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텟테레-!”
자실장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면서 큰 소리로 울었다. 커다란 손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그녀를 집어 들었다. 숨만 겨우 쉬고 있던 자실장을 꼭 잡고 축축하게 전신을 핥은 뒤 옆자리에 앉혔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자실장은 양 손으로 두 눈가에 남은 점막을 떼어냈다.
희미했던 눈이 조금씩 빛을 찾는다. 바로 앞의 물구덩이에 아직도 떨어져서 방금의 자신처럼 손발을 꾸물거리는 실장들. 그들을 순서대로 집어서 핥고 있는 마마. 마마의 머리 위로 햇살이 얇은 나뭇잎을 뚫고 자실장의 몸을 말려주고 있다.
“마마! 어서 핥아주는레치!”
“레후~ 우지챠도 핥아주는 레후~”
마마가 열심히 핥고 있지만 자들은 훨씬 많았다. 눈을 뜬 자실장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조심조심 물웅덩이로 들어가서 아직 마마가 핥아주지 못한 이모토챠들을 건져서 어설프게나마 핥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레에... 마마인레츄?”
“아닌테츄. 와타치는 삼녀인테치.”
“레? 와타치가 차녀가 아니었던 레치?”
“이모토챠는 육녀 엄지인테치. 기억 못하는 테치? 마마가 노래를 불러줄 때 장녀랑 차녀 오네챠들처럼 똑똑한 자가 되라고 했던 테츄.”
삼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열심히 점액을 핥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몸에 힘도 잘 안 들어갔지만 삼녀는 똑똑한 자로 태어나 마마를 도와줘야 한다는 태교를 기억하고 있었다. 삼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서 마마가 다른 자들을 전부 핥기 전에 육녀의 점액을 모두 핥아줄 수 있었다.
태어난 자들은 모두 여섯이었다. 혀에 잔뜩 영겨붙은 점액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는 삼녀만 자실장이고 사녀부터 육녀까지는 엄지실장, 나머지 둘은 구더기였다. 물가 옆에 앉아서 꼬물대고 있는 자들을 천천히 세보던 친실장은 엄지들을 물가로 떠밀었다.
“자들은 옷씨랑 머리카락씨에 붙은 점액을 다 씻고 가는 데스. 잘 씻지 않고 돌아가면 소중한 옷씨랑 머리카락씨를 못쓰게 돼서 독라가 되는 데스.”
“레에! 독라가 되는 건 싫은레치!”
“마마, 알겠는레츄!”
친실장의 말에 기겁한 엄지실장들이 물가로 달려가서 머리카락을 열심히 씻었다. 삼녀는 이미 육녀를 핥아줬을 때 옷이랑 머리카락에 남아있던 점액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구더기 한 마리를 들고 물가로 내려갔다.
“레후! 오네챠의 프니프니는 기분 좋은 레후!”
“우지챠는 가만있는 테츄. 잘못하면 물속에 빠져서 큰일나는테치.”
“치사한레후! 우지챠도 프니프니해주는레후!”
삼녀는 구더기 한 마리를 씻긴 뒤 자신도 씻겨달라고 보채는 구더기도 들고 씻겨줬다. 원래대로라면 친실장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친실장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들이 다 씻은 걸 확인한 친실장은 자들이 뛰어내리기 힘든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손수 자들을 전부 내려줬다.
“이제 집으로 가는데스. 한눈팔고 미아가 되면 분충인데스.”
“치프프, 와타치는 그런 멍청한 분충은 아닌레츄!”
“레후? 우지챠도 분충이 되는 레후?”
“걱정하지 마는테츄. 오네챠가 우지챠랑 같이 가는 테치.”
엄지실장들이 재빨리 친실장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삼녀는 구더기들을 양손에 꼭 안고 맨 뒤에서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혹시나 집으로 가는 길에 엄지실장이 다른 것에 한눈을 팔아서 낙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뭇잎씨들이 알록달록해서 예쁜레치! 와타치타치의 집도 알록달록 예쁜레치?”
“바람씨도 기분 좋게 부는 레치~ 나뭇잎씨도 바람따라서 춤추는레치~”
“테챠앗! 멋대로 돌아다니면 분충인 테치!”
“레엣!”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신난 엄지실장들은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뒤에서 삼녀가 위협하지 않았다면 한 마리 정도는 이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테에... 마마는 와타치타치를 낳느라 엄청 피곤한 게 분명한 테치. 집에 가서 한숨 자고나면 뱃속에 있었을 때처럼 상냥한 마마로 돌아오는 테치.’
삼녀는 친실장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 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뱃속에 있을 때 어서 나와서 이모토챠들과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태교를 하던 마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오네챠. 와타치가 우지챠를 안고가도 되는 레치?”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삼녀를 도운 자는 그녀가 점막을 핥아준 육녀 뿐이었다. 하지만 엄지인 육녀에게 구더기를 안고 빠른 속도로 걷는 건 힘든 일이었는지 자꾸만 뒤뚱거리면서 일행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삼녀는 그런 육녀의 등을 남은 손으로 밀어주면서 따라왔다. 친실장은 여전히 방관하고 있었고 남은 엄지들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처럼 치프프프 웃어댔다.
“여기가 집인데스.”
“레에... 알록달록은 어디간 레치?”
“들어오면 알게되는데스.”
일행의 가장 앞에 선 친실장이 가리킨 곳에 집은 없었다. 풀잎으로 무성한 언덕 사이에서 낮은 각도로만 봐야 겨우 보이는 구멍이었다. 어딜 봐도 집이 없어서 당황한 자들을 본 친실장이 먼저 그 구멍 아래로 가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빈손의 엄지들이 먼저 친실장의 손에 매달려 굴 속으로 들어가고 구더기까지 올려 보낸 뒤에야 자실장은 마지막에 올라갔다.
“레에... 눈씨가 깜깜해진레치...”
“오네챠, 무서운레츄...”
환한 바깥에 있다가 어두컴컴한 안쪽으로 들어오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엄지들은 자기들끼리 껴안고 육녀만 삼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구더기는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눈씨가 깜깜해졌다면서 운치를 싸댔다. 삼녀는 굴 가장 안쪽에서 나는 냄새가 운치냄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장녀, 차녀! 이리로 와서 이모토를 봐주는 데스.”
“알겠는테치!”
“이모토가 온 테치?”
친실장의 부름과 동시에 안쪽에서 검은 형체가 둘 나타났다. 장녀와 차녀라고 불린 자실장들은 방금 태어난 실장들과 달리 조금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엄지는 아직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장녀와 차녀에게 들린 이후에도 무서운 것처럼 떨고 있었다. 장녀와 차녀는 엄지실장이 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턱 너머로 자매들을 옮겼다. 삼녀도 그걸 보고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육녀와 구더기들을 옮겨 놨다.
“마마, 목욕은 누구까지 하는테치?”
“와타치타치 목욕하는레치?”
“아와아와인레치! 안에 들어가면 알록달록이 있다는 마마 말이 사실인레치!”
“우지챠는 목욕도 좋지만 프니프니가 더 좋은레후~”
목욕이라는 단어에 엄지들과 구더기가 신난 것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까 물속에서 태어나서 점액을 씻어내긴 했지만 먼 길을 걸어오면서 다시금 지저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실장이라는 생물은 원래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잠시 턱을 감싸면서 고민하던 친실장은 내심 목욕하는 걸 기대하고 있던 삼녀를 뒤로 슬쩍 밀어냈다.
“삼녀만 빼고 전부 목욕하는데스.”
“레프프! 오네챠는 아와아와 못하는레치?”
“레에... 와타치는 오네챠랑 같이 목욕하고 싶은 레츄.”
“프니후?”
삼녀는 자기 쪽을 돌아보는 육녀를 다른 엄지 옆으로 밀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마마의 말은 절대적이다. 원래대로라면 자실장인 삼녀가 먼저 씻어야 하지만 마마가 엄지랑 구더기부터 씻으라고 한다면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실장까지 씻기에는 물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기는 자매들이 다 씻고 난 다음에 혼자서 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목욕하려면 가장 먼저 뭘 해야하는데스?”
“당연히 옷씨를 벗어야 하는레치!”
“역시 와타시의 자는 똑똑한데스. 다들 옷을 벗어서 삼녀에게 맡기는데스.”
“치프프프. 목욕도 못하는 똥오네챠는 뭐하는레치? 빨리 와타치의 옷씨를 드는 레치!”
아까는 목욕을 못한다고 했을 때는 비웃기만 하던 엄지들이 이젠 노골적으로 굴었다. 몇몇 엄지들은 옷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삼녀가 옷을 갈무리하는 동안 알몸이 된 엄지들이 구더기의 포대기도 벗기려고 들었지만 친실장이 가로막았다.
“우지챠의 포대기는 목욕하러 가서 마마가 직접 벗기는데스. 잘못하면 우지챠가 다칠수도 있는데스.”
“마마가 직접 씻겨주는레후? 기쁜레후!”
“이제 목욕하러가는데스. 삼녀는 옷을 들고 따라오는데스.”
구더기 둘을 안고가는 친실장의 뒤로 알몸뚱이 엄지 셋이 쪼르르 따라갔다. 그 뒤에 삼녀가 붙고 장녀와 차녀도 삼녀에게 바짝 붙어서 따라왔다. 그들은 점점 굴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삼녀는 중간중간에 비뚤어진 옷가지들을 다시 잡느라 친실장과 점점 멀어졌지만 그 때마다 차녀와 장녀가 옆에서 기다려줬다. 그러다 친실장이 저 멀리 보일 정도가 되자 차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마에가 삼녀인테치? 운도 좋은테츄.”
“테? 운이 좋다는 건 무슨 소리인 테치?”
“곧 알게 되는 테치.”
“레챠아아아악!”
차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지의 비명이 들렸다. 깜짝 놀란 삼녀가 곧장 뛰어가려고 했지만 옆에 서있던 장녀가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삼녀가 떨어트린 옷가지를 몇 개 주워들어서 자신이 들었다.
“소중한 옷씨를 떨어트리면 안되는테치. 삼녀챠.”
“하지만 이모토타치의 비명이 들린테치!”
“이모토타치? 누구를 말하는테치? 우리 식구는 삼녀가 막내인테치.”
“테에?”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은 테치.”
삼녀는 장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녀와 차녀에게 이끌려 친실장이 말한 목욕장소에 도달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원래 엄지들의 머리에 붙어있어야 하는 머리카락만 가득했다. 친실장은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구더기를 구덩이로 집어넣고는 자실장들에게 오라는 것처럼 손짓했다.
“레에엥... 레엥...”
“레갸아아악!!! 똥마마! 당장 와타치를 여기에서 꺼내는레치!”
“아와아와는 어디간레치! 운치목욕이랑 목욕도 구분 못하는 똥마마는 병신인레치?!”
“레후! 운치가 가득한레후! 여기가 천국인레후?”
아까까지 같이 걷고 있던 자매들이 독라가 된 채 구덩이 속에 있었다. 구더기는 뭐가 좋은지 쌓여있는 운치 끝자락에서 포식을 하고 있었고 엄지 두 마리가 구덩이 위쪽을 보면서 마구 소리 지르고 있었다. 친실장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삼녀를 쓰다듬어줬다,
“잘 듣는데스. 원래 가을에 태어난 자는 자가 아닌데스. 오마에도 저기에 있어야 하지만 오마에는 와타시가 자실장일 때처럼 똑똑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자인데스. 그래서 특별히 자로 들이는 데스.”
“테에...”
“옷은 장녀와 차녀에게 맡기고 마마를 따라오는데스.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야 하는데스.”
구덩이 끝자락에서 울고 있는 육녀를 보고 있던 삼녀는 그 말에 얼른 일어났다. 아직까지는 연민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아까와는 달리 삼녀의 손을 꼭 붙잡은 친실장은 굴을 이리저리 구경시켜줬다. 아까 엄지들이 ‘목욕’을 하러 간 굴의 가장 깊은 곳은 운치굴이었다. 거기서 조금 앞으로 나온 곳은 겨울에 쓸 잠자리라고 했다. 친실장은 그곳에 아까 엄지들에게 뜯은 머리카락으로 순식간에 삼녀가 잘 공간을 만들었다. 운치냄새는 나지만 겨울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무조건 가장 낮은 곳에 잠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친실장은 말했다.
“겨울에는 여기에서 지내는데스. 위에서 짐을 다 내리면 여기도 잘만한 침실이 되는데스.”
“위에도 굴이 있는테치?”
“다른 때에는 위에서 자는데스. 하지만 주의하는데스. 옷씨에 싸둔 식량은 와타시의 허락 없이 건들면 안 되는데스.”
굴에는 삼녀가 하면 안 되는 것이 많았다. 식량은 물론이고 이층에 있는 커다란 돌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친실장의 허락 없이는 입구에 있는 턱을 넘어가면 안 되고 그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 창은 친실장과 장녀만 들 수 있다고 했다. 삼녀에게 허락된 건 방금 친실장이 만든 잠자리와 그 근처에서 굴러다니던 찌그러진 초록색 공이 전부였다.
“여기는 오래가는 딱딱한 식량을 모아주는 곳인데스. 겨울에는 여기에서 밥을 만드는데스.. 옆에 있는 나뭇가지는 옷씨를 말리는 곳인데스. 겨울에는 옷씨가 젖었을 때 빨리 말려야 하는데스. 안 그러면 아삭아삭이 되는데스.”
“와타치의 옷도 젖어있는 테치.”
“지금 나가야하니 상관없는데스. 굴에 뭐가 있는지는 다 외운데스?”
삼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친실장은 역시 와타시의 어릴 때를 닮아서 똑똑하다면서 쓰다듬었다. 평범한 자실장이라면 방금의 일은 까맣게 잊고 베시시 웃으면서 마마에게 애교를 부리겠지만 불행히도 삼녀는 너무 기억력이 좋았다. 언제라도 친실장의 심기를 거스르면 이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삼녀는 부르르 떨기만 했다.
“추운데스? 밖에 나가서 햇살씨를 쬐면 추위도 날아가는데스.”
친실장은 삼녀를 끌고 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삼녀를 이끌고 옆으로 빙 돌아서 완만한 쪽으로 굴이 파져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친실장은 아까와는 달리 삼녀를 소중한 것처럼 품에 안은 채로 움직였다. 가을이 되었지만 아직도 초록빛을 잃지 않은 언덕 속에 숨어서 움직인 모녀는 금방 언덕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잘 보는데스. 여기가 와타시타치의 가족이 사는 곳인데스.”
“테에... 풀씨 때문에 잘 안 보이는 테치.”
그 말을 들은 친실장이 삼녀를 자기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그러자 자실장 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풀들 너머 내려다본 풍경에는 온갖 색채가 가득했다. 울긋불긋 피어나는 나무들과 점점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초원. 그 너머에는 시릴 정도의 푸른 빛깔이 몇 번이고 하얀 거품을 뿜어내면서 커다란 바위와 모래사장에 자신을 부딪치고 있었다.
“마마의 마마, 그리고 그 마마의 마마는 여길 섬이라고 했던데스.”
섬. 삼녀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광경에 비하면 간결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제부터 살아갈 곳이기도 했다. 저 위에 떠있던 햇살씨가 조금씩 내려오자 친실장과 삼녀도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친실장은 내일 먹을 것을 구하러 가야하니 일찍 자야 한다면서 삼녀에게 젖을 먹이고 겨울 잠자리에 눕혔다.
잠자리에선 아직까지도 희미한 육녀 엄지의 냄새가 났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던 삼녀가 운치굴의 뚜껑을 열었을 때 육녀는 구더기 한 마리를 안은 채 운치굴 구석에 쪼그려서 간신히 자고 있었다. 삼녀는 육녀가 깨어나서 올려다보기 전에 얼른 운치를 싸고 운치굴 뚜껑을 덮었다. 자리로 돌아온 삼녀는 잠자리에서 나는 냄새가 운치냄새가 분명하다면서 억지로 코를 막고 나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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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래오래 먹는 걸 모으러 가는데스. 마마가 하라고 한 일은 다 한 데스?”
“운치는 싸고 나온테치!”
“주머니도 챙긴테츄.”
굴 밖에서 차녀와 삼녀를 데리고 나온 친실장이 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됐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자들이 들고 있는 주머니는 어제 위층에서 가져온 여분의 자실장용 두건이었다.
“움직일 때는 초록색 풀에 숨어서 움직이는데스. 파닥파닥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엎드려서 꼼짝하지 말아야 하는데스. 뛰어서 도망가던 마마의 오네챠들은 다 죽고 엎드렸던 마마만 살아남은데스.”
먹이를 구하러 나서기 전부터 친실장은 계속 겁을 주었다. 차녀는 이미 익숙한 것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삼녀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친실장의 뒤를 따라갔다. 먹이를 구하러 간 일행은 굴에서 한참 떨어진 나무 아래쪽의 도랑까지 걸어갔다. 처음 나오는 삼녀는 친실장의 뒤꽁무니만 보고 있다가 그녀가 고개를 숙이면 재빨리 풀숲에 엎드린 덕에 어리버리하다가 날짐승에게 채가지는 일은 없었다.
“마마, 장녀 오네챠는 같이 안 가는테치?”
“장녀는 이제 곧 중실장이 돼서 굴자리를 알아보러 가야하는데스. 겨울이 와서 땅씨가 꽝꽝해지기 전에 굴을 파야 봄에 독립할 수 있는데스. 마마도 그렇게 독립한데스.”
“테에... 그럼 와타치도 봄이 되면 굴자리를 알아보러 나가야하는테치?
차녀는 장녀보다 한 계절 늦게 태어났다. 원래 장녀 말고도 다른 자매들도 있었지만 친실장이 아직 미숙한 시기여서 그런지 전부 죽고 장녀만 남았다. 그 이후로 친실장은 자를 아무렇게나 많이 낳아봐야 자신도 힘들고 먹거리 구하는 것도 더욱 힘들고 자를 모조리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차녀를 제외한 엄지랑 구더기는 전부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와타치는 마마랑 사는 게 좋은테치. 그냥 마마랑 살면 안되는테츄?”
“친실장이 되면 지금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이 먹는데스. 독립하지 않고 굴에 머물렀다간 일가실각인데샤! 하지만 굴 없이 독립하면 길쭉길쭉씨나 왕왕씨가 물어가서 슬픈 일을 당하기 때문에 중실장 때 열심히 굴을 파야하는데스.”
“테에... 와타치는 힘든 굴파기는 싫은테츄. 운치굴에 있는 독라노예에게 시키면 안되는데스?”
“좋은 생각인데스. 그러면 차녀가 독립할 때 운치굴에 있는 엄지 한 마리를 데려가게 해주는데스. 노예처럼 부리고 다 쓰면 우마우마로 만드는데스.”
“테?”
그 말을 들은 삼녀는 운치굴에서 쭈그린 채로 자고 있던 육녀를 떠올렸다. 하지만 삼녀에게 아직 독립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평범한 자실장이 친실장이 되어서 독립하는 데에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풍족한 생활환경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낸다면 기간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야생에서 생활하는 실장석 중에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실장석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운치굴에 있는 자들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허기를 해결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성장하지 못한다. 구더기는 고치를 틀지 못하고 엄지는 자실장으로 커지지 못한다. 먹은 게 없으니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탈출하는 것도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삼녀가 꺼내주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엄지는 운치굴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육녀 엄지챠... 조금만 기다리는테치. 와타치가 친실장이 되면 가장 먼저 육녀랑 나가는테치.’
아직도 삼녀는 자신의 다리 옆에서 꼬옥 기대있는 육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마마의 다리 밖에 오지 않는 자신의 작은 키보다 훨씬 작은 육녀 엄지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인데스. 마마는 저기에서 먹을 걸 찾을 테니 자들은 여기서 까만 열매를 줍는데스. 아니면 근처에 떨어진 씨앗을 주워도 좋은데스. 그러다 파닥파닥씨의 소리가 들리면 최대한 빨리 옆에 풀에 가서 숨는데스.”
“테에... 까만 열매는 딱딱하고 우마우마하지 않아서 싫은 테츄아...”
차녀는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친실장의 말대로 옆에 딱 붙었다. 의젓한 장녀에 비하면 차녀는 불만이 많기는 했지만 친실장의 말은 잘 들었다. 그 이유는 차녀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친실장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이 어떤 꼴이 됐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마아마한 것을 내놓으라고 마마를 위협하다가 아마아마해진 분충 엄지도, 마마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는데도 알록달록한 나비에 정신이 팔려 돌아다니다가 길쭉길쭉씨에게 물려서 얼굴이 알록달록해진 병신오네챠도 전부 친실장이 한 말을 듣지 않아서 죽었다.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본 차녀는 다른 건 몰라도 친실장이 하는 말 만큼은 꼭 지켰다. 다른 자실장과 별다를 거 없는 차녀는 그래서 살아남았다.
“삼녀챠, 이 열매가 더 우마우마한테치. 와타치랑 그 열매랑 바꾸는테치.”
“그럼 오네챠가 먹는 게 더 좋지 않은테치?”
“시끄러운테치. 얼른 바꾸기나 하는테치.”
“알겠는테치.”
그리고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차녀는 겉으로 만지기에는 조금 더 말랑말랑한 열매를 삼녀에게 건네주고는 딱딱한 열매를 받았다. 까만열매는 말랑말랑할수록 썩은 것이고 그 때문에 쓴맛이 강해 먹을 게 못 되는 열매였지만 그걸 모르는 삼녀는 얌전히 차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테에... 두건이 가득가득한테치.”
가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는 늦가을. 당연히 멀쩡한 열매는 이미 다 새가 먹어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건 대부분 썩은 것이었다. 삼녀는 자신이 들고 온 두건을 다 채우고도 바닥에 남은 열매를 자기 입에 밀어 넣었다. 빨리 자라서 독립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테프프프...”
그 모습을 슬쩍 본 차녀가 삼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웃었다. 삼녀가 쓴 열매를 먹고 분충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뒹굴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차녀는 이전에도 자신의 맘에 들지 않던 자매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한 적이 있었다. 차녀의 다음 출산에 처음으로 태어났던 삼녀는 장녀만큼이나 똑똑하고 착했다. 심지어 친실장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는 점에서는 장녀보다 나을지도 몰랐다. 마마도 장녀도 삼녀를 대견한 자라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차녀는 불안해졌다.
친실장이 전 삼녀를 낳았던 것은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이제 곧 가을이 오고 겨울이란 것이 온다는 것을 마마에게 들어서 안 친실장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더욱 엄격해진 마마가 되었고 그 때문에 자신이 언제든지 슬픈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차녀는 분충과 엄지들이 전부 독라가 된 다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죽을 거라면 배터지게 먹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차녀는 친실장 몰래 식량을 쟁여둔 곳으로 밤중에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우연히 오래 묵어서 썩어버린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를 발견하고는 아마아마한 줄 알고 먹었다가 지옥의 쓴맛에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운치까지 삐질삐질 싸면서 뒹굴어야했다. 많이 먹으면 들킬까봐 조금만 먹은 게 아니었으면 굴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찌이이이...!”
‘왜 와타치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테치?! 이런 운치는 똥이모토챠나 먹어야 하는 테츄아!!’
한참동안 지옥의 쓴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차녀는 당연히 삼녀에게도 이 고통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다. 곧 있을 가을을 맞아 먹이를 찾으러 나왔을 때 차녀는 바로 계획을 써먹었다.
“삼녀 이모토챠. 이렇게 말랑말랑한 게 훨씬 더 우마우마한테치. 그러니까 이걸 먹는테치.”
“테에? 정말인테츄?”
“물론인테치. 한 번 먹어보면 아는테치.”
친실장이 커다란 열매를 가지러 갔을 때 차녀는 삼녀에게 그 열매를 건넸다. 처음 썩은 열매를 먹었을 때 들키지 않으려고 아주 조금만 먹었던 차녀와는 달리 차녀를 믿고 있던 삼녀는 자기 입으로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열매를 베어 물었다.
“테쨔아아아아앗-!!!! 혀가 썩는테치!!! 죽어버리는테쮸아악!!!!”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장 엄청난 소리의 비명을 지르면서 운치를 싸지르고 그 위에서 뒹굴었다. 삼녀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쓴맛을 닦으려는지 바닥에 있는 운치를 손에 쥐고 혓바닥에 마구 비볐다.
“테... 테에? 이모토챠,..?”
“테에엥!!! 마마!! 마마-!!!”
“이, 일단 숨는테치!”
처음에는 그냥 삼녀가 운치를 싸면서 뒹굴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차녀는 원했던 반응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뒹구는 삼녀를 보고는 밖에 나와서 시끄럽게 떠들면 파닥파닥씨가 슬픈 일을 하러 온다는 말을 떠올렸다. 여기에 있다간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차녀는 곧장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테챠악!!! 파닥파닥씨가 온 테챠!! 마마!! 와타치를 구해주는테챠아아!!! 죽는 건 싫은테찌!! 살려주는뗴찌이이아아아앗!!”
바로 그 직후 계속 비명을 지르면서 뒹굴던 삼녀는 하늘에서 날아온 파닥파닥씨의 날카로운 발톱에 붙잡혔다. 차녀는 피와 운치를 흘리면서 곧장 하늘로 날아가는 삼녀를 보고는 너무 놀라서 입을 막은 채로 울었다. 뒤늦게 달려온 친실장은 저 멀리 날아간 삼녀의 뒤만 올려다보다가 풀숲에서 작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듣고는 차녀를 발견했다.
“차녀?! 살아있는데수아!? 정말 다행인데스! 마마는 오마에까지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르는데스!!”
“테엥... 마마...? 와타치 혼나는 게 아닌테치?”
“왜 혼나는데스?! 차녀는 마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기특한 자인데스! 그리고 그 덕분에 살아남은데스. 오히려 마마가 미안한데스. 자들끼리만 두는 게 아니었는데스... 오로롱, 오로로롱!”
마마의 말을 들은 차녀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파닥파닥씨만큼이나 무서운 운치굴행을 피하려면 자기 자리를 넘보는 분충은 없애버리면 된다고. 장녀는 이미 까만 열매에 대해서도 알고 자기보다 힘이 쎄서 건드릴 수 없었지만 가을에 새로 온 삼녀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운치굴에 갔어야 하는 녀석이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말을 잘 듣는다고 마마에게 이쁨을 받으려고 했다. 삼녀를 놔뒀다간 예전에 그 삼녀처럼 될 것이 뻔했다. 차녀는 그렇게 되기 전에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이번 삼녀는 우마우마하다는 말에도 열매를 욕심내지 않았다. 그걸 보고 자신의 계획이 먹히지 않는 건 줄 알고 불안하던 차녀는 삼녀가 열매를 자기 입으로 넣는 걸 보고는 안심하고 웃을 수 있었다.
“테프픗. 테프프픗!”
“오네챠도 먹고싶은테치? 하나 주는테츄?”
“테?”
근데 무슨 일인지 삼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멀쩡한 얼굴로 차녀에게 말랑말랑한 열매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차녀는 혹시 잘못 준 게 아닐까 하고 받은 열매를 아주 조금만 먹었다. 그리고는 한껏 얼굴을 구겼다.
“테챳! 이건 이모토챠나 먹는테치!.”
“오네챠, 마마가 바닥에 먹을 걸 던지지 말라고 했는테치...”
차녀가 바닥에 던져버린 열매가 아까웠는지 삼녀는 흙만 떼어내고 다시 자기 입으로 넣었다. 양 볼이 울룩불룩해질 때까지 열매를 집어넣은 삼녀는 열매 안에 들어있던 커다란 씨는 두건에 뱉고 바로 다른 열매를 입에 넣었다.
‘운치굴에 갈 분충이라서 입맛도 분충인 게 틀림없는테치. 어떻게 운치보다 맛없는 걸 먹는테치?’
차녀가 단단한 까만 열매를 모아오는 동안 근처에 널려있던 썩은 열매를 다 집어먹은 삼녀의 두건에는 어느새 씨가 가득했다. 검은 열매의 씨가 워낙 커서 그런지 두건에 있는 검은 열매가 다 씨로 바뀌었는데도 부피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삼녀가 두건을 검은 열매의 씨로 가득 채운 뒤에도 아직 주변에 썩은 열매는 한참 남아있었다.
“데스데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데스. 하지만 가기 전에 두건을 마마에게 보여주는데스.”
어느새 친실장이 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친실장은 자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서 열매들을 모으다가 덜 익었지만 자실장 만큼이나 커다란 열매를 발견하고는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혹시 자실장들이 시킨대로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 건 아닌지 두건을 확인하려고 했다. 차녀는 적당히 단단한 열매를 모았다는 걸 확인한 친실장은 삼녀의 두건을 보다가 그 안에 씨가 가득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데엣?! 삼녀, 이 씨앗은 다 어디서 난 데스?! 혹시 푹신푹신씨의 굴에 다녀온데스??”
“푹신푹신씨는 뭐인테치? 이 씨는 여기 있는 말랑말랑하고 우마우마한 열매들 안에 들어있던테치!”
“우마우마...?”
친실장도 말랑말랑한 까만 열매 안에서 모아두기 좋은 씨앗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다고 해도 열매보다 작은 씨앗을 먹자고 친실장도 인상 쓰면서 겨우겨우 먹어야하는 썩은 열매를 먹는 건 멍청한 짓이고, 그걸 실장석의 투박한 손으로 씨앗만 발려내는 일은 더 멍청한 짓이다. 씨앗을 먹으려면 돌로 깨서 딱딱한 겉부분은 버려야하는 작업을 거쳐야하는데 차라리 다른 먹이를 구하는 편이 나았다. 그런 주제에 완전히 썩으면 냄새가 나서 말랑말랑해진 열매는 줍지 않고 있더라도 운치굴에 던져서 처리하는 게 보통인 천덕꾸러기였다.
“집에도 말랑말랑한 열매가 몇 개 더 있는데스. 그것도 먹을 수 있는데스?”
“와타치만 먹을 수는 없는테치. 마마랑 오네챠랑 같이 먹는테치!”
“데에... 괜찮은데스. 앞으로 말랑말랑한 까만 열매는 삼녀가 다 먹는데스. 많이 먹어야 빨리 자라는데스.”
그런데 삼녀는 그걸 맛있다고 잘만 먹으면서 이제 물에만 살짝 헹구거나 닦기만 하면 되는 씨앗들도 남겼다. 친실장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쓰레기가 보존식으로 바뀌는 마술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운치굴에 넣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한 친실장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삼녀를 웃으면서 쓰다듬어줬다.
“테엥?! 정말인테치?! 와타치가 정말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를 다 먹어도 되는테치?!”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자가 많이 먹는 건 당연한데스. 다른 건 몰라도 말랑말랑한 까만 열매는 얼마든지 먹어도 되는 데수웅♡”
“마마가 최고인테치! 마마, 사랑하는 테츙♡”
그런 친실장의 속도 모르고 그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삼녀는 거의 울면서 친실장에게 매달렸다. 친실장도 쓰레기를 보존식으로 바꿔주는 어여쁜 자를 마음껏 쓰다듬어줬다. 유일하게 마마의 관심에서 밀려난 차녀만 웃지 못하고 무서운 눈으로 삼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길쭉길쭉씨는 뱀이고 푹신푹신씨는 다람쥐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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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후웅♡”
“우지챠, 기분 좋은레치?”
“최고인레후! 오네챠랑 같이 운치굴로 와서 다행인레후!”
“레에...”
우지챠가 생각 없이 한 말이 다짜고짜 엄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엄지는 그 이후에도 운치를 먹고 배를 보여주고 있는 다른 우지챠의 배도 꾹꾹 눌러줬다. 운치로 빵빵하던 배를 꾹꾹 눌러줄 때마다 우지챠의 총구에서 운치가 삐질삐질 새어나왔다.
“레히잉♡ 역시 새로 들어온 오네챠의 프니프니가 좋은레후! 예전부터 있던 오네챠들의 프니프니는 시원찮아서 싫었던레후!”
운치굴에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엄지 셋과 구더기 둘 말고도 원래부터 있었던 구더기들이 많았다. 이 구더기 중에서는 친실장이 낳은 자도 있지만 저 구석에서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한 채 앉아있는 팔다리 없는 달마독라 친실장이 낳은 구더기도 있었다.
“레에엥... 독라 오바상에게 운치 먹이는 것도 힘든레치...”
“힘들어도 열심히 하는레치! 마마가 우지챠들을 잘 보살피면 다시 자로 들인다고 했던 레츄아!”
독라 친실장 옆에는 여기에서 한참 전에 떨어진 엄지실장 둘이 열심히 입에 운치를 퍼넣고 있었다. 뒤통수가 움푹 들어간 달마독라는 굴에 있는 친실장의 마마 때부터 운치굴에 있던 녀석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단백질이 부족한 일가에게 주기적으로 구더기를 보급해주는 소중한 노예였다.
“레후웅~! 오네챠 어디있는레후? 우지챠는 운치 먹고싶은 레후~”
“이제 일어난레치? 우지챠가 제일 늦게 일어난레치.”
운치굴의 제일 구석에서 일어난 구더기 옆을 지키고 있던 엄지는 방금 잠에서 깬 우지챠를 들어서 운치굴 입구 쪽으로 날랐다. 구더기들이 멋대로 흩어져서 자면 밟히거나 할 염려가 있어서 엄지들은 우지챠들이 자기 전에 항상 운치굴 구석에 몰아두고 자기들은 거기에 딱 붙어서 잤다. 차가운 운치굴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받고 우지챠들이 추워서 파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우지챠에 비해 수가 적은 엄지들은 처음에는 귀여운 우지챠들을 프니프니해주는 걸 좋아했지만 계속 운치만 먹고 기운도 없는데 프니프니만 요구하는 우지챠들에게 화를 냈었다. 프니프니를 못 받는다는 걸 알게 된 구더기들이 전부 다 파킨하는 소리를 들은 친실장이 내려온 뒤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똥마마! 왜 이제야 오는레츄아!!! 고귀한 와타치를 운치굴에 처박은 건 절대로 용서 못하는레챠아악!!! 지금 당장 와타치의 총구를 핥아도 용서하지 않는 레쨔아아아악!!!”
“오마에가 좋겠는데스.”
“레후레벳?!”
“레갸아아악! 똥마마가 미친레치!!”
“우리를 다 죽이려는 속셈인레츄아악!! 도망치는 레치!!”
친실장은 내려오자마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엄지를 껌딱지처럼 으깨버렸다. 그 광경을 본 엄지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운치굴의 구석으로 달아났지만 친실장에게서 달아날 공간 따위는 없었다. 결국 구석에 몰린 엄지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친실장을 지켜보면서 울기만 했다.
“잘 듣는데스. 마마는 사실 오늘 우지챠를 가장 잘 보살핀 엄지를 자로 들이려고 했던데스. 하지만 오마에타치들은 전부 분충짓을 해서 전부 슬퍼져야 하는데스.”
“레에엥! 마마, 용서해주는레치! 다시는 우지챠에게 나쁜 짓 안하는레치!”
“앞으로 우지챠들에게 엄청 잘해줄 것인레치! 제발 죽이지 마는 레치, 레츙, 레츄웅♡”
친실장이 방금 엄지 한 마리를 으깨버린 오른손을 들어올리면서 말하자 운치굴 구석에 우그러져있던 엄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마의 용서를 빌었다. 친실장의 오른손이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머리를 박은 엄지들의 가슴도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거대한 손은 가장 앞에서 머리를 박고 있던 엄지의 바로 옆에서 쿵! 소리를 내면서 박혔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면, 다시 한 번 여기 있는 엄지들 중에 우지챠를 가장 잘 돌보고 독라노예에게 분충 짓을 하지 않는 엄지를 자로 들이는데스. 그렇지만 오늘처럼 우지챠가 파킨하는 날에는 방금 그 분충처럼 되는데스.”
“정말인레치?! 와타치 열심히 하는 레치!”
고맙다면서 머리를 박고 앞으로 잘하겠다고는 했지만 엄지들의 진심에는 한 점의 고마움도 없었다. 대부분은 공포였고 밑바닥에 발끝만 잠길 정도로 찰랑거리는 것이 희망이었다. 하지만 운치굴에서 바닥만 핥고 살아가던 엄지들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날부터 엄지들은 우지챠를 애지중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우지챠는 귀찮고 손 많이 가는 동생이 아니라 자신이 자가 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간혹 그 공포보다 배고픔이 더 커진 엄지가 우지챠를 먹는 둥의 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엄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에 한 번씩 독라노예의 상태를 보러 내려오는 친실장이 보이자마자 저 분충이 우지챠를 먹었다고 고자질한 엄지들은 친실장에게 상으로 그 분충의 팔다리를 받은 이후로 눈에 불을 켜고 경쟁자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우지챠, 오네챠가 프니프니해주는레치!”
“프니후?”
“안되는레치! 이 우지챠는 와타치가 프니프니해주기로 한 레치!”
“레챠악! 치사한레치! 와타치도 하는레치!”
“레후? 여기가 프니프니천국인레후?”
덕분에 구더기들에게 운치굴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구더기의 활동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먹는 운치도 많아지고 싸는 운치도 많아진다. 엄지들은 처음에는 구더기들을 잘 보살피고 있다면서 좋아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기들이 잘 공간까지 운치범벅이 되는 걸 보고 구더기들을 평소 운치굴 구석에 두고 밥을 먹는 등 운치가 필요할 때만 엄지가 우지챠를 들고 나르기로 했다. 하지만 육녀 엄지는 프니프니를 다 한 구더기를 안은 채로 운치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오마에, 왜 아직도 우지챠를 안고 있는 레치? 프니프니를 받은 우지챠는 구석에 가서 놀아야 하는레치.”
“레에... 하치만 와타치는 이모토챠랑 떨어지기 싫은 레치.”
“그럼 오마에도 구더기가 되는 레챳!”
“레에엥!”
마지막으로 태어난 엄지인 육녀는 다른 엄지들보다 더 작았다. 얼마나 작았으면 다른 엄지의 3분의 2 정도 밖에 안 되는 크기였다. 구더기가 고치에서 갓 깨어난 엄지랑 비슷한 정도의 크기로는 운치굴의 다른 엄지가 발로 차거나 때려도 반항할 수 없었다. 짧은 팔다리로 파닥파닥 휘저어봐야 중심도 못잡고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분충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레치!”
“구더기랑 떨어지기 싫으면 엄지가 아니라 구더기로 태어났어야 하는레치! 특별히 와타치가 발씨로 프니프니도 해주는레치!”
“레헹! 그만두는레치! 아픈레츄!”
“너 같은 분충 때문에 고귀한 와타치도 운치굴로 떨어진 레챠!”
어느새 육녀랑 같이 떨어졌던 사녀랑 오녀도 예전 운치굴의 독라엄지들과 같이 육녀를 밟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운치굴로 떨어진 뒤에 다른 독라엄지들에게 두들겨 맞고 서열이 아래로 내려가서 엄지 중에서 가장 약한 육녀라도 두들겨 패서 스트레스를 풀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오녀가 육녀를 붙잡고 있는 동안 사녀가 총구를 내려서 엄지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분충은 와타치의 운치나 먹는테치!”
“레헤엑!! 레호로베벡!”
뽀다닷 소리를 내면서 육녀의 얼굴에 운치가 쏟아졌다. 차마 운치를 먹을 생각을 못한 육녀가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미 한참 두들겨 맞아서 고개를 돌릴 힘도 없었다. 육녀는 운치 때문에 숨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기침하면서 운치를 삼켜야만 했다.
“오마에는 이제부터 와타치타치의 운치노예인레치! 와타치타치들이 싼 운치나 먹으면서 사는레치!”
“치프프프! 이번에 들어온 신입은 제법 쓸만한레치! 와타치타치도 운치노예에게 먹을 것을 나눠줘는레치.”
“그만두는레헹! 레보복!”
사녀와 오녀가 육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본 다른 엄지들도 번갈아가면서 육녀에게 운치를 싸댔다. 친실장과 자실장이 싼 운치나 먹으면서 사는 운치굴인생이지만 운치에도 급이 있다. 자실장과 친실장이 싸놓은 운치는 그나마 영양가라도 남아있지만 이걸 먹은 엄지나 구더기의 운치는 안 그래도 없는 영양가가 더욱 더 없어지고 운치의 냄새는 한층 더해졌다.
“운치노예가 운치를 먹고 빵빵해진레치!”
“밥도 먹었으니 일하는레챠! 빨리 달마에게 운치나 먹이는레치!”
“레에엥... 레엥...”
다른 엄지에게 걷어차인 엄지가 울면서 운치굴 입구 쪽에 떨어진 운치를 집어서 달마의 입으로 집어넣었다.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달마에게 운치를 먹이는 것 정도는 엄지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안 그래도 다른 엄지보다 작은 육녀가 운치가 가득 들어가서 빵빵한 배를 가지고 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손이 닿지 않아서 운치를 들고 달마의 목을 타고 올라가려면 육녀가 힘을 주니 삐릭삐릭 소리를 내면서 운치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엄지들은 운치를 흘리는 게 구더기나 다름없다면서 더욱 더 비웃어댔다.
“분충을 패느라 피곤한레치. 어차피 프니프니도 다 했으니 자러가는레치.”
“신입타치들도 같이 오는레치. 오마에타치도 특별히 포대기를 하나 쓸 수 있게 해주는레치.”
“레엣! 고마운레치!”
운치굴 내부에도 지위가 있었다. 운치굴 최고참인 엄지가 1등으로 예전에 죽은 우지챠가 남긴 포대기를 3개나 쓸 수 있었다. 하나는 접어서 머리를 받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2개는 깔아서 운치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운치굴 엄지들은 2개씩 쓸 수 있는데 하나는 베개로 쓰고 하나는 포대기를 넓게 펴서 바닥에 까는 용도로 썼다.
“이제야 좀 잘 것 같은 레치.”
“레치레치. 오네챠도 콘페이토 꿈꾸는레치.”
사녀랑 오녀도 포대기 하나를 넓게 펴서 바닥에 깔고 누웠다. 그러자 어제 밤에 운치굴 바닥에 그냥 누웠을 때랑은 달리 그럭저럭 누워서 잘만해졌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잠자리도 좋아서인지 사녀랑 오녀는 금방 꿈나라로 갔다. 다른 엄지들이 꿈나라로 간 것도 모르는 육녀는 달마가 더 이상 운치를 안 먹을 때까지 계속 일하고 나서야 겨우 쉴 수 있었다.
“우지챠, 이리로 오는레치.”
“레훙?”
육녀는 운치굴로 떨어질 때 꼭 쥐고 있던 구더기를 찾아갔다. 반쯤 졸고 있던 우지챠를 꼬옥 안은 육녀는 엄지들의 가장 구석에서 누웠다. 맨바닥에 누워야하는 육녀는 품에 따듯한 우지챠라도 안고 자지 않으면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육녀가 자리에 누워서 새근새근 잠든 다음에야 운치굴 내부는 조용해졌다. 운치굴은 처음 우지챠가 일어난 지 2시간도 되지 않아서 하루의 일과를 금방 마쳤다.
운치굴 안에서는 밤낮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엄지들은 우지챠가 일어났을 때 운치굴의 하루를 시작했다. 우지챠가 일어나서 배가 고프다고 하면 엄지들도 같이 일어나 구더기들을 나르고 프니프니를 해준 다음 다시 구석으로 우지챠들을 데리고 갔다. 우지챠들은 서로 꼬물거리면서 놀다가 금세 잠들었고 엄지들은 그 사이에 운치를 싸거나 달마노예에게 운치를 먹이는 등의 최소한의 노동만 하고 우지챠가 자면 다시 잠들었다.
영양가 없는 운치만 먹는 생활을 하니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간은 줄고 쉬는 시간만 늘었다. 우지챠들은 원래 소화기관이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음식의 질과는 상관없이 분대에 오래 품고만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엄지들은 아니었다. 운치만 먹는 생활에서 어떻게든 버티려면 움직이는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배고픈레치... 뭐라고 먹고 싶은 레치...’
안 그래도 작은 몸으로 다른 엄지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도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육녀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도중에 부스스 일어난 육녀는 곤히 자고 있는 우지챠를 구더기들 옆에 둔 다음에 운치굴 입구 쪽에 철푸덕 앉아서 운치를 집어먹었다.
“레힝... 레에에엥...”
육녀는 운치를 한 입 집어먹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 울다가 운치를 먹다가 역해서 토하고 또 토한 걸 집어먹었다. 운치로 배가 찰 때마다 눈물샘은 텅텅 비어갔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운치굴 입구를 올려다보던 엄지는 일어나서 구더기 옆에 있는 엄지용 운치구멍으로 갔다.
“레츄우웅...! 레에에...엣!”
자기 전에 먹은 다른 엄지들의 운치를 빼내려는 것처럼 억지로 운치를 싼 육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힘을 주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엉덩이에 운치가 잔뜩 묻은 채 육녀는 비틀비틀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아까 내려둔 우지챠를 다시 꼭 안고 눈을 감았다.
‘이건 꿈인레치. 꿈이 분명한레치.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정한 오네챠들과 마마가 반겨주는레츄. 그러니까 빨리 자야하는레치.’
아까 자다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벌써 까먹은 육녀는 행복회로를 굴리면서 잠들었다. 현실은 운치굴 바닥이었지만 꿈속의 육녀 엄지는 엄연한 가족의 귀염둥이 막내였다. 엄지를 챙겨주는 친절한 삼녀 오네챠와 마마는 서로 엄지를 아끼겠다면서 다퉜다.
“싸우면 안되는레치! 귀염둥이 엄지는 모두의 것인 레치!”
육녀가 말린 다음에야 삼녀 오네챠와 마마는 서로 다투는 걸 그만두고 엄지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마마는 엄지의 머리를 핥아주고 삼녀는 엄지의 엉덩이를 핥았다. 엄지는 간지러운 것처럼 꺄르르 웃었다.
“운치노예주제에 뭘 쳐웃고 있는 레챠악!”
“레칫?!”
호통에 깜짝 놀라서 일어난 육녀는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봤다. 삼녀랑 마마는 온데간데 없고 사방이 운치냄새로 가득한 어두컴컴한 밑바닥만 있었다. 아직까지 엉덩이를 누군가가 핥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육녀는 자기 밑을 내려다봤다.
“오네챠의 엉덩이에 묻은 운치가 별미인레후! 입가에 묻은 운치도 맛있었던레후!”
“...레엥! 레에엥!”
“시끄러운레치! 게으름피우는 분충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레챠악!!”
“레에에엥!”
아직도 엉덩이에 남아있는 운치를 핥짝거리고 있는 우지챠를 본 육녀는 그 자리에서 울면서 다른 엄지들에게 끌려가 또 두들겨 맞았다. 조용했던 운치굴의 아침은 한동안 육녀의 비명소리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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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에 사는 실장일가의 생활은 삼녀 덕분에 조금 달라졌다. 원래는 삼녀도 굴 밖에 나가서 보존식을 모으는 일에 동참해야하지만 친실장은 차녀만 데리고 가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만 엄청나게 주워왔다. 그리고는 삼녀를 굴 안에 겨울에 먹을 보존식을 만드는 곳에 앉혀두고 하루 종일 그 검은 열매만 먹게 했다.
“테잇! 테치!”
삼녀는 자신이 다 먹어야 하는 몫을 마치면 잠자리에 있는 공을 이리저리 차고 다녔다. 나름대로 열심히 굴리고 차고 노력해봤지만 찌그러진 공은 아무리 굴려봐야 두 바퀴도 안 굴러가고 그 자리에 멈췄다. 손으로 툭툭 던지면서 노는 것도 지겨워진 삼녀는 조개껍데기에 남은 물을 마저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남는 시간에라도 자보려고 했지만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눈이 초롱초롱했다.
“굴이라도 둘러보는테치.”
심심해서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친실장이 허락하기 전에는 절대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떠올린 삼녀는 그냥 굴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친실장이 한 번씩 둘러보게 해줬지만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무서워서 위치만 대충 기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테이잇...! 무거운테치!”
잠자리 근처에서 겨울에 먹을 식량을 만드는 돌을 들어보려던 삼녀는 금방 포기했다. 어제 친실장이 이 돌로 저번에 주운 커다란 열매를 쪼개서 장녀랑 차녀가 먹을 밥을 만드는 걸 보고 자신도 쉽게 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어떻게든 간신히 들 수는 있어도 이걸로 뭘 때리거나 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와타치도 먹을 걸 많이 옮기려면 마마처럼 힘이 쎄져야 하는 테치.’
돌 뒤에 반 정도 남은 열매를 들어봤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삼녀는 매일매일 틈나는 대로 무거운 걸 들어서 옮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번처럼 씨가 가득한 두건도 옮기는 게 힘들어서 마마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 안쪽은 엄지실장이나 자실장들의 옷에 담아둔 보존식이 있는 곳이다. 친실장의 말로는 원래는 그냥 흙으로 된 굴이었지만 예전에 땅벌레씨가 먹이를 훔쳐 먹은 이후로 바깥에 있는 돌멩이들을 가져와서 벽을 전부 돌멩이로 바꿨다고 했다. 대부분 껍질이 엄청 단단해서 못 깨는 커다란 열매 밖에 없었지만 삼녀가 온 뒤로는 검은 열매의 씨도 자실장 옷 3개 분량만큼이나 늘었다.
아래쪽 굴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입구 근처로 가면 나뭇가지가 여러 개 꽂혀있다. 삼녀는 이 나뭇가지들로 마마가 겨울에 고기를 꽂아서 말리는 용도라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아직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삼녀지만 지금까지 지겹게 먹은 검은 열매보다는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입구 근처 턱에는 원래 나뭇가지 창이 2개 있었지만 하나는 친실장이, 하나는 장녀가 들고 나갔다. 삼녀는 자신도 그런 멋진 창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마마가 차녀에게도 아직 몸집이 작아서 다룰 수 없다고 했으니 차녀보다도 작은 자신이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삼녀가 위로 갈 수 있는 왼쪽 통로로 들어갔다. 굴은 V자를 살짝 기울여놓은 것처럼 아래층과 윗층의 굴이 같은 위치에 있지 않도록 생겼다. 처음에 위쪽에 먼저 굴을 파두고 나중에 겨울용 굴을 팔 때 무너지지 않게 조금 틀어서 판 탓이었다.
“테엣? 바삭바삭거리는테치.”
통로의 가장 안쪽에는 아직도 치우지 않은 다른 계절 잠자리용 나뭇잎이 잔뜩 있었다. 예전에는 생생했을 이파리들은 전부 다 바짝 말라서 삼녀가 건드리니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움푹 들어갔다. 삼녀는 잠자리 안이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높이까지 마른 나뭇잎이 쌓여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삭파삭하는 신기한 감촉도 재밌었지만 서늘하면서 포근한 느낌도 꽤나 좋았다.
“테치테치! 쭈그러진 공씨보다 재밌는테치!”
바삭거리는 나뭇잎의 감촉에 사로잡힌 삼녀는 그 자리에 누워서 한참동안 팔다리를 휘둘렀다. 무아지경으로 부서지는 나뭇잎들 사이에서 뒹굴거리느라 삼녀는 누군가가 위쪽으로 올라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삼녀? 여기 있던테스?”
“장녀챠? 언제 온 테치?”
삼녀는 며칠 전에 중실장이 되어서 덩치가 자기보다 2배는 커진 장녀에게 곧장 안겨들었다. 장녀는 삼녀를 안아주면서 머리카락에 묻은 부서진 나뭇잎들을 탈탈 털어줬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간지러웠는지 삼녀가 테치테치 웃으면서 옷에 묻은 나뭇잎을 털어냈다.
“마마가 부른테스. 같이 내려가는테스.”
장녀는 삼녀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왔다. 중실장이 된 장녀가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아직 작은 자실장인 삼녀는 세 발자국 이상을 걸어야 했다. 삼녀가 바쁘게 발을 움직이는 걸 본 장녀는 조금 걸음걸이를 늦췄다. 그래도 굴이 그렇게 길지 않은 덕분에 두 실장은 금방 마마가 있는 보존식 창고까지 올 수 있었다.
“마마, 삼녀는 위층에서 놀고 있었던테스.”
“온데스? 삼녀는 여기 앉는데스.”
마마는 이전처럼 자실장 옷 한가득 들고 온 검은 열매 앞에 앉아서 옆자리를 두들겼다. 원래 그 자리는 장녀의 자리라서 삼녀가 눈치를 보고 못 앉으니 장녀가 직접 삼녀를 앉혀줬다. 옆자리에 삼녀의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마마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옆에서 조금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꺼냈다.
“이제 말랑말랑한 검은 열매도 다 주워온데스. 여기 있는 열매를 다 먹으면 내일부터는 장녀를 도와서 굴 파는 일을 돕는데스. 하지만 맨손으로 굴을 파면 아야아야하는데스. 그러니 마마가 삼녀에게 특별히 나뭇가지 창을 쓸 수 있게 허락하는데스.”
“테엣?! 마마? 차녀인 와타치도 아직 못 쓰는데 삼녀챠가 먼저 받는 건 불공평한테치!”
마마의 폭탄발언은 지금까지 마마의 말을 잘 듣던 차녀도 반발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야생의 실장석에겐 쓸 수 있는 강한 도구야말로 강한 권력이다. 그런데 굴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삼녀가 한참 먼저 온 차녀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다는 것을 가만히 납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가만히 듣는데스. 차녀. 삼녀가 나뭇가지 창을 받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인데스. 차녀는 항상 마마랑 같이 나가지만 삼녀는 이제 장녀랑 삼녀 둘이서만 나가는데스. 차녀는 마마가 지키더라도 장녀 혼자서 삼녀까지 지키는 건 어려운데스.”
“싫은테치!! 삼녀만 예뻐하는 마마는 싫은테치!”
친실장이 말로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차녀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서 팔다리를 버둥버둥거리던 차녀는 어느새 빵콘을 해서 팬티도 불룩 튀어나와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옆에 눕혀둔 나뭇가지로 차녀의 옆바닥을 탁! 소리가 나게 쳤다.
“테잇!”
소리에 겁먹은 차녀가 휘두르던 팔다리를 감싸고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친실장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눈물범벅인 얼굴로 그 자리에 앉았다. 빵콘한 채로 앉아서 그런지 불룩 튀어나와있던 운치가 평평하게 펴졌다.
“차녀. 운치굴로 가서 팬티를 털고 장녀랑 같이 팬티를 빨고 오는테치.”
“알겠는테스.”
장녀의 손에 이끌려 일어나면서도 아직 눈물을 닦지 못한 차녀가 굴 밖으로 나가자 친실장이 한숨을 쉬었다. 차녀도 엄연히 친실장이 아끼는 자였지만 지금 당장 일가에 필요한 보존식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삼녀에 비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은 열매가 떨어진 곳도 지금 찾은 곳에 있던 걸 다 주워온 것뿐이지 친실장이 작정하고 찾는다면 다른 경쟁자가 없다시피 한 썩은 열매들은 얼마든지 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친실장에게 있어서 삼녀는 거의 장녀와 비슷할 정도로 중요했다.
그런데도 그런 자에게 장녀를 도와서 위험할 수도 있는 외부 일을 시키는 까닭은 예쁜 자라면서 굴속에서 먹을 것만 계속 먹였다간 필요할 때 일할 줄은 모르고 떼만 쓰는 분충이 되어서 솎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믿을만한 장녀에게 일임한 것이었다.
“삼녀, 마마가 하는 걸 잘 보는데스. 나중에 삼녀도 마마처럼 나뭇가지 창을 만들어야 하는 때가 오는데스.”
넓적한 밑판용 돌에 나뭇가지를 올려놓은 친실장은 양 손으로 옆에 있던 돌을 들어서 나뭇가지 끄트머리를 쿵! 하고 찍었다. 돌에 맞아서 부러진 부분을 몇 번 살피던 친실장은 비슷한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뭇가지가 친실장의 마음에 들 만큼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워지자 이번에는 적절한 길이가 되도록 반대편 나뭇가지를 돌로 찍었다.
“한 번 들어보는데스.”
나뭇가지 창을 삼녀의 옆에 세워보니 삼녀보다 조금 더 길었다. 그래도 친실장이 들고 다니는 창보다는 훨씬 얇아서 들고 옮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창을 쓰는 법은 간단한데스. 오른손과 왼손으로 창을 꽉 잡고 끝부분을 찔러야 하는 분충 쪽으로 향한 채로 뛰어드는데스. 그리고 명심하는데스. 무조건 먼저 찌르는 쪽이 이기는데스. 먼저 못 찌를 것 같으면 도망가야하는데스. 그리고 굴을 팔 때는 찌르는 쪽의 반대쪽을 쓰는데스.”
“조금 쓰기 어려운테치. 이렇게 짧게 잡아서 써야하는테치.”
“이제 그건 삼녀의 것인데스. 삼녀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데스.”
“테힛! 마마, 고마운테치!”
마마의 말에 삼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 창을 쳐다봤다. 얇다고는 해도 실장석이 부러트리기 힘들 정도로 단단한 나뭇가지와 찔리면 바로 운치굴로 보내버릴 수 있는 뾰족뾰족한 끝부분까지. 이런 물건을 자신이 가진다는 게 믿기지 않던 삼녀는 창을 잠시 놓아둔 채로 마마에게 안겼다.
“와타치는 마마가 해준 걸 절대 잊지 않을 것인테치! 친실장이 되어서 독립해도 마마가 위험하면 달려오는테치!”
“대견한 자인데스. 이것 말고도 삼녀가 원하는 게 있는데스? 있으면 마마가 들어주는데스.”
“테에... 그럼 와타치도 독립할 때 운치굴의 엄지를 하나 받을 수 있는테치?”
삼녀는 혹시 분수에 맞지 않는 걸 달라고 해서 친실장이 화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하면서 슬쩍 눈치를 봤지만 친실장은 차녀에게 줄 수 있는 건 당연히 삼녀에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 마리를 더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았다.
“물론인데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미리 데려갈 엄지를 정하는 건 어떤데스?”
“그래도 되는테츄?! 마마가 최고인테치!”
“창을 들고 따라오는데스. 운치굴에 있는 분충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데스.”
친실장의 말대로 창을 챙긴 삼녀는 곧장 친실장을 따라 운치굴로 갔다. 친실장이 운치굴에 자실장이 빠지지 않도록 둔 덮개를 밀자 친실장도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나타났다. 친실장은 평소에 운치를 싸는 반대편에서 내려간 다음 삼녀를 손으로 들고 운치굴로 내려줬다. 뚜껑을 열 때부터 냄새가 났지만 직접 운치굴 내부에 발을 디디니 사방이 운치냄새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졌다.
“엄지들은 다 일어나는데스.”
“레헹? 마마?”
“벌써 겨울이 지나간레치? 자로 들이는레치?”
운치굴 속에서 자고 있던 엄지들이 친실장의 호통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렬로 섰다. 드디어 육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삼녀는 앞에 모인 엄지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 곳에 육녀는 없었다.
“오마에타치. 엄지 중에서 조금 작은 엄지는 어디간테치?”
“레에? 운치노예를 말하는레치? 그 분충은 얼마 전에 파킨한레치.”
“테에...?”
한 엄지가 가리킨 곳에는 운치로 범벅이 된 자그마한 엄지가 있었다. 얼굴은 사방에 든 멍 때문에 파랗고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그 옆에서는 구더기들이 우마우마하다면서 상대적으로 연한 팔다리와 복부 부분을 물어뜯고 있었다.
“답도 없는 분충이라서 와타치타치의 운치나 먹는 노예였던레치! 운치를 먹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파킨하는 상분충이랑 어울리는 것도 지겨웠던레챠!”
“레삐얏! 너무 과격한 놀이인레후!”
엄지가 얼굴만 남은 육녀를 걷어차자 위에 있던 구더기도 같이 굴러갔다.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삼녀는 발에 운치가 묻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는 저 멀리 굴러가는 육녀의 머리를 들고 왔다..친실장을 올려다 본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거나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마마. 마음이 바뀐테치. 이것만 들고 가도 충분한테치.”
“정말인데스?”
“그런테치. 분충 엄지가 노예로 와봐야 써먹을 곳도 없는테치.”
“레엣?! 와타치타치 운치굴에서 나가는 게 아닌레치?!”
“이건 말도 안 되는 레치! 분충의 머리통 따위보다 와타치가 백배천배 나은 레챠악!!”
가만히 서있던 엄지가 삼녀에게 달려들었다. 그걸 본 마마가 움직이기도 전에 삼녀가 몸을 돌려 오른손에 쥔 나뭇가지의 아래쪽으로 엄지를 콱 찔렀다. 명치를 찔린 엄지는 그대로 레챠악 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나동그라졌다.
“오마에타치들은 필요해서 살려둔 게 아닌테치. 마마가 아직 죽이지 않아서 살아있는테치. 마마가 쓸모없다고 말만 하면 와타치가... 와타치가 전부 다 죽여버리는테챠아악!!!!”
“레에엥! 무서운 이모토챠인레치!”
“도망치는레츄아!”
운치굴의 엄지들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붕붕 휘두르며 위협하는 삼녀를 보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잠시 후 운치굴을 빠져나간 삼녀는 굴의 입구 턱 근처에 나뭇가지로 작게 구멍을 파고 육녀의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자신의 것이 된 나뭇가지 창을 박아뒀다. 삼녀는 나뭇가지 옆에 조그맣게 올라온 흙더미를 볼 때마다 육녀를 떠올리기로 했다.
“육녀챠. 이젠 이모토챠도 가족인테치. 그러니까 와타치의 보물을 맡기는테치.”
흙더미를 몇 번 두드린 삼녀는 자신의 혀에 아직도 그 때 핥았던 점액 맛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초록색 혓바닥을 쭉 늘어트리고 손으로 아무리 닦아도 그 맛이 지워지지 않았다. 마마의 젖을 먹을 때도,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 할 때도 그 씁쓸한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네챠! 간지러운레치!”
그날 밤 삼녀는 처음 태어나던 날의 꿈을 꿨다. 삼녀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육녀를 들고 최대한 열심히 핥았다. 이렇게 열심히 핥으면 혹시 자실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육녀의 점액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레엣?! 와타치 우지챠가 되버리는레치! 오네챠, 버리지 마는레치!!”
“테엣! 버리지 않는테치! 지금 점액을 핥아주고 있는테치!”
“아닌레치! 오네챠는 와타치를 버린레치! 와타치가 운치굴에서 죽어가는 동안 우마우마한 열매나 먹고 있었던레치!”
“테에... 아닌테치...”
점액이 점점 녹색 옷으로 변해 육녀의 전신을 덮어갔다. 맨살이 드러났던 팔다리에 전부 옷이 생기자마자 육녀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삼녀가 흘러내리는 육녀의 몸을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육녀는 결국 머리 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초점 없는 눈동자를 굴려 삼녀 쪽으로 향했다.
“가족이 생겨서 행복한레치? 와타치도 가족이 되고 싶었던레치. 와타치도 행복해지고 싶었던레챠아아악!!!”
“테엣?!”
삼녀는 육녀의 고함과 동시에 잠에서 깼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까의 물웅덩이가 아닌 겨울잠자리였다. 삼녀는 자기 떄문에 다른 가족이 깰까봐 얼른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눈을 감아도 삼녀의 눈에는 방금 고함을 지른 육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얼굴을 잊기에는 불행히도 삼녀의 기억력이 너무 좋았다. 삼녀는 아까 미처 흘리지 못한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에 누웠다. 삼녀는 잠자리에 얼굴을 비벼봤지만 이미 육녀의 냄새는 전부 다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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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삼녀도 젖을 떼고 다른 자들과 먹이를 나눌 때가 되었다. 친실장은 과일에서 가장 맛없는 부분을 배분받고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삼녀가 대견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자실장이라면 마마가 좋다면서 매달려야 정상인데 삼녀는 차녀보다도 애교가 없었다.
‘데에... 전에 있던 자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데스.’
장녀와 함께 태어났던 자식 중에서도 지금의 삼녀처럼 자실장인데도 친실장처럼 어른스럽게 행동했던 자가 있었다. 그 때 친실장은 그저 대견한 자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자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파킨해버리고 말았다. 파킨하기 전에 평소와는 달리 아마아마한 것이 먹고 싶다고 응석부릴 때 어떻게든 가져다 줬어야 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친실장은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녀는 오늘 굴에서 노는데스. 마마는 따로 할 일이 있는데스.”
“테치테치! 역시 마마가 최고인테츙♡”
매일같이 먹을 것을 주워오느라 같이 나갔던 차녀를 굴 안에 혼자 둔 친실장은 위쪽 굴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자들에게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위쪽의 커다란 돌을 슬쩍 들어서 옆으로 옮겼다. 그 안에는 엄지실장, 자실장 등을 가리지 않고 온갖 실장석의 옷으로 벽을 막아놓은 비밀공간이 있었다.
“데에... 아깝지만 자를 잃는 것보다는 나은데스.”
친실장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자실장 옷에 담더니 그 옷을 나뭇가지에 묶고 굴을 나왔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섬의 중심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섬의 바깥쪽 부분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울창하던 숲이 조금씩 사라질 때마다 친실장은 더욱 더 조심히 움직였다. 풀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실장석의 옷이 몸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렇게 외곽으로 나오게 되면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였다. 친실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되도록 그늘로 움직이거나 한참동안 하늘을 둘러본 다음 안전하다는 걸 안 다음에야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실제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한참이 걸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 중심부의 울창한 숲을 지나서 조금 더 지나면 나오는 암석지대에서도 식생이라고는 전혀 자라지 않는 불모지. 거기에 부자연스럽게 나있는 돌 사이의 굴이 바로 목적지였다. 평범한 실장석이 운신하는 것도 힘든 이곳에 찾아온 친실장은 조심조심 굴 안으로 들어갔다.
“거래하러 온 실장인데스?”
“그런데스.”
“들어오는데스.”
굴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다만 입구가 정면으로 뚫려있는 것 때문인지 중간에 한 번 꺾어야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친실장이 꺾인 부분에 도달하자마자 안쪽에서 그녀를 부른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짐승에서 벗겨낸 가죽을 별도의 처리 없이 그대로 묶어서 두른 모습. 들고 있던 뼈에서 살점을 뜯어낸 굴의 주인은 그대로 뼈를 던져버리고 옆에 죽어있는 동물의 갈비뼈를 뜯어내 다시 손에 들었다. 친실장은 위협적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들고 왔던 짐을 풀었다.
“데스데스. 자실장의 위석 2개 확인한데스.”
자실장의 옷에 소중히 보관해온 것은 친실장이 자를 솎아낼 때 따로 빼둔 위석이었다. 검은 모피를 옷에 두른 실장석은 친실장이 내놓은 위석을 손에 들고 확인하더니 그대로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실장석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깨지는 소리와는 다르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수십 조각으로 위석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원하는 건 무엇인데스?”
“극상의 아마아마인데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자가 있는데스.”
“따라오는데스.”
검은 모피를 입은 실장은 굳이 긴 말을 하지 않고 친실장과 같이 굴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다른 침입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굴 근처에 있는 실장석의 몸통만한 돌을 굴려서 입구를 막았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검은 모피의 실장석과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가기 시작했다.
‘데뎃... 몇 번이나 봤지만 적응이 안되는데스.’
굴에서 나온 그 실장석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친실장은 그녀를 용병실장이라고 불렀다. 다른 성체실장보다 별 차이 없는 크기지만 이상할 정도로 강한 힘과 온갖 자잘한 것에도 금방 상처입는 실장석과는 달리 어지간한 동물의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강력하고 단단한 피부를 가졌다. 그런 엄청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를 낳지 않고 평생을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실장석에게 위석을 받고 힘든 일을 해주는 실장석의 이야기는 모르는 실장석이 없었다.
아니, 알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 용병실장은 봄만 되면 직접 다른 실장석의 굴을 찾아가서 자신의 소개를 하고 처음 딱 한번만 자실장의 위석 하나로 원하는 의뢰를 들어준다. 물론 의뢰를 하지 않거나 의뢰할 위석이 없어도 문제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용병실장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실장을 그대로 으깨버린 다음에 위석을 꺼내서 멋대로 먹고 강제로 부탁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친실장이 예전에 자실장일 때 그녀의 마마도 그랬었다. 마마는 아직 아마아마한 것도 먹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자라고 슬퍼하고 있으니 용병실장은 멋대로 아마아마한 것을 가져왔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못하는 일이 생기면 자실장의 위석 2개를 들고 암석지대에 있는 자신의 굴로 찾아오라고 했었다. 친실장은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솎아내거나 사고로 죽은 자들 중에서 멀쩡한 위석을 보관해왔던 것이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데스. 근처까지 오면 위험한데스.”
암석지대에서 한참 걸어서 친실장의 굴 근처까지 온 용병실장은 친실장을 두고 커다란 나무 아래로 갔다. 그리곤 익숙한 모양새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병실장이 나무의 절반을 오르기도 전에 그 나무에 있던 주인들이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데뎃! 붕붕씨인데스!’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나무에 오르는 용병실장을 둘러싼 건 실장석에게는 공포의 존재나 다름없는 벌이었다. 덩치는 실장석에 비해서 매우 작지만 그 독은 치명적이라서 실장석이 벌침에 두어번 쏘이고 나면 그대로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덩치 때문에 옮기지는 못하고 산채로 벌들의 입에 뜯겨서 아주 작은 조각으로 벌집에 운반되게 된다.
“명심하는데스. 붕붕씨에게 쫓기면 절대로 굴로 돌아가면 안되는데스. 붕붕씨가 굴로 들어오면 그대로 일가실각인데스. 죽을거면 이모토챠랑 오네챠들을 생각해서 혼자 죽어야하는데스.”
친실장의 마마가 그렇게 당부할 정도로 벌은 위험한 존재였다. 실제로 붕붕씨를 보는 건 처음이지만 마마가 그렇게 말했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위험한 소리를 내는 날벌레는 분명 붕붕씨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용병실장은 자신의 사방에 붕붕씨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타서는 붕붕씨의 집을 슬쩍슬쩍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용병실장은 붕붕씨의 집의 일부분을 떼어낸 다음 천천히 나무를 내려왔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가는데스.”
그리고는 아직도 달라붙는 붕붕씨 몇을 손을 흔들어서 쫓아낸 다음에 친실장이 있는 쪽으로 왔다. 그 손에는 아직도 붕붕씨의 집을 떼어낸 조각이 들려있었다. 확실히 예전에 친실장이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원하는 물건인데스. 첫 의뢰인데도 2개를 받았으니 특별히 오마에의 굴과 가까운 곳에서 주는데스.”
“데엣?! 어떻게 아는데스?”
“와타시를 찾아온 실장 중에서 와타시가 모르는 실장은 없는데스.”
그렇게 말한 용병실장은 친실장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굴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친실장은 용병실장이 사라지건 말건 상관없이 재빨리 자신의 굴로 향했다. 암석지대의 굴로 가는데 오랜 시간을 써서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마마! 오신테스?”
“마마가 온 테치! 엄청 큰 바위도 들고 온 테치!”
“...마마, 어서오는테치.”
친실장이 아래쪽 굴로 내려오자마자 장녀와 차녀가 맞이했다. 삼녀는 저 쪽 구석에서 마마를 향해 한 번 인사하고는 얼마 전에 받은 나뭇가지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다. 굴 안에서 저러는 건 위험하지만 굴 밖에서 하는 건 더 위험하고 안 그래도 일 말고는 하루 종일 저것 밖에 안하는 삼녀에게서 나뭇가지를 빼앗으면 큰일이 날까봐 친실장은 지금까지는 딱히 뭐라고 하지 못했다.
“자들은 다 모이는데스! 아마아마를 먹는데스!”
“테텟?! 진짜인테치?!”
“아마아마테스!”
아마아마라는 말을 들은 자들이 순식간에 친실장 옆에 앉았다.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삼녀는 자연스럽게 제일 가장자리에 앉았다. 친실장은 들고 온 붕붕씨의 집을 돌판 위에 두고 평소 먹이를 만드는 돌로 쪼갰다.
“엄청난테치! 마마가 커다란 바위를 쪼갠테치!”
“바위 속에 아마아마가 있는테스?”
“바위가 아닌데스. 이건 붕붕씨의 집인데스.”
“테챠악!”
“그러면 위험하지 않은테스?”
붕붕씨의 집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차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집어지고 장녀도 겁을 먹은 눈치였다. 붕붕씨가 아직 뭔지 모르는 삼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는데스. 붕붕씨는 위험하지만 이건 빈집인데스. 대신 붕붕씨가 모아온 아마아마가 있는데스. 자, 장녀부터 먹어보는데스.”
“테에... 조금 무서운테스.”
친실장의 말에 조금 주저하던 장녀는 붕붕씨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손으로 살짝 들고 가서 핥았다. 잠시 멍청하게 서있던 장녀는 다시 한 번 끈적끈적한 액체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장녀챠? 왜 그러는테치?”
“...아마아마한테스! 살면서 이런 건 처음 먹어보는테스!”
“테엣! 치사한테치! 와타치도 먹는테치!”
그리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돌에 머리를 박고 입에 꿀을 마구 퍼넣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차녀도 덩달아 꿀을 맛보고는 눈이 휙휙 돌아간 상태로 마구 입에 넣기 시작했다. 친실장도 바닥에 흐르는 꿀을 핥아먹고는 이거라면 삼녀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삼녀도 먹는데스. 빨리 안 먹으면 장녀랑 차녀가 전부 다 먹을 수도 있는데스.”
“알겠는테치.”
삼녀가 곧 행복한 표정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 친실장이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삼녀는 다른 밥을 먹을 때처럼 천천히 자기 먹을 몫만 먹고 있었다. 장녀와 차녀가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고 입안에 꿀을 마구 집어넣고 있는 모습과는 달랐다.
“삼녀? 아마아마하지 않은데스?”
“끈적끈적해서 먹기 힘든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테치.”
“데엑! 그럴 리가 없는데스! 이리 와서 입을 열어보는데스!”
친실장이 삼녀를 품으로 끌어당긴 다음에 양 손으로 입을 열게 했다.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없는지 살피던 친실장은 삼녀의 혀가 보통의 실장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보통 선명한 분홍색인 혀와는 달리 마치 입고 있는 옷처럼 초록색으로 물든 혀를 본 친실장은 이것 때문에 맛없는 열매를 먹나 아마아마한 것을 먹나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삼녀의 혓바닥은 왜 초록색인데스? 언제부터 이런데스?”
“태어난 다음에 이모토챠의 점액을 핥아준 다음부터 그랬던테치.”
“마마가 잘 씻으라고 말했던데스!”
“우지챠만 씻기고 바로 닦으려고 했던테치...”
삼녀의 혓바닥이 초록색으로 물들게 된 건 바로 점액을 제 때 닦아내지 않았던 탓이었다. 맨 처음 실장석이 만들어질 때 친실장에게 소화되지 않도록 하는 여러 기작 중 하나로도 작용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은 바로 실장석의 옷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자실장이나 엄지실장은 태어났을 때 얼굴 근처만 핥을 수 있어서 혼자서 내버려두면 남은 점액 전부가 피부와 살을 녹이고 옷으로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뒷머리 근처에 있는 복잡한 사고력과 하반신의 운동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가 녹아버려 전신이 옷으로 덮인 채 소화도 제대로 못하고 복잡한 생각이라고는 못하는 구더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친실장이 자들을 낳을 때 물웅덩이에서 낳는 이유가 자들의 충격흡수는 물론 점액의 활성을 늦출 뿐만 아니라 자들을 핥고 만진 친실장도 혓바닥과 손을 씻어내기 위함이다. 점액을 제대로 씻어내지 않으면 언제 피부와 살을 녹이고 멋대로 옷처럼 들러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삼녀의 혓바닥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피부가 전부 녹아서 겉부분이 옷처럼 딱딱하게 변해버렸으니 뭘 먹던지 제대로 맛을 못 느끼는 게 당연한 상태였다.
“별 수 없는데스. 그러면 몸에 좋은 거라도 먹는데스.”
친실장은 예전에 붕붕씨의 집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려 다른 자들이 먹는 꿀 말고 붕붕씨 집 안에 들어있는 고치 밑부분을 깠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애벌레를 꺼내다가 삼녀에게 쥐어줬다. 실장석은 과일이나 열매, 심지어 풀까지 뜯어먹을 수 있지만 역시 적절한 골격근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해야했다. 그런 의미에서 애벌레는 실장석에게 매우 뛰어난 식량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꿀처럼 달달한 것도 실장석에겐 좋은 영양분이었다. 분해할 필요 없이 그대로 소화되기만 하면 바로 양분으로 써먹을 수 있고 먹이를 구하는 둥의 활동에서 매번 목숨의 위협을 받는 실장석의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줄 수도 있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요즘 들어 밖에 나가는 일이 잦아진 장녀와 차녀는 거의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꿀을 핥아먹고 있었다.
“테스테스. 이렇게 아마아마한 걸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한테스.”
“역시 마마밖에 없는테치!”
“너무 아마아마만 먹으면 혓바닥이 아야아야하는데스. 남은 건 내일 아침으로 먹는데스.”
친실장이 남은 반의 벌집을 치우는 순간에도 달콤함에 취한 장녀와 차녀는 들고 있던 벌집에 남은 꿀을 핥아먹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벌집 안에 있던 고치 안의 애벌레는 거의 다 삼녀 차지였다. 평소에 욕심을 잘 부리지 않던 장녀도 오늘만큼은 차녀랑 같이 가득한 배를 안고 만족한 것처럼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바닥에서 자면 추운데스. 자들은 잠자리에 가서 마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는데스.”
“테치테치! 오늘도 마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는테치!”
친실장이 장녀와 차녀를 일으켜 세우고 잠자리로 유도했다. 뒤에서 마지막 남은 애벌레를 질겅질겅 씹고 있던 삼녀도 가득찬 배를 이끌고 뒤뚱뒤뚱 따라왔다. 맛은 잘 모르더라도 고기로 배가 가득 찼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만족스러운지 삼녀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인테스?”
“데에... 오늘은 쫓겨난 독라분충 세 자매 이야기를 해주는데스.”
자들을 눕힌 친실장은 옛날 옛적에 굴에서 말을 듣지 않은 분충 자실장 세 자매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친실장에게 반항하던 자실장들은 당연히 독라가 되었지만 마마의 마지막 자비로 운치굴로 가는 게 아니라 굴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봐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독라에게 바깥은 험난한데스. 파닥파닥소리를 듣고 마마의 말처럼 풀숲에 엎드린 삼녀는 옷씨가 없어서 파닥파닥씨의 눈에 들키고 날카로운 발톱에 박혀서 하늘로 날아간데스.”
“테에...”
“이모토챠, 걱정마는테스. 옷씨가 있으니 풀숲에 엎드리면 파닥파닥씨도 모르는테스.”
파닥파닥씨에게 잡혀갔다는 부분에서 차녀가 눈에 띄게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장녀가 달래줬지만 금방 진정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걸 보고 운치를 지린 차녀는 쫓겨난 집처럼 안전한 굴을 파고 싶었던데스. 하지만 팬티가 없어서 사방에 퍼진 차녀의 운치냄새를 맡고 온 왕왕씨에게 물려간데스.”
“테에엥! 왕왕씨 무서운테치!”
“차녀! 마마의 이야기를 방해하면 분충인테스!”
“테엑!”
아까부터 친실장의 말마다 반응하던 차녀는 장녀에게 한 번 혼이 나고 난 뒤에야 얌전해졌다. 차녀 입장에서는 실제로 파닥파닥 씨가 자신의 자매를 집어간 걸 직접 본 적도 있고 며칠 전에 빵콘을 했던 기억도 있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친실장이 그런 것까지 신경써줄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녀는 바닷가로 도망친데스. 장녀는 파기 쉬운 모래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면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모래는 자꾸 무너져서 굴을 팔 수 없었던데스. 장녀는 모래 속에 숨으려고 했지만 숨을 쉬려면 얼굴을 내놓아야 했던데스. 그래서 장녀의 몸은 숨길 수 있었지만 알록달록한 눈씨는 숨길 수 없었던데스. 결국 장녀는 굴에 숨은 채로 바닷가의 큰파닥파닥씨에게 머리부터 먹힌데스. 자들도 분충짓을 해서 독라가 되면 운치굴로 가지 않아도 슬픈 일을 당하는데스!”
“테프프. 분충은 멍청한테스. 마마의 말을 잘 들었으면 독라가 되지도 않고 쫓겨나지도 않는테스.”
“테쨔악! 와타치는 독라가 되기 싫은테치! 마마의 말을 잘 듣는테치!”
친실장이 자신의 마마에게 수십 번도 넘게 들었던 이야기가 끝났다. 장녀는 독라들을 비웃고 차녀는 마마에게 매달렸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녀도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들은 모두 자는데스. 오랜만에 마마가 옆에서 재워주는데스.”
“텟테로게~! 오늘 마마는 상냥한테치!”
“테엣! 와타치는 마마가 재워줄 나이는 지난테스!”
“장녀도 이제 곧 독립하는데스. 독립하고 나면 마마와 같이 자고 싶어도 못 자는데스.”
“...알겠는테스.”
“삼녀도 이쪽으로 오는데스.”
오랜만에 장녀와 차녀, 그리고 새로 가족이 된 삼녀까지 끌어안은 친실장이 낮은 음으로 조용히 자장가를 불러줬다. 처음에는 투정하던 장녀도 처음부터 마마에게 달라붙었던 차녀도 슬며시 잠에 빠져들었다. 생각이 가득했던 삼녀도 조금씩 마마의 자장가에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마마의 이야기가 맞는테치. 육녀는 독라가 된 순간부터 운치굴에 있지 않으면 슬픈 일을 당하는테치. 와타치타치를 위해서 안전한 굴도 아마아마한 먹을 것도 챙겨주는 마마가 아무런 이유 없이 슬픈 일을 하지는 않는테치.“
삼녀는 육녀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을 때 친실장의 사랑을 더욱 실감했다. 그래서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자신은 친실장의 선택을 받고 자가 되었는데 왜 자신만큼 착한 엄지가 선택받지 못했는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친실장의 이야기로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엄지는 풀에 가서 엎드리는 게 느려서 파닥파닥씨에게 잡아먹히는테치. 조금만 겁을 먹으면 빵콘한 팬티에 또 빵콘해서 운치냄새를 맡고 왕왕씨가 물어가는테치. 마마가 아니었어도 육녀는 원래 죽는테치. 오히려 자로 들였으면 운치굴에 있던 때보다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었던테치.’
다정한 손과 편안한 자장가가 삼녀의 눈을 완전히 감기게 했다. 며칠 동안 삼녀를 깜짝깜짝 깨게 만든 육녀의 비명도 오늘만큼은 그녀를 깨우지 못할 것이다. 자그마한 의심은 커다란 친실장의 손에 가려지고 깊었던 죄책감은 그 깊이를 모두 채우는 사랑으로 가득 찼다.
‘육녀챠. 약속하는테치. 와타치는 죽은 육녀챠만큼 더 살아가는테치. 그리고 태어나는 자들을 육녀챠라고 생각하고 기르는테치.’
오늘만큼은 배를 곪을 걱정도 마마가 자신을 버릴 거라는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삼녀는 태어난 뒤 처음으로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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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에... 너무 높아서 손씨가 닿지 않는테치...”
나뭇가지를 높게 들어도 삼녀는 새빨간 열매에 손이 닿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장녀가 줄기를 잡고 삼녀 쪽으로 기울여주니 간신히 나뭇가지 끄트머리가 닿았다. 테잇! 하는 작은 기합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나뭇가지가 빨간 열매를 후려쳤다.
“해낸테치! 열매씨를 따낸테치!”
“4개만 더 따내고 굴로 돌아가는테스.”
장녀는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삼녀가 굴파는 일을 도우러 왔을 때도 하루 종일 일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일하면 또 적당히 쉬었다. 일하는 도중에는 많이 먹어야 한다면서 밖으로 나와서 먹을 걸 구하는 것도 적당히 한 끼 먹을 정도만 구하고 그 이상은 욕심내지 않았다.
“삼녀는 2개를 먹는테스.”
“테치테치.”
장녀를 돕는 날에 먹을 수 있는 빨간 열매는 삼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오독오독 씹히는 느낌이 재밌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딱 하나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마마의 굴처럼 조개껍데기 같은 그릇이 없어서 물을 마시려면 다시 굴 위로 올라가서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곳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실장이 밥을 먹고 찾아간 곳은 아주 얕고 물도 잔잔한 개울이었다. 삼녀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바닥에 딱 붙은 채로 기어가 흐르는 물을 마음껏 마셨다. 마마의 굴에서는 마음껏 마시지 못해서 조금은 목이 말랐는데 장녀만 도우러 오면 실컷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오네챠는 안 마시는테치?”
“이미 다 마신테스.”
삼녀의 옆에서 물을 조금 마신 장녀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굉장히 커다란 나무토막을 들고 삼녀와 함께 굴로 돌아왔다. 삼녀도 굴을 팔 때 나뭇가지가 상할까봐 그 대신 손에 들 수 있는 조그마한 돌을 들고 돌아왔다.
“어디까지 파는테치?”
“땅씨가 축축해지면 그만두는테스. 이제 거의 다 팠으니까 얼마 안 남은테스.”
장녀의 일을 도우러 오기 전에 벌써 장녀는 아래쪽 굴을 다 파 놨다. 마마의 굴과 다른 점은 마마의 굴에는 가득한 장비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아직 위쪽 굴이 다 파지지 않았다는 것 밖에 없었다.
“테엣! 텟!”
굴을 파는 법을 특별한 게 없었다. 양 손으로 돌을 들고 제일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리듯이 흙을 조금씩 파낸다. 그리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가 발밑에 흙이 많이 쌓이면 앞치마로 흙을 담아다가 굴 밖에 버리러 가면 됐다.
“테헥... 테헤... 힘든테치...”
다만 자실장의 저질 체력으로는 그런 단순한 반복 작업을 3번도 채 하지 못했다. 3번째 흙을 버리러 온 삼녀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나마 흙을 들고 내려올 때 덜 힘든 위쪽 굴이라서 3번이나 왕복한 거고 아래쪽 굴이었다면 2번도 채 못 옮기고 중간에 엎어졌을지도 몰랐다.
“테스! 테스! 테스!”
아래쪽 굴 안쪽에서는 장녀가 양쪽 발로 나무토막을 잡고 자기 몸뚱이 절반만한 돌로 마구 내려찍고 있었다. 몇 번 찍어보고는 나무토막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금 계속 돌로 내려찍는 장녀의 움직임 덕에 평범한 나무토막의 윗부분이 조금씩 파여갔다.
“오네챠, 뭐 만드는테치?”
입구 부분에서 늘어져있던 삼녀가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 내려온 삼녀를 본 장녀는 들고 있던 돌멩이를 옆으로 치우고 자신이 만들고 있던 나무토막을 보여줬다.
“마마의 굴에 있는 조개껍데기는 구하기 힘든테스. 삼녀챠. 어제 마마가 해준 독라분충 세 자매 이야기에서 바닷가로 간 장녀를 기억하는테스? 거기에 나오는 모래는 와타시타치의 맨몸이랑 비슷한 색깔인테스. 그래서 옷을 입고 가면 큰파닥파닥씨에게 물려가는테스.”
“그럼 독라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테치?”
“마마는 밤에 가서 구했다고 들은테스. 하지만 마마가 가진 것처럼 큰 걸 줍고 싶으면 열 밤은 다녀와야 한다고 들은테스. 그래서 조개껍데기를 구하기 전까지는 이걸 쓰는테스.”
“테에... 텟. 운치가 마려운테치.”
“운치굴에는 아직 노예랑 구더기가 없는테스. 밖에서 싸고 오는테스.”
아까 실컷 마셨던 물이 원인인지 삼녀는 서둘러 굴 밖을 빠져나갔다. 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풀숲 사이에 선 삼녀는 그대로 팬티를 벗고 운치를 쏟아냈다. 아까 물을 많이 마신 탓에 운치는 거의 물처럼 흘러갔다.
“깔끔하게 닦는테치.”
근처에 나뭇잎이나 풀 등을 꺾어놓았던 삼녀는 열심히 총구를 닦아내고는 팬티를 입은 뒤 재빨리 그 장소에서 달아났다. 실장석의 운치는 초록색이라서 풀숲에 운치를 지리면 시각적으로는 발각되기 쉽지 않지만 후각으로는 쉽게 발각된다. 그래서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냄새를 맡고 온 온갖 생물들을 상대해야했다.
“삼녀챠. 오늘은 이제 돌아가는테스.”
“벌써 돌아가는테치?”
“겨울이 되기 전에 홀쭉해지면 큰일나는테스.”
삼녀가 장녀의 굴로 돌아가니 입구에서 장녀가 내려오면서 돌아가자고 했다. 아직 해씨가 떨어지기 전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좀 더 일하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장녀는 겨울이 오기 전에는 너무 열심히 일하면 겨울을 버티기 힘들다면서 삼녀를 끌고 굴로 돌아갔다.
“여기는 우마우마한 작은 열매가 많은테스. 먹는 데 오래 걸리니까 가면서 먹는테스.”
“오네챠, 고마운테치!”
삼녀가 이렇게 힘든데도 장녀의 굴에서 일하는 걸 군말 없이 돕는 이유는 그만큼 장녀가 삼녀를 챙겨줬기 때문이다. 처음 굴로 오는 길에도 돌아가는 길에도 꼭 간식거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을 들려서 삼녀와 함께 오물거리면서 갔다.
실장석의 초록색 옷과는 다른 누런 빛깔의 들판을 지나가야 했지만 문제는 없다. 장녀의 굴에서 한참 일하고 나면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초록 빛깔보다는 누런 빛깔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누런 들판에 자라는 풀의 끝자락에 있는 아주 작은 열매들은 겉보기엔 별 볼일 없지만 입 안에 넣고 오랫동안 씹으면 아마아마해진다면서 장녀가 좋아하는 먹을 거리였다. 삼녀는 아마아마한 것은 잘 모르지만 장녀랑 같이 뭘 먹는다는 것이 좋았다. 열심히 입을 굴려가면서 씹어봐도 코를 킁킁거려봐도 아마아마한 느낌조차 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냄새만 났을 뿐이었다.
“오네챠? 어디서 운치 냄새가 나는 것 같은테치.”
“...삼녀챠의 말대로인테스.”
삼녀의 말대로 운치 냄새를 맡은 장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몸을 푹 숙인 장녀는 나뭇가지 창을 자기 몸에 꼭 붙인 채로 방금과는 달리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녀도 그걸 보고 몸을 푹 숙이고 소리 없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장녀만큼 잘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덩치가 작은 자실장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한참 앞서가던 장녀는 손을 들어서 뒤에서 다가오는 삼녀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삼녀가 그 자리까지 와서 보니 도착한 곳은 어제 장녀와 삼녀가 일을 끝나고 목욕을 하던 자그마한 물웅덩이였다. 그리고 그 물웅덩이에서 처음 보는 친실장과 자실장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테치테치. 물놀이 즐거운테치!”
“깨끗이 씻어야 하는데스.”
“테츙♡ 마마! 그렇게 배씨를 누르면 운치가 나오는테치! 심술궂은테츄!”
“데스데스. 와타시의 자가 귀여워서 그런데스.”
장녀와 삼녀가 맡았던 냄새는 물에서 씻고 있는 자실장이 마구 지리고 있는 운치의 냄새였다. 물에 섞인 운치냄새는 다른 생물들에게는 강한 자극을 주지는 않지만 다른 일가 실장석의 냄새, 특히 운치냄새를 맡는 순간 실장석은 체내의 신경과 호르몬 체계가 급격히 변화되어 강한 공격성을 띄게 된다.
운치 냄새를 맡으면 온갖 생물들이 몰려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 생물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같은 실장석이다. 처음 운치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나 벌레들, 그리고 그것을 잡아먹는 작은 새들 정도는 친실장에게는 커다란 위협은 아니다. 왕왕씨라고 불리는 들개는 사실 후각이 너무 발달해서 운치냄새를 맡을 순 있어도 근처까지 가지는 않는다. 파닥파닥씨는 작은 새들이 여럿 몰려있는 곳에 굳이 가서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내려가지 않는다.
공원 같은 좁은 곳에서 사는 실장석은 다른 일가들끼리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실장석의 가족 규모는 친실장과 그 자실장. 거기서 조금 더 커지면 자실장이 크게 자라서 다른 친실장이 된 정도로 기껏해야 한 가족 규모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가족이 일정한 구역인 생활권 돌아다니면서 그 생활권에 다른 실장석이 들어오는 일은 보통 없다.
있다면 남의 집을 약탈하러 온 침입자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분충이거나. 어느 쪽이건 장녀에게는 상관없었다. 친실장이 자실장에게만 신경 쓰면서 등을 보이고 있는 이 때가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분충은 죽는테스!”
“데샤악?!”
풀숲에서 튀어나간 장녀는 그대로 등을 보이고 있던 친실장에게 달려들었다. 소리를 들은 친실장이 뒤로 돌아보려고 했지만 절반도 돌아보지 못하고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옆구리를 깊게 찔리고 말았다. 옷을 입고 있었다면 옆구리만 찔리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목욕을 하느라 옷을 다 벗고 있던 탓에 분대까지 찔리고 말았다.
“데엑... 데갸아아...”
“테엑?! 마마!?”
나뭇가지에 찔린 친실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한 쪽 무릎을 꿇자 물속에 있던 자실장이 울면서 달라붙었다. 친실장은 자실장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커다란 충격을 받은 탓에 손발도 목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테챠아아아악!!! 분충 주제에 마마에게 손대지 마는테챠아아아!!!”
심지어 장녀가 친실장을 확실히 마무리한다고 집중하고 있는 동안 돌려져있던 관심도 본인이 걷어차버렸다. 알몸뚱이의 자실장이 위협하는 소리를 들은 장녀는 풀숲을 돌아보지도 않고 나뭇가지에 더욱 힘을 줬다.
“이 분충을 잡는테스!”
“알겠는테치!”
“테챠악!! 죽고 싶은테치?!”
“시끄러운테치.”
“테복?!”
삼녀가 힘껏 휘두른 나뭇가지에 머리통을 두들겨 맞은 자실장은 그대로 기절했다. 그걸 본 삼녀는 더욱 더 손에 힘을 줬다. 나뭇가지가 아주 조금씩 더 들어가자 찔린 친실장은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진 않았다.
“삼녀챠! 이 분충의 다리를 병신으로 만드는테스!”
“테에... 아, 알겠는테치!”
자기랑 비슷한 크기의 자실장은 무기를 들고 있어서 손쉽게 제압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큰 친실장에게 휘두르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삼녀는 마마가 일러준 대로 나뭇가지를 꽉 잡고 친실장의 다리를 콱 찔렀다.
“데엑... 뎃...”
끈질기게 한 쪽 다리로 버티던 친실장은 삼녀가 발을 찌르자마자 쿵 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장녀는 친실장이 쓰러지자마자 뒷머리카락을 그대로 뜯어버린 다음에 옆구리에 꽂혀있던 나뭇가지 창을 뽑아서 아직 멀쩡하던 다른 쪽 다리에 박았다. 그리고는 반대편 다리도 나뭇가지를 꽂아서 다리 쪽을 질질 끌고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삼녀도 그걸 보고 기절시킨 자실장의 머리를 뽑고 그 머리카락으로 다리를 묶어서 끌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작업을 마친 두 실장은 침입자들이 벗어놓은 옷과 머리카락을 챙긴 다음 굴로 출발했다.
“테후... 고생한테스. 삼녀챠.”
“아닌테치. 큰일은 장녀가 다 한테치.”
“조금만 참는테스. 더 가면 마마가 와서 도와주는테스.”
삼녀에게 자실장을 옮기는 건 굴에서 흙을 퍼올 때보다도 더 힘든 노동이었다. 하지만 장녀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친실장을 끌고 오고 있는 걸 본 삼녀는 투정부리지 않았다. 잠시 후 장녀의 말대로 무서운 얼굴을 한 마마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더니 장녀와 삼녀가 독라가 된 노예 둘을 데리고 오는 걸 보고는 엄청나게 환한 얼굴이 되었다.
“장녀! 삼녀! 역시 내 자인데스! 오늘은 고기파티를 하는데스!”
마마가 온 이후로 옮기는 건 쉬웠다. 친실장은 장녀에 비하면 컸지만 마마보단 작은 덕에 둘이서 들기 편했다. 아마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친실장이 첫 자를 데리고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실장석의 영역에서 목욕을 한 것 같았다.
“목욕할 때 뒤에서 찌르니 아무것도 못한테스. 씻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는 마마의 말이 맞았던테스.”
“그래서 마마가 씻을 때는 항상 주변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데스. 언제 집근처로 쳐들어온 분충이 나올지 모르는데스. 바깥에서는 항상 마음을 놓으면 안되는데스. 차녀! 나와서 삼녀를 돕는데스!”
굴 입구에 도착한 마마가 안쪽에 있을 차녀를 불렀다. 장녀가 위로 올라가서 끌어올리고 마마가 아래에서 밀어주는 걸로 간신히 친실장은 굴 입구로 올라갔다. 친실장을 올린 다음 장녀는 삼녀와 끌고 온 자실장을 굴 입구로 올려줬다.
“테엑?! 오바상은 누구인테치?”
“멋대로 와타시타치의 영역에 들어온 분충인데스. 차녀는 이 분충들의 옷씨를 들고 오는데스.”
굴에서 나온 차녀는 신기한 것처럼 친실장을 쳐다보다가 마마의 말대로 친실장과 자실장의 옷을 들고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마마와 장녀, 삼녀도 각자 짐을 들고 내려갔다. 그러던 와중에 삼녀에게 힘없이 질질 끌려가던 자실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테치? 여기는... 테쨔아아아아아! 와타치의 머리카락씨가아아!”
“분충은 닥치는테치!”
“테갸악! 텍! 테헥! 테... 겍.”
시끄럽게 떠드는 자실장의 옆구리를 걷어찬 삼녀는 머리카락에 걸쳐서 자실장을 끌고 오는데 사용했던 나뭇가지를 빼낸 뒤 반대편으로 후려쳤다. 독라 자실장은 두들겨 맞을 때마다 다양한 비명소리를 내더니 머리를 두 대 맞은 뒤로는 다시 조용해졌다.
“잘 보는데스, 장녀. 차녀도 나중에 직접 독라노예를 달마로 만들어야 하는 때가 올 수도 있는데스. 손씨 발씨가 잘리면 무조건 운치를 싸지르니 총구를 운치굴에 놔두고 자르는데스.”
“뎃...갸악...”
일찍이 아래쪽 굴에 도착한 마마는 장녀가 끌고 온 독라 친실장의 팔다리를 끊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마마가 커다란 돌덩이로 누워있는 독라의 팔을 끊어버리니 아직 숨은 붙어있는 것처럼 독라가 움찔거렸다.
“팔을 끊어낸 다음에 흙을 쥐고 마구 문지르는데스. 그리고 매일 재생하려는 팔을 자르고 같은 걸 반복하는데스. 그러면 조금씩 자라던 팔씨도 결국 자라지 않게되는데스. 장녀랑 차녀도 직접 해보는데스.”
“게헥!”
마마가 반대편 팔을 끊자마자 장녀랑 차녀가 달라붙어서 흙으로 상처부위를 헤집었다. 독라는 그 고통이 심한 것처럼 움찔거렸지만 독라의 몸은 팔다리가 움직이는 것보다 분대가 뚫린 구멍을 재생시키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 덕분인지 처음에는 뚫려있던 옆구리가 어느새 얕은 살로 덮여있었다.
“마마. 이 독라는 어디에 두는테치?”
“이리 맡기는데스.”
어느새 내려온 삼녀에게서 독라 자실장을 받아든 마마는 자실장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고 겨울의 식량저장고 옆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는 독라가 된 자실장의 총구를 살피더니 그대로 나뭇가지를 처박았다.
“테쨔아아아아아악!!! 그렇게 큰 건 안 들어가는테쮸아아아악!!!.”
기절해있던 자실장이 갑자기 몰려온 엄청난 고통에 눈을 뜨고 절규했지만 마마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총구로 들어갔던 나뭇가지 끄트머리를 잡고 몇 번 휘저은 마마는 곧 독라 자실장의 목으로 나뭇가지를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른 나뭇가지를 바닥에 꽂아 세워둔 곳에 끼워서 바비큐처럼 매달았다.
“운치굴은 이미 엄지로 충분한데스. 이 분충은 말려서 우마우마로 쓰는데스. 자들도 나중에 분충을 우마우마로 만들 때는 죽이지 않도록 주의하는데스. 오랫동안 살려서 운치가 다 빠지고 난 다음에야 우마우마해지는데스. 바로 죽이면 배를 갈라서 따로 운치를 빼내야하는데스.”
“테프프프. 분충은 우마우마가 되는 게 당연한테치.”
“데스우...? 더 못먹는데스... 데... 데뎃?! 머리카락씨!? 손씨랑 발씨도 어디간데스?!”
차녀가 매달린 분충을 보면서 웃는 게 너무 시끄러웠는지, 아니면 분대의 재생이 끝나서인지 누워있던 독라 친실장이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을 살피던 독라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머리카락과 손발이 모두 사라진 걸 보고 당황하다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자기의 자를 보고야 말았다.
“장녀?! 오로롱!! 어째서 와타시의 장녀가 저런 꼴이 된 데스!?”
“아직도 모르는데스? 오마에 같은 분충은 와타시의 장녀가 독라로 만들어 버린데스.”
“어째서인데스! 와타시는 그냥 와타시의 자를 씻기고 있었을 뿐인데스! 오마에타치에게 아무런 짓도 안한데스!”
“데프프프. 멍청한 분충인데스. 다른 실장의 굴 근처에 다가오는 실장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데스. 그래도 안심하는데스. 오마에의 자는 저런 모습이지만 아직 살아있는데스. 오마에의 굴 위치를 알려주면 장녀만큼은 그대로 놓아주는데스.”
“뎃... 장녀? 살아있는데스?”
“테호곡... 테벳...”
자신의 마마의 말이 들렸는지 매달려있는 장녀가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독라 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더 이상 장녀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알겠는데스. 알겠으니 장녀부터 풀어주는데스!”
“오마에같은 분충을 어떻게 믿는데스? 굴 위치를 먼저 불지 않으면 오마에의 자는 전부 죽는데스. 어차피 겨울도 곧 오는데 오마에가 없으니 굴에 자들이 남아있어도 다 굶어죽는데스.”
“데에... 정말로 장녀를 풀어주는데스?”
“약속하는데스.”
마마의 약속에 독라가 된 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곧 전부 다 포기한 얼굴로 자신의 굴 위치를 불었다. 독라가 털어놓은 굴 위치는 생각보다 굴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와타시의 굴은... 와타시의 굴은 아까 씻고 있던 물웅덩이에서 제일 가까운 나무의 뿌리 부분에 있는데스.”
“장녀. 이모토타치와 같이 가는데스.”
“알겠는테스!”
“잠깐! 와타시의 장녀부터 풀어주는데스!”
“걱정하지 마는데스. 자들은 어서 가는데스. 마마가 지금 풀어주는데스.”
자신의 자들을 굴 밖으로 보낸 마마는 약속한대로 독라 자실장이 매달려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렸다. 하지만 거기에서 손을 멈추고 그대로 독라 친실장에게 돌아왔다. 바닥에 혼자 내버려둔 자실장은 전혀 걷지 못하고 가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당연히 독라 친실장은 입에 거품을 물고 화를 냈다.
“약속이 틀린데스! 당장 와타시의 장녀를 풀어주는데스!”
“무슨 말인데스? 와타시는 분명히 그대로 풀어준다고 말한데스. 총구에 꽂힌 나뭇가지를 빼고 도망치는 건 본인의 몫인데스. 데프픗, 데프프픗!!”
“데갸아악!! 오마에는 실장도 아닌데스! 분충 중에서도 상분충인데스! 오로롱! 오로로롱!! 데헥!”
“이제 다 끝난데스. 오마에는 너무 시끄러우니 와타시가 조용하게 만들어주는데스.”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안 독라 친실장이 울며불며 난리를 치자 마마는 더 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못하도록 독라의 혀를 나뭇가지로 콱 찔러서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힘을 꽉 줘서 혓바닥을 뽑아냈다. 혀를 뽑아내자마자 독라 친실장의 총구가 팔다리를 잘라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쫙 벌려져서 운치를 쏟아냈다.
“데힉! 데흐이! 데히이익!”
혀가 뽑힌 독라가 뭐라고 떠들어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발음도 하지 못했다. 그냥 성대로만 낼 수 있는 바람소리를 최대한 크게 낼 뿐이었다. 마마는 이제 그 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목의 옆에 기다란 나뭇가지를 꽂았다. 꽂는 와중에도 독라가 발버둥쳐서 한 개가 부러지긴 했지만 다행히 같은 용도로 쓸 나뭇가지는 많았다. 작은 나뭇가지를 박아넣은 마마는 그대로 나뭇가지를 휙휙 돌려서 목에 구멍이 아주 조금씩 커지도록 했다.
“히이... 휘잉...”
“데스데스. 분충이 이제 조용해진데스.”
목의 구멍으로 목소리가 다 빠져나갈 때가 돼서야 마마는 나뭇가지를 빼고 양 다리도 팔처럼 잘랐다. 이제 울음소리도 못내게 된 독라는 양 눈으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총구로는 하릴없이 운치를 쏟아냈다. 마마는 땀을 한 번 닦아내고는 오른손으로 독라의 눈알을 잡았다.
“뎃데로게~ 이제 차녀랑 삼녀에게 찌그러지지 않은 공을 줄 수 있는데스. 분충 오마에 덕분인데스♡”
독라의 양쪽 눈을 뽑아낸 마마는 뒤에 딸려온 신경을 한 줄이 되도록 꼰 뒤에 가장 끄트머리를 묶고 나머지를 돌로 잘랐다. 마마는 매일 찌그러진 초록공과 빨간 공만 가지고 놀던 차녀랑 삼녀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노래가 나왔다. 신이 난 마마는 잘라낸 팔다리를 돌 위에 두고 작고 기다란 돌로 손질에 들어갔다.
“마마! 굴에 있던 것들을 다 챙겨온테스!”
“옷씨에 가득가득담아온테치!”
“레에... 여기가 새로운 집인레치?”
“마마의 냄새가 나는레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녀와 같이 나간 차녀와 삼녀가 돌아왔다. 장녀와 차녀는 아까 들고 간 독라 친실장의 옷에 가득한 비축식량을 들고 왔다. 들판 근처에 있던 굴에 넣어놓은 식량은 장녀와 삼녀가 지나다니면서 간식으로 먹던 볍씨였다. 삼녀는 독라가 된 자실장의 옷에 굴에 남아있던 구더기 다섯 마리와 꼬질꼬질한 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엄지는 운치굴에서 운치를 다 빼고 밖으로 내놓은 독라 친실장을 보고는 신난 것처럼 웃어댔다.
“치프픗! 똥마마가 독라달마가 된 레치! 오바상이 그런레치? 그럼 오바상이 와타치의 새로운 마마인레치! 빨리 와타치를 안아주는레츙♡”
“데프프프. 분충도 이런 분충이 없는데스. 오마에의 마마를 따라 오마에도 독라가 되는데스.”
“레쨔아악?! 소중한 옷씨를 빼앗으면 안되는레치! 레에엥! 와타치의 머리카락씨가! 레에엥! 레에에엥!!!”
마마는 엄지의 옷을 벗기고 앞머리를 뜯었다. 그리고 남겨둔 뒷머리를 나뭇가지에 묶은 뒤에 아까 장녀를 말릴 때처럼 다른 나뭇가지를 대고 운치굴에 매달아놨다. 엄지는 운치굴 위쪽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양새로 울어댔다. 함부로 발버둥쳤다간 뒷머리가 뜯겨져나갈 거라는 걸 알아서인지 크게 반항하면서 데롱거리진 않았다.
“차녀, 삼녀. 이 분충을 패서 운치를 전부 빼는데스. 이 분충도 아마아마가 되는데스.”
“테치테치. 분충에게 와타치의 매콤한 주먹맛을 보여주는테치!”
“마마, 때리다가 죽으면 안되는테치?”
“상관없는데스. 엄지는 운치를 조금 덜 빼고 죽여도 씻어먹기 편한데스.”
“레헹! 아픈레치! 레뷰악!”
차녀는 매달려 있는 엄지를 마구 두들겨팼다. 마마에게 죽여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삼녀도 손속을 두지 않고 오늘 장녀의 굴을 파던 것처럼 있는 힘껏 후려쳤다. 얼마나 쎄게 때렸는지 옆에서 같이 때리던 차녀가 겁을 조금 집어먹고 물러날 정도였다. 엄지는 양 손으로 금방이라도 뜯어질 것 같은 뒷머리를 잡으면서 양발을 마구 흔들었지만 짧디 짧은 발로 자실장 둘의 주먹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배에 주먹과 발차기가 꽂힐 때마다 매달린 엄지가 미처 닫지 못한 총구에서 운치가 꿀럭꿀럭 흘러나왔다.
“테치이이이잇!”
“레챠아아악!”
계속된 반동에 위태위태하던 엄지의 머리칼은 삼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린 펀치를 마지막으로 죄다 뜯겨나갔다. 뒷머리가 다 뜯긴 채로 몇 번 튕겨져 나간 엄지는 넘어진 자세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차녀가 그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고 놀라는 와중에도 삼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죽은 엄지를 들고 마마에게 갔다.
“마마의 말대로 운치를 다 빼서 가벼워진테치!”
“훌륭한데스. 겁도 없이 우리 집에 쳐들어온 분충을 먹을 때는 꼭 운치를 빼야하는데스.”
“레휴웅♡ 마마의 프니프니 너무 격렬한레후! 우지챠 천국으로 가버리는레후!! 레... 레... 레삣?!”
마마는 삼녀가 가져온 구더기들을 직접 프니프니해서 안에 들어있는 운치를 빼고 있었다. 포대기를 뺏긴 것도 잊고 기뻐하던 우지챠가 더 이상 운치를 싸지 않자 마마는 재빨리 우지챠의 목을 뜯어냈다. 구더기는 프니프니를 받으면서 행복해하다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마마는 뜯어낸 구더기의 머리를 자기 입으로 쏙 집어넣고 오독오독 씹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각자 고기 한 덩어리랑 구더기 한 마리인데스. 장녀와 삼녀가 잡아온 물건이니 각자 구더기 한 마리씩 더 먹는데스.”
독라에게서 잘라낸 팔다리의 피부를 벗겨내니 훌륭한 고기 한 덩어리가 되어 각자 자들의 앞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차녀는 삼녀가 자신보다 구더기 한 마리를 더 받은 게 불만인 눈치였다.
“마마. 와타치는 더 없는테치?”
“차녀는 오늘 아침 붕붕씨 집을 먹을 때 아마아마한 걸 많이 먹은데스. 저녁은 삼녀에게 양보하는데스.”
마마의 말에 차녀는 조용히 자기 몫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간간히 삼녀를 노려봤다. 삼녀는 고된 일을 하고 싸움까지 벌인 게 피곤했는지 게걸스럽게 자기 몫을 먹느라 차녀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들이 식사를 다 마치자 친실장은 자기 뒤에 숨겨뒀던 독라의 눈을 꺼내서 차녀랑 삼녀에게 건넸다.
“차녀랑 삼녀는 새로운 공을 받는데스.”
“마마. 찌그러진 공은 어떡하는테츄?”
“위쪽을 살짝 뜯어서 엄지나 구더기를 씻길 때 쓰는데스. 장녀. 굴에 가져가서 그렇게 쓰는데스.”
“역시 마마인테스! 고마운테스!”
다들 자기 몫의 물건을 받고 기뻐하고 있을 때도 차녀는 곁눈질로 삼녀를 흘겨봤다. 자신도 처음 태어났을 때 찌그러진 공으로 놀았는데 자기보다 낮은 삼녀가 벌써 새로운 공으로 논다는 게 불만인 듯 싶었다. 밥을 먹고 잠깐 논 다음에 잠자리에서 다 같이 자러 갔을 때도 그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삼녀챠가 오네챠를 우습게 볼 수도 있는테치. 어떻게든 건방진 이모토챠를 혼내줘야 하는테치!’
차녀는 이대로 쭉 생활하다가는 삼녀가 자신을 우습게보고 결국에는 아까 운치굴 위에 매달렸던 엄지처럼 사정없이 두들겨 팰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힘으로 삼녀를 혼쭐내줘서 결코 오네챠를 우습게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혼쭐내기만 한다고 삼녀가 갑자기 차녀를 오네챠로 대접해줄 리는 없지만 차녀의 머리로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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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는 장녀랑 같이 장녀의 굴에 다녀오는데스. 그 동안 사이좋게 지내야하는데스.”
“당연한테치!”
“다녀오시는테치!”
차녀와 삼녀가 굴을 떠나는 마마와 장녀를 배웅했다. 아침으로 갓 재생한 독라 친실장의 팔다리를 자른 야들야들 스테이크를 먹어서 그런지 삼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차녀의 눈빛은 여전히 모른 채였다.
“삼녀챠. 아래에서 공을 차고 놀다가 운치굴 뚜껑이나 저장고의 음식을 건드리면 혼나는테치. 그러니까 위쪽에서 노는 게 나은테치. 위쪽은 좁으니 공 하나만 들고가는테치.”
“차녀 오네챠 말이 맞는테치! 올라가는테치!”
삼녀를 유인하기 위해서 대충 지어낸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간 삼녀는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위쪽으로 올라갔다. 공을 들고 위로 올라간 삼녀는 바삭바삭한 나뭇잎이 가득한 잠자리를 보고는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테치테치! 차녀 오네챠도 같이 노는테치!”
“알겠는테치!”
차녀는 삼녀랑 같이 놀아주는 척 잠자리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팔다리를 뻗는 척, 장난치는 척을 하면서 삼녀를 은근슬쩍 때렸다. 삼녀는 차녀의 손발을 피하려고 했지만 나뭇잎 속이라 움직이기 힘들어서 계속 두들겨 맞아야 했다.
“차녀 오네챠! 그만두는테치! 아픈테챠!”
“테치테치. 미안한테치. 일부러 한 건 아닌테치.”
“여기서 노는 건 너무 아픈테치. 공씨를 가지고 노는테츄.”
나뭇잎에서 빠져나온 삼녀가 공을 이리저리 차고 던졌다. 차녀도 나와서 대충 받아주는 척 하다가 입구 근처에서 공이 올 때 몸만 슬쩍 뺐다. 차녀에게 던진 공은 그대로 입구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테엣! 공씨가 굴러간테치!”
“삼녀챠, 그렇게 던지면 어떡하는테치! 빨리 가서 주워오는테치.”
“테에...”
차녀의 말처럼 삼녀가 특별히 이상하게 공을 던지거나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삼녀는 굳이 뭐라고 하지 않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위층에서 구른 공은 입구 쪽의 턱에 한 번 튕겨서 저 아래 운치굴까지 내려갔다. 운치굴에서 위층까지 공을 들고 올라온 삼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주저앉았다.
“테헥... 테헥... 힘든테치.”
“고작 그거 가지고 지친테치? 얼른 노는테치!”
“테겍!”
차녀는 삼녀가 들고 온 공을 그대로 삼녀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지쳐서 제대로 받지 못한 삼녀는 얼굴에 공을 맞고 그대로 자빠졌고 공은 다시 한 번 아래로 굴러갔다. 삼녀는 허망한 표정으로 저 아래로 굴러가는 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제대로 안 받고 뭐하는테치? 빨리 가서 주워오는테치!”
“테에? 이번엔 차녀 오네챠가 주워와야 하는 게 아닌테치?”
“시끄러운테츄! 이모토챠는 오네챠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테치!”
“...알겠는테치.”
제멋대로인 차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삼녀는 자실장들끼리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던 마마의 말을 떠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래쪽 굴로 내려갔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빨리 올라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올라왔다. 삼녀 나름대로 반항을 한 셈이다.
“왜 이렇게 느릿느릿한테치! 어제 우지챠를 하나 더 먹은 게 소화가 덜 되서 우지챠처럼 느릿느릿해진테치?! 소화도 못 시킬거면 적당히 처먹는테치!”
당연히 위층에서 기다리지 못한 차녀가 화를 내면서 내려왔다. 삼녀는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앞에 놓아뒀던 공을 슬쩍 차녀 쪽으로 굴렸다.
“공을 던질때마다 아래로 내려오는 건 힘든테치. 그냥 아래에서 살살 노는 게 나은테치.”
“우지챠를 하도 처먹어서 머리도 우지챠가 되버린테챠악! 아래에서 놀다가 마마가 화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왜 그걸 못 알아먹는테츄아!!”
“마마가 화낼 일은 차녀가 이미 한 테치.”
“테에...?”
차녀는 삼녀의 손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제 분충을 꽂아둔 꼬치 옆에 비스듬하게 세워둔 나뭇가지 몇 개가 뒤쪽이 부러진 채로 휘어있었다. 아까 차녀가 아래로 던진 공이 제멋대로 튀어서 사방에 굴러간 결과 중 하나였다.
“테엑... 사, 삼녀챠가 멋대로 부러뜨리고 오네챠 탓하지 마는테치! 오네챠를 모함하는 이모토챠는 분충인테챠악!”
“오네챠 맘대로 생각하는테치. 와타치는 입구에서 마마를 기다리는테치. 차녀 오네챠는 혼자 거기서 노는테치.”
사실 삼녀는 당장이라도 차녀에게 달려들어서 후려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자들끼리 싸우지 말라는 마마의 말을 기억하고는 참았다. 어차피 잠시 후에 돌아올 마마에게 말하면 알아서 차녀에게 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삼녀는 조금이라도 빨리 마마를 보고 싶었다.
“분충이 어딜 도망가는테챠악!”
“테걋?!”
차녀도 물론 마마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은 이성보다 빨랐다. 차녀는 굴 위쪽으로 걸어가던 삼녀의 뒷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자실장의 힘이라서 뜯어지지는 않았지만 강한 고통에 그대로 삼녀가 빵콘하면서 뒤로 넘어갔다. 뒤로 넘어진 삼녀는 곧장 자신을 걷어차기 시작한 차녀 때문에 얼굴을 붙잡고 웅크려야했다.
“오네챠에게 반항하는 건방진 분충에게 본때를 보여주는테치!”
“테겍! 그만두는테치! 마마가 자들끼리 싸우지 말라고 했던테치!”
“분충은 자가 아닌테챡! 운치굴에 끌려단 오마에의 이모토타치와 똑같이 만들어주는테챠아아...?”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차녀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면서 삼녀를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물렁물렁한 살에 튕겨야 할 발은 무언가에 꽉 붙들려서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차녀가 내려다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웅크려서 맞기만 하고 있던 삼녀가 무서운 얼굴로 발을 붙잡고 있었다.
“분충은 오마에인테챠아아악!”
“테갸악!”
차녀의 발을 붙잡고 있던 삼녀가 일어서면서 그대로 차녀의 발을 위로 던져버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날아가버리는 가벼운 몸의 자실장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서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친 충격으로 빵콘하고 말았다. 삼녀는 넘어진 차녀의 위쪽에 아예 올라탔다.
“오네챠라고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인테치! 마마의 말을 안 듣는 분충은 와타치가 마마 대신 운치굴로 보내주는테챠아악!”
“테겍! 테벳! 분충 주제에 왜 이렇게 무거운테찌이...!”
차녀는 위에 올라탄 삼녀를 다시 엎어보려고 팔다리를 아등바등했지만 바닥에 깔린 채로 꼼짝없이 두들겨 맞아야했다. 삼녀는 분명 자신보다 늦게 태어나서 가볍고 힘도 약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젖을 다 떼고 검은 열매를 처리하느라 차녀보다 하루에 먹는 양의 3~4배를 먹고 자란 삼녀는 어느새 차녀랑 비슷한 덩치가 되어있었다.
아까 차녀가 떠드는 데 집중하지 않고 삼녀가 처음 넘어졌을 때 깔고 뭉갰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기회는 지나갔고 삼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차녀는 넘어진 자세로 삼녀의 주먹질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팔로 얼굴을 가려도 채 반도 가려지지 않았다. 삼녀의 주먹이 드러난 얼굴에 쉴 새 없이 꽂히니 점점 가려져있던 차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테헥... 게헥...”
이미 한 번 자실장을 때려잡은 경험이 있는 삼녀는 여기서 조금만 더 두들기면 차녀도 저기에 꽂힌 채로 매달린 독라꼴이 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찌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는 차녀를 내려다 본 삼녀의 마음이 다시금 약해졌다. 아무리 분충이라고 해도 오네챠였다.
“...이제 봐주는테치. 오마에는 마마가 올 때까지 거기서 누워있는테치.”
차녀에게서 내려온 삼녀는 걸을 때 방해되는 빵콘된 팬티를 벗어서 운치굴에 털었다. 걸을 때 다리 사이에 흔들려서 방해되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털어두지 않았다가는 잘못하면 굴 안쪽에 운치를 흘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녀는 이렇게 운치를 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저번에 자실장을 씻기던 친실장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분충은 죽는테챠악!!”
“테헥?!”
쓰러져있는 줄 알았던 차녀의 목소리가 어느새 눈앞에서 들려왔다. 깜짝 놀란 삼녀는 일단 본능적으로 옆으로 뛰어서 피하려고 했지만 자실장의 민첩함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었다. 이미 삼녀를 노리고 한참 전부터 뛰어온 차녀가 훨씬 더 빠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테챠아아아악!”
팬티를 터느라 제법 크게 열어놨던 운치굴 입구로 삼녀가 굴러 떨어졌다. 그대로 운치구덩이에 머리를 박은 삼녀는 그 자세 그대로 운치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팬티를 벗어놔서 하늘로 솟구친 운치가 그대로 삼녀에게 떨어졌다.
“테갸악! 이게 무슨 짓인테챠악!”
“테프프프! 분충에게는 운치굴이 딱 어울리는테치!”
정신을 차린 삼녀가 일어나서 항의하는 것도 제대로 듣지 않은 차녀는 그대로 운치굴 뚜껑을 닫아버렸다. 찌그러진 얼굴로 한껏 삼녀를 비웃던 차녀는 뒤돌아보고 나서야 굴 안이 운치로 범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빵콘한 채로 삼녀에게 달려들 때 차녀의 운치가 사방에 튀었던 탓이었다.
‘테에... 어차피 똥이모토챠가 했다고 하면 되는테치.’
얼굴이 찌그러진 탓인지 운치냄새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빵콘한 팬티도 반 정도는 흘러서 걸어갈 땐 별로 방해가 되지 않았는데 입구로 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물컹뜨끈한 느낌이 걸리적거렸다. 차녀는 입구 너머로 빵콘한 팬티를 턴 다음에 그 자리에 앉아서 마마를 기다렸다. 마마가 돌아오자마자 울고불고 매달리려는 속셈이었다.
“데스데스. 이제 장녀도 자신의 굴을 가지게 된 데스.”
“마마가 도와준 덕인 테스! 봄이 되면 와타시도 어엿한 마마가 되는테스!”
단순히 흙을 파서는 자들이 뛰어놀 정도로 단단한 굴이 되지는 않는다. 마마는 장녀가 판 굴에 가서 굴을 꽉꽉 다지는 작업을 도와줬다. 중실장 정도의 크기로 판 굴을 꾹꾹 눌러서 단단해질 정도로 밀면 딱 친실장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통로 크기가 되었다. 장녀는 마마와 함께 자신이 판 굴을 열심히 다진 다음 굴 안에 장녀의 냄새가 충분히 밸 수 있도록 운치굴에 운치를 싼 다음 뚜껑을 열어둔다. 마지막으로 봄에 굴을 열기 전까지 다른 분충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철저하게 막아두면 끝이었다.
“뎃...?”
“마마? 무슨 일인테스?”
“장녀는 빨리 따라오는데스!”
보람찬 일을 끝마치고 돌아왔던 마마가 입구에 쌓여있는 운치를 보고 깜짝 놀라서 굴 안으로 뛰어갔다. 실장석이 한 번 운치를 지리면 딱 팬티가 가득할 정도로 쌌다. 하지만 굴 입구에 쌓여있는 운치는 팬티는 물론이고 자실장의 옷 분량만큼이나 쌓여있었다. 이 정도라면 팬티를 벗고 앉은 자리에서 배가 텅텅 비어버릴 때까지 운치를 지려야만 했다.
“차녀! 삼녀! 어디있는데스! 대답하는데스!!”
차녀와 삼녀가 굴 안에 있다면 마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마가 아무리 불러도 차녀와 삼녀의 대답은 없었다. 굴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입구에서 맡았던 운치의 냄새와 같은 차녀의 냄새가 잔뜩 났다. 하지만 가장 안쪽의 운치굴 근처까지 오니 아주 조금이지만 삼녀의 냄새도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의 근원지는 운치굴 옆에 떨어져있는 삼녀의 팬티였다. 마마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운치굴의 뚜껑을 열었다.
“삼녀! 무사한데스?!”
“테에엥! 마마!”
다행히 마마의 예상대로 삼녀는 운치굴 안에 있었다. 운치굴로 떨어진 탓에 한 쪽 다리가 꺾이고 전신이 운치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큰 외상은 없었다. 마마는 삼녀를 꺼내서 옆에 있는 조개껍데기에 담긴 물에 삼녀를 집어넣었다.
“삼녀. 차녀는 어디간데스?”
“차녀 오네챠는... 와타치를 때리고 운치굴로 떨어트린 다음에 뚜껑을 닫고 간 테치. 그 다음은 잘 모르는테치.”
“...장녀는 나뭇가지 창을 들고 와타시를 따라오는데스.”
삼녀의 말을 듣고 차녀가 굴에 없다고 확신한 친실장은 장녀와 함께 곧장 굴 밖으로 나갔다. 차녀의 운치냄새가 자욱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희미하게 다른 실장석의 냄새가 났다. 마마는 온 감각을 동원해가면서 근처의 흔적을 찾았다. 그 덕에 성체의 실장석이 급하게 뛰어가느라 바닥이 조금씩 밀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친실장이 그 흔적을 보자마자 그 방향으로 뜀박질해갔다.
“마마! 같이 가는테스!”
“장녀는 잘 따라오는데스! 장녀에게 맞춰줄 시간이 없는데스!”
친실장은 중실장이 된 장녀가 전력질주를 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달렸다. 마마의 말을 들은 장녀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마는 멈췄다. 마마가 멈춘 곳에는 처음 보는 친실장이 독라 자실장 한마리를 독라의 머리카락으로 된 목줄에 묶어 끌고 있었다. 독라 자실장은 마마를 보자마자 빼액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마! 와타치가 차녀인테치!! 이 오바상이 와타치를 멋대로 끌고온테챠!!”
“조용히 하는데스.”
“테벳... 게흑! 테베렛!”
친실장이 목줄을 들어올리자 머리카락 목줄에 차녀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차녀는 양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머리카락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차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마마의 얼굴이 좀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데프프프. 이 멍청한 분충은 와타시가 마마인 줄 알고 제멋대로 달려든데스. 그러니 와타시가 새 마마가 되어주기로 한 데스.”
“아닌...테치...! 똥이모토챠 때문에 냄새를 못 맡아서 그랬던 것인테치...!”
차녀가 만약 삼녀랑 싸우지 않아서 멀쩡했다면 이렇게 독라 꼴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기 운치 냄새도 맡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엉망이 된 차녀는 굴 입구에 앉아있다가 친실장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자기 마마인 줄 알고 삼녀가 미쳐서 때렸다는 둥 자기 할 말만 하다가 그대로 처음 보는 친실장에게 붙잡혀버린 것이었다.
‘데뎃... 어쩔 수 없이 차녀는 포기하는데스.’
마마는 지금 장녀와 함께 무기도 들고 있지만 둘이서 싸운다고 해도 아무런 피해 없이 저 친실장을 무찌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최선의 결과라고 해도 팔다리 한 두군데는 부러지는 걸 각오해야하고 최악의 경우는 죽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실장석의 재생력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강력한 편이지만 그만큼이나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된다. 실장석은 소화기관도 짧고 단 하나의 분대 밖에 없기 때문에 에너지를 섭취하더라도 그걸 변환할 수 있는 효율은 10% 근처에서 머무른다. 팔 하나를 잃더라도 그 팔을 재생하기 위해서 최소한 팔 10개 분량의 먹거리보다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식량을 모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평소에 먹는 양을 기준으로 모은 것이고 그것조차 풍부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봄만 되면 독립하는 장녀에게 독라가 된 자 하나 때문에 겨울에 굶어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게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마...? 마마아!! 어딜 가려는 테쨔아악!! 당장 와타치를 구하는 테에에엥!!!”
자신의 마마와 장녀가 슬쩍 뒤로 물러서는 걸 보고 공중에 매달린 차녀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걸 본 친실장은 차녀의 목을 조르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어서 품속에 넣어뒀던 옷과 함께 마마 앞으로 던졌다. 당연하지만 차녀는 여전히 붙잡힌 채였다.
“현명한 실장인데스. 아쉬워하지 않도록 옷이랑 머리카락은 남겨주고 가는데스.”
“마마아아!!!!! 와타치를 버리지 마는테쨔아아악!!! 고귀한 와타치가 죽으면 전우주의 손해인테에에에엑!!! 소중한 옷씨랑 머리카락씨는 두고 가는 테쮸와아아아아악!!!!”
마마와 장녀는 친실장이 던져준 옷과 머리카락을 챙기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가족들을 본 차녀가 머리통을 잡힌 채로 반항했다. 잠시 후 차녀의 가족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친실장은 양 손으로 차녀의 몸통을 붙잡았다.
“이젠 오마에도 살려둘 필요가 없는데스.”
“테갸악!! 오바상, 제발 살려주는테치!! 와타치의 마마가 되는 걸 허락하는테찌잇! 찌아악! 찌그갸아아아악!!!!”
“데프프프. 분충의 머리통은 역시 우마우마한데스.”
산채로 머리통이 이빨로 잡힌 채로 뜯겨나간 차녀의 몸통은 한참동안이나 부들부들 떨었다. 친실장은 그 떨림이 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한 때 차녀였던 무언가는 곤죽이 되어서 친실장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마마... 저 분충은 무엇인테스?”
“가을에 자를 잃은 실장석인데스. 장녀도 나중에 자를 낳으면 저런 실장석에게 자가 끌려가지 않도록 교육해야 하는데스.”
실장석은 본능적으로 자들을 많이 낳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실장석에겐 행동의 제약이 걸린다. 자신의 굴에 넣어둔 비상식량과 소중한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굴에서 일정 범위 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를 전부 다 잃어버린 실장석이라면 그런 제약 따위 없었다. 실장석이 굴을 파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외부 환경을 견디기 어려운 자들이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하는 터전의 역할이 컸다. 친실장 혼자서 살아가는 굴이라면 그렇게 큰 굴을 지을 필요 없이 자신이 잘 자리와 먹을 것을 놓을 자리, 운치굴 정도면 끝이다. 심하면 잠을 자는 곳만 굴로 파두고 먹을 것과 운치굴 같은 건 준비해놓지 않는 실장석도 있었다.
이렇게 자가 없거나 자를 다 잃어버린 친실장은 따로 자신의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섬 전체의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다른 자실장 이하의 운치냄새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냄새를 쫓아간다. 그리고 다른 친실장의 자를 곧바로 독라로 만들고 들고 올 때 운치를 흘리는 일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서 운치를 뺀 다음 끌고 간다. 그 자실장의 마마가 이성을 잃고 덤벼드는 일이 없도록 보통은 살려두지만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자실장은 그대로 죽게 된다.
독라가 된 자실장은 서럽게 울면서 마마를 부르지만 자실장의 마마가 오더라도 이미 독라가 된 자실장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친실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보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해서 더 많은 자를 낳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고 심지어 그 자가 독라라면 더더욱 가치가 없었다. 친실장이 망설이는 걸 본 습격자는 보통 협상용으로 독라가 된 자의 머리카락과 옷를 떼 주고 뒷걸음질로 사라진다.
그래서 친실장은 자들에게 운치를 쌀거면 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아예 운치굴에만 싸라고 교육한다. 당연히 차녀도 그걸 마마에게 교육받았지만 삼녀에게 맞아서 얼굴이 찌그러진 탓에 냄새를 맡지 못한 탓에 냄새도 나지 않는 운치를 털어봐야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잘 된 일일 수도 있는데스. 차녀는 말을 잘 듣는 자였지만 식탐이 많았던데스. 차녀가 없어진 덕분에 우리 굴은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먹을 식량이 충분해진데스.”
“테에...”
어느새 행복회로를 돌리는 마마의 말에 차마 뭐라고 할 수는 없어서 장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마마는 굴로 돌아가기 전에 아주 얇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돌아왔다. 굴 안에 있던 삼녀는 마마가 오기 전까지 다 씻고 옆에 있던 나뭇가지에 옷을 넣어서 옆에 매달린 자실장처럼 널어놨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척척 처리한 삼녀를 보고 마마는 대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삼녀. 여기로 오는데스.”
“테에...?”
삼녀는 운치굴 입구 근처에 앉아서 자신을 부르는 마마를 불안한 것처럼 쳐다봤다. 하지만 마마의 말대로 옷을 벗어서 알몸뚱이인 상태로 마마가 가리킨 다리 위로 올라왔다. 마마는 자기 다리 위로 올라온 자실장을 총구가 운치굴 쪽으로 향하도록 눕히고 한 손으로는 등을 누르고 반대쪽 손에는 아까 꺾어온 얇은 나뭇가지를 들었다.
“마마는 분명 자들끼리 다투지 말라고 말한데스.”
“마마?! 차녀 오네챠가 먼저 심술부린테치! 때린 것도 차녀 오네챠가 먼저 떄린테치!”
“시끄러운데스! 마마가 한 말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하는데스!”
“치이이이!!”
마마가 사정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날카롭게 휘둘러진 나뭇가지가 작은 자실장의 엉덩이에 빨간 줄을 남겼다. 처음 느껴보는 깊은 통증에 자실장은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운치를 마구 뿜어냈다. 마마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엉덩이에 빨간 줄이 5개가 그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마마는 삼녀를 자신의 다리에서 내려놨다.
“테에엥... 테엥...”
“마마가 삼녀에게 뭐라고 말한데스? 분명히 자들끼리는 절대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데스.”
“하지만 차녀 오네챠가 먼저 때린테치! 와타치를 괴롭힌테치! 그런데 왜 와타치만 벌을 받아야하는테찌!!”
“차녀는 죽은데스. 이제부터 오마에가 차녀인데스.”
“테에...?”
울면서 마구 소리 지르던 삼녀가 그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 마마는 눈물범벅에 하반신에는 운치가 묻어있는 삼녀를 자신의 품으로 껴안아주었다.
“차녀는 슬픈 일을 당한데스. 이제 겨울이 지나고 장녀가 독립하면 우리 굴의 장녀는 오마에인데스. 삼녀... 아니. 차녀는 앞으로 태어날 이모토타치를 잘 이끌어야 하는데스. 잘 할 수 있는데스?”
“물론인테치! 와타치는 자랑스러운 마마의 자가 되는테치! 장녀처럼 똑똑한 오네챠가 되는테치!”
“역시 와타시의 자인데스. 차녀는 마저 씻고 자는데스. 마마는 장녀와 마저 할 일이 남은데스.”
마마는 차녀가 된 삼녀를 놔두고 장녀와 함께 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차녀의 운치와 섞은 흙을 적당히 굴 주변에 뿌려뒀다. 운치굴을 팔 시간이 따로 없을 때 실장석은 운치를 흙과 섞어서 자신이 사는 곳의 주변에 뿌린다. 이렇게 처리하면 운치의 강렬한 냄새는 쿰쿰한 냄새 정도로 사그라지고 주변에 있는 식물에게 좋은 양분이 되었다.
당연히 자를 잃은 친실장들이 자신이 자는 곳 근처에서 운치를 처리하는 방식도 이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친실장은 위험부담 때문에 자는 곳을 한 곳에 정해두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적절한 자리로 옮긴다. 못해도 절반이 넘는 친실장이 돌아다니면서 온갖 곳에 흙에 버무린 운치를 뿌려대는 덕분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에는 다시 한 번 섬에 온갖 식물들이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바람씨가 차가워진데스. 장녀. 내일 아침에는 굴막기를 하는데스.”
“이모토챠도 깨우는테스?”
“당연한데스. 장녀의 굴파기를 도왔으니 일손도 도울 수 있는데스.”
밤이 되니 밖에 잠깐 나갔다 왔을 뿐인데 차가워진 손발을 비빈 마마와 장녀가 굴 안으로 돌아갔다. 잠자리에는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은 차녀가 멀뚱멀뚱 뜬 눈으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있던 차녀가 사라진 빈자리는 제법 커서 그런지 남은 머리카락으로 다른 자들이 덮을 이불도 만들 수 있었다. 원래는 장녀와 차녀 밖에 안아주지 못했던 마마는 오늘은 온 가족을 다 안아줄 수 있다면서 좋아했다. 벌써부터 가족 중에 차녀의 빈자리를 느끼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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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
자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새벽. 먼저 눈을 뜬 친실장은 자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잠자리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잠자리 근처에 걸어둔 여분의 자실장 옷 두 벌을 들고 나왔다. 굴의 입구로 나오니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의 찬바람이 친실장의 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몸을 부르르 떤 친실장은 굴 밖에 놔둔 조개껍데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겨울이 다가오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진데스.’
굴에는 총 2개의 조개껍데기가 있다. 하나는 물을 받은 채로 굴 안에 둬서 자들이 물을 마실 수 있게 해두고 하나는 굴 위쪽의 물이 고여서 뚝뚝 떨어지는 곳에 놔두면 하루 동안 조금씩 물이 고이게 된다. 지금까지는 조개껍데기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자들이 마실 물은 해결되었지만 날씨가 변하면서 양이 줄어버렸다. 이제 둘이 되어버린 자들이 마시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었다.
그래서 친실장은 들고 있던 자실장의 옷을 손에 들고 근처 풀의 잎사귀를 스치듯 지나갔다. 아직 아침이 되지 않아서 조금 남아있던 이슬이 조금씩 옷에 묻어서 축축해지면 친실장은 있는 힘껏 옷을 짜서 밖에 있는 껍데기에 물을 담았다. 겨울이 지나간 초봄이라면 물가에 가서 자실장들의 옷을 담근 다음 돌아와서 짜는 식으로 물을 운반했겠지만 곧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는 추워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굴 주변을 여러 번 돌아다니고 나서야 겨우 하루치 물을 모은 친실장은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풀 몇 개를 꺾어왔다. 밖에 있던 껍데기를 들고 굴로 돌아온 친실장은 차가운 기운이 잔뜩 묻은 자실장의 옷을 벗어서 널어두고 잠자리 바깥에 앉아서 들고 온 풀을 손질했다. 가느다란 식물의 안쪽의 심을 살살 밀어서 뽑고 난 뒤 겉부분에 한 겹으로 된 얇은 막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조금 단단한 심을 몇 조각으로 나눴다. 자들의 식사에 곁들일 속셈이었다.
“자들은 일어나는데스!”
“테헤엥...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깨우는테치? 좀 더 자고 싶은테치...”
“텍! 추운테스!”
머리카락 이불 속에 폭 들어가 있던 장녀가 밖으로 나와서 찬공기를 쐬자마자 깜짝 놀랐다. 자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어제보다 훨씬 추워진 날씨 때문이었다. 그래도 늦장부리지 않고 일어난 장녀는 이불 속에서 잠꼬대를 하고 있는 차녀도 일으켜서 넓직한 돌 옆에 앉혔다.
“아침은 풀씨인테스?”
“조금만 기다리는데스. 자들이 앉은 다음에 잘라주려고 했던데스.”
친실장은 날카로운 돌을 들고 독라 친실장에게 다가갔다. 저번에 팔다리를 한 번 흙으로 비비고 그냥 내버려둔 독라 친실장은 매일 팔다리가 어중간한 길이로 자랐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독라 친실장의 팔다리를 잘라 자들에게 우마우마한 스테이크를 먹여줄 수 있었다.
“휘이... 휘...”
지금까지는 친실장이 팔다리를 자를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총구로 운치를 싸댔는데 오늘은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 말고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친실장은 이 독라노예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오늘 내로 파킨해서 죽을 게 분명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자들은 맛있게 먹는데스.”
“마마는 안 먹는테치?”
“할 일을 끝내고 먹는데스. 자들은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서 먹는데스.”
자들에게 꺾은 풀과 자른 팔다리를 전부 다 준 친실장은 보존식 창고에서 예전에 주워둔 오래된 씨앗을 꺼냈다. 옆에서 자들이 오물오물 먹이를 먹고 있을 때 씨앗을 돌에 쳐서 껍데기를 깨트린 친실장은 아까 이슬을 모은 자실장의 옷에서 앞치마만 떼고 그 위에 모았다. 씨앗 몇 개 분량의 껍데기를 모은 다음에는 옷을 덮고 돌로 다졌다. 씨앗의 내용물은 친실장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갔다.
“마마. 와타치는 이거만 먹어도 배부른테치. 더 해줘도 먹기 힘든테치.”
“이건 독라노예놈이 먹을 것인데스. 껍데기는 딱딱하고 맛도 없는데다가 소화도 잘 안되는데스. 자들이 먹었다간 아야아야하는데스.”
“테에? 그럼 독라가 먹어도 똑같지 않은테치?”
“이렇게 먹이면 되는데스.”
앞치마 안에 씨앗 몇 개 분의 껍데기는 이제 잔잔히 부서져서 조금 굵지만 삼킬 수는 있을 정도가 되었다. 친실장은 앞치마 째로 들어서 독라의 입 안에 가루를 털어서 넣고 조개껍데기의 물을 약간 따라줬다.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었던 독라는 살기 위해서 껍데기 가루라도 억지로라도 삼키려고 했다. 친실장은 먹이가 새지 않도록 다 독라의 목에 뚫린 구멍을 손으로 막고 옆에 있는 길쭉한 돌로 독라 친실장의 총구도 막았다.
“히익! 헤이익!‘
“껍데기나 나무뿌리처럼 소화가 힘든 건 독라에게 먹이고 이렇게 총구를 막으면 끝인데수웅♡”
“테프픗! 팔다리도 없는 노예놈이 움찔움찔하는게 웃긴테스!”
팔다리는 없었지만 아직 귀는 남아있었다. 자신을 비웃는 소리를 들은 독라노예는 그 자리에서 목만 휙휙 돌리면서 바람 빠진 소리를 냈지만 이래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고 또 다시 행복회로를 돌리느라 잠잠해졌다. 친실장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독라에게 다시 한 번 잘게 부순 껍데기를 먹이고 내용물은 자들에게 나눠줬다. 껍데기 안쪽의 하얀 덩어리는 양은 적지만 고소한 맛이 났다.
“마마. 총구를 막으면 운치를 못 싸서 배씨가 터지는 게 아닌테스?”
“봄의 일을 기억하는데스? 똑똑한 자인데스.”
마마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준 말을 기억하는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지만 장녀 입장에서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친실장은 아직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굴에 미리 넣어둔 꽃으로 임신했었다. 자기 딴에는 봄이 시작하자마자 자를 낳아서 얼른 키우려는 속셈이었겠지만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한다고 해서 날씨가 곧바로 풀리는 건 아니었다.
“텟테레~! 테...에? 눈씨가 깜깜한테치! 아무것도 안 보이는테치!”
“레에엥, 마마! 어디있는레치?! 어서 핥아주는레챠아악!”
“기다리는데스! 지금 핥아주는데스!”
덕분에 바깥에서는 자를 낳지도 못하고 급한 대로 굴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부어서 만든 흙탕물에 자를 낳아야만 했다. 사방이 캄캄한 굴, 그리고 빠지면 잘 보이지도 않는 흙탕물에서 자를 낳느라 구더기 몇 마리는 제 때 건져내지 못해서 익사했고 머리카락에 붙은 점액을 눈치 채지 못한 자 중 일부는 머리카락이 녹아내린 다음에 하나로 뭉쳐서 어쩔 수 없이 독라로 만들어야만 했다.
“레에엥... 목마른레치...”
“마마, 배고픈테치. 식사시간은 언제인테치?”
“기다리는데스. 마마가 물을 구해오는데스.”
겨우겨우 태어난 장녀와 자매들은 그 뒤에도 계속 고생해야만 했다. 아직 흐르는 강물이 다 녹지 않아서 이슬만 모으는 것으로는 자들에게 먹일 물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래서 마마는 처음으로 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저 멀리 얼음이 녹은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왔었다. 그리고 물을 떠오느라 마마가 굴을 비운 그 짧은 사이에도 사건은 일어났다.
“꺼어윽-! 배가 빵빵해진테치.”
“테에엥! 테에에엥!”
굴로 돌아오자마자 친실장을 맞아준 것은 오늘 점심과 저녁용으로 남겨둔 식량을 혼자 다 처먹어서 배가 자기 몸뚱이만큼 튀어나온 장녀와 그런 장녀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찌그러진 채로 울고 있는 차녀와 삼녀였다.
“장녀! 오마에는 물 마실 자격도 없는데스!”
“테엑?! 똥마마가 드디어 미친테치? 와타치한테 두들겨 맞아야 정신차리는테치?”
“돼지처럼 처먹은 주제에 말이 많은데샤아아악!”
“치뷁?!”
차녀와 삼녀를 두들겨 패고 자신감이 충전된 장녀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주먹을 붕붕 휘두르면서 위협했다. 친실장은 그래도 처음 낳은 자식이라고 그대로 머리를 으깨버리지는 않고 적당히 차녀랑 삼녀가 두들겨 맞은 만큼의 딱 두 배만 후려팼다. 당연히 떠온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많이 처먹고 물을 못 마신 장녀는 친실장의 의도대로 목이 막힌다면서 엄청 괴로워했다.
“마...마...! 배씨가... 아픈테찌...! 찢어질 것 같은테찌익...!”
“뎃?! 장녀?”
다만 의도보다 더욱 더 장녀가 괴로워했다는 게 문제였다. 밤에도 잠을 못 자고 계속 뒹굴면서 괴로워하던 장녀를 본 친실장은 깜짝 놀라서 물을 먹여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계속해서 죽을 것 같다면서 소리치는 장녀의 얼굴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어있었다.
“테갸아아악! 자가! 아타찌의 자가 나오는테쨔아아아아악!!”
굴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장녀의 불룩 튀어나온 배에서 부욱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불룩하던 장녀의 배는 그대로 찢어져서 안에 있던 찢어진 분대가 그대로 들여다보였고 그 사이에 장녀가 자신의 자라고 생각한 것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건 장녀의 자가 아니라 수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딱딱해진 운치였다.
“자를... 핥아줘야하는테치... 와타치의 자...”
“장녀! 눈을 뜨는데스! 장녀!!!”
끝까지 자신이 자를 낳았다고 생각하던 장녀는 튀어나온 눈알을 감지도 못한 채 참생을 끝마쳤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그 때의 삼녀이자 지금의 장녀는 물을 마시지 못한 실장석이 어떤 꼴이 되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실장석은 목이 마르더라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체내의 수분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분대가 분비하는 수분을 빡빡하게 재흡수하고 물기가 번들번들한 눈가가 바짝 마르게 되어서 슬프거나 아프더라도 눈물과 운치를 흘리지 못하게 된다. 체외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으로 며칠 동안 물을 먹지 못하더라도 죽지는 않도록 신체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 현상이 지속되면 분대 속에 들어간 운치가 그야말로 돌처럼 딱딱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분대액도 아주 조금만 나오고 그 이상을 빨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에 소화는 소화대로 안 되고 분대에 쌓이게 되며 이 딱딱한 운치가 점점 커지고 쌓여서 변비에 걸리게 된다. 예전 차녀와 삼녀는 그렇게 심해지기 전에 물을 잔뜩 먹을 수 있어서 살아났지만 변비에 심하게 걸린 장녀는 작은 총구로는 딱딱하게 굳은 운치를 쌀 수가 없어서 분대의 압력이 높아진 결과 분대와 복부가 찢어져서 죽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는데스. 배가 쑥 들어갈 때까지 안 먹이면 되는데스. 어차피 눈씨를 뽑은 고기노예는 자를 못 낳으니 총구가 있어봐야 쓸 일도 없는데스.”
“마마, 그러면 와타치타치도 눈씨가 없어지면 자를 못 낳는데스?”
“계속 잘 먹고 푹 자면 눈씨도 새로 난다고 들은데스. 물론 이 독라는 겨울이 가기 전에 죽을 것이니 그럴 일은 없는데스. 데프픗!”
친실장의 말을 들은 독라가 움찔거렸지만 이제는 일가 중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푸짐한 아침식사를 마친 가족은 다 같이 굴 밖으로 나왔다. 친실장이 처음 일어났던 때보다는 덜했지만 해가 뜨지 않아서 아직도 쌀쌀한 날씨에 자들이 몸을 움츠렸다.
“움직이면 추위도 날아가는데스. 날이 밝아서 파닥파닥씨가 나오기 전에 얼른 끝내는데스.”
친실장은 굴이 있는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서 흙을 굴 입구 쪽으로 마구 쓸어내렸다. 같이 올라간 자들도 저마다 자기 앞치마에 흙을 담아서 굴 입구 쪽으로 쏟아냈다. 자들과 친실장은 해가 뜨기 전까지 열심히 돌아다녀서 굴 입구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만한 흙을 나를 수 있었다.
“테엥, 얼굴이 따끔따끔한테치!”
“괜찮은데스? 이리로 오는데스.”
“테치테치. 테힝, 마마! 간지러운테치!”
차녀는 마마의 말대로 열심히 움직여서 추위를 잊으려고 했지만 자실장의 연약한 피부로 날카로운 찬바람을 계속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친실장은 서둘러 차녀를 끌어안고 커다란 혓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살짝 얼어서 갈라지려고 하는 피부에 따듯한 혀가 닿자마자 차녀는 방금 아파서 운 것도 까먹고 간지럽다면서 꺄르르 웃었다.
친실장은 어린 자도 이렇게 추운 날씨에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겨울 오는데도 저 넓은 입구를 그대로 뒀다간 차가운 바람이 굴 안쪽까지 다 들어와서 잠자리에서도 추운 바람을 맞아야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가을의 끝자락에 미리 굴막기를 했어야 하는데 친실장을 도와서 일해야 하는 장녀가 독립하기 위해서 굴을 파러 나간 것도 있었고 본래 전부 다 운치굴에 넣으려고 했던 추자 중에서 삼녀를 자로 들이느라 비축식량을 더 모으는 등의 여러 일이 있어서 미뤄진 탓에 지금에서야 굴을 막게 된 것이었다.
“이제 언덕 위에서 할 일은 끝난데스. 차녀는 장녀랑 같이 내려가서 굴 입구를 어떻게 막는지 배우는데스. 마마는 여기서 뒷정리를 하고 내려가는데스.”
자를 밑으로 내려 보낸 친실장은 언덕 위에 파헤쳐놓은 흙을 다졌다. 직접 언덕 위에 올라온다면 어쩔 수 없어도 멀리서 다른 실장석이 봤을 때 흙을 파헤쳤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을에 자를 잃은 실장석 중에는 겨울이 한창인 와중에도 돌아다니는 개체가 있어서 더욱 조심해야했다.
“차녀챠. 흙을 꾹꾹 눌러가면서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테스.”
“테헹! 손씨가 시린테치.”
“손씨를 호호 불면서 하면 나은테스.”
“후욱! 후욱! 그래도 시린테치!”
장녀의 말대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차녀가 숨을 호호 불어보니 조금은 따듯해졌지만 차가운 흙을 쥐고 나를 때마다 금방 식어버렸다. 차녀는 얼른 일을 다 끝내버리고 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서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이 죄다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테힉... 테히이... 목씨가 쓰린테치...”
“차녀챠. 조금만 더 힘내는테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면서 장녀와 차녀가 쉴 새 없이 움직인 덕에 굴의 입구는 친실장 한 마리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구멍만 남겼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간 바깥에서 부는 날카로운 찬바람에 피부가 뻣뻣하게 굳어서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고생한데스. 자들은 굴 안으로 들어가서 푹 쉬는데스. 나머지는 마마가 하는데스.”
“테에... 마마의 손씨가 차가차가인 테치.”
“장녀. 차녀를 데리고 잠자리로 가는데스..”
“알겠는테스.”
장녀는 마마의 차가운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차녀를 데리고 굴 안으로 들어갔다. 자들이 굴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남은 흙으로 자신이 들어왔던 굴의 입구를 메우고 옆에 눕혀뒀던 두꺼운 나뭇가지를 들었다.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는 땅바닥은 조금 딱딱하긴 했지만 친실장이 몇 번이나 나뭇가지로 내려찍으니 곧 까만 속살을 드러냈다.
“차녀챠, 이리로 오는테스.”
“테에... 따듯한테치.”
굴 안으로 들어간 장녀는 차녀를 겨울 잠자리에 눕혔다. 포근포근한 잠자리의 온기가 바깥에서 살짝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니 차녀는 금방 노곤해졌다. 양 눈이 끔뻑끔뻑 감겨오는 것을 참고 있으니 장녀가 오른손을 들어서 졸리면 자도 된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잠자리만큼이나 따듯한 손의 온도를 느끼던 차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테히... 테...텟?”
“일어난데스? 마마의 뒤를 따라오는데스.”
정신없이 자고 있던 차녀는 얼굴을 스치는 찬바람에 눈을 떴다. 차녀는 어느새 마마의 품에 안겨서 굴 밖으로 나왔다. 마마는 차녀가 깨어나는 소리를 듣고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놨다. 마마에게 안겨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장녀도 같이 따라오는 중이었다. 장녀는 나뭇가지 창을 들고 있었고 마마는 등 뒤에 커다란 녹색 포대기를 지고 있었다.
“마마? 어디로 가는 중인테치?”
“이미 다 온데스. 들어가서 보면 아는데스.”
친실장은 차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앞쪽에 갈라진 틈 사이에 끼워진 돌멩이를 치웠다. 그 순간 안쪽에서 잠자리에서 느꼈던 것처럼 포근한 바람이 느껴졌다. 친실장은 먼저 장녀를 들여보내고 그 다음으로 차녀를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친실장이 열어놓은 틈 안에는 어딘가에서 조금씩 흘러들어오고 있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포근한 바람은 거기에서 불어온 것이었다.
“테스테스. 씻기 딱 좋은 물인테스.”
“테엣?! 물씨가 따끈따끈한테치! 마마, 여기는 어디인테치?”
“섬의 중심 근처인데스.”
자들이 들어오자 마지막에 돌멩이로 틈을 막은 친실장이 대답했다. 그녀가 말하기로는 자들이 태어나기 전 아직 마마가 독립하지 않았을 때, 마마의 마마와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무작정 먹이를 구하러 나왔을 때 다른 곳은 전부 눈에 덮여있었는데 이 틈새 근처만 눈이 녹아있는 걸 봤다고 했다.
“안에 들어오니 따끈따끈한 물을 있던데스. 그래서 날씨가 쌀쌀할 때는 여기서 씻었던데스.”
친실장이 들고 온 녹색 포대기는 굴에 있던 여벌의 실장복이었다. 여기서 씻을 때는 춥지 않다고 쳐도 다 젖은 옷을 입고 가는 순간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깥과 이어지는 부분을 막아놓으니 마치 굴에 있는 것처럼 포근해서 목욕하기 위해서 옷을 벗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들은 어서 옷씨를 벗는데스. 몸을 다 씻고 나면 옷씨도 잘 빨아서 가는데스.”
“테치테치! 아와아와한 목욕인테치! 테갸악! 머리카락씨가!”
“차녀챠. 천천히 벗는테스.”
급하게 옷을 벗으려다가 옷과 머리카락이 엉킨 차녀는 장녀의 도움으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에 흙을 옮기던 차녀는 물론이고 차녀가 잠든 뒤로 친실장을 도와서 일하던 장녀도 옷에 먼지가 가득했다. 장녀와 차녀는 옷을 벗어서 한 곳에 놔두고 초록색 운치자국이 진하게 배어있는 팬티는 다른 곳에 둔 다음 얕은 물로 들어갔다.
“차녀챠. 이리로 오는테스. 오네챠가 씻겨주는테스.”
“테힛! 간지러운테치, 오네챠!”
“가만히 있는테스. 다 씻으면 차녀챠가 오네챠를 씻겨주는테스.”
“알겠는테치, 오네챠!”
장녀가 차녀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주는 사이 차녀는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앞쪽의 손으로 쥐고 열심히 물에 씻었다. 차녀의 냄새가 깊숙하게 배어있던 머리카락이 물에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채취가 점점 옅어졌다.
실장석은 원래 씻는 걸 좋아하는 생물이지만 중실장 이하의 자실장과 엄지, 구더기들은 마마가 씻으러 가자고 말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씻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실장석이 목욕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목숨처럼 아끼는 머리카락을 애지중지 씻게 되는데 그 때 실장석 특유의 채취가 매우 약해지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은 실장석들의 사회적 지휘의 상징이자 체취와 페로몬 등을 외부로 발산하는 역할을 한다. 친실장이 자들을 구분하기 위한 냄새도 머리카락에서 분비하고 상대방을 위협할 때 전방으로 쏘아내는 페로몬도 머리카락이 있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독라가 하는 위협은 상대방 실장석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동족인 실장석들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에게 위협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이 탓이다.
물론 미숙아인 우지챠와 아직 팔다리가 짧아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지가 얕은 물에 빠져죽지 않도록 가족이 돌보는 것도 있지만 친실장 없이 자들끼리만 목욕을 하게 되면 냄새가 너무 옅어져서 친실장이 자를 못 알아보게 된다. 그래서 자실장들은 마마와 같은 보호자가 목욕하자고 말을 하지 않으면 씻지 않는 것이었다.
“장녀 오네챠, 조금만 숙이는테치! 어깨까지 손이 안 닿는테치!”
“괜찮은테스. 어깨는 와타시가 씻는테스.”
장녀가 머리카락을 풀자 차녀보다 훨씬 많은 채취가 났다. 장녀는 물론이고 차녀도 기다란 머리카락을 씻는 일에 동참했다. 마마도 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씻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들은 머리카락씨를 깨끗하게 씻는데스. 제대로 씻지 않으면 잘 숨더라도 냄새 때문에 다 들키는데스.”
“걱정마는테치! 맨들맨들해질 때까지 비빈테치!”
머리카락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실장석에게 이로운 점도 있지만 친실장의 말처럼 포식자에게 쉽게 탐지 당할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다만 대부분의 실장석은 이런 채취 때문에 들키는 일은 적었다. 같은 냄새라면 채취보다는 운치가 훨씬 더 자극적인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팬티에 운치 자국이 없어질 때까지 물에 넣고 비비는데스. 절대로 운치자국이 남으면 안 되는데스! 총구를 깨끗하게 해야 건강한 자를 낳을 수 있는데스.”
“알겠는테치! 테잇! 테잇!”
“테스테스. 차녀챠는 처음인데도 잘하는테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친실장은 자들이 다 씻자마자 장녀와 차녀에게 팬티부터 씻게 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차녀도 지금까지 팬티를 빡빡 빤 적이 없어서 진한 운치색이 총구가 있는 위치에 일자로 묻어있었다. 그래도 차녀는 물에 넣어서 비비니 금방 사라졌지만 태어난 지 오래된 장녀와 친실장은 물에 넣고 아무리 비벼도 옅은 운치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마, 마마랑 장녀 오네챠의 팬티는 운치자국이 안 빠지는테치.”
“괜찮은데스. 겨울에 굴에서 새 팬티를 만들어 입으면 되는데스. 앞치마는 아직 많이 남은데스. 장녀도 마마 옆에서 배우는데스.”
“테스테스. 드디어 와타시의 새 팬티가 생기는테스!”
“그래도 팬티는 열심히 빠는데스. 새 팬티가 생기기 전까지 입어야 하는데스.”
어리숙한 친실장은 겨울에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지만 조금 머리가 굵은 친실장은 겨울을 활용해서 굴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대강 생각한다. 자들이 2마리로 줄고 고기용 독라노예또 얻었으니 이제 겨울에 먹을 식량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잠자리나 입을 옷 같은 것에 생각이 미쳤다. 차녀는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친실장에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마마, 마마의 마마는 어떤 실장이었던테치? 마마처럼 똑똑한 실장석의 마마라면 분명 똑똑할 것인테치!”
“데스데스... 마마의 마마는 차녀가 말한 것처럼 똑똑한 실장이었던데스. 마마가 알고 있는 건 전부 다 마마의 마마에게서 배운 것인데스.”
“테에... 마마의 마마 이야기는 처음 듣는테스.”
친실장은 어딘가 그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녀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빛내면서 마마를 보고 있었다. 친실장은 따듯한 물속에서 몸을 담근 채로 자들에게 자신의 마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마마의 마마는 똑똑하지만 튼튼한 실장은 아니었던데스. 하지만 나뭇가지 창을 들고 분충을 뒤에서 찌르면 무조건 한방에 운치굴로 보내버린데스. 지금 일가가 살고 있는 굴도 그렇게 노예로 만든 독라 자실장을 부려먹어서 판 굴인데스.”
“테엣! 그러면 독라노예가 얼마나 있었던테치?”
“지금 있는 운치굴이 꽉꽉 들어찰 정도로 많았던데스. 하지만 똑똑한 마마도 노예들이 모이면 반항한다는 걸 몰랐던데스. 겨울을 날 비상식량으로 모아뒀던 노예들은 와타시타치가 집을 비웠을 때 거의 다 도망친데스. 남은 건 다른 노예들의 발판이 된 엄지와 자실장 몇 마리 뿐인데스. 그 뒤로 마마는 운치굴을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운치굴을 집 안에 만든데스.”
원래 친실장의 마마가 파놓은 운치굴은 바깥이었다. 자신의 굴에 운치냄새가 나는 게 싫다는 지극히 실장석다운 이유에서였다. 물이 스며들어서 물바다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높은 지대에서 파고 깊이도 적당히 친실장의 키 정도로만 팠던 것이 문제였다. 운치굴에서 서열이 낮은 막내들과 자실장을 발판으로 삼아 운치굴의 다른 노예들은 전부 다 탈출했다. 남아있던 구더기는 당연히 독라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면 겨울을 어떻게 난 테치?”
“보존식은 조금 남아있었던데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데스. 그래서 겨울인데도 마마와 이모토타치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데스. 아무리 마마가 똑똑해도 겨울에 모두가 먹을 식량을 구할 순 없었던데스. 마마는 모두가 먹을 먹이를 구하는 대신 와타시만 남기고 다른 자들을 전부 독라로 만들어서 새로 만든 운치굴에 넣어서 식량으로 삼은데스. 하지만 그래도 겨울을 나기엔 살짝 모자랐던데스. 이번에만 먹이를 구하면 된다면서 밖으로 간 뒤에 마마는 돌아오지 않은데스.”
“테헹...”
똑똑한 실장이 대비를 열심히 해놓는다고 해도 한 번의 실수로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었다. 다행히 친실장은 자신이 그런 일을 겪기 전에 마마가 겪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친실장은 마마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울먹거리고 있는 차녀를 쓰다듬어줬다.
“걱정마는데스. 마마는 와타시의 마마처럼 가버리지 않는데스. 와타시의 자가 독립할 때까지 옆에 있는데스. 너무 오래 씻으면 밖에 나가서 추워서 큰일나는데스. 이제 다들 머리카락을 터는데스.”
“알겠는테치! 테치잇!”
“차녀챠! 그렇게 흔들면 물이 튀는테스! 이렇게 얌전히 털어야하는테스.”
“테치테치. 알겠는테치.”
마마가 쓰다듬어주니 금방 다시 웃게 된 차녀가 사방에 물방울이 튀도록 머리를 흔들다가 장녀에게 제지당했다. 장녀에게 금방 제대로 머리를 터는 법을 배운 차녀는 얌전히 양 손으로 머리카락 위쪽 부분을 잡고 흔들었지만 자실장의 힘으로 제대로 머리카락을 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자신의 머리를 다 말린 친실장의 도움을 받아서야 차녀의 머리카락은 뽀송뽀송해질 수 있었다.
“다들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는데스. 팬티는 집에 가서 말린 다음에 입는데스.”
“테힝... 총구가 차가차가한테치.”
“이리로 오는데스. 마마가 안아주는데스.”
“테츄웅♡ 마마가 최고인테치!”
“데스데스. 역시 와타시의 자라서 귀여운데스.”
친실장의 품에 안긴 차녀가 한껏 애교를 부렸다. 이모토타치가 운치굴로 떨어진 뒤에 애교라고는 부린 적이 없던 차녀가 그래서인지 친실장은 환하게 웃으면서 차녀를 핥아줬다. 차녀는 마마가 핥아줄 때마다 간지럽다면서 꿈틀거렸다.
“장녀, 나뭇가지 창은 챙긴데스?”
“챙긴테스. 마마도 잊은 물건은 없는테스?”
“없는데스. 그럼 출발하는데스.”
갈라진 틈새에서 나온 친실장은 다시 입구를 막아뒀던 돌멩이로 틈새를 막았다. 이런 좋은 장소를 다른 실장석들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었다. 친실장은 한 손에는 차녀를 안아들고 빨아둔 자신의 옷을 포대기삼아 묶은 나뭇가지 창을 들고 선두에 섰다.
“테치테치. 숨을 쉴 때마다 하얗고 예쁜 게 나오는테치.”
“차가운 공기를 너무 많이 마시면 운치가 마구 나오니 조심하는데스.”
“알겠는테치.”
차녀는 아까 자신을 괴롭힌 추운 날씨가 마마의 품에 안기니 하나도 괴롭지 않다는 걸 알고 신이 났다. 추워서 자꾸만 내려가던 시선이 올라가니 가장 먼저 붉은 색으로 점점 번져가는 예쁜 하늘이 보였다. 그 붉은 하늘을 자신의 입김과 마마의 입김이 번갈아서 하얗게 물들어가는 걸 본 차녀가 테치테치 웃었다. 친실장은 차녀가 그렇게 신나하다가 탈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해서인지 차녀를 좀 더 깊게 안았다.
“...테히이, 테휴우...”
부드러운 마마의 품에 꼭 안긴 차녀는 얼굴에서 찬바람이 사라지니 곧바로 스르르 잠에 들었다. 옆에서 걷던 장녀는 차녀가 잠든 모습을 보더니 슬쩍 웃었다.
“테스테스. 이모토챠는 또 잠든테스.”
“그런데스. 참 귀여운 자인데스.”
자신의 품을 내려다본 친실장도 세상모르게 잠든 차녀를 보고 활짝 웃었다. 마치 차녀가 갓 태어나서 젖을 물리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친실장은 아무리 힘들고 고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런 보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녀도 봄에 독립하면 얼른 이렇게 귀여운 자를 가지는데스. 장녀가 첫 자를 낳으면 마마가 선물을 들고 가는데스.”
“고마운테스. 마마.”
장녀와 몇 마디 나누면서 걸으니 친실장 일가는 금방 굴에 도착했다. 친실장은 차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굴 앞에 파놓은 U자형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를 지나 굴로 들어온 이후에 통로의 덮개를 덮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잠자리에 조심스럽게 차녀를 눕힌 친실장과 장녀는 들고 온 옷들을 나뭇가지에 걸어서 이제 거의 다 말라가는 독라 자실장 옆에 늘어놨다. 내일 아침이면 시원하게 마를 것이다.
“테휴웅... 테히이...”
친실장이 차녀의 옆에 누워서 장녀도 얼른 옆에 누우라는 뜻으로 손짓했다. 뭐라고 말하려던 장녀도 차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친실장의 곁으로 왔다. 차녀는 비록 아침은 춥게 일어났지만 잘 때만큼은 어떤 실장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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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을 헤매고 있던 차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무언가에 눈을 떴다. 어느새 일어난 마마가 차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부스스한 눈으로 몸을 일으킨 차녀는 잠자리에 자신만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녀, 일어난데스? 마마가 물을 떠온데스. 가서 얼굴을 씻고 물도 마시는데스. 장녀는 이미 다 씻은데스.”
“테에... 오늘은 어제보다 안 추운테치.”
“당연한데스. 굴 입구를 막았으니 찬바람은 절대 들어오지 않는데스. 자, 어서 가서 씻는데스.”
마마에게 등을 떠밀린 차녀가 비실비실 조개껍데기 앞에 가서 풀썩 주저앉았다. 작은 손을 넣어서 물을 묻힌 차녀는 물이 묻은 손으로 눈곱을 떼고 입가도 물로 한 번 헹궜다. 그리고는 손을 옷에 슥슥 닦고 다시 한 번 물에 넣어서 물을 떠먹었다. 비어있던 속으로 물이 들어가니 분대가 깨어나는 것처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차녀, 팬티도 없이 그렇게 아무 곳에서나 앉으면 총구가 지저분해지는데스.”
“테엣! 까먹었던테치.”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차녀는 어제 빨아서 말려둔 팬티를 들고 입었다. 따듯한 잠자리의 온기 때문에 헤벌레 풀어졌던 총구는 시원한 팬티가 닿자마자 쪼그라들었다. 차가운 팬티를 입고 나서 부르르 떨고 있는 차녀를 보고 옆에 앉아있던 장녀가 웃었다.
“테스테스. 조금만 기다리는테스. 차녀챠. 오네챠가 금방 우마우마한 걸 해주는테스.”
오늘은 마마 대신 봄이 되면 직접 마마가 될 장녀가 아침을 준비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며칠 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던 말린 독라 자실장이었다. 밥을 준비하는 넓은 돌 위에 탱글탱글하게 마른 자실장을 꼬치 째로 올려놓은 장녀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턱부터 총구까지 일자로 길게 그었다.
“테...게에...”
아직까지 가느다랗게 숨이 붙어있던 자실장은 그 순간 파킨했다. 장녀는 가슴 부근에 있던 금이 간 돌덩어리를 뺐다. 실장석에게 위석이라고 불리는 이 돌덩어리는 사실 돌이 아니라 실장석의 신경이 뭉쳐서 형성된 기관이다. 실장석의 신경 발생 단계에서 초기에 둥그런 모양으로 생성되는 위석은 마지막 단계에서 단단히 뭉쳐지게 되는데 이 때 흔히 아는 육각형의 각진 모양이 된다.
보통 실장석의 위석은 가슴께 근처에 생성되면서 복잡한 사고나 몸의 움직임 등을 관장하는 뇌와는 달리 위석의 신경은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장석이 행복회로를 과다하게 돌릴 때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도 위석이 활성화되어 뇌의 활동이 줄어드는 탓이었다.
“테에... 잘 안 잘리는테스.”
“힘을 꽉 주는데스.”
옆에서 마마의 조언을 듣고 장녀가 힘을 더 주자 손에 쥔 갈빗대가 뽑혀져 나왔다. 돌로 갈비뼈 옆의 살을 잘라냈는데도 뼈를 뽑아내는 건 제법 번거로운 일이었다. 갈비뼈를 다 빼낸 장녀는 분대가 머리와 총구랑 연결된 부분을 다 자르고 들어냈다. 척추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길게 잘라내고 나서 총구와 기타 내장을 다 뽑아내고 정리하면 장녀가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마마가 나설 차례였다.
“분대는 물로 씻고 말리면 쫄깃쫄깃한 간식이 되는데스. 다른 것들은 운치가 빠질 때 냄새가 배서 먹을 게 못 되는데스. 그러니 독라노예에게 먹이는데스!”
“훼에...”
자기 자식의 내장을 삼키게 된 독라는 구슬프게 울었지만 목에서는 바람 빠진 소리 밖에 나지 않았다. 독라가 버둥거리는 꼴을 본 친실장은 데프픗 소리를 내면서 비웃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척추가 길게 이어진 머리통이 들려있었다. 머리통은 자실장이 먹기엔 너무 컸지만 친실장에겐 바삭바삭하고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 뇌수가 들어있는 맛있는 먹거리였다. 머리통을 잘게 부순 친실장의 이빨은 고소한 척수가 들어있는 척추도 남김없이 갈아버렸다.
“쫄깃쫄깃한테치! 스테이크랑은 또 다른테치!”
“혀가 녹는테스! 너무 맛있는테스!”
맛을 느끼지 못하는 차녀는 그 식감에 놀랐고 장녀는 응축된 맛에 놀랐다. 계속되는 고통으로 수축된 자실장 고기는 야생의 실장석처럼 흐물흐물하지 않고 탱탱했다. 완전히 건조된 것이 아니라 적당히 건조된 고기는 응축된 살집에 들어있는 감칠맛이 진미였다. 밥을 먹지 못해서 약해진 뼈가 바삭바삭한 식감을 내면서 부서지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우마우마한 걸 먹여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차녀가 기뻐하니 친실장도 덩달아 기뻐하면서 자들에게 주고 남은 옆구리와 뱃살 부분을 먹었다. 투실투실한 자실장의 뱃살과 옆구리 부분은 자들에게 먹인 것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양도 제법 되고 무엇보다 대부분이 지방이라서 같은 양을 먹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주는 부위라 자들에게 우마우마한 부분을 양보한 친실장이 먹기에는 딱이다.
“꺼으윽-!”
“빵빵해진테스. 이제 못 움직이는테스...”
순식간에 자실장 한 마리를 해치워버린 자들이 그대로 드러누웠다. 특히 차녀는 자기 몸무게의 거의 3분의 1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콕 찌르면 터질 것처럼 동그랗게 변한 상태로 드러누웠다. 원래 실장석은 추위를 피부로 느끼게 되면 몸에서 그 추위를 이겨낼 만큼의 열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런 차녀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친실장도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아까 잘라놓은 더러운 발바닥 부분과 총구 부분을 들고 일어섰다.
“마마, 어디 가는테치?”
“운치굴에 내려가는데스. 차녀도 따라오는데스?”
“테에.... 텟! 따라가는테치!”
“그럼 장녀는 미리 준비해두는데스.”
“알겠는테스!”
바닥에 누웠던 차녀가 왼쪽 오른쪽으로 살살 구르더니 어떻게든 일어나서 친실장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누워있던 장녀가 일어나는 걸 본 친실장은 운치굴의 뚜껑을 열고 차녀와 함께 내려갔다.
“레후? 마마인레후?”
“마마? 마마가 온 레치?”
“레헹... 무서운 오네챠가 같이 온 레치.”
“조심하는레치! 또 두들겨 맞을 수도 있는레치!”
인기척에 눈을 뜬 엄지들은 마마를 보고 곧장 다가가려다가 같이 내려온 차녀를 보고는 경계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차녀가 아직 삼녀였을 때 차녀에게 당해서 운치굴에 떨어졌떤 바로 그 때, 멋모르고 저번에 마마랑 같이 온 오네챠가 운치굴 오네챠가 됐다면서 다가온 엄지 몇 마리가 분을 삭이지 못한 차녀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전에도 나뭇가지를 휘두르면서 엄지를 후려팬 경력이 있어서인지 운치굴의 엄지들에게 차녀는 마마만큼이나 무서운 포악한 실장이었다.
“겁먹을 필요 없는데스. 오늘 마마는 양충 엄지에게 상을 주려고 온데스. 상은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인데스.”
“레엣! 스테이크인레치!”
“레에엥! 마마! 믿고 있었던레치!”
“사이꼬레치! 마마가 사이꼬인레치!”
스테이크라고 말하면서 자들과 친실장이 더러워서 안 먹었던 자실장의 발바닥 밑부분과 총구를 보여주니 엄지들이 환장해서 서로 밀치면서 마마의 앞으로 나오려고 했다. 물론 옆에서 차녀가 눈알을 부라리니 우르르 저 뒤로 물러났다.
“우지챠도 스테이크 먹고 싶은레후! 우지챠에게는 주는 게 없는레후?”
“물론 있는데스. 우지챠도 주는데스. 오늘은 거짓말하지 않고 가장 솔직하게 말하는 우지챠를 막내로 들이려고 온데스.”
“레후레후! 우지챠가 제일 솔직한레후! 지금 당장 프니프니를 받고 싶은 레후!”
“프니후? 마마가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레엥!? 마마! 귀염둥이인 와타치를 두고 우지챠부터 자로 들이는 건 너무한레치!”
“분충은 닥치는테챠악!”
“레훼엥!!”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차녀를 보고 가장 앞에서 항의하던 엄지가 운치를 지리면서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친실장은 차녀에게 그만하면 됐다는 것처럼 손을 들어서 막고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단! 자가 될 우지챠는 엄지들이 고르는데스. 거기에서 자가 될 우지챠를 고른 엄지가 우마우마한 스테이크를 받는데스.”
“레후? 우지챠는 어려운 말 모르는레후!”
“레에...?”
마마의 말에 잠깐 어리둥절하던 엄지들은 금방 날카로운 눈매로 우지챠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각자 자기들의 기준에 맞춰서 가장 쓸만한 우지챠를 골라냈다. 덩치가 가장 큰 우지챠를 고르는 엄지도 있었고 자기 나름대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우지챠를 고르는 엄지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우지챠를 든 엄지가 마마의 앞으로 나왔다. 운치굴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엄지였다.
“마마! 이 우지챠가 제일 큰 우지챠인레치!”
“레...후...”
엄지에게서 구더기를 받아든 친실장은 우지챠를 구석구석 살폈다. 겉보기엔 다른 구더기들보다 훨씬 덩치가 커보였지만 눈이 탁하고 반응도 느린 게 잘 먹어서 큰 게 아니라 부어서 덩치가 커진 것이었다. 시험 삼아 마마가 배를 눌러보니 평범한 운치가 아니라 물처럼 흐르는 운치가 나오는 걸 보니 배에 물이 찬 것 같았다.
“이 우지챠를 돌봐준 엄지가 누구인데스?”
“당연히 귀염둥이인 와타시인레치!”
“어떻게 돌봐주면 이렇게 되는데스? 이 우지챠는 곧 파킨하는데스!”
“레갸악! 아픈레찌이...!”
친실장의 손에 붙들린 엄지의 머리가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구겨졌다. 적당히 힘을 주던 친실장이 손을 놓자 떨어진 엄지의 머리에는 마마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른 엄지가 스테이크를 받기 전에 얼른 우지챠를 주워서 마마에게 건네주려던 엄지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일제히 멈췄다.
“큰일 난레치. 이상한 우지챠를 가져다주면 우리도 저 꼴이 되는레치.”
“치프프. 꼴좋은레치. 저 똥분충이 쓰던 포대기는 이제 와타치의 것인레치.”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엄지들은 다시 움직였다. 다만 아까와는 달리 신중하게 우지챠를 고르는 눈치였다. 그 중에선 영리하게 프니프니를 미끼로 해서 반응하는 정도를 보고 고르는 엄지도 있었다. 물론 프니프니를 거절하는 우지챠는 없어서 헛수고였다.
“이 우지챠가 제일 건강한레치! 꼬리도 파닥파닥 움직이는레치!”
“살이 제일 투실투실한 건 이 우지챠인레치!”
“제일 똑똑한 우지챠를 데려가는레치! 오늘 프니프니를 몇 번 받았는지도 기억하는레치!”
“이 우지챠들이 좋겠는데스. 차녀는 장녀랑 같이 이 우지챠들을 씻기고 프니프니해주는데스.”
“마마? 우지챠들을 기르는테치?”
“장녀에게 말하면 아는데스. 가서 장녀 말을 잘 듣는데스.”
친실장은 그 중에서 가장 살이 실하게 오른 우지챠 3마리를 차녀와 함께 운치굴 위로 올려보냈다. 그리고는 그 우지챠들을 들고 온 엄지 3마리 앞에 발바닥 조각 2개와 잘라낸 총구를 두고는 다른 엄지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슬쩍 앞으로 나섰다. 눈앞에 고기가 생긴 이상 자신이 나서서 중재하지 않으면 다른 엄지들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어서 애꿎은 비상식량이 줄어들 수도 있었기 떄문이었다.
“레츄웅♡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인레치! 둘이 먹다가 둘이 다 죽어도 모르는레치!”
“겉의 딱딱한 부분에 짭짤한 간이 별미인레치!”
“쫄깃쫄깃한레치! 마마! 사랑하는레츙♡”
태어난 다음부터 운치 밖에 먹어본 적이 없던 세 엄지는 걸신들린 것처럼 자투리 부분을 먹어치웠다. 자실장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크기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운치만 먹어서 대충 허기를 때웠던 엄지는 자기 몸의 절반 정도 되는 고기를 먹자마자 처음으로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면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렸다.
“레에엥! 와타치도 스테이크 먹고 싶었던레치!”
“마마는 바보인레치! 와타치 같은 보배를 두고 저런 똥분충에게만 스테이크를 준테치!”
“와타치도 나가고 싶은레치! 나가서 스테이크를 먹는레치! 당장 내보내주는레챠아악!!”
역시 마마의 예상대로 스테이크를 받지 못한 엄지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친실장이 노린 그대로였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이에서 위협하고 있는 엄지를 내려다봤다.
“레챠아아악!! 뭘 쳐다보는레치?! 죽고 싶은 레치? 똥마마는 운치주먹 한방이면 그대로 죽는... 레쨔아아악!! 놓는레치!!”
“레에에...”
한껏 엉덩이를 들어 올리면서 위협하던 엄지는 마마의 손에 잡히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소리쳤다. 뒤에 있던 엄지들도 은근슬쩍 뒤로 물러났다. 엄지들의 예상과는 달리 친실장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레... 레츄웅♡”
“오마에는 오늘 우지챠의 점심밥이 되는 데스웅♡”
“레갸아아악!!! 미친레치?! 어서 놓는레치!! 우주의 보배인 와타치가 우마우마가 될 수는 없는레찌이이!!! 오마에!! 당장 와타치를 구하는레치!!”
“치프프. 마마에게 대드는 분충은 우마우마가 되는 게 당연한레츄.”
스테이크를 먹고 배를 두드리는 엄지가 마마의 손에 붙들려서 마구 소리치고 있는 엄지를 보고 비웃었다. 친실장은 어차피 엄지 한 마리를 들어올리느라 더러워진 손이라서 거리낌 없이 배가 볼록한 엄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똑똑한 엄지인데스. 다음번에도 상을 들고 내려오는데스. 그 때까지 절대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데스, 자매들끼리 싸우는 분충은 마마의 점심이 되는데스.”
“레챠아아악!!! 와타치는 자매들끼리 싸우지 않은레챠악! 분충도 구별 못하는 똥마마는 눈깔이 장식으로 달린레치이?!!”
마마에게 매달린 엄지가 떠드는 소리가 커질수록 운치굴 안에 있는 엄지들은 조용해졌다. 다른 엄지들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걸 본 마마는 몸을 일으켜 엄지를 든 채로 운치굴 밖으로 나왔다.
“레히잉♡ 운치 뷰릿뷰릿 나오는레후~ ”
“레후웅♡ 레훙♡ 너무 격렬한 프니프니인레훙!”
“이제 엄지 오네챠들의 프니프니로는 만족 못하는 몸이 되는 레훙!”
굴에서는 막 운치굴에서 꺼낸 우지챠들이 알몸뚱이가 되어서 교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차녀가 양 손으로 가장 큼직한 우지챠의 배를 열심히 눌러주고 장녀는 조금 작은 구더기를 각자 한 손으로 프니프니 해주고 있었다. 우지챠들을 한 번 씻긴 것처럼 보이는 운치색이 진한 물에는 우지챠들이 입고 있던 포대기도 담겨있었다. 친실장은 독라 자실장을 말리던 나뭇가지 옆에 어제 매달아놓은 얇은 식물 껍데기를 손에 들고는 엄지의 목을 감아 운치굴 위에 매달았다.
“레헥! 레헤엑!”
목을 심하게 졸려서 얼굴이 빨갛게 변한 엄지가 가느다란 양손으로 목을 쥐고 버둥거리는 사이 친실장은 잠자리 구석에 쌓여있던 조금 낡은 포대기 셋을 꺼냈다. 먼지를 툭툭 털어놓으니 새 것이라고는 못해도 운치굴에서 굴러다니던 포대기들보단 훨씬 상태가 양호했다.
“우지챠들은 새 포데기를 받는데스. 운치굴에서 입었던 포대기는 이제 버리는데스.”
“레후! 마마가 최고인레후!”
“새 포대기씨가 생긴레후! 포근포근한 냄새가 나는레후!”
“마마의 냄새! 마마의 냄새인레후!”
“장녀와 차녀도 구더기에게 옷을 입혀주는데스. 마마를 보고 배우는데스.”
장녀와 차녀 앞에 앉은 친실장은 구더기를 들고 능숙하게 포대기를 입혔다. 구더기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다음에 꼬리 쪽부터 머리가 나오는 구멍으로 집어넣고 4쌍의 돌기 위치를 맞춰준 다음에 총구가 맞물려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레훙! 마마, 간지러운레후!”
원래 자신의 포대기가 아니라서 조금 끼긴 했지만 이건 하루만 자고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구더기의 피부에서는 특수한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은 운치굴 같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구더기의 연약한 피부를 보호해주고 바닥과의 마찰을 줄여주는 윤활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점점 자라나는 구더기의 크기에 맞춰 포대기를 늘려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총구와 돌기 위치만 적당히 맞춰주고 얼굴과 귀에 맞게 두건을 끼워주면 너무 작아서 숨을 못 쉬거나 너무 헐렁해서 피부에 닿지 않는 게 아닌 이상 구더기의 크기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된다. 이 기작이 극도로 활발해지는 것이 바로 우지챠가 실을 내뿜어 고치를 만들고 자신의 옷을 전부 녹이고 새 옷을 만드는 때다.
“총구랑 새 포대기를 잘 맞춰야하는데스. 총구랑 엇갈리면 안으로 운치가 새서 포대기를 새로 갈아야 하는데스.”
“우지챠, 잘 맞는테치?”
“총구가 간질간질한레후!”
마마가 한 그대로 우지챠의 총구를 콕콕 찌르니 우지챠가 레후레후 웃었다. 장녀는 이미 여러 번 해서 익숙한 것처럼 우지챠에게 새 포대기를 씌워주었다. 새롭게 포대기를 받은 우지챠는 기쁜 것처럼 흙바닥을 마구 기어 다녔다. 친실장은 우지챠들이 저 멀리 기어 다니지 않도록 한 곳에 모았다.
“우지챠들은 너무 먼 곳으로 기어가지 않는데스. 다 같이 있어야 마마가 찾기 편한데스.”
“레훗! 우지챠는 마마의 말을 잘 듣는레후!”
“마마! 배고픈레후!”
“배씨가 꼬르륵하는레후!”
친실장의 말에 한 곳에 모인 우지챠들이 꼬물꼬물거리면서 배고프다고 성화를 부렸다. 차녀랑 장녀가 열심히 프니프니를 해줘서 분대에 있던 운치가 싹 비워진 탓이었다. 친실장은 운치굴 위에 매달아둔 엄지의 배를 꽈악 눌러서 운치를 뺐다. 양 손으로 목을 감싸고 있던 엄지는 켁켁 소리를 내면서 얼마 없는 운치를 운치굴에 쫘악 뿌렸다.
“오마에는 이제 죽는데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있는데스?”
“레게헥... 시른레찌... 뿌... 뿌눈레찌이... 마시써지기 시른...! 햐아아아아악!! 효오오옥!!”
빨갛게 충혈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었지만 친실장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식물 줄기를 잡아당겼다. 독라 엄지는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숨을 들이쉬었지만 목 부근이 꽉 막혀서 피도 통과할 수 없게 되자 점점 생각이 희박해졌다.
“오옥... 오...옥...”
결국 숨을 쉴 수 없게 된 엄지는 붉게 물들어서 터질 것 같은 얼굴과 튀어나온 눈, 그리고 그런 안색과는 달리 창백한 목 아랫부분을 축 늘어트린 채로 질식해서 죽었다. 친실장이 식물 껍데기를 푸니 안 그래도 얇은 엄지의 목 가운데에 깊게 패인 자국이 드러났다. 머리에 손을 대고 살짝 돌리니 토독 하는 소리와 함께 간단하게 머리가 분리되었다.
운치굴의 엄지를 먹을 때는 최대한 운치맛을 빼서 먹어야 했다. 고기맛은 제법 좋지만 태어날 때부터 운치굴에서 운치만 먹고 생활했던 엄지는 깊숙한 곳까지 운치냄새가 배어있어서 피를 빼고 먹지 않으면 운치를 먹는 것 같은 찝찝함이 남는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운치를 전부 뺀 다음 거꾸로 매달아서 머리에 피가 몰렸을 때 목을 따는 방법을 쓰겠지만 오늘은 방금 운치를 뺀 구더기에게 먹어야 하기 때문에 대충 빼도 문제가 없었다. 구더기에게 운치냄새는 기피하는 냄새가 아니라 오히려 입맛을 돋워주는 조미료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우지챠들은 다들 이리 모이는데스. 마마가 주는 스테이크인데스.”
“레훙! 꼬기인레후!”
“스테이크레후!”
“우마우마한레후! 입이 멈추지 않는레후!”
친실장이 손질해서 가져온 엄지는 오롯이 우지챠들의 것이었다. 자들은 이미 말린 독라 자실장을 먹고 배가 빵빵해진 상태라서 딱히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무엇보다 배를 잘랐을 때 분대에 붙은 묵은 운치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입맛도 돌지 않았다. 하지만 우지챠들은 그게 또 별미라면서 레챱레챱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잘만 먹어댔다.
“운치소스가 또 별미인레후! 꼬들꼬들한 게 씹는 맛도 좋은레후!”
“너무 행복한레후! 행복해서 운치 싸는... 레... 렛? 운치가 안 나오는 레후!”
아까 프니프니를 할 때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분대에 있던 운치를 싹 비워서 그런지 총구에서 운치가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우지챠가 아무리 운치 만드는 기계라지만 방금 먹은 먹이를 곧바로 운치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진 않았다. 기존의 우지챠가 항상 똥을 지리는 이유는 운치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운치가 일정량 배출되어도 다시 그 양만큼 들어오기 때문이다.
“배씨가 터질 것 같은 레후! 프니프니! 프니프니를 요구하는레후!”
“이리로 오는데스. 마마가 프니프니해주는데스.”
“치사한레후! 마마를 독차지 하면 안 되는레후!”
“우지챠도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다른 우지챠들은 이 공으로 놀면서 기다리는데스. 조금 있으면 다음 우지챠도 해주는데스.”
“레후?! 공씨가 생긴레후! 행복한레후!”
“공씨인레후! 이제 우지챠도 프니프니할 수 있는레후!”
친실장은 다른 한 손으로 아까 엄지에게서 뽑은 부푼 눈알 두 개를 굴려줬다. 작은 엄지의 눈알이라서 구더기가 그 위에 올라가도 얼굴부터 떨어질 염려가 없었다. 운치굴에서 놀 거리라고는 없던 우지챠는 공을 받자마자 눈을 빛내면서 알아서 올라갔다. 본능적으로 앞뒤로 움직이면서 배를 누른 우지챠는 만족스러운 것처럼 웃었다. 한참 동안 마마에게 돌아가면서 프니프니를 받고 공으로 놀던 우지챠는 그대로 바닥에 퍼졌다. 운치굴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인 탓이었다.
“레후... 이제 졸린레후...”
“코 자고 싶은 레후우...”
“자기 전에 마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는데스.”
“레훙?! 이야기가 뭐인레후?”
“처음 듣는레후! 우마우마할 것이 분명한레후!”
평생을 운치굴에서 살아온 우지챠에게 이야기라는 것은 미지의 물건이었다. 거기에서 나오자마자 미지근한 물로 목욕도 하고 새 포대기도 받고 프니프니도 맘껏 받은 뒤에 우마우마한 스테이크까지 먹었으니 다음에는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게 당연했다. 친실장은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처럼 우지챠들을 발치에 모아두고 천천히 이야기를 해줬다.
“바깥은 이제 봄인데스. 포근포근한 날씨에 햇살이 내려오고 사방에는 예쁜 꽃씨가 피어있는데스. 아름다운 나비씨가 날아다니고 사방에는 우마우마한 것들이 가득한데스.”
“레후웅! 봄인레후! 따끈따끈할 것 같은 이름인레후!”
“마마! 우지챠도 직접 보고 싶은레후! 꽃씨랑 나비씨를 보는레후!”
“그건 안되는데스. 우지챠는 아직 멀리 움직이지 못하는데스. 우지챠가 손발긴긴이 되기 전까지는 데려갈 수 없는데스.”
“레후...? 우지챠도 손발긴긴씨가 될 수 있는레후?”
“당연한데스. 우지챠가 손발긴긴이 되면 오네챠들과 마마랑 같이 밖으로 나가는데스. 같이 나가서 우마우마한 것들을 줍고 아까처럼 깨끗한 물에서 씻는데스. 그리고 따듯한 햇살 아래에 누워서 자는데스. 꽃씨랑 나비씨에게 둘러싸여서 아와아와하게 낮잠을 자는데스!”
“레에에...”
“아와아와인레후...”
마마의 말에 우지챠는 벌써 머릿속으로는 손발긴긴이 되어서 밖으로 나가있었다. 각자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와아와를 그 작은 머리로 짜내느라 안간힘이었다. 하지만 운치굴과 어두컴컴한 굴 밖에 보지 못한 우지챠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간신히 오늘 경험했던 식사와 목욕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애매한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걸로도 충분했다.
“우지챠도 나가고 싶은레후! 어서 손발긴긴씨가 되어서 나가는레후!”
“마마의 도움이 되는레후! 마마랑 같이 나가는레후!”
“대견한 우지챠인데스. 우지챠가 엄지가 되면 일가에 엄청 도움이 되는데스. 그건 우지챠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스.”
“레후우! 우지챠만이 할 수 있는레후!”
“우지챠가 도움이 되는레후? 마마의 말대로 힘내는레후!”
“그러려면 일단 잘 먹고 잘 자야하는데스. 스테이크 옆에서 자면 자면서도 우마우마한 꿈을 꿀 수 있는데스.”
“어서 자는레후! 손발긴긴씨가 되는레후!”
“스테이크 꿈을 꾸는레후!”
뭔지는 몰라도 우지챠는 자신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친실장의 말처럼 아까 하반신만 뜯어먹은 엄지 위에서 꼬물꼬물 웅크려서 잠들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하고 아직 온기가 사라지지 않고 먹음직스러운 냄새도 나는 엄지는 우지챠에게 최고의 잠자리였다.
“레훙... 레후웅...”
어제만 해도 운치를 먹고 차가운 바닥에서 잠들 던 때와는 전혀 달라진 생활에 구더기는 순식간에 잠들어버렸다. 세 마리의 구더기가 모두 잠드는 것을 기다린 친실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더기를 툭툭 건드려서 깨웠다.
“잘 잔데스? 이제 아침인데스.”
“레후? 벌써 아침이 된 레후?”
“아침인레후! 밥 먹을 시간이 된 레후!”
“오늘 밥도 꼬기인레후!”
구더기들은 일어나자마자 운치굴의 일상처럼 곧장 자기 밑에 깔려있는 엄지를 먹기 시작했다. 만약 첫 자로 태어나서 길러진 우지챠라면 이런 거짓말에 속지 않았을지도 몰랐지만 운치굴에서만 생활해서 시간 관념 따위는 없어진 우지챠는 이런 거짓말에도 깜빡 속아 넘어갔다.
“이상한레후!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른레후!”
“빵빵해진레후! 어서 프니프니를 해주는레후!”
“물론인데스. 차례대로 기다리는데스.”
아직 저번에 먹은 게 소화되지도 않은 우지챠가 저번보다 많이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저번의 반도 못 먹은 우지챠는 금방 배를 드러내보이면서 프니프니를 요구했다. 우지챠들을 번갈아가면서 프니프니를 해준 친실장은 다시 손발긴긴씨가 되면 밖에 나가서 일가족이 다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우지챠를 재웠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반복했다.
“레후우... 배가 너무 부른레후...”
“너무 배부른레후... 마마는 안먹는레후? 우지챠만 먹기엔 너무 많은레후.”
“괜찮은데스. 마마는 우지챠가 배부르게 먹는 게 더 중요한데스. 우지챠가 손발긴긴씨가 되면 그 때 같이 마마랑 먹는데스.”
우지챠를 깨우면 깨울수록 우지챠가 먹는 양은 줄어만 갔다. 벌써 5번 정도 이런 일을 반복하니 눈앞의 음식을 먹고 프니프니만 요구하던 본능적인 일을 벗어나 이제야 마마랑 같이 먹자는 둥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기분 좋은 레후~ 하지만 운치가 나오지 않는레후...”
“운치 싸고 싶은 레후. 근데 안 나오는 레후!”
프니프니를 받아도 기분만 좋아지고 운치가 나오거나 할 틈이 없었다. 저실장의 연약한 분대는 아직 단백질과 지방을 흡수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씩만 소화되는 와중에 그보다 많은 양이 들어와서 결국은 분대가 가득 찼다. 운치를 싸고 싶어도 자그마한 총구로는 자신이 잘라서 먹은 고기도 억지로 배출할 수 없었다.
“스테이크를 먹으면 물도 마셔야 하는데스. 물에 숨구멍이 막히지 않게 조심해서 먹는데스.”
“계속 들어가는레후! 멈출 수가 없는레후!”
“레헤엥! 코씨에 물이 들어간레후!”
마치 저번에 물을 먹지 못해서 딱딱해진 운치를 싸지 못하고 배가 터진 자실장과 비슷해보였지만 그 때와 다른 것은 저실장은 충분한 양의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키던 우지챠에게 물이 들어가자 분대는 그 물을 죄다 흡수해서 소화액으로 바꾸었고 배에 가득 찬 영양이 그대로 우지챠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더기에게 스며든 대량의 영양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레휴... 레히잉...”
“레후웅... 손발긴긴씨가 되는레후...”
운치굴에서 엄선한 구더기들은 하나같이 투실투실해서 살이 오른 개체였다. 계기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엄지로 우화할 수 있는 우지챠들은 풍족한 먹이와 행복한 경험, 그리고 손발긴긴씨가 되면 마마와 같이 나갈 수 있다는 계기가 주어지니 금방 고치를 틀고 잠들어버렸다.
“마마, 이제 끝난테치?”
“저번보다 좀 더 일찍 끝난테스.”
“엄지가 될 수 있는 튼실한 우지챠로 해서 그런데스. 장녀도 나중에 고치를 만들 때는 살집이 잘 오른 우지챠로 하는데스.”
굴의 구석에서 얌전히 마마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던 장녀와 차녀가 우지챠가 고치를 튼 걸 보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아까 친실장이 차녀를 우지챠랑 같이 위로 먼저 보냈을 때, 장녀가 우지챠에게 첫 먹이를 준 이후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마가 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는 말을 잘 지킨 탓이었다. 친실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치를 틀고 잠들어 있는 우지챠들을 깨웠다.
“우지챠, 아침인데스. 일어나는데스.”
“레후웅... 레... 레후! 해낸레후! 우지챠도 손발긴긴씨가 되는레후!”
“레휑? 레후!! 우지챠도 꿈주머니가 생긴레후!”
친실장이 우지챠를 깨우니 고치를 틀고 있던 우지챠들이 일어났다. 우지챠들은 엄지로 우화하는 과정에서도 고치에 머리만 쏙 내민 상태라서 외부의 자극이 들어오면 눈을 뜰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화하는 것은 첫째로 우화할 때 혹시나 영양분이 부족한 경우 외부에서 보충을 받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혹시라도 우지챠를 덮칠 외부 위협이 존재할 때 마마를 큰 소리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고생한데스. 이제 우지챠는 가족의 자랑인데스.”
“레훼엥! 마마 덕분인레후! 우지챠는 평생 손발긴긴씨가 못 될 줄 알았던레후!”
“고마운레후, 마마! 손발긴긴씨가 되면 꼭 같이 나가는레후!”
“무슨 말인데스? 어차피 우지챠는 여기서 죽을 거니 나갈 일은 없는데스.”
“레뺘앗?!”
친실장은 그대로 고치를 틀고 있던 구더기 한 마리의 목을 뜯어버렸다. 머리에 적당히 붙어있던 실이 일부가 뜯어져 나왔지만 고치는 무사했다. 친실장은 그대로 고치에 담겨있던 적당히 녹은 우지챠 주스를 들이켰다. 그냥 우지챠를 먹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감칠맛이 친실장의 혀를 깊숙하게 자극했다. 마지막으로 우지챠의 머리를 오독오독 씹어먹은 친실장의 모습을 본 우지챠들은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항의했다.
“레훼에에엥!! 마마, 너무한레후! 같이 손발긴긴씨가 되어서 뛰어놀고 싶었던 레후!”
“걱정하지 마는데스. 우지챠도 곧 그 뒤를 따라가는데스.”
“레삐야앗!! 너무 세게 쥐면 안 되는 레후!! 꿈주머니 안에 들어간 우지챠를 너무 세게 쥐면 안 되는 것도 모르는레후?!”
“오마에, 뭘 착각하는데스? 마마에게 필요한 건 우지챠 따위가 아니라 이 꿈주머니인데스.”
“레삐야아아앗!! 그만두는레삐!! 우지챠는 죽기 싫은레히잉!!! 손발긴긴씨가 되고 싶은 레뺘아아아앗!!!!”
고치를 틀게 된 우지챠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고치를 틀기 전이라면 작은 돌기와 꼬리를 흔들어대면서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시도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하릴없이 머리만 흔들면서 거대한 손이 조금씩 자신의 두개골을 완전히 부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픈레삐야아아악!! 너무 아픈레뿌이익!! 차라리 빨리 죽여주는레삐이이잇!! 레뿌이...! 레뿌갸... 삐로오...”
자그마한 뇌가 점점 구겨질 때마다 날카로운 우지챠의 비명은 점점 알아듣기 힘든 괴성으로 변해갔다. 구더기의 작은 머리는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곤죽이 되어버렸다. 친실장은 핏덩이가 된 우지챠의 머리를 구치 안쪽에 넣고 휘휘 저어서 장녀에게 줬다.
“장녀, 마시는데스. 이렇게 우지챠의 머리를 으깨서 넣으면 더 맛이 깊어지는데스.”
“테스테스. 이번 우지챠는 저번에 먹은 놈보다 훨씬 진한 게 맛있는테스.”
“최대한 고통을 주면서 천천히 숨통을 끊어야 맛이 진해지는데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는 장녀가 직접 주스로 만들어서 차녀에게 주는데스.”
“레에에... 레후우...”
마지막으로 남은 우지챠는 초점이 없어진 눈으로 공허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행복회로가 돌아가게 된 모양이다. 고치를 틀기 전의 우지챠라면 파킨했을지도 모르지만 고치를 틀고 신체를 늘리기 위한 단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조그마한 위석의 크기를 엄지실장 크기에 맞게 키우는 것이다. 그 덕에 우지챠는 태어나서 처음 돌리는 행복회로에 푹 빠져있었다.
“마마, 잠깐 이걸 써도 되는테스?”
“마음대로 하는데스.”
장녀는 마마의 허락을 받고 전 차녀가 굴린 공으로 부러진 나뭇가지 중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우지챠의 머리와 고치 사이의 틈을 살짝 벌려서 사정없이 나뭇가지를 찔러넣었다.
“레삐얏?! 따끔한레후! 아픈레후...? 레훼엥!! 꽃씨랑 나비씨는 어디간레삐잇!! 우지챠는 손발긴긴씨가 되어서 햇빝에서 낮잠자고 있던 레뺘앗!”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린 행복회로가 깨졌을 때의 고통은 더욱 더 컸다. 장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하는 우지챠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천천히 휘저었다. 그러자 나뭇가지를 찌르기만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비명이 터져나왔다.
“레뺘아아아악!!!! 손씨발씨가 잘리는레쀼야아아아악!!!”
곤충이 자신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 변태하는 것처럼 우지챠도 작은 몸집을 크게 불리기 위해서 고치를 튼다. 세세한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외피의 역할을 하는 고치 내부의 몸은 연약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내구성이 형편없는 우지챠의 경우는 그 몸이 굳기 전의 한천보다도 연약해진다. 친실장이 고치를 틀고 있던 우지챠의 머리만 따고 내부의 몸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나뭇가지를 찔러서 휘젓는다는 단순한 행동도 우지챠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말랑말랑해진 자신의 사지가 잘려나가는 고통과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나뭇가지를 젓던 장녀는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감각을 느끼고는 나뭇가지로 그걸 톡톡 건드려봤다. 지금까지처럼 흐물흐물한 감촉이 아니라 단단한 느낌이 왔다.
“레쀼아가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구더기는 지금까지 지른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를 냈다. 나뭇가지에 걸린 딱딱한 물체는 바로 위석이었다. 살아있는 상태로 위석을 찔린다는 것은 살아있는 신경을 직접 두들기고 깎아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부 충격에 대비해서 뭉쳐진 딱딱한 위석이라면 겉부분이 벗겨질 동안은 별 다른 충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엄지의 크기에 맞춰서 갓 뭉쳐진 위석은 나뭇가지로 툭툭 찌르는 정도의 충격에도 여지없이 함몰되었다.
“레헤에에에에에엑!!! 레햐아아아아악!!! 레훅, 레부욱...”
온 힘을 짜내서 소리를 지른 탓인지, 아니면 소화기관이 이미 나뭇가지에 전부 잘려나간 탓인지 구더기의 입에서 고치 안의 소화액이 역류했다. 비명을 지르던 성대부터 녹아내리고 그 다음은 혀와 턱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지챠는 턱 아랫부분이 전부 녹아내린 상태로 절명했다. 장녀는 나뭇가지를 빼내서 남은 우지챠의 머리 부분도 소화액에 담갔다. 머리까지 전부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걸 본 장녀가 웃는 얼굴로 차녀에게 고치를 건넸다.
“차녀챠! 빨리 마시는테스. 우지챠 주스를 마시면 쑥쑥 크는테스!”
고치를 튼 우지챠는 그 맛도 맛이지만 한참 성장하는 자실장에게 필요한 영양으로 가득 차있었다. 자실장이 성체가 되기 위해서는 몸의 크기도 커져야 하지만 그에 맞춰서 위석과 내장기관도 변화해야한다. 구더기가 고치를 튼 안쪽에는 그런 식으로 미숙한 실장석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물질이 풍부하고 그로 인해서 진한 감칠맛을 내게 된 것이다. 고통을 줬을 때 그 맛이 깊어지는 이유는 외부의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으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고치를 깨고 나오기 위해 그 물질을 더욱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흐물흐물하기만 하고 아무런 맛도 안 나는테치... 하지만 장녀 오네챠와 마마의 정성을 생각해서 다 먹는테치.’
당연한 말이지만 차녀에게는 그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흐물흐물한 무언가를 삼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꾹 참고 차녀가 내용물을 전부 다 먹자 친실장은 차녀와 장녀가 들고 있는 고치를 회수했다. 그리고 우지챠의 포대기를 씻은 것과는 다른 조개껍데기의 깨끗한 물로 남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고치를 각각 나뭇가지에 슬쩍 걸어놓고는 굴벽에 비스듬이 세워놨다.
“데스데스. 꿈주머니가 다 마르면 장녀의 새 팬티부터 만들어 주는데스.”
친실장이 이렇게 정성을 들여가면서 우지챠의 고치를 탐낸 것은 바로 이 고치가 새로운 팬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자실장의 경우는 우지챠가 머리를 내밀고 있던 부분을 위쪽으로 하고 다리가 나올 구멍 2개만 뚫으면 완성이지만 중실장이나 성체실장의 경우는 고치를 반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빈 공간을 앞치마 등으로 때워야했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고치와 앞치마를 연결하는 점액이 필요했다.
“오늘은 일찍 자는데스. 원래 겨울에는 잠깐 움직이면 곧바로 자야 덜 먹고도 오래 버틸 수 있는데스. 내일은 일어나서 운치굴의 독라노예의 구더기를 뽑아내는 연습을 하는데스.”
“기대되는테치! 빨리 코 자서 내일이 빨리 오게 하는테치!”
“테스테스. 차녀챠. 너무 일찍 자면 엄청 일찍 일어나서 더 기다려야하는테스.”
겨울에 친실장이 직접 임신해서 자를 낳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내일은 자들을 데리고 한 번 더 운치굴로 내려가기로 했다. 기나긴 겨울의 첫날밤이지만 배가 터지도록 먹고 우지챠 주스도 마신 차녀가 추위를 느낄 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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