온 삼녀는 수건을 펼쳐보이며 직원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삼녀의 등에는 목없는 장녀의 시체가 업혀 있다. 유품인 수건으로 꽉 묶어 놓았기에 결코 삼녀의 등에서 떨어질 일은 없다. 스스로 묶은것은 아니다. 손가락 없는 실장석에게는 그만한 재주가 없다. 삼녀의 부탁을 받고 직원이 묶어 준 것이다.

손에는 장녀의 머리가 들려 있다. 삼녀가 원했던 대로 이제야 겨우 눈을 감겨주고 검은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게 되었다. 묶어서 고리를 만들었던 뒷머리도 풀러, 다시 둥글게 말린 롤헤어로 다듬어 주었다.

삼녀는 장녀의 시체를 수습해 자신의 집 근처에 묻어줄 생각이다. 그정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데헥.....데헥....."

하지만 자기보다 덩치가 큰 장녀의 시체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완전히 지쳐 서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데프프프프프프픗"

그때, 삼녀의 집 안에서 불청객이 나타났다. 독라다. 아는바가 없는 녀석이다.

"뭐인데스, 독라가 여긴 왜 있는데스, 와타시의 집인 데스, 얼른 꺼지는 데스!"

삼녀는 기력을 짜내 위협을 해 보았지만, 대충 봐도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삼녀의 위협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독라를 웃게 만들었을 뿐이다.

"데퍄퍄퍄퍄퍄퍄퍄!!!! 고기가 고기를 업고 온 데스!! 웃기는 데스!!! 집을 얻으니까 고기가 1+1으로 생기는 데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인 데스웅~!!!"

동족식을 하는 독라다. 희번뜩거리는 눈은 삼녀를 동족이 아닌 음식으로 보고 있다.
맞서 싸울수도 없다. 도망칠수도 없다. 너무나 지친데다가, 등에 업힌 장녀의 시체 때문에 움직임이 둔하다. 더구나 그 시체는 단단히 묶여 있어 바로 떼내어 버릴수도 없다.

독라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한걸음씩 다가온다. 반대로 삼녀는 엉거주춤 한발씩 물러선다.
그때 문득 장녀의 유품을 가지러 '무서운 집'에 들어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수건을 발견해서, 그것으로 몸을 묶었기 때문에, 목숨을 옥죄어 오는 위기로부터 도망칠수 없게 되었다.

삼녀는 '무서운 집'의 저주의 마지막 희생자는 자신이 되리라고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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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나오는 탁아왕과 안경 실장(매드 사이언티스트)은 이전에 썼던 글의 내용입니다. 살짝 연계되는 이야기.







우지 실크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태아실장의 배에는 하얀색 천이 감겨 있다.

이 천은 바로 실장복의 턱받이와 팬티의 원료가 되는 것으로, 갓 태어난 실장석의 점막을 제거하면 위석의 성장신호에 따라 상하로 찢어져 위쪽은 실장복의 목 부분으로 삐져나와 턱받이가 되고, 아래쪽은 사타구니에 감겨 팬티가 된다. 또한 만일 점막을 제거하지 못해 저실장이 되면 천은 몸 안으로 흡수되어 후일 고치를 만들때 사용된다.

이 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면 갓 태어난 실장석의 점막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대기의 배 부분을 살짝 찢어보면 된다. 그러면 포대기와 몸 사이에 있는 하얀색 천이 보일 것이다.

천을 빼앗으려 하면 격렬히 저항하는데, 실장복을 이루는 재료가 되니 만큼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뺏긴 채로 자실장이 되면 팬티가 없어 약간의 꽃가루 만으로도 쉽게 임신하게 되므로 끝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일찍 죽어버리고, 저실장이 되면 고치실을 만들 재료가 없어 자실장이나 엄지실장이 되는 길이 원천봉쇄 당하여 정신적 충격으로 파킨사한다.

태아 실장이나 갓 태어난 실장석만 이것을 지니고 있으며, 밖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애호파, 경력이 짧은 학대파는 이 천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으나, 전문적인 연구자들이나 태아 실장까지 건드릴 정도의 중증 학대파들은 이 천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의외로 의류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이 천이 실장석에게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론, 이 천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지는 실장석의 턱받이와 팬티를 보면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육실장의 깨끗한 턱받이나 팬티라 해도 그저 불투명한 백색의 평범한 천으로 보일 뿐, 아름답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이 공기에 노출되어 열화된 것일 뿐, 본래 태아실장의 배에 감겨 있는 천은 마치 둥근 진주를 그대로 평면에 펼쳐 놓은 듯 영롱한 빛깔을 뽐낸다. 울퉁불퉁한 조개가 진주를 품고 있듯, 더럽고 추한 실장석의 옷 안에 더없이 아름다운 옷감이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이 천의 가치를 알아본 실장석 업계나 의류 업계는 제품화를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 왔지만 상용화에는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했다. 천 자체를 채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일단 태아 실장의 몸 밖으로 나오면 무슨 수를 써도 열화되어 평범한 흰색 천이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수백번의 시행착오와 수천마리의 실장석을 희생시킨 끝에, 마침내 해법이 발견되었다.
본래 실장석의 점막은 친실장의 분대 내에서 태아 실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는 성장 억제 효과가 있는데, 흰색 천도 일단은 실장석의 체내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점막으로 감싸 두면 열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이 사실을 알아내었고, 점막을 연구해 유효 성분만을 추출하여 코팅제를 개발했다. 해법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침내 상용화에 성공한 천을, 연구자들은 '우지 실크'라 이름지었다. 하지만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건 아니었다. 아직 인지도가 낮은데다가, 더러운 실장석의 분비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화 공정에 난항을 겪고 있어 모든걸 수작업으로 해야 했기에 가격이 엄청났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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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입장!!"

축가가 울려퍼지고, 음악과 조명이 깔리며 문이 열린다. 축복받은 날, 그 어느날보다 기쁜 날.
신랑이 천천히 걸어들어온다. 담담하게 미소짓고 있지만 기쁨을 감출수 없는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주변에서는 박수가 쏟아진다. 일견 평범한 결혼식의 모습이다.

하지만 박수를 보내는 하객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유명 연예인, 배우, 정재계의 거물들과 그 가족들. 하나하나가 대단한 얼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국내 재계서열 3위 우지그룹 오너의 막내아들과 국내 최고 미녀라는 수식어가 붙은 유명 배우의 결혼식이니 말이다.

"신부 입장!!!"

문이 열리고,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들어온다. 동시에 하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었지만, 신비한 빛을 발하는 웨딩드레스에 감싸인 신부의 모습은 한층 더 빛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 이후, 여성잡지나 연예채널의 취재기사가 나가면서 드레스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가문인 우지그룹 산하의 우지패션에서 특수제작했다는 것, 우지 실크라는 신소재가 사용되었다는 것, 그것이 실장석에게서 나왔다는 것, 드레스에 수놓인 금색 무늬도 실장석의 머리털로 만든 실로 만들었다는 것, 가격은 천만 단위는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것 등등이 보도를 통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 우지 실크에 대한 것이 각인되었다.

사람들 중에는 '그 더러운 실장석에게서 나온걸로 옷을 해 입는다고?'
라며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식용 실장도 보편화된 시대이니만큼 이런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였고, 대개의 사람들, 특히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은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우지 실크는 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되었다.

곧이어 기업들이 앞다투어 우지 실크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관련 사업부에 인력도 충원되었다. 그 인력들을 갈아넣은 결과, 진척이 보이지 않던 자동화 기술이 확립되어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과 그에 따른 코스트 다운이 가능해졌다.

오너 일가의 결혼식을 제품 홍보의 무대로 사용했던 우지 그룹의 우지실장산업과 우지패션은 단연 이 분야의 선두가 되었다. 주식 시세가 솟구치고, 두둑한 보너스가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실장석만 빼고.

사업의 확대는 더 많은 출산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출산석이 낳은 아기 실장들은 '텟테레~♪'라며 탄생의 기쁨을 외치자 마자 기계에 의해 우지 실크만 빼앗기고 분쇄되어 다시 어미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냉동되어 식용 실장 공장으로 보내진다.

한편으론 더욱 고급화된 우지 실크나 보급형의 우지 실크를 만들기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죽어가는 실장석의 숫자 또한 늘어만 가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착취당하는 실장석들 외에도, 예기치 못하게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사육실장 또한 존재했다.
여기에 그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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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갸아아아아아아!!!!!!!"

"왜...왜그래 엘리자베스!??"

주인과 함께 실장석 잡지를 보던 사육실장이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원인은 한장의 사진.
사육실장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찬가지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주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 때문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얼마전 우지 실크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여 화제가 되었던 여배우와 그녀의 사육실장.
애호파로서 사육실장을 기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남은 우지 실크로 자신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사육실장용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주었고, 신혼여행 후 잡지 촬영에 응해 사육실장과 함께 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실린 것이다.

이것은 애호파들에게는 흐뭇하고 귀여운, 행복을 상징하는 사진이었으나, 실장석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뎃갸!!!! 데갸!!!! 데에에에엑!!!"

원래 실장석은 좋은 것을 가진 동족을 보면 시기하여 린치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놈들이지만, 그래도 사육실장으로서 훈육된 놈들은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겉으로는 웃으면서 그 동족들을 칭찬하고, 나중에 주인에게 같은 것을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 욕심을 채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웨딩드레스를 본 사육실장들은 강한 충격을 받아 그런 잔꾀를 부릴 약간의 이성조차 날아가버려, 폭발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날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진을 본 실장석들은 본능적으로 웨딩드레스의 소재가 본래 마마의 뱃속에 들어 있을때 자신의 몸에 감겨있었던 소중한 천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증오심이 끓어오르는데 그 소중한 천이 전에 없이 아름다운 옷으로, 그것도 인간과의 사랑의 증거인 결혼식을 위한 웨딩드레스로 재탄생한 것을 보고는 마침내 얄팍한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착한 사육실장의 가면은 벗겨져 똥을 쏟아내고 잡지를 찢는 등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오마에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데스! 그 소중한 천은 왜 없어지지 않은 데스! 불공평한데스! 부러운데스! 오마에같은 똥벌레가 가질 물건이 아닌데스! 내 것인데스! 와타시가 입고 주인님과 결혼할 것인데스!!! 마라를 넣고 우흥우흥 하는 데스!! 흑발의 자를 낳을 것인 데샤아아아악!!!!!!"

린갈을 켠 엘리자베스의 주인은 제멋대로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들에 참담함을 느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떼를 쓰고 있다면 브리더에게 맡겨 재훈육을 하는 방법으로 버릇을 고칠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인 자신을 저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이제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

"데에에엥~~데에에엥~~~~뎃승, 뎃승, 데갸아아악!!!"

엘리자베스는 결국 화를 주체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팬티에 손을 넣어 똥을 집어서는 찢어진 잡지에 집요하게 집어던진다. 이미 사육실장으로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시기와 질투와 색욕의 살색 덩어리가 있을 뿐이다.

"후우......"

주인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엘리자베스는 그의 마음 속에서 사육실장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살아있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러고보니 그게 있었지.....'

주인은 얼마 전 보았던 광고를 떠올렸다. 혹시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눈여겨 보았었는데, 설마 이런 용도에 쓰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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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거기 단단히 고정시켜"

최근 두루마리 시 교외에는 실장섬유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모두 우지 실크의 대히트 덕분이다.

공장 건물은 이미 완성되었고, 기계류의 반입과 설치도 끝났다. 시험 가동과 안전검사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제 출산 유니트의 설치만 끝나면 공장으로서의 구색은 갖추는 셈이다.

"데?"

"데스데스? 데스웅?"

"데에에에에에에인--!!! 데이!!!"

"오로로롱.....오로로로롱......"

마침내 독라 출산석들을 태운 트럭이 한대씩 도착한다. 실장석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개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일부 똑똑한 녀석들은 앞날을 직감하고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데걋!!!"

공장 직원들이 반입되는 출산석들의 귀를 뚫고 하나씩 태그를 붙인다. 한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육실장도 이제 J-1886번이라는 이름을 받고, 출산석으로서의 새출발을 하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주인은 중고 실장 전문점에 엘리자베스를 팔았다.
사육실장은 버려지더라도 재활용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중고시장 또한 존재한다. 분충성이 없거나 미미한데 주인의 변덕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버려졌다면 재훈육을 받고 사육실장으로, 분충성이 높으면 '올려진 사육실장'으로서 학대용으로. 육질이 좋다면 미식가를 위한 고급 식재료로, 이도 저도 아닌 놈들은 노동석이나 출산석으로.

엘리자베스는 출산석이 되었다. 분충성이 발현되었으나 그것이 색욕에만 치중되어 학대용으로는 좋지 못하고, 그보다는 아직 출산 경험이 없기에 위석의 소모가 적어 출산석이 적합하다는 이유였다.

출산석 적합 판정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다시 출산석 농장에 팔렸다. 그곳에서 독라가 되고, 갖가지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았다. 원래 정성스럽게 키워지던 사육실장 출신이라 위석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특급 출산석만을 사용한다는 우지 실크 공장으로의 납품이 결정되었다. 엘리자베스의 실생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이다.

"이녀석 살집이 아주 좋구만. 실장석아, 튼튼한 새끼를 많이 낳아다오."

초로의 직원이 엘리자베스를 출산 유니트에 고정시키며 중얼거렸다.
우지 실크를 탐했던 엘리자베스는 사육실장의 지위에서 굴러떨어져, 출산석이 되어, 죽을 때까지 우지 실크를 채취하기 위한 새끼들을 낳을 것이다. 실장석의 삶이란 언제나 비참한 아이러니와 함께 한다.







즉신불


실장석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공원이라고 답할 것이고, 그 다음을 물으면 편의점이라 답할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은? 의외의 사실이지만 불교 사찰은 실장석 피해를 크게 입는 곳 중 하나이다. 승려들은 모두 머리를 밀어 실장석 입장에서는 노예처럼 보이고, 불교의 교리상 살생을 할 수 없어 실장석을 내쫒고 기피제를 뿌리는 정도의 대응밖에는 할수 없기 때문이다.

두루산 어귀에 있는 두루사도 실장석 피해로 골머리를 앓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산 밑의 두루마리 공원과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길로 연결되어 있어 공원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개체들이 흘러들어오기 쉽고, 그래서 만성적인 실장석 피해를 입고 있다.

"데샤앗!!!! 데스데스!!! 데퍄파파파파파!!!!!!"

"테칫! 테치테치~ 텟테로케~~ 테프프프프프...."

"레후~ 프니프니 레후~"

지금 두루사 경내를 마음껏 싸돌아다니며 똥을 뿌리고 있는 이 실장석 일가도 그런 케이스이다.

이들은 본래 두루마리 공원에서 살고 있었으나 큰 비가 내리던 날 골판지 하우스가 침수되어 공원을 떠날수밖에 없었고,

며칠을 정처없이 떠돈 끝에 간신히 두루사에 도착했으나, 그때는 이미 기아로 가족 전원이 극도로 쇠약해져 연약한 저실장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때 실장석 일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실장석 일가가 두루사에 도착한 그날은 마침 부처님 오신 날, 불교 최고의 축일이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한산하던 경내에 사람이 가득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애호파는 물론 실장석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의 뜻을 되새기며 이 죽어가는 실장석 가족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야말로 부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다. 이것을 계기로 실장석 일가가 깨달음을 얻어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고 인간과 더불어 살았다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일가는 어느 틈에 골판지 상자며 비닐봉투 따위를 훔쳐 두루사 뒷편 숲속에 자리를 잡았고, 앞에서 말했듯이 승려들이 모두 머리를 밀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분충도가 계속해서 올라가 마침내 제멋대로 소리를 지르고 다니며 주방에 들어가 요리재료를 못쓰게 만들거나 약수터에서 목욕을 한답시고 똥을 지려 놓는 등, 패악질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실장석 일가는 대웅전에까지 침입해 본존불에 똥을 던져 놓았다.
이 만행에 당연히 두루사가 발칵 뒤집혔고, 그중에서도 가장 혈기넘치는 젊은 승려 철웅은 당장이라도 실장석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으나, 불제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일단은 실장석 일가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였다.

"너희들이 더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숲에서 쫒아내지는 않으마, 그리고 음식도 약간 나누어 줄게."

하지만 그런 철웅의 경고는 시원하게 무시되었다.

"고기도 없는 똥같은 곳에서 살며 무슨 무례인 테칫!! 빨리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 테챠아아아!!!"

"여기가 와타치들의 집인 테치, 오마에들이야말로 어서 꺼지는 테챳!"

"오마에, 마라는 서는데스? 와타시의 총구에 한발 뽑는 데스웅?? 데퍄퍄퍄퍄!!!"

철웅에게 돌아온 것은 어떠한 반성도 사과도 없는, 신성한 도량에서 꺼낼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더러운 소리 뿐이었고, 철웅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여 손에 들고 있던 나무봉을 치켜들었다.

"이 똥벌레 새끼들!!! 내가 계율을 깨더라도 너희만은 작살내버리고 말테다!!!"

철웅은 친실장의 머리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힘이 실린, 계율을 깨는 것을 감수하고 살생을 하기 위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봉이 친실장의 머리를 으깨기 직전에, 위엄있는 목소리가 그것을 제지했다.

"철웅아, 네 어찌 살생을 하려 하느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루사의 주지였다. 그는 두루사의 가장 윗어른이자 고아였던 철웅을 거두어 키워준,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철웅은 항상 그 앞에서는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지금도 부모에게 나쁜 짓을 들킨 아이처럼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지는 무어라 항변하려는 철웅을 손을 흔들어서 다시금 제지했다.

"그만 됐다. 내가 이 작은 녹색 시주들과 이야기할 터이니, 너는 가만히 있거라."

"예....."

주지는 고개를 푹 숙인 철웅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내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실장석 일가와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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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장장 30분간, 주지는 실장석들이 가감없이 쏟아내는 욕망의 언어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참치 대뱃살로 만든 스시를 내놔라, 1++급 횡성 한우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 일본의 장인을 불러 수제 콘페이토를 만들어라, 비단으로 만든 핑크색 사육실장복을 대령해라, 흑발의 자를 낳기 위한 연예인급 마라노예를 대령해라, 전속 미용사와 피부관리사가 필요하다, 생활에 한치도 불편함이 없게 독라노예 천마리를 바쳐라, 일주일에 한번은 국내여행, 한달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가야겠다......

제정신으로는 5분도 듣고 있기 힘든 소리들이지만 과연 오랜 세월 수행한 고승답게 주지는 온화한 표정으로 그것을 모두 들어주었고, 실장 일가가 떠들만큼 떠들고 숨이 차 시뻘개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자, 그제서야 입을 떼었다.

"잘 알았습니다. 고귀한 시주분들이니 고귀한 대접이 필요하다.....그런 이야기군요."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줄 노예라고 생각한걸까. 실장 일가는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스!!! 당연한데스!!!! 오마에들 대머리 닌겐은 노예인데스!!! 와타시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데샤아아아악!!!!!"

주지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어진다. 관찰력이 충분하다면 그 순간적인 표정변화에서 무언가를 읽어낼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욕망이 위석을 지배한 이 어리석은 실장 일가는 데갸데갸 소리지르며 날뛰기에 바빠, 그 표정을 읽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음....그렇다면 녹색 시주 여러분, '부처'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철웅과 실장일가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한쪽은 황망함으로, 한쪽은 호기심으로.

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생물이 부처가 되다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 이런 놈들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인가? 철웅은 도저히 주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무어라 따져 물으려 했으나, 그보다 한박자 빠르게 친실장이 말을 꺼냈다.

"부처가 뭐인 데슷? 그건 좋은 것인 데스우?"

주지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자이셨고,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장성한 다음에는 깨달은 자가 되어 누구보다도 존귀한 몸이 되셨고,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 남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엉성하고, 많은것이 빠져있고. 편향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그런것을 알 리 없는 실장석들은 듣기 좋은 말의 나열에 흥분해서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되는데스!! 그 부처란거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딱 맞는데스!!! 와타시가 부처가 되면 닌겐 부처보다 훨씬 위대할게 분명한데스!!!"

"와타치가 먼저인 테치!! 가장 빨리 부처가 되는 테치!!!"

"천상천하 유아독존 레후?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 레후......."

"좋습니다. 그럼 녹색 시주 여러분들을 부처로 만들어 드리기로 하지요. 하지만 오랜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되는 것은 시주께는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러니.......'즉신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주지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아 철웅에게 신호를 보냈다. 즉신불로 만든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철웅은 주지의 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건가?

"주지 스님! 그건.....!"

"어허!"

노승의 일갈에 철웅은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녹색 시주들의 몸을 씻기고 옷을 빨아드려라. 몸이 우선 청결해야 '수행'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예......."

철웅은 더이상 따져 묻기를 포기하고 주지가 시킨 대로 실장석 일가를 수돗가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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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와타시가 더 아름다워져버린 데스, 세상 모든 수컷들의 마라가 움찔거릴게 분명한 데스. 데프프프프픅!!"

"와타치의 부드러운 살결을 보는 테치! 꽃님의 냄새가 나는 테치!!"

"머리카락도 찰랑거리는 테치, 와타치의 아름다움은 이미 죄악인 테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욕다운 목욕, 빨래다운 빨래를 경험한 실장 일가는 황홀경에 빠져 있다. 물론 힘들여 자신들을 씻겨준 철웅에 대한 감사라고는 조금도 없다.

철웅도 딱히 감사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다. 그보다는 앞날을 모르고 신나서 알몸으로 뛰어놀며 데프프 웃고있는 실장석들을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 뿐이다. 방금전까지 분노하여 죽이려 했던 대상에게 측은한 마음을 느낀다는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즉신성불한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불교에는 등신불이라는 것이 있다. 승려의 수행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좌선한 채로 입적하여 그 시신이 썩지 않고 미라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그 육신이 모두 사리이며 고승은 사람들 곁에 있었던 부처였던 것으로 여겨 존경하고, 추앙한다. 그리고 미라화된 시신은 육신보살, 혹은 등신불이라 부르며 옻칠을 하여 부패를 막고 금박을 입혀 소중히 모신다.

일본에는 인위적으로 이 육신보살, 등신불이 되기 위한 수행법이 존재한다. 그것을 보통 즉신불, 즉신성불이라 부르는데, 살아있는 몸을 스스로 미라화 시키는 것이니 그 과정이 대단히 고통스러워 인내심이 강한 고승들조차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성공하여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남은 육신이 부패해 실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앞으로 실장 일가가 겪게 될 일은 바로 이 일본식의 즉신불 수행이다. 산채로 미라가 되어야 한다. 길고 괴로울 것이다. 어쩌면 아까 나무봉에 머리를 맞아 단번에 목숨이 끊어지는게 차라리 편하고, 자비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철웅은 생각했다.

"데갸-----앗!! 묙욕이 끝나면 간식시간인게 당연한데 뭐 하는데스 똥닌겐!!! 빨리 쿠키와 커피를 내오는 데스!!!

"콘페이토와 젤리로 장식된 시원한 빙수를 내오는 테치!!"

"와타치는 고기!! 고기가 먹고 싶은 테치!! 삼겹살을 굽는테치!!!!"

"프니프니후~"

그리고 아직도 분수를 모르고 분충대사를 내뱉는 실장석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철웅은 실장네무리 스프레이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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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푸우....데푸우......데....데뎃?!"

"테힛? 기분이 이상한 테치이......."

잠에서 깨어난 실장 일가는 묘한 상실감과 두근거림을 느꼈다. 위석이 몸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위석은 일가가 잠든 사이 철웅이 시내로 데리고 나가 실장샵에서 적출하고 코팅까지 마쳐놓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즉신성불 수행에 있어 육체가 미라화 되기 전에 위석이 먼저 깨져 죽어버리면 모든것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 데스? 자들은 어디 있는 데스우~~~????"

"마마!!! 여기 테치!!! 마마가 안보이는 테치!!!"

"프니프니를 바라는 레후!"

일가가 있는 곳은 두루사 한켠에 있는 폐우물 터였다. 과거 70년대 초까지는 이곳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으나 그 후 상수도가 깔리며 버려졌고, 이후 사고를 우려해 흙과 자갈을 부어 메워 놓았다.

주지는 철웅이 실장샵에 다녀오는 사이 이 폐우물을 정돈하고, 나무 판자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배가 고프면 가족끼리도 잡아먹는 녀석들이니, 그러니 못하도록 한마리씩 격리시켜놓기 위함이다.

이제부터 실장 일가는 이 폐우물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고, 위에는 무거운 나무 덮개로 덮여 있으니 탈출이 불가능한것은 물론, 빛 한점 새어들어오지 않는다.

"데에에엥!!! 데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엥----!!!"

마침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패닉에 빠진 일가가 크게 울어댄다. 서로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전혀 보이지가 않으니 두려움은 배가 되고, 가족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부딫혀 상처를 입는다.

그때, 덮개가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지다. 그는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으로 실장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지를 보자 실장 일가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화를 내며 주지에게 따져 물었다.

"데샤아아앗!!!! 똥닌겐이 감히 고귀한 와타시에게 무슨 짓인 데스!!! 이런 곳에 가두다니 오마에 미친 데스???"

"건방진 테치!!! 패죽이는 텟샤!!!!"

더러운 말을 내뱉는 실장석 친자를 보고서도 주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그저 웃는 얼굴로,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누어줄 뿐이다.

꺼낸 것은 약간의 야채나 과일 조각 그리고 녹두나 팥 약간. 신선하고 깨끗하지만 전혀 조리는 되어있지 않고, 실장석 한마리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당연히 실장 일가는 팔을 붕쯔붕쯔 흔들며 욕설을 내뱉는다.

"즉신불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오곡을 끊어야 합니다. 오곡은 쌀, 보리, 조, 콩, 수수를 일컬음이니, 이것으로 만든 음식은 시주께 대접해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즉신성불하기 위해 수행을 시작하였으니, 그것을 드시지요."

주지는 실장 일가에게 즉신불 수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친절히 그것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실장석들은 있는대로 목청을 올리며 화를 낼 뿐이다.

"그런거 모르는데스! 고귀한 와타시는 세레브한 생활을 하면서 부처가 되는데스!! 그딴 수행은 노예인 오마에나 하는 뎃샤!!!!"

"그런 테치!! 와타치타치는 이미 천상천하 유아독존인테치!!!"

"수행은 끝난 테치, 이미 와타치는 부처인 테치, 배 꼬륵꼬륵 하니까 빨리 삼겹살을 굽는 텟치"

주지는 날뛰는 실장석들을 일부러 무시하는듯이, 품에서 작은 기계를 꺼냈다. 낡아빠진 MP3 플레이어다. 주지는 그것을 친실장이 있는 곳에 내려놓고, 버튼을 눌러 재생시켰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반야심경이 흘러나온다. 실장석들이 빵콘을 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나오지만 주지는 개의치 않고 말을 건다.

"이건 시주분들의 마음을 다스리라고 틀어주는 것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경전들이니, 독송하고 터득하게 되면 여러분도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분명, 반야심경을 비롯해 금강경, 천수경 등 이 MP3 플레이어에 담겨있는 불경들은 대중적이면서도 심오한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뜻모를 소음일 뿐.

"레후?"

그나마 저실장만이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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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지났다. 음식은 오곡을 제외한 곡식, 야채나 과일만이 겨우 허기를 달랠 정도만 주어졌다. 단식 일주일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단식으로 근육이 손실되면 안된다면서 실장채로 때려가며 강제로 두세시간씩 달리게 했다. 이 운동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어두운 폐우물에 갇혀 씨끄러운 소음, 즉 불경을 들어야 한다.

실장 일가의 몸은 점차 말라가고 있다. 한동안은 똥을 먹어가며 버텼지만 갈수록 영양이 고갈되어 이제 똥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실장석 하면 떠오르는 피둥피둥한 몸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석은 아직 깨어질 기미가 없다. 전문가의 코팅을 거치고 강력한 보호제에 의해 보호받는 이 위석들은 결코 육체보다 먼저 파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날이 밝고, 덮개가 열리며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장 일가를 관리하는 일은 두루사의 승려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고 있어 매일 나타나는 얼굴은 다르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주지가 온다.

그리고 오늘, 주지가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자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음식을 꺼낸다.

"데........."

음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숫제 곡식이 아니라 약간의 나무열매 뿐. 영양가도 적을 뿐더러 양마저 줄었다. 하지만 한달간의 오곡단식을 거친 실장석들은 항의를 할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이제는 오곡단식을 넘어 십곡단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십곡은 오곡과 대두, 녹두, 메밀, 참깨, 피를 함께 일컫는 것이니, 십곡단식의 수행을 하게 되면 모든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로 기력을 보충하게 됩니다."

주지는 실장석들에게 십곡단식을 설명하는 한편,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이, 옻나무를 달여 만든 차를 마시며 몸속의 독소를 제거하고 건조시킵니다. 쭉쭉 들이키세요"

그렇게 말하며 주지는 강제로 실장석들의 입을 벌리고 물병에 담긴 옻나무 차를 부어넣었다. 나쁜 맛에 본능적으로 빵콘을 하기 위해 괄약근이 열리지만, 분대가 텅텅 빈 실장석들의 총배설구에서는 방귀만이 풍풍 나올 뿐, 똥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제 운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녹색 시주들께서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참선하며, 즉신불이 될 때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눈빛을 보내는 실장석들을 무시하며 주지는 덮개를 덮었다.

"데이....데이......"

"테히이이이......테흐으으으으....."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시 덮개가 덮인 폐우물에 실장석들이 벌렁 드러누웠다.

"마마....저 똥닌겐들을 패버리는 테치.......마마는 강하지 않은 테치이.....??"

자실장 하나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건넨다. 하지만 친실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데이이....데이이......"

결국 그렇게 해주겠다고도, 못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친실장은 자실장들의 말을 외면하며 일부러 앓는 소리를 크게 내어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고집멸도를 알아야 하는 레후......집착은 고통으로 연결되니 바른 수행으로 고통을 끊고 지혜와 자비의 삶을 살아야 하는 레후..."

그렇기에, 친실장의 큰 목소리에 가려 저실장이 작게 되뇌이는 소리를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다시 한달이 지났다.

'파킨!'

"아, 이녀석들 위석 깨졌네."

마침내 실장석들의 '수행'이 끝났다. 병에 들어있던 위석들은 검게 물들어 마침내 맑은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꺠졌다.

철웅과 주지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폐우물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비참하게 말라 비틀어진 실장석들이 있었다. 최후의 최후에는 옷과 머리카락까지 뜯어먹은 것인지 묘하게도 독라가 되어 있었고, 눈에서 절망의 검은 눈물이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위를 타고 흘러내린 자국이 완연했다.

"데....뎃스웅......"

갑작스런 소리에 철웅이 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던 걸까, 친실장이 주지와 철웅을 보자 아첨을 해온다.

하지만 그것이 최후의 기력을 짜낸 행동이었는지, 더이상은 움직임이 없다.

철웅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실장석들의 시체를 집어올렸다. 가까이서 본 실장석의 얼굴들은 세상의 모든 업을 다 진듯한 비참한 모습이었다. 철웅은 적어도 그녀들이 실장석이 아닌 다른 생물로 윤회하기를 바랬다.

친실장, 자실장....한마리씩 실장석의 시체를 양동이에 담던 철웅의 눈에 저실장이 보였다.

'!!!"

저실장은 어미나 자매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독라가 되지도 않았고, 여위기는 했지만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철웅은 떨리는 손으로 저실장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순간적이지만 머리 뒤에 황금색의 광배가 떠올라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이 작은 벌레같은 생물에게도 불성이 있어, 해탈에 이르렀단 말인가? 철웅의 가슴에 묵직한 충격이 흐르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주지에게도 저실장의 시체를 보여주었으나,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단숨에 때려죽이려는 것을 막고, 이렇게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방법을 이용하여 실장석들을 죽이도록 한 것은, 자신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주려는 주지 스님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철웅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상당히 오랫동안 이녀석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셨지. 어쩌면 그때 이 저실장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의 진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깨달음을 얻은 녀석 없이 모두 비참한 몰골로 죽었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가르침이 될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주지가 불살생의 계율까지 어겨가며 이런 일을 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철웅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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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두루사에는 새로운 명물이 생겨났다.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저실장은 '우지부처'라 불리며, 미물이라도 깨달음을 얻어 해탈할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증거가 되어 대웅전 본존불의 발치에 모셔지게 되었다.

한편, 그저 부패를 막기 위해 옻칠만을 해놓은 실장석 친자의 미라는 대웅전 밖에 작은 불단을 만들어 안치해 놓았다. 그 모습은 집착과 욕망에 빠져 고통속에서 헤매이는 중생 그 자체이다.

두루사를 방문한 사람은 대웅전 밖에서 친자를 보고 안에서 우지부처를 보게 된다. 이 흐름이 묘한 감명을 주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장석 일가는, 정말로 죽어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우리집 사육 자실장 미도리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특히 검과 마법이 부딫히고 마왕과 용사가 대립하는, 고전적인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가장 좋아한다.

다만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선역보다는 악역을 좋아한다는 것. 마왕이 용사에게 한방 먹이면 TV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도 용사가 마왕을 공격하면 네발로 서서 위협하는 소리를 낸다.

그런 미도리의 모습이 재미있고 조금은 귀여워, 나는 어느날 이렇게 물었다.

"너는 정말로 저 마왕 캐릭터를 좋아하는구나."

내 물음에 미도리는 눈을 빛내며 답해왔다.

"그런 테츗! 정말 멋진 테치! 마왕님은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똥닌겐들을 벌하기 위해 일어선 테치!
열등하고 멍청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닌겐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한 테치이이이이이!!!!!!"

"하하하, 우리 미도리 정말 만화에 푹 빠졌구나."

......
..........
'...어라?'
'.......이새끼가?'

나는 그날 밤 미도리에게 에너지 드링크 5캔을 먹이고 눈도 감지 못하도록 눈꺼풀을 테이프로 붙여둔 뒤, 그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에서 마왕이 용사에게 비굴하게 목숨구걸을 하다 죽는 장면을 편집해 날이 샐때까지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데키키키키키키"

"데.....데뎃??"

스산한 웃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백설이의 눈에, 낮선 광경이 들어온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골판지다. 정확히 말하면 들실장들의 골판지 하우스. 최고급 사육실장인 백설이에게는 인연이 없어야 마땅한 그곳. 하지만 지금 백설이는 손발이 묶인 채 골판지 하우스 한가운데 내던져져 있다.

'데??? 여긴 어디 데스?? 와타시 납치당한 데스우???'

전신의 핏기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납치당한 사육실장이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백설이는 당황하며 움직일수 있는 목과 눈을 사용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록 골판지 하우스 안에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면 아마도 냉장고나 장농 정도의 크기는 될 것이다. 사육실장 교육중에 보았던, 그리고 실장석으로서 본능적으로 그 크기를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골판지 하우스보다는 몇배는 큰 사이즈이다.

"데키키키키키키"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름돋는 웃음소리에 백설이의 전신근육이 경직된다.

"오마에 사육분충, 이제 일어난 데스? 데키키키킷"

어둠 속에서 천천히 백설이를 향해 실장석 한마리가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외견은 평범하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사육실장용 안경을 쓰고 있고, 그 안경 너머의 눈은 알 수 없는 광기로 가득차 있다.

"치...친구상???"

하지만, 눈의 광기를 제외하면 그 얼굴은 백설이가 잘 아는, 소중한 친구의 그것이었다. 그 친구는 원사육실장으로,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 항상 안경을 써야 했으며 잠시 안경을 잃어버리고 집안을 헤매다 불운하게도 꽃병 가까이에 가는 바람에 임신하게 되어 주인님의 분노를 사 버려졌다고 했다. 백설이는 우연히 공원 산책중 안경 실장과 만나 이 슬픈 사연을 듣고는 친구가 되기로 하였고, 우정을 키워왔다.

"그런 친구상이 대체 왜 와타시를 납치한 데스....정신차리는데스......"

그러나, 백설이의 간절한 호소를 들은 친구는 오히려 배를 부여잡고는 집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데키키키키키키!!!!! 데프프프프프픗!!!!!.......아직도 상황을 모르는데스? 그딴건 당연히 모두 거짓말인데스!"

"데......"

"와타시는 '이거'를 노리고 오마에의 친구인척 한 것일 뿐이었던 데스, 누가 사육분충 따위와 친구가 되는 데스우??? 데프프픅!!"

안경 실장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머리, 안경 실장이 간접적으로 가리킨 백설이의 머리에는, 일반적인 실장석의 녹색 두건이 아닌, 하얀 헤드드레스가 덮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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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은 특유의 단성생식에 의해 하나같이 모체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장석들 끼리는 외모의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는 모양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거의 외모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실장석도 때로는 유전자의 장난에 의해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 경우 대개 실장석의 돌연변이는 조상, 즉 취성석(스이세이세키)의 형질이 발현된다.

백설이도 돌연변이 실장석이다. 그녀는 태어날때부터 실장석의 녹색 두건이 아닌 취성석의 하얀 헤드드레스를 지니고 있었다. 만일 들실장이라면 이런 특이한 모습은 주위의 질투 내지는 비웃음을 사고, 끝내는 린치당해 죽는 것으로 일생이 끝날테지만 백설이는 사육실장 농장의 출산석에게서 태어나 오히려 그 특이한 모습이 높게 평가되었고, 한층 정성스러운 훈육을 받아 엄청난 금액에 현재의 주인에게 팔렸다.

그렇기 때문에 헤드드레스는 백설이에게 있어서 위석만큼 중요한, 자신의 모든것이나 다름 없는 재산이다. 헤드드레스 덕분에 어미처럼 출산석이 되거나 분충 자매들처럼 학대용 싸구려 실장석이 되는 운명을 피하고, 마음씨 좋은 부자 애호파 주인을 만나 사육실장이 되고, 헤드드레스의 순백색에서 따온 '백설'이라는 훌륭한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이걸 쉽게 내어줄수는 없다.

"치...친구상. 이건 안되는 데스, 이건 와타시의 소중소중한 보물인데스....굳이 가지고 싶으면 주인님께 말해 비슷한 것을 사주겠는 데스....."

그러나 안경 실장으로부터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딴건 필요없는 데스."

"데"

백설이가 얼빠진 소리를 낸다. 노리는 것이 이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와타시에게 필요한건 돌연변이의 결과물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근원 그 자체 데스."

"데....도련병???.....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데스...."

개념실장이라고는 하나 실장석은 실장석, 저능한 분충들보단 뛰어나지만 그래도 과학적 개념같은것을 이해할리가 없다. 그러나 안경실장은 다르다. 그쪽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 생물학적 지식을 제법 가지고 있다.

"이걸 보는데스."

그렇게 말하며 안경 실장은 검은 천을 휙 벗겨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위석이다. 위석이 액체가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병 안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통의 위석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위석이 녹색의 보석 모양을 하고 있다면. 이 위석은 마치 가시가 돋아난 듯이 삐쭉삐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고, 그 가시들은 진홍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와타시의 돌 데스. 이 밝게 빛나는 부분이 보이는 데스??"

자신의 위석을 스스로 빼내어 보관한다는데서 백설이는 공포감을 느꼈다. 미치지 않고서야 스스로의 몸을 갈라 위석을 일부러 빼낼 리가 없다. 그런데 안경 실장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어조와 눈에 서린 광기의 불일치가 백설이를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안경 실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것을 뛰어넘어, 평범한 실장석인 백설이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기괴하고 혼란스러우며, 공포스럽기까지 한 이야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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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실장석의 위석은 전체가 진한 녹색의 광물질로 되어있다. 그러나 돌연변이가 일어난 실장석의 위석은, 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진홍색으로 빛나는 특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안경 실장은 이 점에 주목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은 실장석이 아니라 취성석에 가까운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돌연변이 실장석의 위석에서 이렇게 변이가 일어난 부분만을 떼내어 합치면 하나의 온전한 위석, 아니,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돌연변이 실장석 하나 하나는 유전정보가 부족해 취성석의 옷만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약간 머리가 풍성하거나, 속눈썹이 있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변화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온전한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한다면 온전한 손과 발,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조상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장석이 취성석의 모습을 되찾는 날, 인간은 실장석들 앞에 무릎꿇고 지구의 지배자는 실장석들이 되리라.

"그때부터 와타시는 오마에같은 돌연변이들을 찾아서 납치한 데스. 그리고 그놈들의 '소중한 돌'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쪼개, 미리 빼둔 와타시의 돌에 박아넣은 데스. 아프지만 아주 기분좋았던 뎃스웅♡"

"데데데덱데데덱........."

백설이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공포에 떨고 있다. 백설이는 사육실장 교육이 시작된 이래로 한번도 빵콘을 한 적이 없었고, 그것을 자신의 작은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었으나, 상상을 뛰어넘는 안경실장의 이야기에 어느새 운치를 지려 순백의 팬티에 녹색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백설이의 잘못이라고 쉽게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위석에서 변이가 일어난 부분만을 떼내어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를 재현하겠다는 계획은 인간으로 말하자면 여러 사람의 아름다운, 혹은 건강한 신체부위를 자르고 꿰매어 하나의 완전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그런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계획을 광기에 찬 얼굴로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더구나 그 사악한 계획의 희생자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걸 안다면 인간이라도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닌 이상 오줌을 지릴것이 분명하다.

백설이는 점차 공포로 눈이 흐려져가기 시작했다. 회색빛으로 눈이 물들어간다는 것은 위석이 파킨하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백설이는 위석이 깨져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백설이의 입에 무언가가 쳐박힌다. 실장활성제가 든 병이다.

"오마에는 아직 죽어서는 안되는 데스, 와타시가 위석을 쪼개기 전까진 살아있어야 하는 데스. 데키키키키키"

강제로 실장활성제를 마셔 어느새 회색으로 물들어가던 눈이 적록의 빛을 되찾는다. 동시에, 과도를 든 안경 실장이 백설이의 배를 가르기 시작한다.

"오마에가 마지막인데스. 이제 머리부분만 있으면 완성인데스. 오마에같이 순진해 빠진 멍청이가 돌연변이라 정말 다행이었던 데스."

안경 실장은 갈라진 배 사이로 손을 넣어 내장을 휘저으며 위석을 찾고 있다. 백설이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지르지만,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악!!!! 데캬아아아아!!!! 주인님!!! 주인님!!!!! 살려주는데스으으!!!! 데에에에에엥!!!!!"

"아직도 똥닌겐을 찾는데스? 정말 못말릴 사육분충데스."

마침내 백설이의 배에서 위석을 찾아낸 안경 실장이 그것을 꺼내 자랑스럽게 들어보인다.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되어 시야가 흐려진 백설이의 눈에도, 한쪽 끝이 붉게 빛나는 자신의 위석이 보인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다. 두 실장석은 서로 다른 이유로 위석을 응시하고 있다. 한쪽은 계획의 완성을 음미하듯이, 한쪽은 목숨이 끝나게 되었다는걸 직감하고서.

이윽고 안경 실장은 위석코팅제를 백설이의 위석에 바르고, 과도로 붉게 빛나는 부분을 긁어 떼어낸다. 배를 가를때 이상의 격통이 백설이를 덮친다.

"뎃훙~뎃츙~뎃데로게~젯데로게~"

그러나 갈라진 배에서 피와 내장을 쏟으며 몸부림치는 백설이를 옆에 두고서도, 안경 실장은 태연하다. 아니, 태연하다 못해 콧노래까지 부르며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실장석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칼질로 붉게 빛나는 부분을 떼어낸 안경 실장이, 유리병에 든 자기의 위석을 꺼내어 세워두고는 백설이에게 말을 걸었다.

"보이는 데스? 이제 오마에의 돌조각을 와타시의 돌에 박으면 모든게 끝나는 데스~"

그러나 이미 백설이에게는 대답을 할 기력조차 없다.

"데...데....."

"그럼 시작하는데스. 하나, 둘....."

"뎃훙!!♡"

"파킨!!!!"

백설이의 돌연변이 위석 조각이 안경 실장의 위석에 박혀 합쳐지는 순간. 백설이의 위석은 조각이 떨어져나간 부분부터 금이 가 마침내 파킨하고 말았다.

"데프프프프프.......이제 조상의 모습을 되찾는데스. 그리고 건방진 똥닌겐들을 지배하는 데스으으으!!!!"

골판지 하우스 안에 사악한 웃음이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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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스웅~♡"

공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A의 앞에, 꼬질꼬질한 독라 실장석 한마리가 나타나 아첨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 A의 얼굴이 구겨진다.

A는 얼마 전 짓소코인 열풍 당시 퇴직금을 쏟아부었다가 그것을 전부 날리고, 간신히 건물 청소부 자리를 얻어 근근이 생활하는 참이었다. 물론, 그의 투자가 실패한 것이 실장석의 탓은 아니고, 오히려 실장석들도 짓소코인 열풍 당시 많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중 하나일 따름이지만 A는 투자 실패 이후로 실장석을 보면 그 일이 떠올라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발 똥벌레 새끼!!!"

그리고 지금 A의 앞에 나타난 독라도. 분노한 A에게 걷어차여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수풀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니미 요새 똥벌레들은 안경도 쓰고 다니네"

수풀에 나동그라진 안경 실장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니 고통을 즐기듯이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다. 독라가 된 데다가 온몸에 피멍이 들고 안경마저 깨지고 휘어진 그 모습은 인간을 지배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른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안경 실장은 백설이의 위석을 빼앗아 자신의 위석에 박음으로서 취성석의 로자 미스티카가 완성되었다고 믿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생명과 유전자의 신비는 기껏해야 실장석 한마리가 가지고 놀 만큼 단순하지 않다.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정보를 한데 모아놓는다고 그것이 저절로 합쳐져 하나의 개체가 될 리가 없다. DNA레벨에서 정밀한 조작을 가하지 않고 단순히 위석을 다른 위석에 박아넣는다고 유전자가 융합되지도 않는다. 생명의 진화는 블럭이나 퍼즐놀이가 아니다.

하지만 안경 실장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안경 실장은 팔다리를 자르면 재생되는 과정에서 취성석의 팔다리로 재생될 것이고, 머리를 뽑으면 취성석과 같은 풍성한 머리가 다시 날 것이라고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끝없는 자해 속에서 자기 스스로 독라가 되어버린 안경 실장의 정신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미쳐버려 자신이 취성석이 되었다고 믿는 지경까지 와서는. 인간을 홀려 세상의 지배자가 되겠다며 아첨을 하고 다니다 이렇게 걷어차여 비참하게 땅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뎃......데훙........닌겐을 메로메로시킨데스........이제 와타시의 노예닌겐 군대로 세상을 정복하는 데스우....."

골판지 하우스 안의 유리병에는 아직 안경 실장의 위석이 들어 있다. 안경 실장의 정신이 붕괴하여 자해를 시작한 이후로, 병에 들어있던 실장활성제는 급격히 소비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활성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석은 점차 탁해지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백설이의 위석 조각을 비롯해, 안경 실장의 위석에 박혀있던 돌연변이 실장석들의 위석도 그 붉은 빛을 잃었다.

마침내, 위석 전부가 검게 변했다. 이제 곧 깨질 것이다.








채굴



"마마!!! 마마아!!!!"

"버리지 마는 테치!! 데려가는 테치이이이이!!!"

"테에에에엥! 마마 같이 가는 테챠아아아아!!!!"

해질녁의 공원, 몇마리의 자실장들이 어미를 부르며 달리고 있다. 꼬질꼬질한 얼굴에는 적록의 눈물이 흘러 한층 궁상스러움을 더하고, 빵콘한 팬티에서는 운치가 새어나와 흙바닥에 점점이 새겨진다.

자실장들이 애타게 찾는 어미는 인간의 품에 안겨 있다. 어미를 품에 안은 인간은 자실장들이 뭐라 하던 신경도 쓰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그것을 쫒으려 자실장들은 목이 터져라 마마를 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뛰지만, 어미는 매정하다.

"너희들은 못생겨서 선택받지 못한 데스!! 지금까지 키워줬으면 고마운줄 알고 이제 알아서 사는 데스!! 와타시는 이제 세레브 사육실장인데스, 너희같은 들분충이 함부로 말을 거는 것도 실례인 데샤앗!!!"

"테에에에....."

마침내 어미의 폭언에 마음이 꺾여 주저앉은 자실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테승테승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어째서 인간은 마마만을 선택했을까, 마마는 어째서 우리를 이렇게 쉽게 버렸을까.

10여분 전, 돌연 골판지 하우스 앞에 나타난 인간은 이렇게 말했다.

"귀여운 실장쨩이구나, 우리집 사육실장이 되지 않을래? 하지만 아이들은 키워줄수 없어. 너만 특별히 키워줄거야."

그 말을 들은 친실장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실장들을 버리고 사육실장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자실장들은 어미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 얼어붙었다가, 인간이 친실장을 들고 하우스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아 뒤쫒기 시작했으나 애초부터 자실장의 짧고 약한 다리로 인간을 쫒아가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프프프프...데퍄퍄퍄퍄!!!"

자실장들의 울음따위는 개의치 않고 친실장은 인간의 품에 안겨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다. 애초에 타고난 분충이다. 자들을 기르는 것도 반쯤은 비상식량 삼아, 나머지 반은 탁아해서 사육실장이 될 요량으로 길렀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인간이 직접 자기를 키워주겠다고 하니, 쓸모 없어진 자실장 따위는 버리는게 당연하다.

결국, 어둠이 깔린 골판지 하우스 안에 외로이 자실장들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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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토시아키라는 닉네임을 쓰는 의문의 인물이 가상화폐 짓소코인을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미 몇종류의 가상화폐가 출시되어 있었고,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를 풀면 보상으로 코인을 지급한다는 구조도 여타 화폐들과 다를것이 없어 언뜻 보기에는 특별한점이 없는, 그저 그런 가상화폐들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츨시 6개월여가 지난 시점에서 실장석의 위석이 짓소코인 채굴에 최적화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상황이 역전되었다. 값비싼 그래픽카드를 비롯해 대규모의 채굴장비를 운용해야 겨우 수익이 날까 말까 하는 여타 가상화폐에 비해 세상 어디에나 널려있는 실장석으로 저렴한 채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고, 곧 사회에 짓소코인 채굴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몇개월이 지나자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효율적인 짓소코인 채굴법이 대략 윤곽을 드러냈다.

우선 전제가 되는 것은 성체실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자실장 이하는 위석의 연산능력이 나쁠 뿐더러 과부하를 이기지 못해 위석이 금방 붕괴한다. 성장이 끝난 성체의 위석이 모든면에서 우수하다.

두번째로는 채굴에는 개념실장보다 분충이 좋다는 것. 개념실장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좋은 실장석일 뿐, 실장석 입장에서는 분충성이라고 하는 본능을 거스르며 사는 존재이다. 때문에 위석이 지속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아 연산력과 내구도가 떨어진다.

그 반면에 본능대로 사는 분충은 자의식이 강하고 강력한 행복회로가 스트레스를 경감해주어 위석이 튼튼하다. 이런 이유로 채굴에는 개념실장보다 분충이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좋을 것. 당연한 이치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위석의 연산력이 좋다는 이야기니까.

종합하자면, '똑똑한 분충 성체실장'이야말로 채굴에 최적화된 실장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똑똑한 분충'이라는 것은 대단히 드물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분충 성체실장' 정도가 대규모 채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가장 적합한 실장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전국적으로 때아닌 실장석 쟁탈전이 벌어졌다. 조직적으로 대규모 채굴을 하는 투기꾼들은 물론이거니와,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이점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도 발벗고 나서 분충 성체실장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편승해 실장샵들은 성체가 되어 폐기될 운명에 처한 실장석들을 적당히 올려주어 분충으로 만든 다음 싸게 팔기 시작했고, 부려먹을대로 부려먹어 위석이 한계에 달한 노동석이나 출산석을 신품인것 마냥 포장해서 파는 사기꾼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역시 실장석을 잡으려면 공원으로 가야 한다. 발품을 약간 파는 대신 공짜로 실장석을 주워올 수 있고, 들실장들 중에는 순도높은 분충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돌아다니며 분충 성체실장을 찾고 있다.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자들을 헌신짝처럼 버린 친실장도. 바로 채굴석을 찾기 위한 인간의 꾀임에 빠진 것이다. 사육실장으로 삼아줄테니 아이들을 버리라는 제안은 분충을 가려내기 위한 상투적인 물음에 불과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을 버리는 어미라면 분충임에 분명하니까. 그것을 알 리 없는 친실장은 그저 자기가 아름다워서 선택되었다고 행복회로를 돌리며 인간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이것으로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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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이 인간의 품에 안겨 도착한 곳은 호화로운 저택과는 거리가 먼, 교외의 허름한 창고였다. 한참 행복회로에 빠져 입을 오물거리며 행복을 곱씹던 친실장은 낡은 창고를 보고는 화를 내며 자기를 속인 인간을 벌주기 위해 손을 들었으나, 그보다 빠르게 남자의 손이 날아들어 옷을 벗기고 머리카락을 뜯어냈다.

"데갸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옷이! 아름다운 머리가!!!"

순식간에 독라가 된 친실장이 엎드려서 피눈물을 흘린다. 이대로 놔둔다면 위석에 큰 손상이 가거나, 심하면 위석이 붕괴하여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채굴석을 만드는데 익숙해진 남자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단계로 돌입한다.

"데갹! 아픈데스!!! 뭐하는 데스 똥닌겐!!!"

남자는 친실장의 민둥머리에 칼집을 내어 절개하고는 넓적한 데이터 케이블을 뇌에 쑤셔박았다. 몸을 흠칫흠칫 떨며 빵콘하는 친실장, 하지만 남자는 지독한 냄새에도 개의치 않고 위석탐지기로 위석이 있는 곳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복부에 위석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그부분을 다시 절개했다. 지방이 잔뜩 낀 살들 사이로 녹색의 돌이 보인다. 남자는 아까와는 다른, 굵고 둥근 케이블을 꺼내어 한쪽 끝이 위석에 부착되도록 친실장의 배 안에 집어넣고는 실장활성제를 머리와 배에 발라 상처를 아물게 했다.

연속된 고통이 끝나자 친실장은 다시 팔을 붕쯔붕쯔 흔들며 화를 냈다. 하지만 몸에서 케이블이 삐져나온 독라실장이 화를 내봐야 꼴사나울 뿐, 무서워 할 사람은 없다. 남자는 친실장의 그런 행동을 무시하고, 빵콘의 흔적을 대강 치운 후 친실장의 몸도 닦아준 뒤 친실장을 들고 안쪽의 큰 창고로 향했다.

"이제야 와타시를 대접할 마음이 생긴 데스? 하지만 고귀한 와타시에게 손을 댄건 용서할수 없는데스, 매일같이 스시와 스테이크를 바치고 여름과 겨울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데스, 그래도 오마에의 죄는 천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는 데스, 자손 대대로 와타시를 모셔도 모자란 데샤아아앗!!!"

하지만 창고에 들어서는 순간, 기세등등했던 친실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곳에는 멍한 눈을 한 실장석이 수도 없이 늘어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이 명백히 이질적이고 기괴한 광경에 멍청한 친실장조차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남자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는건 불가능했다.

남자는 친실장을 비어있는 칸에 집어넣고는, 몸에서 삐져나온 두개의 케이블을 칸의 안쪽에 있는 USB 허브에 꽂았고,

"데....."

그 순간 친실장의 의식은 날아가, 다른 실장석들처럼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짓소코인 채굴시스템을 만드는데는 흔히 낡은 철제 로커가 사용된다. 로커의 문을 전부 떼어내고 나면 성체실장 한마리가 간신히 앉아있을 정도의 크기가 나오기 때문에 공간활용에 좋다. 이 로커에 메인 컴퓨터와 연결된 USB 허브를 설치하고, 실장활성제를 주사할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공간적 준비는 대략 끝난다.

채굴석이 될 실장석에게는 일단 뇌와 위석에 각각 JMIC(짓소-머신 인터페이스 케이블)을 부착시킨다. 이를 통해 실장석의 뇌신경과 위석은 곧바로 컴퓨터와 연결되어, 컴퓨터의 명령에 따라 위석을 연산장치로 쓸 수 있게 된다. USB 규격으로 제작된 이 케이블을 로커에 설치된 허브에 꽂고, 실장활성제 링거를 꽃아 죽지 않도록 영양을 공급해주면 채굴석이 하나 완성된다.

일단 실장석이 컴퓨터와 연결되면 의식은 전부 날아가 단순한 생체 연산장치가 된다. 케이블을 뽑는다고 해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단순한 식물실장이 되어버린다. 가끔 몸을 이상하게 떨거나 의미없는 소리를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컴퓨터에서 전달된 전기신호에 따라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일 뿐, 의식을 가지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데깃.....데빗........데덱.....데덱......"

친실장도 그렇게, 인간의 이득을 위한 부품이 되어 언어가 되지 못하는 소리만을 내뱉으며 계산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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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챠, 와타시 온 데스."

"어서오는 데스 이모토챠."

6개월이 지났다. 친실장에게서 버림받은 세자매는 놀랍게도 무사히 살아남아 성체가 되었다. 대부분의 성체가 인간들을 따라간 탓에 공원에는 거의 자실장 이하의 개체만 남게 되어 오히려 안전한 공원이 된 덕분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자실장의 작은 몸으로 쓰레기장을 뒤지는건 대단히 힘든 일이었고, 고양이나 까마귀 등의 천적들에게 다른 자실장들이 잡아먹히는 모습을 몇번이나 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지만, 어쨌든 몇번의 행운에 힘입어 이 자실장들은 성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도 바뀌었다. 선진국들이 가상화폐에 대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과열되었던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웬만해서는 더이상 수익을 올리기 힘든 시장이 되었다. 짓소코인도 예외는 아니었고, 채굴사업을 접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히, 처치가 곤란해진 실장석들이 한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본래대로라면 이 실장석들은 처리비용을 부담하고 정부에서 지정한 업체에 맡겨 처분해야 하지만, 변변한 이익도 보지 못한 채 사업을 접는 사람들은 처리비용을 내면서까지 실장석을 처분하기를 꺼려했고, 무단투기가 성행하게 되었다.

"털썩"

"데..? 무슨 일인 데스???"

세자매가 살고 있는 공원에도 실장석 무단투기가 벌어졌다. '어차피 동족끼리도 잡아먹는 놈들이니 금방 잡아먹히겠지', '공원은 정기적으로 구제를 하니까 알아서 처분해 줄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공원에 폐채굴석들을 버린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오늘은 세자매의 골판지 하우스 바로 앞에 실장석들이 버려졌다. 세자매는 갑작스런 큰소리에 두려워하면서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각자의 하우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자매의 눈 앞에 보인 것은 끔찍한 형상을 한 독라들이 눈만 데굴거리며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팔다리가 꺾이고 떨어져나가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이미 의식이 파괴당해 비명도 , 눈물도 보이지 않고 몸을 움찔거리기만 하는 기괴한 독라들의 무리는 자매들에게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세자매는 서로를 꼭 껴안고 몸을 덜덜 떨면서도 독라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장녀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모토챠.....저....저걸 보는 데스...."

독라가 되고 피범벅이 되었으나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마마....?"








미지와의 조우


나는 여태껏 그 어느 인간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발을 내딛었다. 지구 외 지성체, 말하자면 외계인과 접촉한 최초의 인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퍼스트 컨택트로서는 어딘지 볼품없다는 느낌이 동시에 든다. 외계인의 비행물체가 안착한 곳은 주택가의 공원, 나는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 비행물체도 생각보다 작아 버스 정도의 크기밖에는 안되는데다가 한밤중이라 공원에는 나밖에 없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그정도의 크기를 가진 비행물체로 어딘지 모를 우주 저편에서 지구까지 날아와 고요히 착륙했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초월적인 기술력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좀 더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퍼스트 컨택트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감상을 속으로 되뇌이고 있을때. 마침내 비행물체의 문이 열리고 외계인이 걸어나왔다. 덩치는 인간과 비슷하나 명백히 이질적인 생김새. 그를 감싸고 있는 신비한 빛과 홀로그램들. 그리고 그 빛과 홀로그램을 허공에 비추어 주는, 중력을 무시하듯이 공중에 떠있는 기계장치들. 그것을 본 나의 마음 속에서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제멋대로 섞이고 나뉘어지며 요동치기를 계속하여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떨고 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외계인이 마침내 입을 떼었다. 아니, 인간과 같은 구강구조를 지니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해 '입을 떼었다'는 건 잘못된 표현일 것이다. '발성기관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발성기관에서 내는 소리는.....뜻밖에도 인간에게는 무척 친숙한 소리였다. 설마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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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말을 이해할수 있으십니까?"

"다행이군요."

번역이 되었다. 실장석용 린갈로 외계인의 언어를 번역했다.

"저희의 언어를 번역할수 있는 정도의 문명 수준이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린갈에는 그런 내용의 문장이 표시되고 있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실장석과 비슷한, 데스데스 거리는 소리 뿐이다.

물론 음색은 전혀 다르다. 실장석이 돼지 멱따는 소리 같다면 외계인은 기계음이 섞인 듯 하면서도 맑고 차분한 신비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데스데스 뿐이고, 린갈로 번역이 되는걸 보면 이 외계인은 실장석과 같은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토착생물과의 접촉이 제 임무이기에 이렇게 당신앞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놀라고 있는 것과는 관계 없이 외계인은 자기 할말만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이 무신경함은 이녀석 개인의 성격일까 종족적 특성일까.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외계인은 자기소개를 마치고 본론으로 접어들어, 인류의 역사를 근본부터 흔드는 경천동지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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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말한 것을 대강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들은 '푸른 별'인 지구와는 다른, 붉은색 대지와 녹색 바다를 가진 '적녹색 별'에서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다. 일견 날카롭고 무서워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고결하고 선한 종족이었던 그들은 3만년 전 은하 변방의 작은 행성, 지구를 관측하다 인류가 이 행성의 지배종족이 될 것임을 알았고.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바로 인류의 '파트너'가 될 인공생명체를 만들어 지구로 보내는 것.
이 인공생명체는 인간의 미적 기준에 부함하도록 인간과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훨씬 작으며, 예외없이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다. 거기에 더해 뛰어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 인간들의 곁에서 도움을 주며 문명의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고, 선량한 마음씨로 악에 빠지려는 인간들을 구원하며,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먹고 필요한 자원으로 환원시켜 줄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요정과 같은 생물이다. 외계인은 이 '요정'과 함께 했을 때 인류의 발전이 수천년은 앞당겨 질것이고, 전쟁과 기아, 재난과 같은 비극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제도 남아있었다. 지구와는 다른 환경의 '적녹색 별'의 생명체가, 그것도 한둘이 아닌 많은 숫자가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요정들에게도 수명은 있다. 죽으면 뼈와 살이 부패하고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것은 곧 외계의 유기물이 지구환경에 침투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본래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유기물이 지구의 환경과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는, 고도의 과학력을 가진 적녹색 별의 외계인으로서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어느 젊은 과학자였다. 그는 요정 그 자체가 아닌, 요정의 생명정보가 저장된 '보석'만을 지구로 보내고, 지구에 도착하면 '보석'을 핵으로 하여 지구의 유기물을 재료로 신체를 만들도록 개량을 했다. 이 방법은 앞서 말한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정보가 담긴 보석만 무사하면 별다른 설비 없이 유기물을 재료로 신체를 쉽게 재생할수 있는 등, 여러 이점이 있어 만장일치로 이 방안이 채택되었고 요정의 핵이 되는 보석들은 우주 저 너머에서 지구로 쏘아보내졌다.

"하지만 지금 지구를 보니 저희가 보낸 요정들도 없고, 문명의 발전도 예상보다 느리군요.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히, 지구에 그런 요정은 없다. 하지만 외계인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짜맞추어져 간다.

외계인의 '데스데스' 음성, 인간을 닮은 존재, 몸속에 보석을 지니고 있는 생물. 불가사의한 재생력.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데스웅?"

외계인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이녀석들, 실장석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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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데스!!! 데샤아아아아아!!!!!'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녀석, 우리집 사육실장 엘리자베스를 버리러 공원에 왔다. 이유는 뻔하다.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분충이 된 데다가 제멋대로 임신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외계인의 말을 들었을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요정? 이녀석들이? 인간의 파트너가 되어 문명발전을 촉진시킬거라고? 말도 안된다. 녀석들은 일부가 노동석으로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거나, 식용실장으로 육체를 착취당하거나, 혹은 사육실장으로서 인간에게 길러지는, 그런 수준에서 인간에게 이용당할 뿐으로, 대부분의 실장석은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는, 아니 야생동물 이하의 유해생물일 뿐이다. 하물며 인간의 파트너라니. 그럴리가.

"어...저기.....외계인씨? 그쪽이 말한 요정이란게 혹시 이녀석을을 말하는 겁니까?"

역사적인 외계인과의 첫 대화가 실장석에 대해 묻는 것이라니. 한심하다.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힘없는 목소리와 애매한 말투가 배어나왔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아닙니다! 이 추악한 생물은 무엇입니까!"

펄쩍 뛰며 부정하는 외계인. 과연 이 놈들은 외계인이 보아도 추악하게 생긴 모양이다.

"데프프프, 오마에는 뭐인 데스? 머리털이 없는걸 보니 똥노예인데스?"

"!!!"

"말라빠진걸 보니 마라도 형편없을게 분명한데스, 그래서야 밤시중은 무리겠지만 마음이 넓은 와타시가 집노예로 써주겠는 데스, 꾸물거리지 말고 스시와 스테이크나 대령하는 데샤아아아아!!!!"

가차없이 외계인에게 분충성 폭언을 날리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것을 놀란 표정으로 보고있는 외계인. 폭언에 놀란걸까? 아니, 실장석이 자신과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으니 놀란 것이겠지.

"정말로 우리 종족의 언어로 말하는군요....게다가 이 녹색과 적색의 눈....이건 지구에서 살더라도 고향별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우리들이 일부러 지정한 색입니다. 설마.....그렇다면 진짜로 이 추한 생명체가 요정....?"

외계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구인을 돕겠다는 숭고한 의도로 만들어낸 걸작 인공생명체가 이런 오만방자한 똥벌레가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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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분이 지났을까. 충격을 어느정도 떨쳐낸 외계인은 작은 휴대용 기계장치로 실장석을 스캔하며 나에게 실장석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나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실장석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었다.

20여분 정도 스캔과 질문을 반복하던 외계인이 내린 결론은 어떤 이유로 보석, 즉 우리가 말하는 위석이 이상을 일으켜 요정이 아닌 이런 추악한 생물이 되었다는 것.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적녹색 별을 적대하는 다른 외계세력의 음모일수도 있고, 미지의 우주공간을 지나오며 이상을 일으켰을수도 있고, 지구의 유기물로 몸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수도 있다. 외계인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원인을 규명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실장석이라는 생물은 외계인이 보낸 요정이 추악하게 뒤틀린 잔재라는 것이다.

어째서 지구상의 여타 생물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적녹색의 눈과 위석이라는 기관을 가졌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외계행성의 인공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어쨰서 약해빠진 주제에 인간을 깔보는가?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인간 이상의 지성과,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육체를 가진 생물이었어야 한다. 하지만 요정에서 실장석이 되며 그러한 것을 모두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하게 뒤틀린 마음이 아직도 자신들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자만심을 불어넣는다.

어쨰서 자신을 기르면 행복해진다고 말하는가? 본래 요정은 인간의 파트너로서 멘탈케어도 중요한 임무중 하나이다. 말하자면, 요정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다. 이것이 실장석의 일그러진 정신구조 속에서 자신들을 기르면 행복해진다는 식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행복회로란 무엇인가? 요정들이 죽음을 맞이할때 적어도 평온하게 잠들수 있도록 외계인이 안배해둔 심리적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실장석이 되며 이것은 실장석의 정신 대부분을 지배하여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정신병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밖에도 꽃을 통한 단성생식형 임신, 뛰어난 재생력, 부패한 음식을 먹고도 끄떡없는 소화력과 같은 대부분의 특징들은, 적녹색 별의 외계인들이 선한 의도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놓았던 것들이 이상을 일으켜 추한 방향으로 변이한 결과들이다.

"지구인 여러분들에게는 큰 잘못을 하고 말았습니다."

설명을 마친 외계인이 사과를 한다. 하지만 나는 사과를 받아줄만한 인류의 대표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는 실장석도 식용이나 노동용, 학대용 등등으로 지구문명에 공헌하고 있다. 딱히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 건에 관해서는 저희 별이 책임지고 이유를 밝혀내겠습니다. 그러려면 본성에 되돌아가 본격적인 조사가 필요한데, 그 요정.....아니 실장석을 저에게 양도하실수 있으십니까?"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녀석이다. 나는 말없이 바로 엘리자베스를 내밀어 외계인에게 안겨주었다.

"어딜 감히 똥노예가 고귀한 몸에 손을 대는 데샤!!!! 당장 엎드려서 와타시를 등에 태우고 기어가는 데스으으으으!!!!"

외계인의 손 안에서 부릿부릿 똥을 싸며 날뛰는 엘리자베스. 빵콘으로 부푼 팬티에서는 똥이 새어나와 엘리자베스를 들고 있는 외계인의 손안에 넘쳐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는....걸까? 사실 외계인의 표정은 읽기 힘들다.
어쨌거나, 축하해 엘리자베스, 너는 인간조차 하지 못한 수만광년의 우주여행을 하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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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녹색 별, 어딘가의 연구실.

"데푸우.......데푸우..........데......데뎃??"

잠에서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사지가 구속되어 알 수 없는 기계장치에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순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고귀한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길리가 없다. 그렇게 행복회로를 발동한 엘리자베스는 거만한 표정을 짓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떤 분충이 와타시를 이렇게 묶은 데샤아아아아아!!!!"

소리에 반응하듯이 방 한쪽 구석에서 외계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모습을 드러낸다.

"일어났습니까. 그럼 이제 시작하지요"

외계인이 익숙한 움직임으로 홀로그램 패널을 이리저리 조작하자 엘리자베스가 묶여있는 기계장치가 방의 중앙으로 옮겨지고, 그를 감싸듯이 다른 기계들이 배치된다.

"데데...데데?? 이게 뭐인데스??"

"저희는 당신들이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타락했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당신들.....실장석이라는 종족을 '교정'해야 하고요."

말하면서도 외계인은 패널을 계속 조작한다. 작은 구동음이 몇번 들리더니 이윽고 사방에서 기계팔이 뻗어나와 엘리자베스에게로 향한다.

"뭐...뭐뭐 뭐인데스!!?? 저리 치우는데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온몸을 떠는 엘리자베스, 하지만 기계 팔은 무감정하게 엘리자베스의 자랑이었던 호화로운 핑크색 사육실장복을 벗겨낸다.

"데갸아!!!! 세레브한 와타시의 옷이!!!"

상황이 이쯤 되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엘라자베스의 총배설구가 쉽게도 열려 운치가 쏟아지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총배설구를 감싸는 형태의 관이 엘리자베스의 하반신에 박힌다. 그 충격에 엘리자베스는 아픔을 느끼고 움찔거리지만, 고통을 삭힐 새도 없이 다른 기계팔들이 엘리자베스에게로 날아든다.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엥!!!!!"

방금전까지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눈물콧물을 짜며 울어대는 엘리자베스. 하지만 외계인은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일단 보석....아니 위석이라 했던가요? 그것을 먼저 적출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은 세포 단위로 분해될 것이고, 위석은 분자 하나 단위로 분해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그 과정에서 전혀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고통 또한 검증의 대상이기 때문에, 안됐지만 고통을 모두 견뎌주셔야겠습니다.

외계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수많은 기계팔들이 뻗어나와 엘리자베스에게 달려든다. 어떤 것은 머리털을 뜯고, 어떤 것은 몸을 쿡쿡 찔러 세포를 채취한다. 레이저는 배를 가르고, 다른 기계팔은 그 배에 들어가 위석을 뽑아낸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고통에 행복회로가 발동하거나 위석이 쪼개질만도 하건만. 엘리자베스의 정신은 고통에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현실에 묶여있다.

"당신이 잠들었을 때 행복회로를 꺼두고 위석이 깨지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검증은 육체조사가 끝난 뒤에 할 것입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육체적 학대 후에 정신적 학대가 있을 것을 예고하는 말이었지만, 이미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당신은 죽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타락의 원인을 밝혀내고 교정이 가능한지 알아내기 전까지는요."

창조주인 적녹색 별의 외계인에게 있어, 실장석의 생사는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구에서는 수복불가능한 죽음으로 여겨지는, 소위 '파킨사' 한 실장석이라도 적녹색 별의 기술로는 어렵지 않게 살려낼수 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지구의 학대문화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분명 야만적인 행위이지만, 열정을 수반하는 마이너스적 감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고 흥미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모쪼록, 이번 연구가 끝나면 학대 연구에도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엘리자베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데........."








보물사냥꾼



"두루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호사가들이 늘 하는 말이다. 과거 두루산 아래에는 일본의 군사기지가 있었고, 거기서 연결된 벙커에 막대한 양의 황금을 숨겨두었지만 패망하면서 미처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치를 따져보면 당연하다. 어째서 그 막대한 재산을 전쟁비용으로 쓰지 않고 패망할때까지 한반도에 그냥 보관했는가? 허술하게 꾸며낸 뜬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이러한 전설을 굳게 믿는 사람은 있다. K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물 사냥꾼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를 자칭하며 20여년간 국내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3년 전부터 두루산의 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보물탐사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소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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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차"

K는 폐쇄된 등산로의 철조망을 넘고 있다. 두루산의 보물을 찾기 시작한지 3년, 그동안 자기 발로 디뎌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두루산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남은 곳은 두루마리 공원에 접해 있는, 이 폐쇄된 등산로 뿐이다.

등산로는 일찌기 개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고, 한편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기에 자연히 보물이 있을 가능성이 낮다 생각되었고,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그동안 탐사를 하지 않았으나 3년간 아무 곳에서도 보물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불법행위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등산로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오늘은.....계곡 아래로 가볼까.....'

그러나 등산로 탐사도 벌써 3개월째 소득이 없다. 모험심에 불타던 K의 눈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하나, 포기하고 다른 건수를 찾을까. 고민하며 힘없이 목적했던 계곡 아래로 내려가던 K에게 무언가가 보였다.

동굴이다. 크지는 않다. 입구의 높이는 1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 좌우폭은 그보다 좁아 성인 남성이라면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 크기이다. 그것을 본 K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딱 한사람만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동굴. 어쩌면 저것이 비밀의 통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동굴앞까지 뛰어간 K의 눈에, 전혀 엉뚱한것이 비쳤다.

"데스우......."

실장석이다.
물론 실장석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짐승, 산에 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것도 없다. 애초에 산에서 군락을 이루며 사는 산실장이라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K의 앞에 있는 실장석들은 산실장과는 다르다. 팔이 없는 놈, 다리가 없는 놈, 몸 한쪽이 끔찍한 화상으로 뒤덮힌 놈, 철사로 눈이 꿰매어진 놈, 뇌가 파괴되어 연신 침을 흘리며 팔을 흔드는 놈.......하나같이 비참한 모양새다. 명백하게 인간의 학대에 의해 몸이 망가진 녀석들이다. 겉보기에 멀쩡한건 한쪽 구석에서 레후레후 우는 저실장 한마리와, 지금 K의 앞에서 손을 흔들며 뭐라 외치는, 상당히 늙은 실장석 한마리밖에는 없다.

인간을 접했을때의 행동거지도 보통의 실장석과는 다르다. 산실장이면 무기를 들고 대열을 짜서 방어준비를 하며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들실장이라면 일단 아첨을 하거나 총배설구를 보이거나 탁아를 하거나......현대인이라면 익숙히 보았을 그런 행동을 할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K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벌벌 떨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실장석들이 살아온 삶을 유추할수 있다.

K는 기분이 나빠졌다.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끔찍한 모습의 실장석들을 보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실장석들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을 인간의 잔인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돌아서서 떠나갈수도 없는 노릇. 불쾌하더라도 참고 이 동굴이 보물로 통하는 비밀통로인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후우....."

K는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꺼내 린갈 앱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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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격의 노실장은 K에게 여러가지를 말해주었다.

자신은 벌써 여섯번이나 이곳에서 겨울을 보냈다는 이야기, 공원에 갈때마다 다치고 아픈 실장석들이 있으면 데려와 같이 살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오래 살지 못하거나, 분충성이 발현되어 동굴을 뛰쳐나갔다는 이야기. 이제 늙어서 언제 위석이 깨질지 모르는데 동굴에는 절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실장석들만 있다는 이야기 등등등.

K는 그 말을 듣고 실장석 중에도 이렇게 고결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한편, 머리 속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하나 떠올렸다.

"그런데 너는 어쩌다 여기서 살게 된거냐?"

".......와타시는 원래 사육실장이었던 데스."

노실장은 본래 사육실장이었다. 특별히 비싼 고급품도 아니지만, 학대용의 싸구려도 아닌, 대중적이고 적당한 가격의, 그래서 흔해빠진 중급의 사육실장. 그래도 충분한 수준의 훈육은 완료되어 있었고, 주인도 정성껏 보살폈기에 성체가 될때까지 편안한 실장생을 보낼 수 있었고, 성체가 된 후에는 아이를 낳아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파멸의 시작이었다. 주인은 사실 학대파로, 친실장 앞에서 자실장을 학대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지금까지는 그저 건강한 자실장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실장에게 사육실장의 삶을 맛보여주는 '올리기' 기간이었을 뿐이다.

결국 본색을 드러낸 주인의 끔찍한 학대 속에서 노실장의 첫 자들은 이런 세상에 자기를 태어나게 한 어미를 원망하며 모조리 죽어버렸고, 노실장은 그 과정에서 위석에 손상이 가 불임실장이 되어버렸다.

주인에게 있어 자실장을 낳지 못하는 성체실장 따위는 별 가치가 없다. 어디까지나 친자관계를 이용한 정신적 학대를 하고싶을 뿐, 성체에게 직접 육체적 학대를 가하는 취미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육실장을 정식으로 처분하자면 비용이 든다. 그렇기에 주인은 밤을 틈타 노실장을 공원에 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버려진 와타시는 공원의 동족들에게 쫓겨다니다 산으로 들어온 데스, 무서웠던 데스, 괴로웠던 데스, 하지만 꾹 참고 한참을 헤매다 이 동굴을 발견한 데스, 공원에선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족의 습격도 없고, 튼튼한 데스"

노실장이 버려질 당시는 아직 등산로가 폐쇄되기 전이다. 어떤 사람들은 등산하는 도중 발생하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했고,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은 종종 노실장이 자리잡은 동굴 앞까지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페트병이나 일회용 도시락 박스, 더러운 양말이나 티셔츠 등이 섞여있어 노실장은 그런 것들을 그러모아 산중 동굴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력을 되찾은 노실장은 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음식 때문은 아니다. 냉기가 올라오는 동굴의 돌바닥 위에 깔 신문지나 골판지 등의 보온재료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원을 드나들며 노실장은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와 죽은 아이들처럼 인간의 학대를 받고 버려진 실장석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학대받아 아프고 다친 동족들을 보면 와타시의 자가 생각나서 그냥 둘 수 없는데스. 가슴이 아픈데즈우...오로롱 오로롱"

그 후는 앞에서 들었던 대로다. 노실장은 학대를 당하거나 선천적 기형으로 버려진 실장석들의 마마가 되기로 하고, 그것들을 데려다 길렀다. 상태가 심각해 먼저 죽은 녀석들도 많고, 몸이 회복되자 분충성이 튀어나와 동굴에서 뛰쳐나간 후 행적이 묘연한 녀석들도 많다. 노실장은 그렇게 장애실장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이곳에서 6년간이나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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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씁쓸했다. 아무리 세간에서 해수 취급 받는 실장석이라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건 어쩔 수 없다. K는 노실장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잠시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노실장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여기서 겨울을 6번 보냈다고?"

"그런데스"

"그동안 이 동굴로 들어가거나 나온 사람이 있었어?"

"데........"

머리가 나쁜 실장석이다. 6년씩이나 되는 기간의 기억을 되짚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노실장은 이마가 빨개지도록 한참 생각을 하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없을 것인 데스. 아마도....."

노실장의 말을 신뢰한다면, 적어도 6~7년동안은 이곳에서 보물을 탈취해 나간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가 진짜 보물창고로 통하는 길일때의 일이지만.

"그럼 이 동굴 안쪽에는 뭐가 있는지 알고 있어? 어디까지 들어가봤어?"

"안으로 좀 들어가면 물이 흐르는곳이 있는 데스, 와타시타치는 거기서 운치를 누고 물을 떠 마시는데스. 하지만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데스. 깜깜하고 미끌미끌해서 위험하기 때문에 깊이 가본적이 없는데스."

"흠....."

K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5분가량이 지나서였다.

"좋아, 이렇게 하자. 너희가 날 좀 도와줘라."

"데뎃??"

"나는 보물을 찾으러 온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동굴 안쪽에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너희가 나 대신 확인해 줘. 이 동굴은 내가 들어가기엔 조금 좁거든. 만일 보물을 찾으면 너희들의 몸을 고쳐주지, 보물이 없으면.....그래도 겨울을 날만큼 충분한 밥과 따뜻한 담요정도는 주마."

어쩌면 딱히 실장석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실장석들을 모두 내쫓고 잡다한 살림살이를 모두 걷어치우면 직접 들어가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실장석과 협력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말을 들은 실장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실장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어쩌면 K가 던진 한마디에 행복회로가 가열되어 급격히 분충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K가 생각하기에, 실장석들의 눈빛은 그런 저속한 탐욕이 아닌, 좀 더 절박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눈으로 보였다.

'몸을 고쳐준다고 한 데스?'
'다시 머리털과 옷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스우??'
'속지 마는 데스! 닌겐이 한 짓을 잊은데스???'
'프니프니 레후~'
'그래도 저 닌겐은 착해보이는데스......'
'어차피 더 잃을것도 없는 데스. 뭐를 두려워 하는데스!'

실장석들이 자기들끼리 의논을 시작한것을 보고, K는 잠시 물러나 담배를 빼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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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타시가 하는데스!!!"

결국 제안에 응해 노실장이 나섰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늙긴 했어도 몸과 정신이 모두 멀쩡한건 그녀 정도니까.

K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배낭에서 등산용 로프를 꺼내 노실장의 허리춤에 묶었다. 노실장은 순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K가 안전을 위해서 한쪽을 허리에 묶고 한쪽은 자기가 쥐고 있을거라고 말해주자 안심한듯이 크게 숨을 쉬었다. K는 그 모습을 보고 이어서 펜라이트를 쥐어주었다. 커다란 랜턴을 실장석이 들고 다니기에는 무리고, 아마 이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좋아, 그럼 그걸로 동굴을 비추면서 쭉 걸어가, 뭔가를 발견하거나 위험해지면 이 줄을 당겨. 오케이?"

노실장은 K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동굴 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평소 자주 이용하던 물가를 지나, 위험이 도사린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노실장의 이마에 땀이 맻히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고 가야하는 데스, 실패하면 안되는 데스, 확실하게 한발한발 내딛으면 넘어질일 없는 데스'

'이것만 성공하면.....자들과 행복해질수 있는 데스, 자들이 예쁜 본모습을 찾는데스, 겨울을 편히 날수 있는 데스'

깊은 물을 건너며 시작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마음속 다짐이 점차 행복회로의 발동으로 넘어갈 무렵,

"데?"

노실장이 이끼낀 돌을 밟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데갸아아아아아!!!!!"

실장석은 신체구조상 물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때문에 물살이 별로 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실장은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차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다.

"데에엥!! 데에엥!! 살려주는 데스 닌겐상!!!"

노실장의 비명이 동굴에 메아리친다. K도 허리에 묶어둔 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고 쥐고있던 줄을 급히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봐요! 당신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사람의 목소리에 놀라 K는 그만 줄을 놓치고 말았다. K는 소리가 난 쪽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줄을 잡으려 했으나 줄은 속절없이 동굴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여기 입산금지인거 몰라요!!?? 당장 이리 오세요!!"

나타난 사람은 공원의 직원이었다. 그는 K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거칠게 팔을 붙잡고 K를 끌어내려 했다.

K는 곤혹스러웠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다. 노실장을 구해야 하지만 직원을 뿌리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도 없다.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급박한 상황이다. 아니, 사정을 설명한다고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닌겐상........살려.....데....."

실랑이가 계속되는 사이에도 노실장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생명줄은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K는 힘이 빠져 직원에게 끌려나간다. 동굴에 남은 것은 한무리의 장애실장들과 저실장 한마리 뿐. 그들은 인간이 사라진 동굴 입구와 마마가 사라진 동굴 안쪽을 번갈아 보다 이윽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