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께서 노하셨다! 이 공원에 종말이 닥칠 것이다!"
대강 일주일 전부터, 후타바시의 제 3 녹지공원에 이상한 옷차림을 한 괴인이 나타났다. 사이비 종교를 연상시키는 치렁치렁한 로브, 양손에 든 종교의식 도구, 광기로 가득한 목소리로 무장한 그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공원에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만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들실장들이었으나, 딱히 피해를 입히지도 않고 광인마냥 그저 떠들어대는 그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다.
[데프픗! 저 인분충 닌겐 또 온데스.]
[와타시의 운치나 먹는데샷!]
[오마에의 인생이 종말인데프픗.]
지나다니면서 대놓고 조롱하고, 심지어 투분까지 일삼았지만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하늘께서 노하셨다! 이 공원에 종말이 닥칠 것이다!"그는 다만, 이제까지 그러했듯 공원에 닥칠 위기를 경고할 뿐이었다.
그의 정체는 학대경력 20년의 들 실장학대는너무나즐거워(33세).
나무위키의 [아즈텍 제국] 항목을 보고 영감이 떠올라 새로운 학대법을 시도해 보는 중이었다.
————————
"하늘께서 노하셨다!"
아 씨발. 존나 더워.
"이 공원에 종말이 닥칠 것이다!"
옷좀 얇은걸로 할걸 씨팔.
이 짓거리를 한 것도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더위와 탈수 때문에 매분매초 사선을 넘나드는 느낌이다. 역시 괜한 짓을 한 걸까?
그래도 이제 이틀만 더 하면 돼.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
그 날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연신 종말이 닥친다고 떠들어대던 광인은 공원의 중앙 광장에 우뚝 서서 근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분충 놈들! 선지자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비웃다니! 하늘께서 노하셨다!"
물론 그런다고 들실장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저 니트닌겐 무슨 헛소리데스?]
[나가서 구직활동이나 하는데스!]
[더위먹은 데스?]
여전히 비웃어대는 들실장들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가는 광인.
"아아! 온다! 종말이다! 하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온몸을 기괴하게 비틀고 떨며, 두려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광인.
[데… 데뎃!]
[이게 무슨 일인 데샤앗!]
[종말인데스! 종말!]
헌데 정말 그의 말대로 이변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대지를 불태우려는 듯 작열하던 태양이 돌연 어둠에 휩싸여, 한낮임에도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 말았다!
[데갸앗! 데갸아아아앗!]
[마마! 마마아아아아아!!]
[죄송한데스죄송한데스죄송한데스죄송…]
그제서야 그 광인이 진실된 선지자임을 깨닫고 머리를 조아리는 들실장들.
"하늘을 달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
[데?]
선지자는 그리 말하며 가장 가까운 들실장 한마리를 들어올렸다.
[와타시 사육데자뵷!]
행복회로가 돌아가기도 전에 가랑이부터 목까지가 세로로 두동강나 절명하는 들실장.
"심장!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필요해!"
남자는 걸레짝이 된 시체를 뒤적여,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는 심장을 꺼내들고서…
-뿌지직!
힘껏 움켜쥐어 터뜨렸다.
광장에 모인 들실장들은 상식을 벗어난 광경에 압도되어 제각각 빵콘하고 울부짖으며 광란에 빠지고 말았다.
하늘에 난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옅은 태양빛, 동족의 혈액과 배설물 냄새, 그리고 적록의 체액을 뒤집어쓴 광기의 선지자.
그 모든 요소가 너무도 두려워 공포만으로 파킨할 지경이었다.
"아아! 부족해! 하나로는 부족해! 심장! 더 많은 심장!"
그의 말대로 태양은 아직도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데갸앗스!]
또 한마리의 심장이 꺼내어져 폭발한다.
[갸아아악스!]
또 한마리.
[살려데붓!]
또 한마리.
[데뎃데데데데뎃….]
그리고 다섯번째 들실장이 선지자의 손에 들어올려진 그 순간…
[태양씨인데스!]
[다시 밝아진 데스!]
[오로롱! 살아난 데스!]
거짓말처럼 태양이 원래대로 밝아졌다.
죽기 직전에 겨우 살아난 다섯번째 들실장은, 긴장이 풀리며 질척한 방귀를 뿌웅 뿜어냈다.
———————
나는 지금 공원 광장에서 연신 도게자하며 고맙다고 울부짖는 들실장 한복판에 갇혀 있다.
역시 방금 어두워진게 개기일식이라는 걸 아는놈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길어야 3년 사는 들실장들이 일식을 본적이나 있을까. 태양과 달이 지구 바깥에 존재하는 거대한 천체라는 지식도 없으니, 방금의 현상은 놈들에게 정말로 재앙 그 자체로 느껴졌을 것이다.
어쨌든, 13일 동안의 개짓거리가 겨우 결실을 맺었다. 몇년만에 보는 개기일식이니 어쩌니 하는 얘기 듣고 이딴 짓거리 하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
오늘 혹시라도 구름 꼈으면 좆망이었는데 다행히 잘 먹혀들었다.
근데 이 뒤로는 어떡하지? 뭔가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두긴 했는데 다 때려치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싶어. 분위기 타서 들실장 체액 뒤집어썼더니 존나 찝찝해….
아 맞다. 방금 죽이려다 산 놈한테 떠넘겨 볼까? 흠, 괜찮을 것 같네.
———————
"잘들 보았느냐! 하늘께서 진노를 거두셨다! 신선한 공물을 받고서 말이다!"
[믿는데스 믿는데스!]
[선지자사마 그동안 죄송했던데스!]
[태양사마 진정하는데스!]
한쪽 주먹을 들어올리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읊조리는 선지자. 광장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다섯번째 들실장을 높이 들어올린다.
"태양께서 계시를 내리셨다! 이 실장을 태양의 사자로 삼으라고!"
[데에에에에?!]
[와타시 데스까?!]
그 선언에 광장의 모든 들실장- 내 손안의 놈을 포함해서- 이 경악해 데스데스 떠들기 시작했다.
"태양의 사자는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살아 움직이는 동족의 심장 하나를 꺼내 태양께 바칠지어다! 그리하지 않으면 하늘의 진노를 살 것이다! 이 공원은 영원토록 어둠에 휩싸일 것이다!"
[[[[[데에에에에에!!!]]]]]
선지자는 그렇게 태양의 사자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두고 떠났다.
광장의 모두는 휘날리는 선지자의 옷자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
아 맞다. 심장 꺼내는 법을 알려주고 왔어야 했는데.
…몰라, 귀찮아. 일단 자고 생각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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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어쩌면 좋은 데스? 와타시가 별안간 태양의 사자가 되어버린 데스.
어제 선지자상이 했던 것처럼 동족의 심장을 꺼내 바치는 데스?그렇지 않으면 태양상이 영영 떠나버리는 데스?
주어진 짐이 무거운 데스….
와타시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데스. 해가 뜨기 전에 미리 보스상의 골판지로 향하는 데스.
오늘은 일단 동족식을 하다가 자판기가 된 독라달마의 심장을 바치기로 한데스.
[데엣! 데엣스!]
보스상이 빌려준 보검으로 독라달마의 가슴을 파내는 데스. 일부러 급소를 피해 살을 헤집어 뼈가 드러날 때까지 파내야 하는데스.
[데갸악! 데갸아아아앗!]
독라달마가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는데스. 긴장에 땀이 흘러 보검이 미끄러질 것 같은 데스.
동족들이 달마를 움직이지 않게 잡아주고 있지만, 역시 저항이 너무 강해서 힘든데스.
[데히- 데히-]
살아있는채로 심장을 꺼내는 일은 정말로 어려웠던 데스. 겨우 가슴의 뼈를 열고 심장을 꺼내… 데뎃?
[데갸아아앗!]
심장이 멈춰있는 데스! 독라달마가 어느샌가 죽어있었던 데스! 핀치인 데샤앗!!!
———————
선지자는 오전 10시쯤이 되어서야 다시 공원에 나타났다. 어제까지의 맑은 날씨가 거짓말인 듯,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데에! 선지자 상이 돌아온 데스!]
[모두에게 알리는 데슷!]
공원의 초입에서 마주친 들실장 두마리가 서둘러 안쪽으로 향했다. 그 둘을 여유롭게 뒤따르자, 망연자실한 채로 주저앉은 태양의 사자가 나타났다.
[서, 선지자 상! 심장을 꺼냈는데, 이미 멈춰 있었던 데스! 태양 상이 노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데스!혹시나 해서 심장 두 개를 더 꺼냈는데, 두개 다 멈춰있었던데스!]
선지자는 말없이 그 뒤에 널브러진 세 구의 시체를 바라봤다. 하나같이 가슴팍이 엉망으로 파헤쳐져 있었다.
"태양께서 그대의 노고를 알기에 책하지 않으시나이다.
비천한 내가 가로되 어찌 그대의 사자를 도우리이까.
태양께서 이르시길 불꽃으로 벼린 무구를 하사하라 하더라.
또한 복된 가르침을 전하라 하시니, 사자는 태양의 자비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들어 온전한 심장을 바치리이다."
[뎃?]
"해석하자면, 태양께서 내린 보검과 내가 가르쳐준 지식으로 살아있는 심장을 바치라는 것이다."
[데데?]
선지자는 말없이 품에서 커터칼을 꺼내고서 발치의 들실장 하나를 붙잡았다.
[데! 데갸아아앗! 데갸아아아악!]
죽음을 직감하고 힘껏 몸부림치는 들실장. 하지만 선지자가 조금 힘을 주는 것만으로 그 움직임은 봉쇄되었다.
"우선, 심장이 아닌 그 아래쪽, 명치 부근을 절개하고…."
[데끼이이이익!!]
"가죽과 분대를 옆으로 치워보면 얇은 막이 있다."
[데갸아아아! 데갸아악!]
"이쪽에 손을 집어넣어 봐라. 막 너머에 심장이 있다."
[이렇게데스?]
[데히야아아아악! 데휴아아아악!]
"심장이 느껴지나?"
[데… 힘차게 뛰고 있는 데스.]
[데힛… 데히이이잇…]
"그대로 잡아 빼는 거다."
[-데스읏!]
[데, 데, 데…(파킨)]
[놀라운 데스… 심장이 아직도 뛰면서 피를 뿜어내고 있는데스.]
"그걸 으깨면 태양께서 받으실 수 있다."
[뎃! 태양 상이 나타난 데스!]
선지자의 말대로 박동하는 심장을 으깨자, 구름 사이로 해가 비췄다.
"그래. 그대의 진실된 마음에 태양께서 감복하셨다. 앞으로도 잊지 말고 심장 하나씩을 바치도록 해라."
선지자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심장이 빠져 죽은 네 구의 시체, 그리고 석연찮은 표정의 보스를 제외하고, 모든 들실장들은 그 성스러운 뒷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
어제 마무리 제대로 안하고 돌아와서 사실 좀 불안했다. 심장을 엉망진창으로 바쳐도 태양이 뜨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비가 왔다.
이놈들은 심장을 제대로 못 바친 것 때문에 비가 왔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레 조금 더 믿음이 굳건해졌다.
어쨌든지간에, 당초 계획했던 대로 심장을 쉽게 빼는 법을 알려줬다. 이젠 이놈들끼리 알아서 동족의 심장을 빼다 바쳐줄 것이다.
재미삼아 써본 성경말투는 안 먹혔다. 역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뭐 딱히 상관없지만.
그건 그렇고 심장 으깬 타이밍에 해가 나타난건 뭘까. 한낱 우연으로 치기에는 너무 절묘하다. 카오스파워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아니, 그건 너무 갔나.
—————
그날부터 와타시는 태양 상의 사자로서 살아갔던 데스. 태양 상이 떠오르기 전 공원 구석에 있는 제단으로 향하는 데스.
제단에는 항상 동족이 한마리 묶여있는데스. 공원의 규율을 어긴 분충들인데스.
와타시는 항상 했던 것처럼 심장을 꺼내 태양 상께 바치는데스. 죽은 시체는 작업을 도와준 동족들과 나눠먹는데스. 가장 중요한 역할인 와타시가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데스. 먹을 것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요즘 온몸에 힘이 넘치는 데스. 공원의 제일가는 덩치인 보스상만큼이나 커진 데스우.
그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는 데스. 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동족들이 잘 부탁한다며 이것저것 챙겨줘서 딱히 일을 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스. 공원의 제일가는 부자인 보스상만큼이나 부자가 된 데스우.
그런데 요즘 보스 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데스…. 와타시를 볼 때마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데스. 와타시가 뭔가 잘못한 데스?
—————
그 뒤로는 공원에 가끔씩만 놀러갔다. 새 알바자리를 구하기도 했고, 내가 일일이 간섭하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태양의 사자는 오늘도 깔끔하게 심장을 꺼내서 바치고 있다. 정확히 손이 들어갈 만큼의 틈만 내서 그 사이로 심장을 꺼낸다.
분충 위주로 제물을 바치는 덕에 나날이 공원이 깨끗해지고 있다. 근데 좀 있으면 제물이 없어지겠는데?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
…싶었는데, 공원의 보스가 패거리 세명을 이끌고 내 앞을 막아섰다.
[선지자 상! 할 말이 있는데스!]
[그런데스!]
[멈추는데스!]
[당장데스!]
"어린양아 무엇이 너를 괴롭게 했느냐. 태양께서 가로되 그 온기를 받는 모든 이는 천국에 들어설 자격이 있나니 선지자에게 언제든 의지해도 좋다 하더라. 그러니 말해보라. 그 마음에 품은 것을."
[데? 데데? 그러니까 데스…]
…
보스의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사실 심장 안 바쳐도 되는 것 아니냐.
-저 태양의 사자 어쩌고도 그냥 우연히 정해진거 아니냐.
-매일 동족을 죽여서 공원이 망하게 생겼다. 관두겠다.
…정도 되겠다. 눈치 한 번 빠르네. 하긴 이 정도 되니까 한 공원의 보스가 된거겠지.
하지만 이놈의 똘똘함과는 별개로 속내가 빤히 보인다.
딱 봐도 지금까지 보스로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태양의 사자가 자기한테 맞먹고 있으니까 불만이 생긴 거겠지.내 학대 경력은 허투루 쌓인게 아니다 이말이다.
뭐, 이 정도 반발은 당연히 예상했어.
"실장아. 태양의 진노를 기억하느냐.그가 온정을 거두고 지상을 암흑과 절망으로 가득 채웠던 것을 기억하느냐.
맥동하는 심장이 그 어둠을 몰아낸 것을 기억하느냐.
태양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은혜로우시지만 의심하는 불신자에게 우박과 불꽃과 벼락을 뿌리며 응징한단다.널 삿되게 하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지어다."
[지랄마는데스! 다 거짓말인거 아는데스! 심장 바쳐도 흐린날은 흐리고 비도 내리는 데스! 이 사기꾼 놈 데쟈아앗!]
[죽여버리는 데스!]
[저 사자 놈도 같이 데스!]
[공원을 되찾는데스!]
씹새. 안 통하네. 설마 이 공원에 이정도로 영특한 놈이 있을 줄이야.
…근데 이정도로 똑똑한데도 절대적 강자인 나한테 개지랄을 한다고? 내가 자기들한테 뭘 할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 태도다. 역시 난다 긴다 해봐야 실장석이라니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전부 도륙을 내줄 수 있지만, 그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플랜 B를 가동시키자.
—————
"태양께서 이르시길 그대들의 집인 것처럼 편하게 그 몸을 뉘어라. 그의 온정은 하늘만큼 넓어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음이라."
[데에… 여기가 태양 상의 신전 데스까?]
다음날, 나는 태양의 사자에게 산제물을 바치지 말라고 한 뒤 공원의 모두를 근처의 '신전'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태양 신앙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미리 일러뒀다.
말이 신전이지 사실 버려진 폐창고를 싸게 매입한 거다. 외벽에 적당히 락카칠을 해서 분위기만 내 뒀다.
내부에는 벽 하나당 조그만 창문 하나씩이 나 있다…고 이놈들은 생각할 테지만, 사실 창문 없는 벽에 컴퓨터 모니터를 바짝 붙여놓은 것이다. 이놈들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창문과 구분하지 못한다.
그 외에는 온도조절용 에어컨, 실장석용 에어소프트건, 그리고 내 주머니 안에 든 리모콘 정도가 특기할만할까.
[데에에… 태양 상의 신전…]
[성스러운 데스…]
태양의 사자가 주눅든 태도로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뒤를 추종자들이 따른다.
[쾌적해 보이는 뎃승~]
[태양 상을 믿으면 여기서 살 수 있는데스?]
중립적인 들실장들은 그 다음.
[데프픗. 멍청한 똥분충들 데스.]
[바보같은 거짓말을 까발리는 데프픗.]
마지막으로 태양 신앙을 부정하는 보스와 그 패거리들이 의기양양하게 입장한다.
밤새 열심히도 선동을 했는지 패거리가 세 배 정도로 불어나 있다. 다들 신앙의 부정을 폭로하는 것에 신이 나서는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태도다.
뭐, 미리 말해두자면 이곳은 불신자들의 무덤이 될 거다. 무관심했던 놈들은 이제서야 태양 신앙을 진심으로 믿게 될 것이고,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욱 광신적으로 태양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보스 패거리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이 언제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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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들실장들이 전원 창고에 들어섰다. 나는 하나뿐인 문을 걸어잠그고 창고의 중앙에 가만히 섰다.
남쪽 벽의 모니터에는 밝은 태양 사진이 떠 있고, 창고 곳곳에 박힌 전구가 적절한 밝기로 내부를 비추고 있다. 이놈들 입장에서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내부를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태양께서 불신자들을 우박과 불꽃과 벼락으로 불사르라 이르시었다."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리 고한다.
[데… 데에에…]
지지자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양손을 기도하듯 모았다.
[뎃…? 와타시타치는 어떻게 되는 데스…?]
중립파들은 불안함에 안절부절하고 있다.
[데프프픗. 꼴값떨고 있는데스.]
불신자들은 한껏 비웃으며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 여유 틈새에 숨어있는, 숨길 수 없는 공포와 불안함을. 일전에 보았던 일식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태양을 믿는 자들은 들으라. 그의 힘과 자비를 찬미하고 그 위엄 앞에 엎드려 절하라. 불신자들의 심장을 바쳐라.
태양은 언제나 그대들을 굽어살피신다."
[또 헛소리ㄹ…]
-철컹!
불신자들이 불평하는 도중 품 속에서 몰래 버튼을 누른다.
묵직한 구동음과 함께 창고의 조명이 일순간 꺼진다. 동시에 모니터에 비춰지던 창 밖 풍경이 시꺼멓게 변하고, 밝은 태양 사진도 개기일식 당시의 사진으로 바뀐다.
"심판이다! 불신자들은 태양의 심판을 받으라!"
[[[데갸아아아아앗!!]]]
소란스러운 들실장들의 비명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진다. 과거 보았던 대낮의 암흑, 그들의 머릿속에 악몽으로 각인된 그 끔찍한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며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뿌다다닷
-뿌다다다다닷
그리고 반사적으로 빵콘… 각오는 했지만 역시 냄새가 너무 지독해.
-삑
로브 속에서 리모콘의 버튼을 한번 더 누른다. 꺼져 있던 조명들이 번쩍번쩍하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구석에 숨겨져 있던 스피커들이 폭풍 소리를 재생하고, 모니터에서는 거센 빗줄기와 섬광이 출력된다.
-삑
한 번 더 버튼을 누른다. 에어컨이 급속냉동을 시작해 순식간에 서늘한 공기를 내뿜는다.
[데! 태양 상이 노한 데스! 다들 도게자해서 태양 상을 달래는 데스!]
태양의 사자가 아까 한 말을 기억하고 추종자들과 함께 도게자한다.
[데! 데! 어떻게 하는 데스! 지금부터 태양 상을 믿을테니까 용서해주는 데스!]
중립파들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추종자들을 따라 도게자했다.
[보, 보스 상! 이게 어떻게 된 데스! 말한 것과 다른 데스!]
[이건 말도 안 되는 데샤아아아앗!]
반대파들은 대조적으로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물론, 이 상태가 조금 길게 유지되면 이성을 되찾을 것이다. 그냥 빛이 번쩍거리고 추울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먼저 선수를 친다. 품 안에 숨겨둔 에어소프트건을 꺼내 반대파들을 겨눈다. 평소였다면 내가 쏜다는 것을 눈치챌 테지만, 패닉에 빠져 시야가 좁아진 데다가 어두워진 상태이기에 로브 밑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챌 여력이 없다.
-퓽! 퓽! 퓽!
발사되는 소리는 폭풍 소리에 묻히고, 아무도 모르게 날아간 총알들이 반대파의 몸에 사정없이 박힌다.
[데갸아아악! (파킨!)]
[덱! (파킨)]
[이게 뭐인 데스!]
정확히 머리가 관통당하거나 위석이 파손된 놈들은 즉사. 애매하게 몸에 박힌 놈들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처, 천벌인 데스! 진짜로 천벌이 내리는 데스! 태양 상이 우박으로 천벌을 내리는 데스!]
태양의 사자가 타이밍 좋게 외친다. 녀석의 한마디는 반대파들이 내지른 비명과 더불어, 그들을 더욱 큰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퓽!
[데! 데에엣! 미안한 데스! 죽고 싶지 않… (파킨!)]
-퓽!
[데갸아악! 똥보스 오마에에에! 와타시를 속인 데스!]
-퓽!
[싫은데스 싫은데스! 천벌은 이야 데… 데갸아악!]
여섯 발의 탄환 중 세 발이 반대파를 절명시켰다. 나머지 세 발은 숨통을 끊지 못했지만, 더욱 큰 비명을 내지르도록 만들어 패닉을 전염시킨다.
다음은 실장석용 소이탄을 사용한다. 미리 장전해둔 탄창을 소프트 건에 끼우고 사격.
-퓽! 퓽! 퓽!
[뎃캬아아아아악!]
[살려주는데엣스!!]
[똥보스으으으으!!]
총알에 맞은 즉시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반대파 놈들. 이건 어딜 맞아도 100% 사망 확정이다.
불꽃을 작게 억제하는 특제품이고, 창고 내부에도 방염 페인트를 칠해둬서 큰 화재로 번지지는 않을테지만, 불타는 놈들을 주의깊게 바라본다. 혹시 사고가 날 듯 싶으면 바로 구석의 소화기를 가져와서 꺼야 하니까.
[데케에에엑… (파킨)]
[아마아마… 먹고 싶… (파킨)]
[똥보스… 뒤지는 데… (파킨)]
다행히 우려하던 사태는 생기지 않았다. 처음 쏜 세 놈이 죽은 다음 보스 옆의 오른팔을 조준해서 쏜다.
[데갸아악! 보스 상 살려주는 데스! 죽고 싶지 않은 데스으으으!]
[데… 데… 말도 안되는데스 말도안되는데스말도안되는데스말도…]
여지껏 동고동락하던 오른팔이 불타오르자 현실도피를 시도하는 보스. 물론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른팔은 덧없이 타죽고 말았다.
우박, 불꽃, 그 다음은 벼락. 로브 아래로 실장용 테이저건을 꺼내들었다.
[뎃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데뱌뱌뱌뱌뱌뱌뱌뱌뱌뱌뱍-]
우선 세 방. 개성적인 비명소리와 함께 감전사하는 실장석들.
[미안한데스미안한데스 개종하는데스 제발 살려쥬쥬쥬쥬쥬쥿-]
[아직 자도 낳지 못한데스 조금만 더 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닷-]
[와타시는 사실 원사육실자자자자자자잣-]
그리고 나머지 세 방을 쏘는걸로 보스 세력은 전멸. 처음에 총알을 맞고 살아있던 놈들도 절망감에 파킨사했다.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모니터 화면을 원래대로 돌리고, 음향을 끄고, 조명을 켰다.
[말도… 안 되는 데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데스…]
제 패거리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남은 보스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망연히 되뇌인다.
[사… 살아난 데스? 와타시타치들은 용서받은 데스?] [너무 무서웠던 데스! 절대로 태양상을 의심하지 않는 데스!]
내내 도게자하고 있던 추종자들과 중립파들은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고 있다. 그 재앙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마무리 멘트.
"보라! 태양의 자비를 의심하는 자들아! 그는 온 대지를 뒤흔들고 얼어붙게 하며, 또한 능히 불태울 수 있도다!
그를 찬송하는 신실한 이들은 그의 온기와 은혜를 입을 것이되, 그를 욕보이는 이단들은 우박과 불꽃, 벼락 앞에 스러질지니!
태양을 찬미하라!"
한 번은 우연이었다 쳐도, 두 번이나 반복되면 필연이라 여기는 법이다. 단순한 실장석 놈들이라면 더더욱.
[기적 데스…]
[태양 상은 무적 데스우…]
두 번이나 기적을 목도한 그들은 한 조각의 의심마저도 품지 못했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의심하지 않는 데스!]
[태양 상 사이쿄오 데스우!]
보스를 제외한 들실장들이 고개를 바닥에 쳐박고 연신 절한다. 태양 신앙이 그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박는 순간이었다.
"태양께서 이르셨다! 저 불신자의 심장을 바치라고!"
유일하게 두 발로 서 있는 실장, (전)보스를 지목하며 외친다. 이미 광신도가 되어버린 들실장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 그를 제압한다.
[뎃! 데에에에에!!]
추종자를 모두 잃은 보스가 광신자들의 손에 이끌려 창고 중앙으로 끌려온다.
[불신자를 죽이는 데스!]
그를 맞이하는 것은 태양의 사자. 태양이 하사한 무구(커터칼)을 번뜩이며 보스를 내려다본다.
[데! 데! 미안한 데스! 태양 상을 믿는데스! 한 번만 용서-]
그 압도적인 박력에 움츠러든 보스가 애원한다. 한 공원을 통치했던 위엄 따위는 진작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푸욱
[뎃갸아아아악!]
물론 보스가 무어라 말하든 사자는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고, 선지자의 명을 받들어 그 살가죽을 무참히 헤집었다.
[뎃끼… 뎃꺄아악…]
지금까지 으레 그랬듯, 사자는 제물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맥동하는 심장을 꺼내들었다.
-뿌지지직
[뎃… 그우우… (파킨)]
질척한 소리와 함께 뜯어지는 심장.
눈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절명하는 보스.
그리고 그 심장을 높이 치켜들고 모두를 둘러보는 사자.
[이것이 불신자의 최후인 뎃스으! 태양 상을 욕보인 분충의 최후를 똑똑히 기억하는 데샤아아!!]
그녀는 우렁찬 일갈과 함께 심장을 으깼다. 심장에서 튀어나온 피가 추종자들의 몸 위로 흩날려 핏빛 얼룩을 만들어냈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그날, 후타바 제3공원은 다시 태어났다.
======================================
"태양께서 이르시길 오늘의 공물이 충분하니 그의 신자들은 여드레동안의 휴식을 허락받았도다. 그대들은 선지자의 복된 지식으로 말미암아 무구를 벼려낼지니 이 땅의 모든 불신자들과 가엾은 어린양들을 구원할 순례자가 될지어다."
[뎃스… 선지자 상의 말은 너무 어려운 데스우…]
"해석하자면 8일동안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내 도움으로 무기와 갑옷을 만들어 다른 공원의 불신자들을 "계도" 하라는 뜻이다."
[설명을 들어도 어려운 데스…]
——————
선지자 상은 그날부터 와타시타치에게 '무구'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 데스우.
먼저 골판지를 잘라 풀의 즙을 바른 다음 그늘에서 말리는 데스.
그렇게 단단해진 골판지를 풀 줄기로 엮으면 '갑옷'이 되는 데스. 평범한 보검 따위로는 쉽게 뚫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는 데스.
그리고 바닥에서 돌을 주워 모은다음 나뭇가지에 묶어 '무기'를 만드는 법도 알려준 데스!
와타시가 이전에 받은 보검은 신성한 것이니 심장을 바칠 때에만 사용하라고도 말해준 데스.
이제 이 '무구'들을 이용해 불신자 분충들을 때려잡아 주는 데샷!
——————
이 씨발 멍청한 들분충 새끼들.
간단한 갑옷하고 무기 만드는 법 가르쳐주는데 며칠이나 필요한 거야….
이 뒤로 일일이 터치하는게 귀찮아서 자립시켜줄 용도로 지식을 전파했는데, 상상 이상의 중노동이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그나마 야생에서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을 엄선했지만 그마저도 이놈들한테는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다.
[데에에…]
[코레가… 와타시?]
[키레이한 데스우….]
그래도 그럭저럭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6일차에 공원의 모든 성체실장을 무장시켰다.
[테챠아! 다들 키레이 테치!]
[와타치도 어른이 되면 '무구'를 쓸 수 있는 테츄까?]
공원의 양충 자실장들이 도와준 덕이 컸다. 들실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양충들만 남아있어서 재료 수집이나 단순 작업 등을 가르쳤더니 순식간에 효율이 올랐다.
[이단이었던 전 보스가 분충들은 전부 솎아내라고 했던 데스.]
지나가는 투로 물어봤더니 양충 자실장만 남아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 보스의 수완 덕이라고 한다. 분충 자실장을 내버려 두었다간 공원이 몰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전 보스가 모든 성체실장에게 엄격한 훈육과 솎아내기를 강제했단다.
새끼… 비록 불신자로 낙인찍혀 비참하게 죽었지만, 너의 유산은 신도들의 미래를 밝혀줄 등불이 되었구나. 장하다.
그녀석도 이 모습을 저승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여튼 성체 말이라면 꼬박꼬박 듣는 놈들이라 태양 신앙을 어렵지 않게 전파했다. 신전(폐창고)에서의 기적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개기일식 날 깜깜해지는 것은 보았기에 그럭저럭 받아들였다.
물론 완벽하게 세뇌된 것은 아니라 단순히 '어른들이 믿으라니까 믿는다', 혹은 '다들 믿는다니까 나도 믿는다'는 자실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정으로 교리를 이해하고 마음 깊이 신앙을 받아들인 자실장들은 극소수였으나,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될 것이다.
———————
와타시타치는 '무구'를 얻은 다음날 새벽 근처의 공원에 '선교'하러 온 데스. '선교'라는 것은 불신자 분충들을 되는대로 두들겨 패고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바치는 것을 말하는데스.
심장을 태양 상에 바친 불신자들은 신앙의 힘으로 콘페이토 천국에 가는데스. 잘 된 데스. 뎃데로게~
불쌍한 불신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고귀한 사명을 띠고서 힘차게 진격데스!
선지자 상이 길잡이가 되어 준 덕에 한 명의 낙오실장도 없이 전원 도착한 데스!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붕붕' 씨들 때문에 멀리 가본 적이 없었는데, 선지자 상이 이끄는 대로 걸으니 '붕붕' 씨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도착한 데스!
아직 태양 상이 떠오르지 않아 불신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는 데스. 행운인데스.
그럼, 가는 데스… 불신자들을 콘페이토 천국으로 인도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
후타바 제 4녹지공원은 평균적인 수준의 공원이다. 평균적이라 함은 소수의 분충, 극소수의 양충, 그리고 그저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개체 대다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애호파 단체가 방문해 저급 푸드를 뿌리고, 할 일 없는 학대파 백수들이 랜덤하게 쳐들어와 빠루를 휘두르고,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연 2회 정기구제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한창 먹을거리가 풍부한 늦여름. 보통의 들실장들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느지막하게 잠에 취해 있다가 적당히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온다.
말인즉슨, 이른 새벽인 현재 깨어있는 것은 3공원의 '선교사'들 뿐이라는 것이다.
[데갸아아아아앗!!]
[불신자들은 얌전히 심판을 받는데스우!!]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공원의 외곽에 있던 골판지 집들이 우선 타격 목표로 정해졌다. 성난 황소 떼처럼 무기를 앞세우고 돌진하는 선교사들.
-우지끈!
-뿌지직!
나뭇가지와 돌을 엮어 만든 원시적인 형태의 돌도끼가 비바람에 약화된 골판지 벽을 가볍게 부순다.
[데! 데엣! 무슨 짓인데게벡!]
[마마아! 지벡!]
[프니프니 해주는레휏! (파킨)]
단잠에 빠져 있던 친실장의 두개골이 함몰된다. 친을 염려하는 장녀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인다. 해맑게 프니프니를 요구하는 우지챠가 누군가의 발에 밟혀 절명한다.
[콘페이토… 샤워… 테치치…]
[언젠가 마마를 쫓아내고 집을 차지하는 테프프픗…]
이런 와중에도 깨어나지 못한 두 자실장까지 수확하는 것으로 첫 공격은 성공으로 돌아갔다.
[이쪽 좀 잡아주는 데스.]
[당기는데스! 뎃데, 이만하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스.]
3공원 실장들은 혹여 불신자들이 깨어나더라도 저항할 수 없도록 덩굴로 온몸을 꼼꼼히 구속했다.
[다음은 저기데스.]
[낙승인 데스슷.]
[이곳은 맡겨주는데스.]
기절한 불신자들을 지킬 두어 명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그 다음 타겟으로 향했다.
[오마에타치 무슨지붹!]
[살려주는 데갸악!]
[도망치는 데뵥!]
여섯 채의 골판지 집들을 약탈한 그들은 그날의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쪽에 자리 남는데스?]
[이쪽에는 자실장들 모아주는데스.]
나뭇가지와 비닐봉투, 나뭇잎 등을 엮어 만든 들것에 기절한 들실장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두마리당 불신자 성체 하나씩을 맡아 운반한다.
사각지대에 대기하고 있던 선지자와 합류해 제 3공원에 복귀할 때까지,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다. 제 3공원의 실장들은 태양의 인도와 자비에 감복해 하늘을 우러러 경배하였다.
——————
[데갸아아악! (파킨)]
잡아온 성체 중 한 마리의 심장을 꺼내 바치고,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들실장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테치!]]]
들실장들은 사자의 선창을 따라 태양을 찬미했다.
[데… 데게… 뭐인 데스우…?]
[미친 동족들 데샤앗…]
[치에에엥 집에 가고 싶은 테치!]
화기애애한 3공원 실장들과는 다르게, 4공원의 실장들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화롭게 자고 있었는데 별안간 두들겨맞고 난생 처음 보는 곳에 끌려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옆집에 살던 이웃이 눈앞에서 산채로 심장이 뽑혀 죽어버렸는데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태양께서 가로되, 불신자의 사지를 뽑아 그의 신도들이 나누어 먹으라. 불신자의 몸은 죄악으로 가득차 태양의 땅으로 갈 수 없다 하더라.
성도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정화된 불신자만이 태양의 인도에 따라 영원한 구원을 얻을지어다.
불신자의 죄악을 나누어 짊어지는 자들은 복되도다. 태양을 찬미하고 가르침을 행하는 그대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있으리로다."
[선지자 상이 불신자의 팔다리를 뜯어먹으라 말씀하신 데스!
저주받은 불신자들은 와타시타치의 도움 없이 구원받을 수 없는 데샤! 와타시타치의 뱃속에서 불신자들의 저주를 풀어주는 데스!
이 불쌍한 분충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눠먹는 데스웃!]
"태양의 사자가 영특하여 복된 말을 이해하니 선지자가 기뻐하더라."
게다가 이 미친 동족들이 이상한 옷을 뒤집어쓴 인간의 말을 듣고 방금 죽은 시체를 뜯어먹는다.
딱히 배고파 보이지도 않는데, 내장 한조각, 뼈 한방울, 심지어는 뼈 한토막마저 남기지 않고 집어삼킨다.
이쯤 되니, 제아무리 낙관적으로 사는 들실장들이라도 다음 차례가 자신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데… 데데뎃… 살려주는데스…]
[살려주는데스살려주는데스살려주는데스…]
[와타시는 맛없는데스 운치만먹고 살았던데스…]
하지만 납치범들은 첫 한마리를 잡아먹고 나서는 제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되려 잡혀온 포로 앞에 나무열매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데챱… 일단 먹는 데수우…]
[닌겐노예의 푸드가 먹고싶은 데에엥]
[집에 보내주는 데스…]
칭얼대면서도 주어진 식사를 음미하는 들실장들. 당장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놈들이 반, 그저 신세를 한탄하는 놈들이 반.
그러나 함께 잡혀온 자실장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걱정하는 것은 극소수였다.
———————
3공원 으슥한 곳의 하수도관.
[테… 테에에에….]
그곳에는 공포에 질려 바들대는 자실장 한 마리가 묶여있었다.
그리고 그 눈앞에는, 온 가죽이 벗겨져 두 배로 부풀어오른 자매의 시체가 두 구.
그리고, 벗겨진 가죽에 흠집은 없나 이리저리 돌려보는 성체가 두 마리.
그리고, 방금 자매들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낸 성체가 한 마리.
그리고… 그 손 안에서 번뜩이는 돌칼.
[와와와와타치는 착한자인테치 반찬투정 안하는테치 운치도 깔끔하게 처리하는테치 보존식도 안훔쳐먹는테치치치치…]
자실장은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떠오르는대로 아무 소리나 지껄여 봤지만, 서슬 퍼런 돌칼을 막지는 못했다.
[텟캬아아아아악-!!!!!]
애매하게 날카로운 돌칼은 무정하게도 자실장의 살갗을 파고들었고, 가죽이 거칠게 분리되는 고통에 힘껏 내지른 비명은 하수도관에 반사되며 소름끼치는 화음을 그려냈다.
그 비명소리가 멎어들기까지, 그리고 자실장이 죽음으로 안식을 얻을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세 장의 가죽은 그늘에 놓여 건조되었다. 작업을 진행한 들실장은 가장 깔끔하게 분리된 세번째 가죽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
데뎃! 자실장 가죽 망토가 완성된 데스!
선지자 상께서 태양 상의 사자인 와타시가 먼저 망토를 입을 권리가 있다고 하신 데스!
공원의 동족들이 와타시를 부럽다는 눈길로 바라보는 데스. 하루빨리 이단들을 '선교'해서 공원의 모두에게 자실장 망토를 나눠주는 데스!
우선 공물 바칠 시간이 되었으니 어제 잡아온 이단 하나를 '구원'하는 데스!
———————
[데갸아아아악-! (파킨)]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테치!]]]
[데갸아악! 역시 미친 놈들인 데스우!]
[살려주는데스 살려주는데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들실장 하나의 심장을 으깬 뒤 그 시체를 탐하는 3공원 놈들. 언제 봐도 역겹다. 내가 이렇게 만든 거긴 하지만.
…이만하면 슬슬 발을 뺄 때가 된 것 같다.
"태양의 사자야 내 그의 말을 전하니 귀기울이거라.
이 대지에 그의 은혜가 닿지 않는 곳이 없으매 풀 한포기조차도 그의 자비 앞에 움트는도다.
허나 무지하고 불경한 자들은 감사할줄 모르나니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리로다.
너 사자야. 태양께서 가엾은 어린양들을 구원하길 원하신다. 그의 불꽃 아래 벼려진 무구와 복된 지식으로 하여금 계몽되지 못한 동족들을 구원하길 명하노라."
[데스! 맡겨만 주시는 데스!
태양 상께서 명하신다면 이 땅 위의 모든 이단들을 구원하는 데스!]
"의심하지 않고 신앙하는 너는 참된 그의 신자로다.
이에 나 그의 명을 전하노니 네 신앙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양의 이름을 그 땅 위에 퍼뜨리는도다.
그의 힘은 바스라지지 않고 바닥나지 않으니 모든 불신자를 구원하고도 능히 태양에 닿을지어다."
대충 요약하자면 <힘 닿는대로 다 죽이고 부숴라> 라는 뜻이다. 완전히 광신도가 되어버린 이놈이라면 맹목적으로 명을 받들어 주위의 공원을 닥치는대로 약탈하다가 제풀에 고꾸라질테지.
아무리 내가 도와줬다고 해도 실장석이다. 주제도 모르고 떵떵대다가 다른 공원의 조직적인 저항에 죽던가, 부하들을 노예처럼 부리다 쿠데타에 당하던가, 싸돌아 다니다 차에 치여 죽던가 할거다.
학대를 20년 하면서 그런 꼴을 한두 번 본것도 아니고,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 그동안 즐거웠다. 사자야.
마지막까지 발버둥쳐서 날 더 즐겁게 해줘.
—————————
와타시는 선택받은 데스.
존귀하신 태양 상이 와타시를 사자로 점지하신 데스.
분에 넘치는 영광인 데스.
공원의 동족들을 이끄는 의무가 있는데스.
자라나는 자들을 훌륭한 신자로 만드는 의무가 있는데스.
신앙이 없는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의무가 있는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
후타바 제 2 녹지공원의 실장들은 요즘 들어 빈번해진 실종 사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며칠 걸러 한 번씩, 특정 구역의 들실장들이 싸그리 사라지는 것이다.
알고 지내던 동족이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싶어 그 집을 찾아가 보면, 그들을 반기는 것은 거칠게 박살난 골판지 하우스의 잔해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가재도구, 벌레가 꼬인 보존식 뿐이었다.
2공원의 모두는 제각각 이 일의 원흉이 무엇일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보았지만, 명쾌한 해답은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들실장들의 압도적인 포식자로 군림하는 고양이일까?
고양이라면 죽이기 전 동족들을 괴롭히다 남은 피나 살점 조각 등이 남아있어야 했다. 또한, 그들은 구태여 운치굴을 파헤치지 않기에 변소용 구더기와 엄지가 살아있는 것이 이치에 맞다.
모종의 이유 때문에 단체로 이주를 갔을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지금은 먹이가 부족한 시기도 아니고, 동족의 개체수도 과하지 않아 다른 곳에 갈 바에야 이곳에 남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무엇보다 이주를 했다면 보존식 등을 남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동족식을 하는 무리가 나타난 걸까? 그들이라면 추적을 피하기 위해 흔적을 지울 지능도 있고, 동족의 고기에 맛을 들려 보존식에 손을 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쪽이 그나마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족식 실장들이라면 생존자가 최소 한 명 이상은 있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동족식 실장이라도 결국 그 근본은 실장석. 미처 다 챙기지 못하고 놓친 자실장 한 마리정도는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식욕에 사로잡혀 시체를 탐하는 동안 어떻게든 도망친 놈이 하나는 있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그 누구도 정답을 맞추지 못하고, 2공원의 실장석들은 조금 더 밀집해 잠을 자고 무리지어 다니기를 선택했다. 조금이나마 무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허나 그들은 몰랐다. 그들이 내놓은 것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틀린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모두가 잠든 새벽에 도깨비처럼 나타나 동족을 납치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조금의 반항도 허락치 않는 압도적 포식자였다.
사라진 동족들은 제물이 되기 전까지 먼 공원에서 지냈으니 이주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동족식을 하는 무리기도 했다. 단지 그 목적이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닌, 그들의 '신'을 위해서라는 차이가 있을 뿐.
습격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단서를 줄여 그 다음 사냥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운치굴의 미숙아들까지 거둬가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 '구원'이었기 때문.
보존식에 손대지 않는 것은 이단자들의 손을 탄 불결한 것이기 때문.
그리고,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그들이 광신에 찬 열렬한 신봉자이자 노련한 사냥꾼이며, 수십에 달하는 거대한 군대였기 때문.
-빠드득!
[데갸아아아!]
-쿠직!
[오로로-롱!]
2공원의 실장석들은, 가장 야심한 새벽에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를 듣고서, 허둥지둥 일어나 골판지를 뛰쳐나온 그 순간…
[데! 습격인 데스! 모두 도망… 데에엣?!]
[말도… 안 되는 데스….]
어둠 속에서 자신을 쏘아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를 보고서야 모든 일의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걱정마는 데스. 와타시타치들은 오마에를 구원하기 위해 이곳에 온 데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한 성체가 인자한 얼굴로 그리 말할 때.
[안심하고 잠들어도 좋은 데스.]
척 봐도 위력적인 몽둥이가 배후에서 날아들 때.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동족의 가죽을 엮어 만든, 죽음의 냄새가 잔뜩 배어있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닥쳐왔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해가 두 번 밝아온 후에야, 2공원의 나머지는 또 열하나의 가족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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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다섯을 태양 상의 이름 앞에 굴복시킨 데스.]
잘못됐다.
[공물도 받고 있는 데스. 매일 불신자 다섯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데스.]
뭔가 잘못됐다.
[태양 상과 선지자 상의 은덕 덕분데스. 항상 감사한 데스.]
뭔가 존나 잘못됐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자랑스레 그리 보고하는 ‘사자’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불신자를 다 죽이라고 이야기하고서 대충 2주쯤 지난 시점이었다. 이만하면 죽었을까 싶어 다시 공원에 가봤더니…
[뎃갸아아아아악-!!]
3공원 놈들은 보도블럭 연석을 이용해 만든 돌 제단 위에서 들실장 한마리의 심장을 빼내고 있었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태양 상을 찬미하는 테치!!!]]]
어느 때와 같이 ‘사자’가 심장을 꺼내 바치고, 나머지 들실장들이 엎드려 절한다. 물론 그것만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이게 다… 몇마리야…?”
수가 좀 많았다.
아니, 좀이 아니라 존나 많았다.
얼핏 눈으로만 세어 봐도 백은 넘어 보이는 들실장들이 제단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성체만 따져도 말이다! 자실장까지 합치면 최소 삼백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중 절반 가량이 들실장 가죽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성체가 걸칠 망토를 만들 때 같은 사이즈의 성체 둘 이상이 필요하니까, 최소로 잡아도 몇백을 죽여서 가죽을 벗겨냈다는 소리다. 자실장으로 만들었다면 그 3-4배는 죽였을 것이고.
새삼 그제서야 공원 전체에 실장석의 피와 똥냄새가 잔뜩 배어있음을 깨달았다.
[태양 상! 태양 사아아아앙!!!]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아아아!!!]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이놈들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 그동안은 태양을 찬미 어쩌구 하는 이야기도 의례적으로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진짜로 머리가 돌아버린 것마냥 목놓아 부르짖고 있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놈들도 있고, 머리를 바닥에 박아서 피를 내는 놈들도 있고, 자기 몸을 쥐어뜯는 놈들도 있다.
제단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불신자의 공포에 찬 흐느낌.
흙에 스며든 피와 똥자국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의 날개짓소리.
신자들이 트랜스 상태에서 내뱉는 의미없는 중얼거림.
방금 죽은 시체의 살이 씹히며 터지는 질척한 파열음.
어딘가에서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는 자실장의 날카로운 비명.
그 모든것이 뒤섞여 생겨나는 멜로디.
장송곡이며 또한 찬송가인 무언가.
어지럽다.
딛고 있는 땅이 물결친다.
하늘이 적록의 색으로 물든다.
멈춰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차라리 누가 답해주길 마음 깊이 바라며, 난 광장의 가장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선지자 상이 오신 데스!!]
제단 위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사자’가 날 가리키며 외쳤다.
[선지자 상!]
[태양 상을 찬미하는 데스!]
[어서오는 데스!]
수백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쏟아진다.
피칠갑을 한, 가죽을 걸친, 환희하는, 광란에 빠진, 숭배하는.
“아… 아….”
부끄럽지만, 나는 그 박력에 압도되어 무심코 뒷걸음치고 말았다.
꼴사납게 다리가 풀려 주저앉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
태양으로부터 사명을 점지받은 그들은 성전에 나섰다. 은총으로 축성받은 갑옷과 무기를 들고 이단자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1공원의 보스를 공개적으로 죽였다.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보스가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전락하는 것을 본 이들은 복종을 맹세했다.
그들은 2공원의 실종을 멈춘 영웅을 연기했다. 공포에 떨던 희생자들은 훨씬 더 살기 좋은 3공원에 조금씩 이주시켜준다는 거짓말을 믿었다.
그들은 4공원의 불신자를 매일 하나 바치지 않으면 하루에 둘씩을 더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찾아와 그것이 허언이 아님을 직접 증명했다.
그들은 5공원의 분충 보스를 구슬려 자발적으로 제물을 바치게 했다. 보스와 그 측근 셋은 우정의 증표로 받은 선물에 만족해 기꺼이 동족을 팔아넘겼다.
그들은 6공원의 조직적인 저항을 정면에서 부숴 압도했다. 죽지 않고 잡힌 포로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고 심장을 꺼내 죽여 뼛속 깊이 공포와 절망을 새겼다.
그들이 모든 공원의 주인이 될 때까지 단 하나의 사망자도 없었다.
그들은 이것이 신이 내린 축복이라 여겼다.
그들은 신께 보답하기 위해 불신자들의 해골로 탑을 쌓고 피로 흙을 반죽해 제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신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 동족의 살을 찌르고 저며냈다. 그들이 내지르는 참회의 외침이 그들의 신께 닿게 만들기 위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숨이 붙은채로 비명지르게 했다.
온 땅이 동족의 피로 물들어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동족의 새된 비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피냄새를 음미하며, 비명소리를 감상하며, 그들은 행복에 겨워 신을 찬미했다.
———————————
-어, 그래. 축하한다. 난 바빠서 가볼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도망쳤다. 선지자 행세한답시고 사용하던 괴상한 말투조차 쓰지 못하고.
눈 닿는 곳마다 보이는 실장석의 해골탑이, 지독한 시체 썩은내가, 매분매초 들려오는 들실장의 비명이 어쩐지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반과 찬장을 뒤집어 엎어가며 코로리 스프레이와 빠루를 비롯한 구제도구를 모조리 꺼냈다.
학살할 때 입는 비옷, 작업화, 목장갑, 고글을 꺼냈다.
숨어도 찾아 죽일 수 있는 위석 탐지기를 꺼냈다.
시체를 처리할 실장석 수거봉투도 꺼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공원으로 향하면 저놈들은 해가 지기 전에 몰살당한다.
그곳에 살았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소각장에서 한줌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제아무리 난 놈이라 해도 실장석.
인간이 전력으로 내리치는 빠루를 막을 수도,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든 코로리에 저항할 수도 없다.
실장석 따위 인간의 살의 앞에서는 무력한 법이다.
특히 학대에 정통한 내게 있어서는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사먹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지.
“....”
하지만 왜일까. 문고리를 잡은 나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문을 열고 나가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내 짧은 유희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저렇게 미쳐버린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좋은 마무리일 것이다.
그래. 맞다. 모자란 내 머리로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간단한 결론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문을 열지 못했다.
날 막아세우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동정심? 아쉬움?
내게 마음을 열게 만든 다음 배신하는 학대 따위 몇십번이나 해봤다.
공원 단위의 학살도 이미 몇 번이나 해봤다.
그리고 방법도 알고 있으니 또 보고 싶으면 다시 하면 그만이다.
다음 개기일식까지 또 몇 년이 걸리겠지만 그정도야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다. 저놈들이 기적이라고 여길 만한 우연을 몇 개 보여주면 그만이란 말이다.
여태까지 그러했듯 배신감과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놈들의 표정을 비웃으며 마음껏 죽여버리면 된다. 그걸로 전부 해결이다.
내 마음속의 이 알 수 없는 감정에 관해 쓸데없이 고민할 필요 없이 털어내 버릴 수 있다.
그래. 맞아. 간단한 문제다.
그러나, 나는 역시 끝내 문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태양이 붉게 물들고 이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도카니 문고리를 붙잡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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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에에!
귓가에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문득 고개를 든다. 돌 제단 위에 뉘여 구속된 동족이 바둥대고 있다.
-콰드드득
그보다 머리 하나가 큰 동족이 무심하게 날붙이를 찔러넣는다. 이 난리통 속에 파육음이 왜 이리도 선명히 들려오는지.
-데캬아아악!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비통한 울부짖음. 한층 짙게 퍼지는 피냄새.
칼집 틈으로 태연하게 심장을 꺼낸 동족이 그것을 쥐어 터뜨리고는 황홀하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환호한다.
...광란한다는 것이 좀더 정확할까.
그 광기의 현장 속에서, 덩굴에 묶여 길게 늘어선 이들만이 피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떨었다.
내 어깨를 붙잡는 우악스런 손길이 나를 돌제단에 눕힌다. 다음이 나였던가.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몇 초 후면 죽을 상황인데.
햇빛에 반짝이는 칼날이 다가온다. 내 흉곽(胸廓)을 헤집고 심장을 꺼내기 위해.
반사된 햇빛이 눈부셔 눈을 감았다가, 가슴팍에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반사적으로 눈을 다시 떴다.
[태양을]
눈이
[찬미하는 데스.]
마주쳤다.
———————————
“헉! 헉! 허억!”
난 땀 범벅인 채로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질척하게 달라붙는 옷의 감촉이 불쾌하다.
“후우, 후우….”
꿈을 꿨다.
…무슨 꿈이었지?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희끄무레한 광경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손발이 저릿거리고 숨이 가쁜 걸 보면 악몽일텐데.
-부르르르르
머리맡에서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울린다.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는다. <점장> 이라는 두 글자가 화면에 떠 있었다.
“야 이 미친새끼야! 이번에는 제대로 알바한다며! 믿고 뽑아줬더니 잠수를 타?!”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지르는 점장. 문득 날짜를 보니 잠든 사이에 이틀이 지나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제 일해야 하는 날이었던가.
“그만둘게요.”
“뭐? 야! 야!! 이 개-”
‘저녁에 돈까스를 먹을게요’ 라고 말하는 것마냥 담백하게 통보했다. 당연히 점장은 더욱 격앙하여 소리쳤지만, 이미 통화는 끊어진 뒤였다.
-부르르르르
지치지도 않고 또 전화를 걸어온다. 뭔가 다 귀찮아져서 전원을 꺼 버렸다.
비로소 조용해진 것에 만족하며,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
[태양을]
———————————
“아아! 아!! 아아아아아아!!!”
또 눈을 떴다. 땀에 젖은 채로.
“오늘… 며칠…”
버튼을 눌러봤지만 핸드폰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다 떨어진 걸까.
벌벌 떨리는 손발을 억지로 움직여 침대 아래로 내려온다. 서랍까지 기어가서 충전기를 꺼내들었다.
-삐롱
전원이 켜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알림음이 흘러나왔다.
전원이 꺼진 사이에 안전문자가 와 있었던 것 같-
‘후타바 제3공원에 일제구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일시는 9월 14일입니다.
14일 새벽 4시부터 17일 오후 6시까지 공원 출입이 통제됩니다.
이점 유념하시어 공원 이용에 불편 없으시길 바랍니다.’
“....”
그 짤막한 메시지는, 3공원의 모두에게 내려지는 죽음의 선고였다.
또한, 내게 있어 구원이기도 했다.
—————————
난 다시 침대로 기어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몸이 떨려온다. 심장이 요동친다. 호흡이 가빠 주체할 수가 없다.
침대에 누운지 채 30분이 되지 않았는데도 한계까지 내몰린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볼까.
오늘 날짜는 9월 13일. 시간은 6시 반.
이미 해가 붉게 노을지고 있다.
이대로 눈을 감았다 뜨면 내일 아침이 될 것이다.
그때 이미 구제는 시작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오가 지나기 전 공원의 태반이 몰살당할 것이다.
그래. 이걸로 됐어.
구제업자들의 손에 그놈들은 죽는다.
나는 잊어버리고 새 인생을 산다.
그것만으로, 난 이 찝찝한 감정을 영영 모른 채로 살아갈 수 있다.
순 이득뿐이라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지경이다. 이 행운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한층 이불에 파고든다.
“아.”
하지만 그때 보고 말았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헌데 왜일까. 나는 ‘눈이 마주쳤다’ 라고 인식했다.
그 주황빛 불꽃이 내 안구에 담겼다는 것을 머리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침대를 박차고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쾅!
그토록 열고싶었음에도 꿈쩍 않던 문이, 정작 열고 싶지 않은 지금 부서질 듯 열어젖혀진다.
그 모순을 고찰할 시간조차도 아까워, 나는 그저 달렸다.
제 3공원으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
“헉! 헉!”
왜야. 왜. 왜냐고.
그렇게 싫어했잖아. 죽이고 싶어했잖아.
그냥 눈 감았다 뜨면 해결되는 거였다고.
“쿨럭! 헉! 큽…!”
뭘 하고 싶은 거야, 멍청한 새끼야.
“헉! …우앗!”
-쿠당탕!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발밑을 보지 못했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꼴사납게 구르고 말았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힘 빠진 근육과 뼈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한다. 침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질척한 액이 흙바닥에 방울져 떨어진다. 시야가 별빛으로 점멸한다.
아파. 움직여. 아파. 아파.
하지만 시야가 회복되기도 전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파. 움직여. 아파. 움직여.
비틀대며 한걸음 내딛는다.
아파.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또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흐아, 하아! 아아아!”
굳은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폐가 찢어질 듯이 아프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비어있는 속이 뒤틀리며 신물이 올라온다.
발바닥이 쓰라리다. 그제서야 신발을 신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며칠을 침대 위에 있었지. 나흘? 닷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반 시체처럼 누워있던게 며칠이지?
공원보다 응급실에 가는 게 맞지 않나?
한계임을 인지한 두뇌가 내 걸음을 멈추려 애를 썼다.
하지만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내 심장이 그러했듯.
-퍽!
“야 이 새끼야! 제대로 안 보고-”
“죄송, 합니다! 죄송합, 콜록, 죄송…!”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힌다. 다시 한 번 흙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짧게 사과하고 다시 달린다. 다행히 더 실랑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흐으, 으흑, 흐윽.”
왜인지 눈물이 흘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중학생 때 짝에게 고백하고 차였을 때도.
고등학생 때 지망한 대학에 전부 다 떨어졌을 때도.
알바나 전전하다 부모한테 절연당했을 때도.
한 번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왜 지금 이렇게 나는거야. 왜.
“흐, 하아, 쿨럭, 흐으.”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중에 3공원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봉쇄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듯이 광장을 향했다.
[닌겐데스?]
이제 막 해가 진 시간이다. 공원을 돌아다니는 들실장들이 적지 않다.
[닌겐이 무슨 일인 데스?]
나를 알아보지 못하나? …아, 그동안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왔었지.
[사자 상에게 알리는데스.]
얼굴을 가리지 않고 온 건 처음이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다.
들실장 두어마리가 광장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내가 기어가는 속도보다 월등히 빨랐기에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꼴사납다. 다 큰 인간이 들실장에게 속도로 지다니.
하지만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힘의 차이는 확연하다. 내 손에 잡히는 순간 머리와 몸을 분리해 죽여버릴 수 있다.
엉망이 된 몸이라도 죽일 수 있어.
엉망이 된 몸이라도 살릴 수 있어.
몇 분이나 더 기었을까. 옷은 이미 헤져서 걸레짝이 되었고, 바닥의 거친 자갈에 찔려 상처가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기이한 사명감에 사로잡힌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런 나를 경계하지도 않는것인지, 들실장들이 내게 조금 더 다가왔다. 내가 팔을 뻗으면 잡힐만한 거리다.
엉망이 된 몸이라도 죽일 수 있어.
엉망이 된 몸이라도 살릴 수 있어.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겨우 광장에 도착했다. ‘사자’를 포함한 무리들이 내게 다가온다. 내가 그들의 목숨을 손쉽게 빼앗을 수 있는 거리까지.
엉망이 된 몸이라도 죽일 수 있어.
엉망이 된 몸이라도 살릴 수 있어.
손을 뻗는다. 개중에 가장 크고 특별한, ‘사자’에게로.
이중에 가장 강한 이놈을 죽이면 해결된다. 무엇이 해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결된다.
그리 생각하며 손을 뻗던 중이었다.
[선지자 상?]
내 손이 공중에서 우뚝 멈춰섰다.
[무슨 일인 데스까.]
‘사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로브 아래의 나를 바라볼 때와 똑같은 눈동자로, 올곧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 날…”
알아보는 거야?
턱이 덜덜 떨려 문장을 미처 끝맺지 못했다.
[눈을 보고 안 데스. 괜찮으신 데스까?]
하지만 ‘사자’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억눌려 있던 눈물이, 둑이 터지듯 흘러넘친다.
우리 둘을 제외한 모두가 멈춘 것 같은 감각 속에서, 나는 무아(無我)에 빠져 한 마디의 말을 입에 담았다.
엉망이 된 몸이라도, 죽일 수 있어.
“엉망이 된 몸이라도, 살릴 수 있어.”
이들을, 살릴 수 있어.
그 짧은 깨달음이 내게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있었다.
“-윽!”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날카로운 고통이 엄습해 도로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일어난 데스?]
“어? ...아, 네, 아니, 네가 아니라…”
깨어난 내게 ‘사자’가 인사를 건넸다.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을 써버리고서는 허둥대는 모습이 참 꼴사나워 얼굴이 붉어진다.
[간밤에는 고마웠던 데스.]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자.
어젯밤이라, 그러고 보니까 어젯밤에 뭘 했길래 여기 있는 거지?
천천히 기억을 반추해본다.
——————————
“동이 트기 전 흰 옷을 걸친 죽음이 공원을 습격한다.”
“당장 피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일전의 신전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만신창이인 채로 공원에 도착한 나는 횡설수설하며 위의 정보를 되는대로 쏟아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은 반신반의 하였으나, 사자와 그 측근들을 중심으로 내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준 덕에 피난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럼에도 공원에 남겠다고 말한 이들이 있었으나, 사자는 좋을 대로 하라며 그들을 두고 신전으로 무리를 이끌기로 결정하였다.
허나, 쓰러진 내가 문제였다.
[선지자 상, 일어나 보는 데스!]
[뎃갸아아악! 도저히 못 드는 데스!]
탈진해 기절하기 직전인 나를 어떻게든 움직이려 용을 쓰는 신자들. 하지만 들실장 수십마리가 성인 남성의 몸을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기에, 나를 두고 가라고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라면 구제반에게 발견되더라도 응급실에 실려갈 뿐이니까. 물론 그마저도 이런 몸상태로 하룻밤을 버텨야 가능하겠지만.
[선지자 상. 움직일 수 있는 데스?]
허나 그때 사자가 내게 그리 물었다.
사자의 말 한마디를 듣고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던 와중에 그런 힘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그윽, 크윽…”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의식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그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금만 더 힘내는 데스.]
[다 온 데스.]
[와타시타치가 여기 있는 데스.]
바닥을 짚은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나도, 무릎에 돌부리가 찍혀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닥쳐와도, 다 때려치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져도, 내 귓가에서 사자가 그리 속삭이면-
“갈, 수… 있어… 갈 수…”
신기하게도 한걸음 더 내딛을 힘이 생겨났다. 그렇게 겨우 신전(=폐창고)에 도달하고서, 잠긴 문을 열었다는 것을 인식한 즉시-
[선지자 상? 선지자 상!]
나는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날 애타게 부르는 사자의 목소리만이 내가 인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감각이었다.
—————————————
[신전 구석에 물과 음식이 있었던데스. 잠든 선지자 상께 먹여드린 데스.]
물? 음식? …아아, 내부 작업을 할 때 요기하려고 사둔 것들인가.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구석에 박아두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들이 내 목숨을 살리게 되었다. 초코바나 우유 같은 것은 이 무더위 속에서 진작 상해버렸지만, 그중에 육포나 과일통조림, 생수 등은 그럭저럭 멀쩡해 내게 먹였다고 한다.
그 덕에 그럭저럭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이 되었다. 아직 통증은 남아있지만, 주의해서 움직이면 걸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푹 잔 덕인지 머리도 한층 더 맑아져서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되었다.
-꼬르륵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던 와중에, 강렬한 소리가 내 귓전을 강타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중실장 하나가 얼굴을 붉히고 있다.
[죄, 죄송한 테스… 배가 고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사죄하는 중실장.
“...!”
그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창고 속의 들실장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생기가 없다.
“설마, 너희…?”
차마 그 뒤의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사자가 내 뜻을 알아채고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신전의 남은 음식은 모두 선지자 상께 드린 데스. 공원에서 보존식도 챙겨왔던데스가, 선지자 상께 드려야 할지도 모르니 아껴두고 있었던 데스.]
“....”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3시가 넘은 늦은 오후였다.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들실장들이, 그 오랜시간 참아가며 인간인 나를 배려했다고?
[선지자 상이 와타시타치의 목숨을 살려주신 데스. 그러니 당연히 와타시타치도 선지자 상을 우선적으로 도와야 하는 데스.]
사자가 내 감정을 읽었는지 담담하게 그리 고했다.
그 이야기에 날 둘러싼 좌중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 결연한 눈빛 속에, 단 한점의 거짓도 숨어있지 않았다. 만일 내가 조금 더 오래 의식을 잃고 있었다면, 그들은 기꺼이 보존식들을 모두 넘기고 굶어죽었을 것이다.
-주륵
종의 본능을 뛰어넘은 그 고결함에, 나는 무심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눈물은 참회의 감정 역시 담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진실을 외면해 왔다.
내가 이들에게 매료되고 말았다는 것을.
인간으로서, 심지어 학대파로서, 실장석에게 감화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애써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내 장난감이어야 했던, 압도적인 약자여야 했던 이놈들에게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여태까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 홀가분해졌다. 이토록 간단하게 편안해 질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선지자 상? 우는 데스?]
[아직 몸이 낫지 않은데스?]
[보존식 좀 드리는데스?]
왜일까.
평소의 나였다면 질색하고 구역질을 했을 그들의 체취가,
모멸하고 조소했을 그들의 말투가,
불쾌하게 여겼을 그들의 온기가…
지금은 너무도 편안하고 또 고귀하게 느껴졌다.
혹자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미쳤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껏 늘 겉돌기만 하던 내게 무리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아찔한 황홀감을 선사해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행했던 모든 것이 지금 이순간을 위해서 존재했다고, 내 인식 밖의 누군가가 그리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허름한 폐창고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
그 뒤로 나는 겨우 집으로 돌아가, 조금 모아두었던 비상금을 모두 꺼내왔다. 박살난 문 앞에서 씩씩대고 있던 사장이 날 보고 이것저것 따지려 들었지만, 내 귀기서린 표정을 보고 슬쩍 사라졌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서 새로운 정착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으니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향한다. 실장석들에게는 다소 가혹한 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이라면 할 수 있다.
단 한조각의 의혹도 없이, 나는 모두를 이끄는 목자를 자처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도중에 지나치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조달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원에서 해결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우리는 마침내 아오키가하라(青木ヶ原)에 닿았다. 흔히 수해(樹海)라고도 부르는 그곳이다.
내 등에 있는 배낭에는 밧줄이나 물통 등이 들어있다. 바로 직전에 들른 마트에서 산 물건들이다. 이곳에 적응하는 동안 꽤나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스마트폰은 돌로 내리쳐 박살낸 뒤 그대로 숲의 초입에 버렸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3자가 보면 사회 부적응자가 삶을 비관하고 일을 관둔 뒤 이곳에 와서 자살했다고 생각하려나. 여기 오기 직전에 밧줄을 샀다던가, 일을 갑자기 관두고 집을 떠났다던가, 숲의 초입에 박살난 스마트폰이 있다던가 하는 정황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여길테지. 애초에 내게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줄만한 인간이 있다면 말이지만.
어쩐지 우습게 느껴져서, 나는 실없이 픽 웃었다.
“가자.”
[데스.]
나를 필두로, 온 무리가 숲 안쪽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내 옆에는 사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그 당당한 걸음걸이에, 미지의 땅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의 역사에 나는 어떻게 기록될까.
신의 말씀을 전하고 번영으로 이끈 선지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친절한 인간?
들실장들 틈바구니에서 용쓰던 정신병자?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마음속 깊이 확신할 수 있었다.
태양이 존재하는 한 무리는 번영할 것이라는 사실을.
언젠가 이 숲을 가득 채운 신자들이 그 영광을 드높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 첫번째 사자의 뜻이 전해지는 한.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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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찬미하라.
그의 자비를 칭송하라.
그는 뜻을 받드는 이들에게 자애로운 온기를 내려 번영케 하시니.
그의 진노를 두려워하라.
그는 뜻을 저버리는 자들에게 우박과 불꽃, 벼락을 내려 멸하시니.
태양을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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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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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엔딩)
후타바 제3공원은 '사자'의 지도 아래 번영했다. 근방의 공원 5개를 복속시키고, 정기적으로 포로를 받아 안정적인 공양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다.
누군가는 동족에게 팔려서, 누군가는 달콤한 말에 속아서, 누군가는 제비뽑기에 걸려서…
그리고 신앙에 진정으로 감화된 극소수의 누군가는, 태양께 제 몸을 바치기 위해서 제단 위에 뉘여졌다.
하지만 신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동기야 어떻든 건강하고 싱싱한 심장을 바칠 수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데갸아아아악!!]
오늘도 하나의 심장이 바쳐졌다. 태양의 신도들은 동쪽 산 너머에서 떠오르는 그들의 신을 보고 경배하며 엎드려 졀했다.
변함없이 지고 떠오르는 저 태양처럼, 그들 역시 언제까지고 번영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 믿었다.
단 한점의 의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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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느날, 으레 그렇듯 심장을 바치고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며 불신자의 살점을 나누어 먹을 때였다.
[사자 상! 큰일난 데스! 하얀 악마들이!]
신도 중 하나가 반 광란에 빠져 의식 현장에 들이닥쳤다. 본래 의식을 방해하는 행위는 고문 후 공개처형 당하는 수준의 중죄였지만, 그 눈동자에 담긴 공포가 그들을 압도할 정도의 박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죄를 묻지 못하였다.
[하얀 악마가 나타난 데스! 문이 모두 막혀서 피난할 수 없는 데스!
길쭉한 보검을 가지고 있는 데스!
우박을 내뿜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데스!
불꽃을 내뿜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데스!
벼락을 내뿜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데스!
도망쳐도 바람보다 빠르게 쫓아 죽이는 데스!
보검으로 찔러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데스!
어쩌면 좋은 데스! 사자 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그들 역시 압도적인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는 것만은 이해했다. 일반적인 들실장이라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거미새끼들처럼 흩어져 도망쳤을 것이다.
[...]
[...]
[...]
그러나 그들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와타시가 한 말 듣기는 한 데스까?! 당장 뭐든…]
초조해진 보고자가 열을 내며 소리칠 때쯤에야, 사자가 입을 열었다.
[우박, 불꽃, 벼락…이라 말한 데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두려운 의문을 입에 담았다.
[맞는… 데에에에?!]
그제서야 침묵의 이유를 깨닫고 아연실색하는 보고자.
우박, 불꽃, 벼락.
그들의 신 태양이 불신자들을 벌한 권능.
즉 그들의 신이 과거 불신자들을 멸했듯, 신자들을 멸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
[...]
[...]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신자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선고가 떨어진 가운데, 멀찍이서 들려오는 동족의 비명소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
[이게 어떻게 된 데스까?]
[태양 상이 노한 것이 분명한 데스.]
[하지만 한 번도 제물을 빠뜨린 적이 없는 데스.]
[제물 바치는 방법이 문제였던 데스?]
[언제나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것만 바친 데스.]
[제물로 바친 불신자들을 먹은게 문제 데스?]
[하지만 그래야 구원할 수 있는데스.]
[이 땅에 불신자들이 너무 많아진 것 아닌데스?]
[와타시타치가 죽으면 더 많은 불신자들만 생기는 데스!]
머리를 맞대고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신자들. 허나 이렇다할 답 없이, 수많은 의문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신전에 가서 태양 상께 여쭙는 데스. 무엇이 잘못인지 말씀하시면, 두번다시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데스.
악마들이 있으니 그동안 만들어둔 비밀통로로 가는 데스.]
그때 사자가 결연하게 말했다. 확실히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 모두들 신전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가운데, 사자만이 그 자리에 뿌리박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데? 사자 상! 서둘러야 하는 데스!]
그것을 뒤늦게 눈치챈 누군가가 사자를 재촉했다. 사자의 최측근이자 무리의 2인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였다.
[사자 상! 뭐 하는 데스!]
[빨리 가지 않으면 죽는데스!]
[어서 가는 데스!]
그 소리에 모두 뒤돌아 사자가 아직 움직이지 않았음을 깨닫고 제각기 소리높여 그를 불렀다.
[와타시는 남는데스.]
하지만 사자는 그것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태양 상께서 내리시는 벌이라면, 마땅히 와타시가 받아야 하는 데스. 사자로서 신자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한 죗값을 치르는 데스.]
신도들의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목숨으로 사죄하겠노라 선언하는 그에게,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다.
[오마에가 다음 사자인 데스. 신도들을 잘 이끌어 주시는 데스.]
[사자 상…!!]
오랜시간 함께 힘써준 2인자를 차기 사자로 임명한 그는, 몸을 돌려 무리를 등졌다. 차오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는 데스. 신전으로 가는 데스!]
새로운 사자 역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 뜻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
무리들이 사라지고 찾아온 적막 속, 사자는 풀숲 밖에서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동족들의 비명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멈추는 데스-!! 태양 상의 사자가 죗값을 치르기 위해 여기 나온 데스!]
동족의 시체와 핏자국이 낭자한 공원 광장 한복판에, 사자가 나타나 소리 높여 외쳤다.
[태양 상! 더 이상 신실한 신자들을 해하지 말아 주는 데스! 와타시가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는 데스!]
죽음을 각오한 사자에게서, 실장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백이 새어나왔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악마가 풀숲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몸 곳곳에 묻은 적록의 체액과 한손에 들린 동족의 머리통, 다른 손에 들린 흉흉한 보검.
마치 죽음을 형상화한 것과도 같은 그 자태에 사자는 움찔 떨고 말았다.
[...와타시를, 벌하는 데스! 신자들의 잘못은 모두 와타시의 죄인데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욱 소리를 높여 외치는 사자. 그에 화답하듯 하얀 악마가 성큼성큼 걸어오자, 사자는 죽음을 예감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벅, 저벅
[...!]
코앞까지 다가온 발소리를 듣고 죽음을 각오한 그 순간, 우박에 꿰뚫리고 불꽃과 벼락에 바스라지는 감각을 상상한 그 순간-
"...태양이 그의 심부름꾼을 다시금 지상으로 내려보내시니…"
[...?]
사자를 맞이한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선지자와 사자는 낙원의 입구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더라."
[선지자… 상?]
하얀 악마가 백색의 가죽을 들추자, 그 아래에서 나타난 것은 태양의 선지자였다.
——————————
"들 실장학대는언제나즐거워 씨. 다음 구제 일정 잡혔어요. 메신저 확인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 3공원이네요?"
"아, 그러고보니까 거기 근처 사신다고 하셨죠. 3공원 요즘 시끄럽고 냄새 심하다고 민원 엄청 나오던데 힘드시겠어요."
"하하, 요즘 안 그런 데가 어디 있나요."
"하기야, 그렇긴 하죠. 뭐 우리야 그 덕에 돈 벌지만."
"그러니까요. 그래도 한동안 조용해지겠네요.
…재밌었는데."
"네? 방금 뭐라고?"
"아뇨, 이제 안심이라고요."
————————————
[선지자 상! 이게 무슨 일인 데스! 왜 태양 상이 와타시타치를 죽이는 데스! 한 번도 소홀한 적 없던 데스!]
겨우 안심한 사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움을 토해냈다.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한 대가가 죽음이라니, 대체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선지자는 빙긋 웃으며 평소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태양께서 사자의 헌신에 기뻐 미소지으시니, 낙원에 그를 섬기는 자가 많아 발 디딜 틈 없더라.
그가 그의 신실한 종에게 가로되, 너 선지자야. 내가 내리는 보검과 권능으로 하여금, 신도들을 인도하거라.
그리고 사자를 마중하여라.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는 스스로 낙원에 이르는 영광이 마땅하니, 불꽃으로 축성한 보검을 내려 영광을 받아들이라 하더라.
천상에 이른 사자를 내 옆에 세워 나와 같이 경배받게 할지어니, 모든 양떼가 그들의 목자에게 고마워하며 눈물지으리이다."
선지자는 그리 말하며 번뜩이는 보검을 내밀었다. 이제껏 동족들의 살을 헤집으며 탁해진 보검과는 달리, 제 얼굴마저도 비춰볼 수 있을 정도였다.
[데… 데…!]
선지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검을 받아들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더니…
[역시 와타시는 틀리지 않았던 데스! 태양 상의 곁으로 가는 데즈아아아!]
망설임없이 제 가죽을 저며내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심장을 꺼내들고서는, 그대로 터뜨렸다.
[태양 상을… 찬, 미…]
선지자는 황홀한 미소와 함께 그대로 절명했다. 그 탁해진 회색 눈 너머에는 낙원이 비치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할복해서 심장 바쳤네 ㅋㅋㅋㅋㅋ
아무리 나라도 말로 자살하게 하는건 어려운데 시발 ㅋㅋㅋㅋㅋㅋ
하… 너무 웃어서 뱃가죽이 아플 지경이야.
몇달동안 밑작업하고 구제업체 취직한 보람이 있었다.
그래도 걱정 마라, 사자야. 내가 이제껏 학대해본 들실장중에 네가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너 자살하는 영상도 제대로 찍었으니까 언제까지고 기억할게.
그리고 기타 잡신도들도 전부 다 네 곁으로 보내줄테니까 외롭지는 않을 거야! 콘페이토 천국인가 뭔가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
[[[태양 상! 태양 사아앙! 말씀해 주시는 데스! 저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데스!]]]
신전으로 향한 일행은 제각각 절하며 태양께 빌고 또 빌었다. 동쪽 벽에 난 '창문'을 통해서.
[데… 대체 왜 대답을 안 해주시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전부 죽는 데스?]
[데에엥! 죽는 것은 싫은데스!]
허나 몇 번을 절해도 태양은 답해주지 않았고, 점차 공포와 절망이 그들의 마음을 좀먹기 시작했다.
"내… 먹… 신자… 라…"
[데! 다들 조용히 해보는 데스! 태양 상이 말씀하시는 데스!]
그때 처음으로 신자들이 내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기도가 닿았음에 기뻐하며 입을 닫는 신자들.
그들의 신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오직 그것을 알기 위해 숨소리조차도 멈추었다.
"내 이름을…"
왔다! 계시다! 신자들은 기대감에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 다음에 이어질 계시를 기다렸다.
"...좀먹는 불신자들…"
이름을 좀먹는 불신자들을 죽여라? 제물로 바쳐라? 성전을 일으켜라? 신께서 바라신다면 무엇이든 하리라. 그들의 마음속에 결의가 차오른다.
"...죽어라."
[데?]
[데스?]
죽어라? 죽여라가 아니라 죽어라?
그렇다는 것은…
"내 이름을 좀먹는 불신자들. 죽어라!"
태양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화염이 지글대는 소리가 신전 안에 메아리친다.
[태양 상이 노한 데스!]
[진정해주시는 데스!]
[이, 일단 나가는… 문이 안 열리는 데샤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늦게서야 깨닫고 패닉에 빠지는 신자들.
엎드려 절하며 신의 분노를 달래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당장 살아남기 위해 문을 두들기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신은 변함없이 분노할 뿐이었다. 들어올 때는 쉽게 열었던 문도 어째서인지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이 똥태양 년이-!! 당장 문 여는데스!!]
그리 외친 것은 (구)2인자, (현)사자.
[오마에 미친 데스까! 태양 상께 무슨-데겍!]
[미친건 오마에데스! 이와중에 무슨 태양 상인데스! 지랄마는데스-!!]
그녀의 신앙심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만큼 두텁지 않았다.
[오마에같은 불신자들 때문에 이 지랄이 난데스!! 책임지고 사죄하는데스!!]
[지랄은 오마에가 지랄데스! 그 잘난 태양 상한테 살려달라고 비는데스! 와타시는 알아서 살아나가는데스!]
[분충년! 죽어서 사죄하는데스! 불신자들을 죽이면 신실한 와타시타치는 살수있는데스-!!!!]
[방해마는 데쟈아아! 그렇게 죽고 싶으면 손수 죽여주는 데스아아-!!!!]
-투닥투닥
신전 안의 신자들이 두 파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살아남겠다는 목적은 같았으나, 그 수단은 완전히 달랐던 탓에 의미없는 드잡이질만 이어졌다.
[데히… 데히…]
[좀… 너무 뜨거운것 같지 않은데스?]
[그러고 보니…]
한창 싸움에 집중하던 그들은 문득 신전이 너무 뜨거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르르르륵
[[데… 데…???]]
그리고 그 원인이 불타오르는 신전 때문이라는 것도.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데에에에에에—!!!!]]]]
그리고, 머잖아 자신들 역시 숯덩이가 되리라는 것까지.
————————————
잘 탄다. 잘 타.
여기로 도망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뒀다. 불타는 태양 영상, 최고 온도로 맞춰둔 히터, 유튜브에서 따온 캠프파이어 ASMR.
타이밍 맞게 빗장 질러두고, 마무리로 휘발유 뿌려서 통째로 태워버리기!
불타는 폐창고 너머의 비명소리, 드문드문 맡아지는 들실장 탄내, 틈새로 언뜻 보이는 녹색 실루엣!
이게 학대지 시발!! 이 맛에 들실장 학대한다!
근데 그러고보니까 저게 다 얼마더라?
…됐어, 잊어버리자.
나, 아름다운 학대 했잖아.
앞으로 몇 달 빡세게 벌지 뭐.
————————————
그렇게 제 3공원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3공원의 포로 수요에 맞춰 번식률을 대폭 늘린 주위의 5개 공원이 들실장 대량창궐로 인해 우박과 불꽃, 벼락 세례를 맞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태양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오르고, 들실장들도 살아간다.
"하늘께서 노하셨다! 이 공원에 종말이 닥칠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년 지나지 않아, 후타바 제 4 생태공원에는 이상한 옷차림을 한 괴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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