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신데스."
퇴근하자 사육실장인 제이드(Jade)가 날 맞는다. 우리집 사육실장 제이드는 이것저것 다 할 줄 안다. 몇 세대 전에는 들실장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들에서 떠돌다가 비참하게 살다 죽은 조상에게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 필사적으로 온갖 재주를 다 배웠다고 샵에서 설명했다. 실장석의 재주라고 하면 기껏해야 실장석 자신 외에는 도저히 들어줄만한게 못 되는 노래나 한심한 동작으로 꾸물텅대는 춤밖에 없지만, 제이드는 정말 달랐다. 세상에 요리를 할 줄 아는 실장석이 얼마나 될까? 각종 가전제품을 다루는 능력은? 컴퓨터도 쓸 줄 안다. 세상에 이런 실장은 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낮 동안 집을 보며 요리 채널을 보고는 새로 배운 요리를 나한테 먹여줄 때도 있다.
"저녁 반찬은 두부조림인데스. 요즘 기운이 없어보여서 자신있는 요리를 해본데스." 확실히 난 요즘 많이 바빠서 얼굴이 핼쑥해졌다는 소릴 듣곤한다. 때문에 제이드는 '날 위해'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요리를 만든 것이다. 인간이라면 현모양처가 따로없지만, 실장석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인데 아주 똑똑한'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건 난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제이드가 만든 요리를 들었다.
"......"
"어떤데스? 간이 잘 맞는데스?"
"...역시, 대단한걸."
무심코 감탄한다. 정말 세상에 이런 실장석이 또 어디 있을까? 일부러 교육시켜도 이런 실장석은 나오지않는다. 샵에서 하는 '훈육'이란 '똥을 방바닥에 싸지 않는다' '주인을 화나게 하지 않는다' '주인이 말하면 듣는다' 정도의 지극히 당연한 것. 때문에 기계적으로 딱딱한 반응밖에 보이지않고 자신이 배운 것 이외의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는 당황해서 분충기질이 나오는 놈들도 있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런 녀석들과는 급이 다르다.
"실장석이 어디서 이런 요리를 배웠담..." 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한 입 삼킨다. 좋다.
"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닌데스." 제이드가 순간 뭔가 움찔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너같은 실장석이 또 있을까?" 하고 웃으며 내려봤더니 표정이 별로 좋지않다. "...왜그래? 어디 안좋아?" "아, 아닌데스. 그냥... 쉬고싶은데스." 제이드는 왠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내 리액션이 별로 안 좋았나? 요즘따라 왜 저러지?
요즘 제이드는 내가 칭찬할때마다 석연찮은 반응을 보이곤한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 한 가지를 칭찬하면 얼굴을 붉히며 더 노력했고, 꾸중을 들으면 고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은 칭찬을 할때마다 점점 풀이 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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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이가 없어서 그래?"
쉬는 날, 집 청소를 했다. 날 도와 빨래를 널고 있는 제이드에게 한번 물어봤다. 마침 봄이고, 제이드는 여기 온 지 2년이다. 이제 충분히 성체라고 할 만한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이드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와타시가 자를 낳으면, 주인님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는데스.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는데스. 그리고 자가 없어서 외롭진 않은데스." 실장석 주제에 다소 유창한 말을 늘어놓으며 내 걱정을 하고있다. 사실 한 두마리 정도는 더 키워도 문제는 없을 듯 한데...
그렇게 제이드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빨래는 벌써 다 널었다. 깔끔하게 비워진 세탁바구니를 보니 만족스럽다. "그럼 와타시는 바닥을 닦을테니 주인님은 창문을 닦는데스." 다음 역할 분담까지 정해준다. 이거야 원. 실장석보다 칠칠치못한 주인이라니.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유리세정제를 뿌렸다. 제이드는 봉 걸레를 가져와서 솜씨있게 방바닥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청소가 완전히 끝나고나니, 정말 이게 실장석의 솜씨인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언제나 보는 광경이지만 언제나 새로워서 칭찬의 말을 건네본다.
"잘 했어, 제이드. 역시 넌 실장석같지가 않다니까."
"데!" "...?" "데에..." "왜 그래?" "......데." 또 이상한 행동을 한다. 내가 칭찬하면 요새는 늘 이렇다. 설마 실장석 특유의 '올라간' 상태인가? 너무 칭찬을 많이 받고 올려져서 보통 칭찬으로는 만족 못하는건가? 앞으로는 좀 더 과격하게 칭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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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했어 제이드! 실장석치곤 제법이야!"
"역시 제이드! 도대체 실장석이 어디서 이런걸 배운거야?"
"제이드는 대단하다니까! 실장석이면서 말이야!"
하고 큰 목소리로 웃으며 제이드가 뭔가를 할 때마다 칭찬했다. 그런데 반응이 내 생각과 전혀 다르다.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때마다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내 손을 피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구석에 쭈그린 채 데에... 데데... 하고 약한 소리를 낸다. 뭔가 눈물도 흘리는데 확실히 기뻐서 흘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칭찬이... 제이드를 칭찬하는 행동에 혹시 문제가 있는건가? 아예 직접 물어봤다.
"왜 그래 요즘? 내가 칭찬할 때마다 싫어하고. 칭찬이 싫어?"
"...그게 아닌데스."
"그럼 왜?"
침묵을 깨고 제이드가 대답했다.
"...와타시는 왜 실장석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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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는 자신이 실장석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싫어하고 있었다. 평소 집을 보며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제이드는 결국 인간들도 보기 어려워하는 철학 강연 같은것도 열심히 본 모양이다. 나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가, 삶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운운... 불행히도 제이드는 너무 많은 걸 알고, 많은 걸 할 줄 알았다. 결국 철학적 고찰 끝에,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짐승'이라는 낙인을 떼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실장인이라는 것도 있지..."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실장석이 어떤 고치를 만들어 인간이 되는 인화(人化). 정말로 인간 여자와 비슷한 형태가 된다고 한다. 거의 전설 수준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지만 혹시 몰라 제이드에게 넌지시 흘려봤다. 하지만 제이드의 대답은...
"그래봤자 인간 모습을 한 실장석인데스."
실장인이 되는 것은 실장석에게 '인간이 되고싶은 강렬한 열망'과 '인간에 대한 동경'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제이드에겐 확실히 둘 다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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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부터, 나는 제이드에게 조심스러워졌다. '실장석 주제에' '실장석치곤' '실장석이면서' 같은 말은 모두 금기. 괜히 제이드를 크게 칭찬하지도 않았다. "인간들은 서로 빨래를 할 줄 안다고 칭찬하진 않는데스." 라고 제이드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제이드를 실장석이 아니라 그냥 집에 있는 식객 정도로 여기기로 했다. 밥과 잠자리를 얻는 대신 집안일도 하고 가끔 날 도와주고 하는 식객 말이다. 다행히도 이런 전략은 잘 먹혀서, 제이드도 다시 옛날의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옛날처럼 웃으며 내 농담을 받아주거나, 같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식사를 하거나 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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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자축이라도 할 겸 돈을 털어 맥주와 치킨을 사서 집에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제이드... 치킨 먹어본 적 있던가? 한번 먹여봐야지. 하고 집 문을 여는 순간...
"생일 축하하는데스!" 하는 제이드의 요란한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거실을 장식한 색종이 장식들, 바닥에 뿌려진 반짝이, 가운데에는... 커다란 초콜릿 케익이 놓여있다. 제이드가 좋아하는 별사탕을 아낌없이 써 데코레이션한 수제 케이크라며 요란법석을 떨었다. 분명 내가 좋아할 거라고, 그리고 마음에 들 거라고 하며 권했다. 제이드는 내 생일을 기억하고, 심지어 날 위해 직접 케이크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생일을 맞아본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가족과 떨어져 살며 생일은 항상 혼자 맥주와 치킨을 마시는 날이었다. 아마 작년까지도 그랬을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나는 너무 감동해서 제이드를 껴안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대단해... 대단해... 넌 정말... 최고의..."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했다.
"...최고의 실장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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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제이드는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고, 가끔 나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뿐, 날 봐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데에' 하는 어벙한 소리만 낼 뿐이었다. 나와 신뢰관계를 회복해보려고 필사적으로 꾸민 이벤트가,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것이다. 제이드는 자신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실장석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기척이 없다. 평소엔 제이드가 방 안에서 훌쩍이는 소리나 울음소리라도 조금이나마 들렸기 때문이다. 집안의 불도 모두 꺼져있다.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 나는 얼른 거실 불을 켰다. 별 일 없다. 제이드는 어떤가 싶어 방에 들어갔더니...
...제이드는 커튼으로 목을 매단 채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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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에게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도저히 견딜 수 없기에
더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이만 세상을 떠납니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주인님을 기쁘게 할 줄 압니다.
그래봤자 나는 실장석에 불과합니다.
인간들이 더러운 벌레, 쓰레기 취급하는 짐승입니다.
나는 원망합니다.
어째서 나는 실장석의 몸으로 태어났는가
하다못해 실장석으로 태어났으면 그저 다른 들실장들처럼
자기만족으로만 살아가는 바보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내 조상은 공원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조상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줄 알고
좋은 인간에게 길러지는 내가 더 행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결국 진기한 짐승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내 운명을 저주합니다.
부디 나의 몸은 공원에 던져 들실장들의 먹이로 써 주시길."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는 제이드의 유서가 있었다. 키보드에는 제이드의 눈물자국이 떨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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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의 소원대로, 목을 매단 제이드의 시체를 공원에 놓았다.
"데스?" "데스데스우!" 하고 사방에서 나타난 실장석들이 제이드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뜯어먹으며 싸운다. 서로 밀치고, 당기고, 한때는 저 멍청이들보다 몇 배는 더 똑똑하고 빛났던 지성을 담았던 뇌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가사일에 컴퓨터 조작까지 할 수 있었던 팔은 똥국물을 마시는 더러운 주둥이로 뜯겨진다. 제이드는 결국 자신의 고통을 삶에서 해방되어 들에 사는 동족들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끝냈다.
집에 온 나는, 베란다 구석에 가묘를 만들었다. 거기에 제이드의 실장복을 잘 개어 놓고, 비문을 적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았기에 너무 빨리 떠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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