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



“…”
“…”

조용하다. 나무로 보이는 벽에 둘러싸인 이 공간에서, 자실장과 엄지는 어딘가를 응시하며 조용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다른 일가 같으면 자매들의 운치를 먹으며 레후~ 프니후~ 따위의 소리를 냈을 저실장 마저도 엄지에게 안겨 조용히 꼬물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마냥 압도적인 침묵이 이 자매들 사이에 말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저 문의 틈새를 따라 살며시 들어온 빛만이 자매들을 비추며 이곳에 생명이 살고 있음을 명시할 뿐이었다.

마마는 없다. ‘바깥세상’으로 오늘 먹을 밥을 구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대개 친실장이 부재중인 집안이 으레 그렇듯이 새끼들만 남으면 울고, 떠들고, 짖어대고, 소리치고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들 자매는 설사 무언가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난다는 듯 소리를 내지 않고 생활했다.

“오네챠, 마마 늦어지는 레치이…”
“걱정마는 테치. 그냥 조금 늦어지는 것일 뿐인 테치.”
걱정스럽게 자신을 올려보는 삼녀 엄지를 꼬옥 안으며 장녀가 말한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조차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 하지만 이조차도 밖으로 들리는 것이 아닐까, 엄지와 자실장은 혹시 몰라 더욱 소리를 낮췄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묵언수행을 하듯 침묵할 것을 강요받았다. 솔직히 괴롭다. 하지만 자매들은 그것에 불평할 수도 없었다.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실장석은 누구나 태어날 때 환희의 찬가를 부르짖는다. ‘텟테레!’라는 세글자의 찬가. 이는 실장석이라면 누구나 외치는 소리고 그 누구도 이 본능에 저항할 수 없다. 하지만 장녀를 포함한 여기에 있는 새끼들은 모두 그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장녀가 태어나 처음 텟테레! 를 외쳤을 때, 자충이 처음 본 것은 축축한 동굴이었다. 뭐지? 라고 생각할 찰나 장녀는 바로 동굴밖으로 꺼내졌다. 꺼내진 후 본 것은 어미라 생각되는, 무언가를 참느라 지독한 표정을 한 성체의 얼굴.

‘오마에는 장녀인 데스.’
그 성체는 무어가 그리 괴로운지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소근소근 말했다.

‘장녀, 입에 집어넣어 미안한데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텟테레’를 못 막는데스. 조용히 해야 하는 데스. ‘괴물’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숨소리도 참아야 하는 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태실장이었을 시절, 들려오는 마마의 태교는 대부분이 ‘조용히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였다. 그렇기에 태어난 직후지만 장녀는 마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했다.

친은 장녀를 핥아 점막을 취해주었다. 점막을 걷어내자 포대기에서 팔다리가 돋아나고 뒷머리가 자라나며 건강한 자실장이 드러났다.

‘오로롱 장녀, 이모토들을 낳을 테니 거기 가만히 있는 데스요.’
장녀를 보고 소리 죽여 기쁨의 오열을 하던 친실장은 곧 다음 자실장을 낳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줬다. 

두번째 자가 나오자 장녀에게 그러했듯 친실장은 바로 입에 넣었다. 아직 점막을 벗지 못하였기에 저실장마냥 꼬리가 파닥인다. 분명 ‘텟테레!’라는 소리가 동굴에서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잠시 틈을 두고 차녀를 꺼낸 친실장. 바로 장녀에게 했던 것처럼 얼굴의 점막을 취해주고 조용히 말을 건내려는 찰나,

‘레햐악! 감히 고귀한 와따치가 태ㅇ,’

차녀의 삿대질과 폭언에 놀란 친은 바로 다시 차녀를 입에 넣었다. 얼떨결에 한 행동이지만 정답이었던 것 같다.

“!!!”
아직 점막으로 둘러쌓인 꼬리가 항의하듯 페타페타 요동치지만 적어도 뭐라뭐라 외치는 소음은 친의 입 밖으로 거의 새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나…어찌해야 하나…

친은 눈알을 굴렸다. 그렇게 태교를 했건만 분충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뭘 모르는 아이다. 두고두고 잘 가르치면 납득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여유가 있을 경우다. 생존하려면, 단호해야한다. 이제 막 태어난 장녀. 그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런데 이 아이가 위험에 빠질 위기다. 그것도 같이 태어난 자매에 의해.

친실장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턱에 힘을 줬다.

와직!

생명의 문이 닫히는 소리. 그와 함께 자신이 응당 누려야 할 것을 온몸으로 외치던 꼬리가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마마가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먹어버림에 굳어버린 장녀. 하지만 곧 친실장의 눈에 다시 흐르는 색색의 눈물에 의해 친의 슬픔을 느꼈다.

‘조용히 해야한다.’

장녀는 다시금 태교의 말을 떠올렸다. 조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뱃속에 있을 때는 그저 응 그렇구나 싶었던 말이지만 나와서 보니 그건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말이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무적의 마마조차 두려움에 떨며 침묵을 강요하게 만들었는가? 장녀는 굳은 몸을 풀면서도 그러한 의문을 품었다.

그 뒤로 친실장은 엄지 하나에 저실장 세마리를 더 낳았다. 다행이도 엄지는 착하고 말도 잘 알아들었기에 태어나자마자 조용히 장녀에게 인사하고는 같이 생명의 탄생을 목격할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실장들.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계속 레후 레후 울며 친실장의 속을 태웠다.

‘제발 우지짱, 조용히 쉿, 쉿.’
마마는 몸이 달아서 연신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내지만 저실장 두마리는 그저 해실해실 웃으며 레후 레후만 연발한다.

‘밥 주는 레후~ 배고픈 레후~’
‘태어나서 기쁜 레후. 아마아마 먹고싶은 레흐.’

분충은 아니다. 단지 이 상황을 이해할 지식이 없을 뿐.

그러나 여기에서 어쩌면 멍청한 것은 크나큰 중죄인 것 같았다.

‘레ㅃ!’
‘레ㅎ?’

친실장은 바로 두마리 모두 입에 넣었다. 간신히 말랐던 눈물의 강에 또다시 색이 입혀진다. 자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남은 자식들이 죽는다. 그렇지만 자식을 먹어야 한다.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고 나서, 친실장은 다시금 입을 막은 체 소리 죽여 오열했다. 자식을 죽였음에도 소리 높여 우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남은 세 자매의 위석에 새겨졌다.

출산이 끝난 후, 출산소로 썼던 그릇을 치우고 친실장은 태어난 세 자매를 나란히 앉혔다.

‘마마는 사육실장이었는 데스.’
그 말에 놀라는 세 마리. 그제서야 마마가 자신들과는 다른, 살짝 색이 바랬지만 분홍색의 사육실장복을 입고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옷의 가슴께에 달린 명찰. 그곳에는 갓 태어난 자충들은 모르는 인간의 글자로 ‘도리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마, 텝!’
무언가 말을 하려던 장녀는 다시 한번 친에 의해 입이 막힌다.

‘쉿’

끄덕끄덕

‘다 말해주는 데스요. 그러니 조용하는 데스.’
의문과 향후 생활에 대한 기대로 빛나는 세쌍의 눈동자.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도리미는 길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와타시는 방금도 말했듯이 사육실장인 데스. 아니, ‘이었던’ 데스. 예전에는 주인사마와 행복한 나날을 살고 있었는 데스요. 하지만,’
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괴물이 쳐들어와 바깥 세상은 멸망한 데스. 주인님도, 다른 닝겐상들도 다 사라진 데스.’
도리미의 양눈에서는 아직도 남았는지 적녹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괴물은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데스. 소리가 들리면 잡아먹는데스. 그러니 조심해야 하는 데스.’

간단하면서도 의문해소에 필요한 것은 모두 담긴 말. 장녀와 차녀 엄지, 그리고 삼녀 우지 모두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제서야 자충들이 기특한 듯 작게 데프프프 웃는 도리미.


탄생의 순간은 그렇게 혼란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다. 적어도 장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네챠.’
‘?’
자신을 올려다보며 부르는 차녀에게 반응하는 장녀.

‘이 문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 레치?’
차녀의 질문에 삼녀 우지도 귀를 쫑긋 세운다. 장녀는 며칠 전 어미를 따라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왔다. 차녀와 삼녀는 아직 이 문 안 세상밖에 모른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갇혀 있다 보면 이러저러한 이야기라도 들어야 사는 재미가 있다.

“이 문밖은 재미있으면서도 위험한 테치.”
장녀는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며칠 전, 장녀는 세상 적응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친실장과 함께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나가본 ‘바깥 세상’은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다소 헤진 다리네발씨와 문 많은씨 등 – 도리미는 그걸 ‘탁자’와 ‘서랍’이라고 불렀다 - 낡은듯하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장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장녀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둡고 축축한 나무문 안. 그에 비해 ‘바깥 세상’은 이리도 축복받은 빛이 세상을 아로새긴다. 장녀는 무심코 약간이나마 이곳을 돌아다니는 친실장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이곳은 바깥이 아닌데스.’
‘테? 여기가 아닌 테치?’
장녀의 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친실장은 조용히 하라는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곳은 옛날 주인님과 와타시가 살던 집 안인 데스.’
그러면서 회색조의 단단해 뵈는 문을 가리키는 도리미.

‘저 문을 지나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데스.’
문을 바라보는 장녀. 굳게 닫힌 철문은 자신은 물론이고 친보다도 거대하다.

‘저 넘어는 위험한 데스. 성체인 와타시도 매일매일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곳인 데스. 괴물은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데스.’
뭔가 실감이 나지 않는 장녀.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세상에 그런 괴물이 진짜 있을까?

‘데샤아아아아!!!’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창문 넘어로 갑자기 들려온 성체의 비명소리. 장녀는 절대 빵콘하면 안 된다는 친의 가르침도 잊고 살짝 지려버렸다.

‘금기를 어긴 동족상인 데스. 아마도…괴물들에게 잡아 먹히고 있는 모양인 데스.’
베란다 넘어로 힐끗 시선을 준 도리미는 담담히 말했다. 

‘잘못한 데스! 죽이지 마는 뎃샤아아아!!!!’
처절한 비명이 들린다. 하지만 도리미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다. 한두번 들어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키 차이로 인해 장녀는 바깥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처절한 비명소리가 장면을 상상케 해주었다. 낙원이라 생각했던 곳은 사실 파리지옥이었던 것일까? 장녀는 잠시나마 이곳을 천국이라 생각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아까 친이 가리켰던 철문과 비슷한 사이즈의, 하지만 나무로 된 문을 살짝 열자 그 안에는 거대한 투명투명씨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그 뱃속에는 녹색의 작은 원통물건이 여러 개 담겨있었다.

‘이건 푸드인 데스. 와타시들의 주식.’
도리미는 조용히 푸드봉지의 끝을 풀고 푸드를 하나씩 꺼낸다.

‘며칠 전에 와타시가 좀 늦게 들어온 적 있지 않는 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 때 바깥 세상으로 나가서 모아온 푸드인 데스. 그땐…정말로 죽을뻔한 데스.’
장녀는 말없이 도리미를 안았다. 마마는 자신들을 위해서 늘 목숨을 걸고 있다. 아주 찰나같지만 잠시라도 그런 마마를 질투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장녀를 본 도리미는 데프프 웃으며 장녀를 안아주었다.


“그 회색문 넘어는 와타시도 못 가본 테치. 하지만 언젠가는 와타시도, 이모토차도 갈 수 있을 것인 테치.”
자신에게 꼭 안긴 엄지를 쓰다듬는 장녀.

‘그러니 와타치가 이모토차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테치.’


그렇게 서로 붙어 웅얼거리던 자매는 어느샌가 또 잠이 든다. 빛이 점차 줄어든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들어오는 빛이 점차 줄어드는 시간. 장녀가 일어난다.

장녀와 나머지 자매들은 하루 중 두 번, 이런 시간을 제일 싫어한다. 

왜냐하면, ‘괴물’이 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무벽 뒤로 어둠이 내리깔기 시작할 때, 괴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둡던 틈새에 갑자기 강렬한 빛이 새어든다. 괴물이 왔다는 신호다. 왜인지 모르지만 괴물은 항상 빛을 등에 지고 찾아온다.

쿵쿵쿵

“장녀 오네챠…”
“쉿.”
마치 어미를 따라하듯 장녀는 차녀와 삼녀를 꼭 안으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자신도 떨리긴 매한가지지만 지금은 자신과 자매들 밖에는 없다. 차녀 품에 안긴 삼녀는 저실장 특유의 동그랗게 말기를 하며 벌벌 떤다.

쿵쿵

어느덧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제발, 제발, 제발.


멈춰섰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 장녀 품에 안긴 삼녀의 심장소리조차 들릴지 모르는 침묵. 바깥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살짝살짝 들리는 소리가 괴물이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알려준다.

열지 마라. 열지 마라. 제발 열지 마라.

1분일까 2분일까, 마치 억겁과도 같은 시간. 하얗게 질린 막내 우지가 검은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은 시간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데스데스

마마다! 마마의 목소리다! 그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그런 생각으로 뇌를 채운다. 하루에 두번 괴물이 오는 시간. 마마는 늘 이렇게 문 밖에서 외친다. 마마가 저렇게 소리치면 어느새 괴물은 마마를 따라 뒤돌아 사라진다.

쿵쿵쿵

괴물의 발소리가 지축을 뒤흔든다. 언제까지고 들릴 것 같은 그 발소리는 이윽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괴물이 나간 것이다. 오늘도 마마가 괴물을 물리친 것이다!

“다들 무사한데스?”

괴물이 가고 시간이 흐른 후 도리미가 조용히 나무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리미를 맞이하는 새끼들의 얼굴은 뭐라고 단정짓기 힘든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다. 반가움, 슬픔, 환희, 서러움, 성취감.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역시 눈물을 흘리며 모두를 안아주는 도리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미안한데스 미안한데스. 괴물이 또 왔다간 데스. 마마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한데스.”
“아닌테치. 마마 고생하신 테치.”
친이 소리죽여 운다. 새끼들 또한 그런 마마에게 안겨 운다.


굶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에 사는 실생. 이들은 가족간의 사랑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 일가에 하나의 작은 경사가 생겼다.

막내가 고치를 틀었다. 보름달이 뜬지도, 보름달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때가 되었다고 느낀 건지 막내는 자는 동안 하얀 실을 내어 온 몸을 휘감았다.

“마마, 막내가 없어진 레치.”
차녀가 당황하여 친을 붙잡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차녀, 다른데스. 이게 삼녀인 데스.”
“레?”
도리미는 새끼들을 앉히고 찬찬히 설명을 해준다. 저실장은 영양이 충분하고 때가 되면 엄지로 우화하기 위해 실을 내어 스스로를 감는다. 그리고 특정 시점이 지나면 엄지가 되어 고치를 찢고 나온다.

“그럼, 와타치, 엄지 이모토가 생기는 레치?”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는 엄지. 친실장은 그런 엄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마도, 아마 마마의 마마도 이런 건 보지 못한 데스. 오마에들이 자랑스러운 데스.”
저실장이 우화하려면 매우 많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충분한 영양, 충분한 애정 그리고 충분한 프니프니까지. 팍팍한 삶이지만 막내 우지는 그 정도로 사랑받고 자란 셈이다.


그 뒤로 일가의 매일은 행복했다. 차녀는 언제 동생이 나올지 몰라 두근거리고 장녀 또한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차녀와 마음은 비슷했다. 언제나 괴물을 유인하고 들어오는 도리미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행복이 그렇게 계속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 환희의 나날. 그날도 아침에 찾아올 괴물을 유인하려 조용히 작은 나무문을 열고 나가는 친실장과 그런 친을 배웅하는 새끼들.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다.

단 하나, 고치만 빼면.

쩌저적!

모두가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봤다. 고치에 작은 틈이 생겼다. 

쩌저저적!

고치가 찢어진다. 갈라진 틈새로 길쭉해진 손이 튀어나온다.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리고 동생이 나온다! 모두가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이 나온다. 반신이 거의 다 나왔다. 가족은 기뻐한다. 무언의 환호가 가족을 둘러싼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막내 우지, 아니 엄지가 그에 화답한다.


“텟테레!!”



도리미는 멍했다. 장녀는 경악으로 입이 벌어졌다. 차녀 또한 마찬가지다.

도리미는 몰랐다. 태어날 때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것은 알았지만, 저실장이 고치를 깨고 나올때도 그러할 것이란 것을. 고치를 깨고 나온다는 건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기에 그렇다는 의미인 것을.

쿵쿵쿵

발소리가 들려온다. 

“…다 끝난데스…”
도리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쿵쿵쿵

점점 커진다. 괴물이 온다! 장녀는 안절부절 못하고 그저 마마를 쳐다본다. 차녀는 여전히 멍하니 삼녀를 볼 뿐이다. 삼녀는…하얗게 변한 얼굴로 아닌레치 아닌레치…를 반복하고 있다. 삼녀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벌컥!

문 바깥에 있는 다른 큰 나무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괴물이 나왔다. 도리미는 새끼들이 있는 작은 장의 나무문을 닫지도 않은 체 그저 괴물을 등지고 서 있었다.

크다. 그리고 검다.

‘괴물’을 처음 본 장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천히 도리미와 새끼들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 빛을 등지고 선 괴물은 곧장 일가를 습격하지 않고 말없이 장녀와 도리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녀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긴 무언가를 뻗어오는 괴물의 모습이 들어왔다. 촉수 같이 길쭉한 것에 끝에는 다섯개의 돌기가 달려 장녀를 구속하듯 얽어 맸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잡아먹히긴 싫어! 살려줘 마마! 하지만 침묵할 것을 강요받고 침묵 속에서 살아온 자실장은 자신이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이 닥쳤음에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입만 뻐끔뻐끔 움직이는 장녀, 그리고 소리를 죽이고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머지 자매를 지긋이 쳐다보는 괴물.

그 ‘괴물’이 입을 열었다.

“도리미…결국 몰래 새끼를 낳고 키우기까지 했구나…”

‘괴물’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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