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나간 자실장 (ㅇㅇ(urari21), 세레브사육우지레후)



[마마는 밥을 구하러 다녀오는 데스.
모르는 오바상이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열어주면 안되는 데스. 혼자 집밖으로 나가서도 안되는 데스. 운치는 집안의 운치그릇에 누는 데스. 그러면 나중에 마마가 치우는 데스.
...집 잘 볼수 있겠는 데스카?]

[와타시도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닌 테치! 걱정말고 다녀오시라는 테츄!]

씩씩하게 대답하는 자실장을 보고, 친실장은 그래도 애호파 닝겐들이 주는 새 골판지집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실장석의 집이란 외출할 때는 밖에서 돌멩이를 괴어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안에 있는 자들이 멋대로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외부에서 성체실장이 침입하는 것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공원의 들실장들 사이에서 안에 새끼들이 들어있고 밖에 돌멩이가 괴어진 골판지 상자는 주인이 잠시 외출 중인 집이니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암묵의 룰이었으나, 최근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다른 실장석의 집을 습격하는 동족식 실장이 늘어나며 룰같은것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친실장은 다른 실장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닝겐들의 밥상자에서 밥을 가지러 갔다오니 이웃집 자실장들이 모두 잡아먹혀 적녹색 얼룩과 실장복 쪼가리만 남아있었다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애써 모은 밥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종종거리며 집으로 뛰어와 문을 괴어놓은 돌멩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무사한 자의 모습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었다.

자를 가진 어미의 마음이야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특히 이 친실장은 이번 여름 불어닥친 태풍으로 자들을 모두 잃고 지금 있는 자 딱 한마리가 살아남았을 뿐이라 특히 자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마음같아서는 차라리 밥을 가지 말고 자를 지키고 있거나 아니면 방해가 되어 밥을 많이 구하지 못하더라도 자를 데리고 밥을 찾으러 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나, 지금 밥을 많이 모아두지 않으면 겨울이 왔을 때 굶게 되고 어쩌면 단 하나 남은 소중한 자를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던 차에 닝겐의 야무진 손으로 만든, 단단한 테이프와 나무젓가락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걸쇠가 있는 골판지집을 구한 것이다.  예전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안전한 집에 자를 두고 노파심에 이것저것 타이르기는 했으나 한결 마음이 놓여 오늘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겨울을 넉넉히 날수 있도록 밥을 잔뜩 모으리라 힘을 내며 집을 떠나는 친실장.


그 친실장의 뒷모습을 보며 자실장은

[테치이. 마마는 쓸데없는 잔소리가 많은 테치.]

하고 종알거리며 금세 어둡고 갑갑한 골판지 집을 뛰쳐나와버린다.

그도 그럴게 친실장이 밥을 구하러 나간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친실장이 문을 막아놓아서, 친실장이 돌아온 후부터는 피곤에 지친 친실장이 밖으로 데려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날이 어두워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실장은 계속 골판지 상자 안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자매들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마마가 밥을 구해오면 골판지 문을 활짝 열고 마마의 눈이 미치는 골판지집 주변 공터에서 자매들과 뛰어놀곤 했으나, 무르고 연약한 자실장들의 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비가 내렸던 이번 여름 태풍에 자매들이 모두 죽고 이 자실장 단 한마리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친실장의 과보호가 심해졌다.

한계절 내 어둡고 컴컴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자실장은 혼자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생기고 문밖을 막고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자 신나서 뛰쳐나왔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바같 공원의 공기는 너무나 신선하고 시원했으며, 얼마전까지 자실장의 옷색깔처럼 푸르르던 나뭇잎들은 어느새 빨갛고 노란 색으로 바뀌어 꿈속에서만 상상하던 오색 콘페이토 낙원처럼 아름다웠다.

흙바닥 위에는 샛노란 은행잎 융단이 깔려서 마치 공주님이 된 기분으로 그 폭신하고 예쁜 잎사귀 위를 뱅글뱅글 춤추며 뛰어다니다가 바닥에 깔린 잎사귀 중 제일 예쁘고 탐스러운 것을 찾아들고 깃발처럼 휘두르며

[테햐! 예쁜테치! 너무나도 예쁜 이것은 와타시의 것인테치~테츄츄츄~]

하고 즉석에서 작사작곡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실장.
그 위로 커다랗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어라! 실장석이다!"

하고 작은 자실장을 덥석 잡아쥐는 그것은 아직 어린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었을 인간 여자아이.

어느새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학원에 가버리고 혼자 심심해하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친실장의 아낌없는 애정을 받아 매일 친실장이 혀로 깨끗하게 핥아주고 가끔은 구정물이지만 아주 소중한 물을 사용해서 빨래도 해주어서 더럽긴 하지만 들실장치고는 깨끗한 자실장이 은행잎 하나를 들고 뱅글뱅글 춤추고 노래하는 귀여운 모습에 얼른 자실장을 주워들었다.

[테챠아! 놓는테치! 싫은테치! 와타시는 아무것도 안한테치! 살려주는테챠아아아!]

갑자기 거대한 인간의 손에 잡힌 자실장은 마구 비명을 지르며 바둥거렸으나 인간이 자신을 다치지 않게 소중히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얌전해졌다.

여자아이는 자실장을 들고 공원 입구쪽에 위치한 어린이 놀이터로 가서 모래밭 위에 자실장을 내려놓고 나름 진지한 어조로

"나는 엄마고, 너는 아가야."

하고 말한다.
항상 같이 놀던 친구들과 하던 소꿉놀이를 하며 역할을 정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이 하는 소꿉놀이가 뭔지 모르는 자실장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마마테치? 마마테치? 어째서 오마에가 마마테치?]

하고 이상해하다가 한참 뒤에야 뭔가 이해했다는 듯이

[테챠! 와타시 사육실장이 된 테치?]

하고 퐁퐁 뛰며 기뻐했다.
링갈같은 건 없는 여자아이는 왠지 모르게 자실장이 기뻐보이자 자실장도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서

"오구오구, 우리 애기 기분 좋아요? 엄마가 맛있는 밥 해줄게요~"

하고 나뭇잎사귀를 몇장 따서 접시 삼고 그 위에 주머니에서 꺼낸 초코캬라멜을 얹어준다.
자실장에게는 벽돌처럼 커다란 거무스름하고 네모난 그것을 이상한듯이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앙~하고 깨물어보더니,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극도의 단맛과 향기로운 초콜릿의 풍미에 자기도 모르게 초승달같은 눈을 하고 테츙~하는 소리를 내며 뷔르르륵 빵콘을 해버린다.

[테츄아! 마망! 마망! 이거 맛있는 테츙~최고테츙~마마 다이스키테츙~테츙♡ 테츙♡]

친실장에게도 한 적 없는 아양이 연이어 터져나오지만, 인간 여자아이는 사정없이 인상을 구긴다.

"으윽, 구린내! 뭐야 이거. 으... 우웨엑...!"

그야 자실장이 먹고 사는 건 그 상태 그대로도 사람이 맡기 힘든 역겨운 냄새의 음식물 쓰레기. 그 음식물 쓰레기가 심지어 박테리아로 가득한 실장석의 분대 속에서 부패한 것이 실장석의 똥이니 그 냄새는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지독한 것이 당연하다.

여자아이는 그 지독한 냄새에 순간 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서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으로 뛰어가 버린다.  


새 닝겐마마에게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것을 받아먹고 사육실장이 된 기쁨에 흠뻑 취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 들뜬 기분이었던 자실장은 새 닝겐마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신을 버리고 가버리자 두렵고 당황하여 티에엥 티에엥 울음을 터트린다.

[마맛! 마맛! 와타시 여기인 테치! 버리지 마는 테츄아! 와타시도 데려가라는 테챠아아아! 마마! 티에에엥! 티에에에엥!]

물론 그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인간의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뛰어 자실장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인간 여자아이 대신 온 것은 무시무시한 동족식 성체실장이었으니까.

[데프프픗. 맛있어 보이는 자인 데스우~]
[테치?!]    





한편 애호파 인간이 준 골판지 상자 덕분에 자에 대한 걱정 없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오랫동안 돌아다닌 덕분에 오래간만에 만족할만한 먹이를 모은 친실장은 맛있는 밥을 먹고 기뻐할 자 생각에 비록 피곤한 몸이지만 왠지 힘이나서 보엣 보엣 노래를 흥얼거리며 힘있게 걸어왔다.

드디어 반가운 집이 보일 거리.
보통 때보다 더 늦게 돌아오는 마마를 걱정하고 있을 자를 위해 좀더 걸음을 바삐 서두르자 어째서인지 굳게 닫혀있어야할 튼튼한 잠금장치 있는 문이 활짝 열려있다.

불안한 마음에 애써 모은 밥봉투를 내던지고 데슷! 데슷! 하고 뛰어 점점 집에 가까워오자 텅비어있을까봐 걱정했던 집에는 다행히 자실장들이 꼬물거리는 모습과 함께 테치, 텟 테치,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데? 데스? 자실장'들' 데스?]

자신이 본 것에 위화감을 느끼고 숨이 차지만 꾹 참고 더 속력을 내어 집에 도착하자 거기 있는 것은 귀엽고 소중한 와타시의 자가 아니라 마마에게 버림받고 공원을 떠도는 독라 고아자실장 세마리.
언뜻 본 자실장의 옷이라고 생각한 녹색은 이 고아자실장들의 똥이었다.


골판지 구석에 놓인 보존식 상자안에서 정신없이 밥을 꺼내 테챱테챱 추잡스러운 소리를 내며 먹고 또 먹음과 동시에 똥을 싸고 있던 고아자실장들은 성체실장이 나타난 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테츙~하고 아첨을 하며 성체실장의 자인 척을 한다.

[테치~ 마마 돌아오신 테츄카? 기다렸던 텟츙~]
[마마, 와타시 배고팠던 테츙~]
[밥 먼저 먹어버린 테츄~ 하지만 귀여운 와타시니까 용서해주는 텟츄~]

당연히 친실장이 이따위 수작에 속을 리 없고 화만 돋구어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오마에타치! 이 분충들 와타시의 귀여운 자를 어떻게 한 데스카! 와타시의 자를 내놓는 데스! 와타시의 자! 귀여운 자!!!]

성을 내며 달려드는 성체실장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고아자실장들은 겁에 질려 빵콘을 하며 어떤 녀석은

[마마, 왜 이러는 테치카! 와타시가 마마의 귀여운 자테치!]

하고 우기기도 하고 또 어떤 녀석은

[모르는 테츄아! 와타시는 모르는 테츄아! 여기는 처음부터 빈집이었던 테챠! 오바상의 자는 없었던 테챠!!!]

하고 사실대로 털어놓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친실장은 세마리의 고아자실장을 모두 물어죽이고 자가 있었을 춥고 쓸쓸한 집에서 쪼그리고 앉아 오로롱 오로롱 흐느껴 운다.

그러다 문득 집안에 자의 피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데스! 와타시의 자는 와타시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산책을 나간데스! 틀림없는 데스! 분명히 곧 돌아오는데스. 반드시 돌아오는 데스우.자가 돌아오면... 돌아온 자를 따끔하게 야단치고, 그리고 마마가 많이 걱정했다고,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는 데스우~]

하고 정답이면서 정답과 가장 거리가 먼 답을 도출해내고 혼자 데프픗 웃는다.

자가 돌아오면 처참하게 죽어있는 고아자실장들의 사체를 보고 놀랄까봐 끙끙거리며 사체들을 치우고 자를 기다린다.
밤새 자를 기다리며 아주 작은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문을 벌컥 열고

[오마에! 어디갔다 이제 오는 데스까! 마마가 걱정한 거 안보이는 데스까! 마마의 말을 안듣고 마마를 걱정시키는 자는 나쁜 자데스! 아주 나쁜 자데스!]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문 밖에 있는 것은 와타시의 소중한 자가 아니라 바람이 굴린 가랑잎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슬프게 오로롱 하고 훌쩍이며 다시 문을 닫는다.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하며 마침내 날이 밝아왔을 때, 친실장은 더이상 자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과 함께 밥봉투와 보존식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했다.  






오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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