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실장석 호두 1~4 (완)

 

"자,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형식이 손바닥만한 자실장을 사육수조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실장은 낯선 주변을 호기심가득한 눈으로 관찰했다. 바닥, 벽, 천장, 화장실, 침대, 장난감 어느하나 익숙한것이 없었다. 원래 살던 실장샵의 실장석 진열수조도 깔끔하고 충분히 갖춰져 있었지만 새로운 집은 뭔가 달랐다. 화려한 레이스와 분홍의 천으로 이곳저곳이 꾸며져 있었고 모든곳이 좋은향기로 가득했다. 실장샵에서 말로만 들었던 사육실장이 된것이 실감이 나는듯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호두야. 잘부탁한다."
"호두야 반가워."


딸아이의 부탁으로 실장석을 키우게 된 형식은 자실장에게 호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듯 형식의 딸 수지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기 이름인걸 모르나보다. 수지가 이거 하나 주면서 말해줄래?"

형식은 딸의 손에 탁구공만한 자실장용 스펀지 공을 하나 올려주었다. 수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조 벽을 통통 두드렸다.

"반가워. 호두야!"

수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호두에게 공을 건네주며 말했다. 호두는 색이다른 두눈을 반짝이며 공을 받고 받고 테치테치 감사인사를 했다. 형식은 잘했다는듯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실장석을 싫어하는 연희는 남편과 딸이 실장석을 키운다고 했을때 크게 반대를 했다. 이 가족은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다세대 주택에 비해서 실장석에 의한 피해가 컸다. 몇가지를 예로 들자면 툭하면 실장석들이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집어놓아 음식물쓰레기 수거차량이 그냥 지나친적도 있었고, 신문투입구에 자실장을 탁아해 집앞마당 정원과 텃밭이 엉망이 된적도 있었고, 어떻게 들어갔는지 우유를 훔치려고 배달우유 가방에 들어갔다가 빠져나가지 못해 똥을 푸짐하게 질러놓은적도 있었다. 이것을 막기위해 강아지를 한마리 키웠으나 강아지가 실장석을 쫒아내려 쉴새없이 밤낮으로 짖어대 소음으로 이웃에 항의가 들어와 시골집에 보낸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실장석을 키우겠다니. 집안일을 하지 않으니 이런일을 잘 모르는 순진한 딸은 그렇다쳐도 남편은 제정신이 아닌것 같았다.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집안일을 나눠서해 남편이 이 모든 일들을 모르고있을리가 없는데 다른동물도 아니고 실장석이라니. 차라리 햄스터나 고양이를 키운다면 쌍수들고 환영했을지도 모른다.




"여보 이게 어떻게된거야. 왜하필 실장석을 키우는거야?"




"요새 수지네 학교에서 실장석 키우는게 유행인가봐. 여자애들끼리 서로 자기가 키우는 실장석을 인형 꾸미듯 옷도갈아입히고 키우면서 카카오톡같은걸로 사진 주고받고 자랑한대."




"그래도 그렇지! 실장석 키우는데 드는 돈은 어쩔거야?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아무리 학교에서 유행이라고 해도그렇지, 집 대출금도 항상 빠듯한데!"
"자기야 미안해. 우리 이 집 사면서 약속했잖아. 우리는 힘들어도 수지한테만큼은 항상 좋은환경과 최고의것만 주자고."





형석이 연희를 안아주며 말했다. 연희는 잔뜩 화가났지만 학생들사이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아이들사이에 끼지못할거고, 심하면 따돌림까지 당할수 있다는걸 알기때문에 여기까지하고 참기로했다.

"키우는거 허락해줄게. 하지만 그대신에 나는 저 실장석 절대 관리 안도와줄거야."
"알았어. 수지도 이제 12살이니까 혼자서 잘 할수 있을거야."


연희의 눈치를 잔뜩 보던 형석은 허락에 기쁘게 말했다.



호두는 수지네반 학생들이 키우는 실장석들중 두번째로 비쌌다. 비싼값어치만큼 일반 실장석들과 달리 예쁜 외모를 하고있었다. 희고 뽀얀 피부는 복숭아처럼 보드라웠고 동그란 눈동자는 유독 분홍과 옅은연두색으로 반짝였다. 또한 머리카락은 살짝 오렌지색이 도는 밝은 노란색이라서 언뜻 보기에는 실장석이 아닌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반 친구들은 모두 호두를 부러워했고 수지의 집에 놀러가 자기 실장석과 같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다른사람들에게 좋아요등을 잔뜩 받는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쩍 호두는 버릇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호두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주의를 단단히 받은 수지는 실장샵 직원이 시키는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단것을 자주주면 다른것은 잘 먹지 않는다고해 간식은 최대한 달지 않은것으로 줬고 함께 놀때를 제외하면 실장석 수조에서만 지내게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호두의 주변 모든것들이 호두를 자신이 특별한 실장석이라고 느끼게 만들었고 잘 훈육받아온 호두역시 그런 환경에서 점차 내재되어있던 분충성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두를 아끼는 수지는 호두에게 훈육을 하는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고 어린아이의 판단으로는 아빠에게말해 도움을 구하는것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날갑자기 큰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수지의 집 근처에 사는 같은반 친구가 현아가 자신이 키우는 중실장 비비를 데리고 놀러오게 되었다. 현아의 부모님역시 맞벌이를해 집이가까운 수지는 학교갔다가 학원이 끝나면 현아와 자주 서로의 집에 가서 놀았다.

"와, 이거 마법실장 테치카 극장한정판이네?"
"우리오빠한테 졸랐더니 사줬어. 중실장용이어서 호두한테는 커서 못입혀보겠다."
"괜찮아. 그보다 우리 숙제먼저 하고 놀자."


실장석 울타리 안에 호두와 비비가 둘이서 놀도록 넣었다. 며칠만에 만난 호두와 비비는 테치테치 테스테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수지와 현아는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숙제를 시작했다.

"비비네챠 반가운 테치."
"호두챠도 잘지낸테스? 와타시 오빠상이 테치카 한정판 벛꽃드레스를 사주신테스!"
"테에.. 부러운테치. 리본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데다가 분홍색인테치.."


호두는 부러워하며 비비의 드레스를 구경했다. 집에서 매일 재방송해주는 TV애니 시리즈가 아닌 극장에서 상영한 극장판 작품에서나온 옷이었다. 극장에서 딱한번 봤던 옷이지만 호두의 눈에는 그동안 테치카가 입고나온 옷들중 비교할것이 없이 예뻐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던 옷이었다. 특히나 드레스의 가슴부분에는 예쁜 꽃모양의 탁구공만한 펜던트가 달려있었는데 그것이 호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꽃잎 하나하나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분홍색 보석이 박혀있었고 가운데에는 빨간 하트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호두가 가슴에 달려있는 커다란 펜던트를 부럽게 바라보는걸 느낀 비비는 갑자기 펜던트를 뚝 떼냈다.

"이것보는 테스."

펜던트를 떼낸 비비가 한가운데 하트모양 보석을 누르자 벚꽃아래쪽에서 2단 막대가 착착소리를 내며 튀어나오고 양옆으로 새하얀색 조잡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 모습에 호두는 부러움과 놀라움에 다리에 힘이 빠져 뒤로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굉장한테치..."
"이것은 특별한 와타시를위해 오빠상이 사온거라고 말한테스. 마치 와타시의 몸에 꼭 맞춘듯한 사이즈와 색. 와타시의 만을 위해 만들어진 옷 같은 테스. 특히 이 요술봉은 와따시의 손에 꼭맞는 크기인테스."





비비가 한쪽에 놓인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린듯 호두에게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현아의 나이차이 많이나는 오빠인 현태의 얼굴을 떠올리며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와따시는 특별한테스..."

단순히 부러워하던 호두는 비비의 특별하다는 말에 갑작스럽게 짜증이 났다.

"어차피 가게에서파는 여러벌중에 하나인데 뭐가 특별한테치?"
"...테스...?"


갑작스러운 호두의 날카로운말에 비비는 깜짝 놀랐다. 비록 서로 다른 가게에서 태어나 주인들이 친구이기때문에 만난 사이긴 하지만 자매처럼 즐겁게 놀았던 호두가 처음으로 뱉은 가시같은 말이었다.

"오빠상이 특별하다고 했으니 특별한 테스..."

특별하지 않다는말이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상을 욕되게 하는것처럼 느껴져 비비역시 조금씩 화가났다.

"비비네챠는 다른 실장석들처럼 갈색머리에 빨간 초록 눈동자인테치. 그건 특별하지 않은테치. 코코네챠도 하나네챠도 그렇게 말한테치. 특별한건 와타시의 금색머리카락 분홍색 연두색 눈동자인테치! 지금까지 작은주인상의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며 와타시의 사진을 찍어간테치! 그건 비비챠가 아니라 와타시가 특별하기때문인테치!! 비비네챠의 주인상도 와따시의 사진을 찍어가지 않은테치? 자기가 키우지않는 실장석사진을 찍는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지않는테치?!"

호두가 비비에게 쏘아댔다. 비비는 나이는 더 많았지만 호두에 비해 등급이 떨어지는 실장석이었기 때문에 지능에도 차이가 있어 하나도 반박하지 못한채 어버버 거렸다. 비비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특별하다고한 오빠상에대해 호두가 욕한것, 그리고 자신을 특별하지 않다고 한것에대한 분노가 가득해 실장샵에서 배운 올바른 실장석의 몸가짐따위는 잊어버린채 갈곳을 잃은 말들을 주먹을 내지르는것으로 대신했다.

"테치이이익!!!"
"호두챠는 악당테스! 못된테스! 아주못되고 나쁜 악당테스! 호두챠는 못되고 못되고 나쁜나쁜나쁜나쁜데스!"


두배는 되는 체격의 비비의 주먹에 맞은 호두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채 나동그라졌다. 사육실장이 수치스러워하는 빵콘을 한것도 잊어버린채 충격과 공포에 계속해서 비명만 질러댔다. 비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자기가 아는 최저의 단어인 못된과 나쁜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리곤 요술봉을 들고있는 오른손을들었다.

"못된 악당은 테치카요술봉으로 뿅뿅하는 테스!!"
"테..테치?"


호두의 눈이 쫒지 못할만큼 비비의 오른손이 크고 빠르게 휘둘러졌고 호두의 왼팔에 명중했다. 왼팔의 살갗이 찢어지고 연약한 뼈는 부러졌다.

"테챠아아악!! 와타시의 세레브한 손씨가 엉망이 된테치!! 어째서인테치! 비비네챠는 분충테챠!!!"

그때 실장석들이 이상하게 시끄러운걸 듣고 방으로 들어온 수지와 현아는 이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현아는 비비가 더이상 호두를 때리지 못하게 안아들었고 분이 풀리지않은 비비는 테스테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어떻게하지? 실장석병원에 데려가야겠다!"
"병원에 안데려가도 돼. 설탕으로 응급조치 할수있어!"


놀란 수지를 안심시키며 현아가 말했다. 자실장을 겨우며칠 키운 수지와 달리 현아는 엄지실장을 중실장이 될때까지 오랜기간을 키워와 신빙성이 느껴졌다.

"실장석은 몸속에 위석이라는 연두색 보석이 있는데 그게 다치지 않으면 죽지 않아. 설탕과 영양드링크만 있으면 금방 재생돼!"

현아의 말에 수지는 냉장고에서 박카스 5병을 국그릇에 부어넣고 조미료선반을 뒤져 설탕을 되는데로 쏟아넣었다. 현아는 설탕이 가득 녹아있는 영양제에 호두를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냉장고에서 바로나온 차가운 영양제의 감촉에 호두는 소름이 끼쳤다. 그리곤 이내 입안에 들어온 생에 처음 느껴본 설탕의 단맛과 박카스의 화한맛에 머리가 마비되어버릴것만 같았다. 이내 비명을 지르던 호두는 조용해졌고 평온한 얼굴이 되어 잠이 들었다.

"설탕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고 그랬는데..."
"한두번은 괜찮아. 비비는 간식으로 별사탕도 먹는걸. 실장석이 아플때는 단걸먹이는게 제일 빨리 회복돼."


걱정하는 수지를 보고 현아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현아가 실장석을 키우며 실장석이 다쳤을때 별사탕이나 설탕물을 주고 순식간에 상처가 나았던 이야기들을 해주는걸 듣는동안 호두의 몸은 거의 재생이 끝나있었다. 수지가 안심을 하는 얼굴을 하자 오늘은 실장석들이 싸웠으니 그만 돌아가보겠다며 현아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부모님이 돌아올때즈음에 호두는 몸이 완전히 나아 있었다. 상처도 없이 팔은 재생되어 있었고 아픔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수지는 잠이들어있는 호두를 조심스럽게 들어 설탕물을 씻어내고 잠옷으로 갈아입힌뒤 호두의 침대위에두었다. 수지는 오늘 있던 일을 아빠에게 말해야하나 싶다가도 그러면 친구들을 놀러오지 못하게 할까봐 걱정이 돼 비밀로 하는걸로 맘을 먹었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호두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제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질정도로 몸은 가뿐했고 심지어 평소보다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호두는 옷장문을 열어 문안쪽에 달린 전신거울에 몸을 여기저기 비추었다.

'다행인테치... 여전히 아름다운테치.'

흉터가 남지않은 몸을 보며 호두가 안심을 했다. 호두는 옷을 갈아입으며 어제일을 천천히 곱씹었다. 친한 비비와 싸운것은 충격적인 기억이었지만 무언가 답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이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장샵에서 훈육받아오며 그동안 꾹꾹 눌러와야만했던 실장석의 본능같은것들이 스물스물 뭍으로 올라오려 하고있었다.

'비비챠는 길에사는 오바상들보단 예쁘지만 별로 다를것도 없는테치. 와타시처럼 예쁜 해바라기색 머리카락도 아니고 와타시같은 밝은 눈동자도 아닌테치. 와타시처럼 똑똑하지도 않아서 게임을 하면 와타시에게 져버리는 테치. 똑똑한 와타시의 생각대로라면 비비챠는 특별하지 않은테치. 그런 테치. 와타시의 말이 정답인테치.'

"호두야, 학원다녀왔어."
"테츄?"


토요일 아침일찍 학원을 다녀온 수지에게 호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인사를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운차게 움직이는 호두를 보며 안심한 수지는 호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수지는 호두의 겨드랑이와 배에 레이스와 하트 장식이 달린 하네스를 장착시켰다. 수지는 점점 날씨도 풀리고 중실장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체격이 커진 호두와 산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공원산책을 나가서 사진을 찍을거야."
"테치테츄우!"


이동장이나 수지의 손위에서 가끔 밖에 나간적은 있었지만 하네스를 하고 밖에 나가는것은 처음이라 호두역시 조금 설레였다. TV에서 실장석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기에 호두에게 바깥 산책은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호두는 빨간 체크무늬 외출원피스스를 입고 아장아장 걸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중 수지를 알아보는 이웃사람들이 수지에게 인사를하며 호두의 칭찬을 해주었다. 사람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호두는 씩씩하게 수지의 옆을 걸었다. 인근 공원에 도착하자 실장석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호두는 찬찬히 다른 실장석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들 자신의 옷을 뽐내며 씰룩거리며 걷고 있었지만 그들중 누구도 자신보다 특별한 실장석은 없었다.

"수지야 안녕!"
"민지야! 너도 토로랑 산책나왔구나. 토로 안녕?"


수지가 같은반 친구 민지를 만나 가볍게 인사했다. 민지가 몇번 놀러와 얼굴을 익힌 토로와 호두도 인사를 했다.

"토로챠 반가운테치."
"호두챠도 반가운테치."


토로는 반에서 첫번째로 비싼 실장석이었고 비싼 실장석 키우기 유행을 가져온 장본인이었다. 자실장이었지만 일반적인 자실장보다 훨씬 컸고 체형도 일반 실장석보다 균형잡힌 호두보다 더 인형같은 몸매를 가졌다. 또한 햇살이 닿는부분은 분홍색이 도는 붉은갈색의 예쁜 머리카락 이었다. 특히 아몬드모양의 고양이같은 눈매에 보라색 노란색의 눈동자는 마치 보석같이 반짝거렸다. 그런 토로는 유일하게 호두가 외모로 인정하는 실장석이었다. 게다가 토로는 비싼 몸값만큼이나 걸치는 옷들도 샤넬이나 루이비통, 에르메스에서 나오는 명품브랜드들 뿐이었다.

"호두챠 하네스 정말 예쁜테치. 마치 조끼같은 테치."
"그런테치?"
"와타시의 하네스는 그냥 평범한테치. 그런데 호두챠의 하네스는 마치 천사의 날개같은 테치."




뜻밖의 토로의 칭찬에 호두는 기분이 좋아졌다. 토로의 칭찬에 호두는 새삼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의 하네스보다 예쁜 하네스를 한 실장석이 없었다. 다들 그저 큐빅이나 리본이 박혀있었을뿐, 예쁜 레이스가 달린것은 자신의 하네스뿐이었다. 다른것들에 비하면 마치 자신의 하네스는 예쁜 흰색 날개 같았다.

'와타시의 하네스 특별한테치...'

수지와 민지의 대화가 끝나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수지는 SNS에 올리거나 친구들에게 단톡방에서 자랑할 사진을 찍기위해 배경이 좋은곳에 호두를 내려놓았다. 기분이 한참 올라간 호두는 자신감있는 포즈를 잔뜩 잡으며 사진을 찍는것을 즐겼다. 자신보다 예쁘다고 유일하게 생각한 실장석인 토로가 자신의 하네스를 부러워했다는 생각은 점점 과장되어 마치 자신을 부러워한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와타시는 특별한테치. 이곳의 어떤 실장석보다 특별한테치.'



호두는 어제밤에 설탕물안에서 몸을 회복하고난 이후 설탕의 영향인지 이상하게 공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가 산책으로인한 운동으로 점차 출출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지는 집에 돌아오자 호두의 손발을 닦아주고 케이지 안에 넣어주었다. 호두는 배고픔에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않고 사료그릇으로 다가가 사료를 한알 집어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먹어오던 사료인데 뭔가 평소보다 맛이 덜했다. 분명 어제밤까지 먹었을땐 이런맛이 아니었는데 이상했다. 냄새도 그대로고 씹는 식감도 그대로고 베어물었을때 부스러기 떨어지지않는 적당한 촉촉함도 그대로고 색깔도 그대로였다.

'맛이 이상한테치... 상해버린테츄?'

호두는 들고있던 사료알을 내려놓고 다른것에 입을댔지만 같은맛이 났다. 의아한 마음에 다음 사료를 베었을때도, 그 다음사료를 씹었을때도, 그 다음 사료를 삼켰을때도 모두 이상한맛이 났다. 호두는 옆의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있는 수지를 힘껏 불렀다.

"테치테치! 테츄테챠!!"
"무슨일이야? 언니 공부하는데."




호두는 사료를 가져와 수지에게 테치테치거리며 내밀고 방방 뛰었다.

"언니주는거야? 고맙지만 언니는 배불러..."
"테치! 테츄테츄!"


호두는 그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크게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수지에게 짜증이나 들고있던 사료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것을 보곤 먹으라는게 아니란걸 느낀 수지는 스마트폰을 가져와 링갈을 작동시켰다. 호두가 테치테치하는 말이 번역되어 액정에 떴다.

[주인님, 사료가 상했습니다]


[이상한 맛이 납니다]

"아하... 그런뜻이었구나. 유통기한은 한참 남았는데... 따뜻한 방에 있어서 상한건가?"

수지는 책장한쪽에 두었던 밀폐용기에 든 사료를 네다섯알 꺼내 호두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호두는 그릇에 달려들어 사료를 입에 밀어넣어 씹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료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다른맛이났다. 공복감과 짜증에 호두는 들고있던 사료를 케이지 벽에 던졌다.

"테챠아악!! 테치테츄우!! 테치테챠야아아아! 치이익!"

[사료가 상했습니다]


[사료가 상했습니다]



[사료가 상했습니다]

[사료가 상했습니다]

수지는 계속해서 출력되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곤 급한대로 냉장고에서 먹다만 카스테라를 꺼내 주었다. 실장샵 직원은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절대로 주지 말라고 했지만 사료가 전부 상했다면 일단 배고픔을 해결해야했기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은 이거 먹고있어. 언니가 실장샵가서 금방 새 사료를 사올게."

호두는 지난번 설탕물을 제외하곤 사료와 몇가지 실장전용 건강간식 외에 일절 다른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어 카스테라를 보고 탐색을 시작했다. 사료보다 보드랍고 푹신했고 가벼웠다. 그리고 뭔가 달짝지근한 향이 났다. 먹어도 문제 없을것같은 느낌이 든 호두는 카스테라를 한입 베어물고 사료에서 부족한것이 무엇이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단맛'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수지 오랫만이네. 호두는 잘 기르고 있어?"
"네. 아저씨, 실장석 사료좀 주세요."
"벌써 다 먹은거야? 앞으로 한달은 더 먹일수 있을텐데?"






영호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수지를 바라보았다. 수지는 급히 달려오느라 턱까지 찬 숨을 헥헥거리며 안정시키곤 말했다.

"호두가 사료를 던지길래 링갈을 봤더니 상했대요."
"실장사료는 상온에 두어도 잘 상하지 않는데. 혹시 습기찬곳에다 보관했니?"
"아니요. 밀폐용기에 담아서 책상위에 올려놓았어요."
"이상하네. 그럼 혹시 모르니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용량이 큰거 말고 작은거 가져가 보렴."
"아저씨 감사합니다."


수지는 영호에게 감사하다는 말과함께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영호는 그런 수지를 보며 뭔가를 말할까말까 안절부절 못했다. 수지는 지갑을 열어 영호에게 사료값을 건넸다.

"수지야, 실장석이 주인에게 물건을 던지는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야. 만약에 한번 더 그러면 혼내줘야 해."
"하지만 호두는 제 동생인데..."


수지의 천진한 대꾸에 영호는 머리가 아팠다. 어린아이들의 저런 맹목적인 사랑은 실장석을 쉽게 분충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초등학생인 수지에게 한다고 쉽게 이해를 시킬수있는 방법은 없었다. 영호는 어쩔수 없다는듯 훈육코너에 있는 타격부위가 분홍색 하트모양인 파리채모양의 실장채를 챙겼다다. 모양은 파리채 모양이었지만 좀더 부드러워 훈육시에 실장석이 다치는것을 최소화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당분중독성이 거의없는 개량형 콘페이토 몇개가 든 샘플봉투와 리본 핀 몇개를 더 챙겨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그냥 혼내면 안좋지만 올바르게 혼내야 실장석이 비뚤어지지않고 올바르게 자랄수 있어. 잘못했을때는 따끔하게 혼내고 풀어줄때는 또 예뻐하며 풀어줘야 하는거야. 아저씨가 무슨말 하는지 알겠지?"
"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영호는 돌아가는 수지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온 수지는 새로사온 봉투를 뜯어 사료그릇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호두는 사료에 관심이 없는듯 수지가 주고나간 카스테라 조각을 조금 남겨 들고 테치테치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수지가 스마트폰의 링갈 앱을 켜자 액정에는 호두의 투정들로 가득했다.

[주인님 사료는 더이상 먹기 싫습니다]


[달콤한것이 먹고 싶습니다]



[사료는 달콤하지 않습니다]

"호두! 안돼! 단걸 먹으면 이가 썩어서 안돼."

수지의 말에 호두는 기가 막혔다. 주인은 자기 몰래 아마아마하고 폭신폭신한것을 실컷먹고 자기에겐 자그마한 조각 하나 준것일텐데 자신에겐 이가썩는다고 안된다고 하다니. 이미 호두 상상속의 수지는 혼자서 달고 맛있는것을 먹으면서 자신에게는 주지 않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저에게도 달콤한 음식을 주십시오]


[이것을 더 주십시오]

"안돼, 호두야. 떼쓰는건 못된아이가 하는짓이야. 언니는 학원숙제 해야하니까 이거 먹어."

수지는 영호의 말대로 훈육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장석이 잘못하면 혼내줘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평소보다 단호하게 말을 했다. 호두는 지금껏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던-사실 호두의 생활은 항상 풍족했기 때문에 딱히 다른것을 원하거나 요구한적은 없었다- 수지가 딱잘라 거절하고 책상에 가서 앉는걸 보자 화가났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신경쓰지 않는 모습의 수지를 보자 뭔가 비비에게 느꼈던 그런 감정이 다시한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호두는 사료그릇에 있는 사료를 집어 케이지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료가 다 떨어지자 케이지 안에 있는 물건들중 한손에 잡고 던질수 있는것들은 모조리 내던지기 시작했다.

"와타시 아마아마가 먹고싶은테츄! 이런것 말고 아마아마로 주는테챠!!"

호두는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패악질을 부려댔지만 수지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하지만 수지의 무관심은 호두의 분노를 더 부채질할 뿐이었다. 그저 떼를 쓰던 호두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반응을 보일때까지 말썽부리는것을 마음먹은 것이었다.

"오마에! 이딴건 오마에나 먹는테챠아아!!"

호두는 입고있던 옷들을 벗어내려놓고 투분을했다. 실장석이 인간의 짜증을 가장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자 분충으로 구분되는 최악의 행동. 무관심일색이던 수지도 결국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수지는 딱히 호두에게 화가난다거나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해 훈육을 해야한다는것에 대한 부담감과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문제든 아빠나 엄마에게 말을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처럼 이것역시 어른에게 도움을 구하면 간단하게 해결 되겠지만, 해결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실장석을 극도로 혐오하는 엄마는 그러게 왜 실장석을 키우기로 했냐며 화를 낼것이고, 자신을 믿고 실장석 분양받는것에 도움을 준 아빠도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수지는 심사숙고끝에 자기 친구중 그나마 실장석에 대해 많이 알고있는 현아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현아야, 호두가 자기가 싼 응가를 던졌어. 어떻게 해야지?]


[비비는 그런적이 없는데... 응가를 던지면 혼내야 할것같은데]

현아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지는 크게 한숨을 쉬고 인터넷에 실장석 투분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실장석 투분에 대한 검색결과는 '분충', '학대', '유기'등 부정적인 단어로 가득했다. 그중 자신이 실장석 전문 교육자라는 사람의 글이 하나 눈에 띄었다.



<실장석의 훈육>
귀여운 녹색 아기들이 화가나서 투분이나 물기등을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애오파들처럼 무한한사랑? 학대파들처럼 학대?
사실 실장석 양육에는 정답이 없답니다!
하지만 올바른 주인으로써 실장석을 인솔하는것은 인간과 공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죠!
올바른 주인이 되는 방법! 그것은 올바른 훈육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올바른 훈육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지시키기
-우리의 귀여운 아기들을 혼낼때 갑자기 실장채를 든다면 아기들은 거부감부터 들기 마련이랍니다! 아무리 똑똑한 아기들이어도 자신들이 잘못한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맞는다면 반발심부터 갖게 되기 마련이죠.
귀여운 실장석 아기들에게 먼저 자신들이 잘못한것에 대해 설명을 해줍시다.
2. 성장 상태에 따라 적당한 강도로 체벌하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인지가 끝난 아기들에게 가장 확실한 훈육방법은 바로 전용 실장채등의 훈육도구를 통한 체벌입니다. 사실 애오파나 애호파분들은 매우 야만적인 방법이라고 싫어하시는데요, 성장상태에 따라 적당한 강도로 체벌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의 훈육이 된답니다.
자신의 실장석 아기의 성장 단계에따라 1단계에서 10단계까지 준비되어있는 다양한 훈육도구를 선택해 체벌을 하도록 합니다. 성장상태에 관계없이 첫 체벌이라면 1단계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답니다^^
3. 안심시키기
-체벌이 끝나고나면 우리 실장석 아기들은 주인님의 말에 복종을 하는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주인님에 대한 불신도 조금은 쌓인 상태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 확실하게 안심을 시켜주어야 쌓인 앙금없이 원래의 애정 가득한 관계가 된답니다.
체벌이 끝나면 공놀이를 해주거나 맛있는 간식을 주어 신뢰관계를 회복해 주도록 합시다!^^
ps 단 이것은 적절한 교육이 완료된 실장석에 한한 것이고 이미 분충성이 발현된 개체의 경우에는 효과가 없을수도 있으니 전문 트레이너를 찾아가는것이 중요합니다^^






수지는 게시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간단히 잘못한 것을 혼내고, 실장채등으로 체벌하고 좋아하는것으로 기분을 풀어준다는 것 같았다. 현아는 일단 샵에서 사료를 사고 받아온 실장채를 꺼내들었다.

"호두! 이것봐! 응가를 던지는건 아주 나쁜 실장석이나 하는짓이야."
"테샤아아악!! 테샤아!!"


하지만 수지의 단호한 목소리는 호두에겐 별로 위협적이지 못했다. 도리어 호두가 수지를 향해 위협을 하며 훈육을 위해 가까이 다가온 수지에게 투분을 할 뿐이었다. 녹색의 끈적하고 냄새나는 운치가 옷에 질퍽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수지는 어쩔줄 모르며 체벌을 하려고 실장채를 꺼냈으나 마음이 약해 차마 그것으로 호두를 때릴수는 없었다. 그리곤 그 대신 화를 내며 실장채로 호두의 가까운 바닥을 때리는것으로 대신했다.

"언니가! 안된다고! 했잖아! 이건! 아주! 나쁜짓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체벌을 경험한적이 없는 호두는 자신이 서있는 옆 바닥을 실장채로 찰싹이는 수지가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테프프... 닝겐이 미쳐버린테치? 바닥을 때려봤자 와타시 하나도 아프지 않은테치."

눈을 초승달모양으로 가느스름하게 뜨며 호두는 수지를 비웃었다. 바닥에 위협을 하는것이 별 효과가 없다는것을 깨달은 수지는 결국 호두를 향해 실장채를 휘둘렀다. 일반 파리채보다 훨씬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진 실장채였기 때문에 맞는것 자체는 큰 고통은 아니었으나 몸에 전해지는 타격감에 호두는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맞아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첫 체벌은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테..테치? 어째서 테치? 어째서 와타시를 때리는 테치? 어째서인테챠아!!"

하지만 이미 분충성이 충분해진 호두에게 체벌은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호두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수지에게는 호두의 행동들은 완벽한 분충이였음에도 조금의 가능성이 있지않은가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한대를 더 때리기위해 실장채를 들어올리다 옆에있던 침대의 캐노피에 실장채가 걸렸다. 인간에게 그렇게 큰 무게감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지는 캐노피가 걸린줄도 몰랐으나 실장채를 내리칠때 캐노피가 같이 따라오며 침대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있던 호두가 침대에 깔리게 되었다.

"앗! 호두야!!"
"테챠아악!! 테쟈아아!!"




깜짝 놀란 수지는 곧바로 침대를 들어올렸으나 호두의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조잡한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있던 침대의 덮침은 보기와 달리 연약한 실장석의 몸뚱이에는 치명적이었던 것이었다. 침대의 원목프레임을 그대로 맞은 다리는 으깨졌고 팔은 부러졌다. 장식에 맞은 몸통 일부분은 눈에띄게 쓸려 피가 군데군데 흐르고 있었다. 수지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지난번 현아가 알려준대로 영양드링크와 설탕을 섞은것을 만들어 왔다. 호두는 몸이 다친 상태에서도 큰 비명을 지르며 수지의 손을 피해 달아나려 했으나 금방 잡혀 설탕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약간 노란빛이도는 투명한 설탕물위로 호두의 피와 운치가 번져갔다. 수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호두는 처음에 멀쩡한 오른팔을 버둥대며 달아나려 했으나 첨벙대는중에 달작지근한 용액이 입안에 들어오자 이내 저항을 멈추고 그것을 마시면 몸이 낫는걸 아는지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시기 시작했다. 걱정에 발을 동동구르던 수지도 호두가 비명을 멈추고 설탕물을 할짝이는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테치, 하지만 달콤한 테치...'

고통이 점차 둔감해지며 호두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슴이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쉬고 있었다.






호두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이었지만 친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분홍 노랑 보라 빨강, 곱고 세레브한 색의 리본과 프릴, 레이스들이 이곳저곳에 가득했고 몸에 닿는 모든것이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가볍고 편안한 분홍의 원피스를 입은 호두는 춤추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때 어디선가 낯설지만 익숙한 좋은 냄새가 났다. 홀린듯 그곳으로 다가간 호두의 눈에는 처음보는것들이 가득했다. 동글동글하지만 울퉁불퉁한 색색의 별모양들, 육즙이 가득한 갈색의 덩어리들, 하얗고 작은것들이 뭉쳐있는 것 위에 분홍의 촉촉한 것들이 살포시 덮혀져있는것들. 분명히 처음 보는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이것들은 먹는것 같았다. 제일먼저 가장 가까이 있던 갈색의 덩어리를 한입 물었다. 뭔가 평소먹던 음식들과 달리 조금은 질기지만 은은한 스모크향과 부드러운 버터의 맛, 풍부한 육즙과 깊고 고소한 맛이 났다.

"우마우마한 테치."

그리고 그 옆에있던 희고 분홍의것을 한입물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흰 동글이들과 함께 입안에 착 감겨오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분홍의 촉촉한것. 세레브함을 음식으로 만든다면 이런 맛일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색색의 별모양중 가장 예뻐 보이는 분홍의 별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마치 유리알처럼 단단한 느낌이었지만 점차 달콤한 맛을내며 입안에서 녹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로 살짝만 눌러도 부드럽게 바스라져갔다. 하나씩 모두 맛본 호두는 닥치는대로 나머지들을 입에다 밀어넣기 시작했다. 모든것은 처음보고 처음 먹었지만 분명이 익숙하고 그리운 맛이었다. 뱃속이 가득찰때까지 음식을 먹은 호두는 기분좋게 낮잠을 청했다.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이곳은 매우 기분이 좋은곳이었다.

"테치..."

잠시후 호두가 눈을 뜬 곳은 수지의 방 한쪽에있는 자신의 침대 위였다. 어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케이지 안은 정상이 되어있었다.

"어째서인테치...? 어째서 눈물이 나는 테치..."

호두는 눈물을 닦았다. 객관적으로 호두가 지내고있는 케이지는 세레브한 편이었다. 수지가 친구들의 집에 놀러갈때 종종 호두를 데리고 갔는데 친구들의 실장석이 머무는 케이지를 호두도 몇번 보았지만 자신의 집처럼 좋은곳은 손에 꼽을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꿈속의 낯선듯 그리운 풍경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그것이 실장석의 위석에 새겨진 '세레브한'세계라는걸, 그곳에서 먹은것들이 '콘페이토', '스테이크', '스시'라는 이름의 것들이란걸 호두가 알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호두는 그 풍경이 사무치도록 그리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응. 그랬어. 응."

잠시후 수지가 통화를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아직 잘 모르겠어. 한번 두고봤다가 정 안되면 영호아저씨한테 가보려구. 응. 그래. 이따가 학원에서 봐. 안녕."

통화가 끝난 수지는 호두를 바라봤다. 호두는 잠이 깼지만 급히 잠든척하며 곁눈질로 수지의 눈치를 살폈다. 지난밤처럼 화나 보이지는 않아 조금 안심을 했다. 수지는 어제 호두가 사료를 모두 집어던져 텅 비어있는 사료그릇에 사료를 몇개 넣어주었다. 호두는 슬그머니 수지를 힐끔대며 나와 사료를 씹었다. 배가 그렇게 고픈것도 아니었지만 꿈속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서인지, 어젯밤 달짝지근한 설탕물을 먹어서인지 사료가 마치 고무씹는 기분같았다. 하지만 어제처럼 굴어서는 혼나게 된다는걸 눈치껏 깨달은 호두는 사료를 씹어 삼켰다.

"인터넷에서 본 훈육방법이 효과가 있었나?"

여느때처럼 밥을 먹고있는 호두를 보며 수지는 안심한듯 중얼거렸다. 영호의 실장샵에 가서 다시한번 뭔가 조언을 구해야하나 걱정했던 마음이 사라져갔다. 그리고 호두의 머리를 평소처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수지가 화난것이 아니라는걸 느낀 호두역시 안심했다. 하지만 수지의 생각처럼 효과가 있다거나 반성을 하는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채 미봉책으로 살짝 덮어놓았을 뿐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위를 외줄타기하듯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호두의 상태를 살피던 수지는 큰 이상이 없어보이자 문제집과 몇가지를 챙겨 학원으로 갔다. 수지가 나가고 나서 호두는 먹던 사료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맛없는 테치."

그리고 꿈속에서 먹은 세레브한 음식들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어제 먹었던 폭신하고 달콤한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까까지 배고프지도 않은데 사료를 밀어넣었지만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것 같았다. 인간들이 먹는 음식이 먹고싶다. 호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케이지 밖으로 나와 케이지 밖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 나가려했지만 생각보다 울타리는 높았다. 호두는 주변을 살펴보고 곰곰히 생각을 하다 커다란 곰인형을 낑낑대며 울타리 앞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곰인형을 밟고 울타리를 넘으려 했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않았다. 호두는 한숨을 쉬고는 쌓기블럭을 하나 가져와 곰인형의 안정적인 부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발을 딛었다. 조금 위태로웠지만 울타리끝에 손이 닿았다. 어느정도 높이가 있었지만 엉덩방아를 찧은것 외에는 크게 몸에 위해가 가해진것없이 탈출할 수 있었다. 엉덩이 아픈것도 잠시, 호두는 열려진 방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바로 연결된 거실로 향했다. 수지의 아빠와 엄마 모두 일요일이라 부부동반모임에 나가 집안에는 아무도 없어 호두는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케이지 안에는 모든 물건이 손바닥만한 호두의 사이즈에 맞춰져 있었으나 밖의 모든것들은 몇십배, 몇백배나 컸다. 슬리퍼도 거대했고 의자도 가까이가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정도로 컸다. 낯선곳에 대한 호기심에 잠시 배고픔도 잊고 호두는 이곳저곳 탐색을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자 겨우 다시 배고픔이 느껴졌지만 한참동안 탐색을 해도 먹을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실장석에게는 너무나 넓고 낯선 거실에서 길을 잃고만것이었다.

"테에...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픈테치...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테치... 테에.. 테에엥.... 테에에엥..."




낯선곳에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이 들자 호두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기위한 방어기재로 빵콘을한채 묵직해진 팬티를 끌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운치를 흘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뒤, 수지의 엄마와 아빠가 귀가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무슨일이야?"

연희는 바닥 여기저기에 줄줄흐른 운치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연희의 반응을 보고 뒤늦게 따라 들어오던 형식도 상황이 이해가 된듯 먼저 후다닥 들어가 물티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연희는 실장석이 그렇지로 시작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줄 알았어. 그래서 실장석같은거 키우지 말자고 했는데, 어쩔거야 이거. 카페트랑 마루가 다 엉망이 되었잖아."
"수지가 실수로 문단속을 못했나봐. 내가 금방 치울게."
"아- 난 몰라. 걔 똥 자기가 알아서 다 치워. 그러니까 키우지 말자니까...."


연희가 계속 투덜거리며 혼자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식은 그래도 버리라는 소리는 안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바닥을 다 닦았다. 그리고 팬티에 운치를 가득 지린 호두를 붙잡았다. 빵콘한 상태라 냄새도 나고 더러웠지만 딱히 그동안 형식이 케어해준것 없이 수지가 혼자 알아서 잘 관리해온 탓에 호두로인해 귀찮은일을 겪은적이 별로 없어 그런지 그런 호두가 귀엽기만 했다.

"으이구~ 응가했어요?"

그리고 형식은 더러워진 호두를 화장실로 데려가 깨끗이 씻겨 거실로 다시 나왔다. 수건에 싼 호두를 수지의 방으로 데려가려는 찰나, 호두의 뱃속에서 우렁차게 꼬르륵대는 소리가 났다.

"오구~ 호두 배고팠어? 맛있는거 줄까?"

형식은 혼잣말을 하며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호두를 씽크대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를 열자 호두는 그런 형식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냉장고 안에는 여러가지가 잔뜩 들어있었다. 형식은 그중 먹고남긴 카스테라조각을 꺼내주었다. 분명 호두를 분양받을때 수지와 함께 실장석 키울때 주의사항을 들었지만 그동안 수지혼자 관리하며 신경써왔기 때문에 주의사항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아마 기억한다고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카스테라를 본 호두는 눈이 동그래져서 양손으로 빵을 팍팍 뜯어 입안에 밀어넣었다. 그런 호두를 보며 형식은 배가 고팠나보다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형식이 무신경하게 남은카스테라를 잔뜩 꺼내주었기 때문에 호두는 배가 터질지경까지 달작지근한 카스테라를 먹었다. 형식은 배가 토실해진 호두를 귀엽다는듯 조심스럽게 들어 수지의 방에 있는 케이지에 넣어주었다. 배가부른 호두는 침대에 누워 아까 본 냉장고 속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 상자 안에는 뭔가가 가득 들어있던테치. 거기서 아마아마한 폭신폭신을 꺼내준걸 보니 그건 다 먹는것이 분명한 테치. 닝겐들은 그렇게 아마아마하고 우마우마한게 가득있으면서 와타시에게는 항상 저 덩어리만 준 테치. 와타시를 사랑한다고, 귀엽다고, 예쁘다고 하면서 어째서인테치? 어째서 자기들만 그렇게 맛있는걸 먹는테치? 와타시를 사랑한다는건 거짓말인테치?'

호두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이어질수록 점차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가며 자신이 부당한일을 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어제밤처럼 화내고 패악질을 부리고 싶었지만 인간의 힘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만큼 강하다는걸 모를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자신이 똑똑한 실장석이라고 생각하는 호두는 우마우마한것을 먹기 위해서는 뭔가 꾀를 써야 한다는데까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두는 그 이후로도 몇차례 수지에게 단것을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악질을 부리면 혼나게 된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딱히 눈에 띄는 분충스러운 행동은 없었으나 겉으로만 보기 좋았을뿐 반성도 후회도 없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어보이는 호두를 보며 수지는 '이정도면 괜찮은거야.'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곧 겨울방학이 끝나 개학의 시기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린 방학숙제와 지속적으로 나오는 학원 과제들에 시달려 호두의 행동을 관찰할 시간도 없었다.

"수지 공부 잘 하고있니?"
"아, 엄마. 수영이네 집 가서 같이 방학숙제 하려구요."
"숙제하러 가는데 그것도 데려가니?"


백팩을 메고 한손에는 실장석용 이동장을 챙기는걸보며 연희가 묻자 수지는 계면쩍은듯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수지도 방학숙제 때문에 꽤나 짐이 많아 호두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으나, 외모가 제법 예쁜 실장석인 호두와 자신의 실장석 사진을 같이 올려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었던 수영이의 부탁으로 어쩔수없이 이동장을 챙기고 있엇다.

"아무튼 요새 애들 이해할수가 없네. 가서 말썽부리지말고 잘 놀다와. 수영이 부모님한테도 인사 잘하고."
"알았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수지가 집을 나서자마자 꾀죄죄한 들친실장과 엄지실장을 발견했다.친실장은 추운날씨에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할까 싶었는지 전봇대옆에 무단투기된 쓰레기 봉투 사이에 엄지실장을 밀어넣고 자신의 몸으로 바람을 막고 앉아 있었고 학대파라도 만난건지 편의점비닐봉투를 두건과 옷대신에 입고 있었다. 친실장은 학대를 당했는지 왼쪽귀에는 담배로 지져만든듯한 구멍이 있었고 그와 비슷하게 왼쪽 얼굴 이곳저곳에 지져진흔적이 남아있었다. 그에비해 엄지실장이면 추자일텐데도 애지중지 키웠는지 그나마 친실장에 비해 상태가 좋아보였다. 수지는 딱히 들실장들까지 챙기는 애호파는 아니었지만 저렴한 동정심에 주머니를 뒤져 나온 카라멜을 던져주었다. 친실장은 카라멜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에 흠칫 놀랐으나 주린배를 자극하는 달작한 내음에 홀린듯 카라멜을 주워들어 허겁지겁 씹기 시작했다. 종이포장도 벗기지않고 입안에 카라멜을 밀어넣던 친실장은 나머지 반을 엄지실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작은 카라멜이었지만 엄지실장에게는 반도막도 제법 커보였다. 엄지실장은 그런 친실장의 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친실장을 향해 작게 레치 소리를 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장아장 걸어나와 수지와 호두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쓰레기봉투 사이로 들어갔다. 호두는 더러운 들실장 친자를 보며 우월감과 함께 뭣하러 저런 들분충들에게 먹을것따위를 주는지 이해할수없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예의바른 아기실장석이네. 호두도 옛날에는 저렇게 착했는데...'

문득 생각이 호두에 미치자 수지는 무의식적으로 호두의 분충화를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길을 계속해서 갔다.
찬바람을 뚫고 도착한 수영의 집은 더울정도로 훈훈했다.

"수지야 어서와~"
"응. 집이 엄청 따뜻하다."
"밍밍이가 추울까봐 난방온도를 높여놨어."
"데쟈데쟈와 데스웅. 데스우데스야. (친구상 어서오는 데스웅. 추운날 고생하신 데스야.)"


수지와 수영이 인사하는동안 수영의 뒤에서 밍밍이가 타박타박 뛰어나와 수지에게 허리굽혀 인사했다. 밍밍이는 수수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양쪽으로 틀어묶고 있었다. 밍밍이는 간단한 바닥 먼지청소나 화장실 솔질등의 일을 맡기려고 분양받은 가사도우미석이였으나 부지런함한데다 꼼꼼하고 의외로 붙임성까지 있어 금새 이 집의 사육실장처럼 받아들여 예쁨받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훈련도 마친 성체실장석이었기 때문에 가사도우미석에 과분할정도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분충화 되지 않고 있었다. 수영이역시 그런 밍밍이를 예뻐하는건 마찬가지였으나 SNS에 수수한 밍밍이의 사진은 아무리 올려도 인기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친구들사이 단톡방에서도 호응없어 조금 아쉬워 했다.
수지가 이동장을 내려놓고 문을 열자 호두가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수영은 그런 호두를 귀엽다고 호들갑떨며 칭찬하고 있었고 밍밍이도 조금 떨어져서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그런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밍밍이도 귀엽지만 호두는 진짜 너무 예쁘고 귀여운것 같아. 엄마한테 귀여운 자실장 하나 분양받자고 했는데 그러면 밍밍이가 서운해 한다고 딱잘라 거절하셨어."

수영이는 인형과 쿠션으로 스튜디오마냥 꾸며놓은 소파위에 호두를 내려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댔다. 자신을 향한 관심이 싫지않았던 호두는 기분좋게 예쁜 포즈를 취했다. 한참동안 이것저것 사진을 찍던 수영은 충분히 만족했는지 수지와 조잘대며 방학숙제를 시작했다. 수영으로부터 호두를 놀아줄것을 부탁받은 밍밍이는 호두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호두쨩 반가운 데스우. 와타시는 밍밍이라고 하는 데스."
"와타시도 반가운테츄. 오바상은 이집의 사육실장인 테치?"


그동안 수지를 따라서 친구집에 갔을때 본 실장석들은 모두 화려한 옷이나 비싸고 예쁜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었지만 수수한 밍밍이의 모습에 의아한 기분이 든 호두가 물었다.

"와타시는 가사도우미석인 데스."
"테에? 그게 뭐인테치?"
"이 집에 사는 닝겐상들을 대신해서 바닥을 청소하거나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닝겐상들이 원하는 심부름등을 하는 데스우. 지금은 수영상이 시킨대로 호두쨩을 돌보는 데스. 뭔가 필요한것이 있으면 말하는 데스야."


'테츄? 하녀인 테치?'

밍밍이의 말에 호두는 딱히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밍밍이가 자신보다 몇단계아래있는 하등한 존재라고 멋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곤 혼자 눈을 초승달모양으로 가늘게 뜨곤 소리죽여 테프프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밍밍이와 몇마디 말을해보곤 더이상 말을 섞어봤자 별 필요 없다고 느꼈는지 혼자서 아장아장 거실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밍밍이 오바상은 테치카도 모르는 테치. 테치카도 안보고 실장드라마도 안보니 대화할거리가 없는테츄.'

실장석을 키우는 다른 집들과 달리 수영의 집은 실장석 놀잇감같은것이 하나도 없어 심심해 시간을 때울 방법은 걸어다니는것밖엔 할것이 없었다. 수영의 집 거실은 수지의 집 거실과 달리 부엌도 분리되어있고 거실자체의 크기도 훨씬 작아 길을 헤메지 않고 한바퀴 돌 수 있었다. 물론 거실은 작았지만 손바닥만한 자실장의 체력으로는 금새 지치고 허기지기 시작했다.

"밍밍이 오바상, 배가고픈 테츄."

호두는 초대받아서 온 자신에게 이 집의 하녀가 수발을 드는것은 당연하다는듯 밍밍이에게 칭얼댔다. 본래부터 가사도우미석인 밍밍이는 별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사료와 간식을 앞치마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와 호두에게 건넸다. 배가 고팠던 호두는 밍밍이가 가져온 사료를 금새 먹어치우곤 입맛을 다셨다. 사료를 다 먹은것을 본 밍밍이는 간식을 꺼내 호두의 눈 앞에 꺼내 들었다.

"이것도 먹는 데스우."




밍밍이가 건넨것을 보고 호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것이 밍밍이가 건넨것은 콘페이토였던 것이었다.

"테...테치?! 오바상, 이것은..."

분명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지만 호두는 이것의 맛과 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호두는 떨리는 손으로 콘페이토를 받아들고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겉에서부터 핥아먹고 입안에 넣어 굴리다 적당한 크기가 되었을때 깨물어 바스러트렸다. 달고 향기로운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자 호두는 마치 천국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님은 항상 극진히 대접하라는 주인내외의 당부에 자신이 가진것중 가장 좋은것들로 대접한 밍밍이는, 계속해서 시큰퉁한 얼굴을 하던 호두가 황홀한 표정으로 행복해 하는것을 보며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맛있는 테치..."

"입맛에 맞다니 다행인 데스. 호두쨩은 콘페이토를 처음 먹어보는 데스?"
"...꿈에서... 아니 예전에도 먹어본 테치..."


황홀함의 여운이 남은 상태에서도 호두가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하지만 허세도 잠시, 콘페이토의 단맛에 안달이난 호두는 밍밍이에게 콘페이토를 더 달라고 졸라댔다. 밍밍이도 하루에 하나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라 몇개 모아놓지 못한것을 달라고 조르니 조금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작은 자실장의 귀여운 어리광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하나도 건네주었다.

"마지막인 데스. 와타시도 더이상 가진게 없는데스우."

밍밍이의 말에 호두는 콘페이토를 입안에 넣고 최대한 천천히 굴리며 녹여먹었다. 마치 마약처럼 콘페이토의 달콤한맛과 향에 호두는 다시한번 황홀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황홀감이 채 가시기도전에 방학숙제를 마친 수지가 수영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호두를 이동장에 밀어 넣었다. 밍밍이와 수영이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면서 호두는 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런 하녀 오바상이 세레브한 콘페이토를 가지고 있다니... 이것은 불공평한테치. 하녀들도 받는걸 어째서 특별한 와타시가 갖지 못한 테치?'




"다녀왔습니다."

집에는 웬일로 일찍 퇴근한 부모님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지 왔니, 방학숙제는 많이 했어?"
"밥부터 먹고 씻어."
"네."


호두를 방안에 두고 수지는 후다닥 식탁으로 가 앉았다. 오랫만에 일찍 퇴근한 부모님과 오늘 있던 일들을 나누며 밥을 먹었다. 오늘 쓰레기봉투사이에서 바람을 피하던 실장석친자 이야기를 하자 연희는 질색을 하면서도 그런 실장석도 있냐며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형식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실장석 밍밍이의 이야기에 호두도 교육시켜서 집안일을 돕게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등을 나누었다. 식사가 끝난후 연희가 내온 간식을 대충 집어먹고 수지는 먼저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호두는 집에 들어올때 아빠상이 있던것을 기억해내고 여러가지 물건을 쌓아 또 울타리를 넘어서 수지가 급하게 나가며 열어놓은 방문을 통해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여전히 넓었지만 그때와 달리 형식과 연희가 이야기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 길을 헤메지 않고 형식쪽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형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문득 느껴 바닥을 내려보니 호두가 형식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서 있었다.



"텟츙♡"

고개를 살짝 기우뚱하게 꺾고 오른손을 입가에, 호두는 형식을 향해서 아첨을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형식은 귀엽다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형식의 눈에 호두가 딱히 배가 고파보이지도 않았고 옆에서 연희가 무언의 협박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호두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수지야~ 니 실장석 밖에 나왔다. 똥싸기전에 어서 데리고 들어가."
"네, 엄마."


샤워를 마친 수지는 머리를 말리며 나와 대답했다. 연희의 말을 들은 호두는 급한마음에 형식의 바짓단을 붙잡고 테치테치 소리내며 동동거렸다. 하지만 형식이 무언가를 해주기도 전에 호두는 수지의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테쟈아!! 테츄우우!!"

호두는 수지의 손에서 빠져나가기위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이 똥닝겐이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조금만 더 시간이있었더라면 아빠상에게 분명 아마아마한 과자를 받을 수 있었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약이 바싹 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그 나름대로 화가난 호두는 자기 케이지에서 사료를 씹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수지는 그런 호두의 모습을 보지도 못한채 바쁘게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수지가 숙제를 시작하고 한참뒤, 연희가 문을 두드렸다.


"수지 아직도 숙제하니?"
"네~ 엄마."



수지의 대답 후 연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녁을 먹은지 세네시간쯤이 지나 배가고플 수지를 위해 연희가 야식으로 간단하게 핫케이크를 구워온 것이었다.

"숙제 얼마나 남았길래 이렇게 늦게까지 숙제만 하는거야. 나와서 TV도 보고 좀 쉬엄쉬엄해."
"방학안했을때도 학교끝나고 학원갔다가 집와서 숙제하면 이시간인데 뭐. 그동안 방학숙제 귀찮아서 미뤘더니 양이 좀 많은거같아."
"엄마가 좀 도와줄까?"
"글씨체가 너무 달라서 금방 선생님한테 들킬거야. 그래도 방학 끝나기 전까지는 다 할수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연희를 안심시키듯 수지가 말했다. 연희는 그런 의젓한 수지의 모습에 대견스러운듯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열심히 하라며 거실로 나갔다. 수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숙제가 너무 밀려 남은 기간내에 다 끝낼수있을지 걱정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자꾸만 오는 졸음을 쫒아내기 위해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방 밖으로 나가는 수지를 눈으로 쫒던 호두는 기다렸다는듯이 아까 쌓아놓았던 물건들을 밟고 다시한번 울타리 밖으로 탈출했다. 단맛에 안달이난 호두는 연희가 가져온 핫케익의 달달한 향기에 견딜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핫케익은 책상위에 있어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평소 깨끗한 상태의 방이었다면 책상은 고사하고 의자 위에도 올라가지 못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작숙제를 위해 방안에 널려진 상자며 공작도구들을 이용해 의자위로 올라갈수 있었다. 그러나 의자위에서 책상위로 올라가는것은 의자에 바닥에서 의자로 올라오는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수지가 오기전에 핫케익을 먹어야한다는 급한 마음에 호두는 작은 팔다리로 의자위에서 콩콩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책상에 닿을듯말듯 애를 태우는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세수를 마친 수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깜짝놀란 호두는 다리가 미끄러져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호두야!"
"테쟉!"




머리부터 추락한 호두는 바닥에 있던 딱풀의 모서리에 정통으로 뒷통수를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수지가 호두의 상태를 살펴보자 맨들하고 보드랍던 뒷통수가 찢어져 바닥에 피가 흘러 있었다. 수지는 집에 부모님들이 계서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부엌으로가 건강드링크와 설탕을 혼합해 방으로 가지고 와 호두를 담갔다. 핫케이크는 아니지만 뜻밖의 단맛에 호두는 허겁지겁 설탕물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아픈테치... 그래도 맛있는 테치.'

그때 불현듯 호두의 머리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프고 난 다음에는 항상 단것을 먹는 테치. 혹시 딸닝겐상은 와타시가 아프면 단것을 주는테치? 지난번에 비비네챠에게 맞았을때도, 침대가 넘어져 아팠을때도 항상 이 달콤한 물을 준 테치. 오늘은 그때보단 아프지 않지만 분명 와타시가 다치니 달콤달콤 물을 준 테치. 분명한테치...'

설탕물을 어느정도 들이키자 통증도 점차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호두는 배가 가득차 빵콘하고 싶을정도로 설탕물을 들이키곤 맨정신으로 수지에 손에의해 샤워를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워 호두는 계속해서 설탕물 생각만 했다. 그리곤 기막힌 생각들이 떠올라 밤잠을 한참이나 설치며 작은소리로 테프프 테프프 웃어댔다.
그리고 그 다음날 호두는 자신의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기기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호두는 블럭쌓기 놀이기구를 최대한 높이 쌓아 캐노피가 고정된 침대의 프레임위에 올라간 뒤 수지가 사료를 주기위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 수지가 다가오자 테치테치 소리높혀 수지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는 추락이 실수인것을 가정하기위해 프레임 위에서 아장아장 춤을추고 공손한 태도로 사료를 놓는 수지에게 인사를 한 뒤, 실수로 발을 헛딛는체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몇번이나 캐노피의 높이까지 합친 침대 높이보다 케이지를 둘러싼 울타리 높이에서 떨어지는것이 더 위협적이었지만 직접 수지의 눈앞에서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수지는 새삼 큰일이 난것마냥 놀라며 호두의 이름을 불렀다. 호두는 사실 살짝 엉덩방아를 찧은정도밖에 되진 않지만 최대한 크게 비명을 내지르며 엄살을 떨었다. 그리고 한번씩 힐끔힐끔 수지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아까보다 더, 방금전보다 더 아픈척을 해댔다. 물론 지난3번의 치료때처럼 어딘가가 찢어져 피가난것은 아니었으나 비명지르는 호두의 모습에 패닉한 수지는 들고있던 사료도 내던지고 부엌으로가 설탕과 영양드링크를 섞어왔다. 호두는 옆눈으로 힐끔힐끔 수지를 보며 속으로 테프프테프프 비웃음을 흘려댔다.




'테프프... 정말로 통하는테챠?! 똥닝겐 역시 멍청한테치. 와타시의 속임수에 완벽하게 넘어가버린 텟츙! 너무나 쉬워서 웃음을 숨기기가 어려운 테싯테싯...!'

자신의 꼼수가 통한것에 기뻐하며 호두는 설탕물을 꾸역꾸역 들이켰다. 그런것을 알리가없는 수지는 발만동동구르다 이내 호두가 비명을 멈추고 설탕물을 마시는 모습에 안심하며 학원갈 준비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번 꾀병부리는것이 통하자 호두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지 앞에서 아픈척 행동하며 설탕물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수지의 입장에서는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아빠나 엄마에게 말해서 부모님들을 번거롭게 만드는것보다 이편이 낫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설탕물을 만들어 대령했다. 하지만 그것이 호두의 잔꾀인것을 수지는 꿈에도 모른채 호두가 조종하는대로 움직였다.







시간은 흘러 며칠이 지나고 호두는 중실장이 되었고, 나이가 든만큼 점점 더 교활해져갔다. 본래도 영리한 실장석이었으나 교묘하게 나쁜곳으로만 머리가 돌아가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인 인간에게는 복종하는척 자신이 원하는방향으로 이용했고, 같은 실장석들은 등급을 나누어 자신과 비슷하거나 높은 등급이라고 생각되면 친구로 지내고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되면 무시하거나 괴롭히며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켰다. 특히나 들실장들에게는 학대파 인간들이나 생각해낼만한 행동들을 하며 그걸보고 테프프거리며 웃어댔다.

"호두야~ 오늘은 아빠랑 산책갈까?"

간만에 평일 휴무를 맞이한 형식은 혼자서 집에있기 지루했던지 호두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형식의 말에 호두는 테스테스 긍정의 의미를 전달했다. 자실장때부터 잘먹고 잘 성장한 호두는 체구가 제법 자라 거처를 거실로 옮겼다. 보는눈이 많아진 탓에 수지를 구슬려 설탕물을 받아먹거나 하는일은 불가능해졌지만 가끔 형식이 지나다니며 던져주는 간식을 받아먹을수도 있었고 산책을 나가서 들실장을 괴롭히거나 친구 실장석들을 따돌림시키며 스트레스를 풀어서인지 집에서 보이는 패악질은 거의 없어졌다.
호두는 옷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하네스를 꺼내 알아서 착용하고 형식을 기다렸다. 잠시후 형식이 울타리 밖으로 호두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완연히 풀려 꽃들이 만개해 공원은 온통 꽃잎으로된 융단이 깔려있었다. 호두는 이리저리 다른 실장석들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곤 자신의 외모가 제일 낫다며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 수지아빠~ 왠일로 이시간에 산책을 나오셨대요."
"태은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평일휴무라서 밖에좀 나왔어요."



초등학교육성회에서 몇번 마주친적이 있는 태은이 엄마가 실장석 안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형식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평소 부잣집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태은엄마는 반에서 제법 잘사는편에 속하는 수지의 아빠에게 친한척 여러가지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듀챠, 오랜마닌 테슈. 머하고 지낸테슈우?"
"안나챠도 오랫만인 테스. 와타시 평소와 같은 테스."


안나는 극성 애오파인 태은가족의 실장석이었다. 실장석을통한 과시욕구가 지나쳤던 태은엄마는 실장석을 성형수술하는데까지 이르렀고 안나의 외모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조금 기괴할정도로 변형되어있었다. 머리카락은 분홍색으로 염색되어있었고 오른쪽 안구도 분홍색으로 염색되어 있었으며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입술이 과도하게 두툼해져 발음이 계속해서 새고있었다. 게다가 옷은 지나칠정도로 프릴과 레이스, 리본이 치렁치렁하게 달려있어 멀리서보면 꽃다발을 하나 세워놓은듯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태은엄마는 사육실장석에게 몸줄을 채워 끌고 다니는것은 학대라고 주장하며 성격나쁜 안나를 항상 하네스 없이 데리고 다니며 길에 똥을 싸지르거나 어린아이들을 위협하는걸 방치하는 진상이었다. 그리고 애오파이면서도 사육실장이 아닌 실장석들은 더럽고 천하다며 구제해야한다고 항상 말하고 다녔다.

"와타시, 재미있는걸 보여주는 테스."

호두는 그렇게 말하더니 형식의 손에 들려있는 하네스를 빼내곤 안나와 함께 공원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멈춰선곳은 주인들이 얼마 떨어지지 않아 안심될정도 거리의 그늘 밑이였다. 그곳에는 작은 들 자실장들이 먹이를 구하러간 친실장을 기다리며 제각각 테치테치 테츄테츄 놀고 있었다.

"오메에타치, 콘페이토가 먹고싶지 않은테스?"

호두가 손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며 자실장들을 향해 말하자 콘페이토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금새 호두 주변을 둘러쌌다. 호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몰려든 자실장들 발치에 가방에서 꺼낸것들을 뿌려 주고는 안나의 손을 이끌고 도망치듯 철쭉나무뒤로 뛰어가 숨었다. 자실장들은 갑자기 생긴 공짜 콘페이토에 신나하며 그들은 신경도 쓰지않은채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서 저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호듀챠, 아까운 코온페이툐를 어쨰서 분츙들에게 쥬는테슈? 저런게 있었슈면 와타시에게나 쥬는테슈!"
"잠시 기다리는 테스. 저건 콘페이토가 아닌 테시시시싯!"


호두의 말에 안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 잠시후 자실장들의 작은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슨일인지 궁금한 안나가 나무줄기 사이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채 자실장들을 바라보았다. 자실장들은 제각각 팬티로 감당하지 못할정도로 운치를 발사하는녀석, 입에 거품을 문채 눈이 회색으로 바뀐녀석도 있었고 계속되는 구토에 몸이 시들어 서있지도 못할만큼 바들거리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안나가 '굉장한 테슈...'라며 혼잣말로 감탄하자 뒤에서 호두가 테싯테싯 웃음을 흘리며 그 아비규환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온페이툐가 아니었던 테슈."
"주택가 근처에 떨어져있는 게로리나 도돈파따위를 주워 모아온 테스. 와타시 공원에 올때마다 이런식으로 분충들을 괴롭히며 노는 테스."
"굉장한 테슈! 와타시도 와타시도 해보고싶은테슈우!!"





안나의 말에 호두는 선심쓰듯 가방에서 들실장구제약품을 몇개 꺼내 나누어 주었다. 안나역시 들실장을 천시하는 주인을 닮아 고귀한 신분이 아닌 더러운 들실장들은 학대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호두의 들실장학대를 보고 신이나서 같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들자실장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테퓨퓨. 재미있는 테슈. 이제 도라가 봐야겠는 테슈."
"그런테스. 와타시도 충분히 운동한 테스."


충분히 들자실장들을 괴롭힌 호두와 안나는 개운한 기분으로 주인들에게 돌아가며 자신은 어떤식으로 들실장을 괴롭혔는지 자랑하듯 이야기하며 웃어댔다. 그리고 주인들이 있는곳이 얼마 안남은 곳까지 걸어온 찰나, 무언가 거대한것이 두 실장석을 덮쳤다. 그 거대한것은 사냥감을 확인하듯 머리만을 들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테...테슈웃!! 네..네코샹인 테슈!!!"
"테...테샤앗!! 어째서 실장석 공원에 고양이가 있는테샷!!!"


애호파들이 안전하게 실장석 산책을 시키기위해 만들어진 티슈공원에는 고양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그물망이나 철망이 쳐 있었으나 들실장들이 공원에 침입하기위해 그물망을 훼손시켜 그 구멍으로 고양이가 들어온 것이었다. 영문을 알수없는 호두와 안나는 버둥거리며 고양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빼액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의 반대쪽으로 도망을치다 공원 깊은곳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안나와 호두가 늦네요."
"그러게요. 안나는 씩씩한 아이라서 하네스없이도 혼자 산책을 잘해서 이런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형식과 태은엄마는 놀러가서 오지않는 실장석들을 찾기위해 공원을 돌아다니며 호두와 안나의 이름을 불러댔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보아도 호두와 안나는 보이지 않았고 그들을 보았다는 사람조차도 찾을수가 없었다.

"안나야!! 엄마여기있어! 우리안나 어디있니!!!"
"태은이 어머니, 일단 공원관리소에도 말 해놓았으니 관리하시는분들이 공원돌아다니다가 발견하면 보호해 주신대요. 시간도 이렇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찾아보고 돌아가도록 해야겠어요..."


형식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날씨는 꽤나 풀렸지만 여전히 해가 짧은데다가 집에서는 형식을 찾는 전화까지 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응~ 여보, 시간이 몇시인데 아직도 안들어와?"
"아, 공원에 호두 데리고 산책 나왔다가 호두를 잃어버렸어."
"뭐? 잘됐네. 빨리 들어와."
"뭐가잘돼... 일단 수지한테는 비밀로 해줘. 병원갔다고."


형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태은엄마에게는 먼저들어가보겠다며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실장석을 찾으려면 공원안에 전단지라도 붙여야하나 생각했었지만 혹시나 그것이 수지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호두를 아끼는 수지가 걱정할것이 뻔해 일단은 비밀로 하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리아퓬 테슈… 더이샹은 못걷는 테슛!"
"테에… 와타시도 마찬가지인 테스…."

호두와 안나는 한참을 걸어도 이곳이 어디인지 가늠할수 없게 만드는 밤의 위력앞에 초라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 아래서는 든든했던 모직원피스도 한밤의 냉기 앞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마에 때문인 테슈! 테큥, 테큥……."
"어째서 와타시의 잘못이 되는 테스? 자기 기분도 조절못하고 깊은곳까지 나를 이끌고 간건 오마에의 잘못이 아닌테스?!"


결국 짜증이 극에 달한 안나의 투덜거림에 두 실장석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자신의 자랑이었던 길고 화려한 드레스밑자락이 흙바닥에 쓸려 지저분해진것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호두는 약간의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안나를 신경쓸만한 여력은 없었다. 둘다 알량한 자존심만 세우며 서로를 외면할 뿐이었다.
그때 호두의 키만한 덤불숲이 바스락소리를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두와 안나는 방금까지 서로 싸운것도 잊은채 서로를 껴안고 공포스러운마음을 위로 받고있었다. 하지만 놀란마음도 잠시, 덤불은 바람에 의해 흔들린것 뿐이란걸 깨닫곤 다시 등을돌려 앉았다.

"…아무튠 오마에가 잘못인 테슈! 잠시 용셔한것뿐인 테슈!"
"알겠는테스. 일단 안전한곳에 숨는테스."


조금은 안심한 호두와 안나는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몸을 숨길만한곳을 찾다 나무 그루터기의 옹이구멍을 발견했다. 겉으로 보기에 성체실장 여러마리가 들어가기에도 충분히 커 보였다. 입구는 바닥에서 조금 높아 서로 돕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으나 그것이 더 안전한느낌을 주고 있었다. 호두는 안나에게 자신이 발을 받혀줄테니 구멍에 들어가면 자신을 끌어올려달라고했다. 안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호두가 바닥을 받혀주자 옹이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호두는 안나가 자신을 끌어올려주길 바랬으나 옹이구멍에 들어간 안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안나챠, 뭐하는테스? 어서 끌어올려주는테스!!"

호두가 작게 소리쳐 불렀으나 안나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두려운생각이 든 호두의 머릿속에서는 잠시 도망을 가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생각을 하기도 전에 옹이구멍에서 불쑥 튀어나온 뭔가로부터 그림자가 호두의 머리위로 드리워졌다.

"테…테스?"
"한마리 더 인데스웅?"


일반적인 친실장보다 더 거대한 그 실장석은 손을 뻗어 호두의 모자를 붙들었다. 실장석의 모자가 떨어지지않게 턱에 고정하는 턱끈때문에 호두는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잡혀올라갔다.

"켁, 켁! 놓아주는테스!"



호두는 한참을 버둥거렸으나 버둥거릴수록 체중때문에 목이 더 졸릴뿐이었다. 끌려올라온 옹이구멍속에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넓직했던 내부에는 들실장인 친실장과 그 자식으로보이는 두마리의 자실장, 한마리의 구더기실장이 있었다. 안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한쪽 구석에 정신을 잃은채 쓰러져 있었다.

"와타시를 놓아주는테스! 와타시를 놓아준다면 와타시의 주인상들이 크게 사례할것인 테스!"
"닝겐타치들은 믿지 않는데스."
"오바상이 알고 온지 모르고온지 몰라도 여기는 애호파 공원인테스. 분명 모두가 실장석들을 사랑하는 테스. 와타시를 보내준다면 와타시의 주인님도 애호파니까 오바상에게 사례할것인테스!"
"닥치는데스. 공원에 버림받은건지 진짜 길을 잃은건진 몰라도 언제 올지 모르는 오마에의 주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오마에타치의 세레브한 원피스를 빼앗고 고기를 뜯어먹는것이 훨씬 이익인데스. 그리고 그전에 와타시의 자들의 놀잇감으로 쓰는데스! 데프프프프!"


들실장은 그렇게 말하고 호두의 옷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들실장들의 옷과 달리 튼튼한 천으로 박음질해 만들어진 원피스는 간단하게 벗겨지거나 조금이라도 찢어지는기색이 없었다. 들실장은 예상보다 튼튼한 옷에 조금 짜증나는듯, 그나마 잘벗겨질것같은 모자를 잡고 세차게 호두를 뒤흔들었다. 이리저리 흔들리자 모자가 벗겨지며 그 여파로 호두는 나동그라져 벽에 부딪혔다.

"아주 튼튼하고 세레브한 모자인데스! 와타시에게 아주 잘어울릴것인 데스우~"

기분이 좋은듯 데프프 웃으며 들실장은 빼앗은 모자의 턱끈을 늘려 꾸역꾸역 머리를 쑤셔넣기 시작했다. 신축성이 있는 턱끈은 어느정도까지는 쭉쭉늘어났으나 결국 한계에 도달한듯 끊어지며 들실장의 관자놀이를 세차게 후려치곤 바닥에 떨어지고말았다. 호두는 그걸보며 작게 테프프 비웃음이 흘렀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데샤아아악!! 어째서 끊어진 데스!!"

들실장이 크게 분노하며 모자를 발로 차버리자 그걸 보고있던 자실장 두마리가 달려와 서로 자기가 쓰겠다며 모자를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멀리나동그라진 호두를향해 눈길을 한번 주고는 들실장은 가까이 쓰러져있는 안나에게 향했다. 어떤 충격으로 실신한건지는 모르지만 바닥에 쓰러져있던 안나는 들실장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조금 정신을 차린듯보였다.

"이게 무슨일인 테슈우…."
"오마에도 그 세레브한 옷을 내놓는 데샤!!!"


역시나 호두의 옷처럼 튼튼한 안나의 드레스는 좀처럼 벗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실장은 이번에는 작정했는지 멈추지않고 안나의 옷을 찢을 기세로 흔들어댔다. 그리고 우연히도 등뒤의 지퍼가 뜯어지며 옷이 벗겨지고 안나는 새하얀 팬티만 한장 걸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테슈웃!!! 와타시의 세레뷰한 드레슈를 내놓눈 테슈아앗! 오마에처럼 뚱뚱한 돼지는 절대 못입는 테슈앗!!!"

안나가 소리지르자 들실장은 듣기 싫다는듯 안나의 얼굴을 몇차례나 발로 세차게 걷어찼다. 연약한 실장석의 얼굴은 금새 찢어져 붉은색과 초록색 피로 얼굴을 물들였고, 안그래도 부풀어있는 입술과 눈두덩이는 몇배는 더 부풀어 붕어같은 몰골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안나는 테슈테슛 바람빠지는 소리를 몇번 내고는 드레스를 포기한듯 울기 시작했다. 들실장은 그제서야 만족한듯 안나의 옷에 자신의 몸뚱이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두의 모자와 마찬가지로 세레브한 실장석의 몸매에 맞춰 나온 드레스는, 관리받지않은 들실장의 펑퍼짐한 몸매에 버티지 못한채 다리 한쪽 집어넣었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찌지직 소리를 내며 찢어져가고 있었다.

"마마! 와타시도 세레브한 원피스가 입고싶은 테챠!!"
"와타시도 와타시도 입고싶은테치!"
"알겠는 데스. 마마가 저 세레브한 파란 원피스를 벗겨서 가져오는 데스. 귀여운 자들은 잠시 기다리는데스야."


들실장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안나의 드레스를 버리고 호두를 향해 걸어왔다. 두려움에 떨던 호두는 문득 자신의 손가방안에 실장구제용약품이 아직 남아있다는것을 떠올렸다.

"오…오바상! 콘페이토를 드리는 테스! 이것을 드시고 와타시는 살려주는 테스!"

호두는 가방에서 꺼낸것을 손을 벌벌 떨며 들실장을 향해 공손히 받치고 있었다. 들실장은 오랫만에 보는 콘페이토에 뒤뚱이는 걸음을 재촉해 다가와 꾸역꾸역 제 입속에 털어넣고 남은것을 자실장들에게 던져 주었다. 호두는 들실장이 어떻게 되는지 힐끔거리며 쳐다봤으나 효과가 늦는지 들실장은 여전히 멀쩡해 보였다. 호두가 준것을 모두 집어삼킨 들실장은 원피스도 마저 벗겨내기위해 다시한번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호두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호두의 원피스는 튼튼하기도 했지만 하네스와 가방에 고정되어 흔들수록 점점더 얽힐 뿐이었다.

"이렇게 안벗겨진다면 죽여서 팔다리를 한짝씩 꺼내 옷과 몸을 분리하는 데스."
"테…테스?!"


호두는 옷이 벗겨지지 않는것에 내심 안심하고 있었지만 들실장의 충격적인 말을 듣고는 공포감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들실장의 묵직한 주먹이 호두의 안면을 강타했다. 악의가 담긴 공격에 호두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멀어지려는 정신을 겨우겨우 붙들뿐이였다. 들실장의 정신없는 주먹질에 정신이 아득해져가던 호두의 귓가에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마!!!!!!! 마마아아!!!"
"테쟈아악!! 운치가 멈추지 않는테챠아아아!!!!"
"장녀, 차녀! 무슨일인 데스!!!"
"운치가 가득한 레후~ 우지챠 식사시간인 레후? 아까도 잔뜩먹어서 배가부른레후~"


자실장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속에서 들실장은 자실장들을 향해 가기위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후 들실장도 어지러움과 구역질이 시작하더니 입으로는 게워져 나오고 총구로는 운치가 발사되기 시작했다.

"구아아아악!! 오마에 뭘 준것인데스으으으!! 구웨에엑!!"

호두는 들실장역시 약효가 듣는걸 보고나서 옹이구멍을 향해 달려가며 안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안나 역시 허둥지둥 일어나 호두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안나챠! 어서 일어나는 테스!!"
"호듀챠! 와타시도 데려가는 테슈!!"
"어서 따라오는 테스!!"


얼굴을 몇대 맞기는 했으나 비교적 몸은 다치지 않은 두 중실장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옹이구멍에서 뛰어내렸다. 운치를 뿜어대던 들실장역시 뒤늦게서라도 둘을 잡기위해 달려가 손을 뻗어보았지만 호두의 머리끈을 푸는데 그치고 말았다. 호두가 좋아하는 머리끈중에 하나였지만 그런데 신경쓸 겨를도 없이 도망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달아난 두 중실장은 다리가 아플만큼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일이 벌어지는지, 미천하고 더러운 들실장들에대한 분노와 집에대한 그리움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엄마상… 보고싶은 테슈우…테에에엥, 테에에엥!!”
“테스…”


안나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호두도 작게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에는 너무 이른거 아닌데스?”

호두의 한숨소리가 끝나자 어떻게 따라왔는지 들실장이 덤불을 헤쳐나오며 말했다. 들실장은 운치와 나무에 긁힌 상처, 구토의 흔적으로 온몸이 볼성사나웠지만 두 중실장에 대한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충분히 위협적이였다. 더이상 걸을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호두와 안나에게 드디어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정도였다.
그때 들실장의 뒤에서 다른 실장석이 하나 튀어나왔다. 독라의 모습에 비닐봉투를 뒤집어 쓴것이 꽤나 흉측한 몰골이었지만 호두와 안나를 따라온 실장석과 대등한 덩치였다. 두 들실장으 기괴한 모습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러대는순간 비닐을 뒤집어쓴 독라실장석이 나무꼬쟁이를 들실장에게 들이대며 위협을 했다.


“오마에, 살고싶다면 물러나는 데스. 오마에같이 엉망인상태는 쉽게 쓰러트릴수 있는 데스.”
“데샤아아아!!! 이 분충들은 와타시의 사냥감인 데샤!! 독라분충은 저리 꺼지는데스!!”




들실장은 위협적으로 소리질렀지만 도돈파의 영향으로 이미 온몸의힘이 남아있지 않는 상태였다. 정신력만으로 호두와 안나를 어떻게든 추적했지만 이대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할수도 있어보였다. 소리는 질러대지만 이미 싸울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것을 직감한 독라실장은 호두와 안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둘 역시 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죽음의 공포앞에 비명만 질러댈 뿐이었다. 독라실장은 호두의 뺨을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오마에, 정신차리는 데스. 와타시 기억나지 않는데스?”
“……테데데데?”


호두는 기억해내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자신이 알고있는 들실장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해치지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들자 숨을 고르며 독라실장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거칠거칠한 피부에 이곳저곳 들생활을 보여주는 흉터가 가득한 얼굴. 그리고 뭔가로 지져져 이곳저곳이 둥글게 화상을 입고 귀는 심지어 구멍까지 뚫려있는

“오바상…지난겨울의 엄지챠와 함께있던…”
“맞는데스. 특이한 머리색이 기억에 남았던데스. 역시 그때 그 실장석이 맞는데스. 어서 따라오는 데스.”


독라실장의 뜻밖의 친절함에 따라가도 되는지 내심 걱정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여기 이대로 앉아있다가 들실장의 손에 죽는것보다 조금이라도 안전해보이는 독라실장을 따라가는것이 그나마 나아보였다. 호두는 여전히 패닉상태인 안나의 손을 잡아끌고 독라실장을 따라갔다.

“오바상 어째서 와타시타치를 구해주는테스?”
“오마에의 주인상이 주신 카라멜에 보답하는것인 데스.”


독라실장은 뜻밖의 대답을 내 놓았다. 추운겨울 수지의 변덕으로 던져준 한알의 캬라멜에 보답이라니.
항상 풍족했던 호두는 짐작할수 없었겠지만 그때 그 캬라멜은 추위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고있었던 독라실장에게 한가닥 삶에 희망을 주는것이었다. 그것을 항상 가슴속에 품고살던 독라실장에게 공원에서만난 호두는 무거운 가슴속 짐을 내려놓게하는 기회처럼 느껴졌었다.



또 한참을 걸어 독라실장이 멈춘곳은 그가 살고있는 애호파골판지 상자였다. 애호파들이 자주 찾는 티슈공원에는 이런식의 애호파제작 골판지집이 많이 있었는데 바깥생활을 하다 공원에 들어온 실장석들에게 보금자리와 삶의 터전이 되어 주었다. 애호파들이 사육실장들과 즐겁게 뛰놀기위해 만들어진 공원에 들실장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것이 약간의 충돌을 일으켰었으나 애초에 말그대로 ‘애호파’들은 대부분 들애기들도 안전하게 살수있고 지저분한 종이골판지집보다 훨씬 미관상 좋다며 찬성과 후원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애호파들의 사료조달로 사육실장들을 공격하지 않아도 딱히 먹고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 분충들을 제외하고는 들실장과 사육실장이 어울려 노는 말그대로 실장석들의 낙원이었다.
(이와중에 일부 분충을 만난 호두와 안나는 극히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할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것과 별개로 사육실장들중에서도 세레브한 삶을 살아왔던 호두와 안나에게 이 골판지집은 더럽고 냄새나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쓰레기통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마마! 오늘은 왜이렇게 늦은 테츄!”
“캬라멜쨩, 오래기다린 데스. 식량을 욕심껏 주워오느라 늦은데스.”
“테?? 이 오네챠들은 누구인테치?”


애호파골판지 상자에 들어가자 캬라멜이라 불린 자실장이 독라실장의 품안에 안기며 물었다. 카라멜은  사실 독라실장의 자가 아니었으나 독라실장이 애지중지 키워 토실토실하게 살이올라 제법 귀여워보였다. 독라실장은 캬라멜을 안고 둥기둥기 해준뒤 둘이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밤은 여기서 자는 데스. 내일이 되면 오마에타치들이 살만한 골판지상자를 알아봐주는 데스. 그리고 내일부터 공원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는데스.”
“오바상! 와타시타치는 버려진것이 아닌테스!”
“…? 그러면 어째서 공원을 헤매고 있었던것인 데스?”


독라실장이 의아하다는듯 물었다. 호두는 독라실장의 반응에 크게 고개를 도리질치며 자신들이 공원 자실장들을 괴롭힌것을 제외하고 이밤중에 공원을 헤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있던 독라실장은 뭔가 골똘히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이 독라실장역시 사육실장석이었다. 비록 호두나 안나처럼 세레브한 삶을 살던 실장석은 아니었으나 나름 연두라는 인기있는 실장석이름을 가졌었다. 하지만 성체실장석이 되고나서 주인가족의 변덕으로 인근 야산에 버려졌다가 집으로 돌아갔을땐 이미 가족들은 귀엽고 똑똑한 강아지를 연두 대신에 예뻐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이 돌아온걸 어필했으나 못생기고 귀찮은 실장석따위는 필요없다는말에 확인사살을 당하고 터벅터벅 걸어나왔던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자신처럼 버림받은것에 대해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건 아닌가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꽤나 조리있는 호두의 설명에 신빙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 진정으로 이들의 주인이 찾기를 원한다면 제일먼저 공원관리실에 말을 해두었을거란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일 공원 관리실까지 데려다 주는데스. 일단은 한숨 자는 데스.”
“오바상 배가고푼 테슈우…. 몬가 먹을게 없는테슈?”


긴장이 풀린 안나가 칭얼거리자 독라실장은 상자 한구석에 있는 보존식 상자에서 애호파에게 받은 실장푸드를 몇개꺼내와 호두와 안나에게 건네주었다. 배가고픈 두 중실장은 허겁지겁 푸드를 입안에 밀어넣었지만 이내 재채기와함께 뱉어내고 말았다.

“이게 무슨맛인 테슈….”

평소 호두와 안나가 먹던 실장푸드는 엄선된 유기농곡물과 사람이 먹는 등급의 고급고기 등으로 배합된 상등급의 사료였다. 노릇한 갈색의 적당히 촉촉한 푸드는 사람의 입맛에는 어떨지 몰라도 제법 먹음직스러운 향이 났었다. 하지만 독라실장이 가져온 푸드는 보존성을 높이고 대량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는것으로 딱딱하고 텁텁한 식감에 약간 쉰듯한 맛이 나 마치 썩은 톱밥을 씹는것 같았다.

“테츄? 우마우마한건데치….”

안나의 투정에 캬라멜이 조심스럽게 작은소리로 중얼거렸다. 독라실장은 문득 뭔가 생각난듯 가방으로 사용하는 비닐봉투를 가져와 호두와 캬라멜앞에 펼쳐놓았다. 그 안에는 독라실장이 공원의 쓰레기통을 뒤져 구해온 음식들이 들어있었다. 꽃구경을 하러 왔다가 사람들이 먹고남긴 도시락 잔반, 먹다가 질려서 버린 빵조각, 몇방울 남아있는 음료수캔 등 오늘 버려져 그나마 상태가 좋은것들이었다. 음식물 찌꺼기고 쓰레기같은 보존식이고 가릴상황은 아니었지만 호두와 안나는 비닐봉투 안에서도 상태가 좋아보이는것만 골라서 집어먹었다. 한참 골라먹던 두 중실장은 더이상 고를게 없을때즈음 식사를 멈추었다. 깔끔떠는 호두와 안나를 보고 독라실장은 그나마 상태가 좋아보이는 수건을 골라 덮고 잘수있도록 잠자리를 마련했다. 안나는 먼지가 난다거나 쉰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렸지만 이불을 덮자마자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코를 골고 자는 안나옆에서 호두는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호두는 뭔가 계속 바스락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독라와 자실장은 자고있고 안나가 일어나 보존식을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해도 토할것 같다는둥 너무 맛이 없어서 줘도 안먹는다는둥의 헛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결국 굶주림을 이길수는 없었다. 말리지 않으면 보존식을 모두다 먹어치워 독라실장을 분노케할거란 생각이 들자 호두는 조심스럽게 안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나챠, 다먹어버리면 오바상이 화낼수도 있는테스.”
“호…호듀챠… 일어난테슈? 와타시 몇개 안먹은 테슈.”


안나는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툭툭 털며 말했다. 호두도 그런 안나를보며 공복감이 들었지만 어제의 사료맛이 떠오르자 이성이 본성을 억누르는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잠시후면 집으로 돌아갈거란 생각에 배가 고프지만 조금 더 참을 수 있을것 같았다. 호두와 안나가 두런대는 소리에 독라와 자실장도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안나는 재빠르게 아무것도 안한듯 이불속에 쏙 들어가 방금 눈을뜬척 하고있었다.

“다들 일어난 데스? 이제 공원관리실로 데려다줄테니 주인을 만날 준비하는데스.”
“마마! 와타시도 데려가는테츄?”
“그렇게 원한다면 캬라멜쨩도 따라오는 데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오랫만에 나들이 하기 좋을것인데스.”


캬라멜이 기쁜듯 뺨을 부비며 방긋방긋미소를 짓자 독라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독라는 작은 비닐봉투를 하나 들고 나들이간식과 호신용 꼬챙이를 하나 챙겨넣었다. 나갈준비를 하는 독라를 보며 호두는 한쪽만 풀어진 머리를 보며 볼품없다고 생각해 나머지 한쪽도 풀었다. 그리고 골판지상자 한쪽에 비치된 머그컵안에 물을 손으로 적셔 지난밤 몸에 묻은 운치와 피와 흙을 닦아냈다.

‘와타시는 항상 아름다워야 하는 테스. 그것이 저 분충들과 와타시의 다른 특별한 증거인테스.’

호두가 몸단장을 하는동안 독라는 두건과 팬티밖에 입지 않은 안나에게 손수건을 대충 묶어 원피스를 만들어 주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손수건이지만 반독라의 모습으로 주인을 만날수 없다고 생각한 안나는 조용히 손수건원피스를 입었다.




준비가 대강 끝난 실장석들은 골판지상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젯밤의 공포는 다 잊어버릴만큼 따사로운 햇살이 환하게 쏟아져내려오고 있었다. 햇볕에 눈을 찡그리고 나와 주변이 또렷하게 보일때즘 익숙한 실루엣이 상자앞에 있었다. 어제 호두와 안나를 공격했던 들실장이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

“어젯밤에는 신세를 졌던데스. 하지만 오늘은 쉽지 않을것인 데스!!”

세마리의 들실장들은 각각 못, 나무꼬쟁이, 날카롭게 부러진 나무젓가락을 들고 위협을 하고있었다. 독라실장은 어젯밤 기회가 있었을때 들실장을 죽이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비닐봉투속에서 나무꼬챙이를 꺼냈다. 그리고 중실장들앞으로 앞서나와 그들을 등 뒤로 숨겼다.

“캬라멜쨩, 잘 듣는데스. 마마와 아마아마한 물이 든 캔을 발견한곳을 기억하는 데스?”
“기…기억하는 테츄….”
“오네챠들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가는 데스. 마마는 금방 따라갈것인 데스.”
“오바상 같이가는 테슈우! 우리끼리는 위험한테휴!”


혼자남아 들실장들을 상대하겠다는 독라의 말에 캬라멜이 안절부절 못하자 안나도 거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들실장들을 독라혼자 상대한다고해도 세마리를 모두 붙잡아둘수는 없었다. 하지만 셋다 도망친다고해서 생존확률이 올라가는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한마리라도 더 발을 붙잡아야한다는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독라는 문답무용으로 제일 앞에있는 동료들실장의 눈을 향해 꼬챙으를 내질렀다.



수적열세에 중실장들을 바치고 빌기라도 할줄 알았던 독라가 아무말도없이 불시에 공격을 시작하자 제일앞에있던 동료들실장은 무방비 상태로 녹색눈을 공격 당했다. 눈이터지며 피가 고이자 형체조차 재대로 갖추지못한 미성숙한 구더기들이 총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비명을 지르며 눈을 공격당한 동료실장석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독라는 내심 안도하며 다음 공격할 녀석을 탐색했다. 3마리나 몰려왔으나 팀워크도 없이 그저 오합지졸이 모여있을뿐인 들실장들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독라는 그때를노려 나무꼬챙이를 뽑아 어제 공격했던 대장들실장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트려놓은 비닐봉투에 발이 미끄러져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다리에 얕은 상처를 내고 넘어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나머지 두마리의 들실장은 자세를 가다듬고 독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아무것도 못한채 발만 동동 구르던 캬라멜은 가까이 떨어져있던 돌멩이를 주워 마마를 공격하는 들실장에게 던졌다. 운좋게도 머리에 사육실장의 분홍리본을 빼앗아 단 동료들실장의 뒷통수에 명중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의를 끌었을뿐 아무 타격도 주지 못했다. 자실장의 돌팔매질에 아픈것보단 짜증과 분노한 분홍리본실장은 고개를 돌려 캬라멜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려움에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눈을 꼭 감은 캬라멜을 보고 호두는 캬라멜이 죽거나 다쳐서 자신들을 안내해주지 못하면 집에 못돌아갈거란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뇌리에 꽂혀들어 냉큼 캬라멜을 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독라는 곁눈질로 그 광경을 보았으나 지금 분홍리본실장을 공격하러 달려가봤자 저들이 대장 들실장의 먹잇감이 될거라는 판단에 대장을 계속해서 상대했다.

“오마에 어째서 저따위 사육실장들의 편을 드는 데스? 혹시 저 분충들의 감언이설에 속은것인데스?”
“와타시는 은혜를 갚는것 뿐인데스. 그리고 오마에처럼 사육실장들을 공격하는 분충이 공원에 생겨난다면 다른 들실장들도 생존에 위협이 되는데스.”


두 실장석들은 몇마디 주고받았다. 워낙의 근거리의 싸움이라 꼬챙이를 찔러 넣는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두 실장석은 각자 무기를 내던지고는 주먹질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오마에타치!! 거기서는 데스!”
“테슈우우! 무서운 오바상이 바로 등뒤까지 따라온 테슈! 어떻게하면 좋은 텟큐우웅!”
“달리면서 입벌리면 더 숨차는 테스! 일단 캬라멜쨩이 가라는데로만 달려가는 테스!”


독라실장이 인간들의 앞에 드러나거나 인간들이 들실장을 보게된다면 혐오하거나 학대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호두와 안나를 데려다주러 이른시간에 출발한것이 오산이였다. 오히려 사육실장으로 보이는 실장석들이 들실장에게 쫒기고 있는걸 인간들이 발견했다면 그들을 구해줬을지도 모를일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니기에 이른시간인데다 추운날씨의 공원에는 그들을 도와줄이는 단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중실장 중에서도 제법 크기도 크고 잘 자란 호두와 안나지만 체격이 훨씬크고 팔다리도 긴 성체 들실장의 앞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분홍리본실장은 월등하게 긴 다리로 땅을 쿵쿵 울리며 호두와 안나의 등뒤로 따라붙었다.



“도망쳐봤자 손바닥 안인데스! 특히나 엄지실장놈은 노리개로 쓰다가 팔다리를 한개씩 뜯어먹고 마지막에는 두눈알을 뽑아버릴것인데스!!”
“테츄우….”




분홍리본실장의 위협에 캬라멜은 작게 몸을 떨고있었다. 캬라멜이 오들오들 떠는것을 느낀 호두는 조금더 힘을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은 턱끝까지 차 있었지만 여기서 멈추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것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폭행의 기억은 뼈에 사무치도록 두려운것이었다.

“그리고 너 노란머리는 그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서 와타시의 총구를 닦는데 쓸것인데스! 아니, 머리카락을 뽑는게아니라 머리통을 뽑아서 쓰는데스!! 사육실장의 머리통으로 총구를 닦으면 아주 세레브한 기분이 들것인데스!! 데프프! 그리고 분홍머리는 와타시의 총구전용 노예로 쓰는데스! 와타시가 운치를 지릴때마다 총구를 핥아서 닦게 할것인데스!!”

온갖 저주와 협박의말을 등뒤에서 지껄여대며 분홍리본 실장이 성질을 부려댔다. 시끄럽게 꾸악거리는 소리에 다른 실장석들도 잠에서 깰 정도였지만 어느누구도 공원에서 제일가는 불량배 실장석들의 눈밖에 나고싶지 않아 나서는이가 없었다. 다들 돕지도 거들지도않은채 조용히 숨죽이고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안나는 들실장의 협박에 울면서 달리다 겁에질린나머지 사육실장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한적없는 빵콘을 거하게 하고말았다. 팬티가 묵직해진데다가 걸리적거려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안나를 보며 분홍리본실장은 기회다싶어 속도가 떨어진 안나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뒤로 잡아끌어 넘어트렸다.


“테슝! 오바상 살려쥬는 테슈아앙! 와타시는 총구같은거 핥을지 모르는텟슝…텟큥…텟큥….”
“드디어 한놈잡은 데스!! 일단 도망못가게 팔다리를 먼저 부러트리는 데스…데프프프!”
“테쟈와아아앙! 호듀챠!! 어서 도와쥬는 테슈우!!! 와타시를 버리고 가면 안되는테슈와아아아!!!!”



안나가 붙잡히자 호두역시 발걸음을 멈칫하고 말았다. 정확히는 안나의 비명소리에 겨우겨우 버티고있던 다리가 풀려버린것이었다. 분홍리본실장은 그런 호두는 안중에도 없다는듯 안나를 붙잡은것에 기분이 좋다는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먼저 버둥거리는 안나를 제압하기위해 더러운 엉덩이로 얼굴을 짓누르듯 올라타 앉았다. 투실한 궁둥이살과 더러운 운치가묻은 팬티, 역겨운냄새에 안나는 숨이막혀 비명도 못지른채 몸통을 튕기며 사지를 뒤흔들고 저항할 뿐이었다. 분홍리본실장은 그런 안나의 저항따위 아무렇지않다는듯 한손으로는 몸이 흔들리지않게 가슴께를 꾸욱 누르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안나의 오른팔을 잡아뜯었다. 잠시 조용하던 안나는 얼굴이 파묻힌 상태에서도 고통때문인지 좌우로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를 질러댔다. 코와 입이 살에 묻혀 압박당하는 상태라 소리는 작았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그 처절한 절규가 드러내고 있었다. 저항하며 온몸을 뒤흔드는 안나의 얼굴에 총구가 비벼진 분홍리본실장은 흥분이 되었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어울리지않는 자실장목소리로 신음을 흘려댔다. 그리고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진 안나의 다리도 잡아 뜯기위해 잠시 둔중한 엉덩이를 들고 다리를 붙잡았다. 겨우 숨을 쉴수있게 된 안나는 분홍리본실장의 운치와 총구에서 나온 분비물, 그리고 자신이 흘린 붉고 푸른 눈물에 얼굴이 뒤범벅되어 호두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구하지않는것에 대한원망, 더 나아가 공원에서 길을 잃게 만든것에대한 분노. 하지만 그것들도 잠시, 다리가 뜯어져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는것밖엔 안나가 할 수 잇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호두는 달아나야 하지만 다리에 아무 힘이 들어가지않아 일어서는것조차 불가능했다. 자신의 신체의 한계까지 쥐어짜내 달린것도 있었지만 저 크고 위협적인 들실장의 앞에서는 저항조차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버릴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온몸을 사시나무떨듯이 떨며 움직이지 못하는 호두를 보며 캬라멜이 조심스럽게 호두의 몸을 흔들었으나 호두는 공허한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안나의 한쪽팔과 한쪽다리를 뜯어낸 분홍리본실장은 안나가 더이상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숨만붙어 온몸에서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는걸 보곤 도망치지 못할거란걸 확신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호두를 향해걸어갔다. 분홍리본실장이 다가오는것을 보며 호두의 머릿속에서는 온갖생각이 뒤얽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지만 단 하나, 살아남아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것만이 다시한번 또렷하게 번뜩거렸다.

“오네챠, 어서 달아나야 하는테츄우!!”

캬라멜이 뒤뚱뒤뚱 다가오는 분홍리본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두는 흐린 눈동자를 하고 잠시 캬라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캬라멜쨩, 공원관리실이 얼마나 남았다고 한 테스?”
“아주 조금만 더 뛰어가면 되는 테치! 저 이상한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사이로 달려가서 해님이 뜨는쪽으로 가면 끝나는테치!!”


캬라멜은 호두의 기운을 북돋아주기위해 최대한 빠르고 자세하게 공원관리실로 가는 길을 설명했다. 호두는 캬라멜의 말에 기운이 돋은건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는듯 했다. 그 얼굴을 본 캬라멜은 드디어 호두가 정신을 차린것인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호두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캬라멜쨩, 특별한 와타시를 위해 오마에게 희생하는 테스. 공주님을 위해서 하녀가 죽는것은 당연한 일인테스.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져있는 테스.”
“테치?”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한 캬라멜을 보며 호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캬라멜이 버둥거렸지만 체격차이가 한참인 중실장의 품에서 자신이 원하는걸 달성하는것은 무리였다. 호두는 재빠르게 일어나 분홍리본실장을 향해 캬라멜을 던졌다. 분홍리본실장은 갑작스러운상황에 판단력이 잠시 흐려진듯 주춤거렸고 호두는 그 틈새를 놓치지않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캬라멜이 말한곳으로 걷는거나 별다를것없는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캬라멜은 배신당한 충격도 잠시,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도망을 쳐야한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그리고 생각을 마치기도전에 총알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분홍리본실장은 어느녀석을 따라가야하나 잠시 생각하다 체력이 남아있는 자실장을 먼저 덮쳐야겠다고 결론내렸다. 제아무리 빠른 자실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체실장에게는 도망을 치는것은 불가능이였다. 캬라멜은 도망친지 얼마 되지않아 금새 분홍리본실장의 손에 붙잡혔다.

“오마에, 붙잡히면 어떻게된다고 와타시가 그랬는지 기억나는 데스요?”
“테, 오바상 와타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테츄!”
“생각해보니 아까 한말대로는 하지 않는 데스.”
“테…. 텟츙?”


더이상 도망치지 못하게된 캬라멜이 아첨하자 분홍리본실장은 지저분한 얼굴로 언청이입이 찢어져라 웃어댔다. 캬라멜은 아주잠시 자신의 아첨이 성공한건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잠시후 분홍리본실장의 뱃속에서 소화액에 죽을때까지 고통스럽게 녹아가며 그들을 따라나선것을 후회했다.



캬라멜을 집어삼킨 분홍리본실장은 안나를 향해 다가와 상태를 한번 살피고 혹시라도 나타날지 모르는 인간들의 눈에 띄지않게 덤불밑에 숨겼다.

“이 사육실장은 와타시의 사냥감인데스! 보고있는 오마에타치는 명심하고 절대 손대지 마는데스! 만약에 와타시가 돌아왔을때 이곳에 이 사육실장이 그대로 있지 않는다면 도둑놈이 아니라도 누구라고 할것없이 모조리 죽여버리겠는데스! 못들은놈들에게도 전달하는데스!”

혹시나 모를 사냥감의 도난에 주변실장석들을 향해서 으름장을 놓은뒤 들실장은 호두가 향한곳으로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얼핏들었지만 분명 공원관리실로 향한다고 했다. 자실장을 잡기위해 시간을 조금 소비했지만 걷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속도로 도망친 중실장따위는 금방 따라잡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인간들이 나타날 시간이다. 분홍리본실장은 지름길로 가로질러가 공원관리실 옆에 매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후 자신의 손에 들어올 사육실장을 그리며 분홍리본실장은 어떻게 괴롭혀야할지 즐거운 마음으로 수풀속을 향했다.


호두는 캬라멜이 가르쳐준대로 공원관리실을 향해 착실히 향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구부러진 나무사이로 빠져나오자 눈에 익숙한 산책로가 호두를 맞이했다. 고양이 방지 철창이 쳐진 담장 너머로는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등 어디론가 향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공원 안에서 조깅을 하는 인간, 각종 운동기구에서 몸을 풀고있는 인간들. 인간들의 모습이 보이자 호두는 뭔가모를 북받히는 감정에 양 눈에서 색이다른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여기서 멈출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호두는 옷 소매로 눈물을 슥슥 닦고 공원관리실을 향해 달려갔다.

“닝겐상!! 닝겐사앙!! 와타시는 여기있는 테스!! 와타시를 구해주는테스!! 아빠상과 수지오네챠에게 보내주는테스!!!”

공원관리실의 안내창에 앉아있는 관리인의 얼굴을 보며 호두가 소리질렀다. 중간에 넘어지고 굴러 다리고 얼굴이고 생채기 투성이였지만 저 닝겐상이 자신을 발견해주기만 한다면 집에 돌아갈수 있을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공원관리실이 눈앞에 다가오자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흐르는것을 막을수가 없었다. 호두는 저 닝겐상에게 자신이 왔다는것을 알리기위해 문을 두드리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름길로 달려온 분홍리본실장이 호두의 팔을 비틀어잡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금준은 졸린 얼굴로 공원을 향해 뚫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오기전에 간단한 공원청소라든가 쓰레기통 비우기, 방문객들이 신청한 시설보수등 할일이 많지만 오늘따라 아무일도 하기 싫었다. 이럴때 로또맞아서 어디 여행이라도 간다면 좋을텐데라고 혼자 망상을하며 기분좋은듯 히죽히죽 웃어댔다. 그때 금준의 눈에 어디서 본듯한 실장석이 하나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실장석치곤 밝은 눈동자색, 그리고 일반실장석들에선 볼수없는 노란 머리카락. 어디 흙밭에서라도 굴렀는지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지만 이건 분명 어젯밤에 애호파 남자가 찾아만 준다면 사례한다했던 그 실장석이 분명했다. 금준은 이게 왠떡인가 싶어 벌떡 일어나 지저분한 상태의 실장석을 잡기위해 면장갑을 끼고 잠시 붙잡아놓을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금준이 본것은 뜻밖의 상황이었다. 머리에 분홍색 리본을 달았지만 들실장이 확실해 보이는 성체실장이 사육실장을 죽일듯이 후려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육실장은 아무 저항도 못한채 들실장의 주먹에 맞으며 맥아리없는 신음소리만 텟, 텟, 내고 있었다. 상황판단이 빠르게 된 금준은 들실장을 발로 걷어차버렸으나 사육실장의 멱살을 거세게 잡고있던터에 들실장과 사육실장이 같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덕분에 들실장은 사육실장을 놓치게 되었다.

“야이 들실장놈아, 내 용돈을 다치게 하면 안되지.”

나가떨어졌던 분홍리본실장은 인간이 나타나자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걸 직감하고 위협한번 하지 않은채 덤불속으로 도망쳤다. 금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호두를 살짝 집어 양동이에 넣고 주머니를 뒤져 어제 형식이 주고간 명함을 꺼냈다.

“이야~ JS상사 김형식과장…. 어쩐지 돈도 많아보이고 실장석도 비싸보이더라니 굴지의JS상사 상사맨이었고만. 용돈좀 두둑히 줬으면 좋겠는데.”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한번 번호가 맞는지 확인을 한 후 금준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금준에게서 도망친 분홍리본실장은 호두를 붙잡지 못한게 이내 아까웠지만 아쉬운대로 하나라도 건졌으니 만족해 하며 안나를 숨겨둔 덤불로 향했다. 분홍리본실장은 가늘게 숨을 흘리는 안나를 거꾸로 뒤집어 들고 남아있는 한쪽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독라와 대장이 싸우던곳으로 향했다. 당연히 대장이 이겨서 독라를 죽이고 따라올거란 생각을 했지만 뜻밖에도 계속 오지않는것이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독라의 집으로 향해 분홍리본실장이 발견한것은 대장의 시체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데스?”

분홍리본실장이 놀란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형체도 못갖춘 미숙한 구더기실장을 총구에서 흘리듯 낳고있는 동료실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오마에 괜찮은데스? 대장은 어디로간데스?”
“대장은 독라에게 죽임당한데스. 그보다 와타시의 왼쪽눈을 뽑아주는데스. 이대로는 와타시가 죽어버리는 데스.”
“알겠는데스.”


분홍리본실장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꼬챙이를 집어 동료실장의 왼쪽눈을 파냈다. 눈알이 없어지자 더이상 미숙한 자를 낳지않게 되자, 다행이라는듯 애꾸실장은 한숨을 쉬었다. 대장이 없어졌으니 둘이서 뭉쳐야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분홍리본실장은 안나의 하나남은 팔을 뜯어 애꾸실장에게 먹으라며 건네주었다. 분홍리본실장과 애꾸실장은 대장이 죽었으니 옹이구멍그루터기는 자신들이 갖자고, 그리고 대장의 자들은 더이상 자를 낳지 못하게된 애꾸실장이 데려다 키우겠다는등의 이야기를 하며 사이좋게 서로를 의지해 공원 제일 깊은곳으로 향했다.

“야 실장석아. 이따가 너희 주인이 데리러 온대. 원래는 그냥 보내줘도 상관없지만 좀 멀끔하게 하고 있어야하지 않겠냐?”

금준이 호두에게 우유에 적신 빵조각을 주며 말했다. 호두는 힘없이 늘어져 빵조각에 흡수된 우유를 쪽쪽 빨아먹으며 흐물거리는 빵 끄트머리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딱히 실장석을 키우는것은 아니지만 애호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이것저것 주워들은것이 많았던 금준은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호두가 먹을수있게 준비해 주었다. 이대로라면 오후쯤에는 완전히 회복되어 주인을 만날 수 있을것이고 자신의 실장석을 잘 관리해준 본인에게 좋은 보상이 있을것이라고 금준은 생각했다. 금준의 예상대로 호두는 오후가 되자 제법 쌩쌩해져 양동이 안에서 조금씩 돌아다니고 뭐라뭐라 테스테스 지껄이고 있었다.

“형님, 저 왔어요. 어디를 고치면 될까요?”
“진호씨 왔어요? 공원 동쪽 급수기가 막혔다든가 하던데, 그것 말고도 지금 관리실 문짝도 고장나서 툭하면 열리고, 또 이것저것 할게 많아요.”


시설보수를 담당하는 진호가 오자 금준은 반갑게 맞으며 할일을 이것저것 이야기 했다. 하지만 워낙에 고칠것이 많아 일일히 외우기에는 금준이 생각해도 어려울것 같았다. 금준은 호두를 힐끔보고 휴대폰액정의 시간을 보더니 어디 도망가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진호와 함께 관리실 밖으로 나갔다.



호두는 금준이 진호와 나가고 양동이 안에 앉아서 아빠상과 수지오네챠가 오기전에 깨끗이 몸단장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옷과 몸에 달라붙은 먼지와 흙을 털수있는데까지 털어내고 드러난 피부에 떨어지지않는 오염은 혀로 할짝였고, 뭉툭한 손에 침을 묻혀 얼굴을 슥슥 닦아냈다. 자신과 같은 특별하고 세레브한 실장석은 언제 어디서나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득 살아남기 위해서였지만 캬라멜과 안나를 버리고 온것이 떠오르자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같이 특별한 실장석을위해 희생당한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자랑거리였을 것이라고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크게 다친것없이 살아남은것. 그것이 바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증거일것이었다.




“와타시는 특별한테스. 그래서 살아남은테스.”

호두가 혼자서 중얼거리는동안 열려있던문이 찰칵-하며 닫히는 소리를 냈다. 분홍리본실장이 여기까지 따라온것인가 겁이난 호두는 몸을 잔뜩 웅크린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인간의 발소리보다는 훨씬 작지만 그것은 자신보다 덩치가 클것이란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혹시나 있을 인간을 겁내는건지 한참을 조심스럽게 여기저기를 살피던 그것은 점차 양동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탈분하지 않았지만 한번만 더 들실장들을 만나면 죽을것이라는 생각에 빵콘을하려는 본능과 겨우겨우 총구를 쥐어누르는 이성이 서로 싸워대고 있었다. 어째서 닝겐이 나가 돌아오지 않는건지, 어째서 아빠상과 수지오네챠는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지 호두는 공포와 함께 분통터지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멈추고 양동이위 동그란 하늘위로 익숙한 독라실장의 얼굴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성역시 놓아버려 운치를 브릿브릿 흘리고 말았다. 애써 단장한 몸이 더러워지자 호두는 살짝 짜증이 난다는듯이 독라를 쳐다보았다.

“…캬라멜쨩은 어디있는……데스…?”

독라의 말에 호두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말을 할수가 없었다. 독라는 허탈한 얼굴로 좁은 양동이 안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캬라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은혜를 갚고싶었을뿐이었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걸까. 사육실장이었던 독라는 안구타투를 해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었고 우연히 길을 떠돌던 엄지실장과 인연이 닿아 함께 살아온것이 벌써 몇개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그누구보다 애지중지 키워오던 아이였다. 비록 이름은 닝겐상이아닌 자신이 지어준 것이지만 마마가 준것이라면 뭐든지 좋다며 밝게 웃던아이.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 조막만한 몸뚱이로 달려들어 자신을 지키려했던아이. 독라의 양쪽 눈에서 색이다른 눈물이 넘쳐흘렀다. 혹시나 닝겐상들에게 들킬까봐 크게 소리내지도못하고 끄윽끄윽거리며 오열하는 독라의 눈물이 양동이에 한방울씩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호두에게는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하는 지루한 시간일 뿐이었다. 그때 창문가에서 금준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소리가 건너들어왔다. 금준이 들어오며 이 추하고 지저분한 독라를 쫒아내줄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호두는 어서빨리 금준이 관리실안으로 들어오길 바랬다.

“오바상, 닝겐상이 들어오면 위험한테스. 벌써 밖에 있는것 같으니 어서빨리 도망치는 테스.”
“끄윽…끄…뎃킁…뎃킁…”
“……자는 또 낳으면 되지 않는 테스? 일단은 오바상의 몸부터 지키는테스!”


호두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독라는 듣는지 마는지 소리죽여 오열할 뿐이였다. 특별하고 세레브한 자신을 지키다 죽은것이니 캬라멜쨩도 행복할텐데 어째서 독라는 이다지도 서러워 하는지 호두는 알길이 없었다.

“캬라멜쨩은…그래! 낙원! 실장석 낙원에 갔을것인테스. 스시와 스테이크, 콘페이토가 가득한 곳인테스! 착한일을 하고 죽었으니 확실한테스! 그렇게 정해진테스! 그러니 오바상은 새로운 자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테스!”

호두는 독라실장이 듣기 좋을만한말들을 대충대충 생각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이 독라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가 꽂힌다는것을 알수가 없었다.

“……캬라멜쨩은…역시나 착한일을 한데스?”
“그런테스! 캬라멜쨩은 하녀처럼 특별한 와타시를 위해 대신죽은테스!”
“……? 무슨소리인데스까?”


호두는 아차싶은마음에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얼버무리기위해 이것저것 말을 더 내뱉었으나 독라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사실 가만히 있었다면 대신죽었다는말에 착한 캬라멜이 사육실장오네챠를 지키고 죽었다고 생각할수있었겠지만 자신은 특별하다느니 캬라멜을 하녀라고 지칭하느니, 그리고 그걸 변명한답시고 늘어놓는말들은 독라에게 의구심을 들게 만들뿐이었다.

“정확하게 다시 말해보는데스. 캬라멜쨩이 어떻게 된 데스?”
“캬…캬라멜쨩은….”



호두는 곁눈질로 창밖에 서있는 금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누구보다 똑똑한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자신이 똑똑하다고 과신한것이 이번일의 원흉인것을 깨닫지 못한채 호두는 독라실장과 캬라멜에대해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잠시후 닫힌 문의 손잡이를 찰그락거리며 잡는 소리가 났다. 금준이 들어오려는것이 확실했다.

“-아, 지금 여기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멀리있는 누군가를 소리쳐부르는듯한 큰 목소리였다. 아빠상과 수지오네챠가 드디어 온것이었다!

“…테싯…테싯테싯. 오바상. 캬라멜쨩은 와타시가 도망치기위해 버린테스. 하지만 자는 다시 낳으면 되지 않는테스? 와타시처럼 특별한 머리색 특별한 눈동자를한 세레브한 실장석과 오마에타치같은 들분충들은 태생부터 다른테스. 태생부터 천한신분으로 정해져있는테스! 하녀를 희생하고 공주가 살아남는게 당연하지 않은테스?”
“…오마에….”


주인이 도착한것에 호두는 안심하고 독설을 늘어놓았다. 몇초뒤면 분명히 문이 열리고 주인상들이 들어올것이다. 이 분충을 쫒아내고 자신을 품에 안아줄것이다.
호두의 말에 화가난 독라는 양동이를 뒤엎었다. 양철양동이와 바닥이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나자 밖에 있던 금준은 문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고장난문은 때마침 잠겨 열리지 않았다. 열쇠를 관리실안에 두고온것이 생각난 금준은 에이씨, 짜증을내며 창문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시간이 생겨난 독라는 비장한 얼굴로 호두를 붙들었다. 예상외의 상황에 호두는 몸을 바들바들떨며 독라에게 아첨을 했다. 하지만 독라의 굳은 얼굴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오마에, 오마에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스?”
“테…텟승? 와타시는 특별한테… 아… 아니 오바상도 와타시만큼이나 특별한테스~. 그런테스!”
“오마에의 노란머리카락 옅은눈동자는 타고난게 아닌데스. 실장석을 분양하는 샵에서 염색시키고 불임을 만들기위해 안구에 타투를 한것인데스! 겨우 머리색 눈색으로 오마에가 특별? 사육실장 오마에타치들도 와타시타치와 다를것없는 실장석인데스!!”
“그게 무슨소리인 테스! 와타시는 특별한테스!! 분명 태어날때부터 이런 머리카락 이런 눈동자인테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지껄여대지마는 테샤아악!!!!!!! 그리고 와타시는 머리카락이나 눈동자뿐만아니라 모든것이 특별한테샤아아아!!!!”




살기위해 독라에게 아첨을 하던 호두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말에 발끈해 대들기 시작했다. 몸이 독라의 손아귀안에 붙들려있는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특별한 자신에대한 행복회로는 금방이라도 한주먹에 독라를 때려눕힐수 있을것만같은 착각을 주었다. 행복회로가 가동되기 시작한 호두는 작은손으로 자신을 올려들고있는 독라의 팔을 토닥토닥 두드려댔다. 독라는 허탈한듯 웃었다. 그리고는 호두의 머리카락뭉텅이를 뽑아 자신의 입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얼굴을 주먹으로 으깨 튀어나온 자랑스러워하는 밝은분홍색의눈동자를 으적으적 씹어삼켰다.

“오마에가 자랑스러워하는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와타시가 다 먹어버린테스. 하지만 이 추한모습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다 낱낱히 볼수있도록 한쪽눈은 남겨두는 테스. 그러면 남은 생, 와타시와 캬라멜쨩의 몫만큼 괴로워하는데스.”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것인지 알고있는것같이 독라가 중얼거리는 말은 아프고 고통스러운상태의 호두에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창문으로 겨우겨우 몸을 밀어넣어 들어온 금준은 호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독라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자신의 최후역시 직감한 독라는 아무 저항도 하지않고 발길질에 맞았다. 독라를 발로 걷어차고나서 바닥을 보니 머리카락을 죄다 뽑힌채 애꾸가된 호두가 누워 몸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뜻밖의 행운을 이렇게 날려버리나 싶은 금준은 화가난채 독라의 머리를 짓밟아 으깨버리고 호두를 수습한뒤 관리실 문을 열어 형식을 맞이했다. 갑작스런 소란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수없던 형식은 잠시후 금준이 양손에 소중히 올려들고있는 호두와 바닥에 널부러진 독라를 보고 대충 짐작을 할수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관리실수로 실장석이 다쳐버렸네요…. 아! 그래도 실장석은 위석이라는 몸속에있는 보석만 다치지않으면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합니다! 설탕물을 먹이거나 영양제같은걸 먹이면 될거에요!”

금준이 형식에게 사정하듯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형식은 머리가 아팠지만 애초에 자신이 호두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런일은 없었을것이라고 생각하곤 한숨을 쉬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찾아주셨으니 사례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주신번호로 다시한번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예, 살펴가십시오!”


형식의 돌아가는 뒷모습에 깊숙히 허리숙여 인사한 금준은 내심 독라실장때문에 원래 받을수 있는 돈보다 사례금을 적게 받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금준은 다시 관리실로 들어가 머리가 으깨진 상태에서도 아직살아있어 몸을 바들거리고있는 독라를 보고는 화풀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것같은 기분이 들어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실장석 학대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편 형식은 어느병원으로 가야하는지 생각을 하다 문득 실장석을 분양해준 영호에게 생각이 미쳤다. 형식은 시내쪽으로 운전대를 돌리고 영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영호씨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분양받은 실장석이 지금 크게 다쳤거든요 혹시 괜찮은 병원 있습니까?”
[형식씨 오랫만이네요. 혹시 어떻게 다친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머리카락도 다 뽑히고 오른쪽 눈도 없어졌어요. 얼굴도 거의 으깨진상태구요.”
[………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수 있을것 같은데 병원 말고 샵으로오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형식은 설탕물이나 영양제를 먹여도 깨끗이 회복된다는 금준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한뒤 자신이 아는 최고로 실장석 전문가인 영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영호의 샵에 도착하자 영호가 형식을 반갑게 맞이했다. 형식도 아는것은 별로 없으나 대강 자신이 본것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충 알겠습니다. 일단 샵에 맡기고 가시면 말끔하게 치료 해 드릴게요. 걱정말고 댁에 돌아가시면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깨끗하게 치료가 가능한가요?”
“안되도 되게 해드려야죠. 전혀 걱정할것없으니 혹시 걱정할 수지에게 영호아저씨네 가게에서 맛있는거 먹고 놀고있다고 전해주세요. 이번주 주말까지는 확실히 연락 드릴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돌아가는 형식의 뒷모습이 멀어질때쯤 영호는 호두에게 시선을 떨어트렸다. 오른쪽얼굴 전반부와 코, 입오른쪽 살짝이 완전하게 으깨져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왼쪽눈은 말짱하게 영호를 또렷히 바라보고있었다. 입이 망가져 테휴테휴 불편한듯한 숨소리만 내며 호두가 영호를 재촉하는듯 했다. 평소 애호파인 영호는 주변의 유기실장보호소나 들애기맘, 들애기대디등에게 사료를 후원하거나 용품을 제공하는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실장석에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영호였으나 호두를 보는 눈동자는 싸늘했다.

“호두야. 우리 샵에서 나가는 실장석들은 모두 최고급 실장석뿐이란다. 구비해놓은 용품이나 사료도 최고급이고. 솔직히 평범한집안 사람들은 우리샵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기도 힘들어. 왜냐면 최고급인만큼 그만큼의 값을 지불해야하거든.”
“…테…테휴으…?”


영호는 호두를 한손에 들고 샵 안쪽 직원전용이라고 문패가 걸린곳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까맣게 썬팅이 되어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문 안에는 뭔가 가득하게 쌓여있었다. 호두는 말짱하게 남은 왼눈으로 이곳이 어디인지 빠르게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쌓여있는 각종 실장석 용품들과 사료. 샵에서 파는 물건들 재고를 적재해놓은 창고인것 같았다. 영호가 좀더 깊은곳까지 걸어들어가자 조금씩 작게 실장석들이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입구쪽에 물건 재고들이 쌓인것과 마찬가지로 실장석들이 바닥칸부터 꼭대기칸까지 칸칸히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리고 호두는 그곳의 실장석들을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도 그럴것이 그 안에 있는 실장석들은 모두 자신처럼 ‘특별’한 실장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갈색머리의 실장석이 드물정도로 빨강, 분홍, 노랑, 초록, 파랑, 보라 색색으로 머리카락이 물들여있었고 심지어는 여러색을 한꺼번에 물들인자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보다 세레브하다고 생각한 토로처럼 보라색 노란색의 눈동자, 그보다 더 귀해보이는 눈동자안에 꽃송이가 핀 실장석까지. 그곳은 호두의 상식을 송두리째 망가트려버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층, 자신과 ‘똑같은’ 노란머리카락에 밝은 눈동자를한 실장석이 여러마리가 있었다.
자신은 특별한데 어째서 이곳에는 자신보다 특별한 실장석들이 이렇게도 많은가? 심지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실장석들까지 즐비하는 곳에 호두는 멘탈이 조금씩 바스러져가고 있었다.





“아까 한말을 잇자면 나는 실장석들을 정말 사랑한단다. 하지만 그건 실장석이 인간과 어울려 살 수 있을때만이지 인간, 혹은 실장석 둘중에 하나라도 평화의 균형을 깨는것은 용서할수가 없단다.”

호두는 영호의 말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영호는 그런 호두를 보며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듯 호두와 똑같이생긴 층의 실장석케이지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우리 밖에 호두를 들고 세워 키를 비교하기시작했다.

“이미 네가 자실장일적에 분충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중실장이 된 상태면 아마 훨씬 많이 분충화가 되었겠지. 뭐 그래도 다행인건 네가 그냥 평범한 A등급짜리 실장석이라는거야. A+나 S등급, R등급의 실장석이었다면 AS고 뭐고 못했을테니까. 이게 다 입소문장사인데 너희들이 분충이 되어버리면 안되잖니. 아무리 내가 애호파여도 애호는 애호고 장사는 장사니까.”
“테?”
“그래, 너 검은리본 맨애. 이리 와볼래?”
“와타시 말인 테스?”


한쪽귀에 음성변환 링갈을 착용한 영호에게 검은리본 실장의 말이 들렸다. 케이지 한쪽에있던 검은리본중실장이 영호와 눈을 맞추며 케이지벽에 바싹 다가와섰다. 호두와 꼭 닮은 외모에 키까지 똑같았다. 영호의 어려운 말들을 이해할수는 없던 호두였지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말하는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저 검은리본중실장과 바꿔치기 당할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호두는 달아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은 중실장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것이었다. 마치 캬라멜이 호두의 품안에서 달아나지 못했던것처럼.

“네 이름은 오늘부터 호두란다.”
“와타시 이제 사육실장인테스?”
“그래.”


검은리본의 실장석은 감격한듯 양쪽눈에 색색의 눈물을 또르르흘렸다. 분양되지 못하고 훌쩍 커버려 이대로 처분되거나 다시 실장석공장으로 되돌아갈줄알고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던 검은리본실장석은 비로소 광명을 맞이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영호는 나름 개념있고 착한 검은리본 실장석을 실장석공장으로 되돌려 보내면 이미 안구타투가 끝나 출산석으로써도 살지 못한채 바로 처분될걸 알아 안타까운마음에 맡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오늘 이렇게 도움이 될줄은 몰랐지만 때마침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주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었다.

“그대신 네가 지켜야할것이 있단다.”
“뭐든 말씀하시는테스! 와타시 사육실장이 된다면 뭐든지 할수있는테스!”
“그래. 너는 오늘부터 기억을 잃어버린거야. 알겠어? 네가 기억하는건 호두라는 이름뿐이고.”
“테? 알겠는테스.”
“좋아. 새 주인님이 뭘 물어보면 다 기억안난다고 대답하고, 개념있는 실장석으로써 행동해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슬픈일을 당하게 되는거야. 알겠지?”


영호의 말에 검은리본실장석은 방긋 웃으며 기쁨의 눈물을 닦아냈다. 사육실장이 될수만있다면 뭐든지 할수있다는 그 말에 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두는 그 광경을 보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질러대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망가진 입에서는 테휴, 테휴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새어나왔다. 억울함과 분노에 눈물을 뚝뚝 흘려댔고 이제는 당연한듯 운치를 지려댔지만 영호는 눈길한번 주지 않고 검은실장리본에게 입양전 지켜야할것에 대해 찬찬히 설명하고있었다.

“자, 그럼 이제 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아무래도 죽이는것은 찜찜하단말이야.”

영호는 곰곰히 생각했다. 어떻게든 처분은 해야하지만 아무래도 애호파인 자신의 손으로 실장석을 죽이는것은 차마 할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번주말에 새로운 신규실장석들을 데리고 실장공장에서 올것이다. 그때 호두를 같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호는 대충 남는 실장석이동장에 호두를 던져넣고 찾기쉽게 창고입구근처에 두었다. 그리고 주말은 빠르게 찾아왔다.

“형석씨 어서오세요. 수지도 오랫만이네~”
“영호아저씨 안녕하세요. 호두가 많이 아팠다고 들었어요.”
“그래, 호두가 많이 아팠어. 하지만 이제 하나도 안아파. 그런데 조금 안타까운 소식이 있어.”
“무슨일인데요?”
“호두가 아팠다가 치료를 받았더니 기억을 다 잃어버렸단다. 자기 이름하고 수지랑 아빠 엄마정도만 기억하고있어.”


영호의 설명에 수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에게 아빠가 호두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세상이 무너질듯 하다가 호두를 찾아서 샵에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땐 뛸듯이 기뻤지만 그동안 추억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슬플수밖에 없었다. 영호는 수지를 쓰다듬으며 ‘호두’가 들어있는 작은 이동장을 건네주었다.

“안녕하신테스. 수지오네사마, 걱정끼쳐서 미안한테스. 와타시 기억을 잃어버려 생각나는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사랑해주시는테스.”

영호가 빌려준 음성변환 링갈에서 공손하게 인사하는 호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수지는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추억은 다시 만들면 된다. 지금까지 추억은 수지 혼자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함께 만들면 된다는 영호의 말에 수지는 빙긋 웃었다. 게다가 기억을 잃긴했지만 예전처럼 다시 공손하고 착해진 호두를 보자 조금은 이편이 나은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문득 들었다.

“예전옷은 너무 더러워져서 버렸어요. 그대신에 새 원피스를 같이 드릴테니까 모쪼록 앞으로도 많이 예뻐해 주세요. 무슨일 있으면 연락 주시구요.”
“영호씨 감사합니다. 그러면 수고하세요.”
“영호아저씨 다음에 또봐요!”
“그래. 수지도 또보자~”


그시각 호두는 썬팅된 창고문 뒤에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있었다. 영호가 의도한것은 아니었지만 찾기쉽게하려고 문앞에 둔다는것이 호두에게는 최악의 경험을 만들어주고 있던것이었다. 차라리 이동장이 불투명했다면 이런광경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호두는 애꿎은 이동장탓을하며 펑펑 울었다. 찌그러지고 없어진 오른쪽 눈에서도 눈물샘만은 멀쩡히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샵 앞에 실장석공장에서 온 트럭이 멈춰섰다. 영호는 새로운 실장석들을 입하하기 전에 호두가 든 이동장을 들고 트럭으로 향했다. 이동장 안에서 두리번거리던 호두는 형석의 차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며 이동장을 탕탕 두드렸다. 하지만 멀리떨어진 형식과 수지에게 그 소리는 닿지 못했다. 수지는 ‘호두’를 이동장에서 꺼내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고 ‘호두’는 그곳이 당연한 제 자리인것처럼 손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테탸아악!! 텨기는 와탸시의 탸리인테탸아!! 텨런 캬탸가 아닌 특별한 와탸티의…와탸티의…….”

호두가 담긴 이동장을 건네받은 운전기사는 보조석에 쌓인 반품들 위로 이동장을 던져넣었다. 생물을 운송하는 트럭내부는 나름 따뜻했으나 호두는 이상하게 냉기를 느끼며 몸을 팔로 몸을 감싼채 쪼그려 앉았다. 독라가 한쪽눈을 남겨놓고 저주를한 이유를 알것 같았다. 차라리 나머지눈마저 없었다면 이런일은 몰랐을걸.
잠시후 호두를 실은 트럭은 수지의 집과 반대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호두는 이쪽방향은 우리집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자주 놀러가던 비비네챠가있는 현아의 집, 항상 모든이들이 자신을보며 예쁘다고 칭찬해줬던 티슈공원, 자신의 집보다 세레브했던 토로챠의 집. 익숙한 거리의 풍경들이 점점 멀어져가고 낯선풍경이 계속되었다. 차라리 위석이 부스러졌으면 좋겠다. 호두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머지 한쪽눈도 감았다.








댓글 2개:

  1. 중간까진 제정신 차리나 했는데 결국 분충앤딩인데스...
    하지만 매우 어울리는 결말이라 우마우마한데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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