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공원에 '그것'이 나타났다. 눌러 쓴 파란 모자, 파란 멜빵, 망토처럼 두른 수건, 번쩍이는 가위. 실창석이다. 실장석에겐 천적과도 같은 것으로, 실장석을 보면 본능적으로 살해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가위로 실장석을 죽인다고 알려져있으며, 실장석 외에도 여러 작은 동물들을 가위로 사냥하곤 한다. 지능도 높아 사람들에게 애완용 혹은 사냥용으로 길러지는 경우도 많지만,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사나운 성격이라 실창석을 완벽하게 사육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친척인 실장석이 얼빠지고 나약한 바보인 것과 여러모로 대조된다. 이 실창석은 아마 원사육실창이었다가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데스데스..." "이쪽으로 오는데스. 절대 가면 안되는데스." "저게 마마가 말한 실창석인데스... 무서운 적인데스." "테에..." 공원 실장석들이 일제히 술렁이며 실창석을 경계한다. 실창석의 몸길이보다 긴 골질로 된 가위의 절삭력은 실장석을 일격에 두동강 낼 수 있을 정도다. 실창은 주변을 둘러보고 실장석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본다. 그 눈에서는 살의가 아니라 쓸쓸함이 느껴진다. 공원에서 실창석이 모여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한 마리만 있어도 실장석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는 존재인만큼, 만약 공원에 사는 실창석 같은게 있다면 그 공원엔 애초에 실장석이 살지도 못할 것이다.
"여기서도 난 환영받지 못하는보쿠..."
실창석은 중얼거리며 낙엽을 밟고 걷는다. 실장석들이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은 알고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선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다. 먹는 게 부족하진 않다. 먹을 게 없다면 쥐라도 사냥해서 잡아먹으면 그만이다. 외적도 없다. 고양이나 까치 같은것은 가위를 휘둘러 겁주면 금방 도망간다. 비를 피할 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지 않고, 몸에 두른 수건 덕분에 그다지 춥지도 않다. 하지만 친구도 가족도 없다. 인간은 실장석이나 마찬가지로 들 실창석을 주워서 기를 리 없고, 멍청한 실장석과는 달리 실창석이 먼저 인간에게 접근해 '아첨' 같은 짓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친척인 실장석들은 자신을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겁을 먹고 달아나기부터 한다. 그래서 실창석에게 먼저 접근하는 실장석이란...
"데샤아아아아!!!"
이런 경우 뿐이다. 수풀에서 독라 4마리가 뛰쳐나온다.
"너는 뭐인데스? 파란 놈이 온데스?" "보스가 파란 놈이 나타나면 죽이라고 명령한데스." 독라들이 실창을 둘러싸고 한 마디씩 던진다. "그만두는보쿠. 친구가 필요한보쿠. 피를 보고싶지 않은보쿠." "친구데스우??" "데프프... 파란 놈이 겁먹은데스!" 독라들은 실창석의 말에 기분나쁘게 데프프하고 웃는다. "데퍄퍄퍄!" "데프프... 친구라고 한데스우? 파란 놈 주제에 고귀한 와타시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스? 너같은건 변소노예가 딱인데스우." "파란 놈을 죽이면 보스가 옷을 돌려주는데스... 그럼 다시 세레브 실장이 되어 인간노예에게 길러지는데스! 데프프..."
떠돌이 실창은 제멋대로 떠드는 독라들의 말에 결국 짜증을 낸다.
"남이 말하는데 웃다니, 예의가 없는보쿠."
그리고 가위를 꺼내 양 손으로 쥔다. 가위를 들자 완전히 인상이 달라진 실창을 보고 독라 하나가 똥을 질질 흘린다. "데... 데히..." "거... 겁먹지 마는데스! 우리는 넷인데스! 넷이면 파란 놈따위는 찢어죽일 수 있는데스!" "팔다리를 하나씩 잡고 찢어버리는데스!" "데샤아아아!!" 수가 많으면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실장석들의 기본적인 사고로, 실제로 실장석끼리 싸울땐 확실히 승산있는 계산법이다. 그러나...
"뎃?" "데에!?" 앞서나간 독라 둘은 갑자기 풍경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땅바닥에 툭 떨어진다. 어째 아프지 않다. 머리 아래로는 감각이 없어진 것 같다. 그리고 빙글빙글 도는 풍경 사이에서 머리를 잃은 독라 둘이 버둥거리는 꼴이 보인다. "데프프... 멍청이들인데... 데에... 왜... 추운데스...? 겨울인데스...?" 말할 것도 없이 버둥거리는 목없는 독라는 이 머리만 남은 독라의 몸통이다. 너무나도 빠른 일격으로 목이 잘린 독라들은 고통을 느낄 틈도 없었다. "추운... 추운데스... 추운..."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멈추는 즉시 독라들은 파킨 소리를 내며 죽었다.
"데갸보오오오!!!" 순식간에 동족 둘이 끔찍한 몰골로 죽어버린 것을 본 나머지 두 독라는 공포에 휩싸인다. 여럿이 덤비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실창석은 실창석이다. 실장석따위 몇 마리가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다. 힘의 차이를 깨달은 독라들이 일제히 달아나려 한다. "트, 틀린데스!" "도망치는데샤아아오보오오오" 또 가위가 번쩍 하니 독라의 목이 떨어진다. 한 마리는 쫓지 않기로한다. 공원 보스에게 돌아가면 이 참상을 보스에게도 알려줄테니. 자리엔 목없는 독라 셋과 피를 뒤집어쓴 실창석만이 남았다. 가위를 다시 등에 메고, 주변을 둘러본다.
"데히이이이..." "마마... 무서운테치... 파란 놈 무서운테치..." "집에 있으면 안전한데스... 어서 집에 가는데스..." 실창과 독라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실장석들은 일제히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여기서도 친구를 구하기는 완전히 틀려먹었다. 실창석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는다. 또 다른 공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데갸아아아!!"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오던 실장석 하나가 멀리서 걸어오는 실창을 보고 빵콘한다. 놀라 달아나려 하지만 빵콘한 팬티가 무거워 달릴 수도 없다. 결국 점점 가까워져오는 실창석.
"모, 목숨은 살려주는데스! 자가 있는데스! 이걸로 봐주길 부..."
"......"
"데?"
실창은 목숨을 구걸하는 실장석의 옆을 그냥 지나친다. 실장석에게 본능적인 살해충동을 느끼는 실창석이 이정도로 지나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걸 알고있는 실장석에게도 마찬가지. 멍청한 개체였다면 아까의 독라들처럼 겁먹었다고 생각해 덤비다가 가위의 녹이 됐겠지만, 다행히도 현명한 편인 기 개체는 실창석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나 생각해보고, 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밤. 떠돌이 실창석은 공원 구석의 벤치 아래에 앉아 밤을 보내고있다. 낮의 독라들처럼 적이 더 있을수도 있으니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더 편하다. 무엇보다 수풀로 들어가면 실장석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나는 꼴도 별로 보고싶지 않다. 망토를 벗어 모포처럼 말고 눕는다. 아무래도 여기도 틀린 것 같다. 날이 밝으면 이 공원을 떠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든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한 실장석이 있다. 낮에 독라들을 죽이고 떠나는 길에서 봤던 그 친실장이다. 하필이면 이 벤치 주변에 집이 있는것이다. 그래서 실창의 행동을 지켜보고있다. 다행히 잠든 것 같지만, 안심할 수 없다. 친실장은 숨겨둔 유리조각을 들고 조심스럽게 접근해본다.
깨어날 기색은 없다. 우선 옆에 비스듬히 세워져있는 가위를 집어던지고, 실창석의 눈을 찔러버린다는 계획이다. 딱히 원한은 없지만 실창석은 위험하다. 하나라도 있으면 공원 전체의 실장석들이 위협받는다.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뭔가 꺼림칙하다. 잘못된 일을 저지른다는 기분이 든다. 순간 실창석이 입을 우물거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친실장은 놀라 도망가고, 다시 접근할 수 있을만한 거리에서 숨어 지켜본다.
"...친구...보쿠우우우..."
...다행히 그냥 잠꼬대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친실장은 어째선지 온 몸의 힘이 쭉 빠져 전의를 잃었다. 어쩐지 이 떠돌이 실창석이 어떻게 여기까지 도착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장석으로는 드물게 동정이라는 감정이 있는 개체로서, 아무리 위험한 파란 놈이라도 도저히 해치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눈을 뜬 실창석의 옆에는 어째선지 별사탕 한 개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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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혼자서만 돌아온데스우?"
"뎃! 데데... 목숨만은... 데... 데갸보오오오오오오옷!!!!! 데챠아아아아아아아!!!!"
전류가 흐르는 감각을 느끼며 몸이 마비되는 독라. 공원의 보스 실장은 어제의 참상을 보고받고, 혼자만 살아돌아온 독라를 고문하고있다. 이 공원 보스는 사육실장이다. 보통 같으면 들실장이 사육실장의 지배를 받는 일따위는 없겠지만, 이 사육실장은 원래 공원 출신인데 어떤 바보같은 애호파에 의해 길러지게 된 것이다. 덕분에 원래 가지고 있던 분충기에다가 애호파의 극진한 대접까지 받아 분충기질이 오를대로 올랐다. 어느 날은 '인간노예'에게 스턴건을 사달라고 조르니 스턴건을 사줬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공원 실장석들을 지배하기로 한 것이다. 강력한 무기를 든 사육실장을 감히 거역할 수 있는 들실장은 없었다. 그랬던 녀석들은 모두 죽거나 독라가 됐다.
보스는 '파란 놈'이 나타났다는 것을 어제 산책하며 알았다. 때문에 공원 독라들에게 파란 놈을 반드시 잡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일단 위험할 뿐더러, 어쩌면 자신의 보스 자리를 노리는 놈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는 되고싶지 않았다. 물론 사육실장은 고작 독라 4마리가 실창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곤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할 수 있다면 좋고~' 정도의 수준으로 내린 명령이었을 뿐이다. 건방진 파란 놈은 자신이 직접 처치할 예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스는 스턴건의 전압을 높였다. "데게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챠아아아아아보스잘못한데스우우우우우우우우!!!! 데기이이이이!!!" 하고 피눈물과 똥과 토사물을 흩뿌리며 몸부림치는 독라를 보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레에..."
"레후..."
같은 시각, 공원의 한 구석. 구더기를 안은 엄지는 눈 앞에 등을 보이고 서있는 것을 보고 몸이 굳는다. 저것이 마마가 말한 '파란 놈'이다. '파란 놈'은 위험하고 아무 이유없이 와타시들을 마구 죽이는 악귀다. 그렇게 알고 있는 파란 놈이 눈 앞에 있으니, 엄지로서는 당연히 사고가 정지할 수밖에 없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엄지는 들키지않게 조용히 물러나려 한다. 하지만 너무 놀라는 바람에 구더기를 떨어뜨렸다는 것을 안 건 그때였다.
"레? 우지챠 어디간레치?" "레후레후" "우지ㅊ...읍읍!" 소리지르려다 가까스로 입을 막아 참는 엄지. 일단 도망치면 자기라도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구더기를 놓고 갈 수는 없었다. 때문에 용기를 내 한 발짝 다가가는 순간... "보쿠우?" "레챠아아아!!" 실창석이 뒤를 돌아보자 엄지는 그자리에서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빵콘했다. 어쩐지 파란 모자가 무섭다. 어쩐지 망토처럼 두른 수건이 무섭다. 어쩐지 옷이 무섭다. 어쩐지 가위가 무섭다. 어쩐지 실장석과는 정반대로 된 눈이 무섭다. 하여튼 무서웠다. 아직 행복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런 불운으로 삶이 끝난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구더기는 레후거리며 실창석의 발밑까지 도착하고는 뒹굴었다.
"누구인레후? 구더기 프니프니해주는레후?"
"......"
실창석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반면에 엄지는 벌써부터 구더기가 끔찍한 몰골로 죽는 것을 상상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실창석이 다음에 한 일은 전혀 달랐다. 실창석은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벌렁 드러누운 구더기의 배를 소매를 걷은 손으로 꼭꼭 누르기 시작했다. "레후웅~ 렛후~웅~ 프니프니~!" 하고 환호하며 물똥을 흘리는 구더기를 보고 엄지는 울음을 멈춘다. "...레에?" 구더기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파란 놈'은 구더기에게 프니프니를 해주고있다. 마마가 한 말과 전혀 다르다. 어쩌면 이 파란 놈은... 착한 파란 놈일지도 모른다.
"레... 파란 놈... 감사... 하는레치. 이제 된... 레치. 구더기 돌려... 주는레치..." 하고 더듬더듬 말해보는 엄지. 하지만 실창석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레챳!" 하고 다시 빵콘한다. '파란 놈'의 눈길은 너무 무섭다. 보는 것만으로 살해당할 것 같다. 엄지는 자신이 끔찍하게 죽는 상상을 하며 피눈물을 흘린다. 파란 놈이 다가온다. "요... 용서... 용서해주는레... 레?" 실창석은 구더기를 엄지에게 돌려준다.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한보쿠." "...레..." 정신을 차리니 손에 구더기가 들려있고, 파란 놈은 눈 앞에 앉아있다. 가까이서 보니 그다지 위험해보이진 않는다. 역시 이 파란 놈은 좋은 파란 놈이구나 하고 생각한 엄지는 레치레치!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
...다가 이변을 느낀다. 파란 놈의 뒤로 보이는 분홍색 옷. 사육실장. 공원의 보스. 마마가 '공원에서 가장 높은 실장이니 심기를 건들지 마라' 라고 했던 그 공원 보스와 독라노예들이다. "레, 레에에!" 하고 엄지가 비명을 지르는순간 "보케에에엑!" 하고 실창석이 쓰러진다. 아무리 강한 실창석이라도 전압 쇼크는 이길 수 없다. 정신을 잃은 실창석을 짓밟으며 의기양양하게 서있는 보스. "레... 레히이..." "너희들은 이 근처에 사는데스우?" "레에... 그런레치..." "너희들 덕분에 파란 놈을 잡기가 쉬웠던데스우." 보스가 미소짓더니 독라들에게 명령한다. "그 포상으로 너희는 모두 이녀석과 함께 똥구덩이 노예로 하는데스우!" "레에? 레챠아아아아!!!" 독라들은 쓰러진 실창석과 엄지를 끌고간다.
"레? 엄지챠 어디가는레후? 재미있는 거 하는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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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우..."
떠돌이 실창은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난다. 주변엔 녹색 오물들이 가득하다. 실장석의 똥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독라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위가 없다. 아무리 흉포한 실창이라도 가위가 없다면 그냥 파란색 실장석이다. 아마도 공원 보스는 그런 절망을 주기 위해 일부러 가위만 빼앗고 똥구덩이에 처넣으라고 명령한 것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올라갈 방법은 없다. 이대로라면 결국 다음날엔 끌어올려져 보스 앞에서 독라가 되고, 진귀한 실창석 노예로서 부려지다가 잡아먹히는 운명만이 남았다. 역시 섣불리 공원에 오는게 아니었다고 실창석은 후회했다. 가위만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자 갑자기 눈 앞에 뭔가가 떨어져 꽂힌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천 조각들을 묶어 만든 로프다. 설마 보스나 그 일당이 던져줬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대체 누가? 위를 올려다보니, 실장석 하나가 구덩이 밑을 들여다보고 있다. "무사한데스? 다행인데스. 어서... 올라오는데스..." 말 끝을 약간 흐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실장석. 실창석과는 참 질기게도 얽히게 된, 목숨을 구걸하던, 실창석이 자는 사이 별사탕을 주고 떠난, 그리고 실창석이 쓰다듬어주던 구더기와 엄지의 마마다. 전말은 이렇다. 집에 돌아오자 구더기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본 친은 구더기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구더기가 말하길
"분홍 옷 아줌마가 데려간레후. 파란 언니도 데려간레후. 분명 재미있는 일을 하고있는레후? 프니프니 해주는레후? 우지챠도 가면 프니프니 받는레후?"
라는 말을 하기에 보스에게 잡혔다는 걸 깨닫고, 보스의 똥구덩이로 몰래 온 것이다. 다행히 이 시간대에는 독라들도 모두 자고있다. '공원의 보스에게 감히 덤비는 놈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득이었다. 덕분에 독라들의 감시는 꽤 허술했던 것이다. 쉽게 실창석에게서 압수한 가위를 훔쳐나오고, 실창석이 있는 똥구덩이까지 왔다. 꽤 무거웠지만 필사적으로 옮겼다. 어째서인지 이때 친은 실창석에 대해 공포가 아니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보쿠. 너의 엄지도 잡혀간보쿠. 구하지 않으면 안되는보쿠." "데데에... 엄지는 어디있는지 아는데스?" "모르는보쿠. 분명 이 안에 있을것인보쿠." 실창석은 자기 옷이 더러워지는것도 신경쓰지 않고 똥무더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구더기 몇 마리가 레뺘아 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튀어나와 꼬물거렸다. "서두르는데스. 독라가 오는데스." 친실장은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안절부절했다. "조금만 더... 찾은보쿠!" 결국 실창은 가사상태의 엄지를 꺼냈다. 똥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던탓에 숨을 제대로 못 쉰 모양이다. 한 손엔 엄지를 안고, 줄을 잡는다. "끌어올려주는보쿠." "데에... 데에... 데이..." 친실장은 있는 힘을 다해 로프를 당긴다. 그러던 중
"데에? 뭐인데스?" 독라 하나가 결국 이 광경을 발견한다.
"뭘 하는 데스?" "데, 데이..." 친은 겁먹고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멈춘다. 그러다가 곧 작업을 재개한다. "뭘 하냐고 묻는데스! 이 똥노예가!" 누가 누구에게 똥노예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독라는 로프를 당기는 친실장을 걷어찼다. "데봇!" "뭘 하는데스? 지금 파란 놈을 끌어올리고 있는데스? 보스가 저놈은 똥구덩이에 처박으라고 한데스! 빨리 손을 놓는데스!" "데히... 안되는데스..." 다시 독라가 친실장을 마구 두들긴다. "데곳! 데보고오! 안되는데스! 안..." "건방진데스? 와타시의 말은 보스의 말과 같은데스! 거역한 대가로 독라노예로 삼아주는데스!" 하고 뒷머리를 잡아당겨 뽑으려는 찰나, 구덩이 밖으로 손이 닿은 실창석이 기어올라온다. "데데엣!?" "옆에 가위가 있는데스우우우우!" 하고 머리카락이 뽑히는 걸 버티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친실장. 가위를 손에 쥔 실창석은 이제 두려울 게 없다. 바로 독라에게 달려가 양 팔을 끊는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소리를 듣고 수풀이 술렁인다. "뭐인데스?" "똥구덩이에서 난 데스!" "파란 놈이 탈출한데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을 뒤적이는 독라들을 뒤로 하고, 실창과 친실장은 자리를 뜬다. "당분간 와타시의 집에서 지내는데스." "그래도 되는보쿠?" "괜찮은데스. 와타시의 집은 안전한데스."
공원 구석, 얼핏 보면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나무 근처에서 친실장은 흙으로 덮었던 뚜껑을 들어올린다. 그러자 꽤 넓은 입구가 나온다. "이 구멍으로 들어가는데스." 이 실장석은 다른 동족들과 달리 집을 지하에 지었다. 원래 산실장이었기에 지하굴을 파는데 익숙했던 친은 넉넉하게 굴을 판 다음, 바닥에 골판지 박스를 깔고 거처를 마련했다. 흙탕물이지만 지하수도 있고, 비, 눈, 바람까지 완벽하게 막아주는 실장석 기준으로는 매우 우수한 집이 됐다. 가족으로는 자실장이 둘, 엄지, 구더기. 거기다가 이 '식객'. "마마 어디 다녀오는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실장이 뒤따라오는 실창석을 보고 빵콘한다. "소리내지 않는데스. 이 파란 놈은 위험하지 않은데스." "테에? 위험하지 않은 파란 놈도 있는테치?" "일단 엄지를 잘 보살피는데스." 친실장은 그렇게 말하고 가정용 상비약... 인 별사탕을 꺼낸다. 아무리 다 죽어가는 실장석이라도 별사탕 한 알이면 금방 기운을 차린다. "테! 콘페이토!" "엄지의 약인데스." 라고 말하며 친은 별사탕을 돌로 때려 쪼갠다. 작은 조각 하나를 엄지의 입에 넣고, 나머지는 반으로 갈라 자실장들에게 나눠준다.
"신세지게 된 보쿠. 미안한보쿠." 실창석이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괜찮은데스. 날이 밝으면 바로 이 공원을 뜨는게 좋을것인데스." "...그러려고 했지만 잠깐 할 일이 생각난보쿠." 물론 할 일이란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보스를 응징하는 것이다. 이 가족에게 은혜도 갚을 겸. "혹시 이 근처에 쓰레기장이 있는보쿠?" "있는데스. 하지만 그 차림새로 밖에 나가면 바로 들키는데스. 식사 대접 정도는 할 수 있는 형편이니 걱정하니 마는데스." "고맙지만 그게 아닌보쿠. 그렇다면 혹시 쓰레기장에서 내가 말한 물건을 가져와 줄수있는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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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하고 검은 판을 가져왔으면 하는보쿠."
실창석의 요청은 그것뿐이었다. '말랑말랑하고 검은 것'이라고만 기억한 친실장은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구하며 말랑말랑하고 검은 것들은 보이는대로 가지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실창석은 구더기를 프니프니하고 있었다. 그것말고 달리 할 일은 없기도 하다. "레후♪ 파란 언니 프니프니 좋은레후♪" "다녀온보쿠?" "말랑말랑하고 검은 판을 가져온데스." 라면서 실창석의 눈 앞에 쓰레기더미를 우르르 쏟아내는 친. 실창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몇 개를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져본다. 그러더니 결정한다. "이거인보쿠." "이게 있으면 보스를 쓰러뜨릴 수 있는데스?" "그런보쿠." 실창석은 가위를 꺼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검은 판을 잘라낸다.
다음 날, "아직도 파란 놈을 못찾은데스?" "데갸보오오오오오오오오오!!!" 또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독라가 고통받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독라들은 그 광경을 보며 똥을 참고있다. 단 하나라도 눈을 맞추지 않거나 똥을 흘리면 즉시 다음 타겟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정말 멍청한 독라노예인데스!" "데보보보보보보보보!!" "그래서 와타시처럼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되지못하는데스. 멍청하고!" "데갸아아아아!!" "더러운!" "데보오오오오!!" "독라노예니까 그런데스우!!" "기기기기데기기기기기기기" 하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김을 뿜으며 독라는 쓰러진다. 땅에 닿으며 작게 '파킨' 하는 소리가 난다. "데히이이이..."
"너희는 뭘 하는 데스우? 다리가 없는데스우? 빨리 움직여서 파란놈을 찾아오는데스우!" "데데에! 아닌데스! 시간을 주시는데스!! 파란 놈을 반드시 찢어죽이는데스!" 그 말에 보스의 표정이 변한다. "죽이는 게 아니라 잡아오라고 한데스! 와타시가 말하는 걸 못들은데스우? 못 봐줄 멍청이인데스!" "데히! 데히이이!" 독라가 피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순간
"멈추는보쿠!" 하고 나타난 것은 예의 그 '파란 놈'.
실창석은 가위를 등에 멘 채 천천히 걸어온다. 보스는 그걸 웃으면서 지켜볼뿐이다. "너는 멍청이인데스우? 그대로 도망쳤으면 되는데스. 더러운 떠돌이 파란 놈 주제에 이걸 가진 세레브한 사육실장인 와타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데스우?" 하고는 스턴건을 들이밀고 전압을 높인다. "......" "더이상 오면 쏘는데스!" "......" "그럼 죽는데스! 데샤아아아!"
스턴건이 몸에 닿자 실창석은 튕기듯 날아가 쓰러진다. "데프프... 역시 멍청이인데스. 그래서 너희들은 세레브한 와타시처럼 사육되지 못하는데스. 인간노예도 부리지 못하... 데데에?" 보스가 일장연설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다시 일어나는 실창석. "뭐하는보쿠? 그 장난감은 뭐인보쿠우?" "데데...? 이상한데스... 이럴 리가 없는데샤아아아!!" 하고 더욱 전압을 높인 스턴건을 들이댄다. 또 실창석은 튕겨나가며 쓰러진다. 가슴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면 확실하게 감전됐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는 실창석.
"뭐인보쿠? 그게 최선인보쿠? 여길 똑바로 조준하지 않으면 소용없는보쿠우?" 하고 손으로 가슴을 가리킨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 다시 더욱 전압을 높인 스턴건으로 실창석을 찌른다. 실창석이 쓰러진다. 또 일어난다. "장난하는보쿠? 여기인보쿠. 여길 조준하는 것인보쿠." "데... 데히... 데샤아아아!!!" 다시 더욱 전압을 높인 스턴건으로 실창석을 찌른다. 실창석이 쓰러진다. 또 일어난다. "데... 데에... 데에에에에에??? 이럴 리가 없는데스... 이상한데스... 인간 노예에게 새걸 사달라고 하는데스... 데..." 독라들조차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절대무적을 자랑했던 보스가 떠돌이 실창석에게 밀리고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보스의 강력한 찌릿찌릿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독라들은 누구 하나 보스를 도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자기들을 혹사시키는 보스가 죽으면 당연히 독라들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보스가 죽는다면 지금까지 보스의 공포에 눌려살던 다른 실장석들이 독라들을 차례대로 린치해 죽일 게 뻔하지만, 독라들은 거기까진 생각 못하고있다.
실창석은 씨익 웃으며 옷 속에서 말랑말랑하고 검은 판을 꺼낸다. 이것은 고무판이다. 떠돌이 실창은 원래는 아마도 고무 재질의 마우스 패드였을 이 판을 이용해 스턴건의 전기 공격을 원천차단했다. "데기이! 데... 데데... 뎃!?" 보스는 전압을 높이다가 갑자기 스턴건이 꺼지자 당황한다. 그렇게 높은 전압을 마구 날려댔으니 전지가 빨리 닳는건 당연하다. 실창석은 그제서야 한 손에 가위를 들고 걸어온다. 스턴건도 없는 보스에게 이제 실창석을 이길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창석이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보스에겐 죽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들린다.
"뭐... 뭘하는데스! 쓸모없는 독라노예인데스! 어서 파란 놈을 죽이는뎃샤아!!!!"
"......"
"뭘 꾸물대는데스우! 빨리빨리 움직이는데스우!!!"
"우리가 왜 네 말을 듣는데스?" "뎃?" "찌릿찌릿도 없는 주제에 명령인데스? 너같은 건 이제 보스도 아닌데스." 독라노예들도 이미 표변해 더이상 보스를 돕지 않기로 결정했다. 바로 몇분 전 같았으면 건방진 노예들을 스턴건으로 고문했겠지만, 이제는 없다. 이건 평소 독라들을 학대한 대가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인과응보. "데... 데데... 오지마는데스우... 건방진데스우... 너같은 건 인간노예를 불러 해치우는데스우... 인간노예를..." 물론 여기서 부른다고 주인이 달려올리는 없다. 언제나처럼 보스는 주인에게 통보하지 않고 무단으로 집을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주인은 현재 직장에 있으므로 보스가 집을 나간 줄도 모르고있다.
"데... 데스~웅♡"
결국 최후로 선택한 수단은 똥벌레다운 아첨이다. 떠돌이 실창석은 이 광경을 보고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음 순간, 보스는 비명다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대각선으로 두동강나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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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데스?"
"그런보쿠."
실창석이 망토를 고쳐 두르며 대답했다.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곤 하지만, 결국 여기서도 실장석들을 죽였다. 심지어 보스를 힘들이지 않고 참살할 정도로 무서운 실창석이 실장석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질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실창석은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갈것인데스?" "모르는보쿠. 일단 길을 따라 갈것인보쿠." "그럼 산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데스?" 원래 산실장이었다가 공원에 내려와 정착했던 이 친은 최근 들어 변한 공원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산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산에선 겨울철에 자고있는 사이 실장석들을 구제하는 일도 없고, 무엇보다 같은 산실장들이 있다. "산에는 실장석 혼자선 할 수 없는 위험한 것이 많은데스. 그러니까 너를 보디가드로 받아줄지도 모르는데스." 게다가 실창석이 있다면 보통 실장석으로서는 도망밖에 대책이 없는 뱀 같은 위험한 동물들을 쫓아내줄 수도 있다.
"...산도 괜찮을 것 같은보쿠."
"그럼 된데스. 와타시들 가족은 내일 떠나는데스."
다음 날, 날이 밝는대로 친실장과 가족들은 굴을 비웠다. 보존식이 담긴 보자기를 둘러멘 친자와 실창석의 뒤로 짓밟히고 잡아먹히는 독라들의 애원과 비명이 들려온다. 강압이었다곤 하나, 보스의 명령에 따라 동족들을 핍박했던 놈들이다. 그것 역시 자업자득이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 봄이 되자 산의 나무와 풀 사이로 실장석들과 함께 구더기를 안고 걷는 실창석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곤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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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인 '황야의 무법자'의 패러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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