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



"우리 B군 착하지? 이거 먹으면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엄마 꼭 올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쥐어준 사탕은 알싸한 박하맛 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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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뜸해지는 어스름 저녁때즈음. 공원에 도착한 나는 가볍게 어깨를 푼다. 
공원에 오는 것은 정확히 1년만의 일. 작년의 오늘 나는 이 공원에 왔었다.
1년 사이에 들실장이 우글우글 불어났다.

매년 겨울마다 죽어 없어지고, 구제당하면서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한눈 팔았다 하면 다시 우글우글해지는거지?

그럼 감상은 이쯤하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졌으니 나는 내 할일을 할까?

무거운 야구 배트 가방에서 녹색과 적색의 피가 찐득하게 묻은채로 굳어있는 야구 배트를 꺼내든다.
끝부분은 몇군데 움푹 들어가 있고 흉흉한 살기가 휘도는 물건.
솔직히 들고 휘두르는 나도 나지만, 멀쩡한 사람이 들고 돌아다닐만한 물건은 아니다.

주변에 사람은 없고 자신들의 골판지 하우스, 또는 굴로 돌아가는 꾀죄죄한 들실장만 남은 것을 보고 나는 야구배트를 치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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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어미도 없는 자식-

"우리 엄마 있어! 바쁜일 생겨서 지금 일하러 가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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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데갸아아아악!"
'퍼억'
"데..데봇!!!!"
"테..테치츄!! 테에츙! 테에츙! 테...테...테에에에!"

방망이질 한번에 들실장 한마리가 피떡이 되어 날아간다.
자실장들은 옆에서 허둥지둥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날뛴다.
그리고 잠시 뒤에 배트에 터져나간다.

왜 이런짓을 하냐고? 어머니가 없이 크더니 드디어 돌아버렸다고?
아니. 아니다. 나는 그냥 확인과 증명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결코 배트로 먼저 후려치지 않는다. 배트를 그저 들실장 친자 가족에게 보여줄 뿐이다.

실장석의 피가 겹겹이 떡진 흉흉한 배트. 친실장 자실장 할 것 없이 소리 높여 비명을 지른다. 여기까진 좋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 뒤니까.

친실장은 공포에 질린 자실장을 버려두고 잽싸게 달아난다.

골판지 하우스. 비축물. 구더기 보존식. 자실장들까지. 모든것을 버리고.
어미가 자식을 버리고.

실장석의 걸음은 잘 쳐줘야 애기 걸음마와 비슷한 정도. 뛰더라도 그렇게 빠르지 않다.
자기 나름대로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친실장의 머리위로 가차없이 배트가 날아든다.
자실장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고 공황에 빠져서 빙빙 돌거나 운치굴에 머리를 파묻거나 도망간다.
가끔씩 필사적으로 아양을 떠는 것들도 있지만. 가차없는 배트질 아래에 핏덩이로 화한다.

나는 그저 증명을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냥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치면 자식보다 자신이 우선이라는 것.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람을 대상으로는 실험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실장석이라면?

사람처럼 친자 가족을 꾸려 살고, 그나마 사람에 가까운 지성을 가진 실장석이라면 실험에 적합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매년 이날 이 공원에서 '실험'을 해왔다.
내가 공원 실장석들의 씨를 말리고, 겨울이라는 대자연의 구제가 지나가면,
작년에 내가 한 '실험'을 기억하는 실장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버려진 사육실장이든, 다른 공원에서 이주해온 떠돌이 들실장이든, 새로운 실장석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수가 적당히 늘어난다. 그러면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적당히 기다리고 다시 와서 '실험'을 시행하면 되는것이다.

'실험'을 시작한지 6년째. 지금까지 자실장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은 친실장은 없다.
모든 친실장들은 핏덩어리 엉겨붙은 배트를 보여주면 기겁하여 자실장을 내팽게치고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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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을 매다셨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결국 나를 함께 데려가주지 않으셨다. 데려가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또다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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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에....데보....."

두개골이 박살나 뇌수를 흘리며 꿈틀거리는 친실장을 밟는다.
옆에서 거의 자기 몸만큼이나 큰 빵콘 덩어리를 달고 벌벌 떨고 있는 자실장을 배트 끝으로 눌러 죽인다.
자실장은 "치벳"하는 덧없는 소리를 남기고 공원 바닥의 얼룩으로 산화했다.

공원 외곽, 통행로 근처에 있는 실장석들은 전멸이다. 실장석들의 시체에 도로리 스프레이를 뿌린다.
내일 아침쯤 되면 오늘 밤의 학살이 거짓말인 것처럼 사라지리라.
이제 '실험'의 메인 게스트들을 찾아가볼까. 통행로에서 멀리 벗어난 공원의 인공 숲 안쪽.
인간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소위 '개념' 친자실장들을 찾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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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자 어렸을 때와 같은 대놓고 하는 멸시와 모욕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나와 대화하는 그들의 기저에 깔린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우월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네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들인가? 아 그래? 이거 내가 실례를 했구만 허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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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데갸아아아아 데복!"
"테..테치잉.. 테에에엥 테에에엥! 테챠아아아아 테샤아아아아아!!"

이걸로 5가족째. 현명한 '개념'실장도 자식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은 똑같다. 오히려 현명하니까 더욱 그러는 것일지도.
자신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다. 자식을 데려가면 둘다 죽는다. 자신이라도 도망가는 것이 그나마 확률이 높다.
아무렴 현명하지.. 현명한 판단이야.

통행로 근처의 분충들과는 격이 다르게 튼튼하고 위장이 잘 되어있는 골판지 하우스들을 모아서 접어놓는다.
과자 박스에 가득한 비축식은 놈들의 운치굴에 몽당 쏟아버리고 운치굴을 묻어버린다. 이걸로 뒷처리는 깔끔하다.

광범위 위석 서쳐를 본다. 공원의 실장석들은 전멸이다. 한 가족만 빼고.
나는 마지막 실장석 친자 일가가 있는 곳을 향해 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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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지 않은 사회에서 기반도 없는 놈이 뿌리내리고 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 특히 나처럼 그네들 표현으로 '근본없는' 놈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편의점 앞에서 놈들을 처음 보았다.

행인의 편의점 봉투를 향해 자신의 새끼를 던지는 녹색 소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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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테에에에..테끅..테끅.."

"데에에에에.. 데샤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

"호오..."

낙엽과 흙으로 잘 위장되어 위석서쳐가 아니었으면 지나칠뻔 한 마지막 골판지 하우스.
그곳에서 내가 마주한 광경은 6년간 활동한 내가 처음 보는 광경이다.
동족의 피로 떡져있는 야구 배트를 눈앞에 두고 친실장은 도망치지 않았다.

자실장은 2마리. 아마 솎아내든지, 애초에 태교를 통해 출산수를 조정했을 것이다.
분충끼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자실장들은 내게 아첨하거나 투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골판지 구석 어미의 등뒤에 숨어서 피눈물을 흘리고 소리없는 울음을 울고 있다.

그래.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자실장이 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울음소리를 참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빵콘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최고급 사육실장,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자실장들을 끌어안고 달래고 있던 친실장은 내가 가까워질때마다 필사의 각오로 나에게 위협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나를 이길 수 있을거란 안일한 생각은 없는지, 녀석의 다리를 보면 후들후들 떨고 있다.
녀석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동족의 피냄새를 두른 눈 앞의 거인과 자신과의 차이를.
자신은 결코 눈 앞의 괴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자들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등 뒤로 숨기고 결사의 각오로 내게 위협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근처에 쭈그려 앉아 담배 한대를 꺼내문다.

실장석들은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쭈뼛쭈뼛하며 내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한다.

폐부 깊숙히 들이마신 담배연기가 밤하늘로 흩어진다.
덧없이 사라지는 그것은 마치 실장석들의 목숨. 어쩌면 인간들의 인생과 꼭 빼닮았을지도 모른다.

"이러면 내가 기분이 참... 좆같은데 말이야...."
"데샤아아아아아아!!...데...데?"

나긋나긋한 내 목소리에 친실장이 의문의 울음소리를 낸다.

"아니...큭큭끅..킥.. 생각해봐.. 우리 엄마도 날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냥 짐승새끼가 이러면.. 우리 엄마는 짐승 이하란 거잖아?"
"데?..데데?"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친실장은 혼란스러워한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때려죽일 것 같이 보였던 괴물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자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래.. 기분이 더러워도 할일은 해야지...

"니들은.. 내가 기분이 좀 좆같으니까.. 더 고통스럽게 죽여줄께 히히힉 큭..키키킥"
"데데!! 데샤아아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

내 살기에 반응한 것일까 다시금 자실장들을 품에 안고 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위협하는 친실장.
나는 그들이 있는 골판지 박스에 도로리 스프레이 남은 캔을 모조리 부어버렸다.

"데!!데아아아아아! 데우에!! 에우아아아아아아!!"
"테테!!테아아아!!아아아!! 시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조금씩 녹아들어가는 친자실장석들.
손발이 녹아드는 와중에도 친실장은 끌어안은 자실장을 놓지않고 피눈물을 흘린다.
서서히 녹아가는 손발로 필사적으로 자실장을 끌어안고 외친다. 뭐라고 하는 것일까?
괜찮다? 마마가 함께 있다? 아프지 않다? 이건 다 꿈이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진다?

비명이 멎은 그곳에는 녹색과 적색의 작은 물웅덩이가 하나 생겼다.
나는 그 물웅덩이를 보며 미친듯이 광소한다. 슬퍼서 웃는 것일까 스스로가 초라해서 웃는 것일까.

어머니.. 어머니는 어쩌면 틀렸을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엄마를 나쁜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실패해버렸어..


미친듯이 웃는 나를 시린 달빛이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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