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석 인터넷



실장석들에게 위석은 인터넷과 같다. 

그들에게 위석은 삶의 갈림길에서 소중한 조언을 해주는 조언자이자 심심할 때마다 각종 유희성 정보를 제공해주는 커뮤티니이며 삶의 지혜를 개체를 넘어 축적 및 보존해주는 아카이브다.

“이건 또 뭔 헛소리냐? 위석이 인터넷? 참피놈들에게?”
“어. 참고로 이거 내 뇌피셜이 아니라 저명하신 학자님의 논문에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 수도권의 내로라하는 공업단지 중 하나를 담당하는 A시 G동 신도시 지역의 한 고기집.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고기가 놓인 불판을 사이에 두고 철웅은 뭔 도그 사운드냐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남자, 도시악을 쳐다봤다.

“누구?”
“아키토시 세이지로. 『실석류 위석파동과 실장석 개체 간 정보이동에 대하여』. 참고로 이제 개제된 지 하루 조금 넘은 따끈따끈한 논문이다.”
“어, 그 양반이면 흰소리할 양반은 아닌데…”
끄응 하고 철웅이 얼굴을 찌푸렸다. 세이지로 아키토시, 일본의 1세대 실장석 학자이자 그 똥벌레에 대해서는 세계 1인자라 할 수 있는 양반으로, 처음 실장석이란 생물을 정의하고 위석을 분석해 냄으로써 현재의 실장산업이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든 사람이다. 일반인이라면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링갈의 개발자라는 그 한 단어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참피를 처음 연구했던 사람인만큼 아키토시는 철저한 학대파였다. 자기 앞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빌던 성체를 가차없이 해부하고, 한 시간만에 일가 두셋을 몰살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으며, 지금와서는 학대파라면 당연한 소질인 머리만 남기고 모조리 포를 뜬 실장석을 살려놓는 것도 그가 처음 시도했고 또 성공한 일이었다. 물론 아키토시는 학자답게 자기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그리했다기 보다는 실장석을 분석하면서 부차적으로 학대를 한 쪽에 가까웠겠지만 그가 실장석에게 행한 ‘실험방식’은 지금도 학대파들의 바이블이나 다름없으니 말 다 한 거겠지.

그러니 그 정도의 양반이 무려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라면 그건 그냥 지나가는 헛소리는 아닌 게 분명하다.

“아키토시 박사가 예전에 쓴 걸 리바이벌해 보자면 한 실장석이 무언가 행위를 취하고 그로 인해서 이득이나 손해를 볼 경우 그 정보는 그대로 개체의 위석에 각인된다고 했지.”
고기 한 점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도시악. 야 다 먹고 말하든가 입을 가리든가 둘 중 하나는 해라. 철웅은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그의 입에서 다음말이 떨어지기를 재촉한다.

“문제는 거기까지는 우리도 알고 있는 사항인데, 아키토시 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어. ‘위석에 각인된 정보는 위석파동을 타고 개체를 떠나 모든 ‘실장석’에 해당하는 생물체들에게 공유된다.’”
“그건 이미 다 아는 거잖아?”
철웅이 살짝 실망한듯 말했다. 방금 도시악이 말한 건 실장석에 대해 아주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익히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사실 갓 태어난 새끼가 아무리 태교를 들었다 한들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알고 태어나는 것은 바로 그 위석에 여태까지 실장석들이 깨우치고 배운 사실들이 축적되고 공유되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악은 그럴줄 알았다며 씩 웃더니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에 나온 건 더 놀랍게도, 그 위석정보는 단순히 공유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장석 개체가 어떤 의문이 들거나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개체의 행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더라. 더 재밌는 건 어떤 행위에 하나의 정보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쉽게 말해봐.”

“그러니까 일종의 자동검색 및 다단 답변 시스템인거냐?”
“딩동댕! 예를 들어 네가 퇴근 10분 남았는데 짐을 미리 챙길까 말까라고 생각하면 머리속에서 팀장의 오늘 기분, 내기로 한 보고서 일정, 네가 돕거나 무시해도 될 동료의 업무 등등의 정보가 바로 나온다는 거지.”
“와 이런 미친. 자동검색 시스템이라니 이거 완전 AI를 뛰어넘네? 참피새끼들이 인간보다도 더 놀라운 시스템을 쓰고 있었단 거잖아?!”
“그러니 이 논문 공동저자들에 AI전문가들이 들어가 있겠지.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냐?”
“뭔데?”
철웅은 아까와 달리 흥미진진한 얼굴로 도시악을 바라봤다. 

“이 놈들 위석은 단순히 정보만 주는 걸 넘어서서 딜레마 시스템도 가지고 있더라.”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너 가끔 만화나 영화서 그런 장면 보지? 왜 주인공이 뭔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게 있으면 머리 위에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서 각자 이리해라 저리해라 선택지를 주잖아. 위석도 그런기능이 있다는 거지.”
미친. 철웅은 술 한 잔을 더 털어넣었다. 이거 맨정신으로는 못 들을 미친 소리네. 도시악도 동의하며 술을 마신다. 

“만약 이 메커니즘이 분석되면 지금까지의 AI와는 또 다른 혁명적인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진짜 이 참피새끼들이 살다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도시악의 말에 철웅은 무언가를 고민했다.
“아니 그러면 그 놈들 분충소리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만약 위석이 인터넷이면 아무리 분충이라고 해도 자기들 살 방법에 대해 정보를 검색할 텐데 왜 이리 분충짓하다 죽어나가는 놈들이 많냐?”
“야 너 고등학교때 나보고 뭐라 그랬어?”
철웅의 의문에 갑자기 고등학교때 일을 꺼내는 도시악.
“내가 뭘?”
도시악은 실실 쪼갰다.
“너 분명히 5천의 몽골 기마궁사가 5만의 튜튼기사단을 박멸했다고 떠벌렸지 아마?”
“야 이 ㅆ…내 흑역사를…”
철웅은 끄응 하는 신음을 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랬다. 고등학교 때 한창 새벽에 몰래 컴퓨터를 키고 탐험했던 인터넷의 바다에서 주워들은 정보들. 그 정보들을 검증해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정보를 알았다는 치기어린 신나는 마음에 학교서 떠벌리고 다녔던 그 흑역사. 

이래서 고등학교 동창놈하고 대학교까지 동창이면 골 아프다니까. 철웅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런데 그게 왜?”
“너 그거 어디서 얻은 정보냐?”
“인터넷이지 어디겠냐…제기랄…그렇구만.”
철웅은 혀를 찼고 도시악은 거 보라는 듯 씩 웃었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술 한 잔이 또 돌고, 도시악은 말을 이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지. 하지만 바다에 좋은 것만 있지는 않잖아? 나쁜 정보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으며, 때로는 허황된 것도 있지.”
도시악의 말. 철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마이튜브나 틱-클릭이 문제되는 것도 그거지. 분명 그 수많은 영상 중에는 좋거나 힐링되는 컨텐츠도 있지만 잘못되거나 나쁜 정보를 주는 컨텐츠도 있거든. 만약 그걸 보는 사람이 돌 중에서 옥석만 가려낼 수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그렇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잘 선별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지금의 세상은 그야말로 정보가 넘치는 세상.

“하지만 너도 명색이 경영학과라면 조직행동론 배워서 알겠지만 사람은 그게 잘 안돼. 사람은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편견 혹은 선호에 더 부합하는 정보를 더 받아들이려 하지.”
“알고말고.”
그놈의 확증편향. 비록 학교를 졸업한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면 경영학 시간에 배운 걸 늘 실감하게 된다. 왜? 회사는 꼭 교과서에서 하지 말란 짓을 골라가면서 하거든.
“네가 그때 몽골군 5천이 튜튼기사단 5만을 박멸했다는 정보를 손쉽게 받아들인 건 그때 당시 너에겐 그 정보가 네가 가진 그들에 대한 이미지에 더 부합했다는 거겠지. 그러니 검증없이 믿었을 거고.”
거기까지 말한 도시악은 젓가락으로 불판위의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뭐, 인터넷에 나오는 우리의 일상만 해도 그래. 그게 진짜 일상은 아니잖냐. 만약 진짜 그랬으면 여기는 맨날 살인이 일어나는 산 안드레아스고 저기 I시는 삼합회가 꽉 지배하고 있으며 저기 서울 모 동네는 살인사건이 나도 한국 경찰의 손길이 닫지 못하는 치외법권의 마굴이게? 하지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 게다가 그런 게시물이나 정보가 계속 올라오고, 또 자기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은연중에 그게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게 계속되면 뒤에는 그게 실은 거짓이라고 알던 놈들조차 그게 진실이라고 믿게 되고?”
철웅의 말. 도시악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위석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흔히 실장석의 분충화를 위석에서 나오는 속삭임이 부추긴다고 알고 있지만 아키토시 박사에 의하면 위석에서는 나쁜 말과 좋은 말이 동시에 흘러나온다고 하더라. 그 중에서 어떤 의견을 받아들여 양충 행동을 할지, 분충 행동을 할지는 오로지 그 똥벌레들 선택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철웅은 도시악의 빈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분충짓 하는 놈들은 본판부터가 분충이라 위석이 제공하는 정보 중 지들이 듣고 싶은 나쁜 정보만 듣고 받아들였다 이거야?”
“바로 그거지. 그 반대인 놈들은 본판이 괜찮은 놈이라 좋은 정보만 받아들였거나 최소 자기가 받은 정보가 똥인지 된장인지 교차검증은 해 볼 줄 아는 놈들인 거고.”
“허어…”
철웅은 어이가 없었다. 가끔 애호파라는 양반들이 매스컴에 나와서 실장석들의 분충화는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이니 실장석들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논문 대로라면 분충은 그냥 태생적인 똥벌레라는 소리다. 

“지들 죽을 걸 알면서도 저러는 게 레전드다 레전드.”
“대가리 깨져도 OO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냐? 닝겐도 그런데 참피라고 별반 다를 바 있는 데스웅~?”
“꺼져 미친놈아! 소름 돋는다.”
“크크크크.”
도시악은 철웅의 빈 잔에 맥주를 따른다. 두 남자는 술을 채운 잔을 쨍 하고 건배했다.

“나원참. 대가리 깨져도 지 입맛에 안 맞는 정보는 안 받아들이는 게 어찌 보면 우리나 저 놈들이나 다른 게 없구만.”
“이러니 내가 참피놈들을 좋아하는 거지.”
“두 번만 더 좋아하면 참피놈들 싹 다 전멸하겠네.”

두 남자는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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