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가을.
수건, 그것은 들실장에게 있어 희소 아이템으로 분류된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장석은 어설프나마 인간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
그것은 즉, 씻은 뒤 몸을 말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데퍄퍄퍄! 이렇게 깨끗한 수건은 살면서 처음 보는 데스!"
고로 즉시 실험이다.
나는 실장석이 수건을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할 예정이었다.
"오로롱...오로로롱...착하게 산 보람이 있는 데스...뎃? 마사카, 카미사마께서 와타시에게 주는 선물인 데수..?"
전혀 아니다.
내가 일부러 뿌려놓은 300원짜리 싸구려 중고품일 뿐이지.
목욕탕이 폐업하며 버리려던 걸 싼값에 대량으로 얻어온 것이다.
그래도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수건에 비하면 100배는 낫겠지.
"데샤아아! 이 수건은 와타시의 것인 데스!"
"너야말로 저리 꺼지는 데스!"
"데스데스!"
"데갸아아아아!!!"
...물론 하나만 뿌리지는 않았다.
보다 다양한 결과를 얻기 위해 공원 여기저기에 수건(할미 목욕탕 자수)을 던져 놓았다.
그렇게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한 공원에서 수건을 얻은 개체는 20마리.
"데슷데슷!"
"테치테치!"
어떤 놈들은 온 가족이 나와 수건을 챙겨 가지고 갔으며, 몇몇은 하나만 잽싸게 챙겨 자리를 피하였다.
'체격만 좋아서는 오래 소유할 수 없다...메모.'
시작부터 흥미로운 결과가 관측되었다.
공원에는 내가 눈여겨 보던 건장한 체격의 성체가 5마리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 5마리는 금방 경쟁에서 탈락해 바닥에 널브러졌고, 오히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놈들이 수건을 싹 쓸어갔다.
나는 수건쟁탈전의 승리자 중 하나를 골라 몰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자들은 듣는 데스! 마마가 아주 좋은 것을 가져온 데스요?"
"텟! 마마! 이건 수건이 아닌 테치?"
오, 링갈에 자실장의 말이 올라오는구나.
자식을 셋쯤 기르는 것으로 보이는 녀석은 자실장에게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데스! 오마에들은 이렇게 깨끗한 수건을 본 적 있는 데슷?"
""없는 테치!""
"이건 마마가 정말 힘들게 가져온 데스. 무서운 오바상들과 싸워서 얻어낸 전리품인 데스."
'구라까고 앉았네.'
이 친실장이 수건을 2장이나 갖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눈치가 빨라서다.
다른 들실장 두 마리가 싸우는 사이를 노려 훔쳐가지고 달아난 것이다.
"테에에에??!!"
"마마는 역시 굉장한 테치!"
그러나 새끼에게는 대단해 보였던 것일까.
역시 새끼라 그런지 거기까진 유추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10분쯤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수건은 조금씩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들실장에게 수건이 중요한 보온재임과 동시에 몸을 닦을 도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장난감으로 삼아 뒹굴고, 잡아 당기고, 혀로 핥(?)는 행동은 처음 알았다.
"보드라운 테치!"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어울리는 테치!"
"치프프! 똥오네챠들 몰래 와타치 혼자만 쓸 것인 레치!"
저마다 행복회로에 빠져 정신없이 수건을 만지작거리는 모습.
'그러고 보니 들에서는 장난감을 구하기 어려웠지.'
들실장의 먹이부터가 음식물쓰레기다.
그 외에 필요한 물품도 전부 쓰레기일뿐.
제대로 된 자실장 전용 장난감을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다시 10분이 흘러 20분쯤 지켜보았을 무렵.
"뎃? 니, 닝겐인 데스!!!"
"치아아아아아아!!! 죽기 싫은 테치이이이!!!"
"마마! 마마아아아---!!!"
오오, 역시 나름 머리를 쓰는 놈들이구만.
인간님의 무서움을 아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안녕 실장석들아."
"데에에에....니, 닝겐상. 와타시들에게 무슨 볼일인 데스요..?"
"다른 건 아니고, 혹시 거래할 마음 없니?"
"뎃? 거래 데스?"
이번 실험의 두 번째 포인트.
그건 바로 수건을 습득한 실장석은 과연 수건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느냐다.
들실장에게 이런 깨끗하고 커다란 수건은 정말 보기 드문 보물일 터.
그런 보물과 내가 제안하는 물건은 어느 정도까지 거래가 가능할 수 있는지, 즉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는가?'라는 가치에 대한 실험이다.
"여기 콘페이토가 있어요."
"테챠! 아마아마인 테치!"
"마마! 와타치 콘페이토 먹고 싶은 테치!"
테치테치 시끄럽구만. 새끼들의 참을성은 영리함과는 상관없는 건가?
"데에에...분명 닝겐상은 말씀했던 데스. '거래'를 하자고..."
오오. 이놈 상당히 흥미로운데?
들실장치고 이 정도로 내 말을 이해하는 놈은 정말 드물다.
"맞아, 이걸 가지고 싶으면 너도 나에게 무언가를 줘야 해."
"데스가...와타시타치(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 닝겐상 마음에 드는 게 있는 데스?'
"저기 저건 뭐니? 저 커다란 거."
"뎃! 저건 안 되는 데스!"
수건을 가리키자 몸으로 막아서는 친실장.
이때 예기지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여기 있는 레치!"
"데뎃?! 삼녀쨩?!"
줄곧 골판지 상자에 숨어 있던 삼녀가 나타난 것이다.
"닝겐상! 수건씨를 드리는 레치! 그러니 그 아마아마하고 달콤달콤한 것을 와타찌에게 주는 레치!"
삼녀는 엄지 실장이었다.
녀석은 입으로 침을 흘리며 폴짝폴짝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삼녀의 말에 인내가 바닥난 장녀와 차녀(크기로 보건대)도 이에 동조하였다.
"아마아마 원하는 테치!"
"당장 그것을 내놓는 테치 똥닌게에에엔!!!"
장녀는 평범한 자실장, 차녀는 분충이구만.
"데에에엣??! 장녀, 차녀! 오마에들, 이건 보온재인 데스! 이제 곧 겨일인 데스요?!"
"맛없는 밥은 이제 싫은 테챠아아아!!!"
"우마우마가 있는데 왜 못 먹는 테치! 왜 안 되는 테치!"
"레에에...마마. 수건씨는 두 개나 있는 레치. 하나는 괜찮지 않겠냐는 레치..."
"엄지쨩..."
고민하는 친실장. 영리한 녀석이니 겨울이 걱정되는 거겠지.
왠지 거절할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녀석이 딴맘 먹기 전에 추가로 말을 꺼냈다.
"수건 한 장에 콘페이토 한 봉지. 두 장이면 두 봉지란다."
"데데뎃??!?!"
"테챠아아아아아!!!!"
그렇게 나는 수건 두 장을 도로 회수했다.
공원을 돌며 다른 실장석들에게도 거래를 제안했더니 이 녀석들, 고민도 없이 수건을 콘페이토와 교환해버렸다.
"수건이라는 고급 보온재보다 극상의 아마아마가 우선이라는 건가..."
나는 실험 결과에 매우 만족하였다.
이걸로 실장석에게 수건 = 콘페이토가 아닌, 수건 < 콘페이토 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하지만 녀석들은 알까?
내가 이 실험을 진행한 이유가 곧 강한 한랭풍이 닥쳐오기 때문이란 것을.
낙엽이나 신문지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영하 -17도의 강추위가 예정되어 있었다.
'결국 실장석이란 거겠지.'
실장석이란 고작 이 정도였던 것이다.
미래보다는 눈앞의 쾌락이 우선인 어리석은 짐승.
"데풋! 데풋!"
"우마우마한 데스! 우마우마한 데스!"
"극상의 행복인 테치!"
뭐, 얼어 뒤지건 말건 내 알 바는 아니지.
참고로 모든 콘페이토 봉지에는 1개씩 도로리가 숨겨져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녀석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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