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챠~오네챠 어디있는테츄~!'
이름 모를 연못 주변에서 어린 자실장이 자신의 자매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자매들을 부르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그 자실장의 얼굴에는 가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박함이 아닌 즐거운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폴짝폴짝 낮은 돌조각 위에 올라가서 발뒤꿈치를 들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숨어있는 자신의 자매들을 찾아보는 그 자실장의 귀로 낮은 레후~ 하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간 자실장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풀을 손으로 걷어내자 어린 구더기를 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자실장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오네챠 찾은테치~.'
'태에에엥….'
'오네챠 찾은레후~.'
'구더기쨩은 술래가 아닌테치….'
들켜버린 자실장은 자신이 술래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는 구더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치프프프. 자매를 찾아낸 자실장은 해냈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른 오네챠들도 모두 와타시가 찾아내는테치~♪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주변에 숨어있을 다른 자매들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때.
'이리오란데스~밥 먹는데스~오늘은 버섯이 아주 아주 많은데스~.'
하루종일 온 산을 돌아다니며 식량을 모아온 친실장이 숨바꼭질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새끼들을 찾아왔다.
'하잇 테츄~.'
숨어있던 자실장들이 일제히 답하며 여기저기에서 뛰쳐나와 자신들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던 그 어린 자실장의 손을 잡고 친실장을 향해 모여들었다. 친실장은 그런 자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주며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장서는 친실장의 뒤로 한줄로 쫄래쫄래 따라가는 자실장들의 행렬. 무심코 고개를 돌린 자실장의 눈에 노을 지는 석양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쁜테치….'
그렇게 중얼거린 자실장의 말에 다른 자매들도 덩달아 그쪽을 향해 바라보며 맞장구치며 조잘 조잘거렸다. 앞장 서던 친실장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들과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림으로, 사진으로도 기록되지 않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도 아련한 어린 시절의 향수였다.
#. 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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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중에 과거의 향수에 빠졌던 친실장은 자신에게 던져진 푸드 조각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한쪽 시야만 보이는 애꾸눈에 실장푸드가 눈에 들어왔다. 실창석이 던져준 노동의 대가였다. 그중 일부가 옆에 있던 녹슨 그릇 속에 빠져 담겨있던 물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데…. 친실장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피투성이인 손으로 푸드를 집어 들어 간신히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쩝쩝…. 메말라버린 입술과 끈적한 침이 푸드를 억지로 억지로 씹어 조각으로 만들어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츄루룩. 온몸이 상처와 멍투성이. 친실장은 그릇을 집어 드는 것조차 힘들었는지 간신히 자세를 낮춰 끈적한 혓바닥으로 그릇에 담긴 물을 핥았다. 물을 먹음으로써 촉촉해진 혓바닥과 함께 해소되는 갈증. 보는 이마저 입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맛없게 밥을 받아먹은 친실장은 다시금 벽에 몸을 기대었다.
'오늘은 특별한 밥이 있는데스~.'
아아…그날이 정확히 언제였을까. 언제나처럼 자매들과 함께 하루 종일 뛰어놀다 돌아온 저녁. 친실장이 그날 먹을 버섯과 열매들 외에도 특별한 것을 내놓았다. 녹색 줄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하얀 꽃이었다. 마마, 이건 꽃인테치? 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친실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꽃은 아~주 아주 특별한 꽃인데스. 맛도 좋지만 이 꽃이 있었기에 자들이 여기 있는것인데스. 마마는 이 꽃을 먹다가 자들을 가지게 된 것인데스. 마마가 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꽃인데스.'
'테에…굉장한 꽃님인테치!'
'마마를 만나게 해준 고마운 꽃님 맛있는테치~.'
「마마….」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자 친실장은 서글픈 목소리로 이미 오래전에 죽고 없는 자신의 어미를 부르며 흐느꼈다. 기구한 삶. 산실장으로 태어나 영원히 대대손손 살아갈 것이라 여겼던 고향을 잃고 도시로 온 실향실장.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인간의 문명이 자신들에게 있어 크나큰 재앙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구제와 학대파의 습격에 다시금 산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던 친실장은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잃으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산.
「오네챠….」
이미 죽고 없는 자매들을 떠올려본다.
「시끄러운보쿠! 뭘 잘했다고 그렇게 우는보쿠!」
벌컥 문이 열리면서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 실창석이 성큼성큼 다가와 친실장의 뺨을 갈겼다. 하나밖에 남지 않는 눈에서 녹색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때 멈추지 않고 바로 갔어야만 했는데…. 산 밑에 있던 공동묘지를 지나던 것이 비극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 산소 어딘가에 방문객이 놓고 간 소주를 물로 착각하고 마신 것. 술에 취한 나머지 노래를 부르면서 비석에 투분을 하거나 산소 위에서 똥을 싸재끼는 것을 관리사무소에서 키우던 실창석들이 목격했다. 열심히 가위로 산소의 풀을 깎아가던 실창석들은 분노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노예로 부려먹었다.
「치프프.」
「…3녀.」
쇠창살로 가로막힌 건너편 방에서 자실장이 그런 친실장을 비웃고 있었다. 친실장이 낳은 새끼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자실장이었다. 물론, 친실장과 함께 노예로 전락한 신세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악을 했던 친실장과는 다르게 실창석에게 절대복종한 덕분에 옷을 돌려받고 친실장보다는 맛있는 밥을 제공받는다는 것. 3녀는 친실장이 자신을 버리고 홀로 도망 가려 했다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 그때부터는 친실장을 자신의 마마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친실장을 괴롭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꼴좋은테치. 똥벌레한테 어울리는 조치인테치.」
그렇게 말하며 특식으로 받은 치즈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
아침이 되면 다시금 노동이 시작된다. 묘지 확장을 위해 중장비들이 열심히 산을 깎아가는 소리가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면
식사를 마친 실창석들이 담당 직원의 인솔하에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때 개를 키웠던 나무판자집에서 전날의 고된 노동의 후유증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친실장과 3녀가 비몽사몽 한 눈으로 끌려 나왔다. 아침밥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고함과 발길질에 쫓겨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산소를 향해 걸었다.
「또 아침인데스…?」
친실장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신의 이 질긴 명줄을 저주했다. 사각사각. 실창석들이 열심히 묘지의 풀을 깎아갈 때 친실장과 3녀는 맨손으로 풀을 뽑았다. 이따금 풀에 베여 상처가 나 피가 흘렀음에도 실창석들은 봐주지 않았다. 텟…! 자기보다 큰 풀을 억지로 억지로 뽑아내려다 상처를 입은 3녀는 근처의 실창석을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꾹 다물고 풀을 뽑기 위해 아픔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실창석에게 아픔을 호소해봐야 돌아오는 건 그래서 어쩌라는보쿠? 라는 무관심과 매질이었다.
쪕쪕쪕쪕쪕.
그렇게 풀을 닦고 실창석들이 던져준 수건으로 비석을 깨끗이 닦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실창석들이 작업을 중단하고 모여들면 직원이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나누어준다. 감사한보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실창석들은 그렇게 점심을 먹는다. 아구 아구 아구. 땀 흘리며 노동을 하면서 먹는 밥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고기와 야채가 적절하게 섞여들어간 샌드위치가 실창석들의 뱃속으로 사라지면 직원은 우유와 비스킷을 가져와 나누어주었다.
「테에….」
그렇게 실창석들이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동안 친실장과 3녀는 무릎을 꿇은채 입맛을 다시며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다. 앞에 각자의 그릇이 놓여 있긴 했지만 음식이라곤 없다. 움켜쥐고 있는 굶주린 배에서 음식을 넣어라고 오동치지만 음식은 눈에 보이기만 할 뿐,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그렇게 디저트까지 먹은 후 빵빵해진 배를 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실창석들이 하나둘 바닥에 드러누워 불어오는 바람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날린다.
츄으읍….
한창 자랄 시기인 자실장. 3녀는 그런 실창석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실창석들은 그런 3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치려고 몸부림쳤던 친실장과 달리 3년은 무조건 복종했기 때문에 친실장에 비해선 대우가 좋았지만 그래봐야 실장석. 실창석들의 입장에선 친실장과 3녀 모두 평생 부려먹을 노예에 불과했다.
「이게 다 저 똥벌레 때문인테치.」
그런 3녀의 분노는 친실장에게 향한다. 이 똥벌레만 아니었다면. 이 똥벌레가 자신을 낳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없었을 텐데! 이 똥벌레가 인간에게 키워지는 사육실장이었다면…! 자신은 이렇게 배고파하지도, 아파할 이유도 없었을 텐데!
「왜 와타시를 낳은테챠!」
분에 못 이겨 조그만 발로 옆에 꿇어앉아 있던 친실장을 차며 저주한다. 친실장은 그저 맞고만 있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지칠 대로 지친 몸속의 위석이 깨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살아봐야 뭐 하는 생각. 하지만 위석은 친실장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퍽. 퍽. 3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친실장을 때려댔다. 한대 두 대 세대 네 대. 그렇게 때리다 금세 지쳐 나가떨어졌다. 죽여버리는테치…. 친실장과 달리 멀쩡한 두 눈에서 적녹색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점심은 잘 먹은다와~?」
등 뒤에서 인근 농장에서 키우는 실홍석이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바람을 쐬며 누워있던 실창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실홍석을 반겨준다. 그제야 한 실창석이 직원이 가져왔던 바구니를 뒤적이면서 자신들이 먹어치우고 남은 잔반 부스러기를 모아 친실장과 3녀의 앞에 놓인 그릇에 뿌렸다. 성체는 친실장은 커녕 자실장인 3녀의 배도 못채울 정도로 빈약한 양이다. 실망하는 3녀와 친실장을 뒤로한 채 실창석과 실홍석이 속닥속닥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일어나란 보쿠.」
일손이 모자라니 노예를 빌려달라는 실홍석의 부탁에 실창석은 흔쾌히 승낙했고 자리에서 일으켜세워진 친실장의 몸 주변으로 붉은 줄이 포박한다. 출발하는다와~. 일손이 하나 늘어난 것에 기쁜 실홍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친실장은 저항할 힘도 없이 또다시 터벅터벅 걸었다. 등 뒤에서 3녀가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얼마 없는 부스러기를 빨아먹었다.
「오마에도 빨리 가란보쿠!」
그런 3녀를 실창석이 집어 들어 실홍석 쪽으로 내던졌다. 테챠아아아!! 3녀는 팔이 부러졌는지 비명을 지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빨리 따라가라고 윽박지르는 실창석들에게 쫓겨 끌려가는 친실장의 뒤를 따라갔다.
「테에에엥─테에에에에에엥─.」
★☆★
"할머니~할아버지~."
"어이구 내 새끼~."
잘 닦아진 아스팔트 도로에나 어울릴만한 고급 승용차가 울퉁불퉁한 비포장길 위에 멈춰 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노부부의 모습에 뒷좌석에서 내린 어린 손자 소녀가 그들을 향해 달려가 품에 안겼다.
"여긴 여전하네요."
"허허, 늘 그렇지 뭐."
뒤따라 내린 아들 내외가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차나무와 그 밑에서 다수의 실홍석들이 열심히 나무를 가꾸면서 다른 농작물들을 함께 관리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이란다와~.」
이곳에서 친실장과 3녀가 하는 일은 공동묘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풀을 뽑는 것이 대부분. 하지만 이따금 실홍석들이 흘린 열매나 나무에 붙은 벌레를 몰래 먹어치움으로써 굶주린 배를 그나마 채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다. 한참을 일하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한 실홍석들이 모두 그늘에 모여앉아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친실장과 3녀는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3녀는 부러진 팔이 회복되지 않았기에 남은 팔 하나로 어떻게든 풀을 뽑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럴때마다 등 뒤에서 열심히 안 하면 일러바치는다와~. 라고 압박을 넣는 실홍석의 얄미운 목소리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오빠 같이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멀리 가면 안 된다-!"
걱정스러워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손자와 손녀는 편한 활동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여기저기를 달렸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이곳은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따분한 곳이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걱정 없이 뛰어다니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콘크리트 건물로 도배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이곳은 사방이 모두 녹색이었다.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그렇지 주변 경치도 제법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던 남매는 발걸음을 돌려 조부모가 가꾸는 차나무밭으로 왔다. 쉬고 있던 실홍석들이 남매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자 손녀가 좋다고 달려가 실홍석들을 일일이 껴안아주었고 그 옆에서 손자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의~살~던~고~향~은~♪"
「……?」
차나무밭 근처 참외농사를 짓던 곳에서 풀을 뽑던 친실장은 선명하게 들려오는 손자의 노랫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오빠의 노래에 여동생도 따라 부른다. 남매의 노래에 실홍석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리듬을 타면서 그들의 노래를 감상할 때 친실장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데엥…데에에엥…….」
「여기좀 보는테치! 똥벌레가 일을 안하는테치! 이 똥벌레 일안하는테치!」
일하는 척하면서 몰래 개미를 주워 먹던 3녀가 그런 친실장을 보고 소리쳤다.
「와-타시의 고향은….」
농장에서의 노동을 마친 친실장과 3녀는 다시금 묘지로 돌아왔다. 실창석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들을 저녁으로 때운 3녀는 곯아떨어졌고 친실장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벽에 기대어 밤하늘에 높이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농장에서 손자가 불렀던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가사가 전부 기억나지 않았지만 첫 부분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그 구절만 반복하고 있었다.
「데….」
뒷부분도 기억 안 나고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더 서러움에 사무치는 것을 느낀 친실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닫힌 눈 사이로 녹색 물방울이 세어나왔다.
★☆★
다음날도 변함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실창석들이 식사를 마치면 그제야 자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먹을 것이 주어진다. 소시지 찌꺼기를 입안으로 가져가 최대한 오래 씹으며 그 맛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잠시, 느긋한 식사시간은 사치. 입안으로 집어넣은 그 순간 바로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일터로 나갔다. 사각사각. 풀을 깎는 가위소리. 실창석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풀을 깎는 저 가위가 자신들의 몸을 조각 내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친실장과 3녀는 노동에 열심이었다. 확실하게 죽여준다면 진작에 반항하다 안식을 맞이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였다. 실창석들은 철저히 위석을 피해 가면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고문했다.
「…데?」
부지런하게 묘지의 풀을 뽑던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어느 무덤의 한 비석에 놓여 있는 하얀색 조화. 친실장은 풀을 뽑다 말고 그 꽃을 말없이 바라보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부스럭. 조화를 집어 든 친실장은 상처투성이의 손으로 조화를 만졌다. 인간이 만든 가짜 꽃이란 것을 친실장은 모른다. 코에 갖다대보지만 꽃향기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닮았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적 친실장이 가져왔던 그 특별한 꽃과 비슷한 모양이다. 친실장은 그 조화를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조장님! 조장님테치!」
그 모습을 본 3녀가 소리쳤다. 친실장을 감시하면서 일러바칠 껀덕지가 있으면 곧바로 일러바치는 3녀였다. 3녀의 외침에 실창석이 고개를 돌리자 3녀는 이번에도 잘 감시하라면서 맛있는 걸 줄 것이라는 희망 가득한 눈으로 실창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 똑바로 안 하면 또 괴로운보쿠.」
「테?」
평소라면 바로 다가와 친실장을 두드려팼을 실창석이었지만 지금이 워낙 바쁜 시기인데다 그날따라 귀찮았기에 딱 한번 경고로 넘어갔다. 그에 3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지만 실창석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풀을 깎았다. 3녀는 다시 친실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녀의 고자질을 들었는지 친실장은 다시 풀을 뽑고 있었다.
「테츄우우웃…!」
그 모습이 매우 얄미웠는지 3녀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지으며 친실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꼬르륵…. 배고픔. 3녀는 지독한 배고픔을 느끼며 자신의 홀쭉한 배를 만졌다. 배고픈테치….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따금 묘지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놓고 간 과자나 말린 오징어. 꼴깍.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지만 3녀는 그것을 먹는데 굉장히 큰 모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창석들 조차 건드리지 않는 신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최근 공원 관리소에서 묘주들을 상대로 관리 계약을 갱신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해 직원이나 실창석 가릴 것 없이 열심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친실장과 3녀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졌다.
「츄릅.」
고문에 공포와 배고픔에 대한 욕구가 3녀의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고통을 감수하고 배를 채울 것인가. 저녁을 기다리면서 참을 것인가.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고 혓바닥은 날름거렸다.
그때.
「테?」
친실장이 3녀가 보고 있는 무덤으로 가 비석 말린 오징어를 집어 들었다. 저 똥벌레 드디어 미친테치?! 3녀는 모험을 감수하고 먹느니 지금 저 친실장의 행동을 고자질하고 합법적인 보상을 받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친실장이 뜯어져 있던 오징어의 다리를 3녀에게 쭉 내미는 것이 아닌가.
「텟!」
실창석에게 고자질하려던 3녀가 멈칫했다. 저 똥벌레가 왠일인테치? 어째서인테치? 왜 와타시한테 주는 것인테치? 같이 죽자는 뜻인테치? 3녀는 뜻밖의 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저 똥벌레가 하는 짓을 말했는데 저 똥가위들이 아까처럼 말만 하고 그냥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테치?」
3녀는 사각사각하는 가위소리와 눈앞에서 오징어 다리를 내밀고 있는 친실장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모험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도 말하는테치? 그치만 그냥 넘어가면 지금 저 다리씨를 먹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테치. 어쩌면 좋은테치? 어쩌면 좋은테치! 침착하는테치! 와타시는 현명한 실장인테치. 이런 문제는 지혜롭게 해쳐나가는테치. 와타시는! 와타시는……!
3녀는 결단을 내렸다.
「다리씨를 먹고 일러바치면 되는테치!」
3녀는 잽싸게 친실장 쪽으로 달려가 내밀고 있는 오징어 다리를 베어 물었다. 질긴 오징어 다리를 씹는 것은 상당히 고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입안에서 쪽쪽 군침이 도는 오징어의 맛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쬽쬽쬽쬽. 그 작은 입으로 오징어의 다리를 빨면서 빨리 먹고 저 똥벌레가 닌겐상의 밥에 손댔다고 일러바쳐서 맛난 거 더 먹는테츙~♡ 라고 생각하는 3녀의 뒤로 조심스레 이동한 친실장은 근처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방문객들이 무덤의 꽃을 고정시키기 위해 주웠다가 남은 돌멩이었다. 사그락. 그 돌멩이를 등 뒤에 숨기고 조심스레 3녀의 뒤로 다가간 친실장이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3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맛있는테츄~뷁!」
오징어를 씹다 말고 혓바닥 씹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피가 터지며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함몰된 머리가 아예 양옆으로 갈라지며 3녀의 팔이 축 늘어지며 무너지는 모래성 마냥 처참하게 흘러내렸다. 짧은 단말마가 때맞춰 묘지를 지나가던 포크레인의 소리에 묻혔다. 긴장했던 가슴에서 막혔던 숨이 터져 나왔다. 흐웁…! 흐웁…! 친실장은 그렇게 마지막 남은 자를 죽였다. 그리곤 황급히 허리를 굽혀 풀을 뽑는 척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각자의 일에 바쁜 실창석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아까 그 무덤으로 가 자신이 만졌던 그 꽃을 소중히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이 없던 몸에서 활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애꾸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묘지의 저편에 산이 있다.
「…….」
잠깐의 침묵 속에서 친실장의 발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아 달린다. 여름이 찾아오는 어느 날. 어린 시절의 기억을 쫓아서. 독라의 애꾸 실장이 자유를 찾아, 가슴에 소중히 품은 조화를 들고 친실장이 달린다. 이번이 몇 번째 도망이던가. 무덤과 무덤 사이를 지나서. 햇빛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대리석을 밟아도. 바닥을 뒤덮은 풀에 발이 베여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달리면 달릴수록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미 오래전에 도착했었어야 할 그곳을 향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뒤늦게 친실장의 도주를 눈치챈 실창석들이 저 멀리 달아나는 살색 고깃덩어리의 모습에 풀 깎던 가위마저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뒤쫓기 시작한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추격당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친실장은 그간 담아왔던 울분을 쏟아낸다.
「와타시는 산실장인데샤아아아아아아!!!!」
가위에 사지를 잘려나갈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와타시는 돌아갈 곳이 있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
한을 담은 적녹의 눈물. 마지막 남은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흘러나와 친실장이 달려온 회색 돌계단 위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위를 실창석들이 짓밟고 달렸다. 친실장은 달린다. 이제 곧 묘지를 벗어난다. 가슴에 꼭 껴안은 조화가 조금만 더 힘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힘을 주는 것 같았다. 들린다. 귓가에서, 머릿속을 울리는 그 시절이.
「오네챠~오네챠~ 어딨는테치~.」
자매들을 찾아다니던 자실장 시절의 자신이.
「테챠아~또 들켜버린테챠아!!!」
함께 놀던 자매들의 목소리가.
「레후~.」
천진난만하게 웃던 구더기의 웃음소리가.
「밥 먹을 시간인데스~.」
상냥했던 친실장의 목소리가.
산으로 가는 친실장의 눈앞에서 죽은 가족들이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마마…오네챠……
「지금 가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
콰
과
과
과
과
과
광
「…….」
있는 힘껏 달리던 다리는 갑작스레 멈춰섰고 친실장의 몸뚱이는 앞으로 쏟아져 땅바닥에 쳐박혔다. 굉음과 함께 먼지와 모래가 사방으로 퍼져나와 엎어진 친실장을 집어삼켰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쏟아지는 탈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자매들과 집을 부수던 굉음. 고향을 죽이던 괴물들. 자매들과 함께 성체가 되어 각자의 가정을 꾸리던 자신의 머리 위에서,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바위를 들어 올리던 그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끼릭 끼릭 끼릭 끼릭-. 포크레인의 캐터필터 소리. 콰과과과과과곽. 우렁찬 불도저의 전진. 묘지를 확장하기 위해 산을 깎고 연못을 메꿔버리는 공사장비. 툭. 꼭 쥐고 있던 조화가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힘껏 흙을 파낸 포크레인이 덤프트럭에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모래먼지가 뒤쫓아오는 실창석들에게 이쪽이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향의 봄 (홍난파 작곡 / 이원수 작사) -
「와타…시의…고향은…….」
친실장은 뒤를 돌아 뒤쫓아오는 실창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와타시의 고향은…………………
「없는데수….」
생애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조화 위로 떨어졌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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