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자 다시 한 번 말할 테니 잘 들어. 이따가 내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같이 밥을 먹을 거야. 그 때 내가 너를 불러서 뭔가 물어볼 텐데, 너는 무조건 '이분의 일 엑스 제곱'이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뎃... '이부내'... 그러니까데스..."

"이분의 일 엑스 제곱"

"데... 이부내 이뢱... 수제곱데스우...? 이건 왠지 세레브한 유럽산 최고급 수제 콘페이토를 곱배기로 받을 수 있는 주문 같은 데스우?"

"후우... 그런 건 아니다만 이걸 잘 외워서 이따가 제대로 말하면 하루에 한 개 주던 콘페이토를 오늘 밤에 세 개 줄게."

"...데데뎃! 드디어 똥노예가 데캭! 주,주인사마가 와타시의 진가를 알아주셔서 기쁜 데스우... 와타시 열심히 하겠는 데스우!"

"오냐."

미도리는 짧은 팔을 뻗어 혹이 난 이마를 어루만지려 애쓰며 작은 방에 있는 자신의 케이지로 돌아갔다.
그날 하루 종일 케이지에서는 "이부내 이뢱 수제곱데수... 이푸내 이레 수재곱데수... 이브내 이렉 슈제곱데수..." 반복하여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진짜라니까?"

"이 미친 놈이 몇 잔이나 마셨다고 벌써 취해서 헛소리야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집에서 마시니까 편해서 그런가, 벌써 정신줄을 놨나 이 시키ㅋㅋㅋㅋㅋㅋ"

"실장석 기른다고 들었을 때 취미도 참 별나다고 생각은 했다만. 이거 혹시 그거 아냐? 실장석들이 툭하면 망상에 빠진다는... 뭐더라, 아 행복회로! 그거네 그거. 이놈이 실장석하고 살다보니 행복회로에 빠지고 말았네. 쯧쯧..."

"ㅋㅋㅋㅋㅋㅋㅋ 맞네 맞아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암튼 꼭 말만으로는 안 믿어요, 인간들이... 그럼 내 말이 진짜면 다들 만원씩 내놓는 거다? 야, 미도리! 이리 좀 와 봐! 야 똥벌레!"

"ㅋㅋㅋㅋㅋ뭐야, 내기야?ㅋㅋㅋㅋㅋㅋ난 오만원 줄게ㅋㅋㅋㅋㅋ"

"나도ㅋㅋㅋㅋㅋ"






데스 데스 거리며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로 거실로 나오는 미도리. 아무리 자기 주인의 친구들이 놀러왔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도, 젊은 남녀 닝겐 여럿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자리를 코앞에서 마주하려니 긴장되는지 어깨는 움츠러들었고 눈은 계속 힐끔힐끔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혹시 학대파가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나를 가지고 '노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자실장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를 버리지 않고 길러준 주인이고 여지껏 자신에게 딱히 심한 일은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처럼 얼굴이 발그레하고 눈은 충혈되었으며, 기묘하게 역해서 맡다보면 머리가 아파지는 냄새가 입에서 나는 상태가 되었을 때는 뭔가 손짓 하나도 평소보다 더 격하고 부주의해지는 것을 안다. 그간 주인이 그런 얼굴을 한 상태에서 집에서 깨먹은 컵이나 접시가 한두 개도 아니니까.

"부, 부르신 데스, 주인사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주인사마래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출세했다 너? 어디가서 주인님 소리 들으며 행세해보겠냐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 웃겨ㅋㅋㅋㅋㅋ 그래도 집에서 기르니까 얼굴도 옷도 깨끗해서 좋네. 전에 공원에서 나를 가로막은 놈은 행여 바지에 묻을까 겁나서 걷어찰 때도 불안할 정도로 꼬질꼬질하던데ㅋㅋㅋ"

"ㅋㅋㅋㅋ그니까 이게, 적분을 할 줄 아는 실장석이다 이거지?ㅋㅋㅋㅋ"

"아 시끄러우니까 조용해 좀. 걷어차네 어쩌네 하니까 겁먹잖냐. 자, 자, 미도리. 내 말 잘 들어봐? x를 적분하면 뭐지?"


순간 이 방 안에만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잠시 후 겨울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와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데? ...데에... 데... 그러니까데스.... 데..."

여지껏 이렇게 빨리 눈동자를 굴려본 적이 있을까 싶게 동공이 흔들리며 입에서 침이 떨어지는 미도리,
간만에 동창 모임 겸 집들이에 왔다가 뜻하지 않게 오만원을 벌고 가는 기쁨을 소리 높여 외치려고 점점 입이 씰룩씰룩 거리는 손님들.
'아 어째 이럴 것 같더라니'라는 표정으로 콘페이토 세 개는 커녕 내일 하루 종일 굶기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주인.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삼십 초가 지났을 때, 입을 먼저 연 것은 미도리였다.



"데... 이부네 일... 엑수 제곱..."



일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잠깐 멈칫했다가, 곧바로 진상을 추측해내고 "이 사기꾼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ㅋㅋㅋㅋㅋㅋㅋ"라고 외치며 손에 든 나무젓가락이니 치킨 다리뼈니 뭐든 집어 던지려는 손님들과, "돈 내놔 돈! 내기를 했으면 지키라고 진상들아ㅋㅋㅋㅋㅋㅋ"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자기가 마련한 짧은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좋아하는 주인의 웃음소리에 묻혀서, 이어지는 미도리의 말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푸라수 적분상수 씨...인 것 같은 데스우... 데에...? 주인사마...? 닝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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