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웃음 (PigFe)




" 어서오십시오. "

종업원의 무미건조한 인사를 뒤로 한 채 ,
서점 안 쪽 취업 관련 도서를 진열해 놓은 코너로 향했다.
일자리에 관련된 각종 잡지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이나 시험에 관한 문제집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내가 고른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얇아 보이는,
그리고 진한 녹색인 표지때문에 다른 책보다 눈에 띄는 책이었다.

' 환경부 9급 실장석 구제원 '

난 아랫입을 다물었다. 이런 더럽고 힘든 일자리도 경쟁해야 한다는 슬픈 현실보다 , 도축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잠깐 스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식용 실장석을 도축하는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일터 - 그곳은 녹붉은 얼룩이 가득했고 , 어두웠고 , 추웠으며 , 날카로운 연장들이 바닥에 긁히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일터 속에서도 아버지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가족을 위해 언제나 즐거운 일을 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나는 곧바로 책을 사 집으로 돌아왔다.
책 맨 앞장에는 실장석 구제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 적혀 있었다. 필기 시험을 거치고 , 기초적인 체력 측정 , 그리고 실장석 구제원이라는 업무에 맞게 몇가지의 테스트를 통한 비위 측정에서 통과해야 실장석 구제원이 될 수 있었다.

난 5 페이지부터 나와있는 필기 시험 이론을 조금 읽어봤다.

실장석의 장기들의 이름 , 부위별 근육의 명칭 , 성체실장과 자실장의 구분법. 모두 아버지가 어깨너머로 가르쳐주신 내용들이다.

아버지는 내가 이런 일자리를 갖기를 바라셨을까. 아니면 이런 일자리라도 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미리 내다보셨던 것일까.

나는 펜을 들어 문제를 풀어갔다. 문제를 풀 때마다 아버지의 일터에서 사지가 잘리고, 산채로 데쳐지고 묶여 이동하는 실장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썩 기분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문제의 답을 찾는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몇달 후 , 나는 필기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은 컴퓨터로 진행됐고, 결과는 바로 화면에 나타났다.
100점 만점중 92점. 꽤 고득점이었지만 예상치 못한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 , 아버지께 소식을 전해드릴까, 하다 그만두었다. 아직 최종적인 합격이 보장된것도 아니고 , 무엇보다 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한다는걸 알게된다면 아버지가 슬퍼하실 것 같았다.

체력 측정까지 하루. 나는 운동을 마치고 전날 하루쯤은 몸에 보양이 될 만한 음식을 먹는것도 괜찮겠다 싶어 주변 식당을 서성였다.

실장석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보인다. 동시에 , 아버지가 언젠가 실장석은 보기엔 좋지 않아도 탕으로 먹는게 제일 몸에 좋고 탕용 고기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하신게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식당에 들어가 실장석탕을 주문했다. 그릇 안에 들어가 허리를 중심으로 두 도막 난 실장석은 애처롭게 나를 바라봤다.

"테에... 테에에..."

테에- 하고 우는걸 보니 아직 다 크지 않은 자실장이다. 하긴 성체는 이 그릇 안에 들어가지 않겠지. 숫가락으로 자실장의 다리를 끊어낸다. 머리는 자꾸 위협적인 소리를 내서 젓가락으로 눌러 국물에 푹 담궈버렸다. 거품이 좀 올라오지만 대신 시끄럽지는 않다.

국물 색이 완전히 녹붉은 빛으로 탁해졌을때 쯤, 수저를 내려놓고 식당을 나왔다. 사지가 끊어진 자실장이 담긴 그릇을 아주머니가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덕분에 체력 측정은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거 같았다.

체력 측정은 생각외로 간단했다. 혈압 , 키와 몸무게, 시력과 청력을 재고 혈액검사를 마친 후 가벼운 근력과 지구력 정도를 측정했다. 조건이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은 모양이다.

체력 측정이 끝나고 남은건 비위 측정이었다. 비위라는건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법으로 측정하는지 나름 상상해보며 나는 자신의 순번을 기다렸다. 이윽고 , 내 이름이 호명되자 "해부실" 이라고 써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배는 좀 나왔지만 팔이 굵고 어깨가 벌어져 힘 좀 깨나 쓸 거 같은 중년 남자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 철웅 씨 맞으시죠? 잠시만 여기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

남자는 안쪽 창고로 들어가 잠시 후에 다시 나왔다. 남자의 손엔 자실장 한마리가 들어있는 유리병과 위생장갑, 앞치마, 작은 칼이 올라와 있었다.

" 여기 위생장갑과 앞치마를 착용해 주세요. "

남자는 유리병을 엎어 자실장을 꺼냈다. 자실장은 씩씩거리며 나에게 소리질렀다. 분명 좋은 말은 아니겠지.

" 여기 칼로 , 오른쪽 어깨죽지를 잘라주세요. "

남자의 말에 따라 망설임없이 칼로 어깨를 잘라냈다. 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흉내를 내어 봤는데 생각보다 잘 잘려서 놀랐다. 우득 하며 잘린 자신의 어깨를 보고 자실장도 많이 놀란듯 했다.

남은 한 팔로 나에게 변을 던지며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변이 앞치마에 튀어 얼룩졌다. 불쾌했다. 그러건 말건, 남자는 노트에 무언가를 작성하며 ,

" 좋습니다. 그럼 이제 머리를 잘라내 주세요. " 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망설임없이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들어서 잘라냈다. 아버지가 머리를 자르는건 본 적 없었다. 그냥 목을 드러내고 , 잘랐다. 마찬가지로 우득 하고 잘려나갔다. 녹붉은 피가 튀어 오른쪽 어깨에 묻었다. 이제 이정도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 망설임도 없으시고 , 별로 역겨워하시지도 않으시네요. 혹시, 평소에도 실장석을 조금 학대하시는 편인가요? "

" 아뇨. 멀쩡히 살아있는걸 직접 죽여보는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내 대답에 남자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 이내 노트를 보며 대답을 이어갔다.

" 좋습니다. 합격이에요. 축하드립니다. 다음주 오후 2시까지 여기로 다시 와주세요. 약간의 교육과 장비 지급 후 바로 업무를 시작할테니까요. "

다음주 , 나는 다시 이 건물을 찾아와 장비를 지급받고 교육을 받았다. 사실 교육이랄건 없었고 , 어디 위주로 돌아다니며 발견되는 들실장들은 모두 죽이고, 흔적은 깨끗히 정리하시오-라는 내용이었다. 지급받은 장비는 2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A타입과 B타입. A타입은 전통적인 장비들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들과 뒷처리용 청소도구. B타입은 진공청소기였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통 안에 모아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나는 B타입을 골랐다. 뒷처리가 훨씬 편해보였고 , 무엇보다 A타입은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의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손목에 찰 수 있는 린갈을 받았다. 시간 표시 기능도 있어 퇴근 후에도 시계처럼 쓰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근처 공원으로 배치되었다.
공원에는 풀 숲쪽만 바라봐도 꽤 많은 실장석들이 있었다. 나는 진공청소기로 실장석들을 빨아들였다. 린갈은 꺼두었다. 굳이 사람 말로 번역된 실장석들의 아우성을 스피커로 다시 들을 필요는 없었다.

위이잉-
" 데엣? 데엑!!! 뎃!" 하는 비명과 함께 실장석들은 통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몇몇 실장석은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 따위를 붙잡고 버티다 상체와 하체가 찢어져 " 데챠아아악!!!!!! " 하는 비명을 질러대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도 진공청소기는 깨끗하게 남은 잔여물들을 빨아들여 주었다. 가끔 통쪽에서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발로 텅 차서 넘어뜨린 후 다시 세웠다. 이음부 사이로 녹색 물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이렇게 하면 금세 조용해졌다.



5일 후 , 할당량을 마치고 장비를 반납받기 위해 오는 차량을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의 린갈을 잠시 켜 시간을 보니 8시다. 취업한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주말이 기대되기 시작하니 웃음이 나왔다.

몸에 혹시 묻은게 없나 확인하며 차를 기다리는데 , 발치에 실장석 한마리가 나타났다. 실장석은 사나운 표정으로 나에게 소리쳤다.

" 똥닌겐!!!! 와타시의 자들은 어디로 데려간 데수카!!!! 와타시의 자들은 오마에같은 똥닝겐의 처로 내주지 않는 데스! 빨리 내놓는 데샷!!!!!! "

아까 청소기로 빨아들인 자실장 몇마리의 어미였보다.
나는 무신경하게 발로 툭 걷어찼다. 실장석은 뒤로 2바퀴정도 데굴데굴 구르다 일어서서 삿대질을 하며 건방진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 뎃.. 데프프, 똥닝겐 , 와타시의 자들을 돌려주기 싫은 데수까? 와타시의 자가 귀여운건 이해하는 데스. 좋은데스. 와타시도 데려가 와타시타치의 노예로 사는걸 허락해주는 데스! "

나는 걸어가서 발로 다시 한번 걷어찼다. 이번엔 힘을 더 줬다. 역시 뒤로 몇바퀴 데굴데굴 굴렀다. 

" 데챠아아아아아아악!!!!!! 똥닝겐!!!!! 미친데샤야야야약!!!!! 고귀한 와타시의 섬섬옥수에 무슨짓인데샤!!!!!!!! "

피가 뚝 뚝 흐르는 팔을 붙잡고 나한테 소리쳤다. 장비 반납차가 멀리서 오는걸 보고 , 나는 실장석을 무시한채 차를 향해 걸아갔다.

" 데프픗 , 와타시의 카리스마에 무서워서 도망간 데스. 저런 무능력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데스? 모두 한심한데스.... "

난 주변에 떨어진 녹슨 쇠붙이를 쥐어 뒤돌아 내려쳤다. 쇠붙이엔 녹붉은 얼룩이 들었고 , 다리 한쪽이 완전히 으스러진 실장석은 한쪽 다리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 데샤아아아아아앗!!!! ㄸ..똥닝겐!!!!! 뭐하는 데스!!!!!! 진짜 죽고싶은데샤야!!!!!! 오마에도 , 오마에의 부모까지 전부 죽고싶은데샤!!!! "

다시 한번 더 세게 내려쳤다. 이번엔 팔이 으스러졌다. 

" 데샤야아어아아악!!!! 아픈..아픈데스!!!!! 그만하는데스!!! 와타시가 잘못한데스!!!! ㅈ... 자들도 모두 주는데스!!!!! 이제 그만 해 주는데스!!!! 부탁인데스!!!!!!! "

실장석이 더는 도망가지 않고 눈물을 뚝 뚝 흘려대며
나한테 빌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내려쳤다. 아무리 빌어봤자 , 아까 그 발언을 용서해줄 순 없었다.

5번인가 6번 정도를 내려 친 후 , 쇠를 땅에 집어던졌다. 텅, 터덩,하는 소리와 함께 빠루의 얼룩이 땅에 튀었다. 땅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룩과 천 조각만이 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손과 바지는 얼룩이 잔뜩 묻어있었고 , 안경에도 얼룩이 꽤 묻어 하늘이 녹색빛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분노가 죄악감과 뒤섞여 손이 떨렸지만,
이는 이내 쾌감으로 변해 희열감과 만족감을 쌓았다.
희열감과 만족감이 발부터 차올라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아, 아버지의 웃음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웃는 척 하신게 아니었다.

그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이런 분충을 죽이는 일이 너무도 즐거운 일임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장비를 반납하며 나는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 다음주부턴 A타입을 쓰려고 하는데 , 괜찮겠습니까? "



퇴근하는 내 얼굴엔 어느때보다 즐거운 웃음이 가득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