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생태계에 있어 최하위권의 위치를 자랑하는 가엾고 불쌍한 생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실장석이 죽어나간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다!
실장 배틀러!
새로운 강철의 육체를 얻은 실장석이 지금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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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이 최근 유행하는 장난감 '실장 배틀러'의 광고다. 이제 누구나 이 실장 배틀러의 카피라이트인 '새로운 강철의 육체를 얻은 실장석이 지금 일어선다!'(실제로는 플라스틱이지만) 를 외울 정도로 유명해져버린 이 장난감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실장석의 뇌와 위석을 적출해 실장 배틀러에 설치된 뇌와 위석을 넣는 자리에 끼워넣는다. 그리고 활성제를 가득 채워준다. 실장석의 생명력은 엄청나서, 뇌와 위석이 뽑혀도 죽진 않고 가사상태를 유지한다. 때문에 아무리 어린아이들의 서툰 손놀림이라도 실장석의 기관을 적출하는 건 어렵지않다. 게다가 이걸 쉽게 해주는 도구인 실장 배틀러 인스톨러(별매)도 판매되는 것이다. 실장석? 실장석이라면 밖에 나가면 널려있다.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아니면 다른 짐승을 이용한 완구라면 제작자는 미친놈으로 매도되고 제작사 역시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실장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사방에 널린게 실장석이다. 그런 것 한 두마리 쯤은 어떻게 해도 괜찮은 것이다. 심지어 실장 배틀러에 자기 사육실장을 넣고 들실장들을 파괴하는 것을 보며 즐기는 변태들도 있다고 하니 참 애호파란 것들은 알 수 없다.
그 날도 놀이터에선 실장 배틀러를 가지고 노는 꼬마들이 있었다. 새로 산 것인지, 놀이터 구석에 있는 골판지를 털어서 괜찮은 친실장 하나를 건져낸다. "데쟈아! 데구우우!!" 하고 울부짖는 친실장의 머리에 실장 배틀러 인스톨러를 씌우고 버튼을 누르자 "데짓!"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뭔가 물컹물컹한 것이 뽑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친실장은 쓰러진다. "마마아! 마마아아아앗!!" 하고 울부짖는 자실장들을 가지고 한 소년이 저글링을 한다. 익숙치 않은 손놀림으로 될 리가 없었기에 몇 분후 자실장들은 모두 땅바닥의 걸쭉한 얼룩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위석을 끼웁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배틀러의 주인은 뇌와 연결된 실장 배틀러를 만족스럽게 보면서 마지막 작업을 한다. 찰칵 하고 위석이 끼워지자 마치 호버 파일더가 들어간 마징가 Z처럼, 메칸더 맥스와 합체한 메칸더 로보처럼, 대지에 서는 건담처럼, 눈을 반짝이며 실장 배틀러가 가동하기 시작한다.
...데데에... 데이...
...여긴... 어디인... 데스우...?
새로운 시야로 보이는 시각정보를 받아들이자 혼란스러워하는 실장석. 실장 배틀러의 시야는 실장석의 것보다 훨씬 더 월등하고, 기본 시야, 광각 시야, 정밀조준의 3가지로 전환 가능한 렌즈가 장착되어 있다. "됐다!" 환호하는 주황색 셔츠 소년에게 친구들이 모여든다. "움직여?" "야 방금 움직였어! 봐봐!" 실장 배틀러에 들어간 실장석은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머리에 뭐가 씌워져서... 아픈 일을 당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왠지 살아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방금 아픈 일을 한 인간들이 있다. "데히이이이이!" 실장 배틀러는 도망가기 시작한다.
실장 배틀러에는 기본적으로 느린 보행속도를 보강하기 위해 발뒤꿈치에 글라이딩 휠이라는 물건이 장착되어있다. 실장석이 달리려고 생각하면 뇌의 신호를 받아들여 처리 후, 글라이딩 휠이 가동되어 바퀴로 주행하며 통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어린이가 빨리 달리는 정도의 속도지만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경이로운 스피드. 왠지 평소보다 속도가 빠른 것에 이상하해는 실장석. 게다가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건 도망은 가야한다는 생각에 실장석은 계속 달린다. 결국 발이 빠른 녀석에게 잡히지만 꽤 멀리 달렸다.
"네가 주인이니까 똑바로 관리해야지." "미안." 숨이 차 헐떡거리는 녀석에게 실장 배틀러의 주인이 사과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장 배틀러의 이동반경을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소년들은 놀이터에 있는 정자의 마루 위에 실장 배틀러를 올려놓는다. 여기라면 멀리 도망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안경을 쓴 소년 하나가 음흉하게 웃으며 등에 멘 가방을 연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것은 또 다른 실장 배틀러. "약속했지?"
실장 배틀러라는 이름답게 이 녀석들은 서로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장나도 금방 수리나 부품교환이 가능한 모듈식 구조(부품 별매)기에 고장나거나 파손되어도 어렵지 않게 수리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현혹하기 위해서인지 수리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덕분에 세뱃돈을 몽땅 실장 배틀러에 갖다박는 벌써부터 인생이 걱정되는 불쌍한 놈들도 다수 있다. 그는 아이들이 실장 배틀러로 싸우는 걸 느긋하게 구경해보기로 한다. 뭐 괜찮곘지... 그가 어렸을 땐 배틀러가 아니라 진짜 실장석을 마주세워놓고 싸움붙이곤 했다. 이것이 바로 기술의 진보라는 것이다.
...데에...
...무서워보이는 놈이 나온데스...
...뭐인... 데에...? 싸우는데스...?...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꼬마들이 일제히 주먹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안경 꼬마의 실장 배틀러는 '칼주먹' 파츠를 장착하고 글라이딩 휠의 출력을 보강한 근접격투타입. 오른손의 매니퓰레이터 대신 날카로운 양날검이 장착되어있다. 저렴하고 효과가 좋아 인기많은 파츠다. 주황옷 꼬마의 배틀러는 갓 만들어진거라 바닐라 타입. 실장 배틀러의 기본 무장인 스프링 펀치(스프링식으로 팔이 단거리 뻗어나왔다 들어가는 펀치 무기)와 시야를 뺏기위한 견제용 무기인 고휘도 라이트밖에 없다. 치사하네. 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주황옷 꼬마는 그래도 투지를 불태우며 "가라! 1호(실장 배틀러에 붙인 이름 같다)!" 하고 외쳤지만 정작 배틀러 본체는 별 의욕이 없어보인다.
...무서운데스...
...무서워...무서운데스...어째서 싸우라고 하는데스...?
...무서...데갸아...!
순식간에 칼주먹이 1호의 어깨를 내려친다. 흔들리는 충격에 잠시 놀라는 1호. 하지만... 고통은 없다. 실장 배틀러가 통각까지 전해주진 않는 것이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면 두려움도 없다. 갑자기 1호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쩌면 와타시는... 무적이 된 데스우?" 칼주먹은 약간 뒤로 빠져 상황을 가늠한다. 1호는 시야에 적응하려 애쓴다. 찰칵,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1호의 시야가 광각시야에서 정밀조준으로, 정밀조준에서 기본시야로 바뀐다. 이제서야 1호는 상황을 이해한다. 뭔진 모르지만 착한 인간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앞에 있는 똥벌레를 격파하라는 것 같다.
"데샤아아아!" 소리는 나지 않지만 1호가 기합을 넣고 돌진한다. 배틀러는 서로 부딪혀 얽힌다. 1호는 손을 뻗어본다. 어쩐지 자신의 손이 눈 앞의 똥벌레의 것과 같은 모양인 걸 알아챈다. 그리고 이 똥벌레를 날려버리겠다고 생각한 순간 "예이!!!!!" 주황옷 꼬마가 환호성을 지른다. 스프링 펀치로 칼주먹을 날려버린 1호. 뭔진 모르지만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공격을 멈추지 않고 달려든다. 2번째 공격을 칼주먹은 피한다. 이제는 긴장감이 흐른다. 서로의 공격을 관찰하고 대비하기 위해 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돌고 있는 두 실장 배틀러.
어느샌가 남자도 흥미진진해져서 가까이 와 보고있다. 꼬마들은 그런 아저씨에게 신경쓰지 않고 싸움에만 집중한다. "죽여! 죽여버려!" 안경 꼬마가 외치자 칼주먹이 행동을 개시한다. 칼을 뻗어 1호를 찌른다. 동체에 깊숙히 찔러들어간다. '데보오오오오옥!' 하고 놀라운 광경에 1호는 반사적으로 비명지른다. 그렇지만 비명지르지 않는다. 비명을 질러야 하지만 입이 없기 때문이다. 칼주먹을 떼어내기 위해 무작정 버둥거린다. 왼팔 오른팔로 번갈아가며 스프링 펀치를 날려댄다. 결국 칼주먹은 유효타보다 자신이 입은 데미지가 더 축적되기 전에 칼을 뽑아내고 멀리 떨어진다. 1호는 놓치지 않고 달려가 이번엔 칼주먹의 다리를 노린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스프링 펀치. 그리고 관절이 부서지며 이상한 자세로 무너지는 칼주먹. "야!!!!" 안경 꼬마가 비명을 지른다. "야 그만해! 저게 얼마짜린데!" 당장 주황옷에게 그만두라고 소리지르지만 다른 구경꾼들이 안경 꼬마를 밀쳐버린다. 이 흥미진진한 싸움이 누군가에 의해 멈추길 바라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안경 꼬마 말고는 없었다.
칼주먹도 혼신의 반격을 가했다. 기습적으로 칼을 뻗어 1호를 찌른다. 결정타! 위석이 있는 곳을 찔러 하마터면 위석이 깨질 뻔했다. 주변을 둘러싼 관중들이 이 위험한 일격에 환호한다. 1호는 뭔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받지만 이내 괜찮다는 것에 안심한다. 칼주먹이 분한 듯 손을 턴다. 아마도 이 다음이 서로의 마지막 일격이 될 것이다. 다시 둘은 대치 상태로 들어가 마주본 채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돈다. 그 때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장애물을 놓자는 것이다. 소년들은 동의해 몇 명이 재빨리 돌, 골판지 상자의 잔해 따위를 주워서 정자 위에 놓았다. 순식간에 은엄폐물이 생겼다.
1호는 커다란 골판지 벽 뒤에 숨어 상대의 행동을 읽으려했다. 상대는 뾰족한 아파아파를 가졌다. 뭘 해도 적어도 자신보단 강하다. 하지만 자신은 무적이다. 따라서 두렵지 않다. 그러므로 칼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1호는 슬쩍 골판지 너머를 본다. 칼주먹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디서 올 지 모른다. 1호는 광각 시야로 전환하고 주변을 세심히 둘러본다. 잠깐, 저편의 골판지 벽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1호는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재빠르게 달려가 골판지를 스프링 펀치로 내려치지만... 골판지 때리는 소리가 나며 골판지에 왼주먹이 박힌다. 그 뒤로 갑자기 나타난 칼주먹! 분명 데프프하고 웃고 있을 것이다. 칼주먹은 이것을 노리고 엄폐물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며 돌을 던져 1호를 유인한 것이다. 실장석이라곤 생각도 할 수 없는 고차원 전략이다.
1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주황옷 소년은 양 주먹을 쥐고 경직된 표정, 안경 소년은 웃고있다. 칼주먹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달린다. 그 순간! 철컥! 소리와 함께 분리되는 왼팔! 실장 배틀러는 모듈 구조로 되어있기에 파츠의 분리도 자유자재다! 아마 1호는 왼팔은 포기하고 오른팔로 일격을 노리겠다고 결심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가오는 칼주먹에게 고휘도 라이트를 비춘다! 순식간에 째앵 하며 밝은 빛에 시야를 뺏긴 칼주먹이 주춤대면서 정지한다. 1호는 그걸 노려 방금 칼주먹이 자신을 찔렀던 위치를 가늠해 스프링 펀치로 일격을 가한다! 파킨! ...잠깐 정적이 흐른다. 소년들은 고요해졌다. 잠시 후, 위석이 깨진 칼주먹이 털썩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소년들의 환호성이 놀이터에 울려퍼진다. 그도 그만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안경 소년은 분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수긍하고는 환호하는 대열에 낀다. 이렇게 소년들의 하루가 또 지났다.
주황옷 소년은 집에 돌아왔다. 실장 배틀러를 소중히 옆에 끼고있다. 그날 밤, 자리에 눕기 전 활성제를 가득 채워넣고 소년은 눈을 감는다. 실장 배틀러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일은 모아둔 세뱃돈으로 샵에 가서 실장 배틀러를 튜닝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날 꿈에서 소년은 실장 배틀러 챔피언이 되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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