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두 자매 1~2

 


편의점에서 담배와 과자를 사러 들렀다가ㅡ


아뿔싸,

탁아를 당해 버렸다.

살고있는곳은 독신자 전용의 원룸으로 건물주는 그다지 호락호락 하지 않은 성격이라,애완동물 사육은 일체 금지시켰다.

나 역시 실장석을 키우는것에 큰 흥미가 없다ㅡ
하지만 다행히도 소위 말하는 분충은 아닌 녀석들 같아 보였다.

같이 사온 담배와 도시락,과자들은 그대로.
옷가지도 깨끗해보이고 배변의 흔적도 없었다.
들실장이 더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것들의 마마는 자매를 애지중지 고이 키우고 예절교육을 시킨 기색이 역력했다.
크기는 김밥 한줄정도의 길이, 노숙을 하던 들실장 치고는 포동하니 온몸에 살도 잘 올랐다.

한마리가 유독 아첨을 하며 테치테치거려서,그것들이 아직 어린 자실장임을 알게 되었다.
둘중 한마리는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고있었고, 나머지 한마리는 뒤에서 조금 더큰 자매의 옷깃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고있다.

ㅡ테치테치 테치잇!
ㅡ테..테에..

같은 어미일텐데,이토록 반응이 다르다니,

갑자기 자실장이 무어라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사두었던 스피커형 링갈이 있을텐데....


"인간씨 좋은 아침인 테치! 와타시는 마마의 장녀로 제일 튼튼하고 귀엽고 똑똑한 자인 테치!
폐는 끼치지 않으니 키워주면 좋은 테치!"

"인..인간씨..무서운테에..학대파면 어쩌는 테치이....장녀짱 와타시 무서운 테치잇ㅡ"

"미안한데 난 너희를 기를수 없어."

"에에엣!왜인테치?와타시들 피해끼치지않게 열심히 할꺼인 테치!주인님에게 절대 누가되지않는 테치!"

"와타시는 마마한테 가고픈 테치..돌아가도 좋은테치."

한마리는 시끌시끌 난리법석,한마리는 훌쩍훌쩍.
난리도 이런난리가 없다.

"우리원룸은 애완동물 금지라구, 어쩔수 없단다,
얘들아.나가는 길을 알려줄테니 어서 집에 돌아가.."

"치에엣,그..그런.."
"앗..장녀짱.."

자매 중 둘째는 창밖을 가리킨다.

"눈이 오고 있는 테치.."
"집에 돌아갈 수 없는 테치이잇! 주인님 이렇게 된 이상 제발 키워주는 테치!
와타시들 다 얼어 죽어버리는 테에에엣! 살려주는 테치.."

둘은 비명을 지르며 매달린다.

장녀는 무릎꿇고 두손을 모아 간청하고
무심하던 차녀도 남자의 바짓단을 꼬옥 붙잡는다.

남자는 난처해졌다..어째야하나.
남자는 커텐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금방그칠 눈과 비는 아닌 듯했다. 먼 곳 에서부터 어둠이 몰려오고 하늘이 험상궂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발밑의 두자실장은 패닉상태였다.
이런 추위와 눈,비.
분명 죽어버리고 만다고 직감한 모양 이었다.

두 마리는 슬쩍 남자의 바짓단을 붙들다가, 남자의 눈과 마주치자 황급히 손을 놓아버리고,당황한 기색으로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은다.


"살려주는 테치!제발 도와주는 테치!
이대로라면 우리 둘은 죽어버리는 테치!아래 여동생들은 이미 다 죽은 테치!
우리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마쨩이 간신히 탁아해준 테치!"

"사육실장이 아니어도 제발 잘 곳이라도 마련해주면 좋은테치.."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테에엥 테에엥 울고있다.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곤란한데...까다로운 주인영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대로 이 녀석들을 바깥으로 보냈다가는 바로 얼어붙은 바람에 휩쓸려 죽어버릴게 분명했다. 거센 눈보라는 추위보다 큰 문제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두마리는 눈을 반짝거리며 남자를 바라본다.

"난 너희들을 키워줄 수 없다. 사육시켜 줄 수도 없고."

다시 절망의 기색이 깃든다. 입술을 꼭 물고 눈물이 그렁 해진상태로 두마리는 서로를 꼬옥 껴안는다.

"다른것 보다도 이 원룸은 애완동물 금지거든. 아마 이 건물의 모든 방이 다 그럴꺼다..하지만,
바퀴벌레나 쥐처럼, 몰래 들어와서 사는 것은,...
거기다 다른 사람을 보면 도망가고 내 눈에도 뜨이지 않는다면, 아마 추위가 가실때까지 이건물에서 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살아남는 것은 너희들의 재량이 되지 않겠니.
어쨌든 공원보다는 훨씬 여기의 환경이 좋으니까 말이지.."

두마리는 얼핏 이해한 듯도 해보였다.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본다.

"난 사육실장은 키우지 않아. 밥도 목욕도 잠자리도 줄 수 없지. 하지만, 주어진 것을 너희들이 내 눈에 뜨이지 않고 거슬리지 않게 뒷 처리를 제대로 하면서 이용한다면,굳이 구제 따위를 할 생각은 없다..공원에서 사는 것처럼 말이야.
추위가 가실 때 까지라면 눈감아줄 수 도있지.
하지만 말이다.."


빙글ㅡ

남자는 의자를 돌려 둘을 바라본다.

"분충 짓이나 어설픈 사육실장 흉내는 용서 못한다.
스스로의 처지를 알고 숨죽여 산다면 공존 할순 있겠지만 거처를 더럽힌다던가 음식을 강요하다던가 아첨질을 하며 인간을 노예로 얕보는 행위 따윈 절대 용납치 않아.바로 창밖으로 던져 버릴꺼야."


두 마리는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주억인다.
둘 중 언니는 조금 아쉬운 얼굴, 동생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듯 후련한 얼굴이었다.

"감사한 테치. 공원에서 처럼 어떻게든 우리가 살길은 찾는 테치..식사도 알아서 하는 테치."

"테엣..하지만..!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찾는 테치?
조금은 도와주면 좋은 테치..
와타시는 분명 좋은 사육 실장이 될 수 있다고 얘기들은 테치..어떻게든 안 되는 테에츄우?"

"응. 안된다."


입이 삐쭉거리며 언니의 눈에 눈물이 찬다.
동생은 어깨를 끌어안으며 죽지 않은것 만으로도 다행이라 속삭이고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눈에도 뜨이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바로 죽는다고 생각해야 할 꺼야. 여기 건물의 모든 사람은 다 학대파라 생각하면 된단다, 머리카락이나 팔 한두개 따윈 우습지."

테잇ㅡ!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남자는 도망가는 둘을 그대로 외면하고는 컴퓨터의 작업에 매달렸다.

밤을 새워 매달린 작업이 끝이 났다. 남자는 저장을 한 뒤 회사에 1차 편집본을 전송하였다.
그것이 끝나고 나니 무려 아침 여섯시 였다. 도대체 얼마간이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기지개를 한번 켜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시간은 좀 지났지만 아까 사온 김밥도 라면과 함께라면 그럭저럭 허기는 면하게 해줄 것이다.



방안에 얼큰하고 매운 양념의 냄새가 퍼진다.
식탁에 식사를 차리고 한입 뜨려는 순간. 식탁밑, 반대편의 의자 다리뒤에서 몸을 감추고 침을 질질 떨어트리며 라면을 바라보는 두 마리의 자실장을 발견했다.

한동안 굶었을텐데, 잘도 견디고 있구나, 생각하며 라면을 무심히 입속에 넣는다.

언니쪽과 동생쪽모두 처음 맡아본 인간음식의 냄새에 얼이 빠진 듯 점점 자신들도 모르게 남자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면을 다 먹어갈때쯤 되자 언니 자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바지를 살짝 그러모아 쥐면서 나머지 한손으로는 필사적인 아첨을 한다. 두 눈엔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테에..인..인간님, 조금..아주조금만..줄...수없는..테치?
와타시들은 며칠..내내 한 번도 제대로 못 먹은..테치..조금 불쌍히 여겨주면 감사한.....테치.
아주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테엑!!"

이미 식사를 다 끝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반동에 언니 자실장은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남자는 다시 한번 실수인척 하며 자실장을 세게 걷어찼다.

반대쪽 벽에 가서 부딪힌다. 벽에 작은 적록의 얼룩이 생긴다.
동생 자실장은 테뺘앗 비명을 질렀다.

모른 척 다시 컴퓨터로 가서 앉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언니 자실장은 동생의 부축을 받아 도망간다.

죽을만큼 심한상처는 아니지만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녹색체액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두 마리는 방의 구석으로 숨는다.




옷장안쪽의 작은 공간...
하지만 남자가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두마리는 알지 못한다.

문을 닫을 수 있으며, 밖과 단절된 어두운 공간-마치 골판지같은-은 두 자매에게 포근함과 아늑함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두 마리는 방구석의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들과 크리넥스 몇 장을 이용해 서툴게 둥지를 만들어 본다.마마가 만들어놓은 둥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작은 손으로 테챠테챠 둘의 보금자리를 쌓아올린다.


두 마리는 감격했다.

골판지상자와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잠자리!
이리 누워보고 저리 누워보고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두 마리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도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집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인기척이 사라진다.
둘은 한동안 숨을 죽였지만, 피할 수 없는 굶주림에 직면하고는 조심성이 많은 동생이 먼저 옷장 밖으로 나왔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발끝을 세워서 걷다가, 동생은 남자가 흘린 듯 해 보이는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발견했다. 전리품을 가지고 조심히 집으로 돌아가다가 음식냄새에 발길이 향한다.

뚜껑이 없는 쓰레기통 안에는 먹다 남은 식빵조각과 말라빠진 방울토마토가 있었다.
동생은 언니를 불러 주변을 살피며 재빨리 그것들을 옷장으로 옮겼다.

처음 맛보는 제대로 된 인간음식의 황홀한 맛!
공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큼한 열매!
영양가 높은 탄수화물의 깊고 진한 맛!!!!

자실장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복감을 느끼며 남은 조각하나까지 모조리 핥아먹었다.




"똥이 나오는 테치.."
"나도 마찬가지인 테치, 어쩌면 좋은 테치?"

아직도 남자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듯했다.

둘의 마마는 예의범절에는 무척엄격한 편이어서, 허락하지 않은 장소에 배변을 하면 친실장으로써는 보기 드물게 매까지 드는 현명한 마마였다.

둘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방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바깥 베란다 근처의 화분더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땅인 테치."

수풀이 자라는 땅을 파서,변을 본 후 다시 흙을 덮는다.
혹은 물이 있는 장소에 가서 변은 본 후 물을 뿌려 냄새를 지운다. 이것이 친실장 에게서 배운, 간단하고도 커다란,
‘생존방법’이었다.

"저기는 물인 테치, 어떻게 하면 좋은 테치.."

동생자실장이 물 냄새를 맡고 화장실을 가리켰다.
둘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화장실과 땅이 보이는 화분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화장실을 택한다.
목도 말라 일석이조인 듯 해보였다.
금방이라도 터져나올듯한 엉덩이를 손으로 꼭 막고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 화장실을 둘러본다.
바닥에는 작은 대야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자실장들 에게는 마치 호화로운 목욕탕처럼 보였다.


"대단한 테치! 호화로운 테치! 목욕도 할 수 있는 테치!"
"테에..물이 찬 테칫,얼어 죽을것같은 테챠아.. 목욕은 무리인 테치.."

두 마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빨리 화장실 바닥에 진초록의 냄새나는 변을 한가득 보았다.

변을 바라본다. 마마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둘은 처리방법을 고민하다가, 대야의 물을 흘리기로 한다.


오른쪽 왼쪽 균형을 잘 맞추어ㅡ

"테치ㅡ!!테치ㅡ!!"

자매는 구령에 맞추어 조심히 물을 흘려 내보냈다.
그러나 여린 자실장 두 마리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대야의 무게에 못 이겨 균형은 깨지고, 대야는 순식간에 기울어져, 시린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테에에에에에에에!!!!!!!"
"추운테치,추운테치!!!얼어 죽어버리는 테치,죽어버리는 테에에에!"


실내라 해도 아직 난방을 틀지 않았기에
얼음같이 시린 차가운 물과 온도는 자실장들의 몸을 사정없이 유린한다.

많은 양의 물로 인해 둘의 변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지만 젖은 옷과 몸이 문제였다.
둘은 오들오들떨며 옷을 벗었다. 조그만 팬티마저도...

하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부끄러운 곳을 옷과 손으로 가리며 옷장 속으로 향한다.

옷장 안은 바깥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추위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벌거벗은 채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돌아온 남자는 화장실을 보며 조금 감탄하고 있었다.
똑똑한 친실장이 기른 듯, 두 마리는 화장실을 배변장소로 택했다.
옷장 속에서 빵콘을 한다던가 집에 그리하여 지독한 냄새가 풍기게 한다던가 하는일도 없었다.

한술 더 떠 대야의 물을 이용해 변의 흔적을 지우기까지 한 것이다. 훈련받지 않은 들의 자실장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경외심까지 생길정도였다.

남자는 옷장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물에 젖은 두마리는 추위에 온몸을 떨며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었다.
주변에는 물에 젖은 옷이 모아져 있었는데 희미하게 실장대변의 냄새가 났다. 남자는 페브리즈를 가지고와 주변이 오염되지 않도록 젖은 옷 위에 두어 번 뿌린다.

두 마리는 온몸을 서로 밀착한 상태로 추위에 떨며, 정신을 잃은듯 잠에 빠져 있었다.


남자에게도 약간의 동정심이 밀려왔다.
그는 옷장과 캐비넷 안을 뒤져 무늬가 이상해서 사용하지 못했던 손수건을 두어 장 찾아낸다. 남자는 조심히 손수건을 둘의 몸 위에 덮어두었다.
두 마리의 잔뜩 찡그렸던 얼굴이 금세 편안해지고, 얼굴이 발개지며 새근새근 규칙적인 소리를 낸다.

남자는 옷장 문을 닫았다.
실장석을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자꾸 신경쓰이게 하는 녀석들이었다. 분충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예의범절을 아는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그렇지만 원룸에서 쫓겨날 수는 없다. 남자는 그저 이대로 두고 볼 생각이었다. 손수건이나 페브리즈따윈 변덕에 가까운것이다. 아마도 날씨가 좋아진다면, 먹을것이 없는 남자의 집을떠나 다시 친실장 에게로 돌아갈 것을 예상했다...

두 자매는 포근함과 만복감에 한참을 잠들어 있다가 저녁이 넘어가고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실컷 잔 테치..테에?차녀쨩, 차녀쨩, 우리 몸에 뭔가 덮인 테치.춥지 않아 행복한 테치!"

"테칫...이건 아무래도 이방 인간님의 물건 같아 보이는 테치..내가 주워온 하얀 이불과는 조금 다른테치"

"대단한 테치! 따뜻한 테치!
아주아주 예쁜 무늬가 있는 테치!찢어지지도 않는 테치!"

"정말인 테치..이런 예쁜 옷은 태어나서 본적도 없는 테치.."


두마리는 감격에 겨워 손수건에 얼굴을 비비고 파고들어 온몸을 휘감고 요란을 떨어댔다.
언니 자실장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손수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본다.

"테에..혹시 이게 사육실장의 옷인 테치?인간님이 키워주는 테치?
매일매일 맛난음식 먹을수 있는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인간님이 주고 간것 테치?"

"테이,그건 아닌것같은 테치.이건 그냥 큰 이불 같아 보이는 테치.
사육자실장은 분홍색 레이스옷에 하얀리본 하고 있었던 테치..이것과 모습이 다른 테치.
그리고 그때 인간님이 절대 키울수 없다 말한 테치, 장녀짱 기억나지 않는 테챠아?"

"와타시는 차녀짱처럼 똑똑하지 않은 테치..
하지만 누구보다 귀엽고 활기차며 사랑스러운 자라고 마마쨩이 매일매일 얘기했던 테칫!♡"

"테에...이것으로 뭔가 할 수 있으면 좋은 테치.
지금은 조금 춥고 부끄러운 테치. 아직도 옷이 마르지 않은 테치."

나름 솜씨가 좋은 동생은 이리저리 천을 묶고 이빨로 잘라내어 손수건을 몸에 걸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괴이한 무늬나, 그에 못지않은 실장석의 솜씨로 해괴한 악취미의 원피스가 두벌 만들어졌지만, 두마리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른 실장석과 다른 엄청나게 아름다운 옷을 자신들의 힘으로 손에 넣고 만 것이다!

특히나 인간님의 하사품, 언니에게는 사육실장이 머지 않은것 처럼 느껴졌다.


"이걸 입고 인간님께 가면 너무 예뻐서 길러주지 않을까 궁금한 테치.
와타시가 사육실장의 자태를 갖추면..기르는 테치? 기르면 좋은 테치."

"지난번처럼 맞지 않으면 다행 테치."

언니는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젓는다.




시시때때로 배는 고파져온다.

어제와 같이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조금 찾아냈다. 그러나 어제보다 훨씬 많이 상해 있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테엣, 이걸로는 역부족 테치. 귤껍질뿐 테치.맛있지만 둘이 먹기 너무 적은 테치.
배고픈 테칫,배고픈 테치.
깡말라 귀엽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는 테치."

"...도대체 장녀짱은 그런 애기를 누구에게 들은 테치? 어쨌든 조금 더 힘내보는 테치."


그때 멀리서 사각사각..
둘의 귀에, 작지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언니는 쉿,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사사사삭!
사사사삭!
사각사각 사사사삭!


자실장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퍼진다. 실룩이는 입가를 주체할 수가 없다.


"..언니짱 여기에도 있는 테치. 인간님의 집에도 가득가득 테치! 신나는 테챠!"
"맞는것 같은 테치. 맛있는 소리가 나는 테치..이건 아마도.."


사사사삭!

모습을 숨긴 둘에게 익숙한 까만 물체가 스쳐지나간다.


"바퀴벌레 쨩테치! 너무 좋아 테츄우~~♡!!"

언니는 공원에서도 온갖 벌레들을 잘 잡아서 마마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느린벌레, 빠른벌레, 큰벌레, 작은벌레.
종류는 중요치 않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까맣고, 크고 아름답고 재빠른 '바퀴벌레쨩'이었던 것이다.


언니는 어깨춤을 추며 냉장고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고, 뒤이어 곧바로 손가락 반 정도 크기의 거대한 바퀴벌레를 몇 마리나 잡아왔다.
오늘 저녁은 해결이다. 동생에게 오래간만에 면이 선다.


"냉장고 뒤에 가득인 테치. 이제 식량걱정 없는 테치치..,"

동생은 조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인간의 집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리라.


"..그렇게나 많으면..걱정인 테치.
인간님이 먹으려고 모아놓은 것 아닌 테치?
우리가 손대버려서 화나면 어쩌는 테치..아마도 여기 바퀴벌레쨩들은 인간님의 사육바퀴 벌레쨩인지도 모르는 테치..
아마도 세레브 바퀴쨩테치.."


두 마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언니는 그냥 모두다 먹어버리자ㅡ를 주장 하였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윤기 나는 통통한 바퀴벌레쨩-

그냥 방치해 뒀을리가 없었다. 인간님도 이 쌉쌀하고 오독오독 맛있는 바퀴벌레쨩을 좋아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요전번에 받았던 예쁜 옷에의 보답ㅡ
자신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생은 나름의 해답을 찾아낸다.

동생과 언니는 식탁에 기를 쓰고 올라가, 크리넥스 한장을 뽑아 테이블 위에 깔고 제일 윤기나고 커다란,알배기 바퀴벌레쨩 한마리를 올려두었다.
세팅을 하는 두마리의 입에서는 침이 질질질.
크리넥스에 점점이 작은 물자욱을 만들어놓는다.


"..이제 된 테치. 인간님이 좋아하면 좋을것 같은 테치. 맛있게 먹어주면 좋은 테칫.."

"내려가는 테치? 차녀쨩, 그런데 어떻게 내려가는 테치?"

"테에엣?"


내려가는 일에 대한 것은 똑똑한 동생도 간과한 것이었다.
둘은 올라올때와는 다르게 보이는 식탁의 엄청난 높이에 당황할 뿐이었다.
바닥까지는 아무래도 닿을 방도가 없었다. 잘못 떨어졌다간 바로 팔다리가 부러져 버리리라.

둘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짜내다가, 절묘한 방법을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옷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옷으로 끈을 만들어 하나가 붙잡고 내려가고, 하나가 잡아주고.

우선 하나라도 내려간 후에는 인간님의 옷가지나 이불 같은 부드럽고 폭신한것을 깔아놓고 뛰어내려 충격을 감소케 한다.
이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누가 내려갈지 고민하다가, 자매애에 가득 찬 동생이 언니쨩이 떨어져 죽어버릴까 걱정스러워 먼저 총대를 매기로 한다.


"조심히 내려가는 테치...발밑 잘보는 테치."

"걱정없는 테치, 잘 잡아주는 테치ㅡ"

동생은 언니를 믿고 의자를 향해 뛰어내렸다.
의자로 뛰어내린후, 의자 다리를 이용해 바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테에엑!? 짧은 테치 닿지 않는 테치!!!!의자가 아닌 테치,잘못 뛰어내린 테챠아아아!!"


동생이 뛰어내린 방향이 잘못된 것이었다. 의자로 정확히 뛰어내렸어야 하는데, 각도를 조금 틀려, 허공에 매달리게 되었다.


"돕는 테치, 돕는 테치 ! 걱정하지 않는 테치!
내가 다시 끌어올리는 테치! 와타시는 힘이 아주 센 테치!"

언니는 대롱대롱 매달린 동생을 향해 손을 내민다.

부족하다. 조금 더 내밀어본다.

닿을 듯 말듯 둘의 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찌이이익!


손수건의 무게가 자실장을 이기지 못하고 툭 끊어진다.


떨어지려는 찰나, 동생의 손은 순간 허공을 휘젓는가 싶더니만, 늘어져 있는 언니의 머리가락 한쪽을 간신히 붙잡았다.


"테에에에엑? 이건 머리카락인 테치, 소중한 머리인 테치.!
아픈 테치! 놓아주는 테치! 떨어져 나가는 테치!"

"테챠!테챠!테치!테치!"



동생은 이미 죽음의 공포로 패닉이라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투두둑,


작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둘은 결국 식탁위에서 함께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둘이 함께여서 충격은 덜했지만, 온몸 여기저기 부러지고 찢어져 적록의 체액이 흐르고 있었다.
장녀는 차녀의 위에 떨어져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몸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상태를 확인한 후, 깔려있는 동생의 안위를 걱정해 그에게 다가간다.


"차녀짱 살아있는 테치? 죽지 않은 테치?
와타시 아프지만은 죽지는 않은 테치.."


등을 돌린 차녀짱은 묵묵부답이다.

작은 어깨만 조금 흔들릴뿐, 대답이 없었다.

걱정이 된 장녀는 차녀를 바라본다.

차녀는 소리도 없이 큰 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크게 다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한 장녀는 짐짓 걱정이 되었다. 장녀는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차녀를 위로한다.


"죽지 않은 테치, 다행인 테치..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너무아프면 내가 업어줄 수 있는 테치...."

"장녀짱..정말..미안한..테치..텟슨."

"무슨 일인 테치?"


말없이 손을 내민 차녀의 손바닥에는,
장녀의 뒷머리 한 무더기가 들려져 있었다.


“그..그것 혹시 와타시의 머리카락인..테..챠..아??”

“미안한테치!!죄송한 테치!!잘못인 테치!!!!실수했던 것 테치!!!!”


차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쿵쿵 바닥에 박는다.

머리카락은 옷보다도 소중한것하며 실장석들 자신에게는 위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옷이야 사육실장이 되면 새로운 것을 받는 운좋은 녀석들도 있다 치지만 머리카락은..
한번 빠지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죽을때까지.



마마쨩은 장녀짱을 제일 귀여워 하였다.

차녀처럼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벌레를 잘 잡아 가족의 생존에 항상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나 자매중 가장 귀여운 얼굴에...
거기다 더해, 연갈색의 반짝반짝 빛나는 풍성한 머리카락에 자매들과 마마는 항상 넋을 잃었었다.


-장녀쨩이 최고인 테치!예쁜 언니쨩 테치!!
-벌레도 이렇게 많~이 잡아온 렛츄우-♡대단한 언니쨩 렛치!예쁜 장녀쨩 정말 대단한 레챠아!!
-와타시는 장녀가 정말 대견한 데스.이렇게도 쓸모있고 아름다운 자인 데스우..
-세레브 실장!
-세레브실장 테치!
-맞는 레츄!!세레브실장!!장녀쨩은 꼭 세레브실장이 될 수 있는 렛치!
-너는 꼭 좋은 사육실장이 되어 주인의 사랑을 듬뿍-받는 세레브 실장이 될 꺼인 데스우.
-세레브!
-세레브!
-....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엥!!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장녀는 한쪽만 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들고 적록의 눈물을 펑펑 흘려가며 오열하였다.

살점이 찢겨 피가 흘렀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흔들리는 한쪽의 머리카락이 여전히 보드랍고 풍성하여 더욱 애달팠다.


차녀는 계속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차녀의 머리에서도 피가 번져간다. 바닥에 동그란 무늬를 만들며 사죄는 상처를 만든다.
빠직, 하고 작은 두개골에 금이 가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미안한테치,잘못인 테치..어쩌면 좋을까 테챠아..”

차녀는 무언가 생각이 든듯 고개를 번쩍들고 장녀를 바라본다. 차녀의 입술은 파래져서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테..갚는 테치.”

“테?”

“와타시도 머리카락으로 갚는 테치.와타시도 머리카락을 뜯는 테챠아!!!”


차녀는 눈을 꼭 감고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붙든다. 손 옆으로 한두올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차녀가 힘을 더 주어 머리카락을 뜯어내려 한 그때-


“...그만두는 테치..”

“...장녀쨩?”

“차녀의..머리카락이 뜯어진다고 내 머리가 다시 나는것은 아닌테치.
와..와타시는..괘..괜찮은 테챠아.
차녀는 와타시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여동생 텟치. 와타시는 차녀를 아끼는 테치이..
머..머리카락은 괜찮은 테치..차녀..
그러지 마는 테치...
치에엥,치에에에엥..“

“장녀..쨩....”

두 마리는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린다. 하늘아래 남은 가족은 단 둘 뿐. 장녀에게는 마마를 대신해 차녀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항상 자신보다 영리하여 도움을 많이 주었던 차녀이지만, 그래도 차녀는 장녀에게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언니에게선 모성애에 가까운 형제애가 솟아올랐다. 장녀는 다시한번 차녀의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잤다. 두 마리는 몇군데 찢기고 부서진 충격에도 식탁밑을 깨끗이 정리하고 자신들의 핏방울까지도 ‘하얀이불조각’으로 닦았다.
둘은 안으로 따끈따끈한 바퀴벌레쨩을 가지고 들어와 호호 불며 열심히 먹었다. 간만의 만복과 인간님이 선물하신, 옷감의 기분좋은 따뜻함에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테..차녀쨩.”

옷장안에서 아침도 밤도 없이, 배가 고프면 일어나고 배가 부르면 잠이 든다. 다시금 약간의 허기를 느끼며 장녀짱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테에에?와타시의 머리카락이..하나도 없는 테치이!”

장녀짱은 테치테치 난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면 항상 보여지는 코코아빛 머리카락이, 한쪽만 남아 더욱더 귀해진 머리카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바닥에는 빠진 머리카락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지도 않은데,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장녀언니쨩 일어난 테치? 와타시는 잠시 변을 보고 온 테치..테에?왜 우는 테치?”

“와타시의 머리카락이..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없어진 테치!테에에에엥!테에에에엥!
도망간 테치! 찾아주는 테치. 와타시는 대머리인 테치!“


차녀는 테치치, 하고 살폿 웃는다. 입을 삐죽거리며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장녀쨩이 차녀를 째려본다.


“왜 웃는 테치!”

“와타시가..언니쨩이 자는동안 예쁘게 해준 텟치.”

“테에?”


차녀는 품 안에서 작은 티스푼을 꺼낸다.

“인간님이 얼굴을 보는 동그라미 테치. 이걸로 언니쨩 얼굴 볼수 있는 테치.”

“테치?”

장녀는 티스푼을 통해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와타시인 테치.아직 귀여운 얼굴 텟치!!!!테에?이것 무엇인 테치?”

“공원에서 본 작은 인간님이 머리에 달고 있었던것 테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을 서로서로 묶어서 집주인 인간님이 하사하신 옷의 조각으로 리본 만들어 놓은 테치.”


그제서야 장녀의 눈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조금 서툴고 어설픈 솜씨지만 머리카락은 확실히 여자애들의 댕기 모양으로 땋아져 있었다.
손수건을 잘라서 리본까지 만들어, 마치 사육실장이 머리에 잔뜩 멋을 낸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머리카락이 한쪽밖에 없어 풍성하게 흔들리진 않아도 여자 인간님들의 귀여운 헤어스타일과 같은 모양이 장녀쨩의 마음에 쏙 들었다.


“어머나테치! 대단한 테치! 이것은 세레브실장의 머리모양인 텟치!!
예쁜테츄우-!!!그런데 차녀쨩, 왜 너는 머리를 묶지 않는 테치?“

차녀짱은 쓸쓸히 고개를 젓는다.

“이것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머리카락 텟치..와타시도 하고 싶지만..”

차녀는 물끄러미 장녀를 바라본다.
장녀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절대절대 무리테치. 와타시는 그런것 묶지 못하는 테치.”


예쁜 장녀의 모습에 둘은 마음이 풀어졌다. 바퀴벌레 다리를 하나씩 갉아먹으며 공원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마와의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바퀴벌레쨩은 아직도 냉장고 뒤에 가득가득이라 마치 장녀와 차녀가 나이가 들어 자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를 먹여살릴 수 있을것만 같았다.


-쿵!!


두 마리는 놀라,새파래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옷장속에 숨었다. 집주인 인간님이 돌아온 것이다.

“일도 많다 정말..그만두던가 해야지. 힘들어 죽겠네.”

남자는 다운 파카를 벗어던지고 그대로 쇼파에 누웠다. 쇼파의 폭신함이 남자를 잠으로 이끌었다.
그때, 남자의 눈에 뭔가 이전과 다른것이 눈에 띄었다.

식탁의 의자 모양은 조금 달라져 있고, 식탁위에는 크리넥스 티슈 한 장이 뽑혀져 접은 선까지 펴진 모양으로 놓여져 있다.
뭐지,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간 남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자가 이제껏 본 것중 가장 커다랗고 윤기나는 바퀴벌레가, 남자의 소중한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암컷 바퀴벌레인지 뽈뽈뽈 알과 비슷한 색의 새끼 바퀴벌레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는 듯도 해 보였다.

남자는 그 자리에 굳어져 ‘이것은 무엇인가’, 를 패닉에 찬 머리로 잠시 생각해 보고는 남자는 결론을 내렸다.
남자는 끔찍한 얼굴로 새끼가 튀어나오고 있는 바퀴벌레를 붙잡고, 변기에 흘려 버리면서 말한다.


“인간은 바퀴벌레따윈 먹지 않아! 바퀴벌레를 누군가 다 먹어주면 좋을텐데!!”


옷장속에, 숨어있는 자매들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난다. 인간님은 바퀴벌레쨩을 싫어한다.
거기다 누군가 먹어주면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

바퀴벌레쨩을 먹지도 않으며 세레브 실장처럼 소중히 키우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두 마리는 그저 바퀴벌레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인간님의 소중한 식량을 훔쳤다고 화를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바퀴벌레쨩을 잔뜩 먹은 오후, 남자도 집에 있지 않아 둘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벌써 집에 온지 며칠이나 흐른 것이었다. 남자는 아주 늦은 밤을 제외하면 집에는 거의 있지 않았다. 집에 와도 그저 컴퓨터만 바라보며 서류 작성에 매달릴 뿐이었다.

제출할 보고서를 끝내고 나면 곧장 잠에 빠져든다.회사에서 씻는일이 더 많아 집에서는 욕실을 이용할 때도 거의 없었다.




조금 더 추운 주말, 남자는 오래간만에 욕조에 가득 온수를 받고 목욕을 했다. 온천에서 사온 분홍빛 입욕제도 풀어넣어 피로를 풀려 한다.
회사의 일은 산더미이다. 끝나는 시간도 일정치 않다. 남자가 하는 일이란, 더럽고 힘들어 어떤 것이든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른 곳과는 비교할수 없는 연봉이 남자를 그곳에서 계속 일하게 붙들었지만,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나면 죽을만큼 힘들어진다. 거기다 보고서 작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언제나...


“후우우.”


깊고 작은 욕조에 온몸을 담갔다가 퐁 하고 일어난다.
예전에는 엄마와 함께 이런 물방울 장난을 많이 쳤었는데. 지치고 힘들어지면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제일먼저 나를 반기어 주던 작은 강아지 츄츄..
이미 나이가 들어 죽고 없지만, 본가에 돌아가면 항상 츄츄가 반기어 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고싶다.

츄츄가 죽을 때쯤엔 이미 츄츄는 남자의 소중한 가족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남자마저도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작고 앙상한 몸을 거두어 본가의 뒷마당에 묻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겨울이었는데.
츄츄는 땅속에서 추우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츄츄때문에 수의사의 길을 선택한 듯도 싶은 느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다 예전 일이다..



-...테치.
-..테에..
-텟.


웅성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김을 빼려 살짝 열어둔 유리문의 밖에서 작고 동그란 그림자가 어른어른 한다.
둘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으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눈치를 보며 한걸음씩 조용히 나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둘을 잠자코 지켜 보았다.
둘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다. 김이 서리는 욕실에 들어와 테후-테후-라며 눈을 감고 따뜻함을 즐기었다.




“따뜻한 테치!”

“마마가 이야기해준 아와아와를 할 수 있는 테챠아? 따뜻하고 편안한 테치!”

둘은 남자가 볼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변기의 옆쪽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페트병 뚜껑에 물을 담아 둘의 몸에 뿌려 문지른다.
텟치, 텟슨 하는 소리가 작게 메아리친다.

둘은 바닥에 흐른 물을 손으로 적셔서 머리카락을 문지른다. 페트병에는 물이 잘 고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물을 떠내 머리카락에 적셔 댄다.
남자가 하는것과 같은 샴푸와 린스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둘 다 스스로의 몸을 양손으로 고이 문질러 간다. 하얀 몸에서 땟국물이 묻어 나온다.

남자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욕조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며 실수인것 마냥 작은 대야 하나를 문 근처로 멀찍이 던진다.

자실장 두 마리는 테치~♬라고 두손높여 만세를 하며 대야를 받아들었다. 두마리가 신나하는 것이 남자의 눈에도 보인다.
남자는 목욕을 대충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 선다. 두 마리 자매는 변기 뒤쪽의 배수구에 대야를 뒤집어 쓰고 앉아 덜덜 떨고 있다.


‘그렇게 말했어도 크게 괴롭히지는 않을껀데.’

남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욕실을 나선다.






“테치?대호화 테치?”

“이런것은 본적 없는 테치이?”


자매는 한겨울에 느끼는 따뜻한 호화를 경험하고 있다.
둘은 대야를 발받침대 삼아 작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사용하고 간 물은 이미 많이 줄어 있어 자실장 두 마리가 앉아 어깨까지 자신들의 몸을 잠기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따뜻한 테챠아-”

“이것이 아와아와인 테칫? 기분좋은 텟치..”


둘의 몸은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둘은 물을 퍼올려 양손으로 들고 가득가득 마시다가, 몸을 씻기도 하고 자매를 바라보며 물장구도 친다.
한동안 평화롭게 욕조안을 거닐다가, 장녀는 자신의 배를 살짝 만져 본다.


“배가고픈 테치..이제 그만해도 좋은 텟츄..”

“장녀쨩 배고픈 테치이?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되는 테치? 와타시는 이런기분이 처음이라 너무 행복한 텟츄..”

“괜찮은 테치. 기다릴수 있는 텟치!”


차녀는 신이 나 욕조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차녀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온다.

“이거 뭐인 테치?”


작은 은색 고리가 달린 까만 동그라미를 바라보며 차녀가 장녀에게 묻는다. 하얀 욕조의 바닥에 그것만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으로 나가는 테치?”

“아닌테치...작은 테치. 그렇지만 ‘문’같아보이기는 하는 테치.”

“혹시..”
“??”
“세레브 바퀴쨩들의 문일지도 모르는 테츄!크기가 딱 바퀴벌레쨩들의 사이즈에 걸맞는 테치!”


장녀가 오래간만에 옳은 소리를 한다. 차녀는 그럴지도 모르겠어 라며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여는 테치!배가 고픈 테치!!바퀴벌레쨩 와삭와삭 오돌오돌 씹어먹는 텟츄우!”

“앗,,장녀쨩..!”


차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장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욕조의 마개를 열었다.
순간, 강한 압력으로 물이 빠져나갔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게뭐인 텟츄우우우우우!!!”


둘의 몸은 욕조 안에서 빙글빙글 물과 함께 휩쓸려 떠내려갈 듯 돌았다. 머리가 팽팽돌고 정신을 차릴수 없을듯이 어질어질 하다.




뿅.



순간 압력이 멈추고 물이 잠잠해졌다.

차녀는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본다.


“테치이?테챠!”

“차녀쨩..도와주는 테챠아..엉덩이가 아픈 텟치!”


장녀는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팔과 다리를 버둥거린다. 장녀의 작은 엉덩이가 배수구에 맞게 꼭 끼어버렸다.
아무리 잡아당기려고 해도 빠지지 않고 계속 계속 엉덩이쪽을 누가 빨아들이듯이 압력이 전해져 온다.


“큰일인 테치!큰일인 텟치. 어쩌면 좋은 텟치?”


차녀는 욕조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장녀 주변에 고여있는 물을 손으로 파내 욕조 밖으로 던져본다.

효과가 없다.
장녀를 힘껏 밀어도 본다.
여전히 효과가 없다.
장녀의 살을 파내다가, 다시 밀어도 넣어보지만 장녀는 아파하기만 할뿐 변화는 없었다.

점점 더 맞닿은 곳의 피부는 붉어져 간다. 피가 쏠려 멍이 든듯도 해보였다.

차녀도 장녀의 옆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었다.


“큰일난테치!점점 추워지는 텟치.어쩌는 테치?”


차녀는 집안의 남자를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인간에게 겁 없이 다가갔다가는 죽을수도 있다는것을 공원에서 몇 번이나 경험했던 것이었다.


그때,


“테,테,테,테,테프테챠테에에~~”


장녀는 얼굴이 발개지더니, 순간 황홀경에 빠진듯한 얼굴을 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뾱 하는 소리가 나며 장녀의 엉덩이가 마개에서 빠지고 장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빠진테치!빠진테치!와아!빠진테치!언니쨩 어떻게 된 텟치?”


장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차녀짱에게 손을 들어 보인다.


“똥을 싼 테치.”







남자는 욕실 밖에서 두 녀석들의 테찌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링갈을 실행하고 살짝 녀석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았다.

풋,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 수 없다.

들실장들의 본성이 나와 집을 어지럽힌다던가 분충짓을 일삼는다면 죽이지는 않아도 당장 공원에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렇지만 자매는 그럭 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공원에서의 나날들 처럼 식사를 구해 먹고-그것이 남자의 위생에 도움이 됨은 자명했다.-크리넥스 티슈 몇 개를 이용해 이불을 만들어 골판지 상자에서처럼 잠을 자고 빈 옷장안에 숨어들어가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만든다.

변의 흔적도 잘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차녀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실장석들의 반응 그 이상이었다. 아마도 녀석들이 총명하게 자신과 동거를 지속할 수 있는 큰 이유가 자매중 어린것이 유달리 똑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기묘한것을 보게 된다.


“푸..푸하하하!!!”


자실장 두 마리는 자신이 덮어주었던,무늬가 괴상한 손수건을 이용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하다못해 둘 중 한 마리는 머리카락도 땋아 작은 리본까지 곁들여 모양을 냈던 것이다.

발랄하게 거실을 깡총거리던 땋은 머리 자실장은 남자를 발견하고 멈칫 하며 인사를 하려 했는데 하트무늬의 옷을 입은 동생이 황급히 그런 언니의 옷자락을 붙잡고 질질 끌고 옷장속으로 쏙 사라진다.

목욕때문일까, 오래간만에 웃었기 때문일까.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순간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남자는 저녁을 준비하였다. 스스로 집에서 밥을 해먹는일이 거의 없는 남자는 항상 식사를 주변의 상가나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포장해와 집에서 먹었었는데, 오늘은 남자에게도 특식이었다.그만큼 심신이 지쳐있기가 그지없어 무엇이든 맛있는 것을 먹고 힘을 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마루야마 특 스페셜 한정 초밥 도시락-

회사 근처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마루야마의 스페셜 초밥이다. 오늘은 업무를 조금 일찍 끝마쳤기에 다행히 하나를 사올 수 있었다.
네모난 뚜껑을 열어본다. 광어가 몇점, 참치가 몇점, 계란과 연어가 또 몇점..
여러 가지 구성의 초밥은 허기진 남자의 배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런거라도 있어야 힘내서 일할수 있겠지.’

초밥의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20피스 남짓한 스페셜 초밥은 5천엔이나 했던 것이다. 하나하나 아껴가며 먹어야 한다.


기웃기웃.
두 녀석들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항상 냉장고 뒤의 바퀴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오늘은 남자가 있어서 사냥을 나갈 수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두 마리는 숨으려 하지만 멀찍이서도 둘의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땋은 머리 자실장은 배를 만지며 침을 질질 흘린다. 점점 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앞으로 나온다. 나머지 한 마리가 테치거리며 황급히 자매를 끌고 벽 뒤편으로 돌아온다.테치,테치!라고 큰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언니에게 잔소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땋은 머리자실장은 배를 만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으로 두 눈가를 연신 훔쳐댄다.
배가 고프다,를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다.

동생은 테..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신의 손수건 원피스 안에서 작은 바퀴벌레 다리 한짝을 꺼내 자매에게 내민다. 땋은 머리 자실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작디작은 곤충의 다리를 한입에 쏙 넣어버리고 다시 꺼진 배를 문지른다...



오늘은 나도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인데, 저녀석들에게도 조금 괜찮지 않을까.

남자는 천성적으로 선한 편이었다. 집에서까지 실장석과 관계되는 일이 싫었을 뿐.

그러나 자매들의 천진하고 순진한 모습이 남자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것도 같았다.

남자는 작은 접시에 계란 초밥 두피스를 덜어, 실장석들에게로 다가간다.
둘은 파랗게 질려 도망가려 했으나 남자는 멀찍이서 둘에게 말을 건낸다.


“나도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으니까..너희들도 하루정도는 괜찮겠지.걱정말고 먹어라.“


숨어있는 자실장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접시를 놓아 둔다. 남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맥주 한캔을 딴다. 오늘은 분명히 메이저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던것 같다...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어진 행운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차녀의 입장은 완고했다. 먹으면 안된다. 인간님이 처음에 이야기했던것이 있지 않느냐.
장녀는 차녀가 이제껏 본적 없는 모습으로 화를 낸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고, 저것은 인간님이 ‘예쁜 옷’과 마찬가지로 하사하긴 물품이고,
저것을 먹지 않았을 경우에 인간님이 화를 낼 수도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이제껏 머리가 나쁘다 생각한 장녀였는데, 차녀는 장녀의 어필에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결국 차녀는 장녀의 주장에 못이겨 계란 초밥을 가지고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둘은 눈을 꼭 감고- 처음 접해보는 초밥의 맛을 온몸으로 느낀다.

계란. 보드라운 계란의 포근한 맛이 온몸을 감싼다.
조미가 된 계란 지단은 토실토실하니 실장석들의 입에 꼭 맞는다. 둘은 침과 체액을 온몸으로 흘리며 계란지단을 맛본다.
밥 역시 달콤하고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한알 한알 씹히는 밥의 감촉은 자실장들의 목구멍을 어루만지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마마쨩이 가지고 온 식어빠진 김밥에 비할비가 되지 못하였다.


“아래가 축축한 텟치.너무 맛있어서 빵콘을 할뻔 한 테치.”
“많이 먹은 텟치. 정말 맛있었던 테에..”

둘은 하나씩, 사이좋게 계란 초밥을 나누어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남자는 자매를 조금 신경쓰게 되었다.

늦어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일반적인 사육실장들처럼, 자매들은 보채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남자의 귀가를 옷장 속에서 바래올 뿐이었다.

남자는 자매를 위하여 남는 목욕탕의 물과 저녁식사의 여분을 자매들에게 제공하였다.
무엇이든 자매들에게는 감사하고 기뻤던 것, 자매들은 적록 눈물을 흘려가며 항상 감사히 음식물들을 섭취했다.

남자가 쇼파에 앉아있는 사이, 차녀의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장녀는 자신의 작은 머리를 계속 남자의 어깨에 기대려 애썼다.

셋의 평화롭고 기묘한 동거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듯 해 보였다.




남자는 여느날처럼 자매들에게 계란 후라이를 하나 더 튀겨서 작은 접시에 담아 준다.

남자가 알아듣던 말던, 자매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감사인사를 하고 계란 후라이를 사이좋게 뜯어 먹는다.
냉장고 뒤의 바퀴벌레쨩들은 이미 자매들의 뱃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린지 오래였다.


오늘의 식사는 계란 후라이, 토스트, 베이컨, 약간의 샐러드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메리칸 브랙 퍼스트 정도의 구성으로, 남자는 언제나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항상, 아침에 울리는 회사에서의 콜은 불안하기 그지 없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지 않았을 경우 뒤가 더 난감스러웠다.


“네.”

“히카루?나야~♥”


젠장. 제일 받기 싫은 전화의 주인공이었다.
저 인간은 무슨 연유로 아침 8시부터 일개 계열사 부하 직원을 콜 한 것일런지.


“네,네, 총매니저님.”

“혹시 자실장 몇 마리, 리틀 벅스에 남은 애들이 있나?”

“자실장이요..? 아마도 없을듯 합니다. 요새 수급이 조금 불안해서요..
어느정도 기준치 이상의 자실장들은 저희쪽에서도 물량이 딸리네요. 안그래도 저희 매니저님을 통해서 보충해달라고 하려 했는데.“

“큰일이다- 한 두어마리정도 사육실장이 있으면 좋겠는데.”

“‘사육실장’이요?”

“응, 그래. 어느정도 예의범절이 된 사육실장. 리틀벅스에서는 자실장을 ‘소진’하니까, 남는 애들이 없을지 몰라...이번달은 예약이 다 찼던가?”

“네..아무래도.. 시즌은 시즌이니까요.”

“그래..큰일이네.”


둘 사이에 침묵이 오간다.

“저..”

“그래, 혹시 알고 있는 곳 있어?
1월 전이라서 아무래도 본사나 계열사에도 이미 세팅을 끝낸 녀석들만 있다는것 같아-
그런 녀석들을 건드리면, 손해가 나지 않겠어,아무래도?”

“비슷한 녀석들이 둘 있긴 있는데..”

“둘?딱 좋아-!!!!”

“그런데 조금 조심스러운 녀석들이라서요, 사육실장도 아니고..혈통도 불분명 하구요. 레벨은 나쁘지 않은것 같지만..”

“히카루, 혹시 한 자매의 녀석들이야?”

“아?예..그런것 같아요. 네. 맞아요.”

“역시!!리틀벅스는 보물창고야!!!! 딱 그런 녀석들이 필요했거든.
혹시~ 성격도 많이 다른가?“

“네..”

“좋아!너무좋아!!!! 그럼 곧 데리러 갈게♥♥”



총매니저는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본인이 직접 자매들을 데리러라고 올 태세였다.


자매들은 태평하게 자신의 발치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정도의 거리가 본인들이 생각한, ‘인간님에게 폐가 되지 않으면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이제 남자는 장녀와 차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조금 숱이 적은 머리를 보기좋게 땋은것이 장녀였고, 조금 크기가 작았지만 행동이 빠릿한 개체가 차녀였다. 장녀는 언제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차녀는 그런 장녀를 질책하였지만, 두 눈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가득 일렁였다.

자매들은 그다지 손도 타지 않았다. 스스로 어떻게든 먹이를 구해 먹고, 남자가 원한 대로 집안의 벌레들을 박멸하고, 남자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배설을 한 후 뒤처리까지 말끔했다.

몇 번 잔소리를 하자 목욕후 본인들의 땟국물까지 청소하고 나올 정도로, 둘은 총명하고 눈치가 빠른 개체들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계속해서 이들을 ‘길러줄’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밤에, 집에 들어올 수 있는 날은 고작 3-4일 정도. 그것이 아닌 날은 거의 야근을 했다. 자매들을 돌봐 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사육실장들은 항상 그러했다.
주인이 없으면, 시들고 비틀어져 서서히 죽어갈, 꽃송이와도 같은 것들...



남자는 유즈루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집 주소를 다시한번 적어 내려간뒤 메시지로 전송한다.

사육실장으로 사는것이 적어도 지금 자신이 돌봐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들에게 크게 애정은 없었지만 얕은 책임감은 존재했다. 어딜 가더라도 ‘사육실장’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이곳보다는 나음이 자명했다.


남자는 아침식사를 앞에 두고 지긋이 둘을 바라본다.

오늘도 작은 계란 후라이 하나, 빵조각 하나에 만족하며 남자가 식사를 하기 전까지, 두 눈을 반짝 빛내며 기다리고 있다.
백퍼센트 자신을 신뢰하는 저 네 개의 눈동자..
손에 묻힌 피가 적지 않은데, 나는 너희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인가.





남자는 자신의 식사를 자매쪽으로 밀어 둔다.


자매는 테치?테?라며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먹어둬. 아마도 너희를 우리집에서 키우기는 앞으로도 만만치 않을것 같아..”

“테에?”

“사육실장으로 누군가 길러준다고 하니 그것보다 좋은게 있겠니..우리집은 조금은 쓸쓸해 지겠지만.”


남자는 고개를 돌려 혼자 살기는 넓은 원룸 안을 바라본다.
어차피 언젠가는 보내야 할 것들이었다. 주인영감에게 발각되면 보기좋게 쫒겨나기만 할 뿐, 다른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사육실장으로..다른 집에 가면 좋지 않을까?”

“테?와타시들이..쫒겨가는 테치?”


침묵을 지키던 차녀가 조심스레 남자에게 의견을 묻는다.
남자는 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아니.절대 그건 아니야..만약에 더 나쁜 상황으로 변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너희를 데리고 가려고 했겠지만.
너희를 사육실장으로 길러줄 사람이 있다는데..
나로써도 그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장녀가 남자의 다리에-염치불구하고-매달린다.


“테?테?테에?아닌텟치!여기서 살수 있으면 좋은 테치!
와타시들은 주인님을 사랑하는 테치! 그냥 두어주는 테치!이대로 살 수 있는 텟치!“


오로로롱-


이제껏 들린 적 없는 슬픈 울음의 목소리가 작은 방 안에 메아리친다.


남자는 이마에 손을 짚는다.

-자신은 둘을 길러줄 수 없다. 그저 이대로 방목하며 사육할 뿐. 둘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 따위도 줄 수 없고 이 집에서는 자조차 낳을 수 없다.
-둘은 어차피 성체실장이 됨과 동시에 같은 공간에는 있을 수가 없다.
-니지클럽의 사육실장은 대접이 그리 박하지 않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에 대한 마음이 다른 사육인들처럼 크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둘의 머리를 힘주어 쓰다듬는다.
처음 느껴보는 부드러운, 인간 주인님의 손길에 테..하며 자매들의 표정이 풀려 갔다.



“있잖아.”
“사육실장이 되면 이렇게 쓰다듬어 주는것 매일 받을 수 있어.”
“그뿐인줄 아니?”
“여기에서처럼 남은 밥이나 휴지조각 따위에 잠자지 않고 제대로 된 케이지에서 제대로 된 이불을 덮고도 잘 수 있고..콘페이토 같은 고급 실장 푸드들도 마음껏 먹을수 있다니까.”
“좋은 주인이 온다면 너희들을 위해 예쁜 옷 사줄지도 모르고,”
“아마도 지금처럼, 매일 혼자있게 되지도 않을꺼야. 잘 대해주겠지. 적어도 나보다는 말이야..”


자신들을 걱정해주는 히카루의 마음이 둘에게 전해진다.

장녀는 슬그머니 히카루를 붙잡은 손을 놓는다.
그의 말을 듣고 그것에 매료되어 그런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진심과 진심으로 그가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고, 제대로 좋은 주인님께 가서 잘 길
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둘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어트린다.


‘이곳도 나쁘지 않은데.
어쩌다가 나오는 특식 바퀴벌레쨩도 별미였는데.
주인님도 좋았는데.
항상 우리를 위해 남겨 주었던 욕조의 따뜻한 물..‘


작은 실장석들의 머리로, 이생각 저생각을 해보지만, 차녀는 이미 결론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님이 결정한 이상 뭐가되든 바꿀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가는테치.”

“테에?차녀쨩..”

“우리가 속상해하고 계속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인간님께 걱정만 끼치는 텟치. 뭐든 인간님이 결정한 내용이면 따르는 테치.믿는 테치.”

“,,,,”


히카루는 차녀의 볼을 간질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홍조가 물들어간다.
이녀석들이 좋은 주인님께 가면 좋겠는데.
히카루는 처음으로, 실장석들을 위해 무언가를 ‘바랬다’.




둘은 조용히 식탁에 걸터앉아 남자의 아침식사를 갉아먹어갔다.
항상 군침흘렸던 베이컨과 신선한 샐러드의 맛은 마치 종이조각과 같이 느껴진다.

이제 곧 새로운 주인님이 오신다 하였는데, 그렇지만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을것 같다.
할 수 있다면 그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딩동.

“네, 나갑니다.”

아침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는데, 두 마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을 바라본다. 히카루는 들어온 사람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자매들도 채비를 단정히 하고, 히카루를 따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신 텟치!반가운 텟치!”
“와타시들은 자매인 테치! 와타시는 차녀이고 이쪽은 장녀인 테치!”

“응,그래그래..과연, 괜찮은 녀석들이네?”


고개를 숙인 자매의 귓가에도 어쩐지 웃음기를 품은 다른 인간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녀는 조심히 고개를 들어 새로운 주인님을 바라보았다.


상냥하고, 다정해 보인다.
무서운 인간님에게 보이는 섬찟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방글방글 웃고 계신다. 마치 마마처럼..
잔뜩 긴장한 차녀의 마음이 녹아내리는것이 느껴졌다. 예전의 인간님이 ‘가면 좋은곳’이라고 이야기했으니, 그를 믿는것이다.
상처입히지 않을것을 믿는 것이었다.

장녀는 차녀의 옷자락을 꼭 붙잡는다. 끼이잉, 하며 어쩐지 아기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차녀의 뒤에 숨는다.


“..언니쨩,.왜그러는 테치?”

“와..와타시는 무서운 텟치..어쩐지 무섭고 두려운 테치.”

“무엇이 무서운 테치.새 주인님은 좋아보이는 테치. 상냥한 미소인 테치. 숨지마는 테치..”

“테에에에!!”


장녀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더더욱 차녀의 뒤로 숨어 간다. 차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장녀였다. 갑자기 새 주인님께 가기 싫어지기라도 한것일까.
벌써 모두 다 끝낸 이야기이면서, 언니는 변덕을 잘 부리는 성격이 아닌데..라며 의아함을 품는다.


“저대로 가져가면 될까? 고마워-덕분에 살았어. 딱 두 마리가 비었거든!
사랑스럽고 영리한 자매 두 마리!!은근 찾으려면 힘드네..“


“아..네, 니지클럽의 일인가요?아침부터 수고하시네요.”


“응,아닌데? 이건 내 일인데?”
“..네?”

“니지클럽의 사육실장으로 갈 녀석들은 아니라고. 그냥 개인적으로 좀 필요한 녀석들이야.”


유즈루는 미소지으며 청명한 눈빛으로 두 마리가 든 수조를 바라본다.
반짝반짝 반들거리는 눈빛에 차가운 탐욕이 비추었다.

저인간은, 저런 얼굴일때 가장 끔찍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통은.


“저..개인적으로 필요한 녀석들이라고 하시면..?”

“리틀벅스 지하에서 ‘사용’할 녀석들이지 뭐야.
니지클럽이든 리틀벅스든 요새 경기가 좋아서 딱 요만한 녀석들이 실험체로 부족했었는데, 잘됐지 뭐.
찾으려면 한참 걸렸을 텐데..덕분에 어려운 시기에 잘 구해 가네.“


히카루는 어쩐지 등 한줄기가 서늘한 것을 느끼며, 상급자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유즈루는 그런 무례를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의 온 관심은 실장석에게만 쏠려 있었다.


“그..그러니까, 사육실장이 아니라 리틀벅스 지하에서 실험체로 사용될 자실장 두 마리를 구하시는 거였어요?”

“당연하지~나를 몇 년이나 봐왔으면서 그래. 고작 사육실장 몇 마리 구하는걸로, 내가 이 아침부터 너희 집으로 움직일것 같아?
프로젝트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즉시 시작하는게 좋은데, 마땅한 녀석들이 없지 뭐야..
덕분에 한시름 덜겠네. 히카루가 아니었으면 전국 지사장들과 계열사 매니저들이 바빴을꺼야..고마워,“


“저.....저는...사육실장을 구하신다는줄 알고..”

“사육실장?그래,뭐,내 사육실장이지...걱정하지 마, 세레브급은 아니어도 상급으로 쳐서, 다음달 당신 통장에 제대로 넣어줄 테니까.
두 마리나 되니 작은 보너스정돈 되겠네?

히카루에게도 좋지?“




금액..돈..보너스..사육실장..실험체..리틀벅스.....
리틀벅스의 실험, 그곳의 끔찍한 실험체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 받는 작은 동물들!!!


...그리고 그곳에 내던져질, 자신을 믿고 있던 어린 두 자매.


당황스런 단어의 나열에 어리둥절 해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든 히카루가 유즈루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려 고개를 들고 손을 뻗쳤지만,


그와 케이지 속의 자매는 이미 자리를 떠나 버린 후였다.


마지막 장녀가 차녀에게 속삭였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인님은 바퀴벌레쨩 무서워 하시는데, 이제 누가 바퀴벌레쨩 잡아주는 텟치?
큰일인 텟치..어쩌는 테치이.."

-"장녀쨩, 새로운 주인님께 부탁하면 될것인 테치.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예전 주인님 꼭 다시 보여주실것인 테치.

믿는 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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