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피혁



들실장은 다른 생물보다 서로에게 가혹한 편이다. 물론 굳이 서로에 대해서만 흉악하게 군다기보다는,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 세상에 태어난지라 반반이나마 승률을 가져갈 수 있는 상대가 동족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적어도 유튜브에서 전문가라는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소름이 끼친다며 빗발치는 민원에 공원을 이잡듯이 뒤지던 중, 마침내 괴소문의 주인공을 만났을 때. 나는 과연 이 녀석들에게 동족에 대한 무서운 악감정이 정말로 없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동족을 기워입은 녀석은 무엇이 문제냐는 것처럼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찢어지는 실장복만으로는 소용이 없는데스. 가죽이 훨씬 나은데스.]

"가죽이어야만 하냐고 물은 건, 그걸 보고 징그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야."

[지난번 겨울엔 이렇게 살아남았던데스. 닌겐상들이 이것을 불편해하는데스?]

대단히 당황한 목소리는 일견 뻔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애써 나름대로의 어설픈 바느질을 이어가던 녀석은 손을 찔려 데각 소리를 내고 뒹굴었다.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바늘은 이제보니 작은 낚시바늘을 물고 굽혀서 만든 것이었다. 덕분에 입가와 뭉툭한 손엔 희미한 흉터가 가득했다. 녀석은 내 호기심어린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즉사를 면했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하는 듯했다.

[닌겐상들은 실장을 싫어하니, 몇 놈쯤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스. 이녀석들은 닌겐상들 구역에서 쓰레기를 헤집고 봉투를 찢어놓는 위험한 녀석들이었던데스.]

분충이라는 표현은 실장석의 사회에서 어미가 정해주는 규칙과 연관된다. 다 큰 실장이 다른 성체에게 인간의 것을 뒤지니 분충이라 했다면, 그것은 보스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녀석은 분충이라 표현하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했다. 인간의 것을 건드리다 구제의 손길을 불러오면, 본인에게마저 불똥이 튄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력구제를 하겠다는 발상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실장 대 실장이라면 승률이 아무리 높아본들 절반 언저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가만히 저들이 불러올 슬픈 일을 당해 죽는 것보다는 나은데스. 그리고 죽이면 위험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가죽이 남는데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걸 입고 눈에 띄지 않는 편이 네게 좋을 거야."


[ 밤에만 다니는데스? 아니면 산에 숨어사는데스?]

나는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녀석은 충분히 주의했을 것이다. 민원사항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녀석이 주로 목격된 장소는 으슥한 골목이나 등산로였고, 주 출몰 시간대는 해가 지고 나서 새벽까지였으니.

그러나 그런 곳에서 마주친다면 공포감은 배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애초에 사람의 영역이 아닌 곳은 도시에 없다. 보물인 바늘을 놈이 어디서 얻었을지 생각해보면, 발길 하나 닿지 않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놈은 떠돌다 다시 행인을 마주칠테고, '시청은 흉물이 돌아다니는데 무엇을 하느냐'는 고성이 민원센터에서부터 시작되어 주무관을 거치고 맨 밑바닥에 있는 나같은 사회복무요원 동지들에게까지 전달될 것이다.

나는 대신 녀석에게 문구점에서 솜과 마분지를 한움큼 사서 건넸다. 놈은 이런 기적같은 날이 다 있느냐는 듯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가죽 무더기를 수거해가겠다고 말하자, 녀석은 바들거리며 난색을 표했다.

실장이 변명을 주워섬기는 것을 듣고있자니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산만한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슬슬 이해가 닿기는 했다.

아마도 그 실장가죽 코트는 생존주의자의 서러움과 역경이 함축된 삶의 자존심같은 것인 듯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어째서인지 선뜻 빼앗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부터 웬만하면 그 흉물을 숨겨 놓으라는 조언에, 동족 가죽 수집가는 굴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겠다며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재로서든 비상식으로든 쓸모가 있긴 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 있지 않아 나의 미봉책은 구더기 똥자국만큼도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냥은 다시 시작되었고 민원에는 불이 붙었다. 사태의 원인을 깨달은 것은 어느 초등학교 앞을 지나던 와중이었는데, 하수도 구멍 안에 엉망으로 밟히고 찢긴 마분지 코트가 떨어져 있었다. 어설픈 낚싯줄 바느질로 마감된 것이 누구의 솜씨인지 알 만도 했다.

목격담에 의하면 정수리에 멍이 새겨지고 한쪽 눈이 사시가 되어버렸다 했다. 아이들에게 호된 일을 당한 모양인 실장은, 이제 더 표독하게 시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에 비하면 뒷처리마저도 엉망이었다. 아마도 피와 고기와 뼈까지 깔끔하게 소비했을 과거와는 다르게, 잃어버린 방한재를 어떻게든 확보하겠다는 일념에 휩싸였을 녀석은 길거리에 물어뜯기거나 머리가 으깨진 동족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다.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실장석들을 보고 나 또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녀석을 찾아냈다. 그러나 녀석이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목격하고 형용하기 힘든 기분에 젖었다.

어미에게 먼 길 너머에 별사탕이 있다고 속여, 지쳐 돌아왔을때를 노려 잡아먹는 자실장들도 보았다. 우연히 맛본 송사리에 군침을 질질 흘리며 자로 어설픈 낚시를 시도하는 어미도 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유별났다. 비웃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녀석은 슬퍼하고 있었다. 폐목재 더미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강판의 못을, 동족 가죽과 근육 틈에 끼워넣고 들추어 벗기면서.

녀석은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비애를 느끼는 듯했다. 그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자신을 원망하는 듯했다. 저토록 온힘을 다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싫어하면서도, 기민하게 동족을 해체하는 동작은 멈추질 않는다. 

[살아야 하니까 말인데스.]

"그러니?"

[나는 요령이 좋은 것 뿐인데스.]

석유난방 이전까지 월동은 사람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재주가 있은들 들실장이 온전한 상태로 내년 봄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싸워라도 볼 기회를 이런 식으로 박탈당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성정을 배반해서라도 생존을 꿈꾸고 있었기에 더욱 더.

[너희는 살기 위해 무엇을 하는데스. 나를 치우는 것이 사는데 필요한 일인데스? 내가 죽어야만 너희는 안전한 겨울을 날 수 있는데스?]

"...그런 건 아니지. 우린 네 가죽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살육의 업을 처벌받는 것이라면 차라리 납득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기가 싫다는 이유로, 오직 아름다운 것만 공원에 남겨두고 싶다는 이유로 이승에서 퇴거조치를 당한다면. 

[그럼 역겨운 것은 너희가 아닌데스.]

들실장의 입에서 사람을 비꼬는 말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울화통이 흔들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방금의 것은 이상하게도 한숨만이 나올 뿐 몽둥이 든 손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주의자가 문명인에게 건네는 순수한 의문이었으니까. 나는 놈의 말에 어느 정도의 일리가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누리는 것보다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동시에 없던 일인 셈치고 녀석의 일을 넘어가줄 수도 없었다.

들실장 수십마리분의 죽음은 녀석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 문제의 가죽 코트가 수거봉지에 담기자, 풀숲에 숨어 오들거리며 바라보던 다른 실장들이 아쉬운듯 돌아선다. 사냥꾼의 모피가 탐이 났던 모양이다.

무용하게 휘청이는 봉투와 따라서 흔들리는 저들의 시선 속 욕망. 목적잃고 탁아당한 죽음들을 손에 든 채로 나는 소각장으로 향했다. 사람에게서 온기를 얻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동족에게서 방한재를 구하려 했던 녀석은, 이제 현대과학이 낳은 궁극의 방한재인 두꺼운 비닐에 감싸여 더없이 따뜻한 화석연료의 불구덩이로 향하고 있다.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아이러니 덕분에 이런 상황이 더 싫어진다. 

재난 문자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오늘 밤부터 영하로 떨어질테니 농사를 짓든 뭘 하든 대비하라는 예보다.

봄과 만나길 고대하던 녀석이 만나지 못한 한겨울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