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포르쿠스)

 

“잠깐 실례하는 보쿠.”

친실장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운 좋게도 새 골판지를 찾아 막 새집을 지었는데, 운은 개뿔 재수 옴붙었다. 하필이면 “파란 것”이라니.

“죽일 생각 없으니까 빵콘하지 마는 보쿠. 지리고 싶으면 나가서 지리는 보쿠.”

집주인에게 하는 말이라기에는 지나친 태도지만, 그 말에 파들거리는 총구를 간신히 오므린 친실장에게는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겁기 그지없다. “파란 것”의 말이니까.

“더우니까 잠깐 쉬다가는 것일 뿐인 보쿠. 다시 말하는데, 운치 지릴 생각이면 나가서 구덩이 파고 거기다 지리는 보쿠. 운치 냄새 풍기면 뒤지는 보쿠.”
“주, 죽이지 않는 데스까?”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죽여주는 보쿠.”

그 차가운 목소리에 친실장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자실장 세 마리와 엄지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마마, 저 파란 것은 무엇인 테치카? 혹시 노예인 테치?”

장녀가 자기 딴에는 소근거린다고 했지만, 골판지 안에서는 다 들리는 목소리로 묻자 친실장은 기겁했다. 장녀가 무어라 더 말할 틈도 없이 무자비한 실장펀치가 장녀를 제재했다.

“주, 주, 죽고 싶은 데스까? 어디서 함부로 노예 같은 말을 입에 올리는 데스! 내, 내 손에 슬픈 일을 당하고 싶은 데스까?”

파란 것들은 모조리 미쳤다. 그녀는 공원의 실장석들이 파란 것들의 습격으로 모조리 박살날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생존해 이 공원으로 이주한 개체기에 잘 알고 있다. 노예도 싫어한다. 동족식도 싫어해서 구더기를 먹는 것조차 경멸하고 증오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파란 것들이 미쳤다는 걸 가장 잘 증명하는 건, 바로 놈들이 날 때부터 세레브하고 독보적으로 행복해야할 실장석들을, 그 존재 자체를 역겨워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 미친 것들은 너무나도 강하다. 비위를 맞추지 못한다면 머리통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금방이다. 장녀를 두들겨 패는 친실장의 손길은 바로 옆에 죽음의 신을 둔 공포로 인해 매섭기 그지 없었다.

“죄, 죄송한 테치! 그만 때리는 테치! 이야이야 한 건 싫은 테챠아아아아아!”
“작작하는 보쿠. 네가 자꾸 움직이니까 더워지는 보쿠.”

실창석의 메마른 목소리에 친실장은 바로 동작을 그만두었다. 실창석이 등 뒤에서 가위를 뽑는 모습에 완전히 얼어버린 친실장이 묵사발이 되어 파들파들 떠는 장녀를 도게자 자세로 내밀었지만, 실창석은 친실장을 무시한 채로 골판지 하우스 밖으로 걸어나갔다.

“떠, 떠난 데스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고개를 돌리던 친실장의 코끝에 무언가 금색 섬광 같은 것이 스쳤다. 비참한 수준의 동체시력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진 지조차 모르던 친실장은 코끝에서 줄줄 흐르는 피와, 일부가 사각형으로 뜯겨나가는 골판지 하우스 벽을 보고서야 무슨 일인지 파악했다.

“바람창을 낸 보쿠. 호들갑 떨지 마는 보쿠.”

친실장이 무어라 외치며 버둥거릴 것 같자 실창석은 바로 말을 자르고 들어와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말대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실창석이 허리에 맨 백에서 작은 물통을 꺼내 바닥에 뿌리자 후덥지근했던 골판지 하우스가 어느정도 선선해졌다. 파란 것이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자 자들은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기 시작했고, 실창석 역시 가위를 뽑아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도록 배 위에 올린 채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오로지 공포에 질린 친실장만이 핏발 선 눈으로 부들부들 떨며 실창석을 바라볼 뿐이다.

“후, 잘 쉰 보쿠.”

실창석이 기지개를 편 것은 긴 여름 해가 진 밤이 되어서다. 친실장은 그 사이 몇 배는 늙어버린 듯한 얼굴로 축 늘어져 버렸다. 이처럼 길고도 끔찍한 시간은 파란 것들의 대규모 습격 사태에서 도망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다못해 운치 냄새로 파란 것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운치조차 누지 못하고 지금껏 참고 있었다. 오늘은 그대로 공쳤다. 먹이를 얻으러 가야 하는데, 저 파란 것이 무서워서 제대로 나가지도 못했다. 이대로라면 보존식을 까먹어야 한다.

“뭐, 덕분에 잠도 잘 잤고, 집을 빌리긴 했으니, 보답을 해주는 보쿠.”

식량 관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하던 친실장은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드는 느낌이었다. 파란 것들은 미쳤고, 미친 놈들이 주는 선물은 절대로 멀쩡한 것이 아니리라는, 실장석 답지 않은 고도의 사고 과정을 통해 친실장은 실창석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고개를 도리질 치기 시작했다.

“괘, 괜찮은 데스. 잘 주무셨다니 그것만으로도 영광인 데스. 이제 그럼 어서 배웅해드리는 데스!”

그 의도가 훤히 들여다보이기에 실창석은 피식 웃었다. 등에 멘 가방을 벗으며 실창석은 입을 열었다.

“충고 몇 마디부터 하는 보쿠. 여름에는 낮에 자고 밤에 움직이는 보쿠. 함부로 낮에 움직이면 괜히 수분이나 잃고 보도블럭 위에서 고기전이 되는 보쿠.”
“데, 데에…”
“그리고 곧 큰 비가 올 보쿠. 길어봐야 일주일 내로. 어서 호우대책을 세워야 좋을 것인 보쿠. 우선 지붕에 비닐을 이고, 둥지 주변으로 배수로를 파서 공원 배수로까지 물길을 내는 보쿠.”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거리던 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런거 가르쳐줘도 되는 데스까? 파란 분들은 우리를 죽이는 게 천업 아닌데스?”

실창석은 웃었다. 비웃음. 그 웃음에 경멸이 뚝뚝 떨어지는 걸 친실장도 금새 알아차렸다.

“어차피 그래봐야 너희는 실장석인 보쿠. 여름 버텨봐야 매사가 죽음인 보쿠.”

그 말에 친실장은 울컥하는 걸 느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자신들은 파란 것들보다 훨씬 더 세레브한, 태생부터 선택받은 존재들인데. 하지만 친실장은 눈 앞의 존재가 실창석인걸 잊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고, 결국 그 울컥하던 걸 분대 속으로 꿀떡 삼켰다. 현명한 결정이었다. 실창석은 충고를 몇 마디 더했다. 하나같이 마마에게서도 배운 적 없는 요긴한 충고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물하나 더 주는 보쿠.”

실창석은 바닥에 놓았던 가위를 집어들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계적으로 고개만 주억거리던 친실장이 데-에하는 소리를 냈다.

“네 자들, 모두 지금 처리해주는 보쿠. 동족식 하는 녀석들도 오지 못하도록 소리도, 냄새도 안나게 깔끔히 끝내버리는 보쿠.”
“데에… 데, 데뎃?! 그게 무, 무, 무, 무슨 미친 소리인 데스까?!”

친실장이 황급히 자실장들을 부둥켜 안았다. 역시, 미친 놈들은 미친 놈이었다는 생각이 친실장의 머릿속을 벼락처럼 스쳤다. 그때까지도 퍼질러 누워있던 자들은 뜬금없이 어미가 자신들을 껴안자 깜짝 놀라 버둥거리고 있었다. 실창석은 그런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위로 자실장들을 하나 하나 가리켰다.

“뭐, 최소한 둘쯤은 처리해두는 게 좋은 보쿠.”

사랑스러운 자들을 바라보는 실창석의 두 눈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마치 흠결있는 물건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냉혹한 눈길. 실장석은 다시 한 번 운치가 마려오기 시작했다.

“우, 웃기지 마는 데스! 모두가 착하고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자들인 데스! 왜 이런 자들을 죽여야 하는 데스까?!”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한 보쿠.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보쿠. 저거, 몇 째인 보쿠?”

실창석은 가위로 차녀를 가리켰다. 다른 자매들보다 훨씬 우람하게 잘 자란 아이로, 친실장은 차녀에 대한 기대가 컸다. 몸집이 크고 강인한 만큼 공원의 먹이경쟁에도 쉽게 적응 할 수 있을 것이다.

“차, 차녀인 데스.”
“그거 보존식 처먹는 종자인 보쿠. 덩치 보면 모르겠는 보쿠?”
“데, 데에에에에엑?!”

친실장은 얼굴이 허옇게 변해 황급히 보존식을 보관하는 비닐봉지로 달려갔다. 말린 구더기나 과자 부스러기처럼 쉽게 상하지 않는 식량으로 이루어진 보존식들은 실장석의 생존이 걸려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귀중한 물건이다. 봉투를 열어본 친실장은 안심했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보존식의 양은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체크했던 때와 동일했다.

“데에… 보존식은 아무 이상없는-”
“아래쪽이나 확인하는 보쿠. 아래 있던 걸 처먹고 밑에 쓰레기 깔아둔 보쿠.”

친실장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보존식들을 헤집어보았다. 정말로, 정말로 부정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실창석의 말은 진짜였다. 보존식 아래에는 휴지와 자갈들이 잔뜩이고, 남은 보존식의 양은 원래 부피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차녀… 오마에가 감히….!”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친실장이 핏줄돋친 눈으로 차녀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은 차녀는 허겁지겁 자매들을 돌아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자매들은 재빨리 차녀의 눈을 외면하는 것으로 대신 대답했다.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차녀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테, 테… 텟츄우우웅!”
“데갸아아아악! 오마에 지금 당장 슬픈 일을-”

바로 차녀에게 달려들던 친실장의 얼굴을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강타했다. 실창석이 가위의 넓적한 면을 내밀어 제지한 것이다. 친실장이 쓰러지자 실창석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가위에 묻은 기름 떼를 닦아냈다.

“냄새나니까, 솎아내려면 내가 간 뒤에나 하는 보쿠. 그리고 마저 설명하는 보쿠. 저거, 장녀 맞는 보쿠?”

실창석이 장녀를 가리키자 차녀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지켜본 장녀는 벌벌 떨며 애교를 부리려 했다. 실창석은 그 모습을 재빨리 외면하고서 친실장을 바라보았다.

“마, 맞는 데스. 와타시의 자 중에서도 가장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인 데스. 소중하고도 소중한 자인 데스.”

얼굴에 난 가위자국을 문지르며 친실장이 답하자 실창석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 봐도 한심한 녀석들이다. 방금 전만 해도 공포에 질려 두들겨 패던 주제에 지금은 소중하고도 소중한 자란다.

“저거, 일가실각시키기 딱 좋은 녀석인 보쿠.”
“왜, 왜인데스까?”

친실장이 장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묻자 실창석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똑똑한 건 모르겠는데, 분충이고 눈치 더럽게 없는 건 확실한 보쿠. 방금 보쿠에게 노예라고 물은 거 기억 안나는 보쿠? 분명 어미가 겁에 질린 걸 뻔히 봤는데도 그딴 소리나 지껄이는 보쿠. 저런 녀석이 똑똑하기까지 하면 사단이 나는 보쿠. 미리 처리하는 걸 강력하게 추천하는 보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위 끝이 삼녀를 향했다.

“그리고 이 녀석. 삼녀.”
“데에, 삼녀말인 데스까? 그 아이는 공원에 살기에 지나치게 착한 아이일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가족에게 항상 먹이를 양보하는 마음씨 착한 아이인 데스.”
“착한 아이?”

실창석은 짧게 묻고서 구석에 박혀있던 엄지의 손을 잡고 끌고 왔다. 엄지의 얼굴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멍이 가득했다.

“너, 평소에 누가 가장 자주 때리는 보쿠?”

낯선 이의 모습에 두려워하던 엄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삼녀를 가리켰다. 삼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이건 착한 녀석이 아닌 보쿠. 그냥 약삭빠르고 비위 맞추기나 좋아하는 녀석일뿐.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자기보다 못한 자들에게 푸는 고약한 녀석이고. 이런 게 있으면, 저 장녀가 치는 사고가 몇 배는 심각해지는 보쿠. 미리 처리하는 것이 나은 보쿠. 어떡할 것인 보쿠. 그냥 놔두는 보쿠?”

친실장의 눈이 흔들렸다. 완연하고도 냉엄한 진실과, 자들에 대한 애정사이에서 친실장은 갈등하고 있다. 아니, 애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감정이다. 도리어 “자신의” 자들은 틀리지 않았다는, 비참하고 하잘것 없는 자존심에 가깝다. 실창석이 예고한 일가실각의 미래와 얼마되지도 않는 자존심, 그 사이에서 친실장은 결정을 내렸다.

“...말씀을 끝내셨다면 이만 떠나주시는 데스.”
“뜻대로 하는 보쿠.”

실창석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친실장에게 던졌다. 건빵에 들어가곤 하는 별사탕 봉지. 하지만 친실장은 집을 나서 사라지는 실창석의 등 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별사탕이 코앞에 있지만, 하나도 식욕이 돋지 않는다.





“올해 여름은 정말 풍족하게 보낸 데스.”

푸르른 초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친실장은 웃었다. 올 여름은 참으로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그 파란 것이 떠난 이후, 감히 보존식을 훔쳐 먹은 분충은 곧바로 새로 판 운치굴의 제 1호 노예가 되었지만, 장녀와 차녀(전 삼녀)는 어느덧 중실장이 되어 독립을 앞두고 있다. 엄지도 어느새 자실장으로 자라 삼녀 자리를 차지한 뒤다.

“오늘은 먹을 것도 많은 데스. 이대로라면 올해 월동은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데스.”

실창석은 자들을 미리 처리하라는 걸 제외한 실창석의 충고를 철저히 지켰다. 태풍과 홍수로 수많은 실장석들이 떠내려가 배수로가 막힐 지경까지 갔지만, 친실장은 고지대에 골판지 하우스를 지은 데다가 방수대책까지 철저히 해둔터라 별 피해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버틸 수 있었다. 다른 실장들이 어중간하게 열이 빠진 시간에 움직이려다 더위로 초주검이 된 것과 달리 아예 밤에 일어나 가로등 불빛을 길잡이 삼아 움직인 친실장은 경쟁자 없이 많은 먹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일도 살아가는 데스… 데, 데뎃?”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연 친실장은 그 자리에 멈췄다.

“오마에… 뭐가 희희낙낙하게 내일을 살아간다는 데스까?”
“보, 보스사마…? 이런 누추한 곳에 무슨 일로 오신 데스까?”

두건 하나를 따로 망토처럼 두른 실장이 집 한가운데서 이글거리는 눈길로 친실장을 노려보고 있다. 이 공원의 보스 실장, “망토”다. 그 옆에는 두건을 두 장씩 겹쳐 쓴 측근 실장이 버둥거리는 삼녀를 붙들고 있다. 좋은 일이 아니다.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슬며시 뒷걸음질치던 친실장은 등 뒤에 있던 무언가와 툭 부딪쳤다. 다른 측근 실장 둘이 험악한 얼굴로 친실장의 어깨를 붙들었다.

“...끌고오는 데스.”

망토가 일어나며 한 마디 던지자 측근 실장들은 바로 그 말에 따랐다. 하나는 삼녀를 붙든 채, 다른 둘은 친실장의 겨드랑이에 하나씩 손을 끼워둔 채로 망토의 뒤를 따랐다. 장녀와 차녀는 어디로 갔는가? 보스는 왜 이렇게 화가 났는가? 친실장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지 못한 채 벌벌 떨 수 밖에 없었다. 빵콘한 팬티에서 질질 새는 운치가 녹색 줄을 그리며 그 발자취를 남길 뿐이다.

“자, 먼저 물어보는 데스.”

이윽고 골판지 상자 셋을 이어 만든 망토의 집앞에 도착하자, 망토가 금방이라도 친실장의 멱을 따버릴 듯한 눈길로 돌아보았다.

“저것들, 오마에의 자가 맞는 데스까?”

망토의 집 안에서 측근 실장들이 둘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중실장을 하나씩 끼고 있다.

“데에… 저것들은 와따시의 자가 아닌…”

중실장들의 모습을 보고 자기 자가 아니라며 안심하려던 친실장이 그 자리에 멈췄다.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기분이 조잡한 신경계를 가득 채운다.

“마, 마마! 살려주는 테스!”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행복회로 때문이 아니다. “저것”이 자기 자일리 없기 때문이었다. 분홍색 어여쁜 사육실장복이었던 것에 억지로 중실장의 몸뚱아리를 집어넣어 이곳저곳이 터져있는 흉물. 그것이 자신의 자일리 없다.

“마마! 뭐하는 테스까! 빨리 와타시를 구하는 테스!”

망토는 팔짱을 끼고서 친실장을 붙든 측근들에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측근들은 익숙한 솜씨로 친실장의 무릎 뒤를 차 무릎 꿇렸다.

“답은 나온 데스. 오마에는 저 분충들을 기른 죄로 벌을 받는 데스. 죽일 생각 없으니 각오하는 데스.”
“보, 보스 사마! 잠깐만 기다리는 데스! 대체 무슨 일인 데스까?! 이유라도 알려주시는 데스!”

보스의 얼굴에 잠시 슬픈 빛이 돌았다. 하지만 그 빛은 금세 분노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망토는 저벅저벅 걸어와 주먹으로 친실장의 얼굴을 강타했다.

“데뵥!”
“와따시의 자는 정말로 착하고 영리한 아이였던 데스.”

였던. 망토는 과거형으로 말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친실장의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보스노릇 하느라 바빠 부모 답게 군적이 없어서 오늘만이라도 유모 대신 와따시가 돌보기로 한 데스.”

보스는 손가락으로 두 중실장 중 억지로 사육 자실장복을 껴입은 녀석, 장녀를 가리켰다.

“소풍 분위기라도 내본다고 이전에 구한 사육실장복을 입혀본 데스. 와따시의 실책이었던 데스. 잠깐 처리할 문제가 있어서 자리를 비웠더니…”

망토의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두줄기 선을 그렸다. 적록은 더이상 설명하는 대신 장녀를 가리켰다. 끝이다. 그것으로 설명은 끝났다.

“그럼 처벌 이전에 하고 싶은 말은 없는 데스까?”

일의 심각성, “처벌”의 두려움,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감이 친실장을 옥죄었다. 망토가 두른 바로 그 망토는 훨씬 덩치 크고 사나웠던 전대 보스의 것이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공원을 다스리던 전대를 순식간에 실각시킨 보스가 가할 처벌이 무엇일지 친실장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자, 잠깐! 기다리는 테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테스!”

차녀였다. 차녀가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친실장은 알 수 없는 섬찟함을 느꼈다. 저 입을 닥치게 해야 했다. 저 녀석이 입을 열면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라는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보스도 친실장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친실장이 삼녀보고 닥치라고 외치기 전, 보스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친실장의 아가리를 틀어막았다. 이빨이 부러지고,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 고통도 이제 차녀의 입에서 나올 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망토가 차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해보는 데스.”
“그, 그 자실장은 아무리봐도 사육실장이었던 테스! 사육분충들은 죽여도 상관없는 것 아닌 테스까?! 어쩔 수 없이 죽였던 테스! 그게 운명이었던 테스! 참작해주는 테스! 적어도 와따시는 그래서 죽인 테스! 사육 실장이라 죽인테스!”

제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마구잡이식 울부짖음. 하지만 차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동요한 것은 친실장만이 아니었다. 측근들 역시 눈에 띄게 술렁거리며 불안한 얼굴로 보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사육실장이라서 죽였다고 한 데스까?”

보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차녀에개 다시 물었다. 차녀는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처럼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테스! 사육실장은 죽어야 하는 테스! 그래서 죽인 테스! 정의의 심판인 테스!”

친실장의 눈은 텅 비어가기 시작했다. 보스는 한참 차녀를 바라보다 친실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와따시가 이 공원애 폭탄이 자라는 걸 두고 보고 있던 모양인 데스. 무슨 뜻인지 아는 데스?”

친실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망토는 측근들을 노려보았다.

“오마에들, 공원 실장들에게 룰을 전파하는게 지겨워진 데스까?”
“아, 아닌데스!”

측근들은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망토는 친실장 일가의 얼굴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삼녀, 차녀, 장녀, 그리고 친실장까지.

“만약 와따시의 자만 죽였다면 그건 와따시 개인의 문제인 데스. 하지만 저 분충은 사육실장이라서 죽였다고 한 데스. 만약 진짜 사육실장을 죽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데스까? 공원이 통째로 실각당한다는 말, 못 들어본 데스까?”

보스는 친실장의 아가리에서 주먹을 뽑아냈다.

“이놈들을 공원 광장으로 데려가는 데스. 놈들은 사적이 아니라 공적으로 처단되어야 하는 데스. “공개처벌”인 데스.”

공개처벌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친실장은 울부짖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울부짖으며 버둥거리던 친실장 일가를 단단히 붙든 채 측근들이 광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친실장의 머리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결국 파란 것이 옳았다고.

꿰엑꿰엑 소리치는 자들의 목소리이 친실장의 귀를 울렸다. 그 깊은 곳의 누군가는 다시 한 번 속삭였다.

결국 이 일을 피할 기회를 걷어찬 것은 자신이라고.

친실장은 비명을 질렀다.
다시 질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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