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일기 (ㅇㅇ(60.98))



...나는 군 기지의 본 건물로 들어갔다. 행여나 무언가 중요한 물자, 그게 아니면 적어도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이 있진 않을까 싶어서.

군 기지의 지휘소는 어떤 생명체도 없었다.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내가 찾은 건 반쯤 남은 라피트 포도주 한 병과 못 몇 개, 그리고 별로 중요해 보이진 않는 문서 몇 장.

참, 어딘가로 통하는 열쇠와 병기고에 있는 물품들의 목록도 찾았다. 어디 보자... 중급 방독면, 라이플 탄, 돌격 소총탄, 그리고 수류탄과 Hs41소총 몇 자루라. 하지만 지금 그게 남아 있을까?


병기고 문은 굵고 단단한 철사를 엮어 막아 놓은 문이었다. 자물쇠는 아직도 그 임무를 다하고 있다. 내겐 빠루도 톱도 없지만, 묵직한 소화기가 하나 보인다. 저걸로 까 부숴야겠어.

몇 번을 내리치자 잠금쇠는 서서히 굽더니, 마침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챠악! 치이익!"

쥐인가? 아니야. 사람의 목소리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내겠는가?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텣챠아아악! 챠아악!"
그 생명체는 울부짖으며 다가왔다. 아, 그때 난 뭘 본 것일까?

그것은 내 무릎까지 닿았으며, 한 쪽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짙은 초록, 다른 쪽은 역시 생명체의 것이 아닌 듯한 빨강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입은 삼각이었으며, 설치류의 앞니 같은 것이 나 있었다. 동물이라기보단 인형 같았다. 아주 끔찍한 인형!

때가 탄 꼬질꼬질한 옷에서는 코를 찔러대는 악취가 기습해 왔고, 눈에서는 피눈물인지 뭔지 모를 액체가 한때 흘러내렸던 것 같은 검게 말라붙은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못을 들고 있었고, 내가 쳐다보자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초록색의 덩어리를 끄집어내더니, 내게 던졌다.

그 덩어리는 날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시멘트 벽에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악취가 퍼져나왔다. 동물이나 인간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그 끔찍한 냄새.

그것은 뭐라 말하기 힘든 큰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와 못을 내 장화에 쑤셔 박았다. 작은 동물이 내는 힘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이다.

나는 공포보다도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그것이 내게 뭘 하는지 지켜보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더 있다간 내 장화에 구멍이 날 겄 같았기에, 놈이 달라붙은 발을 한 번 털었다.

놈은 멀리 나가떨어져, 시멘트 벽에 부딪쳤다. 피와 녹색의 체액이 온통 벽에...
이 생명체는 뭔가 이상했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약하면서, 그 약함에 걸맞지 않는 적대성. 또 하나, 두개골이 박살난 상태에서도 나를 죽이려 들면서 포효하는 저 끈질긴 생명력.

욕지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가방 안에 있던 부지깽이로 몇 번이고 후려쳤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 '인형'은 마침내 멈췄다.


잠금쇠가 부서지고, 병기고의 문은 천천히 열렸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아니, 이 도시 전체가, 어디 무너진 곳도, 폭격이나 폭발을 암시하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어디 보자... 방독면, 라이플 탄, 수류탄... 소총은 녹슬어 망가져서 쓸 수 없다.


막사를 지나 보일러실로 향하자, 군복 입은 해골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의 너비며 키를 보아, 건장한 사내였던 것 같다. 아무런 상흔, 즉 칼에 찔렸다거나, 총에 맞았다거나 한 흔적이 없었고, 대신 예의 그 생명체가 흘린 체액 같은 게 온 곳에 남아 있었다. 이 남자의 시체를 파 먹으며 살아남은 걸까.

그 남자의 옷을 뒤지자 잘 만들어진, 휘두르기 좋은 쇠막대가 나왔다.
그래, 그 끔찍한 괴물들을 때려죽이기 좋은 크기였다. 이런 쪽지도 나왔다.

'방역 계획.'

나는 재빨리 그 안의 삐뚤빼뚤한 글씨에 눈을 옮겼다.

'실장석들이 온 데 똥을 싸지르면서 도시에 온갖 병이 돌고 있어! 군의관들이며 의대생들까지 다 징발하고, 시장 천막을 병원 침대로 써도 매일같이 환자가 늘어난단 말야. 페스트, 콜레라, 이질, 사스 바이러스, 한타바이러스에 연쇄 구균, 장티푸스까지! 도저히 현대의 도시에서 발생할 수 없는 규모의 대역병이라고! 이렇게 생긴 놈들이 있으면 보이는 족족 때려죽여.'

그림은 내가 본 것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크기, 모습, 눈의 모습... 모든 게 그 괴물과 똑같았다. 아래에는 '실장석'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추신: 방공호 열쇠는 사령실에 있어. 방공호는 뒷마당에 있고, 만약 우리가 전부 다 죽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챙겨서 도망가게. 그리고 부디 몸조심해, 바냐! - 감사를 담아, 페테르 오를렌코 중사'

실장석들이 전염병을 옮긴 걸까? 도시는 시체로 가득하다. 전염병은 감염할 사람이 없자 자연히 사그라진 모양이지만, 조심해야겠어. 건강한 사람도 쓰러뜨릴 수 있는 역병이 돌았다니 말이야...

뒷마당에 있는 방공호로 가 봐야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