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꾀죄죄한 들실장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나 말했다.
"미안한데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 그 과자를 한 톨만 주신다면 감사하는데스."
들실장치고는 제법 예절을 갖춰 말하는 모습에(보통 들실장이라면 '어이 똥노예! 당장 과자를 내놓는데스!' 하겠지) 왠지 호기심이 생겨 한번 물어봤다. "왜?"
"와타시의 자가 3일째 굶고 있는데스. 와타시도 매일같이 먹이를 찾으러 다녔지만 없었던데스. 염치불구하지만 이렇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스."
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최근 음식물쓰레기 관리가 강화된 탓이겠지. 나는 손에 든 건빵 봉지를 내려다봤다.
"한 톨로 되겠어?"
"와타시는 괜찮은데스. 그것보다 자가 굶는 게 걱정인데스."
"네가 가지고 가다가 먹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들실장은 잠깐 멈칫하더니 후드를 벗는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뒷머리를 모두 뽑았다. "와타시가 인간에게 줄 가치 있는 것은 없는데스. 하지만 이 머리카락을 대신 바치는데스. 이것이 와타시의 결의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는데스."
"...그거 뽑으면 안 자라는 건 알지?"
"아는데스." 이 녀석은 꽤나 양충같다. 자기 자식을 위해 머리카락을 포기하려는건가.
"그 정도라면 주겠지만, 나도 분충에게 먹이를 주긴 싫으니까, 내가 한번 보고 판단한 다음에 줄게." 내가 일어서자 들실장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놀란다. 그리고 무릎을 꿇는다. "안되는데스! 그렇다면 과자는 필요 없는데스! 와타시의 말은 잊어주길 바라는데스우!!!"
갑작스러운 변화의 이유가 궁금하다. "분충인지 봐주겠다는데 왜?"
들실장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어차피 인간의 기준인데스. 실장석에겐 실장석의 기준이 있고, 인간에겐 인간의 기준이 있는데스. 와타시의 기준으로는 사랑스러운 자라도 인간의 기준으로는 둘도 없는 분충일 수도 있는데스. 그런데도 인간의 기준으로 와타시의 자를 심판하겠다는 것은 잔혹한데스. 그렇게 하겠다면 과자는 필요없는데스."
기준이라... 확실히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시도때도없이 새끼를 치려는 실장석은 분충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실장석의 기준으로 보면 새끼를 많이 낳는 실장석은 양충일 것이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이를 구하는 실장석도 인간의 기준으로는 분충이겠지만 실장석의 기준으로 보면 먹이를 잘 구해오는 양충일테고. 행복의 노래니 하는 것도 인간의 기준으로는 분충의 태교지만 실장석의 기준으로는 앞으로 힘든 삶을 살아갈 새끼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려는 양충 어미의 태교일 것이고.
나는 들실장에게 건빵 두 개를 쥐어줬다.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