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의 차이 (토끼실장)



"장녀는 동생들을 잘 돌보는 데스."

"알겠는 테치. 마마, 조심하는 테치~"

달려와 안기는 자실장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친실장. 밥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하기에 애정표현은 짧게 마친다.

"그럼 문 닫는 데스."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친실장은 밥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높이의 차이-

"데...인간씨들이 먹을걸 안 놓는 데스."

2개째의 쓰레기통에서 잠시 쉰다. 근래에 들어 점점 밥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 지고 있다.
본래 이 실장석 가족이 살고있는 곳은 먹이와 식수 구하기가 용이한 곳이었다. 그들이 공원이라고 생각하는 이곳은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캠핑장이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놀러온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흘리는 막대한 양의 쓰레기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고기조각 이라도 건질 수 있는 들실장의 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러던것이 날씨가 겨울에 접어 들어 캠핑하기 마땅찮은 계절이 된 것과 무료화 운용이 한계에 다다라 유로화 정책으로 바뀌멱서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든 이유였다.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조금 더 나가보는 데스."

그러한 현상을 들실장이 알리없다. 그저 최근 들어 하루하루가 힘들어져 가고 있음을 느낄뿐이다.

"데. 오랜만인 데스."

"반가운 데스."

걷고 있자니 다른 실장석들이 속속히 모여든다. 풍요로운 삶에 서로서로 챙겨주던 이웃들이다. 다들 빈 손인 것을 보니 아직 밥구하기에 성공한 실장석은 없어 보인다.

"오늘도 공치면 또 비상식에 손 대야하는 데스."

한 실장석이 운을 띄웠다. 그러자 너도나도 푸념을 늘여놓기 시작한다.

'우리도 넉넉하지 않은 데스.'

친실장도 얼마 남지 않은 비상식량을 생각했다. 인간들이 흘리고 간 개별포장 과자나 잘 상하지 않는 견과류 따위가 그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이 친실장은 영리한 축에 속했다. 낙관적인 생각에 젖어 새끼들을 많이 낳지도 않았고 나름의 규칙으로 식량배분도 신경써서 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을 등한시 할 순 없었다.

"....아랫마을에 가보는 데스."

"거긴 인간씨들의 집을 거쳐야 하는 데스."

"위험한 데스."

인간씨들의 집은 관리사무소 였다. 몇 주전까지는 농땡이를 피우는 관리사가 있었다. 하지만 캠핑장이 유로화가 되면서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 명 추가 되었다. 그들은 얼마전 그 관리사에게 걸린 실장석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픈건 싫은 데스"

"아픈걸 넘어 죽는 데스...하지만 배고픈것도 싫은 데스."

실장석들은 왈가왈부 하기 시작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친실장이 중재하고 나섰다.

"가고 싶은 자들만 가는 데스."

"데..."

고민하는 실장석, 고개를 끄덕이는 실장석, 한걸음 물러서는 실장석...반응은 각각이었지만 비로소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좀 더 여기를 둘러보는 데스."

"나는 내려가는 데스."

"나도 내려가는 데스."

곧 갈래길이 나왔다. 윗동네를 더 조사해볼 실장석과 아랫동네로 내려갈 실장석이 정해졌다.

"조심하는 데스."

"여유가 되면 많이 챙기는 데스."

희망적인 말로 불안감을 해소한다. 친실장과 5마리의 성체실장이 아랫마을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조심하는 데스."

선두에 선 실장석이 말했다. 인간씨의 집, 관리사무소까지는 지척이었다. 다행이라면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히...조심히 가는 데스."

덩치가 작은 실장석이다. 심혈을 기울여 빌소리를 죽이니 작은 자갈의 마찰 소리만이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때마침 지저귀는 새들. 나머지 소리 마저 파묻혀 은밀히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온 데스."

"지릴뻔한 데스."

"...나는 살짝 지린 데스."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주는 데스."

가장 큰 장애물을 통과했다. 그 안도감에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있는 데스!"

"데?!많은 데스!"

쓰레기통에 다가가자 갖가지 쓰레기들이 보인다. 재활용품과 일반쓰레기로 나뉘어진 쓰레기장이 었다.

"데뎃?! 새 물병을 구한 데스!"

"나는 이 헝겁이 좋은 데스"

재활용품에 버려진 생수통과 일회용 키친타올을 찾아낸 실장석들이 기쁨에 환호한다.

"먹을 것도 있는 데스!"

캠핑장에 놀러온 사람들이 귀찮음에 분리하지 않고 버린 음식물쓰레기도 찾아낸다. 불과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은 쌈채소는 아직 그 신선함을 다 잃지 않았다.

"데어엣?!!"

그와중에 찾아낸 먹거리는 성체실장들도 몇번 먹어보지 못한 소세지 무더기 였다.

"신이 도운 데스!"

"일진 최고인 데스!"

전날 꼬마아이가 실수로 땅바닥에 쏟아 버린 비엔나 소시지가 오늘 실장석들에게 큰 선물로 돌아왔다.

'이정도면 한동안 문제 없는 데스.'

친실장과 다른 실장석들은 각자의 봉투를 꺼내어 소세지와 야채를 담았다. 봉투가 부풀수록 그들의 마음도 부풀었다.

"윗집 말을 듣기 잘한데스."

"그런 데스. 대단한 데스."

"데? 아닌 데스. 모두의 운이 좋은 데스."

예상외의 수확에 기분이 좋아진 실장석들이 친실장을 추켜 세웠다. 친실장도 그리 싫은 기분이 아니어서 즐거이 칭찬을 받았다.

"데. 다시 조심하는 데스. 인간씨의 집인 데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찬가지로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야 한다. 그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발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들고 있는 짐의 무게가 만만 찮다. 결국 한 실장석이 과도하게 걸음을 옮기려다 뒤로 자빠진다.

"데갹!"

넘어지며 등에 매고 있던 패트병의 딱딱한 뚜껑이 다른 실장석을 때렸다. 때아닌 소란스러움에 다른 실장석들이 아연해 했다.

"조용히 하는 데스?!"

친실장의 주의에 뒤늦게 입을 틀어막고 황급히 주변을 살핀다. 다행이 아무도,

"뭐야 이것들은."

"데뎃?!"

관리소에 출근하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딱 걸렸다.

"데갸아아악?!"

실장석들이 놀라 소리지르며 우왕좌왕 한다.

'침착하는 데스. 침착하는 데스.'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인간의 걸음으론 단 두세 호흡만에 실장석을 따라 잡는다. 그러면 아이들도 위험해 진다.

'...최악은 피해야 하는 데스."

친실장은 소세지와 먹을것을 버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다른 실장석들은 공포에 질려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슬슬 청소 할 때가 되긴 했지."

알바생은 쭉 손을 뻗어 실장석의 머리카락을 낚아 올렸다. 지저분한 실장석의 몸통을 잡는 것은 사양이기 때문이다.

"데갸아아악!!!"

물론 사로잡힌 실장석은 두피가 당겨지는 고통과 공포에 죽어라 비명을 질렀다. 알바생은 아랑곳 않고 다른 한손에도 같은 방식으로 실장석을 낚아 챘다.

"데에에엥."

뷰루룻 하며 똥을 지리는 실장석.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체면이고 뭐고 차릴 정신이 없었다.

'도망치는 데스. 나쁘게 생각마는 데스.'

졸지에 다른 실장석을 제물로 도망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덤벼드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되었다.
친실장은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한체 수풀로 뛰어들어 기어가기 시작했다. 옷과 깨끗함이 자랑인 앞치마에 풀물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살 수 있는 데스. 살 수 있는 데스.'

낮은 포복에 손과 무릎도 까져 피가 나기 시작했다. 쓰라림이 덮쳐왔지만 죽는것 보다는 아았다.

'인간씨도 이렇게 하면 못보는 데스. 성공한 데....'

"데?데갸아아악!!!"

앞으로 나가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인간의 발이 자신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ㅊ그제서야 엄습하는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유격도 아니고 웬 포복전진이냐."

피식 웃은 알바생은 이미 한손에 또 다른 실장석들을 들고 있었다. 남은 손을 뻗어 친실장의 머리카락을 휘감아 끌어 올렸다.

"데에엑....데에엑..."

짓이겨진 다리의 고통과 뜯어질 것 같은 두피의 통증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인 데샤아앗! 아랫동네는 가는게 아니었던...데보오옷!!"

알바생이 친실장을 힐난하전 실장석을 쥐고 흔들었다. 린갈도 없는 그는 그저 사납게 데스데스 거리는 것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악의 최악은 피한데스....'

고통에 의식을 잃어감에도 친실장은 보금자리를 들키지 않은 것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인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정성껏 숨겨둔 집이다. 다만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남겨두고 이렇게 잡힌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도 멍청한 인간은 집을 발견할 수 없는 데스.'

"데프프프."

"이새끼 왜이레?"

고통과 이제 곧 죽는다는 공포, 남겨진 아이들의 걱정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행복회로가 전개되어 버렸다. 친실장의 머리속에선 끝까지 살아남은 자신들의 아이들이 인간을 혼내주었다. 그 뒤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아 남으며 자손을 번식시키고 있었다.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야, 늦으면 늦는다고...뭐냐. 어디서 났어?"

관리소에서 직원이 걸어나왔다. 알바생은 손에 든 실장석을 보여주었다.

"구제작업 중 입니다."

"슬슬 치워야지 했는데 잘했다, 야."

직원은 삶을 포기한체 데에엥 우는 실장석괴 데프프 웃음을 흘리는 실장석을 번갈아 보았다.

"얘는 상태가 이상하다?"

"그러게요. 아까 다리를 밟았더니 그 충격으로 맛이 갔나 봅니다."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아는 실장석은 고통에 똥을 지리면 지렸지 미쳐서 웃는 생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 왜 웃냐?"

직원은 스마트폰의 린갈을 작동시켰다. 무료판이기에 정확한 번역은 힘들었지만 간단한 소통은 되었다.

"데? 희생양이 또 늘어난 데프프프프. 나의 아이들이 곧 원수를 갚으러 오는 데스. 너희들은 공포에 떨며 똥을 먹는 데프프프."

히죽거리며 잘도 말한다. 직원은 린갈을 다 읽고 다시 물었다.

"그 강력한 자식들은 어디에 있는데?"

"똥멍청이 인간은 못찾는 데프프프."

친실장은 다리의 고통도 잊은체 비웃었다.

"뭐 저중에 하나 아니겠어요?"

"그렇겠지. 이새끼 행복회로 돌리고 있네. 야 저중에 뭐가 네 집이냐?"

"데프프....데?"

행복회로가 멎었다. 직원이 가르키는 손가락 방향을 향해 시선이 따라간다.

"안보이냐."

알바생이 친실장을 더 높이 들었다.

"데뎃?!"

친실장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나무 밑, 수풀사이, 쓰레기통 그늘 옆. 그 모든곳에 실장석의 집들이 보였다.

"뭐, 뭐인 데스! 어째서 다 보이는 데샤아아아!"

그중엔 친실장의 집도 보였다.

'대단한 데스. 깜빡하면 지나칠뻔한 데스.'

그것은 다른 실장석들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그녀의 집이다. 인간에게도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던 그 집이, 너무도 쉽게 보였다. 게다가 언뜻 윗마을의 쓰레기통 너머까지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럴리가...없는 데스..."

'츄와아앗?마마는 굉장한 테치! 마법사인 테치!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멋진 건축가인 테치!'

'프니프니 보다 멋진 레훙~요새인 레훙~'

감탄해 마지 않던 자실장과 구더기실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일단 처리하고 마저 작업해버리자. 날 추워지면 얼어죽을 줄 알았는데 올해는 따뜻해서 더 버티나 보다."

"예."

알바생은 두마리의 실장석을 들고 화로로 향했다. 손님들 바비큐용 숯을 준비하는 화로에는 이미 4마리의 실장석들이 반죽음 상태로 데뎃데뎃 숨을 내뱉고 있었다.

"뎃..."

던져진 친실장이 화로에 굴러 떨어진다. 고통에 일그러져 가는 친실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니었던 데스. 잘보이는 데스....인간씨들에게는 잘보이는 데스...'

친실장은 인간의 눈높이를 보았다. 그들과 인간은 힘과 속도뿐 아니라 높이의 차이까지 있었다.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장녀...도망치는 데스...'

친실장의 덧없는 소망이 떨어지는 불씨와 함꺼 활활 타올랐고 비명 조차 없이 재가 되어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