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 차녀의 독립

 

실장석은 자실장에서 성체로 성장하면, 친실장으로부터 독립한다.

이것은 자실장이 성체가 된 순간, 독자적인 체취를 내뿜기 때문에 냄새에 극도로 민감한 실장석으로서는 자신과 다른 냄새가 나는 동족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립한 실장석에게 친과 자의 관계는 자가 집을 완전히 나가는 순간까지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남남으로서 경쟁적인 관계로 살게된다.

그래서 실장석에게는 성체실장이 된 이후에 마마나 자매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자신과 자라는 관계만이 남게되는 것이다.





시민공원 변두리에 위치한, 골판지 하우스에 사는 친실장은 요즘 고민이 많아졌다. 장녀와 삼녀는 벌써 성체실장이 되어 독립을 했는데, 차녀는 아직도 독립하지 않은 것이다.

차녀의 울음소리는 벌써 중실장의 '테스'를 넘어 성체실장의 '데스'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친실장이 매번 집으로 돌아와서 차녀의 냄새를 맡아보아도 자신과 다르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 이었다.

친실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눈과 귀에서 보고듣는 것으론 차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코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아직 독립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차녀는 몸 한군데에 문제가 있었다. 성체가 되면, 독자적인 체취를 나게 만들어주는 장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였다. 때문에 차녀는 여전히 친실장과 같은 체취를 내뿜고 있었고,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차녀도 자신이 독립할 때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마마에게 나는 냄새가 자신과 같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리고 차녀에게는 딱히 독립해야 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마마가 해가 질 무렵마다 먹이를 알아서 들고와주고, 자신은 낮시간 동안 자거나 놀다가, 마마가 가져온 먹이를 먹으면 그만인데, 뭐하러 독립을 하겠는가!

그래서 차녀의 몸은 자신의 마마와 달리, 나날이 지방으로 뚱뚱해져가고 있었다. 먹이를 구하느라 칼로리를 소모할 일도 없었고, 하루종일 자다가 심심해지면 공원에 돌아다니는 독라고아들에게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차녀는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져 갔다.



슬슬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단풍이 떨어질 무렵, 친실장은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차녀를 독립시켜야 한다.

가을이라서 잘 익은 견과류와 과일이 풍성했지만, 작년과는 달리 친실장은 겨울용 보존식을 비축할 수가 없었다. 집에 보존식용 먹이를 가져오면, 차녀가 족족 그것을 먹어버렸고, 집 주변에다가 숨겨놔도 귀신같이 찾아내서 싹싹 비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실장석에게 자신의 자를 더 이상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않는 순간은 자의 체취가 달라졌을 때이다. 그래서 장녀와 삼녀도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졌을 때, 약간의 먹이를 주면서 독립시켰다.

하지만 차녀는 달랐다.

아직도 자신과 같은 냄새가 나서 보호해주고 싶다는 감정은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겨울에 둘 다 굶어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실장은 석양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차녀는 하루종일 고아들을 가지고 놀다가 지쳤는지, 집에서 대자로 퍼져 코를 골면서 자고있었다.

대자로 퍼져서 자고 있는 차녀 때문에, 친실장은 앉을 곳도 없어서 몸을 억지로 하우스에 우겨넣었다.

"차녀, 일어나는 데스."
"데에에...마마 온 데스? 오늘 저녁은 뭐인 데스까?"
"늘 먹던 것인 데스."
"데에, 가끔씩은 콘페이토같은 걸 먹고싶은 데스. 내일은 콘페이토를 먹게 해주는 데스."

친실장이 차녀를 깨우자, 차녀는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 일어났고, 배고팠는지 바로 먹을 것부터 찾았다.


"데챱! 데챱!"

차녀는 친실장이 가져온 메뚜기와 감을 열심히 입으로 우겨넣었다. 이미 자실장 때의 "테챱"과는 달리, "데챱"이라는 소리를 내고, 먹는 양은 친실장보다 더 많았다.

친실장은 그런 차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보다 덩치가 한참 커져버린 차녀의 모습은 완전히 성체실장 그 자체였다.

그러고는 친실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차녀, 먹으면서 듣는 데스… 내일 마마와 같이 먹이도 수집하고 새로운 집터도 알아보는 데스."
"뎃!? 이사가는 데스까? 여기도 좋았던 데스."
"이사가 아닌 데스, 차녀가 독립할 곳을 알아보는 데스. 그리고 독립하면 밥벌이는 차녀가 스스로 해야하는 데스."

"데뎃? 독립 말인 데스까?"
차녀는 친실장 입에서 독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게걸스럽게 먹던 입을 멈추고 잠시 충격에 빠졌다.

그 충격은 일반적인 성체가 처음으로 친에게 독립하라는 말을 듣고 기대감에 나오는 충격이 아니었다.

차녀는 독립하기 싫었다. 그리고 무서웠고, 귀찮았다.
마마의 집에서 마마가 주는 밥을 먹으면서, 낮에는 신나게 노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독립하면, 하루종일 먹이만 찾으러 다니다가 밤에 녹초가 되서 놀 시간도 없이 잠에 든다. 게다가 다른 동족이나 학대파들이 쳐들어오면, 보호해 줄 이 없이 혼자서 모든 위험에 맞서야 했다.

독립해야 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였지만,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있었고 마마와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곧 겨울인데 지금 독립한다면 겨울이 되기 전까지 죽어라 일만 해야 할 것이었다.

"데에… 마마, 그러면 봄이 되고 나서 독립하면 안되는 데스?"

차녀는 바로 독립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충분히 괴롭히지 못한 고아들을 내일 묵사발을 내놓고 싶었는데, 내일 마마와 귀찮게 일하러 가는 것도 싫었고, 적어도 봄까지만 집에서 놀다가 독립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되는 데스. … 내일 당장 독립할 준비를 해야하는 데스. 이대로는 겨울을 같이 날 수 없는 데스. 마마가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차녀까지 같이 데리고 겨울을 나는 건 어려운 데스!"

친실장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안 된다는 거절이었다.

친실장은 베테랑실장답게 본성을 잠시 누르고, 철처하게 현실적으로 행동했다.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차녀는 성체실장이었다.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하고, 곧 자도 낳아서 살아야한다.

"올 여름에 독립한 삼녀 기억나는 데스? 차녀보다 어린 동생도 벌써 독립해서, 먹이는 스스로 찾고, 벌써 자도 3마리나 기르고 있는 데스. 지금까지는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지만, 차녀도 이제 성체실장답게 행동하는 데스."

친실장의 입에서 자기보다 어린 삼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차녀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자실장이었을 때, 자기보다 덜 떨어졌다고 생각한 삼녀가 어엿한 성체실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자존심이 상한 것이었다.

"알겠는 데스우…….."

그래서 차녀는 마지못해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다음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난 친실장은 간단하게 물을 마시고, 차녀를 깨웠다.

"차녀. 차녀! 일어나는 데스! 오늘 마마랑 독립할 준비하러 가는 걸 벌써 잊은 데스까?"

"데로롱~ 데로롱~ 마마… 조금만 더 자게 해주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이 열심히 차녀를 흔들어 깨웠음에도 불구하고, 차녀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평소에 해가 중천이 돼서 느지막하게 일어나는 차녀에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일어나지 못 하는 데스까?!!! 늦으면 쓸 만한 먹이는 남들이 전부 가져가는 데스!!!!"

차녀가 자꾸 일어나지 않자, 짜증이 난 친실장은 결국 차녀에게 고함을 질러야 했다. 한편, 이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성체실장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친실장은 차녀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일어나는 데스! 소리 지르지 마는 데스!"

친실장의 갑작스런 고함에 깜짝 놀란 차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차녀는 비몽사몽으로 정신도 못 차렸다. 게다가 아직 해도 안 떠서 어둑어둑한데, 벌써 일어날 필요가 있을 지 싶었다.

"당장 밖으로 나가는 데스. 빨리 가야 좋은 먹이를 얻을 수 있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은 차녀를 억지로 집 밖으로 내보내면서, 빨리 가야한다고 재촉했다. 분명 더 자고 싶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었기 때문에, 찬바람으로 잠을 완전히 깨워야 했다.



"추..추운 데스."
집 밖에 나가자마자, 차녀는 찬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아직 공원은 한밤 중처럼 어두운데, 찬바람까지 휘몰아치니 차녀는 바로 독립한 기분이 들었다.

"마마.."
"쓰레기장으로 당장 가는 데스!"
차녀는 따뜻한 골판지 하우스 안으로 당장 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친실장은 단호하게 쓰레기장으로 가라고 말했다.


"데히- 데히-"
쓰레기장으로 친실장과 같이 걸어가면서, 차녀는 죽는 소리를 냈다. 아직도 해는 안 뜨고, 도로의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서 걷는데 찬바람은 쌩쌩부는 데다가, 너무 졸려서 미칠 것 같았다.

평소라면, 느지막히 일어나서 따뜻한 햇볕을 받고 마마가 숨겨놓은 먹이를 꺼내먹으면서, 오늘은 어떻게 독라고아들을 괴롭힐지 생각했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강행군이었다.

그러고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쓰레기장으로 추적추적 걸어가던 차녀는 차라리 자기가 구더기였으면 했다. 따뜻해 보이는 포대기를 입고, 언제 일어나건 상관없는 구더기가 지금 이 순간에는 가장 부러웠다.



"도착한 데스. 차녀! 같이 먹을 것을 찾는 데스!"

얼마정도 걸었을까?
친실장과 차녀는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아직 다른 동족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친실장은 일찍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데에에……."
하지만 차녀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살찐 몸뚱아리로 걷느라 벌써 다리는 아프고, 날이 추워서 손과 뺨은 쓰라렸다. 차녀는 먹이수집 같은 건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가서 한 숨 자고싶었지만, 그런 차녀를 도끼눈 뜨고 보는 친실장 때문에, 어디 갈 수도 없었다.

친실장은 의욕없이 자꾸 꾸벅꾸벅 졸고 있는 차녀가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은 운 좋게 맨 먼저 왔지만, 조금이라도 늦으면, 가장 좋은 먹이는 다 뺏긴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왔으면, 눈에 불을 켜고 먹이를 수집해도 모자란데, 차녀는 그저 잘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데스! 빨리! 당장 초록색 먹이통부터 뒤지는 데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친실장은 차녀에게 빨리 초록색 음식물 쓰레기통부터 뒤지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꽤나 괜찮은 먹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차녀! 마마랑 같이 이것 좀 미는 데스!"

친실장은 일단 차녀와 같이 쓰레기통부터 엎기로 했다. 혼자서 민다면 힘에 부치는 일이 겠지만, 성체실장 둘이서 한다면 쉽게 될 일이었다.

"데에에엑! 왜 안 넘어가는 데스까?!"

친실장은 몸에 힘을 주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쓰레기통이 도저히 넘어가지가 않았다. 가끔씩 쓰레기통에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차면, 이런식으로 힘을 줘도 쓰레기통이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체 두 마리가 힘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도, 두 마리가 힘을 넣었는데 쓰레기통이 안 넘어 갈 수는 없다.

"차녀! 힘을 주는 데스!"
아무리 힘을 줘도 넘어질까 말까 하던 쓰레기통을 밀고 있던 친실장은 바로 그 원인을 알아냈다. 옆에서 같이 힘을 줘야 할 차녀가 비몽사몽한 상태로 쓰레기통에 적당히 얼굴하고 팔만 갖다대고 있었다.

"이런 정신머리로 독립할 수 있는 데스까?! 의욕을 내라는 데스!"

차녀의 한심한 모습을 본 친실장은 참다 못해 차녀에게 한 소리했다. 곧 있으면, 동족들이 몰려와서 좋은 먹이를 하나둘 가져갈텐데, 차녀는 그것도 모르고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아..알겠는 데수우."

친실장의 호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차녀는 그제서야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득 찬 쓰레기통은 차녀까지 힘을 줘서야 겨우 넘어갔다.

"얼른 먹이부터 찾는 데스! 시간이 없는 데스!"

친실장은 쓰레기통이 넘어가고 그 안의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져나오자 바로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나온 쓰레기들 중에는 이 자리에서 바로 먹어도 될 것이 있었고, 보존식으로 적당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친실장은 보존식으로 적당해 보이는 것부터 가져온 봉투에 급히 담기 시작했다. 과일의 씨나 껍질, 비스켓같은 과자종류부터 마른 육포나 어포 등 오랫동안 버텨주는 먹이만 골랐다.

그러나 차녀는 달랐다.
"콘페이토는 없는 데스까?"

친실장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차녀는 같이 보존식을 모을 생각은 안 하고 콘페이토나 찾고 있었다. 예전에 친실장이 먹이를 모으는 방법을 가르쳐 줬을 때, 친실장은 쓰레기장이나 나무 밑에서 먹이를 모으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차녀는 콘페이토도 당연히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줄 알고있었다.

"차녀! 뚱딴지같은 소리 그만 하는 데스! 콘페이토 같은 건 없는 데스! 똑바로 보고 배우라는 데스! 오마에도 독립하면, 여기에 있는 걸로 먹고 살아야하는 데스!"

"데에에….콘페이토….."

한심하게 콘페이토나 찾고 있는 차녀에게 친실장은 이제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날락말락 했지만, 이 와중에도 차녀는 이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지, 머리통이 깨진 운치굴자판기마냥 정신줄을 놓고있었다.

"오마에가 운치굴 자판기인줄 아는 데스까?! 빨리 예전에 가르쳐 준대로 보존식부터 모아오는 데스! 그리고 금방 썩는 건 지금 먹어버리는 데스! 지금 안 먹으면 다른 동족들한테 다 뺏기는 데스!"

친실장은 오죽 갑갑했는지, 차녀에게 일일히 행동을 지시해야 했다. 하지만, 차녀는 '먹는다'라는 단어에만 반응했는지, 보존식을 골라낼 생각은 하지 않고, 바닥에 흘러내린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적당히 먹을 것만 족족 입안에 쳐 넣었다.

그리고 30분이 흘렀다.
쓰레기장에는 다른 동족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친실장은 봉투에 보존식을 가득 채워넣었다.

차녀는.
"꺼억~"
보존식은 하나도 모으지 않고, 걸신들린 것 마냥 닥치는 대로 입에 먹이를 쑤셔넣었다가 배가 불렀는지 트림을 했다. 친실장은 보존식을 모으면서, 중간에 배를 조금씩 채웠지만, 차녀만큼 배불리 먹지는 못 했다.

"배부른 데스"

차녀가 빵빵하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면서, 배부르다는 말을 하자, 친실장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모으라는 보존식은 안 모으고 그저 먹기만하니 화가 나는 것이었다. 자기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혼자 밥을 배불리 먹어서 화가 나지는 않지만, 내일 모레 독립해야 할 자가 저렇게 갑갑한 짓만 하니 친실장은 그저 속으로 울분을 참아야 했다.

"참는 데스, 참는 데스, 차녀도 독립하면 알아서 잘 할 것인 데스."

실장석으로는 놀랍게도 화를 참고있었던, 친실장은 행복회로를 돌린 것인지는 몰라도 차녀가 독립하면 위기감에 의해서라도 잘 할 것이라면서, 열심히 화를 참아냈다.

"차녀! 이제 가는 데스! 여기서 볼 일은 끝난데스!"
"이제 집으로 가는 데스?"
"아닌 데스!! 정신을 어디로 판 데스? 같이 차녀가 독립할 집터를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은 데스!!!"

차녀는 이제 배도 부르고 잠도 깼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어제 마저 못한 고아괴롭히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실장은 집터를 보러가자며 차녀를 재촉하였다. 보통 새벽에 쓰레기장을 돌면, 공원 이곳저곳에서 과일열매나 쓸만한 물품을 수집하고, 가끔씩은 공원바깥까지 나가서 수색을 했지만, 오늘은 차녀가 독립할 만한 좋은 터를 잡으러 가야했다.

"따라오는데스! 오마에는 이제 자실장이 아닌 데스! 좋은 집터를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스!"





친실장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곳으로 갔다. 나무 밑에 있고, 주변에 풀숲이 가득하며, 동족의 하우스가 주변에 많지 않은 곳 이었다. 이 정도면 동족식무리나 학대파들의 습격에서 안전한 곳 이었다. 그리고 공원 외곽이라서 여차하면 집을 버리고 도망치기도 좋은 곳 이었다.

장녀와 삼녀는 그냥 먹이만 조금 쥐여주고 독립시켰는데, 차녀는 집터까지 알아봐준다는 것은 분명히 늦게 독립한 자에 대한 특혜였다.

"마마는 차녀가 여기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데스. 차녀는 어떤 데스?"

"데에…."

그렇지만, 이런 특혜에도 불구하고 차녀는 별로 감흥이 없어보였다. 주변에 풀숲이 너무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골판지하우스도 운치굴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 와보는 곳이라 낯선 것도 싫었다.

"와타시가 이곳에서 사는 데수우?"
"그런 데스. 이곳이라면 안전한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좀 더 세레브한 곳이 좋은 데스."
"무슨 소리인 데스까? 사는 곳에 왜 세레브가 들어가는 데스?"
"닌겐들이 많이 오는 곳이 좋은 데스. 와타시타치를 좋아하는 애호파닌겐들이 많은 곳이 좋을 거 같은 데스."
"오마에!!!! 정신차리는 데스!!! 그런 곳은 살아남기에 힘든 곳인 데스!"

차녀는 언젠가 독립하면, 애호파닌겐들이 많이 오는 곳에서 살고싶었다. 애호파닌겐들이 주는 푸드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었고, 운이 좋으면 핑크색 집에서 살거나, 사육실장이 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원의 베테랑인 친실장에게 차녀가 말하는 곳은 위험한 곳이었다. 애호파들이 낮에 돌아다니는 곳은 밤에 학대파들이 돌아다니고, 애호파를 가장한 학대파가 코로리를 뿌려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곳은 공원 한 가운데라서 하얀악마들의 습격에서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발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는 데스! 오마에는 낼 모레면 독립해야 하는 데스! 그런식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서 자들을 낳을 것인 데스?!!"

그래도 친실장은 포기하지 않고, 차녀에게 호통만 질렀다. 이왕 여기까지 기른 자인데, 여기서 포기하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기에는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이 아까웠다.

"그냥 여기로 하는 데스! 따라오는 데스! 오늘 골판지도 찾아야 되고, 운치굴도 대강 파놔야 하는 데스!"

"데…."





친실장은 차녀를 끌고, 분리수거장에 도착했다. 분리수거장에는 좋은 물건이 많지만, 그것을 가져가기는 어려웠다. 음식물 쓰레기장과 달리 분리수거장에는 쓰레기통이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바닥에 떨어진 물건 외에는 가져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종이류는 그냥 바닥에 집어던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골판지 상자만은 구하기 쉬웠다.

친실장은 가능한 두꺼운 재질로 만들어진 박스를 찾았다. 그리고 테이프가 전부 떨어져서 완전히 접혀있는 것도 제외시켰다. 그런 종류의 박스는 실장석의 벙어리장갑 같은 손으로는 조립하기도 어려웠다.

이내, 친실장은 적당한 박스를 찾아냈다. 겉면이 코팅되어 있고, 두께감도 적절했으며 크기도 일가 하나가 살기에 적당한 박스였다.

"차녀! 여기로 와보는 데스! 마마가 적당한 골판지를 찾은 데스!"
"뎃! 마마, 하우스가 너무 작은 데스"
"그럼, 차녀는 적당할 걸 찾은 데스?"
"저거는 어떤 데스우?"

차녀가 손으로 가리킨 상자는 전자제품을 포장하는 넓직한 상자였다.

"안 되는 데스! 저런 건 들고가기도 힘든데다가, 금방 무너져내리는 데스!"
"싫은 데스! 집은 커야하는 데스! 와타시의 눈에는 튼튼해보이는 데스!"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은 데스까?! 저걸 집터로 옮기면, 너무 시선을 끌게되는 데스!"

차녀는 슬슬 짜증이 났다. 원래 이 시간에는 고아들을 괴롭히는 시간인데, 갑자기 끌려와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집터에서 독립하라고 하고, 자기가 살 집도 자기가 고를 수가 없었다.

"와타시가 살 집인 데스! 와타시는 저걸로 하는 데스!"

그래서 차녀는 그 큰 박스를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겨울이 다 돼서 갑자기 독립하라고 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집 정도는 자기 맘에 드는 걸로 하지 않으면 안 됐다.

" …….맘 대로 하는 데스. 대신 오마에가 후회해도 와타시는 모르는 데스."

친실장은 차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집터도 찾아주고, 좋은 하우스를 골라줬는데도 불구하고 차녀는 친실장의 결정에 계속 불만족했다. 공원의 베테랑인 친실장의 입장에서 차녀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두면, 차녀는 금방 죽을 것이 분명했다. 친실장은 최대한 차녀를 성공적으로 독립시키고 싶은데, 차녀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어쨌든, 친실장과 차녀는 차녀가 원하는 골판지상자를 들고 봐둔 집터로 옮기기 시작했다.

"잘 보는 데스! 잘 보고 걷는 데스!"
"똑바로 보고 있는 데샷! 마마나 제대로 걷는 데스!"

그러나 박스가 지나치게 큰 탓에 친실장과 차녀는 박스를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무게는 가볍지만, 부피가 쓸데없이 큰 탓에 이동할 때마다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서 자꾸 질질 끌리기 일수였다.

"뎃?! 데샤앗!!!!!"

그리고 마침내 뒤에서 박스를 잡고있던 차녀가 일을 냈다. 손에 제대로 힘을 주지않고 걷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박스를 뭉그러트리고 말았다. 하필 박스의 두께가 얇았기 때문에, 박스는 찢어져서 복구가 불가능했다.

"제대로 걸으라고 하지 않은 데스?!! 이런 골판지 하우스는 오래 못가는 데스!"

찢어진 박스를 두고 친실장이 한마디하자, 차녀는 화가 치밀었다.

"마마가 앞에서 확 끌어서 그리된 것인 데스!!! 와타시의 잘못이 아닌 데스!!!"
"왜 마마를 탓하는 데스?! 하우스를 잘 못 고른 건 오마에의 잘못인 데스!!!"
"와타시가 살 집인 데스! 신경끄는 데스!!"
"장녀하고 삼녀가 독립할 때는 이렇게까지 안해준 데스! 다른 마마들도 와타시처럼은 안 해주는 데스!!"
"필요없는 데스!! 전부 와타시가 알아서 할 것이니, 오마에는 신경끄는 데샤아앗!!!"


'오마에'
차녀가 화가 나서, 부른 한마디에 친실장은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독립한 실장석은 자신을 낳아준 마마도 독립하면 기본적으로 남이기 때문에 오마에라는 호칭을 쓴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신을 마마라고 부르던 차녀가 자신을 오마에라고 불렀다. 오늘 자신도 짜증이 나서, 차녀에게 오마에라는 단어를 썼지만, 독립해야 할 당사자가 자신에게 그런 단어를 쓴다는 것은 더 이상 마마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친실장은 나지막히 말했다.
"오마에, 됐으니까, 집으로 가는 데스."




친실장과 차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의 감정이 너무 격렬해진 것이었다.

친실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차녀에게만 물러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낳은 자실장 중에서 분충은 가차없이 죽이거나, 노예로 만드는 친실장이었지만, 다 자라서 독립을 앞둔 자에게는 너무 오냐오냐해줬다.

진작에 차녀를 집 밖으로 보내고, 월동준비를 했어야 했다. 같은 냄새가 난다고 보호해 줄 필요는 전혀 없었다.









"멈추는 데스."
"또 뭐인 데스까?!"
집에 도착한 친실장은 집 앞에서 잠시 차녀를 불러세웠다.

그러고는.
"받는 데스. 오마에는 더 이상 와타시의 자가 아닌 데스. 키운 정을 봐서, 오늘 모은 보존식을 나누어 주는 데스. 장녀나 삼녀가 받았던 양보다 훨씬 많은 데스."

한편, 차녀는.
"데엣?! 무슨 소리인 데스까? 와타시가 왜 와타시타치의 집에서 나가야하는 데스까?!"
친실장의 갑작스러운 독립하라는 말에 당황했다.

"오늘 일로 깨달은 데스. 오마에는 지금 나가야하는 데스. 더 이상 와타시는 오마에를 길러줄 수 없는 데스."

친실장은 단호했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싫은 데스! 와타시는 여기서 계속 살 것인 데스! 와타시는 마마의 자인 데스!"

차녀는 끝까지 독립하기 싫다고 했다. 아직 먹이를 구하는 법도 잘 몰랐다. 집을 구하는 것도 운치굴을 만드는 것도 잘 모르고, 아직 마마의 자로서 먹고자는 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아괴롭히기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 뿐인 데스"

"데샤앗! 아픈 데스! 마마! 마마!"

"누가 오마에의 마마인 데스? 와타시는 오마에같은 성체실장을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지금까지 차녀에게 천사처럼 군 데스! 그런데 오마에는…오마에는….당장 꺼지라는 데샤아아!!!"

나가기 싫다고 말한 차녀를 친실장은 나무가지로 인정사정 없이 때렸다. 차녀는 친실장을 끝까지 마마라고 불렀지만, 차녀가 그럴 때마다 친실장은 더 쎄게 때렸다.

차녀가 한참을 두들겨 맞다가 친실장에게 마지막으로 욕설을 내뱉고 도망을 갔을 때, 친실장은 뒤쫒지 않았다. 그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차녀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하우스에 돌아가서 물건을 챙긴 후, 공원의 다른 방향으로 한밤중에 이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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