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한파

세상의 모든 것을 얼리려는지 기온은 점점 떨어져만 간다

세찬 바람은 한파가 가져온 보너스

공원 저쪽 구석에 눈 덮인 골판지 하우스에는 실장석들이 살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실각하지 않고 추위에 떨고 있는 실장석 일가

하우스 안에는 친실장의 얼굴만 튀어나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이빨을 딱딱거리고 있다

친실장의 이빨은 엇박자 소리를 내는 캐스터네츠

불쾌한 이빨의 엇박자 소리와 함께 찌이이 하는 자실장의 신음소리가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다

이번에는 기필코 새끼들을 독립시키겠다고 다짐했던 친실장

그 품에는 네 마리의 새끼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아 그나마 있는 체온을 공유한다

얼마 전까지 행복한 봄을 노래해왔던 자실장들

지금 이들의 머리에서 봄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춥다

이 두 글자만이 머리에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도 사치일 정도로 생명을 위협하는 맹추위

친실장의 품안에 있던 막내, 사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마... 무우우울.....]

하지만 물 따위는 얼어붙은지 오래

[무... 물씨가... 얼어붙은 데엣스.... 일단 참는데스....]

무기력하게 집어들었던 페트병을 다시 내려놓는 친실장

얼굴도 모르는 겨울을 욕하지만 달라지는건 하나 없다

체온도 유지하기 어려워 생사의 외줄타기를 하는 일가

그들에게 물을 녹일 따뜻함은 저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제발 내일은 따뜻해지라고 빌고 또 비는게 전부인 상태

그러나 야속하게도 한파주의보는 다음주까지 발령되었다

그렇게 이들은 추위에 떨다가 지쳐 스르르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골판지를 들썩인다.

[오로롱!!!! 오로로롱~~~~~ 오로롱~~~]

애타게 물을 찾았던 막내 사녀

애교가 많고 언제나 마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사녀

사녀의 눈은 탁한 회색 빛으로 변해버렸다.

[사녀쨩.....] [마마가 미안한데스!!!! 무능한 마마가 미안한데스!!!!!]

하지만 하나의 죽음은 곧 다른 이들의 생명수라는걸 아는지

일가는 통곡이라는 사치를 마음껏 부린다

한참을 울고나니 찾아오는 갈증과 배고픔

지난 날의 자, 이모토챠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으로 지위가 변해버렸다

[자들은 듣는데스... 오마에들은 사녀의 몫까지 더해 행복해져야 하는데스... 사녀도 용서할 것인데스....]

없는 살림에 한바탕 또 눈물을 빼는 사치를 부린 일가는 잠시 묵념을 한 후 허겁지겁 고기를 뜯기 시작한다

맛있다.

비록 차갑고 딱딱하지만 촉촉하니 너무나 맛이 좋다

몇 달만에 느껴보는 포만감

자신도 모르게 사르르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이내 눈에 들어오는 자매의 뼛조각

서로의 입에 묻은 빠알간 핏자국

골판지 안의 공기는 다시 또 무겁게 내려 앉는다

눈물의 값을 고기로 되돌려 받은 일가

다시 또 모여 앉아 바들바들 떨며 일상의 궤도에 복귀한다

뼛조각을 집어들어 밖으로 나가는 친실장

운치굴이었던 구멍에 뼛조각을 내던진다

운치를 싸면 레후레후 소리가 메아리 쳐 들려오던 것도 흘러간 지난 날의 추억

지금은 운치도 얼어 붙었는지 굴 안이 반짝반짝 빛이 반사된다

데~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친실장

이윽고 불어든 찬바람에 정신을 차린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마마의 얼굴

문득 마마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마마의 하우스는 공원의 반대편

한나절을 꼬박 걸어가야 하는 그 먼곳의 하늘만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을 훌륭하게 독립시킨 마마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분명히 자신보다 현명하게 이 겨울을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마마는 포근한 콘페이토 별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친실장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렇게 또 공원의 하루는 막을 내렸다

점차 작아지는 골판지 안의 숨소리와 함께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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