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육실장의 기나긴 하루

 

사삭- 사사삭-

도도도도-

[부우웅~ 데스우, 부우웅~ 데스우]
"연두야."
[뎃!? 부르신 데스우?]

남자의 말에 거실에서 장난감 차를 굴리며 놀던 사육실장 연두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났니?"
[데에... 난 것 같기도 한 데스우]
"그치? 다용도실 쪽에서 났는데."
[데에... 이번에도 찍찍이씨가 아닐까 싶은 데스... 거실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는 데스우... 주인사마가 앉은 소파 밑에서도 들락거리던 데스]
"아 그래? 거참... 언제 업체를 한번 불러야겠네."

아파트 살 땐 안 이랬는데... 남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

"나 간다. 집 잘 보고 있어."
[다녀오시는 데스우]

다음날 아침, 연두는 현관 앞에서 남자를 배웅했다.

남자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잠시 후 집 앞에 주차된 자동차에 시동이 걸린다.

자동차의 엔진음이 저 멀리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연두는 다용도실을 향해 걸어갔다.

레버형 손잡이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자 달칵- 소리와 함께 다용도실의 미닫이문이 옆으로 열렸다.

이 단독주택에서는 현관을 제외한 모든 문의 손잡이에 이런 식으로 줄이 달려있었다.

연두가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한 주인의 작은 배려였다.

창고로 쓰고 있는 탓에 약간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가 떠도는 다용도실 안으로, 연두가 성큼 들어섰다.

[자들은 나오라는 데스우]
[테츄웅~]

선반 가장 아래칸에 놓인 골판지 박스,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세 마리 자실장이 기쁨의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나왔다.

[갑갑했던 테치!]
[배고파 테치! 배고파 테치!]
[나쁜 닝겐은 나간 테치?]

세 개의 입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쫑알대는 바람에 좁은 다용도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하는 데스!]
[테칫!]

어미의 불호령에 세 마리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어제는 뭐였던 데스? 어째서 시끄럽게 굴었던 데스? 하마터면 들킬뻔하지 않았냐는 데스!]
[자, 잘못한 테치잉...]
[주인사마는 이번에도 찍찍이씨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으니 다행 데스. 그치만 앞으론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는 데스!]
[테츄...]

세 마리 모두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떨궜다. 짐짓 화난듯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던 연두의 얼굴이 이윽고 누그러졌다.

[...반성했으면 된 데스. 어서 나가는 데스. 아와아와를 먼저 하고 밥을 먹는 데스. 그리고 삼녀, 주인사마한테 나쁜 닝겐이라고 하면 못 쓰는 데스우]

연두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들어올려 얼굴을 핥아주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텟테로케~ 텟테로케~]

세 마리의 자실장은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려서 다용도실을 빠져나가며 기쁨의 노래를 합창한다.

뒤따라가는 연두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자를 가지는 일은 이렇게나 행복한 데스. 그런데 어째서 주인사마는 못 하게 하는 데스우? 현명한 주인사마도 역시 모르는 게 있던 데스.'

약간 불손한 생각마저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그녀의 새끼들은 사랑스러웠다.

다용도실을 빠져나온 연두는 문득 뎃큼뎃큼 목을 가다듬더니 크게 위협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데샤아아앗!]
[테햣!]

날카로운 어미의 외침에 세 마리의 자실장이 펄쩍 뛰었다.

[까, 깜짝 놀란 테치!]
[뭐인 테치!]

새끼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연두는 가장 가까이 있던 삼녀를 두 손으로 집어들었다.

실장복을 들춰 팬티를 확인하고, 콧구멍을 갖다대어 킁킁 냄새를 맡아본 뒤 다시 아래로 내려놓았다.

이어서 차녀, 그리고 장녀에게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셋 다 이제는 놀라도 빵콘을 하지 않게 된 데스? 장한 데스. 모두 레이디인 데스우]
[테에엥... 그런 건 물어보면 되지 않냐는 테치...]
[마마가 미안한 데스. 그래도 이 편이 정확한 데스]

투덜거리는 세 마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연두가 뎃스웅뎃스웅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예의범절도 거의 익혀가는 데스. 자실장을 싫어하는 주인사마라지만 이런 똑부러지고 귀여운 모습을 보면 분명 마음이 바뀔 것 데스.'

행복회로에 약간의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며, 연두가 화장실의 문고리 끈을 당겼다.

'몇 밤 더 자고 난 뒤엔, 주인사마에게 보여드리는 데스. 샵에서 배운 비장의 춤과 애교도 전수하는 데스. 그 전까진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데스.'

화장실 특유의 습한 공기에는 락스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자들은 가서 운치 먼저 하는 데스우]
[테칫!]
[테츄웅~]

타일 바닥에 발을 디딘 세 마리의 새끼가 잽싸게 화장실 구석의 배수구로 뛰어갔다.

나란히 팬티를 벗어버리고 쪼그려앉아 힘을 주자 진녹색 운치가 뽀지직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마마!]
[알고 있는 데스. 기다리라는 데스.]

연두는 화장실 한구석에 설치된 사육실장용 좌변기 옆에서 전용 휴지를 뜯어냈다.

잘게 찢은 휴지에 침을 묻혀 자실장들에게 건네자 모두 익숙한 동작으로 받아들고 엉덩이와 총구를 닦아낸다.

[다 닦은 건 여기에 놓는 데스]

연두가 잘게 찢지 않은 휴지 몇 장을 바닥에 깔았다.

[마마! 다 된 테치!]

장녀가 녹색으로 물든 휴지뭉치를 하얀 휴지 위에 던지고는 팬티를 올리지 않은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연두는 그런 장녀를 들어올려 가랑이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역시 장녀인 데스. 먼저 아와아와 상자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있는 데스우]
[텟츄웅~]

장녀가 고개를 까딱이며 애교를 부린 뒤 사육실장용 목욕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어서 차녀가 검사를 받고 장녀의 뒤를 따랐다.

[삼녀... 아직 얼룩이 이렇게나 남지 않았냐는 데스]

연두는 삼녀의 고간을 마저 닦아내어 보여주며 엄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삼녀의 얼굴은 곧바로 울상이 되었다.

[치이이... 어째서인 테치... 어차피 아와아와를 하면 총구도 깨끗해지지 않냐는 테치잉...]
[삼녀, 자꾸 말대답하면 사육실장이 될 수 없는 데스!]

가볍게 머리를 콩, 때리자 삼녀의 적록색 눈에 눈물이 핑 돈다.

[테, 테끄윽... 테힉, 테, 테에엥...]
[울면 안 되는 데스. 참는 데스. 아무때나 우는 아이는 들실장인 데스]
[텟...테엑끄... 테흑... 끄읍... 텟... 테헤... 테치잉...]

간신히 울음을 참아낸 삼녀를 연두가 대견하다는 듯 안아주었다.

[이제 가는 데스. 다 함께 기분 좋게 아와아와를 하는 데스]
[테츄...]

연두는 휴지를 실장용 변기에 버리고 목욕장 안으로 들어섰다.

자실장들을 한 마리씩 들어 욕조 안에 넣은 연두가 급수버튼을 꾹 눌렀다.

차오르는 온수가 몸을 적시자 세 마리의 새끼는 곧바로 기분이 고양되어 테치테치 재잘대기 시작했다.

[몸이 녹는 것 같은 테치!]
[평생 나가기 싫은 테치!]
[푸드도 이 안에서 먹으면 안되는 테치?]
[삼녀는 바보같은 소리 하지 않는 데스. 제대로 나가서 먹는 데스]

연두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작은 용기에 담긴 과립형 발포입욕제를 물에 풀고 손으로 휘휘 저었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금세 풍성한 거품이 솟아오른다.

[아와아와 테치! 아와아와 테치!]
[구름인 테치! 하얀 테치!]
[장녀는 구름이 뭔지 아는 데스?]
[저번에 베란다에서 본 테치! 하얗고 아와아와한 테치!]
[그랬던 데스? 마마가 까먹은 데스. 장녀는 머리가 좋은 데스]
[테츄웅~]

네 마리 모두가 들어가기엔 무리였기에, 연두는 샤워기를 틀어 몸을 적신 뒤 입욕제를 제 몸에 문질러 거품을 냈다.

입욕제는 샴푸와 바디워시 기능까지 겸한 올인원 타입이었다.

연두는 새끼들을 욕조에서 꺼낸 뒤 물을 뿌려 전신의 거품을 씻어냈다.

주인이 특별히 핸드 드라이어를 개조해서 만들어준 온풍기 밑에서 물기를 말리고, 목욕장 위에 얹어뒀던 옷을 다시 입는다.

연두는 깨끗해진 새끼들을 욕실 밖의 마루바닥으로 올려주었다.

아직 요구르트병만한 자실장들에게 있어 내려오는 건 쉬워도 올라가기엔 약간 높은 단차였던 탓이다.

[잠시만 그대로 기다리는 데스]

연두는 실장용 샤워기를 목욕장 밖으로 길게 빼고는 하수구를 향해 물을 틀었다.

인간의 샤워기보다는 수압이 약했지만, 하수구의 철망덮개 위에 남아있던 운치를 씻어내기엔 충분했다.

녹색 덩어리가 남지 않은 걸 확인한 뒤에야 연두는 욕실을 나섰다.

[자, 이제 밥을 먹으러 가는 데~스]
[텟츄~웅]

연두는 사육실장 전용의 식기 일체형 식탁 앞으로 새끼들을 데려갔다.

수북히 쌓인 푸드 중 한 알을 집어들어 보이며 연두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오늘부터는 마마가 씹어주지 않는 데스. 직접 먹도록 하는 데스]
[테에? 직접 테치?]
[그런 데스. 이제 이빨도 위아래로 다 났으니 슬슬 씹어먹는 법을 익히는 데스]

연두는 작은 원기둥 모양의 푸드를 실장용 식탁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탕탕 두들겼다.

부스러진 푸드 조각을 집어 새끼들에게 하나씩 내민다.

[씹기 힘들면 침으로 녹여가면서 살살 갉아먹는 데스]
[잘 먹겠는 테치]
[테챱테챱... 테에에... 색다른 느낌 테치]
[삼녀, 입에 푸드를 물고 말하면 안 되는 데스. 다 튀지 않냐는 데스?]
[테치잉...]

몇 알인가의 푸드를 조각내어 먹이면서, 연두는 한참을 그렇게 새끼들의 몸가짐을 지적했다.

그래도 그제보단 어제가, 어제보단 오늘이 훨씬 나아져 있었다.

'다들 좋은 자들 데스. 와타시가 샵에서 훈육받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제대로 된 데스. 실장복만 와타시처럼 세레브한 것으로 갈아입히면 사육실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데스우.'

연두는 흐뭇해하는 마음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일부러 계속 잔소리를 했다.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았냐는 데스, 입가를 소매로 닦지 마는 데스, 보채지 않는 데스...

사실 부스러기를 흘리거나 음식을 보채는 정도는 연두 자신도 늘상 하는 일이었지만, 새끼들은 좀 더 어엿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치프픗, 오네챠 배가 빵빵 테치]
[차녀챠도 마찬가지 테치]
[테에에... 더 먹고 싶은 테치... 그치만 더 먹으면 배가 아야할테니 참는 테치...]
[츄아아아음... 졸린 테치...]

각자 동그랗게 부푼 배를 두들기며 테치테치 이야기하던 자실장들이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연두를 돌아보았다.

[마마, 오늘은 뭘 하고 노는 테치?]
[공놀이는 어떤 테치?]
[산책 나가고 싶은 테치]
[산책은 안 되는 데스. 아직은 아닌 데스]

언젠간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괜히 뒷마당에 나갔다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에게 들키면 일가 전원이 골판지 상자에 담겨 내쫓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참는 데스. 사육실장이 되면 주인사마를 졸라서 넷이 함께 공원에 가거나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는 데스. 오늘은 숨바꼭질로 참는 데스우. 자, 마마가 열을 세는 데스우]
[테에... 맨날 숨바꼭질인 테치...]
[하나 데스우... 둘 데스우...]

불평하면서도 자실장들의 몸은 순순히 숨을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와타치는 여기에 숨는 테치!]
[텟! 치사한 테치... 그럼 와타치도 같이 숨는 테치]
[따돌리면 싫은 테치! 와타치도 껴주는 테치!]
[테? 어디서 아마아마한 냄새가 나는 테치?]
[진짜인 테치!]
[...여섯 데스우...]

벽을 바라보고 서 있던 연두는 뒤에서 들려오는 새끼들의 목소리와 작은 발소리를 들으며 미소지었다.

'이렇게 자들과 노는 행복... 아마 와타시의 마마는 못 느꼈을 것 데스우... 와타시가 자실장이던 시절에도 마마와 노는 행복은 누리지 못한 데스우...'

얼굴도 냄새도 모르는, 아마 지금도 실장샵 어딘가에서 자매들을 낳고 있을 마마를 생각하자 갑자기 슬픈 기분이 되었다.

연두는 고개를 붕붕 저어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냈다.

'괜찮은 데스. 그 대신, 와타시의 자들에게 그만큼 행복을 주면 되는...'

빠캉!

[[[[테지이잇!]]]


둔탁한 굉음과 함께, 세 개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겹쳐졌다.

[무슨 일인 데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연두가 부리나케 뒤돌아섰다.

[테규우웃...테긋... 테.... 테에에...]
[장녀?]
[테규보... 헤쥬쥬... 찌이이...]
[차녀?]
[찌이이이...]
[삼녀?]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 아니, 울음소리조차 되지 못하는 신음이 띄엄띄엄 흘러나온다.

연두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타고 오르는 걸 느끼며 울음소리의 근원지인 소파를 향해 뛰었다.

흘러나온 땀이 실장복에 진한 얼룩을 만든다.

[오마에타치! 무슨 일인...데...뎃?]

소파와 벽면 사이에 있는 틈.

그곳에는 경첩이 달린 금속 상자가 저 안쪽 깊은 곳에 놓여 있었다.

경첩에 연결된 뚜껑(으로 추정되는 무언가)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틈으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 데스... 이게 무슨 일인 데스우... 어, 어디간 데스우... 다들...]
[마...마...]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연두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삼녀의 목소리였다.

[삼녀, 괜찮은 데스? 대답해보는 데스! 그 안에 있는 데스?]
[츄보복... 테휴우...]

연두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던 연두의 머리에 문득 매지컬 테치카 요술봉이 스쳐 지나갔다.

[데이잇... 데그으읏...]

연두는 장난감 바구니에서 꺼내온 요술봉을 손에 쥐고 결연히 몸을 숙였다.

요술봉 끄트머리의 별모양 장식을 상자 모서리에 걸치고는 조심스레 끌어당겼다.

지이익-

새어나온 적록색 액체가 바닥에 길게 끌리며 자국을 남기는 것을, 연두는 필사적으로 모른척하려 했다.

[이게 뭐인 데스우... 대체 무슨 일 데스우... 이건, 이건 꿈인 데스우...]

연두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 겉면에 붙은 철사와 이런저런 부속품을 만지작거렸다. 

'자들은... 이 안에... 이 안에 있는 데스? 틀림없는 데스. 분명 살아있을 거 데스... 약간 다치긴 했어도, 분명...'

상자를 이리저리 더듬으며 열 방도를 찾던 뭉뚝한 손이 용수철이 달린 레버를 누른 것은 우연이었다.

삐걱-

경첩에 연결된 상자 뚜껑이 쇳소리를 내며 살짝 들렸다.

아무래도 이 길쭉한 쇠붙이를 누르면 열리는 것 같았다.

[데엣...스우우...]

불길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연두는 레버에 체중을 실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금속 뚜껑이 들려올라갔다.

[데...?]

안쪽은 질척한 적록색 덩어리로 가득했다.

그것이 자기의 새끼들이라는 것을 연두가 인식하기까진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 마리 자실장은 망치로 두들긴 것처럼 온통 으깨져 있었다.

살점을 찢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뼈와 선명하게 뚫려있는 구멍들.

뚜껑에는 못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철침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고, 그 끝에서는 적록색 액체가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레버를 누르던 팔에서 힘이 빠지는 바람에 기껏 들어올렸던 뚜껑, 정확히는 쥐덫의 압살용 상판이 되돌아가며 잔혹한 철퍽 소리를 울린다.

[츄벳]

파킨-

삼녀의 단말마와 함께 위석이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 이게 무슨 일 데스우... 무슨, 무슨 일인 데스우... 이건 나쁜 꿈... 꿈인 데스우...?]

고장난 것처럼 그 말만 반복하던 연두의 눈에, 뚜껑 위에 새겨진 그림이 들어왔다.

익살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찍찍이씨였다.

'이건 설마... 쥐덫... 데스우...?'

연두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와타시의 탓이다.

어제 주인의 주의를 다용도실로부터 돌리려고 괜히 소파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래서 주인이 덫을 놓았을 것이다.

소파 밑을 들락거리는 찍찍이씨를 잡기 위해서.

와타시가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있지도 않은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한참을 그렇게 넋을 잃은 채 덫만 어루만지고 있던 연두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건, 해가 어느 정도 기울고 나서였다.

[데에... 데에에...]

연두는 아직도 힘이 빠져 움직이려 하지 않는 두 다리를 억지로 재촉하며 일어섰다.

[주인사마가 오기 전에... 치워야 하는 데스...]

연두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의 한쪽 모서리를 들어올렸다.

질질 끄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욕실까지 옮길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대로 놔뒀던 탓에 체액이 굳어서 바닥에 자국이 많이 남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털그렁!

약간의 단차가 있는 욕실의 타일 바닥 위로 상자를 먼저 떨구고, 연두는 실장복을 벗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피나 오물이 튀지 않은 걸 확인한 뒤, 팬티까지 벗어서 문 앞에 함께 던져놓고 욕실 바닥에 내려섰다.

상자를 하수구 가까이 밀고 간 연두는 레버에 다시 손을 얹었다.

[데엣...스우우...]

레버를 누르자 상자의 뚜껑이 질척한 소리와 함께 들려올라간다.

피가 굳은 탓에 처음 열었을 때보단 더 큰 힘을 필요로 했지만, 어떻게든 열 수 있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레버를 끝까지 내리자, 달칵 하고 뚜껑이 고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된 데스. 이제, 이제 치워야... 하는... 데스...'

연두는 희미하게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 세 마리 소중한 새끼, 정확히는 새끼였던 고깃덩이를 바라보았다.

아까 받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일까.

연두는 눈앞의 광경을 이번에는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자들은... 모두 죽은 데스...'

하지만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시간 전만 해도 바로 이곳에서 테치테치 즐겁게 떠들고 운치를 하고 아와아와를 하던 사랑스러운 자들이, 지금은 씹다 뱉은 실장푸드처럼 걸쭉하게 변해 있었다.

'자들을 떼어내서, 이... 상자... 쥐덫을, 씻고, 말리고... 도로 가져다 놓는... 데스...'

떨리는 손으로 으깨진 살점을 긁어내려던 연두의 손이 멈췄다.

이러다 덫의 방아쇠를 건드리면 자기 손도 으깨져버리고 만다는 걸 간신히 깨달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연두는 한 손으로 레버를 눌러 덫의 뚜껑이 닫히는 걸 막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으깨진 자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소리와 함께 타일 위로 적록색의 더러운 고기들이 쌓여간다.

문득 삼녀의 하반신이 연두의 눈에 들어왔다.

덫에 짓이겨지면서 내장이 터지고 실장복이 적록색으로 물든 와중에도 용케도 팬티만은 깨끗한 하얀색을 지키고 있었다.

[삼녀... 무척 아팠을 텐데... 빵콘을 하지 않은 데스? 장한 데스... 훌륭한... 레이디인...데스... 사육실장이라고 해도... 믿겠는... 데스우... 오로로롱...]

기어이 적록색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울면서도 뭉툭한 손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엉겨붙은 살점과 모발, 뼈와 실장복을 대강 긁어내고, 목욕장 안에서 샤워호스를 가지고 나와 물을 뿌린다.

덫에 엉겨붙어있던 적록색 얼룩이 물줄기에 지워져간다.

입욕제까지 뿌리고 다시 물로 씻어내서 깨끗해진 덫을 온풍기 아래에 갖다놓고, 연두는 스위치를 눌렀다.

청소기 소리를 닮은 굉음과 함께 온풍이 덫을 때리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저렇게 조금만 내버려두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들의 살점뿐.

'마당에 들고 나가서 묻어줘야 하는 데스? 아니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야 하는 데스?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연두의 손이 하수구를 덮은 철망으로 향했다.

철망에 손가락을 걸고 들어올리자, 자실장 한 마리쯤은 문제없이 삼켜버릴 만한 구멍이 나타났다.

으깨진 자실장 세 마리의 육편 정도는, 아마 무리없이 내려보낼 것이다.

[마마가... 마마가 미안한 데스... 미안한 데스우...]

대충 머리로 짐작되는, 두건과 모발이 엉겨붙은 살점을 들어올려 사죄하고는 연두는 그것들을 하나씩 하수구로 던져넣었다.

[뎃? 이건...?]

집어들던 살점들 사이에서 뭔가 눈에 익은 것이 반짝였지만,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미끄러져 하수구 속으로 사라졌다.

부서진 위석 조각 하나까지 모두 던져넣고 바닥에 묻은 체액까지 입욕제로 거품을 내서 닦아낸 뒤, 연두는 쥐덫을 끌며 욕실을 나섰다.

'피곤한 데스... 그치만... 제자리에 돌려놔야 하는 데스...'

연두는 소파와 벽의 틈새, 그리고 마룻바닥에 묻은 체액까지 대량의 젖은 휴지와 테치카 요술봉을 동원해서 박박 문질러 닦아냈다.

자들이 살아있었던, 그리고 죽어있었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덫을 제자리에 돌려놨을 땐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이젠 언제 주인이 돌아와도 이상할 게 없다.

[데에... 옷을... 옷을 입어야 하는 데스...]

연두는 지친 몸을 욕실 문 앞으로 끌고 가서 바닥에 던져뒀던 옷을 주워입었다.

전신의 미끈미끈한 땀을 옷감이 흡수하는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졸린... 데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길 바라며, 연두는 거실 한구석의 실장석 하우스에 비척비척 기어들어가 몸을 눕혔다.

***

상당히 지쳐있었음에도 연두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삑, 삑, 삑, 삑. 띠로링.

남자가 들어오는 도어락 소리가 나자마자 연두는 용수철이 튕기듯이 거실로 뛰어나와 현관을 향해 달렸다.

[다녀오신 데스우~]

과하게 밝은 모습을 연기하며, 연두가 남자를 향해 총총 뛰어갔다.

애써 소파 쪽으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붙들어매면서.

"혼자 잘 있었어?"
[잘 있었던 데스. 그치만 주인사마가 없어서 쓸쓸했던 데스우]
"어이구 기특한 소리를 다 하네."

특별할 것 없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남자가 거실로 들어섰다.

"아, 맞다. 오늘은 그 뭐냐... 찍찍이씨? 없었니?"
[뎃?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못 본 것 같은 데스...]

연두는 남자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다리에 달라붙어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리는 척 했다.

"응... 그렇구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적당히 소파 위로 던졌다.

"참, 내가 어젯밤에 여기 소파 뒤에다가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덫을 놨거든?"

남자는 겉옷을 벗으면서 소파를 향해 턱짓을 했다.

"깊숙이 넣어놨는데, 연두 네 팔로는 안 닿을 것 같지만 일단 얘기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아침에 나가기 전에 말한다는 게 그만 까먹었지 뭐냐."
[뎃, 알겠는 데스. 얼씬도 하지 않겠는 데스]

연두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소파 위에 드러눕듯이 앉아 TV를 켰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아침 일찍 공원이라도 갈까? 테치카 자동차도 타고, 공 던지기도 하고. 어때?"
[뎃, 좋은 데스우. 그럼 와타시는 이만 자는 데스]
"그래, 그래."
[안녕히 주무시는 데스우]

끼익-

연두는 실장석 하우스의 문을 닫고 이불을 몸에 돌돌 말았다.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데스?'

남자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연두 자신도 도중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끼가 콘페이토였던 데스우...?'

자들의 육편을 하수구에 던져 넣을 때 얼핏 보았던, 하얀 돌기가 달린 작은 부스러기.

그건 분명 콘페이토였다.

연두는 애써 훈육한 자들을 망칠까봐 아직까지 한번도 아마아마한 음식을 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콘페이토는 쥐덫의 미끼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때문에 연두는 덫을 원위치시키기 전에, 쥐덫의 미끼 거치대 위에 그날의 간식인 콘페이토 한 알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던 것이다.

...어쩌면 쥐들도 콘페이토를 좋아할지 모른다.

어쩌면 주인은 별 생각없이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달콤한 음식을 미끼로 놓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피곤한 데스. 자는 데스.'

어둡고 축축한 의심이 의식 한켠을 스멀스멀 물들이는 것을 느끼며, 연두는 길었던 하루를 뒤로 한 채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일은 공원에 가는 날이다.

***

연두는 그날 밤, 자들과 함께 공원으로 소풍을 나가는 꿈을 꾸었다.

[텟테로케~ 텟테로케~]
[뎃데로게~ 뎃데로게~]

이것이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연두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댓글 3개:

  1. 오로롱 오로롱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명작인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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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똥 참피가 닝겐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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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원에 버리고 올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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