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 시의 공원인 후타바 공원. 뒤편에는 산을, 앞편에는 강을, 양 옆에는 도시를 낀 그 모양새는 생태공원으로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공원은 공중화장실이나 벤치 같은 필수시설들은 물론이고 분수대나 놀이터, 운동장 등의 편의시설들 역시 풍부하게 갖춰져 있었다.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오르던 경제사정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한 그 거대한 규모와 뛰어난 퀄리티는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해왔다.
허나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다. 경기가 침체하고 아웃도어 활동보다는 집에서 머무는 것을 즐기는 인구가 늘게되자 공원은 그저 장식용으로만 남은 시설이 되었다. 굳이 관리하기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후타바 공원을 시는 반쯤 손을 놓아버렸다.
시설들은 시대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옛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었고 심하게 노후화 되어버렸다. 하지만 옛날 물건들이야말로 은근히 오래간다는 특성상 노후화된 시설들은 아직도 유일한 장점인 견고함을 자랑하며 그럭저럭 작동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원 내의 쓰레기장에다가 불법 투기를 하였고 때로는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공원 입구에다가 대충 쓰레기를 놓고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공원의 방문객들은 줄어들게 되었고 그렇게 사람이 적어지게 된 공원은 자연스럽게 실장석, 또는 참피라 불리는 짐승들에게 있어 적합한 서식지가 되었다.
참피, 녹색의 소인종 같이 생긴 요상한 생물들을 부르는 속칭이다. 정식 명칭은 체내에 돌(위석)이 설치되어 있는 생물이라는 뜻의 실장석이며 비둘기, 길고양이와 더불어 가장 인간의 문명사회에 잘 적응한 생명체들이다.
이 생물들은 대략 길고양이와 시궁쥐 사이라는 다소 애매한 생태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다. 몇몇은 애완용으로 길러지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참피들은 인간에게 길러지기 보다는 인류의 문명에 반쯤 기생하면서 살아간다. 허나 그 지성은 인간과 얼추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한때는 실장석들을 유사인류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참피들이 끼치는 피해와 몇몇 개체들의 끔찍할 정도의 답없는 성질 등의 이유로 그 움직임은 지진부진해졌고 실장석들 중 몇몇이 인간 아기에게 피해를 끼치려고 시도한 사건 이후로 그에 대한 언급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서 참피들은 골목 깊숙한 곳이나 야산, 하수구 안쪽이나 버려진 도시 등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물론 제일 인기있는 서식지는 나름대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이었다. 그리고 그런 공원들 중에서도 후타바 공원은 실장석들의 시립생태공원이라는 농담이 나돌만큼 그 개체수가 높았다. 얼마 뒤 시에서는 진짜로 후타바 공원의 명패 아래에 실장생태공원이라는 별명을 새겨넣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모여든 실장석들은 후타바 공원에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학대파, 애호파, 관찰파, 실험파 등등 참피에 대해 다방면으로 흥미를 가진, 소위 말하는 실장석 덕후들은 주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후타바 공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도 조금씩 호기심에 공원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후타바 시는 공원을 뜯어고치진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관리는 해줘야만 하게 되었다. 실장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관리에 대한 명분을 넣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행된 관리법은 정기적인 들실장 구제였다.
공원에다가 다시 활기를 불러넣은 것이 참피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서는 주기적으로 참피들의 숫자를 조절해야 했다. 크기는 작은 고양이만하면서 번식력은 시궁쥐 수준인 이 생물들은 내버려두면 길고양이나 쥐 이상의 해수가 되어버리니까.
시에서 무차별적인 구제를 하는 모습이 보이자 학대파와 학살파들은 더 등을 펴고 다녔고 이는 참피들에게 있어 재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타바 공원을 떠나는 참피는 별로 없었다. 이 공원만큼 살기 좋은 공원은 거의 없거니와 설령 있다하더라도 위험천만한 이주를 감행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대다수의 실장석들은 그냥 행복회로에 모든 것을 맡기고 후타바 공원에 머무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이 공원 한쪽 구석의 낙후된 공중화장실에서 어느 친실장이 붉은 눈물을 흘리면서 출산을 하고 있었다. 곧이어 밝고 경쾌한 울음소리가 화변기 안에서 터져나왔다.
텟테레~!
한때의 순백색은 이미 빛을 잃고 지금은 회녹색을 띄고 있는 공원의 공중화장실. 깨진 타일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벽은 물때와 얼룩으로 뒤덮혀 있고 화장실 문들 중 몇 개는 살짝 부서져 있다. 퀴퀴한 냄새가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고 바닥은 물기로 축축하다.
사람이면 변의가 급하지 않은 이상 절대 들어오지 않을만큼 불결한 장소. 그러나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있어서 이 화장실은 마치 어린 시절 추억의 요람과도 같은 공간이다. 거의 모든 들실장들은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나니까.
‘그리운 냄새가 나는 데스우…’
경첩이 무뎌져 툭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열리는 문을 열고 만삭의 친실장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들어온 곳은 남자화장실. 이유는 별거 없고 남자 화장실 쪽이 친실장이 들어온 벽의 구멍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굼뜬 몸을 움직이며 화장실 문 안쪽의 화변기에다가 몸을 뉘였다. 살짝 고인 찬물이 닿자 친실장은 몸을 바싹 긴장시켰다. 이윽고 적당히 체온으로 물이 미지근해지자 친실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출산을 시작했다.
‘데엣..! 뎃…! 데즈우우웃..!!!’
대체 어쩌다가 이 작은 생물이 진화과정에서 굳이 이족보행을 택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그 점 때문에 좁아진 산도는 새끼를 많이 낳는 종임에도 불구하고 실장석에게 출산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연한 몸과 강한 재생력이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준다는 점일까.
한동안 꽉 조여져 있었던 총구근육이 풀리면서 다리 사이의 균열을 열었다. 악취가 가득한 녹색으로 얼룩진 총구는 마치 지옥의 입구가 열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 어떻게 보면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이 구멍으로 나오게 될 존재들은 현실이라는 지옥에 발을 내딪게 되는 것이니까.
이윽고 총구에서부터 연두색 점막으로 뒤덮힌 작은 물체가 질척이는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져나와 고여있는 얕은 변깃물 속으로 빠진다.
‘텟테레~!’
기쁨으로 충만한 이 세상에 태어나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의미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나는 자실장. 적당히 미지근한 물 속에서 몸을 꾸물거리며 답답한 점막을 벗으려 든다. 수면에 올라온 얼굴의 점막이 굳기 전에 빠르게 혀로 입과 코 주변을 핥는 자실장, 그 노력의 결실로 시원하게 첫 숨을 들이쉰다.
비록 퀴퀴하고 지린내 나는 화장실의 공기지만 처음 쉬는 숨이라 다른 상쾌한 공기라고는 모르는 자실장은 상쾌함에 밝은 웃음을 띈다. 이윽고 몸을 화변기 안쪽 벽과 바닥에다가 비벼대며 나머지 점막을 떼어내려고 든다. 하지만 갓 태어난 자실장이 발버둥쳐봤자 신체의 점막을 벗기는 어렵다. 친실장의 도움이 아니면 혼자서는 점막을 벗을 수 없다.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발버둥치는 자실장 뒤로 연속적인 네개의 탄생음이 터져나온다. 몸을 돌린 자실장 뒤에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네마리의 자실장들이 있었다. 호기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보려는 자실장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억세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자실장을 붙잡았다. 자실장은 뚝뚝 떨어지는 점막 너머로 거대한 얼굴을 보았다.
‘뎃스~’
자신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크고 더 주름진 얼굴, 어디선가 나는 그리운 냄새, 그리고 소리치는 본능. 이 존재는 자신의 마마라는 것을 자실장은 즉각 깨달았다. 마마는 입을 벌리더니 자실장의 몸통만한 혀를 내밀어서 자실장을 핥아주기 시작했다.
‘테에~? 텟츄우웅~’
간지러우면서도 애정깊은 행동에 자실장은 꼼지락거리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한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자들은 점막에 덮인 얼굴로 오만가지 표정을 다 지으면서 자신들도 핥아달라고 한다. 이윽고 장녀가 점막으로부터 해방되자 친실장은 장녀를 내려놓고 다음 자실장을 들어서 핥아주기 시작했다.
‘테에..! 텟츄웅~! 텟츄우웅!’
장녀 앞에 있는 삼녀는 차녀를 핥는 친실장에게 어서 자신도 핥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참고 기다리라는 말은 이 아기실장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행복이란 것은 누려지도 못하는 구더기가 되어버리니까, 자실장은 필사적으로 점막을 취해달라고 친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테에… 테츄테츄!”
보다못한 장녀가 찰박거리면서 점막에 쌓인 삼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핥아주기 시작했다.
“테에? 텟츄웅~”
삼녀는 자신을 핥아주는 자매에게 애교를 떨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런 동생을 장녀는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더 꼼꼼하게 핥아주었다. 그 덕분에 삼녀는 어미가 핥던 차녀보다 더 먼저 점막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자유로워진 삼녀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과 백색이 어우러진 화변기 안쪽, 찰랑거리면서 기분을 좋게 해주는 변깃물, 눈 앞에 있는 마마의 거대한 총구,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자매들과…
‘테에에? 텟츄?’
마찬가지로 총구에서 점막에 덮힌 채 나오긴 했지만 어딘가 이상한 것들이 셋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작고 팔다리도 잘 보이지 않는 길쭉한 무언가가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살아있었고 마찬가지로 점막을 핥아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허나 친실장은 사녀를 핥느라 바쁜 상태였고 장녀는 오녀를 집어들어 번갈아가며 핥고 있었다. 삼녀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레후웃! 레훗! 레훼에엥!”
그 존재는 울면서 간청을, 아니 이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보다못한 삼녀는 재빨리 뒤뚱거리며 달려가서 그 존재를 집어들고 구석구석 핥아주기 시작했다.
“레후? 레츄우? 렛츄웅~!”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점막이 걷어지자 벌레같이 생겼던 그 존재의 팔다리가 쭉쭉 길어졌고 뒷버리가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녹색 포대기가 분리되었고 목 주변에는 앞치마 같은 프릴이 생겼다.
마치 자기 자신의 축소버젼과도 같은 그 모습에 삼녀는 귀엽다면서 텟츄거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허나 그렇게 삼녀가 감탄하는 사이 다른 둘은 그대로 점막이 굳어져 벌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출산 끝에 친실장은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변기 칸 안에서 갓 태어난 건강한자들은 벌써부터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호기심을 가득 품고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비록 낳은 줄도 몰랐던 엄지와 구더기들도 있긴 했지만 당장은 그 셋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데프픗, 정말 귀여운 자들인 데스’
‘테에? 테츄텟츄!’
‘테치! 테쮸!’
‘레츄웅~’
‘레후? 프니프니후~’
친이 나지막히 중얼거리자 마마의 목소리에 자들은 저마다 활기차게 대답을 하였다. 그런 자들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친은 천천히 일어서서 변기 안의 자들을 꺼내주었다. 그 과정에서 친의 거대함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자들은 츄아아아 거리면서 감탄을 내질렀다.
‘뎃? 차녀는 어디있는 데스?’
일어선 친실장은 그제서야 자신이 점막을 핥아준 차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자기 옆에 내려놓았는데 말이다. 친실장은 초조해하면서 차녀를 부를까 했지만 벌써 다른 자들도 자기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걸 보자 별 수 없이 일단 화장실 문을 열고 당장 보이는 자들을 불러모았다.
자실장 네마리, 엄지 하나, 그리고 구더기 둘 까지 다른 자들은 모두 모여들었다. 허나 차녀만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친실장은 차녀 하나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나머지 일곱마리의 자들이라도 무사히 골판집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 우선이라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화장실 밖을 나섰다.
‘테치? 테츄테츄! 테? 테퍗! 테퍄퍄퍗!’
차녀는 사실 친실장이 있던 화장실 칸의 바로 옆에 있었다. 화장실 칸막이 아래쪽 빈 공간은 갓 태어난 자실장이라면 드나들 수 있을만한 높이를 가졌고 차녀는 그렇게 호기심에 옆 칸으로 간 것이다.
‘레에? 레츄?’
옆 칸에는 서로 껴안은 채 부비적대는 엄지실장들이 있었다. 몇몇은 독라였고 다른 몇몇은 옷만 있거나 머리카락만 있는 등의 우스운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고 차녀는 크게 웃어제꼈지만 이때 친실장은 사녀를 핥느라 집중하여 차녀의 웃음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테퍄퍄퍗! 테챠! 테치테치!”
차녀는 만만해보이는 엄지들을 향해 다가가면서 잠재되어있던 분충성을 내보였다. 허나 엄지들은 차녀의 예상과 달리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갓 태어난 자실장과 어느정도 자란 엄지는 크기가 얼추 비슷하다. 게다가 엄지들은 숫자도 훨씬 더 많은 쪽. 딱히 겁에 질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칸에 사는 버려진 엄지실장의 무리는 이미 화장실에서 사는 법을 완벽히 익히고 있었다. 밥은 화장실 바깥에 가득 피어난 덤불의 열매나 간혹 보이는 작은 벌레들을 먹고 물은 소변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마시고 그 물로 씻는다. 운치는 항상 화변기에다가 싸고 가끔씩 모두가 힘을 합쳐 손잡이를 눌러서 운치를 씻겨내려가게 한다. 그러고는 두루마리 휴지 이불을 덮고 다같이 모여서 자는 것이다.
추가로 가끔씩은 덩치 크고 용감한 엄지들이 출산 중인 친실장이 있는 칸으로 가서 몰래 갓 태어난 자실장을 납치해와서 꽉 붙잡은 뒤 다같이 고기반찬으로 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지들은 자실장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테에?! 테챠앗! 테챠!’
차녀는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는 엄지들한테 화를 내면서 붕쯔붕쯔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엄지들은 그런 차녀를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취급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차녀는 엄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테?’
그 순간 차녀는 발을 헛디뎌 엄지들이 운치굴로 쓰는 화변기 안으로 미끄러져 얼굴부터 떨어졌다. 엄지들은 그런 차녀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며 더 크게 비웃었다. 차녀는 고통과 분노에 꺽꺽대면서 화변기 벽 위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갓 태어난 자실장이 그런걸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레에? 레치레츄! 레프프픗! 레퍄퍄퍗!’
엄지들은 그런 차녀를 보다가 자기들끼리 쑥떡대더니 이윽고 크게 웃으면서 천천히, 마치 차녀보고 보란듯이 화변기의 손잡이로 다가갔다. 차녀는 엄지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빨빠진 얼굴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엄지들이 조금 전에 한 말은 이러했다.
“저 똥분충은 운치 같은 레치! 그러니 이번에 운치를 물씨에게 맡기는 겸 저 분충도 운치와 같이 떠내려보내는 레치!”
‘테쨔아아!!! 테쨔악!!!’
잠시 뒤, 물소리와 함께 차녀는 비명을 지르며 마치 런닝머신에서 달리는 듯 허겁지겁 발버둥치고 있었다. 엄지들이 손잡이를 누르자 세차게 흐르기 시작한 물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구멍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차녀는 그런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테에에엥!!! 테에엥!!’
차녀는 그제서야 친실장을 찾으면서 울어제꼈지만 이미 친실장은 화장실 밖으로 나선 뒤였다. 엄지들은 손잡이 꼭지에 앉은 채 울부짖으면서 변기구멍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뛰는 차녀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몇몇은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 차녀를 향해 투분까지 하고 있었다.
‘테햐아아! 테엣!? 테쟈아아!!!’
날아드는 운치에 맞고 비명을 지르는 차녀는 얼굴에 날아든 운치에 의해 갑작스럽게 임신 상태에 들어섰다. 그러나 갓 태어난 자실장이 그런걸 알 리가 있나. 그저 갑자기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배를 보고 당황하여 더 크게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엄지들은 그 우스운 모습을 보면서 더 크게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손잡이를 꽉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테챠아아아! 텟테로게… 테쨔아아아!!! 텟테로게..! 테햐아아아!!---‘
임신 상태가 된 차녀는 본능에 따라 배를 부여잡고 태교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흐르는 물살 때문에 뛰다가를 반복하다가 넘어졌다. 마치 공처럼 부은 배는 넘어진 차녀가 그대로 물과 함께, 운치와 함께 변기 경사를 따라 굴러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아직 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차녀는 공포어린 비명과 함께 암흑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모든게 행복을 위해서 태어난지 고작 15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데에… 차녀는 잘 있을까 걱정되는 데스우…’
한편 친실장은 일곱마리의 자들과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데에… 드디어 도착한 데스.’
‘테에? 테츄?’
‘레츄?’
‘레후~’
친실장은 놀랍게도 엄지와 구더기까지 있는데도 일곱마리 자들 전부를 무사히 화장실부터 골판지까지 데려갔다. 허나 이는 그저 친의 운이 좋아서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
공원생활 4년차에 돌입한 이 친실장은 이미 들생활의 베테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놀라운 생존 노하우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오늘처럼 출산을 하러 갈 때는 무조건 꼭두새벽에 나선다는 것. 낮에 돌아다니는 동족들과 인간들, 그리고 밤에 돌아다니는 독라들과 고양이들은 출산이랑 그 직후에 있어 매우 큰 위험요소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두 그룹 중 어느 쪽도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대인 새벽에 출산원정을 가야만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테츄? 테치테츄! 텟츄?’
‘레에에? 레츄우!’
덤으로 지금 어리둥절하면서 친실장만 졸졸 쫓아가기 바쁜 자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새벽에는 자들이 한눈을 잘 팔지 않게 된다는 이점도 있다. 낮에 출산하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환장한 자들이 이리저리 산만하게 돌아다니다가 슬픈 일을 겪는 경우가 빈번한데다가 무사히 골판지에 도착해도 바깥풍경을 제대로 목격한 자들이 이후 골판지에만 있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그렇다고 밤에 출산하면 밤눈이 어두운 자들이 앞을 제대로 못 봐서 친실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빛이 있는 새벽 시간대가 출산 시기에 제일 유리한 것이다.
‘데프픗… 이 노하우는 와따시만 아는 것인 데스우. 와타시의 현명함 덕분에 무사히 자들이 다 하우스에 도착한 뎃승~’
그렇게 도착한 친실장의 골판집은 사람이 봐도 꽤나 놀랄만큼 잘 지어진 집이었다.
공원 화장실 뒷편에 있는 숲을 지나가야만 나오는 이 골판집은 인간의 눈에도 잘 띄지 않았고 동족 실장석들의 접근률도 덜했다. 골판집 주변에 자란 덤불들은 산딸기와 남천나무들이라서 열매를 가득 제공해준다. 또한 마침 운좋게도 이 숲은 도토리를 제공해주는 참나무 숲이다. 그야말로 식량 걱정은 안해도 될 만큼 풍족한 지형이다. 멍청한 들실장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인간을 꼬셔서 사육실장이 되거나 마음껏 뛰놀겠답시고 잔디밭 주변에 집을 짓지만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다.
친실장의 골판집 재질은 단단한데다가 겉면에 코팅까지 된 큼직한 과일상자 골판지였다. 예전에 버려진 사육실장이 담겨있던 골판지를 주워서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었다. 골판집 지붕에는 공사장에서 쓸법한 두꺼운 비닐이 덮여있어서 방수가 잘 되어있었다. 이 비닐은 친실장이 죽음을 무릅쓰고 공사가 진행되던 공원 중앙까지 가서 주워온 것이었다.
집 주변에는 위장용 나뭇잎과 풀잎들이 가득 있었고 실장취를 지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향기가마음에 들어서인진 몰라도 허브 같은 풀들도 뿌려져 있었다. 상자 옆에는 제법 넓은 운치굴이 파여있었고 안에는 구더기들이 십수마리, 독라달마가 두마리 정도 있었다. 게다가 하다못해 운치굴 위에도 방수비닐이 덮어져있어 침수를 방지했다.
그야말로 외관만 보더라도 베테랑만의 생존 노하우가 잔뜩 반영되어 있는 실장 하우스였다.
‘츄아아앗!!! 테츄우웃!!!’
‘테츄아아아!!!!’
‘레츄! 레치레쮸!!’
‘프니프니 레후웅~’
자들 역시 하우스의 모양새를 보고 감탄했다. 친실장은 자들이 자신의 노고를 담아서 만든 하우스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사실 자들은 그저 비닐에 맺힌 이슬과 거기에 닿은 새벽빛이 만들어낸 세레브한 무지개를 보고 환호를 지른 것이다. 뭐 어떻게 보면 미적인 측면에서도 합격점을 줄만한 집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데프픗, 자들은 안에 들어오는 데스우.’
친실장은 웃으면서 자들을 차례차례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집 안은 더욱 놀라웠다.
‘테에? 텟츄웅~’
제일 먼저 들어간 장녀는 푹신한 집 바닥을 밟고선 기분좋게 울었다. 골판집의 바닥 중 절반에는 친실장이 화장실에서 공수해온 두루마리 휴지들과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봉제인형들의 솜이 가득 깔려있었다. 나머지 절반에는 신문지가 두툼하게 깔려있었다. 물론 그저 자실장들 좋으라고만 깔아놓은 것은 아니고 월동용으로 모아둔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었을 뿐이다. 허나 이 점만 보더라도 친실장의 생존 노하우가 제대로 드러났다.
‘레에? 렛츄?’
엄지는 아장아장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집 안의 운치굴을 발견했다. 이 운치굴에는 구더기가 대여섯마리, 그리고 독라달마 자실장이 하나 있었다. 친실장은 운치굴의 구더기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엄지를 잡아당겨서 치웠다. 아무리 저실장에게 본능적인 애정을 느끼는 엄지라지만 운치굴의 가축한테까지 애정을 주는건 허용해선 안된다.
‘텟츄?’
‘테치?’
삼녀와 사녀는 벽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보았다. 벽에 박혀있는 한 클립에는 친실장이 봄이 되자마자 새로 만들기 시작한 말린 구더기와 벌레들, 그리고 약간의 나물들이 가득 있었다. 그 옆에 있는 클립에는 친이 운치굴의 독라들한테서 뺏은 여분의 성체실장복이 두어개 정도 걸려있었다. 이 친실장의 위험대비 능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츄?’
오녀는 고개를 돌려가며 반대편 벽면에 있는 네 개의 크고 작은 페트병들을 보았다. 세개는 물이 담겨있었고 하나는 연갈색의 반투명한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페트병 옆에는 비닐봉지가 세개 있었다. 그리고 문 맞은편의 벽에는 마치 보물상자라도 되는 양 플라스틱 반찬통과 과자상자가 있었다. 이 친실장의 특별 보존식 보관창고인 것이다. 반투명한 반찬통 안에는 실장푸드가 있었고 그걸 보자 오녀는 본능적으로 군침을 흘려댔다.
'레후~'
'레후웅~'
구더기들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바닥이 푹신하고 방이 따뜻하니까 기분좋게 울어댈 뿐이었다. 다행히 아직 먹은게 없기에 운치는 지리지 않았다.
‘장녀, 차녀…는 없고... 삼녀, 사녀, 오녀, 그리고 엄지와 우지들까지. 다 모인게 확실한 데스!’
친실장은 자들을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전부 다 무사히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고선 골판집의 문을 닫고 걸쇠처럼 사용하는 고무줄이 달린 나뭇가지로 문을 걸어잠갔다. 비록 문이 닫혔지만 골판집 위에는 못으로 찌른 구멍들이 있었기에 비닐 너머로 아침햇살이 살짝 들어와서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문이 단단히 잠겼음을 확인하고서 친실장은 자들을 전부 골판집 한가운데로 불러모았다. 갓 태어난 자들을 위한 첫 식사시간인 것이다.
‘자들은 이제 첫 맘마를 먹는 데스우.’
‘테에? 텟츄우웅~!’
그렇게 말하면서 친실장은 장녀를 안아들고 가슴팍에 붙였다. 그러고선 모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장녀는 애정어린 어미의 품 안과 달콤한 모유 맛에 흠뻑 빠져들어 꼼지락거리면서 기쁨을 표출해댔다.
‘츄아앗! 테찌이익!!!’
‘테챠앗!!! 테치!!’
물론 그런 장녀를 보는 다른 자들은 본능적으로 질투심과 조바심을 느끼면서 울어댔다. 이는 새끼들이 분충이라서가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고체 먹이도 어느정도는 먹을 수 있는 실장석이지만 갓 태어난 실장석은 성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어미의 모유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필수적인 양분, 성장호르몬, 그리고 위석강화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모유는 모든 자실장들이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 기간이 2주밖에 되지 않는 실장석인만큼 모유수유 기간은 일주일 뿐. 그마저도 모유의 양은 한정되어 있고 친은 본능적으로 제일 먼저 태어난 자식한테 제일 많이 모유를 먹인다.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한 새끼들은 성장이 더뎌지고 자연스레 자매간의 서열에서 아랫층에 위치하게 된다. 엄지실장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이유도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들은 그런 걱정은 크게 안해도 된다. 생존왕이나 다름없는 친실장은 봄이 되자마자 몸에 좋은 약초와 벌레들, 그리고 풍부한 음식쓰레기까지 잔뜩 먹어서 겨우내 야윈 몸을 다시 보충시켰고 그 덕에 다른 임신한 들실장들과는 달리 모유의 양이 충분히 넘쳤다. 이윽고 친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으려는 장녀를 가볍게 떼어내고 삼녀, 사녀, 오녀 순으로 모유를 줬다.
‘레에에? 레찌! 레츄!!! 레에에엥!!!’
그러나 엄지에게는 모유가 제공되지 않는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엄지는 친이 실장복을 다시 내려 가슴을 덮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울어댔지만 친은 신경쓰지 않았다. 비록 이 친은 다른 들실장들과는 다르게 엄지를 혐오하며 박대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지는 엄지다. 자로 대해주긴 하지만 자실장과는 분명 차이를 둬야한다. 엄지한테 줄 모유가 있으면 자실장들한테 한 모금이라도 더 주는게 나은 것이다.
‘레에? 레츗! 레챱레챱!!’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친은 엄지가 자신의 몸에 흘러내린 모유를 핥는 정도는 봐줬다. 엄지에겐 과분한 대접이지만 어차피 흘러내린 모유는 자실장들이 안 먹고 엄지가 핥는 것은 나름 청결에도 도움되니까. 엄지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친의 모유를 걸신들린 듯이 핥아대며 감사를 표했다.
‘데스… 이제 우지짱들에게 밥을 줄 때인 데스. 데스으읏..!’
‘레후? 레훗! 레후레후웅~’
구더기에게는 젖 대신 다른 양분이 풍부한 물질이 제공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녹색의 운치였다. 운치굴 옆에 있는 구더기 전용 그릇에다가 푸짐하게 싼 운치는 지독한 냄새를 풍겼지만 코를 막은 자들과 달리 구더기들은 지독함을 느끼지 못하고 맛있게 운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 더러운 모습을 보면서 엄지를 제외한 자들은 저실장들에게 느끼던 일말의 자매애마저 지워버렸다.
식사시간 뒤에는 자들의 자유시간이지만 사실상 낮잠시간. 실장석들은 잠을 많이 잔다. 특히 어린 실장석들은 성장을 위해서 더욱 많이 잔다. 게다가 태어나자마자 친실장의 집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자들은 피로가 가득 쌓여 밥을 다 먹자마자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다. 친은 그렇게 잠든 자들을 하나씩 안아들어 침대로 데려다가 뉘였다. 침대라고 해봤자 두꺼운 수건들을 깔아놓은 것 뿐이지만 이정도만 되어도 들실장들 사이에선 세레브 침대나 다름없다.
‘코츄우… 츄우우…’
‘레츄우우…’
‘레후우웅…’
‘오로롱… 너무 귀여운 자들인 데스우… 세상의 보배인 데스…’
새근새근 자는 자들을 보며 친실장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작년 봄에 임신했을 때 친실장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의 무서움을 들려주는 태교를 했다가 모든 자들이 사산된 경우가 있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친실장은 그 해 내내 임신을 하려들어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올해 봄에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다시는 자를 잃기 싫었던 친실장은 켕기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전에 한 개념태교가 아닌 일반적인 실장석의 태교를 하였다. 그렇다. 스시와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를 노래하는 그 태교 말이다. 개념실장인 친실장답지 않은 태교였으나 이미 한번 개념태교를 시도했다가 자들을 몽땅 잃은 친은 더 이상 그 따위 태교는 시도하지도, 시도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일반태교 끝에 낳은 자들이 바로 이 일곱마리의 자들이다.
‘좀 걱정스러운 태교였지만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자들이 나와준 데스우. 정말 와따시는 운이 좋은 실장인 데스.’
친실장은 엄지를 껴안고 자는 삼녀를 바라보면서 살짝 감동했다. 보통의 들자실장들은 갓 태어나도 여동생인 엄지를 무시하고 놀려댄다. 그러나 친이 낳은 이 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엄지라도 이렇게 아껴줄만큼 착한 자들인 것이다. 게다가 분충성을 보이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라기보단 유일한 분충이 운좋게 솎아내진 것이지만). 친은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더욱 자들을 사랑스럽게 보았다.
이 자들은 친이 갓 성체가 되어서 아직 뭘 모르던 시절에 처음 낳은 자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때의 자들은 그야말로 분충들 중에서도 상분충들이었다. 툭하면 보존식을 훔치려들고 자매들을 괴롭히고 어미한테 반항하고 밥투정을 부리고 심심하면 빵콘을 해댔다. 그런 쓰레기들을 겨우내 월동용 양분으로 삼으면서 친은 새로 태어났다. 새로운 해가 시작됬을 때부터 친은 몸과 마음을 피로 씻은 상태로 개념실장의 길을 걷게 되었다. 깨달음은 항상 고통 뒤에 따라오는 것이었다.
‘데에… 슬슬 졸린 데스으… 그나저나 내일이… 걱정인 데스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친실장 역시 출산 후유증인 피로로 인해 벽에 기댄 채 곯아떨어졌다. 이때 친실장이 곤히 잠들지 않았더라면 위석의 기억과 꿈을 통해서 언어능력을 급속도로 발달시키는 중이던 잠든 자실장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 잠꼬대를 또렷히 들었을 것이다.
‘테에… 츄우… 콘페..이토… 스시… 스.. 테이크… 테츄… …..행복? 테츄우우…’
엄지를 껴안은 채 쿨쿨 자는 삼녀의 잠꼬대였다.
친실장은 오늘도 주먹을 불끈 쥐며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동시에 보존식도 모으려면 초여름부터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니까. 허나 친실장은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만은 언제나 가벼웠다.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나는 사랑스러운 어린 자들이 갓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장아장 걸어나와 봉투를 가득 채우고 온 친실장을 환영했기 때문이다. 자들만 보면 없던 힘도 쑥쑥 솟아났다.
‘데… 어쩌면 행복이란게 있을지도 모르는 데스...’
친실장은 그렇게 나지막히 중얼거리면서 집을 에워싸고 있는 덤불에서 벗어나 길을 걸어나갔다. 허나 공원으로 나오자마자 방금 전까지 중얼거렸던 행복에 대한 희망은 다시금 씁쓸하게도 부스러졌다.
덤불 안에만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아서 잊을 수 있지만 탁 트인 공원 길가에서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인간들의 도시는 언제 봐도 위석이 쓰릴만큼 부러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있는 건물, 골목에서 풍겨나오는 먹음직스러운 향기, 깨끗하고 단정한 환경 등등 도시의 모든 요소들이 실장석인 자신의 삶의 비참함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매일 밥을 가지러 가면서 인간들의 도시풍경을 볼 때마다 친실장의 마음 속에서 불만과 억울함이 용솟음쳤다.
‘뭐가 행복인 데스. 닝겐상들이 사는 곳을 보고도 행복을 노래하는 동족들도, 잠시 행복을 꿈꿨던 와타시도 죄다 멍청한 실장석인 데스. 행복을 꿈꾸면 뭐하는 데스. 행복하려고 매일 노력하는건 와타시인데 정작 행복한 것은 닝겐상들인 데스. 세상은 정말 나쁜데스.’
친실장의 생각은 인간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의 소리였지만 실장석 기준에서는 꽤나 논리적인 말이었다. 어쩌면 동정심 많은 애호파가 들었을 때 반쯤 동의할 정도의 설득력이 있는 의견이기도 했다. 허나 듣는 이 하나 없는 이 생각은 그저 친실장 머리 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닝겐상들이 우마우마들을 배불리 먹을 때 와타시들은 오늘하루 굶지 않기 위해서 남겨진 쓰레기더미를 뒤져야하는 데스. 닝겐상들이 따뜻하고 단단한 돌집 마을에서 잘 때 와타시들은 쉽사리 무너지는 상자집에서 추위에 떨며 잠에 겨우 드는데스. 닝겐상들이 아와아와한 목욕을 즐기고 깔끔한 도시에서 살 때 와타시들은 닝겐상들이 똥을 싸는 곳에서 자를 낳고 후미진 공원 구석에서 살아야하는 데스. 와타시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닝겐상들처럼 살 수 없는 데스…’
친실장의 이런 불만은 공원에 사는 다른 비참한 신세의 동족들을 보면 볼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방금 전만 해도 인간들의 도시로부터 시선을 내리자 초라한 독라 자실장이 신문지를 길바닥에 깐 채 바들바들 떨면서 자고 있는걸 봐가지고 친은 기분을 잡쳤다.
친실장과는 다르게 한심한 동족들은 위기를 알지도,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바쁘게 살아가도 힘든 와중에 최대한 게으르게 빌붙어가면서 살려들고 모두가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에 서로를 독라로 만들거나 잡아먹는다. 그런 동족들은 친실장에게 있어 혐오대상이었다. 물론 혐오를 해봤자 자신도 실장석에 불과하단 것을 친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실은 친실장의 위석을 더욱 세게 강타하곤 했다.
친이 자고 있던 독라를 뒤로 하자마자 어느새 친실장 등 뒤에서 테챠아아앗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허나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진 친실장은 고개를 돌리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저 독라 자실장은 배고픔에 잠에서 깬 다른 독라 실장석한테 산 채로 잡아먹혔을 것이다. 친실장은 그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절대로 사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자들이 저 독라같은 비참하고 덧없는 삶을 살게 하는 일만큼은 있어선 안됐다.
‘뎃 아닌데스! 와타시는 지금 욕심많은 닝겐상이나 멍청한 동족들 따위에 투정부리면서 신경쓸 때가 아닌데샷! 지금은 사랑스러운 와타시의 자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데스!’
그렇게 친실장은 슬픔에 잠겨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현재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몰두한다는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 의지가 강한 성격만 아니었으면 친실장은 이미 스스로 위석을 자괴시키고도 남을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희귀한 실장석이었다.
하지만 맨정신으로만 버티던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지금은 사랑스러운 자들이라는 목표가 있다. 이전의 가짜 자들과는 다르게 분충성이라곤 조금도 없고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으로만 가득 채워진 자신의 진짜 자들. 혼자였으면 당장 무너져도 상관없지만 자신이 무너지면 자들은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쓸려가버린다. 자들을 위해서라도 친실장은 현실에 굴복해서는 안됐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보란듯이 살아가주는 데스! 똥 같은 현실은 와타시의 운치나 처먹는 데샤앗!’
이라고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크게 외치면서 친실장은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새벽 시간대의 쓰레기장은 다행히 동족도 인간도 별로 없었다. 그저 아침부터 조깅하는 인간 하나가 눈길 한 번조차 주지 않고 지나갔고 자신처럼 노하우를 갖춘 다른 실장석 두세마리가 허겁지겁 밥을 쓸어담아 떠났을 뿐. 친실장은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는 찢어진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다가가서 먹을만한 건더기들을 주워다가 들고온 비닐봉지에다가 담았다.
‘오늘은 제법 우마우마한 것들이 많은 듯한 데수웅’
친실장에게는 기쁘게도 쓰레기 봉투에는 각종 먹음직스러운 음식물들이 가득했다. 아마 주말이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리라.
살과 튀김옷이 제법 많이 붙은 치킨조각, 토막난 꽁치조림 덩어리, 배추 겉잎과 무 꼭다리, 벌레먹은 고구마, 쉬어버린 밥, 곰팡이 핀 식빵 등등을 부지런히 주워담으면서도 친실장은 주변경계를 잊지 않았다. 언제 공원관리인이나 할 짓없는 백수 학대파가 나타날 지 모르는 일이니까. 어쩌면 굶주린 독라가 뒤에서 습격할 수도 있고.
‘테챠아아앗!!! 와타치는 아직 살아있는 테챠앗!!!’
그러나 놀랍게도 굶주린 독라는 친실장 뒤가 아니라 앞에서 나타났다. 그것도 방금까지 뒤지고 있던 쓰레기봉투 안에서 말이다. 친실장은 잠깐 놀라서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느닷없는 독라 자실장의 정체에 대해 이해하였다.
‘데… 식용실장인데스…’
학대파나 몇몇 일반인들은 실장석의 고기를 먹기도 한다. 물론 들실장을 먹는 인간은 없지만 식용으로 따로 키운 실장석은 나름대로 맛도 좋고 먹는 재미도 있는 식재료다. 그러나 간혹 호기심에 샀다가 입맛에 맞지 않거나 비위가 상해서, 혹은 그냥 배가 불러서 산 식용실장을 버리는 이들도 있다. 지금 눈 앞에 나타나서 쌕쌕거리며 숨을 쉬는 자실장이 아마 그런 사례의 수혜자일 것이다. 식용실장이라는 절망적인 운명의 태생으로서 나름 굉장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테에에… 겨우 산 테치이… 오바상이 구해준 테치? 고마운 테츄우…..? 테엣? 오바상, 왜 아타치를 그런 눈으로 보는 테… 치이..?’
허나 이 자실장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뜬금없는 등장에 놀랐지만 그래도 실장석은 실장석. 동족을 먹는 생물인 실장석이다. 비록 이 친실장은 식용실장을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다른 실장석이라면 먹어본 적이 제법 있었다. 한때는 자신의 자들도 먹은 적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눈 앞에서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기울이는 이건 식용실장이다. 손질도 잘 되어있고 운치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는, 들실장 따위보다 훨씬 맛있을게 분명한 식재료. 그렇기에 친실장에게는 이 자실장을 딱히 안 먹을 이유가 없었고 생존의 베테랑인 친실장에게는 눈앞에 나타난 이 무력하고 맛좋은 “고기”를 놔줄 생각 역시 없었다.
‘이리 가까이 오는 데스. 오바상이 쓰담쓰담을 해주는데스.’
물론 거짓말이다. 반쯤은 진실이지만.
‘테에? 정말인테치? 텟츄웅~ 쓰담쓰담 좋은테치. 마마도 안 해준 쓰담쓰담인 테츄우…’
허나 출산석한테서 태어나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받지 못한 자실장에게는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판단할 지능도 없었고 설령 판단할 지능이 있다 했더라도 애정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자실장이 이 친실장한테 다가가게 했을 것이다.
‘텟츄우웅~ 쓰담쓰담 너무 좋은테츄우… 테.. 오바상… 좀.. 답…답한 테…츄우… 텍..! 숨이… 마..ㄱ!’
친실장은 그렇게 자실장에게 실생 최후의 쓰담쓰담을 해줌과 동시에 목을 졸라 조용히 교살했다. 자실장이 비명을 지르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그리고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렇게 해준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인간에게 먹힐 운명에서 벗어난 식용자실장은 실장석에게 먹힌다는 식의 그닥 차이점 없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식용실장은 결국 누군가에겐 식용이 될 운명이다. 그것이 인간에게든, 길고양에게든, 아니면 다른 실장석에게든. 참으로 식용실장다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봉투를 채워 돌아가면서 친실장은 다시 한 번 절망적인 현실을 느꼈다. 아까 전에 자신이 죽인 자실장도 결국은 자신과 같은 실장석이다. 인간들 마음대로 다뤄져 행복이라고는 조금도 누리지 못할 운명의 실장석. 더군다나 적어도 인간한테 먹힐 걱정만은 없는 들실장들과는 다르게 이 자실장은 인간한테 먹히기 위해 만들어졌던 실장석이다. 현실은 실장석의 사정 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한 결과다. 같은 실장석조차 다른 실장석의 사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으니까.
‘조금은 미안한 데스우…’
친실장은 마음 속에서 살짝 연민의 감정이 올라오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 도착한골판집 안에서 토타타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 마마가 온 테치!’
‘마마 온 테츄?’
‘마마 보고싶었던 테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친실장이 느낄락말락했던 싸구려 연민 따위는 여름철 눈 녹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렇게 친실장은 골판집 문을 활짝 열고 웃으면서 말했다.
‘마마가 온 데스~ 자들은 어서 밥 먹을 준비하는 데스~ 마마가 밥을 주는데스~’
자들을 보면 슬픈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친실장은 손에 든 돌로 자신이 잡은 식용자실장의 머리통을 형체를 못 알아볼만큼 거침없이 으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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